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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새로운 장래 Ⅱ

일시: 1975.04.25 (금) 장소: 한국 전북 전주 실내체육관

― 희망의 날 대향연 전주 집회 말씀 ―

​이 저녁에 전주 시민, 그리고 그 인근 도시에 계신 여러분들이 이와 같이 만장의 성황을 이루어 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 손님들은 통일교회 문 아무개에 대하여 상당히 궁금하였을 줄 알고 있습니다. 조용한 이 전주 도시에 난데없는 외국 남녀 청년들을 데려와 소란을 피우는 그 장본인이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궁금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장본인 되는 문선명이라는 사람이 여기에 나타났습니다. 뭐 그리 잘 생기지는 못했지만 보시고,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크게 여시고 좋은 마음으로 평가해 주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박수) 이 장내 외에 바깥에도 많은 시민들이 와 계시다는 전달을 받았습니다. 그분들 앞에 직접 대면 못하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면서, 지루하시지만 같이 참석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노래와 춤으로, 혹은 영화로서 상당히 좋은 내용, 흥겨운 이런 내용을 보고 듣다가 지금 말씀을 듣게 되니 흥겹겠는지 의문이 됩니다. 그렇지만 많이 양해하시고 같이 허락하는 시간을 즐겨 주시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혼란상에 처한 인류의 제문제 해결방안은 신의 실존 확신으로부터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려고 하는 말씀의 제목은 '인류의 새로운 장래' 혹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입니다. 이러한 제목의 내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그야말로 혼란된 세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절망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새로운 그 무엇이 나타나 인류 앞에,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는 희망적인 일이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여기에 모인 여러분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희망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저녁 여러분 앞에 더더욱 바라는 것은 우리 인류 역사 과정을 잠깐 더듬어 보고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중세 이후에 불확실한 신학을 중심삼은 신본주의사조가 한 때에 세계를 휩쓸었지만, 그 신학적 사조가 퇴폐 일로를 걸음으로 말미암아 인본주의사조가 출현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본주의사상이 나와 가지고 지금까지 현세계에 영향을 미치어 오고 있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 인류 앞에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주의와 사상이 못 되고 그것을 배반하는 입장에 선 유물주의, 다시 말하면 물본주의와 같은 공산주의 사상이 나와 가지고 세계를 휩쓸고 있어 그야말로 우리 인류의 장래에 암담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확실하고도 참된 신이 계시다고 한다면, 인간들을 중심삼고 요구하던 그런 주의와 사상을 넘어서 참된 신이 바라보는 신본주의가 있었으면, 참된 신이 공인할 수 있는 빈본주의가 있었으면, 참된 신이 인정할 수 있는 그런 유물주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이 모든 것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세계이자 신으로부터 공인받을 수 있는 하나의 세계, 그런 세계는 없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변하고 불신하고 반목하는 이 인간들이 역사 과정을 통하여 할 대로 다 해본 끝에 절망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공인하면서, 만일에 여기에 신이 계신다면, 참된 신이 계신다 하면 그 신을 통해 가지고 새로이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을 생각할 길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면 모든 사상문제, 모든 종교문제, 모든 국가간의 알력문제, 주의 사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확실히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그 참된 신이 계셔 가지고 우리 인류의 장래 소망, 혹은 희망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만약에 그런 신이 계신다면 그 신을 확실히 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하는 이러한 문제, 사유(思惟)가 먼저냐 존재(存在)가 먼저냐 하는 문제, 여기에는 이런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고 혹은 이해 못할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먼저 계셨느냐, 물질이 먼저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가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면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세계의 희망이 트여진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이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어떤 자극이요, 늘쌍 기억할 수 있는 무엇을 통해 가지고 말씀을 해 봤으면 하는 것이 본인의 생각입니다.

인체를 통한 하나님의 실재 증명

잠깐 시간을 내어서 말씀을 해 보자구요. 여러분이 우리 인간의 얼굴을 보게 되는데 그 얼굴은 그의 인격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다는 것과 그 사람의 성질이 어떻다는 것까지도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얼굴은 무엇을 표시하느냐 하면 그 인격을 표시한다 이거예요.

그러면 인격을 표시하는 그 인간의 얼굴은 누구를 닮아 났느냐? 신이 계시다면 신을 닮아 났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태어날 때 무슨 동물들이라든가, 혹은 계란을 깨고 나오는 저 병아리를 보면 눈이 먼저 생기는 것을 여러분이 알 수 있어요.

도대체 이 눈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또, 이 코는 무엇을 상징하느냐? 사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입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만물을 상징 한다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지극히 작은 하나의 얼굴이지만, 이 얼굴 가운데에서 천(天), 인(人), 지(地) 이 모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됐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문제 되기 때문에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은 매일 아침 세수를 할 때에 거울을 봅니다. 볼 때는 언제나 자기 얼굴 전체를 보지만 그 중에서도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이 눈이예요, 눈. 눈이예요. 이 눈을 중심삼고 우리가 탐지하여 반문하게 될 때, '눈님, 혹은 눈아! 네가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묻게 된다면, '어디서 오긴 어디서 와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한테서 왔지' 할 것입니다. 그렇게 또 눈의 역사를 따져 '그 어머니 아버지의 눈은 어디서 왔소? 하고 묻게 된다면 그 조상의 조상의 종지 조상 인류의 맨 시초 조상까지 눈의 역사는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류의 맨 시초 조상의 눈이 태어날 때에, 눈 자체가 이 지구성이라는 데에 태어날 때 '아 저 하늘에는 태양이 있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었겠느냐, 없었겠느냐 묻게 될 때에, 어때요? 없었습니다. 눈 자체가이 천체 가운데 태양이 있다는 것은 알 리 만무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 눈이 왜 깜박깜박하느냐? 뭐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예요? 이 눈이 깜박깜박하는 것은 이 지구에는 태양에 의하여 복사열이 작용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 눈이 깜박깜박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애당초 그 눈 자체가 '아 이 지구성에 나가게 되면 수분이 증발되기 때문에 그 증발되는 수분을 막기 위해서 깜박깜박하면서 눈을 축여 줘야 되겠다'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겠느냐? 물질 되는 그 눈 자체는 생각할 수 없다는 거예요.

