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오늘은 1971년 7월 11일, 이 날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시옵소서. 71과 7월 11일이 맞서는 이 날이오니, 당신의 영광과 자비와 사랑이 온 인류 앞에, 수난의 길을 걸어온 이 민족 앞에, 아직까지 싸우고 있는 모든 자녀들 앞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더욱이 내일은 7차 수련회를 거친 목사들을 선발하여 청평에서 공청회를 시작하는 날이오니 1971년도를 맞이하여 71수에 해당하는 이 날을 넘고 새로운 출발의 날로서 아버지께서 세워 주시옵소서. 가인과 아벨의 탕감의 역사를 엮어 오신 아버지의 소원을 교회와 교회를 중심삼고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반목질시(反目嫉視)하고, 만날래야 만날 수 없었던 그런 자리에서 이제 상봉할 수 있는 인연을 갖추게 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이 비단 통일교회의 어떠한 연차적인 행사로 끝나는 것이 되지 않기를 저는 바라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그들이 움직이는 곳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 참석하는 그들로 말미암아 한국 교계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고, 섭리의 뜻을 알지 못하여 잃어버렸던 선민권을 획득하고, 당신이 소망하시는 제3차 이스라엘권의 본연의 자세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바쳐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거룩한 무리가 한 생명이라도 아버지께서 기뻐하는 가운데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인 것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도 청평에서는 당신의 어린 자녀들이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통일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기성교계와 복귀노정에서 섭리를 배반하였던 불쌍한 가인의 역도들을 대신하여 하는 일이오니, 아버지, 실질로 받으시옵소서.
이번 이 일은 오늘 이 통일교단이 민족을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여, 야곱이 에서 앞에 했듯이, 기성교단 앞에 바치는 하나의 제물의 터전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 날을 기쁘신 날로서 축복하여 주옵고, 이 날을 사랑하는 날로서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민족을 사랑하기 전에 종족을 사랑해야 되겠고, 종족을 사랑하기 전에 가정과 개인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의 식구라는 명목을 가지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은 이제 겸손한 자세를 갖추어 과거를 다시 반성하고 질식된 이 세계를 바라보면서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합하여 하늘의 힘찬 용사로서 보조를 맞추어 총진군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저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여리고성을 향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대하여 아버지께서는 '내가 너희와 같이 있을 것이며, 너희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같이 협조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강하고 담대하기를 바라시던 그 마음과 같이, 오늘날 통일신도들은 이 때에 있어서 세계를 자기가 담당해야 할 사명의 터전으로 알고, 새로운 깃발을 들고 하늘의 용병들이 되어 원수의 세계를 한손에 무찌르기 위하여 총진군을 결의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백전백승의 결과를 가져오고 말겠다는 신념에 사무친 하늘의 용사들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다짐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역사에는 언제나 고빗길이 있는 것이요. 굴곡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굴곡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묘미가 있는 것이요, 고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귀하고 그렇지 못한 가치적 기준의 차이가 설정된다는 것을 생각 하게 되옵니다. 어느 시대나 그 사명을 책임지려는 사람과 그 환경을 기쁨으로 맞으려는 무리가 없게 될 때는 아무리 훌륭한 역사를 지닌 민족도 끝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아무리 훌륭한 역사를 개척한 선구자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는 지나가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역사과정에서 통일교단이 이 땅 위에 존속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인연은 인간의 인연을 따라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높고 귀하신 당신의 인연을 따라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 깊은 곳에는 당신이 언제나 임재해 계시고, 그 본연의 방향에서는 언제나 당신께서 선두에 서서 지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항상 느끼고, 항상 생각하면서 진지하고 심각한 자신을 가꾸기에 온갖 노력을 다할 줄 아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마음을 헤쳐 놓고 아버지 앞에 사정을 토로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사정보다도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 저희의 애달픔보다 아버지의 애달픔을 염려할 줄 아는 장성한 자녀들이 되어야 될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삼천리 반도를 긍휼히 보시는 아버지, 끝날에 최후의 결단을 짓기 위하여 저희를 길러 오신 아버지의 수고와 아버지의 소망 앞에 저희가 한낱 희망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희망의 실체가 되어 당신이 염원하시는 소원 앞에 없어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단체가 되고, 단 하나의 무리가 되기를 아버지께서 바라시듯이 저희들도 바라야 되겠사옵니다.
긍휼하신 아버지시여, 당신께서 저희를 불러내어 이끄신 것은 사망의 자리에 결실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인연 가운데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민족을 창건하고,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구도자적인 역할을 맡기기 위함인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저희 자신이 진지해야 되고, 진실된 자신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날을 축복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이 어린 자녀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였거든 당신의 권고와 사랑과 보호의 손길이 떠나지 마시옵고, 창달한 자녀로 있거든 무서워할 것 없이 선두에 서서 아버님이 기뻐할 수 있는 기수가 되어 전진의 일로를 다짐할 수 있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의 인물 중에서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자 했던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자기 혈족을 저버리고 싶어한 사람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만, 남겨야 할 역사적인 사실이 자기의 민족보다도 자기의 가정보다도 자기 자신보다도 더 큰 자리에 있게 될 때는 그것들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심혈을 기울이기를 개의치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 저희들도 그런 결의에 사무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이 아침에 찾아오시어서 저희 각자의 이름을 부르시어 그대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시고, 저희가 바라는 소원보다도 당신의 소원이 비교할 수 없는 끈 가치의 내용을 가졌음을 저희에게 보여 주시고, 저희들이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루의 기쁨이 말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고, 하루의 나태가 일생의 승리권을 다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부지런해야 되겠습니다. 꾸준해야 되겠습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항시 더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저희의 몸과 마음으로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저희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당신이 분부하신 은사와 더불어 저희들은 지금까지 저희의 생애에 굴곡이 있거든 그것을 평탄하게 만들고, 가는 방향이 엇나갔거든 그것을 곧게 만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필요하옵니다. 저희들은 타락한 인간조상의 후손이기 때문에 최고 완성의 기준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아시는 아버지, 당신이 중심이 되시고, 당신이 선두에 서시어 언제나 저희들을 지도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저희의 표준이 되시옵소서. 어긋나지 않는 실존체로서 부끄러움의 결과를 갖지 않게끔 항상 중심과 상대적 인연을 잘 갖추고, 본연의 미를 상대적인 입장에서 가질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전국에 널려서 이 아침에 이곳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는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통일의 승리의 한 날을 위해 자기 일신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는 그들 위에 만복이 깃들게 하시옵소서.
사람들은 평온한 날을 고대하고 있지만, 자기의 편안한 날보다도 아버님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하는 그 괴로운 노정으로 말미암아 아버님께서 빛될 수 있고 인류 앞에 남겨질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조성된다는 것을 아는 자녀들이 있으면, 거기에 당신의 후하신 사랑이 떠나지 마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오늘 모인 곳곳마다 당신의 풍족한 은사로써 감싸주시옵고, 내 일의 소명 앞에 부끄럽지 않는 제사장의 책임을 다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한 시간을 아버지께서 맡아 주시옵고,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께서 친히 지키시옵소서. 해외에 널려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 더욱이 선봉에 서서 한 나라의 생명을 책임지고 달리고 있는 어린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7월 이후에 남아진 모든 행사와 저희들이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일들이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의 승리의 결실이 되시어서, 새로운 세계의 문화 창건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주도적인 역할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이후의 일체를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다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좋은 사회를 바라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사람으로서 자기의 일생을 살아 가지고 그 결과로 인하여 좋은 사회 앞에 좋은 인격자로 추앙받기를 원하는 것이 누구나의 바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지방에 가서 그 지방을 두고 볼 때, 그 지방에서 추앙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지방에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역사를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추앙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습니다.
한 집안을 두고 보더라도 그 집안에 아버지나 장남, 혹은 그 누가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반드시 가정을 대표해서 전체가 갖지 못한 역사를 지닌 것입니다. 전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고, 전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책임져 나오는 한, 그 사람은 반드시 그 가정의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 나라를 두고 보더라도 그 나라에서 정신적인 지주로 추앙받는 애국자가 있다고 하면, 그 애국자는 일국의 역사가 지나온 과정에서 그 누구도 지니지 못한 것을 지녔고 거치지 못한 역경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그 민족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가치의 내용을 남긴 그 사실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그 나라의 추앙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에서부터 가정이라든가, 혹은 사회와 국가를 넘어선 세계의 역사는 선의 역사를 향하여 발전해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 볼 때, 그 발전도상에 있는 역사의 과정에는 세계를 위하여 수많은 인류가 호응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어느 한 분야뿐만이 아니라 각 분야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터전을 넓혀 나올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건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책임을 진 사람들이 자기의 민족보다도 세계에 새로운 무엇을 남기기 위해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극복한 내용이 문화 창건에 언어서는 안 될 하나의 표준이 되고, 그 표준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환경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게 될 때는, 그렇게 남아질 수 있는 동기를 이루고 나왔던 그 사람은 세계가 승리적인 세계를 다짐하고, 그러한 세계를 원하면 원할수록 추앙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역사의 흐름 가운데에서 세계를 새로운 세계, 인류가 바라는 소망의 세계로 접근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목적 달성을 위하여 누가 보든 안 보든 노력하게 될 때는, 그 사람들은 인류 앞에 추앙의 대상이 아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학자라든가 사상가, 혹은 종교가 등, 그 분야는 다를지라도 세계적인 내용을 내포한 그러한 개척자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개척자들의 담당 분야가 복잡하고 맡겨진 사명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수난의 길이 동반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일을 마지못해서 했다면, 그 사람은 인류 앞에 보다 높은 소망을 교시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큰 수난길이 있더라도 그 수난길을 생명을 다하여 가고, 자기의 힘이 부족하여 정신적으로나 생활적으로 투입시키고 싶었던 여력을 다하지 못하여 한을 남기고 간 사람이 있다면, 즉 비참하고 어느누구도 동정해 주지 않는 그런 자리에서도 몸부림치며 수난길에서도 진일보를 다짐하며 노력하다 쓰러져 간 사람이 있다면, 그 당대에는 그 사람의 실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추구한 사상은 미래에 남아져서 개척자의 승리의 터전을 이어 나오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못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려도 비참한 눈물을 흘려야 하고, 몸부림을 치더라도 비참한 몸부림을 쳐야 할 입장이로되 그것으로서 끝날 수 없는 자기의 일생이면 일생의 운명길을 지내야 하는 것이요, 역사적인 운명길이 있으면 그 운명길과 더불어 같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기뻐할 수 있는 날을 맞지 못함과 더불어 역사적인 운명도 기쁠 수 있는 내적인 결정을 볼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는 미래를 대신하여 수난길에 부딪치는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수난길에 부딪쳤지만 그 수난의 환경은 역사적인 수난이나 개인적인 수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정신적인 힘, 남아진 여력이 거기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기필코 그 여력과 더불어, 그 뿌리와 더불어 새로운 역사적 분야로 남길 수 있는 기원이 거기에 깃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현실의 만족을 바라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미래의 만족을 위하여 자기의 생애를 바쳐 몸부림치는 사람은 극히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의 실상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 개체를 두고 봐도 마찬가지인지만, 오늘날 세계 전역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역사과정에서도 그런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요,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새로운 세계와 소망의 천국을 이어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개척자가 있다 할진대, 그 개척자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세계를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그 개척자는 자기와 더불어 맹세하고 나선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현실의 안락을 취하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현실과 미래를 비교해 가지고 현실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보다도 현실의 가치를 희생시켜 가지고 미래의 가치를 추구하기에 투신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진대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그에게는 패자의 서러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령 당장에는 자기 일신이 쓰러지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쓰러지는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쓰러짐이 도리어 새로운 재출발을 촉구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체험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선 사람이 아니고는 개척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현실에 국한된 그런 가치를 다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하여 미래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신념과 우주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즉, 현실의 생활권내에서 감미로운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을 터전으로 하여 내일의 가치를 심어 놓기 위한 싸움의 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해 나가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개척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을 통하여, 혹은 시대적 현상이나 우리 생활주변의 사정을 통하여 미루어 볼 때, 이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개척자, 그러한 사명을 촉구받고 있는 개척자, 그런 개척자를 이 시대는 원하지 않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제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환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겉으로는 환영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심으로는 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있다면 현실이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거에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수난길에서 쓰러져 영계에 간 역사시대의 선조들이 있다 할진대는 그들이 이런 사람의 동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상에 있어서는 그런 사람의 친구가 되지 못하고, 전후좌우에서 동역자가 되지 못했을망정, 또 현재에는 서로 합하는 길을 못 갔을지라도 그러한 사명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동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은 현재의 동지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언제나 동지로 남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역사는 현재에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을 수 있는 선의 목적, 최고의 승리의 터전, 최고의 안식권을 향하여 발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현재의 자기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도, 미래의 안일권을 위하여 현재에 자기의 무한한 가치를 투입시키는 사람입니다. 