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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갈 길 Ⅱ

일시: 1971.01.08 (금) 장소: 한국 춘천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님께서는 지금까지 기나긴 세월 동안 시련과 고통을 참으시면서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오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과 가정과 씨족과 민족과 국가, 그리고 온 세계가 아버지를 부정하더라도 아버지는 이 인류를 잃어버릴 수 없기에 찾아 나오셔야만 하는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러한 아버지의 입장이 얼마나 외로운 입장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사정을 다시 한 번 동정하고 염려해 드리는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나이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는 춘천지구에 널려 있는 뭇자녀들이 모였사옵니다. 여기에 모여 있는 저희들 개개인의 사정과 심정은 서로 다를지라도 저희들이 필시 가야 할 하나의 목적은 모두 같사옵니다. 아버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버지를 다시 찾아야 되고, 하늘 부모와 관계가 없는 인연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하늘 부모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엄청나고도 엄중한 목적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이 도상에 서서 스스로의 입장을 자각하여 하루하루 개척자의 노정을 가야 할 것을 확실히 알았사옵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개척자의 노정에서 싸움을 계속해야 되겠고, 내일도 또한 그러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오늘날 세계의 그 누구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길이기 때문에, 오늘 저희들이 일생을 걸고 개척해 나가고 있사오니 이 길에, 아버지시여,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외로운 처지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홀로 책임지고 오셨기 때문에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자들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그와 같은 아버지의 동정을 바라고 당신의 자녀들이 이 자리에 다시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은 땅 위에 있는 그 무엇을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엄청난 하나의 목적을 바라보고 모인 사람들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아버지의 슬픔을 저희들의 슬픔으로, 아버지의 기쁨을 저희들의 기쁨으로, 아버지의 소망을 저희들의 소망으로, 또한 악을 대하여 싸워야 할 아버지의 싸움을 저희들의 싸움으로 상속받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러한 저희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 자신의 모습들을 아버지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내오니, 자체자체의 부족함을 관찰하시사 당신 앞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의 요건을 제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은 아버지 앞에 순응할 수 있는 본성이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몸을 통하여 생활과 환경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천의에 의한 천명이 있는 것을 알고 생애를 바쳐 이 길을 가고자 하오니, 아버지시여,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저희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길에 나선 것이 아니옵니다. 저희 자신보다는 가정의 구원을 위하고, 가정보다는 종족의 구원을 위하고, 종족보다는 민족, 민족보다는 국가, 국가보다는 세계, 나아가서는 천주까지 구원하겠다는 엄청난 표준을 중심삼고 나섰사오니, 아버지, 이러한 당신의 어린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천륜의 노정을 앞에 놓고 짧은 인생길을 달려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오늘날 신앙길을 찾아 나온 저희들의 의무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더욱 박차를 가하여서 가정과 종족과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어떠한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저희들은 그 목적의 한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싸우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아버지, 다시 한 번 분부하여주시옵소서.

자기 자신만의 입장을 떠나 아버지의 입장을 옹호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의 자리에 선 모습이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찾아 나오시는 아들의 모습이요, 딸의 모습이 아니옵니까? 그런 것을 알고 그와 같은 자리, 그와 같은 환경을 늘 생각하면서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이 길을 개척해 나오던 이들이 여기에 모였사오니, 이들을 오늘 저녁 당신의 품에 품으시어서 넘치는 사랑과 은사로써 보호 육성하여 주시옵고, 이들과 더불어 동역동사(同役同事)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여기에 모인 이들 가운데는 오늘 처음으로 아버지의 뜻과 인연을 맺게 된 자도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들의 사정과 처지는 각기 다를지라도 생명이 바라는 하나의 고귀한 소원과 목적은 귀일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한 인간의 목적과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목적을 귀일시켜야 될 사명이 저희에게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이들을 버리지 마시옵고, 긍휼하신 당신의 품에 품으시어서 오늘 한 날이 이들의 생활에 있어서 빛날 수 있는 전환기가 되고 빛될 수 있는 영광의 한 기회로 남아질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워하던 마음 마음을 모두 아버지 앞에 풀어 놓고,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는 사연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소망의 터전을 공고히 해야 할 자기 스스로의 입장을 자각하여 자신을 가질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실체가 되어 몽땅 아버지 앞에 바쳐질 수 있는 거룩한 생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을 당신의 장중에 쥐시어서 일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나를 처음 보는 분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얼마나 되는지 봅시다. 남자분들이 많군요. 여기에 처음 온 분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을 대했을 때 하는 것처럼 말을 하게 되면, 잘 이해하지 못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할 수도 없고, 중요한 부분이라든가, 혹은 전체 가운데에서 한토막을 잘라다가 얘기를 하면 서로 연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곤란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처음 온 분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약간 드린 다음에 우리 통일교인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여기에 기성교회를 믿다가 통일교회에 들어온 분들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얼마 안되는군요. 그러면 처음 오신 분들은 대개 무종교자, 그러니까 종교를 갖지 않았던 분들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러니 그러한 입장에서 조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목을 크게 잡으면 그 범위가 커져서 말씀이 장황해 지겠고…. `인생의 갈 길'이란 내용을 가지고 잠깐 얘기해 보겠습니다. `인생의 갈 길', 혹은 `인간의 갈 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행복하지 못한 이 세상

혹자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자기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세상이니 이 이상의 세계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할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렇게 행복한 세상이 못 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섞여 살고 있으며, 망하는 사람과 흥하는 사람이 섞여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한 사회, 복잡한 세계가 되면 될수록 그런 환경을 맞이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세상이 끝날이 다 됐다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 선한 세상 같아 보이고, 또 선한 세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이 선한 세상이 못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도리어 선보다 악이 팽창해 있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들은 선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선한 나라가 되기 전에 이미 악한 나라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모든 나라는 이 악한 세상에서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그것을 소망으로 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라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도 그렇고, 또한 어떤 단체면 단체도 그렇습니다. 그 단체가 선한 자리에 서 있는 단체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다 나은 선한 단체가 되기 위하여 전진해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을 두고 볼 때, 모든 가정들이 다 흥하는 가정이 되면 좋겠지만 우리는 망하는 가정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가정을 영원한 행복의 터전이요, 그냥 그대로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가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선한 가정보다 악한 가정이 많고, 평화스러운 가정보다 불화한 가정이 많습니다. 가정이 그러함과 동시에 우리 개체를 두고 봐도 그렇습니다. 내 개인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행복한 요건보다 불행한 요건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행복하지 못한 인간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이 세계가 행복한 하나의 세계가 되어 너와 나를 초월하고 민족이나 인종을 초월해서 다같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아직 그러한 세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를 두고 염려하는 마음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류가 선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를 형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류가 선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한사람 한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입장에 서서 평화의 동기가 되든가, 혹은 선한 결과의 입장에 변함없이 영원히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아무리 평화로운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체가 선해지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 개체 개체가 선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전체가 좋아지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 개체 개체가 좋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내 개체에 악한 것보다도 선한 것이 많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선을 중심삼고 일체의 생활이라든가, 생애를 영위해 나가야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럴 수 있는 내가 못 됐다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선에서부터 출발하여 선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가면 갈수록 발전이 있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선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악이 와서 짓누르고, 가는 길을 막게 될 때는 그 사람의 가는 길은 뒤넘이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인생을 생각해 볼 때에, 인생 자체가 행복하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행한 인생이요, 인간입니다. 왜 불행하냐? 행복하다면 내가 중심이 되어 사방으로 주고 싶을 때 마음대로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마음대로 받을 수 있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든지 자기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는 행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주고 싶을 때 마음대로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마음대로 받을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으나, 그럴 수 없을 때는 거기에 비례하는 불행이 초래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음과 몸이 싸우는 모순된 존재

우리 인간 자체를 가만히 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선한 요소도 있고 악한 요소도 있는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한 개체를 두고보면 몸이라는 것도 있고 마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과 마음이 언제나 화목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이렇게 가자고 하는데 몸뚱이는 저렇게 가자고 합니다. `난 그렇지 않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마음은 이렇게 가라고 하는데 몸뚱이는 언제나 마음이 가자고 하는 방향에 브레이크를 겁니다. `그리 가지 말고 이리갑시다'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마음과 몸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로 고심했던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서로 하나되지 못하고 하나는 동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다른 하나가 서쪽으로 가려고 하면서 서로 상충된 결과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자고 하는 곳으로 가면 타락한 오늘날의 우리 인간 세상과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이요, 몸뚱이가 가자는 곳으로 가면 타락한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무엇을 먹여 주면 더 잘 먹여 달라고 하고, 놀려 주면 더 잘 놀려 달라고 하며, 남의 것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지고 자기 위주로 하여 나만 제일이라는 식입니다. 남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몸과 반대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남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명령합니다. `남을 위해 살아라. 불쌍한 사람을 도와줘라. 못사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줘라. 공적인 입장에서 대중을 위해 몸을 바쳐라. 몸을 희생시켜라'하면서 마음은 항상 몸과는 다른 방향으로 지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고민하게 됩니다.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는 거예요. 몸은 이렇게 가려하고 마음은 저렇게 가려 하는 가운데에서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혼자 있다고 해서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마음이 `어서 해라. 어서 해' 하면서 좋다고 부채질합니까? 혼자서 살짝 해 버리려고 해도 마음이 `네 이놈, 그렇게 하면 안 돼' 하고 브레이크를 건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명령을 들었으면 몸뚱이는 청천벽력같이 생각하여 `아이쿠 잘못했습니다'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몸뚱이는 `에이, 하려고 했으면 해야지 왜 그러느냐?'라고 하면서 끝내 하려고 할 것입니다. 마음은 하지 말라고 `이놈아, 이놈아' 하는데 몸뚱이는 기필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잘되는 거예요, 못 되는 거예요? 「못 되는 것입니다」 왜? 왜 못 되는 거예요? 「악한 곳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게 왜 악한 곳으로 가느냐는 말입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는데 그것이 왜 악한 데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데로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잖아요? 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걸 왜 악한 곳으로 가도록 놔 두겠습니까? 몸뚱이가 선한 곳으로 가도록 만들었으면 얼마나 편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악에 교육이 필요한가요, 필요하지 않은가요? 악하게 만드는 데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면 자연히 악한 사람이 됩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됩니다. 돼요, 안 돼요? 「됩니다」 저기 할아버지 어때요?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다 보면 악한 사람이 됩니까, 선한 사람이 됩니까? 「악한 사람이 됩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고는 생각지도 못합니다.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됩니다.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악한 사람이 되고 불행해져

그러면 악한 사람이 되면 왜 나쁩니까? 고독 단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무소에서도 제일 악한 녀석은 독방에 가두어 놓습니다. 형무소 안에 또 형무소가 있는데 거기에 가두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악할수록 고독 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악할수록 친구가 많은 거다'라는 말이 맞아요? 「안 맞습니다」 알긴 아는구만. 악할수록 친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에게서는 어머니 아버지도 떠나갑니다. 형님 누나도 떠나갑니다. 동생들도 다 떠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의 사람도 떠나갑니다. 마음의 사람도 보따리를 싸 가지고 떠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모두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도 없어지고 형제도 다 없어지는데, 그런 사람 앞에 나라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있겠어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눈에는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또 나라가 없는데 세계가 있겠어요? 「없습니다」 세계도 없습니다. 세계를 지은 조물주고, 하나님이고, 무엇이고 다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나'만 있습니다. 자기만 있다는 거예요. 자기만 있다고 하는 것은 뭐냐? 자기 한 사람밖에는 없다는 거예요. 자기 혼자밖에 없는 고독 단신이라는 거예요. 세상 만유 가운데 어떤 한 존재가 있다면 그는 그런 사람을 남겨 두고 싶겠어요, 없애버리고 싶겠어요? 「없애 버리고 싶어 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잘 알고 있군요. 그 역시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치우고 싶어하는 거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찬동하는 사람은 그 존재와 사촌쯤 되는 사람입니다. (웃음)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그런 사람을 좋아해야 되겠어요, 미워해야 되겠어요? 「미워해야 됩니다」 얼마나 미워해야 되겠어요? 「최고로 미워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그 최고라고 하는 한계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 한계점은 생명이 다하도록 미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긋지긋하지요? 그런 녀석들은 씨알맹이도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녀석은 장가도 보내서는 안 돼요. 그런 여자가 있다면 시집도 못 가게 해야 한다는 거지요? 「예」 그런데 대한민국에 그런 법이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 법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법이 나와야 됩니다. 사실이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몸뚱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악한 사람이 되는데 그러면 그렇게 되고 난 후에 행복하겠어요, 불행하겠어요? 「불행합니다」 아무리 미남인 남편을 가진 아내라 하더라도 남편이 그렇게 된 후에는 보따리를 싸 들고 도망갈 것입니다. 이혼장은 커녕 소식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또한 그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했다고 하더라도 그 어머니 아버지가 저주하며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망해야 됩니다. 이 천지간에 없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하자는 대로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고 누구나 좋아해

그러면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고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마음을 봤어요, 못 봤어요? 「못 봤습니다」 못 봤는데 어떻게 있는 줄 알아요? 「행동으로요」 행동으로? 「결과를 보고서 압니다」 그렇지요, 결과를 보아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있지요? 「예」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 나쁜 것입니다.

