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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인 우리의 위치

일시: 1971.10.24 (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아버지께서 찾고 계시는 자녀와 가정과 나라와 세계가 이땅 위에 어서 속히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그 터전 위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의 동산을 찾아 이루시옵소서. 자녀노정에 있는 저희들은 아직도 아버님을 대신하여 영원의 상징이 되고, 사랑의 실체가 되고, 영원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사랑받는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하였사옵니다. 높고 거룩하시고 선하신 아버님의 형상을 목전에 바라보며, 이 험하고 죄악된 세상을 주위에 두고 거룩함과 악함 사이에서 악은 제거하고 참을 선택해야 할 저희 자신들을 아버지께서 긍휼히 보아주시옵소서.

무한하신 당신의 자비의 마음이 마음속에 울려지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을 사모하는 저희의 시선 위에 당신의 긍휼의 마음이 어리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을 사모하는 거룩한 실체로서, 당신이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존재로서 성별시켜 주시옵소서. 깊고 깊은 마음의 본성의 자리에 당신이 군림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순결된 자신을 불러 일깨워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거룩한 모습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 시간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지난날의 복잡다단한 저희 생애의 전면을 다시 한 번 비판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생애노정을 당신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이 필요로 하는 실체가 되고 당신이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실적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적마다 부족한 자신들임을 자처하면서 당신 앞에 부복하였사오니, 긍휼의 아버지여, 부족한 저희 자신들을 더듬어 일깨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을 우러러볼 때 저희들이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준 것만도 감사를 드리옵니다. 교만한 것이 저희의 본질로서 나타나던 과거의 생활을 제압하고, 하늘을 우러러볼 때 겸손의 마음을 추구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줌도 아버지의 무한하신 수고의 공적인 것을 저희들은 이제사 깨달았사오니, 버려 두지 마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신음하던 이 생명의 여력을 가지고 아버지 존전에 찾아 왔사옵니다. 당신이 가시는 길이 어렵다 하더라도 저희들은 따라가기를 결심하고, 당신의 슬픔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저희들은 자진해서 그 슬픔을 체휼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자리에 나왔사옵니다. 당신의 최후의 싸움터에 있어서 죽음을 가려 주어야 할 장소까지도 저희들은 가기를 다짐하고 이 자리에 서 있사오니 고이고이 이끄시어서 당신이 가고 머무는 곳에 저희들도 같이 처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지, 이 아침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통일교회를 사랑하심과 동시에 수많은 기성교단을 찾으셔야 할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들을 당신이 품에 품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 나라 이 민족을 당신이 품어야 하는 것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남북이 갈라진 이 불쌍한 정상을 긍휼히 보시는 아버지여, 이 민족의 통일의 한날을 당신이 사랑하는 자들을 제물로 드리지 않고는 갖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제물의 자리에 나가려고 하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이 강토 위에 많아야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과연 나라를 위하여 생명의 다 바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있거든 이시대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고, 그들에게 무한한 힘과 능력을 허락하시어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로 세워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수많은 교단과 수많은 종파가 있사오나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 당신이 염려하시는 길 앞에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종파와 개인들은 심히도 희귀하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몰리고 있는 통일교단에서 그러한 무리가 남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의 소신이오니, 아버지여, 그럴 수 있는 각자로서 이 아침에 각성시켜 주시옵소서. 그럴 수 있는 아들이 있거든 아버지께서 영광의 승리의 모습을 갖추고 저희들을 찾아오시어서 새로이 다짐시키시고, 새로이 결의시킬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진실로 바라옵니다.

아버님, 저희들은 저희들만으로 남아지기를 원치 않는 무리이옵니다. 진정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 앞에 있어서 필요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생명을 아버지 앞에 바치기를 각오한 몸들이오니, 죽든지 살든지 뜻길을 위하여 가겠다고 다짐하는 당신의 아들딸로서 이 시간 받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오늘은 이 민족이 기억해야 할 유엔데이(UN day)로서 10월 24일인것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을 대신하여 수많은 민족이 이 나라에 와서 피 흘린 역사적 기원이 만들어진 것도, 한국의 한날 한곳을 중심삼고 인연된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이 민족은 필시 이 인류 앞에 쓰러져 갈 민족이 아닌 것을 저희들은 알게 되옵니다.

망할 처지에서 이 민족을 남기심도 당신의 특별하신 은사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있사옵고, 어려운 시련 과정을 거쳐오면서 그 누구라도 침략할 수 있는 정세의 노정 위에서 당신이 이 민족을 지켜 냈다는 사실을 생각할 적마다, 현시에 있어서 당신의 거룩한 은사를 이 민족과 더불어 다시 남겨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이오니, 금후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을, 아버지, 가려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세계의 모든 중심은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만이 이 세계를 관할하고, 당신만이 이 정세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악한 무리가 득세하는 때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눈물짓는 무리들이 득세할 수 있는 때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기억 가운데 있는 무리들이 영광의 날을 맞는 것이 당신이 바라시던 소원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런 무리가 많지 않은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아버지, 그런 무리들을 대신하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보잘것없는 이들을 다시 한 번 경책하시옵소서.

높고 크고 넓으신 당신의 사랑 앞에 천하고 미련하고 부족한, 자식의 이름을 갖추지 못한 것들이 부복하여서 당신의 거룩하신 대업을 계승시켜 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당신의 수고로운 길 앞에 있어서 눈물을 가로막고, 수난길을 대신 가로막기 위하여 제물의 과정을 거쳐 부활의 한날을 맞는 무리가 되지 않고는 당신이 바라시는 기쁨의 그날 앞에 필요한 무리가 못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언제나 불쌍하신 모습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당신은 언제나 고독한 분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당신은 그 어떤 이 땅의 인간을 대하여 사정을 털어 놓을 수 없는 비참한 분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남기신 그 길을, 그분이 가시는 그 노정을 따라 가려는 저희들, 고독한 생애를 각오하고 그 길을 선택해야 되겠고,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눈물의 길을 가려 놓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전체를 뜻과 더불어 살고 죽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무리가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이오니,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까지 저희들이 남아진 것은 그 누구의 수고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체가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금후도 그래야 될 것을 바라고 있사옵니다.

금후에 오는 섭리적인 사명의 분야는 점점 넓어지고 점점 커지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과거보다도 지금보다도 금후에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가일층 높고 큰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될 이런 시점에 있는 저희 자신들은 불비한 모습을 가지고 과거를 추구하면서 현실을 비판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큰 소망을 품고 현실 앞에 닥치는 모든 장애를 밀어 나가고,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 바쁠 수 있는 자신을 갖지 않고는 하늘 앞에 기억되는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오니, 오늘 강하고 담대하게 자기 자신을 갖추어 가지고 원수의 세계를 응시하면서 최후의 격전장을 가려 나갈 수 있는 제반 준비를 구비한 하늘의 용사들로서, 당신에게 신임받는 병사들로서 나타나기에 부족함이 없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이 나라 이 민족을 맡기고 안심할 수 있고, 이 땅 위에 당신의 아들을 세우시어서 이 세계의 수난의 노정을 맡기고 안심할 수 있기를 얼마나 얼마나 고대하셨던 아버지셨나를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에, 언제나 부족하고 언제나 불효막심한 저희 조상들이었음을 저희들은 깨닫고 있사옵니다. 저희들도 후대의 후손들로부터 하늘의 길 앞에 충성하지 못하였다는 참소를 받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사오니, 남은 일생을 아버지 뜻 앞에 몽땅 바치어 최후의 한날을 빛내고, 이 땅을 떠나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필생의 요구가 될 수 있게끔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고, 생의 노정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살펴 주시옵소서. 인간은 언제나 악한 자리에서 출발하였고 악한 자리에서 태어난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선과는 그렇게도 멀었고, 선을 중심삼은 당신 앞에 한(恨)의 구렁텅이를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사망의 경계선을 돌파해야 할 것이 오늘날 땅 위에 태어난 인간들이 가야 할 행로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저희 자신들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길이기 때문에 이것을 메우기 위해 당신께서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오셨습니다. 당신 앞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종들을, 잊을 수 없는 양자의 무리들을, 잊을 수 없는 아들들을, 잊을 수 없는 아들의 뒤를 따르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녀의 무리들을 동원하시어서 이것을 메우기 위해 희생시켜 왔다는 사실을 아옵니다.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살 수 있는 하나의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얼마나 고대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수고 앞에, 그 희생 앞에 나타난 저희들의 모습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될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지만 당신이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의 모습도 갖추지 못한 악한 이 땅 위에, 혹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수많은 사람들 위에 당신이 바랄 수 있는 소망의 존재가 하나도 없다 할진대는 이것 이상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한 자리밖에 없게 될 때에는,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뜻을 따라 가고자 하는 자들을 이 구렁텅이에 다시 제물로서 희생시켜야 할 아버지의 뜻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자리에 자진해서 희생될 수 있는 무리가 어떤 종파 가운데 얼마나 많은 무리가 있는가를 생각할 적마다, 아버님은 불쌍한 분이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아침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불쌍한 자녀들을 동정하시옵소서. 이 구렁텅이를 다 메운 자리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된다면 얼마나 얼마나 감사할 일이며, 얼마나 얼마나 자랑할 일이겠습니까마는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이 무리들을 몽땅 아버지 존전에 바치어 이 구렁텅이를 메울 수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혹은 생명을 다할 수 있는 무리라도 되지 않고는 이 사망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를 가려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이 자리가 비장한 자리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천신만고의 수난길이 가로놓여 있다 하더라도 생애의 역경을 다하여서 필시 이것을 가려내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이 죄인들에게 있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그 누가 이것을 책임지고 염려하고, 그 누가 이것을 책임지고 희생할 수 있는, 당신 앞에 필요한 아들딸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세계에도 없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자리에도 없다면 아버님은 불쌍한 분이신 것을 저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각자 소신을 다짐하며 이 책임을 나 스스로 맡겠다고 하늘 앞에 맹세할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아버지 앞에 그러한 무리가 되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10월도 하반기를 맞이하였사옵고, 이해도 마지막 계절을 맞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바라던 모든 소원의 날들도 다 지나가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던 때도 지나가고 있사옵니다. 더더욱 세계의 복잡다단한 정세 가운데서 당신이 머무실 수 있는 승리의 환경을 그리워할 적마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라도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아들딸이 있거든 긍휼한 아버지의 마음에 동정의 마음을 더하시어서 끝까지 지키고 키우시사 당신이 소원하시는 자리에 필요한 아들딸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더욱이 일선에서 있는 어린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민족의 여성을 대신하여 당신 앞에 제물 드리는 하나의 실체들로서 부끄럽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식과 남편과 가정을 뒤에 두고 하늘을 향하여 나선 그 걸음을 아버지께서 자랑스럽다 하시옵소서. 그러지 못하는 무리들보다 앞에 선 것만은 틀림없사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정성들이는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정성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있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사망의 물결과 민족의 비운을 가로막고, 생명의 가치를 드높이 들고 하늘의 영광의 날을 찬양할 수 있는 그대까지 망하지 않고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옵니다. 지키시옵고 키우시옵고 남기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불쌍한 통일의 자녀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땅 위에 그 누구도 이들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사옵니다. 당신만이 지키셔야 되고 당신만이 이끄셔야 될 외로운 무리들이오니, 제가 그런 자리에 섰을 때에 당신이 권고하여 주시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권고하시옵소서. 흑암에 부대끼는 낙망의 출정길에 있어서도 아버지께서 내일의 소망의 빛을 약속하고 다짐하셨듯이 그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지켜 주시옵소서.

