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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인생길 Ⅲ

일시: 1971.02.17 (수) 장소: 한국 성북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 이 저녁에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모인 성북 지구본부를 방문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저희들의 일상 생활과 생애노정의 모든 것을 저희 자신들은 염려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친히 염려하시면서 오늘까지 인도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드리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자녀들의 마음을 친히 굽어살피시옵소서. 저희 개개인이 처하여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이며, 어떠한 방향에서 당신을 그리워 하고 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효성과 충성의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는 사랑의 마음이 저희 일신에 충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찾던 참된 효자와 참된 충신의 모습을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서 찾으시옵소서. 당신의 심중에 사무쳐 있는 소원의 일면을 전할 수 있으며, 사정의 일면을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이 찾고 바라는 소원의 그 나라와 당신이 원하는 소원의 그 세계를 위해서 당신이 수고하신 보람은 선하고 참된 아들딸과 상봉하게 될 때 결정되는 줄 알고 있사오니, 여기 모인 개개인의 심령 심령이 아버지 앞에 기어코 상봉되어지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옵소서.

당신 앞에 모든 것을 직고하고 당신이 허락하신 분부를 받들며 사랑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겸손히 아버지 존전에 부복하였사오니 저희와 더불어 인연을 맺으시옵고, 저희에게 통고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저희 마음 깊은 가운데에 내려 주시옵소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감동받지 않을래야 감동받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서 아버지만을 위하는 참다운 자녀의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께옵서 저희 일체의 스승이 되시옵소서. 이제 허락하신 시간권내에 분부하시는 모든 말씀을 통하여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꺼이 봉사하고 희생할 수 있는 참다운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재삼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곳을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복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오늘 이 저녁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 위에도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제목은 '참된 인생길'입니다.

제목이 장엄하다면 장엄하다 하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물론이려니와 대한민국에 사는 백성이나, 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 그 누구를 막론하고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살고 있는 인간

여러분 자신들이 일상생활을 두고 볼 때 말을 하든가, 행하든가, 무엇을 찾는다든가 할 때, 생활의 모든 것을 자기 아닌 제삼자를 중심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요, 행하는 것도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행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 라는 존재를 중심삼고 볼 때 인간은 제삼자에게 푸대접을 받거나 피동적인 입장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서 상대 된 그 환경에 자기 중심적인 내용, 주체적인 내용을 접속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도 결국 남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야만 비로소 좋아지는 것이요, 슬퍼하는 것도 결국 남을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삼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자리에서 좋다고 말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입장을 중심삼고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나쁜 사람이다 할 때, 그 나쁨을 결정할 수 있는 중심이 누구냐 하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나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나쁘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희망하는 일체의 목적을 누구와 관계맺기 위해서 말하고 행하느냐 하면, 나와 관계 맺고 나와 인연이 되며 나와 더불어 세워지는 결과를 찾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개개인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할 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스승이 강단에 서서 국민학교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앞으로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요. 마찬가지로 중고등학교 학생들, 대학교 학생들에게 있어서 교육의 표준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누구를 두고 그 기준을 말하는 것이냐 할 때 그 기준도 역시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좋은 내용을 전부 다 지녔으면 모르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고 나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결정지을 수 있는 참된 개인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어느 것을 나쁘다고 할 때에도 역시 참된 기준을 중심삼고 분석하여서, 이것은 이러이러하니까 얼마만큼 어떻게 나쁘다 하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입장에서 나쁘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럴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좋다는 말을 막연한 자리에서 하고 있습니다. 나쁘다는 말도 역시 막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절대자가 인정해야 참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우리가 참된 사람, 좋은 사람을 말하게 될 때 그 좋고 참된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정도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자기 전문 분야가 다르면 자기가 좋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도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도 좋다는 사람이 분야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 성북교회에 어떤 좋은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붙였다면, 그 말은 성북지구를 중심삼고 하는 말이지 통일교회 전체를 중심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성북구에 좋은 사람이 있다면 좋다는 그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좋다고 하는 그 사람은 성북구를 대표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데는 요원한 과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이 그 사람을 좋아하지만 세계의 각 나라들도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 할 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현시대에 세계 인류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과연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과거 역사시대를 대표할 수 있고 미래까지도 대표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 또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이 추구해 가는 참된 인간,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문제가 간단한 것 같지만 지극히 복잡하고도 지극히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가정에서 참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참사람이 있을는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그런 사람이 있느냐? 앞으로 있을 것이냐? 있었다면 그가 누구냐? 앞으로 올 것이라면 어떠한 타입으로 올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어떠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간끼리 참사람을 구하고 참사람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가운데 참사람을 찾았다 한다면 그 찾는데 있어서 누가 찾았느냐 하는 것이 새로운 문제가 됩니다. 인간끼리 어떤 사람을 그야말로 참다운 사람이라고 정했다 할 때에 이것을 정한 그 사람 자체가 참된 사람이 된 자리에서 정한 것이냐,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자리에서 정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참된 사람이 된 자리에서 참된 사람을 정한다면 그 사람은 참된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참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자리에서 참된 사람을 정했다면 그 사람이 정한 사람은 참된 사람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안 그래요?

참된 사람을 선발하는 위원회의 위원들이 참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이 사람은 이러이러하니까 틀림없이 참된 사람이다 해서 결정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참으로 믿을 수 있지만, 참된 사람이 되는 길을 찾아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 의해 참된 사람이 결정되었다면 그를 참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은 참된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인간 세상에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해서 사는 참다운 사람이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만일 세계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모여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인생의 모델로서 삼을 수 있는 참된 사람을 결정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인정받기까지는 복잡한 과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맨 나중의 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택해야 되며 그들 중에서도 또 일부를 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남은 둘 가운데서도 한 사람을 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발된 사람이야말로 참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첫째로 선발된 사람과 둘째로 선발된 사람과의 차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있을 것이냐? 천분의 일이라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를 오늘날 인간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참사람을 선발하는 대회가 있다면 그 대회에 어떤 사람이 참사람으로 당당히 나섰는데도 불구하고 첫째번으로 선발되지 못하고 둘째번으로 선발됐다 할 때 그 둘째번 사람이 첫째번 된 사람을 보고 '야, 내가 찾으려고 했던 진짜 참사람이다'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정치를 하는 여당과 야당도 서로 잘났다고 그러잖아요? 두 사람만 있어도 서로 자기를 중심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인간은 개인 중심의 강한 욕망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이 잘되었어도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끝없는 욕망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참된 사람을 찾았을 때, 내가 찾아 나오고 바라던 사람으로서 만나 보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할 때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참'을 추구해 간다는 통일교회의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키를 보더라도 나보다 작은 사람이 있고, 얼굴 생김새를 봐도 내가 더 잘 생겼다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한 가지에 한정을 지어서 비교하면 다른 사람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너보다 나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세상천지에 참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겠느냐?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참된 사람으로 세워 놓았을 때, 그 참된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며 노력하며 희생하며 그를 참된 사람으로 모실 수 있겠느냐 할 때, 할 수 있겠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믿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서 참된 사람을 만났다 한들 내가 믿고, 내가 행하고, 내가 모시는 것이 참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얘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해도 자랑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정해 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어쨌든지간에 불안하다는 거예요. 결론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끼리의 결정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선 인간일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 절대자라고 틀림없이 인정할 수 있는 분이 있어서 그 사람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정했을 때, 정한 그 사람을 어떻게 하겠어요? 의심하겠어요. 믿겠어요?「믿겠습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이 긍정할 수 있고, 그렇다 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사람의 욕심이 얼마나 커요? 사람의 욕심이 대단하지요? 사람은 욕심이 얼마나 크냐 하면 설명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렇지요? 여기 여학생들도 대한민국을 내 것 만들면 좋겠지요? 대한민국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 보면 내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입니다. 세계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어 보면 그것도 내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입니다.

여학생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이나 나이 많은 노인들은 말할 것도 얼고, 남학생들도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남자들은 도둑놈 심보를 많이 가졌거든요. 그러니 물어 볼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세계 대통령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겠어요, 세계 대통령을 쥐고 흔들고 싶어하겠어요? 사람의 욕심은 쥐고 흔들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둘째 가는 것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주인이 되어서 세계를 쥐고 흔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다 이루어지더라도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면 그분까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분이 있다면 살짝 그리로 마음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옮겨가요, 안 가요? 옮겨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 가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욕심도 가질 수 있을 만큼 멋진 것이 사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참된 사람을 찾아 나오는 데 있어서 절대자가 나와서 참된 사람은 '이 사람이다' 하고 딱 결정해 주었다고 할 때 사람의 마음은 무엇을 생각하겠어요? 참된 사람을 따라가느냐, 참된 사람을 결정해 준 분을 따라가느냐를 생각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고요. 여러분도 그런지, 안 그런지. 이것이. 사고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참된 사람 하나 찾아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참된 사람은 남겨 놓고 참된 사람을 결정해 준 절대자를 따라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역사노정에서 사람을 믿겠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가짜입니다. 사람을 중심삼고 이렇구 저렇구 한다는 것은 전부다 가짜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절대자를 믿겠다는 사람은 진짜입니다. 진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느냐? 참된 사람을 바라고 살고 싶어합니다. 참된 사람을 바라는 데는 인간끼리의 교육이라든가 인간끼리의 인연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절대자인 신을 중심삼고 신에 의한 교육, 신과의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자 사람이 좋아요, 신이 좋아요? 절대적인 신이 있다면 신이 좋아요, 사람이 좋아요?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신이 좋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믿지 못해도 하나님만은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자리에 몰려 누명을 쓰고 죽음길을 가는 사람이라도 '세상 사람은 나를 알아주지 않지만 하늘만은 알아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소학교 학생이라도 세계에서 제일 가는 소학교 선생님이 있다면 그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지요?「예」 그러면 세계 제일 가는 소학교 선생님의 선생님이 있으면 어때요? 자신이 소학교에 다니지만 그 선생님한테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한테 배우려면 소학교 윗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에게 배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렇게 얄궂은 게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웠으면 됐지, 왜 그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에게 배우려고 하느냐는 거예요? 그것은 더 넓은 세계와 인연을 맺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제자는 선생님보다 낮지요? 선생님이 높다는 것입니다. 산이 높으면 그산 밑은 넓어요, 좁아요? 넓습니다. 산이 낮으면 산 밑도 좁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산이 높으면 거기에 비례해 가지고 산 밑이 넓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넓어지고 높아지는 것은 무엇이냐? 넓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이고 높아지는 것은 하늘 끝까지 닿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 끝까지가 어디예요?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까지예요? 하나님 끝까지는 어디까지예요? 하나님 속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심중까지 가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어디에 가고 싶어하느냐 하면 좋은 데 가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학생들이라면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요? 왜 학교에 가려고 하느냐? 높아지려고 그러는 거예요. 높아져서 뭘 하려고 하느냐? 좋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면 좋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즉, 자꾸 넓어지고 자꾸 높아지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인간세계를 넘어 가지고 저 하늘 꼭대기 하나님 계신 곳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꾸 올라가면 좋지요? 사람의 욕망은 한계가 없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의 한계점이 어디냐? 그 목적지가 어디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모든 것을 갖고 싶고, 자꾸자꾸 올라가고 싶고, 좋은 것은 모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세계까지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인간