역사는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의 방향은 오늘의 환경이 어지럽더라도 그 어지러운 환경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사람 앞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살아 있는 역사적인 그 무엇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역사는 그런 사람에게 접근해 들어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를 남기기 위해 수고하다가 영계에 간 선조들이 있다면, 그 선조들도 영계에서 그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뜻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즉 미래의 소망을 향하여 자기 스스로 출발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분석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재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극복하지 못할 수난길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한 사람이 있다면 역사는 반드시 그런 사람을 추구할 것입니다. 역사는 현재에 있어서 미래를 향하여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을 추구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지도를 받고 싶어할 것이며,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상속받고 싶어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따라 미래를 향한 길에 보조를 맞추려고 온갖 정성을 다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비록 개척자로서 서 있는 자리가 외롭다고 할지라도 외로운 자리가 아닙니다. 전후 사방에서 필요로 하는 요건을 중심삼고 볼 때, 개척자의 전생애는 외롭고 비참했을는지 모르지만, 미래를 대신한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만민이 그를 추앙할 것입니다. 또한 개척자의 자리는 참을 추구하고, 보다 나을 수 있는 고차적인 평화와 행복의 세계를 바라는 인류 앞에 있어서는 결코 고립된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가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환경에 부딪치는 어려움을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동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동하고, 내가 정함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정한다. 내가 현재의 입장에서 확고부동한 실체로서 중심의 입장을 대신한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승리권은 내 앞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현실적인 역사의 터전 위에 중심의 가치를 다짐함과 동시에 변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중심삼고 확고부동한 진로를 향하여 일보 일보 전진한다'라고 하면서 수난길과 대결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런 사람은 수난길을 가더라도 패자의 서러움을 맛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승리와 자기 개인의 희망의 가치를 보다 잘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 간 사람일수록 역사적인 인물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사회에서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나는 세계를 위한 개척자다'라고 하며 나선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역사의 수난길을 도피하여 역사의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는 역사 앞에 규탄받아야 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개척자가 되고, 또 역사 앞에 새로운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수난길을 자기의 당연한 운명길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팔자로 생각하고, 그것을 못 하게 될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며 그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됩니다. 백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면 백만큼의 벌을 받아야 되는 것이요,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면 천만큼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도 천에 해당하는 벌을 받지 않는 자리에 서게 될 때, '나는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는데, 왜 천의 벌을 주지 않느냐'고 도리어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벌을 받더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에 해당하는 죄를 짓고도 백만큼의 벌을 받는 것이 소원이요, 열만큼의 벌을 받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죄와 더불어서 끝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관계되었던 죄의 양은 그 사람에게서 청산되지 못하고 그의 후손이나 그의 민족이 청산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난길을 감수하고 나가야 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는 데에 있어서, 자기는 이만큼의 수난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시에 큰 수난이 몰아쳤다고 합시다. 여기에서 '어찌하여 내 입장과는 상극적인 입장의 수난이 나에게 부딪쳐 오느냐'라고 하면서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강한 신념을 가진 개척자라고 자처하더라도 거기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입장이 세계적인 입장은 못 되더라도, 세계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 때는 그것을 감수할 수 있고, 그 시련을 '오늘에 있어서 내가 진지하게 감수해 나가야 할 것이요, 오늘날 내 생활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필연적인 운명이다' 이렇게 알고 처음부터 끝까지 감수하고, 소화시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여 부딪쳐 오는 시련을 분석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 앞에 천의 수난길이 왔다면 그것은 자기를 파탄시키는 동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재건할 수 있고, 내일에 있어서 보다 넓은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되는 데 필요한 환경으로 수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통일식구들은 새로운 역사를 창건해야 하고, 내일의 천국을 창건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만민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미래의 희망의 세계에 대해서 암담한 벽에 부딪쳐 있는 이 때에, 동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을 적마다, 이제는 더 나갈 수 없는 단말마적인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이 땅에서 오늘날의 통일신도들은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개척자의 사명을 다짐하고 나서겠다는 신념과 결의에 사무칠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진군하는 무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은 두말할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선 젊은 청년이면 청년, 젊은 처녀면 처녀, 혹은 장년이면 장년, 노인이면 노인 등 그 아무개가 오늘날의 시대에 엇갈린 환경을 자연적인 환경으로 기필코 맞이해야 되는데 이것을 타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 모순이나 상충을 느끼는 무리가 되어 가지고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중심삼고 미래의 천국을 창건하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저끄러져 있는 환경을 직시하면서 내일의 승리의 결정타를 가할 수 있는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모습을 응시하면서 비겁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자기 자신을 책하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일러주는 그 표준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접하여 있고, 미래를 이어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승리의 터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손만대, 혹은 천추만대의 우리 후손들이 쌍수를 들어 길이 찬양할 수 있는 승리의 요건이 바로 오늘의 현실에서, 내 발등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일거수 일투족이, 환경의 모든 것이 그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알고, 역사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고, 시대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고, 미래와 더불어 보조를 맞추기 위해 변하지 않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를 잡고 올라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꾸로 깔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를 밀어내는 사람이 있어서 밀려난다고 하더라도 암흑의 세계가 그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광명의 세계가 그를 환영하게 할 것입니다. 밀리고 밟히는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밟히지 않고 이루어야 할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출발은 핍박과 엇갈리는 환경 속에서 이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서, 혹은 오늘날의 시대적 환경에서 잘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한 동네를 두고 볼 때에도 그 동네에서 어떤 집은 흥하고, 어떤 집은 망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흥하는 집을 보면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하여 아이들까지도 미래의 의욕에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난에 부대끼는 그런 환경에서도 그 수난길을 극복하겠다는 희망이 흘러 넘치게 되 면그 가정은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 있던 터전에서 희망이 사라져 버리고, 미래의 소망이 사라져 버리고, 현실적 자극과 감정마저 상실하여 스스로 자신들을 수습하지 못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그 집은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는 잘 살 때의 생활 그 이상을 원하지 그 이하의 것은 원치 않는다'라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이하의 입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이상의 입장이 자기들 앞에 부여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이하의 입장을 원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환경은 점점 급강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흥하는 가정을 보면, 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지치면 그 아들이 이어받아서 하고, 또다시 아들이 지치면 딸과 어머니가 이어받아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열만큼의 고생길에서 뜻을 못 이루었으면 아들이 백만큼의 고생길을 가야 되겠다, 이것이 자기의 의무요, 책임이라는 이런 사명감에 불타는 마음이 있다면 그 가정은 진일보 발전하는 가문으로 나타날 것이요,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즉 아버지보다 자식이 못하게 될 때는 그 가문은 망하지 말라고 해도 망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그렇듯이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라에 부딪쳐 오는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시련아 와라! 우리는 기필코 너를 넘어 내일의 세계에 있어서 새로운 희망의 천국을, 소망의 나라를 창건할 것이다'라고 다짐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기에 비례되는 수난길이 가로 놓여 있더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전진의 행보에서 멈추지 않기 위한 신념을 갖고 결속에 결속을 다짐하며 벅찬 내일의 소망의 일념 가운데 사로잡혀 있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역사상에 새로운 기수로 등장하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현실 생활권내에 있어서 내일의 소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입장을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그것이 결여될 수 있는 일면을 보게 되면 낙망하며, 스스로를 자책할 수 있는 입장에 선 민족이 있다고 할진대, 그 민족은 아무리 수가 많다 하더라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망하지 말래도 망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금후의 통일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통일교회가 문제인 것이요. 지금까지의 나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나 자신이 문제인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떠한 길을 거쳐 갈 것이냐, 또 통일교회를 주도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길로 데려가고 싶으실 것이냐? 이렇게 묻게 될 때, 하나님은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서 가고 싶다고 대답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직행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수난의 요인을 연장시켜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까? 단축에 단축을 시키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까? 이렇게 묻게 된다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나는 직행시키고 싶다'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행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실 때는 보통의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자리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각한 자리라는 것은 온갖 시련의 환경을 극복하고 뚫고 나갈 수 있는 결의를 필요로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선두에 선 입장에서 답변하실 하나님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지루한 복귀노정을 알고 책임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어떠한 길을 택할 것이냐? 십년 동안 지지리 고생하는 것보다는 생명을 걸고 라도 십일 동안에 넘어갈 수 있으면 그 길을 택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그러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아들의 입장에 선 우리들이 그 길을 가는 것은 응당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밖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통일교단이 해야 할 대답은 무엇이냐? 나 자신은 그렇게 대답하지만 통일교단 자체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 것이냐? 자기들을 지도하는 스승이 있다면 '스승이여 ! 여기에 임하시옵소서. 당신의 원함이 그러하거늘 우리의 원함도 그러합니다. 벌써부터 그러기를 바라고 준비했던 바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 날이 오기를 일치단결하여 바랄 수 있어야 합니다. 총사령 관이 명령할 최후의 통첩을 고대하고, 총진격할 수 있는 신념에 사무쳐 결속된 무리가 있으면 그 무리는 현실을 위해 결속된 무리가 아닙니다. 현실을 위해 규합한 무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하여 결속한 무리입니다. 그런 모습이 갖추어져서 환경을 극복하고 남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고 할진대, 그 무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볼 때, 개척자는 자기가 당하는 그 일에 관심이 없어 가지고는 그 일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신념을 가지고, 눈앞에 나타나는 그 일이 처음이요, 부딪치는 것도 처음 부딪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서 백번 천번 주의하는 마음으로 안팎을 헤아리고, 그것을 연구하고 분석 비판해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되겠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그 어떤 환경을 빨리 해결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쉬운 길을 거쳐서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예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척자의 반열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그 이름 자체로부터, 움직이는 그 실체로부터, 남아진 생애로부터 가려가야 할 역사적 운명이 전부 비참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안식의 터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역적으로 천국이 이루어질 때까지, 또한 그 분야가 한계선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지의 분야와 미급한 분야를 타개할 수 있는 개척자의 입장에 서서 내일의 소망에 불탈 수 있는 현실적 자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부대낌 가운데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져서 상속의 인연을 넓힐 수 있는 터전을 가꾸어 가야만 개척자로서 소망하던 승리의 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가 가야 할 길은 언제나 모험입니다. 언제나 수난길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그 모험이라는 것이 자기 환경의 어떤 사건을 중심삼은 것이 아니라, 전후좌우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에 부대끼는 그런 모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재간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노력과 투쟁밖에 없습니다. 노력과 투쟁을 해 가지고 그 다음에 비판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식의 기준을 먼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투쟁의 결과에 의해서 지식의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게 될 때, 그것이 인류가 추앙할 수 있는 보다 가치적인 내용이라고 하면, 그것은 새로운 것으로서 역사상에 없었던 모험을 극복하고 나서 출발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 복잡다단하고 사악된 환경에서, 생사의 권을 가려 낼 수 없는 운명의 판도를 이루어 나오는 이 무대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일상 생활 가운데 따라오는 그런 신앙의 태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상습적인 생활에서 그리고 있는 소망의 일념을 이루어 보겠다는 그런 미미한 결의를 가진 사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일의 약속의 터전을 공고히 한 자리에서 이어받게 하기 위한 보다 고차적인 새로운 사상이요, 새로운 이념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이 처한 직장이면 직장, 혹은 천태만상의 환경에서 그 사상을 중심삼고 새로운 모험과 극복의 노력을 통하여 체험한 것을 가려내어 그것을 기록으로 고이 남길 수 있는 대표자의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있으면 '통일신자가 있는 직장은 이래야 된다'고 하며… 과거와는 달라야 됩니다. 이래야 된다는 그 자체가 모험인 것입니다. 열, 백, 천의 동지들이 있다고 할 때, 그 동지들이 맨 처음에는 자기들과 같지 않다고 규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같아 가지고는 내일의 터전을 개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같아 가지고는 아무 것도 안 됩니다. 거기서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될 수 없습니다.
