모든 인간은 각자 지향하는 목적을 틀림없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이 이루어 주기를 바라시는 하나의 최후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 인간이 바라는 것이 서로 다르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 둘,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과 인간이 바라는 것을 하나로 합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이 둘을 하나되게 하느냐?
타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진실되고, 유일무이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절대자이시고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도 똑같은 것을 바라십니다. 그 핵심, 또는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소원이 만나는 점은 하나의 점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인간의 소망과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명예, 지식, 물질적인 부에 있지 않고, 인간 존재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무엇인가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이 영원을 두고 하나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영원히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하나인 것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의 소망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해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라는 첫번째 자리는 어디일 것 같아요?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서 만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 자리는 가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면 무엇을 합니까? 만일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경험을 토대로 하여 가정에서 사랑의 전통을 세울 것입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게 될 것이며, 각기 경험한 사랑을 통해서 사랑의 전통을 세울 것입니다. 첫 단계에서, 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종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남편과 아내로 합하게 되면, 그들은 서로 횡적으로 사랑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 다음에 자녀를 낳게 되면, 종적인 사랑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부부가 자녀를 낳게 되면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하게 됩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고, 자녀에 대해서는 사랑을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인연이 변함없고 또 그것이 확고한 것이라면, 바로 그 가정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것이고, 그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가정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것이 실현되었더라면,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어떤 것을 믿기 위한 신앙이나 기도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 조상들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즉, 그들의 가정이 어떠해야 했던가 하는 이상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인간 타락에 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 타락을 강의할 시간은 없습니다. 아뭏든, 인간의 타락으로 우리는 그러한 이상적인 가정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창조본연의 위치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인간은 물질적인 것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부, 가정, 친구들, 이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빼앗기게 될 때는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조상이 타락했을 때 잃어버렸던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상실했던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 등 세 종류의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편과 아내로서 참사랑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의 자녀들과도 참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러한 경험을 한 자녀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손자의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와 같은 세가지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세 가지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은 그가 잃어버린 사랑이 어떤 종류의 사랑이고, 또는 어떤 가치가 있는 사랑인지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세 가지 사랑의 가치를 알고 계셨기 때문에, 자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상실하고 난후, 대단히 고통스러워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맨 처음의 부부를 상상해 봅시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자녀들이었으며,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들 사이의 사랑은 단절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슬픈 감정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않았지만, 그들이 타락할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상상해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인간의 아버지이셨던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도 그들을 그의 사랑권 밖으로 내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계명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두려움을 느꼈을까를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의 사랑과 생명과 행복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섭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인간들도 역시 모든 희망과 행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비극이었고, 가장 슬픈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분노의 감정을 하나님께서 인간을 타락시킨 원수 사탄에 대하여 가졌겠어요? 인간의 타락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은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세계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사랑 관계에 빠지게 되면, 다른 인연들은 다소간에 단절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셨습니다. 아버지이셨던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너그러이 봐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안 가졌겠어요?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용서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구원섭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말고 또다른 한 자식이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해 봐요. 그 자식이 사탄한테서 그의 형제를 빼앗아와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다면 하나님의 기분이 어땠겠어요? 그 자식을 벌주었겠어요, 내쫓았겠어요, 아니면 반가워했겠어요? 하나님이 그 형제를 다시 데리고 왔다고 그 자식을 벌주었겠어요? 그 자식도 같이 내쫓아 버렸겠어요?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 상관도 안 했겠어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겠어요. 그것이 문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칭찬해 주셨다면, 우리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그리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라고 한 예수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약속하실 수 없었습니다. 왜? 잃었던 것을 되찾는 데는 원리원칙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냥 빼앗아 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하나의 법칙, 즉 탕감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조건을 인간 자신이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은 자기를 배반하고 돌아섰던 인간을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탄의 품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는 데 있어서도 스스로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건입니다.
형제나 혹은 누가 사탄의 꾐에 빠졌을 때, 그 타락한 형제를 되찾아 오려고 하면, 사탄은 그를 아무런 조건 없이 가게 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사탄이 그 형제를 되돌려 주는 것보다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되찾아 오는 것보다 사탄이 더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을 사탄한테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타락한 형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한 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희생적인 형제가 제2의 그리스도가 될 것입니다. 타락한 형제는 그런 조건에 의해서만 해방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효성스러운 마음과 타락한 형제를 잃어버렸을 때의 하나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형제가 있다면, 그는 아버지의 슬픔을 덜어 드리고 그의 형제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가진 형제가 있다면, 그는 형제를 대신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자 할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갈라져야 했을 때, 양쪽이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슬픔과 타락한 형제의 슬픔을 모두 경험하고 그 슬픈 심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기꺼이 하려고 하는 하나의 남자, 하나의 형제가 반드시 와야 합니다.
