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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극복

일시: 1971.05.23 (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5월을 맞이하여 네번째 맞이하는 안식일이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자비와 사랑이 여기 모인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언제나 당신 앞에 부족한 자신들인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있는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하여 당신이 염려하시는 부족한 아들딸의 입장을 극복하려 하고 있사오니, 이런 당신의 자녀들 위에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이 아침, 아버지 앞에 부복한 저희들을 넓고 깊게 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이 당신의 소원하시는 뜻을 전세계에 확장할 수 있도록 저희들의 마음 길이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의 힘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여기 부복한 당신의 자녀들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온유겸손한 생축의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자신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 시간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각자의 사정과 처지는 다를지라도 당신이 원하시는 곳을 향해서 매일같이 싸우고 매일같이 노력하며 전진하는 자신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자 하오니, 아버지, 저희들을 지키시어서 그럴 수 있게 하여 주시옵 고, 당신이 소원하시는 곳까지 참고 견디어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곳을 향하여 마음을 조아리고 있사옵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이 한국 땅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있사오니, 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싸우기보다도 그들이 처해 있는 나라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그들이 바라는 하늘나라를 위해서 온갖 충성과 정성을 다하기를 바라는 자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외국에 나가 선교하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들은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증거하여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저희들과 같이 계신 것을 인정시켜야 되겠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흩어진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게 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인간들의 마음이 다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다를지라도,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선의 목적과 사랑의 세계를 향하여 가고자 하는 마음은 일치될 것으로 알고 있사오니, 직접 체휼케 하시사 각 개체가 한 곳으로 모일 수 있게, 아버지,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랜 기간을 섭리해 나오신 아버지여, 인류를 버리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을 아오니, 이들을 고이 품으시사 영광의 한때와 영광의 한 곳을 맞이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해방된 자유의 천국으로 이 인류를 이끌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부복한 자녀들은 하늘땅을 대신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시대와 3세계를 대신한 자리에서 생축의 제물로 아버지 앞에 겸손히 바쳐지는 모습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당신이 직시하시는 그 앞에 선 내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태도가 어떠한가를 다시 한 번 발견하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소원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가를 스스로 깨달아서,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귀결시키고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는 뜻에 보조를 맞춰 드리는 참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5월을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달을 중심삼고 당신이 경륜하시는 뜻 앞에 있어서 1971년도가 자랑의 해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해가 당신의 수많은 자녀들에게 있어서 원망의 해가 아니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는 기쁨의 해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지의 사랑이 여기에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생명의 힘이 저희 자신들에게 모아져서, 그 누구도 제압할 수 없는 내적인 충동을 일으켜 격동하면서 새로운 하늘의 영광된 실체를 불러일으켜 낼 수 있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만으로 기뻐하고 자신만으로 만족하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에, 깊고 높으신 당신의 뜻과 더불어 생명의 인연을 갖춰야만 되겠사옵니다. 그래야만 오늘 이 땅 위에 있어서 당신이 맡기신 싸움터를 지키고 당신이 원하시는 새로운 나라를 창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능력이 저희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아침,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가정을 뒤에 두고 외로이 나가 싸우고 있는 어린 딸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정성들이고 활동하는 그 무대를 통해 당신을 대신하여 증거하고 당신의 모든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대역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이 고심하시는 내용이 무엇이며 당신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고도 남을 수 있는 거국적인 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당신이 기억하시고 동정하시고 은사를 베푸시는 자리에 서서 뭇사람을 대할 때마다 당신이 살아 계신 것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당신의 힘이 그들을 통하여 무한히 뻗어 나가 엉클어진 모든 인연을 그들을 중심삼고 푸시옵고, 당신의 사연과 더불어 동고동락할 수 있는 민족적 거동이 이 시대에 나타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들이 정성을 들이고 그들이 싸우는 일체가 이민족의 내일을 새로이 기약할 수 있는 동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생명을 일깨워 불러일으킬 수 있는 거룩한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본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어제를 기해 모든 행사를 마치고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맹세하고 결의를 하고 있사오니,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일본 민족 가운데 통일의 기치 아래 선 젊은이들이 일본 민족을 다시 한번 격동시키고 자극시켜야 할 때가된 줄 아옵니다. 어려운 아시아 정세 하에서 당신의 모든 슬픔을 대신하여 통일의 깃발을 들고 나서는 그 자리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동정받을 수 없는 외로운 자리에 있는 그들을, 아버지, 지켜 주셔야 되겠습니다. 당신만이 지키시고 당신만이 보호하시고 당신만이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번 일주일 기간을 통하여 당신이 친히 그들 각자의 내심에 그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의 인연을 부여하여 주시옵고, 부활의 은사를 다시 한 번 체득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나라가 인정해 주지 않고, 나라가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는 어려운 시대이옵니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좁고 험한 길이요, 그 누구도 가기를 원치 않는 태산준령의 길일지라도, 그들은 생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그 길을 가고 있사오니, 그들이 당신 앞에 호소하는 것이 일본 민족을 규합시키고 아시아의 모든 어려운 정세를 제거시킬 수 있는 것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시대에 나아가야 할 방향과 아시아 민족이 결속할 수 있는 새로운 동기와 원천을 당신께서 부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일본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이 이번 아시아 승공대회를 계기로 땅 위에 임할 수 있도록 특권적인 혜택을 내리시옵고, 선의 선조를 선의 후손과 연결시키시어 새로운 방향에서 협조할 수 있도록 당신께서 각별한 은사를 베풀어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을 통하여 일본의 인사들의 마음 마음에 생명이 약동할 수 있는 감동과 감격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옵소서. 이 시대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암해 (暗海)에 새로운 등대의 사명을 하고도 남음이 있는 이 기간이 되어야 되겠사옵니다. 온 세계가 주목해야 할 이 기간을 아버지께서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이들이 계획하는 전체를 맡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아들은 오늘 먼 곳을 향하여 떠나오니 그 길 위에도 친히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길을 세계 앞에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의 역사적인 모든 재료를 제시할 수 있는 이번 순회노정 위에 당신의 각별한 은사가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수많은 사망권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해방의 도상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당신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부디 저희가 머무는 곳곳마다 가는 곳곳마다 당신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영광의 천국에 가일보 전진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를 부여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이 맡아 주시옵소서. 이제 여기에 있는 마음과 몸은 나 스스로의 마음과 몸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님 앞에, 무한한 사랑이신 아버님 앞에. 생명의 원천이신 아버님 앞에, 능력의 본원으로 계신 아버님 앞에 일체를 맡기고 일체를 의탁하고 일체를 봉헌하는 거룩한 이 날이 아침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땅, 온 인류가 하나되어서 당신 앞에 부활의 해방을 받을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을 찾아 나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불행한 길을 찾아 나가는 데는 어떠한 주의나 특별한 교훈이 필요 없습니다. 불행한 길은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고도 언제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불행을 제거하고 행복을 얻으려면

불행을 제거하고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져오고자 하는 그 행복의 크기만큼의 내적인 희생의 대가 혹은 참고 견디는 어떤 제물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행복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기를 바라게 될 때, 자연히 나아지는 일은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낫기 위해서는 어제보다도 오늘에 있어 보다 큰 노력, 보다 큰 희생, 보다 큰 십자가의 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에 있어 어제보다 나은 행복의 여건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개인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어떤 가정이 불행한 자리에서 행복한 자리로 나가기 위해서는 그 가정을 책임진 아버지면 아버지 혼자 노력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아버지 한 사람이 노력하는 것보다도 어머니와 자녀까지 그 가정 전체가 일체가 되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행복의 요건과 행복의 내용을 보다 더 빠른 시일내에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노력하는 것보다도 가족전체가 노력하면 그 가정의 행복의 터전을 더 빨리 마련할 수 있고, 한 사람이 수고해 가지고 이룩한 가정의 터전보다 여러 사람이 노력해서 갖춘 행복의 터전이 오랜 시대를 거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수고하여 갖춘 행복보다도 많은 사람이 수고하여 갖춘 행복은 시간에 있어서나, 정도에 있어서나, 높이에 있어서나, 깊이에 있어서나, 혹은 넓이에 있어서 그 가치가 더 큰 것입니다.

한 가정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도 그러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소망의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 현재의 불행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물론 거국적인 것이지만, 그 싸움은 그 나라의 어떤 단체면 단체에도 걸려 있는 것이요, 가정에도 걸려 있는 것이요, 개인에게도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국민 전체가 하나되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불행한 환경을 타파하기 위해서 몸부림치지 않고는 행복한 나라로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생각해 볼 때, 더우기 하나님이 30억 인류를 중심삼고 구원섭리를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두고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일개국에 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민족과 국가 전체를 중심삼고 복귀섭리를 하고 계시는데, 이 복귀섭리가 진전되어 그 결과의 세계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현재 하나님을 믿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과거보다도 현재에 더 일체가 되고 단결하여 어떠한 수난길도 감수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이 없어 가지고는 세계의 행복은 점점 가까와 오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세기말에 처해 있는 현세계를 우리가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오시지만 과연 앞으로 보다 행복할 수 있는 천국이념이 이지상에 접근해 올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재 세계 인류는 하늘을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입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것을 시인하는 무리가 점점 많아지고, 하나님이 없다는 주장을 인정하는 환경의 터전이 넓어지고 있는데, 그런 현재의 세계와 대립된 입장에서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하늘편 사람들은 얼마나 되느냐를 우리가 생각해 볼 때, 하늘을 위해서, 하늘을 대신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적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반대하는 무리는 많아도 하늘편에 서는 사람들의 수는 지극히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0억 인류 가운데 하늘편 사람의 수가 10분의 1이 될 수 있겠느냐, 혹은 100분의 1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를 깊이 따지고 들때, 하늘이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 나가는 길 앞에 있어서 지상의 신도면 신도, 하늘을 따르고 있는 교단이면 교단이 과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최고의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느냐? 그 기준에 일치될 수 있는 한 개인이 어디에 있으며, 한 가정이 어디 있으며, 한 종족이 어디 있으며, 한 민족과 국가가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이것은 심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30억 인류가 현재의 이 불행의 여건을 완전히 타파하기 위해서는,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여건을 반드시 제시하여 가지고 그것을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보다 행복된 것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행복의 길을 개척하려면 어떤 결심을 해야 할 것이냐

그러나 오늘날 세계 인류는 현재의 불행한 환경과 그 내용에 오히려 접근하고 거기에 흡수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이런 현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행복의 터전에는 얼마나 어려운 관문들이 가로막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이 길을 돌파하고 이 과정을 개척해야 할 사명을 짊어진 어떤 특정한 개인이 있다면 이 개인은 어떤 결심을 해야될 것이냐, 또 그러한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어떤 결심을 해야 될 것이냐, 혹은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어떠한 결심을 해야 될 것이냐, 그런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어떤 결심을 해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사회면 사회가 하나님께서 전체적으로 염려하실 수 있는 사회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사탄을 동기로 해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타락된 세상이요, 인류역사와 더불어 슬픔이 기원이 되어 지금까지 슬픔의 역사를 엮어 왔습니다. 그런데 슬픔의 역사가 끝을 바라보는 이때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회 전체를 소화하실 수 있는 환경으로 볼 수 있느냐 할 때, 그냥 그대로는 소화하실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드시 가리든가 해부하든가 해서 해결짓지 않고서는 새로운 그 무엇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 뜻적인 입장에서의 견해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세상은 끝날에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실을 거두게 되기 때문에, 끝날, 그 결실을 거둘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이 가까이 다가오는 세계가 되는 것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세계에서 하늘의 행복의 곳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 사회와 호흡을 같이하고 이 사회와 보조를 맞춰 가지고 그가 찾고자 하는 하늘의 행복의 곳을 찾을 수 있겠어요?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체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회 환경에 전면적으로 도전하여 그 환경을 타개할 뿐만이 아니라 그 환경을 극복해서 하나의 어떤 모체적인 활동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불행의 세계에서 행복의 길을 개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오늘 이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지극히 절박한 입장이요, 지극히 위험한 입장이요, 생사를 판결짓지 않으면 안 될 절정에 서 있는 입장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세계와 손을 잡고서 행복의 천국에 갈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곳을 향하여 전진하는 하늘의 사람이 있다 할 때에, 그 사람 개인 개인들이 환영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느냐? 개인이 전부 다 환영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할 것입니다.