그러면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서로 죽이고 살리고 하는 세계를 만들겠어요? 매일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는 세계를 만들려고 그러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면 볼수록 정이 가고, 거기서 살면 오래 살고 싶고, 보면 볼수록 좋아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지요? 그것이 틀렸다 하는 사람은 죽으라는 거예요. 죽으라고 하면 죽을 사람이 없다는 거라고요. (웃음)

인간은 좋고 좋고 또 좋은, 살고 살고 또 살고 싶은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 세계는 한쪽으로 납작하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래야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가치의 기준이 얼마만한 기준이냐? 국민학교 다니는 학생의 기준이 아니예요. 그러면 대학교 교수와 같은 기준이겠어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면 법학과를 맡은 교수와 같은 기준이겠어요? 인간이 얼마만큼 높아지려고 그래요? 아무리 좋다고 해도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 얼마만큼 높아지려고 그래요? 세계 인간을 대표한 만큼 높아지려고 그래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최고의 절대자인 그분이 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그분이 나를 박찰래야 박찰 수 없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칭찬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기뻐요, 안 기뻐요?「기쁩니다」 여기 아줌마 기뻐요, 안 기뻐 요?「기쁩니다」 대학교 시험을 보는 데 있어서 일등을 목표로 공부하던 사람이 정말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할 때 기뻐요, 안 기뻐요? 말할 수 없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기쁘다고 해서 함께 입학한 친구들 모두가 기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분 나빠할 수 있습니다. 그 녀석이 아니면 내가 수석이 되었을 텐데 할 것입니다.(웃음) 물론 친구가 수석이니, 기쁘지만 기분 나빠하는 녀석도 있다는 거라구요. 그것은 왜 그러냐? 절대적이 안 됐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목적하는 목적점은 어디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절대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있으면 틀림없이 확실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무리들이 하나님을 목적하고 하나님을 내가 점령하겠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한다는 말이 어폐가 있지만 하나님을 소유하고 싶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보기라도 하고 싶을 것입니다. 보면 기분 나쁘지 않고 좋은 거예요. 좋으면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결국 좋게 되면 갖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갖겠다는 말을 어폐 있는 말로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좋으면 갖고 싶다는 거예요. 갖고 싶다는 것은 나와 관계를 맺고 싶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좋으면 어떻게 좋아하자는 것이냐?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좋아하자는 것이냐? 천만에, 그렇게 좋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살면서 좋아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것을 한번 보고 그것을 내버려요? 그것이 나와 더불어 하루 1년, 10년, 일생은 물론 영원히 좋을 수 있기를 원하 지요. 영원히 좋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영원히 좋을 수 있게끔 살고 싶다는 거예요, 죽고 싶다는 거예요? 결론은 살고 싶다는 겁니다.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이냐? 어떤 입장에서 살고자 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우주에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과 서로 대립하고 살려고 그래요?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싶어요? 하나님의 마누라처럼 살고 싶어요, 신부님처럼 모시고 살고 싶어요, 하나님이 지식의 왕 중의 왕이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글을 배우면서 살고 싶어요? 어떻게 살고 싶어요?

처녀가 시집가서 남편을 만나면 어떻게 살고 싶어해요?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지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시집가서 가만히 있으면 행복이 나옵니까? 글이나 배우면서 지내면 물이 나오듯이 행복이 나와요? 어떻게 해야 행복이 나와요? 간단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둘이 사랑해야 행복이 나온다는 거예요. 둘이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고 싶어하는 인간

그러면 세상에서 사랑의 대왕이 누구냐? 천지에 사랑의 주인공이 누구냐 할 때, 그가 사람이겠어요? 아닙니다.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일 것입니다. 사랑의 주인은 절대자입니다. 그러면 절대자의 사랑이 절대적인 사랑이겠어요, 인간적인 사랑이겠어요? 무슨 사랑이겠어요?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보면 어떻겠어요?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가정에는 참깨 냄새가 난다고들 합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끼리도 모여 가지고 구수한 사랑을 하며 재미있게 산다고들 하는데 절대자의 사랑을 받고 살면 어떻겠어요?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다르겠어요?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산다면 어떻겠어요? 그 사랑 받고 당장 죽어라 해도 그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 한번 받고 죽어도 괜찮다고 할 자신 있어요? 그 사랑을 한 번 받아 본 사람은 열 번 백 번을 죽어도 좋다는 말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세상의 인간들도 사랑 가지고 죽고 살고 야단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살 때, 그 사랑을 한 번 받고 영원히 죽는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받고 싶다 할 수 있는 사랑이겠어요, 아이구 생각해 봐야지 하는 사랑이겠어요? 얼른 감도가 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절대적인 것에 대해 여러분은 생각을 하려고 해도 못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고무풍선을 불 때 바람을 넣어 가지고 탱탱하게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크게 불지요? 그것이 터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빵 하고 터지지요. (웃음) 그렇게까지 좋아해 보자는 거예요. 여러분이 마음으로 얼마만큼 좋아해야 하느냐? 그 풍선같이 터져서 다 날아가도 좋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사랑이 아니 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다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욕을 좀 듣는다 하더라도 무엇이 무섭겠어요? 감옥에 끌려가는 것이 무서워요? 죽음이 무서워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있을 때는 지상의 인간들은 남자나 여자나, 늙은이나 젊은이들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런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받고 싶어요, 안 받고 싶어요?「받고 싶습니다」 그것이 멋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어느 때 가서 '아이구 이제는 내 목적을 다 이루었으니 나도 그만 쉴래' 그러겠어요? 언제 이런 마음이 생기느냐는 거예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까지 점령하기 전에는 그런 마음이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볼 때 인간의 가치가 굉장하지요?

인간이 하나님을 봤다 하면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갖고 싶겠지요? 하나님을 내 것 만들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 속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단지까지 갖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입니다. 인간이 그것을 본다면 하나님에게 '그것까지 나 주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멋있더라도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면 그 사람은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나 마나입니다. 그렇지요?

만약 부모한테 사랑 못 받는 자식이 있다면 그 사랑을 못 받는 것이 좋아요, 섭섭해요?「섭섭해요」 그것 역시 마찬가지라고요. 자식이 부모에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모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인간의 마음은 이웃 동네의 어떤 훌륭한 사람을 본받아 훌륭해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천상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인 대왕님을 점령해 가지고 내 사랑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우리 인간이요, 그렇게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몸뚱이를 두고 볼 때, 큰 사람이 고작해야 여섯 자를 조금 넘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기준을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거예요. 여기 이사람 키가 얼마 돼요?「여섯 자입니다」 키가 크긴 크구만 ! 나보다 조금 크구만. (웃음) 나도 키가 작은 축에 속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면 하나님은 키가 얼마나 되겠나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 키가 얼마나 되겠어요? 하나님은 크다면 제일 큰 분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얼마든지 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작다면 얼마든지 작을 수 있습니다. 왜?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는 제일 작은 것의 표준도 될 수 있으며, 제일 큰 것의 표준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크기도 하고 제일 작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이렇게 작은 우리 인간이 무엇으로 큰 하나님을 상대하겠다 하는 것입니까? 몸뚱이로 하겠다는 것입니까, 마음으로 하겠다는 것입니까? 생각해 봐요? 몸뚱이로 상대하겠다 하는 사람은 머리가 백 번 돈 사람입니다. (웃음)

그럼 무엇으로 상대하겠다는 것입니까? 몸뚱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러면 대관절 마음이 얼마나 커요? 마음이 하나님을 상대할 만큼 크냐 이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바탕이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커요, 안 커요? 마음이 얼마나 크냐 하면, 국민학교는커녕 유치원도 못 가 본 사람, 사람을 한 번도 만나 보지도 못하고 커 나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더 크고 더 좋은 것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렇지요?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크냐? 마음이 얼마나 커요? 대한민국을 집어넣고도 모자라요, 남아요? 대한민국을 집어넣고도 또 큰 것을 내 것 만들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크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세계보다 커요, 작아요?「커요」 그러면 하늘땅보다 커요, 작아요?「커요」 하나님보다 클 수 있는 가망이 있을 것 같아요. 없을 것 같아요?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보다 클 수 있을 가망성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하나님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점점 커 갈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거라구요. 사람이 이러한 내용을 생각하고 산다면 살 만하다는 거예요. 사람이 이만하면 살 만하지요? 이것을 알게 된다면 나이 많은 사람들은 고심하며 울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쓸데없이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해 가지고 내가 마음에 병들게 됐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탓하지 마세요. 그것은 좋은 병입니다. 만약에 그 일로 해서 밥을 못 먹고 죽었더라도 지옥은 안 가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지옥은 안 가요. 그 병은 좋은 병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이 하나님을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 할 수 있는 가망이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무엇으로요?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슬쩍 모셔 드리고도 남아 가지고 나도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습니다. 이렇게 넓고 큰 본바탕을 지니고 있는 인간 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산을 가지고 이러한 밑천이 있는 훌륭한 가문의 출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귀하신 분이다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본 인간의 가치

하나님은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슬퍼하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기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잘 아시는구만. (웃음) 슬픈 것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없지요? 그러면 우리 인간은 누구를 닮았어요? 닮기는 누구를 닮아요, 주인 닮았지 (웃음) 아버지, 어머니를 닮았지요. 예술 작품을 보더라도 그 작품은 작가의 소성을 대신한 거라구요. 작가의 성격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가 있어서 우리 인간을 지었다면 우리 인간은 절대자를 닮아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절대자를 닮았으니까 그 절대자이신 하나님하고 친구 될 수 있는 소성을 가져야 되겠어요, 안 가져야 되겠어요?「가져야 되겠습니다」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최고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고귀한 존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자라면 그 절대자를 중심으로 좋아하겠다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을 닮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주체로 계시는 절대자 앞에 우리 인간은 대상이니까 절대적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기분 좋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한 번 좋다가 나빠지면 사고가 생기는 거예요. (웃음) 이만하면 사람이 만물 중에 최고라고 말할 자격이 있겠지요.

