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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와 천국의 기원

일시: 1971.11.21 (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1월 21일, 이달 들어 세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에 당신이 찾아오시어서 저희들 개개인의 심령을 살피시옵고, 당신의 마음에 합당한 개개인을 만나시어 일일이 당신께서 저희들에게 요구하는 뜻이 무엇이며, 인간이 가야 할 책임노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보다 높은 가치의 존재로서 아버지 앞에 접근하려 하는 저희 개체들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체득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히 아버지를 부르면서 엎드린 이 자리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같이하시길 바라옵나이다.

당신께서 하늘의 권한을 가지고 이 땅 위의 인간을 찾아오신 것은, 낮고 천한 인간을 슬프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높고 귀하신 하늘의 권한을 무조건 저희들에게 주고 싶어 찾아오신 것을 아옵나이다. 당신이 지존하심에 따라서 저희는 겸손해야 될 것을 이 시간 깨달으며, 당신이 저희를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마음 앞에 저희는 순응의 제물이 되어야 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옵니다.

새로운 약속과 더불어 당신이 분부하실 수 있는 내적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저희들에게는 당신의 아들로서 당신의 분부 앞에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자녀의 명분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슬픈 역사노정 위에서 덧없이 수고하여 나오셨다는 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 아버지의 집을 떠난 고아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닫게 되옵니다. 부모가 있는 줄 모르던 이 인류 앞에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 이 이상 복된 소식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탕자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였지만 그 결과는 비참과, 고독과 생사가 엇갈리는 도상에서 갈 길이 막혀 돌아서지 않을 수 없는 처량한 자신을 발견하고, 하늘을 향해 되돌아선 무리들의 모습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된 모습이 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옵니다. 상처가 심하고 남루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되돌아온 모습은 처량하지만, 부모를 그리워하고 옛날을 추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그 속에서 싹틈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자의 인연을 다시 맺을 수 있는 봄절기가 시작된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 마음에도 탕자된 자신들이었음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스스로 각자 나름대로의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동쪽을 향하여, 서쪽을 향하여, 혹은 남쪽, 북쪽을 향하여, 어떤 방면을 따라서든 걷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옵니다. 골짜기에 떨어져 허덕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끝도 방향도 알지 못하는 산정을 향하여 한없이 수고로운 길을 가고 있는 무리들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상하의 노정을 더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산중턱을 중심삼고 돌고 도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 천태만상의 모습이 세상의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인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는, 향방을 가려가야 할 저희 자신들임을 생각하게 될 때, 나는 지금 어떤 방향을 향하여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스스로 명시해야 되겠습니다. 스스로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이 방향이 중심으로부터 무한히 떨어져 나가는 방향인가, 혹은 하나님과 반대되는 슬픔의 방향을 거쳐 나가는가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이 나가는 방향이 틀렸거든 여지없이 돌아설 수 있는 새로운 결의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혹은 자기의 방향이 아버님의 방향과 일치된 노정에 있거들랑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달려가고 또 달려가야 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야 할 운명길에 있어서, 이제 개인으로서 가정을 추어 가지고 가정은 종족을, 종족은 민족을, 민족은 국가를, 국가는 세계를, 세계는 천주를, 그 천주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의 사랑의 곳까지 되돌아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의 역사 속에 있는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삼자의 입장에서 직시하게 될 때에, 자기에게 수고로운 과거가 있었으되 그것이 가야할 이 길 알에 아무런 보탬이 못 되었다 할진대는 그 수고로운 역사적인 사실들은 슬픔이요 고통이요, 아버지 앞에 기쁨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부끄러움의 자극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희들의 하루의 생활, 일년의 생활, 일생의 생활이 얼마나 신중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습니다.

현재 내가 처하여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늘이 기뻐하는 자리인가, 인간으로서 슬퍼하는 자리인가, 혹은 나 자신이 슬퍼하고 있는 자리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슬퍼하는 그런 자리이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자리는 하늘이 기뻐함과 동시에 인간들이 기뻐하고 또한 나 자신이 기뻐하는 자리이어야 되겠습니다. 자신이 기뻐함과 더불어 환경 전체와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위치를 갖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천국의 말을, 천국의 소원을, 천국의 욕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곳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비록 가진 것이 없고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늘과 일치된 방향에서 자신의 갈 길을 가기에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은 고독단신이라 해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요, 굶주리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불쌍한 사람이 아니요, 혹은 원수와 싸우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그 싸움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생명을 다하는 입장에 있다 할지라도 하늘의 방향을 향하여 생명을 던지고 가는 사람이라 할 때. 그는 세상에 있어서 실패자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는 고독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아옵니다. 그는 비참한 것 같으나 비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왜냐하면 그의 고독은 당신의 고독을 대신한 것이요, 그의 눈물은 당신의 눈물을 대신한 것이요, 그의 처량함은 당신의 처량함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자리는 온 만물이 동조하는 자리요, 역사의 심정을 더듬고 있는 수많은 인생이 있다 할진대 그 인생들이 동업자의 입장으로서 편되어 주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을 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 시간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 지금까지 20, 30, 40, 50, 60, 70, 80의 생애노정을 거친 각자의 모습이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표준하고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지금까지 살아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나'라는 가치의 결정기준을 어디에 두고 나왔는가를 다시 한 번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현재 저희의 입장이 당신과 대하는 방향에 있어서 직선의 방향이 아니라 180도 다른 방향에 서 있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불러도 들을 수 없고,볼래야 볼 수 없고,갈래야 갈 수 없는 자리에 있다 하면 이는 얼마나 비참한 무리이겠습니까? 아버님, 그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을 향하여 얼굴을 돌려야 되겠고, 당신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야 될 것이 당신으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의 생애노정이 아니겠습니까?

아침 해가 떠오르면 미물인 곤충들도 그 빛을 반기고, 어두운 밤 가운데서도 빛이 발하면 그 빛을 따라 모든 곤충들이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만물까지도 빛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아버지, 하늘이 있고 당신이 계신다고 할진대, 어이 저희들의 발걸음은 당신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저희들의 시선과 감정은 당신의 마음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사옵니까? 하온데 그러지 못한 것이 타락이었습니다. 빛을 보고 그것이 빛임을 알지 못하고, 생명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처참한 타락의 후예임을 탄식해야 할 자신들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되겠사옵니다.

내 손이 얼마나 선하였으며, 내 발이 얼마나 선하였으며, 내 보는 눈과 내 얼굴이 얼마나 선하였던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선이라는 것의 근거지가 어디인가를 생각할 때,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당신을 중심삼지 않고는 선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자식에게 있어서는 부모가 전체의 중심인 것을, 기쁨의 중심이요 소망의 중심이요 생명의 중심인 것을 저희들이 어린 생명을 두고 깨닫게 될 때, 태초에 우리 인간의 선의 중심이 어디였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아니요 환경도 아니요 당신이었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당신으로부터 빚어질 수 있는 선한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 가를 저희들은 깨닫고 있습니다.

아버님, 당신이 진정으로 저희를 만나고 싶어하시는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그 자리를 마음으로 무한히 무한히 그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더불어 앉아서 먹고 말하고 자고 깨고 오고 가고 좋아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할 때, 그 자리는 천상세계도 아니요, 이 세계를 넘어선 그 어떤 세계도 아닌 줄 아옵니다. 그 자리는 자신의 오관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감정의 세계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자리는 직접적인 대상권인 것을 깨닫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저희들이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하늘의 인연을 가졌기에 아니 올래야 아니 올 수 없는 내적인 충격을 받고 왔사옵니다. 그것은 당신이 같이하신 연고이옵니다. 밤길을 헤치고 준비하여 나서는 남다른 그 걸음은 고독한 것이로되 지극히 고독한 당신의 입장에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요, 하늘의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밤길을 헤치고 나서는 그 길은 망하는 길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아버지의 거룩한 제단 앞에 봉헌할 수 있는 제물이 되게 될 때는, 숫것으로서 바쳐질 수 있는 제물 되기를 그리워해야 하겠습니다. 그 누구라도 가치적인 것을 중심삼고 바란다 할진대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을 자가 없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과 인간이 제단을 놓고 엄숙히 대하는 그 자리 위에 바쳐질 수 있는 첫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안식일이 찾아와 그 새벽에 고요히 무릎을 꿇고 당신 앞에 사연을 아뢸 때 제일 좋은 내용을 가지고 아뢰고 싶으나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갖지 못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느끼는 자리가 비록 비참한 자리일지라도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거룩한 제단 앞에 숙명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죽어야만 될, 희생해야만 될 제물의 모습으로서 오늘도 바쳐지고, 내일도 바쳐지고, 일년도 바쳐지고, 생애도 다 바쳐질 수 있다 할진대는, 심각한 제사장의 손길 앞에 있는 제물이라 할진대는, 그 제물이 거동하는 자리에는 당신의 시선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그런 제물의 입장에 있는 사람의 전체는 당신의 심정을 반영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대상이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런 자리를 그리워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거든 찾아 주시옵소서. 그 자리를 그리워하면서 자기 생명의 가치를 거기에 다 투입시키고,전체의 가치를 거기에 집결시켜 당신 앞에 한꺼번에 바쳐 드리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사라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당신의 심정 세계로부터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는, 언제까지고 당신이 지켜 주시는 아들딸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아옵니다.

아버님. 통일교단을 사랑하십니까? 교단을 사랑하기 전에 가정을 사랑 해야 될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통일교단 가운데 사랑하는 가정이 있사옵니까? 그런 가정이 있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립고 또 그리워 아니 만날 수 없고, 아니 찾아올 수 없는 그런 아들과 딸이 이곳에 있다 할진대는, 이곳이 사막과 같이 고독한 자리라 할지라도 이곳은 황무지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당신이 모든 창조물의 주체의 자리에 계시고 모든 실권의 주체이시며 행.불 행의 요인을 좌우할 수 있는 주인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자리는 아무리 초라하다 하더라도 초라한 자리가 아닌 것을 아옵니다.

당신의 온유한 마음 가운데 그려지는 말씀을 통하여 부르시는 당신의 부드러운 음성을 그리워하는 이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손을 내밀어 저희들을 더듬어서 사랑하고 싶어하시는 그 모습과, 그 부드러운 감촉을 그리워해야 되겠사옵니다. 언제 그런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느냐고 하게 될 때, 그런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이요, 그런 내연을 갖지 못한 사람은 고독한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제 저희들은 천년 한, 만년 한을 품고 그러한 자리를 추구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를 알지 못할진댄 무한히 외로운 고아요, 무한히 고독한 사람이요, 비참한 죽음길에 선 사람인 것을 깨닫고 내 몸이 여위더라도 그 자리를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자리를 찾아가다가 죽게 되더라도 그 무덤 앞에 하늘을 그리워하다 죽은 사람이라는 비석이 라도 세우게 될 때, 당신이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 사람의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제단 앞에 부복할 수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불초한 몸들을 가누어 후하신 당신의 은사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아침에 아버지 앞에 찾아온 무리이오니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자유로운 입장에서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타락의 후예 된 이 원한으로부터 이를 악물고 벗어나야 되겠사옵니다. 어떠한 희생을 천번 만번 치르고, 수없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이름과 더불어, 최후의 음성과 더불어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에 처하여 있는 저희들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누구를 위하여 있습니까?'나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 하는가' 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이옵니다, 세상의 권위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도 싫습니다. 세상에서 자랑할 수 있는 외적인, 물질적인 요인을 갖추었다는 사람도 싫습니다. 외적으로 아무리 호화찬란한 입장에 있더라도 당신의 마음의 그리움이 저희들에게서 사라지고, 당신의 자비와 동정이 저희의 환경에 없다 할진대는, 이곳은 사막 중의 사막이요, 저희는 고독한 사람 중의 고독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찾아오시옵소서. 통일교회를 사랑하시거든 이 자리를 지키시옵소서. 아버지, 1971년도도 이제 40일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가고 오는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옵니다. 남겨야 할 뜻도 이 덧없는 세월과 더불어 흘러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산을 바라보고도 그 뜻을 염려할 줄 알고, 흐르는 물을 보고도 혹은 물소리를 듣고, 바람소리를 듣고도 그 뜻을 염려할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뜻을 그리워 그리워하며 허덕이고 사는 당신의 아들딸을 수많은 종교인들 가운데서 찾다가 못 찾고, 배척받고 있는 무리인 통일교단에 와서 찾을 수 있다면, 저희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옵니다.