또, 수많은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들이 그 개인이 가는 길을 환영할 수 있겠느냐? 가정도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종족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수많은 국가들도 그러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 사망권내에 있는 전체가 나와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반목 질시하는 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 고립된 입장이라면 지극히 고립된 입장이요, 외로운 입장이라면 지극히 외로운 입장인데, 그런 입장에서 이것을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느냐, 아니면 비약해서 나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방향을 반대로 해서 나가느냐 하는 것이 현시점에서 생각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겠어요?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고로 역사시대를 거쳐 오면서 어느 때에든지 문제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시대가 되기 전 국가적인 시대에 있어서도 국가를 중심삼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늘의 참된 행복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국민이면 국민 전체가 그가 가는 길을 막고, 민족이면 민족 전체, 종족이면 종족 전체, 가정이면 가정 전체가 그가 가는 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피어린 투쟁을 거쳐야 하고, 그것을 초월한 자리에서 타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느냐? 그것을 버리고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는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없는 이 세상

왜 그러냐? 타락한 결과의 세계요, 타락한 결과가 인연됨으로 말미암아 엉클어진 국가와 사회이기 때문에 하늘로 가는 길을 환영하고 옹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 세계에서는 그 자체가 반발이요. 그 내용이 반발입니다. 이처럼 하늘길을 가려는 일체를 옹호하지 않는 반대적인 입장, 대립된 상태가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행복를 찾아 나가고자 하는 사람 앞에는 백방으로 반대적인 요건이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고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장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장한 결의를 하는 데 있어서 일대 (一代)만의 결의로 끝나 가지고는 안됩니다. 일대(一代)만의 결의를 함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터전, 종족이면 종족권의 승리의 터전이 갖춰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대 (一代)를 넘어 이대 (二次) 삼대 (三次) 혹은 역사시대를 거쳐 전통으로 남겨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터전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역사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과거 선조들이 가졌던 정성과 피어린 투쟁의 기준을 언제나 유지시켜야 합니다. 그런 기준을 유지시켜 끌고 나가지 않고서는 그것을 현실적인 터전 위에 남길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신 하나님은 불쌍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고단한 입장에 계시는 분입니다. 어떤 면으로 볼 때, 하나님은 원통하고 비참한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뜻을 품고 왔다 갔던 우리 선조들은 사회로부터 환영을 받고 환경으로부터 옹호를 받는 자리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사회와 부딪히는 자리, 언제나 몰리는 자리, 언제나 추방당하는 자리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 처하는 것이 정상적이지 환영받는 자리에 처하는 것은 오히려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환영을 받고 사회와 호흡을 같이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비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사회에 호흡을 맞춤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많은 국가와 세계가 움직이게 된다 하더라도 그 국가와 세계는 하늘의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탄과 악의 내용을 그냥 그대로 접하는 터전 위에서 갖추어진 터전이지, 악을 청산지어 가지고 하늘만을 시작으로 성립된 터전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로부터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쌍한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각자가 그런 입장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나를 환영하고 내 갈 길을 후원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되어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상충이요, 반발입니다. 여기서는 부딪쳐야 됩니다. 부딪치게 되면 둘 다 피해를 입지만, 어느 하나가 깨져야 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깨져야 되느냐? 선이 깨져서는 안 됩니다. 악이 깨져야 됩니다. 또 개인적인 악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가정적인 악이 남아 있지 않느냐? 가정적인 악을 격파했다 하더라도 종족적인 악이 남아 있지 않느냐? 이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걸 누가 격파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해 나오신 기준

오늘날 신앙자들 중에는 나 하나 구원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 하나 천국 가고 나 하나 구원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신앙적 관점을 갖고 나간다면 자기 개인 앞에 나타나는 원수들은 극복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개인을 넘어서 가정을 터전으로 하는 악은 누가 극복하겠어요? 그리고 자기 가정만을 위주하고 가정의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노력하는 사람은 가정적인 악의 터전진을 극복할 수 있을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가정 뒤에 진을 치고 있는 가정보다 더 강하고 더 악랄한 악의 터전은 누가 격파시키겠어요? 종족적인 악의 진영을 타파하고, 민족적인 악의 권한을 극복하고, 국가적인 악의 주권을 제거하고, 세계적인 악의 터전을 어떻게 해방시키느냐 하는 것이 오늘날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이 바라는 지상 최고의 소망인 것입니다.

아무리 개인이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개인이 이 땅 위에서 머무를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갖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개인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가정의 극복권을 마련해야 하고 가정이 안식하기 위해서는 종족과 친척 전체가 해방권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종족이 그런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민족과 국가가 하늘 앞에 치리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는 한 사람을 택해 가지고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구요. 한 사람을 이스라엘권에 세워 가지고 하나의 방망이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방망이로 개인을 때려 잡고, 가정을 때려 잡고, 종족을 때려 잡고, 민족을 때려 잡고, 국가를 때려 잡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닦아도 터전을 갖고 있는 악이 순순히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것입니다. 악은 죽기 살기로 결판을 짓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선 앞에 굴복하기 전에는 현재 갖고 있는 환경을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신앙권에 있는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어디서든지 스스로 하늘의 뜻을 대신해서 섰다 할진대는 나 홀로 구원의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해방받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승리권을 만들어야 되고, 가정이 해방받기 위해서는 종족의 승리권을 형성해야 하고, 종족이 해방받기 위해서는 민족의 승리권을 형성해야 하고, 민족이 승리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복귀섭리해 나오신 기준입니다.

그러면 한 나라로서, 이 세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행복의 요건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특정한 민족으로서 하늘의 행복을 소개해 주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 있느냐? 특정한 민족이 없으면 특정한 종족이라도 있느냐? 그런 종족이 없거들랑 그런 가정이라도 있느냐? 그런 가정이 없다면 그런 개인이라도 있느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은 하늘과 화합될수 없는 세상이요, 어차피 심판의 과정을 거쳐서 존재해야 할 세상입니다. 그러한 세상의 끝날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이념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선진국가의 문명이 하늘 앞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그 문명이 하늘 앞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 국민이요, 국민사상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과연 그 나라의 국민사상이 하늘의 사상과 일치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치되지 않게 될 때는 어떠한 문명권도 하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가는 방향과 일치된 사상을 가진 국가의 국민이 있느냐 할 때 우리 통일교인들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미국도 그러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을 두고 볼 때도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공산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현재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큰 나라, 또는 선진국가권이 이세계가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행복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중심 사명을 하고 있다고 보느냐? 그렇지 못합니다. 그 문명국가들이 현대세계가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보다 도리어 실망과 절망의 방향으로 가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문명권에 있는 국가들이 오늘날 이 세계에 하늘이 바라는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터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터전이 되려면 이 세계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됩니다. 세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책임을 지는 민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민족이 있느냐? 미국을 중심삼고 볼 때 미국이 그럴 수 있느냐? 만일 미국 자체의 어려움을 세계의 어려움보다 더 생각하는 미국이 될 때는 그런 사명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국가를 세계보다 더 중요시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그런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소련은 더더구나 말 할것이 없습니다. 소련을 위주로 한 세계, 소련 자체를 중심삼고 소련 밑에서 움직이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는 이념. 그런 사상 가지고는 하늘이 바라는 행복의 터전을 성립시킬 수 없습니다.

행복을 찾을 수 없는 타락세계를 돌아가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국가, 악한 세계를 극복해서 뚫고 나갈 수 있는 국가, 그런 국가는 어떤 국가냐? 그런 국가가 지금 선진국가권 가운데는 없습니다. 오늘날 이 악한 세계를 초월해 나갈 수 있는 국가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바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길이냐? 이것을 극복해서 뚫고 나갈 수 있는 길도 없고, 극복해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무엇도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 세계를 중심삼고 기뻐하면서 나갈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더불어 보조를 맞추면서 나갈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기준과 달리 뒤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악한 세계권에 있는 현재의 환경을 극복하고 뚫고 나갈 수 있는 특정한 나라가 없게 될 때는, 이것을 타고 넘어가서 '세계는 이래야 산다' 하는 길을 모색해서 새로운 이념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나라가 없거들랑, 이 세계와 결별하고 뒤로 돌아서서 방향을 달리해 가야 됩니다. 180도로 방향을 달리해 가지고 가야 됩니다. 환경적인 여건과 방향을 달리하여 돌아선 그 이념이 세계의 어느 이념보다도 크고, 돌아선 그 이념의 목표가 세계의 어떠한 문명권의 국가가 바라는 목표보다도 높아 가지고, 돌아서는 데 있어서 미련없이 돌아설 수 있는 그런 내용을 제시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타락권이요, 사망권이요, 사탄이 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사탄인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탄과 일체화한 세계는 하늘과 화합할 수 없는 사망세계입니다. 이것을 타개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이것을 비약할 수 있는 방향이 없다 할진대는, 돌아서서 가는 민족과 국가의 움직임이 이 세기말적인 시대에 나타나지 않으면 이 세계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없을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아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뜻을 품은 사람들은 새로운 지도이념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이념을 타고 넘어가야 됩니다. 비약해 갈 수 있는 새로운 지도이념을 세계가 찾고 있으되 그것은 이 세계 자체내에서, 지금과 같은 결과의 세계를 만들어 온 역사권내에서, 혹은 지식권내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은 초월적인 내용을 모체로 하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들끼리 합하여 노력하는 것으로는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 노력한 결과가 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인간들은 돌아설래야 돌아설 수 없고 갈래야 갈 수 없는 절망의 벽에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그 환경의 내용을 제시해 준 지식 기반이나 사상기반을 가지고는 그 벽을 뚫고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초월적인 그 무엇, 새로운 사상적인 기반이 있어야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중심삼고는 불가능합니다. 신이 있어서, 초월자가 있어서 그로 말미암아 그것을 초월하고 비약하여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이념이 제시되든가, 아니면 그것을 소화시킬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사람이 나오든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화시킬 수 있는 이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돌아가야 합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그걸 극복해 나갈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악한 사망권내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터전 위에서 갖추어진 정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엉클어진 이 세계에서는 그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정했댔자 부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사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상을 가지고 부정했댔자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히피족 현상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들은 다 부정해 본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보고, 자기의 일시적인 관념까지도 부정해 본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부정해 보았자 새로운 것이 나오느냐?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부정을 했댔자 그 부정한 것을 초월할 수 없고, 그 부정한 터전을 초월하여 새로운 방향의 목적관을 제시할 수 없으며,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제 인간만으로는 세계 문제를 해결지을 수 없는 시점에 부딪쳐 있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관 정립의 필요성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하나님을 부활시킬 수 있는, 역사시대에서 추방당하던 신을 맞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필코 벌어져야 될 것입니다. 사람이 있으면 사람의 뜻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으면 사람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을 중심삼고 세계의 끝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소원 가지고는 세계를 요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행복의 세계로 완결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면 신의 소원은 무엇이냐? 오늘날까지 역사시대를 거쳐오는 가운데 신의 섭리의 손길이 있었다면, 그 신의 소원은 오늘날과 같은 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 현세계를 다 요리할 수 있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현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 것이냐? 그것은 현세계와 동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신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가 못 되기 때문에 이 세계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반대적인 입장에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참고 극복하는 주의여야만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고 견디는데 있어서 무엇을 중심삼고 참고 견뎌 내야 되느냐? 새로운 가치관을 모색해서 그것을 중심삼아야 됩니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 이념에 대한 새로운 가치 혹은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 가치관이 신의 뜻과 일치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출발하게 될 때, 그 가치관은 인간을 중심삼은 가치관과는 모체가 다른 것입니다. 인간의 뜻을 중심삼고 세워져 있는 가치관과 다른 것입니다. 거기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현실과 분립된 자리에 있을 것이 아니라 악한 현실권내에서 관계를 맺어 가지고 악한 세계의 어떠한 행복보다도 우월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이념을 발견하지 않고는 거기에서 인내와 극복, 곧참고 견딜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보다 차원 높은 가치관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될 선상에서 지금 세계는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존철학도 그런 관점에서 생긴 것입니다. 현실을 극복하려면 현실을 극복하게 할 수 있는 내적인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내적인 가치관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는 것이 현대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 가치관은 인간으로 말미암아서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했댔자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는 권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할 것은 초월적인 가치,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입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막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렇게 된 것같이 미래에도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겠 다는 것입니다. 현실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생활 감정을 중심삼고 환경의 여건을 극복하고 타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을 갖춘 것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체득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끝날이 되면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때가 와야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인간들이 알고 있는 정상적인 내용이 아닌, 인간들이 헤아릴 수 없는 비정상적인 각도를 통한 새로운 초윌적인 힘이 투입되고 그 능력이 나타날 수 있게 하는 운동이 벌어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과 인연된 것을 모체로, 동기로 해 가지고 악의 세계와 맞붙게 될 때, 그것이 악의 세계가 갖추고 있는 동기보다도 강하고, 가치적으로 높은 내용일 때는 악한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의 모체, 그 힘의 내용을 어떻게 해서 얻을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통일교회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오늘 이 세계와 동화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이 세계가 가는 노선에 보조를 맞추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에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고, 그 새로운 사상적 내용을 중심삼은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심정관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도 차원이 높은 사랑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악한 사랑과 다른 참된 사랑을 제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족이 악한 가족이었다면 참된 가족을 제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라가 악한 나라였다면 참된 나라를 제시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악한 나라에서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이 기쁜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요, 본연의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요, 슬픈 입장에 계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그 슬펐던 하나님의 입장을 기쁠 수 있는 입장으로 어떻게 전환시키느냐?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사상과 세계관이 있어야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무엇이냐? 초월적인 사상, 초월적인 세계관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바라 오던 세계관이 아니라 초월적인 경지에서 세계는 반드시 이렇게 되어야 된다고 할 수 있는 세계관이어야 합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악한 세계의 모든 여건이 부정된 새로운 세계가 되어야 됩니다. 개인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되고, 가정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선 개인이 있다면 그 개인을 36억 대 1입니다. 그는 36억의 악을 대해 홀로 선 사람입니다. 홀로 선 하늘편의 그 사람이 악과 싸워 악에서 밀려날 것이 아니라 악을 밀고 나가야 됩니다. 악한 세계 앞에 소화당할 것이 아니라 악한 세계를 소화해야 합니다. 소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출발서부터 보다 강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관을 중심삼고 나가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악한 세계를 공인하는 무리에게 참을 제시하고, 악한 사랑으로 엉클어진 가정제도권내에서 참된 사랑을 중심삼은 가정제도를 엮어 가야 합니다. 악한 인연을 통하여 연결된 사회, 국가 형태권 내에서 참된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된 국가 형태를 형성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연결되는 인연이라는 것은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해야 합니다. 개인도 참이어야 하고, 가정도 참이어야 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도 참이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도 참이어야 하고 후 시대에도 참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참이 되기 위해서는 그냥 그대로의 모습을 영원히 끌고 나가야 할 것이 아니냐? 그렇지 않고는 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계에 포위되어 가지고 여기에 소화당하고 구속되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언제나 극복할 수 있다. 극복한 자리에서 끌고 갈 수 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개척할 수 있다' 하는 신념을 갖고 어느때를 막론하고 변치 않고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개인을 대해서도 문제없다. 악한 가정, 악한 씨족, 악한 종족, 악한 민족, 악한 국가 혹은 악한 세계를 대해서도 문제없다' 할 수 있는 개체가 제시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한 모습이 되어야 메시아 사상이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세상과 타협하고 가지 않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상보다 강해야 됩니다. 강해야 되겠습니다. 강하게 될 때에는 길을 잡아야 됩니다. 세상의 길은 악한 길이니 악한 길에 반대되는 선한 길을 잡아야 됩니다. 선은 영원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선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심정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적인 터전이 동요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내 생활적 환경이 동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악한 환경에 처했다 하더라도 그 환경에 내 생활 환경이 침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환경이 변함에 따라 변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생활적 환경이 악한 환경을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격 자체가 사회의 인격 기준에 감화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물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인격을 중심삼고 악한 세계를 감동 감화시켜 가지고 물을 들여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냐. 변치 않는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그 인격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제시되느냐? 그것은 생활관, 인생관, 세계관을 중심삼고 제시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에 입각한 자체가 되어서 '설령 그 관이 변할지라도 그 자체는 변할 수 없다. 세계가 변할지라도 그자체는 변할 수 없다' 하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인격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인격을 닦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심정이 문제요, 사랑이 문제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부모의 사랑이 있고 부부의 사랑이 있고 자녀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중심삼고 살면서도 불행을 느끼는 현재의 입장을 극복해야 됩니다. 무난히 격파할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차원을 중심삼고 그것을 뜯어서 바꿀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과정에 연결되어 나온 일체의 정적인 여건을 고심 없이, 괴로움이 없이 자유롭게 뜯어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해야 할 주체적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환경은 반대할 것입니다.