전체 영계의 시선을 모아서 땅 위에 최후의 승리를 판가리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거든 하나의 채찍이라도 되어야 되겠고, 하나의 검이라도 되어야 되겠고, 하나의 무기라도 되어서 적진을 폭파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그런 자리에서 필요 적절한, 당신이 소원하시는 실체들로 키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나기를 고대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뜻 앞에 보탬이 되지 않고, 만남의 자리에서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고, 당신의 거룩함이 찬양되지 않는 그 자리는 당신도 원치 않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날을 준비하시어서, 당신의 승리와 당신의 기쁨이 깃들 수 있는 자리에서 상봉의 시간을 갖추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달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해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고, 금후에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도 맡아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그 누구도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 더더욱 느끼고 있사오니, 당신이 좌정하시어서 일체를 주관 관리 통솔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립니다.

오늘 하루가 아버지 앞에 복귀되어 영광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께서 찾아오신 거룩한 이 시간이 되기를 바라오며,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3천여 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어린이로부터 나이 많은 사람에 이르기까지의 인간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가르면 소년시대, 청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로 갈라질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가을절기와 같은 시대

어떠한 존재물이든 반드시 태어나는 때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자라는 때가 있습니다. 자라는 때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그것이 성숙하는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결실하는 때가 있습니다. 결실하게 된 다음에는 거두는 때가 있고, 거둔 다음에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보관되는 씨, 즉 종자의 시대가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게 됩니다. 여기에 있는 꽃을 보게 되면 꽃도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때, 자라는 때, 성숙하는 때, 그 다음에는 거두어 들이는 때,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끝에는 반드시 새로운 생명이 발생할 수 있는 시련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절에 비유해 이것을 생각해 보면 봄을 소생의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름은 장성의 때, 성장의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때, 겨울은 시련의 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출발의 때, 낮은 활동의 때, 그 다음 저녁은 모든 것이 결과를 다짐지을 수 있는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녁 때는 가을절기에 맞먹는 때입니다. 밤은 겨울절기에 맞먹는 때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은 이상적인 봄 동산을 맞았을 것입니다. 그 이상적인 봄 동산에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로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인류들은 이 땅 위에 새로운 문화세계를 창조했을 것입니다. 문화세계를 창조한 그 가운데서 우리 인류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만물이 춘하추동의 계절을 따라서 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역사도 역시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 겨울절기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영속되는 세계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류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 세상에는 인간이 기뻐할 수 있는 소생의 때, 영광의 한날을 맞이할 수 있는 기쁨의 출발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고 천지가 화동할 수 있는 기쁨의 봄 동산을 맞이하지 못하고 슬픔의 봄을 맞이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슬픔의 봄을 맞이했고, 슬픔의 출생을 맞이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슬픔의 역사적인 성장의 때를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입니다. 이렇게 슬픔의 역사과정에서 비참한 운명을 지니고 나가는 인류는 발전의 노정을 다짐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때에 와서는 슬픔의 역사를 중심삼은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의 시대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역사에 있어서 인간 전체를 대표한 수확기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적으로 권위를 떨치던 나라도 이때에 와서는 그 권위를 자랑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단체도 지금에 와서는 그 권위를 남길 수 없는 자리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지금 이때는 절망의 때, 끝의 때라고 누구나 주장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많이 듣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태어나는 아기가 있다 할 때, 그 아기는 이런 환경에 있어서 내일의 희망을 중심삼고 기쁨의 자리에서 태어났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 그 자체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는, 고통스런 운명 가운데서 가려 가야 할 입장에 놓여져 있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때는 인간이 타락하여 이루어진 역사가 가을절기를 맞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가을절기를 맞은 역사에 있어서 남아질 수 있는 결실, 하나님이 필요로 하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참된 결실, 즉 새로운 봄을 맞아서 뿌려질 수 있는 종자와 같은 참된 인간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 가운데 어떤 환경에 있어서, 이만한 권위와 이만한 모습을 가지면 부족함이 없다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과연 역사적인 수확기에 당도한 입장에서 다시 새로운 봄절기가 찾아오게 될 때 자신이 틀림없이 그 시대에 있어서 새로이 심어질 수 있는 하나의 종자와 같은 인격이 되어 있느냐, 남아질 수 있는 불변의 생명체를 지니고 있느냐, 참의 인연을 그냥 재생시킬 수 있는 자체가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반문해 보게 될 때, 그 누구도 여기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자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자인할 뿐만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자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요, 세계적으로도 그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단체는 종교뿐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 인간들이 바라 나온 소원은 무엇이었던고? 인간이 수확기에 당도하여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생명의 핵을 갖추어 가지고, 그야말로 선(善) 자체에 속할 수 있는 영원한 하나의 결실체로서 남아지고자 하는 것이 인류의 소원임에 틀림없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실체가 어디에 현현될 것이냐, 어떠한 곳에서 그러한 결실이 거두어질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결실이 거두어질 장소는 오늘날 사망의 물결이 요동하는 와중의 사회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단체면 단체에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회나 국가, 혹은 세계에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 안에 있는 어떤 특정한 단체에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이 단체가 교육기관일 것이냐, 어떤 정당일 것이냐, 어떤 단체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단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노라고 자랑하는 입장에서, 세계 전체가 내가 바라는 기준을 따라가야 된다고 주장하는 곳은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못 됩니다. 그건 왜? 인류 역사가 악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이 틀림없다 할진대는 그 악의 환경을 그냥 이어받은 사회적인 현상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자부하는 자리에서 주장하는 그런 단체에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역사는 자기를 내세우는 인간 시조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 즉 자기가 출세를 하기 위해서 제삼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타락의 기원인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자기를 내세워 가지고 환경을 제압하려는 단체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단체에서 그것을 기대할 것이냐? 이것은 두말할 것 없이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낮추고, 자기 자신이 전체 앞에 중심으로 세워지기를 바라기보다도 전체를 대신해서 자기들이 희생하고자 하는 단체가 아니고는 수확의 결실이 있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오늘날 그것을 기대할 수 있는 단체는 어떤 단체일 것이냐?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종교단체일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단체 가운데 어떠한 종교단체일 것이냐? 타락된 사회의 풍조를 따라가면서 보조를 맞추려 하는 종교단체는 아닐 것입니다. 근원과 배치되고 상충되는 인류를 자기의 종주로 삼아서 필생을 투입해서라도 선의 방향으로 가려 놓기를 소망하는 특정한 종단이 있지 않고는 투쟁해도 그것을 살릴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종교는 어떤 종교일 것이냐? 역사상에 비참한 운명의 인연을 지니고도 망하지 않고 남아진 종교의 인연을 따라서 이 종말시대에 기대하는 하나의 결실의 모든 형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닐 것이냐? 이걸 생각하게 될 때, 그런 종교는 종교 가운데서 순교한 선열의 피의 역사를 이어 가지고 지금까지 발전해 온 기독교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독교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수많은 종파 가운데서 어떤 종파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 종파는 아무리 시련 도상에 부대껴 오고 사망이 엇갈리는 설한풍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거기에 생명을 투입해서 끝까지 남아질 수 있는 정기를 가지고 사회악과 맞부딪치더라도 깨지지 않는 종단이 될 것이다 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종말시대라고 말하고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종교가 있다면 그 종교가 세계 전체가 환영하는 종교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가 부정하는 종교일 것이냐 할 때, 환영하는 종교에서는 그것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필시 환영이 아닌 반대와 핍박의 화살이 날아드는 곳이 도리어 이 결실을 찾을 수 있는 가능한 종교로 꼽히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결실의 씨앗으로 나타난 통일교회

이렇게 보게 될 때에, 그 종교는 어떠한 종교일 것이냐? 끝날에 만민이, 혹은 역사가 필요로 할 수 있는 하나의 결실을 해 가지고 하나의 생명체로 남아질 수 있는 그 터전이라는 것은 만민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소망의 곳이 아니라 전부가 얼굴을 돌리는 자리가 아닐 것이냐, 그런 자리에 하늘이 혹은 인류가 소망할 수 있는 하나의 씨앗이 남아질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러한 종단은 어떤 종단일 것이냐? 그런 종단이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어쨌든 그런 종자를 만들려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계절을 채워 가지고 봄을 맞이하려면 겨울이 가로막는 것입니다. 겨울은 생명의 여력을 전체적으로 침범해 가지고 이것을 제거시키기 위한 힘으로써 부딪쳐 오는 계절입니다. 그런 시련과정을 늠름히 싸워 돌파할 수 있는 주체력을 가진 자체들로서 구성된 것이 아니고는 안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에 있어서의 `통일이다. 통일교회다' 하는 것을 두고 보면, 통일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전체를 대표해서 중심 자리에 서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모든 진액을 대표한 입장에 서서 봄절기의 내용을 지녀야 되고, 여름절기의 내용을 지녀야 되고, 가을 절기의 내용을 지녀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소생기, 장성기, 성숙기의 내용을 다 지닌 자리에서 정상적인 결실을 갖출 수 있는 한씨앗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봄날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사탄을 중심삼고 봄날을 맞았습니다. 악의 터전 위에서 봄날을 맞았고, 여름날을 맞았고, 가을날을 맞았습니다. 그것이 나면서부터 탄식의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할진대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남아질 수 있는 씨앗으로서의 인연을 갖추고 나타난 종자가 있다면 그 종자는 나면서부터 기쁨을 맞이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회의 기쁨도 다 저버리고 출발하게 될 때 그런 기쁨을 대신 해가지고 설 수 있는 것이 어디에 있겠느냐? 기쁨의 마음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서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체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출발은 낙망의 출발이 아니라 소생과 기쁨의 내용을 가진 출발입니다. 거기서 어떻게 출생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장성기 성숙기의 과정을 거쳐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봄날에는 새로운 싹이 트지만 거기에는 아직 겨울날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환경적으로 쌀쌀한 날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환경 가운데서 생명을 지니고 소생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여력 앞에 있어서는 환경적으로는 협조적인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땅 밑에서는 온화한 생명의 인연이 발발할 수 있는 뜨거움이, 온기가 생명의 여력을 품고 있어야 됩니다. 제아무리 환경이 모질고 차갑다 하더라도 그 환경을 제거할 수 있는 온기를 지니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명의 힘이 거기에서 소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소생의 힘이라는 것은 그 어떤 환경의 조건보다 약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제압하고 그 모든 어려운 환경에서 생명의 요소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통일교회면 통일교회가 그런 책임과 사명을 추구하고 나아가는 종단이라 한다면 지금까지 역사상에 없었던 한 새로운 소생기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자라야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통일교회는 어떤 종파와도 다른 내용을 가지고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 인류의 비운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을 갖고 나올 것이 아니라 출발 당시부터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소생의 기쁨을 찬양하는 데 있어서도 역사시대의 그 어떠한 권위와 어떠한 가치의 내용도 능가하는 자리에서 늠름하게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만민이 환영하는 자리에서는 그런 출발의 자리를 결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생사가 결정되는 경각의 자리에서 출발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슬픔의 경지를 향해서 넘어가는 것보다도 소망의 경지를 향해서 그 경계선을 넘어서 가지고 새로운 출발을 보는 종단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통일교회는 어땠느냐?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주위 환경이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부모가, 혹은 사랑하는 처자가, 혹은 사랑하는 그 어떠한 인연이 나를 얽매어 가지고 포위하고 구속하는 입장에 서더라도 그것을 일시에 끊고 나설 수 있는 태도를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니냐.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이 현실에는 없는 세계사적인 사정에 접할 수 있는 내연을 지니고 출발했던 것이 틀림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완숙된 결실을 맺지 못한 기독교문화권

