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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여 밝아오라

일시: 1971.10.09 (토) 장소: 한국 중앙수련원

[기 도]

아버지를 위로하는 심정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닫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은 그 누구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해 왔습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떠한 자리에 있사옵니까? 높은 자리에 있느냐, 중턱에 있느냐, 골짜기에 있느냐? 혹은 아버지께서 찾아오시는 자리에 있느냐, 얼굴을 돌리며 외면하는 자리에 있느냐? 그 중의 어떠한 자리에 있을 것이어늘, 현재의 입장을 확실히 다짐지어 가지고 내일에 처할 수 있는 입장을 재자각하기 위해서 모인 이 자리인 것을 잊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시간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허락하신 뜻과 감당하여야 할 사명 앞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니 모든 것을 승리의 결과로 다짐지어 주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여러분은 통일교회 교인의 일원으로서 여기에 참석했습니다. 또,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사업분야의 책임자들로서 사명을 맡아서 일하다가 왔습니다.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의 입장은 통일교회에 있어서 보통 입장이 아닙니다. 지도적인 입장에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사업소장들이 처해 있는 자리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는 위가 있는 동시에 아래가 있습니다. 또, 선후가 있고 좌우가 있습니다. 위로는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고 여러분의 가정이 연결되어 있고, 좌우로는 여러분의 가정을 중심삼고 삼위기대 가정이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높으나 낮으나 공동적인 운명권에 처해서 각자 맡은 바의 직책을 가지고 하늘 앞에 좋은 보답의 길을 다짐하고 있는 자리가 현재 여러분이 처해 있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처해 있는 그 자리가 통일교회만을 위주로 하는 자리, 통일교회에게만 적용되는 자리냐?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나 환경을 두고 볼 때, 그런 자리는 아직까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통일교회를 위할 수 있는 자리도 되어 있지 않으며, 여러분을 위할 수 있는 자리도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통일교회를 위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결렬과 상충과 핍박의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일원은 되었지만, 여러분의 가정이면 가정을 볼 때, 거기에는 아내가 있고 부모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의 개체가 소신껏 사명을 다짐하고 나설 적에, 그 아내가 여러분을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전부가 그렇게 되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 자녀들이 여러분을 협조할 수 있는 자리에 섰느냐 하면 그것도 그렇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육적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혈육지간에 있는 부모나 처자 형제가 여러분이 가는 길을 협조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느냐? 그것도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합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자기 자신이 현재 통일교회의 일원으로 처해 있지만, 그 자리가 환경적으로 보증을 받고 옹호를 받고 찬사를 받는 자리가 돼 있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환경은 여러분을 규탄하려 하고 가정도 환영하지 않는 현상을 두고 볼 때, 여러분들은 외로운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을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이요, 가정을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이요, 사회를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이요, 나라를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정을 떠나고 나라를 떠나고 세계를 떠나서 자기 홀로 기뻐할 수 있는 자기 혼자의 주장을 가지고 나간다고 하면, 그것이 가정을 대표하는 자리가 아니면 과거 현재 미래를 두고 역사적인 규탄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길을 홀로 다짐하고 가는 데 있어서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길이 멀면 멀수록 역사과정에 있어서 보람찬 그 무엇으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규탄받을 수밖에 없는 결과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도 싫어하고 현재도 싫어하고 미래도 싫어하는 입장에서 가게 된다면, 그 길은 자연히 중단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간 길이 가정을 박차고 넘어갔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그 환경을 대표해서 갔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혹은 그 나라를 대표해서 갔다는 것을 나중에 알면…. 그런 길을 가기 위해 고독한 길을 갔다면, 그 길이 길면 길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가정 전체가 자기 앞에 지금까지 당당하던 권위를 버리고 눈물과 더불어 굴복할 수 있는 권(圈)을 맞을 것이요, 환경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굴복할 것이고, 나라 역시 그러한 자리에서 굴복할 수 있는 권을 맞을 것입니다. 이런 두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두 갈래의 길 사이에서 사명의식을 가지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출발의 동기가 문제

그러면 나의 출발 동기는 무엇이냐,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것입니다. 나 때문에 출발할 것이냐, 남 때문에 출발할 것이냐?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출발했다는 기준에 서게 된다면, 나타나는 환경은 고통거리가 될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출발한 걸음이라면 가정이 반대하게 될 때는 그 가정이 고통의 환경이요, 나라가 반대하게 될 때는 나라가 고통의 환경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일신을 희생시켜 가지고 전체를 위한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반대하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전체를 위해서 나가는 데 있어서 가정이 반대한다면, 그 가정이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전체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그 길 앞에는 도리어 가치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환경을 위해서 가는데도 불구하고 그 환경이 반대하게 될 때는, 그 반대하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내가 가는 길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나라를 위해서 가는데도 불구하고 그 나라가 반대하게 될 때는 그 나라가 현재에 있어서는 자기와 상충된 자리에 있지만, 미래에 더 좋을 수 있는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맞아 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자리에 나가게 될 때는, 그 나라의 반대가 크면 클수록 그 나라가 자기 앞에 굴복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으로 다짐될 수 있는 내용이 커진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이냐 사적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적인 것은 무엇이냐? 보다 남을 위하고 보다 큰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적인 것은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보다 작은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뜻의 길을 가는 데는 이런 두 갈래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뜻의 길에 선 사람 가운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뜻의 길을 가기는 가지만 그 귀결점을 자기가 좋기 위해서 가는 길이 있을 것이고, 전체를 좋게 하기 위해 가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두 갈래의 길 가운데 어느 한 갈래의 길을 가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뜻을 얼마나 사랑했는가

이렇게 볼 때, 자기가 뜻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버릴 만큼 뜻을 사랑했다, 혹은 자식을 버릴 만큼 남을 사랑했다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보다 나은 아내와 보다 나은 자식을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뜻을 자기 자식이나 아내보다 더 사랑하지 못 하게 될 때 그 사람은 보다 나은 자식이 아니라 보다 못한 자식, 보다 나은 아내가 아니라 보다 못 한 아내를 맞고 말 것입니다. 또한 뜻을 자기가 사랑하는 어떤 단체보다도 더 사랑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던 단체 이상의 좋은 단체를 맞을 수 있으되, 뜻을 그 단체보다 더 사랑하지 못했다면 그 단체 이상의 단체는 맞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부터 길은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나라로 연결되는 길은 막혀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나라를 위해서 가는 길에 있어서도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뜻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를 하고 그 나라를 희생시켰다면 그 나라 이상의 나라를 맞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 이상의 나라를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천리 원칙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위하는 자리에서 뜻의 길을 가겠다고 하게 될 때는 여러분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현재의 자리를 희생시키며 보다 나은 자기 자신을 추구해 가는 길에는 현재의 자기보다도 나을 수 있는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런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도 보다 선할 수 있는 길이 있는 동시에 보다 악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그 이하로 내려가는 길밖에 못 가게 될 때는 보다 악한 자리로 내려가는 길을 맞는 것입니다. 현재의 입장을 넘어 보다 큰 것을 위하여 희생하고 나설 때에 보다 선한 길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가 문제가 아니라 현재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고 볼 때에 뜻은 누구의 뜻이냐? 우리만을 위한 뜻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위한 뜻도 아닙니다. 그 뜻이 통일교회 문선생만의 뜻이라면 통일교회 문선생을 만나는 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통일교회 문선생 이상의 뜻입니다. 절대자가 있다면 그 뜻은 절대자의 뜻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절대자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이상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그 이상세계는 지구성이라는 한계지어진 것만을 중심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무한한 것, 영계까지, 한계를 초월하여 갈 수 있는 뜻을 바라보게 될 때는, 세계를 잃어버리더라도 내면적인 면에서 그 이상의 것을 차지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제아무리 포악하고 아무리 지독하고 아무리 핍박이 드높다고 해도 그 핍박을 능히 이겨 나가는 사람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보다 큰 사상, 보다 큰 뜻을 품고 가게 될 때는 그보다 약한 뜻의 기준은 거기에 포함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높은 사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세계 역사상에 나타났던 사상 가운데에서 통일사상보다 더 큰 사상이 있느냐? 그런 면에서 통일사상은 최고의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수련회에 참석한 의의를 찾으려면

