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류역사가 선한 역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의 역사가 되었다면 이 세계는 선의 세계인 동시에 참된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선의 세계가 되지 못하고 악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선의 출발을 보지 못하고 악의 출발을 보게 된 서글픈 역사가 우리 인류의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인간의 후손입니다. 이 타락한 인간의 후손된 우리 인류는 아직까지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사람, 참된 세대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이 땅 위에서 자기 나름대로 선을 추구하고 참을 추구해 나왔지만, 그들이 추구한 선과 참은 그 시대에 좀 드러날 수 있었을 뿐 인류가 출발해야 할 본연의 기준, 하나님이 바라는 참의 기준과 선의 기준에 일치되지는 못한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그런 역사노정을 걸어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지나온 수천 년의 역사과정에 인류가 추모하는 성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성인이 점유하고 있는 참된 자리라는 것은 그 시대, 혹은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좀 나을 수 있는 자리일는지는 모르지만 인간이 타락이라는 운명을 맞기 전의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참된 자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완성된 자리에 선 참된 인간 이나 참된 세대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인간이란 절대적인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런 절대적인 자리에 선 개인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개인이 역사상에 나오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인간이 그리워하고 찾아 나온 것은, 하나님이 완전하게 세울 수 있고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길 수 있고 완전히 자랑할 수 있고 완전하다고 공인할 수 있는, 절대에 가까운 참된 한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그 한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소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시대를 보게 될 때, 역사노정은 복귀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복귀의 운명을 가야 하는 타락한 인간은 인간으로서 가야 할 최고의 가치 기준에 서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가서는 안 될 종의 종의 자리로 내려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위신과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만유의 주체로서의 주체성을 갖는 자리가 아니라, 그런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길을 구하고 찾아 나오는 과정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제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한 아들이 못 되고, 선한 딸이 못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에 선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슬퍼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선 자녀의 입장에서 그 슬픈 영내를 넘어서기 위해 신음해 온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아들의 자리, 참된 딸의 자리는 어느 때에 찾아질 것이냐? 어느때에 찾아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실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인류의 참된 선의 조상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참된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선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아들딸의 과정을 거슬러올라가야 합니다. 참된 아들딸로서 승리를 결정지어 하나님 앞에 참된 아들딸로 공인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단계를 높여 가지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까지 나갈 수 있는 참된 사람이 나오지 않고는 인류가 바라는 참된 부모,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부모는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혈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혈족이 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거꾸로 복귀해 나가야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지금 우리는 종의 종의 자리에서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라는 서글픈 운명의 길을 거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 양자라는 서글픈 운명을 놓고 죽든지 살든지 최후의 결판을 봐 가지고 비약하고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약을 해야만 아들의 이름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상속받아 아들로서의 사명을 완결했다는 입장에 서야만 비로소 하나님이 창조 당시에 세우려 하셨던 인류의 선(善)의 시조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과정의 젊은 세대 가운데 어떤 젊은 세대가 있었느냐? 종의 종의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종의 종의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젊은 세대는 그 세대만으로 계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가운데서 도약을 할 수 있는 젊은이, 즉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도약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는 종의 종의 시대의 사람과는 다를 것입니다. 가는 길도 다를 것입니다. 그 모양은 같을지 모르지만 그가 바라는 소망도 다를 것이고 가는 길도 다를 거예요. 그러한 젊은 세대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종의 종의 세대와 다른, 종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종의 시대가 왔다면 거기에서 또 종의 시대를 초월하여 양자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종의 시대의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의 남성이나 여성, 즉 젊은 세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에 양자의 시대가 왔다면, 다시 아들이 되고 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 양자의 자리를 초월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있어야 됩니다. 자녀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대를 초월하는 한 단계 더 높은 세대가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부모의 인연이 이 땅 위에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섭리노정을 더듬어 보아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이 지구상에 참부모의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세대가 어느 한때에 와야 됩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타락한 인간, 즉 종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색다른 혈통의 인연을 따라왔기 때문에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참된 아들의 자리, 참된 딸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아들과 딸의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의 근원과 다른 본연의 입장을 찾아야 됩니다. 나는 사탄을 중심삼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내 출발의 기원이 그렇게 되었고 과정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결과도 그런 입장을 모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반드시 새로운 출발을 하여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인류 앞에 새로이 제시한 메시아사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기대(基臺)와 실체기대(實體基臺)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세웠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실체기대가 완결된 후에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체기대가 완결된 후에 메시아를 위한 기대의 자리에 서는 것은 누구냐?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는데 아직까지 그 혈통을 초월하지 못했습니다. 그 혈통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혈통을 바꿔쳐야 하는데, 인간이 자기 혼자서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메시아가 오면 그 메시아를 통하여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악한 혈통을 이어받아 사탄의 후손이 된 나는 선한 혈통을 받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그분을 통하여 아들의 인연으로 다시 바꿔 가져야 됩니다. 바꾸어 갖는 그 자리는 다른 자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아들과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리를 그냥 그대로 순순히 이어받을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하는 비운의 역사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개인의 입장을 그냥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악을 기원으로 한 그 터전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남아지겠다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부정하고 이것을 끊어 버리고 넘어서지 않고는 새로운 초월의 경지를 맞이하여 하나님이 찾고 있는 아들딸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이렇게 악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오시는 메시아는 이와는 반대적인 역사를 가지고 출발하여 우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터전을 닦기 위하여 하나님은 선민사상권(選民思想圈)을 만들어 가지고 보다 나을 수 있는, 보다 충실하고 보다 가치적이고 보다 참될 수 있는 것을 추구하게 하여 타락한 인간 조상 아담 해와보다 높을 수 있는 자리를 가려 나오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의 자리는 아담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아벨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복귀하기 위한 사명을 노아가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자리는 아벨보다 조금 더 높은 자리입니다. 그 다음에 아브라함의 자리는 노아보다 높은 자리이며, 모세의 자리는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리입니다. 또한 세례 요한은 모세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비로소 역사상에 단 하나의 남성으로서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예수와 만나게 된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기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절단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체를 새로이 접붙임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접붙임을 받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전체를 부정하는 자리입니다. 부정을 하는 데는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부정하고, 지금 살고 있는 현재를 부정하고, 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완전히 부정해야 됩니다. 그렇게 완전히 부정하는 자리를 통과하지 않고는 접붙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아무리 좋은 나무라 하더라도, 4천년 묵은 나무라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남아지기를 원한다면 그 나무는 접붙일 수 있는 운명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살고 있는 나무, 접붙임을 받아야 할 그 나무의 입장을 두고 볼 때, 세계를 덮고도 남을 수 있을 만큼 싱싱한 나무일지라도 그 나무 자체를 존중시해 가지고는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운명은 절대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내일의 소망까지도 전부 부정하고 꺾어 버려야만 비로소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기대가 조성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무엇보다도 당연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를 존중시하고 현재를 자랑하고 미래의 희망을 품고 움직이는 자리에서는, 이것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자랑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참된 아들의 자리를 이어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메시아와 만날 수 있는 자리,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그 자리가 행복한 자리라면 모르거니와 만약 비참한 자리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행복한 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맞이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비참한 자리에서도 즐거이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메시아를 맞이하여 그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여러분들 각자의 선조가 다르고, 여러분의 얼굴 얼굴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자리에서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처해 있는 자리와 배경과 입장이 다른 자리에서 자기 나름의 운명을 가려 가지고 메시아를 맞이하여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단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무엇이냐? 감사한 마음으로 자기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자리,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서 메시아를 맞이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자리보다 더 비참한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비참한 자리에서 맞이해야 할 메시아를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처해 있는 단계가 천태만상이기 때문에 메시아를 맞이하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은 무엇이냐? 비참한 길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비참한 길을 가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알고 기쁜 마음으로 희생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만이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런 것을 알고 그런 길을 가려고 하지만, 가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부모와 형제가 있는 동시에 친척이 있는 것이요. 종족이 있는 것이요, 민족이 있는 것이요, 국가가 있는 것이요, 세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서 각자는 소망을 중심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 볼 때, 메시아로부터 접붙임을 받기 위하여 나서는 자리는 지극히 어러석은 자리로 보입니다. 그 자리는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지극히 어리석은 자리로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의 입장을 두고 볼 때, 각기 사정은 다르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가 있고 종족과 민족과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시는 메시아는 국가를 대표한 자리에서 승리권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민족을 거느린 배경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종족의 권위를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니요,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고 또 사랑받을 수 있는 가정의 배경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메시아는 단 한 분입니다. 단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나라를 가진 것도 아니요, 친척을 가진 것도 아니요, 가정을 가진 것도 아니요, 사랑할 수 있는 형제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홀로라는 것입니다. 홀로 고독단신이라는 거예요.
