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늘은 1971년 1월 31일, 벌써 새해 새달의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성일이오니 이 아침, 당신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저희에게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역군들이 남겨진 복귀의 노정을 침착하게 확실히 달려가야 할 때는 지나고 있습니다. 서둘지 않으면 안 될 촉박한 시기가 저희 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 느낄수록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교회면 교회, 나라면 나라가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비상사태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이제야말로 저희들이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할 때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도 찾으시고 그렇게도 고대하시는 승리의 나라를 저희들이 찾아 바쳐 드릴 수 있는 그때와 그날을 위하여 총진군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저희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절감하여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자기 개체만을 위해 사는 저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나라와 세계를 위하고 아버님을 위해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저희들이 이 사명을 감당해내는 것이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부르신 바의 목적인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이 책임을 스스로 감당해냄으로써 아버지의 신뢰를 받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이곳을 향하여 아버지 앞에 마음 모아 축수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은 물론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긍휼히 보시어서 자비롭게 그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또한 그들이 남아진 복귀의 한스러운 길을 다 거쳐가는 데 있어서 핍박과 외로움이 닥쳐 오더라도 참고 견디어낼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저희 앞에서 홀로 사탄과 싸워 나가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일상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편히 모셔야 할 아버지께서 지금껏 쉬지 못하고 계시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의 생애를 다짐하면서, 아버지 앞에 위신과 체면을 세워 드림으로써 자녀의 도리를 다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거룩한 이날을 맞이하여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늘 같이하여 주옵소서. 이들과 같이 살고 이들과 같이 일하고 이들과 같이 싸워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얻은 그 승리는 당신의 승리요, 그 승리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그러한 증거적인 실적을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높으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특별히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도 외로운 자리에 있지만, 아버지께서는 더 외로운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 외로움을 극복하며 싸워 나가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내일을 기해 새로운 달을 맞게 되오니 새로운 달에도 한 날을 통해서 기념할 수 있는 한 달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마음으로 이 시간, 한국 식구들 뿐만 아니라 일본 식구들까지 모였사오니 아버지, 여기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수택리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전체 환경과 전후의 모든 인연을 아버지께서 직접 인도하심으로써 승리와 통일의 한 터전이 되게 하시어서 만민이 이곳을 흠모할 수 있고, 또한 이곳이 아버지의 뜻의 판도를 넓힐 수 있는 절대적인 한 기관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2월에 저희들이 계획하는 모든 일이 이 나라 이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로서, 이것을 이달에 결정지어야 할 소명으로 받았사오니, 아버지께서 계획하시고 소망하시는 뜻을 기필코 성사시켜 드리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어려움이 있거든 그 어려움을 제거시켜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내달에도 그렇게 같이하여 주시어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세움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수 있는 2월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50세를 넘기고 새로이 51세가 되는 기념의 한 날을 맞이하는 수많은 당신의 자녀들 위에 복을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하나의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어 이 민족이 새로운 말씀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어 새로운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낼수 있는 1971년도가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0년대를 향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는 저희 단체에 아버지의 기쁨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소망을 향해 나가는 길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숨어 있는 자녀들을 불러 일으켜 세우시어서 아버지의 소원하시는 뜻앞에 귀일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아진 복귀의 사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서로서로 협조하고 자기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아버지 앞에 영광이 될 수 있는 터전을 넓혀 가는 데 있어서 불가결한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 앞에 본이 되고 세계 앞에 본이 되는,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증거적인 존재로서, 아버지의 사정을 느끼며 아버지의 동정과 인도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마음과 몸을 완전히 보시는 아버지시여 ! 아버지를 향하여 흠모의 마음이 사무쳐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사모의 심정이 나날이, 시간시간마다 사무침으로써 저희 자체를 수습하여 아버지의 마음속에 잠겨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자체를 아버지께 온전히 바쳐 드림으로써 책임 다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향한 사모의 심정이 저희의 모든 생활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아버지를 빼놓고는 살 수 없고, 아버지의 경륜의 자리를 떠나서는 갈 수 없사오니, 아버지께 속하여서 아버지와 더불어 살아가는 귀여운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번에 저희들이 계획하는 행사 위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될 수 있는 승리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끔 아버지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자비로운 아버지의 은사가 저희들에게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971년의 새해가 벌써 오늘로써 1월의 마지막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루하루 생활하는 가운데서 계획을 세우면서 실천하여 나가고 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때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1971년 이 한 해는 이 민족에게도 중요한 해이고,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중요한 해입니다.
우리들이 '때'라는 것을 두고 볼 때 그 '때'에는 하늘의 운세의 때, 개인의 운세의 때, 나라의 운세의 때 등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라는 것은 개인이면 개인, 가정이면 가정,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에 예고를 하고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언제나 찾아오지만 연이어 나가기 때문에, 즉 어제의 계승이 오늘이고 오늘의 계승이 내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때의 확실한 분기점을 인식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그 때가 아침이 될는지 낮이 될는지 저녁이 될는지 혹은 밤이 될는지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한 시점을 지나가는 그 때에 자기 스스로 상대적 기준과 생활적인 기반을 맞춘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쳐 온 역사과정에는 섭리의 때가 많았습니다. 개인을 위한 때, 가정을 위한 때, 민족을 위한 때, 국가를 위한 때 등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삼고 그런 때도 있었지만 수많은 국가의 전후좌우를 중심삼고 볼 때도 그런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가 그 배후나 전후 관계에 있어서 지나가는 필요 적절한 때에 맞추어 가지고 과연 그 때가 그 민족이 맞이할 수 있는 때요, 그 때의 시점이 오늘 하늘의 운세가 찾아오는 때라는 것을 알고 그 때를 맞이한 적이 있었느냐 할 때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대부분 어느 한 때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예언한 그 때는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오는 것의 중심은 몇 달 며칠 동안이 아니라 하루의 어느 한 순간 바로 한 때의 초점을 중심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분수령과 같은 한 시점을 넘어가는데 거기에 정확히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은 대부분 이루어졌지만, 거기에 대해서 직접적인 시대에 그 때를 알고 거기에 대비하여 상대적인 입장에서 맞이하여 이루어진 사실은 실로 적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때를 지나쳐 버리고 나서야 '아, 그때 봄이 왔었구나. 우리 나라에 좋은 운세가 왔었구나. 어느 누가 예언했던 그 때가 지나갔구나' 하면서 지나간 때를 회상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했던 그 때를 지나쳐 버리고서 그때를 다시 회상하는 것이 늘 우리 인간이 생활해 온 방식이요, 지금까지 엮어온 인류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 자신들의 일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일생에 있어서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점이 어느 한때를 중심삼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날을 중심삼고 그 때가 반드시 찾아와서 고개를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를 우리가 즉각 발견해서 맞출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시점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정확히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그날을 준비해 오신 하나님 앞에 결정적인 자리에 설 수 있는 상대적인 그 시점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 할 때 받아야 할 그 사람이 시간에 맞추어 정성을 다해 양 손을 내밀어 주시는 그것을 받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번번히 인간에 대해서 섭리의 뜻을 추진시키지만 인간이 그 때를 정확히 알아서 섭리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됩니다.