말세는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하는 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서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 라고 한 말이 맞다는 것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악의 세계에서 연결된 가정제도를 무난히 뜯어고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부정하고, 남편이 아내를 부정해야 되겠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고 부모가 자식을 부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될 것입니다. 역사는 필시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은 어떤 때냐? 세계적으로 집안 식구끼리 서로 부정하는 때가 최후의 때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몰라보고, 자식이 부모를 몰라보고, 부부끼리 서로 몰라보고, 형제끼리 서로 몰라볼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와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시대를 거쳐서 부정시키는 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부정당하는 놀음이 세계상에 벌어지지 않고는 새로운 세계는 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때가 오거든 끝날인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심정적 내용을 부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국가관을 부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충신이면 한 나라를 중심삼고 충신이라 했고, 효자면 한 가정을 중심삼고 효자라고 했지. 세계적인 충신을 논한 때는 없었고, 세계적인 효자를 논한 때는 없었습니다. 일개 국가나 일개 가정을 중심삼고 논했던 것입니다. 열녀 또한 일개 낭군을 중심삼고 열녀를 말했지 세계적인 표준을 놓고 열녀를 주장한 예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개인주의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개인을 위주하는 것을 부정하고 세계를 위주하는 것으로 바꿔 줘야 될 것이 아니냐? 그것을 바꿔 주기 위해서는 개인을 위주하는 전체가 부정당할 수 있는 때가 와야 합니다. 개인 인격 부정, 개인 생활 부정, 개인 심정을 부정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고는 끝날이 안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이 부정당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거들랑 끝날이 된 것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현재가 그런 때입니다. 가정 자체가 부정당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왔습니다. 생활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시대상에 처해 있고, 국가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시대상에 처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세계 자체를 부정할수 있는 시대권내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게 부정할 수 있는 시대권내에 처해 있는데도 새로운 견지에서 긍정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안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새로운 방도를 제시하고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통일교회가 제시할 것은 무엇이냐? 일차 부정을 통한 입장에서 참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이 그것입니다. 일차 부정한 자리에서 결과를 찾는 것이 새로운 각도에서 출발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차피 인류는 세계를 잃어버려야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런 일을 해야 합니다. '내 가정을 부정하자. 지금까지 살아, 나온 인격을 부정하자. 행동을 부정하자. 심정을 부정하자'는 것입니다. 부정하는 데는 아무 내용도 없이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고차적인 내용을 가지고 부정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말을 하고 있느냐? 참부모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부 내용이 다릅니다. 참된 부모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된 부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된 가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된 종족과 참된 민족과 참된 국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된 세계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중심삼고? 어떤 특정한 개인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어떠한 철학을 중심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주장합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관념적이냐, 실증적이냐? 관념을 초월한 생활권내에서 실증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역사시대의 어떠한 가치와 비교할 수 없는 차원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다고 자각하고, 그 가치를 결정지은 터전 위에서 새로운 참을 주장하고 나서야 합니다. 역사를 지나온 이 세계 앞에, 새로운 섭리의 뜻을 따라가야 할 이 세계 앞에, 반드시 그런 관문을 통과한 주장을 하는 무리가 나와야 될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무리가 그런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이 그러냐, 그렇지 않으면 사실이 그랬느냐, 그렇지 않으면 사실이 그럴 것이냐, 이 세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실증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내용을 여러분이 갖추지 않고는 통일교회 교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하는 면에서 통일교회 교인들은 긍지를 가져야 됩니다. 과거는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그렇지 않다 할 때는 이미 후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 악한 세력은 개인일 때보다 가정일 때 강하고, 가정일 때보다도 종족일 때 강하고, 종족일 때보다도 민족일 때 강하고, 민족일 때보다도 국가일 때 강하고, 나라일 때보다도 세계일 때 강하기 때문에, 과거에 그랬으면 오늘은 더더욱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과거 십년 동안 그랬다 하더라도, 이제부터 대하는 악의 권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그 배 이상의 힘을 갖추어 지금도 그렇다 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갖지 않고는 여러분의 갈 길에 파멸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모체로 한 새로운 가치관을 중심삼고 고차적인 가치의 내용을 결정지은 자신을 발견해 가지고, 거기서부터 자신 있게 부르짖을 수 있는 참부모와 인연을 맺고, 참부모의 인연을 통한 참자녀의 사랑을 맺고, 참다운 남성과 참다운 여성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부부의 인연을 맺고, 그 부부로 인하여 자녀를 낳고, 그 자녀로 인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가정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참다운 가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횡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게될 때는 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실제로 횡적인 출발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와서 그 가정의 전통을 세계화시키게될 때 세계는 바람직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과 그러한 가정이 지구성 어디에선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악의 세계 내에 있는 가정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악의 세계를 극복한 가정은 없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질 수 없는 현시점에서 그것을 극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진, 보다 고차적인 가치 밑에서 주장할 수 있는, 내정적인 인연을 갖춘 참다운 가정이 나와야 합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이요, 인류가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소망해 나오던 목적지가 아니겠어요? 하나님도 이것을 바라 나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중심이요. 인류가 바라는 중심이요, 역사가 바라는 중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중심을 해결하기 위한 책임을 지고 한 분이 오시게 되는데 그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주님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입장을 제시하고 나서게 될 때 그 악한 세계가 가만히 있겠느냐? 반대하는 것입니다. 백방으로 반대하는 것입니다. 반대하는데 있어 기수들은 누구일 것이냐? 뜯어고치기 위해 부정해야 할 무리들입니다. 그 무리가 먼데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네 집안 식구가 원수다'라고 한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자기 어머니가 칼을 들고 목을 찌르려고 하는 것을 보아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해 '너는 나와 상관없다' 하면서 혈연을 끊기를 자청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습니다. 가정이 반대하고 친척이 반대하고 민족이 반대하고 나라가 반대하는 것을 보아 나왔습니다. 그 반대받는 것이 억울하고 서러운 것이냐? 그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환경이 나를 부정하고 반대하다가 반대하지 못하게 될 때에는 그 환경이 일시에 굴복할 것이 아니겠느냐! 세계가 나를 반대하여 부정시키지 못하게 될 때에는 세계가 나에게 굴복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승리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제일 가까이 있는 어머니 아버지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 승리할 때가 되면 종족이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종족이 승리할 수 있는 때가 되면 민족이 거기에 반대할 것입니다. 민족이 복귀될 수 있는 때가 되면 거기에 제일 원수가 되는 것은 주권자입니다. 주권자가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아서 때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굴복시키려면

그러면 세계가 복귀될 수 있는 때에는 무엇이 원수냐? 그야말로 사탄이 원수입니다.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천주복귀가 될 수 있는 때에는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이냐? 하나님이 문제가 됩니다. 최후에는 하나님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소화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타락된 개인을 소화하고, 타락된 가정을 소화하고, 타락된 종족을 소화하고, 타락된 민족을 소화하고, 타락된 국가를 소화하고, 타락된 세계를 소화해야 됩니다. 타락된 세계를 소화하려면 사탄을 소화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세계가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러니 주체가 누구냐? 하늘이 아니라 땅입니다.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라구요, 나. 내가 걸려 있지 하나님이 걸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걸려 있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해원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골수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참의 길을 가는 데에 동조할 수 없는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동조하면 좋겠지만 동조하면 안 됩니다. 그건 왜? 타락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 동화하고 동조하게 될 때에는 거기에 여러분이 물들 수있기 때문에, 하늘은 이것을 잘라 버리게 하기 위해 반대하고 부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터전으로 해서 살던 인간은 가정으로부터 부정받는 자리에 서서 가정이라는 안식처에서 행복을 누리던 그 이상의 행복의 여건을 발견하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행복의 여건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당장 자기의 생활 여건을 능가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을 내적인 중심으로 세워서 내적인 극복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내적인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신앙자의 갈 길입니다.

