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음력으로 1971년 10월 1일, 양력으로는 11월 18일입니다. 1960년에 이날을 설정하여 이 땅 위에 새로운 날을 선포한 지 만 11주년이 되옵고, 회수로는 12회가 되는 자녀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이날 하늘과 땅, 온 천주가 주시하는 가운데서 아버지 앞에 식을 치르고, 이 본부에 당신의 영광이 임하기를 바라면서 어린 자녀들이 이 시간 다시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같은 은사와 사랑으로, 아버지, 찾아와 주시옵고, 무한한 자비와 사랑과 긍휼로 길이길이 이들과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생명을 다하여 아버지 뜻을 받들고 수고하다가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애혼들이 지상을 통하여 탕감, 해원성사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한 이땅 위에 있는 자신의 후손들을 동원하여서 하나의 세계로 갈 길을 모색 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 들이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거기에 대비하여 오늘날 지상에 있는 통일교단에게는 민족과 세계의 사명을 대표한 자리에 있어서, 당신이 요구하는 상대적 기준을 결정하여 온 천주적인 내적 외적 일치점을 결하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사명이 남아 있는 것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지고 수십여 생애노정을 통하여 이 길까지 나왔사옵니다. 아버지, 그간 염려하던 때도 많았사옵고, 어려운 고빗길도 많았사오나 당신이 가호와 사랑으로 지켜 주신 연고로 오늘 이 시간까지 남아지게 되었사오니, 그 은사를 감사드리옵니다.
이날은 1971년을 대표하는 날이옵니다. 저희들이 중요하게 지내는 4대명절 가운데서 이날이 금년에 마지막으로 맞는 명절이오니, 이해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 이 엄청난 역사적인 기원을 저희들이 부족한 정성을 모아 결정지었다는 사실은 비단 인간세계에서만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영계에서도 결정되어진 것이기에,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추구하고 이날을 증거 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여기에 모인 통일의 무리의 사명이 자못 크다는 것을 더더욱 느끼게 되옵니다.
이날을 맞게 되기까지 아버지께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더우기 자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종의 종의 노정을 거치고 종의 노정을 거치고 양자의 노정과 아들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저희 선조들이 역사노정에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러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자녀의 명분을 지키지 못했던 에덴의 한을 풀기 위하여 수난길을 극복해 나와야 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저희들이 무관심한 자리에 처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 사명이 저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저희 목전에 다가온 세계적인 현실 사정과 사회 사조를 바라보게 될 때에, 긴박한 때에 놓여 있음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런 때일수록 저희들에 대한 신임도가 강하고, 저희들이 하늘의 사명을 감당해 주기를 얼마나 바라시는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간곡한 심정이 저희의 배후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무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과 이 세계 앞에 엄숙히 제단을 쌓고, 하늘 앞에 심정의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실체의 제물로서 전체 앞에 탕감시켜야 할 엄숙하고도 역사적인 사명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가는 노정을 지금까지 지켰을진대 끝까지, 승리가를 부를 때까지 아버지께서 동참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을 사탄세계에 내놓지 마시고 수난길로 몰아쳐서라도, 아버지, 영광의 자리에서 승리의 한날을 당신과 같이 찬양할 수 있는 그때까지 참고 싸워 남아지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날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다하여 정성들이는 무리 위에 무한한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은사를 가하시어 생명의 인연을 붙들고 찬양할 수 있게끔, 아버지, 격려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전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많은 정성을 들인다는 소식을 받았사옵니다.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아버지, 외로운 자리에서 이날을 기억하고 마음으로 눈물 흘리며 통곡하는 자들이 있사오면, 거기에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몇 배 이상의 은사를 가하시어 외로운 자의 입장을 제거시키시고, 강하고 감사한 은사로 품으시어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날 이 시간 부족한 정성을 가다듬으면서 아버지 앞에 추구하는 모든 일체가 아버지의 영광과 소망 앞에 어긋나지 않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만만세의 은사의 길이 저희들 가는 길 위에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여러분들이 다 알다시피 자녀의 날입니다. 이 땅위에는 수많은 나라가 있고 수많은 종교단체가 있지만, 우리 통일교회에서 지키는 자녀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 하나님의 날과 같은 날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 이 4대명절이 있는데, 1971년을 중심삼고는 오늘 자녀의 날이 마지막 명절이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인류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의 뜻,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을 지은 목적을 성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사하지 못한 그 뜻을 그냥 그대로 남겨 둘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역사를 경과하면서 타락한 인간과 더불어 이것을 다시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타락하였던, 실패하였던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성사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싸움을 계속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하는 데 있어서 누구와 더불어 해 나오셨느냐 하면, 하나님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싸움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과정에 있어서 그 싸움을 맡은, 그런 사명을 짊어진 무리가 누구냐 하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종교 가운데는 여러 가지 종교가 있겠지만 그 중에도 중심적인 종교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개인을 중심삼고 볼 때, 자기를 제일 생각하는 사람은 부모 밖에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에게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통적 인연이 맺어져 있고, 부모의 심정적 모든 요인이 자식에게 결과되어 있습니다. 자식은 반드시 부모로 말미암아 결과되어 있기 때문에 심정의 인연을 갖춘, 그런 관계를 가진 부모는 자식을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누구가 생각해 주지 않더라도 부모는 언제나 자기 자식을 밤이나 낮이나 사시장철을 개의치 않고 생각해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개인 개인의 생활권내에서 잘 느끼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적 인연이 연결될 수 있는 곳을 따라서, 하나님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심정적 인연이 연결되는 곳을 따라 가지고 복귀역사를 추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구원역사를 추진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심정적 내용이 어떠한 종교에 더 많으냐, 더 간절하냐 하는 문제, 역사시대에 있어서 얼마만큼 심정적 내면을 책임지고 하나님 앞에 효의 도리와 충의 도리를 다짐해 나오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의 하나님은 심정의 인연이 더 긴밀한 종교를 중심삼고 방향을 갖추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런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할 때, 이것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를 보면, 예수가 주장한 내용은 사랑입니다. 거기에 최후의 결론을 지어 놓은 것이 뭐냐 하면 신랑 신부의 이념입니다. 이 이념을 다짐 해 놓았습니다.
예수 자신이 자기는 하나님 앞에 독생자라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들이 있더라도 독생자를 먼저 사랑하고 나서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몽땅 그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다고 선언한 예수의 입장을 두고 볼 때에, 예수가 자랑할 수 있는 전폭적인 중심이 무엇이냐? 독생자라고 자랑한 그 자랑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누구보다도 먼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전폭적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표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특이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인간들을 대해서, 자기를 신봉하고 따르는 신자들을 대해서 '나는 신랑이고 너희들은 신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랑 신부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로서 인간세계의 신랑 신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남성으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로, 이 땅의 상대세계를 대해서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중심존재로 자처하고 나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따르는 신자들을 대해서 신부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신랑 신부라는 정서적인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최고의 길이요,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이 아닐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형제의 인연을 말했습니다.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 혹은 형제라는 말까지 했던 것입니다. 친구와 형제라는 것은 세상의 인연을 따라 가지고 나타난 친구나 세상의 자기의 혈육의 인연을 통해 가지고 태어난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은 형제적 내연을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고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주해 가지고 첫번째 아들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을 위주해 가지고 그 아들로서 상대적 대상인 신부의 기준을 요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와 친구의 내연을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중심삼고 그런 내용을 소개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볼 때, 이것은 그 어떤 종교가 갖지 못한 사랑을 중심삼은 핵을, 핵심을 제시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역사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었지만 과연 하나님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중심적인 종교로 생각할 수 있는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소개한 기독교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기독교는 발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탄은 극성맞게 반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과 불효하는 사람이 있다면, 효도하는 사람은 불효하는 사람에게 규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효자가 열심히 부모에게 효도하면 그 효도하는 조건들이 불효자를 규탄할 수 있는 재료와 요건이 되어 가지고 반대적으로 규탄해 버리기 때문에, 불효자일수록 효도를 하는 사람을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원수 되는 사탄은 누구보다도 그 사람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악한 세계에서 살면서 하나님 앞에 효도하겠다고 하는 무리들을 사탄 마귀는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최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제일 극심한 죽음길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역사 가운데서 비참한 역사의 운명을 다짐하면서 그 길을 극복해 나온 종교가 어떤 종교냐 하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선열들의 순교의 피를 연이어 가지고 역사적으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보다도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어떠한 종교보다도 가혹한 시련과 핍박을 백방으로 가해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역사과정에서 순교한 선열의 터전 위에서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역사의 전체적인 섭리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할 수 있는 중심적인 종교는 기독교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역사 가운데서 그런 희생을 치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그 시대에 있어서 개인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 목표하는 바는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최후의 한날에 사탄세계를 굴복시키고, 하늘을 원수시하고 반대하는 무리를 완전히 제압하고 완전히 굴복시켜 가지고 그들의 입을 통해서 '그대들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충성과 효성을 다했다'고 증거할 수 있는 그때를 바라보고 헤치고 나오는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증거하는 효자는 이 세계, 혹은 역사시대의 종말에 남아질 수 있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부모가 자기에게 효도하는 아들을 들어 효자라고 말하는 부모가 많을 것입니다. 그의 친척들도 거들어 그를 효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은 으례 역사적으로 효성의 도리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인륜 도덕을 통해서 그 환경에 있는 백성이면 백성의 무리가 그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효자라고 긍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짜 효자는 어떠한 사람이냐? 그 사람과 원수가 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내가 효자를 추린 다면, 나하고 원수이긴 하지만 그 원수의 아들인 아무개 외에는 효자가 없다'고 증거를 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세상에 없는 최고의 효자가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사탄세계에서 종교를 믿고 나오는, 기독교면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효자, 혹은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한 충신을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그것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결정했더라도 그 사람은 완전한 효자나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칭찬하더라도...
여러분이 욥에 대해서 알겠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좋은 입장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에는 사탄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복을 줬으니 누구든지 하나님을 좋아하고 다 그럴 수 있다고 참소할 수 있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사탄에게 맡겨 가지고 '너 어디 이 사람이 하늘 앞에 효자인가 아닌가 한번 테스트해 봐라' 해서 사탄이 '예,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해 가지고 갖은 수욕을 당하게 하고 역경에 몰아넣고, 이리 치고 저리 치고,이리 끌고 저리 끌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앞뒤로 가고, 좌우로 가고 아무리 죽을 고비에 몰아넣더라도 변함없는 정성을 다하게 될 때에는, 사탄이 '나는 손댈 수 없다'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이여, 당신이 말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틀림없는 효자요` 하게 될 때에 그 사람은 세계적인 효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는 최후의 십자가의 길을 향해서 갈 때에 무엇을 붙들고 나갔느냐? 예수는 사탄 마귀까지도 부정할 수 없는 길을 가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를 원수들 편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시키게 했던 것입니다.이런 내면적 사연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기독교를 믿고 나오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하는 진정한 효자의 도리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 앞에 효자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왔고, 하늘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대표자로서 충신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왔다가 생명을 바치고 갔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사상을 이어받은 기독교인이라면 그 범위를 좁힐 것이 아니라 넓혀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 나라를 중심삼고 증거되는 것보다도 세계적으로 증거되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그간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요, 하늘의 효자요, 하늘의 충신이다`고 증거할 수 있는 판도를 넓혀 왔습니다. 이것이 넓혀질 수 있는 싸움을 할 때, 기독교는 언제나 발전했습니다. 그런 투쟁이 벌어질 때는 하나님이 협조했지만, 안락한 자리에서 교권을 주장할 때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협조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날 하나님이 바라는 효자, 하나님이 바라는 충신이 어디에 있느냐? 인류역사 과정에 그런 분이 있었느냐? 이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주장하면서 독생자로서의 효는 했을는지 모르지만, 하늘나라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의 충신의 책임은 다하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세우기 위한 싸움의 무대에 선 예수님은 한마디도. 한 가지의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또한 인류를 초월하여 세계를 하나님 앞에 바치기 위해서 세계를 대해 '하나님 앞에 세계는 이러해야 된다' 하고 만민을 대해 '너희들은 내가 가는 길을 본받아라' 하며 세계를 위해 사탄과 대결하여 그 사탄이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충신이라고 공증할 수 있는 무대에 서 봤느냐? 못 서 봤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무대에도 못서 봤고, 세계의 무대에도 못 서 봤습니다. 개인으로서 독생자로서 하나님 앞에 효자의 자리에는 서 봤지만,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는 충신의 자리에 서 봤느냐 할 때 못서 봤다는 거라구요.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딸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냐? 하나님이 진짜 사랑할 수 있는...여러분, 사랑도 많다는 거라구요. 타락권내를 보면 사탄 마귀도 있고 하나님도 있고 그 다음에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만 보면 말이예요. 사람들이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람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마귀와 짝해서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요, 하나님과 짝해서 사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이 세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사람들 끼리끼리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또, 사탄 마귀와 짝이 되어 사랑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구요. 다만,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길만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기준을 생각지도 않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 이세상 사람들입니다. 또,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뭐 예수 믿고 천당 가면 되지'라고 합니다. 문제가 심각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부모와 사랑의 인연을 못 가진 사람들이 클 수가 있어요? 그런 사람은 고아라구요. 컸다 하여도 고아예요. 부모 없는 사람은 길러졌다 하더라도 고아와 마찬가지입니다. 고아가 아니라는 특정적인 결정이 내려지려면,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밤이나 낮이나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랑권내에서 자라게 될 때, 그는 부모를 가진 행복한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밤이나 낮이나 자식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거두어 가는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부모의 사랑 권내에 있기 때문에 그는 고아보다 행복하다는 거예요.
