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에 당신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그리워하면서 모여 정성들이고 있는 곳곳마다,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승리의 인연을 같이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모든 생활 환경에까지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또, 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도 한국 땅을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맡은 바 시대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수고하며 가고 있사오니, 그들의 온갖 정성을 긍휼히 보시사 끝까지 보호하고 육성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땅을 중심삼은 완성의 한때를 바라며 자기들이 해원성사할 수 있는 때와 곳을 찾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저희들은 그들을 복귀할 수 있고, 탕감할 수 있는 터전에 있사오니, 이런 자리에 있는 저희들이 움직이는 그 자체가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해원성사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엮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인류는 하나의 소원하는 나라를 찾고 있사옵고, 하나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곳에 아버지를 모시고 일체화한 통일의 은사권내에서 인류는 하나의 백성으로서, 온 세계는 하나의 땅으로서 아버님을 중심삼은 주권국가로 통치받을 수 있는, 당신이 소원하시는 세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린 자녀들은 그와 같은 소원을 따라 지금까지 수난의 역로를 개척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서는 저희들보다 아버지께서 더 수고하시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의 소원은 당신의 뜻에 일치되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문제를 생애노정을 통해서 필연코 당신 앞에 이루어 드리지 않으면 안 될, 또 이루어서 후손 앞에 완전한 것으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될, 이러한 중간적인 책임을 다하 여야 할 입장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현재 처해 있는 이 자리가 귀중하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에 제아무리 승리를 하였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였다 하더라도, 오늘 이 시간에 아버지 앞에 섭섭함과 슬픔을 드릴 수 있는 악한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지금까지의 선했던 모든 것이 기쁨의 결과를 가져오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 앞에 더 슬픔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 현재의 생활권, 순간순간으로 다가오는 시간에 있어서 참을 다짐하고, 성실을 다짐하고, 진실을 다짐하고, 사랑을 다짐하는 사람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여기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완전히 굽어살피시옵소서.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곳, 내 몸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느끼고, 그것이 아버지의 소원과 일치가 되고, 생활면에서 아버지의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대상적인 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일체를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긍휼의 아버지께서 오늘날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통하여 섭리의 역사를 다짐하신 것을 생각할 때,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얼마나 얼마나 수난길을 극복해 오셨는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의 앞길을 당신께서 염려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가야 할 행로를 당신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악이 원하는 일체를 없애 주시옵고, 선의 일체적 요건을 세워 하늘과 땅 앞에 필요한 요건을 남길 수 있는, 당신이 기억하실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고, 당신의 사랑의 심정을 이어받아 후손 앞에 선한 조상의 기원을 만들어 놓고 가겠다는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흘러가는 세월과 더불어 자신을 위한 생애노정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악한 세상을 가로막고, 흘러가는 역사 가운데서 하늘의 승리의 터전을 개척하고, 당신의 활동 무대를 개척할 수 있는 개척자의 사명과 선각자의 사명을 더디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루의 해가 떠오르는 아침을 맞이하여 새로운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저희 마음이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새로운 것을 느껴 가지고 하늘의 광명한 빛을 흠모할 수 있는 자체가 되고, 생명의 여운을 따라가는 저희들, 그 무엇이 제재할 수 없는 자연적인 환경에서 생명의 주체와 일치되는 길을 모색해 나가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런 모습으로서 아버지 앞에 항상 충효의 도리를 다짐하고, 거룩한 실체를 가진 아들딸의 모습을 다짐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세파가 휘몰아치는 환경 가운데서 살던 이들이 또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아버지여, 이들의 일주일 동안의 모든 사연 사연을 청산해 주시옵고,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요인, 아버지를 위할 수 있는 사정만을 마음에 품고 아버지 앞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신념과 결의와 자각을 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선하신 아버지는 선한 상대적 실체를 찾고 계시오나 저희 자체는 선한 실체가 되어 있지 못하오니, 당신께서 선한 실체로 세우기 위한 선한 은사의 분위기를 갖추시어, 선한 본성을 가진 저희들 마음이 그곳을 그리워하고 흠모하고 사모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만을 위하면서 아버지로 말미암은 은사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사랑이 아니면 저희들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생명의 힘이 아니면 악의 세계를 제패할 수 없사오니, 저희들에게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넘치는 사랑을 허락하여 주시어서. 악의 전권을 전부 제거하고, 선의 전권과 전능을 가지고 모든 환경을 정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사탄 마귀를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춤으로써 당신이 사랑하시고, 믿으실 수 있고, 기뻐하실 수 있는 용사로서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자신감과 신념을 가지고 어떠한 악의 세력이라도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화해의 길을 밟고 일어나서 선의 길을 위하여 화동하며 악의 요인을 제거할 수 있는 강한 선의 실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그를 위해 스스로 모색해 나갈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 혹은 오늘을 거룩한 날로서 축하하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떠한 곳, 어떠한 자리에서 부복하였을지라도 당신께서 당신의 권위와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은사로 보호 육성하시어서, 내일의 승리를 다짐할 수 있는 하나의 용사로서 갖출 바의 안팎의 모든 장비를 갖출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악한 인간들은 언제나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것이 폐단이었사오니, 이것을 당신을 의지할 수 있는 생활로 전환시키고, 당신의 심정을 따라 이것을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도록 방향을 갖출 수 있게끔 노력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여, 사정이 다른 저희 어린 자녀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다르다 하더라도 당신의 사정 앞에 일치가 되고, 당신이 바라시는 목적과 소원 앞에 일치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저희도 아버지를 사모하고. 지극히 고독할 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더듬듯이, 아버지를 흠모하는 마음 가지고 더듬을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와 영광과 내일의 소망을 이어받는 데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을 아버지께서 품으시사 승리와 찬양과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전국 백성은 지금 너나할 것 없이 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남북이 갈라지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볼 때, 6·25사변이 그 원인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근본 문제에 들어가서 원인을 알아보면 오늘날 세계가 하나될 수 없는 역사적 노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개인 개인을 두고도 거기에는 의견이 각각 다르고 주장이 각각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범위를 넓혀서 하나의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 종족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후가 다르고, 바라는 소망의 방향도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주장하는 방향이 다르고 서있는 입장이 다르니만큼, 거기에 상응하는 상대적인 현상이나 상극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민족이면 민족 자체가 특정한 민족을 중심삼고 통일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그 통일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종족이면 종족, 자기 국가면 국가를 중심삼고 세계의 국가를 통일하고, 세계의 국가를 주도하려고 하는 주권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냥 그대로 순리적인 환경을 거쳐 하나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현재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양대 진영으로 갈라져서 대립되어 있는 현상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 이 두 세계는 출발의 기원이 다른 것입니다. 또, 가는 목적이 다른 것입니다. 출발과 목적이 다르니만큼 거쳐가는 과정도 필시 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상충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생활 주변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과연 통일이라는 것은 어디에 서부터 추구해야 될 문제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타난 결과의 현상을 바라봐 가지고 여기에 대비하려 하는 것은, 역사시대에 성사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그런 것보다도 근본적인 면에 들어가서 이 문제의 해결책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람 자체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이것이 통일된 하나의 근거가 되고 주체가 되었다면 모르지만, 우리 인간 자체를 보게 되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람에게는 마음의 사람이 있고 몸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언제나 상응될 수 있는 환경의 요건을 따라 가지고 대상적 목적을 추구해야 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환경과 일치되지 못하는 사실들을, 즉 양심생활과 현실생활이 서로 일치되어 나가지 못하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면 과연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통일의 기원과 통일의 요인을 어디에서부터 세울 것이냐? 나를 넘어서 어떠한 동기가 되고 요인이 되는 존재가 세워졌다 하더라도, 일체화하지 못하는 나 자체를 그 요인이 되는 존재 앞에 굴복시켜 가지고 통일되게 할 수 있는 주체가 있느냐 할 때, 역사노정에 그러한 주체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성인이 있어서 그러한 목적을 세웠다 하더라도 그 목적을 중심 삼고 전세계, 혹은 전국가가 일체화하지 못한 모든 역사적인 실정과 현실적인 실정을 미루어 볼 때에, 그런 주체적인 통일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 우리 자체가 그와 일치된 입장에 서 있지 못하다면, 이것을 이론화시키고 보편타당화시킨다는 것은 극난(極難)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 곧 절대자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그리고 절대자가 있어서 인간을 지었다면, 지어진 인간은 그 절대자와 상반되는 입장에 서야 되느냐, 아니면 순응하는 입장에 서야 되느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절대자라면 그 절대자는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추구할 것이 틀림없고, 그분에게 지음받은 인간도 그러한 절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므로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데, 현재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기에 모순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단 한 분의 절대자로부터 지음받은 인간이라면 단 하나의 목적을 중심 삼고 그 목적에 일치될 수 있는 모든 환경이라든가 생활 여건, 혹은 과정이 일체화 될 수 있는 관계를 가져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우리 개체를 발견하게 될 때, 신이 과연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또 나 자체를 명시해 보고, 나 자체를 분석해 보면 두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될 때,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는 분에게서 지어진 인간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때에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까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세계의 정세에서 하나의 모색 방안, 혹은 하나의 이념 세계, 하나의 통일된 사상 세계를 추구하려면 그 근원지는 어디이겠느냐? 세계도 아니요, 어떤 특정한 나라도 아닙니다. 그것을 추구할 수 있는 근원지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간 가운데서 추구해야 됩니다.
'인간' 하게 되면 거기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와 여자가 무엇을 중심삼고 걸어가고 있느냐? 생활 무대를 중심삼고 생애 노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역사적인 방향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여건과 생애노정을 통해서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일생을 살다가 가는데, 그 생애를 살아가는 방향이 천태만상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렇게 가는 사람이 있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 있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천태만상입니다. 오르고 내리는 형태라든가, 가고 오는 모양이라든가, 흑은 되어지는 환경의 여건이 다름에 따라 그 방향은 수시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이 있어 경륜한다면 그 신이 경륜하는 방향은 절대자의 경륜이기 때문에 절대로 바뀌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경륜의 방향이라는 것을 엄연히 통일 운세권내에서 화합되고 조화되어 통일적인 요인을 근거로 하여 출발하고, 그 과정을 거쳐 목적하는 세계로 추진되어 나갈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신이 있다면 그 신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종교라는 문제, 인생 철학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근본문제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고 한다면 그 신은 대상적인 존재 앞에 절대적인 주체로 서야지 홀로 있어 가지고는 신으로서의 권위와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희노애락은 자기 혼자 있어 가지고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적인 여건과 관계된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슬픔의 자리를 벗어난 기쁨의 자리를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자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절대자로서 기뻐할 수 있는 인연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제일 기뻐할 수 있는 대상적인 존재가 무엇이냐? 그것은 만물 중의 어떠한 미물이나 동물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주체 앞에 대상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인간은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 절대자 앞에 세워질 수 있는 상대적 절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절대자가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일시적인 것으로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오늘 하루 기뻤다가 내일 사라 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쁜 자리에서 한번 인연됐다면 그것을 마음속에 꼭꼭 다짐해 가지고 언제나 생활의 표준으로 삼고, 환경의 요인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상정(常情)인 것입니다. 신도 역시 인간에 대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기쁨의 자리에서 만나는 것일 것입니다.
그 기쁨의 자리는 서로 상극적인 자리가 아니라 절대적인 상응의 자리인 것입니다. 주체가 동(動)하면 상대도 동(動)해야 되는 것이요, 주체가 정(靜)하면 상대도 정(靜)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체가 가는 방향에 배치 (背馳)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상대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자가 바라는 소원이 무엇일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때, 오늘날의 인간과는 여건이 다른 것입니다. 그분이 제일 좋아할 수 있는 요인이 무엇일 것이냐? 오늘날 인간들이 바라는 돈이 아닙니다. 황금 만능시대에 있어서 생명의 요인을 능가한다고 부르짖는, 현실적인 힘의 모체와 같이 생각하는 금전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이 어떠한 권력일 것이냐? 권력도 그의 수하에 딸려 있는 것입니다. 혹은 학식이냐? 지식이냐? 그것은 지식의 근본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일 것이냐? 생명이 뒤넘이칠 수 있고, 생사의 방향이 엇갈릴 수 있는 자극적이요, 충격적인 어떠한 힘의 요인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그러한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여러분은 수시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 자극의 힘이 크고, 자극의 방향이 크면 클수록, 그 힘을 동기로 해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자극의 노정을 극복해 나가게 될 때는 세계적인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현도 될 수 있고, 위인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절대자 하나님에게 있어서 자극적인 충격이 되고 이것을 가중적인 일로로 전진시킬 수 있는 그것은, 지식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그런 것은 그 절대자를 자극시킬 수 있는 요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뭐냐? 권력이라는 것은 그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만 한한다는 것입니다. 돈도 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만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지식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은 전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지식을 가진 사람을 중심삼고 그 사람에게 한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거쳐온 내적 배후를 같이하지 않고도 누구든지 한번만 관계를 맺으면, 그 주체자에게만 한하지 않는 공동적인 소유 권한을 주장할 수 있고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 인간은 그것을 추구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시지만 우리 인간은 잘해야 일세기 동안 생명을 지니고 사는 한계권내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순간권내에 처해 있는 인간이 절대자와 관계를 맺게 된다면, 그 절대자의 권내에 소생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인간 앞에 끌어들여 가지고 공동적인 소유 권한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짧은 시간권내에 있는 나 자신이지만 이 짧은 인연을 통하여 절대자가 제일 귀하다고 할 수 있는 분야를 공동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공동적인 가치권으로 주장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우리 인간은 이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길이 무슨 길이냐 할 때 그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을 찾아 나가느냐? 무엇을 찾아 나가긴 무엇을 찾아 나가요? 행복을 찾아 나가지요. 그러면 행복을 찾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이상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요. 행복을 찾아서 내가 잘사는 것인데, 그러려면 어떻게 살 것이냐? 나 혼자만 잘살겠다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잘살겠다 할 때는 반드시 상대적 요인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 하게 되면 어디에서 행복하려고 하느냐? 나 혼자가 아니라 가정에서 행복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행복해 가지고는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합니다. 내 행복을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의 범위를 넓혀서 행복된 가정을 추구하는 것이요, 행복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요, 행복된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행복된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넓혀 나가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일시적인 행복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히 행복이 보장될 수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이라는 명사는 혼자 있어 가지고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능치 못함이 없는 절대자라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외로운 것입니다. 혼자서 웃고, 혼자서 좋아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절대자라 하더라도 그분도 상대될 수 있는 어떤 존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기뻐하고 좋아한다는 말은 혼자 있어 가지고 되어지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선하다 하는 것도 혼자 있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환경과 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성립되는 것입니다. 악하다 하는 것도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환경과 관계를 맺어서 그 맺은 관계의 결과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행복은 반드시 한 가정을 중심삼고 행복된 사회, 행복된 국가. 행복된 세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틀어서 이상적인 세계라는 말로 우리는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요인은 무엇이냐? 그 행복이라는 말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했으니 '그가 행복한 사람이다' 할 때도 고독단신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남자면 남자로서 갖출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아내가 되는 것이요, 부모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자녀가 되는 것이요, 가정으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사회, 활동무대로서 사회가 되는 것이요, 사회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점점 커가는 거라구요. 국가로서 갖출 수 있는 상대적 요건은 세계, 이렇게 더 큰 의미의 상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의 기준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돈도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지식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생명이 아니면 사랑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세상에서 제일 크고, 제일 훌륭하다는 표현을 할 때 쓰는 말은 '절대적이다', '유일이다', '영원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런 걸 볼 때, 이 말들은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이상형을 말할 때 쓰이는 명사들입니다.