십년 전에 결심했던 내용이 있다면 십년 후에는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체로 해서 십년 동안의 수많은 결심들을 전부 거기에 합해 가지고 환경의 내용을 제거시킬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서 남겨야 됩니다. 십년을 믿었으면 십년 믿은 만큼 내용이 더 가중되고 탄탄해져야 됩니다.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내와 극복을 해야 합니다. 굴복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길을 가 가지고 무엇이 남느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분풀이를 다 해가지고 그 환경이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분풀이를 다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분풀이를 다 하면 그 친척이 달려드는 거라구요. 분풀이를 했다가는 더 큰 원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종족을 중심삼고 분풀이했다가는 민족이 달려드는 것입니다.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있게 될 때 내적으로는 크게 있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삼고 분풀이 하면 국가가 달려드는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더 큰 원수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삼고 싸우게 될 때는 세계가 동원됩니다. 더 큰 원수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참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왼뺨을 치거든 바른뺨을 돌려 대라.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가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줘라' 그 작전이 참 멋진 작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큰 것이 동원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동원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대작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를 굴복시키는 데는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힘으로 대결해 가지고는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진 나라는 언젠가는 이긴 나라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희랍이 로마를 지배했지만 나중엔 로마가 희랍을 지배했습니다. 영국도 보게 되면 미국을 지배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적인 입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힘을 가지고는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힘으로는 원수 국가가 점점 커 가기 때문에 원수 국가를 굴복시킬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으면 또 원수 갚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인내와 극복은 행복을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궤도

이런 관점에서 그 내용을 잘 알고 세계를 바라보았던 예수님은 인간들을 대해 원수를 굴복시키려면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인생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심정관을 제시해 가지고 원수를 사랑해라. 원수를 갚을 것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주어라. 그렇게 되면 끝에 가서는 결국 원수가 굴복하는 것이다'라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 시대에 맞지 않는 가르침 같지만 역사를 초월하여 미래의 세계를 무난히 통과할수 있는 영원불멸의 내용을 설파한 가르침이 아닙니까?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삼고 우리는 이 세계를 뚫고 가야 합니다. 뚫고 가야 하는데 여러분처럼 그렇게 가서는 뚫고 갈 수 없다 이겁니다. 이것을 넘어가려면 어떻게 넘어가야 되느냐?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뒤로 돌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뒤로 돌아가더라도 나중에는 세계와 만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니 어차피 타락한 인간들은 일대에 세계를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야 할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출발도 역시 일대에 세계를 굴복시키기 위해 출발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일대에 세계의 길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돼요?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의의 길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상을 제시해 가지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일체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도 세계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부정하는 자체와 부정당하는 세계는 바꿀수 없습니다. 참은 언제나 주체입니다. 세계를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가 산중에서 수도할 때는 지났습니다. 세계 정면 도상에 나타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때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부정하고 출발하는 것이 낫습니다. 도피해서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냐, 아니면 부정하고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냐 할 때, 부정하고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모든 것을 갖춘 종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내와 극복은 이 세상에서 행복의 길을 찾아가는 하나의 궤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안 됩니다. 이것이 싫다는 사람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그 길을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뚫고 가야 됩니다. 초월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뚫고 가야 합니다. 제재소에 가게 되면 돌아가는 톱이 있습니다. 그 톱날만 보는 사람은 이게 왜 이렇게 잘라질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그렇지만 그 톱이 자르는 데 있어서는 돌면서 자르기 때문에 직선으로 잘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도 하늘의 사상과 하나되어 가지고 주고받으라는 것입니다. 주고받는 그 힘이 톱날과 같이 돌아가면서 잘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것이라 하더라도 각도를 조정해서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것보다 강해야 합니다. 오늘날 공산당보다 우리가 강해야 되고, 어떤 사상보다도 통일사상이 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왔다 갔던 어떤 개인도 통일교회의 개인이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통일교회의 가정은 지금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가정과 현대의 수많은 가정보다도. 효자 효녀 충신 열녀를 갖춘 어떤 가정보다도 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없어지더라도 제일 나중에 없어져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어떤 종교보다도 강해야 합니다. 통일사상은 어떤 사상보다도 이론적으로 단련되고 강한 사상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강한 데도 평면적으로 강한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강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고차원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가치적인 내용과 심정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초월적인 자리에서 세계적인 가치를 실증할 수 있는 기반 위에 선 것이 여러분의 신앙입니다. 찬송가에도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라고 하는 구절이 있지요? 받은 증거가 있다 이겁니다.

타락세계에서의 통일식구들의 사명

'나는 이미 가정을 부정했다. 나는 이미 나라를 부정했다. 나는 이미 세계를 부정했다'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어떠한 사상, 어떠한 그 무엇도 다 부정한 자리에 서야 합니다. 부정해 가지고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자리로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올 테면 와라. 내가 깨지든가 네가 깨지든가 나는 가겠다' 하는 것입니다. 톱과 같은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결국 나라도 잘라지고 세계도 잘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르게 되면 서로 좋아해요? 열이 나는 것입니다. 부작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열이 난다는 것은 부작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소모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난 소모가 싫다. 그 부작용이 싫다'고 하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결론은 무엇이냐? 인내와 극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체 소모를 위한 인내와 극복이 아니라 자체 보강을 위한 인내와 극복입니다. 참고 견디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행복의 요건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나와 더불어, 그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는 나와 더불어,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인내와 극복이 나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전진적인 플러스권을 형성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할 때는 기쁨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두셋의 기쁨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의 세상에서 하나의 가치적인 것을 희생하면 선의 세상에서 찾아지는 가치의 것이 몇 배 이상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오늘 이 땅의 어떤 극복하기 어려운 자리도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밥을 굶고 길가에서 잠을 자는 처지에 있더라도 그 자리는 세상의 그 누가 그려 보지 못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요, 하늘땅을 대신하고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악한 생활권에 살고 있으되 악권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보다 높은 차원을 중심삼고 인내와 극복의 궤도를 달려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디까지 왔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지금은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통일교회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환경이 됐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끌려가야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를 끌어 와야 되느냐? 소화당해야 되겠느냐, 소화시켜야 되겠느냐? 소화시켜야 됩니다. 소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룩의 입장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누룩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누룩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그 어머니 아버지가 나쁠 수 있는 자리에서 굴복하게 되면 굴복하면서도 찡그리지만, 좋을 수 있는 자리에서 굴복하게 되면 굴복하면서도 '야. 훌륭한 딸이구나. 훌륭한 아들이구나' 하고 손을 들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룩이 되라는 것입니다.

누룩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냐? 아무리 큰 밀가루 떡이 있더라도 누룩을 넣으면 변합니다. 누룩을 조그마한 것을 갖다가 박아 놓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까짓 것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처럼, 그 하나쯤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두고 보면 이것이 전체를 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누룩입니다. 성경에도 누룩이란 말이 있지요?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삼천리 반도, 삼천만 민족 가운데 통일교회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대한민국에서 통일교회가 문제입니다. '야! 강력한 단체다' 이렇게만 되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문제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문제냐?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면 문제인 이것을 빼 버린다고 해결되느냐? 누룩이 박히는 데는 점같이 박히는 것이 아닙니다. 누룩을 넣으면 어떻게 되느냐? 박혀 버립니다. 박히는 데도 한 점으로 박히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박히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단계에 있는 통일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통일교회가 점이 아니라 선입니다. 이 민족 사조 가운데서 빼버릴 수 없는 사상과 이념을 제시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누룩이 되었어요? 누룩이 큰 밀가루 덩이에게 '밀가루 덩이야, 나는 너와는 비교도 안 되니까 내가 너한테 항복하겠다. 내요소를 전부 취소시키겠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거라구요. 오히려 밤이나 낮이나 그를 섬기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타락한 세계에서 무엇을 하겠느냐? 누룩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침범당하고 나오신 것이 아니라 침범해 나오셨습니다. 소화당해 오신 것이 아니라 소화시켜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면 소화당해야 됩니까, 소화시켜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부인들, 소화당해야 돼요? 우리 할머니들. 아들딸한테 소화당해야 됩니까? 아들딸이 밥을 안 먹여 주면 내가 죽겠으니 아들딸 궁둥이를 따라다녀야 된다. 그래요? 아내는 남편에게 달렸으니 남편을 따라가야 된다. 그래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내도 만만치 않다는 거예요.

그러니 세상에는 지금 야단이 났습니다. 끝장이 나 가지고, 세계적으로 끝장이 나 가지고 이제 한번 문제를 벌여야 될 것이 아니예요? 문제가 벌어지게 해야 할 때가 점점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한 가정이 문제가 되고, 한 나라가 문제가 되고, 세계가 문제가 되고, 하늘땅이 문제가 되고, 하나님이 문제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보다 3배 이상 참아야

극복이 나쁜 것이냐? 참는 것이 나쁜 것이냐? 엊그제도 목사 원리공청회를 했는데, 120여명이 듣고 갔지만, 그들이 '우리가 120명 넘게 와가지고 말씀을 듣는데 문선생님이 왜 나타나지 않느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들이 하자는 대로 하나요? 자기들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손님들이 무슨 수작이예요? 손님이 주인 노릇을 하겠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법이라구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문선생 하면 '어허……'하더니만, 요즘에는 관심이 많아져서 선생님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혹 낮에 드나들고 할 때 본 사람은 '오늘 문선생님을 보았으니 여기에 나타나겠지' 하고 기다린다는 거예요. 나타나긴 뭘 나타납니까?(웃음)

어제 어느 신문사에서 '통일교회가 이제 그만한 기반을 닦았으면 이제 문선생이 자가선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며 취재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 돈 벌어 주는 일 안 하겠다. 선전하려면 내가 만들어서 하지' 라고 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대로 놀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구요. 신문기자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취재해요? 이놈의 자식들, 자기들 원하는 대로 취재해? 언제는 헐뜯고 이제 와서는 뭐가 어째? 지금까지 내가 그런 사람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 갔다 왔을 때도 취재하러 왔던 사람이 사흘 나흘을 기다렸지만 못 만나고 갔습니다. 내가 선전을 하려면 우리 언론기관을 만들어서 하지요. 사탄세계 언론기관은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들은 나를 때려잡고 헐뜯기 위해서 선전했지 좋은 선전을 해주었어요? 나 싫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선생님은 누가 '당신이 나를 만나 주면 통일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소'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림없으니 가 봐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좀 달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다 별스럽지 않아요? 별스러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 못 만나서 기분 나쁘다'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더 궁금증에 사로잡혀 관심을 집중시키게 돼 있지요.

이제 내가 한번 목사 총회 한다고 하게 되면 왔던 사람은 다 올 거라구요. 내가 직접 나가서 얘기할 테니 오라고 하면, 왔다 갔던 사람이 천 명이면 천 명이 다 모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하면 될 텐데 뭐하러 원리공청회 할 때마다 나갑니까?(웃음)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자 한다고 해서 절대 안믿습니다. 누가 뭐 어쩌고 저쩌고 한다고 해서 후퇴하거나 양보하지 않습니다. 코방귀도 뀌지 않아요. 선생님이 고집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고집이 있고 악착 같다면 누구보다도 악착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지의 세계를 이만큼 개발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천하가 다 헤엄칠 수 있는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천하가 빠져 죽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이 되어 있고 벌판에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만을 제일로 아느냐? 그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운동하는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수는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세계적인 모든 것을 알게 되려면 아직 좀더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눈이 있어 보았다고 해서 다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귀가 있어 들었다고 해서 다들었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이상으로 보고 들을 때가 온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탄보다 더 포악했대' 어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라도 그 이상 되어야지요. 세계의 3분의 1을 거느리고도 아무도 상대 안할수있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보기에는 못난 사람처럼 가만히 있지만 속에 무슨 배포를 품고 다니는 줄 알아요? 아직은 선생님이 말을 하지 않는 거라구요. 그 세계까지는 멀다는 거예요.