더 세밀히 이야기하다가는 목이 쉬어서 안 되겠습니다. 정초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목이 쉬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목쉰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 실례인 줄은 알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지요? 「예」 목이 쉬지 않은 상태에서 얘기를 하면 좋겠는데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이렇게 목이 쉬었습니다. 용서하라구요. 이렇게 목이 쉬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 목이 아픕니다. 이번에 의정부를 거쳐 왔지만 거기서 목이 쉰 게 아닙니다. 그 전에 쉬었지. 그러니 이야기 팔아 먹고 사는 사람은 불쌍한 거라구요.(웃음)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 즉 마음이 좋은 사람이 있다 하면 동서남북, 사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가져요, 안 가져요? 「갖습니다」 생기기는 박쪼가리같이 생겼어도 마음만은 그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관심을 가져서 뭘 하겠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친구로 삼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은 그 사람을 사위로 삼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꾸 끌어당기려고 합니다. 또, 마음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하고 짝하고 싶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기 딸은 못났어도 잘나고 마음 좋은 사람을 사위로 삼고 싶어하는 것이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요? 「예」 몸도 잘났으면 더 좋겠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잘난 사람을 사위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마음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매부를 삼고 싶어하고 형수를 삼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게 나쁜 생각입니까, 좋은 생각입니까?「좋은 생각입니다」 마음 좋은 사람을 중심삼고는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그 사람과 하나되려 하고, 그 사람을 자기에게 묶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좋으면 좋을수록 더 가까이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 진짜 마음, 참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그를 누구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을까요? 대답해 보세요. 누구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아내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아들 사람 만들고 싶겠어요, 내 사람 만들고 싶겠어요?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전부 다 자기 사람 만들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럼 아들이 자기만 못하다는 말 아닙니까? (웃음)

어쨌든 전부다 좋은 것이 남의 것이 되면 싫은 것입니다. 아들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들도 못 믿을 때가 있습니다. 쌈지 돈이나 주머니 돈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버지 쌈지에 있는 돈을 내 주머니에 넣어 두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누구나 다 그런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요? 「예」 그건 나이 많은 사람이나 나이 어린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더 큰 것을 위해 산다

세상에 양심적인 사람들이 있다 하면, 그 가운데에는 제일 양심적인 사람, 일등 가는 양심적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의 등급을 매겨 보면 일등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사람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위해서 희생봉사하겠다는 사람을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이 더 양심적인 사람입니까? 「세계를 위해서 희생봉사하겠다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등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더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애국자는 못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동시에 다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등급이 결정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일수록 나라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만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사람보다는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사람이 더 양심적인 사람이다'라는 말이 맞아요, 틀려요? 「맞습니다」 이 얘기를 똑똑히 알아들으십시오.

대한민국보다도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이 더 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다 할 때, `나는 그 분을 위해서 희생한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계보다 더 높고 귀한 그 분을 위해 세계를 버리고 나를 희생하겠다 하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희생을 하는 데는 주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좋아요, 아니면 주인이 갖고 있는 물건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좋아요?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알긴 아는구만요.

그러면 세계의 주인, 즉 세계를 지으신 절대자가 있다면, 그 절대자를 위해서 희생봉사하는 것과 그가 만든 피조물을 중심삼고 희생봉사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선한 것입니까? 「절대자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를 버리더라도 이 세계보다 더 높은 분을 위해 생명을 던져 희생봉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양심세계에서도 최고의 권위자가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자리를 바라는 마음

이런 얘기 들으니까 처음 오신 분들 기분 나빠요? `저 양반 별수없구만, 저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을 소개하려고 그러는 거지' 이러고들 앉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할수없어요.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을 하다 보니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이니 나도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문제는 그 중심존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있다면, 여러분은 그를 위해 생명을 바쳐 희생봉사하게 되면 수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심존재가 없는데 그렇게 했다면 아예 왕창 망하는 거예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사위가 된다면 이왕이면 대통령의 사위가 되고 싶어하고 며느리가 되더라도 대통령이 며느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요? 「예」 그거 왜 그래요? 대통령의 며느리가 되면 대통령이 닦아 놓은 모든 기반과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위도 역시 그럴 수 있는 가망권내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없으면 딸이 그 부모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에 사람들은 누구나 대통령이라는 분 앞에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다. 대통령이면 다 잘났어요? 대통령의 아들딸이라고 해서 다 잘났어요? 못났더라도 그러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천지의 주인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천지의 주인이 있다면 여러분의 생(生)에 있어서 제일 가는 원이 무엇이 되겠어요? 그 주인이 여러분의 마음에게 `얘, 마음아, 이 세상에서 제일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마음이 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겠어요?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신의 아들이 되겠다고 할 것입니다. 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그 주인의 아들이 되고 싶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될 수 있다면, 딸이 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소원이 없겠다고 할것입니다.

자격이야 어떻든간에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여자가 시집가는 데도 자기 얼굴이야 어떻든간에 세계에서 제일 가는 미남자에게 가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얼굴이야 어떻든간에 미녀한테 장가를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얘기부터 한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얘기를 안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은 최고입니다.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최고입니다. 나는 남자만 최고이고 여자는 최고가 아닌 줄 알았는데, 여자도 최고가 되는구만.(웃음) 그래야 섭섭하지 않거든요. 그렇지요? 여자도 최고요, 남자도 최고예요. 그러면 이러한 최고끼리 만나게 되면 무엇이 될까요? 최고 부처(夫妻)가 되는 거라구요. (웃음) 둘밖에 없으니까 부처(夫妻)가 되는 거지요. 세상의 남자 중에 최고의 남자요, 여자 중에 최고의 여자가 있다면 그 주인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을까요? 아마도 결혼식을 해주고 싶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럴 거예요.

`이 세상 최고의 남자 등장할지어다!' 또, `이 세상 최고의 여자 등장할지어다' 했을 때 `등장했소이다'하면 그 주인이 `오냐 조금만 기다려라. 얼굴 좀 구경하자' 하겠어요? 아닙니다. `그래 너희들 수고했구나' 하면서 결혼식을 해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을 무엇으로 삼겠어요? 「아들딸요」 아들딸뿐이 아닙니다. 아들딸은 물론이요, 인간의 조상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 인간 조상은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종지조상(宗之祖上)은 오빠하고 누이동생하고 결혼을 했을 것입니다.

그랬을 것 아닙니까? 지금은 뭐 사람들이 너무 많고 복잡하니까 서로 다른 성끼리 결혼을 하지만 옛날에는 어머니 아버지, 즉 인간 조상 둘밖에 없는 데서 자녀가 번식되었으니 전부 다 형님 누나 아니냐 이겁니다.

형님과 누나가 전부인데 일등 미남, 일등 미녀가 따로 있었겠어요? 그들이 세계에서 제일 가는 남자요, 제일 가는 여자였습니다. 잘났든 못났든 모두 일등 미인이요, 일등 미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딸을 낳은 아버지가 `너희들 그저 그렇게 혼자 늙어 죽어라' 그랬겠어요? 「아닙니다」 어떻게 했겠어요? 「오누이라도 결혼식을 해줘야지요」 그렇습니다. 오누이끼리라도 결혼식을 해줘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결혼식을 해줬는데도 그들이 결혼생활을 할 줄 모르면 그것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이 되려면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인생의 갈 길은 인간 혼자서는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인간' 할 때 생각되는 것이 무엇이예요? `사람'하게 되면 몸뚱이를 생각하게 됩니까,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까? 「마음을 생각합니다」 몸뚱이를 생각하지 마음은 무슨 마음을 생각해요. 마음이 이렇게 생겼으니 몸뚱이도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하나요. 얼굴이 그렇게 생겼으니 마음도 그렇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지. `사람'하면 대개 몸뚱이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몸뚱이를 중심삼고 만나 가지고 슬쩍슬쩍하는 패가 있고, 마음을 중심삼고 만나서 살짝살짝 살아가는 패가 있습니다. 두 갈래의 패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이 둘이라는 거예요. 이게 탈입니다. 아까 양심은 항상 최고의 기준, 절대적인 기준을 추구해 나간다고 말했는데, 이 절대라는 말은 둘이라는 말이예요, 하나라는 말이예요? 「하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정말 좋다'할 수 있는 것은 둘이예요, 하나예요? 「하나입니다」 또 `참사랑' 하면 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두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 세상의 몸뚱이를 중심한 길과 마음을 중심한 길, 이 두 갈래 길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는 사람 가운데에는 참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머물러 살다가 죽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을 찾아가야 됩니다. 참된 사람을 찾아가려면 마음이 가자는 곳을 향해 굳건히 가야 합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보장하고, 몸뚱이가 원하는 것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는 요건을 가려 처리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인생행로를 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의 세계, 즉 기쁨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고 참다운 선과 참다운 사람의 가치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성인 현철들이 이 땅에 와서 수고하여 찾으려 한 내용은 하나같이 몸의 사람을 굴복시켜 가지고 마음의 사람이 추구하는, 인간이 가야 할 완전하고 참된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생애를 바쳐 연구하고, 생명을 걸고 싸워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문제를 과학이나 수학처럼 어떤 공식을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풀면 이런 답이 나온다는 식으로 명확히 풀지 못한 채 역사는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 가운데에서 오늘날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 가지고 이런 말을 듣는 것입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살면 불행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여러분 앞에 놓여진 문제, 즉 인생의 갈 길은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인간들의 갈 길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은 인심은 조석변이요 산천은 고금동이라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지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변하기 때문에 마음도 할수없이 따라가므로 마음이 변하는 것처럼 생각될 뿐입니다. 마음은 언제나 선한 편에 서 있는데 변하는 사람을 따라 행동하다 보니 마음도 악하고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 변한다고 말한 것은 잘못 말한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원하는 길과 몸이 원하는 길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마음이 원하는 곳을 향해 가는 길을 보장해 주고 마음이 원하는 뜻을 위해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몸이 원하는 곳을 향해 가도록 유인할 수 있는 여건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선한 세상이 아니라 악한 세상이 틀림없습니다. 무슨 세상이라구요? 「악한 세상입니다」

악의 구렁이가 여러분의 꽁무니에다가 닻을 꽂아 길을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여러분이 가는 길을 틀어막고 있는 원수가 있다면 용서할 수 있어요?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가다가는 말할 수 없는 함정에 빠져 인생의 갈 길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인생과 관계없는 금수와 같은 처량한 운명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생 행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든지 악의 침범을 받지 않고,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주의하고 조심하면서 경계선을 밟고 넘어가야 하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륜도덕이니 무슨 종교니 하는 것들이 나왔지만, 그것들이 인간들로 하여금 이런 길을 완벽하고 틀림없이 가도록 하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실 것인가, 안 계실 것인가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있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통일교회 교인들이야 있다고 말하겠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좋겠어요? 모르는 사람은 귀찮으니까 없으면 좋겠다고 할 것입니다.(웃음) `아, 이거 나이도 많은데 하나님이 있으면 어떡해. 없으면 좋겠다' 그러는 사람도 있을거라구요.(웃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가까울수록 확실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사람의 의식기관도 가까울수록 또렷하게 느끼지를 못합니다. 사람들이 매일 거울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보지요? 산골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매일 보지는 못하겠지만 손으로 쓸어 보기라도 할 것입니다. 어디에 뭐가 묻지는 않았나 하면서 만져 볼 거예요. 그리고 세수할 때에도 물에다 얼굴을 쓰윽 비추어 보지요. 뭐 까만 것이라도 묻지 않았나 하고 들여다본다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 얼굴이 보고 싶은 거예요. 여러분도 보고 싶지요? 나도 보고 싶으니까. 여기에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많으신 분들도 틀림없이 자기 얼굴을 보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보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아가씨들도 자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요? 「예」 거울이 없어서 그렇지, 자기 앞에 잘 보이는 거울이 있으면 쓱 한번 보고, 돌아섰다가 또 보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가지 표정을 지어 보는 겁니다. 웃는 표정도 지어 보고 성난 표정도 지어 보고(웃음) 내 얼굴이 대관절 몇 푼짜리나 될까 하면서 들여다보는 거예요.