인간은 일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하늘의 은사의 때가 오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하여 놓쳐 버리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 때를 바라보고 그 때가 언제 올 것인가 하고 기다리면서, 하루를 다짐하고 한 달을 다짐하는 가운데 그러한 때가 언제 지나갈 것인가를 마음을 통하여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만일 그 때가 지났음을 며칠 후에라도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자기 스스로 책임을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그 때를 놓친 것에 대하여 섭섭한 마음으로 지나치셔야 하겠지만 그 모습을 보시고 그 섭섭한 마음을 돌이켜 다시 그 때를 연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연장시켜 주실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비록 그 때를 알지 못하고 보냈지만, 지나쳐 버린 후에라도 그것을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바랄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은 제 1차의 때는 지나갔을지라도 제 2차의 때를 다시 준비하여 그 길을 개척해 주시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일생을 중심삼고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필요적절한 하늘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하셨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에게 상관하지 않고 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몇 번이고 몇 수십 번이고 우리를 위해 찾아오셔서 손을 내밀어 무엇이든지 주시려고 하지만, 그것을 받아야 할 우리들이 그 박자에 맞추어 가지고 받아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입장이 된다는 것은 심히도 어려운 문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는 조심하고 그 때가 언제 올 것이냐, 그 때가 밤이냐 낮이냐, 혹은 내가 길을 가고 있을 때냐, 일을 할 때냐 하는 문제를 수시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가 왔을 때는 자신 스스로가 기쁜 마음으로 그 때를 맞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맞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선한 자리에서 그러한 때를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악한 자리에서 맞이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하면서 그 때를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의 여러 사정을 볼 때에 하늘이 마련해 주신 그 때를 배반하고 무시하면서 놓쳐 버린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때가 몇십 번, 몇백 번 있었지만 그 때를 놓쳐 버린 것입니다. 그러고도 그런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다시는 새로운 때를 허락하시지 않고 다시는 준비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매일매일의 생활이 얼마나 신중히 해야 하는 생활이요, 하루하루의 시간시간이 우리의 운명의 힘줄을 당기는 얼마나 중요한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때가 매일매일의 시간을 통해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하루 한시간도 마음을 놓고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놓아 방심하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졸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간이든지 어느 때든지 또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상대를 통하여서든지 그 때에 대한 것을 가르쳐주고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서 움직이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정성들여 가지고 스스로가 마음을 통하여 그 때를 안다든가 혹은 어떤 사람, 어떤 시간권내의 환경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때와 인연을 맺겠다고 자기 스스로 바라고 스스로 찾는 마음을 갖고 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일생 동안 그 때를 적중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시간은 틀림없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중요한 시간은 지나간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수천 대, 수천만 대의 선조가 있고, 그 선조들이 바라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선조들은 바라던 소원이 그 일대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반드시 후손 대에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들이며 그 때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조들이 정성들인다고 해서 찾아오는 그 때를 그 후손이 맞아 가지고 주인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선조들이 자기 후손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또 그들이 이 땅 위에서 선한 일을 하고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후손을 통하여서 그 때를 주려고 하지만, 그 후손이 그 때를 맞이하여 하늘의 영광의 실체로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수많은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 거기에는 수많은 선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민족을 중심삼고 보면 수많은 애국자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나라를 위해 하늘 앞에 호소하고, 나라를 위해 하늘 앞에 기구한 사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수많은 선지자와 애국자들이 소원하던 것이 때를 맞이 하여 우리 앞에 찾아왔지만 그것을 우리 혹은 후손들이 그 때를 맞아 우리 민족의 것이나 후손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심히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후손들은 번번이 그 때를 놓쳐 버리고 맙니다. 대한민국에 백 명의 선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백 명의 선한 사람 전체 운세를 합해 가지고 그것을 그의 후손이 받을 수 있게 하면 좋겠지만 번번이 그 때를 놓쳐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는 특정한 하나의 무리를 통하여 이것을 계승시키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이 바라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종족들이 합하여서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종교단체라든가, 대한민국에 있어서 하늘 앞에 특수한 사명을 짊어진 종교단체를 통해서 수많은 선한 사람이나 애국자들이 세웠던 선의 공적을 세우면서 그들이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주고 그 민족으로 하여금 하늘의 운세를 맞게 하려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종교를 중심삼고 사는 사람은 그래도 그 나라와 그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정성들이려는 마음의 방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리들을 통해서 연결시키려 하는 것은 때를 알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많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무리를 통해서 연결시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그 나라의 애국자들이 정성들여 가지고 바라던 것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그 나라의 종족들이 받아들여서 계승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 때를 알지 못하여 번번이 놓쳐 버리고 계승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국가를 대표한 종교단체를 통해서 그 모든 것을 총합해 가지고 국가의 운세를 주려고 하시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종교 단체의 지도자, 종교인이 있느냐 할 때 있다고 대답하기가 심히 어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서 선한 공적의 터전을 쌓아 놓은 사람과 관계맺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래도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사람들이 종교권내에 많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 운세가 이 땅에 찾아오는 데 있어서도, 하늘의 운세가 천지에 찾아오는 데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선한 선조들이 선의 공적을 세워 그 때가 찾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그 때를 기쁨 가운데에서 맞아들이지 못하고 번번이 놓치는 실수를 범해 왔습니다. 그렇게 인간들로부터 서러움을 당해 나오신 하나님은 될 수 있으면 세계 운세를 세계를 대표할수 있는 어느 특정한 종교를 통해서 연결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방향입니다.