지금 이 정도에서 머리를 들고 '아이고, 내 아들딸 죽소'라고 하는데 죽겠으면 죽으라는 겁니다. 네가 죽지 뜻이 죽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댓 사람 죽더라도 뜻을 살리고, 그 죽는 사람 가운데서 뜻을 위한 충신한 사람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열 사람이 죽더라도 그 이상의 내용을 중심삼고 극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붙들고 열 사람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입니다. 복귀섭리가 그렇잖아요? 노아 할아버지를 보라구요. 노아 가정 한 가정을 중심삼고 심판하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데 있어서 사탄세계의 3배 이상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세계에서 3배 이상의 수난을 당하게 되면 그 악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까지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아라,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 정상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3단계를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일 수련이 있지요? 내가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런 때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구.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더니 진짜 십자가의 길을 맛볼 때가 왔구만'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더 악착같아야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어

십자가의 길을 진짜로 맛본다는 것은 십자가 가운데 최고겠어요, 최하겠어요? 최고입니다. 진짜 맛보았다고 할 때는 죽기 직전입니까, 죽어가는 자리입니까? 죽어가는 자리입니다. 죽기 직전은 아직 최고가 아닙니다. 죽어가는 자리가 최고입니다. 그 눈에서부터, 그 손에서부터, 그 몸뚱이에서부터, 냄새가 나고 냄새를 피우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참는데 있어서도 진짜 참았다고 하는때는 두 번이예요, 한 번이예요? 한 번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 번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 통일교회 선생 노릇을 하려면 참는 데 있어서도 언제나 대장이 안 되면 안됩니다. 그렇잖아요? 그러지 않고는 보따리를 싸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그렇게 하느냐? 여러분은 모르지만 사탄을 중심삼고 그 놀음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러고 저러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무엇을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합니까?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됩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이러고 저러고 합니까? 세계를 중심삼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해야 극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다 이겁니다. 그것은 환영합니다. 얼마든지 하라는 겁니다. 하늘땅을 중심삼고 그렇게 하는 것이냐? 자기를 중심삼고 그렇게 하는 것이냐? 자기 하나를 중심삼고 돌다가는 깨집니다.

악한 세상을 뒤집어 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악한 세상에 끌려가 가지고 뒤집어 박을 수 있어요? 위가 아래로 가고 아래가 위로 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뒤집어야 됩니다. 뒤집는데 그냥 따라가서 돼요? 위로 올라가야 됩니다. 위로 올라가서 잡아 제껴야 됩니다. 잡아서 끌어 올려 가지고 꽁지 아래로 끌어내려야 됩니다. 그렇지요? 잡아 제끼려면 올라가야 됩니다. 올라가게 되면 사탄세계가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가려고 해도 못 가게 합니다. 그러니 사탄이 낮에 움직이면 우리는 밤에 움직이자는 것입니다. 낮에는 악착같이 끌어내리니까 말입니다.

사탄이 언제나 악착같을 수 없습니다. 숨을 언제나 '후 후 후' 하고 내쉬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말입니다. 악착같지만 조금 쉴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악착같이 한 십리를 끌어내렸으면 숨쉬는 동안에 이십리 올라갈 수 있는 준비를 하자는 것입니다. 내려갔다가 '꽝' 하고 상승. 비약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환경이 점점 어떻게 되느냐? 취미와 흥미를 가지고 '이것 봐라. 네가 그 기준을 중심삼고 얼마만큼이나 타고 넘어가느냐? 한 발자국씩 가서 언제 그 같은 세계까지 가느냐? 아이구 아이구' 이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거라구요.

다시 한 번 올라가 보자 이겁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승공활동할 때에도 지서 주임에게 점심도 사주며 한번 같이 해보자고 한 때도 있었습니다. 귀에 피도 안 마른 20대의 젊은 녀석들이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향수 냄새를 피우고 근사하게 차려 입고 걸어 다니는 것을 잠바짜박지나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게 되면 샘나거든요. 그러니까 끌어내리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지지 않고 지서 주임을 거쳐 지서장, 면장, 군수, 경찰서장 등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승공연합과 반공연맹이 대판 싸움을 한 적이 있지요? 그들이 아무리 못 올라가게 그러더라도 우리는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들은 다 기운이 빠졌어요. (웃음) 통일교회 신도는 얼마 안됩니다.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착같이 올라갔습니다. 반공연맹 이사장까지 통일교회 원리가 굉장하다고 선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쯤 되면 통일교회가 많이 올라왔지요?

우리의 때와 우리의 자세

통일교회에서 손댄 것은 국가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그런 면에서 악착같다는 거라구요. 내가 하는 것은 세계적인 것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우리 공장도 그래요. 통일교회에서 총을 만든다고 해서 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국가가 선생님을 찾아오는 때가 옵니다. 이때까지는 내가 그 어떤 실업가, 어떠한 사업가 이상의 정성을 들였습니다. 하늘이 우리의 갈 길을 염원한다면 이 선생님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한 15년쯤 지나 선생님이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두고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아무것도 없으면서 나라를 상대하여 무엇을 해보겠다고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 크지도 않은 어린아이가 대통령 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지 누가 믿어 줘요? 그러나 두고 보라는 겁니다. 되나 안 되나. 해 나온 것을 보라구요. 이제 됐다는 겁니다. 통일교 회를 두고 '이단 이단' 하는 사람들, 두고 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초청할때 오나 안 오나 보자는 것입니다.

'원리공청회에 목사들 오소' 할 때 위에서는 공문을 내 가지고 가지 말라고 어쩌고 저쩌고 했습니다. 위에서는 가지 말라고 해도 밑창에서는 자꾸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새 민 공문을 보내도 안 통하니까 그냥 덮어 두겠다 한다는 것입니다. 암만 공문을 내 보내라는 거예요.

와 가지고는 이래저래 신세졌지. 많이 배웠지, 충격을 받았지, 생각해 보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니 큰일났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뚝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눈이 번뜩번뜩했지만 나갈 때는 고개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실력에서 진 것입니다. 아무도 큰소리를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뒷문으로 들어간 자가 안방 주인을 쫓아내고 대신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뒷문 출입을 했지만 정문 출입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때가 오기 때문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지금까지 살아온 거예요.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살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아등바등 아등바등하던 사람들이 결국은 우리 꽁무니를 따라와서 '나 몰라서 그랬소. 본래 나는 악한 사람이 아니예요'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이 쓱 보면 세계가 눈앞에 보입니다.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선생님이 잠을 잘 때 기도를 하지 않고 자더라도 꿈자리가 사납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자면 꿈자리가 사나왔습니다. 사탄들이 1번 2번, 3번. 행렬을 지어서 습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기도를 않고 어디에 가도 사탄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들은 이제는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뜻을 알고 무엇을 했습니까? 한번 계산해 보자구요. 장사 밑천 털어 보자구요. 뜻을 알고 무엇을 했어요? 했다고 하는 사람은 나서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좀 물어 보게. 큰소리 칠 만치도 못했는데 그 밑천 가지고 편안해요? 뜻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뜻을 위해서 생명을 걸고 가라' 할 때는 '예, 가겠습니다' 해놓고,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그때는 뭐가 어떤지 모르고 요사스러운 것이 붙어서 그랬지' 하는 식입니다. 세례 요한식이라구요. 자기가 물로 세례를 주고 증거 했던 그분을 '나는 몰랐어' 하면 그 말이 통합니까? 나발을 불었는데 '나발이 소리를 냈지 입이 냈나? 하는 식입니다. '난 모르겠소. 그건 나발이 그랬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통일교회의 모든 문제가 풀릴 때가 멀지 않았어요. 통일교회에는 세상 가정들이 반대하더라도 통일교회를 지지하는 가정도 있지 않느냐! 통일교회 축복가정들이 있지 않느냐! 보라구요. 이번에 가정에서 아들딸을 낳고 재미있게 살고 있는 부인들을 몽땅 집에서 내쫓았습니다.

그러니 남편들이 이 일을 놓고 데모하면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남편들이 '통일교 문선생님의 일선에 아내 파송 반대 데모 안 하기 운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웃음) 데모도 그런 데모를 하면 마지막일는지 모르지만 말이예요.

참는 것도 참되게 참아야

그리고 여러분이 '생활이 어려우니 월급 주소' 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월급을 주기 위해 이런 일을 시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까지 월급을 못받아 봤습니다. 내가 통일교회 선생이 돼서 지금까지 월급을 못 받아봤어요. 선생님 월급이 얼마예요? 여기 아는 사람 있으면 말해 보세요. 선생님이 월급을 정하지 않았는데 여러분의 월급을 달라구요? 그거 다 불법이라구요. 선생님에게 먼저 월급을 주고 자기가 받겠다고 해야 효자입니다. '선생님은 월급을 안 받아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지 않소' 하겠지만, 그래 그것이 그냥 됐어요? 선생님이 다 만들어서 그렇게 됐지. 그렇게 만든 공적은 생각해 줘야 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쓰고 남거든 그것을 조금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쓰려고 하는 것을 '나 좀 주소'하니 그런 도둑놈들이 어디 있어요? 그들은 망할 것들입니다.

그래, 내게 돈이 있으면 나를 위해 씁니까? 미래를 위해서 씁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를 위한 뜻입니다. 현재에 있어서 제물을 드리는 것은 후손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철칙입니다. 내가 현재에 잘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고생을 좀더 하더라도 우리 후대, 후손들은 고생 안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뭐냐?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데데한 사나이가 아닙니다. 내가 집 살 돈을 마련했다가 그것을 전부 다 여의도 땅을 사는 데에 투입했습니다. 하늘의 집을 짓는 데에 정성을 들이지 않고는 내 집을 짓고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을 해보자구요.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이 있나? 나는 양심의 가책을 안 받습니다. 내가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있었다면 벌써 꺾여 나갔을 것입니다. 벌써 꼬꾸라졌을 거예요. 그렇다면 영계가 협조하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모르지만 이방 종교 가운데 영통하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나한테 보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영계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모른다구요. 나는 하나님을 사랑 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다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것입니다.

나에 대한 문제를 놓고는 기도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매일같이 망우리 고개를 넘나들며 수택리에 다녀오지만 우리 공장을 이렇게 해달라고 기도한번 안했습니다. '틀림없이 내 소신대로 밀고 나가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이 후원 안 하시거든 나 혼자의 힘과 노력으로써 있는 정성을 다해 나갈 것이다. 만들어 보자. 나 혼자 만들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가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게 선생님의 주의입니다.

하나님의 후원을 바라지 않는 입장에서 내가 정성을 다할 때 하늘이 협조하게 되면 이것은 누구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갖다 주었으니 누구도 못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냥 주는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달라고 하지 않아도 그만큼 줄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가지라고 설득시켜 가지고 주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데는 통일교회를 어떻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는 안 합니다. 항상 세계적인 문제를 걸어 놓고 담판 기도를 했지, 내 아들딸을 어떻게 해달라, 통일교회가 고생하고 있으니 어떻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통일교회의 여러분을 고생시키고 있는데 고생시켜 놓고 '하나님, 복을 주소' 그러지 않는 겁니다. 고생을 깨깨 시키고 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악한 사탄세계에 줄 수 없었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고생을 깨깨 했지요? 세상은 깨깨 고생을 못 했기 때문에 복을 못 받은 것 아니냐 이거예요.

참고 나가야 합니다. 참는 것도 참되게 참아야 합니다. 손가락 하나 뽑아 내는 것이 참는 것이냐? 그게 모호하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공장에 가서 보니 쇠나 철봉을 바이스에 물려 가지고 잡아당기면 엿가락 모양으로 늘어납디다. 그걸 한번 끊어지도록 잡아당겨 보면 좋겠더라구요. 잘늘어나거든요. 내 손가락을 거기에 물리고 잡아당긴다면 손가락이 빠져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참겠어요, 못 참겠어요? 참는다 이겁니다. 손가락 하나 빠지는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아요. 손가락이 다 빠지고 그 다음엔 손이 빠졌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참겠어요, 못 참겠어요? 예수님은 어디까지 참았어요? 죽을 때까지 참았습니다.

참음의 한계

참는 한계가 어디까지예요? 죽기 전까지예요?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뜻을 위해서 싸우겠다고 맹세한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나 스스로 그렇게 맹세했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 외의 사람들은 생각도 안 해봤구만.