오늘날 민주와 공산, 양대 진영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적인 사조가 엇갈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소망할 수 없고 그 무엇도 신뢰할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비판하고 대처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녀 가지고 고차적인 소망의 기점을 차지하고 나설 수 있는 자리에 선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상을 가지고 민주세계를 넘어야 하고 공산세계를 넘어야 됩니다.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넘기 위해서는 민주세계가 가지 못할 길이 있다 할진대 그 길을 통일교회만은 갈 수 있어야 하고, 공산세계가 가지 못하는 길이 있다면 그 길도 통일교회만은 갈 수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종족을 지나고 민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서 세계로 갈 수 있는 선봉자가 있느냐 할 때에, 여기서 의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 수련받는 이 장소가 아닙니다. 세계 인류가 다 가고 싶어하는 곳이 어디냐? 이 장소보다 더 큰 곳입니다. 더 높은 곳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를 찾아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 어떤 소망을 가진 그때보다 낮아지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높아지기 위해서 온것입니다. 교육은 못해지기 위해서 받는 법은 없습니다. 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에 찾아온 것은 보다 높아지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의 본심의 자세를 두고 판단해 볼 때, 여러분이 여기에 높아지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높아지기 위해서 여기에 교육받으러 왔다면, 여기에서 `그전보다 높아졌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에게는 여기에 온 의의가 없는 것입니다.

본부가 지시한 것을 따르려면 불편할 것입니다. 여기는 순응할 수 있는 마음보다도 반발심을 가질 수 있는 자리입니다. 반발심이 생겨서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소모전이 벌어집니다. 순응하는 마음이 강하게 될 때는 발전이 벌어지지만, 투쟁의 요건이 벌어질 때는 소모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녹음된 것 가운데 일부는 듣기 어려운 것이 있어서 정리 못했음)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온 것은 필시 못해지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본부도 여러분이 못되게 하기 위한 길을 제시하려고 여러분을 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나아질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서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제시한 내용이 옛날 여러분이 가던 길과 같을 것이냐? 달라야 됩니다. 여러분이 왼쪽으로 왔으면 바른쪽으로 가라, 앞으로 왔으면 뒤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명령이 자기에게 맞지 않다고 해서 낙심하는 사람은 거기서부터 후퇴만이 있을 뿐이지, 전진과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제시하는 명령이 평탄한 길로 가는 사람한테 `저 산으로 올라가라'는 것이었을 때, 자기는 그때가 겨울이면 좋겠는데 삼복지절이어서 혹은 나는 뚱뚱한 사람이라 그런 길을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기서부터 작별하는 것입니다. 영영 작별하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서 못 가게 될 때는 그것이 연장되어 어느 한때에 그 인연이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영영 마지막 길이 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은 갔다가 와서 다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가다가 못 가게 되면 마지막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우리 선조들을 가려 나온 하나님의 뜻을 두고 보아도 두 번씩 택해서 섭리하는 놀음이 아니더라는 거예요. 가다가 못 가면 영영 갈라지는 길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짊어진 자리는 지극히 무서운 자리인 것입니다. 제물을 드려야 할 자리가 책임을 진 자리요, 제물을 드리는 자리는 생사의 판가름을 하는 자리입니다. 제물을 잘 드리면 전진이 있는 것이요, 잘못 드리면 후퇴가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 공동으로 동시권에 머무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진 아니면 후퇴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런 실정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찾아왔다가 전진하느냐 후퇴하느냐 하는 기로에 있는 것입니다.

전진이란 말은 하기는 쉽지만 실천하려면 그 내용이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보다 잘 전진하려면 그 전 단계의 기준 이상을 능가할 수 있는 소모전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열을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열 이상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찾아야 할 조국

여기에서 `조국이여 밝아 오라' 하는 제목을 생각해 볼 때, 여러분은 나라 없는 백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과거에는 나라가 있었느냐? 역사상에 우리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형태의 나라가 있었느냐? 그런 나라의 형태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찾기 위해 수고한 사람이 없어서 그랬느냐? 아닙니다. 그 나라는 과거 역사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그런 자리에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맞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시대권내에서 안팎을 갖춘 기준을 중심삼고 그 나라를 찾을 수 없었기에 그 나라를 못 맞은 것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조국이라는 것은 오늘 이 땅 위에 있는 그런 어떤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나라와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차원이 다른 그 나라를 이어받으려면 그럴 수 있는 사상적인 주체성을 가진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주체적인 사상은 절대자인 창조주가 있으면, 그 창조주의 사상과 일치되는 사상이어야 될 것입니다. 절대자가 원하는 나라가 있으려면 그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그 나라 국민이 일치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국민성을 갖추고 국가 형태를 갖추어야 될 것입니다. 그 형태를 보존시킬 수 있는 자격의 사람들이 못 되었기 때문에 그 나라는 형성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를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한 개인은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지상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통해서 그런 대표적인 한 분을 모시고자 하는 사상이 재림사상입니다. 이 재림사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개인이 나오는 것이요, 새로운 가정, 새로운 종족, 새로운 민족,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의 형성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재림사상은 여타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표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이 사망세계에서 썩은 사체를 뽑아 버리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그것을 거름삼아 가지고 커야 됩니다. 여기서 좋다고 하는 것을 거름삼을 줄 아는 힘을 가진 새로운 주체적 인격을 갖추고 오는 사람입니다. 사탄세계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자기의 생명체로 삼아 부활의 권한을 다짐할 수 있는 아들이면 아들, 백성이면 백성이 지녀야 할 인격을 두고 볼 때, 지금까지 백성을 전부 다 거름삼아 가지고 흡수할 수 있는 주체력을 가져야 됩니다. 이 사망의 세계, 썩은 사체와 같이 된 것을 거름삼아 클 수 있는 개인적인 실력을 가진 인격자가 아니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망세계의 모든 것을 거름삼아 그것을 흡수하여 소화시킬 수 있는 주체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 세계에 악한 사람이 있으면 악한 사람을 감동시켜야 되는 것이요, 악한 사람의 사상을 거름과 같이 흡수하여 새로운 재료로 삼을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국가가 반대하더라도 반대하는 그 국가에 밀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담대하게 뚫고 들어가야 합니다.