또, 부부면 부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행복한 아내라든가,행복한 남편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은 사랑권이 자기의 활동무대와 더불어 일상 전체의 분야에 관여해 있고, 그 사랑권이 거두어지지 않고 늘 같이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부부는 행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서로서로가 사랑하는 형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님이 가는 곳에는 동생이 같이 가야 된다구요. 사랑의 인연이 같이 맺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동생을 사랑하는 형님이 있으면 동생이 가는 곳에는 형님이 언제나 같이 갈 수 있고, 어디를 가더라도 거기에 같이 머무를 수 있게 될 때, 그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형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있다면 그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사랑하는 마음이 국가와 더불어 늘 있는 사람입니다. 비참한 사람이든 잘사는 사람이든 혹은 사고를 낸 사람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나라의 국민 전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습니다. 사랑했다가는 야단나는 거예요. 참소를 받는다는 거예요. 이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려면 거기에 맞는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이렇게 된 것이 타락입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가정을 가졌다 왜도 하나님은 그 가정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나라를 이루어 놓았다고 해도 그 나라의 주권을 하나님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를 이루어 놓았다고 해도 그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이 같이할 수 없습니다. 그 주권과 더불어 하나님이 같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어떤 사랑이 같이하고 있느냐? 사탄의 사랑이 같이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사랑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살고 있는 환경이라는 것은 사탄이 사랑할 수 있는 권내에 싸여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사랑권...
사탄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쪽으로 가려고 하면 사탄은 왼쪽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엇갈리는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일을 하라고 하면 사탄은 나쁜 일을 하라고 합니다. 나쁜 것을 사랑하라는 거라구요.
요즈음 젊은 청년남녀들이 카바레를 찾아 다닌다든가 댄스홀을 찾아 다니고 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그러고 있다구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자기 본심이 기뻐하느냐 이거예요. 자기 본심은 싫지만 할 수 없이 밀려 다니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위협이 있고 강압이 있고 공갈이 개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 가면 자기 생명을 노린다는 거예요. 그러한 사회적 환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것을 여러분이 엿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지 않습니다. 그 악하고 나쁜 결과가 일반화되어 가지고 국민 사상이 거기에 침식당하게 될 때, 그 나라는 망하는 것입니다.
악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전부 다 방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상의 길을 제시해야 되는데, 제시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큰일났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양심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양심과 화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그래요. 은혜받는 곳에 가게 되면 마음이 괜히 봄날을 맞이한 것 같다는 거예요, 봄날. 봄날이 무엇과 같으냐고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면 이래저래 좋더라고 하며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구요. 어떻게 보면 봄날은 여름날보다도 가을날보다도 안개가 자욱이 낀 것 같고 말이예요. 또 아지랭이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면, 하늘과 땅이 마주 닿은 것 같아 답답한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오히려 봄날은 겨울같이 시원한 맛이 없고 그저 답답한 기분만 든다는 겁니다. 앞산도 잘 안 보이고 사방을 둘러봐도 트인 곳이 없이 포위된 것 같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것을 볼 때, 봄날이 뭣이 좋겠느냐고...
그렇지만 봄날은 좋습니다. 왜 좋으냐?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모든 운동이 거기서부터, 입체 세계를 향하여 동작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의 가치를 자기 나름대로 드러내고 자기 본연의 미를 스스로 드러내면서,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출발을 가름하는 때이기에 봄날은 좋은 것입니다.
봄날에는 꽃이 핍니다. 꽃은 반드시 향기를 동반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 술어로 말하면, 다른 계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입체적인 수수작용이 벌어지는 때입니다. 또 그것이 일방적이 아니라 사방으로 융통될 수 있는 때입니다. 이렇게 느낌에 있어서 사방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내 몸이 들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 몸이 무엇인지 모르게 고차적인 분야에 감전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좋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은혜받는 자리에 가게 되면 여러분의 마음은 무한히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본심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 사랑을 표준해 가지고 인간 사랑권내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인간이 그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젖어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권내에서 느끼며 살게 하려는 것이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지은 목적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부여받은 본성이 있기 때문에 양심은 그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소성(素性)이 자기 마음에 접하게 되면 폭발적인 충격과 감동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의 자리는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가야 할 자리는 어떤 자리이냐?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자리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뜻을 이룬 자리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밟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고 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밤낮으로 자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경지에 들어가야 됩니다.
본래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날 때 사방으로 자유로운 환경과 인연이 맺어져야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으로 태어나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와는 정반대 되는 환경에서 나면서부터 고통받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말이예요. 나오자마자 얼굴을 찡그리고 우는 아기들을 볼 때 타락한 후손이기 때문에 저렇구나, 만약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아서 태어날 때에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웃으면서 우는 놀음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어요. 어머니가 아기를 낳은 직후에 곡소리를 내는 아기를 볼 때, 그 애기가 울 때 심각하다구요. 손발을 전부 다 위로하고 그저 휘젓습니다. 날마다 그래요. 아주머니들 잘 보라구요. 발이고 무엇이고 하늘을 들이 차고 다 휘젓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우는 소리를 들을 때 타락한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항거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늘을 끌어당기고 오라고 손짓하고 하는 기분이 안 든다구요. 울긴 울더라도 우는 모양이 좀 달라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아주머니들은 기도하라구요. 아기가 태어나서 울 때 기분 나쁜 울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분 좋은 울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세상 사람들이 우는 걸 가만히 보면 말예요. '너, 왜 눈물 흘리니? 하고 물으면, 전부 다 자기 때문에 찔찔 짜고 있다구요.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 색시 때문에, 우리 남편 때문에, 우리 형님 때문에'라고 하는 사람 봤어요? 눈물 흘리는 걸 보면, 그 본바닥을 가만히 보면 '내가 섭섭하니까 눈물 흘리지' 하며 전부 다 자기 타령이구만요.
자, 그러면 왜 눈물의 역사가 자기 타령으로부터 시작되었겠느냐? 눈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어떻게 되었느냐?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어머니 아버지 때문에 눈물 흘리는 거야. 그렇지요? 어머니, 아버지' 라고 할 때 '그럼, 그렇고 말고' 그러면 나쁘겠느냐는 거예요. '내가 눈물 흘리는 것은 형님 누나 때문에 눈물 흘리는 거야. 형님 누나 그렇지? 할 때 그렇고 말고' 한다면 그 눈물이 좋은 것이예요, 나쁜 것이예요? 어때요?
만일에 그러한 울음으로 세계가 꽉 찼다면 여러분은 그 세계에서 살고 싶어요, 안 살고 싶어요? 그거 생각해 봤어요? 만일에 그런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 한복판에 들어가서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다고 할 거예요.'내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고 사랑하는데 왜 내 사랑을 안 받아 줍니까? 하며 울어 보라는 거예요. '내가 형님 누나를 사랑하는데 왜 몰라줘?' 할 때 그 몰라준다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 귀결되는 것이지만, 하여튼 이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울음도 없다는 겁니다. 전부 자기 때문에 눈물을 찔찔 짜고 있습니다.
난 하나님이 죽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쁠 때도 눈물이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나옵니다」 슬플 때는 눈물을 버젓이 흘립니다. 슬플 때는 목을 놓고 버젓이 울지만, 웃음이 터져 가지고 눈물이 찔찔 요? 아주 웃음이 지나치게 되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렇지요? 그 눈물이 나올 때는 웃으면서 '아, 이놈의 눈물이 안 나왔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 나오느냐' 한다는 거예요. 눈물 나오는 걸 싫어하면서도 웃으면서 눈물 흘리는 놀음이 벌어진다구요. 자, 웃으면서 눈물 흘리는 것은 좋은 눈물이예요. 나쁜 눈물이예요? 좋은 눈물인 거라구요. 좋은 눈물인데, 사람들은 이 눈물이 나오는 것은 싫어하고 슬퍼서 우는 눈물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런 등등의 문제가 엇갈리는 것이 참 많아요. 그러나 이번 시간은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면 눈물의 역사를 만들어 낸 조상이 누구냐 할 때, 그 조상이 누구예요? 여러분들도 눈물 흘리지요? 또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것을 봤어요, 안 봤어요? 봤을 거예요.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가 눈물 흘리는 것은 못 봤지만 눈물 흘렸겠어요, 안 흘렸겠어요? 안 흘렸다고 하는 사람은 정신이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라구요. 다 흘렸지요?
그러면 맨 종지 조상으로 올라가면 눈물 흘리게 된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눈물 역사의 조상은 누구냐? 제일인자가 누구냐 하면 아담 해와라구요. 그 아담 해와의 눈물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심은 대로 거두어지기 때문에, 뿌린 대로 심은 대로 눈물을 흘려야 되기 때문에, 만민도 그렇게 울어야 된다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어떻게 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느냐? 이게 문제예요. 아담 해와가 하나님을 보고 좋아서 '아이구 아버지, 참 좋소' 하고 눈물을 흘렸느냐는 거예요. 그런 눈물을 서너 방울이라도 흘려 봤느냐 이거예요. 울기는 그만두고 눈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려 봤어요. 안 흘려 봤어요? 어때요? 우리 아주머니들은 정서적인 면에서 그저 쩍해도 울고 쩡해도 울고 쨍해도 울잖아요? 울기의 선수, 챔피언은 대개 남자들보다 여자들입니다.
