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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새로운 소망

일시: 1975.04.06 (일) 장소: 한국 경북 실내체육관

-희망의 날 대향연 대구 집회 말씀-

​오늘 이와 같이 만장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장내에 계시는 분 이외에, 밖에 계신 여러 손님들 앞에 미안한 말씀을 드립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본인의 말씀을 듣느라고 많이 수고할 줄 알고 있습니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같이 동참하는 마음으로 참석해 주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여기 나타난 이 사람이 바로 문선명이라는 사람입니다. (박수와 환호)

그간 내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상당히 궁금하신 분들이 많았을 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이 사람이 그렇게 잘나지는 못했지만 오늘 여러분들이 바로 잘 보시고 잘 평가해 주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박수) 목이 쉬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같이 생각하면서 '인류의 새로운 소망'이라는‘인류의 새로운 장래'라는 이러한 내용의 말씀을 하려 합니다.

인류의 새로운 장래가 형성될 수 있는 요건

새로운 장래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인간들이 추구하고 인간들이 바라던 그러한 무엇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장래를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새로운 사람은 오늘날 한계선을 넘지 못하는 변화무쌍한 우리 인간만을 위주해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영원불변하신 어떠한 분이 계셔 가지고 그 분을 통하여서만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분이 누구냐 하면 이를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입장에 있어서 하나님을 알고, 새로운 하나님을 앎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람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장래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자고로 인류는 지금까지 영원하고 변치 않는 참된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를 추구해 오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여러분들도 다 알다시피 반목 질시하고 변화무쌍한 현세에 있어서는 이와 같이 우리 인류가 추구해 오는 이상적인 사랑, 행복, 평화의 요건을 찾을 수 있는 가망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고, 벽에 부딪혀 가지고 스스로 질식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갖은 노력을 다 해봤지만, 인간이 참으로 요구하는 참된 사랑이니, 참된 이상이니, 참된 행복이니, 참된 평화니 하는 것들을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요건들을 성사할 수 있는 가망성마저 상실해 버린 비참한 실상에 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기는, 이 변하는 인간상을 넘어 영원하고도 불변하고도 절대적인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분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류가 바라는 참된 희망의 중심이요. 참된 행복의 중심이요, 참된 평화의 중심이요, 참된 사랑의 중심이요, 참된 이상의 중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왕이요, 이상과 행복과 평화의 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같은 소망의 기준, 같은 희망의 자리, 같이 동고동락할 수 있는 이런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참된 사랑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며 참된 이상과 참된 행복과 참된 평화가 어디서 시작하느냐 하는 근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인류가 바라는 이러한 이상적 요건을 성사시킬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상·행복·평화는 대상인 인간을 통해 가능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혼자서 사랑을 성사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혼자서 이상을 성사할 수 있느냐? 하나님 혼자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랑이라는 것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말은 홀로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을 성사하는 데도 상대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키는 데도 상대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평화를 성사시키는 데도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홀로 있어 가지고 사랑해서 뭘하며, 이상해서는 뭘하며, 행복해서는 뭘하며, 평화스러워서는 뭘하겠느냐? 이건 반드시 상대를 세워 가지고서 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이 우주 안에 과연 하나님의 상대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이겠느냐고 물어 보게 된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인간 외에는 하나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이 우주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간 자체는 나 자신이라는 것이 비천한 것인 줄 알았지만 우리 개개인 자체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사실, 내 자체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이상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사실,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평화를 완성시키는 데에 있어서 우리 인간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확실한 사실을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습니다.

부족한 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완결시키고 이상을 완결시키고 하나님의 행복과 평화를 완결시킬 수 있는, 보다 고차원적인 가치의 존재인 것을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여기에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는데, 여러분들이 청춘시대에 자기 상대를 구하게 될 때에 자기 자신보다도 못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느냐, 잘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느냐 하는 거예요.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공통적인 대답을 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대답은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자기보다 더 잘난 상대를 취하고 싶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는 여기에 사랑하는 부모되시는 분이 많이 왔을 줄 알고 있습니다. 부모되시는 분들이 자기 사랑하는 아들딸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그런 부모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미남 미녀가 서로 결혼해 가지고 애기를 낳았는데, 그 애기가 어머니와 아버지에 비교하면 제멋대로 생겼을지라도, 그 아기에 대해서 '당신의 아들 혹은 딸은 당신보다도 훌륭하게 잘났다'고 칭찬해 주면 그 어머니 아버지의 입은 귀밑까지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자기 사랑하는 자녀가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란다는 사실은, 이것은 부모이기 때문에, 천륜을 이어받은 부모의 심정으로서는 자연적인 욕구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 불변· 절대·유일의 대상을 바라는 하나님과 인간