그런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갖고 있던 가정적 기반이라든가 국가적 기반이라든가 자기 나름의 영광의 터전을 일시에 포기해야 됩니다. 이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서 있는 나라를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민족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종족을 부정해야 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가정을 부정해야 됩니다. 또 그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를 부정해야 되고 형제를 부정해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 부정해야 됩니다. 나를 부정해야 돼요.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잘라 버려야 됩니다. 접붙이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아요. 그렇지요?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됩니다. 돌감람나무를 자르지 않으면 접붙일 수 없습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어디를 잘라야 되느냐? 가지를 잘라서는 안 됩니다. 몸뚱이 전체를 뭉텅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잘라야 돼요. 그 몸뚱이를 뭉텅 잘라 가지고 참감람나무의 눈이면 눈, 가지면 가지를 받아 와야 됩니다. 즉, 돌감람나무는 참열매를 보지 못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참감람나무의 눈 하나를 받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라서 큰 나무 전체를 잘라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것을 그 환경에서 보면 '다 같은 것이 아니냐, 다른 것이 무엇이냐'라고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 중의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요, 무지한 사람 중의 지극히 무지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나 형제, 그리고 종족, 민족, 국가가 그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사랑하는 만큼 그 일을 반대하고 가로막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응하게 되는 날에는 돌감람나무 그대로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접붙임받는 일은 오늘날 타락권내에 있어서는 나이 많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장년도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청년도 해야 되고, 소년도 해야 되고, 유아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복중의 애기도 이 접붙임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이상적인 것은 무엇이냐? 태어날 때부터 참감람나무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나기 전서부터 참감람나무가 되어 가지고 태어나면 얼마나 좋겠느냐? 어떻게 태어나는 것이 좋다구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참감람나무의 씨를 받아 가지고 태어날적부터 참감람나무로 태어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역사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머니의 복중에 다시 찾아 들어가 가지고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그것은 얼토당토 않은 말이요, 있을 수가 없는 불가능의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계를 대표한 기독교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하지 않고는,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쳐 주는 곳은 기독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거듭나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로운 참이 탄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나야 된다는 말이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종교 중에서 어떤 종교가 참된 종교냐? 태어날 때부터 참으로 태어나기를 꿈꾸고 희망하며 나오는 종교를 그래도 나은 종교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를 믿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땅 위에 그런 참된 아들딸이 태어나는 날에 기뻐하실 것이냐, 슬퍼하실 것이냐?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딸이라 할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딸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굴복시켜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참된 감람나무로서의 책임을 다했다는 입장에 설수 없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원리를 두고 볼 때 복귀하는 데 있어서 참된 나무가 있다 하더라도 그 나무 혼자서는 복귀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세계를 구원해 가지고서야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감람나무로 오시는 분은 반드시 돌감람나무를 접붙여 그것을 구해 가지고 돌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을 지니고 오시는 것입니다.
참된 아벨이 있으면 참된 가인이 있어야 됩니다. 참부모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참된 자녀의 자리를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부모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참자녀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자녀의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는 이 땅 위에 두 갈래 자녀의 형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가 그것입니다. 이 둘은 어느 한때에 반드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만나 가지고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나 가지고 참감람나무가 돌감람나무를 접붙여야 됩니다. 그리하여 접붙인 돌감람나무와 더불어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자녀가 되려면 아벨과 가인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벨과 가인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거짓 사랑으로 말미암아 갈라진 입장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가인은 사탄으로부터 시작됐고,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가인과 아벨은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두 사람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어느 한때에 갈라진 두 사람이 한 사람형을 이루어 일체가 되었다는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맞을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개인적인 아벨은 개인적인 아벨로서 그냥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면 좋겠는데,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 남아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인류는 개인에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모두 참감람나무를 만나 가지고 돌아가기를 소원한다는 말씀도 거짓으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말이 완결을 보기 위해서는 가인과 아벨이 반드시 일체를 이루어야 됩니다. 개인적 아벨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가정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가정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씨족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씨족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개인적이라는 것은 개인이 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알겠어요? 개인을 중심삼은 아벨 종족이 있다면 개인을 중심삼은 가인 종족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국가권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국가권이 있는 것이요, 개인적 아벨 세계권이 있다면 개인적 가인 세계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 아벨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가인권이 나타나야 됩니다. 세계적 아벨권이 승리하게 되면 국가적 아벨권은 자동적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 아벨권이 승리권을 가졌다면 국가는 물론이요, 민족은 물론이요, 종족은 물론이요, 가정은 물론이요, 개인도 완성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판도와 접할 수 있는 개인권, 개인적인 아벨권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종교를 중심삼은 문화권입니다. 알겠어요?「예」 그 다음에는 세계적으로 남아 있는 개인적 가인 문화권입니다. 이러한 시대는 반드시 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접붙이는 데에 있어서 개인 개인을 잘라서 접붙이는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한꺼번에 잘라 가지고 접붙이는 것을 좋아하시겠습니까? 단 한번에, 단 한번에 세계를 뚝 잘라 가지고 접붙이고자 하는 것이 욕심 많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그렇지 않아요? '아이구! 복귀역사, 그 지루해서 죽겠다. 세계적으로 한꺼번에 왕창 와장창 해 버리면 좋겠는데…' 이렇게 소원하지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세계적 종교권을 만드시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민주세계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국가들이 하나의 사상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세계적 민주권의 운세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또, 세계적인 국가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국민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 국민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종족권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종족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 받을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가정의 운세를 완전히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민주세계라는 것은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세계요, 메시아를 위한 기대로서의 터전입니다. 이러한 세계가 있는 반면 이러한 세계를 반대하는 반대적인 세계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가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서로가 합하면 좋겠는데 서로가 반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두 패로 갈라지지 않으면 가인 아벨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가인과 세계적인 아벨이, 하나는 이쪽에서 하나는 저쪽에서 와 가지고 정상의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서 있긴 서 있는데 죽자살자하며 하나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자살자하고 반대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인 아벨의 형태입니다. 거 참 이상하지요?
이것을 증명하는 세계가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입니다. 하나는'하나님은 있다 절대적으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도 절대적으로 있다' 하는 세계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도 절대적으로 없다' 하는 세계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패입니까?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하는 패예요? 「예」 절대적으로 있다고 생각해요?「예」 여러분들, 그것을 알아요. 믿어요? (웃음)「알고 믿습니다」 아나요, 믿나요? 똑똑히 대답해 봐요. 「알고 믿습니다」 알고 믿어요?「예」 믿고 아나요, 알고 믿나요?「알고 믿습니다」 이야! 굉장하구만. (웃음)
그것이 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느냐? '저것이 그렇게 되어 가지고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안식할 수 있는 천국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저것이 저렇게 되지 않고는 세계 복귀는 있을 수 없다'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되느냐? 어떤 사람은 '나는 가인 싫어'라고 하는데 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웃음) 가인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럼 아벨을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요. 알기는 아는구만. 그러면 왜 그토록 싫은 가인과 내가 필연적으로 이마를 맞대고 공동으로 결판을 내야 할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동기대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이치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러면 도대체 인간을 심을 때 어떻게 심었느냐? 어떻게 된 꼬락서니를 심었느냐? 가인과 아벨이 투닥거리는 그런 씨를 갖다 심은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투닥거리는 것이 싸우는 거예요, 친한 거예요? 싸움하는 그런 씨를 갖다 심었다는 거예요. 그 열매가 누구냐? 나 개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개인 둘을 합하면 가정이 되는 것이요, 거기에 둘을 더하면 사위기대가 되는 것이요, 거기에 또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씨족이 되는 것이요, 씨족이 또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민족이 되는 것이요, 민족이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국가가 되는 것이요, 국가가 넷, 넷, 넷이 달라붙으면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세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인간 개인에서부터 심어진 것에서 줄기가 나고 가지가 뻗고 잎사귀가 나서 된 것이 오늘날 세계의 인류라는 꼬락서니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인류라는 동물들이라는 거예요. 선생님 말이 틀렸어요. 맞았어요? 맞았지요?「예」
그러면, 하나님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에게도 둘이 아닌 하나의 절대적인 목적이 있어야 할 텐데 여러분의 목적은 몇입니까? 하나예요, 둘이예요?「하나입니다」 똑똑히 대답해요. 하나예요, 둘이예요?「하나입니다」 '밥을 먹고 나서도 하나요, 아침에 일어 나서도 하나요, 학교에 가서도 하나고, 저녁이 되어도 하나며, 젊었을 때도 하나요, 늙어서도 하나고, 죽을 때도 하나다' 이럴 수 있겠어요?「예」
그러면 나 자신을 두고 볼 때, 마음도 하나고 몸도 하나인데, 이 몸과 마음이 싸움하는 하나예요, 좋아하는 하나예요?「좋아하는 하나입니다」 그래요? (웃음) 몸하고 마음하고 서로 좋아해요? 서로가 짝짜꿍해 가지고 밤낮으로 좋아해요? 좋아해요, 나빠해요? 가끔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투닥거리지요?「예」 가끔이예요? 그 투닥거리는 싸움이 어느 한때 '끝났다' 하는 광고가 붙은 것을 봤어요? (웃음) 투닥거리던 싸움이 끝나 가지고 휴전협정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 봤어요? (웃음) 들어 봤어요, 못들어 봤어요? 못 들어 봤지요?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어디에서? 세계에서?「내 속에서요」 이것이 문제예요.