원수를 갚고 나면 하나는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패자는 승자의 거름더미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거라구요 .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디에 서 있느냐? 통일교회가 찾는 것은 통일교회 그 자체가 아닙니다. 통일교회보다 높은 것을 찾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보다 높은 차원을 위해서, 보다 나은 차원을 위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다 높은 차원의 기준이 뭐냐? 통일교회 그 자체보다도 통일 교회가 모실 수 있는 나라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하고자 하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단체가 크면 클수록 세상에 수많은 단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거기에서 배워 가지고 그걸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흡수하여 소화시켜 가지고 다시 내 영양소로 만들어서 삼킬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됩니다. 거기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동화시켜야 됩니다. 그것이 일원화되어 삼천만 민족을 넘어 남북한의 국민성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나라가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주권은 곤란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의 주권 이전에 백성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조국의 새 아침을 맞이하려면 고난의 밤을 통과해야

통일교회는 나라보다도 먼저 백성을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민족을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민족을 볼 때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민족이 나뉘어 있으면 주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는 주권이 못 됩니다. 일방적인 주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남북한을 능가할 수 있는 민족적 정신기준을 어떻게 일원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후의 통일교회가 힘써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조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조국이란 이름이 나왔다 하더라도 상처를 입은 조국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권위와 신념을 가지고 만든 조국이 아니라 갖은 상처를 입고 수치를 당하는 조국일 것입니다. 그런 조국은 맞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젊은이나 혹은 뜻 있는 사람이라면 통일교회의 발전보다도,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가 흥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 다 발전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 통일교회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조국이여 밝아 오라'는 마음과 소망을 가진 여러분이라 할진대, 조국이 밝아 오는 데는 어떻게 밝아 와야 할 것이냐? 해가 지는 황혼이나 밤중을 즐거이 맞을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점점 다가오는 세계적인 종말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여기서 암담함을 느낄 것이 아니라 `올 수 있는 현실이 왔다. 밤아 오너라, 밤이 오면 나는 달려간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밤을 피해 가는 것보다는 `찬란하게 밝아 올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밤중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녁의 황혼이 있으면 또한 새벽 미명도 오나니, 그 과정에는 틀림없이 칠흑 같은 자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때입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때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거동하기를 싫어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때에 권위를 가지고 힘찬 거동을 하려면 자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어서 새로운 날의 한 시, 두 시, 세 시, 네 시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고 가면 기필코 어둠의 끝이 오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절망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보람 있는 희망을 갖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새벽닭이 우는 것은 아침이 찾아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침의 여명이, 칠흑같이 깜깜한 어두움과 밝음이 교차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경지가 오면 남모르는 가운데 환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햇빛만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할 수 있게끔 긴 밤을 새워 가면서 광명한 새 아침이 우리 앞에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햇빛을 보는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 시간을 다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신음하는 도수가 크면 클수록 광명한 아침 햇빛을 맞는 감회는 드높아질 것입니다. 그 크기에 따라 가치는 비례되는 것입니다. 또 그 과정이 힘들었으면 힘들었을수록 아침 햇빛을 바라볼 때 더 큰 함성을 지를 것입니다.

그 아침 햇빛을 맞기 전에 추운 겨울밤을 지냈고, 자기 스스로 넘기 어려운 수난길에 부딪쳤으면 부딪쳤을수록, 그 도수가 크면 클수록 비례적으로 새 아침의 광명을 맞는 기쁨도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에 없었던 광명한 새 아침을 맞는 데 있어서 `여명이여 밝아 오라'고, `조국의 새아침이여 나타나라'고 하며 바라던 입장에서 광명한 새 아침을 맞게 된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보람 있게 그런 아침을 맞는 첫번째 기수가 되어서 최고의 기쁨을 다짐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로 말미암아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민족과 국가의 전통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을 서러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대열에서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조국이여 밝아 오라'는 표제를 두고 볼 때, 그 조국이 밝아 오기 전에 조국을 위한 수난길을 내 생애의 고빗길로 알고, 생명을 바칠 각오를 다지면서 그 수난의 길을 당연한 것으로 소화시키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당하는 어려움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 자체는 소모되더라도 자신의 가치는 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게 될 때는 수난길을 거쳐 가지고 새로운 광명의 아침, 새로운 국가를 맞이하여 거기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절정감을 누려야 할 것이 아니냐? 절정감을 누리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바라셨던 기준과 일치하게 될 때, 거기서부터 비로소 천지에 새로운 역사의 전통과 새로운 국가 형성의 출발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 그것이 내 생애에서는 조국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국의 국가 주권을 중심삼고 본향을 찾아갈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하늘땅에 자랑할 수 있는 권위가 나타날 수 있는 한 날을 맞기 전에 조국은 밝아 올 수 없는 것입니다.

조국을 찾기 전에 전통이 수립돼야

그러면 그 아침을 밝은 아침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충신은 누구이며, 애국자는 누구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자그마치 통일교회는 밝아 오는 조국의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함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여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선두에 서서 그날을 찬양하고, 그 시간에 목소리를 드높여 함성을 지르고 개가를 부르며 그것을 하나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권위를 다짐하는 통일교회가 된다면, 통일교회가 걸어온 역사는 새로운 나라의 전통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사상은 새로운 나라의 국민사상이 아니 될 수 없으며, 새로운 역사 창건의 기준이 아니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러한 조국이 왔다 하더라도, 그 조국을 맞이할 수 있는 과정에 있어서 조국을 맞기 위해 수난을 거쳐 가지고 수고한 애국자가 없이 광명한 아침의 조국을 맞는다면,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그 무엇을 제시하여 이 나라의 민족정기를 형성하는 놀음이 또다시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나라가 오기 전에 그 나라를 오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는 인연을 거쳐야 나라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동기의 인연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은 광명한 데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칠흑 같은 밤이라는 시간을 거쳐 가지고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둠의 지배를 받지 않고 그 환경을 흡수할 수 있는 권위의 자리에서부터 전통의 기원이 벌어져야만, 광명한 아침의 조국은 비로소 정상적인 궤도로 찾아올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 조국의 전통적 기준은 아침에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을 향해서 움직여 나온 시간의 과정에서부터 형성되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조국 광복의 광명을 맞음과 더불어 앞으로의 새로운 문화 창건의 전통을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전통은 역사를 대표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시대를 대표해서도 부끄러움이 없고, 미래를 대표해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전통의 내용이라고 공인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공인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 될 것이냐? 그것은 그 나라를 가기 위해서 꿈만 꾸던 사람들의 행적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의 행적이 아닙니다. 그 나라를 위해 선두에 서서 죽음의 길이 있으면 죽음의 길도 자기가 도맡은 사람들의 노정이요, 희생의 길이 있으면 자신이 희생의 길을 전부 다 도맡아 나온 사람들의 노정이요, 어려운 국면이 있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놀음을 한 사람들의 노정입니다.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들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 행동은 광명한 데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명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으려면 그 경계선 이쪽에 있더라도 경계선 저쪽에도 가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쪽에서 수난길을 가더라도 저쪽에 가겠다는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조국의 장래가 밝아 올 수 있는 시대권내에서 그 조국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보다 칠흑 같은 밤중에 이 조국광복의 뜻을 밝혀 줄 수 있는 모임의 형태를 갖출 수 있는 표준이 그 이전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절대적인 신념과 사상이 있어야 됩니다.