그런 세계적 운세가 자기 종교 단체를 통해서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종교 단체에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심히 적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그때가 이 때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심히 적다는 것입니다. 제삿날이면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있어야 되고, 그 시간에는 제사에 맞는 규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간권내에서 이런 은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으로서 하나의 예(禮)를 갖추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예를 갖춘 종교단체나 종교 지도자가 없다면 하늘의 운세가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번번이 놓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어떠한 종교단체가 한 민족을 대표하여 세계 운세를 맞아들여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차, 2차, 3차 계속 놓치게 되면, 그 운세는 다른 종교단체 또는 다른 민족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양심적으로 생활하는 사람, 혹은 그 무엇인가 새로운 섭리가 자기와 자기 가정과 인연맺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찾아오는 배후의 복이라는 것은 자기 선조나 자기 민족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전체의 선한 사람들이 소망하였던 전체 운세가 어떤 특정한 도인이라든가 정성을 들인 사람을 중심삼고 전부다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 시대에 있어서 세계적인 천운을 맞이할 수 있는 높은 심령 기준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여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 길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그 시대의 대표자가 있으면 하나님은 기필코 그 사람과 관계를 맺어 가지고 미래의 때를 예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 때가 오게 되면 하나님은 그 민족의 운세뿐만이 아니라 국가와 세계의 운세가 온다는 것까지 그 사람을 통하여 예고하게 하고, 그 사람을 통하여 예언하게 하지만 그 때를 정확히 알고 맞아 가지고 그 때와 인연짓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때를 예언하는 것은 쉽지만 그 때에 맞춰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시대를 상속하게 해서 땅 위에 하나의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심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종적인 역사가 횡적으로 탕감복귀되어 나간다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 교리입니다. 6천년 역사를 오늘날 평면적인 시대권내에서 횡적으로 탕감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6천년 역사를 보게 되면, 하나님은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 몇백 년 몇천 년을 중심삼고 나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종교를 세워 가지고 싸워 나온 것은 메시아 한 분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그런 남자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수천년 동안 준비해 나온 것이 종교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사명을 해야 할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에 그 중심인물이 와야 한다는 사상이 재림사상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이란 어떤 분이냐? 하늘땅이 소원하던 전체 운세를 맞아 가지고 그 운세를 어느 한 때에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땅 위에 보낸 대표적인 분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서 그분을 대표적인 가치의 존재로서 맞이할 수 있고, 그 때 앞에 있어서 틀림없이 상대적 입장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느냐 할 때 그것은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번번이 하나님의 역사를 놓쳐 버린 것을 후회하며 그것에 대하여 스스로 탕감해 가지고 그 때의 인연을 인간과 다시 관계맺게 하기 위해서 사명을 다하려 하는 것이 그 시대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할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진 교회가 통일교회요, 그러한 사람이 이 통일교회를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이라 하면, 여기에는 개인적인 때를 어떻게 맞추고 또 가정적인 때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씨족이면 씨족, 민족이면 민족, 국가면 국가, 세계면 세계를 그 때에 맞추지 않고서는 이 땅 위에 결정적인 기반을 닦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 통일교회에 다님으로 해서 통일교회 자체 내에서 내적으로 뒤넘이쳐 나가 하나님이 주시하고, 세계가 주시하고, 영계가 총동원하여 주시하는 그 때에 진실로 자기 자신이 보조를 맞출 수 있게 해 달라고 정성을 들이고, 또 '하나님이시여, 지금까지 이 때를 바라고 나오시던 당신의 그 뜻을 우리 교단과 더불어 오늘 이 땅 위에 이루소서' 하며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의 섭리권내에 참가할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정확히 그 때를 중심삼아 가지고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정성을 들인다면, 그 때의 사명을 짊어지고 책임다하는 그 중심존재와 더불어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1차 2차 3차 회수를 거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때의 혜택을 받으므로 하나님이 그 일대의 기반으로써 인정해 주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복의 줄이라고 할까, 하늘의 운세의 줄이라고 할까 하는 줄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줄을 중심 존재와 내가 서로 잡아 당겨 줄이 늦추어지지 않고 팽팽하게 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그 자리가 얼마나 복스러운 자리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통일교회가 가는 길과 더불어 자기의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하면서 하루하루 시간시간을 그 때에 박자와 도수를 맞추기 위해서 정성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은 통일교회의 운세와 더불어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따르는 사람들도 가다가 지쳐서 쓰러질지 모르지만, 그 중에서도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 때에 맞추기 위해 정성을 들인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은 하루아침에 다 쓰러져 버린다 할지라도 그 사람만은 남아질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여러분들에게는 '내가 그 때를 알아 가지고 그 때에 틀림없이 맞추었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을 여러분 일생에서 과연 몇 번이나 맞추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개인의 때도 맞추어야 되겠지만 가정의 때도 놓치지 않고 거기에 맞추어야 됩니다. 또, 가정의 때도 맞추어야 되겠지만 종족의 때, 민족의 때, 국가의 때도 맞추어야 합니다. 그 때를 내가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때는 하나의 분수령과 같은 하나의 선을 중심삼고 넘어가는 겁니다. 그것은 똑딱하는 순간입니다. 한 시간권내면 한 시간권내에서 넘어갈 것이며 세 시간권내면 세 시간권내, 24시간권내이면 24시간권내에서 넘어갈 것입니다.