여러분 자신은 하나예요, 둘이예요? 두 사람이예요, 한 사람이예요? 「하나입니다」 거짓말이예요, 거짓말! 마음은 이렇게 가자고 하는데 몸은 '아이고 나는 싫어, 이렇게 가자'고 하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웃음)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모양은 하나 같은데 내용은 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모양은 하나 같은데 내용은 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느냐? 절대적인 하나님이 장난치기 위하여 그렇게 만들었다면 그놈의 하나님은 미친 하나님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다면 하나님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원론이니 뭐니 하는 복잡한 사상들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어서 그 하나님의 사상을 중심삼고 동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귀결이 되어야 하고, 서로 가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또한 절대적인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귀결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체를 두고 동,서의 방향처럼 반대되는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통일이 되어 가지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때가 있을 것이냐? 그냥 그대로 하나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냥 그대로 하나될 것 같아요? 안 됩니다. 잘라 버리고 접붙이기 전에는 하나될 수 없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아이고 나는 희생이고 뭣이고 싫어. 접을 붙일 바에는 세계적인 아벨권에서 세계적인 가인권을 잘라 버리고 후다닥 접을 붙여 버리면 나는 고생을 않지. 아이고 나는 고생은 싫어. 우리집도 이렇게 고생하는데 더 이상 고생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안 했어요?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인과 아벨이 하나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하나될 수 있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이 세계를 두고 볼 때, 가인적인 개인은 많습니다. 가인적인 가정도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인 가정에서 태어났지요? 아버지 어머니가 다 같아요? 다르지요? 세계에는 다른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또 가인적 씨족이 많습니다. 그래서 김 군, 박 군, 임 군 등 여러 성이 많은 거예요. 뿐만 아니라 가인적 민족도 많습니다. 시시한 가인 민족이 수두룩하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그렇습니다. 한국, 일본, 미국 등 시시한 가인 나라가 우글우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세계적으로 볼 때, 세계적인 가인 나라가 많다고 할 수 있어요? 세계적이라고 할 때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세계 가운데에는 나라가 백개도 천 개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라는 거예요. 세계적인 아벨 나라, 즉 아벨의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와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천지 가운데에 가인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가 다 이루어졌으니, 이 세계가 메시아를 중심삼고 그 앞에 절대 복종하고 절대 순응하여 그와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면 하늘의 섭리는 한꺼번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메시아는 세계적입니까, 개인적입니까?「세계적입니다」 아벨적인 입장에서는 세계적이 아닙니다. 외톨이예요, 외톨이. 하나라는 거예요. 그 하나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전체를 몽땅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 하나는 몇대 일입니까? 숫자로 보게 되면 몇억만분의 일이지요? 그렇지요? 그것을 자르려고 할 때,'어서 잘라라, 잘한다, 잘해'이럴 수 있어요? 전문가가 아니면 모르는 것입니다. 그 전문가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전문가예요.
그러면 잘라야 되겠어요, 안 잘라야 되겠어요?「잘라야 됩니다」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골통 가운데, 그리고 몸 가운데 흐르고 있는 시시한, 시시껄껄한 가인적인 사상이라든가 가인적인 존재의식이라든가 가인적인 혈통을 와장창 잘라 버려야 됩니다. 다 잘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사상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 사상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되겠어요? 그것을 깨 버리고 무슨 사상을 가져야 돼요? 예수의 사상을 접붙임받아야 됩니다. '나는 이렇게 살려고 했는데…' 하는 마음을 그냥 그대로 가지고 살아서 되겠어요? 안 됩니다. 아벨을 본받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하나에서부터 천만사까지 모든 것을 바꿔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접붙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지요? 아벨을 위하여 목숨을 몽땅 바치고 아벨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한 사람만이 아벨로부터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접붙임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단 한마디의 말로 결론을 지어 놓으셨으니, 완전히 접붙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죽고자 하는 사람이요, 접붙임받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게 나왔다는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패입니까? 죽고자 하는 패예요, 살고자 하는 패예요?「죽고자 하는 패요」 죽되 한 십년 걸려서 죽겠다는 패예요, 한꺼 번에 와장창 죽겠다는 패예요? 어떤 패예요? 죽되 어디서 어떻게 죽을 거예요? 다 놔두고 자기 혼자 죽어서 접붙임을 받겠다고 '하나님, 나 혼자 죽어서 접붙임을 받을 거요. 자요. 죽습니다'하고서는 대까닥 목을 잘라 죽게 되면 (웃음) 어떻게 되겠어요? 접붙임받을 눈이라든가 가지가 없이 죽으면 그것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접을 붙일 수 있는 눈이나 가지를 가지고 있어도 겨울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름에도 안 됩니다. 봄날을 맞이하여 가지고 적재적소에서 그 눈접을 바라보면서 목을 딱딱 잘라야 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만일 그때 아버지 어머니가 내 목을 잘라 주지 않겠다고 하면 그 아버지 어머니는 무엇입니까? 원수예요, 친구예요? 또 형님 누나가 내목을 자르게끔 나를 내몰아 주지 않으면 그 형님 누나가 원수예요, 친구예요?「원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만 들어오게 되면 목을 자르라고 막 때려 내모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려 모는 놀음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선생님이 지어내서 하는 말이지' 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가 죽을 때에 죽지 않겠다고 도망을 갔던 베드로, 야고보는 어떻게 되었어요? 본래 죽을 자리에서 죽었더라면 영육을 통한 승리의 왕좌에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인데, 죽지 않겠다고 도망가다 붙들려 죽어 가지고 한쪽밖에 완성을 못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시 육(肉)이 죽어야 할 고비가 남아진 거예요.
그러면 죽는 데는 따로따로 죽는 것이 좋겠어요, 한꺼번에 죽는 것이 좋겠어요?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지긋지긋한 말을 하더라. 잡아죽이겠다는 얘기를 하더라. 아이고 난 무서워'(웃음) 할지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도망가지는 말아요. 아직도 사무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목을 자르더라도 사무가 끝난 후에 자르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 심어진 씨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지금 두 패로 갈라져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거두어 들일 때가 되거든 인류역사의 가을이 온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한 패는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한 패는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몸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한 패는 마음의 천국을 지향하고, 한 패는 도리고 의리고 뭣이고 없이 배때기가 좋아하는 대로 먹고 살기만 합니다. 의리고 뭣이고 없다는 것입니다.
두 패가 겨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러면 이것이 언제 하나로 통일될 것이냐? 언제 통일되겠어요? 통일될 가망성이 있을 것 같아요?「예」 잘라 버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둘로 된 것을 잘라 버리고 하나가 되어서 예수를 닮아 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하나님의 혈통을 타고 왔기 때문에 그 몸과 마음이 하나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잇는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이지 두 길을 왔다갔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왔다갔다할 수 있는 소질이 많은 사람은 사탄의 사랑을 받는 사탄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접을 붙이는 데 있어서 늙어서 등이 꼬부라져 가지고 붙일 것이냐, 장년시대에 붙일 것이냐? 아니면 청년시대에 접붙이기를 원하느냐, 소년시대에 접붙이기를 원하느냐? 어느 시대에 접붙이기를 원해요? 태어나기 전부터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태어나자마자 접붙임받은 것과 같이 됐으면 좋겠지요? 그러기를 바라지요?「예」 그런 일을 하나님은 역사과정을 통해서 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다시 어머니 뱃속을 찾아 들어가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웃음) 그 어머니는 사탄세계의 그대로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탄이 참소할 조건에서 벗어난 어머니예요. 그런 어머니를 만나 가지고 그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 뒤에 있는 사람, 들려요?「예」'사탄세계의 참소를 받는 어머니의 배는 싫어. 나는 사탄세계의 참소를 받지 않는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기를 원해' 하는 자리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고 싶어요?「예」
그러면,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 되느냐? 어머니의 뱃속이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그 아버지가 더러우면 어때요? 그 아버지가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씨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사탄권내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밭이요 아버지는 씨앗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어요, 어머니한테서 태어났어요?「아버지한테서요」 엄마한테서 태어났지요? 아버지한테서 태어났어요?「예」 그래요, 아버지가 씨앗이니까 여러분은 아버지한테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악한 아버지의 씨, 사탄으로부터 참소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씨를 받아 가지고 태어나면 되겠어요? 사탄의 참소를 절대 받지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버지의 씨를 받고 태어난 아들딸이 나오거들랑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니라! 알겠어요?「예」
그러면 그런 씨앗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돌감람나무 같은 나쁜 종자들로 꽉차 있는 밭에다 그냥 그대로 씨를 뿌려서 되겠느냐, 아니면 그것을 모두 청산하고 새로이 접붙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 씨를 뿌려야 되겠느냐?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모두 청산해 가지고 준비된 터전 위에 씨앗을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된 나라가 있어야 되고, 민족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나오는 데는 나라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민족으로부터, 민족은 종족으로부터, 종족은 가정으로부터, 가정은 개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탄을 대하여 절대적으로 이긴 개인이 나오지 않고는 그런 가정이 나오지 않는 것이요, 그런 가정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종족이 나오지 않는 것이요, 그런 종족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민족이 나오지 않는 것이요, 그런 민족이 나오지 않으면 그런 나라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세계적으로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온 사람이 누구냐? 야곱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싸워서 이겼다는 뜻입니다. 싸워서 졌다는 말이라고요?「아니요」 이겼다는 말이라는 거예요. 어떤 싸움에서 이겼다는 것이냐? 영적인 싸움에서 사탄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할 때 환도뼈가 부러졌지만 이겼거든요. 그리고 라반이 그렇게 수작을 하여 속여 먹었어도 그것을 다 견디고 결국 이겼다는 입장에 섰거든요. 그렇지요?