달라야 한다면 어떻게 달라야 하느냐? 비슷하게 달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차원을 달리한 입장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면 다를수록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름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는 시련이 따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모험이 언제나 같이하는 것입니다. 자기 입술이 하나 잘못하게 되면 전부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잘하여 환경은 세계적인 내용을 갖추더라도 개인 한두 사람밖에는 알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갖춘 가치는 천주에 드높이 찬양하고 선포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나타난 상대세계에서는 한두 사람밖에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봄날이 되어 새로이 푸른 잎을 내는 모든 나무들은, 일년이면 일년을 중심삼고 갖가지 수난을 겪은 후에 가을절기를 맞이해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갖추어진 열매가 그 자체의 사실을 증거하는 것과 같이 결과는 끝에 가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봄에 푸르게 출발했으면 여름에도 푸르러야 되고, 가을까지도 자기의 본색이 열매를 위해서 언제나 그러했다는 가치의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지 않아서 열매가 떨어지게 될 때는 도리어 열매가 맺히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것입니다. 열매가 맺혀 가지고 자라다가 떨어지게 되면 도리어 그 나무 자체에 손해를 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 결실보다는 차라리 잎이 나을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개척자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모험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까딱 잘못 행동하게 되면 그 인격이 일시에 파탄되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일시에 파탄될 수 있는 행동도 단행할 수 있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현재에는 파탄될 수 있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소망의 세계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떤 하나의 중심된 사건을 남기고 싶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이 제시하는 그런 조건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위신이나 인격이나 체면은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 하나의 행동을 현실 전체가 받고 있는 것보다 크고 보다 가치적인 내용으로, 보다 귀한 것으로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개척자로서의 상속을 미래에 남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내가 어제 밤에 그렇게 잠을 잤고 밥도 그렇게 해먹고 지냈으니, 오늘도 그렇게 해야 되고, 또 내일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전체가 어제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측정했다가는 전진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기준을 중심삼고 측정했다가는 전진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는 항상 자기 생명을 위험의 첨단에 내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자기의 인생관이나 우주관 전체를 보따리 싸서 걸어 놓고 예스냐, 노우냐 하는 이자택일을 결정지어야 하는 순간에 있는 것입니다. 개척자는 과거에는 이러했다는 공인된 것을 취합하지 않고는 보다 가치 있는 전진적인 개척의 무대를 개척해 낼 수 없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으로부터 백 퍼센트 매장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매장되는 일이 참이라면, 도리어 세상을 매장시킬 수 있는 역사시대의 새로운 전통의 기원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천년 후에 그 일이 인류 앞에 필요한 일로 등장하게 되면, 천년 역사의 승리의 터전을 맞는 그 날에 가서 천년 전 비운에 사라진 그 불쌍한 운명의 개척자는, 천년 역사의 영광을 대신하여 찬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개척자가 가는 길은 언제나 모험의 길입니다. 그 모험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갖추어 온 인격기준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가서든지 미래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보다 높은 가치의 내용을 추구해 나가는 길이지, 현재의 입장에서의 가치를 보고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이렇게 가야 한다고 나왔을 때는 가는 것입니다. 망해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해야 될 일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직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이 지구를 몽땅 붙안고 뒤넘이쳐 가지고 갖겠다는 사람, 지구의 중심을 꿰어 가지고 그 양끝을 쥐고 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지구의 주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 간다 하면 지구의 구멍을 뚫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보다 가치 있는 개척자는 어떤 사람이냐? 현실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 입니다. 현실보다도 미래에 무한한 가치를 두고 거기에 전심을 쏟고, 거기에 생명을 걸어놓고 무한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길이 있어도 그것을 응당한 일로서 받아들이기를 결의한 사람들만이 개척자로서 역사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현실기준과 더불어 미래를 남기겠다는 사람은 개척자가 될 수 없습니다. 개척자는 언제나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이 그러하며, 앞으로도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그러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이 세계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할 때, 나는 그럴 자신이 있습니다. 모험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통일교회를 사랑하고 이끌고 가야 할 책임이 내게 있지만, 이것을 미워하고 저버리고서 더 빠른 길이 있다면, 미워하고 저버릴 수 있는 그런 놀음도 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안 되게 될 때는 무자비하게 끊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과연 그럴 수 있느냐?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무개의 남편, 아무개의 아내, 혹은 아무개의 아버지로서는, 하나님께서 개척자들을 통하여 창건되기를 바라는 이상의 터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의 힘과 권위를 이어받고 남기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서야 합니다. 부정뿐만이 아니라 파탄시키고 나서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파탄시키고 부정하고 나설 때에는 그 이상의 가치를 보고 느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러는 사람은 바보요 미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이것이다' 하는 가치적인 내용을 내가 알고 있고, 하나님도 틀림없다고 알고 있고, 40억 인류도 틀림없다고 알고 있으면 그 가치가 현재의 가치적인 내용을 능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라고 내모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개척의 노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통일교회는 개척의 교회입니다. 세상의 외적인 그 무엇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인들은 황무지와 같은 정신세계의 개척자요, 선구자입니다. 여기에는 미지의 사연들이 너무나 많이 복합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과 관계를 맺을래야 맺을 수 없고, 인연의 사실로서 제시할 수 없는 내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개척자라고 자신하고 나서면 나설수록 그 많은 내용들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고, 두 가지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고, 세 가지의 일, 천만 가지의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럴 때에 이것도 내가 해야겠고, 이것도 내가 바라던 것이며, 이것도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도량을 내 스스로가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내 성격에 맞으니 되고, 이것은 맞지 않으니 안 된다고 하기 전에 모든 것을 다 삼켜 소화시키려고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것만을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도 좋게 만들기 위한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다방면으로 고차원적인 입장에 서서 전체적인 면을 소화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분야에서 이러한 작전 계획을 세워서 했는데 그 작전이 적용되지 않게 될 때에는 반대의 분야를 향해 급변하여 돌이키는 작전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금을 써야 하는데 금이 없으면 구리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혹은 놋쇠를 대신해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금과 구리와 놋쇠는 다르다. 영영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런 것이라도 연결시켜 가지고 극복해야 됩니다. '너와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맺어져 있다'고 할 수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타락한 세계에 있어서 그 길을 가는 데 직행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엇갈려 가거나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직행하는 걸 원하십니다. 그러나 직행하자면 두 세계의 죽음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탄세계의 죽음을 극복해야 하고, 하늘세계의 죽음을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두 세계의 죽음길을 극복하기 위해 나왔던 것입니다. 즉, 육적 세계와 영적 세계를 극복하기 위해 싸워 나온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이며, 육적인 세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세계의 죽음길을 극복하고 비로소 승리의 한 나라와 승리의 한 전통을 이 땅 위에 세우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입니다.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내에 그런 통일교인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일교인이나 대한민국 내의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는 비참사, 혹은 극복하기 어려운 수난길을 자기가 스스로 자신있게 처리하겠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는 세계적인 입장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길이 약속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청년들 가운데 통일교회를 책임질 사람은 어떤 사람일 것인가? 통일교회의 청년들 가운데는 배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겠다' 할 때 그 단체는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우는 목적은 어디에 있으며, 따라다니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자기가 잘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가 그것이 안 되는 날에는 도망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배우는 목적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것이고, 따라가는 목적도 세계에까지 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이 아니겠어요?
따라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선두에 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이어받아 가지고 숭상하면서 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역사가 없는 자리에서 역사를 창건해 나가는 사람이 개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동기를 지니고 간다고 하는 사람은 개척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따라가는 사람이요, 본받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따라가는 사람이 될 것이냐, 개척자가 될 것이냐? 여러분은 뭣이 될래요? 여기 여자들, 나이 많은 할머니들, 따라가는 사람이 될래요, 개척자가 될래요? 아들딸을 낳게 되면 개척자가 될 수 있는 아들딸을 낳을래요, 따라가는 아들딸을 낳을래요?
개척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방향입니다. 자기가 그릇된 역사의 인연에 결부되게 되면 그 자신은 자연적으로 파탄되는 것이요, 방향이 잘못되어도 그 자신은 산산조각이 나서 그 생명의 밑바탕도 건질 수 없을 만큼 파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에게 신앙길이 있다면 그 신앙길은 절대적인 신앙길일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 길을 찾기 위해 검불도 구원의 줄로 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역사도 없고, 무엇을 본받을 것도 없습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실체이며, 자기 자체가 승패의 결정을 마련해야 할 입장이니 얼마나 심각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개척자에게는 그런 길이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제 그만큼 했으면 세상적으로 볼 때,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해야 할 보다 높은 차원의 일이 있다는 거예요. 과거와 현재에 개척자의 사명을 다했으면 미래에도 남아질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척자의 권위와 그 가치를 심어 놓고 가야 됩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니냐는 거예요. 심어 놓으려면 개척해서 씨를 뿌려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실에 있어서 여러분 중에도 '통일교회가 뜻은 그렇지 않은데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개척자라는 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입니다. 통일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개척자의 사명을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평하는 입을 가진 사람들은 개척자의 역사에 있어서 심판을 받아야 할 패들입니다. 얻어먹기 위해서 주둥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개척자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자기 일신의 행복을 위해서 끌려가는 패들은 열매가 필요할 때에는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처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개척자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밥을 먹어도 다른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밥을 빨리 먹어? 하겠지만 그 사정은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개척자는 언제든지 바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천성을 그렇게 타고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를 실험하는 사람과 열 가지를 실험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연구를 더 빨리 끝내겠습니까? 열 가지를 실험하는 사람이 빨리 끝낼 것입니다. 그것은 만사를 그 일과 관계맺어 가지고 행여나 거기에 자기가 요구하는 길이 없나 하고 연구를 하기 때문입니다. 연구하는 사람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산에 올라가나, 들에 나가나, 자나깨나 항시 모험과 더불어 투쟁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지고 이 모험을 일시에 끌어내 가지고 밟아 넘어갈 수 있는 그 체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사연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도상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그 길을 가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고맙다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 봐야 합니다.