특히 아가씨들은 얼굴이 잘못 생겼으면 안 되거든요. 뜯어고치지도 못하고, 그림처럼 지워 버리고 다시 그리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본판이 그러면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잘 생겼으면 좋지만, 못생겼다면 큰 일이라는 거예요. 못생긴 여자들은 자기의 못생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에이' 할 거라구요. (웃음) 내가 여자는 안 되어 보았지만 남자들도 그런 걸 보면 비슷할 것입니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좋은 거울이 있으면 한번 쓱 보고도 다시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서 웃어 보기도 하고, 내 얼굴이 성나면 얼마나 무섭겠나 하면서 성난 표정을 지어 보기도 합니다. 그러는 거라구요.(웃음)

이렇게 두 가지 표정을 지어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자기를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웃는 표정이 좋아요, 성난 표정이 좋아요? 「웃는 표정요」 웃는 표정이 좋지요? 그러면 웃는 표정이 좋아요, 우는 표정이 좋아요? 「웃는 표정요」 웃는 표정하고 우는 표정은 주름살 몇개 차이밖에는 안 나요. 주름살이 약간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차이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의미는 천지차이입니다. 끝과 끝이라는 거예요. 그것 참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거울에 자기의 얼굴을 비추어 보고 `아 이렇게 생겼구나'해 놓고 돌아서서 자기 얼굴을 그릴 자신이 있는 사람 있어요? 화가도 자기 얼굴을 거울에 한번만 비춰 봐 가지고는 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누이동생은 한번만 보더라도 그 윤곽이 확실히 들어옵니다. 들어와요, 안 들어와요? 「들어옵니다」 밤에 봐도 어떻게 생겼는가를 안다는 거예요.(웃음) `어제 시장에 갔을 때 만났던 그 기분 나쁜 사내녀석 이렇게 생겼지. 전에 그 아주머니는 그렇게 생겼지'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은 한번만 쓱 보아도 그 윤곽이 기억나는데 자기 얼굴은 흐리멍덩합니다. 나는 얼굴이 못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은 어때요? 확실해요, 흐리멍덩해요? 「기억이 잘 안 날 정도입니다」 (웃음) 그것은 왜 그러냐? 가깝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려고 한다면 나를 버려라

그러므로 하나되려고 할 때는 내가 없어야 됩니다. 내가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그런 경지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둘이 하나되려 할 때 자기를 고집하면 절대 하나가 못 됩니다. 내가 있는지 없는지, 내가 네 안에 있는지 네가 내 안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희미한 경지가 되어야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와 제일 가까운 것은 바로 `나'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제일 가까운 나를 왜 모르느냐? 만약에 누가 와서 `네 얼굴은 이렇다'고 하게 되면 기분이 나쁠 것입니다. 사람의 기분도 천태만상이거든요. 웃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저씨를 만났을 때 웃는 웃음과 누나를 만났을 때 웃는 웃음의 맛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분석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르다는 거예요. 새콤하든가, 시든가, 짜든가, 시큼털털하든가, 여러 가지 맛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웃는 표정도 천태만상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웃는 얼굴이라도 때에 따라 다릅니다. 눈만 살짝 웃을 때도 있고, 코만 살짝 웃을 때도 있고, 입술만 살짝 웃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귀만 살짝 웃을 때도 있고 머리만 살짝 웃을 때도 있습니다. (웃음) 모두 하하 웃으니까 같게 보이지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포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웃을 때도 천태만상의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한 가지로만 웃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자기 아내가 웃을 때마다 언제나 `하후후'하고 웃으면 어떻겠어요? 한 서너 번, 열 번만 그렇게 웃어 보라구요, 어떤지. 일년, 혹은 십년씩 그걸 보고 살 수 있겠어요? 정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히히히' 하고 웃고. 어떤 때는 `헤헤헤', 어떤 때는 `후후후'하고, 격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맛이 있고 재미가 있지, 항상 똑같으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자기 얼굴이 언제나 똑같다고만 하면서 들여다보면 재미가 없습니다. `어제 아침에 볼 때는 못생긴 것 같더니 오늘 아침에 보니 그래도 근사한 축에 들어가는군' 하면서 보게 되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자기 얼굴을 모르면 모를수록 행복의 요인과 접할 수 있는 인연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와 가까운 상대일수록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 남편과 아내에게 `나는 당신 때문에 당신은 나 때문에 있으니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여자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게 서로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서로를 좋아하며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쿠, 우리 남편은 수염이 있으니 남자지'하는 생각도 안 듭니다. 수염이 났더라도 남자라는 생각이 안 드는 거라구요. 그저 좋기만 하지요. 좋아할 때는 수염 같은 것은 있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만져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화상태라는 말을 알고 있지요? 다 올라갔다가 내려오려고 해도 더 이상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는 상태 말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확실히 아는 거예요, 모르는 거예요? 「모릅니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확실히 아는 것보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을 모실 수 있을 만큼 큰 인간의 마음

하나님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하나님이 먼 곳에 있기를 바랍니까, 가까운 곳에 있기를 바랍니까? 「가까운 곳이요」 하나님은 천지간에 최고의 분이며 양심의 절대자이므로 그 분을 몽땅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나하고 짝짜꿍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겠지만 사람은 자극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과 자기의 마음 제일 깊은 데서부터 얕은 데까지 하나되고 싶어요, 하나되고 싶지 않아요? 「하나되고 싶습니다」 그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까 가까울수록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할 때는 언제든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보'할 때는 `예이'하고 나타나는 거라구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그 마음은 어디에 나타납니까? 가만히 있을 때 파리 한 마리가 날라와서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면 그 마음이 어디에 나타납니까? 그때는 마음이 머리 끝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누가 자기 손등을 스치면 그때는 마음이 손등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합니다. 마음이 심장에만 있겠습니까? 몸 가운데 마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무엇이 눈썹만 살짝 건드려도 마음이 `요것 봐라'합니다. 파리가 와서 앉으면 마음이 그것을 감정하는 거예요.

이와 같이 마음이 우리의 몸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마음이 자신과 가까와요, 멀어요? 가깝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중에라도 나쁜 짓을 하려고 하면 마음이 `네 이놈' 하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제일 가깝지만 그 마음이 어디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없는 것 같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 너무 가깝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도 가까운 데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생겨났겠어요. 먼 데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생겨났겠어요? 어느 한계권에 있는 것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갖다 대면 보여요? 있어도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눈이 상대를 보기 위해 생겼기 때문입니다. 눈은 상대가 있는 곳을 중심삼고 그 상대와 관계를 맺어 상대를 볼 수 있도록 지어졌기 때문에 그 상대의 권을 벗어나 가지고는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귀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틀림없지요? 「예」 그러니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들려면 나의 마음집이 그만큼 커야 됩니다. 하나님이 들어가실 수 있을 만큼 마음의 보따리가 커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의 마음은 어때요? 하나님 한 분이 들어가면 꽉 차겠어요, 모자라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의 욕망이 얼마나 커요? 크지요? 「예」 하나님이 열 분 계신다면 그 열 분을 모두 내 하나님으로 만들고 싶겠어요, 만들고 싶지 않겠어요? 「만들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마음 보따리가 그만큼 크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예」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을 모셔 들일 수 있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그렇게 큰 것입니다.

그러나 좁다면 아주 좁습니다. 틈바구니가 없어서 서성거리기는 커녕 김도 못 쐬고 냄새도 못 맡을 정도로 좁습니다. 넓을 때는 무한히 넓고 좁을 때는 무한히 좁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 넓어지고 어느 때에 좁아지느냐?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넓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세계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세계를 버리고 그것을 갖고 싶어합니까, 안 갖고 싶어합니까? 「갖고 싶어합니다」 갖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이 우주의 절대자로서 제일 귀한 분이라면 그분은 인간의 마음에 잡혀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더 좋은 것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고, 더 나쁜 것을 대해서는 얼마든지 좁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기에 여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실례지만 할수없습니다. 욕을 해도 할수없어요. 여자들의 마음이 넓어요, 좁아요? 「좁습니다」 그것은 인정하는구만. (웃음) 그러면 좁을 때는 좁지만, 넓을 때는 어때요? 남자에게 져요, 안 져요? 「안 져요. 웃음」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마음이 좁을 때는 좁아서 그렇게 막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주루룩 다 새 버릴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좋고 나쁜 것의 결정 기준

마음이 너무 좋아서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람은 아무 데도 쓸 데가 없습니다. (웃음) 이걸 알아야 됩니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더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덮어 놓고 다 좋아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얼마만큼 좋은 자리에 올라갔는데 그걸 버리고 더 낮은 것을 취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찾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슬픔은 어느 때에 생기느냐? 슬픔은 좋은 입장에서 나쁜 입장으로 떨어지게 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다 좋은 것이란 무엇이냐? 보다 선한 자리에 올라갈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좋고 나쁜 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결정되느냐? 최고의 가치를 지닌 절대적인 그분에게 더 가까이 가느냐, 멀어지느냐 하는 데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가게 되면 더 좋아지고 기뻐지는 것이요, 한 발자국이라도 멀어지면 나빠지고 슬퍼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기쁨과 슬픔은 절대적인 주인을 중심삼고 결정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주인을 중심삼고 우리 인간이 기쁨과 슬픔의 저울대가 왔다갔다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주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좁긴 좁지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잘 가려 냅니다. 그것이 여자입니다. 남자들은 마음이 넓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탈이 있습니다.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하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지 둘 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뾰족하지 않은 그 남자들의 밑바닥에 여자를 갖다 맞추면 딱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딱 맞춰 놓으면 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합동 공사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일 좋은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나게 두어서는 큰일납니다. 귀한 것일수록 제일 깊은 곳에, 뼛골 속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자기에게 보물이 있다고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여기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있으니 와서 구경하소'라고 간판 붙여서 광고하는 사람 있어요? 여자들은 귀한 것일수록 `아이쿠, 도둑놈이 많은데' 하면서 지갑에 넣어 두어도 믿지를 못해서 허리춤에 차고 다니기도 하고 앞가슴에 넣어 두고도 손으로 이렇게 가리고 다니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고서도 안심을 못하고 `아이쿠 뼛속 깊이 넣어 두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이것을 어떻게 할꼬' 하면서 잠을 잘 때도 그것을 품고 잡니다. 왜 그러느냐? 사람에게는 누구나 귀한 것일수록 아무도 모르게 깊이 감춰 두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깊이 묻어 두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그래 가지고 그것과 더불어 의논하고, 그것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그것과 더불어 웃고, 그것을 찬양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거 얼마나 좋겠어요?

가장 귀한 것은 가장 깊은 곳에, 비밀의 골수에 넣어 두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근사하지요? 가치 없는 것일수록 겉에다 드러내 놓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그러면 우주의 최고의 가치인 하나님은 어디에 모셔 두면 좋을까요? 인간 도적떼가 살고 있는 이 인간세계에 모셔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서로 빼앗기 위해서 나라를 걸고 싸우고, 세계를 걸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기를 잘했지요.(웃음) 그런가 안 그런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으로 계시는 것이 오히려 다행

남아연방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는 지금 다이아몬드 산출을 중심삼고 큰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하나님이 계시는 곳을 알게 되면 힘깨나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만들려고 싸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도 하나님을 놓고 몇 천 년의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생각을 참 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안 보이게끔 하신 것이 지극히 가당한 처사라는 말입니다.(웃음)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인 외에는 모르는 것입니다. 비밀의 길잡이로서 비밀의 내용을 가진 사람 이외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 외에는 모르는 거라구요. 그것을 안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땡전 한 푼없이 맨 주먹으로 다니더라도 기분이 좋을 것이고 밥을 한끼쯤 굶어도 그 까짓 것은 문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루밤쯤 잠을 못 자더라도 그 까짓 것은 문제도 안 된다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좋거든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남들이 나 죽는다고 야단하더라도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아라 한다는 것입니다.(웃음)

앞으로 여기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자꾸 날 것입니다. 여러분 동네의 할아버지들도 손자들의 귀에다 대고 `문선생' 손자들도 할아버지 귀에다 대고 `문선생'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올지도 모르겠고요. 그렇지만 나는 그런 때가 오기를 바라고, 그런 때가 오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기분 나빠요? 「좋습니다」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요. 세계 사람들이 모두 통일교회 문선생을 좋다고 하게 되면, 그것이 대한민국의 자랑거리가 되지 망할거리가 되겠어요?

그러므로 통일교회 아가씨나 총각들이 할아버지들에게 `할아버지, 오늘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이 말씀을 하시는데 무슨 말씀하시는지 한번 가서 들어 보세요. 재미 없는 말씀은 하지 않을 것이예요. 무슨 말씀을 하는지 가만히 들어 보세요' 라고 해서 모시고 오신 분들, 들어 보니까 어때요? 뭐왔다가 가는 것이 손해는 안 날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면 손해를 볼 지도 모르지만(웃음) 이거 동정 좀 하시라요.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 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여러분, 사랑하는 남편의 편지가 있으면 그 편지를 서랍 안에다 넣어 둡니까, 서랍 밖에 놔 둡니까? 「안에요」 겉옷에다 넣어 둬요, 속옷에다 넣어 둬요? 「속옷에요」 우리 아주머니들 솔직히 얘기해 보세요. 치마 깃에 싸둬요, 속옷 안에 싸 둬요? 틀림없이 속옷 중에서도 비밀스런 속옷 안에 넣어 둘 것입니다.(웃음) 이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짜입니다. 진짜가 아니라구요. 지극히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비밀은 전혀 남이 모르는 곳에 냄새도 모양도 사정도 불통하는 곳에다 저장해 두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그런 법을 적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우주적인 귀한 존재이므로 인간들이 하나님을 아는 날에는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한꺼번에 난리난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번에 영국에서 일어난 압사 사건 알지요? 축구 시합이 있었는데, 그 시합을 구경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압사 사건이 일어났다고 신문에 났잖아요. 그렇게 공을 차고 운동하는 데서도 압사 사건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이 있는 줄을 알면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다고 전시했다가는 그 나중 일을 어떻게 처리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처리할 수 있겠어요?

얼마 전에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왔을 때도 늙은이 병신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악수 한번 하겠다고 몰려들어서 길을 막아 버리니까 할 수 없이 뒤로 돌아가던데 하나님이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보이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지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만약 하나님을 그렇게 전시해 놓았다가는 아마도 미국과 소련이 이마를 맞대고 싸울 것입니다. 그것도 대포와 원자탄을 동원해서 싸울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기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염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안 보이는 자리에 계시기로 한 것입니다. 이거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웃음) 잘됐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을 알아내고 들추어낼 수 있는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이 상봉하는 자리

인간에게는 인정과 인륜도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륜도덕의 기준은 남자만 있어서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인정은 남자만 있는 데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지요? 그리고 혼자 있는 데서도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상대적 세계가 있어야 되는데, 그 출발이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자식이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어야 나라가 생겨납니다. 나라가 생기면 가정은 나라 앞에 충성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인간들은 나라를 위해서는 충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을 위해서는 효자효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륜도덕관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이와 같은, 인간을 중심한 인륜과 하늘을 중심한 천륜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인정이 있고, 인생이 갈 길을 가르쳐 주는 법이 있고, 인륜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정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하나님은 그저 두리뭉실하게 감각도 없고 무슨 정서도 없을까요? 아닙니다. 인간보다 더 많습니다. 최고로 많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천정, 하늘의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인륜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륜이 있습니다.