기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사망의 물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하더라도 둘러싸고 있는 사망의 물결 앞에 밀려간 기독교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타파하고 제압하고, 또 이것이 깨지지 않으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격파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 기독교가 아니었더냐. 그 터전을 이어받은 전통적 인연을 따라서 기독교 문화세계는 창건되어 내려온 것이 아니냐. 그러는 가운데 수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고 피 흘리며 순교당하는 시련을 많이 겪어 나와 일반인이 보기에는 내려가는 걸음을 걷는 듯하였지만, 그것이 내려가는 걸음이 아니라 내려가는 힘을 통하여 올라갈 수 있는 반대적인 힘이 새로운 생명의 세력을 내포해 가지고 사망의 문화세계를 생명의 문화세계로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기독교는 그러한 과정의 시대시대를 거쳐왔던 것입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소생기가 있으면 장성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카톨릭교회를 중심삼은 중세시대가 아니었던가. 자라기는 멋지게 자랐습니다. 세계를 품고 남을 수 있는 권한의 자리까지 무성히 자랐습니다. 거기에 꽃이 피고 결실을 맺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꽃이 피게 될 때 하늘을 중심삼고 피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소망을 중심삼고 남길 수 있는 씨앗을 이어받을 수 있는 영광의 꽃이 생명을 중심삼고 피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사망선을 향하는 인간을 중심삼고 피기 시작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인류역사에 있어서 암흑기라 불리우는 중세 봉건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꽃이 피고 향기가 풍기고 성숙한 미래의 터전을 가름지을 수 있는 소망의 환경이 못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새로운 혁명이 불가피한 세계적인 시대를 접해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 수많은 희생의 노정을 가리면서, 수많은 수난길을 가리면서 명맥을 이어받아 현시점까지 와 가지고 기독교문화권을 중심삼은 민주세계권이 창설된 것입니다. 이것이 온대권에 속하는 현대 문명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문명권은 봄절기 문명권으로서 상승할 수 있는 문명권에 서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완전한 성숙을 기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을절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크긴 컸지만, 꽃은 핀다고 했지만 이것이 완숙된 결실을 맺지 못한 채 가을이 찾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찬바람이 불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명의 발전노정을 생각해 볼 때, 고대 문명은 열대권 문명, 지금의 문명은 온대권 문명,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은 열대 문명에 속하고 지금의 문명은 온대권인데도 불구하고 이 온대권 문명이 봄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가을로 와 가지고…. 그러니까 여기에는 오늘날 공산주의를 중심삼은 한대권 문명이 침범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남기고자 하느냐 하면, 문명권에 있어서 씨앗을 남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대권인 공산권 문명이 휘몰아쳐 가지고 세계 전역이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이 시대권내에 있어서 하나의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새로운 문명의 세계를 지닌 그런 씨앗이 있으냐 없느냐, 이것을 촉구하는 차제에 놓여진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 것이냐? 오늘날의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닙니다. 가을절기에 찬바람이 맞부딪쳐서 접하고 있는 경계선이 드러나고 있는 것과 같은 때입니다. 이것이 부딪쳤다 점점점점 후퇴하면서 둘로 셋으로 분파해 거꾸로 갈라져 가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까지 나왔던 것이 세계까지 나왔다가 부딪쳐 가지고 후퇴할 때에 하나될 수 있는 상대적 관계가 둘이 되고 넷이 되고, 점점 세계에서 국가에서 종족에서 가정에서 개인화될 수 있는 권내로 후퇴할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서 불어났으니 그렇게 떨어져 나가 자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전체주의를 주장하는 공산주의 세계에서도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하는 시대상을 모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상에 올라가 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모습에서부터 불어나기 시작했으니 깨지는 데는 둘로 점점 부서져 나가 떨어져 가지고 개인 위주한 사상적인 결함 속에서 세계는 멸망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 세계를 보라구요. 오늘날 세계는 히피족 운운하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세계도 없는 것이요, 국가도 없는 것이요, 사회도 없는 것이요, 가족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도 없는 것이라구요. 자기 자신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냐?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냐? 뭐하는 것이 사람이냐 하는 문제, 삶의 여력까지도 기대하지 않는, 그것까지도 포기한 상태에서 정지냐 발전이냐 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는 인간상이 우리 목전에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겨울절기를 맞이할 현시점에서 통일교회가 해야 할 사명

이러한 입장에서 가을날이 찾아와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수많은 주의 사상, 수많은 권위를 자랑하던 그 모습들이 요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오기 때문에 무성함을 자랑하던 잎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외 없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을 것입니다. 뼈다귀만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보게 되면 사회도 그렇지만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도 앙상한 뼈다귀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찬양하는 노래가 어디 있으며, 생명을 구가하는 시가 어디에 개재해 있겠느냐? 그 위력을 자랑할 수 있는 때가 찾아오지만 그런 때에 자기 위력을 자랑하겠다고 나섰다가는 희생하기 일쑤입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시대의 환경이 그러므로 기성 종단도 마찬가지요, 기성 종교도 마찬가지요, 기성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종단도 그런 운명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타나려고 하면 부딪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생각하게 될 때, 통일교회도 역시 그러한 역사적인 운세권 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여기에 머리를 높이 들고 나타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타나지 못하게 핍박을 준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면 고맙다는 거예요. 나타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죽는 겁니다. 하나님이 섭리하셨던 모든 내력과 모든 인연을 통한 진액이 있으면 그 진액을 전부 다 일시에 집결시켜야 됩니다.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에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역사적인 진액을 집합시켜야 됩니다. 사망세계에서보다도 생명의 세계에서 봄절기, 여름절기, 가을절기의 생명력을 집결시켜야 됩니다. 딴딴히 결속해야 됩니다. 딴딴히 결속하려니, 내부로 딴딴히 결속시키기 위해서는 강하게 밀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겨울날입니다.

겨울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겨울은 생명의 씨앗이 완전히 결속할 수 있는, 주체 대상이 하나될 수 있는 기원을 촉구하는 자리입니다.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꽁꽁 얼어붙는 최후의 결정선에서, 너와 나의 인연이 밀착된 자리에서 생명권의 인연이 개재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의 씨앗이 하나의 봄날이 맞이해서 심어지게 될 때 새로운 희망의 계절은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러분, 통일교회에도 바람이 불어와야 됩니다. 초가을 바람이 불어온 곳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바람을 사망의 바람으로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 전부 불고 쓰는 바람이 불어와야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경계선이 가까와 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통일의 시대를 바라는 시점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북한을 넘어야 할 삼팔선이 눈앞에 보여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공포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교차로를 분별해야 할 지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단련된 그 자체로서 그 환경의 어떠한 여력 앞에 침식당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 환경의 여력을 제압할 수 있는 무엇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자체의 국가면 국가내에서도 그래야 하지만 적진 앞에서도 제압할 수 있는 여력을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한민국이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이 되어 있느냐? 못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준비 미완성입니다. 찬바람이 불어오지 말기를 바라지만 찬바람은 불어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떡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정상을 맞이한 현재 세계 정세나 국내의 정세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그런 자리에 서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 나라의 어떤 단체면 단체, 개인이면 개인이 그런 자주력을 가지고 사망권을 제압할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이 되어 있느냐? 되어 있다면, 그러한 씨앗을 가지고 이 나라에서 몰리고 쫓기는 주인이 있다면 그것을 딴 나라에 가져다 심어야 될 것이 아니냐. 만일 여기에다 심어지지 않는다면 그 주인은 필시 딴 나라에라도 심으려고 할 것이 아니냐. 이 나라 영토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어질 수 있는 옥토가 되지 못하게 될 때는 세계 전체를 돌아다니는 거라구요. 그러한 씨앗을 심을 수 있는 옥토를 찾아 나설 것입니다. 만일 그런 것이 있으면 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씨앗을 망하게 두어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과연 여러분들이 하나의 생명의 내연을 갖춘 틀림없는 씨앗이 되어 있느냐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기독교를 중심삼고는 통일문화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요, 공산주의를 중심삼고는 승공문화세계를 바라고 나서는 노선을 취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쪽에서는 전체를 수습하고 통일해야 할 통일의 씨앗이 되어야 하고, 저쪽에서는 사망의 물결이 휘몰아치는 권한을 전부 다 제거할 수 있는 실체로서 당당히 서는 기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승공이라는 표제를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 아니냐. 이것이 나라의 골수가 되어야 되는 것이요, 세계에 적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안팎으로 적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을 중심삼고 볼 때 통일문화세계를 꿈꾸고 나가는 우리 이념권내에서는 기독교에 적중 안 하더라도 한 시대가 지나면 적중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런 걸 볼 때, 오늘날 국가와 민족을 중심삼고 정상선에서 좌우를 결할 수 있는 시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 필연적인 섭리의 내용이 결집되어 있는 사실을 이중으로 증거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생명의 씨앗을 드러내기 위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온 통일교회

나라를 맞은 다음에는 이 손으로 껍데기를 벗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이라구요. 이것을 지탱시킬 수 있는, 지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침범받지 않을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겉에다 대준 건 양보해 주더라도 자꾸 벗기는 것입니다. 벗겨져야만 맨 나중에, 다 벗겨지고 나서 벗길 수 없는 그때에야 생명의 씨앗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남아진 그 씨앗이 심은 대로 나게 될 때 거기서부터 통일적인 문화세계, 하나님이 원하고 인류가 원하는 세계가 나올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민주세계에도 주고 공산세계에도 주고, 다 주고도 남을 수 있어야 됩니다. 또 다 부딪치더라도 깨지지 않고 그것을 제어해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 자신들이 그러한 자주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느냐, 자부하는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신중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씨앗을 가지고 치게 된다면 민주세계가 깨질 것이냐, 공산세계가 깨질 것이냐, 씨앗이 깨질 것이냐? 민주세계가 깨지면 깨지지, 공산세계가 깨지면 깨지지, 이 씨앗은 깨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자체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남들은 가을절기라고 하는데 통일교회 자체는 봄절기라고 하면서 출발합니다. 이렇게 통일교회가 환경적으로 뻗어갈 수 있는 시점을 맞이한 그 때가 겨울절기와 더불어 그 과정이 뭐랄까? 입춘 때입니다. 그 때는 겨울 중에 최고의 겨울이요, 봄중에 최고의 봄인 때입니다. 분수령이 그렇다구요.