이 자리는 당신이 소심(素心)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한스러운 마음이라도 다 풀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렇지 못하거든 당신의 억울함과 슬픔을 저희들을 쳐서라도 풀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가 되면 이 자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그런 자리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몸부림치며 원망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머무를 수 있는 승리의 길을 닦는 데 무슨 일은 없겠느냐면서, 내일의 희망을 다짐하는 통일의 역군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이 시간 잘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갈 길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은 당신과 더불어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데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통일가를 이끄시옵소서. 이들이 그리워하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이며, 이들이 그리워하는 세계가 어떠한 세계이옵니까? 저는 아버지 앞에 원하고 있사옵니다. 나라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생애를 기울여 지금까지 나왔으나 정성이 부족하여 그 나라를 보지 못하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고, 그리워하던 세계를 바라고 나가다가 쓰러지는 자리에 처하더라도 당신을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당신의 뜻에 맡기고, 당신의 이끄심에 감사드리며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타락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느낄 줄 아는 통일가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변명을 잘합니다. 저희들은 자기 자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반면 하늘을 변호하기 위하여 얼마나 심각하였으며, 하늘을 지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과연 부끄러운 모습들이옵니다.

아버지, 이 통일가를 지켜 주시옵소서. 세계 도처에 있는 당신의 자녀 들이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사오니, 만나 가지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이 아버지를 중심삼고 드높은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당신께서 사랑하신 역사적 인연을 따라서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땅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이 땅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할 통일의 무리들은 비참한 자리에 서게 되더라도 또 가야 되겠사옵니다. 끝까지 싸워서 남아지는 자가 되고, 끝까지 영광의 존재로 남아져 당신의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사실, 당신의 승리를 찬양하는 그때가 되면 그날을 영광으로 찬양하기에 부끄럽지 않는 모습이 반드시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당신의 한 아들은 지금 중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사명을 완수 해야 할 입장에 있사오니, 그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시키고 당신이 가실 그 길을 닦기 위해 어려운 자리에 서 있는 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을 아버지께서 지키시옵소서. 하늘이 바라는 그 기준에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남아야 된다는 것을... (녹음이 중단됨)

말 씀

사람은 누구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름 있는 사람이 되고, 권위 있는 사람이 되고, 무게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원(가치의 기준)이 실현되는 자리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누구나 바라는 그 가치의 기준, 그 가치는 어떠한 곳에서 찾아질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종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천국입니다. 그들의 소원은 어디에 귀결되느냐 하면, 천국에 들어가고,천국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소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가치 있는 인간이 된 후에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할 때, 그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가치 있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보다 높은 단계의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도 단계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도 계급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상 중 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영계에도 상 중 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삼층천을 보았다는 그런 체험적인 내용을 보나, 성서에서 가르쳐 주는 해의 영화, 달의 영화, 별의 영화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별과 별의 영화도 각각 다르다는 것을 두고 볼 때에도, 거기에는 여러 계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질서라는 것은 반드시 주체에서부터...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직적인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질서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질서라는 것은 선후관계를 통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선후관계, 상하관계, 좌우관계를 중심삼은 상중 하의 계층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에도 여러 가지의 계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계층은 무엇으로 좌우되느냐? 그것은 가치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만큼 가치 있는 존재냐 하는 문제가 그 계층을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라는, 보다 가치 있는 인간의 기준과 천국으로 출발할 수 있는, 하늘이 바라는 기준이 일치되어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 만일, 하늘이 바라는 가치의 기준과 인간이 바라는 가치의 기준이 다르다 할 때는,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기뻐하고 우리 인간이 기뻐하려면, 하늘이 바라는 것과 인간이 바라는 것이 일치되어서 이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같이 이루어져서 우리 인간도 기뻐하고 하늘도 기뻐할 수 있는, 양면의 기쁨으로 화(和)하여 가지고 하나의 기쁨으로 연결되면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의 터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혼자는…. 제아무리 세상에 없는 권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권위를 가진 그 자리가 고독단신이 된 자리라 할 때에는,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가 중심의 자리에 서 있으면, 그 중심과 더불어 관계되어 있는 분야가 넓고 크면 클수록 그 넓고 큼에 따라서 그의 행복의 기준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많은 것을 갖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귀한 것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과 관계를 맺으려고 일상생활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보다 행복할 수 있는 환경과 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란 홀로 있는 고독한 자리에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상대적 관계를 맺는 데에서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대적 관계는 상충적 관계가 아니라 상응적 관계이어야 합니다. 서로가 화하고, 서로가 위하는 상대적 관계를 맺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상대적인 관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자기를 위하려는 자리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가 상대를 위하는 자리,그 자리가 노골화되면 노골화될수록. 표면화되면 표면화될수록, 그것이 전체에 긍(亘)하면 긍할수록 그 행복의 자극이 전체에게 높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 자리가 축소되게 될 때는 행복도 축소된 한계선으로 제한 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 자신을 두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 광대무변한 대우주를 창조하셨겠는가? 하나님께서 광대무변한 우주를 창조 하신 것은 조그마한 분야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 것이 아니라, 보다 광대한 행복권을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광대무변한 우주를 그 주체 되시는 하나님, 즉 창조주와 피조물이 그 어느 누구도 영원히 침범할 수 없는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행복의 요인으로 만들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 만들어진 피조물과 만드신 창조주가 서로 상극이 아니라 상응할 수 있는 입장에서 피조물이 가치 있게 될 때는 창조주도 가치 있게 되는 것이요, 피조물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게 될 때는 창조주도 기뻐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만이 창조이상의 기쁨이 실현될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인격 기준

하나님이 그러한 인연을 따라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 자신들도 그러한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크다면 얼마나 큰 것을 바라느냐? 무한한 것을 바랍니다. 자기의 상대적 인격을 추구하는 그 무엇이 있다 하면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권내의 인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 천 년 몇만 년이 되더라도 생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큰 인격을 자기도 모르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남의 생각도 미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도 미치지 못하는 그 이상의 가치적인 인격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인격을 추구하는 인간 자체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이 주체가 되었다면, 그러한 인간이 주체로서 바라는 상대물도 무한히 무한히 큰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갖더라도 하나 가지고는 만족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 세계 전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 이상(以上)의 것까지도 바라는 마음이 여러 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자신들의 생각으로는 추구할 수 없는, 그 이상(以上)의 인격의 기준을 마음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 세계를 바라는 데도 그렇게 바란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 인간의 인격의 가치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 가치의 기준이 제한된 시간이나 공간권내에 일정한, 한 표적과 같이 나타난 것을 두고 '이것이다' 할 수 있느냐? 물론 '이것이다' 라고 할 수 있더라도 어떠한 선내에 혹은 어떤 권내에 싸여진 것을 이것이라고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한과 연결된 대우주의 중심적인 입장에선 자기 자체를 인정하는 기준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이다' 하더라도 어떤 선내에서가 아니라 전체가 연결된 것을 '이것이다' 라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다면 그 인간이 바라는 인격의 기준도 무한과 통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한계선내가 아니라 그 한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기준까지 확장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인격의 기준이 그렇게 방대하게 확장되어 나간다면 그 중심이 될 수 있는 핵은 무엇이냐? 그것이 '나'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 자체만 가지고는 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방대한 대우주권내에서나 홀로 있어 가지고는 중심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나와 더불어 상대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뭐냐? 그것은 나와 같은 것이어야 됩니다. 나와 같은 것인데 그것이 상대성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도 그러한 가치의 기준을 바람과 동시에 여자도 그러한 가치의 기준을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치의 출발이라는 것은 나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으려면, 그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제일의 기준이 무엇이냐? 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크다 하는 인격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제일 기준은 결국 자기와 같은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것은 사랑

인간 세상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가 가치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는데, 그 가치적인 존재가 어디를 근거로 하고 있느냐 할 때에 그런 문제는 그를 중심삼고, 또한 나를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일 것이냐? 이것이 문제됩니다. 그도 그 자리에 두면 좋겠고, 나도 그 자리에 두면 좋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일 것이냐 하는 것을 추구하게 될 때, 그 자리는 그저 좋다고 하는 막연한 자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디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좋다고 하는 명사를 여기에 적용시켜 보면, 그것은 마음속 깊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선이 있으면 그 선한 자리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 마음속 깊은 자리는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그럼 그 마음속 깊은 자리는 어떤 곳이냐? 나 홀로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자리여야 됩니다. 그런 자리라면, 그도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어야 되고, 나도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둘이 아닌 하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어디가 될 것이냐 할 때, 그 자리는 사랑의 자리가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마음속 깊이 사랑하느냐, 마음속으로 진정히, 참된 마음속으로 사랑하느냐 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좋다고 할 때 그냥 좋다고 하면 맛이 안 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내 마음속 깊이 진정으로 사랑한다' 이러면 맛이 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서로가 경계선을 타파해 버리고 둘이 아닌 하나로 결속되어야 합니다. 그 결속점은 서로 가만히 마주 보는 자리가 아니라구요. 서로 화하여 안팎이 하나인지 둘인지 알 수 없는 자리라구요. 만일에 그런 자리가 벌어졌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냐? 아까 말한, 인간이 바라는 가치의 기준과 하늘이 바라는 기준, 천국이 출발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일치되는 자리입니다. 만일 이것이 어느 한 곳이라도 맞지 않는다면 기쁨의 세계가 못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뻐할 수 있는 기원이, 기뻐할 수 있는 동기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디에서 출발을 하여 하나로 결속될 것이냐? 그 결속점은 어디일 것이냐? 그곳은 아까 말했듯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 성경 요한복음 14장을 보게 되면 말예요.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한 말이냐? '진리' 하게 되면 이것은 상대적 관념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말예요. '선' 하게 될 때 그 선이란 것도 상대적인 관념이지만 '사랑' 하게 되면 벌써 그 감이 어때요? '사랑'하게 되면 나와 더불어 한꺼번에 부딪히는 감이 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말(요 14:20)은 사랑을 중심삼고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인데 무슨 사랑이냐?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에 표준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경계선을 타파하여 일치시켜 가지고 하나로 결속시키는 누룩과 같은 것, 즉 원인이요, 동기요, 모체가 뭐냐 하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작다면 지극히 작은 것이요, 크다면 지극히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렇잖아요?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 눈만 한번 깜박해도, 힐끗 흘겨만 봐도 그것이 천지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라구요, 또 사랑하는 사람이 방긋하고 한번 웃는 표정만 지어도 천지가 들락날락하는 거라구요. 예민하다면 그렇게 예민하고, 작다면 그렇게 작고, 크다면 그렇게 크고, 보인다면 보이고, 안 보인다면 안 보이는... 그 경계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에 점령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도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안 그래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주고 싶은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받고 싶은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속삭이고 싶은 것이요.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만사를 인연맺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끊어지게 되면 이 우주 전체가 다 귀찮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리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모든 것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 등의 모든 것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우리 실제 생활에서 한번 예를 들어 보자요.