그러면 인륜과 천륜, 인정과 천정이 따로따로 있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천륜은 언제 인륜과 상봉할 것이며, 천정은 언제 인정과 상봉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인간을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하겠느냐? 또 그 신은 누구를 필요로 할 것이냐?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물 중에 인간이 최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에 신이 있다면 그 신도 사랑을 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그 신이 누구와 사랑을 하겠습니까? 다른 신이 있다면 신끼리도 사랑을 할는지 모르지만 신은 사랑을 인간과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과 신이 어떤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신도 좋아하고 인간도 좋아하겠느냐? 둘 다 좋을 수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일 것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데, 종의 입장에서 사랑받는게 좋겠어요? 「아닙니다」 종의 입장에서 사랑받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러면 하나님의 양자의 입장에서 사랑받겠다고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도 없군요. 그러면 어디까지 올라가야 되느냐 이겁니다. 천정과 인정이 상봉할 수 있는 하나의 결합점, 하나의 정착점이 어디 겠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이 최고의 사랑의 주체시라면 그 하나님은 인간을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겠는가? 여러분의 마음에게 물어 보고 하나님께 물어 보라는 거예요. 그 자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아들로 사랑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는 그런 자리일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이외의 자리는 우리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럴 거 아니겠어요?

그러므로 종교 중의 위대한 종교는 절대자인 신에 대하여 `내 아버지다'라고 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곧 세계적인 종교요, 그러한 도주가 세계적인 도주인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정과 천정이 하나로 상봉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사람이 신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랑할 수 있는 자리요, 신이 인간을 아들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증명 되는 사실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여러분 앞에 원수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어떤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냐고 묻게 되면 종의 자리도 싫고, 양자의 자리도 싫고, 딸이나 아들의 자리에서 사랑받고 싶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아가씨들도 그래요? 「예」 여자들도 그렇지요? 「예」 그렇지 않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런 사람은 죽으라고요. 없으니까 죽으라고 해도 괜찮은 것입니다.(웃음) 이 말에 손든 사람은 벼락을 맞아야 됩니다.

인정이 찾아가는 최고의 종착점

여기 통일교회 아가씨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딸이 될래요, 종이 될래요? 「딸이 되겠습니다」 양녀가 될래요, 진짜 딸이 될래요? 「진짜 딸이 되겠습니다」 딸 중에서도 새빨간, 진짜 새빨간 딸이 되라는 거예요. 불이 타는 데도 활활 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 딸 될 거예요? 「예」 틀림없지요? 난 흐리멍덩한 것은 싫습니다. 흐리멍덩한 딸은 싫어요. 또 여기 아들 양반들, 하나님의 종이 될래요, 양자가 될래요, 아들이 될래요? 「아들이 되겠습니다」 전부 다 아들이 되겠다고 대답하는구만. 그럼 아들이 되고 딸이 되라구!(웃음) 이러면 또`아이쿠, 야단났군' 하지요. 여기 아가씨들, 하나님의 딸이 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또 남자들, 아들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습니다」 본래는 될 수 없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패가 되었으니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거라구요. 목을 비틀어도 그렇게 될 자신이 있지요? 「예」

통일교회를 믿지 않고도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세요. `하나님의 종을 긍휼히 여기사….' 이렇게 기도하지요? `하나님의 종이 가라사대 용서하시옵소서. 이 못난 종은 언제나 잘못하고….' 이러고들 있다고요.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통일교인들은 그런 기도를 했다가는 나한테 기합받습니다. 뭐가 되겠다고요? 「아들딸요」 `못난 모습이지만 내 뼈는 당신의 뼈를 닮아 났고, 내 살은 당신의 살과 연결되어 있사오며, 내 피의 고동소리는 당신의 피의 고동소리와 박자가 맞습니다.(웃음) 이 아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도가 더 멋져요? 하나님이 들으실 때도 어떤 것이 더 실감나겠어요? 하나님의 종 어쩌고 하면 기분이 잡친다는 것입니다.(웃음)

그렇기 때문에 인정이 찾아가는 최고의 종착점이 어디냐 할 때,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독차지하여 나만이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거 찬성입니까, 불찬성입니까? 「찬성입니다」 쌍수를 들어 찬성할지어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이나 인간을 붙들고 야단을 해왔겠습니까? 이 몹쓸 인간들을 그냥 한 구덩이에 처넣어 버리지 왜 종교를 세워 가지고 하나님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혼란상이 벌어지게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이 얼마나 복잡할까!

여러분, 더워요? 나도 덥습니다.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보다 더 덥겠지요.

하나님도 별수없습니다. 하나님이 별수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하나님도 인간이 없으면 무미건조하다는 말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상대적 입장에서 절대의 가치를 지닌 것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고등동물이 어떻고 원숭이가 뭐 어떻다고 하는데, 여러분, 대학교수나 혹은 생물학박사에게 가서 `원숭이의 몇 대 손 안녕하십니까'라고 해보세요. 좋아하는지.(웃음) 아마도 `예끼, 이놈' 할 것입니다. 그런데 뭐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요? 원숭이는 사람과 차원이 다릅니다. 원숭이의 골통으로는 하나님을 생각도 못 하는 거예요.(웃음) 돌연변이니 무엇이니 하는 그런 수작들은 다 틀립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공동사회를 중심삼은 이상이니, 윤리도덕이니 하는 것은 물론, 천륜과 천정을 논의하고 신과 인연을 맺겠다고 하는 생각은 원숭이의 골통에서는 나올 수 없는 거예요. 상상도 못 하는 것입니다. 죽일 놈의 자식들 같으니라구.(웃음) 그런 부잡스런 녀석들은 내가 전부 소탕해 버릴 것입니다.

오늘 이 20세기 말기에 내가 그 사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왔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그래도 할수없습니다. 기분이 나빠서 죽겠으면 죽으라는 거예요.(웃음) 그렇다고 정말 죽지는 마소.(웃음) 하나님이 절대적인 자신 앞에 상대적 입장의 절대형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절대형을 누구로 선택할 것이냐 하고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간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그마만한 위치에 등장했다는 거예요, 못했다는 거예요?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절대적인 상대의 위치에 세우기 위해서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절대자라고 해도 인간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혼자 있는데 절대자면 뭘 해요? `나는 절대자다. 세계 대통령이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부인도 없고, 아들도 없는 절대자다'(웃음) 그러면 행복하겠어요? 「불행합니다」 하나님도 혼자 있으면 땅 위의 거지만도 못합니다. 아이들 손을 붙들고 다니면서 `찬 밥 얻으러 왔습니다. 한 술 줍쇼' 해 가지고 밥을 얻어 먹는 거지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에 어떤 인격자가 있다고 합시다. `내가 그래도 이 동네에서 이만하면 됐지. 할아버지고 이장이고 내 앞에서 쩔쩔매고, 면장도 아침마다 내게 와서 인사하는데 이만하면 됐지'(웃음) 하는 사람이라도 혼자 있게 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기쁨이라는 것은 고독단신에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최고봉에 있다고 해도 혼자라면 기쁨이 있을 수 없어요. 세계적으로 이름난 학자들이 아무리 명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혼자 가만히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그 분야에 상대적인 존재가 없어 가지고 혼자 앉아서 이렇고 저렇고 `아, 좋다' `좋다'라고 하면 뭐하겠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물과 사람을 왜 지으셨겠습니까? 보고 즐기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데리고 놀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아니면 몽땅 사랑하기 위해서 지었겠어요? 하나님께 `어째서 우리를 지었소'하고 물어 보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보기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인형을 보고 사는 사람과 마찬가지예요. 인형을 보고 `아이구 좋아. 아이구 좋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뭘 하려고 우리를 지었소?' 하고 물으면 대답하시기를 `이 녀석아, 그것도 모르니? 재미있게 살려고 지었지. 손을 붙들고 재미있게 살려고 지었지'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인간을 왜 지었을 것 같습니까? 내가 기뻐하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나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웃으면 나도 웃으면서 같이 살기 위해 지었다는 것입니다. 방에 혼자 있는 사람이 `하하하' 웃으면 재수 없어 보이고 소름이 돋아납니다. 도깨비 바람이 부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웃음) 그렇지만 허재비 중의 허재비라도, 병신 중의 병신이라도 애기를 데리고 `헤헤헤….' 하고 웃으면 어때요? 그것이 격에 맞아요, 안 맞아요? 그것은 격에 맞는 거라구요.

이런 모든 것을 볼 때, 하나님이 좋은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나쁜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좋은 것요」 또 웃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우는 것을 좋아하시겠어요? 「웃는 것요」 좋은 말을 하고 싶겠어요, 나쁜 말을 하고 싶겠어요? 「좋은 말요」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

나는 8남매의 형제를 다 버린 사람입니다. 이북에서 감옥생활을 할 때 앞으로의 정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상했던 사람입니다. 평양에 나와서 40일 동안 있었는데 거기에서 280리만 가면 나의 고향입니다. 이틀이면 고향에 갔다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있는 부모 형제들은 찾아 가지 않고 뜻을 대했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했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닌 것입니다.

고향에 있는 부모와 친척을 돌보지 않고 지지리 못한 통일교회 식구 한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찾아다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일교회 패들은 틀림없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거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알면 여러분도 그렇게 하라구요. 선생님은 공포(空砲)를 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다고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선생님은 통일교인들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느냐? 통일교인들을 승리한 성인의 반열에 동참시키려고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려면 예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루려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또 다시 올 필요가 없도록 모든 것을 해결짓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출장을 간 사람이 일을 다 봤으면 다시 출장갈 필요가 있어요? 필요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완결짓기 위한 것이 통일교 사상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이 가야 할 최후의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길입니다. 그것이 인생이 갈 최후의 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욕망이 무엇입니까? 세계를 점령하고 나서도 그보다도 더 높은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까지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할 때에는 하나님을 놓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 최고의 욕망과 희망, 우리 양심의 최고의 욕망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하나님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을 정복하고 나서 하나님의 사랑까지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심은 `내 소원 다 이루었다'고 춤을 춘다는 거예요. 더 이상 참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찾을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그 자리가 양심이 가야 할 한계점입니다. 종착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한 자리, 이 자리는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너나할것없이 누구나 정통의 길을 따라가게 되면 차지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가는 길의 최고의 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행복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무리 소망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망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한 행복이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힘이라는 것을 보면 작용을 하게 될 때는 반드시 소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터 같은 것을 보더라도 `입력 이퀄 출력'이 아닙니다.(판서하심) 언제나 입력이 큰 것입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거기에서 소모되는 만큼 보급해 줘야 그 힘이 지탱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런 원칙을 볼 때에, 작용하는 물건이라든가, 동물이라든가 혹은 아메바와 같은 것이라도 작용하여 더 큰 것이 나온다는 논리는 있을 수없습니다. 공산당 식으로 하면 아메바가 작용하면 발전이 벌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존재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제3의 힘이 가입되지 않고는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에 벗어나는 한 가지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작용만은 이 원칙을 벗어납니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진실한 사랑을 열만큼 주었는데, 나는 아홉 만큼의 사랑만을 돌려줘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진실로 나를 사랑한 줄 알게 되었다면, 내가 사랑을 돌려줄 때는 보태서 돌려주고 싶어요, 떼어먹고 돌려주고 싶어요? 떼어먹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하게 사랑을 열만큼 받았으면 거기에 가하여 열 하나, 열 둘만큼으로 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힘은 주고 나서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큰 것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알겠어요? 다른 힘과 반대라구요. 사랑의 힘은 더 커지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이 없으면 영존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주고 나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도 더 주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는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주고 나서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사랑의 주인입니다. 그렇지요? 부모는 자식에게 옷을 해 입히고 나서도 더 좋은 옷을 해 입히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주면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을 통해서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족하게 주지만 완전한 것으로 보답해 오는 것이 사랑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큰 것으로 보태지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이는 흥하는 법이 없다는 거예요.

사랑이 없이는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마 22:37-3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과 사랑의 도리에서만 흥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벗어나면 전부다 망합니다.

사랑을 벗어나 가지고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망해 들어갑니다.

통일사상─하나님주의

가정이 왜 좋으냐? 가정에서는 사랑을 서로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어서 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사랑의 인연이 있어서 그 사랑 가운데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떠날 수 있겠어요? 안 그렇지요?

예수님은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부모와 주고받는 것은 타락한 세계의 사랑으로 주고받는 것이고 그것이 한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은 한(恨)을 걷어치우고 만민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주고받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처자나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고는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알겠지요? 이것은 역설적인 교리입니다. 그렇지만 참입니다. 거짓된 세상의 인연보다도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도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타락권은 어디냐?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권 밖입니다. 여기에서는 받으면 받을수록, 주면 줄수록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주면 줄수록 천치요 바보로 생각해서 이용해 먹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받았으면 거기에 보태서 갚아 주는 것이 사랑의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진실하게 주는 사람을 이용해 먹다가는 3대도 못 갑니다. 두고 보라구요. 그 후손이 어떻게 되는지.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이 전도하러 나가는 것은 그들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 나가는 것이겠어요, 아니면 그들을 위해서 나가는 것이겠어요?

그들을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도를 따라서 말하게 되면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공산당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이런 식입니다. 그게 공산당 식이예요. 알겠어요? 공산당식은 전부가 자기를 중심삼은 거라구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식, 즉 하나님의 식은 어떠한 것이냐?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런 식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이예요.