안절부절하면서 전진도 못 하고, 후퇴도 못 하고, 옆으로 빠져 나갈 수도 없고, 죽자니 죽을 수도 없고, 살자니 살 길도 없지만 가야 할 운명을 알고 몸부림칠 때에 상징적인 교시의 내용이 있어서 실체를 구원해 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상징은 실체보다 더 놀랍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백을 중심삼아 이것을 상징적으로 해결해 놓고, 실체로 백의 일을 하게 되면 이백을 차지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내용을 바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상징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통하는 사람은 시일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점점 모르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가의 승리권을 가려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개척 무대를 넓히기 위해서는 그 길을 찾아야 되곤 상속받기 위한 환경에 완전히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 눈을 바라볼 때, 너는 내가 이 길을 찾아 나오는데 있어서 몇 가지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바라보고 찾았느냐? 하고, 또 손을 볼 때도 손가락 너는 나한테 몇 가지 도움이 됐느냐? 너는 선한 일을 몇 가지나 했느냐? 하고 반문해 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눈에 상처를 입고, 손에 상처를 입었으면 그 상처를 볼 때마다 옛날의 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개척자가 가는 길은 모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극복을 해야 될 뿐만 아니라 투쟁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어떤 참고 자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숱한 극복의 환경을 거쳐 가지고 틀림없는 결과가 나올 때 그러한 것을 재료로 삼아야 역사적인 결과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잘 살 수 있는 표준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대책을 자기가 세워야 됩니다. 즉, 자기가 역사가 되어야 하고, 진리의 실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어떤 표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가만히 있어서 되겠어요?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 앞에는 재료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발전하려면 개척자의 노정을 통하여서 승리적 터전을 연결시켜 가지고 하늘의 뜻을 복귀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탕감복귀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만한 가치로 탕감되느냐? 민족적 가치냐, 국가적 가치냐, 아니면 세계적 가치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탕감을 하려면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 제물을 드리는 데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탕감을 한다면 민족의 가치만큼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데는 민족적 개척의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주체적인 책임을 다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피를 흘리는 것이나 수난길을 가는 것은 마찬가 지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나 여러분이 고생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가는 길과 여러분이 가는 길이 똑같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개척의 길을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그러한 개척의 길을 남겨 가지고 영원히 추앙받을 수 있는 역사가 못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타락한 역사이기에 영원히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복귀과정에 있어서의 탕감이나 수난길은 머리에 남겨 두고 싶은 길이 아닙니다. 지긋지긋한 길이요, 잊어버려야 할 길이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신음하면서 수고해 오시고 개척해 오신 노정을 통고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 자체가 하나님 자신이 돼야 하고, 진리 자체가 하나님 자신이 돼야 하고, 모든 결정적 주체, 권한, 표준, 혹은 방향의 중심도 하나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한 거기에는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역사를 통해 미래의 역사를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는 과거의 역사를 다 흘려 보내 버리자는 거예요. 그것은 수습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귀의 세계를 거쳐서 비로소 이 땅 위에 천국을 창건해 가지고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터전을 갖추면, 그때부터 창조이상을 꿈꾸어 나오던 하나님은 역사를 남기고 싶을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외로울 때는 여러분 혼자서 외로울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럴 때에는 친구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보다 앞서 있을 때는 도움이 될는지 모르지만, 앞서 있다고 하더라도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는 전체가 아니라 한 분야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체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는 통일교회를 이끌고 있는 문선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들은 한 분야의 책임을 질 입장에서 사명을 해 나왔지만, 중심을 결정지어야 할 끝날에 있어서는 중심적인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개척자의 중심이요, 역사의 출발이자 종결이요, 진리의 주체이시며, 방향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가 개척자가 찾아가야 할 자리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금후의 통일교회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금후에 내가 어디로 갈 것이냐를 생각하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지입니다. 목적성으로 볼 때,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 것이냐를 염려하는 사람은 삼천만 민족을 거느릴 수 있지만, 나라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이냐를 염려하는 사람은 삼천만 민족도 잃어버리고 고독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후의 통일교회는 어디로 갈 것이냐를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면 자기는 통일교회에 있어서 개척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금후의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이냐? 현재는 암담한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문제를 중심삼고 부딪쳐야 됩니다. 그러한 제시 조건을 중심삼고 몸부림치며 대한민국의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금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어야 될 것이냐. 복귀섭리의 방향은 어떻게 진군되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가는 그런 현명한 사람들로 인하여 역사의 방향은 수습되어 나갈 것입니다.
북괴와 대결하고 있는 한국의 현재 입장을 살펴볼 때, 이웃 일본은 지금 중공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며 좌경화되어 가고 있고, 미국도 소련과 얼룩덜룩해져 가지고 이쪽도 믿을 수 없고, 저쪽도 믿을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사해에 둥둥 떠서 현재의 운명을 모면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입장에 서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역사상에 없는, 어떤 나라도 당하지 못한 비참한 환경에 몰렸다고 해서 상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 새로이 딛고 올라서는 날에는 세계 만민이 따라올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생길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그러한 길을 개척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역사가 없습니다. 또 역사를 창조해 가지고 이렇다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역사를 개척해야 합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고 있는 문선생은 어떤 사람이냐? 선생님은 지금도 개척자의 사명을 다해야 되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변함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은 변함없는 생활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망성이 있는 거예요. 나는 다가오는 세계를 위해서 모험을 하기도 하지만, 모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모험을 시키기도 합니다. 모험을 시키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명령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개척환경을 터득하기 위한 보다 고차원적인 미래에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접근되고 현재에 도취되는 내용을 가지고 명령을 하게 되면 현재에 정지되는 터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현재를 뚫고 미래의 역사를 창건할 수 있는 중심적인 터전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상승적인 면을 바라보고 가라는 거예요. 그것이 전국으로 나타나고 세계로 벌어지게 될 때는 새로운 역사가 창건될 것입니다.
그러한 신념과 그러한 다짐을 갖고 있느냐? 무한한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명령할 때에 하늘과 땅이 보좌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는 길이 평탄하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9부 능선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힘이 듭니다. 여러분이 저 강원도 같은 곳에 가서 산길을 넘나 들어보면 아무리 높고 험한 산이라 하더라도 평지는 다 마찬가지인 것을 알게 됩니다. 높은 산에 있어서도 평지는 마찬가지입니다. 올라가려고 하면 높은 것 같지만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 평지에서 살자'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높은 세상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평지를 부정하고 높은 것을 긍정하면서 그 높은 것에 근접 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극복한 결과로 남겨지는 실적과 여건이 자기의 승패의 가치를 다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7부 능선을 넘고, 8부 능선을 넘고, 9부 능선을 넘어…. 10년 공을 들여서 절정에 올라서는 마지막 판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십년 걸려 올라와서 내딛는 그 마지막 한 발자국은 역사적인 것입니다.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세계의 뜻을 세워 나오시는 하나님께도 넘어야 할 최고로 힘든 고개가 있을 것입니다. 그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탕감이 필요합니다. 그 탕감을 치르는 자리는 한 발자국 내디디자마자 쓰러질 수 있는 자리이지만, 억천만 인이 찬양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어제 석온씨의 딸이 죽었습니다. 석온씨는 정말 정성을 많이 들이는데 작년에는 아들을 잃고 올해는 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만들려니 세상을 믿고 있는 시시한 건덕지 같은 것들은 다 데려가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딸보다도 자기 아들보다도 진정 통일교회를 위하는 아들딸을 더 사랑하겠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에 반대가 될 때는 데려가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열 번 가면 자기 아들에게는 한번 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래요. 원필씨 집을 한 번 가보았습니다. 그것도 갈 기회가 있어서 간 것입니다. 딴 집에 가면 갔지 안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먼 것이 아니예요. 원칙이 그래요. 성진이가 거기에 있었지만 가서 공부 잘하라고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안 가 보는 거예요.
대신 사람을 보낼 때에도 내가 침범받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남기고 보냈습니다. 탕감복귀역사라는 것은 원칙을 벗어나면 용서가 없습니다. 통일교회를 믿다가 나간 사람들 중에 선생님 앞에 말할 수 없을 만큼 낙망을 주고 간 사람들은 절대 다시 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그만큼 믿었던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뿌리채로 빼돌려서 배은망덕을 하게 되면 거기 에는 무서우리만큼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탕감법에는 사탄편에 대해서 탕감하는 법이 있고 하늘편에 대해서 탕감 하는 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민족이 반대했던 것을 다 맡아 가지고 탕감하게 되면 하늘은 그 사람을 보고 민족을 용서해 줄 수 있는 거예요.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이 꺾여져 나가면 통일교회는 그만큼 발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민족을 부활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귀는 반대적인 탕감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악착같이 반대를 받아야 됩니다.
