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서문’부터 훈독 ; 겨울가뭄 끝에 밤새 봄비가 내렸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아침 내내…….)
이건 읽고 또 읽고, 읽고 또 읽어야 됩니다. 그게 전통이 됩니다. 그러한 습관의 열매가 전통으로서 남아져야 민족이라든가 백성 혹은 만물이 소생합니다. 죽었던 만물도 용트림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훈독 계속 ; “너는 지금 당장 현해탄을 건너가야 한다. 죽기 전에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한 느닷없는 이야기에 그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 하고 답하고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란 성가를 부르며 호기롭게 산을 내려갔습니다. 일본에 가서 생활은 어떻게 하고, 선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최봉춘은 그렇게 담대한 사나이였습니다…….)
새가 사는 ‘언덕 최(崔)’입니다. 그 언덕에도 이른 봄이나 늦은 가을이면 잊지 않고 친구가 되어 사는 최 뭐예요? 이건 새들이 사는 동산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최봉춘의 ‘최’ 자에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후대의 희망이 있어요. 내일을 고대하는 봄이 찾아올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자서전도 생각한 겁니다.
(훈독 계속 ; 최봉춘이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는 소식을 보내오기까지 다른 일은 일체 접어두고 골방에 들어앉아 기도하고 정성을 들였습니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았습니다. 그를 일본으로 보내는 데 필요한 돈 150만 원은 빚을 내어 충당했습니다. 밥을 굶는 식구들이 즐비한데도 큰 빚을 낼 정도로 일본 선교는 시급한 일이었습니다.)
선교의 ‘선’ 자가 ‘펼 선(宣)’ 자입니다. 상형문자는 모양을 그대로 글자로 만든 것인데, ‘선(宣)’ 자는 갓머리(宀) 아래 하나 금(一)을 긋고 ‘가로 왈(曰)’입니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하늘땅을 가운데 놓고 그 말씀을 집안에 가둬서 영원히 갈라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敎)’ 자는 ‘효도 효(孝)’ 변에 아버지(攵)입니다. 부자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선교라는 것은 높은 하늘의 말씀을 중심 삼고 하늘의 집, 천주라는 집에 들어가서 변치 않는 가르침의 표적으로 안고 뒤넘이치는 그런 바탕 혹은 광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서양의 에이 비 시(A B C) 같은 글자들에는 그런 뜻이 없습니다. 안팎의 뜻이 그 글자 가운데 있어서 시작부터 끝까지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우주의 진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마음에 느낍니다.
본래부터 그 마음에 느껴지는 것은 기쁘거나 희희낙락할 수 있는 좋은 느낌이 아니고, 슬프고 어려운 수난의 길이 있는 걸 알았습니다. 그 수난의 파도가 있으면 그 파도가 높고, 산이 있으면 히말라야 산맥의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고, 바다로 말하면 필리핀 옆에 있는 1만 2천 미터의 마리아나 해구보다 깊은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늘이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의 길이 험하더라도 아니 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미래의 소망적인 나라가 깊은 잠 가운데서 깨지 않고 있었는데, 그 잠을 선교사가 깨우쳐서 일으켜야 했습니다.
봄의 시작부터 여름을 거치고 가을과 겨울을 거쳐야 됩니다. 꽃이 피는 환경을 거쳐 가지고 북쪽 시베리아의 찬바람도 불어오고, 바다의 바람이 몰아치는 조그만 한반도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님입니다.
본래의 이름은 문용명(文龍明)이었습니다. ‘용(龍)’ 자는 ‘설 립(立)’ 아래에 ‘달 월(月)’을 했습니다. 초승달, 크레센트(crescent)라는 것을 여러분이 좋아하지요?
한국에서는 어느 누구나 초승달을 자기 어머니를 반기는 것과 같이 반갑게 맞이하고, 누나라든가 형제들을 별처럼 생각하면서 노래를 불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초승달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 초승달이 맨 처음에는 금(선)으로 보이다가 점점 커 갑니다. 보름이 될 때까지 커 가는 거예요. 보름이 지나면 반대로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 초승달이라는 것은 인생과 같습니다. 태어나서 온갖 사정을 다 거치게 됩니다. 바람도 싫다고 않고, 폭풍우가 불고 번갯불과 우렛소리에 천지가 다 깨져 나가는 것과 같은 어려운 환경을 거칩니다.
그런 환경에 부대끼면서 조그만 생명의 씨가 뿌리를 내려요. 동산의 언덕을 친구와 같이 타고 앉아서 움터 가지고 조그만 생명의 싹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싹이 얼마나 멋져요! 오만가지의 잎사귀들이 나옵니다. 오만가지의 찬란한 빛이 그 가운데에서 솟아 나오고, 그 빛이 춤추면서 사방으로 커 갑니다. 크레센트가 크는 것처럼 환경여건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예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데, 그게 얼마나 멋지냐 하는 것입니다. “이야, 저런 광경을 누가 감상할 수 있느냐? 누가 주인이 되겠나?” 하겠지만, 인간이 주인입니다.