그 때라는 것은 한 날이 있음과 동시에 한 시간이 있고, 한 시간의 60분의 1인 1분이 있고 1분의 60분의 1인 1초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씨앗은 1분에 60분의 1인 1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자체가 되지 않고는 봄의 출발을 볼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봄은 있을 거 아니예요?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 오고, 아무리 혹독한 바람이 불어와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지나고 오는 것입니다. 암흑 천지요, 암담한 환경 가운데도 자기 자체를 중심해 가지고, 필시 봄을 맞이하겠다는 일념 아래 딴 면의 소망의 빛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소망을 다짐하면서 가고, 가라 하고 보낸 날들을 지내온 역사가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딪쳐 가지고는 나와 더불어 엉크러져 가지고 자꾸 지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개인이 지나가고, 가정이 지나가고, 종족이 지나가고, 민족이 지나가고, 국가가 지나가고, 세계가 지나가면 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나오는 데는 그 놀음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가 한꺼번에 다 반대하더라도 지나가야 합니다. 개인이 반대하고, 종족이 반대하고, 민족도 반대하고, 국가도 반대하고 전부 다 따로따로 치면 안 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렇게 나올 때는 한꺼번에 퍼부어라, 이 추울 때 새봄과 동시에 한꺼번에 퍼부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퍼붓는 것이 원수더냐 복이더냐 할 때에, 원수가 오히려 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3정권 시대에 혹독한 북풍한설의 서리를 맞아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서리를 맞고 쓰러졌느냐? 잎은 스러지고 가지 끝은 얼었을는지 모르지만 봄날을 맞아 새로운 싹이 날 수 있는 뿌리와 튼튼한 줄기를 갖고 있어서 내일의 희망찬 걸음을 걸었다 할진대,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사실 그렇게 나왔어요. 여기 온 아주머니들이나 오래된 식구들은 사실 그렇게 나왔어요. 전부 다 일체가 되어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동쪽 가지가 꺽어져서 진이 나온다면 그 진은 그 자체를 내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진인 동시에 소모의 진인 것입니다. 안팎으로, 한 면에서는 방어하기 위한 작용을 하고, 다른 한 면에서는 소모하는 작용을 하니 슬픈 날들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기쁜 날을 보지 못하는 나왔습니다.

동쪽 가지에 피해를 입는가 하면 서쪽 가지에 피해를 입고, 맨밑창 가지에 피해를 입는가 하면 종대 가까운 가지까지 피해를 입는 날들을 가졌기 때문에 그 줄기와 뿌리는 기쁜 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것이 점점 지나감에 따라 앙상한 가지가 새로운 소망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터전이 가까와 옴으로 말미암아 녹기 시작했고, 그 가지에서 잎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통일교회는 발전의 노정의 걸어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통일교회의 소생기는 출발한 것입니다.

소생기는 그렇게 출발했는데 장성기를 맞아 활짝 핀 계절에, 이런 울타리권내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늠름히 살아갈 수 있는 무성한 여름절기는 어디 갔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이 그런 절기를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맞지 못했다면 내일에 그 여름절기를 맞기 위한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봄을 맞아 싹은 나왔지만 여기에서 여름을 맞지 못하고 가을을 맞지 못하고, 성숙과 결실의 계절을 맞지 못하면 비참하게 떨어지는 하나의 잎이 되고 새싹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는 어디겠느냐? 통일교회의 원리로 말하면 소생기 장성기가 있는데 소생기는 맞았지만 장성기는 어디 갔느냐 할 때, `여기에 있다. 동을 봐라. 동쪽 가지에는 이렇게 무성한 잎이 자랐노라. 남쪽 가지에도 이렇게 무성한 잎이 자랐노라. 내가 키운 환경의 터전을 누가 침범할소냐. 여기는 필시 꽃이 필 것이고 결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냐' 이런 자신만만한 자세를 갖춰 가지고, 찾아오는 수확의 계절을 그 무성한 기간내에서 자랑과 소망으로 삼고 가는 통일신도가 되어 있느냐, 혹은 그렇게 남아진 통일신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현재 어떠한 세계에 처해 있느냐, 어떤 시대적 위치에 존속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제 알고 보니 잎은 났지만 죽어지는 가지라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것을 놔뒀다가는 그것이 종대가 될 때는 전체가 몽땅 폭삭하고 녹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녹아 버리고 말게 되면 지금까지 선조로부터 세워진 모든 선의 실적은 완전히 매몰될 것이 아니냐. 이럴 때는 종대를 잘라 버리고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합니다. 똑 잘라 가지고 거기서…. 자르면 뻗어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어지기 때문에 줄어지는 운세권내에 있으므로 그것은 말라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꼭대기에서 조금씩 조금씩 자르지 말고 몽땅 잘라라! 밑창을 무자비하게 몽땅 잘라라! 잘라 가지고 접붙여라!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봄절기에 처해 있다 할진대 소망으로 기대하는 여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자신 있는 자리에 섰느냐? 여름절기에 처한 자리에 있다 할진대 가을절기를 맞을 수 있는 자신 있는 자리에 서 있느냐? 이래서 여러분들의 일대(一代)는 가을절기와 마찬가지의 노년시대를 거쳐가고, 후손을 통하여 봄맞이의 재출발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떠한 사람이냐? 봄날이 오기 바쁘게 여름날이 오고 여름날이 오기 바쁘게 가을날이 오고, 가을날이 오기 바쁘게 겨울날이 오는 것이 천리의 원칙이거늘 봄을 맞이했다고 즐거워하기 보다는 여름을 맞기에 부끄럽지 않는 자세를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데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것이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책임자의 소신이 안 되어 가지고는 이 단체는 가다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안일과 영광의 터전을 꿈꾸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의 행복의 터전을 남기기 위해 수난길을 자기의 필생의 운명으로 알고 가야 될 것입니다.

여름날이 오기 전에 결실을 맞아 남보다 일찍 거두어져 가지고 주인의 환갑 잔칫날 진설하는 상 위에 귀한 열매로서 바쳐질 수 있다면 그 때가 여름절기가 되어도 좋고 가을절기가 되어도 좋은 것입니다. 잔칫날이 되기 전에 거두어질 수 있는 모습이 되면 완전한 가을날에 어디서든지 구할 수 있는 결실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그것은 가을절기에 완숙된 결실의 몇만 배의 가치로서 하늘 앞에 바쳐질 것이 아니냐, 봄에 태어나 가지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결실하는 것을 한 계절 동안에 다 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내적인 저력을 가지고 생활환경을 개척하고, 그 환경의 여건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의 자주성을 가지고 가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신념과 사상을 가지고 나가는 통일교회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봄은 짧을 것이요, 여름도 짧을 것이요, 가을도 짧을 것이 아니냐….

이러한 관점에서, 사람의 한 생애를 두고 보면 소년시대가 있을 것이고 청년시대가 있을 것이고 장년시대가 있을 것이고 노년시대가 있을 것이거늘, 그러한 책임수행을 추구하는 어떤 사림이 있다 할진대 소년시대가 길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짧기를 바랄 것입니다. 장년시대도 짧기를 바라는 것이고, 노년시대도 짧기를 바랄 것이 아니냐. 7,80년 생애를 중심삼고 완성을 바라는 것보다 7,8년의 한 시대권을 중심삼고 완성을 바라려니, 일년 동안에도 환란풍파를 겪어야 하나의 결실을 맺는 것을 우리가 보거늘, 얼마나 풍상이 많겠습니까?

이런 세계사적인 하나의 완숙된 결실을 고대하는 모습이 있다 할진대, 그가 평안한 입장에서 소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이룰 수 있겠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방으로 부딪히라는 것입니다. 봄날이면 봄날, 여름날이면 여름날, 가을날이면 가을날, 생명의 여력과 내적 권한에 있어서 투쟁하여 여력이 충만할 수 있는 자리에서 가는 길 앞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아무리 농토가 크고 동산이 세계로 연하였다 하더라도 그 동산 가운데 그런 결실이 있다 하면, 주인은 그곳으로 발걸음을 더듬어 그 결실된 모습을 바라보고 그 자리에 기대를 가질 것이 아니냐. 그런 시간을 가진 단체라면 그 단체는 고독한 단체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고독한 사람일 것입니다. 횡적으로는 지극히 고독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고독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사계절에 해야 할 것을 한 계절권내에서 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통일교회의 탕감복귀라는 내용이 아니냐. 탕감조건을 통하여 시대적 사명에 적응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여러분들은 필생 노정에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자기의 생애를 피력할 수 있는 날을 몇 날이나 가졌느냐? 하루도 춘하추동의 계절을 대신한 것입니다. 일년을 가지고 세계사적인 봄절기를 대신할 수 있고, 여름절기를 대신할 수 있고, 가을절기를 대신할 수 있고, 겨울절기를 대신할 수 있는 최고의 한해를 갖고야 쓰러지겠다 하는 결심을 해보았느냐?

`오늘날 찾아오는 그런 한해의 봄날은 인류역사의 비운의 봄날을 능가할 수 있는 탕감의 봄이오니 봄이여 찾아오소서. 인류역사의 여름절기를 맞지 못하였던 것을 탕감할 수 있는 내 일대에 세계사적인 승리의 결실로서 가질 수 있는 여름절기여 찾아오소서. 가을절기여 찾아오소서. 겨울절기여 찾아오소서' 하며 겨울절기를 맞이하여 한 금을 긋게 될 때는 내 일대에 봄절기를 맞이할 수 있는 운세가 올 것이 아니냐.

거기에는 찬바람이 몰아치더라도 하나님이 옹호하는 온상에서 하나의 결실로서 자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생각하고 탕감적인 생활권내에 있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필시 우리 앞에 그런 길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기대했던 길이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일년에 못 하겠으면 4년동안에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4년 동안에 안 되거든 40년 동안에라도 해봐야 될 것이 아닙니까? 동서 사방을 중심삼고 일년이 천년 같고 천년이 일년 같다는 하늘의 계수법을 우리가 이때 활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한 시대에 있어서 그러한 위치를 갖춘 적이 있느냐? `내 일생에 있어서 요때는 뺄 수 없다. 잘먹고 잘살고 내 마음대로 하고, 금년에는 운이 트여서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로구만' 하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큰 웃음을 웃고 천지가 진동하게끔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여러분 일생에 있어서 추억의 해요, 기념의 해가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오히려 공적인 입장을 생각해서 사지(四肢)가 사방으로 찢어지고 긁혀 가지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기를, `이것이 전부다. 이제 내 목숨이 최후의 맞이 하는구나' 하는 비극이 엇갈리는 자리에서도, 생사의 기로가 교차되는 순간에 있어서도 `나는 없다' 하는 그 경지를 다지고, `있다 하는 그 가치의 내용은 하나님만이 결정하여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경지를 거칠 수 있는 수난의 한때와 한해를 맞으면 그것은 일생 동안 여러분이 사망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죽어갈 때는 추억의 해로서 남아질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일생 동안 진정으로 살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될 것인가

타락한 인간으로서 잘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잘살겠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칠십 가까운 할머니를 보고 `잘살았소?' 하고 물어 보라구요. 그래 여기 할머니, 잘살았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 못살았지요? 누구에게 물어 봐도 잘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잘사는 사람에게도 `잘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까?' 하고 물어 보면 잘살았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누구에게 물어 보라구요. 대학교 총장한테도 가서 물어 보라구요. `글쎄…' 그렇게 대답하지. `아, 그렇구 말구' 하는 사람은 없다구요. 안 그래요? 있다고 생각합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건달패라구요. 제대로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생명의 골짜기에 들어가 가지고 참생애의 가치, 진수를 더듬어 본 사람이 아니라구요.