또, 더 나아가서 여기 살눈썹(속눈썹)이 있습니다. 이 살눈썹이 왜 있느냐? 그건 뭐 물을 것도 없다는 거예요. 두말할 것도 없이 이 공중, 공간에는 먼지가 일기 때문에 먼지가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은 작용을 하기 위해서 살눈썹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종지 조상의 눈 자체가 '내가 세상에 태어나면 이 공기 중에는 먼지가 있기 때문에 나의 눈썹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느냐 하고 묻게 될 때, 여러분 어때요? 알았다고 생각해요? 내 눈 그 자체가 그것을 알 수 있었느냐 이거예요. 이것이 천문학적인 지식의 배경을 기반으로 해 가지고, 태양계를 알았고, 공간세계를 알았고, 이 지구성이 어떻다는 모든 안팎의 지식을 완벽하게 갖춘 터전을 기반으로 하여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어디까지나 눈 자체가 그것을 알고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그 눈 자체가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지구성에는 태양이 있어 그 복사열에 의해서 수분이 증발되고, 먼지가 난다는 것을 완전히 알고 이와 같이 장치되었겠느냐' 하고 묻게될 때에 모르고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밖에 되지 못하는 거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물질이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우리 종지 조상의 눈은 그 눈이 태어나면 이 공간세계, 이 우주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확실하고도 틀림없는 안팎의 지식 기반 위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 결과적 엄연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눈썹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인간이 서서 다닐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또,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에 코가 보이는데 '도대체 왜 코가 아래로 넓어졌어, 이것이 위로 넓어지면 얼마나 좋아' 하고 생각해 보았어요? 까꾸로 왜 그렇게 아래로 넘어졌느냐? 그것은 그렇게 넓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아래가 넓어지고 여기에 고랑을 쳐놓은 것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는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서서 다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아래를 넓혀 가지고 이 고랑 길로 땀이 흘러가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그것이 그냥 그대로 되고 싶어서 되었어요? 오늘날 공산당 논법은 '그냥 그대로 되고 싶어서 되었다. 정신이 먼저가 아니고 물질이 먼저다' 하는 거예요. '정신이라는 것은 물질의 소산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요. 공산당의 그러한 관점을 여기에서 부정할 수 있는 하나의 생각을 여러분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침 저녁 거울을 통해 눈을 볼 적마다 이 눈은 앞의 기준을 완벽하게 갖춘 기반 위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이 세계에 아이 닥터(eye doctor:안과 의사)가 얼마나 많으냐 이거예요. 지금까지 수많은 학박사가 연구해도 이 눈에 대한 신비경을 다 해결할 수 없는, 이 눈은 무궁무진한 지식의 창고라는 거예요. 이 사실을 물질 자체가 알아 가지고 구비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리석은거예요. 이런 논리적인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게 될 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계셨다는 결론을 내려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상·행복·평화는 대상인 인간을 통해 가능

우리 인간들은 변하고 불신하며 반목하는 이런 인간이기 때문에 믿을수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았지만 절망 상태에 도달한 현재에 있어서,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변하며 절대무이(絶對無二)하신 그러한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우리 인류의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장래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있는 것을 알았으니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그 소망을 찾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자고로 우리 인류는 참된 진리, 불변의 진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와 자유를 추구하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혼란된 세상, 아무리 절망된 이 세계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러한 희망을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미래에라도 그러한 참된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을 떠나서 하나님은 어떠냐? 하나님께서도 참된 사랑의 세계, 참된 이상의 세계, 참된 행복과 평화와 자유의 세계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나 하나님이 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그 말들이 도대체 혼자 두고 하는 말이냐, 아니면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따져 볼 때에 그 말은 혼자 성립되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요. 혼자서 사랑이 있을 수 있어요? 혼자서 이상이 있을 수 있어요? 혼자서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이러한 말들은 상대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인간말고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하나님 자신이 혼자 사랑해서 뭘해요? 혼자 이상을 해서 뭐하며, 혼자 행복이니, 평화니 해서 뭘하느냐고요? 그것은 상대적 관계에서 필요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 인간은 절망했지만 하나님은 절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성사시키고, 참된 이상을 성사시키며, 참된 행복과 참된 평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가 있어야 되는데 그 상대가 도대체 누구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 상대가 도대체 누구냐? 오늘날 이 피조세계를 바라볼 때, 그래도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아무리 생각해 보더라도 인간 외에는 있을 수 없다 하는 것은 여러분이 타당한 결론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행복과 평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서 우리 인간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이 놀라운 결론을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속세에 살고 있는 이 미비한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이상과 평화와 행복을 완성시킬 수 있는 이 놀라운 가치를 다시 회복한다면, 거기에서 우리 인류는 공히 참된 사랑을 점유할 수 있는 것이요, 참된 이상, 참된 행복, 참된 평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결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본연의 가치, 이 놀라운 가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상이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인간과 하나님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문제를 제시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청춘시대 때에-여기에 나이 많은 분들이 많이 오셨구만요- 자기 상대를 구할 때 자기보다도 못난 상대를 구하고 싶었어요, 잘난 상대를 구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묻는다면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을 막론하고 '그거야 물어 볼 게 뭐 있어, 누구나 다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원하는것이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어떠한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 가지고 첫아들을 낳았는데, 그 어머니 아버지는 미남 미녀인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의 얼굴은 기와지붕에 열린 호박덩이처럼 제멋대로 생겼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애기를 바라 보면서 '아 당신 아들이 당신보다도 잘생겼소' 하면 그 어머니 아버지는 성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입이 귀밑까지 돌아가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는 우리 인간의 본심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여러분들이 부정하려고 해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이러한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해서 물어 보자구요. '하나님, 우리 인간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어떻소? 하나님 자신도 상대 될 수 있는 존재가 당신보다도 못나기를 바랍니까?,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하나님 자신보다 못나기를 바랍니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하겠어요? 하나님이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 상대가 나보다 못나기를 바란다. 아들딸이 나보다 못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대답하겠어요? 그렇게 대답할 수 없다는 거예요. '나는 원인적인 존재요 너희는 결과적인 존재다. 결과는 원인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므로 결과된 너는 원인된 나를 닮아 태어나서 그와 같이 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원인된 나도 너와 같지 않을수 없다'라는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인간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 이상의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보다도 높을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참석해 가지고 인간이 이와 같은 고귀한 가치를 회복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면 오늘 이 저녁에 참석한 여러분의 생애에는 빛나는 미래가 형성되리라고 믿어 마지않는 것입니다. (박수)