'절대적이다', '단 하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단 하나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절대적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누가 침범할 수 있는 상대적 요인을 긍정하는 자리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원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두고 볼 때, 절대적이라는 말에 맞는 말은 절대적 생명, 유일한 생명, 영원한 생명에 귀결됩니다. 영원한 생명의 인간…. 그 생명은 유일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생명을 침해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절대적이라는 말에 들어맞는 것이 무엇이냐? 절대적 사랑입니다. 그 말 외에는 적용할 적당한 말이 없습니다. 그 절대적 사랑을 보장할 수 있기 위해서 절대적 믿음이니 신의니 하는 것이 개입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유일한 사랑이다. 영원한 사랑이다 하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표현되는 형용어 가운데 제일 자극적이요, 인간이 제일 흔히 쓰고 있는 말들은 절대적 사랑. 오직 단 하나의 사랑,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무엇이기에 절대적인 자리까지 갈 수 있으며, 유일한 자리까지 갈 수 있으며, 영원한 내용으로까지 남아질 수 있느냐? 사람이,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가운데 죽을 뻔했던 일, 생명과 관계되는 일은 그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생명이 위협을 받거나 혹은 그런 입장에서 해방을 맞았다 하는 것은 자기 일생에 단 하나의 사건으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계속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죽고 사는 문제는 이렇게 절대적인 사건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사랑이란 것을 중심삼고 볼 때, 사랑은 생명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생명을 좌우로 엇갈리게도 할 수 있는 힘이 사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사랑을 좌우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생명의 주체요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어떠하실 것이냐?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약합니다. 생명의 절대적인 기준 그 자체라 하더라도 하나님보다 더 강력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 앞에는 굴복당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힘까지도 움직여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력이 아닙니다. 그건 사랑의 힘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청춘 남녀들이 세상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볼 때도, 생명을 움직여 낼 수 있는 힘은 확실히 사랑의 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다면, 사람은 절대적인 주인 앞에 상대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럴 수 있는 요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 앞에는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하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 앞에 모든 면에서 주체가 되고 표준이 되지만 사랑 앞에서만은 약합니다. 사랑을 들고 나오게 될 때는 부모의 권위는 없다면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부모의 권위가 까꿀잡이가 돼요. 그렇게 까꿀잡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권위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까꿀잡이가 된 자리에서 다시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나갈 수 있는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내려갔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막히는 것이 아니라 내려간 그 자리에서 영원을 향하여 갈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생명보다도 우리 인간 앞에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아침 저녁으로 변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은 변한다고 하지 않아요?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 (山色)은 고금동(古今同 )이라'고 하듯이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의 몸을 중심한 생활도 변하는 것입니다. 생활 여건이라는 것은 일본이면 일본, 한국이면 한국의 그 환경의 여건에 따라서, 문화적 배경과 전통적 배경이 다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생활 여건이 다름에 따라 우리는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입장을 취해 나오기 때문에 우리 몸이 처한 환경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변하는 환경 가운데에 있는 인간, 그런 생명력을 지닌 인간을 중심삼고 변치 않는 단 하나의 통일적인 방안을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는 하나의 세계를 찾아 나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세계를 무엇으로 만들 것이냐? 권력으로 만들 것이냐? 권력은 천년 만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집권자의 변동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금력도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고, 시대는 환경에 따라 변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영원한 것이라는 것은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들 것이냐, 그 이상세계를 무엇으로 하나의 전통과 하나의 역사성으로 남길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사랑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고, 행복의 세계로 만들 수 있는 그 사랑은 무슨 사랑이어야 될 것이냐? 변하는 사랑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 변하지 않는 사랑이 무엇이냐? 인간 세상에 있어서의 남녀간의 사랑이냐? 이것이 변하는 것을 우리가 너무나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바라고 있는 부자지간의 사랑이냐 할 때, 세상에서는 너무나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혹은 형제지간의 사랑이냐? 동포지간의 사랑이냐? 이렇게 사랑의 모든 계층을 헤아려 보게 될 때, 형제애보다도 동포애가 더 강하냐, 남녀간의 사랑보다 부모애가 더 크냐 하는 사랑의 계층을 헤아려 볼 때,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관(觀)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세계보다도 민족을 사랑하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민족보다도 자기 종족, 김씨면 김씨를 생각하는 것이 더 가깝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김해 김씨가 얼마다'고 하면서 자기 종족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면…. 또 종족보다도 자기 친척이 가깝고, 친척보다 형제지간이 더 가깝고, 그 다음엔 부부지간이 더 가깝습니다. 참 이상한 거예요. 그 다음에는 부자지간이면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계층을 따져 보게 될 때, 인간 세상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제일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기원이 어디냐? 남녀지간이냐?
오늘날 남자가 행복을 추구하는 그 자리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데,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 혼자 독단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반드시 사랑을 중심삼고 벌어질 것인데, 그것이 남녀지간의 사랑이냐, 그것이 최초의 출발점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부부보다도 부모를 더 중요시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남녀지간에, 부부끼리 사랑하는 그런 입장과는 다른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횡적 관계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횡적 관계입니다. 그렇지만 부자의 관계는 종적 관계입니다. 부모가 위에 있다면 자식은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랑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은 항시 흘러 나오기 마련입니다. 자식이 안 받겠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자연적인 마음으로써 사랑의 방향이 자식에게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사랑은 저쪽에서 조금만 변하게 되면 이쪽에서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중에 부부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고맙게 잘 대해 주던 남편이 한마디 '땡' 해 가지고 그 동기가 조금이라도 나쁘면 팩 돌아갈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지극히 작은 글 초점에 서있는 것입니다. 초점에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금만 틀어져서 저쪽에서 '땡' 하면 이쪽도 자연히 '땡' 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걸 잘 느낄 것입니다.
이 사랑의 계층을 살펴볼 때, 그래도 제일 가까울 수 있는 자리가 어디겠느냐? 그것은 부자간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의 자리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터전을 중심삼고 오늘날 사회가 구성되어 있어요. 인간은 이렇게 구성된 정서적인 무대를 중심삼고 행복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행복의 출발은 어디에서부터일 것이냐? 문제가 큽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부르짖기도 하는데, 그걸 다 생각해 보면 다시 한 번 재정비해야 할 문제들인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다 가정을 버리고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 하는 말을 막연한 자리에서 생각해서는 안 돼요. 가정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국가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라' 하는 것도 국가보다 세계가 더 가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은 맞는 것입니다.
만일에 아무것도 모르는 자리에서 가정을 희생하고 나라를 사랑하다가 나라의 충신이 되어 충신명록(忠臣名錄)에 일번으로 기입이 되었는데, 그 이튿날 나라가 망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 민족을 중심삼고 충신으로서 등장했는데, 그 주체적인 전통을 휘어잡아 가지고 역사를 지배할수 있는 충신의 자리에 올라갔는데 그 이튿날 나라가 망했다 하게 되면, 그 충신의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그것을 이어받으려면 나라를 구해야 될 것입니다. 충신이 되었던 그 사람보다도 몇백배 수고를 해야 될 것입니다.
일대 가지고 되느냐? 한 집안이 망하여 복구하는 데도 10년, 20년, 혹은 일생을 두고 한다 하더라도 힘이 드는 일인데, 자기 일대에 해내는 것이 쉽겠어요? 불가능에 가까운 것입니다. 한 나라가 망하면 일대에 안되면 십 대 혹은 수십 대를 거쳐서라도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을 이어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 진정 충신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일대로서는 가당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운권내(亡運圈內)에 처한 국가의 비운을 도맡은 자리에서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영원히 남아질 수 있고, 세계의 나라들을 이끌 수 있는 주체적인 나라가 될 수 있으면 모르지만, 번번이 망하기 일쑤이고 부딪쳐 깨져 나가기 일쑤인 나라라면 그 나라를 붙들고 생명을 투입할 애국자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자기가 망하든 어쩌든간에, 흥망의 요건을 넘어서 가지고 책임질 수 있는 자리, 죽고 사는 문제를 초월해 가지고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서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의 계층이 도대체 인간 사회의 어디이냐? 어디가 그 기점이 되겠느냐? 그것은 남녀지간의 사랑도 아니요, 형제지간의 사랑도 아닙니다. 나라를 위한 사랑도 아니요, 세계를 위한 사랑도 아닙니다. 그 자리를 찾고 또 찾아 보아도, 이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자리 외에는 없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세상에서 부자관계를 중심삼은 사랑이 절대적이냐 할 때에 거기에도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우위(優位)에 설 수 있는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그 사랑이 기원입니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는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라는 것은 정서적인 면을 중심삼고 되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의 기점은 거기서부터입니다.
그러면 그 기점이 절대적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느냐? 부모로 말미암아 태어났습니다. 그 부모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 하나의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남성과 여성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 아들딸인데, 그 아들딸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남성과 여성이 사랑하는 것과 같으냐 할 때, 그럴 수 있다면 그건 논리적인 모순이 됩니다.
그러면 이 사랑이 어디에서 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 어머니는 하나의 남성과 여성인데, 이들이 상대적 관계 하에 사랑을 함으로써 아들딸이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딸을 중심삼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맺어졌는데, 거기에서 맺어진 사랑이 부부 사이에 맺어진 사랑보다도 강한 사랑으로 나왔다면 이것은 변증법적 논리를 긍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진화론을 긍정해야 된다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은 남성의 사랑과 여성의 사랑이 합해져서 나온 것인데 합해져서 나온 그것이 강한 힘을 가졌으니 그것이 주체냐? 어떤 것이 주체냐? 자식이 강한 사랑을 가졌으니 거기에 부모가 끌려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주체되는 입장에서 자식을 끌고 나가느냐? 이런 문제를 볼 때, 그 사랑이 남녀간에 맺어지는 사랑만으로서 되어진 것이라면 그러한 사랑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더 강하고 더 원칙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힘이라는 것은 작용하게 되면 소모가 되고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부의 사랑을 통해서 나온 자식의 사랑이 부부의 사랑보다도 강한 사랑으로 나타났다면, 이것은 작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강해졌다는 결과입니다. 그러면 강하게 한 그 힘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은 남자에게 서도 아니요, 여자에게서도 아닌 다른 동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사랑의 주체는 딴 곳에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긍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다른 곳에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마음을 보게 되면, 이 마음은 낮이나 밤이나 몸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몸이 마음 모르게 무엇을 슬쩍 속여 가지고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일일이 간섭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는 것 같지만 악을 행하려고 할 때는 영락없이 와서 '이놈아' 하고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 옛날 어린 시절에 그런 걸 잘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형제가 있는데, 동생은 약빠르고 저축성이 있는 반면 형은 그와 반대라구. 야곱과에서와 같은 형제라고 비유하면 실감이 날 거예요. 어머니가 맛있는 것을 사다 형제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형은 받자마자 먹어 치우고 동생은 그것을 싸 가지고 방에 간수를 하고는 자는 겁니다. 그 간수해 둔 것을 형도 알고 있는 거예요. 형이 밤에 자다 말고 쓱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까 동생이 간수해 둔 것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래서다 말고 정신도 채 안 들었는데 그것을 몰래 꺼내 먹으려고 할 때, 마음이 언제 나타났는지 벼락같이 나타나 가지고 브레이크를 거는 거예요. '이놈? 하고 반성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마음이 어디에 있긴 어디에 있어, 내 안에 있지. 그러면 그 '이놈? 한 것이 내가 한 것이냐?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어디서 했느냐? 여기에는 제삼의 관계가 투입되어 있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육감이라는 말이 있지요, 육감? 영적인 생활을 하면 육감이 백퍼센트 적중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체험이 있는지 모르지만, 육감은 오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으로 인식 관념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입체적입니다. 이것은 앞엣 것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뒤엣 것까지도 관찰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러한 작용은 어디를 모체로 하느냐? 육감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주체자는 누구냐? 사람이다 하겠지만, 천만에. 자기가 주체가 되어 있지 않아요. 자기는 대상적인 입장입니다. 그 동기는 내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에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기원과 동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했느냐? 남자 여자를 중심삼은 사랑은 변하는 사랑인데, 거기에서 태어난 아들딸을 중심삼은 사랑은 왜 변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것은 남녀를 중심삼은 사랑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라, 횡적인 부부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라 종적인 어떠한 흐름의 기원을 통하여서 관계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적인 사랑의 주체가 누구냐? 그러한 주체를 우리는 신이라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의 주체로서 인연되어질 수 있는 관계에서 연속적으로 상대를 추구할 있는 그런 본연의 자리에 서 있는 어떠한 절대적인 주체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부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횡적인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터치(touch)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변함이 있어요?