내 것은 누구의 것이라구요? 「부모의 것입니다.」 여기에서 통일교회 교리의 원칙적인 사상이 나오는 거예요. 내 것은 네 것인데 무슨 자리에서 네 것이 되느냐 하면 나는 아버지요 너는 자녀라는 부모의 심정을 지닌 자리에서 그렇게 됩니다.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해 뿌려라!' 이것이 통일사상의 중심이자 하나님주의의 골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시고 종의 몸을 쓰시고, 땅을 위하여 땀을 흘리시고, 인류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시고, 천주를 위해서 피를 흘리며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숭상하는 사람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눈에서 눈물이 말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인류를 위해 아벨의 입장에서 희생봉사하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주라는 것입니다. 주면서 자랑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주의입니다. 알겠어요?

지금 통일교회 여자들 전도를 나갔는데, 어떤 사람을 전도하려고 세 번이나 찾아갔는데도 배척을 받는다고 해서 발뒤꿈치로 문을 꽝 차고 `이놈의 집 망해라' 그래야 되겠어요?(웃음) 세 번 갔는데도 안 되면 네번, 네번도 안 되면 다섯 번이라도 있는 정성을 다해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생명을 바쳐 했다 할 때는 다 돌아가는 거라구요. 다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입니다.

하나님은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쓰십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교회도 지금은 맞고 있지만 나중에 가서 때린 녀석들이 통일교회를 잘못 때렸다 하며 걸려듭니다.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치게 되면 기성교회는 망합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닦아 놓은 복을 통일교회에게다 넘겨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부패상을 누가 바로잡을 것이냐? 그것을 통일교회 패들이 해야 합니다. 통일사상만 도입해 보십시오. 일년 이내에 깨끗이 청산해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대통령도 나를 만나야 될 것이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알겠어요?

인간 세상에 맺혀 있는 3대 한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이루지 못한 뜻을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예수님은 당시의 유대교를 사랑했느냐? 유대교를 사랑할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었느냐?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유대 나라가 예수님을 중심삼고 예수님의 아들딸을 모셔 보았느냐? 모셔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한입니다. 이렇게 인간 세상에는 3대 한이 맺혀 있는데, 이 3대 한을 풀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는 일반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지만, 통일교인은 예수님보다 나은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첫째는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둘째는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세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3대한이 가로막혀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4천년 동안 고이고이 준비했던 이스라엘 나라에 아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민족이 그를 사랑해 주기를 바랐는데,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회가 그를 배반하여 죽음 길로 보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교회와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했는데, 사랑을 못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한이 맺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한은 무엇이냐? 예수님은 유대교회와 이스라엘 나라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누구보다도 사랑을 받아야 했는데, 사랑을 하지도 못했고, 보지도 받지도 못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한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한은 무엇이냐?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신랑이 되어 신부를 맞이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 아저씨를 모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뿐만 아니라 예수 아주머니도 모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지 않고 뜻을 이루었다면 장가를 갔겠어요, 안 갔겠어요?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아주머니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저씨가 되었겠어요, 안 되었겠어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민족이 예수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모셔 보았어요, 못 모셔 보았어요? 「못 모셔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할아버지가 되어 보아야 되겠어요, 안 되어 보아야 되겠어요? 「되어 보아야 합니다」 또 예수 할머니가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있어야 됩니다」 그 예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셔 보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 유리고객하면서 그 한을 풀기 위해 회개의 길을 닦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게 되면 이스라엘 민족은 독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수의 나라들이 포위해 예수님을 지지리 못 살게 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웃 나라가 그 나라를 지지리 못 살게 하게 되면 거기에서 싸워 가지고 이겨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운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싸우느냐 하는 그 방법은 선생님이 지도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을 죽인 죄로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한은 예수 할아버지와 할머니, 예수 아저씨와 아주머니, 예수님의 아들딸, 예수님의 1대 손, 10대 손, 20대 손을 인류 역사과정에서 모셔 보지 못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예수님보다 나으려면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예수님보다 낫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교단,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교단을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통일교회가 해방 직후에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출발했더라면, 기성교회와 더불어 대한민국은 일시에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공산당들은 모두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에 슬픈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폭탄 하나 떨어지지 않던 이 나라가 왜 분단국이 되었느냐? 그것은 기성교회가 전부다 통일교회의 가는 길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북이 갈린 거예요. 그들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잃어버리고 나라 앞에 몰리는 입장에 섰지만, 거기에서 쫓겨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과 같은 운명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고 난 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방인 애급에서부터 다시 출발해 가지고 돌아 들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도 세계적인 사탄세계인 이북의 공산세계에 들어가 되돌아오는 길을 거쳐 남한 땅의 맨밑바닥을 통하여 우리 교단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교 입장에선 기성교회가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그 기성교회가 없었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계승할 수 있고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있는 터전으로 마련한 것이 우리 통일교단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때가 어떤 때인지 보라는 것입니다. 이때는 통일교단이 형성된 때입니다. 통일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은 나라와 민족을 대표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혹은 아저씨와 아주머니 등 전부다 종합한 형입니다. 모든 형이 다 들어왔다 이겁니다. 알겠어요? 이와 같이 통일교회는 종족적인 입장, 혹은 씨족적인 입장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팔도강산에서 몰려든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은 통일교회만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것이요, 이스라엘 국민들이 서로서로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현재에 탕감복귀하기 위한 터전을 닦는 길은 통일교단이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통일교단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사랑해 왔고, 이제 사회인이나 국가의 중요한 인물들로부터 통일교회는 애국애족하는 단체라는 것을 공인받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살아 있는 종교단체는 통일교회밖에 없다고 할 만큼 올라왔다 이겁니다. 이제는 통일교회에 나간다고 반대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는 기성교회가 반대하면 오히려 그들이 추풍낙엽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한을 품고 십자가의 길을 가던 시대와는 달리 핍박의 노정을 벗어나 그들보다 우위에 서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대한민국과 전교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대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잘되었어요, 못 되었어요? 「잘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이루지 못했던 종족권을 복귀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축복해 가지고 결혼시켜 준 무리로서 선생님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고 하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요? 「예」

기성교회를 사랑해야 할 통일교회

예수가 죽어간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형제들이 죽고 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고, 친척이 죽고 살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복귀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했기 때문에 기독교와 통일교회가 합하는 데 있어서는 구렁텅이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문선생은 이것을 메우기 위해서 막대한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을 투입해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곱이 고향땅으로 에서를 찾아갈 때, 모든 것을 에서에게 주더라도 하나님의 축복만은 줄 수 없다는 야곱의 입장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기성교회의 밥 목사들을 선생님이 전부 타작해야 되겠어요. 일제히 처리해야 되겠어요. 그렇게 할까요, 그만둘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웃음)

우리는 요셉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요셉의 열 한 형제는 요셉을 물없는 우물속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다가, 그의 맏형이 죽이는 것보다 애급 상인들에게 팔아먹자고 하여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보디발 아내의 간교한 수법에 걸려 가지고 감옥에 갇히게 되어 죽을 뻔했다가 해몽을 잘해 가지고 풀려 나와 애급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형제들 때문에 죽을 뻔했던 서글픈 요셉이 애급 나라의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 7년 대환난을 만나게 되어 애급땅 전역은 물론 이스라엘 전역과 중동지역 전역에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애급에는 먹을 것이 많다고 하여 요셉의 열 한 형제가 나귀를 끌고 곡식을 사러 왔지요? 요셉이 가만히 살펴보니까 자기 형제들이거든요. 그래서 벌어진 일화가 있지요?

요셉은 원수의 분을 풀려고 `이놈들 잘 만났다'라고 하며 밟아 죽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없을 때에 어머니 아버지를 봉양한 사람들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고향을 떠나 이웃 땅에서 서글픈 타향살이를 할 때 어머니 아버지를 연명시키고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온 형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어머니 아버지를 모신 그들의 성의를 봐서 효심을 가진 아들 요셉은 형들을 원수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마음을 돌려 그 형제들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를 반대하는 기성교회는 전부다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게걸이 들린 것처럼 되지만 통일교회는 돈이 많이 생깁니다. 이미 통일교회는 돈이 많다고 소문났습니다. 기성교인 한 사람에게 몇만 원씩 주고도 남을 수 있는 문진장한 돈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흉년이 들면 거지떼거리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그런 때는 그들을 때려 죽이고 싶지만, 그래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나오기 전, 해방되기 40, 50여년 전부터 요셉의 형님들과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을 모셔온 성의를 생각해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고맙지!

이런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까, 선한 사람입니까? 「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악한 사람이 망해야 되겠어요, 선한 사람이 망해야 되겠어요? 「악한 사람요」 기성교회 목사들하고 통일교회 문선생하고 비교할 때 누가 악하고 누가 선해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악한 입장에 있으면서도 자기들은 선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기꾼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문선생은 그저 여자들 등쳐 먹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 내가 등쳐 먹었어요? 오히려 내가 등쳐 먹히는 걸. 선생님이 여자들 때문에 얼마나 수모를 당했고, 얼마나 욕을 얻어 먹었어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자들을 못살게 부려먹는 것입니다. 괜찮소? 「예」 탕감복귀를 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 마음이 놓이고 시원합니다.

축복받는 자리는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리

예수님은 한을 풀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그 한을 풀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한을 맺히게 했고 예수님 자신의 한은 물론 민족의 한을 맺히게 했지만, 이 시대의 나는 내 일신을 통하여 그 원한을 풀어 드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만민을 백성으로 거느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예수님보다 나은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자리는 예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리입니다. 그렇지요? 「예」 통일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삼고 결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뜻 앞에 세움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을 하고 나서 아들딸이 태어나게 될 때, 그 아들딸은 예수를 믿지 않고도 천국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아들딸을 낳을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자신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여기 있는 남자들 대답해 봐요. 여러분은 모두 예수를 안 믿고도 천당갈 수 있는 아들딸을 낳겠어요, 못 낳겠어요? 대답해 봐요. 낳아요, 못 낳아요? 「낳습니다」 이렇게 별스런 패가 생겨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기독교와 다릅니다. 전진적 기독교요, 발전적 기독교요, 초월적 기독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하고 예수하고 씨름하면 누가 이길까요?(웃음) 나는 예수에게 지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영계에 들어가 가지고 예수에게 물어 보게 되면 꼼짝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계적 챔피언이라는 말이 있어요? 예수님은 물론 하나님도 마음도 나한테 그 챔피언의 자리를 돌려줘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도인들도, 영계를 주름잡는 영통한 패들도 통일교회 문선생 앞에서 꼼짝 못합니다. 내 제자들 가운데에는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통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제자축에도 못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들은 오늘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선생님의 숨소리가 어떤지를 보지도 않고 알아 가지고 기도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제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여러분들을 치리할 때가 옵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법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통일교회

통일교회의 전도는 사람이 하지 않습니다. 영통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가지고 그들을 도통한 사람들의 꼭대기에 딱 붙들어 놓으면 틀림없이 걸려듭니다. 재미있는 놀음이 벌어지지요? 내가 지금 여기에서 있지만 세계를 영적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모르지요? 눈이 시퍼런 미국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한국의 문선생이 죽으라면 죽겠다고 하면서 야단하겠어요? 코를 꿰어 가지고 잡아채면 꼼짝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식구들은 자기 집도 마음대로 팔지 못합니다. 내 허락을 받아야 됩니다. 미국 식구들이 자기 멋대로 집을 팔아먹으면 영계에서 호출명령이 내려가지고 `이놈의 자식아, 그게 네 집이냐' 하게 되면 `아이쿠,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문의를 하면 선생님이 `너희들끼리 세 사람 이상 잘 의논해 가지고 파는 것이 좋다고 하면 팔라구' 이렇게 여기서 특명을 내리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은 집을 팔 때도 자기 마음대로 못 파는 거라구요. 좋지요?

앞으로 미국의 세 사람이 한국의 못 사는 한 사람을 도와주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세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 살리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현재 미국 사람이 1억 8천만명이지요? 한국 사람이 3천만명이라고 하면, 한국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미국 사람은 몇 사람이 됩니까? 여섯 사람입니다. 미국의 여섯 가정이 한국의 한 가정쯤은 잘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라 이겁니다. 3천만이 모두 통일사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내가 잘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해도 믿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얘기를 하면`저 녀석 미친 녀석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의도에 땅을 사 놓았지요? 「예」 1만 5천 평을 계약할 터인데 먼저 1만 2백 평을 사 놓았습니다. 앞으로 5천평을 더 살 계획입니다. 이것이 5억이 넘습니다. 지갑에 돈은 한푼도 없지만 땅은 샀습니다.(웃음)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 여러분은 몇 푼이나 나갑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우리가 일년 동안 쓰고 있는 돈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 내가 그만한 기반을 닦았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하려고만 하면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여러분 통일교 패들은 모두다 1만원씩 벌어대라고 하면 대겠어요? 「대겠습니다」 여러분도 여의도 땅을 한 평씩 사기로 했지요? 돈을 벌어 대라는 거예요. 안 벌어 대면 영계에 있는 여러분의 조상들이 `이 녀석아, 무슨 밤잠이냐'고 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러한 뭐가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통일교회에 대하여 함부로 말을 하며 악착같이 반대하다가 잘된 사람 있어요? 잘된 사람이 있나 알아보라구요. 다 망했어요. 더구나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가 반대하던 사람, 내가 두고 보자고 생각했던 사람은 금년에 다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 남았습니다. 이들은 제물로 남겨 두고 있어요. 악한 사람은 이렇게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무서운 것입니다.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꼼짝 못하고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무섭지 않으면 선생님이 뭣 하려고 이런 일을 하겠어요? 보라구요. 내가 이만큼 생겼으면 어디를 가더라도 밥 걱정 안 하는 사람입니다. 머리도 있는 사람이라구요. 남이 한 가지 생각할 때 열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비상한 머리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다단한 영계를 전부 내 손안에 집어 넣은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으로부터 조직되어 있는 영적 세계의 수많은 도인들, 예수, 공자, 석가모니 같은 양반들이 전부다 내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구요. 어제도 예진이의 생일이었지만, 생일 때마다 매번 불교의 최고 책임자가 케이크를 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잔치 때마다 알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영계에 있는 석가모니도 하늘 잔치에 참석하지 않으면 영계에서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들 생일이나, 혹은 우리가 기념하는 날에는 케이크나 패물 같은 것을 해 가지고 오는 거라구요. 그것도 무거운 것은 들고 오기가 힘드니까 조그만 것을 갖고 오라고 내가 얘기를 해서 그렇지, 그렇지 않았으면 제일 큰 것을 들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둘이서 아니면 못 들고 오는 것을 말이에요. 불교도 별수 있어요, 조공을 바쳐야지. 그러니 하늘이 석가모니보다 높아요, 낮아요? 「높습니다」 석가모니도 별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통일교인보다 몇 곱은 많습니다. 재미있지요? 내 이 손이 작지요? 「예」 그러나 이 작은 손으로 영계를 통일했습니다. 영계를 통일하지 않고 지상의 통일은 불가능합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선생님 머리가 얼마나 복잡하고 선생님의 역사가 얼마나 복잡다단했을 것인가 생각해 보라구요.여러분들은 일생 동안 정성들여 연구해도 못다합니다. 그럼 배워야 되겠어요, 안 배워야 되겠어요? 「배워야 됩니다」 그러니 절대 순종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을 잘 만났어요, 못 만났어요? 「잘 만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간판을 붙이고 해보자 해 가지고 한 20년 동안 나온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선생님이 왔다 하게 되면 옛날 한국 사람이 이등박문을 무서워하듯이 무서워합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우리 애국자 양반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미국 국무성에서도 미스터 문이 미국에 가게 되면 정보원을 달아 놓습니다. 이거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그랬으면 됐지. 한국 사람 중에 어느 누가 그런 대우를 받아요? 통일교회 문선생이나 되니까 세계가 골탕을 먹지.