지금까지의 신학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신학사조였습니다. 만일에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려서 뭘할 거예요? 종을 삼으려고요? 아니예요. 아들딸을 삼는다고 말을 하면 아들딸을 삼아서 뭘할 거예요?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있는 세계 만민을 바라서 구원역사 하시는 것은 틀림없는 거라구요. 이것을 볼 때에,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한 가치의 내용을 지녔다 하는 것을 지금까지의 불확실한 신학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간 본연의 가치가 얼마나 고귀하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다시 알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속세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도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고 한다면, 그 대상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길 바래요? 그런 사람 있어요?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거라구요. 사랑하는 대상일수록 이는 영원이예요, 영원. 영원을 바라는 것입니다. 속세의 인간도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이상도 영원하기를 바라며, 행복과 평화도 영원하기를 바라는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어요? 하나님은 더더우기나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절대적으로 바란다는 거예요.

그러면 절대적이요 유일, 불변, 영원하신 하나님의 대상적인 존재로 군림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것 잠깐 있다가 꺼져라' 이럴 수 있어요? 없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영원하니 그 대상적인 존재도 영원이라구요. 하나님이 불변이니 그 대상적인 존재도 불변이예요. 하나님이 절대 유일이니 대상적인 존재도 절대 유일의 가치를 지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이 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이론적으로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 중에는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가지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의 이상, 혹은 사랑과 평화와 행복의 대상 될 수 있는 존재는 잠깐 있다가 없어질 수가 없기 때문에, 영원하신 하나님일수록 그 존재도 영원하고 불변, 유일,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영원하다는 것이 이론적인 결론이 된 것을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론적인 결론이다 이거예요. (박수)

지금까지 인생이라는 것은 잠깐 있다가 죽는, 이슬같이 나타났다가 이슬같이 사라지는 것인 줄 알았더니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저녁에 여러분이 깨닫는다면, 그야말로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희망의 길이 시작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니 나도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이 영생하니 나도 영생할 것이다'라는 이런 자주적인 신념을 이제 부터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빛나는 방향으로 전진한다고 결론을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박수)

자, 이제 여러분이 두 가지를 알았어요. '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대등할 수 있다, 야 이것 뭐 인생은 육신생활 잠깐인 줄 알았더니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이상의 대상으로서 변할 수 없는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 자체도 변할 수 없고, 영생하는 그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영생할 수있다'는 사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이 사실만은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것을 줄여서 말씀하면 '주체와 대상 관계' 이런 관계가 성립된 이러한 이상권내에 존재하고 있는 자신으로 여러분을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주창조의 원칙을 위하여 존재하는 데에 설정하신 하나님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대상 되는 인간을 떡 지어 놓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구요. 인간을 지어 놓고 보니 도대체 참된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기원을 어디에 근거를 둘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둘 것이냐? 참의 기원이 어디이냐? 진정한 참의 사랑의 기원이 어디이고, 진정한 참의 이상의 기원이 어디이며, 진정한 행복과 평화의 기원이 어디이냐 하는 것, 하나님 자신이 설정한 기원이 없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구요. 하나님의 창조가 도대체 뭐이냐? 창조는 무관심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안 그래요? 창조할 때에는 마음 먹은 대로 되라고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대로 된다면 오늘날 기독교 신자가 믿듯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뭐 말로써 다…. 한번 '꽝' 하니까 세계가 생겨난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온갖 정성을 다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자체를 완전히 투입하는 데에서부터 창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예술가가 있다면 그 예술가가 걸작품을 만드는 데 그냥 쓱쓱, 잠자다가 깨어 가지고 쓱쓱해서 돼요? 아니예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계획을 하고, 감정을 하고, 또 심사숙고해 가지고,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그려 보고, 또 그려 보고, 그려 보고 자기 속속들이 그 마음 깊은 내연과 일치될 수 있는 그 무엇을 투입해야…. 완전히 투입된 그것이 완전한 것으로 나타나야 창조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창조는 투입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투입하는 데는 뭐 70퍼센트 투입하겠어요? 그것은 안 됩니다. 완전한 것을 상대로 바라는 하나님은 완전 투입이라구요. 완전 투입이라는 거예요. 완전 투입을 하지 않으면 완전한 것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을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투입하느냐? 하나님 자신을 투입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다고 하는 것은 그저 뭐 그림 그리듯이 했다는 게 아니예요.