그것을 내가 그 24시간권내에서 열 두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혹은 여섯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세 시간권내로 압축시켰느냐, 아니면 바로 '이 시간이다'라고 할 수 있는 순간에 때를 맞추었느냐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중심삼아 가지고도 등분적 구분(等分的 區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내 일생에서 이 때를 정확히 맞춰 '아버지이시여,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할 수 있는 아들의 사명, 딸의 사명을 자기 일대에서 얼마나 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잔치집에 갔다 하더라도 잔치하는 그 시간에 맞춰서 동참하지 않았다면 잔치를 치르고 보았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집 옆을 지나가던 행객이라 하더라도 그 집에서 잔치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 잔치에 동참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섭리의 도상에 있어서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때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 때를 알고 정성을 들이자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려면 때를 맞춰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무턱대고 정성을 들여서는 안 됩니다. 정성을 들일 때는 그 때가 어느 때인가를 알고 그 때에 맞춰서 온갖 정성을 들여 가지고,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야합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때에 대한 정확도를 알아 가지고, 그 때에 맞추어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섰다는 것은 지극히 귀한 사실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왔지만, 그 뜻을 받들어 나오면서 여러분 자신이 자랑할 수 있는 그런 때를 얼마나 맞췄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에게는 40일 전도의 때, 혹은 7년노정의 때가 있습니다. 7년노정의 의의를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는 여러분이 가야 할 탕감의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을 중심삼고 저울눈과 같이 여러분을 앞놓아가면서 여러분의 생활에 맞춰지기를 바라는 그런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의 눈앞에 움직여 나가면서 여러분과 맞춰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있는데, 여러분은 상대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느껴 보았느냐 할 때 번번이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다 하는 자리에서 그 때를 맞추었다 할 수 있는, 지극히 심각하고 긴장되고 노력할 수 있는 그 순간을 7년노정이면 7년노정 가운데 가져 보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내면서 그저 그날도 그날이요, 금년도 작년과 마찬가지요, 섭리의 때가 발전한다고 하지만 거기서 거기라고 하는 사람은 떨어지는 낙엽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생명의 인연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을이 되기 전에 떨어지기 쉬운 낙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에 대해서 더 생각해야 합니다. 아침이면 밥을 먹는 때가 있습니다. 밥을 먹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기 시작한 때, 한창 밥을 먹는 때, 밥을 먹는 것이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때를 매일매일 맞춘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의 때도 우리의 생활과정을 통해서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번번이 놓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무턱대고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어느때일 것인가를 알고 그 때에 맞춰 목표를 정해 놓고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세계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들여야 됩니다. 지구상에 수십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때 그 순간, 그 초점을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집중해서 정성들임으로써 그 정성의 도수가 수십억 인류 앞에 으뜸이 되게 될 때, 하나님은 그와 더불어 관계를 맺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신앙노정에서 우리들은 먼저 잘했다고 자랑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뜻을 중싱삼고 이렇게 움직였더라도 그것은 절대 자랑거리가 못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섭리역사는 개인적인 때에서부터 가정적인 때,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로 이렇게 발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발전해 가면 갈수록 하늘의 때는 더 큰 데에 목표를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보다 더 큰 때가 찾아오면 지금까지 갖춘 때를 기반으로 하여 어떻게 연결짓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과거보다도 현재에 더 심각하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때를 바라고 나가는 우리 신앙자의 태도는 이래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10년간 하나님을 믿고 20년간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 생명이 하늘과 더불어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그 순간이 언제였더냐, 하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나님이 사명적인 분담을 자신에게 상속시켜 주는 시간이 언제였더냐고 할 때, 그저 그래하면서 어물쩍 한다면 그것은 그냥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섭리의 때는 개인적인 때, 가정적인 때,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로 단계적으로 발전의 도를 높여 가며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거기에 어떻게 보조를 맞춰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하거든 그 때를 중심삼은 제사장의 책임을 진, 시대적인 책임을 짊어진 중심 존재와 일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그 때를 가리지 못하게 되면 그런 사명을 책임진 자와 더불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성을 들이면 나도 정성을 들이고, 그가 심각하면 나도 심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심각한 것은 이웃 사람이 아닌 나 대신 심각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의 호흡이나, 그의 뛰는 맥박에까지도 나를 일치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입장의 사도들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 때의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예수님의 30여년의 생애를 총결산짓는 시간이요, 4천년 이스라엘의 역사가 비운의 역사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고비의 때였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예수의 수난길에 동참할 수 있는 단 몇 시간 단 몇 초라는 시간은 둘도 없이 귀중한 때요, 하나님을 맞이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인을 받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이 때를 놓침으로써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한이 아니라 만민의 한으로 연결되어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주려고 했던 전체의 복을 뒤집어 엎을 수 있는 구렁텅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때 대표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던 사도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했었는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의 폐단은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일을 하고,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일을 하고, 또 우리는 우리대로 갈 길을 가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 이 사고방식이 아주 틀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가면서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때를 맞추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맞출 것이냐 하면 민족사를 중심삼고 전 세계의 운세와 더불어서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맞춰지게 하는 것입니다. 출발한 그 각도는 다를지라도 진행하여 어느 한 초점에서 상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치라이트를 양쪽에서 비추면 서로 교차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 지점에서 맞추어져서 교차되는 그 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방향을 갖추더라도 한번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교차되는 지점에 들어가 이곳이 내 자리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빛나는 그런 자리에 서야 스스로의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교차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생애노정에 뜻과 더불어 어떻게 보조를 맞추어 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오래된 사람들을 보면 자기들 멋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선생님과 무슨 관계가 있고, 통일교회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늘의 때에 대한 생각은 다 떠나가고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가 하며 자기 생활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때와 관계맺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쉬워하고 아무리 한탄하더라도 하늘의 때를 맞는 그 가치 있는 자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광경이 오늘날 여러분이 생활권내에서, 무심하게 생활하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여러분의 선조들은 여러분이 거기에 동참하기를 얼마나 바라겠어요? 여러분 자신 일대에 있어서도 그 때를 놓치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원통한 사실이냐는 거예요. 그런 때가 여러분의 생애 노정에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분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올 수 없는 중요한 때가 여러분 생활권내에서, 시간권내에서 자꾸 넘어가는 것을 스톱시켜 가지고 내 생활과 더불어 내 시간권과 더불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 이상으로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고 주일이면 주일의 공식집회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느냐 이것입니다. 이런 것을 등한히 하는 여러분의 행동이 스스로가 때를 놓쳐 버릴 수 있는 행동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 한 때를 위해 찾아오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한 때를 맞게 하기 위해 수천년간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 피의 대가, 희생의 대가를 치르시면서 탕감노정을 개척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걸어오신 한스러운 노정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한스러운 노정을 거치시면서도 삼천만 민족을 대표한 무리들을 천운과 인연맺게 해서, 그것을 온 세계 앞에 연결시키신다는 엄숙한 과제를 붙들고 나오신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여러분은 그 시간이 단축되기를 바라면서 '하늘이여, 제가 여기 있으니 저와 더불어 같이 가시옵소서. 저도 그 때를 맞게 해 주시옵소서' 하며 아우성쳐야 하고 또 그만큼 수고하시는 하나님에게 보조를 맞추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꿈도 꾸지 않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여러분은 얼마나 생활을 낭비하고 허비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원통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조들만큼 수고하지 않아도 그들이 쌓은 공적(功績)의 터전으로 말미암아 그들 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영계에서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는 선조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여러분을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해야 함은 물론 과거의 선조들을 해방해야 하고, 더불어 세계적인 운세를 연결시켜 이 시대의 인류를 해방시켜야 할 엄숙한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고한 터전을 갖추어서 선한 후손들 앞에 상속시켜야 할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비록 지금 서 있는 자리는 한 곳이요, 서 있는 사람은 한 개인이지만, 여러분 개체는 새 시대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합적인 중심의 가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활은 공적인 생활 중에서도 공적인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개인적인 때를 놓쳐 버렸으면 가정적인 때를 맞추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복귀노정은 개인적인 때, 가정적인 때,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 국가적인 때, 세계적인 때로 확대되어 나갑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인적인 때, 가정적인 때를 놓쳤으면 종족적인 때, 민족적인 때를 향해서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 민족적인 때에서 국가적인 때를 향해서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때가 언제일 것이냐? 지금까지 정성을 들이지 못하여 그 때를 놓친 것에 대해 서러움을 느끼고, 한스러움을 자탄하면서 이제라도 한 때를 갖추어 가지고 과거에 하나님을 서글프게 했던 모든 내용을 앞으로 오는 그 한 때에 있어서는 몇십 배의 기쁜 마음과 환희의 심정을 가지고 그 때를 이어받음으로 말미암아 탕감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간시간을 투철하게 생활하지 않고서는 그날이 의의있게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일입니다.