자, 백만장자인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다 갖춘 할아버지입니다. 아들딸도 있고,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외적으로 볼 때 부러울 것 하나 없이 전부 다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감이 어떤 영감이냐면 홀아비 영감이다 할 때, 그 할아버지를 보고 '아. 그 영감은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행복한 영감님이다' 그래요? 혼자 사는 할아버지들, 그런가 생각해 보라구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구요. 아직 그 자리까지는 못 갔지만 말예요. 세상에 아무리 잘생긴 남자 여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미남 미녀가 혼자 산다면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행복의 출발은 어디서부터냐? 이것은 지극히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가치적 기준이 성립되지 않고는 나타나지 않는 것인데, 그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세워지는 것이냐? 나부터야? 나부터는 될 수 없습니다. 가치의 기준은 나에서부터 세워질 수 없습니다. 나와 너 사이, 나와 너 사이에서부터 세워지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내가 그를 완전히 사랑할 수 있고, 그로 부터 완전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자리, 완전히 줄 수 있고 완전히 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게 될 때, 아무리 혼자 굴속에 갇힌 몸이라 하더라도, 자기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죽음길을 가면서라도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그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시간에는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고독하고, 비참 하고 생사가 엇갈리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 자리를 극복하고, 그 모든 환경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은... 사랑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나를 위해 노력 하고 있고, 내가 이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그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할 때는 죽음의 길에서도 강한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

이렇게 볼 때에 생명의 동기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철학계에서도 생명과 존재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존재가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하는 것이 문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어 가지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이 먼저냐, 무엇이 먼저냐? 생명은 반드시 상대적 인연을 통해야만 생겨나는 것입니다. 상대적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생명이 생겨나지않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기 전에 상대적 인연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대적 인연은 무슨 인연이냐? 사랑의 인연입니다. 상대적 사랑의 인연을 통해야 생명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있기 전에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생명을 갖는 데에도 그러한 상대적인 인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상대적 인연이 무엇이냐 하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 부모의 인연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아담 해와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될 것이냐? 아담 해와도 역시 생명을 갖고 존재하려면 거기에 상대적 인연인 그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자 하는, 사랑스러워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내적인 인연을 거칠 수 있는 상대적 그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연될 수 있는 상대적인 그 무엇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 이성성상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중심삼고 영원히 하나된,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을 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막연히 홀로 있는 분이 아닙니다. 상대와 더불어 일치되기 위한, 주체적인 입장에 계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과 일치되기 위한 상대적 입장에 있는 것이 누구냐?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하나되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규합점이 어디냐? 다시 말하면 셋이 하나로 합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넷이 하나로 합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나로 화해 가지고 서로가, 그가 나요 내가 그라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어디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의 자리가 어디냐? 혼자 살고 있는 남자, 혹은 혼자 살고 있는 여자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한 가치를 갖춘, 사랑을 중심삼고 완전한 가치의 결정을 보았다고 하는 첨단에 서서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신랑과 신부라는 말도 거기에 기점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들이 사랑으로 결합하게 될 때, 횡적인 주체와 대상인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종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개입해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입체적인 사랑권이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원을 보지 못한 것이 타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인간의 가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될 것이냐? 지식이냐?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가 석사 학위나 박사 지위를 가졌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하나요? 사랑할 때는 그런 것 다 없어진다고요. 사랑하는 데는 그런 것들이 다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거예요. 그의 눈이 지식보다 나은 것이요, 그의 모습이 지식보다 나은 것입니다. 그 사람 자체가 무엇보다도 낫다는 거예요. 그래야 됩니다. 그 자리는 지식이라든가 권력과 같은, 상대적 세계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 가치적인 기준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 외의 것이 보이는 자리는 참된 사랑의 자리가 아닙니다. 돈을 따라 결혼을 하고, 권력을 따라 결혼을 하고, 지식을 따라 결혼을 하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식이 사랑 앞에 서고, 권력이 사랑 앞에 서고, 돈이 사랑 앞에 서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관계는 사랑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인간의 가치기준은 무엇일 것이냐?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가치기준이 설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가치기준도 상대적 관념권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만큼 그 핵에, 창조원칙을 통해 주체와 대상이 합할 수 있는 그 핵에...

하늘이 바라보는 수직선이 있으면. 그 수직선이 머물 수 있는 핵은 한 점입니다. 요건 남자와 여자, 예를 들어 말하면, 거 뭐라고 할까? 이렇게 나무를 매달아 놓은 거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딱 중앙에 가게 되면, 요 점에 달린 나무에다 중심만 잡으면 평형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기울어지면 큰일나는 거라구요. 기울어지면 전체가 엇갈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이 수직선에 중심만 딱 잡게 되면 평행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평행이 되어서 도는 데는 수직을 그대로 영원히 보존하며 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거 있을 거아녜요? 인간이 몰라서 그렇지 그런 자리가 있을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인 동시에 변치 않는 것이기 때문에 외곬입니다. 한 길로 가는 거예요. 오직 한 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수직을 중심삼고 일치될 수 있는데, 그렇게 일치되는 데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점에서 일치되는 거예요. 부부면 부부간에, 이건 옛날의 아담 해와를 두고 말하는 거예요, 서로 사랑하여 결합해야 됩니다. 그 결합점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수직선에 딱 맞아 가지고 세 점이 딱 달라붙는 자리, 그런 자리가 있었을 거라구요. 만일 옛날 아담 해와가 그런 자리에 섰더라면 어땠을 것이냐? 그랬더라면 하나님은 많은 힘이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새로운 힘을 내기 위한 작용이 필요 없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라구요. 그 둘이 조금만 쳐들면 전체가 들려 올라오고, 조금만 늦추면 전체가 내려가고, 넓어지면 올라가고, 좁아지면 내려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기울어지면 전체가 틀어지는 거라구요. 그와 같은 수직선과 평면적인 중심이 접할 수 있는 그 기준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중심삼고 보는 가치기준일 것입니다. 그런 가치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느끼고 그외의 것은 원치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갖고 난 다음에. 그것을 이루고 난 다음에 보다 울타리가 되고, 보다 기쁠 수 있는 인연을 전체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상대적인 감동의 세계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제일의 조건은 그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가는 것이요, 여자는 남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건 인간세계에서 틀림없는 거라구요.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그렇게 된 거라구요. 아담은 여자를 찾아 나가고 해와는 남자를 찾아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해와를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해와를 중심삼고 찾아 나가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아가는 것입니다. 또 해와가 아담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도 아담을 중심삼고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수직선을 중심삼고 상대적 입장에서 서로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세 점이 접하는 자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인격의 기준이라는 것은, 가치의 기준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결합점에서 비로소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원칙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제일의 기준입니다.

세계를 사랑하려면 먼저 사람을 사랑하라

그러면 우리 타락한 인간들은 서로서로가 무엇을 바라고 나가야 될 것이냐?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선으로 되어 있으면 그 수직선을 중심삼고 남자나 여자를 찾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찾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이 여기 서 있으면─서서 다니는 동물은 사람 하나밖에 없다구요─ 서 있는 그 사람이 바라는 방향과 하나님이 바라는 방향이 직선상에 있어야 됩니다. 그럴 거 아니 예요? 언제나 직선상에 서 있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가 되고 일년이 되고 십년이 되고, 혹은 일생이 돼 가지고 죽어 가는 거라구요. 그런 무엇이 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방향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방향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방향을 찾아 나오는 거예요.

인격의 기준이 무엇이냐 할 때, 지금까지는 철인들이라든가 성현들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이나 세계관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주장한 내용은 무엇이냐,가치 기준에 있어서 그들은 무엇을 중심삼고 말했느냐? 그것은 외적인 나라라든가, 세계를 중심삼고 말했습니다. 막연하다는 거예요. 내가 나라를 직접 사랑할 수 있어요? 세계를 직접 사랑할 수 있어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대표적 중심이 무엇이냐?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누구부터 사랑해야 되느냐? 개인부터 사랑해야 됩니다. 개인부터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물론, 남자면 남자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은 어떤 목적관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를 추구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지 그 외에는 없는 거라구요. 남자들끼리 서로가 사랑을 해요? 그 뜻이 맞아서 그렇지요. 친구는 그래서 생기는 거예요. 목적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서로 사랑하는 거예요. 여자끼리 서로 좋아하는 것도 어떤 목적관을 중심삼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다면 사랑도 안 한다는 거라구요.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목적관을 중심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목적관이 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동기적 사랑이라고 보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보게 될 때, `세계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를 진짜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사람을 진짜 사랑해야 됩니다. 사람을 진짜 사랑하는 데는 자기의 상대를 진짜 사랑해야 됩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돼요. 그것이 부부입니다. 부부가 된 사람들은 자기의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여자는 자기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계의 남성을 사랑하고, 또 자기가 남성으로부터 사랑받는 가치적인 존재인 줄로 알고 세계의 여성을 그렇게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의 여자들을 자기 아내와 같이 귀한 여성으로 사랑하고, 또 세계의 남성을 아내가 사랑하는 자기를 대신한 입장에 세워 가지고,아내를 위하는 입장에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길은 이렇게 더듬어 나가야 되는 거예요. 막연해서는 안 된다구요.

그래서 가정이 국가 형성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세계를 형성한다 하더라도 가정이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천주주의(天宙主義)를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늘의 가정주의라는 거예요. 천주, 하늘의 집이라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하는 거예요. 그렇게 사랑했으니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은 절대적 사랑이 되었을 것입니다. 절대적 사랑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거라구요. 왜?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수직으로 되어 있는 거기에 접선될 수 있는 상대적 입장에 들어갔으니 절대와 하나될 수 있는 상대적 사랑권내에 들어갔으니 그것도 절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자는 시집을 잘 가면 남편의 권위의 자리에 아무런 공로도 없이 점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국민학교밖에 못 나온 여자라도 남편이 대통령이라면, 그 남편이 가는 데는 어디든 무사통과라는 거예요. 이와 같이 대등한 가치를 아무 조건 없이 한꺼번에 점령할 수 있는 수법이 무슨 지식세계에 있어요? 권력세계에 있어요? 그것은 사랑세계에만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사랑세계에만 비약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하늘나라도 직행인 것입니다. 모든 전체의 가치권을 직행할 수 있고, 간섭하는 데 있어서 무리를 제시할 수 없게끔 될 수 있는 방법이 사랑의 세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만일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상대적 자리에서도 절대자와 하나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런 절대적 사랑권내에서 태어난 아들딸도 절대적인 사랑을 받게 되니 자연히 절대적 상대권에 있게 되는 거예요. 절대적 상대권에서 모순, 상충이 없이 순응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절대적 사랑이 같이 있는 것이요, 그들은 절대적 사랑의 치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딸들은 평화로운 사랑의 울타리권내에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화합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이며, 거기에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사위기대 기준, 즉 이상적(理想的)인 가정의 형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와 그 아들딸이 하나되어 사위기대 기준이 이루어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어머니 아버지가 이렇게 딱 되었으면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요렇게 딱 붙는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사위기대니까. (그림을 그리심) 어머니 아버지가 이 기준에 있으면, 요것(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A)과 이것(B)도 같고, 이것(C)과 이것(D)도 같고, 요것(E)과 요것(G)도, 요것(F)과 요것(H)도 전부 같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것(A)이 절대라면 요것(B)도 요것(C)도 요것(D)도 요것(E)도, 뭐예요? 「절대요」 요것(F)도 마찬가지예요. 요것 (G)도 요것(H)도 절대입니다. 하나의 절대적 가치가 입체적으로 절대화 될 수 있는 그 권이 천국이 아닐 것이냐.

인간의 가치 기준이 무엇이냐 할 때에, 오늘날 세상에서는 지식을 두고, 사상세계를 두었습니다. 그 사상세계의 가치의 내용은 목적을 중심삼고 추구될 수 있으나 그 목적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그 세계가 어디로 갈 것이냐? 전부가 그 세계의 최고의 꼭대기를 놓고서 싸울 것이냐? 그렇게 되면 큰일 난다구요. 목적을 이룬 그 세계에 갔으면 거기서 돌아올 수 있어야 된다구요. 그것이 가정이더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천국의 모국(母國)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이상한 말이지만, 가정은 뭐라 구요? 「천국의 모국요」 천국의 모국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출발한 종교가 통일교회입니다. 통일교회는 가정천국 구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두고 볼 때, 신랑 신부의 이름을 통해서 찾아온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 기준은 무엇에 두어야 되느냐? 이상세계에 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세계에 두는 것이 아니예요. 이상적인 사람에게 두어야 됩니다. 그래서, 세계를 사랑하려면 사람을 사랑해야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방법을 알아요? 어떻게 사랑해야 돼요? 그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이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듯이,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여자 앞에는 아버지가 있고 남편이 있고 오빠가 있는 거예요. 그것이 가정이지요. 남자 앞에는 어머니가 있고 아내가 있고 누이동생이 있는 것입니다. 요거라구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세계를 사랑하려면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데,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사랑하는데는...