이런 우주의 원칙을 기원으로 하여 창조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지간에 평화스러운 가정이 형성되고, 평화스러운 사회, 평화스러운 국가, 평화스러운 세계가 미래에 전개되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여기에 참된 행복의 기원을 결정적으로 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길하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길하고 이 두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주체 되는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피조만물과 인간 전체가 대상인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대상된 너는 하나님을 위해라' 하는 입장에 서면 창조물은 현현하지 않습니다. '창조물은 나를 위해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반대로 아담 창조는 하나님 자신을 투입함과 동시에 아담 해와를 위하는 데서부터 이상적 현현의 기원이 설정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우주의 근본 원리와 참된 기원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부터,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참된 사랑이 성립될 수 있고, 위해서 존재하기 시작하는 데에서만이 이상이 성립될 수 있으며, 위해서 움직이는 데에서만이 평화나 행복이 있을 수 있지, '나를 위하라' 하는 데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 창조의 원칙적 근원을 위하여 존재하는 데에 설정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위하여 존재하는 데서만이 참된 이상·사랑·행복·희망이 있어

그러면 어떠한 부모가 참된 부모냐? 자식을 낳아 가지고서 '나를 위해라, 너는 내 아들이니까 나를 위해야지, 부모를 위해야지!' 그러는 부모가 참된 부모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가 생겨나는 것은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어머니 아버지 자신을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아들딸을 위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딸을 위해서 생겨났다는 자리에서는 부모는 그 아들딸 앞에 있어서 참된 부모가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왜? 그것은 천지 창조원칙을 그렇게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만이 이상의 요인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원칙에 일치될수 있는 위해 존재하는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그 부모는 참된 부모가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부모는 자식 앞에 있어서 언제나 사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딸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참된 사랑을 가진 어머니 아버지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상을 내게 옮겨줄 수 있는 이상적 어머니 아버지이며,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행복하고 평화스러울 수 있는 중심적 입장에 선 어머니 아버지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일상 생활에서 확실하게는 몰랐지만 그저 그럭저럭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근원을 통해서 전개하게 된다면 참된 부부는 어디에 있느냐?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라고요. 참된 부부는, 참된 아내는 어떤 아내냐? 남편을 위해서 태어났고, 남편을 위해서 살고, 남편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 자리에서만이 참된 아내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참된 남편은 어떤 자리에서 성립되느냐 하면 아내를 위해서 태어났고, 아내를 위해서 살고, 그 아내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이상적 기원을 여기에 설정했다 하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몰랐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남자분들 가운데 훌륭한 분들이 많이 참석했다고 봅니다. 도대체 남자라는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 근원을 따져볼 때, 왜 태어났느냐 할 때에, 남자 때문에 태어났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건 머리가 좀 돈 사람이라고요. '뭐 전주 지방에서 그래도 이만하면 뭇사람에게 존경받고, 뭐 남자로서 당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나이니 세상이 나 때문에 태어났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천지 창조원칙을 통해 볼 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남자가 태어나기를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고요. 여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어떤 아저씨는 기분 나쁜 모양이지만 아줌마들은 좋아서 씩 웃고 있어요. (웃음)

남자가 태어난 것은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을 몰랐습니다. 자기가 자기 때문에 태어난 줄 알기 때문에 사고예요. 자기가 태어난 것은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존재의 기원이 여기에서 발생했다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사람으로서 참된 가치, 참된 행복, 참된 사랑의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태어나게 된 동기도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나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나는 거예요.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자기 위주하고 '내가 나 때문에 태어났고, 당신은 나를 위해서 있으라'고 하기 때문에, 그런 데에서 문제가 생겨나는 거예요. 이와 같은 혼란상을 이룬 가정을 수습할 수 있는 하나의 원칙을 하나님이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위해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운 것이며, 이것은 천리이치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박수)