여러분, 대통령의 부인을 뭐라고 해요? 국모라고 하지요. 그 대통령 부인은 국민학교의 국(國)자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대통령과 사랑으로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에 외적인 모든 권세와 외적인 모든 가치를 완전히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국모 되는 이가 비록 '국'자도 모르지만 대통령의 부인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각료들은 충성껏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 부인은 국민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고 나는 박사인데 하고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천당과 지옥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화를 내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것이 싫다고 하면 무사 통과돼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책무를 중심삼고 나라를 염려하는 것은 대통령의 부인보다는 나라 일을 아는 총리가 낫지만 사랑의 세계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관계되어 인연이 맺어지는 날에는 통일권이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있다면 좋겠지요? 좋게 될 수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이 높다고 생각하였더니, 하나님만이 높은 것이 아니라 누가 높다고요? 하나님의 높음만 생각했지 인간의 근원을 몰랐다는 거예요. 이것이 사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높은 것처럼 인간도 높아져야 할 텐데 불구하고, 하나님만 높은 줄 알고 인간들은 낮은 줄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높아질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느냐? 이 비결을 찾아 가지고 높아질 수 있는 길이 통일교회에 있다면 통일교회 오지 말라고 철문을 몇십 개, 몇백 개씩 달아도 특공대를 편성해서라도 들어오려고 할 것입니다. 오지 말라고 해도 사다리를 놓고 올 것입니다. 올라오기 위해서 별의별 수단을 다 쓸 것입니다. 그럴 가망성이 있겠어요,없겠어요? 「있습니다」 없다면 사이비예요, 그러니 미리 척 와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남들 잘 때 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제일 높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높아질 수 있냐고 하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틀렸다고 할 것이예요. 내가 바로 그 문선생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자리에 처음 온 사람은 이 사람이 대관절 누구길래 이런 엄청난 말을 하는가 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바로 소위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문제되는 사람입니다. (웃음)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돌아가서 '아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여태까지 사람들이 하나님 높은 줄만 알았지 사람 높은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려면 실컷 떠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낮고, 천하고, 죽을 곳으로 몰아넣고 하나님은 높고 잡지 못할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점점 멀어지겠죠? 그렇게 점점 멀어지니 소원성취라는 것이 있겠어요? 절대 없다는 것입니다. 소원성취하려면 소망이 크고 높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높을 수 있는 비결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생명을 걸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예」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

하나님도 기쁜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요?「예」 기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노인네나, 어린애나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다 같습니다. 슬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기쁜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뻐한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겠어요, 독자적인 것이겠어요? 기뻐하는데 있어서 상대가 없이 기뻐할 수 있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럴 수 있는 법이 있어요?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어떻게 기뻐하시겠어요? 상대 없이 기뻐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대 없이 혼자서 웃고 기뻐한다면 무슨 하나님이라고 하겠어요? 정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느끼려면 상대가 있어야 됩니다. 상대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노벨상 열댓 개를 탔고, 세계 대통령이 되어 한 번 손을 들어 호령하게 되면 천하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암행어사 출동은 문제가 아닐 만큼 대단한 사람이 있더라도 아무도 없는데 혼자 앉아 가지고 허허허 웃는다면 사람이 어떻다고 그래요? 미쳤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깨알 같은 조그마한 것이라도 그냥 놔 두면 날라가니까 침을 발라 가지고 손에 딱 붙여 놓고 웃는다면 미쳤어요, 정상적이예요? 이 말은 지극히 작은 대상 하나가 전체 가치를 인정시키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대상 앞에서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천지창조를 하셨느냐? 천지창조는 슬퍼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대상의 세계를 지은 것은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지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천지에는 별의별 만물이 다 있습니다. 천지 만물 가운데 제일 가는 보물이 있을 것입니다. 박물관에도 제일 가는 보물이 있는 것입니다. 국가의 보물들 중에 국보가 있습니다. 국보 가운데는 제일 가는 국보가 있습니다. 전부다 일등 가는 국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국보 1호, 2호, 3호… 순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보를 보면 남대문이 국보 1호로 되어 있습니다. 국보 1호라고 해서 그것이 제일 좋아서 1호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용과 가치적인 면에서 다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절대적인 가치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제일이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들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 중심, 즉 하나밖에 없는 제일 가는 국보를 보는 것입니다.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불란서의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어요? 하나님은 피조 만물 가운데 중심이 되는 걸작품이 있다면 그 걸작품에 대하여 관심을 갖겠어요, 안 갖겠어요? 갖는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많으면 많을수록 멀리 하겠어요, 가까이하겠어요?「가까이 합니다」 관심사의 내용이 거기에 집중이 될 때는 가까이하지 말라고 해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관심사다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도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기쁨이 안 생긴다는 거예요.

만약에 사람이 어떠한 물건에 관심이 있다면 그 물건을 그냥 두고 보겠어요, 만져 보고 싶겠어요? 여러분 앞에 관심 있는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을 보기만 해요, 만져 봐요? 생각해 보세요. 만져 보지요?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관심 있는 대상에 대해 어떻게 하시겠어요? 보기만 하시겠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나님도 만져 보신다는 것입니다. 만져 보는 데는 어떻게 만져 보겠어요? 관심이 크면 클수록 이렇게 주무르고 만지고 할 것입니다. 때가 묻었으면 싹싹 닦고 불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밖에 나가게 될 때는 자기 품에다 품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맞았어요, 틀렸어요? 맞았습니다. 맞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상대적인 절대자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걸작품을 지었는데 다시 한 번 만들자 하고 내버리고 다른 데 가서 상대를 찾으려고 하겠어요? 여기 있는 아기 엄마들도 알다시피 아기들이 태어나서 몇 달만 지나게 되면 방긋방긋 웃지요? 한 석 달만 지나게 되면 웃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기가 태어나서 첫 번 웃을 때에 여자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반드시 남편한테 좋아라고 선전을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보 우리 아기가 웃었어요 하면서 좋아합니다. 그런 얘기는 제일 가까운 사람한테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선전을 들은 남편은 좋아하겠어요, 울겠어요?「좋아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화(家和)만사성 (萬事成)이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과 해와가 보면 볼수록 귀여웠으니 어떻게 했겠어요?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좋았겠지요? 하나님이 미워할 때 목석같이 가만히 있더라도 아담 해와가 좋아보인다는 거예요? 아담 해와가 기분 나쁜 표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더 감칠맛이 난다는 거예요. 자식성이라는 것이 그래요. 아담 해와가 울면서 싫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좋다는 것입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다 못해 얼씨구 절씨구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말을 하는 것이 기가 막히거든요. 까닥까닥하면 되받아서 같이 까닥까닥하고, 손에 무엇인가를 주면 받기도 하고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은 미치도록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예술인의 조각작품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하게 되면 그 작품을 걸어 놓고 이것이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며 그 사람의 문중들이 모여 야단이지요? 이렇게 돌덩이를 가공하여 작품을 만들어도 떠들썩한데 만약 자기의 작품이 말을 하고 자기 소원까지 얘기한다면 이런 작품을 놔 두고 어디를 갈 수 있겠어요? 놓고는 못 가는 거라고요. 그 얼마나 보고 싶고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여기 아주머니들, 아기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하지요? 신기해요, 안 신기해요? 신기하지 않다면 어머니 노릇 못 하는 거라구요. 아기가 잠을 자고 나서 밥 달라고 '빽' 하니 울어대면 그 어머니는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기분 나쁘다 하며 달려가요, 아이가 보고 싶어서 달려가요? 보고 싶어서 달려가지요. 그러고는 아기를 부여안고 가슴을 헤치고 생명의 호스를 들이대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잖아요? 아기가 그걸 잘 빨아 먹는 것을 볼 메 엄마는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러한데 하나님은 아담과 해와를 보고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이 아기를 키울 때 좋아했던 것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몇만 배, 몇억만 배 더 좋아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좋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내용을 알아요, 몰라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좋아했겠어요? 하나님이 한 번 웃으면, 천지가 다 웃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춤을 추면 천지가 다 춤을 출 것입니다. 그렇게 좋아할 게 아니예요? 그렇게 좋아한다고 누가 욕을 하겠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보고 울겠어요, 따라서 좋아하겠어요? 「좋아합니다」 그럴수록 좋아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춤을 추고 해도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은 인간을 빼놓고는 상대할 대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알겠어요? 인간을 빼놓고는 재미를 볼래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 앞에 있어서 인간은 상대적인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 가지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쉽게 말하는 것같이 느끼겠지만 여기서 이런 말 하는 사람은 뼛골에서 흘러내리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냥 와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오늘날 기성교회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를 말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때, 기성교회는 앞으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추방을 당할 날이 올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인간은 자기는 부족하더라도 고차원적인 것을 바라고 생활하며 최고의 자리를 표준하고 나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성교회에서는 자꾸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부족하더라도 최고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자꾸 내려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높고 거룩하신 창조주와 우리 피조물과 어떻게 감히 상관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잘못 알았어요, 잘못 알았다는 거예요.

하나님과 어떤 자리에서 관계맺을 것이냐

그러면 언제 어디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높으신 하나님과 어디서 관계를 맺을 것이냐? 예수님이 삼위일체로 계시다는 분이라고 하는데 어디 가서 그와 관계를 맺을 것이냐? 관계맺는 그 자리가 어디냐 이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린 자리겠어요? 사람이 피흘리는 것 좋아해요? 인간에게는 행복의 노래가 깃들 수 있으며 만민이 화동하고 화합할 수 있는 자리에서 만나고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본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자리에서 만나고 좋아하였던 무리들이 인류역사상에 성공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날 것이냐?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날 것이냐? 기성교회에서 말한 대로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더라도 '오, 당신은 거룩한 분이오. 나는 죄인이오니 가까이 오지 마소. 오지 마소 !'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돌아서서 기도를 할 때에는 '하나님이여! 당신은 우리 아버지이시니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지요? 이게 무슨 짓이예요. 오시라는 거예요, 오시지 말라는 거예요? 창조주는 상대할 수 없이 거룩하고 피조물인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딱 못박아 놓고는 '하나님이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이게 무슨 짓이예요? 그야말로 이율상반된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주먹구구식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이치에 맞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왔든지 기성교회에서 처음 온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다시 해보라는 거예요.

오늘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만, 사람은 손해나는 일은 안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요? 조금이라도 이익될 틈만 있으면, 갑자기 부자 될 길이 있으면 남모르게 혼자서 해치우려고 하지요? 어떤 일이고 손해나는 일이면 안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통일교회에 손해보기 위해서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두고 볼 때 그럴 것입니다.

여기 온 사람 중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이 대한민국에 소문도 많이 나 있고, 또 발가벗고 춤춘다는 헛소문을 믿어 가지고 구경삼아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뭔가 잘못 알고 왔다는 거예요. 잘못 알았어도 한참 잘못 알았다는 것입니다. 문선생이 시시껄렁한 사나이가 아니라구요. 내가 정말 발가벗고 춤이라도 한번 춰 보고 그런 말을 들으면 모르겠는데, 춤도 못 춰 봤는데 자꾸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됐다는 것입니다. 밥을 안 먹는데 배가 부르다는 식이잖아요? 그러니 진짜 기근이 들었을 때 남들이 다 죽더라도 나 하나만은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남들은 밥을 못 먹게 되면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겠지만 나는 밥을 안 먹었는데도 먹었다고 하니 남들보다는 나중에 죽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고 싶겠어요, 안 만나고 싶겠어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안 만나고 싶어요?「만나고 싶어요」 어디서 어떻게 만날 거예요? 어떤 자리에서 만날 것이냐 말이요?「극락이요」(웃음) 그 말 한 번 잘했습니다. 극락이란 말이 불교에서 나온 말이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과 같은 뜻이예요. 천당이 극락이라는 것입니다. 제일 기쁜 자리에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그거 말 잘했어요. 여러분들이 웃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극락에서 만나야 합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당신도 좋은 그런 자리에서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신과 인간이 어떤 자리에서 관계를 맺겠느냐? 이것이 지금까지 확정되지 않은 문제입니다. 종교인들이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여 가지고서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매하게 남겨 놓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만나게 되느냐, 어디서 맺혀질 것이냐, 어디서 첫 인연이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려면 먼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지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통일교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있는 것을 알지요? 「예」

하나님과 인간의 본연의 관계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이 될래요, 하나님의 양자 양녀가 될래요?「양자가 되겠습니다」 그건 말을 안 해도 잘 아는구만요. 그러면 양자가 될래요, 친자식이 될래요? 모두들 직계 아들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여자들은 하나님의 친딸이 되고 싶어요,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뭐가 될래요? 잘 대답해야 돼요? 며느리가 될래요, 딸이 될래요?「딸이요」 딸은 시집가는데요?(웃음) 그래도 딸이 되겠어요?「예」 그래도 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딸은 시집가서 소박을 맞으면 아버지에게 돌아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이나 마음대로 아버지 앞에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딸의 특권입니다. 그렇지만 며느리로서 소박을 맞게 되면 시아버지한테 얘기할 수 있어요?「못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딸이 며느리보다 어떻다고요? 낫다는 거예요.

