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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패는 순간에 결정된다

일시: 1967년 12월 10일(일) 장소: 전 본부교회.

<말씀 요지>

기나긴 역사에 비교하면 7년은 극히 짧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 7년을 역사의 전기간을 판가리하는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6천년의 역사를 탕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순간들을 갖자

아무리 큰 나라도 망하는 것은 순간에 결정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간을 잘 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자고 먹는 생활의 한순간에 역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날, 한순간의 실수로 인하여 일생 동안 쌓은 공적을 모두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한순간으로 말미암아 전생애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찬양하지만, 실패하게 되면 정반대가 됩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지만 내쉬었던 숨을 들이쉬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마지막 한순간의 숨이 생애를 결정합니다.

어떤 한순간의 결정이 없이는 빌딩을 세울 수 없는 것처럼 탕감복귀가 완료되는 것도 한순간에 의해 결정됩니다. 과정은 길지만 완성의 시간은 순간입니다.

산을 볼 때에는 그 산의 분수령을 생각하게 됩니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 하나가 분수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이 떨어진 물방울도 그 떨어지는 방향에 따라서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올바른 쪽으로 떨어지도록 작용해 주는 것이 선생님의 사명입니다. 조그만 힘이라도 선생님이 가했다는 것이 없이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통일교인은 산상의 분수령에 올라앉아 있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한 순간 잘 못하면 천추만대의 후손들까지 다 잘못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밧줄에 팔다리를 꽉 묶어야 되는데 손가락만 걸고는 끌어올려 주십시오 하는 입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밧줄을 끌어올리십니다. 그러나 얼마나 위험한 상태입니까! 하나님께서 밧줄을 끌어올리시는 힘보다도 내가 밧줄을 붙잡는 힘이 더 세야 합니다. 우리가 틀림없을 정도로 꽉 잡으면 하나님은 일시에 끌어올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수없이 많은 밧줄을 내리시는가? 역사 이래 그 줄을 꽉 잡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그 일을 되풀이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내린 썩은 밧줄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붙잡고는 뒹굴며 좋아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필름에 찍어서 그 사진을 자신이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밧줄을 잡는 데 있어 눈은 다른 곳을 쳐다보며 손으로만 잡고 있습니다. 그것도 힘껏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경거리로 생각하며 건성으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심각한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조상이 타락했으니 그 후손 된 인간들도 타락할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상의 심각한 자리에 서지 않고는 복귀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너로구나.’ 하실 수 있는 심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개인만으로는 안 됩니다. 부부가 있어야 됩니다. 과연 그런 부부가 있는가? 또 그러한 가정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최고로 심각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종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종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만큼 심각한 종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워하는 사람

삼천만 민족을 안고 모든 사탄을 물리치겠다는 각오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있습니까?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종족, 종족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세계 전체를 복귀해야 하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심각하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은 그림자, 즉 허풍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통일의 이념을 위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은 이들에게 빚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일본의 청년들 중에는 뜻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이 뜻을 몰랐다면 죽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뜻을 이룸으로써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는 그런 사람, 그런 가정이 문제인 것입니다.

전체 역사를 탕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승리자의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 모습은 비록 초라하지만 내가 한번 웃을 때는 만국이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하를 통일한 어떤 영웅보다도 위대한 사람입니다.

복귀섭리로 보아 이것이 마지막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순간순간을 심각히 여기는 자신이 되었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휩쓸려 다니는 자세로는 안 됩니다.

한 번도 심각한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한순간도 심각한 순간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그러한 순간이 문제입니다. 자신을 놓고 세상이 좋아하는 비율과 세상이 싫어하는 비율 중 어느 쪽이 더 큰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천지공법을 잘 지키고 천지가 공인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살 수 있는가? 죽음에 임박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냐고 자문했을 때, 생애를 통해서 선하게 살았다는 마음이 60퍼센트를 넘지 않으면 지옥행입니다.

몸은 제한을 받더라도 마음은 제한 받지 않으려는 투쟁의 역사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늘과 땅, 역사와 현실, 그리고 후손을 대해서도, ‘나는 해방이 되었노라. 그러니 나의 전통을 이어받아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순간을 갖지 못했다면 그는 용서 없이 지옥행입니다.

제일 큰 산과 강과 아름다운 지역을 자랑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하지 않고 사탄과 일치한다면 과연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는가?