평양에서부터 반대해 나온 사람이 지금도 한 사람 남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바라보면서 탕감법은 저렇게 적용되어 나가는구나 하고 연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라는 것은 자기 아들딸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도 믿지 못하며,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는 고독단신입니다. 언제나 역사도 없으며 인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역사를 세울 수 있는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연을 남길 수 있는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개척의 일로를 거쳐가야 합니다. 언제나 새출발이요, 언제나 시작이며, 언제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가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도 그래야 하지만 통일교회 교인들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청평에서 건물을 짓고 있는데, 날이 궂지만 않았어도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장마가 져서 문제입니다. 오늘이나 내일쯤에 끝나리라 보고 있는데, 내일은 어차피 끝나지 않더라도 목사들이 집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도 재료들을 구입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직접 나가서 연락을 해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내가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배를 타고 나왔습니다. 비가 얼마나 들이 퍼붓는지 이건 도망가는 사람 같았습니다. 뒤에서는 기관총으로 사격을 하는데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가는 그런 입장 같았습니다.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청평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십 일 동안 땅을 팠습니다. 그러면서도 보통 네 시간, 다섯 시간밖에 못 잡니다.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어제는 내가 부상자 나서라고 하니까 26명 중에서 8명이 나섰습니다. 3분의 1이 부상자였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쓱 보니 죽을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곡괭이에 좀 다치고, 못에 찔리고 해서 발등이 좀 부은 것을 가지고 부상이라고 하며 절뚝절뚝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놈의 자식들, 이 자리에서는 부상을 당하는 사람이 나와야 되는 거야. 피를 흘리는 사람이 나와야 돼'라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는 탕감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번에 지구를 새로운 편제로 개편했는데, 지구에서 실무 책임을 졌던 사람들을 전부 불러왔습니다. 통일교회 이름을 이 녀석들이 자꾸 나쁘게 만들고 다니거든요. 그래서 이 녀석들을 데려다가 한번 수고를 시켜야 되겠다 하고 생각해서 계획적으로 불러온 것입니다. 그러니 도망 갈 수 있어요? 도망 갔다가는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들이박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보고 있으면 힘이 나지만 내가 없으면 힘이 없어진다나요. 왜 그런지 선생님이 있으면 그저 밤이라도 부대끼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선생님이 없으면 기운이 쭉 빠진다는 거예요. 내가 하루만 여기 와서 자고 가도 일을 전부 다 거꾸로 해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단법석이라는 거예요. 집 짓는 일을 몇십 년 한 사람이 하는 일도 내가 가서 코치를 해야 제대로 되는 거예요. 내가 목수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입장에서 그 표준의 가치를 관찰하게 되면 그것이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대번에 알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온돌을 놓는 것도 내가 '온돌은 이렇게 놔야 한다' 하고 코치를 해야 되더구만, 또 어저께는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왔는데, 우물을 어디에 파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라면 산줄기를 보고 물이 어디에서 나올 것인지를 알아야 할 텐데 나한테 와서 어디에 파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가만 보니깐 내가 대장 같은지 나한테로 오는 겁니다. 며칠 일을 하는 가운데 목수들도 일을 잘못 했다가 나한테 기합받고 다시 뜯고 하니까, 자기들도 잘못 했다가는 말을 듣겠으니 내 눈치를 살살 보면서 나한테 와 가지고 '어디를 파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딜 파긴 어디를 파? 우물만 몇십 년씩 판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어떻게 일을 했나? 우물은 굳은 땅과 무른 땅의 접경이 있으면 그 줄기가 직선으로 흘러가다가 옆으로 누었을 때 그 줄기를 따라서 찌르면 물이 나오는 거라구. 안 그렇소'라고 했더니 언제 우물 파는 것을 다 배웠습니까?하는 것입니다. 그건 이치입니다. 내가 배우기는 뭘 배웠겠어요. (웃음) 이치가 그렇다는 겁니다. 벌써 척 대하면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는 책임자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오던 것이 이젠 전부 공식화되어 있습니다. 척 보고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결과는 어떨 것이다 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보는 데는 한 곳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봅니다. 집터를 닦더라도 전체를 봐 가지고 닦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통일교회식은 전부 개척입니다. 청평에 집을 짓는 것도 두 달 정도 걸려야 될 것을 8일 만에 완성하는 것입니다. 7월 초하루부터 터를 닦으라고 해서 2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에 다 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마루를 놓고 벽을 바르고 그 다음에는 천정을 다 했습니다. 비가 오게 되면 이것도 고마울 수 있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오늘은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통일교회 교인들 중에는 '뭐 선생님은 타고난 천성이 저러지 않으면 소화가 안 되고, 잠도 못 자구 팔자를 세게 타고나서 그러니 할 수 없지. 스스로 기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니 동정할 것 없다' 하고 말하는 만성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청평에 지은 집이 93평입니다. 이 강당이 한 40평 되니까 여기에 있는 인원의 배가 들어가고도 남습니다. 또 청평수련소의 강당만 따진다면 한 70평이 되므로 200여 명은 잘 수 있습니다. 고런 집을 짓는 일을 일주일 동안에 해치우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하면 만 열흘이 됩니다. 오늘이 71년도의 7월11일인데 원래는 어제까지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넘겨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8일 동안에 전부 끝내고 그 다음에는 도장을 하는 것입니다. 칠을 하고…. 한 3,4일간 단장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단장은 잘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피난통에 시집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단장을 하지 않고 시집을 가더라도 신랑을 만나서 잘 살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개척입니다. 집을 짓는 데 있어서도 개척입니다. 우리가 수택리 수련소를 지을 때도 28일만에 다 지었습니다. 땅이 얼어서 일주일 동안은 쉬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21일 동안에 지은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창건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늦으면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내가 어제는 청평에서 나오면서 무얼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이지만 자는 것이 제일이라고들 그러는 거예요. 그러더니 점심을 먹자마자 전부 쓰러져 쿨쿨 자는 거예요. 그래서 요전에 내가 과자를 만원어치 사다가 쌓아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나누어 주었었는데, 이제는 일도 끝나고 했으니 그 과자 봉지를 가지고 가서 먹고 싶은 사람은 먹되 자는 사람은 깨우지 말라고 했더니 전부 다 깨는 거예요. (웃음)
그 사람들한테는 잠이 참 그립다는 것입니다. 잠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는 거예요. 또 어떤 때는 밥 먹는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내가 일부러 밥을 주지 말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열한 시, 열두 시, 세 시가 지나면 '밥 안 됐어? 하고 한 사람 두 사람 묻는 것입니다. '아직 밥이 안 되었어' 하게 되면 처음에는 웃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도 밥이 안 되었다고 하면 그때는 전부 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공산당의 배급제도가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사랑이니 하는 것보다 밥줄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이 제일 빠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먹는 것도 개의치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밥 먹는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내가 아침을 안 먹었으니까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없어요.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먹으면 먹는 거예요. 끼니마다 먹어야 된다는 것을 누가 만들었는지 기분이 나쁘다는 거예요. 아침 점심 저녁 먹어야 된다는 걸 누가 만들었어요? 선조들이….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아침을 열한 시에도 먹고, 열두 시에도 먹고, 오후 한 시에도 먹습니다. 또 저녁은 새벽 한 시에도 먹어요. 그게 통일교회식입니다.
우리 아가씨들은 좋은 옷을 입고, 귀여움을 받고 사는 것이 전통이지요? 그렇지만 통일교회의 전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 다 데려다가 고생을 시키고, 일을 시키는 겁니다. 어제도 누가 아가씨 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일을 도와주는 것을 가만히 보면서, '너 누구의 집에서 왔나' 하고 물으니 '아무개 집에서 왔어요' 하길래, 내가 '너 여기에 있고 싶지? 라고 물었더니 '아무개가 이렇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하고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래서 '그래, 그러면 내가 아무개한테 말해서 그런 일 없게 할 테니 너는 언제나 여기에 있는 거야'라고 했더니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가만 보니 구질구질하고 비를 맞으면서 일을 하고 있거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잡아다가 일 시키기를 좋아합니다. 그건 왜? 개척을 하는 개척자가 되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앞으로 한국의 옷도 개조하려고 지금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집도 개조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집을 경치가 좋은 곳에 지으려고 하지요. 지금 때는 경치가 좋은 곳에 집을 짓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지하도시가 생겨날 것입니다. 지하에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수중도시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드러나는 곳에 집을 잘 짓는 것은 맛이 없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남이 하는 것은 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색다른 것을 하려니 땅에 구덩이를 파서 좋은 빌딩을 짓는 것입니다. 땅구덩이를 파서 몇백 층 되는 빌딩을 지으면 얼마나 근사하겠어요? 그것이 좋다는 거예요. 사람의 소질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사람은 개척자의 소질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구덩이를 파서 빌딩을 짓는 것, 그건 쉽다는 거예요. 수중에다 그렇게 지으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태평양 한가운데에 철재를 싣고 들어가는 그 맛이 얼마나 멋지겠느냐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무엇을 할 것이냐? 정부에서는 경부간 고속도로를 부설했지요? 그 정도 해 가지고는 기분이 좋지 않아요. 무엇을 할 것이냐? '서울에서부터 동경까지 직행할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드는 것이나,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를 흙으로 메꾸는 정도 가지고는 기분 나쁘니까, 세계에 있는 좋은 반석들을 전부 다 갖다가 전세계를 연결하는 길을 닦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걸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구라파 일대를 다니면서 교황청이 있는 로마의 바티칸 궁전에 가보았는데, 그곳에 구라파 문명의 정수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종교사상은 위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왔다간 지 수천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문화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정신적인 영향이 깃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죽은 예수가 그런 문화를 창건했다면 살아 있는 문선생은 무엇을 창건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바티칸 궁전의 위쪽은 도움(dome)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백 사람이 한꺼번에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삼백 칠십 몇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올라가려면 다리가 아파요. 한꺼번에 수백명이 오르내리는데도 내려앉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 꼭대기에 올라가게 되면 밑을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할아버지들 할머니들이 참 수고를 했다는 거예요. 초가 삼간을 지어 놓고 그래도 거기에서 아들딸들을 낳고, 그 아들딸들이 뭐 세계가 어떻고 어떻고 했으니 말이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식이 다르더라는 겁니다.
앞으로 통일교회는 뭘 할 것이냐? 역사적인 위업을 남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서 우리의 후손들이 수고하지 않고도 잘살 수 있게 만들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로마는 현재 관광 수입으로 정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통일교회 뭘 할 거야? 통일교회 이 본부, 내가 여기 본부에 오게 되면 입이 아파요. 본부 안에 기둥이 몇 개가 있느냐 하면 여섯 개 가있습니다. 이 6수 기반을 넘어서 7수를 세우기 위한 것이 통일교회 본부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기둥이 여섯 개지요? 여기에 하나 더하면 일곱이 되는 거예요. 이 기둥을 척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세계 어디를 다녀 봐도 교회에 기둥이 있는 곳은 여기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개척입니다.(웃음)
합동결혼식도 내가 개척했습니다. 통일교회는 개척을 참 많이 했습니다. 본래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이 통일교회이니만큼 여러분도 개척을 해야 합니다. 개척에는 모험과 극복이 필요합니다. 어떠한 역사적 전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역사를 만들어야 돼요. 선생님에게 지도자가 있어요? 없지요?「예」없지만 내가 전부 다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지시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주간종교 신문을 낸다고 하니까 기독교회관에서 얼마나 배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신문이 제2호가 나오니까 야단들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신문사가 네 개가 있어요. 크리스찬신문, 연합신문, 기독공보, 주간기독교, 우리 것까지 하면 다섯이구만. 오자(五者)가 경쟁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비록 꼴찌로 출발했지만 꼴찌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꼴찌로 출발했을 때에는 뒤로 돌아서는 거예요. 그러면 일등이 되는 것입니다. 출발선에 서자마자 돌아설 때는 일등이 된다는 거예요. (웃음) 주간종교 2호가 나오니까 크리스찬신문사의 어떤 국장이 하는 말이 이제는 자기들 신문사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는 거예요.
빚을 져도 내가 하겠다 이겁니다. 옛날에는 사정이 어려우면 미인 아가씨를 머슴한테 시집 보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도 그런 데가 있어요. 돈을 받고 딸을 시집 보내는 수도 있다는 거예요. 신문사를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가씨들 가운데에서 '그렇게 해도 난 좋습니다' 하는 사람은 시집을 가는 데에 있어서 개척자입니다. (웃음)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왕지사 할 바에는 남달리 해 가지고 멋지게 잘 살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부 다 개척을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실패도 많이 해봐야 됩니다. 실패를 해보는 것도 개척입니다. 실패해 가지고 맨 나중에는 올 데 갈 데도 없는 벌거숭이가 되어 전진도 할 수 없고, 후퇴도 할 수 없어서 앉아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것도 개척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구멍을 파고 딴 짓을 해서라도 그 이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이 된다면 그 맛을 봐도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 간부들 왔으면 손들어 봐요. 저 구석에 딱하니 앉아 있구만, 간부들이 '선생님만 애쓰시게 해서는 안 되지, 우리가 해야 된다구'라고 하면서 말은 잘합니다. 그래 임자들에게 맡겨 놓으면 세계적인 것을 만들 것 같아요? 이건 하지도 못하면서 괜히 뒤에서 타박만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장(長)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젊은 사람으로 교체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작용이 많다는 거예요. 이사장이니 사장이니 하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더니 오히려 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요사스러운 패들이 된다는 거예요. 아직까지 내가 책임해야 할 것을 몇 가지 못 해서 그렇지, 그것만 해 놓으면 서슴지 않고 인사조치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준비해야 될 거예요. 지금처럼 해 가지고는 플러스가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들 말대로 하면 자기 꼴 되지 별 수 있어요? 송충이 말들으면 송충이밖에 될 것이 더 있느냐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끌어서 자기들을 출세시켜 주면 그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소망을 가지고 찬양은 못 할망정 왜 뒤에서 수작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까지 별의별 말이 많다는 거예요. '무슨 종교단체가 공기총을 만들어 살생을 하다니…'살생이 뭐예요. 자식까지 잡아서 제사 지내려고 결심한 사람 앞에 새나 개, 돼지, 소, 양 그런 것이 문제겠어요? 대한민국을 위해서 앞으로 그런 길도 개척하려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개척입니다. 어린이 무용단을 시작할 때도 '통일교회는 여편네들이 벌거벗고 춤추더니 이제는 그 자식까지 춤을 추는구나. 그것 봐라 밤낮 춤추더니 또 춤추는 자식 낳았다'고 하는 등 별의별 말을 내가 다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겠으면 하라는 거예요.