여러분, 남자들을 보면 미식 축구 선수처럼 어깨가 떡 벌어졌지만 여자들은 그 반대예요.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 혹은 버스 같은 것을 타고 올 때 말입니다. 남자와 남자끼리 앉으면 여기에 손이 들락날락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앉으면 딱 들어맞는다는 거예요. 이것을 보면, 상대를 위하는 원칙을 보강하기 위해서 다 창조주의 이상적인 형태를 닮아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의 공식을 알았습니다. '위하여 존재 한다' 하는 공식에서만 참된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위하여 존재하는 거기에만 참된 이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하여 존재하겠다는 거기에서 만이…. 하나님이 그런 원칙을 세웠으니 인간의 행복과 희망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위하는 데서부터 이루어진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 이 공식을 한번 적용해 보자구요.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에 있어서 애국자 중의 애국자가 누구냐 하면 보다 이 공식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공식대로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의 애국자라는 것입니다. 애국자는 태어나기를 자기를 위해난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애국자가 될수 없는 것입니다. 태어나기를 그 나라를 위해서 태어났고, 살기를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그 백성을 위해 살고, 죽는 것도 자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가는 사람일수록 애국자임에 틀림없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은 우리 대한민국의 애국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식을 좀더 범위를 넓게 적용해서 세계면 세계에 있어서 도대체 성인 중의 성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 오늘 저녁 여기에 오신 분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아닌 분이 오셨으면 섭섭히 생각할는지 모르겠지 만,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얘기만 한번 들어 보시라고요. 도대체 성인 중의 성인이 누구냐? 지금 뭐 4대성인으로 예수, 석가, 공자, 마호메트 이렇게 꼽고 있지만, 도대체 그 중에서 성인 중의 성인은 누구냐? 이것을 발견하는 데에 있어서 아까 말한 위해 존재하는 원칙을 통해서 본다면 어렵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성인 중의 성인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구요. 그 내용을 들어 보라구요. 왜 그러냐? 그는 구세주로 이 땅에 왔습니다. 오기를 자기 때문에 온 사람이 아니라구요. 만민을 위해서 왔다구요. 또, 살기를 자기를 위해 살지 않았다구요. 이스라엘 나라와 만민을 위해 살았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죽기를 자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구요. 이 세계 인류를 위해 죽었다구요. 보통사람 같으면 원수들을 저주했을 텐데도 불구하고 죽으면서도 그 원수들까지 위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위하라는 공식의 원칙을 통해서 볼 때에, 원수까지 위하려는 자리에서 복을 빌고 갔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역사상에서 보다 높고, 보다 가치적인 성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은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이 사시는 곳,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냐? 여러분 궁금할 거예요. 천국이 어떤 곳이냐 하고 묻는다면 '천국이 어디긴 어디야 천국이 천국이지' 한다면 그것은 안 통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도대체 어떤 곳이 천국이냐? 그렇게 묻게 될 때,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천리원칙,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 에서만이 이상적 여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여건을 따라서 살던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이다 이거예요. (박수)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예요. 어차피 본향을 찾아가야 할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그네가 정상적인 나그네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윤락되고 혼란되어 길을 잃어버린 자리에 떨어진 나그네라는 거예요. 이 나그네 인간들을 본향의 세계로 데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이 할 일이기 때문에, 이 속세에 사는 인간들 앞에 무엇을 가르쳐 줘야 하느냐 하면 본향으로 돌아가 가지고 살 수 있는 법도를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본향길을 가르쳐 주고, 본향에 가서 살 수 있는 법도에 통할 수 있게 훈련하는 그 모임과 단체가 뭐냐 하면 바로 종교라는 거예요. 종교,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종교는 뭘하는 곳이냐? 저 천상세계, 본향에 돌아가게 될 때에, 위해 살 수 있는 원칙에 합격될 수 있도록 지상세계에서 훈련시켜 그 기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사명인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위해서 살라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남을 위해 살라 이거예요. 희생 봉사하라고. 왜 이렇게 가르쳐 주느냐? 저세계가 그러한 동기로 구성된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 가려면 그 세계에 맞을 수 있는 인격을 조성해야지, 그러지 않고는 천륜의 행복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고차적인 수많은 종교를 통해서 희생 봉사하라고 하고, 혹은 모든 사람을 위하라고 가르쳐 준 것은 이러한 천리의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볼 때에, 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역사과정에 이와 같은 종교 형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기에 임재하시면서 섭리를 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역사적 관에서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여러분들은 그런 것을 모를 거예요.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체험을 안 했기에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서 있는 본인은 하늘의 특정한 은사를 받았기에 저 영계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입니다. 영계의 깊은 곳에 들어가 보게 되면 전영계의 구조는 '위해 존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일에 오늘 믿지 못하거든 죽어 보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그러면 여기의 문아무개가 말하던 것이 거짓말인가 사실인가 알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위해 존재하라는 창조이상의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그 기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이상권 내에 있어서 스스로 행복한 사람으로서 자처하고 살다 가는 것이 천국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위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는가

그러면 도대체 어찌하여 하나님이 '위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도대체 하나님은 왜 그 '위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이게 문제가 돼요. 그 내용을 좀 얘기해 보자구요.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묻자구요. 여러분 자신들 앞에 어떤 분이건 어떤 누구든 좋아요. 어떤 분이 여러분에게 신세를 지우는데 그야말로 백 퍼센트 생명을 다 바쳐 여러분을 위해서 신세를 지운다면, 여러분이 그 신세를 갚는 데에 있어서 한 50퍼센트는 포켓에 집어 넣고 50퍼센트만 신세를 갚고 싶어요, 아니면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어요. 그거야 뭐 물어볼 것도 없다는 거예요. 저 할머니도 '아 백 퍼센트 이상 갚아야지….' 하는데….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다는 거예요. 만일에 이와 같은 본성이 없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내가 여기 A면 A라는 사람에게 백 퍼센트 신세를 지웠다고 합시다. 그러면 A라는 사람이 진정히 나를 위해서 그 신세를 갚아 주는 데 백 십 퍼센트, 백 열로써 갚아 준다 이거예요. 그렇게 갚아준 A에 대해서, 즉 자기가 정성을 다해 가지고 신세를 끼친 그 사람이 백 퍼센트 이상 정성을 다해서 백 십 퍼센트로 갚는다면, 그 진정에 대해서 자기는 백 이십 퍼센트로 갚고 싶다는 거예요. 이렇게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면 할수록 점점점점 더 커 가는 거예요.