탕감복귀노정을 걸어가는 사람은 한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고 잠을 편히 잘 수 없습니다. 길을 가더라도, 밥을 먹더라도 바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통일교회의 21년은 지루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보다 6천년을 섭리해 오신 하나님은 더 지루하셨습니다. 일년 중의 장마나 진눈깨비 같은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 통일교회의 마루턱을 올라올 때마다 옛날의 심정을 돌이켜 보며 오늘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항상 생각합니다.

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온 힘을 모아 정성들여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선생님은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단 치마를 입고 노래를 부르며 앉아 있는 사람보다 정성을 들이는 사람을 더 원하십니다. 담요를 걸쳤으면 어떻고 무릎이 보이면 어떠한가? 그의 정성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그리워서 하나님께 기도한 적도 많습니다.

21년노정 중에서 하늘을 반역한 자들을 자를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다가 중단한 일이 있습니다. 이 길을 가다가 못 간 사람을 불러 놓고 물어보면 그들에게도 변명할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제2의 천국을 만들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로 갈 것인가? 통일교회를 떠나서 어디로 갈 것인가? 지금도 시간은 째깍째깍 가고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보다 더 초조합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얼굴은 여러분과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한을 알았으니 그 한을 풀어 드리고 또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전도를 할 때 생사를 결하는 판가리 싸움을 한다는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해 보세요. 생사의 판가리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순간순간의 신앙이 모여서 하루의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삶 후에 남는 것

선생님은 동서양의 밤과 낮 시간이 다른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모두 같은 시간에 잠을 자 버리면 사탄이 점령해 버릴까 봐, 자는 사람이 마음 놓고 자도록 하나님은 동반구와 서반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86,400초입니다. 이 시간 모두를 뜻을 지키고 세우는 데 동원하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단 1초라도 내가 참여하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1초씩 맡겠다고 나설 수 있는 86,400가정이 있을 것 같은가? 종족 가운데 그런 종족이 있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개인부터 천주까지 8단계를 거쳐야 됩니다. 그런데 찌꺼기나 누더기 보따리를 가지고서 될 것 같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느 누구만 못해서 이 일을 하고 있겠는가? 주님이 오시기 전부터 맞을 준비를 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고생해 왔습니다. 그리고 몰려 나왔습니다. 거짓된 뜻을 가지고 몰린다 해도 친구가 생기고 동료가 생기는데,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끝까지 몰린다면 동조자가 생기지 않겠는가? 만약 안 생기면 하나님이 행차하시고 천군천사가 우리와 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재산과 은혜를 통일교회로 가져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공세를 취하려고 합니다. 이 싸움에서 선생님이 진다면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들이 좋아할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승리한다면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때 우리는 그들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선생님 나이도 50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했나 하고 생각해 보면 통일교회 식구들 고생시킨 것밖에는 없습니다. 선생님도 고생했지만 식구들도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 고생한 모든 것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고생을 시킨 사람이 망하면 몰라도 승리하게 되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여러분을 때려 몰아서라도 이 민족을 살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수고를 했으면 얼마나 했는가! 그 정도도 못 한다면 안 됩니다.

우리의 고생을 세상에서 알아주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된 것을 보면 하나님이 배후에서 얼마나 많이 역사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을 회고해 보면 잘먹고 잘자고 했던 것은 하나도 안 남습니다. 추운 자리에서 신문 한 장, 가마니 한 장을 덮고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눈물짓던 것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재산 될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없으면 저나라에 가서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내놓을 것을 쌓아 두려면 고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산으로 가는 차를 타고 가다가 한강을 바라보게 되면, 옛날에 선생님이 큰 뜻을 품고 일본을 향하여 가기 전에 한강을 바라보면서 비장한 각오를 하던 것과 부산에서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을 타고 갈 때 바다를 바라보면서 비장한 결의를 하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을 때 동정하며 오버를 덮어 주던 일본 부인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형무소에 있을 때 찾아와 주고 편지 한 장 써서 보내 주었던 사람을 선생님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문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진정한 동정에 있습니다.

결국 남는 것은 공적인 고생입니다. 이런 고생을 하고 영계에 갔는데 거기서 망하거든 선생님께 항의를 하기 바랍니다.

민족과 세계, 하늘땅을 걸어 놓고 공적으로 맞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루 86,400초 가운데 일초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긴장하여 심각하게 삶으로써 하늘땅을 자극시키고, 순간 순간을 살려서 하나님을 받들어 모시는 사람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