이렇게 이긴 개인이 나왔으니 이긴 가정이 나오는 것이요, 이긴 가정이 나왔으니 이긴 종족이 나오는 것이요, 이긴 종족이 나왔으니 이긴 민족이 나오는 것이요, 이긴 민족이 나왔으니 이긴 국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 국가가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이스라엘입니다. 이렇듯 이긴 국가가 나왔기 때문에 이긴 종교가 있어야 되는데 그 종교가 유대교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경에 그런 내용이 어디 있느냐? 성경으로 돌아가 봅시다. 성경이라는 말이 좋은 말이에요, 나쁜 말이예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성서라고 하지요? 이 성서라는 말이 좋은 글이라는 말이예요, 나쁜 글이라는 말이예요? 좋은 글이라는 말이지요. 성서의 성(聖) 자는 귀 이(耳) 변에 입 구(口)밑에 임금 왕(王) 자지요? 귀가 왕이 되어야 되고 입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거룩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지요? 좋은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 제일 좋은 책이겠어요. 제일 나쁜 책이겠어요?「제일 좋은 책입니다」 좋은 것 중에서 중간 정도만 되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고로 좋은 책을 원합니다. 최고라야 그 책에 성서(聖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입니다. 중간 정도의 좋은 책은 성서가 아니고 중성경쯤 될지 모르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진짜 좋은 것을 원해요, 중간 정도 좋은 것을 원해요?「진짜 좋은 것이요」 맛을 봐도 진짜 단맛이 좋아요, 중간쯤 단맛, 뭐라 할까, 떱떨한 맛이 좋아요? 진짜, 진짜, 진짜 단맛이 좋아요?「예」 너무 달아서 혀를 대자마자 '아?' 할 수 있는 맛이 좋지요? 너무 달게 되면 어떤 맛이 나요? 쓰지요? 진짜 단 것은 쓴 것하고 통하더라 이겁니다. 그거 이상하지요?
그러면, 성경이 좋은 책이 되기 위해서는 대관절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어야 되느냐? 어머니의 뱃속과 아버지의 뼛골 속에 선한 밭과 선한 씨를 가꿀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절대 좋은 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이 선한 뱃속이 되어야 되고, 그 뱃속에 씨를 받는 데 있어서도 선한 아버지의 씨를 받을 수 있는 터전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못한다면 성서는 인류 앞에 진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인류의 역사는 타락한 역사이기 때문에 꺼꿀잡이로 가야 됩니다. 거꾸로 바꿔치기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악이 먼저 나왔는데 그 악을 그대로 두어서 되겠어요? 언제든 선이 악을 타고 눌러 앉아야지요. 그렇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교차로가 생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차로를 원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교차로는 몇 갈래예요?「두 갈래요」 네 갈래지요?「두 갈래입니다」 교차로가 네 갈래지 왜 두 갈래예요?(웃음) 두 갈래예요, 네 갈래예요?「두 갈래입니다」 저렇게…. 이제껏 얘기를 해도…. 교차로가 무슨 두 갈래예요. 네 갈래지. 교차로에서 보면 네 갈래 아니예요?
그러면 세상이 네 갈래가 되었느냐? 안 되었으니 아직까지 교차시대가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우거하는 자리는 두 갈래입니다. 이 교차로가 남아 있는 한 악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나 자체를 두고 볼 때도 하나님이 좋아하는 나와 사탄이 좋아하는 내가 있는 것입니다. 양심을 좋아하는 이는 하나님이고 몸을 좋아하는 이는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몇 갈래예요?「두 갈래요」 두 갈래예요? 「네 갈래입니다」 네 갈래잖아요. 그렇지요?「예」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세계도 네 갈래로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적 외적인 형과 하나님편적 내적인 형이 있고, 사탄편적 외적인 형과 사탄편적 내적 형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이 세상의 끝날이 되면, 교차로시대가 되면 반드시 네 갈래 형태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알 수 있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때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고자 할 것이 아니라 죽고자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럴 수 있겠어요?「예」
참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을 때에 십자가를 지고 죽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곁에는 오른편 강도가 있었고 왼편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라바가 있었고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몇 갈래 입니까? 네 갈래지요. 그와 같은 입장에서도 네 갈래였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
그 네 갈래의 사람들이 예수를 중심삼고 종적으로 하나되고 횡적으로 하나가 되게 되면 세계는 통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될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와 바라바가 하나될 수 있어요? 공산세계와 민주세계가 하나될 수 있어요? 우익과 좌익이 하나될 수 있어요? 무신론과 유신론이 하나될 수 있어요? 이들이 하나되는 날 세계는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진리의 본체요, 참사람으로 왔습니다. 그 예수는 어떤 존재냐 하면 진리의 실체를 대신한 세계적 대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중심삼고 네 갈래의 형이 있는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형의 세계도 있고 왼편 강도형의 세계도 있고 바라바형의 세계도 있고 예수형의 세계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자리에서 죽었느냐? 그런 교차로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그 교차로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좌익과 우익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면 왼편 강도와 오른편 강도에서 부터입니다. 거기서부터 세계적으로 좌익세계와 우익세계가 나타난 것입니다. 오른편 강도가 왼편 강도를 비웃었나요, 왼편 강도가 오른편 강도를 비웃었나요? 왼편 강도가 오른편 강도를 비웃었지요. 그래서 공산세 계가 하나님편을 대하여 비난하고 비소하는 것입니다. 좌익이라는 말을 어디서 갖다 붙였느냐면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렇게 심은 거예요. 그렇게 심은 것은 그렇게 열매맺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좌익이 된 것입니다.
우익은 무엇이냐 하면 민주세계입니다. 하늘편이예요. '야, 죄지은 녀석아, 우리는 죽어도 되지만 이분은 죽어서는 안 된다' 하고 변명했던 사람이 오른편 강도입니다. 그 오른편 강도와 같이 하늘편을 변명하는 패들이 모여서 이룬 세계가 민주세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그 다음에 남아진 것이 무엇이냐? 두 패입니다. 아무리 오른편 강도와 왼편 강도 같은 무리가 나오더라도 그들은 예수 자신의 뜻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자신이 뜻을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바라바가 있었지요. 바라바는 누구냐 하면 살인 강도입니다, 흉악한 범죄자예요. 그런 그가 혜택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가 죽는 대신에 바라바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진짜가 죽는 바람에 가짜가 진짜의 자리로 들어가 득세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공산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좌익은 외적이요 바라바는 내적입니다. 하나님편을 중심삼고 볼 때는 우익이 외적이고 예수는 내적이지요. 이렇게 네 갈래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상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바라바권이 회회교입니다. 회회교는 구약 성경을 본따서 자기들의 교리를 만들어 가지고 기독교를 극히 반대하는 패입니다. 회회교는 알라신과 코란경을 믿지 않으려면 칼을 받으라는 거지요? 그렇지만 예수는 어때요? 그와 반대지요? 예수는 '너희를 살리기 위해 나는 죽는다'고 했잖아요? 반대지요?