사람의 욕망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남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여자는 하나님의 딸이 되는 곳까지 올라갑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싫다고 하시겠어요, 여기까지 찾아와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되겠다고 하니 고맙다고 하시겠어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고맙다고 생각하겠어요, 안 고맙다고 생각하겠어요?

하나님이 사랑의 주인공으로서 어떤 자리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서 인간을 대하고 싶어하실 것이냐 할 때에, 하나님 자신도 인간을 최고의 자리에서 대하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피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일 것이냐? 하나님이 요구하는 자리는 우리 인간도 요구하는 자리일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아들딸의 자리요, 그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상봉할 것이냐? 하나님과 인간이 찾아 나가는 그 길에 있어서 사랑을 최고로 원하는 부자의 자리를 떠나서는 서로 만나 기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단 하나의 자리는 아들과 딸의 자리요, 아버지의 자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기독교에서 막연하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것은 위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신이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비로소 인연지어질 수 있는, 상봉할 수 있는 첫 기점이 어디냐 하면 부자의 관계를 맺은 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있어요?

만약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으면 어떻겠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부자의 관계이지요. 아버지는 위에 있고 아들은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상하관계입니다, 상하관계.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서 부자의 관계에서만 대할 것이냐? 여기서 인간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위인데 나는 아래다 이거예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 아버지의 자리에 한 번 가서 있고 싶어요'할 때 아버지가 '이 고얀지고! (웃음) 이래 가지고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부자지간에 생이별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부모의 심정을 두고 볼 때, 아주머니의 얼굴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그 아주머니가 안고 있는 아기를 보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야! 그 녀석 엄마보다 몇천만 배나 더 잘생겼군' 하면 그 얼마나 기뻐요? 좋아서 헤헤 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러면 엄마는 그 아기보다 몇천만 배 잘생겼다는 거예요, 못 생겼다는 거예요? 세상에 어느 엄마가 이런 말을 듣고 '뭐라고! 나보다 몇천만 배 잘생겼어? 그럼 나는 몇천만 배 더 못생겼다는 얘기가 아니야?'라고 하겠어요? 그렇게 대드는 엄마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거라구요. 이것이 엄마의 마음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하는 마음이 누구 닮았겠어요? 엄마는 결과적 존재이지 동기적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럼 아들이 아버지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집안이 있다면 그 집안은 망하겠어요, 흥하겠어요? 망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대통령인데 아들은 그보다 못하게 될 때는 그런 형태로 몇 대를 가게 되면 그 집안은 점점 망하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쥐구멍을 찾는 신세가 될 거라구요. 별수 있어요? 그러니 망하겠어요, 안 망하겠어요? 대답해 보세요?「망합니다」 말을 같이 해야지요. 나 혼자 하면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들보다 아버지가 잘나게 될 때는 그 집안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자식이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보다 못하면 되겠습니까? 하면 아버지가 '예끼 이놈!' 하겠어요, '오냐 그래라' 하겠어요? 어떻게 하겠어요? 후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하관계뿐만이 아니라 너와 내가 같을 수 있는 자리라고까지 생각하면서 나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같은 자리에 있다. 네가 아래도 아니요, 내가 위도 아니다. 너와 내가 같은 자리에 있다'할 수 있는 자리까지 우리 인간을 올려 놓으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고마운 분이요, 안 고마운 분이요 ?「고마운 분입니다」

세상의 은덕을 가지고는 갚을 수 없는 최고 고마운 분, 그런 고마운 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런 분으로 누구를 세워 놓고 싶어요? 삼촌을 세워 놓고 싶어요, 선생님을 세워 놓고 싶어요, 어머니 아버지를 세워 놓고 싶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전부다 어머니 아버지를 세워 놓고 싶지요?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마우신 분으로 아버지를 세우려 하는데 그 아버지가 누구라고요?「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우주의 근본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생애를 바쳐 헤치고 헤쳐 들어가 보니 이러한 우주의 근본이 있더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인간의 가치를 모르는 기성교회

하나님은 인간과 상하관계뿐만이 아니라 안팎으로 위해 주는 관계까지 세워 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고마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이런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며 아버지가 주관하는 것을 내가 다 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는 우리 인간을 당신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 자리, 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세우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고마운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기성교회에서는 인간이 이런 존재라는 것을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의 철학도 난점을 많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절대자가 필요합니다.

철학 종교 등의 근본 문제들도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해결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에서도 통일교회가 문제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을 불러다가 통일하자는 것입니다. 안 되면 내가 하게끔 만든다는 것입니다. 안 되면 때려서라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는 대등해요, 안 해요?「대등합니다」 크기가 비슷하다고 해서 대등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80세 넘은 노인에게 20세도 안 되는 아들이 있다고 할 때 그 나이 많은 아버지는 무슨 일에 대하여 그 아들과 의논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고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되는 아들일지라도 의논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렇지요?「예」

부모는 자기가 고독하면 고독할수록 생사의 권을 넘어서 자식에게 자기의 사정을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요, 부모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좋겠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저 대답하는 소리 좀 보세요. (웃음) 말만 그렇게 하고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지요? 그게 문제입니다. 이런 말은 내가 금년에 들어와서 통일교인들에게 처음으로 들려주는 말입니다. 부자(父子)가 이렇게 돼야 아버지 좋고 아들 좋은 것입니다. 춤을 출 때 아버지는 저 위에서 춤추고 나는 아래에서 춤춘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웃음) 붙들고 춤추는 것이 좋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이 안아 주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것이 아니예요? 그래야 이치가 맞을 게 아닙니까?

무형으로 계시는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계신가를 계속 얘기할까요, 그만둘까요?「얘기해 주세요」 사실 나는 지금 저녁도 안 먹었습니다. 여러분은 저녁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먹었습니다」 먹었으면 나보다 낫구만요. 손님 대접을 이렇게 박절하게 할래요?(웃음) 시간 많이 걸리게 얘기하지 말자구요. 그래 아홉시에 끝나면 되지요? 아홉시에 끝내려고 했는데 벌써 아홉시 10분이 됐네요. (웃음) 통일교회 목사들은 40분 이상 설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벌써 내가 한 시간 40분이나 했으니까 이제 그만합시다. 나도 지쳤으니 그만해요?「아닙니다」 나는 사람 좋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내가 그 바람에 늙었어요. 내가 기를 쓰고 이야기할 때, 모두들 좋아하면 늙었어도 좋기나 하지요. 그런데 욕은 나 혼자 다 얻어먹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통일교인들밖에 없습니다. 그래, 간단히 얘기할까요, 세밀히 얘기할까요?「세밀하게요」 세밀하게 얘기하자면 일주일이 아니라 3년을 해도 다 못해요. 그러니 얼마만큼 얘기해 줄까요? 여러분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간단하게 해 봅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확실히 몰라 가지고는 기초가 흔들리게 됩니다. 기초가 틀어진 가운데 빌딩을 높이 지으면 태풍이 불어오고 지진이 날 때에는 넘어지겠어요, 안 넘어지겠어요? 넘어지지 말라고 '하나님 !나 좀 살려주십시오' 한다고 그렇게 돼요. 하나님이 '이 녀석아, 넘어간다 비켜라' 하신다는 것입니다. (웃음) 기도를 아무리 해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초가 올바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어떻게 있느냐 하는 것을 실감나게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고 싶지만 그 얘기는 다음에 합시다. 지금 다 가르쳐 주면 여러분 머리가 너무 작기 때문에 핑 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집에 갈 때 길이라도 잘 보고 가야지, 궁상스럽게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통일교회 문선생 때문에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려구요. (웃음)

만약 여러분이 과거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세계에서 가장 귀한 단 하나의 보물을 가졌다면 그것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갖고 싶지요? 하나님을 갖는다면 어디에다 보관할래요?

우리에게 보물이 있다면 그 보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다는 것입니다. 창고에 기껏 모아 놓은들 무엇하겠습니까? 전부 남이 빼앗아가는데요. 계속 보관할 수 있는 가망성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것을 품속에 안고 다닌다면 언제 목이 달아날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 건사할 데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보물의 보관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어떻게 했느냐? 세상의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보물이 보이지 않고 자기 눈에만 보이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심이 되겠지요? 세상 사람의 눈에는 절대 안 보이고 내 눈에만 보이게 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겠어요, 안 하겠어 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내 마음대로 건사할 수 있고 나만이 상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여러분, 제일 귀한 물건이 있다면 하늘 꼭대기에 갖다 놓고 싶겠어요, 갖고 다니고 싶겠어요?「갖고 다니고 싶어요」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물건인데,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그 물건과 떨어지고 싶지 않겠어요, 떨어지고 싶겠어요?「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최고 보물이라 할 하나님이 공중에 계신다면 보여요, 안보여요? 서울 청파동에서 보여요, 안 보여요? 사람은 그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창고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하겠지요. 그 창고가 뭐냐면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알겠어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창고에다가 보이는 하나님을 모시고 싶어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모시고 싶어요? 보이면 기분 나빠 안 되는 거라구요, 여기 계신다 저기 계신다' 하면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남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가 가졌다고 하면 기분 좋아요? 나쁘다는 것입니다.

한 분밖에 없는 하나님을 모시는 데 있어서 나만이 알고 있고, 나만이 비밀로 갖고 있는 분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모시게 될 때 그분은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의 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만이 통할 수 있는 분을 갖고 있다고 할 때에 비로소 안심을 합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어디에 갖다 모시려고 하느냐 하면 우리 마음속에 모셔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이미 이런 것까지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잘 생각하셨다는 거예요.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있어야만 둘도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둘이서만 느낄 수 있는 자리가 행복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을 느끼려고 마련한 자리가 마음의 자리입니다. 알겠지요?

하나님이 보이길 잘했어요, 안 보이길 잘했어요? 안 보이기를 잘한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보였다면 하나님 노릇을 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몇천 년 동안 이 작은 지구덩이 가지고 서로 많이 차지하겠다고 나라끼리 치고 뺏는 싸움을 했지요? 더구나 요즘은 사람까지 빼앗으려는 싸움을 합니다. 공화당이니 무슨 당이니 서로 쓸만한 사람이 있으면 빼앗는 싸움을 하지요? 그렇지요?