그 형제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도 슬픔의 눈물을 흘렸고, 인간도 똑같이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만, 인간의 눈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잃어버린 형제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눈물은 희망의 눈물이 될것입니다. 인류 가운데 그런 사람이 나오게 될 때, 비로소 구원의 희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구원섭리의 문은 하나님의 슬픔과 인간의 슬픔을 덜어 줄 수 있는 눈물로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 점이 이해가 돼요?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서 울 때, 그 눈물은 사탄에 속한 것이 됩니다.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 우는 한 어떠한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벨은 사탄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탄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타락한 그의 형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만 대신에 아벨은 가인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다음 세 단계는 중요한 공식입니다. 먼저, 세상을 구하겠다는 사람은 사탄과 대항해 싸워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하나님과 타락한 형제의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그 형제를 대신하여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조건 위에서만이 타락한 형제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원리에서 가인 아벨의 문제에 관해서 배웠습니다. 아벨은 사탄 혹은 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과 형의 슬픔을 느끼고 체휼함으로써, 그들을 대신 하여 자신을 기어이 희생하겠다는 각오를 해야 했고, 생명을 걸고,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형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아벨은 가인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통일 식구들은 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은 아벨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우선 사탄을 대항해서 싸울 수 있어야 하고, 사탄세계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 심정과 사탄세계에 묶여 있는 형제자매의 슬픈 심정을 풀어 드리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 여러분의 희생을 대가로 사탄세계에서 그들을 기꺼이 구해 내려고 해야 합니다. 아벨이 희생하는 데서부터 복귀섭리는 진전될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공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섭리의 한 단위가 됩니다.
우리는 120년 동안 산에서 방주를 지었던 노아의 행동에서 또다른 예를 보게 됩니다. 그는 그 긴 기간 동안 사탄과 싸워 나왔습니다. 노아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 이웃과 친척들로부터 배척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나라로부터 그리고 온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반대를 받았습니다. 한번이라도 그 일을 포기하려고 했더라면, 그는 또다시 사탄의 침범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사탄과 대항해 싸워서 자신을 사탄으로부터 분립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사탄세계에 내보내어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그 자신을 희생하게 하십니다. 물론 그를 단련케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노아, 의인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고, 선한 사람이었던 노아는 항상 슬픈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우상 장수인 그의 부친으로부터 그를 분립시켰습니다. 그는 가족, 조국, 물질적인 부 그리고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사탄세계로부터 그를 단절시킴으로써, 그는 가나안으로 들어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단련시키고, 그로 하여금 그 자신의 민족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도 울 수 있게 하시면서 섭리를 발전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조국을 떠나 타국으로 가게 하면서 이 일을 하셨습니다. 그는 집시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는 항상 간절한 심정으로 울며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통해서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이라고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성서를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그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가족, 조국, 물질적인 부, 그리고 기타 모든 것을 뒤에 남겨 두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미지의 땅으로 가서 항상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림으로써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민족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했으며 나라를 위해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한 조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울 수 있었으며, 수많은 후손이 번성하도록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하셨던 것은 그와 같은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집을 떠나 하란으로 가서 종과 같이 지냈습니다. 그는 삼촌 라반으로부터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삼촌은 그가 원했던 라헬 대신 레아를 주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취하게 되자, 그곳을 도망쳐 나와 집으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21년에 걸친 어려움의 터전 위에서,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라반은 그를 열 번이나 속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생을 겪음으로써, 그는 하란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그를 속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천사와 씨름하였던 그의 행동은 그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사탄에 대항해 싸운 행동이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모세에게도 있었습니다. 바로 궁전에서 40년을 보낸 후, 모세는 모든 영광과 부를 버리고 자신을 사탄의 세계로부터 분립해야 했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자기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공식을 거쳐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살펴보기에 앞서, 세례 요한을 살펴봅시다. 세례 요한은 광야로 인도되었습니다. 즉, 그는 집을 떠나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분립해서 광야로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지냈던 것입니다. 그는 오실 메시아, 하나님, 그의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것이 그가 자기보다 앞서 왔던 선지자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는 메시아가 온 세계를 통치하실 것을 소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할 때는 남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렸고, 유대 민족이 사탄세계를 다스리기 위해 오시기를 바랐던 메시아가 오시기를 바라며 눈물을 흘렸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선지자들은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었지만 세례 요한은 오시는 메시아를 위해 그의 갈 길을 곧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오실 분을 위해 기도를 하지 못했지만, 세례 요한은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그가 가장 위대한 선지자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자신의 나라의 통치자를 위하여 기도를 했지만, 반면에 예수님은 전세계의 통치자로 오셨던 것입니다. 요한의 관점은 하나님의 심정과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했던 시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메시아관은 자기 나라를 위한 메시아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메시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오실 것이라고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의 규칙이었던 모세의 율법을 지킬 것으로 기대 했지만, 예수가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세계를 구하려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야는 더 넓었으며, 요한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시야에는 하나의 국가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서로 다른 길로 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를 반대했던 이스라엘 민족 편에 서게 되었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자초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과 하나되었더라면,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사도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세례 요한의 추종자들과 그리고 세례 요한을 모든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믿었던 온 민족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겠어요?