어두운 세계에서 조국에 빛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그런 절대적인 사상을 갖춘 단체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 그러한 단체의 책임이나 사명을 이어받는 길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이것을 이어받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순리적인 자리에서는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죽음이 엇갈리고 비운이 엇갈리고 혹은 생사를 판가리하는 과정에서 이어받을 수 있습니다. 그 생사의 판가리 과정을 밟게 될 때, 이것을 책임지고 출발할 수 있는 신념을 가진 사람 외에는 그 자리에 동참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두운 세계에 있어서 조국에 광명을 비추어 줄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이 아니고는 밝아 오는 조국 광복의 새 아침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밤은 어둡더라도 그 사람은 반드시 찾아가 봐야 한다.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춰 줄 수 있는 광명한 횃불이 된 사람이다. 암흑 천지에 나서서 광명한 등불의 사명을 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찾아오는 조국 광복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느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계사적인 입장을 두고 볼 때, 이때가 끝날이라는 것은 다 판결이 났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금후에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이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민주세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공산세계가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나라를 봐도 캄캄한 천지가 되어 있고, 아시아를 봐도 캄캄한 천지가 되어 있고, 세계를 봐도 캄캄한 천지가 되어 있지 않느냐? 이러한 암흑 천지 가운데에서 기수가 되어,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한다 하더라도 그 암흑을 헤쳐 가지고, 암흑 천지에 있어서 하나의 세계를 품되 그들 앞에 새로운 환경을 제시할 수 있는 주체사상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공산국가 주권을 바라보기 전에, 민주세계 주권을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봐라'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너를 바라볼 때 너는 세계를 대표한 사람이다. 너의 가정을 바라볼 때 세계를 대표한 가정이다. 너의 종족을 바라볼 때 세계를 대표한 종족이다. 너의 단체를 바라볼 때 세계를 대표한 단체다'라고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의 가치는 민주국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공산세계의 국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대했으면 고차적인 내용의 빛이 어제보다 낫다 할 수 있는 발광현상의 주체성을 가진 단체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통일교회는 그런 단체라는 것이냐? 통일교회가 분명히 세계를 구할 것이냐?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역사는 틀림없이 그런 곳을 통해서, 밝아 오는 세계적인 조국 광복은 그런 인연을 따라서 기필코 찾아올 것이다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국가의 신음거리가 나를 거쳐간다고 하더라도 그 흑암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순화되어 버릴 수 있는 주체성을 지녔느냐? 자기가 흑암에 침식되지 않고 도리어 침식시킬 수 있는 권위를 가졌느냐? 빛과 어둠은 엇갈리는 것입니다. 빛이 있게 될 때는 어두움이 사라져야 됩니다. 언제 사라져 갔는지 모르지만 사라져 버리게 하는 빛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지녀 가지고, 어두운 세상이지만 나 스스로 빛을 발해 가지고 사방에서 자기를 주시하여 찾아 줄 수 있는 발광체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개인으로 빛나야 되겠고, 가정으로 빛나야 되겠고, 종족으로 빛나야 되겠고, 교단으로서도 빛나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땅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민족을 형성해야 합니다. `저 종교를 바라봐라. 저 통일교회를 바라봐라. 거기에는 빛이 있나니,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우리와 다르다. 거기는 희망이 있는 곳이요, 내일이 보장되어 있는 곳이다. 망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소망과 희망이 있나니, 희망에 벅찬 신념은 내일의 조국 광복을 오게 하여 하늘 앞에 남아지는 세계적인 요인으로 서기에 부끄럽지 않다' 할 수 있는 내용이 깃들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내일을 보장할 수 있는, 스스로의 빛 될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있느냐, 그것으로 어두움을 얼마나 밝혔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밝아 오는 조국의 아침 햇빛을 맞이하기 위해서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해가 떠오른 다음에 맞이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벌써 전날 황혼 때에 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몇천년 전부터 미리 가서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영계로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면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 꼴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기다리는 데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기다리느냐? 역사적인 위인이나 성현들이 기다리는 그 기준 이상의 실적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준 이상의 실적을 갖지 못하게 될 때는 그들의 꽁무니에서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이상의 준비를 해 가지고 기다려야 되겠습니다.

태양이 다 올라온 자리에서 `그냥 그대로 나 모를 때 올라왔나 보군'하는 사람은 아무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보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역사가 창건된 것이 아니요, 그런 사람들로 말미암아 역사적 전통이 닦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있으나마나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맞을 수 있는 광명한 새 아침이 이 천지간에 있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없기 때문에 그 있어야 할 자리에 우리가 앞서 가자 하는 주의가 통일주의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어느 입장에 있느냐? 암담한 자리에서 가려고 하는 입장에 있느냐? 그야말로 나라를 위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밝아 오는 조국이 필요로 할 수 있는 용사로 나타나 있느냐? 그럴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천태만상이라구요. 여기 몇 명있어요? 80명?「77명입니다」77명이 있으면 77계단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조국이 지금까지 세계를 향해서 밝아 와야 할 텐데 밝아 올 수 있었느냐? 지금까지는 밝아 올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종단이 많고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조국은 밝아 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통일교단을 중심삼고 `조국이여 밝아 오라' 할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의 생애는 길지 않습니다. 이미 50세가 지났습니다. 이러한 천주사적(天宙史的)인 사명을 짊어진 선생님에게 그런 뜻을 품은 내연(內緣)이 있다 할진대는 이것이 굉장한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생애를 중심삼고 역사가 귀결돼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분수령이 되어 그것을 중심삼고 밟고 넘어가게 되면 되는 것이요, 못 넘어가게 되면 영영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천지의 빛과 승리의 영광이 일시에 들릴 수 있는 이때

통일교회에 있다가 떨어지기는 쉽지만, 한번 후퇴한 후에는 다시 들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라구요. 여러분이 명령을 받고도 명령대로 행하지 않을 때에는 후퇴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못 간다는 겁니다. 통일교회 식구들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자기 최후의 운명의 판가리를 짓는 놀음이라구요. 심각하다구요.