천주의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눈에 보이게 된다면 그 하나님을 서로 빼앗겠다는 싸움을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이 싸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기를 잘한 거예요. 만약 하나님이 보였다면 미국과 소련이 서로 자기 하나님이라고 싸우겠어요, 안 싸우겠어요?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전지하사, 이런 싸움이 있을까봐 무형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잘됐어요, 못됐어요?「잘됐습니다」 하나님이 보이기를 바라는 것은 망령된 행위라는 거예요. 안 보이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있으면 마음이 알아요, 몰라요? 틀림없이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바람벽도 뚫어 볼 수 있는 거예요. 태평양 바다 속도 뚫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능력이 인간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도 저 하늘 끝까지 통해 가지고 몇천 년 전에 죽은 성인들을 현실의 세계에서 운행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분이시니까 하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을 시간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 안에 시간이 있는 거라구요. 그러니 하나님은 안 보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남자가 주체 여자는 대상

하나님을 마음속에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봐요. 편의상 그 사람이 옛날의 아담이라고 하자구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원칙에 의해서 하나님은 아담의 아버지로서 아담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남자의 마음에 먼저 들어가겠어요, 여자의 마음에 먼저 들어가겠어요? 어디로 먼저 들어갈 것이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것은 자리가 먼저 준비된 곳에 먼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가 먼저냐, 여자가 먼저냐 할 때, 남자는 남자가 먼저라고 할 것이고 여자는 여자가 먼저라고 할 것입니다. 어디 여자분들 누가 먼저입니까?

남자와 여자를 주체와 대상이라고 하는데 어디가 먼저이겠습니까? 여자와 남자를 가만히 보게 되면, 여자들은 살림을 해 왔지만 남자들은 이 세상 일을 맡아 나오면서 사람을 죽이는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요? 남자들이 싸움을 했지, 여자들이 싸움했어요? 그러니 남자들이 얼마나 민망해요. 그런데 만일에 세상 일을 남자들에게 맡기지 않고 여자들에게 맡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놀음을 여자들이 맡았다면 매일같이 싸움은 하지만 끝판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 싸움을 매일같이 몇천 년 동안 계속해도 끝판이 안 난다는 거예요.

그래 싸움은 끝판을 내는 것이 좋아요, 안 내는 것이 좋아요?「끝판을 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를 세워 끝판을 내려는 것입니다. (웃음) 여자는 싸움을 해서 졌어도 안 졌다고 하는 거라구요. (웃음) 전라도 사람들은 겨울에도 숯불을 피워 놓고 강건너 가서 싸움을 한다는 말이 있지만, 여자끼리 싸움이 붙으면 싸움이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끝이 날 것 같아요? 끝이 안 나는 것입니다. 서로가 용서를 못 하거든요. 그러나 남자들은 아무리 상대가 원수라 하더라도 술 한잔 먹고 나면 다 풀리는 것입니다. 서로 양보를 하면서 푸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서로 양보를 안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일같이 이 싸움을 해도 끝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들을 세운 것을 보면 지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싸움을 끝을 내야 되겠기 때문에 남자들을 세운 것입니다. 싸움을 하여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했지만 남자들은 멋진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다고 여자들이 섭섭하게 생각하면 안 돼요 가만히 생각하면 그 말이 맞는 말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싸움을 해 나오는 데 있어서 남자끼리 싸웠어요, 남자와 여자가 싸웠어요? 만약 남자와 여자가 싸웠다면 큰일이 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 거라구요. 남자는 남자끼리 싸울 때 타협을 통해 지고 들어가게 되어도 갈 데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싸웠다면 갈 데가 있어요? 남자하고 여자가 싸워서 이기면 뭘하고 지면 뭘해요?(웃음) 그러니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끼리 싸우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움을 할 때에는 어떤 녀석이 이기느냐 하면 힘이 있는 녀석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것을 두고 볼 때 이길 수 있는 터전은 힘이 있는 데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힘이 더 있기 때문에 남자에게 싸움을 맡긴 것입니다. 힘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남자가 힘이 있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를 못 당하지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남자는 아무리 여자와 같은 남자라 하더라도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고, 여자는 아무리 남자와 같은 여자라 하더라도 대상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 섭섭해요?「아니오」(웃음) 섭섭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주체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주체와 대상이 있는데 어디로 먼저 들어가고 싶겠어요? 대상에게 먼저 들어가고 싶겠어요, 주체에게 먼저 들어가고 싶겠어요? 이렇게 되면 할수없이 대상이 주체한테 양보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만 좋아하게 안 되어 있더라는 거예요. '아이쿠 여긴 좀 차겁구만. 뜨거운 데로 가 보자' 하고 다른 곳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곳이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북쪽을 말하고 여자는 남쪽을 말하며, 또 남자는 동쪽을 말하고 여자는 서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남간에는 좋은 사이가 아니지만 남북 북남간에는 좋은 사이지요?

인간은 외적인 하나님

하나님은 남자에게 들어가는 거라구요. 그런데, 하나님은 한 분이요, 두 분이요? 한분입니다. 한 분인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들어가겠어요? 이 사람한테 들어갔다가 저 사람한테 들어가고, 저 사람한테 들어갔다가 이 사람한테 들어가고 그러겠어요? 또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들어갔다 나왔다, 나왔다 들어갔다, 그러시겠어요?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원리에서 하나님은 이성성상의 중화체라는 얘기가 나온 것입니다. 여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분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 멋진 결론입니다.

즉, 하나님은 여자 성품도 있고 남자의 성품도 지니고 있는 이성성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가운데 있는 남자의 성품을 모아 가지고 남자를 만들었으며 여자의 성품을 모아 가지고 여자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주체와 대상으로 갈라지며 이 주체와 대상이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 이것이 다시 합쳐서 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일교회의 원리에서 말하는 정분합작용이라는 거예요. 이 위대한 통일교회 원리가 앞으로 철학에 있어서나 종교에 있어서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었으니까 남자 하나님이죠? 또 여자를 만들었으니 여자 하나님도 되죠? 이와 같이 하나님은 남자의 성품과 여자의 성품을 다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 자체가 그런 분인 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체로서 대상인 인간들에게 머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렇게 되어야 됩니다.

아담은 남자고 해와는 여자지요? 그렇지요? 남자가 태어날 때 여자가 있을까 걱정하고 태어났어요? 여자도 태어날 때 남자가 있을까 걱정하고 태어났어요? 걱정 안 했지요? 이런 걱정을 안 했는데 누가 준비를 했을까요? 하여튼 태어나고 보니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웃음) 여러분이 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걱정을 해서 여자가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여자가 걱정을 해서 남자가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최고로 걱정한 분이 먼저 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끔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아담이 안팎으로 하나되었다면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요, 아담은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요. 밖에 있는 아담은 외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하나님이고 아담은 뭐라구요? 외적인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만물을 아담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었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기술자는 아담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할 때 그 아담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겠어요, 없어야 되겠어요? 이 몸뚱이가 주관할 수 있어요? 하나님이 아니고는 몸뚱이로는 주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 ;20)"고 했지요. 또 타락한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되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아담은 하나님께서 임재할 수 있는 집이죠?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본래 인간은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있어서 언제나 피조물의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동등한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내적인 절대자인 동시에 인간은 외적인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선 상대적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상대적 절대자라는 말은 어려운 말입니다. 이렇게 주체적 절대자 앞에 상대적 절대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세계 우주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본연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인 마음입니다. 알겠어요?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갈 길이 막혔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을 달성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되고자 하는 작용은 본질적인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담이 누구라고 했지요 ?「외적인 하나님요」 외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해와는 누구입니까? 해와는 아담의 아내이니 외적인 하나님의 대상이지요. 그 해와 앞에 하나님도 상대되어 있으니 결국 해와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 아담의 아내가 되는 동시에 내적인 하나님의 아내도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말입니다. 이게 우주의 진리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인간이 그 이상 바랄 게 있어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 것이자 누구 것이예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자 하나님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사랑으로 하나되었다면 타락했겠는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 해와가 하나되어 사랑의 인연을 맺어 가지고 성혼식을 했더라면 이들의 사이를 가를 자가 있겠어요?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무리 타락을 하라고 해도 안 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의 남자 여자도 서로가 정이 들어 아버지 어머니에게 결혼하겠다고 동의를 구했을 때에 동의를 안 해주면 나 죽는다 하면서 못 갈라진다고 하지요? 타락한 사람들도 이러는데 본연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부풀은 풍선이 터질 만큼 지독한 사랑권에 들어가서 서로가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랑을 했다면 사탄이 빼앗아 가지고 타락시키려고 해도 타락시킬 건데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갈라놓으려고 해도 갈라놓을 수 있을 것 같애요?

그런 사랑을 한 사람에 의해서 태어났더라면 누구의 아들딸로 태어났겠어요? 아담의 아들딸이예요? 아담의 아들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불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이론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덮어 놓고 아버지라고요? 못 믿겠으면 기도해 보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거짓말 했는가 목을 걸고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타락이 뭐냐고 하면, 기성교회에서는 선악과 따먹은 것이 타락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해적은 유물론적인 것입니다.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했다 하면 물질 가운데서 정신이 나온다는 공산당의 이론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해요? 그런 수작이 어디 있어? 이런 비과학적인 녀석들…. 이제 낱낱이 밝혀질 때가 온 것입니다. 물질을 먹고 영혼이 타락할 수 있어요? 영혼으로 말미암아 물질이 타락되었으면 말이 되지만 물질로 인하여 영혼이 타락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물질 가운데 영혼이 있다는 것은 유물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기독교 자체 내에서 모순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기성교회 목사들은 자기 잘났다고 정통이라고 합니다. 그놈의 정통! 무슨 통 되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 통을 비우면 무슨 통이 돼요? 깡통이 되는 거예요, 깡통. (웃음)

아담 해와가 선악과라는 물질을 따먹은 것이 무슨 죄가 되길래 수천 년동안 그것이 고질이 되었어요? 앉아 가지고 수작만 하면 되는 줄 알아요? 이런 놈들을 전부다 잘라 버려야 되는 거라구요.

지식 있는 사람들은 내 말에 찬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의 말에 찬동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이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도 할수없습니다.

아담 해와를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어떤 동네의 명문 집에 외딸이 있는데 그 외딸이 끼고 있던 반지를 네가 가졌다고 해서 너는 내 것이다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 딸이 어떤 깡패 왕초에게 걸려들어 가 가지고 그 왕초와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면 꼼짝을 못하고 주관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아버지가 아무리 딸에게 큰소리를 쳐도 어쩔 수 없습니다. 막무가내라구요. 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그 깡패가 선전포고를 하면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사랑의 법도라는 것은 절대 주관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관을 받으면 누구도 끌어 갈 수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사랑에 걸려들게 되면 걸려든 자는 그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론적으로 따져 봐도 그렇습니다. 죄가 유전이 되는 데는 먹는 것 가지고 유전이 되겠어요? 아닙니다. 혈통적 관계가 아니고는 유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무엇을 미워하느냐? 하나님은 음란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불법으로 사랑하여 천지를 뒤엎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악의 피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의 세계에서는 독신 생활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일 남자가 신령한 기도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면 반드시 여자가 나타나서 시험을 할 것입니다. 반드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도의 길을 막고 나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했다는 수작을 해 가지고 2천년까지 남아졌다는 것이 용타는 거라구요.