선민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으로부터 분립되어서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들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민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시민이 되어서, 선택받은 국가가 건설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선별된 민족,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그런 민족 가운데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그 민족이 예수를 영접하여 예수와 그 민족이 분립된 국가를 형성하였더라면, 구원섭리는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립된 국가는 아벨이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랬듯이, 다른 타락한 나라와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서 자신들을 희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면 예수님은 그 나라의 주권을 가지고, 그들은 그 통치권 밑에서 영육 양면으로 풍족한 축복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전세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소망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국가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구세주를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37-39)'는 귀절을 읽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 각자가 남을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아벨과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전세계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요, 이웃인 전세계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계명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공식을 한번 더 반복해 봅시다.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하여 사탄을 이겨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웃과 형제와 전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희생시키려고 하시는 그 심정을 체휼해야 합니다. 이 삼단계가 하나님의 공식입니다.
이 땅의 위인과 성인 또는 성자들은 그들이 속하여 있던 타락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립했고, 어떤 새로운 것을 주장하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그들 자신을 희생하여,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그들을 구원하려고 애썼습니다. 항상 그들은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은 지금까지 설명해 나온 그와 같은 노정을 걸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공자, 석가 그리고 마호메트 이 4대 성인들도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동경하고 인류를 사랑했기 때문에 인간들을 위해서 역경과 박해를 헤쳐 나갔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예를 들어 봅시다. 열 명의 친구가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그 친구들이 자기를 위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의 이기주의 때문에 친구들은 모두 도망을 가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자기를 부정하고, 친구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하고,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한다면, 그들은 자연적으로 그에게 끌려 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 친구들은 그를 그들의 친척과 그들의 이웃에게 데려가 소개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무리는 점점 숫자가 불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도 그러한 무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무리와 함께하시며, 그런 무리를 위하여 존재하고 계십니다. 좁은 소견으로 보면 남에게 봉사하고 남을 위한다는 것이 어리석게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그는 중심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 단체의 중심이요 핵심이 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될 것이고, 또한 그에게 그들의 생명을 구해 주고, 이끌어 주고, 주관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주관을 받고 싶어할 것이고, 그의 지도를 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만일 나라의 지도자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 국민들은 무릎을 꿇고 그들을 주관해 줄 것을 빌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기꺼이 지배받고 싶어할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공식에 입각한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는 존재할 것이지만,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 만연되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사상은 그러한 점에서 위험한 것입니다. 이러한 공식에 근거해 볼 때,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이 공식과는 다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이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사람들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 깊이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셨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 그의 자세는 아버지만을 사랑하는 아들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원수조차도 사랑했으며, 그를 위하여 기도까지 하였습니다. 역사상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곧 전인류를 사랑하였다는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이 예수님을 위대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의 친구, 혹은 예수의 신부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를 여러분의 아버지로 모실 수 있고,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여러분이 가지게 됩니다.
이제 결론을 내려 봅시다.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들 중에서도 가장 어리석은 자인 것입니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가 현명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전세계를 소유할 수 있고 하나님과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상속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을 소유함으로써,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 중에서 최고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이상, 그리고 인간의 목적을 소유한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사랑으로, 참사랑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은 삼 단계의 공식을 기억해야 됩니다. 즉,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시킨 후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이 삼단계 공식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여러분 자신만을 위해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전세계를 구할 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결혼을 한다 하더라도 인류를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결혼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망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할 때에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할 때, 그 결과는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통일교회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희생시켜 캐나다와 세계를 구원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길 바랍니다.
문:우리가 사탄세계에 있을 때, 어떻게 사탄으로부터 자신을 분립할 수 있습니까?
분립에는 삼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탄의 환경으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분립해야 하고, 둘째는 사탄으로부터 여러분의 몸이 분립되어야 하고, 세째는 사탄으로부터 여러분의 심정(사랑)이 분립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의 심정이 하나님과 통해야지 사탄세계와 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물질로써 하나님께 나아갔고, 신약시대에는 우리의 몸을 제물로 해서, 우리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만, 마지막에는 심정(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삼단계를 통과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육신적인 부모의 환경을 끊어야 하고, 그리고 심지어 타락된 남편과 아내의 관계까지도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