아담 해와가 기뻐서 눈물을 흘려 봤겠어요, 어떻겠어요? 생각해 봤어요? 만일에 하나님을 만날 적마다 기뻐서 눈물 흘렸다면 그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꽁무니를 따라다녔을 거라구요. '아, 아버지 못 갑니다. 난 안 놓겠소. 어딜 가요? 그랬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사탄이 따라다니고 그럴 시간이 있었겠어요? 뭐 천사장이 와 가지고 뭐 이러고저러고 할 여유가 있었겠어요? 그럴 틈이 있을 수 없다구요. 안 그렇겠어요? 그런데 빈둥빈둥 자기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될 때도 눈물 흘렸을 것입니다. 쫓겨날 때 눈물 흘렸겠어요, 안 흘렸겠어요? 여기 뭐 잘사는 아주머니를 한번 비유해 봅시다. '우리 집 남편이 나를 진짜 사랑하고 우리 아들딸이 나를 사랑하니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쫓겨나게 됐다면 행복하겠어요?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쫓겨나서 섭섭하지만 기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곳이 있다 하게 될 때는 불행하지 않다구요. 그 슬픔보다도 기뻐할 수 있는 한 곳, 기쁨의 눈물을 지을 수 있는 곳을 가진 여인이라면 그 여인은 아무리 쫓겨나더라도. 아무리 당장은 비참하더라도 비참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눈물을 흘릴 때는 자기를 위해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 하면, 자기 배짱을 내밀려고, 자기 배를 채우려고,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다가 눈물을 찔찔 흘린 거라구요. 아주머니들, 이것을 잊어버리지 마세요. 아담 해와는 자기를 중심삼고 깃발을 들고 나와 가지고 춤추다가 그렇게 됐다구요. 그래서 종교세계에서는 '교만하지 말라. 자기를 들고 나오면 큰일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간단하다구요. 자기를 들고 나왔다가는 틀림없이 조상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슬픈 눈물에 싸여 가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는 판국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우는 판국이 벌어지고 그 다음에는 장례식에서 우는 판이 벌어집니다. 거기에서는 공동적으로 '어엉 어엉' 하고 우는데, 그것도 뭐 엉터리로 운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말이예요. 그것은 예외로 하고 그렇게 공동적으로 우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가 죽든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뭐 체신이고 위신이고 생각하지 않고 네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마구 우는 패들이 있다구요. 그 다음에는 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종교 믿는 패들은 별 패가 되어 있다구요. 괴상한 패라구요. 이들은 그저 엎드리기만 하면 운다구요. 울긴 우는데, 다르다는 거예요. 우는 것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통일교회 패들은 쩍하면 웁니다. 우는 데는 물론 회개하니까 울겠지요? 회개하고 울 때는 하나님이 가만히 보시며 '응, 너 그렇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는 하나님이 돌이켰던 얼굴을 싹 바로잡으시고 감았던 눈을 뜨시고 '응, 그래' 하며 웃으십니다. 이럴 때가 회개할 때라구요. 회개하는 눈물을 흘릴 때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회개를 하고 나서 '하나님, 내가 이제 회개했으니 높아야 되겠소' 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야 너는 또다시 제 2의 아담 해와 같은 조상이 되겠구나' 하면서 또 눈을 감아요. 눈을 감기 마련이라구요. 그렇게 되면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해와도 자기가 높아지겠다고 하고 아담도 자기가 높아지겠다고 해 가지고 하나님을 섭섭하게 만들고 자기들도 울고 그렇게 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것이 싫다고 해 가지고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겠소. 하나님의 뜻의 길을 가겠소'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회개해서 하나님이 눈을 뜨셨는데, 거기에서 다시 '난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았소. 그러니 하나님도 나를 위하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겠소'라고 하게 되면 하나님은 후퇴하신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자리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자리와 딱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나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죽을 죽을, 망할 망할, 욕 중에서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욕의 레테르를 전부 갖다가 붙이더라도, 그렇게 욕을 먹고 그렇게 매를 맞고 그렇게 찢기더라도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뜻을 이루시는데 개인적으로 이루지 마시고 세계적으로 이루소서'라고 하면 하나님이 '야 이녀석 쓸 만한데' 그런다는 거예요. 내가 알아보니까 그렇다고 해요. (웃음) '저는 죽을 녀석이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대하실 수 없지만, 당신께서 수고하시고 고생하실 것이 있으면 나를 패 먹든, 잡아 먹든, 독수리 밥을 만들어도 좋소. 백번 천번 세계를 위해서 당신의 수고의 길 앞에 있어서 나는 비료가 되고 거름이 되겠소'라고 하면 하나님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면 회개하고 기도하는 장본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굴 위한 거예요? 하나님을 위한 거라구요. 그러니 타락한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와는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인류의 종자로 남기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예수가 어떤 양반이냐? 이제 돌아가서, 예수가 어떤 양반이냐 하면 예수님이 눈물 흘렸어요, 안 흘렸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눅 10:15)"하고 탄식하였고, 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마 23:37)"하고 탄식하면서 우셨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입장에서 예수님이 눈물지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상에는 예수님이 울었다는 기록은 두 군데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못해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 나갈 때에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울음이 자기를 위한 울음이냐, 남을 위한 울음이냐? 이게 문제예요. 예수는 자기를 위해서 울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게 되면 이스라엘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나라를 위해서 울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울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위해서 울게 될 때, 이 세계에 있는 인간들, 나사로같이 사망권내에서 부활의 손길을 바라는 만민을 대신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이 다하는 죽음길, 최후의 절벽에 부딪히는 자리에서도 '내 생명이 스러지더라도 당신의 소원을 성취하시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비참하고 극한 자리에서도 '당신의 승리의 한날을 위해서 나는 가나니, 내 변하지 않는 효성의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며 눈물을 흘리고 가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다르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무리 미녀라 하더라도 시집을 가 가지고 남편에게 '당신은 나를 데려올 때 사랑해 주기로 해 놓고 왜 사랑 안 해주오. 기분 나빠요' 하면서 찔찔 짤 때는 뉘시깔을 빼 버려라 이겁니다. 여러분에게 자극적인 얘기를 하려면 뉘시깔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극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냥 눈이라고 해서는 자극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뉘시깔은 즉석에서 빼 버려도 괜찮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나를 사랑해 주고 출근해야지요' 하면서 사랑의 표시도 안 해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것도 안 된다구요. 우리 아주머니 들도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 '아, 나는 괜찮습니다. 당신이 하시는 일, 나라를 나보다 더 사랑하십시오'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살림살이는 재미없을 것입니다. '무슨 마누라가 저러냐'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는 사람이 볼 때는 '야, 그 여편네 훌륭하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남자들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남자들은 그저 결혼하게 되면 전부 자기만 위하라고 그럽니다. 여기 너희들 이번에 축복받았지? 「예」 이 집사 보고 자기만 위하라고 그러지 않아? 소질이 있다구. 소질이 있어. 그래요, 안 그래요? 내가 볼 때 소질이 있다구요. 눈, 코를 보면 알아요. 내가 그런 거 볼 줄 안다구요. (웃음) 주의하라구.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를 위해 눈물을 쫄쫄 짜는 사람은 절대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먹을 것을 나누어 줄 때에, 자기만 더 달라고 아무리 울어 보라구요. 옛날에 내가 참 많이 울어 봤어요. 어디 동정 해주나 안 해주나 하면서 한번 심술을 부려 보는 거예요. '나에게 더 줘야지, 내가 이집에서 제일 잘난 사람인데 좋은 것을 주더라도 날 먼저 줘야지' 하면서 땡강을 부리는 거예요. 울어도 시시하게 몇 시간 우는 것이 아니라 울었다 하면 하루가 보통입니다, 하루. (웃음) 그렇게 울어 보는 거라구요. 그렇게 울다 보면 나중에는 눈물도 안 나고, 콧물도 나오다가 나올 게 없어지면 나중에는 목이 아파요. (웃음) 배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는 거라구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할 수 없다구요. 솔직하게 얘기를 해야지요.
그렇게 울고 있으면 아침에 들에 나갔던 누나가 점심 때쯤 되어 가지고 밥을 하러 들어옵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누나가 와서 나를 위로하고 달래겠지. 누나가 와서 달래면 첫마디에 스톱해야지' 하고 눈치를 쓱 보면 '저 애는 버릇이 저런 걸. 뭐' 그럽니다. (웃음) 호외꾼 취급받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우는 데 대해서는 잘 압니다. 연구를 많이 했어요. 울어도 보통 하루를 울기 때문에 별명이 '하루울이'였습니다. (웃음)
우는 데도 그냥 앉아서 울지 않는다구요. 드러누워 가지고 울기 때문에 뒤통수 머리털이 다 빠지고 발뒤꿈치의 가죽이 다 벗겨지도록 우는 거예요. (웃음) 울어도 그렇게 울어 봤다구요. '어디 한번 울어 보자, 피가 나오도록 결사적으로 울어 보자' 해 가지고 우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울어 봤자, 그 보답이라는 것은 처량하더라. (폭소) 자기를 위하여 울어 보니까 처량하기 짝이 없더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반대적으로 울어 보는 거예요. 그래서 형님하고 동생하고 형제끼리 싸움을 하게 되면 말이예요. 형제들이 많으면 싸움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싸움을 해야 발전하는 것입니다. 싸우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싸우고 나서 수습을 못 하게 되면 나쁘지만, 수습할 수 있는 환경이면 싸움도 해봐야 된다구요. 나도 싸움을 많이 해봤다구요. 나는 누님들이 많다구요. 8남매니까 판국이야 잘되어 있지요. 그러니 싸움도 해보는 거라구요.
형님과 누나가 싸움을 하지요? 그러면 눈치를 싹 봐 가지고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보고를 하는 거예요. 형님하고 누님하고 뭘 어떻게 해서 싸우는데. 이렇게 이렇게 됐기 때문에 형님이 나쁘고 누님이 나쁘다고 한바탕 일러바치는 거예요. 그러면 형님이 와서 '야, 이녀석아 내가 그랬으면 그랬지, 네가 그렇게 고자질해야 되겠어?라고 하면서 꼬집고 치고 합니다. 그러면 엉엉 우는 거예요. 한번 울어 보는 거라구요. 그렇게 울 때는 당당합니다.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아요. 얼마나 마음이 통쾌한지 몰라요. 한바탕 울어 보는 거예요. 그렇게 울면 울수록 형님은 야단이라 구요. 울면 울수록 야단이기 때문에 원병을 보내는 거예요. 다른 형제를 보내 '야, 가서 동생 좀 달래 봐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안 듣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어머니 아버지까지…. 자꾸 울어대는데 별수 있어요? (웃음) 그래도 안 되니 그 다음에는 형한테 자복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형님 누나한테 자복받아 봤습니다. 그때의 통쾌감, 그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 운다는 것은 참 멋지구나. 자기를 위해서 울게 되면 답답하고 형편없구…. 그거 말할 수 없다구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거 이해돼요? 남을 위해 울면 편당이 벌어져서 천하가 다 내 판국이라는 거예요. 옛날 같으면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고 할 텐테, 그렇게 울게 된 것을 아는 집안 식구들이 볼 때 '그거 울만하지, 울만하지'라고 한다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도 와서 '야야, 울지마라' 하며 동정하는 거예요. 이건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내가 이런 길을 나서게 된 것도 '하루울이' 덕인지도 모릅니다. 우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해서 우는 사람은 동정 못 받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서 우는 사람은 동정 받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울고불고 별의별 놀음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에 그랬느냐? 통일교회 자체 때문에 그랬다면 통일교회는 망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동정 못 받아요. 그렇지만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울고불고했다면, 하나님도 나중에 와서는 '야, 네가 잘했다. 어쩌면 그럴 수 있니. 네가 우는 것은 하루만이 아니라 천년도 울만하지'라고 하면서 위로해 주고, 다른 사람들도 와서 전부 다 이렇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맞아요, 안 맞아요? 맞을 것 같아요, 안 맞을 것 같아요? 「맞을 것 같습니다」 맞을 것 같아요? 「예」 안 맞으면 안 맞다, 맞으면 맞다, 둘 중에 하나 해야지요. '맞을 것 같아요, 알 맞을 것 같아요' 하는 건 낙제라구요.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그래야지, 맞을 것 같다는 게 뭐냐구요.
타락한 인간들은 말이예요. 자기를 위해서 나발을 불고 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종족과 그런 종족을 위하는 가정과 그런 가정을 위하는 개인은 적습니다. 개인으로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리고 가정으로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리고, 종족으로 민족으로 국가로 세계로 세상에 없는 눈물을 흘리는 패가 나오거든, 그 패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나는 갖고 있습니다. 자, 그것이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이것을 알았다는 거라구요.
예루살렘에 가 보면, 선생님은 겟세마네 동산이 깊숙한 산골이고 호랑이가 드나들고 늑대가 들락날락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예루살렘에 가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옛날에는 그랬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보면 한 오백 미터밖에 안 된다구요. 성경을. 보고 겟세마네 동산이 깊숙하고 은근한 곳인 줄 알았더니 가서 보니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로 보이는 곳이더라구요. 여기서 저기 있는 목욕탕 거리밖에 안 된다구요. 그리고 성경에 시온 산성이니 뭣이니 기록된 곳도 다 20리 안팎에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20리 안팎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지고 뭣이고 가지 말라구요. 가 보면 기가 막히다구요. 몇천 년 역사를 기록한 것이 조그만 판국이라는 거예요. 전부 다 앞동네 뒷동네에서 벌어진 일들이예요. 기분이 나쁘다구요. 그런 의미에서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혼자서 안타까운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겠어요? 예수님이 '아이고 내가 집에서 천대받아 가지고 눈물 흘리지' 하면서 눈물을 흘렸겠어요? 아닙니다. '내가 천대받는 것이 극심하더라도, 나는 일신의 고통과 핍박을 받을지언정 이 나라의 해방과 이 세계의 해방이 있으면 된다. 내 눈물은 핍박받는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해방의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한 눈물이다' 하면서 흘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눈물을 흘린 그런 뜻과 같은 뜻을 가진 주의와 단체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결국 자기가 사랑받기 위해서 눈물을 흘렸느냐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렸느냐 하는 문제를 볼 때, 자기가 사랑받기 위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고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또 피를 흘린 것도 자기를 위해서 피를 흘린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해서 피를 흘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패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망하지 않을 자리에서 살다가 죽어 간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남을 위해서 산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 심보는 틀렸다는 거예요. 그런 기독교인들은 뿌리를 뽑아 버려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가게 하자'는 운동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그러한 개인주의적 사상을 초월하여 가지고 자기를 희생시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여 천국 보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신앙관인 것입니다. 다르다구요.