내가 생겨나려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부모만 있으면 되느냐? 아닙니다.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없으면 영영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닮을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있는 동시에 상대가 있어야 되고, 상대가 있는 동시에 아들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앞에는 아버지, 남편, 오빠 아니면 동생이 있다구요. 형제라구요. 아담을 해와보다 먼저 지었으니 아담이 오빠가 되지요. 아담 앞에는 누가 있어야 된다구요? 어머니가 있어야 되고, 그 다음엔? 아내가 있어야 되고,그 다음엔? 누이동생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에게는 누나는 없다구요.

그러면 태어날 때는 어떻게 태어나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중심삼고 태어날 때, 신랑 각시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로 태어나서 사랑의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된다구요. 그 부모는 아들딸에게 무슨 교육을 해야 되느냐? 지식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교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싸우는 사랑의 교육? 싸우는 사랑이라는 말은 없겠지요. 서로서로가 하나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이고, 또 어머니가 좋아하는 아버지이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어머니이고, 둘 다 좋아하는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어머니 아버지이고,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좋아하고... 내가 아버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렇게 보게 되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봐도,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봐도 사위기대지요? 전부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모두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의 기원이 어디냐? 인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담 해와는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아담 해와의 가치 기준의 설정은 어디서부터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사랑의 교육에서부터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교육을 받는 데는 어느 때까지 받느냐? 아버지가 아는 모든 가치의 기준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다시 말하면 성숙할 때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기록이 성서에 있어요? 이거 찾아봤어요? 있어요, 없어요? 사랑 받았다는 얘기는 없고 기분 나쁘게 타락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는 거예요. 이거 산통이 깨졌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의 교육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랑의 교육을 받아야 했던 아담 해와의 사랑의 교육 기준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없었다면 하나님의 이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랑의 교육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여러분, 천국가고 싶지요? 그러나 천국가서는 그런 교육을 못 받습니다. 이 땅에서 교육을 받고 살다가 가야 되는 거라구요. 이 땅에서 그 교육을 안 하면 큰일나는 것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는 거라구요. 그 교육이 무엇이냐? 어떤 게 교육이예요? 여러분, 알아요?

그러면 아담 해와가 교육을 받으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되느냐? 부모와 자식간이니까 부모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가게 되면 어디까지나, 언제나 따라가야 된다구요. 부모가 산에 오르면 산으로 따라가고 골짜기로 내려가면 골짜기로 따라가고 굴속으로 들어가면 굴속으로 따라가야 돼요. 언제나 부모와 같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안 보면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겠어요? 만일에 하나님이 아들과 떨어져야 한다면 떨어질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거라구요. 절대적인 분이기에 좋아해도 절대적으로 좋아한다는 겁니다. '뭐 하나님,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거 어디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그러면 되겠어요? 절대적이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이들의 생명의 모체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모는 그 아이의 생명의 모체지요? 생명을 키워 준다고요. 생명의 모체요. 사랑의 모체요, 보호의 모체입니다. 생명을 보호해 주고, 키워 주고, 사랑해 준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이거예요. 보호권이 성립 안 되면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생명이 위협받으면 사랑도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죽게 되었는데 사랑이 성립되겠어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보호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호권을 만들었는데 보호해야 할 것이 누구냐 하면 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생명의 기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천사장의 보호를 받아 가지고 사랑의 교육을 받고 있는 도중이었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그 교육을 다 받았더라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 것이냐?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했으니, 해와도 이렇게 사랑했고 아담도 이렇게 사랑했으니, 너희 서로서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하라'고 명령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 둘이서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한 것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일 것이냐? 그들이 성숙하여서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길 외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럼 왜 하나님보다 자신들끼리 더 사랑해야 되느냐? 서로가 더 사랑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그 집안이 잘되고,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체적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크다는 것을 더더욱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너희가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도 너희들끼리 더 사랑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는 거예요. 그것이 신랑 신부의 사랑입니다. 결국 그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에 못지 않은 사랑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던 것, 즉 종적인 사랑이 비로소 횡적인 인연의 사랑으로 출발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적인 사랑이 약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체요, 횡은 상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적 가치가 보다 가치 있게 되면 그 주체는 보다 큰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 자체가 서로 성숙해 가지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들끼리 더 사랑하는 것을 좋아하시기 마련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주체이기 때문에, 상대가 멋진 사랑의 실체로 화하면 주체는 보다 큰 사랑의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서 불행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서로 사랑 하기를 얼마나 바라셨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은 한 몸입니다.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주체로 계시기 때문에 자체내에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생각으로는 '남성적 주체의 자리다. 여성적 대상이다' 해 가지고 사랑을 느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남성과 여성이 분립된 입장에서는 자극적인 충격을 느끼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하나님 자신을 제쳐 놓고 자기들끼리 더 충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은 나빠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 둘이 하나된 그 자리를 상대로 해 가지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주체자이시기 때문에, 그 상대가 보다 가치적인 사랑을 느끼게 될 때, 하나님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중심한 사랑의 제일 법도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랑의 교육을 받지 않고는 그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림주는 어떤 분으로 오셔야 하느냐

그러면 통일교회에, 우리 통일교회에,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받아야 했던 사랑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심정적 내연이 깃들어 있다면, 이는 세계적 종교가 되지 말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들어오면 그런 무엇을 느껴야 됩니다. 느끼는 데는 어떻게 느껴야 되느냐? 여자는 최고의 아버지를 찾았다는 기쁨을 느껴야 됩니다. 최고의 상대의 가치로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의 기준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오빠 중에 세계 제일의 오빠를 찾은 기쁨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으로 오시는 분이 누구냐? 재림주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뭐라구요? 재림주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재림주가 좋아요, 초림주가 좋아요? 「재림주요」 재림주가 좋아요? 어떤 것이 좋아요? 사랑을 중심삼고 재림주가 좋아요? 첫사랑이 좋아요. 두번째 사랑이 좋아요? (웃음)

재림주라는 말은 초림주가 뜻을 성사해서 나온 거예요, 못 해서 나온 거예요? 「못해서….」 못해서 나온 거라고요. 그러므로 재림주는 어떤 분으로 오셔야 되느냐 하면. 인간세상에 있어서 최고의 아버지로 오셔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돼요. 세상을 구할 도리가 없어요. 사랑세계의 이상으로써 천국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러한 가치의 내용을 가져야 됩니다. 아버지로서, 신랑으로서, 오빠로서의 이 3대 심정적 내용을 완전히 종적으로, 횡적으로, 그리고 45도로 펼 수 있는 그러한 입장의 가치를 종합한 내용을 가지고 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님이 못 된다는 거예요.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잃어버렸느냐? 아버지의 참사랑을 못 받아 봤습니다. 받아 봤어요? 「못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남편의 참사랑을 못 받아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오빠의 참사랑….」 오빠의 참사랑을 못 받아 봤습니다. 이것을 누가 깨뜨렸느냐? 누가 그걸 깨뜨리는 동기가 되었느냐? 요 여자들입니다. 해와가 그랬다구요, 해와가.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은 역사과정에서 그것을 찾을 때까지 지지리 고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눈물을 흘릴 때에는 전부 다 사랑의 짓밟힘을 받아 가지고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탕감해야 됩니다. 사랑의 탕감을 해야 돼요. 여자의 눈물은 무엇이더냐 할 때, 사랑의 엇갈림길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 여자의 눈물이더라, 이렇게 돼 있다구요.

그러면 남자들은 무엇이냐? 도둑놈입니다. 담을 넘어왔다가 넘어가는 손님이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남자들이 지금까지도 천사장 대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넘어왔다가 넘어가는 거 책임을 못 지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책임을 안 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둑놈 같은 남자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담을 넘어왔다가 넘어가는 것이 남자들이라구요. 그런 것들을 믿었다간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자는 울고 살게 마련입니다. 역사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비참하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사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을 통해서 주님이 오시기 쉬운 것입니다. 여자들이 수많은 남자들에게 유린당한 역사를 가진 민족을 통하여 주님이 오시기가 쉽다는 거예요. 담 넘어온 사내들에게 짓밟힘을 많이 당한 여자일수록 오시는 주님으로부터 제일 동정받을 수 있는 패입니다. 그런 거예요

주님은 어떤 민족에 오실 것인가

세계적으로 가만히 보면, 여자들이 달랑거리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순박해 가지고 집안에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담을 넘어 들어와 가지고 유린하는 거예요. 그러한 민족, 여자들이 그렇게 유린당하는 비참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있다면, 주님은 그 민족 가운데에 오실 것입니다.

여자가 알랑알랑거려 가지고 나가는 그런 여자는 사탄편 여자입니다. 타락된 여자라고요. 그런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사탄편 해와 국가입니다. 그 말이 맞다는 거예요. 그러면 한국 여자들은 어떠냐? 그저 집안에 들어박혀 가지고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에게 유린당해 왔습니다. 여자가 유린당하기로는 아마 한국이 세계적인 대표일 것입니다. 며느리가 아들딸을 셋이나 낳았는데도 방에 들어와서 밥을 못 먹게 하는 시어머니를 내가 봤어요. 아들딸을 셋이나 낳아, 그 아들딸이 컸는데도 불구하고 그 며느리는 부뚜막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종살이 한다구요. 그 집에 시집가는 날부터, 시아버지한테 종살이, 시어머니한테 종살이, 그 다음에는 남편한테 종살이, 시동생한테 종살이, 시누이한테 종살이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종살이를 하는데도 가만히 두나요? 그저 좋고 나쁘고간에 뜯는다는 거예요. 옷을 조금 잘입으면 잘입어서 탈이고 조금 못 입으면 못 입어서 탈이고, 또 잘생겼으면 잘생겨서 탈입니다. 그렇게 생겨 가지고 남편만 호려 먹는다고…. 이래 탈이고 저래 탈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지긋지긋한 종살이 중의 종살이를 시집 간 그날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역사가 세계의 대표일 거예요.

그러면 왜 그래야 되느냐? 그 주인들이 전부 다 사탄세계의 천사장 족속들이고 해와들은 앞으로 자기 갈 길을 찾아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시 잡아다가 심부름을 시키는 여편네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게 맞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지지리 고생을 시키는 거라구요.