이번에 수련소를 지을 때도 얼마나 불평이 많았어요? 선생님은 뭐 도깨비같이 밤낮 잠도 자지 않느냐고 하면서, 거 일하는 녀석들도 나만 보면 슬슬 도망가는 거예요. (웃음) 무슨 발광증이 나서 밤잠도 안 자고 두 시 세시까지 야단이냐고 하지만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겠느냐는 거예요. 문선생이 미칠듯이 일을 하는 데는 하나님께서 같이하십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집중하게 되면 거기에는 천운이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청평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 청평에다 집을 짓고 있는데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집을 짓는 데에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정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기성교회를 복귀해야 한다고 말한 장본인이므로 지금 짓는 성전은 기성교회 목사들을 위해서 준비하는 성전이니 정성을 들이라는 거예요. 이것을 다한 후에는 내가 집을 짓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난 후에는 통일교회가 세계에 제일 가는 교회를 짓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안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리원칙에 절대로 상치되면 안 됩니다. 그러니 지금이 좋은 때라 이겁니다. 비가 오더라도 그 비 오는 것이 도리어 자랑거리가 되고, 비를 맞으며 배를 타고 도망가는 사람의 신세가 되더라도 좋다 이거예요. 그 신세가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이 다 개척입니다. 땅을 파는 것도 개척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수련소를 짓기 위해 청평에 들어올 때 단벌신사였습니다. 입고 온 남방 샤쓰도 하나요, 입고 온 바지도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20여일 땅 구덩이를 파고 일을 하게 되니 팬티 하나만 남고 다 찢어져 나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샤쓰와 수영복이 있으면 되겠다 싶어 내가 샤쓰와 수영복을 사다 주었습니다. 알몸뚱이로 일하는 것을 보니까 남자들이라 아주 근사하더군요. 또 곡괭이질을 할 때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아주 예술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 나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집에 가야 할 날이 다 되었는데 단벌로 입고 온 옷이 다 찢어져 버렸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 꼴로 집에 가면 집에서는 '서울에 수련을 받으러 가더니 옷까지 다 찢어지고 뭘 빌어먹다 왔구나' 그러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양복도 한벌 사 주고 남방도 하나 사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오늘 열 시까지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이 사실을 그 사람들은 모르는 거라구요. 내가 돈이 없어서 그렇지, 나에게 돈만 있으면 이번에 수고한 사람들이 돌아갈 때 한짐씩 지워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을 안 한 사람들은 '아이쿠 나도 그때 했으면 좋았을 걸' 할 것입니다. (웃음)
여러분들은 선생님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런 얘기도 안 하려고 했지만, 어제는 기도하는 가운데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과 일 대 일로 만나서 영적으로 공방전을 해 가지고 그 사람을 깨끗이 굴복시켰습니다. 기분이 좋은 날이었어요. 그것을 보게 되면 탕감복귀역사는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이 7월 11일인데 안팎으로 이렇게 다 되는 것을 볼 때, '내가 잼대질을 하는 것이 영계에도 관계가 되어 있고….이제는 안팎으로 들어맞는 때가 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옵니다. 이것을 볼 때,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에 통일교회의 역사는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일생이 지나가게 되면 천년, 만년, 억천만년을 기다려도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런 인연인 것입니다. 한 고비, 한 고개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시대권내에서 같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통일교회 문선생은 개척자입니다. 종교에 대한 개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요즈음에는 사업에 대하여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사사까와 영감 일파의 간부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정치 경제면에 있어서 거물이라고 평을 하는 것입니다. 나까무라 목사가 대만에서 사사까와를 만났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통일교회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됐는데, 고맙고, 보기만 해도 좋고, 생각만 해도 신납니다'라고 하니 사사까와 영감이 그런 데도 있느냐고 했다는 것입니다. 거 잘 모르거든요. 그런 거라구요.
내가 이제 세계에서 일등 가는 부자가 되면 틀림없이 돈을 대줄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과 사돈을 맺어 두면 좋을 거예요. 통일교회 아가씨나 총각들은 사돈이 되는 것보다도 선생님을 통해서 시집 장가를 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돈보다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극복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개척입니다. 알겠어요?「예」개척자의 소망은 오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 있습니다. 알겠어요?「예」그 내일은 어떠한 내일이냐? 그것은 내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체가 영원히 보장될 수 있는 내일입니다. 그 내일은 하나님께도 필요한 것이요, 민족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선생님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여러분에게도 필요한 것이요, 여러분의 후손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과정을 어차피 거쳐 나가야 합니다.
한국을 중심삼고 볼 때,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서려면 돈도 많아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여의도에 본부도 좋게 지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의도에 있는 땅을 지금 시가로 말하면 10억이 넘습니다. 시청이 결정한 공정시가로 봐도 배 이상의 장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잘 샀어요, 못 샀어요?「잘 샀습니다」그거 산다고 배 아파한 사람들이 많았지요? 이제 한 2,3년만 있으면 평당 7,80만원으로 펄쩍 뛸 것입니다. 그것만 팔아도 통일교회가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 명동 같은 데는 평당 280만원, 거의 300만원이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는 여의도가 서울의 중심가가 될 것입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이 보호하사, 내가 예상한 것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민족의 광장이 생기지요? 그게 누구 때문이냐? 통일교회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사당이 저 구석에 자리잡은 것은 그 땅을 우리가 사라고 그런 것입니다. 국회의사당이 거기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땅을 싸게 살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가 그 땅을 사니까 땅 값이 후닥닥 뛰어 올랐습니다. 내 기분이 좋은 것은 마포대교를 건너가게 되면 바로 통일교회 간판이 떡 보이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지을 세계본부 모형도가 떡 걸려 있는데, 한강을 건너가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서 120층 건물을 짓는다고 시에서는 이미 소문이 났습니다. 상징적으로는 성공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 놓으니 세상의 그 누구도 통일교회를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가난하지 않다는 거예요.
여의도 땅을 살 때 몇 개월 동안에 몇 억이라는 돈을 거뜬히 현찰로 지불했습니다. 3차로 지불하게 되어 있었는데 한 6억에 가까운 돈을 끙끙거리지 않고 거뜬히 지불했습니다. 그랬더니 시에서는 '한국에서 제일 부자라는 이병철씨도 현재 은행 구좌에 2천8백만 원밖에 없는데 통일교회는…' 하면서 놀라는 것입니다. 은행에서 대부받아 가지고 그 돈을 지불한 게 아닙니다. 그걸 보고 120층 건물을 짓고도 남는다는 실력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많은 게 아닙니다. (웃음) 그것을 샀기 때문에 지금 통일교회가 간판을 걸고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지방교회에 가 보라구요. 한 방에서 모든 식구가 사는 지역장들을 보면 밥도 못 먹고 장마에 흘러가다가 건져낸 쥐새끼 모양을 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통 자만 나와도 혼비백산하던 사람들도 통일교회가 이렇게 되어 있는 줄 알게 되면 도를 닦느라고 저러지 돈이 없어서 저렇다는 생각은 안 한다는 거예요. 그것을 생각할 때, 선생님 작전이 적중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청평에서는 우리가 대장입니다. 청평에서는 지금 집을 짓느라고 천막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폐병이 나서 수양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웃음) 우리가 청평을 드나든 지 4년째가 되는데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처량하거든, 비가 오게 되면 천막에 사는 신세가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괜히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편수가 되려면 도수를 가려야 되는 줄 모르고 말이예요. 내가 사람을 배치해 가지고 땅을 살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푼도 없어서 할 수 없이 그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입장에서 낚시터를 하나 닦으려고 하니 주인이라는 사람이 와 가지고 야단을 하는 거예요. '어떤 녀석이 주인의 승낙도 없이 낚시터를 닦느냐' 하고 말이예요. 그러면 '아 그래요. 주인 되니 대단하오. 그러면 물러가오' 이러는 것입니다. (웃음) 거기에는 일화가 많다는 거예요.
또 우리가 천막을 쳐 놓은 그 터는 쥐꼬리만한 뽕나무 밭이었습니다. 맨 처음에 청평에 가서 밤을 보내려고 하는데 천막을 칠 땅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내가 뽕나무를 자르라고 했습니다. 문선생이 쉬기 위해서는 뽕나무 하나쯤 잘라도, 주인은 참소할지언정, 뽕나무는 참소를 하게 되어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뽕나무를 자르고 천막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아침에 주인이 뿔이 나 가지고 찾아와서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종일 야단을 하는데, 그래도 대꾸를 안 하는 거라구요. (웃음) 그것을 한 사람은 딴 데에 가 있는 것같이 상관을 안 하거든요. 그렇게 한 사람이 내가 아닌 것같이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예요. 그저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것같이 있는 거예요. 그랬더니 첫 날에 와서는 야단을 하더니 그 이튿날에 와서는 야단하던 것이 조금 내려가고, 사흘째 와서는 더 내려가서 몇 마디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오히려 '미안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 미안해요? 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웃음) 주인이 생각해 보니 몇 푼 안 되는 뽕나무 하나 가지고 너무했다는 거예요.