여러분 유대교에서는 할례를 해 나왔지요? 할례는 양피 끝을 자르는 것입니다. 왜? 제물은 쪼개야 되기 때문입니다. 피를 빼 버려야 합니다. 악한 피를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빼 버리고 선한 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탕감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전부다 쪼갰지요?

피를 뽑지 않고는 구원이 안 되는 거예요. 악한 피를 뽑기 전에는 선한 피가 나오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은 악한 피를 완전히 빼 버려야 됩니다. 그런 다음 다시 순수하고 선한 피를 흘려야 됩니다. 인류역사를 두고 볼 때 선한 피를 흘리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혈통복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인간

지금까지 예수를 믿어 온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전부다 거짓 패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통을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요8:44)"했지요? 여기서 우리 인간의 아버지가 누구라고요? 사탄 마귀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인간의 애비가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마귀와 혈통의 관계를 맺고 태어났으니, 태어날 때부터 전부 다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돌감람나무이며 예수님은 참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는 뭐예요? 양자입니다. 핏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성경에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했지요. 양자이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양자는 절대로 직계 아들이 못 됩니다. 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 양자는 아버지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는 양자 같은 존재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목사들은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요'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요. 하나님의 종새끼밖에 안 됐어요? 이왕에 될 바에야 하나님의 종보다는 양자가 되어야지요. 하나님의 양자라도 기분이 나쁜데….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의 종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양자 되는 것이 좋겠어요, 직계 아들딸이 되는 것이 좋겠어요?「직계 아들딸요」 양자와 직계는 핏줄이 달라요. 양자는 태어날 때부터 돌감람나무예요. 돌감람나무의 열매가 뭐예요? 「……」 하여튼 열매가 있지요? 그것 기분 나쁜 거라구요. 그것은 까막까치 밥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로 되려면 접붙여야 됩니다. 참감람나무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적인 법도를 가지고 나온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감람나무와 돌감람나무를 초심자가 보게 된다면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라요, 안 달라요? 다릅니다. 초심자는 돌갈람나무를 더 좋아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전문가가 보면 어느 것을 좋아할까요?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되겠어요, 참감람나무를 잘라야 되겠어요? 돌감람나무를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야 된다는 겁니다. 참감람나무의 눈 하나와 돌감람나무 전체를 바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돌감람나무인 내 몸뚱이를 참감람나무인 예수님의 눈하고 바꾸었소' 하면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는 기가 막힐 것입니다. 기가 막히겠어요, 안 막히겠어요? 이놈의 자식아, 세상이 망했구나. 네 눈하고 뭐가 달라서 바꿔! 같은데 이놈아' 할 것입니다. 같아요, 안 같아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죽더라도 이 길을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참감람나무의 눈하고 바꿔야 돼요. 바꿔 말하면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이는 것은 무엇이냐? 핏줄을 옮겨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포도주와 떡을 떼어 주시며 '이는 내 뼈요 살이며 포도주는 내 피라'고 했습니다. 떡이 어떻게 살이 되고 뼈가 되며, 포도주가 어떻게 피가 됩니까? 그것은 뭐냐 하면 사탄세계에 빠져 있는 우리의 몸뚱이가 예수님의 몸을 인계받는 데 필요한 조건물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와 같은 접붙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라야 됩니다. 자르는 데는 어디를 잘라야 되느냐? 나무는 가지를 자르면 되겠지만 사람은 어디를 잘라야 되겠습니까? 목을 잘라야 됩니다. 목을 자르면 죽는 거예요. 그러기에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살고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돈 분이 아닌데 왜 그런 말을 했겠습니까? 알고 보면 이치에 맞는 말입니다. 이 말은 역설적인 논리로 되어 있지만 반대로 맞추어 볼 때, 그것이 진리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여러분도 통일교회를 믿으려면 죽을 각오를 하고 믿어야 됩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기반을 닦은 통일교회

요전에 기성교회의 목사들 백여 명이 와서 통일교회 원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원리를 듣더니 그 원리에 감화받아 가지고 '아이구 몰랐구나. 통일교 문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구나' 하며 말했습니다. 옛날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자기들끼리 통일교회 문 아무개 몰아내자고 하던 일을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옛날과 비교하기조차 무섭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그렇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월에 이 일을 또 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도 한 백 명쯤 오게 해서 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이제는 목사들도 자기 교회의 단에 서서 통일교회에 가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알 만한 목사들을 다 왔다 갔습니다, 자기들은 통일교회 원리를 듣고 배웠으면서 교인들에 대해서는 통일교회에 가지 말라 하면 도둑놈이지요. 그런 패는 하늘이 들이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그런 사람들 수법에 말려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를 잡아죽이려면 누구든지 해보라는 것입니다. 자유당 시대에도 경찰들을 포함해 내무부 장관이니 법무부 장관 등 별의별 사람들이 나를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민주당 때에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형편없는 사나이가 아닙니다. 나와 그들의 수를 두고 볼 때 누가 수가 깊으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가 연구를 많이 했어요? 공상을 해도 선생님이 많이 했지요? (웃음)

여러분보다 예수님이 생각을 많이 하면 예수님이 주체자라는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나부랑이라구요. 또, 하나님보다 고생을 많이 하면 하나님보다 더 주체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기보다 높다고 칭찬해 주어야 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건달꾼이 아닙니다. 생각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또한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실천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런 면에서 통일교인들은 선생님 앞에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나이 많은 사람한테나 나이 적은 사람한테나 전부 다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내게 욕을 먹고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때까지 이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남한테 뒤떨어져서는 죽으면 죽었지 그냥 살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선생님이 학생 때 씨름을 했는데 한 번 졌습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우리 집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를 상대로 밤낮없이 씨름 연습을 했습니다. 석달 이내에 그놈을 잡아야 되겠기 때문에 그 나무의 껍질을 벗겨 놓고 매일같이 연습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기성교회 장로 목사들이 들고 일어나 통일교회는 이단이고 문 아무개는 어떻고 하면서 핍박했는데, 선생님이 그런 것에 졌다면 벌써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20년 동안 이런 욕을 먹어 가면서도 이제는 세계적인 기반을 다 닦았습니다. 내가 부러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에 빌딩도 지을 수 있습니다. 고급 차를 보내라고 외국에 전보치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누가 이런 기반을 닦았습니까? 미국 사람들도 내가 전보해서 몇백 명이고 오라고 하면 올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고 일본 사람들도 오라고 하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거 보면 못났어요, 잘났어요?「잘났습니다」 선생님이 잘났기 때문에 그런 놀음을 할 것입니다. (웃음) 이제는 내가 자랑을 좀 해야겠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아이구, 통일교회 문선생이 한번 만나 주지도 않네. 이렇게 많이 왔는데 인사라도 한번 있을 줄 알았더니 말 한마디도 안해' 합니다. 내가 그렇게 인사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나는 것이지. 대한민국 그 누가 와도 만나볼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만나 주지 않습니다. 자질구레하게 꺼덕거리는 녀석들은 만나라고 해도 안 만나 줘요. 그러나 겸손히 나와 가지고 자기의 사연을 털어 놓는 사람들은 만나 줍니다.

신문사는 또 어떻습니까? 통일교회 문선생님에 대해 특집기사를 한번 내겠다고 하면서 과거에 써먹었던 것을 그대로 베껴써 놓고는 선전한다고 합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을 이용해서 장사해 먹겠다는 장사속이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한테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신문기자를 무서워하지 않는 패는 통일교회 문선생 패라는 것입니다.

이런 떼거지 같은 녀석들을 전부다 갈고리에 걸어 가지고 혼내 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 신문기자 있습니까? 가서 욕하겠으면 떳떳이 나와 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을 때 불러다가 욕을 해줄 것입니다. 그것도 작전상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도 필요한 거예요.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욕을 다 해봤는데 더 이상 할 욕이 있겠어요? 암만 해도 제 물구덩이 파는 짓이라는 것을 안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이제는 욕할 거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욕을 해도 우리는 코방귀도 안 뀌는 거예요. 욕하겠으면 하라는 것입니다. 이젠 그들이 눈물을 흘려도 늦었습니다. 그렇지요?

아담 해와가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먹고 타락을 했다면 오늘날 내가 이 고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생을 하더라도 내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보다 못나서 이런 놀음을 하는 줄 아십니까? 기성교회 신앙자들의 생활을 내가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다는 것도 내가 전부 돌아다녀 봐서 압니다. 그래서 그들보다 낫기 때문에 내가 이 놀음을 하는 것이지 그들보다 못하다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기준

오늘날의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의 자리에 들어왔느냐? 사탄이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류는 사탄의 아들딸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가려면 사탄과의 인연을 잘라 버리고 접붙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참감람나무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참감람나무에게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접붙이려면 세상의 인연을 전부다 잘라 버려야 됩니다. 나라와 세계, 부모, 처자도 다 잘라 버려야 됩니다. 여러분이 천국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실체로서 이 땅에 와 가지고 누구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처자나 누구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받는 사랑이 사탄권에 있는 사랑보다 못하게 된다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탄보다도 못한 사랑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기준이 무엇이냐? 자기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고서는 사탄권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내보다 자기 남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타락된 인류가 사탄권내의 사랑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 가장자리까지 나왔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여러분이 태어난 심정적 기원까지도 부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독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앞으로 재림주가 와서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겠지만 그전까지는 개인 적으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 구원을 위주로 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없기 때문에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가정을 구원해야 됩니다. 이렇게 가정 전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재림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고 천당간다고 하지만 전부 개인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본래 천국에는 혼자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권에 머물렀다면 그들이 천국 가겠어요, 못 가겠어요? 그렇게 됐다면 지옥이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떻게 가는 곳이냐? 부부를 중심삼고 그 부부가 낳은 아들딸을 거느리고 가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아들딸 손자들과 더불어 그 족속을 거느리고 가는 곳입니다. 더 나아가서 나라 전체가 가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천국 가겠다고 하지만 천국은 혼자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절대로 혼자는 못 갑니다.