영계에 가서도 '세계적으로 고생을 많이 한 여인상' 하면, 한국의 여인이 대표일 것입니다. 그런 사실이 일면으로는 나쁘지만 어느 한때에 가서는…. 가물 때에는 제일 깊은 골짜기에서 수가 나는 것입니다. 깊은 골짜기에는 가물 때에도 물이 있거든요. 안 그래요? 그것이 반대라는 거예요. 꼭대기가 좋은 줄만 알았더니 가물 때는 큰 사고라는 거예요. 가물면 가물수록 물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에 꼭대기는 나쁘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가물면 가물수록 골짜기로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비가 오면 그 물을 전부 다 골짜기로 배급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세상이 아무리 메마른 땅이요, 사망의 세계, 백사장의 꼭대기와 같은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저 깊은 골짜기에서는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제일 아래로 내려가라, 내려가라, 내려가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이러면서 내리 모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간 꼭대기에서 나는 생수가 있어요? 그건 예외지요.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호외 꾼들입니다. 생수라는 것은 깊은 곳에서 솟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골짜기로 쳐 모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도 골짜기로 쳐 모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입을 벌리게 하고 몸뚱이를 패 가지고 생수가 터져 나올 수 있게끔 그저 아래 위로 눌러 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래 위로 나갈 데는 없고 몸뚱이를 밀고 눌러 대면 몸뚱이가 터져 가지고 몸뚱이에서 생수를 쏟을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식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식이냐? 절대 안 망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통일교회의 지도방침이 나쁜 것 같지만…. 어때요? 「좋습니다」 좋다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전부 다 '야, 야. 밟고 올라가자, 올라가자' 고 이러는데 물 보따리를 지고 올라가지 않고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올라가서 10년을 살겠어요? 몇 대 살겠어요? 어림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올라갔던 사람은 나중에 내려와 가지고 내 종이 돼야 된다는 거라구요. 빌어 먹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돼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여인들이 영계에 가게 되면 '고생을 제일 많이 했다'라고….그러면 거 불행한 거예요? 불행한 것 같지만? 「행복한 것입니다」 왜? 동정을 해주려면, 같은 사람 가운데서 도움의 손길을 펴려면, 그래도 벌거벗고 피를 흘리고 매를 맞아 가지고 죽게 된 사람부터 도와 줘야 될 것 아니예요? 거 순차가 그렇다구요. 그래도, 헌 옷이라도 입은 사람은 나중이라는 거예요. 옷을 갈아 입힐 때도, 상처가 나서 옷을 못 입었던 사람을 제일 먼저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 좋은 옷을 입었던 사람은 제일 나중에 입혀야 된다는 거예요. 가엾게도 꼴찌가 된다구요. 그래서, 성경에 먼저 된 자가 먼저 되고 나중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했어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또,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지고」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죽고 살고자 하는 자는 살고, 그랬어요? 반대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서 내가 죽으라고 하는 거예요. 눈을 부릅뜨고 '죽어라. 안 죽겠어? 이러는 것입니다. 그런 스승이 멋진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절개와 지조

오늘날 인류역사에 있어서 절개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남자가 절개를 더 지켜야 됩니다. 그런데 여자는 절개를 지켜야 된다고 하고, 남자는? 「지조입니다」 (웃음) 지조, 배짱인지 모르겠어요. 지조가 뭐예요? 뜻을 위한 절개를 말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목적을 위한 절개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절개는 사랑을 위한 절개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목적을 위한 사랑이 좋소. 사랑을 위한 사랑이 좋소? 아까 남자끼리는 목적을 중심삼고 사랑한다고 했지요? 그리고 남자와 여자, 즉 부부끼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먼저냐? 목적을 중심삼은 사랑은 나중이고 사랑을 중심삼은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절개를 지켜야 한다고 했으니 한 사랑밖에 몰라야 됩니다. 또 남자는 지조를 가져야 한다 했으니 한 목적만을 향해 가야 되는 겁니다.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한번 정했으면,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라고 했으니. 한번 한다고 했으면 망하더라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왜 그러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천사장은 지조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기의 갈 길을 알고 지조를 지켜야 했던 것입니다. 종이면 종의 지조를 지켜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그 지조를 못 지켰기 때문에 타락했지요. 여자는 절개를 못 지켰기 때문에 타락했다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본 남편이 아담인데도 불구하고 천사장에게 끌려갔지요?

그러니 통일교회 원리는 사랑을 중심삼고 말을 하는데, 이렇게 추구해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역사를 통해 볼 때, 음란이 팽창하면 반드시 그 나라는 망했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음란입니다. 음란을 제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지조를 깨뜨려 먹고. 절개를 깨뜨려 먹은 데서 왕초 망운이 싹텄기 때문에. 이렇게만 되면 들이치는 것입니다. 오늘날이 세계도 윤리관계가 말할 수 없이 문란해져 있고, 음란이 팽창되어 있으니 들이맞을 때가 올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여기에서 통일교회에서는 남자는 지조보다도…. 지조라는 말은 천사세계에서 하는 말입니다. 천사장인 종을 대해 지조라는 말을 쓰지 주인이 지조를 지켜야 된다는 말이 있어요? 주인은 목적적 상대이념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사랑의 상대를 위하여 주인이 오게 되면 그 주인에 대한 절개를 존중시해야 되는 때가 오는데, 그때가 이상시대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초림주가 좋아요. 재림주가 좋아요? 「재림주요」 초림주가 좋지요. '할 수 없이 두번째 장가를 가게 됐다. 약혼을 하려다가 다 그어 버리고 할 수 없이 두번째 했다' '그것이 좋아요? 두번째 결혼하는 사람은 첫번째 사랑의 십자가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초림주가 실패한 사랑의 십자가를 넘어 가지고 하늘 앞에 승리한 자리를 갖지 못하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로 가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영광으로 못 오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오셔야 되는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 교인들은 주님이 영광으로 오실 줄로 알고 있지요? 십자가로 와 가지고 승리한 후에야 영광의 주님이 되는 거라구요.

하늘 부모를 모시려면

자, 그러면 다시 돌아가자요. 세계를 사랑하려면 인간을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는 세계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을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할 것이냐? 어디서부터 사랑해야 될 것이냐? 뿌리부터 사랑해야 됩니다. 뿌리가 어디냐?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 뿌리는 어디냐? 아담 해와입니다. 그 다음 뿌리는 어디냐? 아담 해와의 아들딸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여러분 자신들을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들은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러분의 부모를 그냥 붙들고 있으면 하늘 부모는 들어올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부모를 모셔 들이려면 여러분의 부모를 옮겨 놓아야 합니다. 기분 나쁘지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아,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르치는 교리는 가정파탄 교리다' 그럴는지 모르지만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구요. 더 좋은 것을 원하거든 덜 좋은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눈이 있고 비교할 수 있는 지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갖다 놓고 둘 중에 어느 것을 갖겠느냐고 선택의 자유를 줄 때, 나쁜 것을 갖는 녀석이 있으면 그 녀석은 돌대가리입니다. 모자란 녀석이라는 거예요. 팔부 예요, 팔부. 팔삭동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애들도, 한 살 먹은 애들도 같은 모양인 큰 것과 작은 것을 갖다 놓고 하나 가지라고 하면... 우리 국진 애기도 이제 한 살 조금 지났는데 뭐가 있으면 한번 딱 보고 대번에 감정을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형님들이 가지려고 하면 그저 빼앗으려고 한다구요. 그 어린애 한 살박이도 그러는데, 아, 뭐 열 살, 스무 살, 쉰 살박이가 왜 안 그러겠습니까? 그럴 거 아니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엄마 아빠보다 더 좋은 엄마 아빠를 가르쳐 주면, 그게 틀림없다면, 지금의 엄마 아빠를 치워 버리고 더 좋은 엄마 아빠를 모셔 들이겠어요, 안 모셔 들이겠어요? 모셔 들이겠지요? 또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보다 더 좋은 남편이나 아내를 가르쳐 주면,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를 버리고 더 좋은 남편 아내를 모셔 들이겠어요, 안 모셔 들이겠어요? 여자들, 어때요? 지금 남편이 바로 옆에 앉아 있어도 할 수 없다고요. 이럴 때는 모셔 들인다고 큰소리로 대답해야 복받는다구요. (웃음)

자, 오빠가 있는데 개구장이 오빠입니다. 이래도 익살맞고 저래도 익살 맞고 꿈에 생각해도 지긋지긋한 오빠, 그런 오빠와 천지간에 하나뿐인 멋장이 오빠가 있다면 바꾸겠어요? 바꿀 수 있다면 바꿔야 되겠지요? 그런데 만일 그 오빠가 울고불고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오빠가 '아이고 너는 내 동생이 아니냐? 나는 너하고 같이 살고 싶으니 제발 그러지 말아 다오' 이러면서 울고불고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응, 그러자' 이러면 돼요? 발로 그냥 차 버려야지요. 그런데 발로 차 버려도 붙들면 어떻게 하겠어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거예요. 더 좋은 신랑 더 좋은 각시가 생겨날 수 있는데, 지금의 신랑이나 각시가 자기를 붙들고 놓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또, 어머니 아버지가 '야 이 녀석아, 이 불효막심한 녀석아, 내가 너를 낳았는데 너를 낳은 부모를 반역할 수 있느냐? 이러면 어떻게 하겠어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은 말하고 싶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예요. 사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의 사상으로 사랑의 질서를 세워야

타락이 됐으면, 고장이 났으면 고쳐야 된다구요. 고치려면 분해해야 됩니다. 분해하지 않고 고칠 수 있어요? 분해해야지요? 그러면 분해하는 것이 뭐냐? 현재의 오빠와의 인연을 그냥 둔다는 거예요, 끊어 버린다는 거예요? 또, 지금의 신랑 각시의 인연을 뜯어 놓는다는 거예요, 그냥 놔둔다는 거예요? 분해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인연을 뜯어 놓는 거예요. 전부 뜯어 놓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개인주의 세계 역사는 전부 뜯어 놓은 역사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는 기독교 문화권이요, 기독교 문화권은 통일 문화권인데, 박애주의 세계가 되어 인류 전체가 서로 사랑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반대 사조인 개인주의가 세계화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 앞에 나라가 어디 있어요? 나라를 다 뜯어 버린 거라구요. 나라가 어디 있으며, 민족이 어디 있으며, 부모와 가정이 어디 있어요? 다 끊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재미있는 놀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아파트에 열 집이 산다면 거기에서 자기들끼리 남편 바꾸어 살기 놀음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 사람은 내 아내다' 라고 금을 긋는 것은 독재라는 거예요. '뭐 그럴 것 있느냐? 그것은 옛날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 모자라서, 재미있게 살 줄 몰라서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것은 독재다. 시시하지 않느냐' 이거예요. '한 달에 한 번씩 바꿔 살면 일년 동안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그런 패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별의별 역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전부 뜯어 버렸다고요. 아버지 어머니가 어디 있고, 형제가 어디 있어요? 전부 다 뜯어 왔다는 거예요.

이것을, 이렇게 제멋대로 분해된 것을 우리가 다시 뜯어 고쳐야 됩니다. 갈고 닦고 해 가지고 조립을 해야 된다구요. 이런 면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조립공 훈련 장소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 안에 들어오면 대번에 분해 작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 느껴 봤어요? 여기에만 들어오면 자기 집에 가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집에 간다고 해 놓고는 쓱 돌아와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다구요. 그렇지 않다면 이곳은 소망이 없는 곳이라고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은 잘 듣게 되어 있다구요. 내가 너희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지 말라고 하면 '예' 하게 되어 있지, '선생님. 왜 그래요? 이러게 되어 있어요? 그런 말을 안 해서 걱정이지요.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그것을 막은 거라구요. '야야, 네 멋대로 수작 부리지 마라. 부작용이 벌어지니까' 하며 브레이크를 거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여자들, 여기 들어오면 전부 자기 남편 생각을 안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남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서 욕을 많이 먹었다구요. 욕을 많이 먹었어도 패이거나 망하지는 않았소만. 한번 거 수리공장에 집어 넣어 가지고...