오늘날 민주주의 세계에 있어서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해 있는 이때에 있어서, 자식들이 하는 말이 '부모는 구시대라 우리의 신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그렇게 변했지만 부모의 마음은 변하는 게 아니예요. 자식들이 구시대니 신시대니 하고 부르짖는다고 해서 '네가 그래? 나도 그러자? 그렇게는 안 되어 있어요. 부모의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미물(微物)도 마찬가지예요. 새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의 생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나 자신이 제1의 어떤 상대적인 결과의 존재라면 그것은 제1의 어떤 힘의 인연 가운데서 온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터치(touch)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을 혁명하자! 혁명의 기수가 되자? 하는 사람 보았어요? 만약에 어떤 부모가 이 사랑을 혁명해서 인류 역사를 개조해 버리겠다 해 가지고 '나는 부모는 부모지만 자식을 사랑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 부모는 자식의 배꼽이 떨어지는 순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어떠한 고하(高下)를 막론하고 자기 새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 생명을 투입해서, 생명을 고임돌 삼아 가지고도 하고 싶어하는 작용이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만고불변에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절대성(絶對性)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절대 그 자체는 못 되지만, 인간 앞에 제일 가까운 고임돌은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습니다. 둘이 되면 안되는 거예요. 단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것이 인간 세상에 있어서 그래도, 역사를 보게 될 때 영원한 발판이 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모의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은 아버지에게 어떠한 권고를 받아서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상대에게 충고를 받아 배운 것도 아니요, 자기 자신이 그러겠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자연히 그리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자연히 그리 되는 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춘기가 되었다고 해서 '나는 남자고 너는 여자니까 사랑한다' 하는 관념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그렇게 돼요. 뼛골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아-. 나는 사랑하는 데 상대적인 관념을 중심삼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뻗대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자신하는 녀석이 더 엉큼하다구요. 꿍꿍이 속을 가졌다구요.
인간에 있어서 제일 청춘기는 사춘기 시대입니다. 그 사춘기 시대는 누구를 위해 있느냐?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나를 위해 있다면 전부가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사춘기 시대는 전부 다 내뿜는 시대라구요. 그때는 보게 되면, 처녀들은 날아가는 나비만 보아도 히죽히죽 웃는다는 거라구. 또 물결이 바람에 의해 살랑살랑거리는 것만 보아도 웃는다는 거라구. 그 무어든 좋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늦가을에 감나무 한 잎이 처량하게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가 찬바람이 '쌩' 불 때 떨어지면 거 얼마나 애석합니까? 최고의 애석한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고 웃고, 또 그 잎이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가면 그것을 따라가면서 웃고 싶어하는 거라구요. 그런 때가 바로 사춘기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자기의 주체적인 관을 중심삼고, 통일성을 중심삼고 자기 앞에 전부 다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내뿜는 것입니다. 어디 가든지 나는 상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라톤 대회에 젊은 사람들이 뛰게 되면, '내가 저녀석한테 질 게 뭐 있어? 나도 뛰면 뛸 수 있다, 안해서 그렇지'할 겁니다. 꼴찌 될 수 있는 소질은 풍부하지만 생각은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나는 지지 않는다' 하는 거예요. 마음은 다 같습니다. 그때는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고, 문인이 아닌 사람이 없는 거라구요. 전부 다 그렇다는 거예요.
그것은 무엇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냐? 상대적 권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추구하는 대상이 무엇이냐? 돈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무엇이냐 하면 남녀면 남녀를 중심삼고 제일 좋은 대상을 추구하는 데 그 귀결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이라는 명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혼자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 관념입니다. 그 사랑의 근거지가 어디냐?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냐?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근거지가 어디고 소재지가 어디냐? 재미있게 잘사는 어떤 부처 (夫妻)가 있다면, 그들이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겠어요? 서로가 사랑을 주겠다고 하겠어요, 받겠다고 하겠어요? 생각해 봐요. 대답도 잘못했다가는 걸리는 거라구요. 보편적인 관념으로 생각해서 주겠다고 하겠어요, 받겠다고 하겠어요?「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좋다고 할 때는? 줄때 좋아하는 거예요, 받을 때 좋아하는 거예요? 어떠한 관념을 갖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겠다고 하느냐 받겠다고 하느냐 할 때, '사랑을 하다니, 받겠다고 하지…' 그 말이 맞는 거라구요.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구.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하면, 사랑의 소재지는 사랑의 근거지는 상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거 실감나지요? 사랑의 거주지는 자기가 아니고 상대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정지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깨닫는 날에는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 나는 사랑했는데 임자가…' 하는 그 말은 사랑을 받겠다는 말과는 어떻게 다르냐? 사랑하겠다는 말이 열만큼 사랑을 했으면 아홉만큼 받겠다는 말이겠어요? '내가 사랑한다. 죽도록 사랑한다' 하면, 그저 죽도록 사랑만 하겠다는 말이겠어요? 그 말은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상대로 삼겠다, 죽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상대로 삼겠다는 말입니다. 일방적인 동시에 양면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도록 사랑한다는 건 뭐예요? 죽도록 그저 뺨을 때리고 밟고 물어뜯는데 사랑하겠어요?
여자들은 대개 시집을 가면 남편에게 사랑받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랑받는 게 아니라구요. 남자들은 도적놈 같은 성격이 많다는 거라구요. 남자들은 자기에게 시집온 색시를 방에다 앉혀 놓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 하면 자기를 사랑해 주는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각기 입장이 다르다는 거라구요. 여자는 시집을 갈 때 사랑받기 위해서 간다고 생각하는데, 남자는 집에 혼자 있는 색시가 자기를 종일토록 사랑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엇갈린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근거지는 혼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대상 없이는 사랑이고 뭐고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는 남자나 여자가 다 도둑놈 같다는 것입니다. 나도 남자지만 말이예요. 같은 남자로서 이런 말 하면 실례지만 말이예요. 여자들이 '남자는 어떻고 저떻고' 하며 평을 할 때, 남자의 어떤 면이 불신의 입장이 되느냐 하면 사랑의 근거지가 자기에게 있는 줄 알고 있는 거예요. 이게 탈이예요. 사랑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사랑을 받고 싶어합니다. 얼마나 받고 싶어하느냐? 죽도록 받고 싶어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죽으면 불행하지 않을 겁니다. 내 생명의 힘이 다 빠지도록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중심삼고는 지독한 마음까지도 흐늘흐늘해져 물이 되어 흘러가도록 받아도 싫지 않을 것입니다. 욕을 그렇게 해보라구. 뼈살이 녹아서 물이 되어 망하라고 그랬다가는 큰일나지요.
그렇지만 사랑을 중심삼고서는 지긋지긋하게, 망해서 없어지리 만큼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빠요, 좋아요? 지지리 망해서 없어지리 만큼 한번 사랑을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 그게 좋은 말이예요, 나쁜 말이 예요? 죽도록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이 그 말이라구요. 별다른 말 아니예요. 망해 없어지도록 사랑을 받겠다는 말인 거예요.
'죽도록 사랑받으면 좋겠다' 그런 말 해요, 안 해요? 우리 남자들, 그런말 해봤어요? 바윗돌같이 둔해 가지고 뭐…. '죽도록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 사랑이란 벌써 죽음을 초월하는 말이'예요.
그러면 사랑을 정말 받고 싶다 할 때,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람의 사랑이냐? 십년 전의 그 마음이 십년 후에 변하고, 천년 전의 그 마음이 천년 후에 변하고, 혹은 억만년 전의 그 마음이 억만년 후에 변하는 사랑이겠어요? 그런 사랑이 아니고 절대적인 사랑,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로부터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 보자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주겠다는 것보다 절대적으로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관념인데, 그 절대적인 사랑을 영원히 영원히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소원인데, 그 사랑을 어디에서 받느냐? 이런 문제를 볼 때, 만일에 사랑의 주체되시는 절대적인 분이 계시다면 그분을 중심삼고 사랑 하고 싶겠어요, 안 하고 싶겠어요?
오늘날 세상의 여자들에게 '이 다음에 어떤 데로 시집을 가겠소?' 하면 '어떤 데는 어떤 데요? 이만한 골격을 갖추고 있고, 이만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이만한 미모를 지녔으니, 나 정도면 상(上)의 상(上)을 찾아 가야지' 할 것입니다. '상의 상이 어디예요? 하면 '올라가다 보면 상의 상이 어디예요, 이마지' 그럴 거예요. (웃음) '그럼, 이마 위에 올라가겠소?' 하면 '상투 끝까지 올라가겠어요' 이렇게 말할 거라구요. 이 나라의 대통령 부인이 되겠다, 국모가 되겠다 하는 생각을 조그만 아가씨들도다 갖고 있는 거라구요. 우리 여기 잘나지 못한 이 아가씨들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웃음) 잘난 사람이 그런다면 모르겠는데 잘나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런 마음은 굴뚝같이 솟아오른다는 거야. 그거 보면 큰 야단나겠어요.
그런 마음을 충당시킬 수 있는 누룩이면 누룩이 있으면 될 텐데…. 어지간하게 뜬 누룩은 받아만 놓으면 다 누룩이 되거든요. 그격이라구요. 그놈만 받아 놓으면 큰 덩이를 받든가 작은 덩이를 받든가 시간이 문제지 다 어떻게 돼요? 통일이 돼요, 안 돼요? 어때요? 누룩덩이만 받아 놓으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 조금만 지나면 다 같게 돼요, 안 돼요? 누룩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또, 남자들을 보면 장마 때의 나막신처럼 딱 그렇게 생겼다구요. 그런 얼굴을 가지고 '너 어떤 사람이 될 거야?' 하면, 마음으로는 굴뚝같아 가지고 '나는 세계 대통령이 한번 되고 말지' 그렇게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죽이라고 하면 아마 죽일 사람 한 사람도 없을 거라구요. 다 그런 생각 했을 거라구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도 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보기에는 뭐 호외꾼처럼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눈을 보나 코를 보나 무엇을 보나 전부 다 등외품으로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물 속에서 썩어지는 게 되었더라도 말은 깨깨 해야 된다구요. '맛있다'는 것과 '맛-이 있다'(강하게 발음하심) 어떤 게 더 좋아요?(웃음)
이렇게 헤아려 볼 때, 사람은 사랑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죽도록 받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주체가 없는데 인간들이 그러한 관념을 가졌다면 인간들은 허무맹랑한 패들입니다. 그런 것을 인간들이 바라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이것은 뭐라 할까 공포를 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알이 없는 대포를 꽝 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에는 시위하기 위해서 한 방 쏠지는 모르지만, 한번 그래 보고 싶어서 그러면 좋겠지만 우리 인간은 누구나가 다 그렇게 바라고 있어요. 공포가 아니라구요. 전부 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것을 볼 때, 공포라면 너무나 아쉬운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소원의 표준이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적으로 가능하다 하게 되면 문제는 클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는 날에는 오늘날 돈을 가지고, 혹은 권력을 가지고 세계를 자기 수하(手下)에 넣기 위해서 싸우는 그 싸움은 없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모르기 때문에 그렇지….
오늘날 '세계의 미인이다' 하게 되면, 남자의 눈초리는 그리 가지 말라고 해도 가요, 안 가요? 서양의 미인이 있는 데에 동양 사람들의 눈이 가요, 안 가요? 백인의 미인이 있다면 거기에 검둥이의 눈이 가요, 안 가요? 엉큼하게 가는 거라구요. 전부 다 그 미인에게 눈이 쏠린다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간에 인간의 마음은 그리 되는 거라구요. 그것이 뭐냐? 그럴 수 있는 힘의 작용, 그럴 수 있는 내용의 요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무슨 작용을 통해서 인류는 한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을 바라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문제는 사랑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 한다고 세상의 속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여기에서 생각하는 사랑은 다른 의미의 고차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갔더니 새벽부터 사랑 얘기만 하더라'고 하게 되면 벌거벗고 춤추는 패니까 그렇다고 연상하게 된다구. (웃음) 나는 벌거벗고 춤추는 패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예요. 내가 웃옷 한 번 벗어 본 일도 없다구요.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로 생각하지 말고 좀더 고차적인 얘기로 올라가야 되겠다는 겁니다.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이쯤하고 그만둘까요? 다음에 할까요? 더 해요?「예」 처음 온 사람들은 '이거 시간이 한 시간 반이 지났는데, 저 양반이 지금 몇 시간을 하는 거야' 하겠지만 이제 서론 조금 지난 거라구요. (웃음) 왜 그러느냐 하면, 여러분이 실감이 나야 돼요. 실감이라는 것은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감정이 인식과정을 초월하여 나를 자극시켜 줄 때는 그것을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감을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자고 하는데 그것을 할까말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자' 하는데 힘없이 '그래 하자' 그럴 게 아니라, 온 신경과 온 정력을 총합해 가지고 '하자!' 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엔 기합이 필요한 것입니다.
