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의는 이해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갖는 지구장회의입니다. 이해도 이제 앞으로 28일밖에 안 남았습니다. 1969년은 우리 교회로서도 중요한 시기였고,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969년대는 우리 교회가 교회로서의 기반을 어느 정도 닦아 나온 시기였습니다. 즉, 개인적 가정적 교단적인 시련을 겪으며 개척해 나온 시기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선생님이 개인적인 기반을 닦아 나왔고, 1969년대는 교단적인 기반을 닦아 나왔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런데 희생과 탕감이 없이는 새로운 기반을 닦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에는 우리 교회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적인 기반을 닦아야 합니다. 1960년대에 우리는 국가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국가 앞에 당당한 위치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74년도까지는 대한민국에 더 큰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겠습니다. 현재로는 아직 너무 약합니다. 이제부터는 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겠습니다.
1970년도에는 `아시아 승공대회', `국제 승공대회' 등을 통하여 내적인 실적을 세워야겠습니다. 그 다음엔 대한민국을 움직일 수 있는 주체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핵심요원을 양성해야겠습니다.
원리연구회의 학생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믿는 학생들을 움직이도록 해야겠습니다.
초교파운동과 원리연구회운동은 1970년대 활동을 위한 외곽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일본 식구들의 활동을 통한 외적인 영향은 좋으나 내적 정예요원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대학 출신 7천명 내지 1만 2천명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인이 들어온다면 두 달만 훈련시키면 요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인적 자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가 따릅니다. 초교파운동, 학생운동 등을 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몇천만 원이 있어야겠습니다. 필요한 재력만 뒷받침된다면 기성교회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서남동 교수가 새문안교회에서 강연한 이후, 통일교회는 도저히 없앨 수 없는 것으로 널리 인식되어졌고, 공포를 느끼는 무리들까지 생겼습니다.
우리 초교파운동에 기성교회 지도자들도 관심도가 높아졌습니다. 이에 대(對) 기성교회 활동과 대학생운동을 활발히 전개해야겠습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자원이 불가피하게 필요합니다.
현재의 핵심 요원과 더불어 제2의 요원들을 양성시켜 나가야 1970년대에 있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사상적인 면에서는 통일교회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전국적으로 인식시켜야 되는데, 거듭 말하거니와 여기에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는 공기총 관계로 약 1억원 정도의 막대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통일의 노랫소리가 들리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가 져서 밤이 되는 것이 원수라고 생각하며 밤낮없이 뛰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