이와 같은 사실을 바라볼 때, 그러면 오늘날 인간은 누구를 닮았느냐?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결과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인간은 태어났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인 존재인데, 그 결과적인 존재라는 것은 원인과 상반되는 자리에서는 맺어질 수 없습니다. 원인과 상통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가장 이론적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인간은 누구를 닮아서 대상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원하고, 사랑하는 아들딸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느냐? 원인 되는 하나님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 원인을 닮아 태어난 결과적 존재인 인간도 그와 같이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논법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묻기를 '하나님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당신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대상의 존재가 하나님보다도 잘나기를 바랍니까?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 같아요? '나는 하나님이니까 나보다 못나기를 바란다' 하는 하나님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인류의 혹은 인간의 부모의 자리에 있다 할진대는,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 당신의 아들딸이 당신보다 못나기를 바랍니까' 할 때 '나보다 못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나님이 대답할 수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 역시 그 대상이 자기보다 잘나기를 바라고, 하나님 역시 아들딸이 자기보다도 잘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 대답은 마치 우리 인간들이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것이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이거예요. (박수)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자기 인생 하나를 생각하게 될 때 형편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알아 왔어요. 가치 없는 존재로 알아 왔다 이거예요. 그런데 따지고 알아보니 우리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도 대상의 자리에 세우고자 할 때에는 자기보다도 더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고, 아들딸의 자리에 세우고자 할 때에는 자기보다도 더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인간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인류는 이 차원 높은 의젓한 본연의 인간 권위를 찾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못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잘나나 못나나 하나님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는 동등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본연의 인간 가치를 회복해야 할 것이 우리 인간의 필연적인 사명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내가 말한 것을 다 잊어버리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와 같이 고귀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현대의 신학에 있어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은 동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결론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랑해서는 뭘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이상을 가져서는 뭘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행복해서는 뭘 하느냐, 인간을 빼놓고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없는 거야. 그 하나님의 이상이 필요 없는 거예요. 그 하나님의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이 필요 없어요. 인간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시고,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시고, 불변이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대상의 자리에 선 우리 인간이 상대적이긴 하나, 대상적이긴 하나, 대상적인 자리에서 변하는 것을 원하느냐? 원치 않는 것입니다. 유일적이요. 불변적이요, 절대적인 대상의 가치를 지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타락한 인간, 속세에 속한 우리 인간세계에 있어서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홀로 단 하나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는 사람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이거예요. 우리 타락한 인간도 사랑하는 대상의 영원, 불변, 절대, 유일을 요구하는데, 우주의 중심 되시는 하나님이 그의 사랑의 대상이 변하기를 바라겠느냐는 거예요.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그 대상의 존재가 한계적이길 바라겠느냐는 거예요. 절대적이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의 존재가 불변이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라는 이런 입장을 확실히 안다면, 영생이라는 말은 지극히 이론적인 결론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사랑·이상·행복·평화의 기원과 타락의 기원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 가운데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주체로 모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선 인간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그분의 사랑의 대상, 그분의 이상의 대상, 그분의 평화, 행복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인간은 영생한다는 사실은 가장 이론적인 결론인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오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칠 팔 십년 살다가, 그럭저럭 살다가 가는 인간으로 끝나는 걸로 알았다면. 그것은 잘못 안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분의 영원한 대상의 자리에 서고 자녀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영생해야 된다는 거예요. 영생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주체로 하고 우리 인간을 대상으로 한 주체와 대상 관계를 알았습니다. 이제 한걸음 더 들어가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이 여기에서 생각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어디에다가 참된 사랑이니 참된 이상이니 참된 행복이니 참된 평화니 하는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참된 사랑의 기원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참된 이상, 참된 행복, 참된 평화의 기원을 확실히 깨닫지 않고는, 새로이 깨닫지 않고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 이상, 행복, 평화를 우리가 동참하여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자리에 이 모든 것의 기원을 두느냐 하는 것을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이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체를 중심삼고 볼 때에,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것과, 대상을 주체가 위하는 두 방향의 길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일에, 주체를 중심삼고 대상이 주체를 위하라 하는 이런 천리의 원칙을 세웠다면, 주체의 자리에 서는 사람 누구나 그런 입장에 선다면 이 세계는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분열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은 이 행복의 기원을 어떠한 길에 두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에, 주체 되시는 하나님 자신도 대상을 위하여서 존재할 수 있는 길에다가 참된 사랑, 참된 행복, 참된 이상, 참된 평화의 기원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칙은 위해서 존재하는 것

인간의 타락이 무엇이냐? 인간의 타락은 자기를 중심삼고 자기를 위하라고 한 것이, 자체의 자각을 한 것이 타락의 기원인 것입니다. 에덴에 있어서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위해 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담 해와는 자체를 중심삼고 모든 것으로 하여금 위하게 하려는 자리에 선 것이 타락의 기원이다 이거예요. 여기에서 인류와 역사는 뒤집어진 것입니다.

자기 위주하고 나아가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볼 때에 교만한 사람입니다. 국가의 위정자를 두고 볼 때에, 자체를 중심삼고 그 국가 전체가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자리, 전세계가 자기를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서는 자는, 그것을 주장하는 자는 독재자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은 하나의 공식을 세우기를 '위해서 존재하라'는 것을 천지창조 당시에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됩니다. (박수)