눈물 흘려도 시시하게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서 눈물 흘리지 말라구요. 그런 눈물의 기도는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일생 동안 자기를 위해서 기도 한마디 안 하고 눈물 한 방을 안 흘리더라도, 남을 위해서 일생 동안 기도하고 남을 위해서 일생 동안 눈물 흘리고 간 사람은 천국 중에서도 제일 상층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 안 그럴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들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보니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어려운 문제와 자기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 가정보다도 교회가 보다 공적이기 때문에, 교회의 어려운 일을 붙들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은 용허하더라도 자기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중심삼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나라의 어려운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종단의 어려운 것을 중심삼고 기도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런 기도 안 해요. '내가 핍박을 받으니 하나님이여, 나를 치는 이 원수 들을 전부 다 목을 잘라 주소서' 하는 기도는 안 해요. '나를 치는 원수도 앞으로 이 나라를 위할 때는 같은 백성이요, 한 민족이요, 동족이니, 그때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해야지' 그래야 참 애국자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관이 다르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자체를 위해서는 눈물 흘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지 말고 통일교회보다 높은 이 나라를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눈물 흘리고 희생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될 때에, 대한민국이 남아 있는 한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 민국만을 위해서 있지만, 앞으로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을 하늘 뜻 앞에 세우게 되면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는 때는 지나가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세계를 위해서, 세계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보다 차원 높은 입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정성들이는 무리는 그 시대에는 망하는 것 같고, 그 시대에는 연약하고, 그 시대에는 핍박받으며, 그 시대에는 그늘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이 위하고 눈물짓던 그러한 상대 세계가 올 때는 그들의 이름이 천상천하에 들리기 마련입니다. 만일 지상에서 그 이름을 알지 못하여 들려지지 않았더라도 천상세계에 가서는 틀림없이 들리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지상세계는 일시적이요, 천상세계는 영원한 것입니다. 그 영원한 세계에서 들리기 마련이니, 그 세계를 위해서 이 세상이야 알아주건 말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는 것이 도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참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생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던 사람들 가운데에 성인 군자 혹은 위인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면,자녀의 날과 그 사명은 무엇이냐. 오늘날 타락한 인류를 바라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그 하나님이 찾는 사람, 하나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타락하여 눈물을 흘리던 아담 해와와 같은 사람일 것이냐? 그 눈물은 누구를 위하여 흘린 눈물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들은 잘못된 눈물을 흘렸으니 이제는 좋은 눈물, 정상적인 눈물을 흘려야 되겠다구요. 자기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세계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후손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자기 일대를 위해서 눈물 흘리고, 자기 일대의 행복을 찾아가다가 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자기 일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자녀의 날을 맞는 의의를 다짐하게 될 때. 여러분이 자녀가 되고 싶다면 어떠한 자리에 서야 되겠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하나님이 하신 수고 앞에 대신 수고하기 위해 사지가 찢기우는 길이라도 찾아가려고 발버둥이쳐 봤느냐? 못 해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그 자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공적인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여, 당신의 아들인 나를, 혹은 우리 조상을 잃어버렸을 때 당신의 마음에 얼마나 슬픔이 사무쳤습니까? 또한 그 후손을 통하여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당하시던 수욕과 고통과 극난한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라고 위로해 드리면서 무한히 동정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권한으로 온 세계와 사탄까지도 심판해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지지리 수고하는 입장에 서서 손을 댈래야 댈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가져야 할 환경을 갖지 못한 채 고독단신으로 사탄 앞에 참소받고 사탄세계에 발판을 몽땅 빼앗겨 가지고 신음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하게 될 때,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동정하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 봤느냐? 문제는 여기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사적인 눈물을 버리고 후손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공적인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입장에서 하나님을 대해 나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녀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자격자가 될 것이 아니겠느냐? 자녀로서의 자격을 가져야만 자녀의 날을 축하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간이 매일 눈물만 흘리고 살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 인간이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가 무엇이냐? 우리 통일교회 원리가 가르쳐 준 것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리게 된 동기는 자기들 멋대로 사랑의 길을 찾아가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부모 친척이 다 있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아들딸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멋대로 나가서 행동하다가 잘못하게 되면. 누구도 거기에 대해 절대로 보장을 안 해줍니다.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네 멋대로 하더니 꼴이 잘 됐다' 하며 눈앞에 얼씬도 못 하게 하고 쫓아냅니다. 그렇지만 부모가 거들고 일가 친적, 동네 전체가 거들어서 결혼을 시켜 뒀는데도 불구하고, 만일 결과가 좋지 않게 됐다 할 때는 그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서러움을 당하게 될 때는 나보다 먼저 울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 울어 줄 것입니다. 혹은 삼촌이나 사촌, 친척들이 전부 다 동정할 것입니다. 자, 여러분 어떤 것이 지혜로운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원칙을 따라서 움직여야 됩니다. 원칙을 따라서 움직이는 입장에 섰다 하게 되면 아무리 외롭더라도, 아무리 외로운 자리에 섰더라도 자신의 울타리가 자기를 사랑해 줍니다. 그렇지요? 내 사랑의 울타리가 외로움에 비례하여 환경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소생하는 것입니다.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는 데도 옛날보다 못한 자리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자리로 부활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외로운 자리, 슬픔의 자리, 당장 깨질 것 같은 자리이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거기에는 큰 사랑이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 멋대로 할 때에 사랑이 있어요? 사랑의 환경이 있어요? 없다는 거예요. 사방을 둘러봐도 살풍경이라구요. 전부 다 저주하고 원망하게 되어 있지, 동정받는 환경을 못 가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언제나 동정적 환경을 생각하면서 가려 가는 것입니다. 동정 가운데는 물론 역사적인 선조들의 동정도 동정이지만 하나님의 동정, 사회의 동정, 혹은 후손들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 같은 양반은 그렇게 살다 간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진짜로 사람을 사랑해 봤어요? 사랑해 봤다고 생각해요? 예수님이 어머니 아버지를 진짜로 사랑해 봤어요?
그걸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래요? 해봤다고 생각해요? 또 예수님한테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으면 그들을 사랑해 봤어요? 그 다음에 형제들이 있는데 그들을 사랑해 봤어요? 형제들의 핀잔을 받았습니다. 동생들이 예수에게 '형님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예루살렘에 먼저 올라가지 왜 이렇게 틀어박혀 있느냐'고 하면서 핀잔했습니다.
예수님은 30여년의 생애 동안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눈이 있어도 바로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바로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참고 가면서 후대의 길을 닦기 위해 묵묵한 가운데서 바쁜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때를 맞아 길을 나섰지만 그 도상에서 사랑할 수 있는 제자들을 찾았어요? 3년 동안 제자들을 끌고 다니면서 별의별 일을 다 했지만, 그저 예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지 예수님편에 선 사람이 누가 있었어요?
예수님이 사지사판에서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예수님이 그들을 대해 '나는 너희들과 같이 있고 싶지만 너희들은 나와 같이 있고 싶어하느냐?고 했겠어요. 그런 걸 두고 볼 때, 여기에는 상충적인 요인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얼마든지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마에 수건을 동이고 세수대야에 물을 떠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너희들도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은 제자들이 귀여워서 그랬겠어요? 제자들 끼리 모여 앉으면 그저 선생님이 누구를 사랑하고 뭐 어떻고 어떻고, 이런 수작을 하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직접 모심의 도리, 받듦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겁니다. 그걸 볼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다구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수제자도 나중에는 전부 다 도망갔지요? 수제자들이 예수를 왜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하겠지만 보라구요. 예수님이 부활해 가지고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한 번 묻고 두 번 묻고 세 번 물을 때, 베드로는 '내가 이 사람들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것을 선생님이 아시나이다' 라고 세 번씩이나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한 번 묻고 두 번 묻고 세 번 물을 때, 베드로가 미욱했기 때문에 세 번씩이나 대답했다구요. 지혜롭고 약삭빠른 사람은 한 번 묻고 두 번만 묻게 되면 벌써 고개가 딱 수그러졌을 거라구요. 그걸 볼 때 베드로가 미욱했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은 것은 과거에 네가 나를 세 번씩이나 배반하지 않았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 번씩이나 묻는데도 버티고 서서 대답을 했다는 것은 베드로가 미욱했다는 것입니다. 곰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지혜롭고 약삭빠른 사람이 아니라구요. 두번째 물었을 때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예요. 또 모르지요, 베드로가 '나는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제자들이 그렇게 썼는지. 그러나 세 번씩이나 버티고 서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걸 보면 베드로는 미욱하다구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정한 역사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다구쳐 묻는다면 얼굴을 떨구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다 이렇게 되게 되어 있지, 얼굴 들고 허리를 펴고 버티고 서서 '내가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는 줄을 선생님이 아시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여기 남자들 가운데 그럴 수 있는 사람 있어요? 그걸 보면 베드로가 미욱하다는 거예요.
그걸 볼 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어요? 부활해 가지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아, 내가 너희들 때문에 찾아왔다, 죽고 나서도 한이 맺혀서 너희들을 찾아왔다'고 말을 했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만나자마자 제자들을 들이 갈긴 것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했어요? 또 어머니를 대해 '여인이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들이 제겼다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 가지고 자기 어머니도 들이 제기고, 자기 제자들도 들이 제겼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누구를 사랑했겠어요?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했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나아갔을 때, 예수님은 '나에게 손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사랑했다면 그랬겠어요? 예수님은 이 땅 위에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간 분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 사랑하지 못한 사람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 믿는 기독교인 가운데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한 거라구요. 다시 오는 데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계적으로 오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가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종족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국가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예수님으로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오실 수 있게끔 이런 놀음을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 자기 배통들을 끌고 다니면서 하늘 뜻을 이용해 먹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부 다 배때기를 갈라 버려야 됩니다. 그런 요사스런 무리가 오늘날 세계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구요. 그놈들의 다리를 잘라 버려야 된다구요. 내가 그런 녀석들한테 지금까지 천대를 무지무지하게 받았다구요. 보라구요. 그래, 기성교인이 왔거든, '우리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이 사랑하고 말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오늘 자녀의 날이라고 해서 나와 말씀할 텐데 한번 가보자 해서 온 사람 있거든 손들어 봐요, 내가 하나 물을 테니. 있어요, 없어요? 있다면 내가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을 거라구요. 수작들 그만두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신부를 찾아오는데 한 개인만을 찾아오고 싶겠느냐, 신부의 어머니 아버지, 삼촌, 사촌, 팔촌, 일족뿐만 아니라 씨족, 민족 등의 배경을 중심삼은 일등 신부를 찾아오고 싶겠느냐? 아니면 아무도 없이 혼자 달랑달랑 거지 모양으로 되어 가지고 지게꾼한테 업혀 오는 신부를 찾아오고 싶겠느냐? 어느 신부를 만나고 싶겠어요? 우리 아주머니들, 어때요?
어느 기독교인들은 '아이고 주님이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데….'라고 합니다. 그래 예수님은 나라가 전부 틀거리가 되고 교회가 전부 틀거리가 되고, 또 어머니 아버지 형제들을 다 갖추고 거기에서 사랑을 받고, 그중에도 안팎으로 다 갖춘 신부를 원하겠어요, 아니면 미인이요 학식도 갖췄는데 혼자 달랑달랑해 가지고 눈만 깜박깜박하는 신부를 원하겠어요?「다 갖춰 가지고….」 그것은 물어 볼 것도 없다구요.