언제나 그 때를 맞추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밤에 잠을 자더라도 심령적인 안테나를 그곳을 향해서 맞추어, 하늘의 박자에 맞출 수 있는 공적인 입장이 되어 가지고, 자기의 고집이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은은하고 평화스러운 가운데, 마음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느낀 감정을 통해서 가려고 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내온 하루면 하루의 생활을 총평가하고, 한 달이면 한 달을 총평가하여 지난날의 때가 오르막길이냐 내리막길이냐 하는 것을 수시로 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올라가는 길이라면 오는 때를 어떻게 맞이하고, 내려가는 길이라면 제 1차의 때는 지나갔으니 제 2차의 때를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지나간 달이면 지나간 달을 돌아볼 때 내가 부족하여 그 때를 놓쳤다면, 이제 배가의 노력을 하여 앞으로 올 제 2차의 때는 필시 놓치지 않고 정확히 적중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 누가 그 때에 맞춰 적중시킬 것이냐? 그 누가 그 때에 맞추어 갈 것이냐? 만일 여러분이 못 맞추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서라도 그 때는 맞춰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그런 사명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연결되는지도 모릅니다. 남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같이 보이고, 웃음거리로 보이고, 교회에 있는지 없는지 유명무실하고 무가치한 존재와 같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을 통해서 천적인 때가 넘어가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때가 넘어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발판 혹은 징검다리와 같은 사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일이 어디서 벌어질는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특별히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고 보조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자신이 기도해서 받은 것 이상으로 여기고 묵묵히 실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외적으로는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 앞에 찾아온 운세의 줄을 감아 쥐어 가지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맞추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누구보다도 영리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역사가 지금 이 과중에서도 계속 엮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여러분이 생각하지 않는 과중에서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에서 그런 일이 결정되어 나가는데 밖에서 아무리 무슨 일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때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를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가 때를 아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빚진 사람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자유 분방하지만 나의 주장을 갖고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 때가 오기 전에는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 올 것이냐? 그 때를 놓치게 되는 날에는 하늘땅이 뒤넘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민족의 운세와 더불어 때를 맞추어 가지고 조정하여 그 한 시간권내로 압축시켜 가지고 그 클라이막스 되는 때를 알아서 거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오게 되면 그 때를 통일교회 전체의 때로서, 전국 식구의 때로서, 세계에 널려 있는 전식구의 때로서 맞이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지도자인 선생님의 욕망인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여러 분들에게 특별한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보조를 맞추게 되면 복을 받는 것이요,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탄식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나는 나의 있는 정성을 다해 이렇게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통일교회의 사람 가운데 있다 할진대는, 그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일치화되는 기준이 어느 정도냐, 또 그 수와 양에 따라서, 천운을 얼마나 많이 흡수하느냐에 따라서 지상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넓은 터전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이 좌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넓은 터전이 되지 않더라도 선생님은 개인을 중심삼고 그런 발자취라도 남겨 가지고서라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느 때, 어느 시간에 그러한 일이 교회면 교회, 선생님이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뒤넘이치면서 발전의 도수를 더하여 나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온갖 정성을 들이고 온갖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이렇게 비운의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도 오늘날 이만한 기준까지 발전해 나온 것은 여기에 때를 맞추어 나온 여러분의 실적이 컸기 때문이냐, 선생님의 공적이 컸기 때문이냐 할 때 내심에 있어서 선생님이 때를 맞춰 나감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때를 맞추기가 지극히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면 안팎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책임을 진 중심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러분의 생활 전부를 보고하려고 하고, 그의 감정권내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사실 교회에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이 교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생각될는지 모르지만, 그 어떠한 곳보다도 오고 싶은 마음의 집이요, 자기 전체를 부정하더라도 여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깃들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오래된 사람에게 그러한 감정이 없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때의 운세와는 먼 거리에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때가 수습되고 때가 진척되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지금 선생님을 가까이 모시고 그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해서 통일교회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요, 때의 협조자냐 하면 그것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느 시간에 그 때가 내 옆으로 지나가고 있느냐, 앞으로 지나가고 있느냐, 근처를 지나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거머쥐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번번이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여러분 자신을 비판하라는 것입니다.
내 일생의 신앙길에 있어서 나의 때가 어느 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때가 있는 줄 알았다면 온갖 정성을 다함으로써 선생님을 통해서 특별한 지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시를 받는 데 있어서는 얼마나 심각하냐, 그 가야 할 길을 대해 얼마나 심각하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에 대한 책임을 명령받은 사람으로서 얼마만큼 심각하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책임 맡은 그 일은 그 때의 시점과 더불어 반드시 결정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만일 자의에 의한 비판과 자의에 의한 조건을 첨부시켜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해서 결과되어졌다 하더라도 하늘의 것으로 남아지지 않으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에서 가르쳐 준 바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용이 벌어져서 번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완전히 주고 받을 수 있는 그 때를 맞이한다는 것은 심히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받들고 나가는 사람은 죄인 아닌 죄인입니다. 언제나 남이 모르는 근심을 품고 사는 사람이요, 남이 모르는 외로움을 품고 사는 사람이요, 가고 오는 길 가운데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 때를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입니다. 언제나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면적으로 조정하여 맞춰 나간다는 것은 심히도 어려운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볼 때,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고 오늘날 이만한 단계에까지 올라온 그 배후에는 여러분이 모르는 숨은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어떤 분야를 책임지고 나가 그 일의 발전과 그 일의 성과를 찬양할 수 있는 그 결과를 가졌다 할진대는, 찬양하는 그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그 때를 맞추어 주기 위해 배후에서 하나님이 수고를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이 수택리에 수련소를 지은 것은 벌써 때가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다 할 때는 밤잠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때야말로 정성을 다 퍼부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수십년 아니 일생을 통해 바라던 그 때, 국가와 연결될 수 있는 그 때는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오는 데는 크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이 불 때 일시에 폭풍우가 몰아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바람이 불기 시작함으로써 태풍의 징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 때의 길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심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그 때를 놓쳐 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때는 하늘땅을 대표해서 그가 세워 놓은 단 하나의 때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때가 오지 않더라도 그 때를 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성에 의해서 개인적인 시기에 가정적인 때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중 삼중 몇 배의 수난길을 가면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귀역사를 분립해서 섭리하시고 싶지 않아 하십니다. 한꺼번에 개인, 가정, 종족을 복귀하여 편성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가 되면 먹고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초긴장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일반 식구들은 모릅니다. 그 때가 되면 밤이나 낮이나 있는 정성을 다 퍼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를 놓쳐 버리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때는 한번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국적인 활동을 앞에 놓고 1971년도를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 3년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때임을 선포하고, 선생님은 그 길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금년 1월 8일부터 선생님은 순회를 했는데, 이 순회는 내 생애 있어서 크나큰 투쟁의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달랐습니다.