여기에 남자 되시는 분이 많이 오셨는데, 도대체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이거예요. 남자가 왜 태어났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남자는 남자, 나 자신을 위해 태어났지. 내가 대구면 대구에서 이만한 당당한 권위를 가지고 누구도 부럽지 않은 이런 나니까, 내 자신을 위해서 태어났고 나를 위해 산다구'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근본을 따져 보게 될 때에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남자가 태어나게 된 동기는 남자 때문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자라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여자를 표방해 가지고 남자가 태어난 거예요. 전 남자는 본래 여자를 위해 태어났다 이거예요. 여자도 여자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구요.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 이거예요. 서로 위할 수 있는 입장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여러분이 오늘 이 집회에 오기 위해 버스 같은 걸 타고 왔을는지 모르겠어요. 남자는 어깨가 넓고 여자는 아래가 넓으니 버스 같은 좌석에도 둘이 앉으면 딱 들어맞게 되는 거예요. 이것은 상대적으로 위할 수 있는 입장을 보충 보강하게 돼 있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잘난 남자라도 그 남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예요. 여자를 위해 태어났어요. 아무리 잘난 미녀도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 본래 존재의 기원이 위해서 태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상세계를 창조한 하나의 공식 원칙을 여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이 출발할 수 있는 것이요,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하나님의 이상적 상대가 현현하는 것이요,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요.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는 것을 오늘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참된 부모는 어떤 사람이 참된 부모냐? 도대체 참된 부모가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참된 부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기를 자식을 위해서 났고, 살기를 자식을 위해서 살고, 죽기를 자식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전체를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자리에선 그러한 부모라면 이 부모는 참된 사랑의 부모요, 참된 이상의 부모요, 참된 행복의 부모요, 참된 평화의 부모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변할 수 없는 영원한 불변의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가 설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된 부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참된 사랑과 이상을 지닌 부부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느냐? 마찬가지의 결론인 것입니다. 남편되는 분은 아내를 위하여 태어났고, 아내를 위하여 살고, 아내를 위해 죽는다 이거예요. 아내되는 사람은 남편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거예요. 살기를 남편을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죽기를 남편을 위해서 죽는다 이거예요.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부부가 나타나게 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평화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이상의 대상 실체가 될 수 있는 참되고 영원한 이상적 부부요, 사랑의 부부요, 평화의 배필이요, 행복의 그들이 되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애국자·성인·하나님·천국은 모두 위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과연 지혜의 왕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천리원칙, 창조의 비결을 세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위하여서 존재하는 데에서만이 참된 사랑이 발발하는 것이요. 참된 이상, 참된 행복, 참된 평화가 성립된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공식을 적용하여서 우리가 한번 알아봅시다.

그러면 참된 애국자는 어떠한 사람이 참된 애국자냐? 마찬가지라구요. 나기를 나라를 위해서 났다, 태어나기를 나라를 위해 태어났다 이거예요. 살기를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구요.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죽기를 나라를 위해서 죽는다 이거예요. 이럴 수 있는 분이면 애국자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을 우리가 골라서 추대한다면 이는 이순신 장군같은 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더 범위를 넓혀서 이 인류 역사 가운데에서 성인 중의 참된 성인이 누구일 것이냐 하는 것도 이 공식을 적용하여 우리는 곧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공식을 통해 보게 될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인 중의 성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혹시나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이 왔을는지 모르지만 왜 그러냐 하는 것을 얘기하겠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는 운명 직전에 로마 병정 일파,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무리가 원수인데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 같으면 이들을 저주하고 조롱을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끝까지 생명을 빼앗는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었다는 사실과 태어나기를 인류를 위해 태어났고, 살기를 인류를 위해 살았고, 죽으면서까지 원수 되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복을 빌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역사상에 이와 같은 분이 없었고, 위하는 데 있어서 대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성인 중의 성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은 타당한 결론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공식을 통하여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위해서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육천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수고해 왔지만 그 분을 대해서 수많은 인류는 갖은 학대, 갖은 핍박을 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길이길이 참으면서 인류를 위해 나오셨다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중심존재이신데,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는 저 천국, 하나님이 계시는 저 영계는 어떠한 조직으로 돼 있느냐? 그 조직 구조는 간단하다는 거예요.

천국에 갈 수 있고 극락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살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못 가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태어나서 전체를 위해서 살던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영계를 체험한 경험이 없을는지 모르지만 본인은 하늘의 은사로 말미암아 숱한 영적 세계를 체험하였습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게되면, 자기를 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살던 사람들이 전부 다 저 세계에 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이상적 원칙, 이상적 기원을 세웠기 때문에, 그 기원되는 본향의 땅은 그 법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세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를 찾아오고자 하는 수많은 인류에 대해서 그와 같은 본향의 법을 이 지상에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총괄적으로 결론 짓는다면 '위해서 존재하라'는 것

지상에 그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훈련시키기 위한 무대가 어디냐 하면, 이것이 왈(曰)종교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이냐 하면, 본향에 돌아가게 될 때에 그 고향 법을 살아 생전 지상에서 훈련받아 가지고 그 법도에 적응할 수 있는 인격을 훈련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종교생활의 도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스스로를 강조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온유 겸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희생 봉사를 강조하는 거예요.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본향 땅의 법칙이 그렇기 때문이예요. 인간은 어차피 본향 땅을 찾아가는 나그네와 같은 신세이므로 본향에 가서 살 그 법도에 알맞게 훈련시키려니,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희생하라는 이런 교훈을 가르쳐 온 것입니다. 역사적인 종교가 이와 같은 사명을 연이어 온 사실을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은 역사과정에서 종교를 통하여 섭리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박수)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종교인이나 비종교인을 막론하고 본향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느냐, 혹은 천국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의 일생을 두고 남을 위해서 산 생활이 많으냐, 자기를 위해 산 생활이 많으냐 하는 이 평가기준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에 따라 선한 곳에도 가고, 나쁜 곳에도 가는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잘 알아요. 물어 볼 것도 없다구요. 여러분이 잘 안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도 지금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았지만 이와 같은 천리 원칙을 알아 가지고, 이제부터라도 대한민국과 인류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생애에 자기를 위하는 것보다도 남을 위해 사는 기준이 많게 된다면 여러분은 기필코 선한 영계에 갈 수 있는 것은 필연적인 결론인 것을 알아주시기를 바라 마지않는 것입니다. (박수)