교회가 서로 싸움하는데 거기에 예수님이 와요? 나라가 둘로 갈라져서 싸우는데 그 나라에 예수님이 와요? 그 가운데 오게 되면 복잡한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서로 싸우지 않나요? 싸워요, 안 싸워요? 싸우더라도 선생님이 척 나타나면 다 그만두지요? 기성교회 교인들이 싸울 때 목사가 나타나더라도 그 싸움은 그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투덜투덜하더라도 선생님이 '왜?' 하면 뚝 그치지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죽기 전에 얼른 일을 해야 된다구요. 문제가 크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찾아오실 수 있는 곳이 어디냐? 목사가 단상에서는 큰소리치고 집에 들어가서는 여편네한테 '뭐 우리 목사는 따라지다. 왜 그렇소' 하는 말을 듣게 되면 안 되는 거예요. 목사 부인은 교회 권사보다도 목사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짜라구요. 이런 말을 하니까 어떤 사람은 벌써 척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구만. (웃음) 만일 자기 부인이 그렇지 못하다면 교육을 해야 한다구요. 눈물이 쭉 빠지도록 교육을 해야 됩니다. 시시한 남자로 나타나면 안 된다구요 자, 교회가 하나된 곳에 주님은 와야 된다, 이렇게 되지요? 독수리가 어떻다고 했습니까?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냄새 나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싸움을 하라고 해도 싸움을 하지 않고 하나된다, 그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러므로 싸우는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뜻을 기대할 수 있다? 「없다」 없다. 예수님이 기대할 수 있는 교회도 그렇지만 나라가 싸울 때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남북으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한국으로 주님이 올 수 있다, 없다? 없어요? 「….」 (웃음)
세계가 지금 싸우고 있는데 그 세계가 점점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자, 이거 어쩌자고 이러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은 친구가 되어 손목을 잡으니 이것은 미치지 않았으면, 지랄이 아니면 무슨 천지 개벽이 벌어진 거라구요. 나는 그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래서 남북한이 교류해 가지고 가족찾기운동을 하자고 하는 거예요. 가정이 싸워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부는 거예요. 동독과 서독이 서로 유통하지요?그렇지요? 만통이 벌어지는 거예요. 서로 통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아래에 있는 사람은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야 되는 것입니다. 제일 꼴찌가 일등 되고 일등이 꼴찌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와 같이 이상한 때가 됐다구요. 보라구요. 20년 전에는 중공이 유엔으로부터 침략국이라고 규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0년도 채 안 된 지금은 그 중공이 유엔에 가입해 가지고 주체국인 중국을 축출해 버렸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여러분이 살림살이 하는 가정에 있어서도 말이예요.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 좋다고 하다가 축출할 때가 올 것 같아요, 안 올 것 같아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내가 좋다고 하던 남편, 아내를 축출할 때가 올 것이냐, 안 올 것이냐? 내가 사랑하던 아들을 축출할 때가올 것이냐, 안 올 것이냐? 보라구요. 세계가 그러니 가정에서도 그럴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아무리 여러분이 싫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축출당할 때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축출당하는 데도 망할 곳으로 축출당하는 패가 있는가 하면 흥할 곳으로 축출당하는 패가 있습니다. 흥할 곳으로 축출당하는 패가 하나 정도는 있을지 모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축출당하는 것은 다 나쁜 것인데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화가 복이 된다는 말이 있지요? 그럴 수 있다구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으로부터 축출당했어요, 안 당했어요? 기성교회로부터 통일교회가 축출당했어요, 안 당했어요? 당했지요? 또 통일교회로부터 문선생이 축출당했어요, 안 당했어요? (웃음) 대답해 보라구요. 「안 당했습니다」 안 당했지만 축출하려고 하는 패들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거 있는 거라구요. 그런 패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런 패가 있고 그렇지 않은 패가 있게 될 때, 그런 패보다도 그렇지 않은 패가 높다는 거예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같은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도 둘을 못 다루겠으니, 하나를 택하기 위해서는 둘 중에서 하나를 보다 높은 간격으로 싹 올려놓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거기에서 일등한 사람에게 상을 주든가 뭘 주든가 해도 불평이 없게끔 하기 위해서 그런 놀음도 시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을 사랑하오, 안 하오? 사랑한다는 말을 쓴다고 해서 옛날에 벌거벗고 춤췄다는 그런 관념을 가지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런 생각하지 말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오, 안 하오?「합니다」 자신들이 없구만. 자. 사랑합니까, 안 합니까? 「합니다」 뭘 사랑해요? 나 안 사랑해요. (웃음)
그래서 여러분을 축출해야 된다구요. 축출해야 하는 역사시대가 왔기 때문에 여러분을 쫓아내야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지리리 고생을 시키려고 한다구요. 보라구요. 언제는 축복해줘 가지고 잘살라고 하더니... 쟁개비 짜박지니 무슨 뭐 사발 짜박지니, 또 옷이니 뭐이니 해 가지고 이제부터는 축복받은 가정이 잘살아야지 하면서 한 가지 두 가지 준비해 가지고 발 붙일랑 말랑 하는데, 선생님이 댕그랑댕그랑 다 뒤집어 엎는 거예요. (웃음) 축출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축출하고,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축출하고, 그 다음에는 종족적으로 축출하는 거예요. 통일교회에서 축복받은 가정들은 통일종족이라구요. 그래서 통일종족을 축출하는 거라구요. 그거 좋소, 나쁘오?
축출하게 되면, 앞으로 이 민족과 대한민국도 세계 앞에 축출당할 때가 온다구요. 그런 때가 지금 오고 있다는 거예요. 남북한을 중심삼고 통일을 논할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나가 버리고 만다구요. 그런 때가 오거들랑 통일교회는 축출당하는데 무엇을 위해서 축출당하느냐? 얻으러 가는 거라구요. 개인을 축출하는 것은 가정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정을 축출하는 것은 종족을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반대라구요. 이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정을 축출하는 것은 무엇을 찾아오기 위해서라구요? 「종족을 찾아오기 위해서입니다」 종족을 축출하는 것은 무엇을 찾아오기 위해서라구요? 「민족을….」 그 다음에 민족을 축출하는 것은 무엇을 찾아오기 위해서라구요? 「국가를….」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축출당하는 단계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저쪽에서는 내쫓으니 우리는 맞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겠지요? 그게 보니까 맞은 것이 아니라구요.
지금까지 아시아를 움직이던 나라들이 아시아에서 축출당하는 입장에 섰으니 우리는 아시아를 맞을 수 있는 입장에서 축출당하는 것입니다. 즉. 아시아를 맞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반대지요? 반대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반대 입장에 선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나라로부터 축출당한 것이 나쁜 것이냐? 기성교회로부터 축출당한 것이 나쁜 것이냐? 형제 자매, 혹은 친구들로부터 축출당한 것이 나쁜 것이냐? 그것이 나쁜 것 같았지만, 축출당하는 반면에 여러분에게는 더 좋은 형제와 친구를 갖다 줬습니다. 갖다 줬어요, 안 갖다 줬어요? 「갖다 줬습니다」통일교회에는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형제를 갖다 줬다구요. 형제 아닌 형제를 갖다 줬고, 더 좋은 가정을 갖다 준 거라구요. 자, 통일교회에는 축복가정이 있지요? 그렇지요? 「예」 이거 대답들이나 잘하지. 눈만 꺼벅꺼벅하고…. 그래, 더 좋은 가정이 있어요? 「있습니다」 저기, 황서방, 있어, 없어?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래,누가 여러분에게 가정을 갖다 줬어요? 누가 갖다 줬어요? 임자네들이 갖다 줬어요, 하나님이 갖다 줬어요? 「하나님이요」 하나님 봤어요? 봤어요, 못 봤어요?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갖다 줬는지 알아요? 그건 누가 갖다 줬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갖다 줬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럼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디에서 가져 왔느냐? 도둑질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건 강도라구요. 알겠어요? 하나님으로부터 가져 왔다면 거기에는 수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을 하늘나라에서 가져 왔는지 사탄세계에서 가져 왔는지 선생님도 모르겠소' 하면 여러분이 감정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연구해야 된다구요.
지금 세계가 이렇게 엇갈려서 돌아가는 거예요.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선인지 악인지 헤아릴 수가 없게 됐다구요. 그렇지요? 여기에 통일교회가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세계적으로 새로운 두각을 나타내 가지고 소용돌이치는 이 세계 가운데 쓱 끼게 됐다구요. 돌아가는 거라구요. 이것을 어디로 뽑아낼 것이냐? 저 지옥 밑창으로 내려갔다가는 용솟음쳐 가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쫓겨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많이 올라왔지요? 앞으로 대학가는 우리가 아니면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요, 정세를 보는 최고급에 있는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는 기성교회가 아무리 통일교회를 반대해 봤자 그것은 행차 후에 나팔 부는 격입니다. (웃음) 행차 후에 나팔 부니 그거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예요. 나팔 불려면 들리게끔 불어야지요. 행차 후에 나팔 불고 있어요. 기성교회가 아무리 콧방귀 뀌어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런 채찍과 비난 비소에 쓰러져 갈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면 출발도 안 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요즈음 내가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위급한 정세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모르지만 말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연구해 볼 문제라구요.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선생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얼마만큼 갔는지 모르고 있다구요. 봄철인지, 여름철인지, 가을철인지, 겨울철인지 모르고 있다구요.「주님 말씀에 아버지 하는 일을 아들이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잠자는 아들이니까 모르지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데 왜 모르냐구요. 아버지를 따라다니지 않는 아들이니 모르지 따라 다니면 왜 모르겠어요?
요즈음에 우석대학을 우리가 인수한다고 하니까, 큰 파문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석대학만 인수하게 되면 일시에 재벌로 등장하는 거예요. 그걸 사려면 당장에 현찰로 한 십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문 선생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십억을 쓸 줄은 안다구요. (웃음) 하나님이 보실 때, 천상천하에서 돈 쓸 줄 아는데 제일 가는 사람 이라면 그것을 주시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난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나팔 불고 춤추신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좋겠지요? 그러면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밤잠을 주무시지 않고 운동을 하시게 되면 된다는 거예요. 그 참 멋지지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여러분들도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예」 통일교회 문선생은 그렇게 산다구요.
내가 지금까지 '된다. 된다' 하는 것을 끌고 나왔어요? 다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것을 끌고 나왔지요? 지금가지 따라 나온 녀석들 중에서 내 배포에 시원하게 한번 상대된 녀석이 없었다구요. 쑥덕쑥덕 쑥덕공론이나 하고 뭐 어떻고, 안 될 것을 가지고 저런다고 하다가, 쓱 되면 '후-후 -후' (웃음) 그러고는 '선생님은 우리와 다르니까 그렇지 뭐'라고 합니다. (웃음)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구요. 입이 시퍼래 가지고 변명은 잘해요. 선생님이 여러분하고 다르다고 하지만, 다르기는 뭐가 달라요? 하루에 밥 세끼 먹는 것은 마찬가지라구요. 숨쉬는 것도 마찬가지라구요. 생각이 좀 다르지요. 그 생각은 딴 생각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생각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라구요. 여러분하고 다른 것이 없어요. 결론지어 보면 간단하다구요.
울되, 자기를 위해서 우는 눈물을 보고는 동정도 하지 말싸. 울되, 남을 위해 우는 눈물을 보고는 같이 울싸. 이것이 지금까지 역사를 가려 나오는 하나의 가름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되, 자기를 위한 자리에서 사랑에 도취하는 사람은 망하는 거예요. 자기는 사랑을 못 받아도 남을 사랑하겠다고 도취하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2천년 동안 찾아 나오는 복귀의 길이요, 구원의 길입니 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워하면서 살 때가 좋은 것입니다. 사춘기는 모든 분야의 그리움이 내 사방을 에워싸는 때이기 때문에 그때가 좋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지금까지 양지에서 못 살아 보고 그늘에서 살아온 사나이라구요. 안방에서는 큰소리하지만, 여기 찾아왔으니 내가 큰소리하지만 어디 공석에 나가서는 큰소리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큰소리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려고 하면 잘한다구요. 그러나 그렇게 하게 되면 여러분이 몽땅 빼앗겨 버린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거지 떼거리들 같은 여러분들을 전부 다 모아 놨기 때문에, 그렇게 해 놓는 날에는 여러분은 가다 말고 중간에서 전부 빼앗겨 버리고 만다구요. 안 그렇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들과 이마를 맞대고 약속을 하고 나왔지만 그 약속을 세울래야 세울 수 없는 처량한 판국이 돼 버리고 만다구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여러분을 끌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해보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도 안 되게 될 때는 할 수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안 되게 될 때는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때는 바꿔치는 거라구요.
그래서 요즈음에 우리를 반대하던 기성교회에 주력하여 공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기성교 목사들을 공청회에 참석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느냐? 반대하던 자들한테 한번 지도를 받아 보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반대하는 목사 장로들을 통일교회 패에 처넣어 가지고 통일교회 패들로 하여금 명령하게 할 것입니다. 이런 말 들으면 기분 좋지요? 좋아요, 나빠요?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의 관이예요. 또 선생님이 그렇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교인보다 기성교회 목사들을 더 사랑했다는 조건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래저래 뜻이 있어 그런 놀음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통일교회를 위해 십년 동안 고생하다가 이렇게 죽게 됐는데, 우리를 반대하는 목사들은 쇠고기 갈비에 늘어지게 먹여 주면서 우리 통일교회 사람들에게는 보리밥 한 숟갈도 못 먹게 해준다. 그게 뭐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그럼, 그런 말을 하는 통일교회 교인은 잘했어요, 못했어요? 「못했습니다」 대답은 올바로 하는구만. 잘했다고 하면 대가리를 까려고 했는데…. 내가 통일교회 전도사들하고 책임자들하고 무슨 원수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요셉이 자기 형제를 도와 주게 될 때 말이예요. 그동안의 역사를 형제들에게 말해 준다면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얼굴을 못 대하는 거라구요.
많은 무리가 사지사판에 서 있으니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많은 무리를 해방시켜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은 당연지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욱이나 교회 책임자들을 깨깨 고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 몇 사람이나 남아지나 보자는 것입니다. 이 길을 도피해 가는 사람들을 내가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저 녀석은 이렇게 하고 있구만….' 다 알면서도 잘 속아 주는 것입니다. 심통을 다 들여 다보고 있지만 어수룩하고 모르는 척하고 잘 속아 준다구요. 그것도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는 양보해 주는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소리도 없이 잘라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통일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지요. 그 정도 되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이곳은 공판정인 동시에 심판정이라구요. 무서운 곳입니다.
많은 도인들이 겨루기 위해 나한테 왔다가 몽땅 들려 넘어갔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모르지요? 한다 하는 도인들이 와서 설치면 박자를 잘 맞춰 줍니다. 잘났다고 하는 녀석에게는 '어디 끝까지 한번 해봐라' 하고 잘 분석, 비판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하면 최후에 가서 못 하게 되어 꺾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한테는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전법이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내 손아귀에서 녹아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런 걸 알아야 돼요.
'나'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원수입니다. 나 자신이 원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누구 때문에 통일교회 못 가겠다'는 말을 듣지 말라구요. 자기 때문에 통일교회에 못 가는 것입니다. 누구는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남의 말 하듯이 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대하지 말라구요. 요사스러운 것들입니다. 그런 사람 만나 가지고 뭐가 나오나 보라구요.