앞으로 새로운 천지의 역사는 어떠한 역사가 될 것이냐? 과거에 여러분의 선조들이 엮어 온 애국지사의 역사는 더 이상 남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의 성인들이 남겨 놓은 그 역사도 안 남는 것입니다. 다 없어지는 거예요. 단하나 남아질 것은 뭐냐? 참부모의 심정의 도리를 찾아온 그 길만이 남아질 것입니다. 타락권내에서 제물을 쪼개 제사하던 그런 복귀 노정의 역사는 안 남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뭐 다들 고생했지만 그 고생은 남지 않는 것입니다. 단 하나, 그 부모님이 가신 걸음이 고생이라면 그것만이 역사에 남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나오던 걸음이 얼마나 비참하더냐? 그 걸음은 사랑으로 표시될 것이고, 그 노정이 치열했으면 그것은 하늘의 역사가 움직여 나갈 수 있는 궤도로 깔려질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시대에 때를 맞추어 생(生)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이것은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많은 사건 가운데에서 오직 나라는 존재 가치를 지녀서 이 눈으로 볼 수 있고, 이 감각으로 느낄 수 있고, 이 귀로 들을 수 있고, 이 입술을 통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세계사적인 사건이요, 그것은 천지에 없었던 새로운 기적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연이 되어 가지고, 여기서 풀려 나가는 실마리에는 하늘땅도 다 물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눈물짓는 날에는 천년사(千年史)의 수난의 탕감노정에서 지은 눈물은 상대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생명을 다짐하고 생사를 결정짓는 치열한 전투장에서 흑암권세를 밟기 위해서 투쟁하던 그 역사는, 조국광복이 벌어지는 날에는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어둠의 세계를 제거시킬 수 있는 무자비한 칼날이 될 것입니다. 그 이상의 역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역사를 따라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미래의 소망을 바라보며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소망의 실체로서 추구해 나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미래를 바라보고 나가지만 그때는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몸짓하심) 그 놀라운 한때는 무한한 가치가 솟아나는 곳,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자리, 그 기준이 역사적 시대의 초점상에 피어날 때인 것입니다. 그때가 참부모가 현현하는 시기입니다.

그러한 일생을 중심삼고 볼 때, 그 일생은 빛날 수 있는 일생인 동시에 최고의 정상이 되는 일생입니다. 그런데 일생을 빛날 수 있는 최고의 정상으로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일생에 있어서 평탄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갖은 수난과 곡절과 피어린 투쟁이 엇갈리는 고빗길이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빗길을 거쳐가는 것이 최고의 정상이 되는 길이더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생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에게는 그런 정상의 자리에 동참한다는 것 이상의 가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정상의 자리는 다른 곳보다 높은 자리이기 때문에, 아침 햇빛이 솟아오르게 될 때 햇빛은 그 최고의 정상을 먼저 비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자리에서 광명한 햇빛을 바라보고 느끼는 그 기쁨, 그 누구도 바라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고차적인 자리에서 감격할 수 있는 그런 희열을 과연 그 누가 느낄 수 있느냐?

앞으로 조국 광복은 물론이지만 조국의 전통을 세울 수 있는 역사적 환경이 여기서만이 시작된다는 사실, 역사적 공신이 될 수 있는 때는 이때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때를 놓칠소냐? 수천만의 선조들은 이때를 얼마나 바랐겠느냐? 이것이 한 발짝도 안 되는 것이요, 그 반쪽밖에 안 되는 기준일는지 모르지만, 이 기준에서 천지의 빛이 일시에 발할 수 있고 승리의 영광이 일시에 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소원 전체가 피어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조국 광복의 한날을 맞아야 할 우리의 다짐

그런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여러분을 대하는 선조들의 책임감은 클 것입니다. 백 명의 선한 선조가 있으면 백 명의 선한 선조는 심정을 조여 가면서 그 한때를 기다릴 것입니다. `야, 이 자식들아, 피눈물을 다 흘려라. 뼈와 살이 에이는 죽음길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선두에서 싸우다 쓰러져 달라'하며 고대할 것입니다.

왜? 참부모가 가는 길 앞에서, 가지 말라고 말릴 수 있는 자리에서 죽어 갔다면, 참부모의 심정을 사모할 수 있고 동경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여러분의 선조는 여러분이 그럴 수 있는 무리가 되기를 고대할 것이 아니냐? 또한 삼팔선을 넘는 길이 있는데 내가 선두에 서겠다고, 아무도 가지 않더라도 나는 가겠다고 하며 나섰다면, 그의 걸음은 참부모가 바라는 심정을 자기 일신에 집중시킬 수 있는 책임을 지고 가는 걸음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는 방향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그 자리도 내 일신의 최후의 행복의 날로 알고 가겠다고 죽음을 앞놓아 가면서 달려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가장 치열한 자리에서 참부모의 사랑과 동정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의 인연을 그 자리에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될 때, 그는 심정의 역사세계에 전통을 남기는 데에 기수가 될 것이어늘, 그런 후손을 가진 선조가 있다면 그 선조는 무한히 무한히 찬양할 수 있는 후손이라고, 무한히 무한히 머리를 숙여 존경하여야 할 후손이라고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럴 수 있는 때가 역사시대 어느 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가 그런 때라는 것을 생각할 때, 삼백 예순 날, 일년이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아쉽고 얼마나 비통한지 모르겠다고 하며 자기의 생명을 걸어 결의할 수 있고, 자기 일신을 그런 기준에 걸어 넣고 다짐할 수 있는 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 현재 통일교단에서 책임을 진 무리들이 아니냐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이때를 놓치게 된다면 여러분의 일족 일파에는 영영 다시 올 수 없는 때가 될 것입니다.

부모가 맞을 수 있는 조국 광복의 한날, 그 부모의 자식들이 맞을 수 있는 조국광복의 한날, 부모를 중심삼은 종족의 인연을 가지고 맞을 수 있는 조국광복의 한날, 그 인연을 따라 민족의 권한을 찾을 수 있는 한 날, 영광의 세계의 출발을 바라보고 나갈 수 있는 한날이 바로 여러분 개인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보람있는 조국이여, 밝아 오라. 보람있는 조국이여, 나와 더불어 가자. 피를 흘리는 길을 가더라도 나를 빼지 말고, 눈물을 흘리는 길을 가더라도 나를 빼지 말아 다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난과 극복이 엇갈리는 자리를 그 누구도 싫다 할지라도, 손을 들어 `내가 가겠다 할 수 있게끔 격려해 달라'고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조국 광복의 대열에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될는지 모르지만, `어려운 사정이요, 나에게서 지나가거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반역도가 되어 원한의 화살을 맞는 불쌍한 무리가 될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조국의 운명이 엇갈려 있는 이 시운을 바라볼 때, 죽어도 그럴 수 없다고 다짐해야 할 것이 우리의 자세가 아니냐? 세계가 혼탁하고 혼란된 중에 있기에 내일을 예기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런 세계를 대하고 있는 우리의 자세가 아니겠느냐? 이런 입장에서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였던 조국을 사랑하기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일신을 내걸고 `조국이여 밝아 오라'고 외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조국이 잠들어 있으면 내 손으로 일깨워서 새 아침의 조국을 만들겠다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일신의 피해를 입고 내 일신이 찢김을 당해 피를 흘릴지라도 거기에 전통을 남기고 죽어 가는 애국자가 되겠다, 충신 열녀가 되겠다고 하며, 그것만이 나의 생의 철학이요 그것만이 나의 보람있는 사명이요 책임이라고 다짐하며, 그렇게 일생을 바치고 갔다 할진대 그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는 승리자로서 영광의 등대가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엄숙한 시점이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엄벙덤벙 지나가는 한 날, 한 시, 한 순간 가운데 거쳐간다는 것을 몰라서는 안 되겠습니다.