자, 여러분들, 보라구요. 여러분들이 한 80살 살았다고 합시다. 그 가운데 밤에 자는 시간을 제하고 나면 40년으로 떨어집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자는 것도 사는 건가요? 자는 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안 그래요? 자는 것은 죽은 목숨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가운데 살겠다고 허덕이는 시간은 절반밖에 더 돼요? 또 거기에서 밥 먹는 시간을 한 시간씩 빼 버리고 나면 어때요? 밥 먹는 시간은 한 시간은 잡아야 돼요. 밥 먹기 위해서 수고하는 시간까지 잡으면 두 시간 이상 잡아야 된다구요. 내가 그것 잘 안다구. 쌀을 씻고, 불을 때 가지고 차리고 하려면 30분 걸리더라 이거예요. 그걸 다 먹고 하려면 두 시간 이상 잡아야 된다구요. 또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먹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하루 밥먹는 시간 여섯 시간을 빼 버리면…. 그렇기 때문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자기 혼자 하게 되면 여덟 시간 일하기 어렵게 돼 있다구요. 사실은 자기 여편네들이 협조해 주기 때문에 여덟 시간 근무라는 말도 나오지 앞으로 여섯 시간 노동시대가 와야 된다는 말도 나오게 된다구요. 밥 해먹고 다니려면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 또 그 가운데 친구 잔칫날, 이웃 동네 어른의 환갑날, 누구 죽는 날, 장사지내는 날, 별의별 날을 다 제하고 나면 일생에서 산다고 하는 날이 절반이나 될 것 같아요? 요전에 계산해 보니까 산다고 하는 것이 7년이 나와요, 7년. 그 7년 가운데 진정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날이 며칠 나오느냐 말예요. 며칠이 무슨 며칠이예요?

세계적·천주적인 삶을 찾는 사람이 되어야

그래, 시집가던 날, 장가가던 날 좋았어요? 좋기는 뭐가 좋아요? 색시는 신랑이 어떻게 생겼나 하고 만날 때까지는…. 옛날에 결혼한 사람들은 말이예요. 첫날밤 신랑 얼굴을 볼 때까지는 어떤 사람을 만날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는 것입니다. 보지도 못하고 결혼을 했거든. `아이구, 하늘이여! 도우소서. 운명이 판결나는구만' 그 심정이 어땠겠어요? 가슴이 달랑달랑했다는 거라구요.

또, 요즘에는 뭐 봄바람이 불어 왔다고 자기들끼리 동으로 서로 걸음 걸이를 같이하다가 결혼을 했다고 해서 잘사느냐? 잘살기는 뭘 잘살아요? 그럴수록 빨리 구멍이 뻥뻥 뚫어진다구요. 살다 보면 부처끼리 싸움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처끼리 사는 생활이 행복해요? `아, 우리 부부는 그만하면 참 재미있고 금실이 좋아' 할 수 있어요? 금실은 무슨 금실. 살아 보라구요. 살아가려면 아무리 금실이 좋더라도 환경적으로 바람이 불어 오게 되면, 삐뚤삐뚤하는 거라구요. 그건 이렇게들 전부 다 제하고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어요? 얼마나 깨가 쏟아지게 고소하게 살았어요? 깨가 오소소 떨어진다고 하지요?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어요? 여기 아저씨 아주머니들, 재미있게 살았어요? 그거 보면 참 기가 막힌 인생이라구. 거기에서 뭐 성공하겠다고 눈에 횃불을 켜고 들썩들썩하는지…. 명동 거리를 지나가 보면 한심해요. 들썩들썩하게 뭐…. (웃음) 이런 걸 보면 기가 막힌 판국이라구.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구요, 인생이란 게.

이렇게 보게 된다면 자랑할 때가 있느냐? 세상에서 `아이구 좋았다'고 자랑할 때, 진짜 좋았느냐? 진짜 좋았다면 그 진짜는 세계적이라 그 말이라구요. 그렇지요? 진짜가 가정의 울 안에서 진짜가 돼요? 진짜란 것은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세계적이요, 우리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천주적인 정상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들, 진짜 좋았어요? 자기 울타리 안에서 부처끼리 좋아하는 것이 세계적이예요? 그것이 세계가 기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내용이예요? 아니지요. 좋긴 뭐가 좋아요? 진짜가 아니라구요. 가짜라구 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이어야 된다구요.

남자로서 장가가도 세계적이어야 됩니다. 영계와 하늘땅, 통일교회 술어로 말하면 천주적이어야 됩니다. 결혼식 날이 오면 영계에서도 `야, 결혼식 날이 온다' 하고 땅에서도 `결혼식 날이 온다'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 남자와 한 여자라도 세계적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은 세계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적인 가정을 통하면 세계적인 종족이 나오는 것이요, 세계적인 민족이 나오는 것이요, 세계적인 국가가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거라구요. 시일이 지나가면.

여러분들이 `아, 나는 지금 따라지로 살고 있지만 내 후손 일족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이 될 것이다' 하는 자신 있어요?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우리 축복받은 가정들은 그런 신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가을에 한 씨를 중심삼고 말이야, 조씨면 조씨를 중심삼고, `이놈의 조야, 너 세계적이야?' 할 때, `세계적이지 뭐, 그런데 그건 왜?' `너는 대한민국에서만 나니?', `난 세계 어디에 가도 난다' 하면 그것을 누가 거부할 자가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 종족이면 종족을 누가, 온천지가 공인해요? 이것을 따지고 보면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그래 진짜 좋은 날을 못 가졌다는 거예요, 아무리 큰소리쳐도. 그러면 진짜 좋은 날을 갖겠다고 생각이나 해봤어요? 그런 날을 못 가졌으면 생각이라도 해봤어요? 기대라도 가져 봤어요? `이제 들어 보니 기대를 가져야 되겠구만' 하는 사람이 많지, 기대를 가졌던 사람은 찾아볼 수 없더라구.

우리 통일교회에서 결혼한다 하게 되면 말입니다. 통일교회 패들은 모르긴 모르지만 선생님이 `통일교회 축복결혼이란 천주사적인 내용이 있느니라'고 설명을 했기 때문에 설명으로는 훤합니다. 설명으로는 훤하다구요. 내용은 모르지만…. 그 내용까지 갖추면 그냥 세계적인 위인이 되는 거라구요. 이론은 그렇다구. 이론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만 되게 되면 그 사람은 세계적인 사람이 된다는 거라구요. 그게 안 된다면, 통일 교회는 사기당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님은 사기당 왕초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기분 좋다'고 하겠어요? 자기가 사기당 왕초가 돼 가지고 기분 좋다고 하겠어요? 거기에 무슨 소망이 있겠어요? 그렇지만 난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장 죽게 되더라도 나는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라구.

여러분이 어디에 가서 앉는다 하더라도 쓱 돌아봐요, 안 돌아봐요? 가자마자 앉아요? 쓱 돌아보고 어디가 좋겠는가 찾고, 안 찾소? 찾지요? 안 찾으며 사람이 아니라구.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 애기들도 그렇지요? 어디에 가더라도 앉으려면 주위를 한번 돌아보고 앉지요?

또, 방에 척 들어가더라도 별의별 것이 너절하게 널려 있는 그 가운데 털썩 주저 않소? 있더라도 다 치우고, 그러고도 무엇이 남았을까봐 훅 불고 난 다음에 요렇게 앉지요? (웃음) 그러지 않아요? 왜 웃어요? 사실 그렇지 않소? 어디 가서 잠깐 앉는 데도 둘러보고 좋은 데 가서 앉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거늘, 하물며 일생을 사는데 그냥 그대로 살래요? 여러분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어디 가서 살아야 되겠다고 찾아 봤어요? 찾아 봤어요, 여러분들? 그래야 되는 거라구요. 몇 분 동안 앉아 있을 자리도 그렇게 찾아 가지고 앉겠다고 하거늘, 일생을 사는 데 있어서 구별된 자리를 찾아가 가지고 살지 않겠다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종(亡種)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기대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 오늘날 사회를 두고 볼 때 `내가 어디 가서 찾아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어디가 제일 좋던가? 가서 한번 찾아 보겠다' 해 가지고 찾아본 적이 있어요? 여기 청년들 많구만. 찾아 봤어요? 소위 대학교 다녔다는 패들도 왔구만. 찾아 봤어요? `경제학과면 경제학과에 들어가 가지고 그저 이러면 되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되게 안 되어 있다구요. 하나님은 믿더라도 말입니다. 이왕지사 믿을 바엔 금방석을 갖다 놓은 자리에 가서 믿고 싶지 않아요? 난 그렇다구. 종교를 믿더라도 데데하게 믿을 게 아니라 이왕이면 금방석을 싹 깔아 놓아 가지고 정한 자리에 앉아 믿겠다,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씨앗으로 남아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승리해

오늘날 인간들은 세상에서 암만 찾아 봐도 좋은 곳이 없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한테 물어 봐도 `나는 세상에서 미련 안 갖고 천국 이루어서 살겠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런 곳을 세계적으로 못 만들면 내 안방에 만들어 놓고, 안방에도 못 만들거든 그러한 조건을 세워 놓고 그 조건 위에 서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생 동안 살았다면, 그렇게 깨끗이 살았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실 것입니다. 데데한 사람을 고르지 않는다구. 그저 사방에 똥을 묻히고, 앉아도 풀석 주저앉고 말이야, 여자로 말하자면 재수머리 없는 여자를 찾아오시겠어요?

자, 봄절기가 좋다 해 가지고 봄절기에 매양 있을 것이냐, 여름절기에 매양 있을 것이냐, 가을절기에 있을 것이냐, 춘하추동 사시절을 풍류를 즐기면서 감상하며 살 것이냐? 어떻게 살려고 생각해요? 이 머리는 비상한 머리라구. 된장통이 아니라구. 거룩한 생각을 하고 멋진 생각을 하고 멋진 생활을 가려 가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최고의 머리를 준 게 아니냐 이겁니다. 안 그래요? 똥통 같아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씨가 되었으면 봄날을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을에 심어져서 싹이 나와 가지고는 움텄다고 `아이고, 나도 싹이 나왔다.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다' 하고 좋아한다면 그 녀석은 미친 녀석이라구요. 차라리 두어둔다면 갈무리라도 하지. 때를 모르면 안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때로 말하면 통일교회의 때가 어느때냐? 통일교회의 때는 언제나 같지 않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는 길은 언제나 봄날이 아니라구. 언제나 여름날이 아니라구. 통일교회에 가을날이 안 오면 내가 가을날을 만들 것입니다. 내가 여름날을 제시할 것입니다.

시험 치지요? 노는 학생에겐 언제나 봄이지요? 언제나 여름 같지요? 그렇지만 시험을 치게 되면 `아이구, 나 죽었소' 합니다. 가을도 안 오고 푹싹 쓰러지는 거라구. 그렇지요? 마찬가지라구. `아이구. 그거 뭐 시험이고 무엇이고 다 필요없어. 될 대로 되라지'하며 꺼덕거리고 다니던 녀석들도 시험장에 들어갈 땐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센 황소가 있다 하더라도 그 황소가 도살장에 들어가게 되는 신세와 마찬가지라구요.

옛날에 선생님이 도살장 구경 했어요. 백정이 암소 잡는 것도 봤고, 황소 잡는 것도 봤고, 암송아지, 숫송아지 잡는 것도 다 보았다구. 뿔질 잘하는 고약한 황소라도 도살장에 들어가게 되면 벌써 알아요. 눈이 시뻘개져 가지고 까꾸로 서서 안 들어가겠다고…. 알거든 그거. 자기가 살고 있는 외양간이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방이 다 막혀서 집같이 아늑하니 좋다고 들어갈 텐데 말이야, 그저…. 이걸 이끌어 내 가지고 쇠방망이로 한번 후려갈기면, 암만 큰 황소라도 세 대 이내에 뻗어 가더구만.