내 덩치가 킬로 수로 얼마냐 하면 93킬로그램에서 97킬로그램을 왕래합니다. 조금만 더 나가게 되면 거인협회에 가입할 수 있는 거예요. (웃음) 그런 거구한테 조그마한 사람이 큰소리친 것을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너무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한 일년쯤 지난 뒤에 그 땅을 우리에게 팔라고 하니까 두말도 않고 팔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청평 좌우편에 80만 평을 마련했습니다. 80만 평이면 여의도 땅만합니다. 청평에서 별장을 지을 만한 중요한 곳은 내가 다 타고 앉았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와서야 그 냄새를 맡고 '저 사람들이야말로 강태공 할아버지보다도 더 시대를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한다는 거예요. (웃음)
낚시질을 할 때도 제일 많이 잡고, 제일 큰 놈을 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제일 많이 잡고, 또 제일 큰 놈을 잡았어요. 기록을 냈다는 것입니다. 1미터 이상 되는 잉어를 잡았거든요. 그렇게 기록을 세우고 난 뒤에는 고기를 잡는 쪽쪽 전부 놓아 주었습니다. 탕감복귀하는 것입니다. 기록을 세우기 전에는 잡아서 맛있게 먹었지만, 기록을 세운 후에는 놔 주는 거예요. 잡은 고기를 놓아 줄 때는 지느러미에다 나이론 실을 잘 매서 놓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다음에 그 고기가 잡힐 때, 사람이 잡았다가 놓아 준 것이니 그 사람도 놓아 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잉어를 놓아 주니까 잉어가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꾹 찔러도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놈아' 하고 소리를 지르니까 그때서야 가는 것입니다. (웃음)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통일교회와는 먼 영통인이 있는데 그 사람은 석가모니를 믿는 불교신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엊그제 영계의 석가모니로부터 선생님을 뵙지 않으면 안 되니까 선생님이 계시는 곳에 한 번 가서 잘 찾아 뵈라는 명령을 받고 부랴부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찾아오는 길에 잉어를 보았는데 그 잉어가 용왕의 딸이라나요. 용왕님이 쓱 나타나서 하는 말이 문선생이 잉어를 잡았다가 그 잉어를 놓아 주었기 때문에 참 고맙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잉어들이 나타나서 인사를 하고 축수를 하더라면서 이상하다는 거였어요. 잉어들이 전부 복을 빌더라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 세상만사가 다 인간에 의해서만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부터는 여기서 잉어를 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좋은 일을 하라는 거예요. 선심을 써야 될 때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고기를 희생시켜서 사람을 찾기 위한 것이었으니 사람을 찾았으면 고기는 해방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낚시 질을 안 할 겁니다. 그렇게 비가 와도 낚시질만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낚시하는 것이 팔자다, 취미다 했지만, 그것은 세계를 낚는 놀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성을 들인 것입니다.
이제는 낚시질을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이제는 고기를 잡아도 안 먹을 것입니다. 청평에서 잡은 고기는 안 먹는 거예요. 요전에도 잉어를 잡아서 요리를 해주었는데 안 먹었어요. 내가 식구들한테 먹지 말라는 얘기는 안 했지만 청평에서 잡은 고기면 피래미 새끼 한 마리라도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지져서 먹으면 먹었지 청평에서 잡은 고기는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역사는 다 그렇게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신이 나서 어떤 일을 할 때는 거기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 둬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에 관점을 둬 가지고 보조를 맞추어 나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그것을 불평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황서방도 선생님에 대해서 이러고저러고하지만 선생님 말만 들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사업부장이라도 잘라 버리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내가 엊그제 불러다 놓고 기합을 줬습니다. '이 녀석 선생님을 누구로 알고 허재비 만들려고 그래? 너 이러이러한 수작하지 않았느냐'라고 들이댔어요. 누가 이러이러하다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든 것을 다 보고 얘기한다고 한 거라구요.
선생님은 본래가 남에게 간섭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저런 말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그렇지만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하다는 거예요. 성공시켜 놓고 만다는 거라구요. 앞으로는 그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간부들이나 지구장들 가운데, 모여서 쑥덕공론을 하던 사람은 다 빼 버릴 것입니다. 앞으로는 안 되면 나 혼자 할 것입니다. 내가 지방 순회할 때 지역장들을 한 30명 데리고 다닐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 되면 현지에서 바꾸어 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뜻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내가 간부들의 보고를 듣고 일을 하지 않는다구. 체제상, 대외관계 때문에 그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별장을 지어서 한 30명씩 교육시켜 가지고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기동명령을 내려 어디로 가라 했는데 안 듣게 되면 전부 현장에서 인사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보고는 무슨 보고입니까. 내가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사람이 돼먹었는지 못 돼먹었는지 내가 아는 거예요. 이런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변명이 필요없다는 거예요. 직접적으로 해결지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식입니다. 인사이동도 이동 본부가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척적인 인사이동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것을 알고, 앞으로 선생님을 모시고 나가는 데 있어서 어떤 형식을 갖추거나 금을 그어 놓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집어 치우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안 맞는다구요.
앞으로 우리 신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외국 기자들을 데려올 것입니다. 주간종교사를 그렇게 시시하게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주력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개척을 해야 합니다. 개척을 했다고 할 때는 개척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우리는 전부가 앞날의 개척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여의치 않은 자리에서 40일 전도 기간을 중심삼고 개척자의 책임을 얼마나 해결해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요즘의 젊은이들을 가만 보면, 내가 전도하러 나가라고 할까봐 눈을 껌벅거리면서 '옛날에는 그렇게 해서 됐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이러는 거예요. 또 어떤 사람은 '지금은 선생님이 월급도 주는데'라고 합니다. 자기가 그런 경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되기까지는 천신만고 끝에 올라온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전부 다 그 코스를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이번에, 7월 20일에 본부에서 출동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아주머니든, 누구든 전부 다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러니 본부에서 그 명단을 작성하라구요. 알았지요?
그래 가지고 뭘 할 것이냐? 개척자를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명은 스스로 개척자가 됨과 동시에 개척자의 선봉에 서서 역사를 창건하고, 세계 전역을 해방하고 개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개척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개척자로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을 개척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고생의 자리에 내몰아야 되는 것입니다. 죽을 뻔한 것이 살 뻔한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은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 줄 수 있지만, 살 뻔한 사람은 죽을 뻔한 사람 옆에도 못 가는 것입니다. 죽을 뻔한 것이 살 뻔한 것보다, 해본 것이 안 해본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안 한 것보다 한 것이 못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노동판에서부터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거예요. 전부 다 해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자신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시하게 하지 않고 전문적으로 한다는 거예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응용하게 되면 못 할 것이 없더라 이겁니다. 눈치가 훤하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통일교회의 30세 전 젊은 남녀들에게 깡통을 들려서 밥을 얻어다가 잔치를 할 생각입니다. 얻어 온 밥을 가지고 서울 시내에서 제일 큰 잔치를 한번 해볼 만하겠지요? 밥을 얻으러 나가는 사람들이 학사님들, 석사님들, 박사님들이라고 하게 되면, 그 사람들이 깡통을 차고 나가서 얻어온 것을 가지고 서울에서 잔치를 한다면 세계에 없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거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거 어때요? 그렇게 되면 깡통 찬 대장이 세계에서 금주머니를 찬 대장보다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간부들, 부장이고 협회장이고 때만 되어 봐라 이거예요. 어디로 가나. 전부 개척자로 내 보낼 것입니다. 그게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요전에도 총무부장이라든가 간부들이 인사이동 때문에 기분 나빠했습니다. 기분 나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는 딱지가 하나 더 붙는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옛날에 백 점이었으면 이제는 오십 점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한번 더 해 볼 것입니다. 푹 떨어지게 해 볼 것입니다. 그래도 또 기분 나빠하면 딱지가 하나 더 붙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해 볼 것입니다. 세 번만 그렇게 하면 '너는 나와 상관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영부영해 가지고 통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보세요. 통일교회 문선생의 눈을 보라는 거예요. 무섭지요? 아주 야무지게 생겼습니다. 적당히 아무렇게나 해서 통하는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가는 길 앞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된다고 잘라 버리면 가는 길이 달라져 버리게 되므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같이 지내던 친구가 나를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당신이 감옥에서도 나를 이렇게 이렇게 도와주었었는데, 이제는 사회적인 지위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감옥에서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으니 그때 나를 도와준 것보다 더 도와주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할 수 있는 소질이 아니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와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공산당을 복귀하기 위해서 정성들이던 때였습니다. 공산당을 복귀하기 위해 정성을 들이던 때인만큼 공산당 중에서 권위 있는 사람을 찾는 놀음을 해야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선두에 서서 참뜻을 품고 있는 사나이이기 때문에, 공산당에게 탄압을 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해서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제일 빠른 길이 뭐냐면, 감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도와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야 되는 때입니다. 통일교인들의 것을 빼앗아다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정성들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비단옷 대신 광목옷을 입히더라도 대한민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기 위해 징발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사상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죽더라도 대한민국이 남아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다 죽더라도 여러분의 후손은 남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후손을 위해서 준비하고, 후손을 위해서 희생하고, 후손을 위해서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개척자의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황사장!「예」 임자는 이제 사장이라는 간판을 가지고 있으니, 일반 사회에서 월급 받던 것 이상의 것은 전부 다 공납하는 거야. 저금통에 저축하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월급을 받아 가지고 타계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야. 이놈의 자식들, 목을 자르고 말 거야. 어떤 사람은 통일교회의 회사도 주식 회사이니 사회 사람과 같은 부장이면 다른 회사와 똑같이 월급을 받아야지 왜 우리가 적게 받소? 라고 하는데, 월급을 적게 받는다고 해서 위신이 깎이고 인격이 낮아져요? 그따위 시시한 사고방식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은 받고 있는 월급을 공납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부가 통일가정을 위해서 가정기금을 만드는 것입니다. 협회장보다 월급을 많이 받으면 벌을 받습니다. 협회장보다 좋은 밥을 먹으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통일교회도 눈이 벌개져 가지고 돈줄 찾으려고 하다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말대로 하는 사람은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굶어 죽게 되면 내가 먹여 살리겠어요. 걱정할 게 뭐 있어요. 이것도 월급세계에 있어서 개척입니다.
이번에 회사 간부들에게 일반 사람은 한 16만원 받는데 그 절반인 8만원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또 4만5천원을 뺀 3만5천원만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불평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통일교회 문선생이 갖다가 탕진해 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에 이자를 붙여서 천대 만대 후손 앞에 갚아 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선생님 앞에 불평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벌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거 찬성하지요?「예」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돈을 가지고 우리 지역장 지구장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세상이 못 하는 일을 내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못 하는 일을 통일교회가 해야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그것은 왜냐? 통일교회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여 새로운 천국을 창건해야 할 개척자의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척자는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표준도 없는 것이요, 본받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역사요, 본받게 할 수 있는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선생님을 따라오고 있지요? 선생님을 본받아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이미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불쌍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를 믿고 나온다면, 통일교회에는 원리라는 것이 있고 가는 길이 딱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가는 길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암중 모색하면서 선두에 서서 가려 가야 할 세계사적인 내용을 앞에 놓고 노심 초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이상으로 노심초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도 언제든지 개척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먹는 시시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돈 몇십 원 몇백 원에 왔다갔다한다면 시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추풍낙엽과 같이 다 떨어지는 것입니다. 돈 몇십만 원, 몇백만 원에 팔려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내가 어떤 기성교회의 총회를 보니까 총회장 선거에서 백만 원짜리 수표 한 장에 표가 왔다갔다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백만원도 안 되는 돈에 전부 왔다갔다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싸구려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 통일교회 문선생은 몇백만 원에 왔다갔다할 것이냐? 생각해 봐요. 몇천만 원에 몇억 원에 왔다갔다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을 놓고 왔다갔다할 것이냐? 지구를 놓고 왔다갔다할 것이냐? 안 되는 것입니다. 지구를 놓고 왔다갔다하게 되면 지구를 지배 못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념을 중심삼고 왔다갔다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중에서 몇 푼, 몇천 원에 왔다갔다하는 그런 졸장부들이 있다면 전부 밀어 버려야 합니다.