수많은 종교에 있어서 경서(經書)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위하여 존재하라'는 이 두 마디에 다 결론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전부 다 총괄적으로 결론짓는다면 '위해서 존재하라'는 이 말에 다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사상을 가지고 말한 거예요. 왜 그랬느냐?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원칙, 이상적 기준을 위해 존재하는 데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연의 세계의 법도에 순응하여야 할, 천리를 대표한 하늘의 아들은 반드시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위하러 왔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단 한마디 결론은 '위하여 존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천국이 현현될 수 있고, 하나님이 현현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사랑이 현현하고, 하나님의 평화와 행복과 이상이 현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서를 통해서 완연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에 다녔다 하더라도, 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천국 못 간다 이거예요. (박수) 절대 못 간다는 것입니다. 친구지간의 참된 친구도 친구를 위할 줄 아는 친구가 참된 친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은 위하여 존재해야겠습니다. 거기서만이 천리의 중심되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그 터전을 통하여 운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상이 그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구요. 하나님의 아들딸도 그 자리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외의 자리에서는 성립이 안 된다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게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전부 다 '내 마음에 들어야 돼' 하고 전부가 내 마음에 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남편도 내 마음에 들어야 되고, 시집도 내 마음에 들어야 되고, 학교도 내 마음에 들어야 되고, 그 사회도 내 마음에 들어야 된다 하는 이러한 사고 방식을 가져왔다 이거예요. 요걸 뒤집어 박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걸 뒤집어 박지 않고는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들을 이 땅 위에 현현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는 가정도 이 땅 위에서 찾을 수 없고, 하나님이 원하는 종족, 하나님이 원하는 민족, 하나님이 원하는 국가, 인류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위해 존재해야 된다는 이 원칙을 이해했으리라고 보겠습니다.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운 이유

그럼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그러면 왜 하나님이 위해서 있으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되었겠는가? 이게 문제라구요. 왜 위해야 되느냐? 이걸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한다구요. '아이구, 내가 얼마나 못나서 남을 위해 살아야 돼' 한다구요. 제일 기분 나쁜 말이지요.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 되는 것이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하는 거예요. 이 근본을 헤쳐 버려야 되겠어요.

그래서 몇 가지 요건을 들어 말씀드리겠어요. 나 한 가지 묻자요. 진정 이 생명을 다해 가지고 여러분 앞에 백 퍼센트 신세를 지운 분이 있어요? 이 신세를 갚고 싶은데, 본심이, 악심 말고, 사심 말고, 본심이 진정 위해서 신세를 입힌 그 사람에게 신세를 갚는 데에 있어서 한 50퍼센트는 포켓에다 집어넣고 한 50퍼센트 갚고 싶소,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소? 한번 대답해 봐요. 백 퍼센트, 그건 누구나 그렇게 대답을 한다 이거예요.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소' 그러는 거예요. 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이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구원이니 뭣이니 불가능하다는 거라구요. 진정 위하는 사람 앞에는 손해 끼치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진정으로 위하는 자는 전부가 구원받을 수 있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인류를 진정 위하기 때문에, 그 위함받게 된 인류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그렇게 백 퍼센트 위하는 것을 아는 날에는 하나님 앞에 빚진 것을 다해서 갚는다 이거예요. 그렇게 될 때에는 인류는 전부 다 구원받을 수 있어요. 이런 결론이 성립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여기 내가 B라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백 퍼센트 혜택을 입혔는데,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 백 퍼센트 혜택을 받았다면 이 혜택을 갚는 데 있어서 110퍼센트 정성을 다해서 갚아 준다는 거예요. A가 B에 해준 것이 백 퍼센트인데, 돌아오는 것은 110퍼센트로 불어난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그 110퍼센트를 진정 갚아주는 걸 볼 때에 A는 120퍼센트를 주고 싶다 이거예요. 그런 마음이 되어 120퍼센트 갚아 주는 거예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주고받으면 받을수록 점점점점 더 가해지기 때문에, 영원한 운동법칙이 된다 이거예요. 여기서 영원이란 개념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영원의 개념이 여기서 설정된다는 거예요. 안 그래요? 운동을 할 때 같은 힘 가지고 하면 점점 작아지지만 힘을 가해 주기 때문에 영원히 운동이 계속된다 이거예요. 영원한 운동이 형성될 뿐만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새로운 발전이 벌어집니다. 즉, 번창이 벌어진다 이거예요. 거기서부터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 원칙이 있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위해 존재하는 데서만이 영생이 있는 것이요, 영생이 있는 곳에서만이 번창이 있기 때문에, 지혜의 왕 되는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라는 그런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어요. (박수)

그다음 둘째 번은, 여러분의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여덟 식구 중에 제일 나이 어린 동생이 있어요. 나이 어린 동생이 누구보다도 그 가족을 위하고, 어머니 아버지를 위하는 데 있어서, 또 형제를 위하는 데 있어서 일체를, 태어난 것도 부모와 그 가정을 위해서요, 사는 것도 가정을 위해서요, 목숨까지도 그 가정을 위해서 바치려고 한다면 그 어린 동생이 그런 생활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어떤 존재가 되느냐, 이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한 동생은 반드시 그 집안의 중심 존재로 등장한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걸 오늘날 우리가 몰랐다는 거라구요.