3시대를 좌우하는 최후의 결승점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세계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쉬운 것입니다. 망할 수 있는 동기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것을 거름삼아 가지고 사방에 뿌리를 박아서 힘차게 줄기를 뻗고 가지를 뻗어 잎이 무성해야 할 때가 오나니, 그때야말로 새로운 봄날을 맞이하여 광명한 햇빛과 더불어 꽃을 피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되겠다, 가지에 새로운 싹이 돋게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다고 마냥 준비를 해 가지고 재삼 다짐하면서 기다리는 마음에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사무친 마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을 폭파해 버리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 있을 수 없는 자신이라면서 감격에 벅차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미래를 개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조국에 밝은 아침이 찾아오지 않으면 우리 손으로 찾아오게 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어두움을 대하여 세계사적인 책임을 지고, 수난길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고, 혹은 찢기는 자리, 죽음의 자리를 자처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죽어 가더라도 마음 세계에서는 이미 광명한 조국을 맞고 가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때든지 천국에 안 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우리는 역사적인 인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세계사에 없었던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세계사적인 시대에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기쁨의 한때를 맞이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입장이 현재의 입장인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비례한 가치의 추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만일 여러분이 얼쩡거리다가 이것을 못 이루게 되면, 후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이 가치를 알고 무덤을 찾아와서 무슨 말을 할 것이냐? `우리 몇대 선조는 누구와 같은 시대의 동역자였는데 조금만 더 고생을 하고, 조금만 더 희생해 가지고 우리를 보다 잘되게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훌륭한 선조들이 되어 모래 사장에 무덤을 남겼다면 그 무덤이 영원한 무덤이 되지 않을 것이니 후손들이 그 무덤을 찾아다가 동산 능선지 귀한 곳에, 복귀 천국 동산의 명당 자리에 모시는 조상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덤이라도 원한을 남기는 무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후손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영계에 가게 될 때는 어떻게 조상들을 대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놈 자식아, 꼴은 좋다고 통일교회 다니고, 내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은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잘했더라면 영광에 빛날 수 있는 길이 있었을 텐데, 너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선조들이 원수가 되어 가지고 참소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3시대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3시대를 부활시키느냐, 사망권으로 몰아내느냐 하는 그런 최후의 결승점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순간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최후의 결승점을 돌파하게 된다면 세계에 빛날 수 있는 조국, 천지에 빛날 수 있는 조국은 나를 정면으로 맞아 줄 것이고, 나라를 세우는 건국의 행사는 나를 앞에 놓고 나를 자랑함으로 말미암아 빛날 것이 아니냐? 또 나를 칭찬하고, 나에게 상을 주고, 나를 찬양하는 것으로서 그 식이 일색이 될 것이 아니냐?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남자로 태어나 그럴 수 있는 영광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왜 못해요?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모가지를 내놓으면 간단합니다. 남보다 고생을 더 하고, 남보다 희생을 더하고, 남보다 천대를 더 받고, 남보다도 죽음길을 더 찾아가겠다고 하면 됩니다. 잘난 놀음이 아니라구요. 그 반대입니다.

남은 고생을 하는데 자기는 핑계나 대고 비판이나 하며 가는 패가 아닙니다. `밤이든 낮이든 나는 묵묵히 가노라 나는 갈 뿐이다'고 하는 신념을 다짐해 가지고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전통적 역사시대의 기원을 여러분과 더불어 맞았으니, 어떻게 이것을 결정짓느냐 하는 중대한 차원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백의 가치를 가져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열의 가치, 혹은 아무 가치도 가져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역자들에게 `이놈의 자식아' 하며 그들을 원수시해 가지고 잡아다가 목을 자르는 무리도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무리가 될 것이냐? 여러분이 앉아 있는 자리는 같지만, 여기에서 그렇게 운명이 엇갈리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출발하는 데는 무엇을 표준하고 출발했느냐? 통일교회를 바라보고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 천국을 취해 출발한 것입니다. 본래 목적은 통일 나라를 위해 출발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나라가 없습니다.

영계와 육계를 결속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

이제 이 나라에 어떠한 전통을 남길 것이냐? 우리는 원수에게 점령당한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책임진 사람이 원수 앞에 잡혀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의 나라에 잡혀 간 그 책임자를 우대하면 안 됩니다. 단결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잡혀 간 책임자가 비참하게 죽으면 죽을수록, 그 책임자와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처럼 가깝게 되면 될수록 단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 책임자를 원수의 나라가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와의 단결력은 희미해지는 거예요. 죽이는 데에 있어서도 다리를 자르고 손가락을 자르고 눈을 빼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된다구요. 그렇게 죽으면 죽을수록 그와 인연을 가진 패는 철석같이 단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영계가 우리와 결속될 수 있는 내용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우리가 고생해야만 됩니다. 우리가 고생하면 고생할수록 영계는? 통일교회가 영계와 관계가 되어서 부자의 관계가 되어 있고 형제의 관계가 되어 있으며, 우리가 원수들에게 끌려 다니며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면 할수록 영계는? 악착같이 단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동원되어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그럭저럭하고 있으면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사탄을 통해서 작전하시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고생시키는 거예요. 죽이는 거예요. 죽는 그 자체는 불쌍하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반작용적인 결합을 다짐하려니…. 그렇지요?

예수의 죽음도 그 죽은 것으로 끝났어요? 죽고만 말았어요?「아닙니다」그것으로 말미암아서 인류를 통합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라를 위해 죽었구만, 우리를 위해 죽었구만' 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닙니까? 기독교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으니, 그것을 몰라보면 지옥에 가게 되고 알아보면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일종의 공갈 협박입니다. 알아주지 않으면 지옥, 알아주면 천당, 거 간단한 거라구요.

그런 내용에 일치된 사람들은 한패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저기 저 사람이 맞아 죽었다. 하 그까짓 거 잘 죽었구만'하는 사람들은 원수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피가 끓어 가슴을 조이면서 `내가 죽으면 죽었지, 보고는 못 견디겠다' 할 수 있는 패들은 제일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렇지요?「예」안 그래요?「그렇습니다」그래서 통일교회는….

하나님은 어떤 작전을 하시느냐 하면 반대 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의 자리에 내세워 가지고 희생시키는 겁니다. 희생시킴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느냐? 땅은 모르지만 전체적인 영계는 단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영계는 통일이 벌어진다 이겁니다.

통일교회가 영계를 통일하기 전에는 육계를 통일할 수 있어요?「없습니다」그게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일하기 위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육계에 있는 통일교회 패들은 사지에 몰아넣는 것이요, 무자비하게 때려잡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는? 여러분에게 협조를 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참한 자리로 같이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그것을 중심삼고 영계는 영계대로 단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여러분이 깊은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삼천만 민족 가운데에 천국권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권은 옛날에 지옥에 가 있는 패들까지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누가 팼다 하면 거기서 폭발하는 겁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어디가 왜 틀렸어?' 이렇게 달려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의 절반은 뻥 깨져 나간다구요. 그렇지요? 이런 작전을 하는 거라구요. 자, 고생을 지긋지긋하게 해라, 나라를 위해서 지극히 희생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라의 주권자도 `통일교회가 무엇이 틀렸어' 하게 되는 겁니다. 하늘의 작전은 그렇게 하는 거라구요. 그거 틀림없지요?