이러한 원칙에 있어서 무엇이 생겨나느냐 하면 여기에서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될 수 있다는 거예요. 영원이란 개념이 여기에서 설정된다는 거예요. 영원은 여기에서부터 생겨난다 이거예요. 상대를 위하는 데에서만이 영원이 있지, 자기를 위하는 데에서는 전부 다 갈라지는 거예요. 갈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영원한 개념이 이 위하는 데에서만 생기기 때문에, 지혜의 왕이신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영원일 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비로소 번창이 벌어지는 거예요, 번창이. 다시 말하면, 발전이 그 자리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은 위해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그다음에 또 한 가지는 오늘날 뭐 소위 지성인들, 대학이나 다니고 자기 나름의 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일수록 어디 가든지 지기 싫어한다 이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그 학교를 뒤흔들고 세계를 뒤흔들어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남한테 주관 받는 것은 죽어도 싫다 이거예요. 여러분도 남한테 주관 받는다는 것은 죽어도 싫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천만에요 천만에. 진정히 주관받을 수 있는 자리는 행복한 자리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나를 진정히 위하고, 나를 진정히 사랑하고, 진정히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그런 분한테 주관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남한테 주관받으면 '외롭다'고 생각하지요? 그렇지만 위하는 분, 위하는 분을 중심삼고 주관받으면 그것 이상 행복이 없다는 거예요. 또, 여러분이 주관받지 않고 주관하겠다는 것은 뭣이냐? 주관하겠다는 것은 어떤 중심존재가 되겠다는 욕망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절대 남한테 주관받지 않고 내가 주관하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중심존재가 되어 보겠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를 위하라고 한다면 절대 중심존재가 못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한 가정에 여덟 식구, 부모가 있고 여섯 형제가 있는데, 그중에서 제일 막내 되는 동생이 누구보다도 그 가정을 위하게 될때는 어떻게 되느냐? 그 어머니 아버지도 그 아들한테는 머리를 숙이는 거예요. 아무리 꼬마 동생이라도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 형님 누나들은 위해 존재하는 동생을 자연히 중심존재로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집의 중심이 누가 되어야 되느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동생이 되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러한 존재가 중심존재가 되는 것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일 해라! 좋은 일 해!' 하는 것이예요. 좋은 일이라는 것이 뭐예요? 위하는 것 아녜요? 위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 중심존재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위해 존재하는 중심으로 계시기 때문에, 위해 존재하시는 그 하나님이 중심존재로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은 존재, 하나님과 닮은 존재인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과 같이 자기의 소속 분야에 중심존재로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위해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참된 중심존재로 등장할 수 있다 이거예요.

참된 중심존재로부터 주관받는 데에는 반발이 안 생기는 거라구요. 꿈에나 생시에나, 낮이나 밤이나 언제나, 그럴 수 있는 존재를 만난다면 그분에게 주관받는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생각 안 해 봤죠? 예를 들어 여러분이 천상세계에 가게 된다면, 하나님이 위해서 존재하는 우주적 중심존재이므로 그분에게 천년 만년 주관받더라도 그것이 행복 중의 행복인 것과 마찬가지로, 위해 존재하는 그분에게 주관받는 데에서만이 자기의 행복의 터전이 설정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만이 오늘날 세계가 문제시하는 계급적인 문제, 지배자와 피지배자와의 문제, 다시 말하자면 정치 철학의 난문제 등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닮은 사람은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확실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박수)

그 다음 세째번으로 왜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여러분, 사랑이니 이상이니 이런 말들을 오늘날 이땅 위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것인 줄 알았다구요. 자기 것인 줄, 자기에게서부터 오는 줄 알았다구요. 이게 틀렸다는 거예요. 사랑은 자기로부터 오는 줄로 생각 했다구요. 천만에요, 천만에요, 천만에요! 사랑은 어디에서 오느냐?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상대에게서 온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는 거예요. 상대에게서 온다는 거라구요. 이상이 어디에서?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상도 상대를 통해서 찾아와야 된다는 거예요.

생명보다도 귀한 사랑, 사랑과 이상이 자기 상대로부터 오기 때문에 그 고귀한 것을 받으려면 겸손히 머리 숙여 위하는 자리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요인 때문에 하나님도 '위해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주 시민 여러분들이 알아 가지고 이 원칙대로 산다면 전주는 지상의 천국을 형성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박수)

여러분들은 참된 이상과 행복과 평화의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물음에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자기에게 있고 다른 어떤 미래의 세계에서 전개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니예요.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위하는 자체를 완전히 발견하는 데에서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이상과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의 행복한 세계가 접근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

자, 여러분들은 아마 '저 사람이 통일교회 창시자라지, 그래 당신이 교회를 통일해 보겠소? 그럴 거예요. 사실 종교가 이게 제일 골치덩어리라구요. 그렇죠? 요즘에도 뭐 기성교회 뭐 저희들끼리 싸움하고 또 통일교회 반대하고 얼마나 이게 골치거리예요. 안 그래요? 그리고 또 '뭐 통일교회는 왜 나와 가지고서 전주까지 와 가지고 이 야단이야 이게' 그럴거라구요. 또 지성인들, 머리가 조금 있는 사람들은 '뭐 대관절 종교를 통일해? 그게 가능하냐 이거야, 아, 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머리가 조금 돌지 않았어?'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구요. 그렇지만 여기에 서 있는 본인은 천리 원칙의 이와 같은 기원을 통하여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성교회 목사가 자기 교인을 사랑하는 이상 통일교회 문아무개를 사랑할 수 있느냐? 사랑할 수 있다 하게 될 때는 보다 위하는 데에 모든 것은 끌려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보다 위하면 보다 큰 사랑이 있는 것이요. 보다 큰 이상이 있는 것이며, 보다 큰 행복과 보다 큰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큰 사랑의 길을 찾는 인간은 보다 위할 수 있는 곳에 생명을 기여하여 하늘나라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원칙을 따라서 행한다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적이라구요. 이론적이라는 거라구요.