그러면 끝날에는 어떻게 되느냐? 사탄편의 외적인 나라와 내적인 나라가 합할 때가 오는 것이요, 하나님편의 외적인 나라와 내적인 나라가 합하는 때가 틀림없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사조는 지금까지 그 곳을 향하여 진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그 외적인 형이 공산세계요, 내적인 형이 회회교권입니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화합할 수 있는 내용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소련 공산당과 회회교 국가가 화합하여 민주세계와 기독교를 반대할 가능성이 백 퍼센트 농후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민주세계는 무엇을 찾아가야 되느냐? 아랍권, 회회교권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낫세르의 세력이 커 가고 있는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호출 명령을 내린 거예요.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민주세계 제일의 원수가 누구냐? 좌익인 동시에 회회교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지금 회회교권에 선교사를 못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민주세계의 사상적 중심이 되는 기독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완전히 통일되어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계가 교차로의 시대권에 왔습니까, 안 왔습니까?「왔습니다」 이런 교차로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아버지 어머니를 중심삼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중심삼고 볼 때 어머니도 안팎의 사람이 있습니다. 속 사람과 바깥 사람이 있지요. 「예」 사탄을 중심삼고 보면 바깥 사람은 사탄의 무대입니다. 외적인 몸이 사탄의 무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양심은 하나님의 무대요, 그 양심을 무대로 하여 우주적인 하나님의 본체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몸 마음이 분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몸과 본능이 좋아하는 내적인 힘이 하나되고, 내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안팎으로 완전히 하나 되어야 됩니다. 몸과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나되면 하나님도 사탄도 손을 댈래야 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통일적인 사람이 되면 교차로에서 죽어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수습하여 딱 버티고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교차로에서도 자기가 가고픈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안되어 있어요?「안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고 싶지요?「예」 그런데 그렇게 되기가 얼마나 힘드느냐? 역사를 이겨야 되고, 인류를 이겨야 되고, 천지의 수난길을 다 거쳐 이겨야 하고, 천지의 행복권을 다 차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아까 말하던 성서 얘기로 돌아갑시다. 성서가 제일 좋은 책이라면 그 책이 인간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차로에 가서야 비로소 해결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교차로가 있어야 되고, 세계적인 교차로가 있어야 됩니다. 가인 아벨이 교차로에서 만날 수 있는 개인적인 시대, 세계적인 시대가 우리의 눈앞에 전개되는 때가 되면 개인적인 끝날이요, 세계적인 끝날이 온 줄 알아야 됩니다. 그때가 어느때냐? 천년 전이냐, 지금이냐?「지금입니다」 그런 교차로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여러분 발벗고 나서서 목숨을 내놓고 한번 해보고 싶어요?「예」 정말 그래요?「예」 해보고 싶어요, 안싶어요?「해보고 싶습니다」 어디 해보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정말그래요?「예」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이기겠어요? 십리만 뛰어도 오리나 떨어질 텐데, 뭐. 그러니까, 여자들은 했댔자 이기지도 못할 테니까 후퇴하라구요. 여자들도 하라면 할래요? 여자들은 몸으로는 남자들보다 못 뛰지만 마음으로는 몇 배, 몇백 배 이긴다구요. 그렇지요?「예」 그러니 마음으로는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봅시다. 성경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하면,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을 '이놈아' 하고 때려 가지고 합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의 간격을 좁혀 나가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얘기할까요? 그만 하고 말지요?「아니요」 아, 나 배고파 죽겠다구. (웃음) 괜찮아요?「예」 이 자리에는 이 말씀을 듣기 위하여 십리 길 천리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남해 지방에서 걸어온 패들이 있는 것을 내가 안다구요. 그러니 '며칠씩 걸어왔는데 말씀이 뭐고…. 아이구, 본부교회에 가게 되면 좋은 자리에서 쌀밥을 배부르게 먹고 기분 좋게 잠잘 줄 알았는데 아이구, 이 신세가 뭐야' (웃음)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리 신세를 망쳤더라도 여기에 이런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기준이 있으니 천지에 행복의 싹이 트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성경이 제일 좋은 책이라면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몸의 사람과 마음의 사람을 하나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자꾸 내려가야 됩니다. 그러니 자꾸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세계에서부터 나라를 지나고, 나라에서부터 민족을 지나고, 민족에서부터 종족을 지나고, 종족에서부터 가정을 지나, 가정에서부터 어머니 뱃속을 통해 가지고 아버지 뱃속으로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웃음) 그런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일을 하는 데 가담하면 좋겠어요?「예」
앞으로는 이 타락한 세계를 잘라 버리고 타락한 국가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잘라 버릴 때는 피가 나고 별의별 요지경이 다 벌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와 국가를 자르고 나면 개인을 자를 때는 피나고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자극적인 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선생님도 표정을 이렇게 짓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여러분들이 이렇게 만난 것이 몇십 년만의 인연 끝에 이루어진 것인데, 일생에 처음 갖는 만남일지도 모르는 귀한 인연인데 한번 만났다가 그냥 잊어버리면 되겠어요? '아! 그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씀을 일생 동안 잊지 못하 겠다. 죽어도 못 잊겠다. 통일교회를 배반하려고 해도 선생님의 그때 그말씀이 생각나서 배반을 못 하겠다'라고 할 수 있는 자극을 남겨 주기 위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본래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알겠어요?「예」
인간 조상 아담 가정에서 누가 태어났다고요? 가인과 아벨이 태어났습니다. 가인이 형이고 아벨이 동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형이 동생 되고 동생이 형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반대예요. 순리예요? 동생이 형이 될 수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절대로 될 수 없지요. 그렇지만 구원섭리에서는 그것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있다는 거예요?「있다는 겁니다」 억지이지요? 동생이. 형님을 대하여 형님 노릇 하지 말고 동생에 굴복하라고 할 수 있어요? 동생이 밥 먹고 있는 형에게 '형아 이리 와, 저리 가' 할 수 있어요?
여러분, 흥부와 놀부의 얘기를 알지요? 흥부가 형이예요. 놀부가 형이예요?「놀부요」 놀부가 흥부에게 '야, 내려와, 이리 와' 이럴 수는 있지만, 흥부가 놀부에게 '야, 이리 와?' 이럴 수 있어요?「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필이면 왜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일을 하게 되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느냐? 인류의 조상부터 몇천 대 계승한 손자들이 있을 것인데, 끝날에는 몇천 대 할아버지가 몇천 대 손자 앞에 몇천 대의 조상이 아니라 몇천 대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 된다는 말이 있지요? 이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되고, 아들이 아버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아들이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때에는 아버지가 곤룡포를 입고 있는 아들에게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천지개벽입니다. 그때가 천지개벽이 벌어지는 때입니다. 세상에 있는 놀음을 하는 것은 천지개벽이 아니지요? 그때는 왼눈이 바른눈이 되고 바른눈이 왼눈이 되고, 왼코가 바른코가 되고 바른코가 왼코가 되고, 왼손이 바른손이 되고 바른손이 왼손이 된다는 겁니다. 밥을 먹는 데도 이렇게 (몸짓을 하심) 먹어야 할 텐데 거꾸로 들고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거꾸로예요. (웃음) 전부가 거꾸로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잘된 세상입니까, 잘못된 세상입니까?「잘못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냥 놔두고 싶어요, 한번 뒤집고 싶어요?「뒤집고 싶습니다」 한번 뒤집어야 되겠지요?「예」 그러려면 밑창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뒤집는데 아버지는 아버지끼리 아들은 아들끼리 뒤집는 것이 뒤집는 거예요? 아버지들은 아들들을 향해 '우리들은 위에서 뒤집을 테니 너희들은 아래에서 뒤집을래' 할지 모르지만 아들들은 '에이 모르겠다. 아버지들이 내려가소' 할 거란 말예요. (웃음) 구시대와 신시대는 다르지요? 구시대 사람들이 신시대는 물러가라고 하겠어요? 신시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이 구시대는 물러가라고 하겠어요? 요즘 귀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구시대라고, 세대가 다르다고 주장하지요?