여러분, 한국이 잘되는 게 좋아요, 못되는 게 좋아요? 「잘되는 게 좋습니다」 그런 한국의 통일교회가 잘되는 게 좋아요, 못되는 게 좋아요? 「잘되는 것이 좋습니다」 잘되는 게 좋으면 믿으라구요.(웃음) 이유를 따지지 말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웃음) 말을 하다 보면 이런 말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사는데 그만한 얘기한다고 섭섭해할 것 없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섭섭하면 섭섭하다고 해요. 내가 다 풀어 주고 갈 테니까.(웃음)

우리가 서로 식구라고 하는 뜻

우리 아주머니 아저씨, 혹은 아주머니 아저씨 후보자들은 이때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역사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상세계에 못 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왜 식구라는 이름을 사용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님에게는 사랑받을 수 있는 식구가 없었고, 예수님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식구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럴 수 있는 종족이 없었고, 민족이 없었고,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식구에서부터 출발하여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종족과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교회와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나라를 이루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인류의 한을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울타리를 중심삼고 식구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는 사내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 예수님이 어릴 때부터 사랑할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의붓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디서인지 모르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리아를 막상 데려다 놓고 보니 진짜로 애기를 배고 있었다는 거예요. 처녀가 애기를 뱄다면 잘한 것이예요, 못한 것이예요? 그 당신의 풍습으로 보아 잘한 것이예요, 못한 것이예요? 「못한 것입니다」 못했다는 것예요. 그 당신의 모세의 법에 의하면 돌로 때려죽여야 되는 거라구요. 마리아가 박살이 나서 죽어야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래도 참으로 용하고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약혼녀가 아기를 배었으니 기분이 좋았겠어요, 잡쳤겠어요? 「잡쳤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남자분들, 나이많은 할아버지라 해도 자기 상대 될 처녀가 애기를 배어 가지고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을 본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쁩니다」 요셉이 그 꼴이 됐다는 거라구요. 그래서 요셉이 고심을 하게 되었고, 그렇다고 마리아를 죽일 수도 없고 큰일났거든요. 이렇게 요셉이 혼자 끙끙 앓으면서 밤잠 못 자고 고심하고 있는데 꿈 가운데에서 `야, 요셉아! 무엇 때문에 그리 걱정하니? 마리아를 데리고 가려무나' 하는 음성을 듣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데려다가 자기 안방에 모셔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올 때, 자기 어머니 아버지하고 의논해서 데려왔겠어요? 아저씨 아주머니나 삼촌, 혹은 사촌 형님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을 모아놓고 의논한 뒤에 데려왔겠어요, 살짝 몰래 데려왔겠어요? 몰래 살짝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총각 녀석이 잔치도 하지 않고 난데없이 처녀를 끌고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사내 녀석이 소식도 없이 처녀를 끌고 오면 그 녀석을 보고 잘한 자식이라고 해요, 망할 자식이라고 해요? 「망할 자식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망할 자식이라고 하는데 2천년 전 시대에야 형편무인지경일 것 아니겠어요?

요셉이 처녀를 데려다 놨으니, 동네방네 소문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소문이 나 가지고 별의별 요지경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저것 봐라, 저 미욱한 녀석! 결혼잔치도 안 하고 안방에다 처녀를 모셔 놓았네'하며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요셉이 기분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그러나 기분이 좋든지 나쁘든지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혀도 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불행했던 예수님의 어린 시절

천사의 말 때문에 할수없이 마리아를 데려다 놓았지만 `대관절 당신 뱃속의 애기는 누구의 애기야'라고 물어 봤겠어요, 안 물어 봤겠어요? 여기 남자들,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물어 보겠어요, 안 물어 보겠어요? 「물어 봅니다」 하나님이건 대왕님이건 덮어놓고 그거 누구 애기인지 알고 싶겠지요? 대관절 그 애기의 아버지가 누구냐는 거예요.

요셉이 마리아를 사지에서 구해낸 구주의 입장에서 다정스럽게 물어 보았을 때 마리아가 `여보 내 뱃속의 아기는 성신으로 잉태했소이다'(웃음)라고 한다고 해서 요셉이 그 말을 믿었겠어요? 요셉은 `무슨 수작이야. 성신으로 잉태하는 법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이것 봐라, 내가 너를 사지에서 구해준 은인인데 발뺌하기 위해서 그런 수작을 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싸움도 했을 것입니다. 남자의 성격에 한번 물어 보고 또 물어 보고 하면서 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가만히 다가가서 속삭속삭 물어보고 하는 것이 그 동네방네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잔치도 안 하고 처녀를 데려다 놨으니, 첫날밤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서 구경하는 것과 같이 동네방네 총각 녀석들이 `저거 이상하다'하며 궁금해 가지고 엿듣는 별의별 판국이 다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통해서 동네방네 소문이 퍼지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사람들은 마리아가 밴 아이의 아버지가 요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생각해 보십시오. 다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동네방네에서 소근소근하니까 마리아의 신세가 어땠겠어요? 배가 점점 뚱뚱해질수록 밖에 나갈 수도 없었을 것이고 대낮에 오줌 누러도 못 나갔을 것입니다.(웃음) 고개를 내밀고 뻔뻔스럽게 돌아다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마리아는 배가 점점 불러오면 불러올수록 `하나님이시여, 내가 이런 처지에서 아들이든 딸이든 어떻게 애기를 낳겠습니까? 동네방네에 발붙일 곳 없는 가냘픈 이 마리아의 신세를 아버지여 도우시옵소서'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될 수 있으면 이방에 가 가지고 흔적도 없이 살짝 애기를 낳아서 기르고 싶었던 것입니다. 소문난 그 환경에서 애기를 낳을 수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나그네 행로에 올랐다가 말구유에 예수님을 낳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자님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디가고, 삼촌 아저씨는 어디 갔습니까. 형님 누나가 왜 없었겠습니까? 또 만삭이 된 배를 해 가지고 가는 마리아가 어찌하여 유사시에 방비할 수 있는 포대기 하나 준비하지 못하고 옷 한 벌 준비하지 못한 채로 갔겠습니까? 요셉이 기분 나빠할까봐 할 수 없이 달랑달랑 빈 몸으로 아이를 낳으러 갔던 것입니다. 강보가 보자기지요? 말구유에 보자기로 예수님을 싸 놓은 것이 기독교의 자랑입니까? 기가 막히게 억울하고 분통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달려가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알려야 될 것 아니예요? 거기에서 베들레헴까지는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하루 저녁이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이 급보로 달려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요셉은 온다 간다는 소식도 없이 애급으로 도망가야 할 처량한 신세였던 것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의붓자식으로 태어난 것으로 인하여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가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머니 무릎에 안길 때에도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하여 앉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의붓자식으로 자란 예수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머니가 있어도 어머니와 진정한 사랑을 못 해봤고 아버지가 있어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 갔고, 형님 누나 동생 엄마 아빠 친척은 다 어디에 갔습니까?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는 어디에 갔습니까? 자기 친척으로부터 몰림받는 예수가 유대교로부터도 몰림받지 않을 수 없으니 예수가 몰린 것은 모두 친척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친척이 예수님을 창조주같이 모셨으면 예수님은 그 친척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결혼을 하고, 그렇게 되면 일족들이 예수님의 열 배 되는 일을 해놓는 것이 됩니다. 예수가 베드로 야곱 요한과 같은 어부들을 찾아 나서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찾는 것은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맺혀 있는 이러한 모든 한을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는 예수의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손자같이 사랑해야 됩니다.(잠깐 녹음되어 있지 않음)

사랑은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것

잘살자는 말하고 사랑하자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잘살자는 것은 어떻게 잘살자는 거예요? 서로서로 싸우면서 잘살자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것은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답은 간단합니다. 사랑하고 잘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사랑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엄마 아빠들이 자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와요, 미워요? 아주머니들 대답해 봐요? 「고와요」 얼마나 고울까? 내가 한번 아주머니가 되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아무리 연구해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좋을까? 젖을 먹이는 것을 보게 되면, 어머니들은 젖을 더 주려고 하고, 애들은 엄마 젖을 더 빨려고 하고.(웃음) 그것은 호스를 걸어 놓고 자기의 귀한 피를 뽑아 가라는 것과 같다 이겁니다. 아기가 줄기차게 빨아들이면 어머니는 그저 좋다고 끌어안고 그럴수록 좋다고 어서 먹으라고 합니다.(웃음) 아주머니들 대답해 봐요. 그래요, 안 그래요? 얼굴은 못 생겼더라도 자식은 전부 다 마찬가지라구요. 그렇지요?

자식에게 젖을 주는 것이 고와서 줘요, 미워서 줘요? 어디 그뿐입니까? 뭐 오줌 싸지, 똥 싸지, 밤새도록 뒤치다꺼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애기들을 보게 되면 몇 시간만 지나도 `엥 밥 줘' 하면서 밤 두 시고 세 시고 아랑곳없어요. 어머니는 허리가 끊어지고 등골이 아파 단잠을 자고 있는데, 아앙 울면서 일어나라 이겁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단잠을 깨워도 `옜다 먹어라'하고 젖을 줍니다. 그게 좋아서 그래요, 나빠서 그래요? 「좋아서 그럽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주면서도 더 주고 싶고 주고 나서도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만족하게 먹였지만 더 먹이고 싶은 것입니다. 다 주고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젖을 먹일 때도 크게 불렸다가 전부가 시원하게 빨아먹여야 기분이 좋다는 것입니다. 아주머니들 그렇지요? 이것은 내가 들은 말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럴 거라구요.

타락한 인간끼리의 엄마와 아빠 자식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분이 참다운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사랑한다면 얼마만큼 사랑하겠어요? 그 사랑은 전세계가 구경하리만큼, 동네방네 세계가 깨질 만큼 소리치고 싶어서 `아이쿠 좋아'하고 소리치게 되면, 세계 사람들도 `그렇소. 나도 좋소'라고 소리칠 수 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좋아서 웃을 때면 천지가 다 흔들거릴 정도로 웃어 젖힐지도 모를 거라구요. 그럴 거 아닙니까? `대관절 하나님 당신은 한번 그래 봤소?' 라고 묻고 싶은 생각 안 해봤어요? 선생님은 그런 생각해 봤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고 싶어하시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여러분의 결론은 뭐예요? 인정과 천정이 교차되는 자리, 인륜이 완성되는 자리요, 천륜이 시작되는 그러한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들 가운데에 미남이고 딸들 가운데 미녀인, 역사이래 천상천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요, 딸이라고 하며, 이런 아들딸을 모셔 놓고 온 세계를 거느리고서 먹고 춤을 추며 놀아 보고 싶겠어요, 안 놀아 보고 싶겠어요? 「놀아 보고 싶겠습니다」 대답해 봐요? 그러고 싶겠어요, 안 그래 보고 싶겠어요? 「그래 보고 싶겠습니다」

여기에 할아버지도 왔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도 왔지만…. 자기가 할 수 없이 강원도 산골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사람들을 모아다가 노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지고 싶은 생각이 없는 거예요. 그렇지요? 저 깊은 산중에서 아무리 땅을 파고 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만은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아들이 장가가고 딸이 시집가는 날을 맞으면 삼천리 반도에 잔치가 벌어져 천하가 온통 거기에 박자를 맞춰 가지고 한바탕 놀아 줄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사람들도 이것을 바랍니다. 그럴 수 없어서 못할 뿐이지. 그러면 능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는데도 안 하시겠어요? 하시겠어요, 안 하시겠어요?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참다운 인류를 대표한 세계적인 챔피언, 인정을 대표한 세계적인 챔피언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구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역사시대를 거쳐 안팎으로 챔피언의 자격을 갖춘 분이 와야 됩니다. 이것이 뭐냐? 메시아사상, 구주사상입니다. 우리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그런 존재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의 세계를 멈추려고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작전