더우기 여기에 참석한 청년들은 '남을 위하는 것은 피곤한 거야'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중심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거예요.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책임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위하는 사람, 그 사람이 중심존재가 되는 거예요. 존재하는 사람은 반드시 중심존재로 택함을 입는다 하는 원칙이 여기에 확립된다는 거예요. (박수)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은 우주를 위해서 계시는 거예요. 위해 계시기 때문에 이는 영원한 중심존재가 아니냐. 영원히 위하여 있기 때문에 영원히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자기를 닮은 이런 사람은 중심존재로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중심존재가 되는 것은, 이것은 정한 법이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우기 여기에 참석한 젊은 청년 남녀들이 학교면 학교 전체를 위하게 되면, 그 학교의 모범생이 되는 거예요. 중심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가능하냐 이거예요. 오늘날 지금까지 세계에 있어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이게 문제다 이거예요. 지배하는 사람하고 지배받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까지 정치면에 있어서 이것이 난문제로 등장해 왔어요.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이게 문제라구요.

진정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중심존재가 등장하거들랑 그 중심존재 앞에 주관받는 것 이상이 없다는 거라구요. 오늘날 여러분들은 남한테 주관받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위하는 사람한테 주관받으면 수치지만, 진정히 남을 위하는 사람에게 주관받으면 그 이상 행복이 없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영계에 가면 영원하신 중심존재로서 만유의 존재를 위해 계시는 하나님 앞에 주관받는 것 이상의 행복이 없다는 거예요. 한번 주관받으면 천년 만년 주관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참다운 자기를 위하는 자 앞에 주관을 받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세째는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지금까지 사랑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을 전부 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구요. 자기 것으로 생각했다 이거예요. 누구나 쉽사리 사랑은 내 사랑이고, 행복도 내 행복이고, 이상이 있으면 이상도 내 이상이라 생각했다구요. 아니예요. 사랑이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이 자기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사랑은 어디서부터 오느냐?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대상이 없이는 사랑도 없는 것이예요. 대상이 없이는 이상도 없는 것이예요. 대상이 없이는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이것은 반드시 대상을 통하여서 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사랑과 이상이 대상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생명보다 귀한 것이 대상을 통해 오기 때문에, 그 귀한 것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히 그를 위해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머리 숙여서 위하라는 법도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박수)

위하는 데 있어서 영원이 있고, 위하는 데 있어서 번창이 있고, 위하는데 있어서 중심이 나타나고, 위하는 데 있어서 평화와 통일의 기원이 벌어지고, 위하는 데 있어서 참된 사랑과 이상이 형성되는 것을 아시는 지혜의 왕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위해 존재하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뭘하는 단체냐

자, 그러면 여러분들, 도대체 통일교회가 뭐냐. 이게 문제라구요. 통일교회는 뭘하는 단체냐 이게 궁금할 거예요. 오늘날 기성교회서 30년 가까이 '문 아무개 뭐 어떻고' 하면서 다 반대하는 데도 통일교회는 죽었다하고 가만히 있는 거라구요. (박수)

이게,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기성교회는 형님이예요. 유대교회는 맨 맏형님이고 기독교회는 둘째 형님이고 통일교회는 세째라 이거예요. 이렇게 생각하는 거라구요. 자 이놈의 형님들이 옛날 요셉을 죽이려 하던 것과 딱 마찬가지라구요. 괜히 밉다고 그래요. 밥을 달라나 아, 형님들 자리를 달라나 뭐라나….

그렇지만 입이 없어 말 안 하는 것이 아니고, 주먹이 없어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구요. 천리의 법도를 보게 될 때에,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을 알았기 때문이예요. (박수) 그래서 통일교회는 이 도리를 따라갔다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반대하더라도 '모르니까' 하면서…. 하나님도 몰라서 반대하는 것은 용서해 나왔으니 통일교회를 알지 못해서 반대하는 것을 저주할 수 없잖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여러분이 보게 되면, 서구의 젊은이들, 혹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몰래 접근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은 일본 사람이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 나쁘지요? 나 역시 그렇다구요. 나도 배달 민족의 피를 받고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애국 반열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박수)

그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한국 사람이 뭐 그렇게 잘나서 한국 사람의 궁둥이를 따라다니겠어요. 서구 사람들이 뭐가 아쉬워서 지지리 못살고 지지리 못생긴 이 한국 사람 따라가겠어요?