예수님이 어찌하여 천국에 못 들어갔겠습니까? 천국은 타락하지 않은 산 자가 들어갈 수 있게끔 하나님이 인간에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원칙적인 기준에 세워져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자신도 타락한 인간을 구원해 가지고 타락하지 않은 인류의 부모인 아담 해와의 자리에서 아들딸을 거느리고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자 왔다 갔으니 예수님의 자손이 있어요? 없기 때문에 낙원에 가게 된 것입니다. 천국에 못 들어 가고 낙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 가기 위한 대합실 같은 데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와서 신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래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신랑 신부가 되어 가지고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시조가 타락했을망정 그 원칙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원칙대로 꽃피우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혼자 갔으니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와 가지고 땅에서 풀고 가야만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땅에서 맺었으니 땅에서 풀어야 된다는 성경 말씀과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어떤 존재인가

그러면 사탄이 어떻게 했느냐? 사탄이 어떻게 했다구요? 사탄은 비법적인 사랑으로 아담 해와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여 그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래 사랑은 절대 주관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창조원칙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한 번 맺게 되면 영원히 혈통적인 인연에 의해 주관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인류의 조상을 겁탈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사랑을 주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중심삼고 인류를 주관하게끔 되어 있는데 비법적으로 사탄이 이러한 원칙을 중심삼고 인류를 자기 것으로 못박아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서 인류를 빼앗아 와야 됩니다. 이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한 싸움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무엇이냐? 사탄이 무엇이냐 이겁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분입니다. 인간의 잘못에 대해서는 몇천 번도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이 있는 하나님이 왜 사탄만은 한 번도 용서를 안 해줬느냐는 것입니다. 왜 사랑을 못 해줬느냐는 것입니다.

사탄은 무엇이냐 하면 간부입니다. 무슨 기관의 간부(幹部)가 아니예요? 사랑의 원수입니다. 사랑의 원수되는 사탄 마귀가 하나님을 참소해 나온 것입니다. 6천년간 사탄의 참소를 받으며 나오시는 하나님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인 아담과 해와를 잘라 버렸으니 이것을 복귀하려면 잘라 버린 자체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창조원칙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딸이어야 될 텐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인해 사탄의 아들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부 되는 사탄과 이마를 맞대고 싸워 나오셨습니다. 참소의 조건을 막아 가면서 지금까지 인류를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런 기막힌 하나님인 줄 기성교인들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으로만 알고 '오 ! 천지 영광 가운데 위대한 하나님이시여'라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 아버지를 죽여 버리고 어머니를 겁탈한 사탄 마귀가 알고 보니 내 아버지의 입장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수의 피를 받은 내 몸뚱이의 피를 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놈의 몸뚱이를 청소하기 위해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고생하지 않고 피를 흘리지 않고는 제대로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때려잡기 위해서는 고생해야 합니다. 온유 겸손하고 희생봉사하고 죽을 때까지 순종해야 됩니다. 사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라는 것이 통일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사탄 마귀가 어떤 것인지 알았어요?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벼락을 맞을 거라구요. 지금 여기에서 말하는 문선생이 적당히 꾸며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절대적인 것입니다.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제 기분 좋아요?

인간은 타락했으나 본성이 있기에 복귀될 수 있어

창조원칙에 의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몸뚱이는 자연적으로 마음과 하나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적으로 부합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인간은 두 주인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인간과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핏줄을 타고 들어와 몸뚱이에 뿌리를 박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마음을 중심삼은 내적인 존재요, 사탄은 몸뚱이에 뿌리를 박고 있는 외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내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런 성품을 온전히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은 사탄과 같이 있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는 종이고 하나는 주인인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래는 하나님과 아들딸인 아담 해와는 안팎으로 하나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장인 사탄이 아담 해와를 취해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사장과 같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인 하나님이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떠났지만 우리 마음은 본래의 주인과 하나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도 이런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힘이라는 것은 어떠한 작용을 통하지 않으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힘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것입니다.

아인시타인은 '이 우주는 힘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힘이 보여요? 안 보이지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면,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작용할 수 있어요? 힘 자체는 상대적 여건을 무시해 가지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생겨나는 것이지 이것을 벗어 나게 되면 안 나오는 것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으면 힘이 나와요? 안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주체와 대상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모든 자연도 이러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이 이론을 모르고 있다는 거라구요.

그런 점에서 볼 때 힘이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주체와 대상이 작용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로 손해 나는 즉, 자기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대상과는 절대로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만나게 될 때 여자한테서 손해볼 것 같으면 그 여자와 가까이하려고 해요, 안 해요? 안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열심히 만나려 한다는 것입니다. 손해나는 작용은 절대 안 한다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라면 벌써 둘입니다. 이 둘은 하나의 개체로서 요구하는 것보다도 서로가 요구하는 목적을 중심삼고 서로 부합될 수 있는 입장을 발견하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처녀 총각도 둘이 서로 좋기 때문에 약혼하고 결혼하지요.? 그러나 어느 한 편에서든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결혼은 깨지는 것입니다. 안 되는 거라구요. 운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체의 목적보다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을 발견했을 때는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될 때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양심이라는 것이 작용해요, 안 해요?「합니다」 작용하는 데에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있어서 서로 손해가 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는 작용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양심도 손해보지 않는 입장에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주체가 아니면 대상이든지 둘 중의 한 가지는 결정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뭐냐 하면, 보이지 않는 주체와 대상인 여러분 마음이 상대가 되어 가지고 주고 받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에 양심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양심의 작용을 논하게 될 때에는 양심의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은 남극과 북극이 서로「주고받는 작용을 하는 것과 같은 운동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과 같지 않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떠났지만 인간의 본성, 본바탕만은 본래 하나님과 합할 수 있는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작용은 우주의 공간을 넘어서까지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위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을 향해서 높아지려고 하고 하늘을 찾아 가려고 하는 것은 원칙적인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그 작용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작용을 중심삼 아서 섭리의 길을 밝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사탄은 무엇을 하느냐?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누간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 되느냐? 하나님은 마음의 주체요. 사탄은 몸의 주체로서 우리 인간의 두 주인이 되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플러스 플러스끼리, 마이너스 마이너스끼리는 서로 반발하는 거라구요.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우리 인간은 마음과 몸이 싸워요, 화목해요? 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완전 구원을 위해 종교는 통일되어야 한다

인간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두 목적을 대해 가지고 방향을 달리하는 작용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하나의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두 가지의 목적을 추구하는 마음사람과 몸사람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것이 타락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몸뚱이를 때려잡아야 합니다.

종교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 마음을 중심삼고 몸뚱이에 경고하고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두고 볼 때 마음사람과 몸사람으로 되어 있는 인류는 고장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장난 인류를 수리하기 위해서 수리공장을 만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지금까지 인류는 고장났으니 이것을 다시 수리해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고 그 자체가 좋아할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재생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생품이나마 본래의 목적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장난 인류가 수리공장을 통해 바로 잡아지기를 하나님께서도 바라실 것이요, 여러분 자신들도 바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싸움을 거쳐오면서 인간들을 수리공장에 집어넣기 위한 운동을 해 오셨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종교운동입니다. 알겠어요? 종교가 뭐라구요? 수리공장이라구요, 수리공장. 그러기에 종교의 교주가 누구냐 하면 기술자입니다, 기술자. 알겠어요? 예수도 기술자고, 석가도 기술자고, 공자도 기술자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의 문명의 발원지를 두고 볼 때 반드시 종교의 사상을 통하지 않고는 생겨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인류는 종교권내로 몰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끝날이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하면 통일종합 수리공장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분품 수리공장에 가고 싶어요, 종합 수리공장에 가고 싶어요?「종합적인 공장에 가고 싶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습니다. 전부다 종합적인 수리공장에 간다고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종합적인 수리공장이라면 통일교회의 선생님은 무엇이 되겠어요? 「기술자입니다」 나는 이제 기술자 안 해요. 여러분이 해보십시오. 선생님은 뒤에서 앉아 있겠어요.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볼 때, 하나의 나라를 중심삼은 것보다도 전세계가 하나되어 함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이 외적으로 벌어지는 때가 왔다면 오늘날 하나님을 중심한 종교, 세계의 수리공장도 자기의 종교를 초월하여 가지고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공동적인 통일수리공장 즉, 종합 수리공장을 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귀추로 봐서 필연적인 것입니 다. 그러면 역사가 요구하는 시대에 있어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것을 주장했다면 잘했어요, 못했어요?「잘했습니다」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하여 칭찬은 못할망정 왜 그 야단들입니까?

여러분은 수리공장에 들어왔으니 전부다 분해되어야 됩니다. 분해되어야 돼요. 안 되어야 돼요? 분해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분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분해가 되는 데 있어서 초보자에게 분해되고 싶어요, 전문가에게 분해되고 싶어요? 통일교인은 전부다 선생님에게 분해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선생님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흠도 안 내고 분해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지구장이 있지만 말이요, 지구장 따라갈래요, 선생님 따라갈래요?「선생님 따라가겠습니다」 지구장 앉혀 놓고 망신 주는 법이 어디 있어요?(웃음) 그것은 왜냐하면 선생님이 기술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장이 있는 앞에서도 체면불구하고 선생님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보기에 오늘 처음 본 사람도 있는데, 선생님 따라갈래요? 몰라서 그렇지 알기만 하면 선생님을 따라가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이냐? 아들딸을 찾는 것이 소원이지요. 그러면 아들딸만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겠어요? 하나님의 소원이 아들딸 둘만 찾는 것이예요, 한 나라를 찾는 것이예요? 하나님의 소원이 아들딸만 찾는 것이겠어요? 가정을 찾고 나라를 찾고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래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 출발을 한다면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게 되지요? 그렇지요? 누구의 가정이라고요? 하나님의 가정입니다. 이것이 많아지면 누구의 종족이라고요? 하나님의 종족이 이루어집니다. 땅은 누구의 땅이예요? 하나님의 땅입니다. 사람은 누구의 사람이지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족이 점점 많아지면 민족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권이 있어야 되는데 그 주권은 누구의 주권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백성은 누구의 백성이예요? 땅은 누구의 땅이예요? 전부다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커지면 땅 위의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겠어요, 두 세계가 되겠어요?「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주권을 이루는 하나의 백성이 되어 하나의 주인으로부터 지배받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그렇게 막연하게 대답하면 안 됩니다.

타락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참부모

하나님은 우리 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스승 중에 제일 큰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중에 대왕 선생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부모로 말하자면 부모 중에서도 첫째 부모입니다. 즉, 참된 부모입니다. 왕으로서는 만왕의 왕입니다. 누가? 「하나님이요」 하나님입니다. 알겠어요 ?

하나님은 선생님 중에 첫째 가는 선생님이요, 부모 중에 첫째 부모입니다. 부모 중에 몇째 부모라고요?「첫째 부모요」 첫째 부모라면 그 부모가 가짜 부모이겠어요, 참부모이겠어요?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런 참부모가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부모가 되었어요?

통일교회에서는 기도를 마칠 때 '참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맨 처음 참부모는 하나님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래, 기도를 하면서 빌 때에 누구를 통해서 빌어요? 무엇을 할 때도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잖아요? 그렇지요?

여러분이 물에 빠져 있을 때 누가 구해 주기를 원해요? 구주가 와서 구해 준다고 할 때, 이웃 동네의 할아버지가 구주가 되어 구해 주기를 원해요, 자기 동생이 구주가 되어 구해 주기를 원해요? 자기를 구해 주는 구주가 형님이면 좋겠어요, 동생이면 좋겠어요?