사람이 제일 귀합니다.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이 인간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데는 하나의 남자 씨와 여자 씨가 만나야 됩니다. 여자에게 씨가 들어가서 여자가 태어나고, 남자가 태어납니다. 그 태어나는 기적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해요! 여러분이 그 역사를 거쳐 왔습니다.
그렇게 태어나서 한 살이나 두 살이 될 때까지 엄마와 아빠가 사는 나라가 뭔지 모르고, 엄마와 아빠가 사는 환경을 모르고 사는데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진자리나 마른자리를 개의치 않고 시중하는 부모의 품에서 자랍니다. 초승달 모양으로 커 가는 거예요. 그렇게 커 나가는 모습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즐거워합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3개월만 되면 웃음꽃이 피고, 4개월이 지나 8개월만 되면 기어 다니다가 테이블을 붙들고 서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쓰러지고 넘어지는 등 갖은 수고를 하면서도 일어서려고 하는 거예요. 그뿐이 아닙니다. 아기는 자기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만져주고 쓰다듬어 주는 엄마의 손길을 좋아합니다.
엄마도 아기를 만지면 만질수록 오만가지의 숨어 있던 정서의 물결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면서 거기에 취해 가지고 “아가야, 잘 커라! 엄마의 얼굴이야, 엄마의 눈이야.” 그럽니다.
그런데 엄마의 품에서 철모를 때는 추우면 추운대로, 또 더우면 더운대로 불편하면 울고 야단을 벌입니다. 엄마가 알아주고 한 가지, 열 가지, 백 가지 이상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엄마만을 믿고 나갑니다.
그런 엄마가 아침에 깨게 되면 오줌 싼 자리를 깨끗한 자리로 해주고, 그 다음에는 아기가 배가 고파서 앙앙 울게 되면 젖을 먹여줍니다. 그렇게 젖을 먹이면서 오만 가지 어머니의 정서적 사랑의 줄기가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 가운데 무엇이 있어요? 일곱 가지의 문들이 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인데, 여기를 한국 사람은 숨구멍이라고 했어요.
척추를 통해 가지고 홍무니(항문)까지 큰 숨을 쉴 수 있는 숨구멍이 있어서 헐떡헐떡한다는 겁니다. 맨 처음에는 폭이 넓은 것이 자라면서 좁아집니다. 한 살, 두 살, 세 살이 되면 다 가려져서 헐떡헐떡하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오만가지 변화무쌍하게 아기가 자라는 것을 보고 신비함을 엄마 아빠는 느끼게 됩니다. 엄마의 사랑은 아기로 말미암아 싹트는 것입니다.
젖을 먹이면, 아기가 좋아 가지고 어머니를 보고 반기는 손길과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부터 오만가지의 신비함과 자신의 어렸을 때를 생각하게 돼요. 그것을 재연시켜서 기억하라고 나에게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볼 때, 아빠가 자라던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 아기와 같이 커 나왔습니다. 그 정은 누가 점령할 수 없습니다. 한 생명의 씨를 심은 겁니다.
이 지구성 가운데 겨자씨같이 보이지 않을 만큼 조그만 그게 희망이라고 말이에요. 어머니의 복중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자랍니다.
그게 무슨 단지예요? ‘원구’ 해봐요.「원구!」둥근 우주와 마찬가지입니다. 원구 피스컵입니다. 요전에 아버님과 어머님이 천정궁에서 볼을 굴려 가지고 구멍에 넣는 시합을 했는데, 그게 천주원구 뭐라고 했어요? 천주라는 말은 큰 하늘의 집입니다. 안식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꽃동산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게 절대성인데, 그 절대성의 ‘성’은 무슨 성이냐? 성(性)이라는 것은 ‘마음 심(忄)’ 변에 ‘날 생(生)’ 자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가운데 생겨난 생명을 ‘성(性)’이라고 그래요. 그런 뜻이 있습니다. 형상적으로 글자가 만들어진 상형문자들 가운데는 뜻이 다 있습니다.
천주(天宙)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늘 천(天)’은 두(二) 사람(人)이 하나된 것을 말합니다. 내적 외적, 위아래가 갈라진 것입니다. 천주원구의 가인과 아벨입니다.
대우주의 전부가 그렇습니다. 원자도 동그랗고, 전자도 동그래요. 무엇이든지 운동하기 위해서는 동그래야 됩니다. 보름달보다도 더 동그란 겁니다. 해도 동그랗고, 달도 동그랗습니다.
지구라는 것이 태양의 위성들 가운데 하나인데, 태양은 지구의 130만 배입니다. 어떻게 130만 배가 되었느냐? 왜 13수를 택했느냐? 왜 13수예요? 100만 배라고 하거나 1000만 배라고 하면서 최고의 수로 정하지, 왜 13수의 130만 배냐 이겁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열세 살이 됩니다. 유치원을 나와서 6년 동안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졸업하면 열세 살입니다.