자, 그러면 여러분 오늘이 자녀의 날이니만큼,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자녀의 날에 대해서 잘 알지요?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하나님이 기쁨을 가질 수 있는 날, 하나님의 날이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시작되는 거예요. 그리고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는 인류의 선한 부모로 등극하게 되는 거예요. 선한 부모의 자리가 결정되면 부모의 날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부모의 자리에서 사랑을 갖추어 가지고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아들딸은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부모의 사랑권내에 누울 수 있는 아들딸이 되는 거예요. 그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아들의 날이요, 딸이 태어나자마자 딸의 날이라구요. 그 다음에 만물은 그 자체가 사랑받는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화합하여 얽히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만물 자체는 그 아들딸을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꺼번에 되어야 할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다 갈라졌다구요.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의 날을 유린해 버렸고, 참된 자녀의 날을 유린해 버렸고, 참된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날을 유린해 버렸고. 하나님의 날까지도 유린해 버렸습니다. 이것을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부모의 날에서부터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가려 가지고 1967년을 지나 비로소 1968년 정월 초하루를 기해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상에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통일교회 하나님의 날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렇게 무가치한 날이 아니예요. 자녀의 날이 그렇게 무가치한 날이 아니라구요. 자녀의 날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느냐? 타락한 모든 것을 복귀해야 했습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심정적 문제에 걸렸고, 실체적 문제에 걸렸고, 그 다음엔 천사장한테 걸렸습니다. 그렇지요? 타락한 순서를 보면 천사장이 문제가 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몸뚱이와 마음을 통해서 심정에까지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전부 다 걸려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3단계가 전부 걸려 있다구요.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일치되는 심정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심정부활의 날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알아요? 그런 말은 들어 봤죠? 저기 있는 이영감 알아, 몰라? 「잘 모릅니다」 말은 들었지? 「예」 심정부활의 날이 선포 안 되고는 안 됩니다. 타락한 순서의 거꾸로, 심정부활이 먼저라구요. 타락은 사탄과 몸뚱이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심정이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서는 반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심정적 부활을 먼저 선포하고 실체부활을 선포하고 그 다음에는 천사장을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장 선포는 뭐냐 하면 세례 요한적 입장의 대표자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이 모르는 가운데 이런 일을 다 해 나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아들 앞에 완전히 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 앞에 해와 될 수 있는, 신부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거꾸로 여자가 남자를 끌고 간 것이 타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들이…. 신부는 남자가 아닙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아, 신랑 되시는 주님이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지만 주님이 누구한테 와요? 목사한테 와요? 목사가 여자예요? 그들은 운세도 모르고 그래요.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에 남자가 신부여서 신랑 되시는 주님이 신부를 찾아와 가지고 결혼식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예수, 네가 일등 신부 맞이했으니 축복해 줘야 되겠다. 어린양 잔치하자' 그러시겠어요? 주님이 신랑으로 오신다면 여자가 필요해요, 남자가 필요해요? 「여자요」 남자가 필요하지요? (웃음)
남자가 필요한 것은 신랑의 들러리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남자가 나타난다면 큰 태풍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지요? 태풍이 인다구요. 종은 결혼식장에 못 나타나는 겁니다. 그렇지요? 들러리 남자라면 결혼식장에 나타날 수 있지만, 만일 다른 남자가 결혼식장에서 서성거렸다가는 큰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목사들은 신부가 아닙니다. 목사들은 신랑 들러리로 못 서게 되면 종도 못 되는 것입니다. 종은 신랑 신부 잔치 자리에 못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뭐냐? 심부름꾼입니다. 잔치 떡을 하고, 지짐을 지지고, 닭 잡고, 돼지 잡는 데 심부름이나 하고 백정 놀음이나 하지 별 거 있나요?
그러므로 기독교는 여자 종교라구요. 요사스런 여자 때문에 타락은 했지만, 한때 여자들을 출세시키는 거라구요. 왜? 주님이 신부를 찾으러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부의 때를 맞이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신부가 어떤 입장에 있어야 되느냐? 신랑의 집안과 신부의 집안이 서로 맞아야 됩니다. 신랑 나라하고 신부 나라하고 상대적 관계가 갖추어져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서로 원수 되는 나라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전부 다 갖추어야 된다구요. 그러니 그러한 내용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 기독교라구요. 세계가 같고 나라가 같은 그러한 권을 만들려니 민주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기독교 국가, 기독교 국가 가운데서도 일등 국가를 택해 가지고 그런 놀음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인 문제를 두고 보면, 천사장으로부터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정까지 유린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자녀로 등장하려면 반대로 해야 됩니다. 심정부활, 그 다음에 실체부활, 그 다음에 세례 요한 책정, 즉 천사장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수님 앞에 있어서 천사장은 누구냐 하면 세례 요한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 앞에 당신이 찾아온 신부라고 하면서 신부를 모셔다 드림으로써, 가정이 울타리가 되고 친척이 울타리가 되고 교회가 울타리가 되고 이스라엘 나라가 울타리가 되었다면 왜 예수가 죽어요? 왜 죽어요? 누가 죽이겠어요? 이스라엘 나라 백성이 죽이겠어요? 만일 그렇게 됐다면, 로마 병정이 예수님을 죽이려 할 때는 반대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심정부활을 찾고 실체부활을 찾고 천사장 부활권을 다시 찾아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에 나라와 민족과 교회와 종족, 가정의 터전을 갖추어 가지고 예수님을 모시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했던 것이 몽땅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것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이것을 다시 찾아 나오기 위한 것이 세계적인 기독교인 것입니다.
민주세계의 기독교, 이는 특정한 나라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권을 만들어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나라가 환영하고 교회가 환영하고, 종족과 가정과 개인이 환영할 수 있는 터전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못 가지게 되면 수난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 수난길을 갔던 거와 마찬가지로, 만약 끝날에 오시는 주님을 배반하게 될 때, 그것을 다시 찾으려면 2천년에 해당하는 수난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소한 21년의 복귀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21년 과정을 거쳐 기성교회와 나라와 세계가 재봉춘할 수 있는 권내에 서게 될 때, 그들이 서로 반대하지 않고 만나게 되면 한 나라를 접함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갈 수 있지만, 서로 반대하게 되면 개인적 원수요, 가정적 원수요,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 원수가 평면상에 나타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알겠어요? 바로 요 때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제일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느냐? 우리 원리로 말하면 첫째는 개성완성, 둘째는 가정완성, 세째는 종족완성, 네째는 국가완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바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다른 것이 없다구요. 예수님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 자기 땅에서야 될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땅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보호권내에,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는 이스라엘이어야 되는 겁니다. 즉 나라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교회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종족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가정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고, 개인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 가정도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요셉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었느냐? 못 있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었느냐? 못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의 사랑권내에 있었느냐? 못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개인으로서 설 수 있는 자리까지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니 할 수 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구요. 이방에 쫓겨가 가지고 다시 2차 작전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다니다가, 세례 요한이 닦지 못한 그 기반을 다시 닦다가 몰려 가지고 죽음의 길을 간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억울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2천년 동안 나라가 없었던 거라구요.
그러면 우리는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문제가 이거예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왜 교파를 많이 만들어 놓았는지 알아요? 이 세계에 사탄의 나라가 몇 나라나 될 것 같아요? 생각해 봤어요?
우선 유엔에 가입한 나라가 현재 몇 개 국인가요? 「132개 국요」 자, 132개 국입니다. 그 가외에 가입하지 못한 나라가 얼마나 많을 것이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지금 교파가 이 세계의 국가 수에 해당하리만큼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독교의 교파를 분열시켜 놓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 세계에는 수백 교파가 있지요? 수백 교파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는 수백 국가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국가가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가정이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개인이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가도록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유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을 만들기 위한 것이 민주세계예요, 민주세계.
그러므로 민주세계 권내에서 특정한 나라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특정한 나라는 기독교를 잘 믿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사상을 올바로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한 나라 가운데 기독교가 있어야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오셨을 때의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같은 입장의 나라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 어떠한 민족이 대표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특정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종파로 분열시켜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교파가 클수록 좋은 것이냐? 아닙니다. 교파가 작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나라가 클수록 하나님의 뜻성사가 가능하냐? 아닙니다. 작을수록 가능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강원도만큼밖에 안 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일주하는 데 네 시간 반. 다섯 시간도 안 걸렸습니다. 그렇게 조그마한 나라입니다. 하루면 소문이 다 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특정한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님은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오랜 기독교 역사를 통해 가지고 터전을 닦은 나라에서는 힘든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몇 천 년 동안 기반을 닦아 나온 유대교 터전에서는 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갑자기 은혜를 받아 가지고 은혜의 불길이 붙은 터전 위에 선 나라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120년 이상의 기독교 역사를 가진 그런 나라는 주님이 올 수 있는 나라가 못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올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구요. 여러분 지금 기독교에서 몇 년 축하라고 하지요? 한국에 신교가 건너온 지 몇 년째인가요? 백년이 못 될 거라구요. 30년에서부터 60년 단계로 넘어갈 때 기독교는 핍박권 내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때가 왜정 때예요. 기독교가 핍박을 받아왔기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도 국가적인 핍박을 받아야 됩니다. 또 지금까지 기독교가 유린을 당해 왔기 때문에 특정한 나라로서 뜻을 이어받을 수 있는 나라는 압정과 압제를 받는 국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때 이스라엘 나라가 그랬습니다. 그런 조건에 부합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신령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갈라진 나라에 오시게 되어 있지 않은 이 나라는 갈라져서 제일 비참한 운명이 벌어졌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제일 비참한 운명이 되어 땅에 떨어졌습니다. 도리어 이 세상 사람들 보다도 못사는 자리에 섰고,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절망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왜? 통일교회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유엔에도 가입 못 하고 있지요? 기독교가 지금 비참하게 되었지요?
그러면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통일교회 문선생이 개인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삼천리 반도 어디를 가든지 설 땅이 없었다는 거예요. 가정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또 국가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세계적으로 설 땅이 있었어요? 누구보다도 세계를 위하고, 누구보다도 나라를 위하고. 누구보다도 가정을 위하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배반당했다구요.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세계적으로 하늘의 섭리를 유린해 나오던 사탄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사탄의 모든 비밀을 폭로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천사장이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실체복귀, 심정복귀를 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비로소 개인적인 아들의 자리에 나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子)의 자리는 나왔지만, 여(女)의 자리가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1960년도에 부모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여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절대 하나되는 데서 만이 자녀의 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1960년도에 자녀의 날을,1963년도를 중심삼고는 만물의 날을 책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7년 복귀의 한계선을 거쳐 가지고 가정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날을 맞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정이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해원성사 할 수 있는 승리의 날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있어서 이 땅 위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을 중심삼고 비로소 하나님을 면접할 수 있고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날이 바로 하나님의 날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거기서부터 통일교회시대 권내로 들어가는 거라구요. 1968년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는 4년간이예요. 68, 69, 70, 71, 72, 73, 74년까지는 통일교회로 말하면 2차 7년노정 기간입니다. 2차 7년노정 기간은 세계적으로 뒤넘이치는 때입니다. 그 가운데 3년 반이 되는 기간은 세계적인 환란시대와 맞먹는 기간입니다. 이 7년 동안에 세계가 뒤넘이치는 거라구요.
정상에 올라가게 되면,7년 사이에 맨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원수와 원수끼리 만나게 되지요? 거기에서 둘이 만나 가지고 싸우면 둘 다 망하는 거라구요. 그러니 할 수 없이 화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중공을 중심삼고 화합하는 놀음이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원리를 조금만 더 알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에 나타나는 것은 둘 뿐만이 아니라 한 분이 또 나타납니다. 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둘이 화합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면 할수록 와르르 밀려 나가는 것입니다. 전부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떨어져 내려간다구요. 떨어져 내려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정상의 주인은 딴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치는 어디서 나오느냐? 세계를 대표한 개인적인 승리자.알겠어요? 개인적 승리자, 그 다음에는 가정적 승리자가 가정을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되어 보다 높을 수 있는 가정의 기반을 갖고 나오는 가정적 승리권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국가적 승리권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1, 2, 3이예요. 이렇게 해서 소생 장성 완성만 이루게 되면 세계는 대등한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보게 될 때, 그 개인은 하나님 앞에 효도하는 데에 있어서 대표적이어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수많은 민족, 수많은 인류의 그 누구보다도 나아야 합니다. 하늘을 중심삼고 하늘을 위해서 효도하는데 있어서, 사탄을 위해서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30억 인류보다 더 정성을 들여 사탄이 부러워하게 해야지 하나님이 사탄의 아들딸을 부러워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사탄세계의 인류를 보고 '야, 너의 아들 가운데에는 잘난 아들이 있어서 그 아들이 충성을 하는구나. 효도를 하는구나' 하고 사탄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탄에게 당당코 자기 아들을 자랑하셔야 됩니다. '네 아들딸, 네가 자랑할 수 있는 인류 가운데에서 이 이상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놓아라' 고 할 때, 사탄이 '없나이다'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승리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이 땅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된다구요.