수리공장에 들어가면 분해해야 되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첫째는 참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둘째는 참남편을 잃어버렸고, 셋째는 참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다 잃어버렸다고요. 누구 때문에? 해와 때문에, 천사장 때문에. 그러면 오늘날 이땅 위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참아버지와 참남편과 참오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생겨난 남자는 천사장뿐이라는 것입니다. 천사장 아버지, 천사장 남편, 천사장 오빠, 이렇게 천사장만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자는 그들에게 붙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은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를 들어 말하면, 부자집 고명따님이 머슴한테 붙어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머슴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의 아버지 사랑, 본래의 남편 사랑, 본래의 오빠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여자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여자예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라는 분은 그러한 사랑을 갖고 오시는 분입니다. 아버지 대신, 남편 대신, 그리고 오빠 대신. 그 세 가지의 사랑을 갖고 오신다는 것입니다.이 세 가지 사랑의 인연을 에덴에서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행복한 딸로서의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주님이 그 세가지의 사랑을 종합해 가지고 이 땅 위에 찾아오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남자들은 무엇이냐? 전부 다 사기꾼입니다. 남자는 사기꾼이라는 거예요. 천사장 패라구요. 남자들은 사기꾼들이라는 거예요, 사기꾼. 무슨 사기꾼이냐? 여자 속여먹는 사기꾼입니다. 여기 남자들,그런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지금 뭐 나이 많은 사람들도 다 웃고 앉았구만요. 남자들은 전부 다 여자 속여먹겠다고 하는 사기꾼이라고요. 그렇지요? (웃음)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 자리에 안 나갔기 때문에 몰라서 그러는 거라구요. 남자들은 그럴 수 있는 성격이 농후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사랑의 질서가 지금까지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질서를 세우지 않으면 본보기가 못 돼요. 행복의 세계는 오지 않는 거예요.대한민국이 경제부흥을 해서 돈이 많아진다고 천국이 될 것 같아요? 노르웨이 같은 나라는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 세계 제 1위라고 할 수 있지만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입니다. 덴마크 같은 나라도 그렇습니다. 부유하면 부유할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살율이 더 높다고요. 또, 사랑의 질서는 더욱 혼란되어가는 거라구요. 그것을 무엇으로 수습할 것이냐? 오시는 주님의 사상이 아니고는 그것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참부모 참부부와 참자녀의 사랑을 가지고서 수습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여인들 중에 현재의 남편과 사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여인들은 진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남편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좋아서 사는 여자는 앞으로 오실 주님의 신부될 자격이 없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남편과 마음이 맞지 않아야 누가 와서 추파를 던지더라도 휙 달아나지요. 전부 다 이러한 분해 작용이 벌어지기 때문에 끝날에는 가정을 가진 여인들에게 화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누가 하느냐? 남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는 호외로 치는 것입니다, 호외. 주님은 신부를 찾아오시기 때문에 가정을 가진 여자, 젖먹이는 여자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가진 여인보다도, 아이에게 젖 먹이는 여인에게는 3대 화가 있습니다. 부모를 저버려야 하고, 남편을 저버려야 하고, 자식을 저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연의 세계를 못 찾아간다는 거예요.

젖먹이는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남편이 있는 여인이요, 자식이 있는 여인이요, 부모를 가진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여인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는 혁명을 해야 됩니다. 역사적인 혁명을 해야 돼요. 남편이 원수시하고, 부모가 원수시하고, 자녀가 원수시할 수 있는 길을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엇갈린 역사의 종말을 세계가 거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어떻게 사랑해야 되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은, 축복받은 여러분들은 부모와 같이, 아내와 같이, 믿음의 아들딸과 같이, 그리고 여러분의 아들딸과 같이 인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그렇게 인류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천국의 모체이기 때문에, 누룩이기 때문에, 그 누룩을 갖다 옮겨 놓는 곳곳마다 전부 다 누룩이 되는 것입니다. 밀가루 떡은 누룩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이것을 요만큼 집어 넣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결국 누룩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요? 사랑의 누룩을 세계화시킨 그 자리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천정과 인정은 엇갈리는 것

그러면, 그 아버지 보고 싶어서…. 우리 한국 말은 좋은 것을 전부 다 죽겠다고 표현합니다. '아이고 좋아 죽겠다. 아이고, 맛있어 죽겠다. 슬퍼 죽겠다' 이러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몰라요. 죽겠다고 했으니 살 놀음밖에 없다는 거예요. (웃음) 성경에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산다'고 했기 때문에 살 놀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라구요. '아하, 끝날이 되면 한국 백성은 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와야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계시적인 말이라구요. 그저 전부 다 죽겠다고 합니다. 맛있어 죽겠다고 하지요. 그런 말이 어딨어요? 맛있어서 죽겠다, 좋아서 죽겠다, (웃음) 슬퍼서, 기가 막혀서 죽겠다고…. 여러분들, 가만히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말을 씁니다. 수십 번씩 그 말을 쓰면서도 다들 모르지요? 그런 거라구요. 아이고 재미있어 죽겠다, 통일교회 힘들어 죽겠다…. (웃음)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살 일이 벌어진다는 거라구요.

이제부터는 '통일교회 못 가게 해서 죽겠다. 가고 싶어서 죽겠다' 이런 말이 다 통해야 된다구요. '아이고 저 영감이 옛날에는 그렇게 좋더니 이제는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남편이 결국은 종의 새끼고. 자기가 그 종 새끼한테 겁탈을 당해 가지고 붙들려 산다 하게 되면 거기서 계속 붙어 살겠어요? 그러므로 끝날에 가게 되면 천지개벽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천지개벽이 뭐예요?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할아버지가 손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때는 어머니 아버지가 살려면 자식한테 '살려 주소, 살려 주소' 해야 살 수 있는 거라구요. 그것 천지개벽이지요?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라고 했지요. 그 말 잘했어요. 못했어요? 예수님은 '천정을 세워야 할 마리아, 너는 인정을 따라 천정을 세워야 할 아들의 길을 대하고 있느냐? 이 요사스러운 여인이여, 너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고 했는데, 그 말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어요? (웃음) 잘했지요. 못했다는 것은 인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천정과 인정은 엇갈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사람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하늘이 없는 것이요, 하늘이 좋다고 하는 데에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좋다고 하는 데에 추파를 던지고 박자를 맞추어 가는 종교는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죽기 내기를 하고, 피를 흘리고, 그저 쓰러지고 하는 종교는 세계의 끝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사니까….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까지 죽음을 연이어 가지고, 순교한 선열들의 피의 공적을 따라 가지고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도 그런 전통적 역사를 세워야 됩니다. 핍박이 있게 될 때만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럴 때만 하늘이 같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극성스런 원수가 극성스럽게 동원되어 가지고 부딪히는 자리를 박차고 솟구쳐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늘이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통해서, 그 길을 통해서 본연의 부모, 본연의 부부, 본연의 형제, 본연의 자녀가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길을 찾아가게 될 때에는, 세상이 전부 다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예수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식구'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요? 이 식구라는 말은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말이냐?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중심삼은 식구가 있었느냐? 어머니가 식구예요? 예수의 가는 길과 하나된 자리에 서지 못한 그 어머니가 식구예요, 식구 아니예요? 그 어머니는 어차피, 같이 가겠어요, 갈라지겠어요? 「갈라집니다」 아버지가 그런 입장에 있으면 갈라지겠어요, 같이 가겠어요? 「갈라집니다」 형제도 갈라지고, 아버지도 갈라지고, 종족도 갈라지고. 나라도 갈라지고, 교회도 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예수와 영영 같이 죽을 수 있는, 한길을 가야 할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자란 가정에 예수의 식구가 있었느냐? 식구라면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아내와 남편이 있고, 자녀가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말로는 사위기대라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의 식구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있었더냐? 예수가 어머니를 사랑했어요? 사랑 못 했다구요.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아버지는 의붓 아버지였다구요. 동생들을 사랑했어요? 동생들도 사랑 못 했다구요. 그 누구를 사랑했느냐? 사랑의 주인공으로 온 장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려고 했는데 사랑 못 했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에 예수가 그런 사랑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렇게 사랑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고 가르치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예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교육하는 데는 유대교 예법을 거친 자리에서, 성전 이상을 완성한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예수는 하나님 대신으로, 아버지 대신, 신랑 대신, 오빠 대신 사랑의 주인공으로 왔기 때문에, 마리아 가정 전체는 예수를 하나님 대신으로 모셔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을 대하여 '야, 요셉아!' 이래야 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아니라고요. 또 마리아를 대해서도 '마리아야!' 이래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육을 받아야 했던 거라구요.

그런데 그들이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어요? 인정을 통해서 볼 때는 부자의 관계였지만 천정을 통해서 볼 때는 예수가 주체이기 때문에,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해서 왔기 때문에, 그 사랑의 도리를 따라서 그의 부모에서부터 그의 형제까지 모두 예수에게 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이렇게 살아야 되고, 형제들은 이렇게 살아야 되고, 형제들 가운데 내 상대는 이러이러한 여자라야 된다고 교육을 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그렇게 교육을 해봤어요? 성경에 그런 말이 있습디까? 이건 진잎은 다 빼놓고 떡잎들만 가지고 천국 가겠다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요사스러운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언제 아버지를 사랑해 봤느냐?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아버지,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어머니,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동생들, 혹은 형님, 이웃 사촌들이 있었더냐? 없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예수의 한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나라와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민족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교회와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종족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가정과 예수가 사랑할 수 있는 상대가 있었느냐? 있었어요? 나라가 몰아대고, 민족이 몰아대고, 교회가 몰아대고, 종족이 몰아대고, 친척이 몰아대고,부모가 몰아대고, 형제가 몰아대니 죽을 수 밖에요. 다 잃어버리고 기가 막혀서 죽어 갔는데 나를 위해서 죽었다고요? 좋아서 죽었다고요? 이런 허황된 패들이 세계에는 많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죽여 놓고 자기들을 위해서 죽었다고…. 다 미친 것들이라구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자리에서 식구의 인연을 실현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겠어요, 안 되고 싶었겠어요? 장가가서 아들딸 낳아 가지고 일가 문중의 족장이 되고 싶었겠어요, 안 되고 싶었겠어요? 죽지 않았으면 그렇게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예수는 어디 갔으며, 남편 예수는 어디 갔으며, 아버지 예수, 가주(家主) 예수는 어디 갔으며, 형으로서의 예수는 어디 갔으며. 친척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예수는 어디 갔느냐? 예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친척은 어디로 갔으며, 교회는 어디로 갔으며, 나라는 어디로 갔느냐? 비운에 몰려 가지고 고독 단신이 되어 쫓기면서 서글픔의 길을 간 것이 예수의 행각인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는 그걸 좋은 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게…. 영계에 가 보라구요.

우리 통일교회는 예수 할아버지를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 할아버지를 만나야 모시지요? 예수 할아버지를 모셔야 된다구요. 그것을 못 한 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나라를 모시지 못했고, 교회를 모시지 못한 것이 예수의 한이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는 그 한을 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예수님이 사랑하고 싶었던 유대교를 대신하자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그 하나밖에 몰라야 합니다, 방향을 제시 하는 데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가자고 하면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되어 있어요? 「예」 그러면,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가자고 하면. 가야 되겠어요, 가지 말아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위해서는 그 놀음 안 한다구요. 나라를 위해서 그 놀음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이북에서는 가정의 호적을 전부 다 뜯어고치지요? 그게 무엇인 줄 알아요? 사탄 세계가 먼저 하는 거라구요. 나라를 위해서는 자기 남편이니 아내니 부모니 자식이니 할 것 없이 전부 다 버리고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소망의 나라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찾게 될 때, 그 나라와 더불어 부모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찾지 못하게 되면 피 흘리는 부모를 봐야 되고, 피 흘리는 아내를 봐야 되고, 피 흘리는 자녀를 봐야 됩니다. 그 이상 비통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찾기 전에는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부모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요,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이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입니다.