과거에는 하루에 한 지역에 한번만 가면 되었지만 이번에는 하루에 두 곳씩 갔습니다. 두 곳씩 갔다고 해서 정성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목이 쉬고 지치고 힘이 들고, 아무리 고생이 되더라도 있는 정성을 다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돌아봤는데 첫번이라고 해서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첫번에서부터 싸움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1971년도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가장 귀한 때입니다. 그래서 예년과 달리 복잡한 일을 처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 때를 모르거든 그때를 가려 가면서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을 중심삼고 선생님과 보조를 맞춰 가야 합니다.
선생님은 앞에서 달리고 있으므로 여러분은 뒤에서 짐이 된다거나 갈고리가 되어서 선생님을 잡아당기는 사람인지, 아니면 밀어 주는 사람인지, 또 선생님 가는 길 앞에 장애물을 앞장서서 치워 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더 장애물이 되고 있는 사람인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여러분 자신의 일입니다. 선생님의 측근자면 측근자들이 더 비판적인 입장에서 있는데, 과거에는 용서를 해주며 그들을 대했지만 이제는 직접 일대일로 대하려고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될 때 무서운 때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서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라고 마음대로 동정할 수 없고, 부모라고 마음대로 위할 수 없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때를 맞이하기 위해 이런 냉혹하고 공식적인 원칙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면서, 1971년에는 그야말로 정성을 들여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우기나 국가운세를 중심삼고 하나의 교차점을 맞이하는 중요한 시점에 들어갔습니다. 3년노정이 1970년부터 1972년까지인데 국가 운세나 아시아 정세를 두고 볼 때, 한국의 운세와 통일교회 운세가 교차되어 상봉하는 시기입니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감으로써 상봉할 수 있는 때가 이때라는 것입니다.
정상을 넘어가려면 반드시 3점을 통해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3년노정을 중심삼고 볼 때 금년은 2차 년도에 해당되기 때문에 결사적인 투쟁을 해야 할 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생에서 어느 때가 제일 귀할 것이냐? 금년을 일생에 있어서 클라이막스의 때로 생각하고 그 뜻을 아는 여러분은 자신을 비판하면서 나가야겠습니다. 또한 이 민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 선조의 피를 받은 후손된 입장에서 이 민족 앞에 선조들의 한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두고 볼 때, 위로는 역사상의 선조 앞에 옆으로는 이 민족 앞에 책임을 다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이 한때를 맞이하기 위해 총궐기, 총진군해야 할 때가 지금 이 때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기질이 다를 것입니다. 봄 절기와 같은 사람, 여름 절기와 같은 사람, 가을 절기와 같은 사람, 겨울 절기와 같은 사람 등 각자 다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이 어느 때를 중심삼고 총공세를 해야 하느냐가 문제인데, 때에 대한 정성의 도를 중심삼고 본다면 1971년도는 나에게 있어 어떤 때냐 하면,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맺어 준 귀한 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때이므로, 이 해를 여러분의 생애에 남아질 수 있는 그런 두드러진 때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명길은 여러분 자신이 책임지고 가야 합니다. 밥을 먹는 것도 여러분 자신이 먹는 것이지 남이 대신 먹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소화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세를 져서 몸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모든 것을 영위함으로써 생활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뜻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도 여러분 스스로가 이루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 중요한 때를 놓치지 않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3년노정에서 어느 때가 하나님이 바라는 바를 다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그 때일 것이냐? 책장을 넘길 때에 책장이 90도 각도를 넘어 가는 순간이 있듯이 이 순간이다 할 수 있는 그 때가 어느 때일 것이냐? 그 때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점을 여러분이 생각해 가지고 여러분의 신앙노정에 있어서 그 날들을 덧없이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계곡과 같은 때가 있고 정상과 같은 때가 있는데 거기에서 그 최고 정상의 때를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오게 되면 먹고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심혈을 기울이고 생명을 투입해야 합니다. 투입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100을 바란다면 그 이하로 투입해서는 안 됩니다. 110, 120이상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 때에 무한히 정성을 들여 투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100을 바라는데 120을 투입했다면, 20이 그 사람을 계속 달고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발전해 나가더라도 그는 100의 대가만 청산지어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20만큼 그에게 빚진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를 끌고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 무엇을 바라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정성을 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하늘이 복을 주면 그 복이 그 사람을 치고 가는 것입니다. 그 복은 때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려고 하는데, 정성의 기반 없이 그가 복을 붙들고 있으면 그 복이 그를 치고 간다는 것입니다. 복이 치고 갈 때는 그 사람이 지금까지 닦아 놓은 기반까지 다 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도(道)의 세계에 이런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개인에게는 하나님이 바라는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저사람은 어떠한 타입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하는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언제 내적인 결정이 있어 가지고 관계를 맺게끔 전달되는 기간을 통해서 나에게 미쳐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내용을 알고,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때에 보조를 맞출 수 있기만 하면, 영계에 가서도 지옥에 갈래야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때의 종합적인 운세에 맞춰 움직였기 때문에 거기에 해당하는 자리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자연히 그 자리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가라, 가지 마라'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계에 가게 되면 어떤 기구가 되어 있는 것같이 자동적으로 층층의 계급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무엇에 의하여 벌어지느냐 하면, 하나님 앞에 얼마만큼 공신이 되어 있느냐, 때에 맞춰 얼마만큼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인 여건을 자신의 생애노정에 남겼느냐에 따라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양에 따라 영계에서 처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자는 시간에 그 때가 지나갈지 모릅니다. 노는 시간에 지나갈지도 모릅니다. 혹은 여행하는 시간에 지나갈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반성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지내고 나서 '아버지, 오늘은 이렇게 지냈습니다' 하고 하늘 앞에 보고드리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마음도 살과 같이 그런 촉감을 느낄 수 있고, 영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생활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혼자 가만히 있는데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심각하고 긴장된 무엇이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슬픔이 올 때는 자기 스스로 무릎을 꿇고 통회해야 합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자기가 해야 할 책임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나의 때에 대해 섭섭함을 느꼈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때에 있어서 크나큰 손실을 보았다든가 하는 때이니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해결을 짓고 넘어가야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자기도 모르게 기쁨이 찾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기쁨이 찾아오는 것은 내가 기쁠 수 있는 사명을 해서 그런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께 기쁜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냐,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관계로 찾아왔느냐, 간접적인 관계로 찾아왔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간접적인 관계에 있더라도 그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 가지고 거기에 박자를 맞춰 그 운세, 그 때에 있어서 동참자의 인연을 잃지 않고 나간다면 여러분 자신은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이 황막한 신앙길을 홀로 갈 수 있는 겁니다.