'통일의 요인과 방안'이라…. 이거 근사한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 앞에도 근사한 말입니다, 통일의 요인이 어디에 있느냐? 통일의 요인은 사랑에 있다, 그건 사랑에 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부터 출발을 하느냐? 애국애족하는 데 있다, 이렇게 되지요. 그러면 애국애족은 어디에서부터 하느냐? 그건 모른다, 그저 애국애족하는 데 있다. 그러면 통일이 되겠어 요? 그 요인이 어디에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기 전에 형제를 사랑하라,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나라의 충신이 되려거든 먼저 효자가 되라 했습니다. 그런 건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먼저 형제끼리 사랑하고, 충신이 되고 싶거든 먼저 효자의 도리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느냐 하면 여기서부터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나'라는 것이 인륜에 통일될 수 있는 것이냐? 이것이 문제 입니다. 이 '나'라는 것이 인륜을 표준해 가지고 통일되려고 하느냐, 천륜을 따라서 통일되려고 하느냐? 이것을 볼 때, 인륜을 따라서 통일되겠다고 하는 국민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따라서 통일되려고 하느냐? 천륜을 따라서 통일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인륜을 위주해 가지고 만조의 가르침을 준 사람이 아닙니다. 천륜을 따라 인륜의 정의를 제시하고 나오게 될 때에 비로소 성인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성인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느냐? 인륜을 위주로 한 사람은 성인이 된 법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오늘날 성인이라 하게 되면 4대 성인을 들고 있습니다. 예수, 석가, 공자, 그 다음에…. 어떤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성인이라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갑니다. 여기 철학자가 왔으면 기분 나빠할지 모르지만 못 들어간다구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못 들어가느냐? 지식을 가지고는 생명을 주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최고의 인정을 초월할수록 주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의 사랑, 부모의 사랑과 같은 인륜적 사랑 이상의 사랑이 지배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면 인정을 통한 세계 이상을 바라느냐? 인정을 통한 세계 이상을 아무리 바란다 하더라도 인정을 통한 가정 이상의 기준이 세계에 없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정을 통한 세계 통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성인이라는 양반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레테르를 보면 모두 교조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성인 축에 못 들어가는 거예요. 회회교의 마호메트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분들은 대관절 어떠한 사람들이냐? 역사적인 우리 인륜의 도덕적 기준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이 어디에서 생겨났느냐? 그것은 성인들의 가르침 중에서 좋은 것을 따다가 국민성에 적응시켜 대표적인 조건을 택해 제정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은 교조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그 종교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늘을 위주로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은 인륜을 세우기 전에 천륜을 세우려고 한 사람들입니다. 보라구요. 예수도 기독교의 교주지요, 석가도 불교의 교주지요, 공자도 유도(儒道)면 유도의 도주요, 마호메트도 회회교의 교주라구요. 전부 다 이렇게 된 것은 모르고 성인의 도리는 존중시하면서 종교는 무시하는 이 망할 세계가 되었다는 거예요. 소위 식자층에 있는 사람들이 말이예요. 그들이 인륜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인륜은 인류를 통해서 세워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나왔느냐? 이것은 정서적인 문제인데…. 변할 수 있는 실정을 중심삼고 세계적 통일의 모색 방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변치 않는 기준을 중심삼고야 가능한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기준은 인륜이 아니라 천륜입니다. 인륜과 천륜의 보조를 맞추기 위한 역사적인 대표자들이 성인들입니다.
그 성인의 사상은 어떤 사상이냐? 민족주의가 아니요, 가정주의도 아니요, 종족주의도 아닙니다. 세계주의입니다. 이렇게 돼요. 천운이라는 것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륜이라는 것은 세계를 살리고자 하는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천운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운세가 가정의 운세를 막아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운세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가정이 몰락하게 되면 거기에 끌려 넘어가게 되는 거라구요. 이걸 알아야 돼요. 또. 그 종족 전체가 학살을 당해 넘어가게 될 때는 아무리 가정의 운세가 좋다고 하더라도 그 종족의 운세에 말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종족이라 하더라도, 김씨고 무슨 씨고 뭐 큰소리치는 종족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의 운세가 나가 자빠지게 될 때는, 그 종족도 거기에 끌려 넘어가게 마련입니다. 또한 국운이 아무리 훌륭하다 아무리 보장된다 하더라도 세계의 천운이 몰아치게 될 때는 거기에 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무서운 운세를 타고자 하는 패들이 어떤 패들이냐? 천운을 타겠다는 패들입니다. 알겠어요? 이건 도둑놈이라면 도둑놈 같고. 망상이라면 망상 같은데…. 천운이 없는데도 타겠다면 미치광이라구. 그렇지만 천운이 있는 것을 알고 타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홍길동 할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웃음)
그러면 세계 인류 가운데 천운을 타겠다는 패가 있느냐, 없느냐? 없지? 그런 사람 없지요? 여러분은 이왕이면 어떤 운을 타고 싶어요? (웃음) 이건 웃을 얘기가 아니라구요. 가정운(家庭運)을 타고 싶어요? 전부 다 욕심들은 커 가지고 대통령 해먹으려고 꿈꾼다구. 세계 대통령 해먹겠다고 꿈꾸지요? 그래, 세계 대통령이 되려면 천운을 안 타 가지고 되겠어요? 세계 대통령은 천운을 타고 와야 되는 거라구요.
세계 인류 가운데 비례적으로 볼 때 천운을 타겠다는 패가 얼마나 되느냐? 인간의 운을 타겠다는 패하고 천운을 타겠다는 패를 비교해 볼 때. 천운을 타겠다고 하는 패는 허무맹랑한 종교광들입니다. 종교광 패들입니다. 우리 통일교회도 그 중에 대표적인 광(狂)이지요. '광' 자가 무슨 '광' 자냐? 미칠 '광(狂)'자가 아니라 넓을 '광(廣)' 자라구요. (웃음) 이렇게 위로의 대상이라도 만들어 가지고 나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거 재미가 있나요? 오늘날 세계적으로 볼 때 종교인들이 얼마나 되느냐? 약 20억이 됩니다. 대한민국을 보면,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예요. 약 3분의 2에 가까운 사람이 종교인입니다. 세계에 있어서는 약 17억 이상이 종교인에 해당합니다.
오늘날 정치가들, 뭐 닉슨 대통령도 막혀요. 내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이 1950년대에 잘못했다고 들이 조였어요. 역사적으로 그것을 쭉 비판해 가지고 '그렇소, 안 그렇소? 하니, '당신 그때에 대한민국에 있었소? 그러더라구요. 닉슨 대통령도 지금 생각해야 할 문제지만, 앞으로 세계적인 정치가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것이냐? 종교를 요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고는 세계를 통일 못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종교를 요리하겠다고 하는 세계의 대표적인 기수인 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둘째 되라면 싫어합니다. 그래서 세계 종교를 한번 통일해 보자. 그러려면 먼저 기독교 통일 작전을 하자. 그러는 거예요. 허무맹랑한 녀석, 허무맹랑한 놀음, 세계, 다 해봐라 하는 겁니다. 다 해본 녀석은 부족하기 때문에 망했지만 내가 조금 나으면 그것보다 가일보 전진할 수 있다 이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주먹구구식 종교 이론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입니다. 사리에 맞도록 이론을 추구해 가지고 결론을 짓고, 앞뒤가 들어 맞지 않으면 믿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를 한번 통일해 보자! 이런 말에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통일교회 패니까 기분이 좋겠지요. (웃음) 오늘 여기 처음 온 목사님들이 있으면 가슴이 철렁해 가지고 '아이쿠! 이들이 진짜 통일하면 내가 포로로서 창을 맞을 텐데, 통일교회를 반대했으니…' 그런 양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두려워하지들 말라구요.
앞으로 세계에 위대한 사람이 나온다면, 그 사람은 이 세계를 중심삼고 모든 종교를 요리할 것입니다. 종교는 초국가적인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공산당은 '노동자 농민은 세계적으로 단결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프랑스 노동자 농민들과 독일의 노동자 농민들은 공산당이 자기들에게 협조할 줄 알았지만 어림도 없었어요. 그렇지만 종교를 중심삼고 강력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초민족적으로 동원될 수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 같은 걸 보면 초민족적으로 단합을 한 것입니다. 지금 있는 종교들을 전부 불살라 버리고,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한 골수로서 모이는 모임을 통해서 거동할 수 있는 주체를 세워 놓는다면, 세계를 전부 다 녹여 먹든가 삶아 먹든가 둘 중의 하나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보기에는 이렇게 생겼지만, 그럴 수 있는 수완이 있다면 앞으로 세계를 녹여 먹든가 삶아 먹든가 할지도 모를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이렇게 크다가는 앞으로 무슨 대통령을 해먹으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대통령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웃음) 내가 앉아 가지고 이 일을 지금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조정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그것을 이야기하려면 역사가 깁니다, 10년 전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이야기를 안 하겠어요.
어떤 분이 미국 가서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통일교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구. 지금 이러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교의 왕초요, 세상 밝은 천지에 벌거벗고 춤추는 고수자(高手者)라고 하지만 잘됐다구요. 어서 그러라는 거예요. 그 바람에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기반을 닦았어요. 그거 좋다고 춤추는 바람에, 전부 다 발이 땅에 붙지 않고 공중에 떠 가지고 춤추는 바람에 딱 발판을 만들었다구요. 그러는 바람에 내가 울타리를 전부 다 치웠다구요. 그렇게 허무맹랑한 패가 아니라구요. 무슨 나장로, 박장로, 무슨 패. 다 그래 보라구요. 통일교회 패는….
통일교회 문선생은 여기 와서야 볼 수 있지, 어디 무슨 시민회관 대강당 같은 곳에서는 통일교회 문선생을 볼 수 없습니다. 내가 그런 시민회관 대강당은 몇 번이라도 움직일 수 있고, 또 내가 단에 나가서 말을 하면 곧잘 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못 보는 거라구요. 왜? 작전에는 제1차 작전, 제2차 작전, 제3차 작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1차 작전이 실패하면 2차 작전을 쓰고, 2차 작전이 실패하면 3차 작전을 쓰는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몇 차 작전 때에 나타날 것이냐? 맨 막차 작전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몇 차 작전인지 이야기 안 합니다. 맨 마지막 작전이 몇번째냐 하는 건 난 모르겠어요, 여러분이 알지. (웃음)
이렇게 볼 때, 나는 종교 지도자 하는 것이 나쁜 줄 알았는데 요즘에 와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실감이 나요. 종교 지도자는 못살고, 몰리고, 춥고, 억울하고, 분해도 하소연할 수 없는 사람, 그런 입장의 사람인줄 알았는데, 요즈음 세계를 가만히 보니까 이제는 걸고 잡아채면 걸려올 것 같습니다.
나는 낚시질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청평에서 잉어잡이를 하면 몇 관짜리를 잡습니다. 청평에서 제일 큰 잉어를 잡았어요. 1미터 10센티미터에 가까운 것을 잡았거든요. 이놈을 걸어 놓고 잡는 그 맛이 참 신나더구만. (웃음) 나는 지금 한국을 기지로 삼아 가지고 태평양 건너까지 실을 늘어뜨려서 미국을 잡는 생각을 한다구요. 줄아 끊어지지 말아라, 재주가 능해라 하거든. 걸고 잡아채면 빠져 나가지 않고 잡히게….
큰 잉어를 잡으려면 힘내기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는 잉어 아가리가 찢어지든가 실이 끊어지든가 둘 중의 하나라구. 이놈이 얼마나 힘이 센지, 그거 잡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렸구만. 그걸 가지고 어이샤 어이샤 하는 거예요. 소리는 점점 작지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끌어오는 거예요. 끌려가면 안 되지만 여이샤 여이샤 하며, 조금씩 흠출 하면 조금씩 끌려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사람 눈앞에 왔다가 사람을 보고 '후다닥' 놀래서 들어갑니다, 그때 '아차차 왔구나'했다간 그건 놓친 고기라구요. 왔다가는 갈 줄 알아야 된다구.
통일교회에도 목사들이 왔다가 많이 가는 거예요. 가는 사람에게는 어서 가라, 어서 가라…(웃음) 잘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다가는 아무리 가봐야 기진맥진해져서 갈 수가 없거든요. 이렇게 몇 번만 한다면 그 다음에는 '아이쿠 모르겠다, 난 모르겠다. 해볼 만큼 다 해봤으니까 이제 잡아먹겠으면 잡아먹고 맘대로 해라' 하는 거예요. 다 해본 뒤에야 나가자 빠지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반대를 다 해보라는 것입니다. 나더러 뭐 도깨비 왕초라고 하고, 나중에는 공산당, 국제적인 공산당이라고까지 몰아댔어요. 그것도 좋아. 나중에는 조총련 간부라는 이름까지 기성교회가 붙여 뒀구만. 그렇게 내가 미운가? 내가 얼굴을 봐도 그렇게 밉게는 생기지 않았는데…. (웃음)
이래 가지고 뭐 매국노니 뭐니 별의별, 할 짓 다 해보았다구요. 나중에는 벌거벗고 춤춘다고 뭐 어떻고, 한번 벌거벗고 춤추었으면 사실 얼마나 근사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이제는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반대할 건더기가 없다구요. 맥빠졌다구요. 맥이 빠지다 보니, 그것이 여름이라면 또 자랄 수 있는데 가을이 되었더라 이거예요. 기울어질 때가 되었어요. 이제는 잎이고 뭐고 자기 스스로 물러날 때가 됐다구요.
이것을 내가 이야기했습니다. 통일교회 지도자들이 밥을 얻어먹었으니, 기성교회 목사들도 바가지 들고 밥을 얻어먹을 때가 되면 통일교회 시대가 온 줄 알라고. 지금 때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전에도 얘기했지만 수택리에서 목사 공청회를 했는데, 목사들이 닭다리를 훔쳐서 넣고 다녀요. 기가 막혔어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 패는 그렇게까지는 안 될 거라구요. 이것은 여담이지만….
성인은 망상가입니다. 성인치고 정상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망상가입니다, 망상가. 이렇게 말하면 성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성인을 성인으로 알아준 사람이 있었어요? 망상가라고 했지요? 지나고 나니 '허 그랬구만, 그랬어. 그것이 맞구만' 이래 가지고 남아진 것이 지금까지 무슨 기독교니, 무슨 교리니, 성인 이름 떡 해 가지고 역사적으로 만들어 붙인 말이지. 당시에 성인이란 이름은 붙여 줄 수 있는 가치를 지녔지만 누가 그렇게 공인했어요?
보라구요. 이순신 장군은 성인이예요, 위인이예요? 「위인입니다」 성인은 못 되는 거라구요. 나도 대한민국 백성이라 그가 성인이 될 수 있다면 내가 먼저 성인의 레테르를 붙여 주고 싶은 거라구요. 그는 성인이 아니라 위인입니다. 성인은 적이 없습니다. 원수의 나라에서도 모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일본에서도 위인이겠어요? 일본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모가지를 잘라라 할 거예요. 참은 국경을 초월하는 거예요. 역사를 초월하는 거라구요. 시대 감정을 초월하는 거라구요.