그러면 죽을 때까지다 하면 어떤 때가 죽을 때예요? 개인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입니까? 나 좋을 때예요? 그런 죽을 때가 어디 있어요? 죽을 때까지라는 것은 죽을 일들이 연방 생기는 때입니다. 아버지도 죽을 때까지, 아들도 죽을 때까지, 십대가 아니라 천대, 수천년 동안 죽을 때까지. 그런 역사적 전통을 받은 것이 기독교 사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는 순교와 수난의 피를 보여 준 역사인 것입니다. 죽음의 제단이 상속되어 나온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는데 모두 죽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합시다. 여덟 식구가 다 죽었는데 내 차례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내가 죽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이 여기에 150명쯤 있는데 이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통일교회를 위해 싸웠는데도 다 안 죽었다는 거예요. 그게 죽을 때까지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죽을 때까지 싸운다고 할 때는 150명이 하나도 안 남고 다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구, 다 죽고 나만 남았으니 나는 종자라도 해야지, 죽을 때까지라고 맹세를 했지만 하나님 용서하소' 하면 되겠어요? 망하더라도 혼자 남은 그 사람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죽을 때까지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통일교회가 망하면 되나, 종자라도 있어야지. 네가 남아 종자가 되겠소'해 가지고 자기는 안 죽겠다고 하면 되겠어요?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으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이 굶고 뭐가 어떻다는 말을 해야 되겠어요?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자기 여편네와 자식들을 잘 먹이고 잘 입히겠다고 해서 되겠느냐 말이예요. 선생님도 그 놀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이 걸어온 입장과 여러분의 현재 입장이 다릅니다.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걸어온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내려갔다가 현재의 입장까지 올라왔지만 여러분은 내려가지를 않았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몰랐어요. 그저 선생님 등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이보다 좋은 데로 가려면 탕감조건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못가는 것입니다. 한번 죽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저 여러분이 하기 좋은 일을 해 가지고는 절대로 복귀가 안 됩니다. 통일교회가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사명을 다하려면 종족적인 골짜기에 들어가 거기에서 극복해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개인적인 골짜기, 가정적인 골짜기, 종족적인 골짜기, 민족적인 골짜기를 거치고 현실적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한 번이라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부정적인 입장을 거치라는 것입니다. 그저 참고 참아야 합니다. 참지 못할 일이 수두룩하더라도 참아야됩니다.

칼이 있으면 배때기를 도려내 버리고 얼굴을 도려내 버리고 싶은 사람을 만날 때도 많은 것입니다. 그거 보면 선생님이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성격이 참 급한 사람입니다. 옛날에 동네에서도 돈푼이나 있고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거나, 나이가 많은 녀석들이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억울하게 때리거나 하게 되면, 선생님은 복수를 하고 싶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게 안 되면 분에 벅차서 못 사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는 못 견뎌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려니 죽을 지경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탕감 효과율이 높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에 물 탄 듯이. 도살장에 가는 늙은 황소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건 별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꽤 힘들어요? 그런데 이건 팔팔 뛰는, 아예 견딜 수 없는 성격의 소유자가 이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목사들의 강의를 다 듣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내가 얘기했지만, '말을 이렇게 해, 이 녀석아' 하면서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무슨 잘못을 하게 되면 욕을 퍼붓거든요. '잘 만났다. 이 녀석들아' 하는 것이 인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세계는 ‘잘 왔어?’ 그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잘한 사람이 잘못한 사람들 한테 '아 미안합니다'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당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자세로 들이 짓밟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부작용이 벌어지고 마지막이 되는 게 아니냐 이겁니다.

내가 요전에도 모모 인사들을 만났을 때, '당신을 내가 만난 것은 당신이 필요해서 만난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권위라든가 당신의 입장을 마이너스시키는 졸장부가 아니다. 당신이 나를 만나자고 한 것은 당신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것이다. 당신 앞에 내가 마이너스 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들이 방문도 안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참고 견디어야

여러분은 극복해야 됩니다. 극복해야 되는 거라구요. 참기가 얼마나 힘드느냐? 이거 보라구요. 참을 인(忍)자는 칼 도(刀)에 마음 심(心)입니다. 그래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칼날 같은 마음을 쓰라는 거예요, 쓰지 말자는 거예요?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요. 참고 견뎌야 합니다. 견뎠다 하는 것은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낫게 되었다는 거예요?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극복했다 하는 것도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못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낫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이 그 터전을 중심삼고 제 2의 인내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극복이 옛날보다 못해 가지고는 하늘이 제2의 인내의 도상을 가라고 명령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극복하는 자리에서 당하던 것보다도 내심에 보다 나을 수 있는 천적인 내용이 결정되어야만 다시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참고 견뎌 온 것은 연습입니다. 이제부터 실전도상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또 이기고 극복하게 될 때는 그것도 연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겼다고 그것 가지고 춤추지 말라는 겁니다. 연습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또다시 제3의 실전노정을 가야 됩니다. 제4차 민족복귀, 제5차 국가복귀, 제6차 세계복귀, 제7차 천주복귀, 제8차 하나님복귀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까지 하면 8차까지 나가지요? 하나님까지 해방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얼마나 극복해야 되느냐!

하나님은 뒷방 할아버지가 되고 선생님은 안방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놀음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내가 통일교회 영신들을 데려다가 까꾸로 모가지를 잡고 한번 들이박았으면 좋겠어요. 가지 않을 때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들이박으면 안 꺾일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대해서 시험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다. 문 아무개는 질기다는 거라구요. 질기고 악착같다는 거예요. 내 눈을 보라구요. 내 눈을 보면 흐릿하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악착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한번 붙드는 날에는 손목이 빠지면 빠졌지 안 놓습니다. 절대 안 놓습니다. 후퇴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거 하기 전에는 밤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못 믿을 것을 믿는 것이 위대한 믿음

여러분. 사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사탄이 있는 것 같지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있는 것 같지요? 그렇게 믿어 가지고 생명을 내놓을 수 있어요? 내놓을 수 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 것 같은 것을 사실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은 지극히 미욱한 사람이 아니면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은 왜? 만일 어떤 사람이 막연히 같은 것 같은 것을 사실로 믿고 죽는 자리까지 갔다면, 그렇게 내몬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은 그 사람을 영원히 심복부하로 삼을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잖아요. 바보 중의 바보 같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같은 것 같은데 사실로 믿고 했다 이겁니다. 사실로 믿고 한 그것이 그 누구도 탄복할 수 있는 일이라 할때 주인은 그 사람을 영원히 심복부하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은 것 같은 것을 믿어라 했는데 그것을 믿고 행동했다 할 때, 그리고 그 행동한 것이 하나님보다도 멋지다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영원히 심복부하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믿고 우러러 모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 인내적인 믿음, 극복적인 믿음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나님을 타고 앉는 자리까지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춤을 추더라도 하나님이 좋아하며 어서 춤추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입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용만 뒷받침된다면 믿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을 잡기 위해서는 사탄 이상의 수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사탄을 잡으려면 사탄 이상의 수법을 써야 합니다. 사탄이 하자고 하면 하나님은 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작전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아이구, 나 손들었어' 해야지. '내가 현재 하나님보다 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것이라 하더라도 선을 보다 가치 있게 증거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겠다' 하나님은 이렇게 보시는 것입니다. 악이 그 반대적인 선을 자극시킬 수 있는 자극제로 쓰여진다 할 때는 그 악을 악으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떤 사람이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것을 본 사람은 거기에 가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 안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법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한 자리를 갖지 못한다면 사탄을 영영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자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서라는 거라구요.

앞으로 세계적인 신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그 누구도 무시 못할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을 생명시하고 간 신앙자가 누구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하늘 뜻과 관계되어 있는가를 파헤쳐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무시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게 타당한 것이라구요. 나와 다르기 때문에 손가락을 보더라도 더 많기 마련이라구요.

나는 손가락이 다섯 개 있는데 하나님은 손가락이 여섯 개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이라고 알면 된다구요.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나 자신이 하나님과 똑같다면 나는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복을 받고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내가 가진 다섯 개 이상의 손가락을 가졌기 때문에, 그 나머지 손가락으로 복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적용시킬 수 있고 타당화시킬 수 있는 자신이 되려고 해야지. 그것을 부정하고 비판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죽기까지 해보라는 거라구요. 죽어 보자 이겁니다. 죽는 데는 잘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 죽어 보자는 것입니다. 죽고 난 뒤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내 일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살리겠다고 하신 약속을 깨뜨리면 하나님이 배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약속 불이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었는데 하나님이 그 약속을 불이행했다면 하나님이 나를 그냥 그대로 처박아 둘 것이냐? 아닙니다. 몇백 배 이상의 다른 것으로 갚아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죽으라고 해서 죽었는데. 죽으면 부활시켜 준다고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면 그 대가 이상으로 갚아 줘야 되는 것입니다. 나 하나 죽었는데 나를 부활시키지 않은 대가로 '우리 나라를 살려주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세계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나를 죽음길로 내모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못 믿을 것을 믿는 것이 위대합니다. 못 믿을 것을 믿고 행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나선 사나이가 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나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장 죽게 되었는데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자기가 당장 죽게 되어 벌거벗겨져 매를 맞으면 '아이구, 아야야야' 그러지, ‘아버지, 아프세요?’ 그래요? 그런데도 예수는 '아버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랬습니다. 그것은 ‘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프시지요?’ 그 식이라구요. 차원이 다릅니다. 이렇게 땅이 아니고 하늘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능동적인 그 주체 앞에서는 못 믿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극복도 타당한 극복이어야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 한국의 잘 믿는 목사나 신령한 사람들을 다 만나 봤습니다. 그들에게 몇 마디 물어 보면 대번에 다 아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믿소? 하며 점쳐 보는 거라구요. '당신은 하나의 종주 새끼밖에 못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요,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탄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말로서 절대적으로 믿게 될 때는 하나님이 이루어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사탄의 말에 속아 가지고 사탄의 말을 믿으면, 그것은 사탄을 유인하는 거예요. 끌어올리는 거예요. 사탄은 끝까지 올라가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길은 해방의 길이기 때문에 하늘의 길을 따라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의 말이라도 하늘의 말로서 믿고 끝까지 나가게 될 때는, 그것은 사탄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것이 되기 때문에, 창조의 하나님은 그것까지 이루어 주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그런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출발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합니다.

극복도 타당한 극복이어야 합니다. 통일교인들, '이거 이렇게 하면 축복을 받지' 하는데. 그것이 무슨 극복입니까? 그것은 장사지요, 장사. 그건 제3의 환경과는 하등의 관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자기만 관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여러분이 참는 한계가 어딜 것이냐? 극복의 한계가 어디냐? 한계는 끝까지라구요. 죽는 데까지입니다. 목을 내놓는 데까지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목을 내놓는 데도 ‘내 가정을 위해 목을 내놓는다’ 하는 것은 시시합니다. 나라를 위해 내놓는 것도 시시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내놓긴 내놓는데 세계를 위한 나라를 위해서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위한 나라의 주권자가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그가 개인일지라도 전체를 대표한 개인입니다. 가정이라면 전체를 대표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이 되는 것입니다.

참은 개인도 긍정하고 가정도 긍정하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전부가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디에 가든지 부정적인 여건을 제시할 수 없는 참의 기원을 형성하지 않으면 참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싸우는 데 있어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 했다 하면 그것은 세계적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도 세계를 위했다 하면 그것은 세계적입니다. 통일교회에 있어서 문선생이 그런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사탄이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는 데 있어서, 가정을 터전으로 해서 사는 데도 그 가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표한 가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종족을 중심삼고 사는 데도 세계를 대표한 종족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종족권은 축복받은 가정들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 내에 여러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못 살면 안 됩니다.