기성교회 교인들이 목사를 위하는 이상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성교회 목사를 사랑할 수 있느냐 할 때,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 운동을 지금까지 해 왔습니다. 30년 동안이 역사의 과정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천리의 대도의 원칙은 이렇게 이런 길을 통하여 변명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해 나와 자기의 본연의 세계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 주체 되는 하나님을 모시는 한, 이런 천리의 비법을 통하여 우주를 수습해 나가는 것을 알았기에,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묵묵히 나온 것입니다. 뒤로 물러갈 줄 알았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찾아보지 못할 줄 알았던 통일교회가 이게 어인 일이예요? 그런 원칙을 따라 나가는 통일교회가 민족이 반대 하거든 세계를 위하여 나가는 길을 개척한다면 세계가 하나되어 그 민족을 밀고 들어온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종교는 어떤 종교냐? 자기 교파를 위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교파를 희생시켜서라도 나라를 구하려고 하는 종교요, 나라를 희생시켜서라도 세계를 구하려고 하는 종교요, 세계를 희생시켜서라도 인류를 구하려고 하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오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나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박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입이 있어도 다물고, 눈이 있어도 감고, 귀가 있어도 막으면서, 내 자신이 위하여 살 수 있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그 절정의 고개에 어떻게 임하느냐 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해 나왔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 이제 이 민족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국제 정세에 몰리고 몰려 소용돌이의 와중에 휘말려 들어가려는 위험천만한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국민은 나라를 위하고, 나라는 국민을 위하는, 서로가 위할 수 있는 국민, 상하가 하나될 수 있는 국민이라면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무리 김일성이가 포악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냥 안 둔다는 거예요. 그냥 안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하는 길에서 맞으면서 빼앗아 나오는 작전을 지금까지 해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시간이 없어 그 얘기는 할 수없지만, 예를 들어 말하면, 세상에도 그렇지 않아요? 배상이라는 것이 있지요? 배상. 악한 것이 선한 것을 치게 될 때에는 침범받은 몇 배의 배상을 청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사람이 억울한 자리에서 맞아 들어 가게 되면 그것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가 희생되었으면 3배, 7배, 12배, 21배라는 배수를 하늘은 청구해 가지고 빼앗아 나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희생당하고 핍박받을수록 발전하는 것이 역사적인 실증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는 반대받지만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어떻게 발전했느냐? 그 원칙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주류 사상이 무엇이냐? 위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하여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위해 존재하는 날에는 민족이 반대하더라도 세계를 위해서 살 수 있는 것이요, 세계가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의 손에 구원받아서 살 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의 뜻은 기독교 일파의 구원이 아니라 세계구원에 있다

혼란된 이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이 그러한 뜻을 세우기를 바라며 그러한 무리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이런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앞에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 일파를 구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잘 알아요. 이걸 여러분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독교를 버리고라도 세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오늘날 기독교인은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에게 '오 주님 되는 당신은 기독교, 장로교, 감리교의 주님이 되겠소, 세계의 주님이 되겠소?' 하고 묻게 될 때에 주님은 서슴지 않고 세계의 구주가 되어야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박수) 이 물음을 한 단계 높여서 '하나님이여 당신은 만민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겠습니까, 기독교 종파 가운데에 매인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겠습니까? 한다면 '아이고 나 기독교 종파 하나님이 못 되더라도 만민의 하나님 되겠다' 하고 대답하실 거예요. 틀림없이 그렇게 대답하신다구요. (박수)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우리는 역사적인 혼란 와중에 있어서 다시 과거의 신본주의를 위주한, 인본주의를 위주한, 물본주의를 위주한 이 모든 것을 재차 비판 검토해 가지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세계상을 재검토할 수 있는 길을 누가 모색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것을 종교가 해야 됩니다. 종교 지도자가 해야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가지고 교파 싸움을 해 온 거라구요. 내 여러분에게 기억에 남을 성경말씀 한 마디를 소개해 주겠어요. 이것은 주일 학교 학생이나 유치원생들까지도 잘 아는 말씀이예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지 교회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세계구원이라는 그 표준을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구교가 그 표준을 모르고 교권주의적 교조주의 입장에 서 가지고 세계를 포괄할 수 있는 중세의 좋은 기반을 다 깨뜨려 먹었다는 거예요. 오늘날 미국을 보더라도, 민주세계를 지도하던 이 미국 교계가 미국을 안고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런 여세를 펴 가지고 투쟁했더라면 미국이 저와 같이 비참하게 안 되었을 거예요.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 뭐 어렵다고 낙심하지 마십시다. 못살아도 좋아요. 아무래도 망할 세상, 오늘날 물질문명의 최고도에 달해 가지고 세계적인 지도국가의 자리에 있던 미국 자체를 보더라도 뭐 정 둘 곳 하나도 없습니다. 나보고 누가 '문선생님 당신 미국에 가서 살겠습니까? 할 때나 미국에 가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추장을 먹고 땀을 흘리면서 이웃을 염려할 수 있는 한민족이 그리운 거예요. 이들은 그래도 미래를 향해서 허덕일 수 있고 내일의 소망을 가지려고 하지만 그들은 다 해방이예요. 포화상태에 도달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낙망하지 마십시오. 낙망하지 마십시오.

소련이 슬라브 민족을 중심한 단일민족을 위주해 가지고 세계 공산주의 제패를 꿈꾸다가 1957년을 중심삼아 가지고 분립되기 시작한 역사적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계를 위해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개인이 필요하고, 가정이 필요하고, 종족이 필요하고, 민족이 필요하고, 국가가 필요하고, 세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미국 자체가 민주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기독교 사상을 지닌 국가로서 이와 같은 사상을 받들고, 자기 일개국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 만민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겠다고 희생의 길을 나갔다면 오늘날 민주주의는 이렇게 비참하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월남 문제가 저렇게 안 되었을 거예요. 세계를 버리더라도 '우리 나라 우리 나라' 하며 자기 나라만 위주하다 보니 미국은 급변하는 정세권내에 몰려 그 와중에서 헤어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종교도 잃어버리고 전체 국민마저 잃어버릴지 모르는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 우리 민족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보다 차원 높은 마음을 가지고 위할 수 있는 범위를 민족을 넘어 세계에까지 들고 나가게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 자체의 힘은 없을는지 모르지만 그런 원칙을 주체로 하여 계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서 어느 한 때에 세계가 모실 수 있는 국민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박수)

위하는 도리의 세계적 공식노정을 가라

이제 그러면 이와 같은 위하여 살라고 하는 이 공식을 우리가 이용해 가지고 역사적 세계에까지, 이상적 천국에까지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단계적 공식형태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결론지어 보자구요.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살아야 되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그 위해서 하나된 부부는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하나된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그렇게 하나된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그 민족은 국가를 위해서, 그렇게 하나된 국가는 세계를 위해서, 그렇게 하나된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될 때, 그때사 비로소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아들딸, 천지를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위하는 도리의 세계적 공식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박수)

