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가정은 전체를 좌우시킨다는 사명을 느껴야 합니다. 가정에는 부부와 자녀가 있습니다. 습관성 있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은 사위기대를 이룰 수 있는 기점입니다. 여기에는 부부의 일체화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본래의 기준 앞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축복가정은 자기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선생님을 중심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룩된 것이 아니고 타의적으로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원하심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으로 말미암아 축복가정이 연유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위하여 오셨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는 가정의 기준 이상 가는 가정이 있기를 바라십니다.
역사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사람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배반했던 가정의 인연, 즉 일남일녀를 다시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을 보냈던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남자 혼자서도, 여자 혼자서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없이는 안 됩니다.
가정이 본래의 법도에 일치되지 않는 한 종족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축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냐? 식은 간단하지만 배후 역사의 내용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안 되었습니다. 그가 웃으면 만우주가 웃을 수 있는 기준이 축복의 기준입니다.
부족한 점을 시정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던 부부의 의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태어났습니다.
모든 것을 축복을 중심하고 맹세합니다. 이 맹세의 기준을 어기는 사람은 땅 위에서 존재의 기대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천국은 가정을 중심하고 이루어집니다. 가정 식구들로서 지켜야 할 긍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담 해와의 위치는 우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이지 영향을 받는 위치가 아닙니다.
습관적이고 세속적인 가정이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훗날에는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미 완전해야 합니다. 현재가 문제됩니다. 과거와 현재가 완전해야 미래도 완전할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이러한 한 날을 갖지 못한 것이 타락의 증좌입니다. 과거․현재․미래가 일치될 수 있는 자리가 이상적인 자리입니다.
현재를 바쳐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땅 위의 영원한 발판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종합점입니다.
가정의 기준을 실감해야 합니다. 남자는 주체입니다. 주체는 주체적인 입장에 서야지 상대적인 위치에 서서는 안 됩니다. 중심에 서야 합니다. 이 중심이 어긋나면 안 됩니다.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중앙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대신 위치입니다.
동기와 원인이 주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기쁨과 행복은 주체에서 비롯됩니다. 가정이 불화하고 불행한 것은 남자가 책임져야 합니다. 타락의 책임도 첫째가 하나님, 둘째 예수님, 셋째 성신이 져야 합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그 기준을 세우지 못하면 영원히 설 수 없습니다. 미래에 가서 이루어져도 그 과정의 날들이 참소합니다.
천국은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수 있는 것은 가정입니다. 여자가 실수해도 책임은 남자가 집니다.
탈선되지 않는 심적 기준과 생활적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떨어져 살 때도 내심적으로는 갈라져서는 안 됩니다.
이런 주일 경배시간 같은 것은 엄숙하고 귀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타락의 한을 넘어서야 합니다. 축복을 받고 그 한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반 가정과 우리 가정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먹고사는 것이 자기 가정 중심이 아니라 하늘땅을 위한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가정은 현실적인 입장에서 언제나 승리해야 하며 절대 사탄의 참소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 가정이 몇 가정이나 되겠습니까? 매일같이 힘써 나가야합니다.
세계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전통 있는 사상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와 세계 앞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통이 있느냐? 그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개성 완성만 해 가지고 세계적인 구원은 안 됩니다. 예수도 와서 십자가에 죽었지만 그 개인으로는 구원섭리가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심한 삼위신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상대적 기준을 가져야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 역사에 전통으로 남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천주(天宙) 앞에 일치할 수 있는 가정의 기준입니다.
통일교회가 지향하는 전통이 무엇이냐? 그 기준은 가정입니다. 승패와 동기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정입니다. 이럼으로써 지금까지의 기성가정의 사랑도 심판받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의 심판이요 대심판입니다.
두 부부가 동방 서방이 되면 사방을 지배합니다. 그 반경이 크면 클수록 미치는 영향권은 큽니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자랑해야 합니다.
800여 축복가정이 잘하면 우리 통일교회는 자동적으로 불어 나갑니다. 남이 다 부러워할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을 내어 ‘뜻이고 뭣이고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망합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왔으니까 축복받았지, 받고 싶어 받았나?’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가정이 성공하면 역사적인 고비 고비의 실패가 모두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이 됩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모두 회생합니다.
자식들이 ‘남자 가운데에서는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고 여자 가운데서는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다.’라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인정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새벽 경배 후에 조그만 무엇으로도 성찬을 해야 합니다. 이런 전통을 위한 생활적인 기원을 남겨야 합니다.
가정은 본인들과 선생님과 하나님의 역사적인 소원의 결실점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상대자를 생각할 때 다음의 순서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도는 홀로 했지만 이제부터는 부부가 같이 믿음의 자녀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 역사시대는 가정을 중심한 구원의 시대입니다. 둘이서 할 진짜 전도시대가 옵니다. 부인은 남편을 어떻게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가정은 가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이 필요합니다. 조상으로서 책임을 완성해야 합니다. 축복을 받고 공직에 있지 않은 사람은 탈선한 것입니다.
부인은 남편을 출세시켜야 합니다. 즉 내조를 잘 해야 합니다. 말씀의 완성자(실체적․심정적․생활적으로)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꽃피운 것이 가정입니다.
역사를 품고 우주를 품고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피를 흘려야 합니다.
통일은 먼저 부부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남자 메시아가 있으면 여자 메시아도 있어야 하니 가정적 메시아로서의 주님은 오십니다. 타락을 아담 해와 두 사람이 했으니 복귀도 두 분이 해야 합니다. 종족적인 메시아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개인노정, 가정의 노정이 앞으로의 역사의 전통이 될 것입니다. 자기의 가정을 위해서 생명을 거는 부부, 통일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완용의 자손들은 어디 가서도 자기 조상이 누구라고 선조의 이름을 못 댑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가정, 교회가 바라는 가정, 여러분이 바라는 가정, 그런 가정에서 정성을 들여 태어나는 자손은 잘 태어날 것입니다.
부모는 지지리 고생해도 자손은 하늘의 운과 선생님의 운을 따라서 태어날 것입니다.
3시대를 생각해야 합니다.
뜻을 앞세우고 사적인 모든 것을 초월해서 움직이면 하나님이 협조하십니다.
몸이 원하는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피곤해도 마음대로 낮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배가 고프다고 막 먹어서도 안 됩니다.
배후에서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셋만 있으면 원수라도 그 사람을 치지 못합니다.
내려가는 것은 올라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충신은 백성을 울릴 수 있어야 충신입니다. 선왕(善王)은 만대의 백성이 고맙게 여겨야 선왕입니다.
하나님의 소원, 선조의 소원, 자신들의 소원에 합당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원리 말씀을 모르고 뜻을 위해 수고한 실적이 없으면 앞으로 참 곤란합니다.
앞으로는 뜻적으로 훌륭한 조상을 가진 것이 자손들의 자랑입니다.
가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개체의 권위를 세우고, 개체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뜻에 대한 권위 의식을 높여야 합니다.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합니다. 배가(倍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 현실이 이렇지만 후일 선생님이 축복한 자 중에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세계적인 인간재(人間財)로 남아 영광을 받을 것을 소망으로 삼고 삽니다.
남 잘 때 자지 말고, 남 놀 때 놀지 말고, 남 먹을 때 먹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최후의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데는 쉴 새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