그러면 해방의 전통적 사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데서부터 하늘나라의 전통적 사상의 기반은 설정되는 것이다,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예요. 만일에 같이 잡혀 간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이 있다고 합시다. `아버지가 죽으면 낙이 없어요' 하면서 제일 심각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같이 잡혀 간 어머니와 아들딸이겠지요? 아버지가 비참하게 죽었으면, 아버지가 죽은 자리를 보고 어머니가 `아이구, 나는 죽는다는 게 싫소' 하면 되겠어요? 이렇게 될 때 아들딸이 죽어야 되겠어요, 안 죽어야 되겠어요?「죽어야 됩니다」어차피 죽을 길에 있으면 뼈아프게 부모를 모셔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조국 광복의 전통적 사상이 싹트는 곳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만일 고대하던 거기에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자들까지도 단결하는 것입니다. `우리 여자들의 위신을 세워 주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편네 죽고, 그 다음에는 아들까지 죽어 보라구요. 그런 놀음을 하는 그 가정은 비참하지만 이 나라는 기필코 단결 하는 겁니다. 철석같이 뭉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예」

잡혀 간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영계까지 통일돼 가지고 단합하여 세상을 대하여 퍼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뻥 깨져 가지고, 그 나라의 절반은 이쪽으로 휙 넘어온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4백년 만에 그 놀음을 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찢기고 쫓기고 죽임을 당하고 사자밥이 되는 그런 죽음의 자리에서 견디어 온것입니다.

로마에 가 보면 카타콤베라고 하는 길이가 20킬로미터나 되는 지하 토굴이 있습니다. 이 굴은 기독교인들이 4백년간의 폭정시대에 그 속에 들어가 살면서 신앙을 지키던 곳입니다. 거기는 판대기도 없다구요. 그 굴의 벽은 묘지가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죽으면 그 시신을 그냥 거기에 올려 놓고 그것이 해골이 되어도 일생 동안 그 안에서 먹고 살고 하는 거예요. 지금도 거기에 가면 선반이 쭉 있습니다. 공동묘지를 딴 데 만들 곳이 있겠어요? 굴밖에는….

그걸 보면 기독교의 우리 조상들이 위대했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해골굴이라구요. 그런 죽음 구덩이에서도 진리를 심고, 그런 처참한 자리에 뿌리를 박아 생명의 감도를 느끼고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추앙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추앙을 받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셨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로마제국은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밥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길면 길수록 영계가 동원되기 때문에 세계적 판도를 중심삼고 일시에 발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교회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북에서 통일교인들을 잡아다 죽이기만 해보라는 거예요. 한 사람 죽이고, 두 사람 죽이고, 세 사람 죽이고…, 죽이면 죽일수록 통일교회의 사상은 각지에 뿌리를 박을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 이북에 가서 죽는 데에는 누가 먼저 가서 죽어야 되겠어요? 선생님이 먼저 가서 죽어야 되겠지요?「아닙니다」그러면 누가 먼저 죽어야 되요?「저희가 죽겠습니다」여러분 가운데 죽을 사람이 없으면 선생님이 죽어야지. 선생님은 죽는다고 서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사지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이 다 망하게 되는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그 곳에 들어가기를 바라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서 희생한다면, 민족을 단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세계사적인 폭발적인 힘의 원천이 거기서 솟아날 것입니다. `가자! 죽여라!'고 다짐할 수 있는 사나이의 발걸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길이 아니고는 이룰 수 있는 길이 없거든 그 길을 통해서라도 뜻을 이루고 가겠다고, 절개비를 거기에 세우고 가겠다는 하늘의 아들이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의 가슴과 뼈와 살을 한꺼번에 녹여 낼 수 있는 아들이 아니겠느냐, 조국 광복의 전통적 사상은 거기에서부터 싹틀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애국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애족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이 보다 높고 보다 가치 있는 조국 광복 시절에 영원히 남겨야 할,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전통적인 사상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조국 광복의 기수

천년 만년 빛날 수 있는 영원한 천국 이념이 지구성에 찾아오게 하는 궤도를 까는 데는 평탄한 놀음으로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뼈가 갈리고 살이 에이더라도 고생길을 넘자. 굴을 뚫는 것보다 더 힘들더라도 고생길을 넘자'고 그것을 다짐할 수 있는 결의가 있어야만, 그래도 여러분이 이 시대에 태어난 위신을 세울 수 있는 남자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이어받지 못하고 그런 심정의 소신을 지니고 내일의 승리를 다짐하지 못하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그런 남자는 아예 죽어 버리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여편네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한다구요? 그래 가지고 여편네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면 뭘합니까?

찾아오는 조국 광복의 새 아침에 기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조국은 어떠한 기수를 맞이하려고 하느냐? 조국에게 `너, 밝아 오는 조국은 어떠한 아들딸을 맞고 싶으냐, 어떻게 애국 애족하는 충신 열녀를 맞고 싶어하느냐?'고 물어 보게 될 때, 이런 결의에 불타 일생을 불살라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전통적 절개의 가치를 무한한 가치로 추앙하고 죽음길을 다짐해 가는 무리를 맞고 싶은 것이 찾아오는 조국의 자세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 조국 앞에 내가 나타날 때 나는 어떠한 자세를 갖출 것이냐? 부끄럽기 한량없는 나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의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걸어온 20년 역사를 두고 볼 때, 한이 많습니다. 선생님에게는 한이 많아요. 단 하나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조국이 찾아오는 그 정도(正道) 앞에 엇갈리는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서, 그 누가 반대하더라도 나는 가노라, 시절이 달라지더라도 나는 가노라 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자는 시간에도 엇갈려서는 안 되는 것이요, 눈을 뜨고 달려가는 길에서도 엇갈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체를 거기에 보조를 맞추고 거기에 방향을 맞추기 위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희생이 있더라도 그 희생은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이 있으면 그 죽음을 넘어서라도 가려 놓아야 할 사명을 추구하고 가는 길이 여러분이 따르고 있는 스승이 가는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자리를 같이 가고 그 눈물의 골짜기를 같이 넘나들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찾아오는 희망의 조국은 그런 사람을 영접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계사에 없었던 조국을 맞이하는 첫 기수가 되고 조국 광복의 건국의 용사들로 등장하게 될 때는 천년 만년 찬양의 무리가 될 것이 아니겠어요?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수십년 동안, 혹은 10년, 5년, 몇년을 걸어 나오면서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자식이나 여편네가 배고파하면 그것을 바라보고 가슴을 조이던 때도 있었겠고, 눈물지으며 동정한 때도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모셔야 할, 우리가 가누어 세워야 할 그 나라는 어디로 가느뇨? 나라 없는 민족은 불쌍한 민족입니다. 언제나 침해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도 자신을 못 합니다. 악랄한 주권자가 나오게 되면 언제든지 목이 잘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는 것이 아니며, 먹는다고 하더라도 마음 놓고 먹는 것이 아닙니다. 잠을 자는 것은 광명의 조국을 맞을 수 있는 밤을 맞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요, 먹는 것은 자유로운 조국 가운데에서 먹는 것을 계승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싸우는 것도 그날을 맞기 위한 싸움입니다. 일체를 그것 찾기 위해 결정해 가지고, 여러분의 기거동작, 언행심사 일체를 거기에 귀결시키지 않고는 조국광복의 날을 맞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오관을 통한 감각도, 모든 느낌의 사연도, 심정의 모든 인연도 이것을 수습하고, 이것을 보다 가치 있고 보다 전진한 자리에서 빛내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원할지라도 거기에 마이너스되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이것은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눈이 어디를 향했던가, 자기 몸이 어디를 향했던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나라를 버리고, 나를 등지는 행동을 한 이 추악한 자기 자체를 칼로 찌르고 싶은 통분한 심정을 느끼는 때가 얼마나 있었느냐 이겁니다. 이러한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죽더라도 나라만은 남겨야 한다