그러나 오늘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것이 오늘의 혼란과 반목질시된 이 세상 위에 인류가 모색하여야 할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천리원칙과 통하고 인륜 도덕과 통하고 사회 역사와 통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안 가면 미래에라도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기 때문에 따라나선 거예요. (박수)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무엇을 교육하느냐 이거예요. 창조의 비법이 여기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이상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싶거들랑, 하나님이 사랑을 갖고 싶거든, 하나님의 평화와 행복에 가담하고 싶거들랑,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딴 것 없다구요. 문선생이 뭐 잘나서, 무슨 수단이 좋고 능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같이할 수 있고 하나님이 그 길을 따라오지 않을 수 없는 그 사상을 따라가기 때문에, 개인도 그런 사상. 가정도 그런 사상을….

개인이 그러하게 될 때, 그를 쳐서 망치려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주위에서 일어나 그 사람의 편이 돼 줘요. 만일 대한민국에 좀더 통일교회가 들어가고 통일교회가 사방으로 알려져서 이와 같은 이상적 원칙을 향해 따라간다는 것이 알려지면 기성교회가 반대할 때 통일교회가 가만히 있게 되면, 기성교회 반대하는 것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서 싸울 날이 불원한 장래에 올 것입니다. 온다는 거예요. (박수. 환호)

하늘은 먼저 맞고 배상을 받아 점령해 나온다

여기 본인이 한 가지 천륜의 비법을 알아냈는데 그건 무엇이냐? 하늘은 때리고 빼앗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맞고 배상을 받아 점령해 나온다 이거예요. 이게 하늘의 법도라구요. 그게 위하는 거예요. 자기보다도 위하는 사람을 침범하게 될 때는 손해배상을 물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단체보다도 더 위하는데, 이런 교회를 친다면 지금까지 쌓았던 복을 다 빼앗기고 껍데기만 차고 나가게 된다구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학교에서도 그렇잖아요. 착하고 전체를 위해서 노력하는 학생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동창생들이 반대하고 선생님이 '이놈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천리의 비결, 공식을 알고 난 후에는 의심할 것이 없다 이거예요. 내가 통일교회를 창설한 사람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 얼굴도 그렇게 잘생기지 못했어요. 나는 한국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제창하는 이 사상은 천륜이 지지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에, 이것이 문제 되는 거라구요. 땅구덩이에 혹은 시궁창에 처박아 놓더라도 시궁창에서도 뻗어간다구요. (박수)

그렇게 반대받으면서 언제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세계적 기반을 닦았느냐? 내가 뭐 은행 갱(gang)을 했겠어요? 그런 소질은 없다구요. 누구 사기쳤겠어요? 그런 소질 없다구요. 유부녀 유인하는 그런 소질도 없다구요. 단 한 가지, 위해서 살자고 해 가지고…. 오늘날 이 사막과 같은 땅 위에 그 어느 한 사람이라도 하늘의 뜻이 이런 것을 알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알기로는 말이예요. (박수)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 가운데에는, 우리 통일교회 국제기동대원들이 와 가지고 악착같이 활동하는 것을 본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한번 거절해도 또 오고 또 온다구요. 욕을 해도 슬슬 못 들은 체하고 얼굴을 이렇게 하면서 히죽히죽하며 또 온다는 거예요. 그게 왜 그러냐? 감정이 없어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성을 낼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구요. 천리의 원칙을 세워야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성사하려면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박수. 환호) 맨 처음에는 의심으로 대했구, 비판, 비소로 대해 봤지만 지내고 보니, 그 사람들이 참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자기보다 나은 줄 알기 때문에, 자연히 스스로 비판해 따라가는 거예요.

통일의 방법

생각해 보라구요. 로마 가톨릭하고 희랍정교하고 9백 50년간이나 싸웠어요. 이래 가지고 지금 혼란와중에서 하나되자고 하지만 하나되기는 불가능한 거라구요. 또 신교가 여러 종파로 갈려 가지고 4백 여 파가 떡 돼 가지고 서로 잘났다고 하는데, 서로 잘났다고 하니 이게 하나될 길은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통일할 것이냐? 간단하다구요. 통일 방법은 간단하다구요. 기성교회 목사가 교인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통일교회 문선생이 교인을 더 사랑하면, 하나 만들 수 있다 이거예요. (박수. 환호) 문제는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 기성교회 교인이 목사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우리 통일교회 교인이 그 목사를 더 사랑하면 하나 만들 수 있다구요. (박수. 환호) 이게 예수께서 남겨 준 참된 교훈의 도리가 아니었더냐 이거예요.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자기의 뜻이 있을 수 없다구요. 백 퍼센트 위하여 존재하는 그 외에는 천륜을 세울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골수더라 이거예요. 알고 보니, 영계에 가서 전부 다 시험해 보니, 그것밖에 없더라 이거예요.

한국에 있어서 핍박받는 문 아무개의 주의(主義)에 어찌하여 단시일 내에 미국이 말려들어가느냐 이거예요. 어찌하여 말려들어가느냐? 딴 것없어요. 내가 미국 국민을 대해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 백성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미국 백성이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려면 내가 한국 백성을 사랑하는 이상 미국 국민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있다 하게 될 때는 그 민족을 움직여 가지고 규합시킬 수 있어요.

다시 말하면 그 나라가 위하는 이상, 그 교회가 위하는 이상, 그 가정이 위하는 이상, 내가할 수 있느냐 할 때, 있다 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 이거예요. 딴 것 없습니다.

