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방금 소개받은 문선명입니다. 오늘 저녁에 이와 같이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앞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간, 여기 부산에 계시는 여러 시민께 사방에서 난데없는 국제 청년들이 몰려들어와 물의를 일으키고, 그렇지 않아도 소요한 부산 도시를 더욱 소요하게 만들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소요하게 만든 그 장본인이 도대체 누구냐 하며 여러분들은 마음속으로, 그가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라는데 도대체 그 문아무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상당히 궁금하게 생각했을 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장본인이 오늘 이 단상에 나타났으니 여러분이 환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잘 생기지는 못했지만 기꺼이 평가해 주시면 감사해 마지않겠습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제목은 '인류의 새로운 장래'입니다. 이런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자고로 지금까지 그 누구나 참되고 영원불변한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를 추구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는 현세, 혼란상이 가중 되는 이때에, 반목과 질시가 엇갈리는 사회상에 있어서 인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요건들을 찾기에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 질식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변하는 인간 세계를 넘어서 영원하면서도 절대적이고 유일이며 불변인 어떤 존재가 계시다면 그분을 통하여서만이 이런 소망적인 요건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대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분이 계시다면, 이는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보다도. 새로운 입장에서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이 길에서만이 오늘날 질식상태에 있는 이 세계에 새로운 소망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 자신도 참된 사랑을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참된 이상,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을 바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사랑의 왕일 것이며, 이상의 왕일 것이고, 평화와 행복의 왕일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요구하는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요건들을, 우리 인간이 그분편에서 제시하는 내용을 따라서 그분의 요구에 일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방법 외에는 우리 인간세계에는 참다운 사랑의 세계, 행복의 세계, 이상의 세계가 현현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더라도,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희망이니 하는 이 말들은 하나님 혼자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여건이 성립된 이후에 이루어지는 말이기 때문에, 아무리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과 평화와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상대적 존재가 필요하다는 뜻이 됩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 가운데 과연 하나님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그 무엇일 것이냐고 반문한다면, 이는 인간 외에는 없다고 그 누구나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과 평화와 행복을 완성시키는 데 있어서 하나님 자신만으로는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상대적인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 상대적인 위치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과 평화와 행복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지금까지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고 하는 존재가 하나님의 이상과 사랑을 성사시키는 데 절대 필요하다고 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우리들은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그저 인간은 그럭저럭 살다가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한 그 절대자의 이념의 완성하는 데 있어서, 여러분 개개인 각자각자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늘 저녁에 알고 가신다면 여러분의 생애에 보다 희망적인 길이 열려지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묻고 싶은데, 여기 중년 이상 되시는 여러분들이 옛날 젊은 시절에 자기의 상대를 구하는 데 있어서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느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구하고 싶었느냐? 그 대답은 누구나 동일할 것입니다. 못난 사람이 아니라 잘난 사람입니다. 그것은 동서양의 그 누구를 대해서 물어도 그런 결론이 내려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하는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 그 사랑하는 자식이 자기보다 못나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습니다.