성인은 어떤 분이냐? 세계주의자입니다, 여러분은 근본을 알아야 합니다. 성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덮어놓고, 주먹구구식으로 성인이다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인은 세계주의자예요. 민족주의자가 아닙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사람들이라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성인이 될래요, 성인 아버지가 될래요?「성인 아버지요」 성인 아버지가 되겠다고 해서, 그거 실례가 아니라구요. 공자 아버지가 공자보다 훌륭해요, 훌륭하지 못해요?(웃음) 훌륭하지는 못했지만 공자를 교육했다구요. 공자가 성인이 될 때, 아버지가 '야! 이제 그만 하고, 죽을 자리를 찾아가지 말고, 소문에 말려드는 일 하지 말라'고할 때에, 공자가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일자무식이면서 감히 나에게 그런 것을 가르칠 수 있소?'라고 했겠어요? 공자는 아버지에게 '예이, 옳소이다' 했을 거라구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예. 옳소이다' 하는 것이 공자가 못나서 그러는 것이겠어요, 잘나서 그러는 것이겠어요? 「잘나서요」 통일교회도 그러고 싶다구요. 못나긴 못났지만 세상이 뭐라고 해도 가만히…. 못나긴 못났지만 잘나려고 한다구요.
그래. 성인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성인 아들이 되고 싶어요? 대답들 해보라구요. 웃지 말라구요. 이제는 그거 다 가려서 해야 된다구요. 성인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들이 되고 싶어요?「아버지 되고 싶습니다」왜? 왜 그러냐? 하늘에 가깝기 때문이예요. 알겠어요? 공자보다 위라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아버지이니까 위지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여러분은 자기보다도 나은 사람한테 지도받고 싶어요, 못한 사람한테 지도받고 싶어요「나은 사람한테요」나은 사람한테는 꼼짝 못하고 지도를 받는 거라구요. 그건 왜냐? 위이기 때문에, 하늘 앞에 가깝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올라가게 되면, 최고의 높은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분 앞에 지도를 받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한테는 당연지사입니다. 당연한 길이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인들은 전부 다 뭐냐? 교주입니다. 이 사람들이 숭배하는 제일의 숭배자가 누구냐? 교주에게 숭배자가 있을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통일교회의 교주가 문선생이라는 사람인데 그 숭배자가 누구예요? 대한민국의 누구겠어요? 역사적인 무슨 공자겠어요? 내가 예수까지도 들어먹으려는 사람인데, 그 말을 듣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죽이겠다고 한다는데, 죽여 보라구요. 내가 거짓말 했나? 내가 거짓말을 했으면 그 죽이겠다고 한 사람들한테 벼락을 맞겠지만 내 말이 사실이면 그 사람들이 벼락을 맞는다구요. 예수보다 못해 가지고는 기독교 이상 만들어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자, 아들이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아버지보다 내가 잘나야 되겠소' 아침이면 '아버지, 나는 아버지를 가르쳐 주고 싶소. 나는 아버지 선생이 될래'할 때 그 아들이 아무리 철모르는 국민학생이라 하더라도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아버지가 이놈의 자식, 네가 아버지의 선생이 돼? 그러겠어요? 그 말을 들으면 아버지의 웃음 보따리가 흔들흔들 할 거예요.
사람도 그런데,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아들이 인간이라면, 하나님 눈으로 볼 때 한줌밖에 안 되는 인간이 나와 가지고 '난 하나님보다 더 훌륭 해질래요'한다고 하나님이 '이 녀석아' 하고 들이치겠어요? 하나님은 '야!그 녀석, 거 쓸만하구나' 하며 구미가 당길 거라구요. 아주 뭐 희열이 만면해져 가지고 숨을 들이마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보다 훌륭하겠다는 것은 무엇이 훌륭하겠다는 거예요? 힘이 훌륭하겠다는 거예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라구. 알겠어요?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도 나한테 못 미친다, 하나님도 나한테 꼼짝을 못 한다 하며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은 어떻겠어요? 하나님이 사랑에 대한 취미가 있어요, 없어요? 취미는 문제도 안 됩니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렇게 나오는 '아들이 있다면, '야! 요것 봐라, 밤에 자다가도 필요한 놈이구만' 이런다는 거라구요. 나중은 두말할것없이 자다가도 필요하다는 것은 뭐예요? 언제나 부모하고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입장이 된다는 겁니다.
교조들은 무엇을 하겠다는 패들이냐? 인륜을 타겠다는 패들이 아니라구요. 천륜을 타 보자는 패들이라구요. 천륜을 타기가 쉽겠어요? 국운을 타기도 힘이 드는데…. 대통령은 국운을 타야 될 수 있는 것인데, 천륜을 타게 되면 무엇이 되겠어요? 천륜을 타게 되면 세계 대통령이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천륜을 타는 데도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인륜이 있는가 하면 인정(人情)이 있는 것처럼. 그렇지요? 여러분은 무슨 말을 자꾸 벌여 놓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벌여 놓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구요. 여러분이 물건을 사려면 백화점에 갈래요, 조그만 잡화점에 갈래요? 백화점에 가야 된다구요. 그러니 벌여 놓는다고 나쁘게 생각지 말아요. 벌여 놓은 물건이 좋으면 되는 거라구요. (웃음)
여러분은 인륜만 타고 갈래요? 인륜 플러스 인정, 이것까지 타고 갈래요? 「인륜 플러스 인정…」 그러면 둘 중의 하나를 타고 가라면 인정을 타고 가겠어요, 인륜을 타고 가겠어요? 잘 생각해 보라구요. 인륜은 여러분의 생애 7,80년이 끝나 버리면 버리고 가는 것이지만 인정은 안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상을 지니고 있었으면 안 버려지고, 자식이 부모의 심정을 따라서 부모가 바라는 소원,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은 안 버려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륜길은 버리고 갈 수 있어도 인정길은 안 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륜길 가운데 종교를 믿을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래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천륜의 길을 갈래요, 천정(天情)의 길을 갈래요? 어느 길을 갈래요?「천정의 길을…」 도인들 중에 누가 상도인(上道人)이냐? 성인들 중에 누가 상성인(上聖人)이냐 할 때, 대번에 나오는 것입니다. 누구냐?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성인은 예수입니다. 예수는 말을 참 잘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인정을 계열적으로 볼 때, 뿌리를 찾아들어가서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이것 가지고도 부족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독생자다'라고 하였습니다. 독생자는 독차지 사랑하겠다는 거예요. 변두리 사랑하겠다는 거예요? 이 한 마디가 인간 세계에 있어서 지극히 귀한 말입니다.
또 그 다음에 인간들 대해 가지고, 믿는 신도들 대해 가지고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이거 참 천정을 정통으로 때린 거예요. 그 핵을 잡는데 첫번째는 하나님의 핵심을 잡았고, 두번째는 인간 세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인정을 대표해서는 제일 골자를 들어 맞춘 것입니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그 신랑 신부의 사랑은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이것입니다.
앞에서 인간의 사랑을 말할 때, 부모의 사랑을 말했지요? 부모의 사랑이란 부부의 사랑 가운데서 자식이 태어날 때 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부부의 사랑보다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부부의 사랑보다 강하게 자식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왔느냐 할 때, 인간을 뿌리로 해 가지고는 해결 방안이 없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을 들이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주체적인 사랑을 가진 하나의 남성으로서 하나의 여성을 대할 수 있는 기준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하는 말이 '나는 너희들의 스승이라' 하지 아니하고,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너희들의 형제라' 했습니다. 그것은 심정적 골수를 찾아들어간 것입니다. (녹음 불량으로 중략)
통일교회 문선생은 앉아 가지고 다 찾아냈습니다, 기독교는 세계적 종교의 대표입니다. 이런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서 최후에 문화의 세계를 창건하고, 문화의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실질적 기반을 만들지 않는 한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여건을 책임지고, 이런 운세를 가려 나온 것이며 끝날에 인간 앞에 있어서의 하나의 메시아 사상을 남겨 놓은 것이 아니냐?
그 메시아는 어떠해야 되느냐? 천정을 가지고 오는 부모가 되어야 되고, 천정을 가지고 오는 남편이 되어야 되고, 천정을 가지고 오는 아들딸이 되어야 됩니다. 그 자리만큼은 천륜을 타는 것이 아니라 천정을 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하겠으면 하라는 거예요. 그래도 나는 천정을 탈 수 있는 길을 갑니다. 천정을 타는 데는 그냥 타지 못합니다. 반드시 반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비례적인 반대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가는 거예요. 나라가 반대하고, 세계가 반대하고, 세계뿐만 아니라 천륜을 타고 가는 종교인까지 반대하라 이거예 요. 여기에서 반대하는 사람들과 실력 대결을 하여 남아져서 '그 아들 쓸만하다'고 공인을 받자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이제 알겠어요? 여기 우리 통일교회 패들, 확실히 알겠어요?
공자는 하늘을 가르치면서 '위선자는 천보지이복(爲善者 天報之以福)하고 위불선자는 천보지이화(爲不善者 天報之以禍)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천(天)이 무엇이예요? 막연합니다. 불교도 보게 되면, 하늘인지 사람인지 왔다갔다해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회회교는 기독교를 빼앗은 종교입니다. 이렇게 가려 볼 때,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통일교회 문선생님이 잘난 것으로 결론이 났지요? 내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잘났다는 거예요. 자, 또 가요. 또 가자요. 나도 힘들다구요. 어제 일본 지구장들이 왔기 때문에 약 열두어 시간 동안 얘기를 했어요. 이들의 정신을 전부 다 쇄신해 놓은 거라구요.
예수님은 훌륭합니다. 그러면 예수님하고 무엇이 될래요? 예수하고 사돈을 삼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훌륭한 줄 알았는데 그냥 가겠어요? 그냥 가려면 여기 오지 말라구요. 촌수(寸數)를 따지자는 거라구요. 그래, 통일교회는 몇 촌이 될 거예요? 일촌(一寸)이 될 거예요, 상촌(上寸)이될 거예요? 상촌이란 말은 없지만, 일촌보다 앞선 것을 상촌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예수가 '나는 독생자다. 나는 신랑이다' 했는데, 그 말은 좋지만 그것을 실천했느냐고 묻게 되면 예수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내가 알고 들이대는 거라구요. '예수님, 당신이 그런 말은 했지만 실천을 했소? 할 때, 예수님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이렇게 될 때는 예수님도 말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나도 옛날에는 예수님이 훌륭하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레를 들이대고 한번 눌러 보니까 들썩들썩하는 거예요. 이런 말, 기분 나쁘지요? 특히 목사들, 정말로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도 할수없다구요. 사실을 가려내 가지고 말하는 거예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말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계속 '자,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받아 보았소? 하며 최고의 사랑을 받아 보았느냐고 들이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보았다 하면 여기에서 더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당신은 아들로서 천상 천하에 있어서 완성된 사랑의 주인공이 되었소? 하나님이 절대적 사랑의 주인공이라면 당신은 그 사랑을 받는 절대적 대상자가 되었소?'라고 물으면 '예'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된다구요.
그 다음에 '사랑은 혼자서는 안 되는 것이니, 가정에 있어서의 상대적 인연을 중심삼고 남자로서 아내와 같은 입장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가정적 기반을 가져 보았소'라고 물으면 못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다시 신부를 찾아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또,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이 되어 보았소? 하고 묻는 겁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노릇을 해봤어요? 못 해보았지요. 그렇잖아요? 아버지 로서의 사랑을 못 했으니, 천정을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입장에 못선 거예요. 또, 할아버지로서 손자를 사랑해 봤어요? 족장으로서 그 씨족을 사랑해 봤어요? 또 한 나라의 대표자로서 백성을 사랑해 봤어요? 세계 인류의 메시아로서, 구세주로서, 만왕의 왕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도록 세계 인류를 몽땅 사랑해 봤어요? 사랑하려고만 했지, 사랑해 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땅에서 못한 사랑을 내가 가정을 중심삼고 한다면 찬성이요, 반대요?' 할 때 반대라고 하면 졸라매는 거라구요. 그때에는 '예수가 뭐야?' 사정없이 따지는 거예요. 그렇게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독한 사람이라구요. 이렇게 정통으로 들이대거든요. '당신이 주도하고 싶었던 이스라엘의 민족, 유대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4천년 동안 준비했던 그 터전이 당신 앞에 반기를 들지 않았소? 나라를 찾기 위해 왔고, 교회를 찾기 위해 왔지만 당신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교회를 잃어버리지 않았소?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몰려 가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지 않았소? 그 모든 것들이 당신의 소원이요?'라고 묻는 거라구요. 그러면 딱 걸려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예수님에게는 안 됐지만, 사실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혁신해야 됩니다. 기독교 개혁 운동의 동기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는 일반 기독교와 다릅니다. 그렇다고 통일교회를 다 믿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예요. 기성교회를 믿겠으면 믿어 보라구요.
선생님은 세계에서 제일 허무맹랑한 망상 대왕 같지요? 그것이 통일교회의 문교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성인이라는 사람들 다 대해 보아도 나한테 다 걸려 넘어가더라구요. 불교 믿는 사람, 불교의 석가모니도 요즈음 통일교회 전도하느라고 야단이라구요. 거 도깨비 같은 말이지만 거짓말이 아닌 사실이예요. 지금 불교 신자 가운데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많습니다. 알겠어요? 기독교인 가운데도 통일교인이 많습니다. 본부는 시시해 보이고 몇몇 사람밖에 안 되지만….
이렇게 볼 때, 세계에서 허무맹랑한 패들이 무슨 패냐? 천운을 타겠다는 패입니다. 기독교는 무슨 패냐? 천정을 타겠다는 패입니다. 천정을 타겠다고 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천정을 타는데 있어서, 천정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천정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 가지고 편하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천국을 만들자는 패들입니다. 한 단계 앞서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수습 안 되면 망합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신념입니다. 신념만이 아니라 하늘의 결정적인 명령으로 알고 있다구요.