위하는 진정한 의의를 들고 대의와 부딪치게 될 때에, 이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된다 이거예요. 그러한 단체를 마련하게 되면 하나되더라 이거예요. 움직이더라는 것입니다. 한번 이와 같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떨어지지 않고 자꾸 불어 나가는 거예요. 반사작용으로 불어나가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동양 사람 한 사람으로서 미국에 선풍적인 문제를 제시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하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뜻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가피하게 그런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박수. 환호)

하나님의 나라로 찾아가는 단계적 법도

그러면 참다운 인간, 하나님이 찾는 참다운 개인은 누구냐? 백 퍼센트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구요.

하나님이 참다이 만나고 싶은 그 가정이 어떤 가정이냐? 서로 서로 위해서 사는 가정, 그 가정에는 하나님이 찾아오겠다는 거라구요. 그런가 안 그런가 보라구요. 한국의 격언에도 '가화만사성 (家和萬事成)' 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틀림없이 그렇다는 거예요. (박수)

하나님이 찾는 종족은 어떠한 종족이냐? 서로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위해서 하나될 수 있는 종족입니다. 그런 종족을 만들자는 거예요.

하나님이 만나고 싶어하는 나라, 그게 어떤 나라냐? 위해서, 자기 나라를 위하는 게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살겠다는 나라라구요.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살겠다는 그 나라, 그 나라를 찾는 거라구요. 그 나라가 다름 아닌 이상적인 나라입니다. 이 세계가 국경을 넘고 종족을 넘고 민족을 넘어 가지고 서로 위할 수 있는 세계가 되면, 인류가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면, 그 세계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거예요. 그것이 곧 이상세계라는 거예요, 이상세계. (박수)

여러분. 팔복 말씀(산상수훈) 가운데, '화목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화목하게 하려면 위해야지요. 여기도 위하고 저기도 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권(圈)에 들어온 거라구요.

오늘날 기독교가 '어 천국은 내 곁에로…' 하는데 전부 다 하나님 다 됐다구요. 하나님보다 높다구요. 그러한 기독교는 이러한 천리의 공식에서 볼 때, 망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걸 알아야 돼요. 암만 안 망하겠다 해도 망하게 되는 거라구요. 이걸 방지해야 된다는 거예요. (박수)

이 공식을 통하여서 인간이 이상세계, 하나님의 나라로 찾아가는 하나의 단계적 법도를, 법칙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결론 지을 수 있어요.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뭐냐 하면, 한 남자가 있게 되면 그가 아내를 위해 사는 것 그건 이상적인 남편이예요.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살게 될 때 이상적 아내예요. 그 부부는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구요. 가정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서 부부가 생겨났고, 가정을 위해서 살고, 가정을 위해서 죽게 될 때에, 그 부부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부부가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가정은 자기 가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 가정은 친척, 이웃 동네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 친척은 친척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구요. 민족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 민족은 그 민족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박수)

세계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박수) 하나님을 위해 있는 세계가 돼야, 그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가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 세계의 아들딸은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다는 거라구요. 자기를 위하고 자기 가정만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닌 거라구요.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어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딸 된 그 자리에 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것이 되며 하나님은 나를 위해 계신다는 거예요. (박수)

이러한 공식적 노정을 우리는 결론지었어요. 나는 상대를 위하여, 부부는 가정을 위하여, 가정은 종족을 위하여, 종족은 민족을 위하여, 민족은 국가를 위하여, 국가는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게 이상이라구요. (박수. 환호)

공산주의와 하나님주의의 차이점

여러분, 오늘날 공산당 식은 말이예요.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도 내것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이런 주의는 망한다는 거라구요. 여기에 반대로 하나님의 주의는 뭐냐 하면, 내 것은 네 것이요, 내 것은 가정의 것이요, 가정의 것은 종족의 것이요, 종족의 것은 민족의 것이요, 민족의 것은 국가의 것이요, 국가의 것은 세계의 것이요,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내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주의라구요. 여기에는 인간이 바라는 유토피아(utopia)도, 모든 희망도 행복과 사랑과 이상의 현현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런 세계를 오늘날 우리 인간은 진정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 망하고 썩어질, 나를 위하여 사는 누추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발견해야 되겠어요. (박수) 한 시대도 보장 못 받는, 망해 떨어질 나를 위하는 이 퇴폐적인 사상을 철거해 버리고 천륜의 본의에 따른, 위해 존재 하는 이 사상을 이어받게 될 때에, 개인이 나타나면 천국 백성이요, 가정이 나타나면 천국 가정이요, 나라가 나타나면 천국 나라요, 세계가 나타나면 천국 세계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박수)

여러분, 보라구요. 1957년을 정점으로 해 가지고 소련과 중공이 갈라지기 시작했어요. 공산당이 하는 방법은 슬라브 민족을 중심삼은 공산세계 제패다 이거예요. '우리를 위하라' 이거예요. 갈라지면 깨진다 그 말이예요. 그래 가지고는 존재하지 못한다구요. 거기서부터 공산세계도 분립된다 이거예요.