그러면 누가 새시대를 좋아해요? 다른 시대를 좋아하는 패가 젊은이들이예요, 늙은이들이예요?「젊은이요」 젊은 사람들인데 그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악한 사람이 있고 선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참된 젊은 세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젊은 세대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합니다. 시종여일해야 돼요. 참이 일본에 가서는 악이고 한국에 와서는 참이 될 수 있어요? 원수의 나라에 가서는 악이 되고 자기 나라에 와서는 참이 되는 거예요?「아닙니다」 참은 천국에 들어가도 참이요, 지옥에 들어가도 참인 것입니다. 금은 용광로에 들어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돌이나 철과 함께 용광로에 있을 때 다 같아 보이지만 녹아내리게 될 때는 금은 금대로 나오고 돌은 돌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이 될 거예요, 돌이 될 거예요?「금이요」 그래 여러분은 진짜예요, 가짜예요?「진짜요」 진짜만이 참이라는 것입니다. 진짜는 변할 줄 몰라야 되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 가운데에는 진짜 젊은 세대가 있고 가짜 젊은 세대가 있는데 오늘 여기에 모인 통일교회 패들은 진짜 참된 젊은 세대가 되기 위해서 모였어요, 가짜 젊은 세대가 되기 위해서 모였어요?「진짜요」 진짜요? (웃음)
그 진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되느냐? 눈에서부터요?「마음에서부터요」 마음에서부터, 생명에서부터 진짜가 시작되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진짜예요? 알고 보니 돌감람나무지요? 기분 나쁘게 가짜 중에서도 왕가짜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나빠요」 얼마나 나빠요? 죽는 것보다 더 나빠야 됩니다. 그래야 살아날 수 있는 거예요. 알겠어요?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자 봅시다. 성경이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가인, 아벨시대에 '가인아, 너는 아벨에게 굴복할지어다'라고 한 것은 누구의 명령이예요? 우주의 주인이신 참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 참된 하나님 앞에 하나되어야 되겠어요, 안 되어야 되겠어요? 「되어야 됩니다」 하나되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요, 하나되면 흥하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 노력하면 흥하는 것이요, 그것을 반대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가인 입장의 사람이 흥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동생을 모시고 나가야 됩니다. 알겠나요? 누나가 동생을 모시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 아버지가 아들을 모시고, 형이 동생을 모시고, 누나가 동생을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어요? 그럴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선생이 제자를 모시고 살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은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거예요. 죽는 것보다 더 힘이 든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이 참된 하나님의 명령이라 할 때는 해야 되겠어요, 안해야 되겠어요?「해야 됩니다」 자기의 체면도, 위신도, 전통도, 습관도 모두 버려야 됩니다. 그런 요건이 남아 있을 때는 반드시 스톱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구원섭리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인이 아벨한테 굴복해야 할텐데, 반대로 형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아벨을 부려먹고 죽인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성근성이예요. 그렇지요? 그래서 다시 그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하다가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돼 나오는 것입니다.
노아를 중심삼고 그런 놀음을 했지만 실패하고, 아브라함 시대에 가서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누구의 명령에 의해서 바꿔치기하는 것입니까? 참된 하나님의 명령을 중심삼고 바꿔치기해야 하는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의 형이 누구입니까? 「에서요」 이것이 점점점 가까와집니다. 가인과 아벨시대에는 형제시대였기 때문에 형제를 바꿔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다음 점점 가까와져서 에서와 야곱은 형제는 형제인데 쌍태로 태어났습니다. 쌍동이 형제라는 거예요. 그렇지요? 쌍동이 형제는 바꿔치기하는 데 조금 낫습니다. 쌍동이끼리는 형이 울게 되면 동생도 슬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말들어 봤어요?「예」 형이 기쁜 일이 있으면 동생도 왠지 모르게 기뻐진다는 것입니다. 통하는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쌍동이가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쌍동이인 사람은 알거라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형님이 길을 가다가 다리가 부러지면 동생도 다리가 부러지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거라구요. 하나될 수 있는 소질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예요.
형제로 태어나 가지고 형과 동생의 자리가 확실한 입장에서 바꿔치기 하는 것과, 감정도 같고 생활수준도 비슷한 쌍동이를 바꿔치기하는 것중에 어느 쪽이 더 쉬울 것 같아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쉬운 방법을 통해서 바꿔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야곱은 그 어머니 리브가와 속닥속닥해 가지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지요? 축복을 받을 때 강제로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에서가 사냥갔다 돌아와서 출출할 때 마침 야곱이 팥죽을 끓이고 있으니까,'야, 야곱아 팥죽 한 그릇 다오'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예. 형님, 형님에게 이 팥죽을 주고 싶기는 주고 싶은데 조건이 있습니다' 했지요. 에서가 다시 '무슨 조건이냐'하니 '형님이 될 수 있는 장자의 권리를 나에게 파소'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배가 고픈 에서는 '장자권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옛다 가져라'하고 철석같이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에서는 팥죽하고 떡 한두 개를 좋다구나 하고 먹고 야곱은 좋다구나 하고 받은 것입니다. 약속을 했으니 실천을 해야지요.
약속을 실천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약속을 실천하는 것은 죄가 아니예요.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것을 도와주지 않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그러니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도와준 것이 나쁜 것이예요, 좋은 것이예요?「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 거예요.
야곱은 어머니와 슬쩍 해 가지고 양털을 덮고 축복을 받아 장자의 직분, 장자의 권한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니 에서의 기분이 나빴겠어요, 좋았겠어요? 나빴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때려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야곱을 나쁘다고 하지 에서를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뜻을 중심삼고 세상에 없는 놀음을 한 거예요. 그렇지요? 그 일을 하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어요? 아닙니다. 당당했던 것입니다.
그런 야곱이 에서에게 쫓기어 하란에 가서 21년 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돌아올 때, 에서가 죽이려 하자 와이로(わいろ)를 써 가면서- 와이로는 그럴 때 써먹는 거라구요- 사바사바 해 가지고 '나의 종들은 모두 형님의 종이요, 내가 가진 재산도 내 재산이 아니라 모두 형님의 재산입니다. 형님이 알아보시는 이 모든 것을 바치니 받으시고 내가 21년 동안 형님을 몰라 뵈었던 것을 오늘로 다 용서해 주시오' 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죽일까봐 그 종들을 앞에 세워 가지고 말예요. 그거 얄밉지요?
또, 그가 고향이 가까운 얍복강가에서 아침을 기다릴 때 천사가 나타나 가지고 밤새껏 씨름을 했지요. 그때 야곱이 어떻게 했나요?'내 축복을 빼앗아 가려 한다면 죽더라도 이것을 놓칠 수 없다. 네가 천사라면 너도 나를 축복하라. 그러지 않으면 이 손을 놓지 않겠다'라고 하며 밤새껏 손을 놓지 않은 야곱을 생각해 보세요. 그 모양이 어땠겠어요? 환도뼈가 부러져 허리를 못 쓰게 되어 끌려 다니면서도 천사장을 잡은 그 손을 놓았어요, 안 놓았어요? 안 놓았던 것입니다. '이놈의 손아, 절대 놓으면 안된다'고 하며 생사 이상의 강한 마음을 가지고 손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그때 만일, 손이 미끄러졌으면 어땠을까요? 손을 놓칠 우려가 있으면 입으로 물고, 발로 감아 가지고라도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을 것입니다. 그런 야곱을 가만히 보니까 대단한 녀석이거든요. 야곱은 '네가 나를 죽이려고? 환도뼈가 부러졌더라도 안 놓는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축복해 주기 전에는 안 놓는다고 한 것입니다. 악착 같지요? 악착 반대가 뭔가요? 슬쩍인가요? 슬쩍한 거예요, 악착같이 한거예요? 얼마나 악착같았느냐? 죽을 정도로 악착같았다는 것입니다. 끝내 그 손을 놓았어요, 안 놓았어요? 안 놓았어요. '요놈아, 환도뼈도 부러졌으니 내가 죽을 바에는 원수를 갚고 죽겠다'고 하며 달라붙었던 것입니다.
원수를 갚는데 발길로 찼겠어요? 손으로 그저 살뭉텅이든 뭐든, 배 껍질이든 뭐든 악착같이 잡고 늘어졌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게 악착같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악착같았겠어요? 그 모양이 어떠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입이 찌그러지고 코가 찌그러지고 눈이 찌그러지고 다 찌그러졌을 것입니다. 그러기를 몇 시간? 밤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지독하지요? 그러니까, 천사도 같이 죽기는 싫으니까 할 수 없이 야곱에게 '그래 내가 너한테 졌다. 그러니 네 소원인 축복을 해주마'했던 것입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 선생님 말이 들려요? 안 들리면 섭섭하겠지만, 늦게 왔으니 할수없지요. 정말로 알고 싶거든. 먼저 와서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아벨님이여, 나는 가인이니 용서하시요'하고 꽉 매달려서 '내게 선생님이 하신 말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못 갑니다'할 수 있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비로소 쌍동이의 동생이 이겼다는 것입니다. 이겼지요? 그러니 천지가 뒤집어졌어요, 안 뒤집어졌어요? 뒤집어지기는 뒤집어졌는데 야곱과 에서가 다 큰 다음에 뒤집어졌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겼지만 어느때에 이겼느냐 하면 다 커 가지고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참소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비록 이겼지만 어릴 때에는 이기지 못하지 않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야곱이 에서를 이겼던 그 나이 이하인 사람들은 내가 지배할 수 있다'고 참소조건을 걸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 악착같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사탄의 참소조건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막기 위한 섭리를 다시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쌍태로 태어났으되 40대에 싸움을 시작해 가지고 나이가 많아서 굴복시켰으니 그 이전은 아직까지 사탄한테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야곱이 에서를 이겼지만 어린 연령권에서 굴복시키지는 못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쌍태를 중심삼고 다시 그 조건을 청산짓는 섭리를 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 조건을 청산짓는 데는 어디에서 청산지어야 되느냐 하면 이 땅에 나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뱃속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승리권을 가졌기 때문에 그 승리의 터전을 중심삼고 복중에서 승리할 수 있는 야곱의 후계자를 태어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과 사상을 이어받은 여성을 찾아 그 복중에서부터 태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다말을 통해서 태어난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다말을 알지요? 다말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입니다. 유다의 며느리예요. 유다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이 다 죽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형이 계대를 잇지 못하고 죽게 되면 형이 데리고 살던 그 아줌마를 동생이 데리고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아기를 낳게 되면 먼저 낳은 아들은 형님의 아들로, 그리고 다음에 낳은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삼게 되어 있었어요. (웃음) 왜 웃어요? 왜 웃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라면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못 하겠습니다」 못 하면 복귀 안 되지요. 못 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못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면 그런 놀음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하겠습니다」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하겠다고 대답하지 왜 못 하겠다고 대답했어요?