하나님이 예수를 세워 가지고 자랑하시려고 할 때, 예수 개인만 자랑 하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가정을 중심삼고 자랑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 가정을 중심삼고 자랑해 보셨어요? 예수는 그러기도 전에 사탄한테 밟혀 죽었습니다. 자랑은 무슨 자랑이예요. 아무리 밝히고 아무리 맞더라도 결국에는 이겨야 된다구요. 예수가 죽지 않고 이겨야 할 텐데 죽어 가지고 이기는 길을 닦아 왔지요? 그러니 예수는 다시 와야 된다구요. 다시 와서 그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개인적인 승리자, 가정적인 승리자, 국가적인 승리자, 삼면의 작전을 거쳐 가지고 발전해 나가야 할 오실 주님의 갈 길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만일 국가가 세계의 보좌 밑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그 국가는 가정을 위할 것이요, 가정은 개인을 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이 선 자리와 더불어 가정이 통하고, 가정이 선 자리와 더불어 국가가 통하며, 국가가 선 자리와 더불어 세계가 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민주세계권 위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가정권이 생겨난다면 오시는 주님은 수난의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핍박을 안 받아도 된다는 거예요. 만일 이것이 설정되지 않는다면 오시는 주님도 예수님이 간 길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오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역사입니다. 그렇게도 반대를 하고 그렇게도 망하라고 야단했지만 개인적으로 설 자리를 잡고, 가정적으로 설 자리를 잡고,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설 자리를 잡아 나왔습니다. 이제는 너와 내가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서로가 분립되었다가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가인이 아벨을 쳤지만 아벨이 때를 맞아 대등한 자리에 올 때는 가인이 아벨을 칠래야 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런 때가 현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이제 가야 할 길이 어디냐? 지금 북괴는 완전히 전체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일치화 되어 있습니다. 공산주의 사상이 골수에 딱 들어박혀 가지고 자르면 자를수록 빨깽이라구요. 이렇게 모든 면에 있어서 우세한 기반을 닦아 가지고 남침을 엿보고 있는 이때에 우리 대한민국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 이상의 사상무장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별수 없습니다. 통일사상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통일사상으로 삼천만 민족이 일체화하는 날에는 일시에 북괴를 분쇄시키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그래서 1960년도부터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 별의별 놀음을 다 했지만, 기성교회는 통일교회를 그렇게 천대하고 통일교회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는 그 길을 갈고 닦아서 밟고 넘어 세계적인 원수 공산당과 대결하고, 국가에 비운이 깃들어 오는 이런 시대에 그야말로 애국애족하겠다는 사상을 가지고...이것은 국가기관에서 다 알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사람들같이 애국애족하면 이 나라는 망하지 않을 것이며, 공산당이 문제가 아니라고 알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허락하지 않을 수 없는 촉박한 시기에 임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칠 수 있고, 언제나 자기가 잘났다고 하다가는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잘났다고 하다가는 망하는 거라구요.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 시급한 정세가 우리 앞에 몰려왔다는 거라구요.
금년에 대만이 축출당한 것은 뭐냐? 천사장이 축출된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다음에는 한국이 그렇게 걸릴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바쁘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민주세계가 하늘을 배반했던 그 기준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마지막 고비에 왔습니다.
이런 때에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자녀의 날을 맞이하면서 다짐해야 할 사명이 무엇이냐? 세계는 이제 정상에 다 왔습니다. 원수와 원수끼리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이것이 웬 일이냐? 망할 운세냐, 흥할 운세냐?
오늘날 통일교회는 원수도 해방하자는 말을 합니다. 원수도 사랑하자는 말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와 기성교회는 둘도 없는 원수지간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내 온 과거를 생각해 볼 때, 칼이나 무슨 무기가 있으면 그들을 난도질하여 전부 다 살더미를 오려 가지고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해도 복수를 다 못 한다구요.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입니다.
천운이 가는 길은 혼자서는 안 됩니다. 수레는 수레바퀴 하나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양 바퀴가 있어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는 원리적 입장에서 보게 될 때, 통일교회는 기성교회하고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기성교회가 살 수 있는 데도 통일교회와 손을 잡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기성교회는 망하는 거예요. 한국의 기성교회가 망하게 될 때는 내가 미국의 기성교회와 손을 잡을 것입니다. 지금 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보라구요. 이번에 닉슨이 저렇게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 배후에 뜻 있는 기독교인들은 미국이 공산당과 손잡는다고 해 가지고 반대를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이 많이 생겨난다구요.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가 나갈 수 있는 기반이예요. 그러므로 이것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이 지금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순회, 순방노정은 크나큰 의의가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 비장한 역사적 순간이 우리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육천년의 한스러웠던 세계사적인 사조가 하늘과 더불어, 국가적인 원한의 터전이 국가와 더불어, 교회적인 원한의 터전이 교회와 더불어, 가정적인 원한의 터전이 가정과 더불어, 개인적인 원한의 터전이 개인과 더불어 일시에 평면적으로 접할 수 있는 세계적인 정세권내에 지금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밟고 넘어서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예수님이 부활권을 갖추었다는 단 하나의 신념, 그 신앙적인 신념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늘 위한 충절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십자가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천도를 밝힐 수 있는 사명을 중심삼고 나가야 합니다. 생명에 위협받는 길이 있다 하더라도 당당코 직행해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본질적인 사상입니다. 그와 같은 사상을 갖지 않으면 통일교회는 망하게 됩니다.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입장에서 효를 행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충을 행해야 합니다. 효를 하는 데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도 감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면에서 보나 사탄이 감복하지 않을 수 없어야 하며, 사탄이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써서 방비하고 대결해 가지고 싸우더라도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하게 해야 합니다. 몇 번씩 시험해 봤지만 이미 시험해 가지고 실패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사탄이 '그대만이 승리할 수 있고 그대만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간부들은 그런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선생님은 허재비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밤이나 낮이나 사탄세계 수억의 사람들을 대표해 가지고 그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절개와 지조를 가지고 충절을 다해 왔습니다.
충신의 마음을 가지고 나서는 데는 자나깨나 나라뿐이라는 거예요. 딴게 있을 수 없다구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정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편네가 문제가 아니고 자식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어미 아비가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형제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그들을 일시에 시궁창에 몰아넣을 수도 있고, 잡아서 제사도 드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들을 붙들고 휘적휘적거리고 그들을 붙들고 후퇴하고 그러는 사람은 뜻 앞에 있어서 그 선을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돼요.
개인적으로 그러해야 하고, 가정적으로 그러해야 합니다. 둘이 합해 가지고 일체가 된 입장에서 하늘 앞에 효도해야 합니다. 또한 둘이 합해 가지고 한 나라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역사상의 어떠한 충신의 가정을 능가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의 건국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북을 통일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역사상에 없었던 효의 길, 충의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기준에서 그 가정은 세계의 수많은 가정, 혹은 역사시대의 우리 선조의 가정, 마리아의 가정이나 사가랴의 가정, 성인 위인의 가정이 나라를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한 것보다 더 나은, 그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충절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들이 합해 가지고 종족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종족에서 나라를 위해서 제물을 드리고 나라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종족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종족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가정들이 합해 자지고 편성한 그 종족적인 기반을 나라를 위해 희생시켜야 되겠다. 내몰아야 되겠다'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목표이기 때문에 축복받은 가정의 부인들을 전부 다 뽑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천 이백 명을 동원한 거라 구요. 여러분, 이번 동원은 역사시대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 민족을 찾아가는 데 교량의 역할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통일교단이면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뜻과 개인적으로 일치 못 했고 가정적으로 일치 못 했기 때문에, 그런 모든 것을 탕감시킨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려니 산산조각으로 갈라 놓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전부 갈라놓는 겁니다. 자식들도 다 갈라놓는 거라구요. 산산조각으로 갈라놓는 거라구요.
갈라져 가지고 어디에 가서 하나되어야 하느냐? 일선에 가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자기 어머니가 가 있는 곳에 아버지도 따라가고 자식도 따라가서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 자체내에 있어서 책임 못한 것을 탕감함과 동시에, 이 민족이 지금까지 역사과정에서 저끄러뜨린 모든 것을 전부 다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팎의 탕감을 하기 위해서…. 이 탕감은 누가 해야 하느냐?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 해야 합니다. 타락은 누가 했느냐? 개인이 한 것이 아니라 가정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편도 일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협회에서 제시한 방향에 일치되지 못한 사람은 축복가정이라 하더라도 축복가정으로서 등장을 못 하는 것입니다. 통곡을 할 것입니다. 번민할 것입니다. 뜻 앞의 공적인 기간에 자기 책임을 못한 사람은 전부다 통곡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두고 보라구요. 복귀역사는 선생님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리원칙을 따라 가지고….
이 자리는 국가적인 비운과 세계적인 정세를 가로막아서 국가적 운명을 해방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하늘 앞에 세워야 할 비장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호흡을 같이하고 행동을 같이해야 할 것이 통일가의 사명이요 우리 개개인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불참하고 여기에 불찬성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가혹한 심판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심각한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천 이백 가정이 망하더라도 대한민국이 망해서는 안 된다구요. 남북을 통일시켜야 됩니다. 이렇게 절박한 시점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 중의 효를 해야 된다구요. 그 효는 가정을 끌고 나가야 되고, 종족을 끌고 나가야 되고, 민족을 끌고 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민족을 끌고 나가서 하늘을 위해 충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효와 충이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내정일치화가 되어서 하나님이 '네가 아니면 안 되고, 네 가정이 아니면 안 되며, 네 종족이 아니면 안 되고, 네 나라가 아니면 세계를 구할 수 없다'라고 할 때 하늘이 바라는 주체적 해방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앞에 놓고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라는 명분을 가지고 의의 있는 이 자녀의 날을 축하한다는 입장에서 볼 때, 심각한 날이 우리 눈앞에 다가온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자나깨나 듣고 보고 느끼는 것, 옷을 입든 벗든 어떻게 하든 전부를 통해 남북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이북에 있는 공산당 이상으로 강력한 훈련을 시켜서 일치단결하게 하여, 물이 마른 곳에서 고기를 잡듯이 그들을 잡아 치우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잡아 치울 것이냐?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상의 단결체로 결합시켜 힘의 비율을 강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사상과 이념을 남기기 위해서 내가 총공장을 만든 것입니다. 악한 녀석들은 상대의 힘이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나 침공하는 것입니다. 미국을 믿지 말라구요. 우리는 우리대로 자결해야 합니다. 스스로 결의해서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하늘을 중심삼고. 이제는 갈 길이 없습니다. 갈 길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 이런 때를 넘기 위해서 벌써 몇 년 전부터 특정한 기간을 정해 가지고 하늘 앞에 정성들이고 나온 것입니다. 그 정성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야말로 절정에 다가온 것입니다.
위기일발에 놓여 있는 세계정세 앞에 통일교회 무리는 어디에 설 것이냐? 행동을 개시해야 할 때가 왔다구요.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당당하게 하늘의 권위를 내세울 때가 왔습니다. 그 자리는 옛날 몰렸던 때의 서러움을 품고 자기 스스로 하늘 앞에서 승리의 천국을 고대하고 참고 나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해방의 기수가 되어 가지고 민족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통일교회의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북 공산당 김일성의 일파와 우리 통일교회 일파와 비교해 보게 될 때, 공산당을 위해 충절을 다하는 골수분자들보다 통일교회를 위하여 충절을 다하는 여러분이 낫지 않으면 망하는 거라구요. 자기의 살림 보따리나 싸 가지고 다니면 망하는 거라구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뒤통수를 치지 않으면 사탄이 칠 거라구요. 자기 자식이나 여편네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온갖 정성을 집약시켜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국가적 기준 앞에 있어서. 과거의 어떠한 애국자면 애국자 그 누구도 국가적 비운의 때에 있어서 우리의 심정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결의된 종족권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종족권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 가정들이 선발대로 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금년 정월 초하루부터 지금까지 선생님은 될 수 있으면 그들을 찾아가고... 그런 일을 해 나온 것입니다. 8월부터는 외국식구 수련문제 때문에 못 했지만... 기필코 뜻이 가야 할 그 길대로 역사는 수습될 것입니다. 여러분이야 가든 안 가든 나는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 남한, 이 대한민국을 보라구요. 이 부패한 대한민국의 실상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내적인 단결을 촉구해야 합니다. 전국민 앞에 새로운 사상적인 방향을 고취시켜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조직 강화를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문제가 아닙니다. 김일성이가 문제입니다. 김일성이가 내려오는 날에는 통일교회 패들이 먼저 모가지 달아날 것입니다. 못 사는 거라구요. 공산당이 통일교회를 남겨 놓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구보끼 회장이 세계순회를 할 때도 블란서에 가 가지고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인도에서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이 구보끼 회장을 납치하려고 한 거예요. 우리를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국제적인 공산당 조직을 통해서 우리가 가는 방향을 전부 가로막는 행동을 개시하고 있다구요. 그걸 보면, 우리의 존재가 그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요, 우리의 활동이 금후에 아시아나 세계에 있어서 그들에게 얼마나 큰 암적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을 대한민국은 모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알고 있다구요. 중국도 알고 있다구요. 대한민국은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강력한 단체이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가는 대한민국을 말아먹는다고 합니다. 공화당이면 공화당이 전부 다 먹혀 버릴까 봐 통일교회가 무서워서 못 키워 준다는 수작 좋은 말을 하고 있다구요. 좋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무슨 대통령을 꿈꾸는 곳이예요? 통일 교회에는 세계가 문제라구요. 남북이 문제라구요. 당이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말들을 듣게 되면 기가 막히다는 거라구요. 그래? 보라는 거예요. 너희가 안 들으면 내가 포위작전을 할 것입니다. 깨깨 망신을 당하고 국민 앞에 규탄받는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밥을 먹고 숨을 쉰다고 해서 남들과 똑 같이 산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폭탄을 가졌다면 누구보다도 무서운 폭탄을 가진 것입니다. 말은 안 해도…. 사무친 원한을 풀고야 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러지더라도 뜻의 길이라면 개의치 않고 가는 것입니다. 잠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일생을 그렇게 싸워 나왔습니다.