오늘날 미국이 세계에서 고립되어 떨어져 있는데, 그러지 않으려면 자유 민주세계의 주체국으로서 미국이 망하더라도 세계를 위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러면 미국은 망하지 않는 거라구요. (박수) 세계를 위해야 할 이 세계적 중심 국가인 미국이 세계를 뒤에 두고 자기를 위하는 입장에 서니 이제부터는 급강하할 것이다 이거예요. 수습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천륜의 도리를 따라 미국 국민이 전부 다 희생하더라도 40억 인류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나선다고 하게 된다면, 세계를 구하고도 남는다는 거라구요. (박수)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소원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기독교 교인들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지금 요 몇 억도 안 되는 기독교인을 찾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뜻은 인류 구도입니다. 인류 구도가 하나님의 뜻입니다. (박수) 장로교, 감리교, 천주교, 그 종파를 위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예요.

자기 종파를 희생시키더라도 인류를 구하겠다고, 갖은 수욕을 당하더라도 참고 갈 수 있는 그러한 종파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어요. (박수. 환호)

성경 말씀 중에 여러분이 국민학교 때부터, 주일학교 때부터 잘 아는 말씀을 한번 알아보자구요.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어요. 무엇을 사랑하사? 장로교, 기독교 종파를 사랑하사? 아니라구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계를 말하는 거예요. (박수) 독생자의 소원이 뭐냐? 지금 반목 질시하여 싸우고 있는 장로교회의 주님, 성결교회의 주님, 천주교의 주님, 이것이 예수의 소원이냐? 아니다 이거예요. 내가 아무리 알아봐도 아니더라구요. 몇백 번 만나 물어 봐도 그것이 다 아니더라구요.

무엇이 예수님의, 주님의 소원이더냐? '종파를 넘어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구주의 자리에 서는 것이 내 소원이다'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박수) 이 종파분자들, 이 분파주의자들, 나중에는 천벌을 받는다 이거예요. 망해야 된다구요. 아무리 버둥거려 보라구요, 망하지 않나.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예수님 앞에 묻기를 '당신이 요 기독교의 주님이 되겠소, 기독교를 버리고라도 세계의 주님 되겠소? 하면 "나는 기독교를 버리더라도 세계의 주님 되겠다" 이런 대답을 한다는 거예요. (박수)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한테 묻기를 '당신은 기독교만의 하나님 되겠소' 하면 '아니다. 세계의 하나님이 되겠다' 하며 세계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신다는 걸 알아야 한다구요. (박수) 이렇게 싸우는 끝날의 이러한 정상을 바라볼 때, 통일교회가 나왔으니 말이지, 통일교회가 안 나왔으면 하나님이 절망하셨을지 모른다구요.

세계를 품고 위해서 살아가는 길, 대한민국 사람이 배척하더라도 세계의 구도의 길인 민족을 넘어 세계를 위할 수 있는 길로 나서면 대한민국이 반대하더라도 살아 나갈 길이 있다는 거예요. (박수. 환호) 세계 인류가 반대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와 마찬가지예요. 십자가에 돌아가게 될 때, 국가 민족 전부가 반대 하더라도, 하나님만 믿어 왔다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위해서 났고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겠다는 사람이 되라

위해 존재하는 천리의 뜻을 따라…. 여러분, 이제 개인을 중심삼고 전후 좌후를 살펴 봅시다. 그 누가 나라를 더 위하거들랑, 하나님같이 모시고 주님같이 모실 수 있는 생활을 하라 이거예요. 만일에 그렇지 못하거 들랑 내가 그럴 수 있는 생활을 시작하면 내 마음에는 평화의 천국이 찾아들 것입니다. 그러면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실존성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품겨 사는 이상적 지상천국 환경을 수용하게 될 것입니다. 틀림없다 이거예요.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평화의 안식처가 생겨날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개인을 그리워하며 노력해야 될 것이 인생의 갈 길이요. 이런 나라가 그리워 국가 민족을 넘어 나라로서 규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를 바라는 것이 최후의 인류와 하나님이 바라는 지상낙원인 것입니다.

지상에 있어서 만민, 흑·백·황인종을 개의치 않고 형제 이상으로 서로 위할 수 있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전개하게 될 때, 그것이 무엇이냐? 다름 아닌 지상천국이라는 거예요. (박수) 그렇게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천상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 내가 한 말을 다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남편 된 사람은 아내를 보고 오늘 내가 아내를 얼마나 위해서 살았더냐를 반성하십시오. 부모 되는 분은 자식을 위해서 얼마나 했던가를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가정이면 그 가정이 이웃 동네 앞에 얼마만큼 위하는 입장에서 살아왔나 반성을 해야 되겠어요.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 삼고 볼 때, 그 민족 자체를 위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인류를 위할 수 있는 민족으로서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를 반성해야 되겠어요. 살아남는 무리, 끝까지 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무리는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하나님까지 위해서 났고,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 무리예요. 이런 사람이 주인이 되고 영원하신 행복의 이 온 우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틀림없음을 알고, 여러분이 그와 같은 복의 왕국으로 나가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박수)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사회생활에, 혹은 이 대구시민 전체 교회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보다 위할 수 있는 사회, 보다 위할 수 있는 생애노정을 거쳐 하나님과 같이 사랑을 받고, 하나님과 같이 안식하고, 하나님과 같이 행복을 누리고, 하나님과 같이 영원불멸의 이상적 백성이 돼 주기를 바라면서 본인의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비로소 새로운 장래는 이 원칙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결론으로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