천국이 어디냐? 천국이 어디냐 하면 이 세계가 천국이예요. 형제 형제 끼리 하나될 수 있는 길도 여기예요. 행복한 형제라고 찬양할 수 있는 곳이 여기예요. 가정도 비로소 여기에서 하나님이 임재하는 가정이 될수 있고, 종족이면 종족도 여기에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종족이 된다는 거예요. 민족도 여기에서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고, 또 국가가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으며, 세계가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직접 주체로서 주장하는 곳이요. 주관받는 곳이니 바로 이곳이 천국이라는 거예요. 천국이 아닐 수 없다는 거예요. 망상적, 공상적, 허무한 영계의 그러한 천국이 아니라 현실적 지상에서 성립 되기 때문에,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는 것입니다. (박수)

여러분! 오늘 저녁 말씀 다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오늘 저녁 돌아가 가지고 부인이 여기에 안 왔거든 그 부인을 대해 가지고 '아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살아 봤노? 또 당신은 나를 위해서 얼마나 살아 봤노?' 하고 물어 보라구요. 또 '부모된 우리는 자식을 위해서 얼마나 살아 봤노? 자식들은 우리 부모를 위해서 얼마나 살아 봤노? 또 우리 가정은 친척을 위해서, 종족을 위해서 얼마나 살아 봤노? 하고 생각해 보라구요. 가정은 가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친척을 위하여 살고 종족은 민족을 위하고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종교만으로서 하나님의 뜻의 세계를 못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세계는 하늘나라예요. 나라, 나라. 나라를 거쳐가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면 남이야 알아주든 몰라주든 천리의 법도를 따라 이 나라를 넘어서 세계를 위해 살 수 있는 무리를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통일교회는 도대체 어떠한 단체냐? 간단하다구요. 위해서 끝까지 가보자, 위해서 끝까지 가보자는 단체라구요. 누가 알아준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아시는 거예요. 누가 6천 년 동안 하나님을 알아줬어요? 신이 죽었다고 할 때도 불평하지 않고 위하는 그런 하나님을 알고 이 원칙을 따라가면, 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 몰리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많이 체험했습니다. 억울하고 분한 그 자리, 그 누구 앞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자리에 설 때에 하늘의 보내심을 받은 난데없는 친구가 나타나서 손을 잡고 권고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 봤습니다.

지금처럼 생활을 비판해 보고 위하는 생활을 하라

이런 것을 볼 때에 거리를 넘어, 공간을 넘어서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현실적 하나님을 이 자리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이제 나가시면 지상의 천국을 거쳐 하나님의 주관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적 이상 원칙에 합격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되어 가지고는 인류의 장래에 희망의 세계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원칙을 아셔 가지고 살므로 말미암아 여기에서부터 비로소 행복하게 되는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래요, 일생을 두고 볼 때에, 80된 분들, 혹은 70된 분들의 일생을 두고 볼 때에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지옥에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이건 대번에 알 수 있다구요. 70평생을 살았는데 절반 이상을 남을 위해서 살았느냐, 나를 위해서 살았느냐? 자기를 위해서 절반 이상 산 사람은 천국에 못 갑니다. 가 보라구요. 남을 위해서 반평생, 35년 이상을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고 보다 큰 것을 위해 산 사람은 그래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차원에 비례되는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돌아가시면 이상적 기원이 진정으로 '위하는 법도'에 있다는 것을 아셔 가지고 다시 한 번 친구에 대해서, 혹은 아들딸에 대해서, 부모에 대해서, 사회면 사회, 자기가 속해 있는 직장이면 직장에 대해서 비판해 보라는 거예요. 또, 자기가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면 공무원으로서 자기가 자신을 위해 있는 사람이냐, 이 나라를 위해서 있는 사람이냐 하는 것을 비판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속임없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은 선생대로 '내가 월급을 따라가는 사람이었더냐, 학생을 위해 가르치는 교수였더냐, 선생이었더냐' 하는 것을, 그리고 학생은 그 교수나 선생을 대해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내가 공부하며, 내가 더 미래의 소망적인 포부를 갖고 하나의 큰 의미에서 위하는 하나의 인격자가 되겠다고 하며 스승을 위해 나왔느냐' 하는 것을 비판해 보라는 거예요. 각계 각층 자기가 존속하는 처지에서 비판해 보고, 자기 스스로 주위를 위하려는 가능의 가치를 자기 스스로 탐구하여 스스로 그 가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된다면, 그는 무한한 행복의 자리에 설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여러분은 지상에 살더라도 틀림없이 천상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기억해야 되겠어요. (박수)

사람은 소유욕이 강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식 원칙을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보다 큰 것을 갖기 위해서는 '내 것은 네 것이요, 네 것은 가정의 것이요, 가정의 것은 종족의 것이요, 종족의 것은 민족의 것이요, 민족의 것은 나라의 것이요, 나라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그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리에만이 행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이럴 수 있는 놀라운 가치의 세계가 어디서부터 발발하느냐 하면 위해 존재하는 데에서부터 발발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종교도 여기에서부터요. 참된 애국자도 여기에서부터요, 참된 국민도 여기서부터요, 참된 하늘나라의 백성도 여기서부터요, 참된 하나님의 나라와 종족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아시고, 이 원칙을 따라 지금까지의 과거를 비판하고 새로운 무대의 대한민국을 위하고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대한민국이 현재는 불쌍할지 모르지만 20세기, 25세기 이후에 있어서라도 이 세계가 추앙하고 이 세계가 받드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렇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무대에 설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본인의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사회에 행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