어떤 명령을 내리더라도 순종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어야

내가 엊그제 일본 가정부장이 왔기에 얘기했습니다. 그에게 일본이 살길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복귀역사는 물질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제물, 즉 물질시대요, 신약시대는 인격시대요, 성약시대는 부모의 심정시대입니다. 만물과 인격과 심정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이것을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을 위해서 선교 헌금을 해라. 그 다음에는 한국을 위해서 죽어라. 그리고 한국을 자기 나라보다 사랑해라. 그래야 일본이 살 길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복귀다. 이것이 일본의 갈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원칙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칙은 불변입니다. 선생님이 싫더라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종족적인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축복이 그게 아니냐. 축복해 준 것은 하나되었다는 조건을 세워 준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없으면 횡적인 출발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이 왜 낙원에 가 있느냐? 가정적 기반을 못 가짐으로 말미암아 이 지상에 횡적인 섭리의 터전을 남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선생님의 가정을 따라 나가야 합니다. 종족도 선생님을 중심삼고 통일교회 전통에 화해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국가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면 그 과정에 무엇이 필요하냐? 인내와 극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가는 것입니다. 인내와 극복의 길은 복귀도상에 있어서 가야할 정상적인 궤도입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이 공장 얘기를 한번 하겠습니다. 우리 공장이 처음 총을 만들게 될 때, 공장장에게 하루에 얼마나 만들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80정 정도 밖에 못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00정을 만들라고 하니까 못 하겠다기에 내가 책임지마고 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세 시 50분에 차를 타고 나가서 거기에 네 시 5분, 10분에 도착하니까 공장장이고 누구고 자기네들이 네 시에 안 일어나고 별수 있어요? 밥 먹고 편안히 잠잘 여력이 생겼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라구요. 그래 가지고 400정이 뭐예요? 최고 780정까지 만들었습니다. 단결하면 이렇게 위대한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조직을 무시했습니다. 내 명령을 절대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엔 계장, 과장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이라 이것입니다. 과장이고 누구고 책임을 못 하면 '너희들은 놀아라' 하고 들이박아 놓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몇 번 내몰았더니 복닥불이 났습니다. 환경이 뭐 어쩌고 하면서 요사떨고 하던 시시한 녀석들에게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벌어지면 '아이고 나 죽소' 하면서 즉각 일을 하겠다고 하지 않고는, 밤을 새워서라도 하겠다고 하지 않고는 죽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정부에서 2만 정을 만들 계획인데 그중 얼마나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책임자 들에게 그중 3분의 1정도인 6천 정까지 만들어 보고 그 다음에 1만2 천정까지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이 못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왜 못하느냐 이것입니다. 해봤느냐 이겁니다. 그런 것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해보고 말하라는 겁니다. 해보고 안 되면 모르지만, 되는 데까지라도 해보라는 거라구요. 열 시간 해서 안 되면 스무 시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스물 세 시간이라도 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죽겠으면 사람을 배가시키는 것입니다. 열 사람으로 안 되면 스무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되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되는 거라구요. 통일교회는 그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때가 된 것입니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과장인데 왜 이런 일을 시키는 거야? 과장 일만 하면 됐지, 전도는 무슨 전도야' 이런 시시한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항상 일이 밀려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라구요. 때만 되면 내가 한번 반대로 친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는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농사짓기 싫어요? 내가 농사를 짓겠다 그 말입니다. 선생님도 똥통을 멨다는 것입니다. 해라 이겁니다. 거꾸로 처박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는 거라구요. 간부들도 거꾸로 처박아 버릴 거라구요. 그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꺼떡꺼떡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패스가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이 나쁜 식이냐? 그것이 통일식입니다. 기둥을 박는 데는 단단한 기둥을 박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고물로 짓더라도 단단한 기둥을 박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처음 봐도 단단한 사람인지 노글노글한 사람인지 다 감정할 줄 압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230쌍 약혼을 시켜 주는 데도 열 시간 이내에 다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너는 이런 성격이고, 또 너는 이런 성격이 아니냐' 이렇게 선별해서 맺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보다 낫거든요. 그런 선생님이라구요.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잘 속아 주지.

자기가 극복해야 할 책임

선생님은 여러분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인내와 극복의 도가 아직까지 차지 않았다고 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부인들을 내보냈습니까? 자기들이 갔지요? 부인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따라가겠어요, 그냥 버티고 있겠어요? 부인들이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거 생각해 보라구요.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할 테야? '안 돌아오면 그만두지 뭐'. 그만둬 보라는 거예요. 도깨비같이 어영부영하는 777쌍 남편들, 부인들이 안 돌아오면 따라갈 거예요, 안 따라갈 거예요? 따라갈 거예요, 안 따라갈 거예요? 남자의 체면이 있지 어떻게 따라가요?(웃음) 안 따라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통일교회 문선생이 잘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길이길이 통일교회 선생님 편들게 되어 있지 여러분 편들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자신은 편안하게 있으면서 여러분만 시킨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부인들을 내보내 놓고 지금 밤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개척시대에는 굶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가 오는데도 한데서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몰리고 욕먹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선생님이 편안하겠어요? 그런 면에 있어서는 선생님이 양심적으로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그건 왜? 여러분이 뜻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선생님은 그런 과정을 안 거쳐왔느냐? 선생님도 다 했다구요. 처자를 버리고, 어머니 아버지가 감옥에 찾아왔을 때도 쫓아 보내는 것입니다. 눈물 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무개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르면 쫓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무서워했습니다. 남편보다도 시아버지보다도 선생님을 제일 무서워했습니다. 간부들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은 15세 되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형님, 삼촌, 사촌까지 손에 쥐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조건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여덟 살부터 사돈의 8촌까지 선을 보아 주었다고요. 사진 가지고 오면 내가 봐 가지고 틀렸다 하면 못사는 것이고, 됐다 하면 잘사는 거라구요. 그런 간판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동네에서 믿을 만한 사람으로 선전이 되어 있었다구요. 선생님은 그런 역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구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잘못하면 조건에 걸릴 걸 생각 안 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여러분이 모를 때에 먼저 다했다는 거예요. 다 해 가지고 조건에 안 걸리게 해서 자리를 잡은거라구요.

여러분에게 원리말씀을 14년 전에 가르쳐 주었는데, 지금에 와서 '아이고 선생님, 이거 이렇지요.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14년 동안 원리강사를 했으면서도 그 내용을 지금에야 알았다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14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거예요? 도둑질을 했다는 겁니다. 사기꾼 노릇을 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 여러분의 차원은 못해도 10년쯤은 선생님과 차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36가정 결혼식도 선생님이 그저 계획을 세워서 한 것이 아닙니다. '식은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다 하고 나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아, 그래서 그렇게 했구나' 한다는 거예요. 그런 처지에 있는 여러분이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느냐는 겁니다. 절대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절대 복종하면 빨리 가는 것입니다. 가지가 뿌리에 복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뿌리가 끄는데 가지가 '아이고 난 뿌리를 따라가지 않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가지가 떨어져 나가지 별수 있어요? 이러구 저러구 하다가는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협회장이 훌륭했습니다.

내가 극복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도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 천사장이 이렇게 따먹으라고 하는데 이것 따먹어도 됩니까? 하고 물어 봐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은 못하시더라도 '이놈!' 하고 화라도 내셨을것 아닙니까? 그런데 물어 보았나요? 이런 원칙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물어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꿍꿍이 속으로 자기 혼자 하다가 누더기 보따리 쓰고 '아이고, 나 죽는다' 한 것입니다. 그렇게 죽는다고하면 누가 공언을 해주나요? 잘 죽으라지. 자기 갈 길도 바쁘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갈 길이 바쁘다는 거라구요. 내가 지금 수습할 여지가 없습니다. 알아줄 여자가 없다구. 그보다도 더 바쁜 일이 있다는 거야.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극복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데 있어서 견디는 자리가 참을 일이 생긴 자리보다 낮아져서는 하늘 앞에 서지 못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하면 끝나고 났을 때, '야, 너 훌륭하구나. 그가, 훌륭하구나' 하고 하늘의 동정의 여운이 같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이 그를 세워서 또 다른 새로운 출발과 또 다른 발전의 동기를 가져다 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꺾이게 될 때는 어느때든지 한 시대밖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면 아브라함도 한 시대밖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꺾이게 될 때는 그것으로 끝장을 보지 않았더냐!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문선생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수난의 길을, 생명이 엇갈리는 길을 거쳐왔지만 선생님이 남아진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극복을 하는 데도 마이너스되는 극복은 안 했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불평 불만을 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은 사탄의 요소입니다. 아무리 사지에 가더라도, 쇠고랑을 차고 영어의 몸이 되어 옥살이하는 한이 있더라도, 불평 불만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불평 불만을 하면 절대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신앙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가졌던 본질적인 생각입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하는 데는 누구를 중심삼고 하느냐? 자기를 중심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극복을 하고 난 뒤에 어디에 남아지기를 하나님이 바라실 것이냐? 비판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동정을 받는 자리,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며 맞아 줄 수 있고, '내 아들아' 하며 품어 줄 수 있는 자리에 남아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극복하고 나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는 자리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와 가지고 '내 아들아, 너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는 누구를 중심삼고 나오느냐? 그것은 세계와 하늘을 위해서 나가는 사람을 중심삼고 나오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자기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위해서 죽고 세계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을 받기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아들딸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복을 지닐 수 있고 역사가 복을 지닐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죽고 사는 것이지, 나와 내 아들 딸을 위해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공적인 입장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인 노릇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정을 투입해 가지고, 부인을 내세워 가지고 전도하자, 그 다음에는 남북통일을 하자, 삼팔선을 철폐하자는 운동을 벌여야 되겠습니다. 삼팔선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을 버려 두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나라의 삼팔선을 극복할 수 없고, 이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대가를, 그것을 위한 인내의 과정을 누가 치를 것이냐? 대한민국이 못 치르거든 통일교회가 치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러분이 못치르면 통일교회 문선생이 치르겠다는 것입니다.

인내와 극복의 궤도

어저께 내가 일본 가정부장을 데리고 얘기할 때 무슨 얘기를 했느냐 하면, 앞으로 일본 식구들은 대마도를 전도기지로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일본 정부가 제국주의 국가형태로 돌아가게 될 때는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이기 때문에 탄압당할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대마 도를 중심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마도로 집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한국으로 철수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만일에 한국이 공산당에게 밀리게 될 때는 우리가 대마도로 피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통일교인들이 굶어 죽지 않지요. 그래 가지고 한국 통일교회와 일본 통일교회가 합하여 대마도를 완전히 철옹성 같은 요새지로 만들고 일본이 뭐라 하게 되면 매매해 버리자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까지 지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내가 구보끼한테, 만일 너희들이 망명해야 될 때 전부 대마도에 머물 수 없거든 일본 승공연합이 한국 통일교인을 책임지고 망명시키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이런 문제까지 토의했습니다. 비밀 회담을 한 거라구요. 그 내용을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박대통령을 만나서도 못할 얘기를 지금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생님에게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한 시간 15분 동안 만나서 얘기를 하고 나니까 완전히 걸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못 하는 일을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삼천만 민족 앞에 당당코 큰소리를 하더라도 나라의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사실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권을 만들어 놓고 아시아로, 세계로 뻗쳐 나가야 할 인내와 극복의 꿰도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코치할 수 없는 일을 선생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이 궤도를 가설해야 합니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궤도를 가설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다 하겠어요? 그러려면 초국가적인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아들딸, 대한민국의 백성만을 위하는 그런 고질적인 사상 가지고는 안 됩니다. 초국가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아시아를 사랑하고 아시아인을 대하여 형제의 정을 나누고, 아시아인을 대하여 하나의 동포의 감정을 체득할 수 있는 놀라운 사상의 터전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궤도를 출발하여 세계로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이 궤도가 부산에서 출발했으면 부산에서 멈추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뻗쳐 나가서 이 세계를 돌아와야 합니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아시아만 돌아와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다 거쳐서 돌아와야 합니다.

한국 식구는 주체국의 책임을 다하라

이 일을 해야 하는데 누가 할 것이냐? 주체국인 한국을 중심삼고 그일을 시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이것을 하기 싫어하면 한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종주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추종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종의 나라가 되는 거예요. 되겠어요? 여러분, 종이 되겠 어요? 빌어먹고 남에게 의지해 살던 불쌍한 이 신세를, 역사적인 탈을 벗어 버리고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나라의 주권자들이 행사하던 몇백배의 당당한 권리를 갖고 평화의 세계에 부상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에서 끝을 극복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출발을 했으니 한국에서 끝을 맺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출발했으니 한국이 기관차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며 철도를 부설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한국이 병신이 되어 가지고, 못난 그 자체가 되어 가지고 제일이 되느냐? 천만에요. 이것은 선생님의 사상이 아닙니다. 세계에 그 일을 하지 못하는 한국이 되었는데도 한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이 세계 제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똥싸는 일도 먼저 했다고 해서 제일이야?