1971년도는 하늘의 위신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내가 이런 때가 올 것을 알고 여러분을 믿고 지시했지만, 여러분이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선두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간부들의 수치입니다. 저나라에 가서 책임추궁을 받을 수 있는 두려운 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런 때에 있어서 내가 오래지 않아 한국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생각해야 된다구요.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을 부여안고 금후에 갈 수 있는, 이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임질 수 있는 간부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을 때는 망하는 것입니다. 망한 뒤에는 후회도 못 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되는 날에는 영계에 가서 여러분이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것 같아요? 못 부른다구요. 선생님과는 상관이 없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이러이러한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유사시에도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없으면 금후에 복귀의 행각노정을 갈 사람이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 한국 간부가 모르는 사실을 외국 사람에게 지시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는 놀음 이라는 거라구요. 자기의 처신과 입장이 어떻게 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잠을 자요? 쉬어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런 말을 했지만, 사상계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를 능가할…. 이제는 우리 통일교회가 최고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 통일교회 패라는 것이 옛날과는 다르다구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개인적으로 은혜의 생활을 하고 기뻐하던 그 이상 여러분의 가정이라든가 단체를 중심삼고 더 기뻐해야 됩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은혜를 받고 통일교회에 취해서 다니던 그때보다도 더 선두에 서서 미칠 듯이 날뛰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을 희생시켜서 가정을 찾고자 하고, 가정을 희생시켜서 종족을 찾고자 하고, 종족을 희생시켜서 민족을 찾고자 하는 것이 뜻이기 때문에, 개인 때에 기뻐하는 것보다도 민족과 국가를 위하는 때에 더 기뻐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한 자세를 못 가진 사람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슬슬 다니면서 세월이나 보내는 그런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바쁘다구요. 여의도 본부 기지만 하더라도, 대학교를 짓기 위한 수택리의 십만 평의 기지만 하더라도, 청평의 많은 토지를 산 것만 하더라도 그것이 그냥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필사의 정성을 들여서 되어진 것입니다. 새벽별을 바라보면서 흑은 저녁별을 바라보면서 하늘 앞에 기도하며 한때를 중심삼고 적중시켜 나온 것이 바로 맞은 거라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은 동냥은 못 주나마 쪽박 깨뜨리는 놀음을 하고 있다구요.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고 말이예요.
여러분은 못 가더라도 선생님은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가는 흉내라도 내야 할 거 아니예요. 여러분이 때를 알아야 됩니다. 보라구요. 이제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일본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이런 절박한 때에 왔습니다. 옛날의 정세와는 다르다구요. 이렇게 시급한 때에 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60년에 개인적으로 은혜 받았던 그때가 좋았다고 하는 그런 시시한 생활태도는 집어치우라구요. 옛날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은혜 받았던 그때가 그리워요? 그런 시시한 인연은 다 집어치우라구요. 나는 모릅니다. 그때보다는 지금이 문제라구요. 뜻이 요구하는 지금이 문제라구요. 최고의 정성을 다 퍼부어야 할 이런 때가 온 것을 여러 분이 알고 새로이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알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내가 필요로 하는 길을 협조해 나왔습니다. 금년은 자그마치 이러이러한 기준까지 가야 되겠다고 하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가게 되어 있다구요. 금년은 이렇게 안 되면 안 되기에 될 수 있는 환경으로 몰아치는 거라구요. 소용돌이쳐서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없으면 더 크게 넘어가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여기에 기둥이 있기 때문에 기둥을 감싸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명을 해야 된다구요.
보라구요. 일생 동안 이런 일을 하면서 생애를 바친 사나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그러나 이날을 위해서 참아온 것입니다. 이때를 맞기 위해서 참아온 거라구요.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야 할 여러분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승리한 개인, 승리한 가정, 승리한 종족, 그런 기반을 통하여 제물을 요구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서라면 우리 통일교회는 망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망하더라도 그것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서 통일교회를 투입할 것입니다. 앞으로 이북에서 삼팔선을 넘어오게 되면 선두에 여러분을 내세워서 이북 놈들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게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되겠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성을 들여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삼팔선을 넘어올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다시 넘어올 것이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남한 땅을 위해서 내려가는 비참한 사나이의 모습이지만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라고 결의했습니다. 그때 그런 결의를 표명했기 때문에 그 표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시아와 세계에 우리 사상적인 기반을 확대시키기 위하여 지금까지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극복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공산당에게 몰리고 고문을 받는 억울한 자리에서 맹세했던 것을 여러분은 모르는 거라구요. 만나야 할 사람들을 다시 만나 가지고 항복을 받는 그날까지 통일교회는 가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부모가 정주 땅에 묻혔을 거라구요. 내가 내 손으로 묻지 못하고... 어머니 아버지께 효도를 못 한 사람이라구요. 어머니 아버지나 친척보다도 여러분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부모를 희생시키고. 친척을 회생시키고, 처자를 희생시켜 가지고 여러분을 더 사랑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때가 되면, 내가 비로소 무덤 앞에 가 가지고 천년 사연을 푸는 자리를 마련하게 되면 하늘의 특사를 내려 부모 앞에 효를 못한 것을 영적인 입장에서나마 풀어 주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는 사나이라구요.
내가 이 자리까지 나오는 데에는 수많은 가정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복귀하기 전에 여러분이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못 하게 되면 내가 해야 합니다. 그때를 바라보며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죽을 자리에 가서 죽는 것이 보람 있는 생애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건하기 위한 혁명군입니다. 혁명아들이라구요. 시시하게 밥통이나 밥바가지를 찾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시시하다는 거라구요. 월급 줄을 찾아 다녀요? 그런 것은 시시하다는 거라구요.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제 남은 것은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허리가 굽도록 하늘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무릎이 닳도록, 옷에 구멍이 뚫어지도록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 앞에 동정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이 남아지게 되면 망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벗어날 것입니다.
이런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미국에 있는 구보끼를 내가 불러온 것입니다. 그에게 이러이러한 사명을 하라고 특명을 내렸습니다. 그가 민족을 대표하고 뜻을 대표하여 선두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외국 사람이 그런 선두에 섰다는 것이 우리 한국의 간부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수치스러운 일인 것을 여러분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것을 알고, 이 자녀의 날을 맞으면서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다시 말하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역사시대의 어떠한 충신의 가문에도 지지 않는 정성과 지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라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내려요.
아버지, 금년은 자녀의 날을 제12회째 맞으며, 돌로는 열한 돌을 맞는 해입니다. 열두 돌을 맞는 1972년의 고빗길을 넘게 될 때,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의 한 많았던 역사를 제가 알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잃어버린 그 비참한 정경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을 풀기 위한 해원의 한날을 바라면서 갖은 수욕과 갖은 어려운 길을 거치 면서도 당신과 더불어 지금까지 죽지 않고 남아지게 된 것을 감사하옵고, 제가 해야 할 책임을 다 못 하고 이러한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옵니다.
아버님, 몇년 동안에 세계가 이렇게 급변될 것을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뜻과 섭리의 길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그 때가 우리 눈앞에 찾아와도 그때를 맞아들이지 못하게 될 때는 망하는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이 통일가를 수난 가운데에서도 길러 나오셨고, 핍박 가운데에서도 다짐짓게 하셨으며, 환란 가운데에서도 극복의 도리를 갖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이 선 자리를 아버지께서 굳건히 지키시옵소서.
60만 대군을 이끌고 나오던 제 1세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고, 제 2세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해서 새로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나오던 여호수아와 갈렙에 대해서 아버지께서는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통일가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희의 판도는 너무나 작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다가오는 정세는 너무나 촉박하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이제 저희가 교두보가 되어야 되겠고 토성이 되어야 되겠으며 성벽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를 위하여 뜻을 위하여 최후의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오늘은 1971년 10월 초하루입니다. 이날을 맞아 10수를 넘으면서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 몇 달 동안 이 본부를 떠나고자 하오니, 아버님, 지켜 주시옵소서. 지켜 주시옵소서. 당신이 보호해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이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그때가 우리의 눈앞에 왔기 때문에, 이때에 저희는 아버지께 충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벌거벗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몸을 아버지께 제물로 바치고 죽겠다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굶는 자리에서 그 일신을 바치고 죽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쫓겨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아버지를 붙들고 망하겠다는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통일가의 전통적 주류사상인 것을 확실히 알고 마음에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나라가 없는 무리였기 때문에 나라 앞에 배반받았고, 백성이 없는 무리였기 때문에 백성들 앞에 배반받았고, 역사적인 교단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인 교단들 앞에 배척받았습니다. 이제 그러한 모든 외적인 환경은 스러져 가고, 석양길을 맞이해서 그들이 수습하지 못한 이때를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가중된 사명과 책임이 얼마나 절박 한가를 느끼옵니다. 금후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맡으시옵소서.
많은 수가 문제가 아니라 중심의 팻말이 되어 단단히 붙들라고 외칠 수 있는 당신의 사연이 있느냐가 문제였사옵니다. 당신의 심정적 인연이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사옵니다. 이들의 마음에 새로운 불을 붙이시옵소서.
이제 남은 1971년도를 의의 있게 넘어가도록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1972년도를 맞아 1972년까지 3년노정을 결정한 이때에 있어서 가정 가정들이 해야 할 민족적 사명과 국가적 사명을 부끄럽지 않게 아버지 앞에 다해 넘길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손을 들어 당신 앞에 선서하고 맹세한 무리들의 이 결심이 약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저는 죽더라도 나라는 망해서는 안 되겠사옵고, 우리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나라는 망하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대한민국이 없어지더라도 세계는 남아져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자리를 지키시옵소서.
이 보잘것없는 무리들을 개인에서 가정으로, 종족으로 이끄시어서 당신이 소원하시는 터전 위에 승리를 다짐하게 하시어 온 천지 앞에 영광의 개가를 드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러한 것을 다 이를 때까지 저희들은 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행군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오니 아버님이여, 직접 지도하시고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기념하는,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과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소수의 무리를 앞에 놓고 이 역사적인 사명을 촉구하시는 당신은 불쌍하신 분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불쌍하게 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천추의 한을 머금고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 효의 도리를 다짐하는 통일의 무리요, 충의 도리를 다짐하는 통일교단의 무리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사옵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이끌어 주신 아버님, 금후에도 당신이 이끄시는 길 앞에 저희들이 추호라도 어긋남이 없게끔, 승리의 길에 접붙임을 받을 수 있게끔 저희들을 몰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저희 선조들이 땅을 통하여서 해원성사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세계 정세의 극난한 문제를 밟고 넘어서게끔 영계를 동원하여 방비하여 주시옵고, 협조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갈 길을 가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영육 합동 공세를 통하여 승리권의 새로운 문화세계를 아버지 앞에 창건해 드릴 수 있는 의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날들도 당신과 더불어 그리워하면서, 아버지의 보호권내에 빨리빨리 전진해 나아갈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통일의 노래 합창)
역사의 우리 선조들과 현재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만민과 미래에 나타날 후손들이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승리의 실체를 갖추어서 당신 앞에 영영 발등상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통일권의 새로운 천주주의의 역사적 인연이 저희들과 더불어 당신이 계획하고 바라는 소망의 세계에까지 힘차게 뻗어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영인들이 바라는 승리의 종착점에, 만민이 귀일된 자리에 서서 만세의 승리의 한 축을 결정지을 때까지 통일적인 기반을 형성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 이 거룩한 날을 맞을 수 있게 하여 주신 은사에 감사하면서, 전체의 뜻 앞에 부끄러운 자신이오니 새로이 다짐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권위와 능력이 늘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