다말이 가만히 보니까 세째 아들은 아직 어린아이인데 이스라엘의 계대를 이어야 할 후손의 어미가 될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기생으로 분장을 해 가지고 시아버지가 농사를 짓기 위하여 왔다갔다하는 길에서 기다리다가 시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관계를 가져서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이예요, 비정상적이예요?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서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게 된 거예요.
그리하여 과부가 떡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법은 남편 없는 사람이나 과부가 애기를 가지면 돌로 때려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시아버지와 관계를 가질 때 약조물로 도장을 받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다말이 바람을 피워 가지고 애기를 가져서 배가 불렀더라'고 동네방네에 소문이 났지요. 그래서 다말을 죽이기 위하여 고문을 하면서 상대가 누구냐고 하니 '누군지는 모르나 이 도장의 주인과 상관하여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때 유다가 그 마을의 족장이었던 모양입니다. 그 유다가 판결을 내리려고 보니 틀림없이 자기 도장이거든요. 그와 동시에 과거의 일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자기 애기를 가진 것이 분명하거든요. 그래서 '아이코. 안 되겠다'해 가지고 죽을 자리를 피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이렇게 얄궂은 것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것이 나쁜 일이예요, 좋은 일이예요? 「나쁜 일입니다」 나쁜 일이 왜 성경에 있습니까?
본래는 세라가 형인데 베레스가 밀치고 나온 것입니다. 베레스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다말이 애기를 낳을 때 산파가 떡 기다리고 있는데 손이 먼저 쑥 나왔습니다. 그래서 산파가 그 손목에다 빨간 실을 매 놓았습니다. 그것도 역사라구요. 그런데 난데없이 동생이 먼저 나오려고 하는 형을 제쳐 버리곤 먼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중에서부터 동생인 베레스가 형 세라를 굴복시켜 동생이 아니라 당당히 형으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형의 권한을 가지고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있는 시대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베레스로 말미암아 유다 지파의 계대를 잇는 후손들을 하나님이 직접 주관한다고 해도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요인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역사적인 바꿔치기 놀음을 누가 했느냐면, 베레스가 다말의 뱃속에서 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위신과 체면과 생사문제를 초월한 결의를 가지고 행동을 해서 천륜을 이어받은, 다말의 전통을 이어받은 여인이 있습니다.
마리아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체면과 위신과 모든 전통과 풍습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한 길을 걸어갔던 여인, 다말의 심정을 이어받은 마리아가 나옴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베레스와 세라 시대에는 쌍동이였지만 예수 시대에는 쌍동이가 되어서 싸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천사가 동정녀인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를 잉태할 것을 예고하게 되었는데, 그때 마리아는 '아이고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돌멩이 맞아 죽게 되어 있는데 그런 일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한 것이 아니라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죽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뜻을 위해서라면 위신도 체면도 다 버리겠습니다'라고 했던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마리아는 비로소 예수를 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중복귀시에 가인 아벨을 중심삼은 승리의 기반을 베레스가 세라를 이김으로 닦았기 때문에, 그 복중 승리의 터전 위에 예수가 새로운 아들로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마리아의 복중에 잉태된 예수는 다말이 승리한 전통적 기반 위에 잉태되었기 때문에, 베레스가 세라를 굴복시킨 승리의 터전 위에 잉태되었기 때문에 사탄이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를 대하여 '저것은 내 아들이다. 나하고 상관 있다'는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듯 승리한 전통의 터전 위에 탕감적 혈통의 내용을 결정짓고 오신 분은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복중에 혼자 있더라도 사탄이 저 것은 내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베레스와 세라 때는 사탄이 쌍동이 중 하나는 내 것이라고 했지요? 그렇지만 베레스의 승리의 터전 위에서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는 예수는 복중에 있더라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복귀의 길은 승리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예수는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 땅 위의 한 여인의 배를 빌려 태어난 한 분 메시아 예수는 역사상에 없는 한 사람으로서 역사시대의 공자와 석가와 같은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내용을 거쳐 가지고 결정된 승리의 터전 위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 위에 나면서부터 사탄이 참소할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지요? 이것은 선생님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있는 말이라는 거예요.
예수는 잉태되면서부터 사탄과 인연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아버지가 있겠어요, 없겠어요?「있습니다」 여러분이 봤어요? 있을지도 모르지요?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런 내용을 이 다음에 다 가르쳐 줄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다 믿고 선생님이 여러분을 며느리로 삼고 사위로 삼을 수 있는 자리에 서거들랑 그때 가르쳐 주겠어요. 「지금 알고 싶습니다」 지금 알고 싶어요?「예」 지금 말해 주면 안 됩니다. 그래도 알고 싶어요?「예」 지금 가르쳐 주면 선생님의 모가지가 달아나는 데도 알고 싶어요?
역사과정에서 사탄의 혈통을 청산하고 하나님편의 대표자로 복중에서부터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이 땅 위에 태어난 사람이 누구라고요? 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돌감람나무예요, 참감람나무예요?「참감람나무요」 비로소 역사상에 참감람나무가 생겨난 것입니다. 참감람나무가 땅 위에 심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돌감람나무들은 전부 참감람나무의 눈접을 붙이기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됩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예」
이것을 볼 때 아까 말한 제일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이냐? 돌감람나무가 직통으로 참감람나무로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책이지요. 그것이 인간의 최고 소원이니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골자요, 본보기로 엮어 나온 내용을 기록한 책이 성경입니다. 그러니 성경이 인간에게 가장 나쁜 책이예요, 좋은 책이예요?「좋은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대로 살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몇 시예요? 이거 밥 먹을 시간이 자꾸 넘어가는데 슬쩍 하고 그만둘까요. 그러지 말까요? 대답하는 사람이 3분의 1도 안 되는구만. (웃음) 슬쩍 하고 말까요, 차근차근 그대로 할까요?「차근차근 해주세요」 저 뒤에 서는 대답하지 않는데? 아, 이거 슬쩍 하면 3분 이내에 끝낼 수 있습니다. 3분 이내에 끝내면 고대하던 밥님이 군림하신다 이거예요.(웃음)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합시다.
여러분들이 태어나고 보니 돌감람나무예요, 참감람나무예요?「돌감람나무입니다」 돌감람나무인 여러분이 접붙이는 데 있어서 늙었을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 젊었을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젊었을 때요」 젊었을 때중 어느때요? 소년시대에? 아니면 시집 장가 가 가지고 접붙일래요, 숫것으로 접붙일래요? 우리 노골적으로 까놓고 얘기해 보자구요. 시집 장가 가서 접붙일래요, 알뜰하고 살뜰하고 묘한 숫것으로 접붙일래요? 숫것으로 접붙여야 합니다. 수컷이 아닙니다. 숫것이예요. 이 숫것이란 숫놈이 아닙니다. 숫것이 나이가 많은 쪽에 갈수록 많이 있어요?「없습니다」80대에 숫것이 있어요?「없습니다」 절대로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독신으로 늙어 죽겠다고 공동묘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여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숫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시집, 장가를 간 사람이 숫것입니까, 아닙니까?「아닙니다」 또, 처녀 총각이라도 '나는 당신 아니면 안 되겠소. 나는 당신을 위해서 태어났소'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이 숫것입니까, 아닙니까? 연애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이 숫것입니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느때에 숫것에 접붙이는 것이 좋겠어요? 숫처녀 숫총각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 숫처녀 숫총각이 아닐 때 접붙여야 되겠어요? 얘기해 보세요. 숫처녀 숫총각 때 접붙일래요, 안 붙일래요? 숫총각이 못 되면 못 될수록 접붙여 가지고 살 비율이 점점 적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모를 때, 청소년기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철모를 때 접붙일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지만,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지만, 딴 핏줄을 받아 났지만 그래도 접붙일 수 있는 제일 좋은 젊은 시대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지요?
열 살 이전까지 참된 시대가 없었다면, 참된 유아시대가 없었다면 '오시는 주님의 유아시대가 내가 살아온 유아시대와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꿔치라는 거예요. 바꿔칠 수 있겠지요? 팔십 살이 되어서 바꾸는 것보다 열 살쯤에서 바꾸는 것이 쉽겠지요?