자, 통일 방안은 사랑이라 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다시 돌아가서, 이제는 종교까지 전부 다 올라왔으니 진짜 아들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영원하고 유일하고 절대적인 그 사랑이 지상의 인간을 통해서 나오게 하느냐 못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술을 다 먹고 나서는 무엇이 벌어져요? 더 먹겠다고 껄떡껄떡해요? 취해서 돌아가는 거라구요. 취해 돌아가는 것이 나쁜 것이요, 좋은 것이요? 술 취해서 돌아가는 것이 좋아요?(웃음) 술 취하면 좋기는 좋겠지. 그러나 술 취해서 나쁜 일 하기 때문에 나쁜 거지요. 만약 술 취해 가지고 춤을 추고 돌아가서 좋은 일 하면?「좋습니다」 그렇다면 술 먹으라고 하겠어요, 먹지 말라고 하겠어요? 먹으라고 그러겠지요? 그렇게 되면 술장사가 세계에서 제일 부자가 될 거라구요. (웃음)
하나님이 그런 아들딸을 가져서 집안에 들어가도 몽땅 내 사랑이라고 …. 이런 얘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이래야 실감이 날 테니 할 수 없습니다. 밖에 나가서 생각을 해도 몽땅 내 사랑, 일하는 것도 몽땅 내 사랑, 가고 오고 건드리고 만나고 부딪치고 하는 일체를 그와 더불어 하고, 그를 빛내는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여건에 내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불행한 자리요, 행복한 자리요?
보라구요.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계를 사다 주기 위해 백화점을 향해서 복잡한 명동 거리를 척 스치고 지나간다고 할 때, 바쁘겠어요, 안 바쁘겠어요? 바쁘겠지요? 바쁘게 가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저 녀석. 미친 녀석' 그래도 내가 바쁘면 할 수 없습니다. 동료를 봤는데도, '야! 비켜라, 너하고 인사할 시간도 없다' 하면, 그 동료가 '저놈의 자식, 왜 저래' 이럴 것입니다.
또 어머니 아버지가 가로막으면, '어머니 아버지 비키시오. 나 모르겠소'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계를 사 주기 위해 가는 걸음에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 정면으로 충돌한 그 자리에서도, 그저 허리를 꾸부려 도망해 가지고 시계를 사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대여?' 하면서 사다 주면 '이것을 어떻게 사 왔어?'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아! 말 마시오. 사랑하는 몇십 년 친구를 만나 뿌리칠 수 없는데도 딱 뿌리치고, 또 어머니 아버지를 만났는데도 모른 척하고 도망쳐 나왔다'고 할 때, 그 색시가 '아유 기분 나빠! 어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러겠어요? 사랑이라는 것을 들고 나올 때 그런 것은 무사통과라구요.
이런 것을 보면 인륜도 정서적 분야에 있어서는 그 권한을 들고 나올 수 없는 내용이 아니더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모도 몰라봤다, 친구도 몰라봤다' 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때, 그런 사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고 고마워요, 고마워요' 아가씨들은 그런다구요. 아시겠어요? 그런 것이 좋아요, 뻣뻣해 가지고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여보 여보' 불러 가지고 이야기하고, 또 얼굴이 번번하다고 만나서 이야기하는 그런 것이 좋아요? 어떤 것이 좋아요? 여기 있는 아가씨들 한번 얘기해 봐요. 첫번이예요, 나중이예요? 첫번이야? 너도 그렇구만. 이것을 볼 때에 정서적인 문제는 인륜의 법도, 인륜의 도덕관념을 긋고 넘어가더라도 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없다? 있다는 것입니다.
효자가 있다 합시다. 이 효자는 아버지가 일어나서 '야, 아무개야' 하기 전에 '예'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어디 나무랄 데가 없는 효자예요. 효자는 부모의 말을 절대적으로 지켜야지요? 부모의 말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는 그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개야, 네가 수고를 많이 했으니 우리가 너한테 주려고 특별히 생각하고 준비한 바가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너에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옷을 해주고 싶어서 지금까지 20년간을 한 푼 두 푼 돈을 모았다. 정성이 지극한 네 효성에 보답하는 것이니 받아라. 오늘 기분 좋게 좋은 양복에 금반지에 금시계에 전부 사라' 하면서 몇백만 원을 주었다고 합시다. 그러고서 부모가 하는 말이 '이것들을 절대로 누구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부모의 말을 잘 들어라. 절대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효자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옷을 해서 쓱 입고 나서니 기분이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기분이 좋았는데, 자기만 좋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 효자가 맏아들이건 작은아들이건 그건 상관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형님과 동생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내가 입는 것보다 형님에게 주고 싶다, 동생에게 주고 싶다' 이런 마음이 우러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부모가 아무에게도 주지 말라고 했지만 주고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 해 가지고 양복은 형님을 주고, 금반지는 동생에게 주고 이렇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말도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 나누어 주었어요.
그런데 부모가 얼마 후에 가만히 보니까 효자가 새옷을 입고 다니는것 같지가 않고 시계나 반지도 가진 것 같지가 않아요. 그래서 '야, 요전에 내가 그렇게 당부를 하고 옷을 해주었는데, 요즘에 입고 다니는 것이 왜 안 보이지? 할 때, 그 효자가 '예, 그렇게 줬어요'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야! 너 왜 그래?', '사실은 아버지 어머니께 미안해요' '왜 그래, 왜 그래?', '그건 말 못 하겠습니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도 없이 쓱 나가 버렸다고 합시다.
자, 그러면 부모가 묻고 있는데 아무 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면, 그 아들이 불효자겠어요, 효자겠어요?「불효자입니다」 우리 아줌마, 그 아들이 효자예요. 불효자예요? 그것은 대답대로 하자면 불효자지요.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가 기분이 나빠서 그를 불러 놓고 '내가 십년을 두고 효자라고 너를 형제들 앞에 자랑을 했는데, 오늘 이렇게 불효하는 법이 어디 있는냐? 이 불효막심한 녀석아' 하며 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너, 이녀석.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랬느냐' 할 때 효자의 한마디의 반대는 불효자식 백 마디 반대한 것보다 더 억울한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거 이해하지요?
이렇게 아들딸을 모아 놓고 한탄을 하니 그의 형님과 동생이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 형제들이 생각을 해 보니까 결국은 자기들 때문에 저 동생이, 저 형님이 저렇게 된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 부모가 '야! 너희들, 왜 우니? 하고 물어 볼 때, '대답 못 하겠어요' 하며 전부 다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자식이란 녀석들은 전부 훌쩍훌쩍 울면서 다 나가 버리고 난 후, 철없는 조그만 막내 딸만 남았어요. 그 딸이 눈치를 보며 '어머니 아버지 왜 그래요? 하고 물어 보면 그 부모는 할 수 없이 철없는 어린 딸에게 '세상에 이럴 수 있느냐? 내가 이렇게 이렇게 정성껏 옷을 해주고,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그 자식이 이럴 수 있느냐'고 한탄을 하는 거예요. 그 딸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하는 말이 '어머니 아버지, 그것을 딴 사람에게 준 줄 알아요? 아무개 오빠에게 주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때 그 말을 듣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위로만 받겠어요? 화가 노발 대발 나겠어요, 안 나겠어요? '뭐야 그게 정말이 야?','정말이고 말구요' 그래 아무개 아들을 불러다가 '아무개 동생 말들으니 그랬다고 하는데 정말이냐? 물으니 '예, 그 말이 맞습니다' 이러거든요. 그때, 어머니 아버지는 목을 놓고 통곡하는 일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내 아들아! 장한 아들이다' 그러니 어머니 아버지의 말을 안 듣기를 잘했지요?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이놈의 자식아! 그랬으면 내 말을 듣고 설명해 주든지 하지' 그러겠어요? '내 말안 듣기를 참 잘했구나?' 이런 아들 둔 것이 불행해요, 행복해요? 어때요? 그 부모가 행복하다고 하겠어요, 불행하다고 하겠어요?「행복하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정서적인 사랑이란 말은 인륜 도덕 관념을 초월한다, 그 말 틀림없지요? 세계 통일의 요인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사랑에 있다는 말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부터 결론을 지읍시다. 앞에서 말하기를, 세계 통일 방안은 어떤 주체를 중심삼아 가지고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상대적 세계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에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됩니다. 나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나에게는 마음의 사람과 몸의 사람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우리 목사님, 목사님 정도 되면 몸과 마음이 싸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때요? 「싸움합니다」 싸움해요? 목사님도 할수없다구요. 싸움은 좀 해야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문선생은 어떠냐? 나도 싸움을 하려고 합니다. 그 대신 꼭대기에서 침을 놓지요. 마취 주사를 놓을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놈아? 할때는 쓱 한번 침을 놓는 거라구요. 이때 눈을 까박까박하면 안 되지요? 두들겨 가지고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에게 그 마취약을 제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좋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에 있어서 이 싸우는 마음과 몸을 어떻게 통일시키느냐, 무엇을 가지고 통일시키느냐가 문제입니다. 약을 먹여 가지고 되겠어요? 안 된다 이겁니다. 둘이 한꺼번에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사랑이라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둘이 한꺼번에 좋아하는 것, 마음도 좋아하고 몸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걸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잘 생각해 보라구요. 냉정히 생각해 보라구요.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자리를 딱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마음을 몽땅 점령받고 싶어요, 안 받고 싶어요? 우리 총각들은 모를 겁니다. 우리 아저씨들, 사랑을 할수록 마음을 몽땅 점령받고 싶어요, 안 받고 싶어요?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당신을 마음으로는 사랑하지 않소' 한다면 기분 나빠하지 않겠어요? 그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마음에 꽉차게 나를 점령해 달라는 말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사랑을 하는 만큼 내 마음을 점령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점령하면 어떻게 되느냐? 마음을 점령하면 몸은 쫓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요?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게 되면 몸은 꺼떡꺼떡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런 점에서 볼 때, 통일의 방안은 어디에 있느냐? 사랑에 있습니다. 보다 높게 사랑할 수 있는 길,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은 인간 세상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어떠한 성인들이 바라던 천정(天情)의 기준 이상의 사랑을 인간과 결합시킬 수 있고, 접촉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여기서 통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악한 세상에도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개인을 뿌려 가지고 자꾸 큰 것이 세계입니다. 몸의 사람이 열매맺힌 것이 유물사관, 즉 공산주의요, 마음의 사람이 열매맺힌 것이 유심사관이예요. 그러면 몸뚱이 주의는 무엇을 가지고 세계를 요리하려는 주의냐? 빵을 가지고 세계를 요리하자는 주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세계 강화와 발전적 원동력은 배급제도입니다, 반동분자를 숙청하는 데있어서는 배급을 주지 않거나 양을 감소시킵니다. 빵을 중심삼은 흡수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거예요.
그러면 유심세계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사랑을 모체로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통일시키려고 하느냐? 빵이 아닙니다. 빵을 중심삼게 되면 강압이 벌어집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보다 높은 사랑을 갖게 될 때는 통일이 되려고 한다 이겁니다.
공석에서 이런 얘기는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해봅시다. 어떤 총각과 처녀가 서로 눈이 맞았습니다. 그 남자는 아주 반할 만큼 잘난 사람이었어요. 둘은 사생결단하는 사이가 되어 어머니 아버지가 반대하는 것을 다 차 버리고 맺어져 가지고 재미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이웃 동네에 난생 처음 보는, 꿈 가운데서나 그리워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남자가 떡 나타났습니다. 그는 말하는 것으로 보나, 천품으로 보나, 그 모든 자세로 보나, 이 모든 것들이 지금까지 자기와 살던 남편과 비교해 볼 때, 남편은 꼴뚜기 같고 그 남자는 용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라구요.