엄마 아빠의 시중을 받으면서 자라 가지고 13살만 되면 어떻게 돼요? “내가 남자인데, 세상에는 남자들만이 아니고 여자들도 있어! 남자는 남자끼리 좋아하고, 여자는 여자끼리 좋아해? 어떤 것을 좋아해? 남자하고 여자의 생김새가 다른데….” 합니다. 여자와 남자는 다릅니다.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남자이고, 남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여자입니다.
아기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어요. 남자 아이들이라면 괄괄한 성격이 있고, 밤과 같은 성격이 있고, 봄이나 가을과 같은 성격도 있습니다. 여자들도 그렇습니다.
춘하추동의 계절이 맞는 데는 상대적으로 봄과 가을이 맞고 여름과 겨울이 맞는데, 봄하고 여름이 만나면 어떻게 돼요? 물에 잠겨버립니다. 봄하고 겨울은 어떻게 돼요? 물이 흐르지 않고 얼어붙습니다. 상충입니다.
누구든지 상극과 상응의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 됩니다. 천지이치에 두 가지의 쌍쌍이 다른 것을 엮어서 사방으로 화합돼 가지고 엉켜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통(統)은 ‘거느릴 통(統)’ 자입니다. 충분히(充) 실(糸)로 엮어서 타래를 만들었어요, 실타래. 실타래를 풀어야 됩니다.
이렇게 감겼으면 이렇게 풀어야 되고, 이렇게 감겼으면 이렇게 풀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풀립니다. 그런 것이 실타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 사(糸)’ 변에 ‘충만할 충(充)’ 자를 썼습니다. 그게 ‘통(統)’입니다.
‘일(一)’ 자는 하나입니다. 처음부터 시작해서 쭉 쓰는데, 끝에서는 조금 높여서 시작한 곳보다 올라가야 됩니다. 선생님이 글자를 볼 줄 압니다. 선생님이 서당에 다녔을 때 장지라는 것이 있었어요.
한 곳에 같은 자를 백번 천번 써서 글자의 모델, 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눈 감고 써도 그렇게 돼야 합니다. 훈독회의 모델도 마찬가지입니다. 천 번 읽은 것보다 만 번 읽은 사람이 선생이 됩니다.
선생님을 싫어하면, 사고가 생깁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를 가만히 둬두고 봐요. 좋아하면, 무턱대고 좋아하면 무턱대고 자꾸 일이 확장됩니다. 무섭습니다.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번개가 치는 날에 산에 가더라도 사고가 안 납니다.
선생님이 마음으로 좋다는 사람들은 “와라, 오고 싶은 사람은 와라!” 해서 오면, 산이 아무리 험해도 사고가 하나도 안 났습니다. 보통 가게 되면, 두세 사람은 사고가 나는데 안 나는 겁니다. 그런 길만 찾아다니다 보니까 남들이 못 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어디에 가면, 선생님 자신이 뭘 해야 될 것인가를 대번에 압니다. 선생님이 말하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입 자체가 말을 해줍니다. 어떻게 하라고 말이에요.
선생님이 차를 타고 졸면서도 운전하는 사람에게 “투 더 레프트(to the left; 왼쪽으로), 투 더 라이트(to the right; 오른쪽으로), 투 더 스트레이트(to the straight; 똑바로)!” 합니다. 길을 가는데, 복병들이 있는 것을 마음이 알았기 때문에 말해주는 거예요. 마음이 알고 보고하는 겁니다.
그래서 문 총재를 납치하겠다고 지키고 있더라도 못 만나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북쪽으로 가고, 북쪽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동쪽으로 가는 겁니다. 이상하다는 거예요. 자기들의 정보망을 통해 알아본 대로라면 어디로 갈 것이 틀림없는데 그리로 안 갑니다. 자면서도 입이 말을 합니다.
그렇게 왼쪽으로 가라고 옆에서 이야기하니까 운전수는 선생님이 눈뜨고 이야기하는 줄 알지 자는 줄 알아요? 복병들이 기다리는 길을 비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미에 7년 동안 있으면서 만나서 싸우는 경우가 없이 잘 피해 다녔습니다.
오늘은 내가 워싱턴에 가서 원고도 조정해야 되고, 할 일이 많습니다. 하루 먼저 와서 집에서 쉬고 있어요. 집 냄새를 맡아 가지고 거기에 가서 펼쳐놓아야 됩니다.
반드시 먹고 자는 것은 본가 집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저기로 떠돌이의 생활을 하던 선생님이 와서 하룻밤 그리운 식구들을 만나고, 훈독회도 했고, 아이들에게 키스도 해줬습니다. 여기에서 살던 전통적 인사와 삶의 맛을 보았으니 다른 세계에 가서 새로운 마디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참대의 마디가 자라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합니다. 그 뿌리와 줄기에 가진 모든 기운과 맥을 새로운 마디를 크고 아름답고 굳게 만들기 위해서 투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마디가 관절이 되어서 거꾸로 심더라도 살 수 있는 대나무가 되게 합니다. 그 뿌리에서 새로운 싹이 나옵니다. 그렇게 싹이 나오면 하룻밤에 한꺼번에 자랍니다. 대나무에는 그런 놀라운 전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