누가 와서 구해 주었으면 하겠어요? 자기 아내가 구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닙니다. 자기 부모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구주 중에서도 일등 구주인 부모가 와서 구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자기 뼛골에 사무치는 고통으로 아는 분이기 때문에 자식은 아버지 어머니 되는 구주를 찾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이 뭐냐 하면 어머니 신입니다. 죄는 여자가 지었기 때문에 여자를 대신해서 어머니 신으로서 죄를 씻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성신입니다. 아버지는 낳아 주는 역할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성신은 예수님을 사모하는 데 있어서 세상의 남편 이상 사모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는 예수님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인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신이 어떻게 해서 되었는지 몰라 가지고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신부가 될 수 있겠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면 스승 중의 스승이요, 부모 중의 참부모요, 대왕 중의 참대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효도하는 것이 결국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부모 앞에 효도만 하게 되면 천국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타락을 안 했으면 부모의 말을 잘 듣고 부모를 따라 가르침대로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 가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상의 인륜도덕을 중심삼고 볼 때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군왕에 대하여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연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이 주권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충신과 효자의 도리를 다하게 된다면 천국은 내 것이요, 그 주권도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의 사상을 가르치는 동양사상이 그런 면에서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가르침 중에 누구의 가르침이 제일 위대한 가르침이냐? 스승의 가르침보다 부모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대신할 수 있고 부모로서 나라님을 대신할 수 있다면 그런 부모를 가진 자식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 부모가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구 것이 되겠어요?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와 같은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한 분으로 계시는 하나님에게 나라가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주권이 이 땅 위에 있습니까, 백성이 이 땅 위에 있습니까?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전부다 하나님의 것이 되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안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민을 세워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으니 그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와서 상대를 찾아야 했습니다. 신랑 신부가 되어서 가정을 이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부가 되었다면 예수님의 아들딸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그럼 그 아들딸은 하나님의 뭐가 돼요? 손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손자가 많으면 좋겠어요, 적으면 좋겠어요?「많으면 좋습니다」 손자가 많아지면 하나의 족속을 이루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땅에 주권을 세우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이 일을 하려다가 못한 것이 한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길

타락한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참된 인생길입니다. 그런 참된 인생길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겠습니까? 타락한 인간으로서 어떤 길을 찾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의 자리, 딸의 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딸 중에서도 어떤 아들, 어떤 딸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딸이 백 명쯤 있다면 그 중에 첫째 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생들을 돌보지 않으시면 첫째 딸로서 하나님 대신 동생들을 돌보고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주어야겠어요, 안 해주어야겠어요? 공부시켜 주어야 되겠어요, 안 시켜 주어야 되겠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 겉으로 나타나야겠어요, 안 나타나야겠어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고생과 씨름을 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첫째 딸이 되어서 이런 일을 못 하게 되면 하나님의 최후의 사랑을 누가 받겠어요? 막내 딸 아니라 망나니 같은 딸이라도 전체를 책임지고 제일 고생을 많이 했다면 그 딸이 최후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첫아들과 첫딸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못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첫째 아들의 자리를 찾아 나온 것이요, 첫째 딸의 자리를 찾아 나오는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으려면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야 되겠어요, 남을 위주로 살아야 되겠어요? 형제를 위주로 해서 살아야 되겠어요, 나를 위주로 살아야 되겠어요? 아버지 대신 내가 희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어머니 대신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하여 제일 많이 피를 흘리고 오래 참고 극복한 사람일수록 깊고 넓고 높은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아버지 어머니의 전체를 상속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막내 딸로 태어났든지, 막내 아들로 태어났든 지간에 첫째 사랑을 점령하고 부모의 사랑을 몽땅 차지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고 참된 인간으로서 등장하는 자리를 찾아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 만민을 위해 살라

여기 성북교회에 통일교인이 백 명 있다면 여러분은 그 백 명을 죽이는 사람이 될래요, 백 명을 위하는 사람이 될래요?「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 다」 그렇게 위해도 상대가 안 받겠다고 한다면 그만두어야겠어요. 안 받으면 큰일난다고 하면서 받아 달라고 해야겠어요? 여러분은 빌면서라도 받아 달라고 해야 됩니다. 왜냐? 상대가 안 받으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맏딸 맏아들의 자리에 못 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받을 때는 울면서라도 주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틀림 없이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딸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것입니다. 그가 죽고 난 후에 그 터전 위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꽃이 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독생자는 있었는데 독생녀가 있었어요? 독생녀를 못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독생녀를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재림하는 것입니다. 재림주가 와서 뭘 할 것이냐? 어린양 잔치. 즉 혼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은 남자와 하나님의 첫사랑을 몽땅 받은 여자가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타락하지 않은 아담과 해와의 자리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할 예수님 자신은 세계 만민을 위해 희생한 것입니다, '내가 받을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너희들에게 넘겨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주며 복을 빌어 주었던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 생명에 복까지 플러스해서 넘겨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종교 중에 제일 위대한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부자의 관계로 설파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최고의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오래 남아질 수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인이 무엇인지 알지요? 위인은 대한민국에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누가 위인이예요? 이순신 장군이지요. 그렇지만 나는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순신이 참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람이라면 원수 나라에서도 참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이순신은 대한민국에서는 분명히 애국자입니다. 하지만 일본에 있어서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참사람은 원수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국가를 초윌합니다. 위인은 국가 라는 환경을 못 넘어선다는 거예요.

그러나 성인은 국가를 초월합니다. 성인의 사상은 자기 나라 일개국을 위해서 사는 사상이 아닙니다. 위인들이 가는 길에는 눈물을 흘려 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성인들이 가는 길에는 그 나라 전체가 떠다 밀고 원수시합니다. 그래도 성인들은 그 길을 가겠다고 하며 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제자 할 것 없이 전부다 도망을 가지 않았어요? 그들 중에 한 명이라도 예수님 편만 들어 주었어도….

예수님은 십자가 길에서 죽게 된 강도와 사정을 나눠야 하는 단신이었던 것입니다. 나라 전체가 배반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 소원과 뜻은 만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정은 하나님만이 알아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불쌍하기는 어떤 성인보다 불쌍했지만 세계 만민을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갔기 때문에, 그 일은 세계적인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자리는 전체를 위하는 자리로 종결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인간의 역사가 출발하면서부터 종교가 뒤따라 나왔느냐 ? 그것은 참사랑을….

우리가 4대 성인을 두고 보더라도 그들은 전부 다 종교의 교주들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성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철인일 뿐입니다. 철인은 무엇이냐 하면 지식의 왕자입니다. 그 지식을 가지고는 생명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사리에 대하여 판단은 할 수 있지만 생사의 권을 판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을 합하는 참아들딸이 되라

생명을 지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신 이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생명을 지배해 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더라도 행복을 저버리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 교주들이 가르쳐 준 주류사상이 무엇이냐 하면 신을 위주한 사상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주로 해서 전부 가르쳐 주었습니다. '신을 본받아라! 신을 따라가라 ! 신을 위해 살아라 ?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참된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사람이 결정한 것을 믿는다고 했어요, 안 믿는다고 했어요?「안 믿습니다」 그것은 시시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을 위주로 해 가지고 도리를 펴지 않고는 참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주하고 인류의 가야 할 도리를 가르친 사람이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성인들치고 하나님을 빼놓고 생각한 사람은 없습니다.

공자는 '위선자는 천보지이복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니라(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천이 뭐냐?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나는 하나님의 독생자다. 나는 신랑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가정적인 사상 체계를 들고 나오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명실공히 세계적인 성인이 안 될 수 없는 것이요,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자리에 예수를 안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이 오늘날 세계의 중심을 이룬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을 떠난 인륜, 인정이라는 것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을 빼놓은 인륜이 있을 수 없고 신을 빼놓은 인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천륜과 인륜은 합해져야 되고 천정과 인정도 합해져야 됩니다. 그런데 다른 종교에서는 이 천정을 몰랐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격적인 신만 알았지 정서적인 신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유교도 그저 유도가 있음을 말했을 뿐이었으며 불교도 역시 확연히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가 위에 서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천륜이 있은 후에야 인륜이 설 수 있는 것이요, 천정이 서 가지고야 인정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천륜을 따라오면서 천정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러면 천정이 무엇이냐? 인간이 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한 가정에서 맺어져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종교가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가 무엇을 중심삼고 나오느냐? 천륜과 천정을 중심삼고 인륜과 인정을 합한 가정적 종교, 구도의 도리를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종교는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개인만 하나님 믿고 천당가려고 합니다. 그려나 통일교회는 천국은 혼자 가는 곳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부부가 하나되어 사위기대를 이루지 못하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런 가정적 구도의 도리를 비로소 체계적으로 잡아놓은 곳은 통일교회뿐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를 믿고 가는 사람은 가정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루는 행사가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입니다. 알겠어요? 합동결혼식에 대하여 세상에서는 비웃고 별의별 소리를 다 하지만 이 축복의 내용이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륜과 인륜, 천정과 인정이 합하는 참아들딸의 모습으로 인륜을 대표한 참장남과 참장녀의 위치에서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지상의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이 땅 위에 태어난 참된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완성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참 사람이 가야 할 길입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굽어 살피시옵소서. 가련한 인생으로 태어난 모습이 얼마나 비참하였던가 하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수난의 탕감노정을 거슬러 가기 위해 아버지께서 역사노정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될 때에 오늘날 돌고 도는 역사의 고빗길에서 처량한 심정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는 아버지의 깊으신 아픔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생각하게 되옵니다.

찾아오신 삼천리 반도 이 강산에 수많은 백성들이 살고 있지만 몰리고 쫓기는 보잘것없는 통일의 무리들만이 남아 있는 그 자리에 놀라운 천륜의 인연으로써,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서로 확신을 가져 내일의 소망을 다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생활 터전을 갖게 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이 한자리가 6천년 소원 가운데 나타난 자리인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때가 가까워 옴에 따라 저희들의 사명이 얼마나 엄중하고 귀중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은사를 주신 것을 아버지 앞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옷깃을 여미고 무릎을 꿇을 때 하늘을 향한 심정이 불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충신의 도리와 효자 효녀의 도리를 다하여 역사시대의 충신 열녀들 앞에, 효자 효녀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고 만세에 내세워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 효녀의 모습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러한 부족함이 없는 소망의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서 아버지 앞에 인정받게끔 저희들은 생명을 다 바쳐 나가야 되겠습니다.

부족한 자신임을 저희들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높고 귀하신 아버지의 수고가 저희 생활 가운데 머무르신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저희들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겠고, 하늘이 기뻐할 수있는 충효의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시간을 아껴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의 좁은 마음을 넓혀 주시옵고 죄악의 후손으로 태어난 저희들에게 있는 악한 피의 뿌리를 뽑으시어서, 당신이 취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의 모습으로서 지켜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된 인생길이라는 제목을 중심삼고 당신의 자녀들 앞에 말씀하였사오니, 이 내용이 앞으로 이들이 새로운 생명길을 가는 데에 힘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사망의 세계에 있어서 모든 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팡이가 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이 뜻과 일치되어 승리의 결과를 가져 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시간 아버지께서 영광받으시옵고, 기뻐할 수 있는 은사를 이들에게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오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