여기 부장이라든가 지구장들은 일본 사람이 평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개 부장은 몇 점, 뭐 80점, 또는 몇 퍼센트 해 가지고 이것저것다 따져서 계산해 놓고 비평을 합니다. 그들은 이 부장들 가운데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다' 하는 것을 다 알아 가지고 그런 부장들이 아무리 큰소리를 해도 코방귀도 뀌지 않습니다. 그가 무슨 불평을 하더라도 듣지도 않습니다. 자기는 상대가 그런 것을 다 듣고 있는 줄 알고 기분이 좋아서 얘기했지만 그 사람들은 '이놈의 자식, 모가지를…' 이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병신 자식이 집안 망신을 시키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병신이 방구석에 들어앉아 가지고 이 야단이라구요. 병신 자식이 망신시킨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러분이 이 말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이 주체국이면 선생님을 빼놓고도 주체국이 될 수 있어요? 선생님이 미국에 가게 되면 한국에 오라고 해도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미국에 가면 미국이 주체국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이 뭐 어떻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이 못 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러분은 세계적인 시련과 세계적인 환난과정 가운데에서 인내와 극복을 생활의 본질로 삼고 성품으로 삼아 가지고 세계를 돌아올 때까지 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그 궤도가 출발하여 세계를 돌아서 종착지인 본지에 돌아왔을 때, 그 길이 탄탄대로가 되어 세계가 편리하게 되고 이익을 보게 되면, 그때에는 이것을 영원히 영원히 찬양하고 숭배하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하늘의 뜻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앉아서 뭉그적거려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보아서 앞날을 알라구요. 여러분이 어떻게 될 것이냐,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이냐, 뜻을 대하여 어떻게 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자기 자체의 신앙 자세, 생활 자세, 뜻에 대한 자세가 어떠냐 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여러분의 후손들의 귀결점이 어디가 될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때를 맞기까지 환경의 여건을 중심삼고 싸워 승리한 터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자랑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나라가 그것에 일체되지 않고 상반될 때는 이 나라와 국민은 비참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극복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통일교회가 없어졌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통일교회가 없는 사회를 생각해 보라구요. 앞으로 부패를 뿌리뽑을 수 있겠어요? 그것을 나한테 맡기라는 것입니다. 깨끗이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여당과 야당의 당수가 나한테 와서 훈련을 받고 내가 하는 대로 하라는 겁니다. 내가 일년 반이면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안 되나, 되나 보라는 것입니다. 사상무장을 우리가 시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군대의 사상무장도 우리가 시켜 주겠으니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내가 공식석상에서 노골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타가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공부를 시켜 가지고 들이까는 거라구요.

그래서 74년도까지 우리의 신문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본부에 있는 부인들도 다 나가서 신문을 파는 것입니다. 동아일보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빚을 지면서까지 신문사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선전만 하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수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수고하고 나면 망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장단에 맞춰 춤출 일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동에서 춤을 추고, 서에서 춤을 추고, 남에서 춤을 추고, 북에서 춤을 추더라도 중앙에서 춤을 추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에서 춤을 추는 것은 중앙에서 춤출 수 있는 그때를 위해 춤추는 것입니다. 동에서 춤추는 것을 가지고 중앙에서 춤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중앙에까지 가서 춤을 추어야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체국인 한국이 하늘의 권위와 긍지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세계의 어느 국가 민족보다도 세계를 붙안고 참고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 것이요, 가정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것이요, 종족적인 시련이 부딪쳐 올 것이요, 민족적인 시련도 부딪쳐 올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현재의 입장을 볼 때, 통일교회는 종족적인 시련을 맞고 있는 비상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의 비상시기가 아니라 여러분의 비상시기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고비가 있다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선생님이 언제까지나 한국에 있을 것이냐? 선생님은 언제나 한국에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는 데도 세 가지 목적이 있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세계적인 사건이라든가 외곽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듣게 될 때, 우리는 그반대적인 면에서 어떻게 결의해야 되는가를 미루어서 알아야 합니다.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대 이상의 반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칙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에 있지만 세계를 직시하며 가야 합니다. 이미 여러분이 바라는 궤도가 부설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궤도를 이용 하여 힘차게 달려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 전체를 활용해 가지고 세계로 갈 수 있는 여러분 나름대로의 주체면 주체, 하늘 앞에 사랑받는 아들이면 아들, 충신이면 충신의 길을 닦아 나가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닦아진 터전을, 그 궤도를 백 퍼센트 이용해서 통일교회의 첨단을 넘어가야만 여러분의 공의로운 그 터전이, 그 궤도가 더 연장될 수 있는 것으로 남아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보다 잘 극복해야 됩니다.

이제 우리 가정 전체가 동원하여 삼팔선을 지키고, 뜻을 위해 이북 5도를 직시해 나가 내일의 성공을 다짐할 수 있는 가정이 되고 그 소망을 안고 가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정이라면 지금 이때에는 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아서 가는 사람에게는 승리와 영광과 찬양이 영원히 같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 도

​아버지, 이 통일교단은 그 누구를 위한 교단이 아닙니다. 제가 이 길을 닦아 나오는 데는 삼척동자에게도 머리를 숙여 경배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그 자리에서부터 자기의 가치를 당신과 더불어 무한히 확대하고자 하며 싸워 나온 역사가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길을 가는 스승과 그 스승을 인도하는 아버지는 그보다 더한 몇천만 배의 수난길을 걸어오신 것을 이들이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이런 터전을 갖춘 실상권에 있어서 당신의 수고에 황공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을 대하여 눈물과 진정으로 간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자신들인 것을 발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저희들은 이 사망권의 세계를 초월하여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뚫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당신은 이 시대적 환경에서 살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적 환경을 극복하고 남아질 수 있고 미래의 전통을 현실 기반 위에 확고히 세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망권을 극복하고 나아가 승리의 권을 영원히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입장에 선 아들딸들을 찾기 위해 사망권에서 얼마나 얼마나 몸부림쳐 나오셨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버지 앞에 부름받을 수 있는 아들 중의 아들이 되고 딸 중의 딸이 되겠다고, 당신의 영광의 나라에서 당신이 기뻐하시며 내세울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온 피조세계를 상속해 주고 너 때문에 내가 있고 너 때문에 내가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실 수 있는, 당신의 사랑을 몽땅 상속받고도 부끄러움이 없이 기뻐할 수 있는 저희 자신들이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런 자녀들이 나올 때까지 참아 나오시는 당신의 수고로움이 오늘날까지 저희들의 배후에 엉클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러한 수난의 대가를 치르고 찾아오셨는데. 찾아진 저희들이 이렇게 무가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의 모습을 이천지간에 내놓을 수 없고, 눈을 들어 산을 볼 수 없고, 호수를 볼 수 없고, 땅을 볼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한때가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자기의 손을 펴 가지고 한 포기의 풀도 한 줌의 흙도 만질 수 없는 부끄러운 자신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되겠사옵니다.

억천만세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수고의 대가를 치르고 이렇게 무가치한 것을 찾아 놓으신 것을 생각할 때, 단 하루도 슬픔과 원통함과 억울함과 분함의 마음을 풀 수 없는 당신의 입장인 것을 저희들이 모르고, 당신께 나를 사랑하여 달라고 나를 북돋아 달라고 하는 자리에 섰던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했는가 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긍지를 가지고 당신께 감사 또 감사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눈으로는 당신을 위해 보고 이 몸으로는 당신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자리에서 도망쳐 왔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할 때, 저희들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불쌍한 죄악의 후손인 것을 자인해야 되겠습니다.

나 자신이 이렇게 추한 모습인 것을 생각하면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바라볼 수 없고, 아버지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부를 수 없사옵니다. 너무나 너무나 부족한 나 자신임을 느끼옵니다. 아버지, 아버지, 천만 번 불러 보고 그 말이 귀를 통하여 들리게 될 때. 또다시 그 말을 그리워하며 눈물 짓고 몸부림쳐야 할 입장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타락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저희들의 비참사인 것을 생각하옵니다. 어찌하여 저희들이 이렇듯 비참한 인간이 되었는가를 스스로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 선조로부터 엮어진 죄의 근원이 나에게 그런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피한 사실임을 알게 되옵니다.

천세 만세 한을 품고 나온 아버지 앞에 그 한을 풀 수 있는 길이 무엇이 옵니까? 이렇게 부족한 저희들을 거름삼아서 그 한을 메울 수 있는 길이 있거든 그 길이 죽음길이라도 찾아가야 되겠사옵니다. 그 길이 신앙길을 가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길인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거룩하신 성상이 분부하시는 노정을 옷깃을 여미고 목이 쉬도록 통곡을 하며 따라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당신보다 앞서서 눈물을 거두고 당신보다 먼저 편한 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이상 경거망동한 일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줄 아는 저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고 견디고 극복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내가 참아야 하겠고 나를 극복해야 되겠습니다. 나아가 가정을 극복하고 환경을 극복하는, 외람된 터전을 삼켜 버릴 수 있는 주체가 되지 않고서는 당신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무릎을 꿇고 밤을 세워 가면서 아버지 앞에 나는 망하더라도 민족이 소원하는 한때를 갖게 허락해 달라고, 개인들을 대신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하소연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되겠사옵니다. 또 그럴 수 있는 가정이 나타나야 되겠다고 피를 토하고 눈물을 흘리며 당신 앞에 정성들이는 무리가 되어야 할 것이 여기 모인 통일의 무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말을 하고 나서도 부끄러움을 깨달을 줄 모르고 바라보고 나서도 기가 막히다는 것을 깨달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는, 그 이상의 민족이 나타나고 그 이상의 무리가 나타나게 될 때 당신이 그들을 부등켜안고 흐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이제 누구보다도 수난길을 달려가서 누구보다도 최후의 승리를 결정하는 영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시련의 도상에 있는 한국과 세계의 정세를 바라볼 때, 저희들이 그 첨단에 서서 당신을 대신하여 정성의 피눈물을 흘림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모든 것의 동기가 되고 당신의 내일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 한국과 일본과 대만을 연결시켜야 할 시대적 사명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제 저희들은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하겠습니다. 일본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은 오늘부터 7일간 단식 투쟁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정성을 들이며 싸우는 것은 일본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스승과 한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일본에서는 그 나라의 주권자 그 민족보다도 한국의 통일교회의 식구들과 여기에 서 있는 스승을 중심삼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이 나라의 장래는 누가 책임을 지느냐 하게 될 때에 이 나라의 실정을 아는 저희들이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우리가 선봉에 서서 아시아의 제물이 되어 아시아를 위하여 피를 흘려야 하겠습니다. 이번 40일 기간에 일본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심각한 자리에서 기도하고 정성을 들여서, 아버지 앞에 한국이 먼저 기억될 수 있게 해야 된다는것을 생각하고, 일본에 져서는 안 될 주체국가 한국의 사명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모인 젊은 가슴들, 청년들의 고동치는 맥박을 통하여 뻗어 나오는 젊은 피는 어디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사옵니까? 적진의 참호를 쳐부수는 자리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고동치는 소리가 세계를 움직이고 세계의 역사를 움직여 세계의 심정을 회복하는 일을 해야 되겠사옵니다. 그것이 통일가의 사명이요, 본부와 본부를 중심삼고 대한민국내에 있는 저희들의 사명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누가 하지 못하더라도 본부에 있는 몇 사람이라도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그날까지 세계의 복지천국, 행복의 터전을 위하여 인내와 극복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참고 견디어 나가는 무리가 되어야겠사옵니다. 그러한 무리가 많아야 된다는것을 저희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 시간, 당신 앞에 부복한 자녀들이 그럴 수 있는 모습을 스스로 갖추겠다고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아버님은 불쌍하시고 고독하신 분이십니다. 이 땅 위에 당신이 바라시는 아들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나 이들이 이 민족 가운데서 남아지는 무리들이 될 것을 결의하였사옵나이다. 이 길은 이기고 나서도 세상 전체가 원망하고 망하기를 바라는, 환희하는 무리들이 없는 고독의 길인 것을 아옵니다. 그 어느때에 민족과 더불어 환희하고 그들로부터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만민이 스스로 당신을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당신은 우리보다 더 불쌍하시고 비참하신 분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이 오늘의 비참이 자랑이요, 내일의 비참이 더 자랑이라고 알고 끝까지 인내와 극복만의 철학을 가지고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전통과 기반을 남기는 당신의 아들딸이 기필코 될 것을 이 시간 결의하게 하시옵소서.

금후에 한국의 갈 길이 아시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아오니, 저희들의 신앙의 자세와 정성의 자세가 당신의 마음과 일치되고 당신의 세계 섭리의 방향과 일치되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새로운 결정적 승리권을 마련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일본에서 제일 못난 무리는 통일교회 무리요, 제일의 천치의 무리는 승공연합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옳소이다. 그렇게 나라와 민족 앞에 부정받는 자리에서 더 많은 곡절이 있을 때에 당신은 더 같이해 주실 것을 알고, 이제 그들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들의 배후에서 역사적인 전통과 지금까지의 탕감노정의 원칙을 중심삼고 그들의 갈 길을 지키시옵고, 아시아로 갈 수 있는 제물의 길을 공고히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나라와 일본과 아시아의 전 나라가 하나되어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승리의 아시아권을 마련할 그때까지 저희들이 전진 또 전진할 것을 이 시간 결의하게 하여 주시옵고, 각오하고 맹세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니 당신의 자녀들이 모이는 곳곳마다 당신의 사랑이 같이하여 주시옵고, 이곳을 향해 마음 모아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빚지는 이곳이 되지 않도록 당신이 사랑과 영광의 은사로 그들에게 대신 갚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