준비하지 못한 사람에겐 그러한 운명의 때가 있는 거라구요.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궤도를 가지 못한 사람들은 비참한 날이 예고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예요. 자연법칙이예요.

자, 그러면 통일교회 시대는 어떤 시대냐? 여러분, 알아요? 봄날을 거쳐 가지고 여름절기를 맞이했다면 하지를 거치고 삼복지절을 거치게 되는 것입니다. 삼복지절은 냄새가 많이 나는 때입니다. 그렇지요? 그 때에는 통일교인 가운데 썩어져 냄새나는 패들도 나올 것이고, 무성한 패도 나올 것이 아니냐. 구더기가 끓는 패들도 있다구. 그래서 가을날이 올 것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날에는 누구를 동정하다가는 내가 죽는 거라구. 그렇지요? 가을날에 접붙이려고 했다가는 죽는 거라구. 그렇지요? 그런 냉정한 바람이 어느 사람에게나 소스라치게 불어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쌀쌀해' 하는 때가 있는 거라구요. `진리는 좋다마는 사람은 참 냉정하구만, 사랑이 있어야지. 그렇지만 개성은 또렷또렷하구만' 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당질을 하게 될 때에는 서로 부딪히는 거라구. 마당질을 할 때처럼 그렇게 들이치는 거예요. 그러면 안 떨어져야 되겠다는 녀석들이 먼저 떨어진다구. 이놈이 저놈에게 부딪히고, 저놈이 이놈에게 부딪히고, 그러면서 전부 다 떨어지고 비비고 볶고 한다구. 그렇기 때문에 여자에게는 남자 놀음을 시키고, 남자에게는 여자 놀음을 시키고, 아버지에게는 애기 놀음을 시키고, 애기에게는 아버지 놀음을 시키는 것입니다. 아래 것이 위로 가고 위에 것은 아래로 가고, 동쪽이 서쪽 되고 서쪽은 동쪽 되고, 남쪽은 북쪽 되고 북쪽은 남쪽 되고 사방으로 볶아치는 것입니다. 대학 교수가 오면 유치원 학생 모양으로 취급하고, 할머니가 오면 애기 취급하고…. 그런 놀음을 한다구요. 전부 다 그렇게 볶아치는 것입니다.

마당질할 때 보게 되면 그렇다는 거라구요. 안 그래요? 까딱 잘못하다간 지나가던 닭새끼가 마음대로 쪼아먹을 수도 있는 겁니다.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때라는 거예요. 그런 때가 온다구. 그것을 다 거치고 나서야 그 다음에 주인이 거두어들이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마당질하게 돼도 쭉정이 날아가는 그 곳으로 절대 안 가려고 하는 거라구. 거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위험하다는 거예요. `내가 잘못했더라도 내 꽁지에 파리 한 마리라도 붙어서 멀리 날아가지 말고 여기 맨 복판에, 제일 알곡만 쌓이는 데 떨어지면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렇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통일교회에도 여기서 종자, 즉 씨앗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저 영감, 종자를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영감,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데 왜 눈을 이러고 고개를 숙여요? 똑바로 보지.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래? 그래, 영감은 종자, 즉 씨앗 될 자신 있어요?「자신 없습니다」자신 없으면, 자신이 있게끔 가르쳐 주면 그렇게 할래요?「예」얻은 색시를 씨앗 쌈지로 사랑하라구요. (웃음)

자기 주제에 여자들이 보고 천리만리 도망 안 간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고 천지신명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면서 빌어야 된다구요. 얼굴 좀 들라구요. 영감, 팔십이 넘었는데도 좋습니까? 주제에 입은 살아서 뻔뻔스럽게 얘기는 잘하지. `그저 여자 같은 허울만 써도 좋습니다. 죽어가는 할머니라도 붙들고 결혼하라고 하면 하겠습니다' 하고 수작하지 않았어요? 그럴 때는 언제고, 지금은 좋다고 그런다는 소문을 내가 들은 것 같아요. 영감, 좋다고 하지요? 너무 좋아서 그랬겠지. 너무 좋아서 그러지요?「예」그래도 말이 좋고 귀가 좋고 참 좋긴 좋아. 만약에 귀가 없었더라면 암만 얘기해도 어떻게 알아듣겠나?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서로 부대끼던 어젯날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로 등장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왜? 주인이 씨를 고르려고 할 때는 알밖에 고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냐, 이것이냐, 이것이냐를 가려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여러분들을 놓고 괜히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예요. 식구 되겠다고 들어오게 되면 쓱 올 때 저 사람은 얼마나 오래 남아 있겠느냐 하는 것을 보는 거라구요. 쓱 볼 때, 눈부터 보고 상통부터 달아 본다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은 몇 퍼센트다' 하고 금을 그어 보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몇 퍼센트 취급한다고 선언은 안 해요. 너는 몇 퍼센트니까 몇 퍼센트 취급한다고 그러지는 않는다구요. 몇 퍼센트다, 금을 그었지만 그 사람은 모르지, 그렇지만 자기가 백 퍼센트라고 춤을 춘다구요. 잘한다 잘한다 하지만 거 잘하나? 운동장에 갔을 때 구경하는 사람들이 운동선수들에게 잘하라 잘하라 한다고 전부 다 일등이 나올 수 있어요? 잘해라 잘해라 하는 가운데서 일등이 나온다 그 말이라구. 알겠어요? 안 그래요? 전부 다 일등이 되면, 상은 하나 있는데 어떻게 해요? 잘해라 잘해라 하는 가운데서 가려져 가지고 잘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부끄럽지나 않지, 그렇지요? 통일교회에도 그렇게 부끄러운 날이 온다 이거예요. 그런 날이 없을 것 같아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내가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어요. 친구 결혼식 날인데 내가 들러리를 섰다구요. 그 때가 왜정 때인데, 목포에서 일등 가는 부자집의 외동딸이 시집 가는데 말이야. 내가 들러리도 다 서 봤어요. 나는 평안북도 정주에 있었는데 결혼식 하는 데는 부산이라구. 방학 때여서 내가 고향에 가 있다가 전보를 받았는데 들러리할 때 필요한 일체는 여기에서 다 준비했으니 들러리 준비는 불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준비할 것이 뭐야. 그때는 사람들이 국방복을 입던 때라서 그것을 입고 잔칫날에 그곳을 찾아간 거라구. 떡 찾아가 보니까 큰 잔치판이 벌어졌어요. 그때는 들러리가 요즘처럼 뭐 모닝코트니 하는 것을 입지 않았습니다. 예복 같은 것을 입지 않고 국방복을 입고 그냥 그대로 꽃을 달고 식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구.

그런데 그곳에 가 보니까 신식결혼식이 떡 벌어졌더라구요. 그래 가지고 들러리 옷이라고 준비해 놨는데 그것을 떡 입으니 (행동으로) 이렇게 되었어요. (웃음) 그 옷을 내가 입겠다고 해서 입은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이 옷을 하나씩 골라 가지고 입었는데 다 맞는데 내 것만 떡 그렇게 됐더라구.

크고 작은 것이 있기나 하면 바꿔 입을 수도 있을 텐데 바꿔도 못 입게 딱 그 옷만 있으니 할 수 있어요? 이것도 내 팔자로다 별수 있나 그래 가지고 그걸 이렇게 (행동으로) 입고…. (웃음) 이래도 나와 이게. 그때 그 와이샤쓰는 왜 그렇게 긴지. (웃음) 그때 일이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는 거예요.

그것을 사람들이 할수없이 보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예민한 사람이라구. 그 사람들이야 할 수 없이 본다 하지만 내가 어울리지 않으니까 할 수 있나. 우물쭈물한 거라구. 뭐 잔치에 들러리가 아니…. 아줌마가 바라봐도, 아저씨가 바라봐도…, (웃음) 그 부모는 얼마나 창피했겠어요? 내가 그러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있으니…. (웃음) 잔치하는 주인부터 색시, 신랑 할 것 없이 전부 다 내가 그러고 있으니 잔치에서는 빵점이라구. (웃음)

그 일을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보호하사…. 그렇게 생각해요. 그날 그때 느낀 것이 평생 안 잊혀지거든요. (웃음) 그런 일을 당했기 때문에 어제 어느때든지 결혼하는 사람만 보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을 생각해 줄 수 있는 들러리를 가졌으니 얼마나 복된 가정이냐 말이예요. 그런 얘기예요.

그러고 보면 선생님이 참 배포가 좋다구. 내가 해 입고 갔더라면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의 예복 중에 세계사에 남을 수 있는 기록이 될 텐데, 해준 것을 입었으니 이건 뭐 여기도 못 믿고 저기도 못 믿는 거라구. 그렇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같이 그 환경에 어울리지 못하면 거북한 때가 있지요? 거북한 것이 극하여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더 낫다 하는 때를 맞이해 봤어요? 이거 뭐 어쩔 수 없는 그런….

자, 인간세계에서도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인연된 그 한 곳, 그곳은 일생을 바쳐서 찾아가 머물기를 소원하던 곳인데, 그곳에 가 가지고 그런 창피를 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거기서 한하여 되돌아 서 가지고 `아, 이거 안 됐다'고 하면서 다시 수습할 길이 있을 수가 있느냐? 그럴 시간도 없고 또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 되니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럴 때가 여러분들이 가는 생애의 종말에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고빗길이 반드시 남아질 것입니다. 그것을 예상해 가지고 타개할 수 있는 준비를 한 사람은 만세의 역사를 지닐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봄날, 여름날, 가을날, 겨울날을 맞아 남아질 수 있는 통일교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렇게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구요. 통일교회에 어울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주인한테 어울려야 되고, 그 식구들과 어울려야 되고, 그 환경에 어울려야 되는 것입니다. 봄날이 왔다는데 `나는 가을날이야' 하며 도사리고 앉아서 짭짭하지 말라 이거예요. 가을날이 됐는데 여름날이라고 하면서 싸움이나 하는 것들은 다 서리를 맞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계절을 따라 방향을 갖추어서 그 위치에 보조를 맞추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보조를 맞추는 데 있어서 슬픔으로 맞는 패들에게는 결실이란 없는 것입니다. 마지못해서 `아이구, 선생이라는 그 괴물이 또 명령했구만' 또 `좀 잘살려고 하는데 이것이 뭐야? 언제는 뭐 축복을 해주더니 이것이 또 뭐야?' 거기에 불평 불만을 하며 마지못해서 `아이구' 하는 패들은 스스로 망한다는 것입니다.

가기를 슬퍼하는 그런 노정에 봄날이 어디 있으며, 여름날이 어디 있으며, 가을날이 어디 있으며, 겨울날이 어디 있겠느냐? `봄아 오너라, 내가 바라던 것이요, 여름아 오너라 내가 바라던 것이요, 가을아 오너라 내가 바라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결실되었으니 폭풍우야 한번 들이쳐라. 북풍한설아, 몰아쳐라. 그것을 기쁨으로 맞아 가지고 남아질 수 있는 영광의 씨앗이 되고, 그 씨앗으로부터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이 될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 못 하느냐 이거예요. 거기에서 `난 싫어' 하면 그것으로 죽는 거라구요. 고자리 같은 벌레가 먹든가 해서 꺾여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배가되어 가지고 천지에 없었던 수확기가 오기를 바라고, 천지 역사상에 단 한 번밖에 없는 무성한 여름계절이 오기를 바라고, 봄계절이 올 것을 바라고, 수확기를 지낸 뒤에 재봉춘할 수 있는 새날을 맞기 위해서는, 우리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 선생님이 들이치더라도 꺾이지 않는다. 한번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왜 이런 기대를 못 갖느냐 이거예요.