여러분들에게 실례의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몸과 마음에 삼팔경계선을 맞추어 놓고 완충지대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운명길을 해결하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목이 걸려 가지고 본향땅을 찾아갈래야 찾아갈 수 없는 비운의 사나이와 아낙네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엮어 온 선조들이요, 현재에 살고 있는 인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삼팔선이 놓여 있으면 그것을 부숴 버리고 부산에서부터 신의주까지 고속도로를 놓듯이 밤낮으로 왕래할 수 있는 대로를 닦아야 됩니다. 그것을 닦기 위해서 인간들의 그릇된 도리 가운데에서 메울 데는 메우고 깎을 데는 깎아서 재차 공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지구성의 인간세계에 그 공사를 누가 착공해야 되느냐? 주인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해야 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의 역사과정에서 그러한 공사를 시작하여 골짜기를 메우고 높은 데를 깎아 평지를 만들어 나오고 있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는 마루되는 가르침입니다. 집에 마루가 중요해요, 서까래가 중요해요? 「마루가 중요합니다」 이름은 참 잘 갖다 붙였어요. 마루 되는 가르침, 그 이상의 가르침이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성서라고 하는데, 왜 그러한 이름을 갖다 붙인 줄알아요? 인간의 마음은 천륜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역사과정의 환경에서 전부다 망해 사라져 버릴 악한 인간들인데도 하나님은 아들딸로 만들기 위해 다시 공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얼마나 악하게 되었느냐?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태어나게 되어 있었는데, 도중에서 사탄 마귀의 핏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절대자인 하나님을 통하여 지음받은 인간이라면,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이념권내에서 마음과 몸이 일치된 자아의 자리로부터 갈림길이 없는 생애노정을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두 가지 노선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이 타락의 결과입니다. 몸뚱이를 통해서는 사탄의 핏줄이 연결되어 있고 마음을 통해서는 본성의 신이 연결되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 신과 육의 사람은 씨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며 고향이 다른 입장인데 하나로 묶여져 있으니 이 둘은 영원을 두고 계속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을 어떻게 평정시키느냐 하는 것이 인생문제입니다.

수많은 철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철인들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인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에게 맡겼지만 종교인들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역사는 미완성의 수레바퀴로서 굴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굴러가는 수레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 가지고 스톱을 시켜서 해부공작에 착수하려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방법입니다. 기분 나빠요, 좋아요? 「좋습니다」 이것은 거창한 사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브레이크를 어떻게 거느냐? 여러분, 자동차가 아무리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춰요, 안 멈춰요? 혹은 기차가 아무리 빨리 달리다가도 브레이크를 걸면 멈춰요, 안 멈춰요?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굴러가는 악의 세계, 인류가 가는 역사의 방향을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어 가지고 거꾸로 들이치느냐? 이것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식은 전부 거꾸로입니다. 알겠어요? 거꾸로 치는 거라구요. 남들은 겨울에는 감기들기 때문에 나가 일하면 큰일난다고 하여 `애야, 거 뭐하냐. 들어와라' 하지만, 통일교회는 나가 일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의 아주머니들은 다 나와 있지요?

통일교회의 문선생은 남자들을 부려먹지 않고, 일도 못하는 가냘픈 여자들을 부려먹으려고 이 동절기에 다 쫓아냈습니다.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하셨습니다」 여러분들 보이게는 잘했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못한 거라구요. 이런 일은 통일교회 문선생 외에는 세계의 어느누구도 못하는 일입니다. 대통령도 못 하고 공산당도 못 하는 거예요. 문선생은 세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곧잘 하는 거예요. 여러분의 합동결혼식도 그렇지요? 미국 녀석들도 합동결혼식을 한다고 오라고 하면 오게 되어 있어요. 안 오면 자기가 망하게 되어 있거든요. 사람은 손해보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기 나라에서 결혼하게 되면 백 냥쯤의 가치밖에 없고, 한국에서 결혼하게 되면 만 냥쯤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만 알려 주면 한국에 오지 말라고 해도 오는 것입니다. 오겠어요, 안 오겠어요? 「옵니다」 오는 거라구요.

무엇 때문에 그래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아니면 결혼할 데가 없어서 그래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 아니면 결혼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게 사고라구요. 병이 들기는 들었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말은 안 듣더라도 통일교회 문선생 말은 들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이 자기들 어머니 아버지보다 좋아서 그러는 거요, 나빠서 그러는 거요? 「좋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과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보다 선입니까?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리고 친척과 씨족을 살리기 위해서 가정을 희생시키면 이것은 선이지요? 「예」 개인을 희생시켜 가지고 선한 가정을 만들었으면 그 가정을 그대로 놔 두면 좋겠는데…. 씨족을 구하기 위해서 그 가정을 희생시키면 그것이 선입니까, 악입니까? 「선입니다」 자기 씨족은 망하더라도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씨족을 희생시키는 것은 악이예요, 선이예요? 「선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더라도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나라를 희생시키는 대통령이 있다면 그 대통령은 세계의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사상이 무섭다는 거라구요.

보다 큰 것을 위해 희생하라

여러분이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희생하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가정을 구하기 위해서…. 가정을 완전히 구했다면 다시 친척을 구해야 되기 때문에 가정은 친척을 위해서 희생해야 됩니다. 친척을 구하고 난 후에는 그 씨족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선입니다. 보다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이 희생되는 것이 선의 길을 닦아 나가는 공법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그 공법을 따라가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자식을 공부시킬 때에 `얘야, 우리 집이 이렇게 못사니까 너는 엄마 아빠 팔자를 고쳐 주기 위해 공부해라' 하는 부모하고, `네가 공부하는 데는 엄마 아빠를 생각하지 말고 네 형제와 가정을 위해서 하거라'하는 부모가 있다면 어느 부모가 선한 부모입니까? 그리고, `너의 가정은 생각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 싸우기 위해 공부해야 된다'하는 부모가 있다 할 때, 가정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하고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하고 어느 편이 선한 부모입니까?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부모입니다」 그건 틀림없지요? 「예」

그러면 `너는 세계를 위해서 생명을 다 바쳐 인간들이 하지 못했던 성인의 도리를 다하라'고 가르치고 권고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와 나라를 위해서 충신이 되라는 도리를 가르쳐 주는 부모 중에 어떤 부모가 더 선해요? 「세계를 위하라는 부모입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하라고 가르쳐 주는 부모가 더 선한 부모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이 관이 딱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태어난 것은 누구를 위해 태어났느냐 할 때, `나는 세계를 위해 태어났다' 나아가 `세계를 지도하는 하나님을 위해 태어났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는 세계적인 인물이 아니면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세계에서 맨 꼴지하는 사람을 사랑하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세계 챔피언이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나라의 챔피언이 아니고는 안 대해 주는데 지지리 못난 병신 짜박지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아들로 대해 주시겠어요? 그러므로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라는 거예요.

그러면 사랑하는 데는 무엇을 사랑할 것이냐? 하나님의 뜻은 인류를 구하는 것인데, 대한민국만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는 게 하나님의 뜻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내 어머니 아버지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알겠어요? 「예」 자기의 처자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론 처자도 위하고 세계도 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 이자택일을 해야 됩니다. 선과 악은 공존할 수 없는 운명권내에 서 있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며 살지 않고서는 멀고 먼 크나큰 세계적인 권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쁘고 급한 짧은 인생 행로를 가는 것입니다. 그 짧은 기간내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구 선생 같은 분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북만주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에, 어머니 아버지 혹은 처자가 눈물을 흘려도 아랑곳없이 매정하게 돌아섰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나라를 살리는 충신의 길을 달려 가려고 할 때 아내가 그 길을 반대하면 아내의 목을 치고서라도 가는 것이 충신의 길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말이 틀림없지요? 「예」 이것만 알면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자기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는, 자기 개인의 행복을 위해 사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니까 누구보다도 효도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지도해야 할 나라, 세계국가 즉, 개인적인 국가도 아니고 대한민국과 같은 하나의 민족적인 국가도 아닌 세계국가입니다. 그 세계국가를 위하는 충신이 되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위인과 성인의 차이

여러분이 세상을 보면 위인들이 많이 있지요? 세상에 위인은 많습니다. 대한민국도 위인이 있습니다. 누구예요? 이순신 장군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국민사상을 고취시키고 민족정기를 지향시키는 하나의 중심존재로서 국민들이 추모하고 숭배하는 위인이지만 대한민국내에서뿐입니다. 일본 사람에게는 어떻게 됩니까? 「원수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놈의 이순신 잘 죽었다고 했을 것입니다.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위인은 하나의 국경을 넘지 못합니다. 일개국을 중심삼고는 위인은 있을 수 있지만 성인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인과 위인의 차이는 무엇이냐? 국가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사람은 애국자의 이름과 더불어 위인의 이름은 얻을 수 있지만 성인은 못 됩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이냐? 성인은 국경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성인은 민족을 위해 산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종족을 위해 산사람이 아닙니다.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 인류를 위해 산 사람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만민을 위해서요, 억조창생의 모든 인종과 국경을 초월하여 초국가적이요, 초종파적이요, 초인종적인 입장에서 죽는다고 하면서 온 세계 인류와 세계적인 입장에서 인연을 맺고 죽음길을 판가리하고 간 사람들이 성인이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위인이 될래요, 성인이 될래요? 「성인요」 이제는 일개의 국가를 위주한 제국주의적인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의 때는 사상시대입니다. 그러면 사상시대는 뭐예요? 그것은 세계주의 시대입니다. 세계적 인격이 등장해야 할 시대이기 때문에 국가를 초월한 때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산당들은 단합하자고 하면 잘 단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국가를 초월한 세계적인 시대가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성인들의 소망이 무엇이냐? 성인들의 소망은 `만국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고 만민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형제가 될지어다'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 도리를 따라 성인이 되면 완전한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 소크라테스가 성인이예요?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아니라 철인입니다. 성인 축에는 못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지식은 생명문제를 간섭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식은 생명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거예요. 지식이나 철학이라는 것은 생명문제를 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문제는 논의할 수 있지만 생명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못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생명문제를 논의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인간의 지식문제를 초월하여 생명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도리는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의 반열에 동참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나온 종교 중에서 인륜만 가르쳐 주는 종교는 없습니다. 인정만을 중심삼은 도리를 갖춘 입장에서 성인이 된 사람이 있는가 보십시오.

공자는 유교의 도주지요? 공자의 가르침 가운데는 `위선자(爲善者)는 천(天)이 보지이복(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爲不善者)는 천(天)이 보지이화(報之以禍)니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먼저 천(天)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공자가 말한 천(天)은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합니다. 막연하지만 하늘을 위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하늘을 위하지 않으면 화를 받는다는 근본을 세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공자는 구체적이 아니고 막연하긴 하지만 하늘을 위주하여 천리를 따라 천륜을 본받아 가지고 인륜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에 성인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하나님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륜을 주장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신을 빼놓은 성인은 없습니다. 신의 뜻을 벗어난 입장에서는 성인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4대 성인은 누구누구예요. 전부 다 종교의 종주들이지요? 석가도 그렇지요? 그는 너무 영적입니다. 거기에는 근거를 잡을 수 없어요. 그 다음 마호메트를 보면 그는 표방종교 교주입니다. 4대 성인이라 하면 이 네 사람이지요? 여기에 소크라테스는 빠집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성인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했느냐? 하나님을 소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요?