길을 가다가 만나면 인사를 하는데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풍기는 이미지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거예요. 또 그 사람이 본체만체하면 모르나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래저래 대해 보니까 그 모습에서 풍기는 순수성이라든가 자기를 대해 가지고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이건 뭐 자기 남편은 옆에도 못 간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결국 더 높은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하면, 그 여자는 살랑살랑 마음이 꼬리를 저으면서 방향이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 말이 맞소, 안 맞소? 더 높으면 이 지남철이 통째로 끌려가요, 안 끌려가요? 안 끌려가겠다면 후다닥 옆으로 가 달라붙습니다. 그런 거예요. 더 강한 사랑은 약한 사랑을 소화 융합시키는 작용을 하는 거예요. 그것은 상충 융합이 아니라구요. 알겠어요? 그런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는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사랑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이냐? 남을 위하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주적인 본질을 중심삼아 가지고 남에게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은 어디에서 왔느냐?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주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부모의 사랑이 그 본질에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자식을 대해서 항상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자식이 받지 않더라도, 아무리 불한당 같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옛날에 사랑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랑을 갖고 나타나서 사랑을 하게 되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놈의 자식아,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했는데, 과부의 몸으로서 너를 늙도록 허리가 굴어가면서 사랑했는데 그 사랑을 몰라? 이 망할 자식아?' 하며 담뱃대로 이마를 때린다 할 때, 세 번만 그렇게 하면 그 자식은 보따리를 쌀 것입니다.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내 사랑이 부족하여서 그렇다. 모든 것은 내가 너를 더 사랑하지 못한 탓이다' 하면서, 그 자식의 뼛골이 녹아나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식 앞에 나서게 될 때에, 그 자식이 어떻게 돼요? 돌아서요, 안 돌아서요? 돌아서는 것입니다. 더 큰사랑은 약한 사랑을 전부 다 소화, 통합시킬 수 있는 주동성이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이다?「있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세상은 어떠한 세상이냐? 타락한 세상이다. 통일교회 원리의 타락론이 그래서 위대하다는 거예요. 이것은 어디나 다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주해 가지고 출발한 것이 타락의 역사입니다. 천사장이 하나님을 주체로 삼아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주체로 생각하고, 자기 위주의 행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이 벌어진 것입니다. 남의 환경을 무시해 버리고 자아를 중심삼은 관념을 강조한 데서 타락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뿌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뒤떨어진 우리 선조로부터 나온 우리 자체들은 오늘날 어떠한 사람들이 되었느냐? 내가 성공하고, 내가 출세하고, 내가 좋기 위해서 제삼자를 유린해 버리고, 제삼자를 희생시켜 버리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가 되어 가지고 세계에서 싸우다 보니 두 패가 남았다는 거예요. 이 두 패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앞을 다투어 싸우는 입장이었으면, 천년 만년 싸우더라도 그것은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밟기 위해서 싸우는 싸움이 계속되는 한 두 패가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여기에 이의 있어요, 없어요? 망하기 마련이예요, 아니예요? 망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역사적 방향이 틀렸다! 이 역사의 방향을 뒤져 가지고 새로운 세계 역사의 방향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개인이 희생하더라도 가정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고, 가정이 희생하더라도 종족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고, 종족이 희생하더라도 민족이 올바를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고, 민족이 희생하더라도 세계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는 사상입니다. 초민족적이요, 세계적인 사상 관념을 가지고 자기의 가정에서부터 민족까지 전부 다 희생시키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에게 현재는 나라가 없다 하더라도, 그 민족이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20세기 혹은 30세기. 금후에 이상세계를 바라는 인간세계 앞에서 그 민족이 지닌 사상이 아니고는 세계가 살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한때가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 없는 백성이 되더라도 그러한 사상을 주장하고 나가야 되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교는 나라도 없고, 땅 위에 기반도 없었지만, 종교인들은 그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과정에서 희생을 하면서 그 길을 당연히 가야 할 길로 알고 나왔습니다. 날아오는 화살과 다가오는 시련 보따리를 도피하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정면에서 맞으면서 나왔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갈리는 자리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찾아 가야 할 천운의 도리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종교인들이 오늘날 세계의 문화권을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단 한 가지 통일의 요인이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통일의 방안은 무엇이냐? 역사의 방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됩니다. 그 방향이 무엇이냐? 지금까지의 사조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서 제삼자의 환경을 무시하고, 또 상대방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로 말미암아 오늘날 말단 세계적인 정세권을 이루어 놓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 이 실정을 오늘날 우리는 신앙생활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포기해 버릴 수 있는 정상에 도달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2차 대전 이후에 민주세계를 주도하기 위해서 세계를 위한 사상을 들고 나설 때는 세계 인류 앞에 중심국가로서 흠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닉슨 행정부를 중심삼아 가지고, 어느 한 정치 역사를 보든가 국가 역사를 보든가, 자국을 희생하여 제삼국을 도와주어서 남아진 국가가 없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는 안 되겠다고 돌아섬으로 말미암아 미국 자체는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미국이 민족주의 관념에 사로잡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세계를 잃어버린 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하늘은 미국에서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초월하는 사상과 이념을 가지고 세계를 주도하는 것이 천운의 방향이요, 인륜이 바라는 이상입니다. 그러기에 국가 민족이라는 관념이 너무 강한 민족, 이 담을 헐지 못하는 민족은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를 보면 슬라브 민족을 위주한 세계 공산권 제패를 꿈꾸고 있는데, 여기에 일보의 양보도 할 수 없다 이겁니다. 만일에 중공이 커져서 공산국을 침범하고 나설 때. 지금까지 공산주의의 주체적 입장에 있는 소련이 양보할 수 없다 하게 되면, 다시 말하면 민족적 감정을 초월하지 못한, 국가적인 관념을 초월하지 못한 사상적 개념을 가진 터전 위에서는 세계를 향한 주도적인 주체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운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역사적 실정을 다 경험한, 파탄적인 행로를 걷고 있는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에 흥미를 두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들이 왜 지금까지 후퇴의 일로를 걸었느냐? 민족 관념과 국가 관념을 초월하지 못한 사상적인 배경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삼자를 이용하고. 희생시켜서 자기들의 출세와 성공을 바랐던 것입니다. 이런 관념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부딪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냐? 반대의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현 미국을 대해서 '미국! 너 금후의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느냐?' 묻게 될 때, 이것은 모릅니다. 모르는 거라구요. 또, 소련이면 소련의 공산주의의 유물사관 경제체제를 중심삼고 세계 제패가 가능하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의 시대는 오토메이션시대입니다. 노동력을 중심삼고 논리적인 체계를 정립, 전개했던 자본론은 근본적으론 파탄될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가지고는 자기들의 이상향을 실현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실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소련은 민주세계의 경제체제를 닮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에,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안이 어디에 있느냐? 실패를 거듭하였던 역사적인 방향성을 전환시켜야 됩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 대안이 무엇이냐? 제삼자를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방향이 다르다는 겁니다. 역사적인 방향을 전환시키는 날에는 악하다고 하는 이 세상이 본질적으로 다른 결과의 세계를 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세계가 끝날을 맞이하도록 그 역사적인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그 대안이 무엇이냐? 제삼자의 성공을 위해서 나자신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간단해요.
열 명의 친구가 있으면 그 열 친구를 위해서 한 친구가 밤이나 낮이나 희생을 하고, 사랑하기에 자기 일신을 돌보지 않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 열 친구들에게 자기에게로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오려고 할 것입니다. 갈라지려 하면 더욱 달라붙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열 친구 가운데서 '너는 나 때문에 있고,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는 공산당식으로 나오는 친구가 있으면, 열 친구가 다섯 친구로 줄어들고 나중에는 여편네까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도망가는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렇지요?
망합니다. 왜 망하느냐? 많았던 것이 자꾸 떨어져 나가니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흥하는 것은 왜 흥하느냐? 하나밖에 없는 것이 자꾸 많아지니까 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친구들이 자기 어머니 아버지, 혹은 친척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나에게는 제일 ,좋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가 죽어야 할 자리가 있으면 대신 죽어 줄 수 있다'라고 선전하고 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동네에까지도 그의 이념이 확산되어 '이리 가라' 이렇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그 배후의 기반을 다시 움직여 가지고 끌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가 망하게 되고, 세계가 악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악이 무엇이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제삼자를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이 악입니다. 선은 무엇이냐? 자기가 희생되어 가지고 제삼자의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 선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할 것이냐? 통일교회에서 전도할 때 통일교회를 위해서, 문선생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문선생을 사랑하기 전에 세계인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관이 딱 짜여져 있습니다. 그 사랑을 하고 나서 문선생을 사랑하면 그 사랑은 정당한 사랑입니다. 하늘을 배반한 자리에서 문선생을 사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문선생이 안 되었으면 시정해야 됩니다. 국민이, 혹은 인류가 시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방향성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은 사랑을 근거로 해서 희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가 세계에 없는 최고의 사랑을 코치를 했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세계 만민을 대표하여 생명을 바쳐 가며, 인간으로서 넘을 수 없는 어려운 입장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아버지의 뜻이란 무엇이냐? 이스라엘 민족보다도, 세계 만민을 구하기 위한 것이 예수를 보낸 뜻이 아니겠어요? 이스라엘 나라를 희생시키고 이스라엘의 주도적인 책임자로 보낸 예수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통일교회 문선생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는 못 버린다 그거예요. 통일교회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는 못 버린다, 대한민국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는 못 버린다, 하나님은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들은 그걸 중심삼아 가지고 역사적인 인륜을 수습해 나온 것입니다. 그 목적은 무엇이냐? 어느 한때에 이런 실천기반을 세계화시켜야 되겠기 때문에 성인이 간 길은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주체적인 성인이 간 길은 희생의 길, 그 길을 밟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위인들은 그가 죽을 때면 가슴을 치는 국민이면 그 국민 중에 동지가 있었지만, 성인들이 가는 길은 동지는 물론이요, 집안의 아버지 어머니도 몰랐고, 사랑하는 친구도 몰랐고, 백성도 몰랐고, 국왕도 몰랐습니다. 전부 다 목을 자르려 했고, 추방하기 일쑤가 아니었느냐? 이는 전체를 고이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숭고한 사상 밑에서 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역사는 수습되어야 됩니다. 그런 종교 문화권이 오늘날 역사를 빛낸다는 사실은, 이것은 문화사적인 실정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쳐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를 믿기 위해서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 때문에 미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는 길에 있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찾지 못하면 세계와 다리를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로 가는 길을 위해서, 찾아가는 그 길 앞에 정성을 다 들여야 됩니다.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내놓으라는 거예요. 목숨을 내놓고 무엇을 하라는 것이냐?
죽기만 하라는 것이냐? 정성을 들이라는 거예요. 목숨을 내놓고 정성들이는 사람이 가는 길이 미치광이 길이지 별거 있어요? 아들이 죽을 판에 들어 있는 것을 알고 살려주기 위해 가는 부모의 걸음이 미치광이의 걸음이지 별거 있어요?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기에 미쳐라! 하나님을 위해서 미쳐라! 똑똑히 미쳐라!
통일교회는 개인을 복귀하고는 가정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이요,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은 나머지 종족 앞에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종족이 민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면 시일의 차이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민족의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주권을 위해서 희생하게 되면 그 주권은 민족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민족이 일개 국가를 중심삼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중심삼고 가는 길, 민족을 희생시켜서 세계로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추구하는 방향이 있거들랑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역사시대와, 새로운 천국 통일의 내용을 중심삼은 세계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러한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통일교회는 말없이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변명할 수 있는 재료는 얼마든지 있어요. 내가 말로는 누구한테 지지 않고 이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구요. 성격으로 한다면 한 시간도 참을 수 없는 성질이지만, 골수로 가는 것이 천도의 길이요, 천정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을 치기 전에 내 죄로서 이어받자, 그를 저주하기 전에 복을 빌어 주어야 될 것이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통일교회는 명실공히 유명해졌습니다.
우리의 길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나쁜 것이냐? 희생을 하고 보면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철칙이라구요. 희생하는 사람은 중심자가 되는 것입니다.
중심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심자가 되어 타인으로부터 주관해 주기를 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의에 의해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주관성을 요구받게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평등적이요, 자주적인 권한이 자연적인 원칙 하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정치철학에 있어서 최고의 난문제가 피지배자와 지배자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사상은 무엇을 코치하느냐? 오늘날 사망권으로 흘러 떨어지는 이 역사의 방향을 가로막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자, 통일 방안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는 데에 있어서는 둘째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밥을 안 먹고 굶주리면서도, 혹은 여름에 개밥을 먹어 가면서도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애국애족을 하자,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때와 환경이 갖추어져 있으니 우리가 크게 되면 자연히 나쁜 것은 전부 다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앞으로에 있어서의 통일사관은 무엇이냐? 대한민국의 삼천만 민족이 이 사상과 더불어 하나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하여 고이 희생할 수 있는 깃발을 들고, 만국이 거기에 동조할 수 있는 무드를 조성하게 될 때는 만국은 이리 오지 말라고 해도 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요즈음 한 40일 동안에 일본 사람들 8백 명을 교육시키고 있지만 그들을 대해서 내가 놀란 것은…. 옛날에는 내가 있는 칠을 다해 가지고 올무를 만들어 한꺼번에 걸어 넘기려 하던 사람들이 일본 놈들이라구요. 나는 그 나라의 관원들에게 모진 고문을 받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데 누구보다 더 눈물을 흘렸고, 누구보다 지하에서 투쟁한 사람이라구요. 그 원수의 후손들을…. 칼을 다시 뽑아 선서를 하며, 역사야 현재야 미래야, 이 민족은 이런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심판을 해야겠다고 통고하고 싶은 그런 민족이지만, 그런 모색 방안을 가지고는 세계가 수습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통일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을 지도하면서도 통일사상이 무섭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개인으로 보면 인간에 지나지 않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닦아 온 과거와 현실적인 모든 삶의 관에 있어서, 세계는 이렇게 해야 산다는 말과 내용을 중심삼고 세계 정의의 노정을 찾아 보게 될 때, 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 결과를 타진해 보았을 때, 선의 결과가 안 나온 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그런 것을 알고 실천해 보고, 그런 자리에서 결과의 가치를 찾아보고서 이 길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명령을 하게 되면 못 할 놀음이 없다구요.
이렇게 볼 때, 일본이 아무리 주권이 있어서 강한 행정 조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 능동적인 권한을 가지고 실천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사상이라는 것이 놀라운 것임을 나 자신이 스스로 느낄 때가 있어요, 무서우리만큼. 선생님이 명령만 하게 되면 무슨 일이든 한다구요. 이것은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복지 천국을 바라보고 나가는 통일의 행로에서 원수시할 것은 무엇이냐? 국경이 문제입니다. 민족 감정을 초월하라는 것이 통일사상의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을 넘어 가지-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동족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주도적인 책임자들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에는 반드시 희생과 극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 사랑의 본질과 요인은 반드시 어디를 통해서 실천이 되느냐? 희생이 동반되고 자기를 극복하는 데서만이…. 그렇기 때문에 종교세계에서는 '희생하라! 봉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사랑이 가는 길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희생을 하고 우는 것이냐? 희생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대해 '어머니? 할 때, 어머니는 그 한마디에 오장육부가 녹아 난다는 것입니다. 뼛골이 다 녹아 드는 감정에 사로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쥔 손목에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힘이 교류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숭고한 희생의 자리, 그러한 실천의 자리에서 통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은 인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천륜을 해원시키고 천정의 소원성취의 한을 풀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책임져야 할 것은, 사랑에 취해 가지고 세계 인류를 품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자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통일의 요인과 방안이 있는 것은 두말할 바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몸과 마음을 통일시키는 데도 그 사랑이 없이는 안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게 될 때는 내 몸뚱이가 굶주리는 것도, 수고스럽고 헐벗는 것도, 혹은 원치 않는 자리도, 못 가는 자리도 자처해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길에는 몸도 마음도 통일적인 방향을 갖추어 나가기 때문에, 이 길만이 통일의 요인이요, 통일의 방안입니다. 이것을 알아 가지고 이것을 자기 생활노정의 기준으로 삼고, 생애의 표준으로 정하고 나갈 때 여러분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보증합니다.