알곡이 되기 위해 갈고 닦아야

선생님도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번번이 `요렇게 해라' 하며 살랑살랑 달래는 것입니다. 그렇지, 맨 처음에는? 키우는 데도 유아기가 있다구요. 그저 꺼질세라 날아갈세라 살랑살랑 키우고 그 다음에는 기어 다니고 그 다음에는 걸어 다니는 거라구요. 밥을 먹는 데도 절반은 숟갈을 (행동으로) 이렇게 잡고 퍼넘기는 거라구요. 철부지 모습을 해 가지고 전도한다고 많은 사람을 죽이고, 환경을 문질러 놓고, 똥을 싸 가지고 망치는 패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런 때니까….

그러다 철이 들면서 `아, 엄마다' 해 가지고, 엄마가 좋아하나 안 하나 보면서 노는 것입니다. 우리 국진 애기가 태어난 지 1년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야. `얘야, 이리와' 해도 안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사뿐히 싹돌아다보고 내가 기분 나빠하는 것 같으면 `헤헤헤-' 이럽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요 녀석, 영리하구나' 하고 생각해요. 애기들도 눈치를 봐 가지고 `아, 안 되겠다' 하고 보조를 맞추는데 말이야. 이건 대갈통들이 전부 돌통이 다 되었다구. 눈은 멍해 가지고 `가자!' 해도 멍하니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예 죽을 징후라구요.

이왕지사 세계사적인 가을절기를 맞이해 가지고 새로운 씨앗을 선별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기성교회에서 거두는데 덜되긴 덜됐지만 볏단과 더불어 같이 쓸려 들어온 것이 여러분 아니냐 이겁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은 기성교인들보다 통일교회 패들은 낫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래도 볏단이 쭈그러졌든 어쨌든 그래도 달려 들어왔다구요. 들어왔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 밥이 돼요? 마당질을 해야지. 마당질을 해야 된다구요. 들어오기는 들어왔지만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여기에서 선별하기 위해서는 전부 다 새로운 방식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 선별 기간이 필요한 거라. 그래야 씨앗을 만드는 거라구요. 그러니 그 과정에는 여러가지…. 여러분,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구. 여기 들어왔으니 마당질당해야 한다구요.

그러니 통일교회가 봄날을 맞이했으면 이것은 역사적으로 소망하던 기쁨의 날이요, 하늘땅이 소망하던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뻐서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맞이하고, 겨울을 맞이하겠다고 이렇게 고지를 달려 가겠다고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여러분들, 지금의 마음 자세는 어때요? 조금만 수고롭고 조금만 힘들면 `아이쿠' 해 가지고 싹 빠져 도망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안 되는 거라구요. 웃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 이왕지사 그러려면 왜 그래? `선생님, 저에게 3년 동안 휴가를 주십시오. 그러면 3년 동안 못 간 것 대표해 줄 테니까요' 이렇게 멋지게 나오라구요. 그러면 내가 아주 멋지게 휴가장을 써 줄께. 그렇게 나와 보라구요.

봄날을 맞이하여 `나는 봄만 좋아해. 여름은 필요 없어' 하는 사람은 망하지 말래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60년대에 통일교회에 들어온 패들이, `그때는 선생님이 전부 다 키워 주고 그랬지. 그때가 참 좋았어. 지금은 뭐…' (웃음) 뭐 요지경판이라구요. 그때는 봄날이야. 애기로 말하면 젖먹이고 기저귀 채워 주고 그런 때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걷고 국민학교에 다니고, 중·고등학교쯤 다니게 되면 앞으로 대 사회적으로 훈련을 시켜야 되겠기 때문에 대 사회적인 접촉을 시키는데, `아이구, 나는 싫어!' 합니다. 대학교에 간다고 해서 놀러 가나요? 공부하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공부하기가 좋아요? 할 수 없으니까 하지요. 안 그래요? 어디 공부하기 좋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시험치기 좋아요? 할 수 없어서 하는 거라구요. 시키는 사람도 좋지 않을 거라구요. 이왕지사 뭐 전부 다 졸업시키면 좋은데 왜 떨어뜨리고 그래요.

그래 나도 할 수 없이 여러분들에게 시험 치게 해야 된다구. 문제는 종이장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고장을 전달해 가지고 `자, 삼천리 반도를 순방해 와라. 땅굴을 파고 와라'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건설하려면, 앞으로 천국을 건설하려면 말뚝도 박고, 뼈대도 세우고 하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예요?

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겨울인데도 산을 헐어 얼음덩이 위에다 돌덩이를 쌓아 놓으라는 것입니다. 돌덩이를 왜 쌓아 놓느냐? 겨울날에 얼음 위에다 돌덩이를 쌓는 녀석은 미친 녀석 같지만, 봄날이 되어 그 얼음이 녹으면 그것이 다 그냥 그대로 가라앉아 가지고 물 가운데 산더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걸 생각할 때, 얼음 위에다 돌덩이를 쌓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구, 물도 없는데, 얼음이 얼었는데 거기에 돌은 왜 쌓는지 그것 참 모르겠구만!' 그 격이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최후를 마칠 것인가

여러분들, 보라구요. 통일교회에 선생님이 없으면 통일교회가 지금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선두에서 지휘하면 여러분들은 `아이구, 선생님이 또 시작이구만. 선생님은 팔자를 그렇게 타고 났으니까 좋아서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팔자 안 타고나서 좋지 않으니까 못 하겠다'고 하지요? 고약한 팔자를 타고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이 고달픈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말이야? 살아 있는 자체는 고달픈거야. 여러분들이 지금 앉아 있지만 살아 있다는 자체는 사망과 생명의 싸움에서 사망권을 제압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숨을 잘못 쉬는 날에는 사망의 권세가 `너 걸려들었구나' 하면서 까꾸로 꽂는 거라구요. 그러니 여기에는 무한한 힘이 나를 제압해 가지고, 내 생명의 위력을 배양시키기 위해서 우주의 자연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거라구요.

지금 몸뚱이에 1기압이라는 공기의 압력이 있어 가지고 몸의 형태, 즉 체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1기압의 힘이 이렇게 밀고 있다' 하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해 봤어요? 그것이 없게 될 때는 뼈다귀까지 날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렇지만 사실은 누구고 느끼지 못해요. 마찬가지라구. 여러분의 생명의 밑바닥에는 사망을 제압하는 힘이 터전이 나를 보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 봤어요? 이것이 무너지는 날에는 왕창 일시에 습격하는 거라구요.

그러한 생명을 가지고 어디에 가서 거꾸러질 거냐? 죽다 보니 원수의 안방에서 죽었다면 좋겠어요? 원수를 만나 싸우려고 찾아갔다가 앓아 누워서 원수의 웃방에서 죽었다면, 그 원수의 여편네가 원수인 줄도 모르고 시중을 들어 주었는데, 주인이 돌아와서 보고 `아니 이녀석, 원수였구만'할 때에, 그 죽어 나가자빠진 녀석을 보고 뭐라고 그러겠어요? `요녀석아, 내가 너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총칼을 준비했다. 이놈! 죽어서라도 한번 맞아 봐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서도 칼침을 맞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들은 죽을 때에 원수의 웃방에 가서 죽을래요? 원수의 웃방에서 죽는 것보다는 원수의 변소간에서 죽는 것이 낫다구요. 또 변소간에서 죽는 것보다는 울 안에서 죽는 것이 낫고, 울 안에서 죽는 것보다 앞 뜰에서 죽는 게 낫고, 앞 뜰에서 죽는 것보다 원수의 밭뙈기에서 죽는 게 낳고, 밭뙈기보다는 논뙈기가 낫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죽을 때에는 원수에게 가까이 갈수록 나쁘다는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그래,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원수예요, 원수 아니예요? 「원수입니다」 그거 진짜 알아요? 「예」 저 영감, 알아요? 원수인줄 알아요, 몰라요? 이 사망세계가, 이 땅이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지금 원수의 웃방에서 살아요, 아랫방에서 살아요? 어느 방에서 살아요? 주인은 원수니까 여러분들은 안방에서는 못 살고 웃방 아니면 사랑방에서 사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죽을 때 어디에서 죽으려고 해요? `어디서 죽긴 어디서 죽어, 내가 난 데서 죽지' 그러니 결국은 원수의 안방이 아니면 사랑방 아니면, 혹은 뒷방에서 죽을 것입니다. 원수의 동네에서 죽는 것입니다. 원수의 나라에서 죽는 것입니다. 좋아요? 원수의 세계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부르르 치가 떨린다구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탈피할 것이냐? `내가 죽기 전까지, 죽어도 원수의 국경을 넘어서 가지고 나를 고대하고 바라보고 있던 내 나라의 산천초목이 있는 곳에 가서 죽어야 되겠다. 만약 그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경계선을 넘다가 죽거들랑 경계선에 일직선으로 넘어지지 않고 몸뚱이는 경계선을 넘지 못하더라도 머리만은 경계선을 넘어가서 죽어야 되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경계선을 넘었다 할 때에는 `이 땅이 저 땅의 보좌보다 낫구료. 이 땅의 오막살이 집이 저 땅의 왕궁보다 낫구료. 이 땅이 나를 거지 취급하고 원수와 같이 취급하더라도 저 원수의 땅에서 나를 후대하던 타락한 개인보다 낫구료' 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통일교회패들이 그러한 이념과 사상을 가졌다면 `여기에서 나를 못살게 하는 사람이라도 원수세계에서 나를 품어 주고 길러 주던 부모보다 낫구료' 하는 실감이 나요? `여기에서 못먹고 못살더라도 저기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보다 낫구료. 내가 이 땅에서 썩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혹은 동네 개가 뜯어 먹고 날아가는 곤충의 떼가 갉아먹더라도 저 땅의 호사스러운 무덤보다 낫구료' 하고 생각해 봤어요?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구.

오늘 통일교인들은 그러한 경지를 가려 가지고 죽더라도 이 경계선 이하에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벌거숭이 몸으로서 다리가 긁히고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피투성이가 된 머리와 몸뚱이라도 어떻게 삼팔선 너머로 넘겨 가지고 죽느냐 하는 것이 필생의 심각한 문제요, 최고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것을 소망하고 나오는 복귀도상에 있어서 내일과 오늘의 한 전통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하늘의 보호권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상에 자랑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냐. 사망의 권세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생활환경을 벗어나 가지고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될 때, 누가 나를 동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영광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때, 대한민국이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 한권내(恨圈內)에서는 죽더라도 그걸 수긍하는 거예요.