모두 성인이 되어야 하는 통일교인들

종교의 길은 생명을 걸고 지켜 나온 길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과 천륜과 천정을 빼놓은 가르침은 성인의 가르침이 못됩니다. 신과 천륜과 천정을 중심삼고 천륜과 철두철미한 내용 밑에서 인륜과 인정의 도리를 바로잡고자 하는 데에 보다 가치적인 성현의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누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소망하는 최고의 자리인 `나는 아버지의 독생자다. 하나님의 사랑을 홀로 몽땅 차지할 수 있는 독생자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다'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핵심된 내용을 선포했습니다. 나는 신랑이고 너희들은 신부니, 너와 내가 신랑 신부와 같이 영원한 세계에서 함께 살자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는 형이고 너희들은 동생이다'라고 형제지연의 관계를 표현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신을 중심삼은 성스러운 가정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우월한 내용인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이처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무엇을 만들자는 것이냐? 하나님이 기뻐하고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세계적인 가정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신랑되시는 주님이 찾아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면 어린양 혼인잔치를 한다고 하였는데, 혼인잔치가 뭡니까? 세계의 남자와 여자를 대표한 신랑 신부가 만나는 잔치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어허둥둥 내 사랑아' 하면서 기쁨이 충만할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천상천하 모든 피조만물도 거기에 화답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보시기 위해서 신랑 신부를 보내 가지고 어린양 잔치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고 하며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명실공히 하나님의 가정 살림살이를 기반으로 하여 남아진 종교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삼은 세계 문화권은 기필코 이루어져야 됩니다. 현재의 민주주의 세계는 명실공히 기독교 문화권이지요? 이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인들은 위인이 될 거예요, 성인이 될 거예요? 「성인이 될 겁니다」 예수님과 같은 분이 뜻을 다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어요? 「못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뜻을 못 이루었다 이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보다 나아야 되겠어요, 못나야 되겠어요? 「나아야 됩니다」 예수님보다 나아야 합니다. 봄에 씨를 뿌렸으면 그 씨가 자라서 꽃이 핀 다음 열매가 맺힐 때는 더 완전한 열매가 맺히기를 바라는 것이 뿌린 자의 욕망이요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씨를 뿌렸으면 예수님보다 훌륭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좋아할까요, 나빠할까요? 「좋아합니다」 나빠하면 그 하나님은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보다 나은 성인의 반열에 동참해 가지고 4대 성인들에게 `야 너는 이러이러한 점에서 탈락하여 실패한 것이 아니냐' 할 때, 그들이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라구요. 세계적인 학자를 두고 볼 때, 몇백 년 전 학자하고 지금의 학자하고 어느 학자가 더 훌륭해요? 「지금의 학자들입니다」 지금의 학자가 옛날의 학자보다 못하면 되겠어요? 그러면 옛날의 예수님의 도리와 사상보다 지금 예수님을 중심한 도리와 사상이 예수님만 못해 가지고 되겠어요? 못하다면 망해야 됩니다. 어떤 집안에 부모보다도 못한 아들딸이 자꾸 태어나게 되면 그 집안이 망해요, 흥해요? 「망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망하게 된다면 모두가 `예수 그까짓 거'하며 침을 뱉을 거라구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반대하고 침을 뱉았다가는 누가 망하나 보십시오. 통일교회 문선생은 대한민국 전체가 망하라고 하고 기성교인들이 망하라고 빌고 야단을 하지만 나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기성교인보다 내가 잘났거든요. 그렇지요? 「예」 아무리 감정을 해봐도 기성교회 목사보다 내가 잘났다는 것입니다. 내가 교만해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내가 앞서 있고, 또한 하나님을 아는데 있어서도 누구보다도 내가 앞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났지. 그렇지요? 그러니까 통일교인들이 으스대는 거라구요. 욕은 먹지만. (웃음)

오늘의 고생은 내일의 영광이 된다

통일교인들은 비록 꽁꽁 언 보리떡을 갖고 나가 전도를 하지만 그 보리떡은 왕궁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보리떡입니다. 그 보리떡은 언젠가는 세계 만민의 가슴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후대의 어느 왕국에서 상감마마가 수라상을 대할 때는, 선대에 우리 통일사상을 갖추고 개척했던 아주머니들이 보기에는 형편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수고한 사상 앞에는 무릎을 끓고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듯 못난 녀석이 이런 밥을 먹어서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거예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선생님 말을 잘 듣게 돼 있어요, 안 듣게 돼 있어요? 「잘 듣게 되어 있습니다」 강제로? 「아닙니다. 스스로 그럽니다. 웃음」 내가 무슨 요술을 해서 그래요, 여러분이 요술을 해서 그래요? 나는 요술을 하지만 여러분이 자동적인 요술을 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가자하면 `예이 갑시다' 라고 합니다. 재미있게 살림살이하다가도 `아가씨 아주머니들, 대한민국이 망하게 되었으니까 짐을 꾸려서 등에 걸머메고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나섭시다' 하면 `그래요 그럽시다'한다는 거예요.

이번에 축복받은 가정의 남자들 손들어 보라구요. 이 사람들밖에 없어요? 손들어 보라구요. 여러분들 다 아니예요? 내려요. 이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미쳤었다는 거예요.(웃음) 여러분이 선생님을 언제 봤다고…. 선생님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노골적으로 얘기해 봅시다. 문선생이 사기꾼인지 아닌지 알아요? 그거 모르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은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해서 제일 추운 동삼삭에 아내를 거리에 내보내자 하면 `그러십시오'라고 합니다. 이거 정신 나간 사람이지. 미친 사람들이라구요. 미쳤다는 것은 도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요? 미쳤다고 할 때 그냥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미쳤다는 말은 도달했다는 말이라구요. 그렇지요? 그런 의미에서 미쳤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조금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여러분들이 애기를 보느라고 팔자가 좋겠구만.(웃음)

어느 교단의 지도자가 무슨 원수가 졌다고 남편과 아내가 재미있게 사는 가정을 파탄시키고 못살게 하겠어요? 그렇지만 가정은 그렇더라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선에 나서야 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끌어내야 되겠어요, 안 끌어내야 되겠어요? 「끌어내야 됩니다」 끌어내야 된다구요. 일선에 나가 있는 아가씨들, 아주머니 후보자들도 많지요? 아주머니들은 일선에 나가서 활동하다 보면 남편도 생각나고 아들딸도 생각나지요? 그럴 때마다 `이 요망스러운 무엇아'라고 욕하지요?(웃음) 그런 생각이 나면 그 생각을 지워 버리고 회개기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지독한 파입니다. 통일교파는 무슨 파라구요? 「지독파입니다」 지독파! (웃음) 여러분, 공산당도 지독하다고 하지요? 「예」 그런데 공산당은 생명에 위협을 가하여 가지고 강제로 지독하게 만들지만, 통일교파는 내 손에 와 가지고 자기들 스스로 지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게 더 지독한 거예요? 「스스로 지독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세계에서 제일 지독파가 누구냐면 통일교회입니다. 그리고 공산 세계에서 제일 지독파는 누구라고요? 「북괴입니다」 (웃음) 둘 다 지독하니 둘이 싸움을 해서 챔피언을 가려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싸워서 이겨야 할 패는 누구입니까? 「통일교회입니다」 통일사상을 가진 패입니다. 이미 그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어떠했어요? 자유당 때도 통일교회를 없애려고 문선생을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민주당도 그랬고, 혁명정부도 샅샅이 통일교회의 뿌리를 빼려고 형사단을 파송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뺄 테면 빼라' 했지만 빼긴 뭘 빼요. 와서 보니까 뺄 게 뭐가 있어야지요. 오히려 자기들이 보따리를 풀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좋소이다'하며 나오다 보니 오늘날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놓았습니다.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통일교회가 닦아 놓은 터전

이런 사람이 난 사람이라구요. 시시하게 집안에 들어앉아 가지고 고생하는 아내에게 주먹질이나 하고 아이들 앞에서 호령이나 하는 사람은 밖에 나가면 비실비실합니다. 우리 통일교회는 한국에서는 그저 못난 놀음을 하지만 외국에서는 어때요? 여러분, 이번에 어린이 무용단이 일본의 사또(佐藤)수상 앞에서 공연하는 것을 봤지요? 그 무용단은 내가 만든 거예요.(웃음) 선생님이 그 무용단을 만들 때 사람들은 별의별 소리를 다 했습니다. ‘통일교 무리들이 벌고벗고 춤추더니 이제 그 새끼들도 춤추지 않느냐. 저것봐라. 틀림없지 않느냐' (웃음)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너희들은 뭐냐. 동네 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더 짖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짖으라고 해, 계속 (웃음)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가지고 멕시코 한 교회의 단체보다도 나라의 단체로 만들면 좋겠는데 어떻소'하면서 이 사람도 편들고 저 사람도 편들며 서로서로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거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여기에 돈을 많이 들였습니다.

통일교회는 오늘날 예술분야에서 세계의 정상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링컨 센터에서 선보이기 위해 수많은 예술인들이 수십년 동안 정성을 들이는 것을 우리는 3년 동안에 닦았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노력했습니다. 낮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밤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때려 몰아 가지고 3년만에 숨어 있던 고대의 한국문화를 미국 전역에 자랑한 것입니다. 욕을 먹으면서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승공연합을 만들어 가지고 일본에서 한바탕 세계 사람들을 불러다가 전부다 감투를 씌웠습니다. 이것도 다 내가 한 거라구요. 이렇게 하는 것은 지지리 못난 한국을 잘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개한 사람들이 똥싸게 만들어 놓으면 선생님이 배후에서 전부 다 수습해 나온 거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이쯤 되니까 이제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의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에 합동결혼식을 한번 치르고 났더니, 기관에서는 통일교회의 중요한 행사라든가 이런 것 가지고 한국을 선전합니다. 김포공항에서 대한민국을 선전할 때 통일교회에서 합동결혼식한 것을 갖다가 선전하더군요. 여러분, 섭섭합니까? 「섭섭하지 않습니다」 기분 좋지요? 대한민국 것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빨리 대한민국 것으로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 승공사상이 대한민국 것이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망합니다. 누가 할 사람이 없어요.

반공연맹이 우리를 때려잡으려고 재작년까지만 해도 별의별 공작을 다 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우습게 알았다는 거예요. 그들은 우리를 훅 불면 날아가는 거품 짜박지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손을 떼라는 것입니다. 정보부나 청와대에서도 별의별 수작을 다 해 가지고 우리를 걸려고 했습니다. 뭐 자기들만 손이 있나요? 그럴 때는 이미 지나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가 자기들의 농간에 뿌리가 뽑혀 가지고 굴러갈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통일교회는 백안관까지도 침을 놓을 수 있는 기반까지 닦아 놓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내 손에 말려 들어가는 위협을 느낄 수 있는 기반까지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잘했어요, 못했어요? 「잘했습니다」 그런데 이 한국은 민족성이 틀려먹었다는 것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가 수십년 동안 반대하고 신문이 야단했지만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해명하고 싸우는 것 봤어요? 못난 패들이 상대가 되어야지요. 내가 갈 길이 바쁜데 동네 개들이 짖는다고 멈추겠어요? `개들이 짖는다고 양반이 뭐라고 하겠느냐? 어서 지나가자'이러고 나오는 것입니다. 잘했지요? 「예」

통일교회는 기반을 다 잡았어요. 내가 터전을 다 닦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부러운 것이 없어요. 링컨 차를 가져 오라면 가져올 수 있고, 벤츠 차를 가져오라 하면 당장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할 뿐이지. 알겠어요? 내가 지금 교회 2층에서 살고 있지만 몇억짜리 집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당장에 몇 억의 수표도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따라지 모양 이렇게 살고 있다구요. 천당에 가면 `통일교회 거룩하시다'라고 하겠어요? 이게 뭐예요. 이게 강원도 본부로구나. 그렇지만 좋다는 거예요.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

귀한 새일수록 둥지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둥지에서 자라지만 나중에는 둥지는 없고 그냥 나뭇가지에서 자랍니다. 보통 새들은 대부분 2주일 내지 3주일이면 둥지에서 다 날아갑니다. 그러나 귀한 새는 한달 반은 걸려야 날 수 있으니 둥지가 있더라도 그 둥지가 남아 납니까? 그러니 둥지가 있을 게 뭐예요. 나뭇가지에서 어미의 먹이를 척척 받아 먹다가 때가 되면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날아갔다 할 때는 인공위성이라구요. 인공위성. 인공위성을 타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젊은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라구요. 통일교회가 날아갈 때는 무엇을 탄다구요? 「인공위성」 인공위성을 탄다는 것입니다. 무슨 나라로? 달나라로 날아가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그런 판국에서, 이만 했으면 이제 통일교회는 기반을 닦을 대로 닦았습니다. 60년도하고 지금 때하고 보면 얼마나 달라요. 달라졌지요? 「예」 이제는 우리가 조금만 더하게 되면 다섯 발, 여섯 발 되는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교회를 믿지 않고는 못살 때가 옵니다. 통일교인들 보라구요. 이렇게 악착 같은 떼거리들인 데 그들이 견디어 낼 것 같아요? 남편이고 자식이고 다 버려 두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깃발을 들고 나서는 사상을 가진 무리인데, 동네에서 이런 무리에게 보조를 맞추지 않고 살 수 있어요? 못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안으면 죽든가 도망가든가 아니면 통일교회를 믿든가 해야 한다는 거예요.(웃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그럴 날이 온다는 거예요.

내가 춘천에 오니까 섭섭합니다. 내가 올 때에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들을 대해 가지고 얘기한다는 것이 기분이 조금 섭섭하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여기에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 있을까 딸이 있을까 해서 내가 심각한 입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찾아와서 얘기할 게 뭐예요?

통일교회 주의는 뭐냐? 예수가 되기 위한 사상입니다. 예수님보다 못한 사람을 만들기 위한 사상이 아니라구요. 예수님보다 나은 사람을 만들자는 거예요.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나을 수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없어요? 「있습니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내려요. 기성교회 목사들이 보면 큰일납니다.(웃음) 여러분이 전부다 예수보다 더 낫기를 바라니 얼마나 배포들이 커졌느냐는 것입니다. 이것 보면 얼마나 야단나겠어요. 예수보다 더 낫게 되면 여자로 말하면 예수를 지도하는 여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또 남자로 말하게 되면 예수보다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집안이 잘 되려면 아들딸이 잘나야지요. 그렇지요? 「예」 마찬가지라구요.

통일교회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보다 나은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통일교회 무리에게 전세계 기독교인들의 모가지가 걸려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협의회(NCC)에서는 `아이구 통일교회 문선생이 죽었으면 좋겠는데 죽기를 바랐던 통일교회가 살아 가지고 저러고 있구나. 옛날에는 그저 동네 개 짓는 줄 알았고, 지나가는 까마귀 소리인 줄 알았더니 아이쿠 까마귀 소리가 학소리로 변했구나. 학소리가 아니라 암닭소리, 아니 수탉 소리로 변했구먼'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꼬끼오'하고 새벽을 알리는 닭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이제 그 소리에 잠을 깨어야 할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야단났구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라구요. 얼마나 밥이 귀하면 밥줄을 붙들고 그렇게까지 처량하게 나오겠어요? 다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내가 이제 그들에게 밥통이 없어지면 밥통을 달아 줘 가지고 `옛다 먹고 물러가라'하고 한바탕 먹여 주려고 합니다. 기분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아이쿠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양반도 별수없구만. 자기 선전하는 데는 소질 있는데'(웃음) 그럴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이만큼 자기선전하는 것은 가짜가 아닙니다.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