가인과 아벨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 앞에 절대적으로 복종 굴복할 수 있는 순정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기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주님의 사상을 자기의 중심으로 하고 자기의 모든 소망과 이상(理想)을 버리고 오시는 주님의 소망과 이상을 자기의 이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바꿔쳐야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자기는 없어지고 새로운 주님으로 바꾸어지는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접붙이는 놀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젊은 세대에 있는 것을 보람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탄세계의 젊은 세대와 통일교회의 참된 젊은 세대는 어떻게 다르냐? 출발, 즉 태어나기를 다른 자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낳아 준 아버지 어머니보다 참된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참부모라는 이름을 알았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라는 말을 알았어요, 몰랐어요?「알았습니다」 교과서에 그런 말이 있어요, 없어요? 옛날에, 통일교회가 나오기 전에 그런 말이 있었어요, 없었어요?「없습니다」 간단하고 그럴 듯한 말인데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을 알았다가는 벌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부모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다. 참된 자녀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부터! 알겠어요? 참된 가정이라는 말, 참된 종족이라는 말, 참된 민족이라는 말도 통일교회에서부터! 그렇지요? 또 참된 국가, 참된 세계, 참된 천주, 참된 하나님, 참된 하나님의 사랑이란 말도 통일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참된 것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교회입니다. 그래요?「예」
그러므로 해쭉 웃는 것도 참된 웃음이기 때문에 세상 웃음과 내용이 다른 웃음이고, 살짝쌀짝 걸어가는 걸음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걸음이요, 보고 듣고 하는 것도 세상 사람과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밥을 먹어도 '아이구 배고프다' 하며 게걸병이 들어 가지고 먹는 것과 같이 덥석덥석 먹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밥을 먹는 것은 나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먹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달라야 된다는 거예요. '나는 참된 이상세계를 위해서 태어났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전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요, 없어요?「있습니다」 그 아버지 어머니는 참된 아버지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 어머니를 참된 아버지 어머니와 바꿔야 합니다. 또 여러분에게 참된 형제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참된 형제가 나왔다면 참된 형제를 맞기 위해 자기의 사랑하는 형제를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참된 가정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으니 참된 가정을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가정을 버려야 됩니다. 참된 나라가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없으니 참된 나라를 찾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나라를 버려야 됩니다. 또 참된 세계가 없기 때문에 참된 세계를 찾기 위해 거짓된 세계를 버려야 됩니다. 참된 젊은 세대가 올 수 있다면 그 참된 젊은 세대를 위하여 거짓된 젊은 세대의 모든 욕망과 욕구를 전부 다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 몸뚱이를 중심삼은 것은 거짓이요, 마음을 중심삼은 것은 참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몸뚱이를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 무엇이냐? 사탄입니다. 사탄이 사탄된 동기가 무엇이냐? 자기를 위주로 하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사탄된 동기요, 타락의 동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입장을 위주로 해야 됩니다.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공적(公的)인 일을 위주로 사는 사람입니다. 사적(私的)인 일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공적인 것은 참에 속하는 것이요, 사적인 것은 악에 속한다는 거예요. 육(肉)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악이요,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은 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예」
그래서 하나님의 본향을 향해서 마음이 원하는 대로 일생 동안 죽기를 각오하고 가야 할 싸움의 길이 복귀노정 위에, 여러분의 전생애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누가 해결지어야 되느냐? 스승이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해결해야 됩니다. 가르쳐 주기는 스승이 가르쳐 주지만 행동은 여러분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원리는 이것을 가르쳐 주고 여러분은 이대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가는 데는 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죽는 패요, 나라를 위해서 죽는 패요, 가정을 위해 죽는 패요, 개인을 위해 죽는 패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결정적인 자리에 서야 돼요. 그러려면 죽을 고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죽음길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죽어서 넘어섰다는 승리의 자리에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은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가르쳐 준거예요. 바꿔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의 열두 제자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은 예수가 사지에 있을 때 예수의 죽음길을 가로막아 가지고 절대 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백번 천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를 죽게 해서는 안 되는 입장에 있었는데, 예수를 죽이고 도망을 갔으니 천지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괴수들이 된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오시는 주님에게 수난길이 있다면 그것을 가인이 책임져야 되겠어요, 안 져야 되겠어요? 매를 맞아야 하는 길이 있을 때, 아벨을 매 맞히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는 구원을 못 받는 것입니다.
아벨이 매를 맞기 전에 내가 맞아야 되고, 아벨이 죽을 입장에 있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하여 젊은 시대에 참을 대신하여, 모든 선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공적인 생활이념을 가지고 나가야만 통일의 개인이 찾아지는 것이요, 통일의 가정이 찾아지는 것이요, 통일의 종족이 찾아지는 것이요, 통일의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적 사상을 넘어서지 못하면 악의 세계에 그냥 그대로 남아지는 것이요, 청산된 참된 선의 세계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젊은 세대와 같은 청춘시대에서부터 하나님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사춘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청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장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노년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죽었다고 하는 입장에 서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복귀노정에 있어서 예수는 복중에서부터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일을 안 했지만 그런 심정적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선생님이 그런 일을 하고, 혹은 오시는 주님이 그런 일을 한다면 자기의 생애와 더불어 자기의 비참한 역사적인 내용과 더불어 그것을 백 퍼센트 그냥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행로를 거쳐 가지고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젊은 세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참된 젊은 세대가 나오지 않으면 참된 장년 세대가 나오지 않는 것이요, 참된 장년 세대가 나오지 않으면 참된 노년 세대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대에서부터 참으로 시작하여 장년, 노년 시대를 거쳐 참으로 남아질 수 있고, 나라와 세계가 참의 환경이 되면 그때가 바로 지상의 천국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이루어진 복귀의 천국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기억해 둬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기 위해서는 희생을 해야 됩니다. 결론은 희생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열의 가치를 원하면 열 이상의 희생을 해야 되고, 백의 가치를 원하면 백 이상의 희생을 해야 되고, 천의 가치를 원하면 천 이상의 희생을 해야 됩니다. 희생을 하기 위해 제일 많이 노력한 사람이 제일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사랑하는 아버님, 전국에 널려 있던 어린 소년 소녀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이 이 자리를 그려 온 것은 오늘 이 자체에서 머무르기 위한 것이 아니옵고 내일의 참된 모습을 갖기 위해서였사옵니다. 참된 젊은 시대를 갖고 참된 청년 시대, 참된 장년 시대, 참된 노년 시대의 이 4시대를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할수 있는 거룩한 길을 가기 위해서 나온 것이었사옵니다.
저희들 한 사람을 복귀하기 위해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눈물 흘린 하늘의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저희들의 일생을 아버지 앞에 고이 바쳐 가지고 최고의 선의 승리의 기점을 이어받기 위하여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우고 희생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러한 길로 자진해 나갈 수 있는 무리들이 되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어린 청소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상에서는 구시대와 신시대를 논하고 있지만, 그 신시대 가운데는 참된 젊은 세대와 거짓된 젊은 세대가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거짓된 젊은 세대는 제일 귀한 것을 함부로 유린하지만, 참된 젊은 세대는 세상에 있어서 제일 거룩한 것을 지극히 아끼고 지극히 보호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이 순종을 중심삼은 절개라는 것을 이제 깨닫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젊은 마음에 피어오르는 심정으로 아버지와 더불어 뒤넘이쳐 승리의 인연을 차지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싸워서 남아지는 무리가 되겠다고 각자의 마음 깊이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사오니, 그런 결의를 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사악한 세상 위에 그려지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의 문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올무와 사망의 함정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 자리에 모인 개체들은 변하지 않는 참된 개체의 모습이 되기를 결심하여 사회의 어떤 곳에 나가더라도 물들지 않고 영향받지 않는 참된 젊은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참된 젊은이가 되지 않으면 참된 청년과 참된 장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복된 이 시대와 계절의 은사를 감사히 받아 아버지 앞에 고이 바치고 돌려드리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에 총회를 통하여 되어진 모든 안팎의 전부를 아버지께서 맡으시옵고, 금번 기회로 말미암아 중,고등학교를 중심삼은 젊은 세대에 새로운 봉화를 붙여서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에 새로운 하늘의 불길을 붙여 내겠다고 결의하고 돌아가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난의 역사과정에서 수많은 고빗길과 수난의 길을 아버지 홀로 참으면서 넘으시고 길을 닦아 나오신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 일대(-代)에 무엇이든 못 하겠느냐 하는 결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일대에 전부 청산지을 수 있는 새로운 결의를 젊은 세대에서부터 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가오는 장년과 노년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목적권까지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번 기간에 새롭고 중대한 결의와 결심을 하는 젊은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와 같이 만나서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은사에 감사드리며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