새역사의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자리에,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느냐?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서 삼팔선은 다가오는 것입니다. 목표로 하는 이상이 가까와 오게 되면 여기에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위험이 교차되고, 교회의 위험이 교차되고, 가정의 위험이 교차되고…. 전체가 일직선상에서 천적으로 전체 백성을 대표해서 나를 반박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무자비하게 그것을 격파하고 갈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거든 내가 국경선을 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제거시켜서 처단하고 국경선을 넘어가게 되면 내게 공신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찬사의 영광이 기다릴는지 모르지만, 그러기 전에는…. 그 나라가 오기 전에 내가 죽어 버리면 도리어 한의 요건을 남기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사망의 삼팔선을 넘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맞아 싸움으로써 승리의 결정을 짓지 못하는 오늘날, 나만이라도 삼팔선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행각의 노정이더라. 그렇기 때문에 심각하지 않은 날들이 없다 이거예요. 웃어도 마음 놓고 웃지 못하고 웃음을 통하여 원수의 주목거리가 되고, 살아도 마음 놓고 살지 못하고 원수에게 침범받을 수 있는 무대가 사방으로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제어하고 스스로 방비하면서 이 경계선 위에서 패자의 서러움을 막는 것이 새 역사의 사명을 짊어진 통일교단이 가야 할 운명길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부패하고 이 나라가 혼돈되고, 이 나라가 혼란되는 것을 볼 때, 그걸 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우리의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기점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꿈꾸는 악당의 무리들은 이미 기력이 꺾이고 서릿발을 맞아 가지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현정세를 바라보게 될 때, 이때야말로 우리가 기동대를 발동해 가지고 적진을 격파할 최후의 공격진이 될 것을 다짐해야 할 때가 아니냐.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루의 날들을 습관적인 날과 같이 맞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을 똑같은 생활로 보내려 하는 사람은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패배자가 되고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나는 통일교단에서 어떠한 시대를 맞고 있느냐? 봄시대냐, 여름시대냐, 가을시대냐, 겨울시대냐? 사시장철을 내 일신에서 응결시켜 가지고 하나의 생명의 여력을 지닌 새 씨앗이 되어 있느냐? 나는 희생하더라도 내 일족은 천세 만세에 봄날을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의 천국과 연결될 수 있는 무리로 남아질 것이다. 그런 기수로서 등장하겠다. 이 시대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을 남기기 위해서 나는 싸워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할 때는 우리 목전에 다가왔는데, 이 목전에 다가온 환경요건을 어떻게 흡수하여 소화 극복하는 자신으로서 저 경계선을 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심상치 않은 문제인 동시에 비장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흘러가게 되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죽는 거라구요. 쓰러지는 날에는, 객사하는 날에는 원수의 나라에서 주인을 지키고 동산을 지키는 개의 밥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문을 출입하는 개새끼를 살찌우는 죽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구요. 여러분, 심각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말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구요. 하나님은 그런 비장한, 그런 결정적인 연결을 우리 생애노정을 통하여 다짐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것이고, 여러분 후대의 후손들이 그럴 것이고, 오늘 우리 통일교단이 가는 운명이 그럴 것을 생각할 때, 그 운명을 우리 시대에 있어서 통합해서 해결지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집약 시켜 가지고 귀결짓느냐? 오늘날 남북이 교차되는 이런 정상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최고의 결의와 최대의 결단을 중심삼고 최후의 목적을 향해서 총진군할 것을 결의하지 않고는 여러분은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나무에 달렸던 잎이 아무리 무성하다 하더라도, 그 피었던 꽃이 아무리 무성하다 하더라도 떨어지고 난 후에는 거름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떨어진 그 자리에서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미래에 보다 큰 통일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잎이 되었으면, 꽃이 되었으면 거름이 되는 것을 정상으로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뭐냐 하면, 내가 갈 때는 통일교회에 거름이라도 주고 가는 자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정상적인 잎의 사명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는 잎이 되어 가지고는 잎으로서 거름의 사명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죽고 나면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기억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 난 후에도 추도의 대상으로, 흠모의 대상으로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망권에 태어난 이 원한의 근거지를 격파, 탈피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암중모색하고 있는 와중에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한 목표를 제시하고 방향을 제시한 현시점에서 가야 할 행보를 더디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낙오자의 운명과 패배자의 서러움의 고배를 모면하지 못할 것이 아니냐.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쓰러지고 비참하게 사라져 간 것을 생각할 때, 내가 죽더라도 그 자리에 서 가지고 동참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역사적인 필연의 운명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하고, 혹은 남편을 사랑하는 그 자리는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자리도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누워있는 방바닥도 생각해야 할 자리이고, 살고 있는 나라도 생각해야 할 나라이고, 살고 있는 세계도 생각해야 할 세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하나에 둘을, 둘에 셋을 배가해 가지고 종족 편성, 민족 편성, 국가 편성, 세계의 편성을 통하여 새로운 방향과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해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창건하고자 하는 것이 통일용사가 아니겠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슬픔으로 맞을 것이냐, 기쁨으로 맞을 것이냐? 슬픔으로 맞는 날에는 열매를 못 보는 것입니다. 절대 열매를 못 보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그것을 흡수해 가서 영양을 취할 수 있는 자주력을 가지고, 어렵다 하는 그 자리에 있어서도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새역사의 꽃을 피우는 사람이 되라

요전에 청평에서 홍천으로 가다가 보니까 쭉 바위섬이 있어요. 그 바위섬 꼭대기에는 흙이 하나도 없는데도 바위틈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키는 작지만 가지가 무성했습니다. 그걸 보고 `너는 장하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바위 꼭대기에 뿌리를 박아 가지고, 마르고 그럴 텐데도 청청한 가지였어요. 가만히 살펴보니 그 아래에 강이 흐르고 있었어요. `아, 바위틈을 통해 가지고 끊임없이 수분을 흡수할 수 있는 길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그래야 되겠다는 것을 생각 했다구요. 그 무엇인지 모르게, 남들은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생명의 보급선을 가지고서, 지극히 좁고 지극히 가늘지만 그것을 통해서 보급되는 그 여력으로 저렇게 푸를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도 그렇게 푸르게 될 것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핍박받으면서도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나온 거예요. `십년, 백년, 천년이 가도 마르지 않는 영속적인 보급의 수원지를 갖추었으면…' 하는 것을 생각하고 이때까지 왔어요.

자리가 어렵다고 타박하지 말라. 그 어려운 환경에 있어서도 뿌리가 뻗어나갈 수 있는 틈바구니가 있거들랑, 그 밑에 흐르는 지하천이 있거들랑 걱정하지 말라. 거기에서 빛나게 자라게 될 때는 주인집 안뜰에 옮겨질 수 있는, 나무 중 보배의 나무로 등장할 수 있는 길도 있을 것이 아니냐. 안 그래요?

오늘은 유엔 데이(UN day)입니다. 10월 24일을 우리의 숫자로 보면 삼팔은 이십사(3×8=24)입니다. 10수는 하늘수이니까 하늘을 중심삼고 삼팔은 이십사 하게 되면 8수는 이상수, 즉 재출발수의 완성을 표상한 날이기 때문에 10월 24일에 국가적인 유엔 데이가 생긴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우리의 시대적인 위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갖춘 역사적인 자세와 현실적인 입장이 얼마나 중차대하며, 우리에게 맡겨져 있는 이 사명적인 본분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왕지사 본당에 심어졌으면 어렵더라도 콧노래를 부르며 나는 자란다고 자랑하는 자세를 가지고 여러분 자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통일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통일동산에 가을절기 수확이 세계적인 수확으로서 나타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꽃 피우는 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려운 길도 어려운 길이 아니예요. 반드시 있어야 되는 길이예요.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런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극복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대한민국이 3정권을 통해서 핍박해 오는 핍박 도상에서 사라져 가는 사나이냐? 3개국의 시련 도상에서 사라져 가는 사나이냐? 3교파의 반대로 사라져 가는 사나이냐? 안 사라져 간다 이거예요. 그런 시련 과정에서 남아져 가지고 여러분을 남겼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세계에 새로운 광명의 날을 볼 수 있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새로운 자각과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 아침이 되기를 바라서 몇 말씀 드렸습니다.

​기 도

​내일의 계약을 자신 있게 결정짓지 못하는 우리의 행로를, 당신의 무한하신 인내와 극복으로써 다짐지어 주시옵소서. 한날의 고독이 영원을 보장할 수 있는 고독이라 할진대는 그 고독을 피해 가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한때의 수난기가 영원의 터전을 닦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것을 싫다 하는 사람은 고층빌딩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옵니다.

저희들에게 고독이 있고 극복해야 할 환경이 있다 하더라도 나라와 세계가 살 수 있는 소원의 터전이 되고 희망의 보금자리가 된다 할진대는, 저희들이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굳건히 그 입장을 사수하면서 소망과 희망 가운데서 내일의 여건을 남기기 위해 무한히 노력하는 당신의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왕에 출발한 걸음이기에 낙오자가 되느냐, 성사자가 되느냐 둘 중의 하나의 모습이 자기의 운명노정으로 결정지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두렵고 놀라운 길이 오늘날 저희들이 머무르고 있는 이 자리에서부터 연결되어 있는 것을 저희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권고를 받을 것이 아니라, 자주적이요 자결적인 입장에 서서 스스로 격려하고, 스스로 다짐지을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통일교회 시대에 있어서의 봄절기와 여름절기와 가을절기와 겨울절기가 우리 자체 내에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제 새나라 새천지가 다가오는 그 봄동산, 새로운 역사적인 봄절기, 천지가 화합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의 인연을 고대하는 희망의 봄절기를 오늘 통일교단이 가는 길 앞에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있습니다.

그 길을 직행하자면 저희들은 고속도로를 닦아야 되겠습니다. 거기에는 막대한 희생과 막대한 피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될 노정이 있습니다. 이 길을 닦아 놓게 될 때는 수많은 사람들은 딴 길을 가라 해도 가지 않고 스스로 자비를 투입해 가지고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투입시킨 모든 자원을 빼고도 남을 수 있는 영광의 날들이 우리 앞에 약속된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땀을 흘리게 될 때 있는 땀을 다 흘려야 되겠고, 정성을 들이게 될 때에도 있는 정성을 다 들여야 되겠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엄숙한 이런 희생적인 정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면서 자기들도 그런 전통의 인연을 넘겨 받겠다고, 사상으로 그런 길을 가고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달리는 차 속에서도 각오하고 결의하게끔 하는 통일교단에 속한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교회를 희생시키면서 나라의 갈 길을, 나라를 희생시키면서 세계의 갈 길을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닦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살아 있는 눈으로 직시하는 시점에 놓여있습니다.

오늘날은 대한민국의 정세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문제를 좌우하는 기로에 서 있음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엄숙한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 초점에 결합되는 자리에서 결정지어야 할 시점이 우리 목전에 다가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야말로 최후의 결의와 최후의 다짐을 해야 할 때요, 최후의 선서와 최후의 맹세와 최후의 자각과 최후의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인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부족한 모습으로서 망하지 않는 무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역사시대의 어떤 선조들이 갖지 못했던 몇 배 몇천 배의 내적 외적인 결의를 통하여, 혹은 맹세를 통하여 자각하고 선서한 실체로서, 세계사적인 노정에 부끄럽지 않은 자주적인 모습을 갖고 등장하는 통일의 용사가 되어야 된다는 이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는, 벌을 받아도 마땅한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죽더라도 그래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내가 죽은 후에 무덤을 남기게 될 때는 소원하던 저나라 본국의 그 강토 위에, 그 산야가 품어 주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을 각오하고, 천신만고의 수난과 역경의 노정을 서슴지 않고 돌파해 내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오늘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고, 통일의 품에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이 자리를 앙모하고 정성들이는 수많은 자녀들을 당신이 친히 품으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날이 영광의 날이 되게 하시옵소서. 한국을 세계 각국들이 앙모할 수 있는 기억되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시대적인 우리의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저희들이 이제 엿볼 수 있는 이 자리에 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기쁨으로 기쁨으로 기쁨으로 달려가야 되겠습니다. 생명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기쁨으로 넘어야 할 운명길을 남기고 가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