선생님도 아직까지 월급을 받지 않고 일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그럴 수 있어요? 선생님 월급이 얼마예요? 이것이 선생님 월급이요라고 해 가지고 한 달이라도 갖다 준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구요. 선생님은 아직까지 사장도 못 되고, 계장도 못 되고 그저 통일교회의 문선생입니다. 그렇지만 선생이라고 해서 다 선생이 아닙니다. 선생 중에는 가짜 선생도 있습니다. 사기치는 선생도 있습니다. 선생이라고 해서 다 진짜예요? 여러분은 출세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서울과 부산의 기성교회 목사님들을 청평에 초청하여 특별수련회를 갖게 되는데, 그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틀림없이 나와서 인사를 하겠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왜 안 나서느냐 이거예요. 선생님이 그들이 무서워서, 말을 못 해 가지고, 그들을 꼼짝못하게 할 수 있는 실력이 없어서 안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체면과 위신과 모든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반대하게 되면 마지막입니다. 그렇지요? 와서 대접을 받고도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면 깨져야지 별수 있어요? 그렇지요? 「예」마지막입니다. 그때는 아예 하나님도 버리십니다. 영영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인의 종이라든가, 심부름꾼이라든가, 주인의 아들쯤은 모르고 불손했다면 그것은 주인이 보고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다 자기네들을 위해서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불평이 많습니다. 불평이 많기는 하지만 이 불평은 좋은 불평인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결국 그들의 아들딸이라든가 그들의 장래를 생각 하고, 더 넓은 의미에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안 만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공석에서 그들이 통일교회 문선생님, 당신이 이름난 사람같이 그런 사람이오 ?라고 할 때는 내가 뭐라 하겠어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내세워 가지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회사를 다 맡기고 하는 것도 통일교 문선생이 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은 사람의 심리를 분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일을 시켜 놓고 만족한 기분이 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지만 그런 일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회사의 사장 일을 하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니며, 승공연합 이사장 하는 것이 내 책임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현재에 있어서는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해서 교단을 중심삼고 국가적인 한계선을 넘어야 합니다. 회사나 승공연합은 교회를 보충하고 보강하기 위한 간접적이요. 방편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지 직접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통일교회 식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모든 내용을 알아 가지고 다시 한 번 자세를 갖추어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거국적이요, 아시아적이요, 세계적인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생활태도나 환경 등 모든 면에 있어서 혁명적이요, 새로운 보람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971년도의 여름 40일 전도기간에는 전체가 동원해야 되겠습니다. 1960년대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의미에서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동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명과 새로운 시대 앞에 개척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번 7월 20일에 개척을 나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다 나가야 합니다. 내리라구요. 다 나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무슨 직책이라든가, 지금 현재에 맡고 있는 책임이 중요할 때는 특별한 예외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번에 안 나가는 사람은 눈물을 흘릴 때가 올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번에 개척전도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돈을 한 보따리씩 집어서 나누어 줄지도 모릅니다. 혹은, 여러분이 지방교회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만나게 되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지방에 가서 사진을 찍어 줄지도 모릅니다. '1971년도 하계 특별 40일전도의 기념촬영이다' 해서 찍게 되면 그 사진을 가진 사람들은 앞으로 다를지 모르는 것입니다.
옛날, 1961년도인가 내가 10환짜리 동전을 나눠 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것을 잃어버리지 말라구요. 이번에는 내가 좋은 사진기를 가지고 가서 사진을 찍어 주려고 합니다. 그 사진을 일생의 기념품으로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그때는 어머니도 같이 가야겠습니다. 선생님이 그럴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 40일 기간에 찍은 사진은 하루에 천만원씩 쳐서 4억을 주고도 못 바꾸는 그런 사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금년이 아니고는 못 갖는 사진이 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알고 새로운 의미에서 이 1971년도를 중심삼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너와 나 사이에 다리가 놓였으니 건너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전부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저께 중국에서 편지가 온 것을 보면 중국에는 목사들이 들어와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거기는 목사들이 수련을 받으려고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들이 원리 말씀을 들으려고 야단이라는 거예요. 그것이 복귀입니다. 그렇지요?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맨 하발이들을 전도하느라고 야단이었는데. 이제는 상발이들이 들어와서 야단입니다. 앞으로는 궁중에서 원리강의를 듣겠다고 야단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그런 때가 안 온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어요? 안 오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에서 정성들이고 공을 들이는 것이 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보다 차원 높은 역사적인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의 생애의 가치를 보람 있는 결과로 가져오고, 개척자의 사상을 가진 책임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지께서는 이 자리에 서 있는 이 자식을 철모를 때부터 지금까지 이끄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나이까?
사연이 많은 과거를 더듬어 보고 현재의 복잡한 사정과 해결지어야 할 제반 문제를 앞에 놓고 볼 때, 금후에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올바르고 곧게 책임지고 가려 나가야 할 사명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가를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보다도 높아져서도 안 되는 것이요, 아버지보다도 너무 뒤떨어져서도 안 되는 것이기에 당신의 입장에 서서 당신의 뒤를 따라온 것이 지금까지 이 자식이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행각의 노정에서 아버지가 염려하시는 일념의 심정을 이어받아야 할 심각하고도 절박한 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 이상의 내심을 가지고 수고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할 적마다, 이 민족의 실수와 교단의 실수를 책하지 않으시고, 이 나라, 이 민족의 금후에 대한 염려를 저로 말미암아, 이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지금도 버리지 않고 붙들고 나가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소망했던 나라와 소망했던 교단이 당신의 품에 품길 수 있는 인연에 접근해 오는 그런 환경을 이루지 못한다고 할진대 얼마나 비참해질 것인가를 염려하신 나머지, 당신은 기어이 그런 환경이 저희의 목전에 도달할 수 있게끔 지금까지 사태를 수습하여 이와 같은 인연을 만드셨사옵니다. 이것은 통일교인들의 수고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수고하신 당신의 그 공로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임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자식은 더욱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이 교단의 금후의 운명을 당신이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여기의 주인은 그 누구도 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이 단체를 사랑하고, 이 뜻을 사랑하고, 이 단체와 이 뜻을 세우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가 염려하시는 세계를 사랑하고,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면서도 인류를 더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는 이 단체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가의 운명은 당신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고, 당신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의 운명과 더욱 직결되어야 하겠습니다. 역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근원적인 내용을 찾아야 한다는 이 엄숙한 과제를 두고 볼 때, 부족한 자신을 자탄하면서 내일의 소망된 모습을 아버지 앞에 보여 드릴 수 있는 제2의 자기 모습을 그리워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한계선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야 되겠고, 현재의 불쌍한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건들이 남아 있는 것을 솔직히 비판하고 솔직히 받아들일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대한민국의 장래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통일의 역군들이 눈물 어린 심정으로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이북민족과 남한민족을 붙들고 새로운 의미에서 아버지 앞에 제단을 쌓고, 10월까지 정성을 들이는 과정에 있는 것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십니다.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여, 저희 뜻을 알고 저희의 갈 길을 열어 주시는 아버지여, 망하는 자리에 들어가서는 안 될 아버지의 사연의 내용이 보잘 것 없는 저희의 배후와 안팎으로 갖추어져 있음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장래를 염려하시는 아버지께서는 민족과 더불어, 저희와의 인연을 맺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의 이념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는 아버님은, 입체적인 수난의 길을 극복해 오면서 저희들을 위하여 싸워 오셨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천만 번 머리를 숙여 감사를 올릴 따름이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께서 저희를 권유하시는 그런 본연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 그 누구도 '아버지' 하고 손을 붙들 사람이 없고, 아버지의 영광된 모습 앞에 머리를 숙여 '아버지'라고 말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낮고 비참한 자리에까지 눈물을 흘리는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찾아오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늘 외로울 때마다 아버지를 부르는 습관을 가진 그런 자식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협조를 바라는 그런 습관을 가진 아들딸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희의 영광을 대신 받으셔야 할 아버지이시지 그러한 자리에서 저희를 협조하실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닌 것을 저희들은 이제부터 다시 발견해야 되겠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이 결여될까봐 염려해야 되겠고, 천번 만번 죽을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서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를 부정하면서 당신을 높일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사오니, 이제 그러한 아들이 되고, 그러한 딸이 되겠다고 몸부림치며 결의할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당신은 저희가 당신의 뜨거운 손을 잡게 될 때에 당신의 손길이 뜨겁다며 뜨거운 정을 느낄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셨습니까? 당신의 손을 잡을 적마다 당신의 손길은 뜨거웠으나 저희의 손길은 차가왔습니다. 당신은 소망이었으나 저희는 절망이었습니다. 당신은 저희를 대신해 싸워 나오셨지만, 저희는 무자비한 입장에서 당신께 십자가를 지워 드렸습니다. 이러한 과거지사의 인연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희들임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당신의 거룩함 앞에 저희의 정체를 나타내기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아버지 앞에 정면으로 설 수 없어 아버지를 부르며 뒤로 돌아설 수 밖에 없는 자신 임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바라는 실체의 모습을 가진 아들이 되지 못한 것을 탄할 줄 알고, 그러한 딸이 되지 못한 것을 탄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는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고,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하고, 아버지를 위해서 아버지의 명령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미친 듯이 달려가고 싶어하고, 미친 듯이 행동하고 싶어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갖추지 못한 그 자리를 눈물로써 밤을 지새워 가며 사모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이 통일가의 전통의 인연을 가진 아들딸의 입장인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앞날에 다가올 비운의 역사가 있거든 저희들이 책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의 역사 위에 고빗길이 있으면 저희들이 방파제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질기고, 끈기 있고, 강직해야 되겠습니다. 콘크리트보다도 철근보다도 더 굳고, 더 강하고, 더 질긴 통일의 무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50여 년의 생애를 거쳐온 지금까지의 노정을 더듬어 볼 때, 앞으로 가야할 노정에서는 더욱 강직하게 나가야 될 자신임을 느낄 적마다 이러한 저를 따르고 있는 무리들도 불쌍한 무리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들은 수난의 고빗길이 길면 길수록 원망할 것이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노정에서 망하게 된 원인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그러니 이 불쌍한 무리를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그저 시내산을 바라보고 가는 것보다는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며 가는 아들딸로 삼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여, 이들이 밤낮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몽시 가운데 이들을 자극시키어 이끄시옵소서.
패자의 서러운 잔을 마시면서 원망과 더불어 아버지를 대하는 아들딸이 되지 말고, 승자의 영광을 감사하면서 긍휼을 바라는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들이 그런 자리에 나서기 위해서는, 개척자의 전통적 사상을 본받아 가지고 내일의 자극제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을 각자 찾아내고, 또 현실에서 그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더욱이 일본에서 온 당신의 아들딸들이 수련소에서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가고 싶던 곳을 보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여기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해야 되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전에 여기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아버지와 그들의 인연 가운데에 남겨져야 할 것임을 알고 있사오니, 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그들이 올 때보다 더 보람 있고, 더 좋은 소망의 마음을 가지도록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일본에 있는 식구들을 당신이 굽어살피시옵소서. 역사를 대신하여 첨단에 서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저의 죄가 많다는 것을 자인할 때가 많습니다. 이 민족을 넘어서 이국 민족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 민족의 부끄러움 없이 그들을 수난길에, 십자가의 길에, 어둠의 자리에 내몰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서게 된 것이오니 당신께서 후한 사랑으로 그들에게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시아에서 제일 국민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이옵니다. 당신 앞에 있어서도 세계 백성을 대표한 아들딸이라고 칭찬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전통을 남길 수 있게끔 끝까지 참고 극복해 나가게 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뭇 자녀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금후에 있어서 8년동안 계획하는 모든 일이 뜻 가운데에서 형통하여, 당신이 분부하신 소원의 뜻을 이루어서 만민의 기쁨과 더불어 당신 앞에 복귀해 드리고, 바쳐 드릴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모인 이곳을 당신이 친히 운행하시고 주도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드리옵니다. 이 날의 이 시간을 감사드리면서, 모든 말씀을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