신앙길은 매정한 길이요, 냉정한 길입니다. 에누리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사정을 봐주고 도와주는 경우가 있지만, 복귀의 길에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를 한번 놓치면 그 때는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누구누구에게는 선생님으로서 바라보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어떠한 타입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명을 맡겨야 되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책임자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 스스로가 그 때가 어느 때가 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때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박자를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되기를 바라시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발은 그럴듯하게 했으면서도 하나님이 박자를 맞추려고 하는 때에 다른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출발하지 않은 것보다 못합니다. 완전히 이율배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 뜻 앞에 있어서 이미 실패자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에서는 언제나 조심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자기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종합하여 그 때와 어떻게 주파수를 맞춰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뜻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뜻이 그냥 이루질 것 같아요? 가만히 두면 뜻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 같으냐 말이에요? 뜻은 어떤 동기가 있어 가지고 관계를 맺고 끌어 주기 때문에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뜻은 그냥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냥 된다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하시지 않았을 게 아니예요 ?
이 땅 위에서 그 누군가 이 뜻을 중심삼고 맺어 주고 끌어 주고 밀어 줄 수 있는 발전적인 요인이 되고 그 터전을 마련해 주는 그런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이 섭리의 시대권내로 진척 발전돼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데도 여러분은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시대권내에서 같은 생을 살고 있고, 또 개체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전후관계를 대해 가지고 선생님이 그러한 때를 개척해 나가는데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추에 한이 될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영인들이 이것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원통해 하겠습니까? '내가 이 시대에 바꿔쳐서 태어났으면 안 그럴 것인데…' 그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모르는 가운데 같은 환경권내에 살고 있지만 천지가 갈라지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 곳에서는 여기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는 그와 다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환경권내에서 바꿔치고 서로 옮겨받는 이런 서글픈 일이 지금도 통일교회내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뜻을 대해 나가는 사람은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점점 나아진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더 긴장해야 합니다. 이제는 옛날 같은 핍박도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핍박을 받을 때는 도리어 안전한 것입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때지만 안전할 때는 내가 하나님을 붙들어야 됩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핍박을 받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지만, 핍박이 없을 때는 내가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준 때와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때와는 다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었다 해도 불안한 것입니다. 안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이 나를 붙들어 준 때는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도리어 핍박받고, 외롭고, 서글픈 때가 신앙길에 있어서는 복된 때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의 태도가 자기의 안일을 생각하여, 자기의 출세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터전을 이용하여 자기가 무엇이 되겠다고 바라면 그 모든 것은 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절대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하나님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기를 중심한 계획권내에서는 하나님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이용당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러한 내용을 알고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자신을 재정비하여 정상적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식구들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최고로 바라보는 그 때를 놓쳐 버리고 고립된 입장에 있는 식구가 많다는 거예요.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알고 때를 맞추는 여러분이 되도록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수천년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모진 상황 아래서도 때를 맞추기 위해 마음을 졸이면서 가는 민족이 있게 되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그냥 지나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런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나간다면 비록 수는 적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다른 종교보다도 하나라도 많게 되면 천운은 이 종단을 중심삼고, 세계의 많은 종교, 많은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외롭고 보잘것 없는 무리인 우리를 통해 직행해서 날아올 것입니다.
여기에 보조를 맞추어 그 때를 이어주기만 하면 천상세계의 환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을 초월하기 때문에 환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때를 맞추지 못하면 몇 천년 동안을 또다시 허비할 것이지만, 이것을 맞추게 될 경우에는 몇 천년 승리한 가치로서 천상세계에서는 찬양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런 때를 맞춤으로 말미암아 천상세계에 기쁨을 줄 수 있게 되면, 여러분은 그 기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인이 되고 지휘자가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 보세요.
그런 입장에서 영계에 가게 되면 수많은 영인들이 얼마나 고마와하겠습니까? 과거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얼마나 고마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가는 길 앞에 있어서 환희의 군중이 될 것이요, 찬양의 군중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길을 가는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서 개인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3시대를 단장하고 3시대의 승리권을 이 시대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그야말로 총합적인 생활관을 갖춰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 누구보다도, 현재의 그 누구보다도, 미래의 그 누구보다도 때에 대해서 확실히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충효의 도리를 다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 신자들이 가야 할 신앙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때를 알고 때를 맞추어 생활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 서 있는 아들이 50년 생애를 지내고, 이제 내일이면 51년째를 맞이하게 되옵니다. 반백년 노정 위에서 아버님을 중심한 저 자신의 책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때, 제 개인의 목적과 제 개인의 사명을 자랑하면서 나오지 않은 과거를 갖게 해주신 하늘 아버지 앞에 감사드립니다. 져야 할 십자가가 있으면 그것을 도맡아 지기 위해 몸부림쳤던 과거가 있었던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51세를 넘어 반세기의 한때를 맞이하는 1970년대를 어떻게 갈 것이냐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45세부터 60세까지 15년 기간을 완성기로 정했지만, 벌써 5년을 보내고 이제 10년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10년을 어떻게 결속지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이제야말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자리에서 진정한 효자의 도리를 다해야 되겠사옵고, 충신의 도리를 다해야 될 것을 재삼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50세까지 아버님 앞에 부족함이 있었다면 다 청산지어 주시옵소서. 