축복가정들이 가야 할 길

여러분의 골수에는 오직 나라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를 해원 하는 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나라가 없으니 그러한 이상적인 나라를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통일교회는 하나의 종족을 편성해 가지고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친척을 대신하고, 요셉 족속을 대신하고, 유대교를 대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것이 바로 통일교회입니다. 알겠어요? 이 통일교회를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찾고 싶었던 그 소원을 성취하는 그곳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 다 있지요? 그 할머니를 예수 할머니로서, 즉 예수님의 상대가 되어서 아들딸을 낳고 저렇게 머리가 허옇게 되었다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나는 예수님의 신부와 같은 사명을 하려고 늙었다'고 생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예수의 상대된 할머니니까 자기보다 손아래의 젊은 사람들을 보게 될 때는 예수 아들딸과 같이 사랑하라는 거라구요.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요?「예」

그리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아저씨 아줌마로서의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그 시대를 대표해 가지고 자기보다 윗사람에 대해서는 예수 할머니 할아버지로 섬겨야 되고, 그 다음에 젊은 사람이 있거든 예수 시대에 예수 부부가 사랑하여야 할 아들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전부 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자기 남편은 어떠한 남편이냐? 하나님의 사람이지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남편은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통일나라를 사랑하고, 통일가정을 사랑해야 할 대표적인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통일종족을 사랑하고, 통일가족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고 난 자격자로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로서의 예수 부부, 아저씨 아주머니로서의 예수 부부, 청년으로서의 예수 부부의 입장으로 세웠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자기보다 높은 사람을 먼저 모시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어디 축복받은 남자들 손들어 봐요? 내려요. 너희들, 교회를 아내보다 더 사랑했어? 했어, 안 했어? 만일 자기 아내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식구의 자리에 서지 못하는 거라구요. 할아버지 예수, 할머니 예수, 아주머니 예수, 아저씨 예수를 못 모신 거라구요. 예수 시대에 있어서 그 부부를 못 모신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돼 가지고 하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될수록 그것이 예수의 가족권이 되고, 예수의 종족권이 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을 여러분이 이루지 않고는 예수의 한을 해원할 수가 없습니다. 아까 말했지만,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맺힌 것을 풀지 않고는 다시 해원성취 할 수 없겠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에는 그 길을 가기 위해서 식구라는 명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만일 여자들이 시집을 와 가지고 '당신은 교회보다 나를 더 사랑해야지요' 이러거든 입을 찢어 버려야 돼요. '나를 사랑하기 전에 당신은 교회를 사랑해야지요. 종족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선조들의 가정을 사랑해야지요'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사랑하기를 바라야 내가 가정에서 사랑받고, 종족으로부터 사랑받고, 교회에서 사랑받고, 교단에서 사랑받는 승리의 사랑권을 일시에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인연을 따라 사랑을 받고자 해야 할 것이 통일가의 시집 간 아가씨들의 입장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사랑해야 할 남편들, 그런 아내가 아니거든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여자들은 요사스러운 것들이라는 거예요. 네 눈에는 너밖에 보이지 않느냐 이거예요.

예수는 사랑의 주인으로서 아버지 대신이요, 신랑 대신이요, 오빠를 대신해서 왔기 때문에 그와 더불어 일체가 되어 가지고, 그의 일생 동안, 아기에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의 그를 아버지로서, 신랑으로서, 오빠로서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뿐만이 아니라 몇 천 년 동안이라도, 기독교까지, 본연의 세계까지 발전시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사랑하고, 기독교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 종족, 가정, 개인까지 축소시켜 들어와 가지고, 세계적 대표 부부로서 예수의 전통적 사상을 이어받아 신랑 신부의 이상을 완성한 자리에서 사랑하자는 것이 통일교회에서 축복해 준 가정적 사랑의 기반입니다. 개돼지 새끼들처럼 사랑하는 녀석들은 두고 보라구요. 내가 가만히 안 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아내와 자식들까지 끌고 나가서 나라를 사랑해야 됩니다. 나라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되면, 종족을 사랑했고, 가정을 사랑 했고, 전체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된다는 거예요. 세계를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되면, 나라도 사랑했다는 자리에 서게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라 없이는 세계를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시에 탕감할 수 있는 세계적 무대로 나가려면 나라를 기반으로 해야 되겠기 때문에 예수가 찾아온 나라가 천국입니다. 천국이라는 것은…. 나라를 이루려면,국토가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주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국가 형성의 3대 요소입니다.

참된 부모, 부부, 자녀의 자리가 천국의 기원

그러면, '인간의 가치와 천국의 기원' 이라고 했는데 그 기원이 어디냐? 가정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 상대, 오빠 이 삼사랑입니다. 이 삼대사랑을,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유린하여 잃어버린 이 삼대사랑을 내 일대에 어떻게 실현시키느냐? 하나님같이 인류를 사랑하고, 죽어 간 예수같이 인류를 사랑하고. 살아 생전의 예수같이 인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총각 때의 예수의 자리에서, 그 다음에는 영적인 신랑 신부. 예수와 성신을 통해 가지고 영적인 부모의 자리에서 인류를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류를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육을 중심삼은 상대기반입니다.

이것이 아까 말한, 아담 해와와 하나님이 일치될 수 있는, 세 점이 결합할 수 있는 천정과 인정이 상봉할 수 있는 핵심적 결정점입니다. 이 결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끝날에 비로소 신랑 신부의 인연을 중심삼고 천정과 인정이 결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하늘이 찾고 있던 참된 부모, 참된 아버지, 참된 남편, 참된 자녀의 자리를 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천국의 기원이라는 것은 인격적 기준인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막연하지 않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오늘날 사탄세계보다도 여러분의 형제를 더 사랑해야 됩니다. 세계를 대표한 국가적 승리 기반 위에서, 그 국가적 보호 아래서... 그 국가적 보호권이란 무엇이냐? 아까 말한 거와 같이, 타락하기 전의 에덴 동산은 보호권이라고요. 첫째는 생존권,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곳이요, 두번째는 보호권이요, 세번째는 사랑받을 수 있는 권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국가적 보호권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의 보호권은 무엇이냐? 국가입니다. 하나님이 치리 할 수 있는 국가. 그 권내에 살고 있는 통일교회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게 될 때, 그것이 천국의 기원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람을 못 사랑하면 천국에 못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그러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과 같이 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람의 마음을 맞추기 위하여 3년 공생애노정을 갔으며, 죽어서도 갈 길을 가지 못하고 부활해 가지고 40일 동안 그것을 수습하고 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열두 사람을 규합시켜야 됩니다. 열두 사람의 마음을 맞출 수 있는 자격자가 못 되면 춘하추동 사계절을 중심삼은 열두 달을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위기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녀의 입장에서 열두 사람의 마음을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렇게 살다 갔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지지리 못난 사람들을 중심삼고 삼년 공생애노정을 간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심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해 가지고 제자들의 머리도 씻어 주고 발도 씻어 주고 한 것이 뭐냐? 그게 부모의 자리라구요. 부모의 자리에서 교육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교육을 잘못 받았다구요. 죽을 때는 부모와 같이 죽자는 것이 예수가 가르친 사상의 골자였다고요. 자식은 부모가 죽기 전에 부모 대신 죽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가 죽을 자리에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놈의 자식들 그런 자들은 남겨 준 것만으로도 하늘에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 자들은 전부 다 쓸어 버리고, 전부 다 지옥으로 거꾸로 꽃아 넣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보다 먼저 죽지 못한 사람들은 천국에 못 갑니다. 예수를 위해 살겠다는 사람은 천국 못 가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었기 때문에 그 죽은 부모랑 같이…. 예수는 아버지로 왔지요? 신랑으로 왔지요? 오빠로 왔지요? 아버지가 죽는데. 신랑이 죽는데, 오빠가 죽는데 거기에서 살겠다고 하는 여편네는 벼락을 맞아야지요. 그런 여편네를 그냥 둬서 뭘 해요? 독수리밥이 되게 해야지요. 또, 어머니가 죽고 아내가 죽고 동생이 죽는 자리에서 자기는 살겠다는 자식이 있다면, 그놈의 자식은 벼락을 맞아야지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통일교회 패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을 자리에 가서 같이 죽어야 된다구요. 내가 명이 다해서 죽을 때 말고 싸우다가 죽을 자리에 서게 되거든 다 같이 죽을 패라구요. 같이 죽을래요, 안 죽을래요? 「같이 죽겠습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래요? 내가 싫다면 어떡할 테예요? 그래도 같이 죽을래요? 「예」 예수가 강도하고 같이 죽고 싶어서 죽었나? 싫다고 해도 옆에서 같이 죽다 보니 사정을 아니까…. 싫어도 같이 죽게 되면 수가 나더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한 구덩이에서 같이 죽어서 썩어지면 물이 합할 것 아니예요? 선생님이 생각해도 기분 나빠요. 얼룩덜룩한 별의별 녀석들, 아이쿠 그런 녀석들이 죽어 썩은 물까지도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 안 해요?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좋아요? 선생님이 죽어 썩은 물과 여러분이 죽어 썩은 물이 합수가 된다면, 기가 막힌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 생각해 봐요. 그것이 공동 운명체라는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죽으면 가지가 죽고 싶어서 죽나? 나무 뿌리를 뚝 잘라 버리면 가지고 뭣이고 다 죽겠어. 안 죽겠어? 「죽습니다」 다 죽는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잘리는 날에는 여러분도 다 죽는 거라구요. 또 기독교가 잘리는 날에는 다 죽는 거라구. 그렇지만 그 뿌리는 '죽지 않습니다. 그 뿌리는 하나님이니까. 자꾸 잘라도 자꾸 살아나는 것입니다. 천년이고 만년이고 더 싱싱해 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뿌리를 못 박게 자르면, 자르면 자를수록 죽는 것이 아니라 더 싱싱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작던 뿌리가 줄기를 자르면 뿌리는 점점 번성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더 자라난다는 거라구요.

그래, 선생님이 죽을 사지에 가면 다들 따라갈래요? 「예」 최재만! 「예」 그렇게 늙었는데도? 「예」 그렇게 마음 결정을 했나, 생각하고 있나? 「결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보다 먼저 죽을래, 나중 죽을래? 「먼저나 나중이나 뜻을 위해서라면….」 아 그거 물어보는 거 아냐. 죽는데 그렇게 기도하라고 했어? 먼저 죽겠나 나중 죽겠나 물었는데 뭐 뜻이 뭐야? 그렇게 대답하라고 했어? 먼저 죽을래, 나중에 죽을래? 어떻게 죽을래? 「먼저 죽겠습니다」 먼저 죽겠으면 먼저 죽을 자리를 찾아 나가라구. 선생님보다 먼저 죽을 자리를 찾아 나가려니 우리 대한민국에서 죽을 곳이 있어요? 통일교회에서 죽는다면 목 자를 곳이 있어요? 없으니까 할 수 없이 반공전선에 나서라는 겁니다, 반공 전선에. (웃음) 나는 가만히 있지만 일선에 서라는 거예요.

뜻을 위해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하라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통일교회 패들을 전부 다 반장 만들어 가지고 샅샅이 뒤지게 할 거라구요. 그럴 날이 올 거라구요. 밤잠을 안 자고 뒤지는 거라구요. 이 동네 저 동네, 면과 면, 동과 동을 넘나들면서 서로가 '너희 동네는 자신 있니?','우리 동네는 자신 있다','아무래도 너희 동네는 자신 없어 보여','그럼 어디 한번 알아봐라','그래 그럼 한번 알아보자' 이래 가지고 엇바꿔 가지고 서로가 빨갱이 잡아내는 운동을 해야 되겠다구요. 거기다가 영통인까지 내세워 가지고 순방하게 해 가지고 전부다 그 영통인을 거쳐가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빨갱이들은 씨알맹이도 없이 잡아낼 수 있다고요. 지금 한국에 영통하는 사람들이 약 3만명쯤 됩니다. 사주 관상 보는 패들. 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을 듣게 된다면 빨갱이를 잡아내게 할 것입니다. 종로 네거리 같은 곳에 딱 가서 팻말을 박아 놓고 서서 오가는 사람을 쓱 봐 가지고 전부 다 색출하게 할 것입니다. 문제없다구요. 보이지 않는 안테나로써 전부 다 심통을 찔러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예」

그렇게 되면 부정부패를 못 해서 굶어 죽게 된다구요. 그래도 좋아요?「예」 그래서 굶어 죽을 때가 오기 때문에 우리는 굶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웃음)

지금 선생님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무슨 얘기를 하는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 놓고 듣고 보듯이 다 듣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구요. 내가 어디에 쓱 갔다가 방에 척 들어와 앉으면 '지금 바로 들어오셨지요?'하고 전화가 온다구요. 그러면서 '오늘 무슨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을 만나던데 그 녀석은 도둑놈이요' 이럽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도둑놈이고 뭐고 아무도 안 만났는데' 하면서 잡아떼는 거예요. 선생님이 농을 잘 한다구요. '뭐야, 요사스럽게, 아침부터 재수 없이, 당신의 보고 나 필요 없다구' 이런다구요. 영계에 있는 그들의 주인 양반들이 보고를 하지 않으면 선생님과 인연을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자꾸 보고하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귀찮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 내가 '만나긴 뭘 만나? 이 요사스러운 것 전부 집어치워' 하고 잡아떼면, 아니 그와 만났으면서 뭘 그럽니까. 그 사람의 눈은 어떻게 생겼고, 목소리는 쉬었고, 콧수염이 어떻게 생겼고, 허우대가 이렇다는 것을 내가 보고 있었는데 안 만났어요? 합니다. 그러면 나는 '몰라! 나는' 이럽니다. 그러면 '거 모르면 좋소. 그 양반이 이러이러한 말을 먼저 했지요? 이러는 거예요. 그쯤 되면 선생님도 양심이 있지, 끝까지 버틸 수 있어요? 사실 앞에서는 약한 거라구요. 한두 번 정도는 농삼아 그랬지만, 그쯤에 가서' 아 그래도 아니예요? 하면 '글쎄…' 이러는 거라구요. (웃음) 그들이 얼마나 세밀히 아는지…. 선생님이 소변 보러 갔던 지역까지 다 안다구요. '가다가 왼쪽 무슨 바위 밑에서 소변 봤지요?' 한다구요.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구요. (웃음) 세밀하다구요. 이런 조직이 우리 통일교회의 배후에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죽을 곳을 거쳐왔지만 안 죽고 살아 남은 것입니다.