나는 죽음의 자리를 많이 거쳐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겠다고 각오를 하면 난데없는 결과가 벌어지는 거예요. 이제는 내 때가 왔기 때문에…내 한 가지 한이 무엇이냐? 내 기력을 다하고, 소신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있는 정력을 다하여 할 것을 다 해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할것을 다 해보고 끝났을 때는 고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앞이나 인간 앞에 할 것 다 못 하고 가는 날에는 그것이 한스러울 것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갖고 나오다 보니 배가 고플 때는, 옛날에 엘리야는 까마귀가 물어다 준 떡을 먹었다는데….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구요. 선생님은 나그네의 신세로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천리길을 피곤함을 무릅쓰고 가는 길에서 배가 고플 때에, 잔치를 베풀어 놓고 맞아 주는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또, 감옥에 들어가서도, 그 사지에서, 먹을 것이라는 것은 생명을 주고도 찾을 수 없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지 않았지만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진 사상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 가지 실증을 선생님은 갖고 있습니다.
기성교회 목사들 중에는 나 죽으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먼저 가 버렸다 이겁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어떤 면에서 나는 무서운 사람이예요. 내가 어떤 일을 하는 데 이 사람이 방해되어 안 되겠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반드시 인사이동이 되든가, 고꾸라져 가지고 무슨 사고가 나든가, 벼락을 맞더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무서운 길이다' 이겁니다. 나자신이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칙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무자비한 사람이라구요.
이렇게 가다 보니 여기에는 제3의 힘이라고 할까, 제1의 힘, 이러한 방대한 힘이 배후에 엮어져 가지고 오늘날 환경을 수습해 주고 이끌어 주는 것을 알게 되고, 이 길만이 통일이 가능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보라구요.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그러면 그 나라의 군신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더 비참하게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더 비참하게 희생하라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죽는 충신이 있다면, 그냥 그렇게 죽는 것이 아니라 못먹고 못입고, 또한 천대를 받으며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희생한 사람이 천주사적(天宙史的)인 역사시대에 사상적 전통을 세우는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거예요. 효자는 어떤 사람이냐? 열 아들 가운데 부모를 위해서 지극히 비참하게 수고하고 희생하고 고생한 사람이 효자입니다. 나라를 이어 받고 세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그러한 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말고 우리 갈 길을 바쁘게 가자, 이것을 표준삼고 오늘도 바쁜 시간을 다짐하고 가는 것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가는 길입니다. 나는 구질구질하게 잘하고 못한 것을 가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도 더 바쁜 길이 있습니다. 세계로 가야 되고, 하나님을 모셔야 되고…, 그 길이 더 바쁜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것과 같이 뜻을 위해 가다 보면 뒤에 가서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았는데 망한다면 내 목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천상세계에 가 가지고 이렇게 산 사람은 내가 하늘 앞에 변증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옹호할 수 있는, 영육을 통한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사나이입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요. 문선생의 세계관입니다. 또, 통일교회는 이렇게 가야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민도 이렇게 가면 망하지 않기 때문에 복받고 싶거든 이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갔는데도 망하거든 내 목을 자르라는 것입니다. 망할것 같아요?
이 동네 전부가 통일교회 욕을 하지만 이렇게 통일교회와 나는 남아 있습니다. 요즈음은 좀 덜 하지만, 뒤에서 쑥덕쑥덕합니다. 나는 뒤에도 눈이 있는 사람입니다.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구요. 또한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벌써 쓱 보고 너희들 무슨 말을 하고 있고나 하고 물어 보면, 그 말을 했다고 합니다. 빠른 사람입니다. 더구나 젊은 아줌마들, '저 녀석이 뭐 어떻고 어떻다지' 이러면서 나오다가 나를 보면, 나는 지나치면서 인사를 하지만 그 사람들은 똑바로 인사를 못 하고 갑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몰라서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필시 나를 흉본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까 이 집 사람들이 그렇게 악당들은 아니거든요. 대한민국에서도 그래요. 경찰국 정보과에서는 내가 부산을 가게 되면, '아무개 몇 시에 부산 간다' 이러더니, 요즈음에는 주객이 전도 되었습니다. 우리 아니면 안 된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세상에서 욕하는 것이 전부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우리를 위해서 사바사바하는 기성교회 목사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렇게 밀약(密約)을 하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구요. 세상이 그만큼 변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망하지 않는다구요. 그것이 망하면 여러분편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것을 만약에 알게 된다면, 역사가 통곡을 할것입니다. 천년 만년 통곡을 할 것입니다.
내게 케이 비 에스(KBS) 마이크를 준다면 삼천만 민족의 뼛골이 녹아나게끔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사연이 많은 사람입니다. 삼천만을 품고 하늘로 돌리기 위해서는, 삼천만을 통곡시킬 수 있는 원천과 재료를 수습하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공산당까지도 눈물짓게 하자는 것이 통일사상입니다.
이런 모든 기반이 갖추어질 때는 선전을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는 선전을 통해서 전개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선전을 통해서 전개했던 것처럼 돌아오고, 공산당의 선전 공작도 일시에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차도 좋은 링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링컨 콘티넨탈은 세계에서 제일 가는 차라구요. 내가 정 바쁠 때나, 지방을 갈 때, 원거리를 갈 때, 부산이나 대구 갈 때는 할 수 없이 타는 거예요. 그러나 그 차 타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것을 팔아 버릴 수도 없다구요. 777가정 축복 때 외국 사람이 예물로 보낸 것인데, 그것을 팔아먹을 수 있어요? 팔아 버리자니 그렇고, 타자니 그렇고,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 대상자들이 쌍쌍이 서울에서 한번 기분내는 데 써 먹자, 이런 생각을 했다구요. 그것이 좋을 거라구요.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통일교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구요. 세상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고, 자기 둥지 틀려고 하는 거라구요. 그런데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을 위해서 집을 사 주려고 해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 돈을 '날 달라'고 하는 겁니까? 나는 교회 이층에 살고 있다구요. 그걸 외국 식구들이 보고 '선생님 집이 이래', '이놈의 자식들, 그러면 너희들이 집을 지어라' 이거예요. 그래서 집을 짓겠다고 야단하고 있습니다. 그 집을 지으면 좋겠어요, 안 지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반대요, 환영이요?「환영입니다」 가담이요, 시기요? 「가담입니다」(웃음) 땅도 지금 뭐 사자고….
요전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녀석이 와서 '선생님, 우리 독일 식구들이 뭘 도와드릴 게 있어요?', '야 야, 그만 두어라. 게르만 민족이나 어서 빨리 통일해라' 했습니다. 독일이 제일 바쁘니까. 이 녀석이 도깨비 같은 녀석이예요. 내가 2년 전에 갔을 때는 센타가 셋이었는데 지금은 스물세 개로 만들어 놓았거든요. 그래, '이 녀석은 됐다' 하고 내가 독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전체주의 사상으로 구라파 천지를 진동 시켰지만, 여기에 통일사상만 불어넣어 보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자동 스위치를 누르면 구라파에서 폭발한다 이겁니다. 재미있지요? 그때가 되면 한국 대사관들은 통일교회에 대해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지만.
만일 대한민국이 통일사상을 받아들이면 대사관은 통일교회 선교 초소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에서 통일교회사상을 지닌 사람은 그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대사관을 중심삼고 새로운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더 지나게 되면 정부에 건의할 거예요. 자, 일본이 그렇고 독일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지 않으냐고, 실천을 하게 해 가지고 그렇다고 하게 될 때는…. 안 그래요? 그것은 대한민국의 대사관이 아닙니다.
미국내에 또 다른 아벨 나라가 생긴다,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만 되면 내가 세계를 3년 이내에 요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니, 소련의 코시킨이니, 흐루시초프니 모두들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여 미국 사람들 오라 하면 오는 거예요. 일본 헙회장과 지구장들에게 10일 전에 여기에 와라 했더니 '선생님. 아무래도 14일 이전에는 못 가겠소' 하길래, '아니 아니야. 10일 전에 와야 돼요. 계획이 틀려' 그랬습니다, 전부 다 밤 도깨비, 낮 도깨비 노릇을 했다구요. 전부 공사관을 찾아가 우리 지지할 것을 찾아라 해 가지고…. 어제가 며칠이지요? 「11일입니다」 언제 왔나요?「그저께 왔습니다」 그래, 그저께 전부다 온 거라구요. 이렇게 멋지다구. 그렇다고 해서 뭐 공산당처럼 협박 공갈을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자, 판국이 이만큼 됐으면, 생각이 있는 사나이라면 허리띠를 풀어 놓아야 되겠어요, 졸라매야 되겠어요? 풀어 놓아야지. (웃음) 내가 통일교회 교인이라면 난 자지 않을 것입니다. 보라구요. 앞으로 지금까지의 역사라는 것은 다 없어지고, 이 사상을 중심삼은 그런 중대한 책임을 통일 교회 문선생이 졌으면 그 생애노정에 엮어진 모든 투쟁사는 인류 문화사에 전통적인 역사가 될 것입니다, 심정세계에 있어서, 그렇잖아요? 이상적인 심정천국을 바라는 그 세계에 있어서 이것이 전통적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미래의 천국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천국은 여기에서부터 이렇게 가는 거예요. 까꿀잡이가 되는 거라구요.
이런 것 저런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면 반할 뿐이예요, 미칠 뿐이예요? 벼락이 난다는 거예요. 내가 어제께도 축복 대상자를 모아 놓고 한바탕 얘기를 했지만, 이 녀석들이 지금 엎드려서 선생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더 희생하는 것이 좋으냐, 나쁘냐? 좋은 것이예요, 나쁜 것이예요?「좋은 것입니다」 더 희생하면 할수록 전통적 기반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의 공신이 되는 것입니다.
천정을 따라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을 위해 희생을 했지만 거기에 세계가 달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중심삼고 희생이 되었지만 세계가 달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엄청난 사상을 알았으니 그렇게 가서 망하지 않고 남아지는 자가 되고, 선한 조상이 되어 억천만세 전통을 남기길 바라고, 아담 해와와 같은 조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 이 시간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지, 오늘 이 아침 여기 모인 자녀들,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가 얼마나 수고의 역사노정을 엮어 오셨는가를 알게 되옵니다.
누가,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 자리에서도 복귀하지 못하고, 역사노정에 있어서 번번이 실패한 역사시대를 어떻게 재차 끌고 나갈 수 있느냐고 묻게 될 때에, 대답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종의 종의 시대에 실패했더라도 종의 심정을 갖고 한 단계 높은 종의 사랑을 갖고 임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종의 종에서 실패한 것을 무시해 버리고, 밟고 넘어서서 또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종의 자리에서 실패하게 될 때에, 또 한 단계 높은 양자의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그에게 찾아와서, 실패한 그를 대신해 또다시 섭리의 뜻을 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사랑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양자의 길에서 실패하게 될 때, 아들의 사랑을 가지고 온 메시아를 통해서 또다시 재출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아들마저 실패하면 아버님이 직접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찾아오시어 아들이 실패한 것을 메워 버릴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식을 찾는 것과 만국을 찾는 것을 원하시는 아버님은, 부모의 자리에서 한번도 위신을 세운 때가 없이 지금까지 종의 신세를 대신하였고, 양자의 걸음을 걸어왔고, 죽음의 자리에서 쓰러져 가는 아들의 운명을 홀로 책임지고, 부모의 인연이 밟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더 높은 사랑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아버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는 고마우신 아버지요, 억천 만년이 가더라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아버님은 절대적인 사랑의 주체이시요, 단 한 분이신 사랑의 주인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주체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랑이 맺어지는 인연을 중심삼고 자식이 가는 길 앞에 눈물지었던 어버이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될 때, 그 어버이를 정면에서 바라본 순간이 있다 할진대 인간으로서는 보답할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효막심하였던 인간으로서 부모의 그 심정을 채워 드리고, 또한 그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일대뿐만 아니라 수천년의 수난길을 거치더라도 그 은덕을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아는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이들만의 눈물이 아니옵니다. 역사시대에 그런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이 없는 것을 아시는 아버지, 흘리는 눈물이 반대의 자리에서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에, 사탄을 협조하고 악이 번창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눈물이 되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통일사상의 기치를 들고 나온 당신의 어린 자녀들은 눈물을 흘리더라도 자기가 배고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핍박의 도상에서 신음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런 자리에 섰더라도 그것은 민족과 세계가 도탄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책임지기 위한 자리.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그 자리에 선 것이옵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여! 그 길앞에 서 가지고 가슴 졸이며 눈물짓는 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목을 놓고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하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동정의 마음이 극하고, 자비의 심정이 극하여, 폭발적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천상 천하에 자랑하고 또 자랑하고 싶은 아들딸, 거룩 거룩 거룩한 아들딸이 라고, 뿐만 아니라 사람 중의 사람이라고, 영원히 놓을 수 없는 아들딸이 라고 할 수 있는 그 결론적 자리가 그런 자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의 무리가 보기에는 초췌할지 모르지만, 아버님을 울릴 수 있는 역사를 가지는 무리가 될 때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오늘 통일의 요인과 방안이 어떻다는 것을 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민족이 장래에 갈 길이 어디냐? 애국애족하라고 했지마는 어디에서부터 사랑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향을 통해 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에게는 민족적 한계선을 넘어서 영향을 미쳐야 할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나 갈 길이 바쁜 것을 알고 싸워 나오고 있사오니, 아버지, 지켜 보시옵소서. 우리 가는 길이 비참한 것은 당신의 비참상을 나타낸 것이요, 이 자리가 초라한 것은 당신의 처량한 형상을 드러낸 것임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천번만번 당하더라도, 이 자리가 아버님이 공히 슬퍼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터지고 뼛골이 울리는 그런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세워진 것만으로도 감사 감사 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죽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임을 아는 통일의 무리이옵니다. 아버지, 이들의 생활을 지키시옵고, 그 생애를 지키시어 승리의 천국을 개막하고 건국하는데 그 길을 닦는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거룩한 이 아침, 여기 모인 자녀들 마음속 깊이깊이 숭고한 사상을 이어받고, 내일의 통일의 기치를 드높이 들어 민족의 선두에 서고,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우렁찬 함성으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끔 이끌어 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뜻을 당신의 소원대로 성취하시옵소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