저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탄식과 한을 품게되고, 도리어 아버지 앞에 원한의 조건이 있었다면, 아버지, 축복의 은사를 배가하시어서 그들 앞에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내일이면 다시 반세기의 내림길을 가야 할 여생이오니, 다시금 아버지 뜻 앞에 각오하고 맹세하지 않으면 안 될 1970년대를 지켜 주시옵소서. 1971년도부터 통일교회는 빛날 수 있는 사명을 다짐하며 가야 할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탕감의 시절을 한과 더불어 보냈기에 한의 날들이 빨리 가기를 바라고 어서 새로운 때가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희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서는 바랄 수 없는 때가 저희 앞에 다가왔사오니, 이 1970년대를 아버지의 뜻과 더불어 충효의 도리를 다할 수 있는 거룩한 기간으로 보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과 이 세계를 아버지 앞에 이어놓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저희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는 세상의 외적인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하늘의 때에 맞추는 거룩한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할 절절한 과정이 저희 생활 가운데에 남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저희와 같이하시고 협조해 주셨듯이 금후의 가는 길 앞에 있어서도 아버지 앞에 서러움과 슬픔을 남기는 일이 없게끔 저희들을 다시 붙들어 주실 것을 바라옵니다. 이렇듯 언제나 아버지께서 일으켜 주시지 않으면 안 될 부족한 저희 인간들을, 아버지, 다시 한 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통일의 무리들을 당신의 마음속에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뜻을 위하여 애절히 간구하고 생명을 기울여 가지고 충성을 다짐하면서, 스스로를 제물삼기 위하여 죽음길을 가고자 하는 무리가 있거든 천배 만배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그들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알게 하시고, 또 아버지께서 버릴 수 없는 자신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그 높고 큰 은사의 터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민족을 버릴 수 없게끔, 스스로가 제사장의 책임과 민족을 연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불리움 받은 통일의 무리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에는 때를 아는 자가 되자고 말씀을 하였사옵니다. 과연 힘든 것이었습니다. 때를 아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인 중의 죄인의 모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외로운 자의 모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슬픈 자의 입장에서, 배고픈 자의 입장에서, 배고픈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그런 사모의 심정을 갖지 않으면 때를 맞춘다는 것이 심히도 어려운 것을 저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일생에 있어서 하늘의 때를 몇 번이나 맞추었으며, 아버님으로 하여금 찾아오셨다가 눈물을 흘리고 돌아서게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효자가 되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효자효녀가 되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효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효자가 되기를 그리워하며 자기 일신을 망각하고 아버님 앞에 몸부림치는 자로서 남아지겠다는 각오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아버님을 따라가는, 때의 사명을 이어받아야 할 아버지의 아들딸인 것을 절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어느 한때에 내가 살고 죽는 문제가 결정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언제나 조심하고, 언제나 겸손하고, 언제나 희생하기 위한 마음으로 나가는 길만이 자기를 보강하고 보호할 수 있는 입장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명령이 있거든 자기의 일체를 망각하고 나서야 할 것이 아버님으로부터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딸의 걸음인 것을 저희들이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1971년 1월을 보냅니다. 이제 내일은 이 해의 2월을 맞는 동시에 역사적인 한 기념 행사를 갖게 되오니, 통일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기원의 한때를 아버님과 더불어 맞이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1971년, 이 해는 50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해요, 통일세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나라를 위한 축복의 터전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되는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하늘길을 가기를 다짐하고 하늘의 갈 길의 터전을 닦기 위해 축복받은 가정의 부인들을 일선에 내세웠습니다. 이들이 이런 사명을 이어받고 때의 계승자가 되기 위해서 나섰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그 생활이 보람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당신의 아들 딸들이 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들 스스로가 실적을 거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버님의 마음을 사고 동정의 인연을 남길 수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온갖 정성과 지조를 다 바쳐 아버님의 한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서글픔으로 빈 아버님의 마음을 채워 드릴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일선에 부인들을 내보낸 당신의 아들들이 밤이든 낮이든 그들의 마음 앞에 빚진 자가 되지 않겠다고, 그들을 통하여 찾아오는 자기 가정의 복을 순수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게 받을 수 있는 축복의 터전을 만들겠다고 온갖 지성과 정성을 다 바치는 아들들이 되게 하시옵고, 그러한 가정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1971년도에 있어서의 저희들에게는 아버님과 더불어 외로운 자리에서 이 나라와 판결을 짓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늘 길을 가면 갈수록 그 길은 언제나 가인 아벨의 투쟁의 길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한때가 지나가면, 또다시 하나의 원수가 가인의 입장에서 저희들을 공박하고 저희의 길을 막지만 저희가 정성을 들여가게 될 때는 맞고 빼앗아 나갈 수 있다는 증거적인 발전적 도상을 바라보게 될 때, 아버님은 과연 불쌍하신 분이요, 하늘의 때를 알고 하늘의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은 아버님이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불쌍한 무리인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님이 그러하시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있는 아들이면 아들, 딸이면 딸을 언제나 동정하고 같은 운명의 환경권내에서 기거 동작을 같이 하게 하시려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한 아버님을 빚진 자리에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위로하는 자리에서 모셔야 할 책임이 오늘 인간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러한 책임을 다하여야 할 사명이 저희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은 스스로의 기쁨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앞날에 찾아올 수 있는 슬픔을 염려하면서 오늘의 기쁨을 억제하여 아버님 앞에 보관시켜 놓고, 미래의 한스러운 길을 탕감해 달라고 다짐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아들딸이 되었다 할진대는 이들이 가는 길에는 발전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러한 생활 터전을 남긴 사람은 승리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러한 길과 이러한 생활을 스스로 기뻐하면서 갈 줄 아는 통일의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때를 맞추고 때를 아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아버님이 찬양하고 영계의 수많은 선조들이 저희에게 영광의 찬양을 돌리면서 이 땅 위의 아무개 이름을 찬양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귀한 무리가, 통일의 무리 가운데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안일한 하루의 생활권을 바라보면서 만족하기보다 가야 할 내일의 탕감의 노정이 가중된 시련무대로서 찾아올 것을 염려하면서, 오늘도 빛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아버님 앞에 남기고 내일의 승리의 조건을 다짐하기 위하여 시련길을 앞당겨서 나갈 줄 아는 거룩한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남아진 때가 저희들을 부르고 있고, 찾아오는 때를 맞이할 수 있도록 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거기에 저희들을 언제나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격자가 되게 하시어서 하나님을 외로이 모시지 아니하고 아버님 앞에 슬픔의 터전을 남기지 않는, 아버님 앞에 기필코 있어야 될 귀한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겠다고 다짐했사옵니다. 그러나 어느 한때에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는 데에 있어서 책임을 다했느냐고 묻게 될 때, 저희들은 아무 책임도 하지 못했다고밖에 할 수 없사오니, 이런 스스로를 비판하고 내일에 있어서는 스스로 비판을 받지않겠다고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때를 아는 자가 되어서 기필코 때를 놓치지 않는, 하늘과 땅이 기억할 수 있는 무리로서 남아질 수 있게끔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