앞으로 통일교회, 그때가 돼 보라는 거예요. 여기에 들어오려면 수십 년…. 그런 텔레비전 장치 같은 것이 된 남자들을 세워 놔 가지고 들어 오려고 해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 그런 사실을 알아요, 몰라요? 임자네들 알아요? 통일교회가 그렇다는 것을 아는 사람, 어디 사실이 그렇다는 걸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 외에는 다 모르는구만.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선생님 하나 놓고 지금 영계가 총동원하고 있다구요. 선생님이 지금 말하는 것도 설교하고 싶어서 제목을 정해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생명을 걸어 놓고 싸워 나온 그 행적의 노정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보고. '그럴 것이다' 가 아니라구요. '그렇다' 입니다. 실험한 결과를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살았느냐? 살기만 해요? 이것 때문에 내가 생애를 바쳐 나온 사람이예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그런 심각한 입장에서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가는 길이라구요.

예수가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신 뜻

천국은 어디 있느냐? 천국은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했지요?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했지요?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한 말이라구요. 네가 홀로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홀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까 하던 말이예요. 절대적인 사랑의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랑만이 그대를 점령하고 그대의 마음과, 거리와 모든 공간 세계를 초월해 가지고 같이 있을 수 있는 절대적 요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거예요.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는 거예요. 마음이 그리워하는 천국을 못 가진 사람은 실체로 살 수 있는 천국을 보지 못하는 거라구요.

그래 천국이 그리워요? 여러분들, 천국이 그리워요? 「예」 천국은 어디에서부터예요? 여러분들 안에서부터입니다. 형제간에 있는 거라구요. 이는 어머니 아버지 대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를 대하게 될 때 어머니 아버지의 선물이며 그분들의 딴 면을 나에게 보여 주시기 위한 선물로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남자를 보게 될 때도 어머니 아버지의 딴 면을 보여 주는 선물로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야 그것이 모든 행복의 기원이 깃들 수 있는 우주사적인 하나의 기틀이 되는 거라구요. 통일기반확보라는 것도 그 기반 위에서 벌어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열두 사람을 미칠 듯이 사랑해 보지 못한 사람은…. 천국가는 데에는 열두 진주문이 있다고 하지요? 그 문을 마음대로 통과하지 못한다구요. 열두 사람을 미칠 듯이, 어른인지 아이인지 모르고 사랑하며 산 사람은 어느 문 앞에 가도 막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쳐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도 미치는데, 하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더 미쳐야 된다구요.

밤이 낮과 같이 그립고 낮이 밤과 같이 그리울 수 있는, 밤낮을 움직일 수 있는 정서적인 심정의 기준을 하나님을 중심삼고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생활과 선생님의 생활은 다릅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내용과 선생님이 기도하는 내용은 달라요. 여러분의 기도는 막연하지만 선생님의 기도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피부에 느껴지는 감정을 가지고 '아버지!' 하게 될 때는, 그것이 말은 간단하지만 거기에는 억천만세의 사연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존재가치도 사랑에서 기원돼

자, 결론을 짓자구요. 천국의 기원은 어디냐? 먼저 내가 내 마음에 부모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형제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가정을 가졌으면 서로서로 최고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꽃 중의 꽃이요, 향기 중에 제일의 방향(芳香)을 가진 향기로서, 우주를 대표한 가치의 결실이 거기에서 맺어질 것을 그리워하면서, 서로서로가 하나로 결집되는 그 인연이 공고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기에서 완전한 씨가 발발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기원도 그러한 사랑에서부터, 존재 가치의 기원도 그런 내재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한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가치는 상대를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된 사람은 아내 앞에 하나님보다 더 훌륭한 분이라고 기억되어야 됩니다. 남편 되는 사람들, 알겠어요? 아내가 '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 남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봤고, 세상의 순수한 사랑을 몰랐지만 남편을 통해서 세상의 순수한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남편을 통해서 오빠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다. 또, 남편을 통해서 형제의 사랑을 내가 알았다. 남편은 모든 사랑을 가르쳐 준 장본인이다' 할 수 있는 남성이 되어야 합니다. 또, 그러한 어머니 대표요, 신부 대표요, 누나 대표의 심정을 유발시킬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체휼하면서 살아가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교육을 받아 가지고, 그러한 교육이 아니고는 질식하겠다고 할 만큼 그것이 생활습관이 되어 가지고 어느 사회에서든 나이 많은 사람을 대하게 되면, 내 할아버지요, 그렇지 않으면 내 아버지 어머니요, 내 형님 누나요. 내 누이동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이 세계 도처에 보편화되면, 그러한 가정에서의 심정이 보편화될 수 있는 환경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그곳은 틀림없이 천국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반대를 받지 않습니다. 그가 어디에 가든지 하나님은 그와 같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디를 가도 외롭지 않는 것이요, 어디를 가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원은 타락한 우리 인간 세상의 정서적인 모든 문제를 초월한 기준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을 보다 생명선에 접근시키고, 보다 전체의 가치에 일치시킬 수 있는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체휼했느냐 하는 데서….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세계를 위해서라는 심정과 내 사랑의 울부짖음이 세계에 파급된다는 심정을 느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생활 감정과 통하고, 역사적인 모든 성인들의 생활 감정과 통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고 하게 될 때, 그 한 사람은 역사의 완성이요, 시대의 완성이요, 미래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천국을 중심삼은 인격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기 도

아버님, 세상에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사랑하려고 하면 고독단신으로 남아지는 것을 우리의 일상생활 환경의 느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하여 무한히 세계적인 가치의 내용을 제시하며 남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은 홀로 외로운 자리에 서고자 해도 환경이 그를 외로운 자리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아버님, 저희는 당신이 찾아 나오는 참된 남성이 되어야 하고 참된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런 남성과 여성이 일체화될 수 있는, 사랑의 기원이 성립될 수 있는 곳이 가정이라는 사실도 알았사옵니다. 그 가정,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녀를 거느리는 본래의 사위기대권을 추구하는 것이, 원리가 찾아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시간 저희들이 그 자리와 얼마나 먼 자리에 있는가를 알고 스스로를 비판해야 되겠사옵니다.

예수가 그리워하던 신랑 신부의 기준,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화될 수 있는 상대적인 절대권, 그 자리를 통하여 세계적인 횡적 국가관과 세계관이 형성된다는 것을, 즉 천국은 남자와 여자가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되는 가정으로부터 기원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격의 가치도 그 자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그 자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생각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자리에 있게 될 때는 내 개체의 마음 가운데 천국이 있게 된다는 것을, '천국은 네 마음 속에 있느니라'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이 증거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우리 통일가의 식구들은 서로서로를 위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식구 가운데서도 자기는 못살면서도 다른 식구를 위하겠다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망하지 않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이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고, 삼십 년이 가고, 사십 년 고개를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그 후손을 통해서 무한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여, 그들을 고이 지켜 주시옵소서. 그들을 조롱하던 사람은 그때가 되면 그 반대적인 탕감을 받을 것이요, 그들을 편든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남을 위하고, 몰리는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편드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는 이 민족의 미래의 처참상을 바라보면서 이 민족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요. 세계의 처참상을 바라보면서 민족감정을 넘어 인류와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또한 그것이 통일사상이옵니다. 이 사상의 모체는, 기원지는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 사랑의 원리인 줄 아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화신체로서, 사랑하기 위하여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통일교단의 발전을 아버지께서 직시하고 계시다는 사실과 그 사랑을 위해서, 그 뜻의 길을 위해서 가는 곳곳마다 하늘이 가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사옵니다. 그것은 통일교회의 문 아무개를 위한 것이 아니요, 인간 개개인을 위한 것도 아니요,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요, 그 나라 앞에 보호권을 세워 가지고 우리를 잘살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인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불철주야 쉬지 않고 시간시간 다짐하면서 가야 할 것이 저희의 운명길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세상 사람들은 '좋다구나' 하며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의 평면적인 향락을 추구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반드시 기울어진다는 것을, 석양이 되면, 혹은 가을이 되면 어두워지고, 잎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저희는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의 갈 길을 확실히 제시하셨사오니,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식구가 그리워 찾아 더듬는 데 있어서 자기의 자식 이상으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 가정은 발전할 것이요, 그 가정에는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나, 식구야 어떻게 되든, 교회야 어떻게 되든간에 자기 아들딸만 붙들고 사는 가정에서는 하늘이 떠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 통일교단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보잘것없는 이 자식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심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제가 가야 할 길, 숙명의 길이 어떤 길인가를 이미 알았기 때문에 갔다가 후회하는 자리에서 죽기를 바라지 않사옵니다. 일선에서, 하늘이 협조하는 자리에서 생명을 다하여 최후를 고하게 되더라도 나라가 해방되고 세계가 해방되는 자리에 나설 그때를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 이들을 교육시켜야 될 것이 저의 책임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저의 책임인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자녀들이 자녀의 이름을 갖추어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존귀하신 어머니의 대상으로 섬기는 마음을 가졌거들랑 아버지, 이제는 이들이 자녀로서 가야 할 도리를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부모를 그리워하고, 하늘 부부와 하늘 자녀의 가치를 그리워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고, 오늘날 타락한 인간의 후손들에게 그러한 가치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신 은사는 그 무엇으로도 다 갚을 수 없는 감사의 인연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절절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큰 것이옵니다. 과거의 삼십 년, 사십 년의 생애노정에서 뜻과 더불어 태어나지 못하고, 뜻과 더불어 자라나지 못하고, 뜻과 더불어 살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저희들은 사랑의 표적으로서 죽는 시간까지 팔 다리를 움직여 가지고 자기가 아는 만큼 민족을 대신하여 외쳐야 되겠습니다. 세계 인류를 붙들고 통곡을 하며 하소연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그러한 날들이 계속되어서 사람을 사랑하기에 미치고, 인류를 사랑하기에 자기 일신을 망각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온갖 충성을 다하면, 하늘이 자기를 대하여 그렇게 충성해 주시는 것이요, 그렇게 보호해 주시는 것이요, 그렇게 이끌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금후의 움직임 일체를 당신 앞에 맡기고, 오늘 이 시간 천국의 기원과 우리의 가치 기준이 일치되어야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옵니다. 이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삼대사랑의 인연을 세워야 되겠고, 그것을 전체의 생활적 동기로 활용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해 나가는 무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들이 이미 알았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결의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