이제 여러분이 이 삼천리 반도를 바라보면 두 나라로 되어 있습니다. 남북으로 엇갈려 있습니다. 지금 가족찾기운동(남북 이산가족 찾기운동)이라 해 가지고 회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금후의 귀추는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만나기를 원하는 모든 가정들은 우리가 맞을 수 있는 가정들이 아닙니다. 남북의 교인들이 기뻐서 맞을 수 있는 하늘나라의 가정의 인연을 묶어 놓고, 그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가정을 찾는 운동을 해야 되는 겁니다.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기성교회와는 형제지간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담을 헐고 맞을 수 있는 때가 못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맞을 수 있는 때가 오고 있기 때문에 남북도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 한국에 세워질 나라는 어떤 나라냐? 서로서로 유통하며 교류하게 될 때는 공산 나라가 세워질 것이냐, 아니면 지금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그냥 그대로 둘 것이냐, 아니면 둘 다 아닌 새로운 나라를 추구할 것이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우리의 때도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가누어 책임져야 할 통일의 무리라면,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얼마나 갖고 있으며, 또한 어느 정도의 희생의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결의가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임자네들, 자신 있어요?「예」삼팔선 이북을 넘어가서 이북 5도의 시군을 중심삼고 우리의 기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 아니예요?

인원이 부족한 이때에 누가 저 북한 땅, 정주면 정주의 책임자가 될 것이냐? 생각해 봤어요? 정주 고을이면 정주 고을을 중심삼고 내가 교회장이 되어야 되겠다고 10년, 20년을 준비하고, 그러다 안 되면 후손 앞에 `너,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준비하여 그날을 맞거든 정주 땅에 하늘의 인연을 대신한 교회장이 되어라'고 유언하며 죽을 수 있는 정성을 들이는 여러분이 되어 보았습니까?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구요.

그런 것을 생각할 때에, 젊은 놈들이 지방에 돌아가 가지고 자기 자식과 여편네나 대리고 히히덕거리며 살게 되어 있어요? 살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죽더라도 나라는 남기고 가야 합니다.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나라는 남겨 주고 가야지요. 새로운 결심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저 소만 접경의 한 지방에 가 가지고 공산당과 이마를 맞대고 아침 저녁 총소리를 들으면서 국경지대의 파수 역할을 하는 교회장이 되어야 하겠다. 나라가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생명을 엇바꾸더라도 그 나라를 사랑하는 충절의 마음은 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만점입니다. 세상이야 몰라주어도 괜찮다구요. 영계에 가면 다 드러나게 마련이라구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람이 부족한 걸 알아야 된다구요. 허재비 같은 남자라도 나팔을 메게 해 가지고, 혹은 로보트를 만들어 가지고 북한 땅에 다니며 나팔을 불게 하고 싶은 것이 선생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입을 가진, 감정을 가진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것도 20세 30세의 젊은 마음과 몸뚱이를 가지고도 원리 말씀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눈알이 곪아터지도록 밤잠 안 자고라도 공부를 해야 됩니다. 배가 고파서 뼈만 남더라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뼈만 남은 앙상한 몸뚱이가 하늘의 사랑을 송두리째 받을 수 있는 몸뚱이가 될 수 있다구요. 하나님이 그 가냘픈 한 남성이면 남성에게 기대를 몽땅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돼지처럼 꿀꿀거리고 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이놈의 자식들.

조국 광복의 그날에 떳떳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원수의 땅에 들어가 책임을 하려면, 남한 땅에서 수련을 해야 합니다. 부대껴야 됩니다. 싸움도 해봐야 됩니다. 죽기를 각오하는 자리에서 불충의 도리가 아닌 충의 도리를 남기고, 쓰러져 가는 모습을 세우고도 하늘의 동정은 싫다 할 수 있는 애비가 되겠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그러했기 때문에 나도 그러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하나님이 그런 길을 거치지 않고는 땅 위에 정상적인 전통을 세울 수 없고 인간을 사랑했다는 조건을 세울 수도 없겠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길을 닦아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까지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가면 죽는다고 하지만 안 죽어요. 절대 죽지 않습니다. 내가 실험을 많이 해봤습니다. 마지막이라고 금을 긋고 하나님께 최후의 기도를 하고 나면 난데없이 해방의 자리에 나를 갖다 놓더라 이거예요. 배고플 때는 밥을 먹고 떡을 먹고 고기를 먹게 해주더라 이겁니다. 내가 바라는 것 몇배를 찾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밝아 오는 조국 광복의 그날, 그 나라가 `에이, 이자식아, 이 역적 도당아, 이 역사의 원흉아'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은 죽어도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 나라가 머리를 숙이면서 `그대가 흘린 눈물은 오늘의 내 눈물로써 갚아 주고 그대의 쓰라렸던 그 쓰라림은 내 사랑으로 덮어 주리'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국 광복의 그날 식전에 참석할 때, 모든 식전이 나를 내세우고 자랑하고 사랑하면서 모든 만국의 권한을 상속시키는 자리를 맞아야 할것이 통일가가 고대하는 조국의 날임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이여 밝아 오라. 조국이여 어서 오라. 나는 이제 부끄럽지 않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안 되었거들랑 `조국이여 더디 오라.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하며 조국의 날이 찾아올까봐 `내 불쌍한 신세와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제 조국을 맞고 싶으니, 조국이여 어서 오소서'라고 할 수 있는, 한을 남긴 자리에서 조국을 부르고 죽더라도 한이 없겠다고 하는 길을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가정들로서 책임과 사명을 짊어진 삶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조국은 여러분의 것일 겁니다. 그 조국은 여러분 때문에 찾아올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새로운 조국 광복의 새 아침 앞에 전통의 영광을 불러 일깨울 수 있고, 그날이 나를 환영할 수 있는, 승리적인 조국 광복의 용사들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알겠지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시간은 심각한 시간이옵니다. 이제는 아버지를 부르더라도 건성으로는 아버지를 부르지 못하겠습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효성의 도리를 하더라도 뼈가 끊어지고 살이 녹는 듯한 심정을 가지고, 최악과 최극의 자리에서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조국이여 밝아 오라고, 빛나는 조국의 새 아침을 맞고 그날을 축원하고 죽겠노라고, 그것이 소원이요 한풀이라고 다짐하는 무리들로 살겠다고 하는 모습들이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얼마나 미흡했고 얼마나 불충했던 자신이었는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앞에 나타나기에 부끄러운 모습을 끌고서도 사랑받겠다고 허덕인 것을 생각할 때 민망함을 느껴야 되겠사옵니다.

아버지, 천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지만, 아버지의 심정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이 불충한 것들을 다시 불러 주시려고 길러 오신 아버지 앞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 목석 같은 자식들이 간곡한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의 뜻을…. (이후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