어떤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하여 첫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애기의 얼굴이 부모의 얼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자기 생기고 싶은 대로 생긴 얼굴이지만 그 아기의 얼굴을 보고 '당신의 아기는 당신보다도 얼마나 잘났는지 모를 정도로 훌륭하게 생겼다'고 칭찬하면 칭찬할수록 그 부모는 입이 해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자식 잘났다고 칭찬 하는데 '거 아버지와 어머니를 놓고 그럴 수 있느냐'고 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되어 있느냐? 우리 인간을 두고 보면,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라고 우리 스스로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떠한 연유를 통한 결과적인 존재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라고 하는 것은 원인과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어떠한 곡절의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반드시 원인과 상응할 수 있는 내용과 연결되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때에, 우리 인간도 어떠한 원인을 닮아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원인적인 존재가 누구냐 할 때. 하나님이라고 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와 같은 물음을 하나님 앞에도 한다면. '하나님. 당신께서는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전능전능하시사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지만, 당신 역시 상대가 될 수 있는 존재를 원한다면 당신보다도 잘난 존재를 원합니까, 못난 존재를 원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겠느냐? 여러분들이 묻지 않아도 같은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거 물을 것이 뭐 있어. 나도 너희들과 같은 대답을 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나보다 훌륭한 대상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당신도 아들이 있다면 그 아들이 당신보다도 못나기를 바라느냐고 묻게 된다면. 하나님 역시 '아니야, 나보다 잘나기를 바라는 것이 내 소원이다'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와 같은 결론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대상의 위치에 서야 할 인간, 아들의 입장에 서야 할 이 인간 자체는 하나님이 자기보다 가치 있고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 우리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기성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한 자리에 설 수 없다'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랑은 누구를 통하여 이루며 이상과 행복과 평화는 누구를 통하여 이룰 것이냐? 상대가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사람을 빼놓고 사랑하자는 말이예요? 주님이 오시면 이루어진다는 그 천국은 사람을 빼놓고 이루자는 말이예요? 아니올시다. 하나님과 사람을 통해서 이루기 위한 사랑이요, 이상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대상의 가치에 있어서, 자녀의 가치에 있어서 동등한 가치를 인정해야 됩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귀결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 인간의 본연의 가치가 이와 같이 놀랍고 당당하며 권위 있는 가치적인 존재인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이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또한 이 가치를 찾기 위해 인간도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인륜도덕을 통하여 그의 세계를 추구해 나온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며 절대적이고 유일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사랑의 대상으로서 지음받은 인간을 대해 가지고 '아. 잠깐 내가 필요할 때만, 나의 무슨 사정에 의할 때만 너는 나에게 필요하니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이상적이니까, 행복의 대상이니까, 평화의 주체 대상의 관계를 가졌으니까 일시적이 아니라,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불변하신 하나님과 같이 그의 대상도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불변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여기에서 알아야 됩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 세계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영원한 대상이요. 유일한 존재며 불변한 그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도 변하는 것을 원치 않는데…. 이상적인 하나님일수록 더욱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이상의 대상권 내에 설 수 있는 인간이라면, 하나님이 영생한다면, 자동적으로 인간도 영생해야 됩니다. 인간이 비록 대상의 위치에 서 있지만, 하나님이 절대적이라면 인간도 대상적 절대적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불변하신 분이면 우리 인간도 대상적 입장에서 불변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 인간이 영생해야 된다는 사실은 이론적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에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가운데 만일 이와 같은 사실이 진실이라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인간 그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 대상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영원해야 된다 하는 사실을 알고 돌아가는 분이 계신다면, 필시 그분들의 생애노정에는 많은 변혁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희망의 불길이 타오르리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하나님은 주체이시고 우리 인간은 대상이라는 사실이 확실시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참된 사랑과 행복과 평화와 이상의 기준을 어디서부터 출발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기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을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대상의 존재에게 '너는 나를 위해 있어라'고 하는, 주체만을 위하라는 길하고, 그 다음에는 주체되시는 하나님이 대상을 위해 주는 길하고 두 갈래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이상적인 요건을 성사시킬 수 있는 불변의 기원을 어디에 세울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체 되시는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절대 나만을 위해 있어라' 하는 입장에 서신다면, 하나님을 본따서 어떠한 주체적인 입장에 서는 모든 존재는 '자기를 위해 있어라'고 강조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통일된 하나의 세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입장에서 '상대를 위해서 있다. 상대를 위해서 있어야 된다'고 하는 원칙, 주체도 상대를 위해서 있다고 하는 이런 원칙을 세워 놓는다면, 여기에서는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성립된다는 것을 하나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요건의 기원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입장을 하나님이 생각하게 될 때에,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을 위하라는 입장에 세워서는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인간을 위해서 있겠다는 원칙을 천지창조의 원칙으로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입장이었다는 사실을 본인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위하라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이상, 참된 행복, 참된 평화의 기준은 위하라고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하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부부, 참된 부모, 참된 스승. 참된 애국자, 이 전체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끌어 붙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투입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창조 자체가 곧 투입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원칙을 따라서 보게 될 때에, 참된 부모는 어떤 부모가 참된 부모냐? 그 부모는 자기가 태어나기를 자식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자식을 위해서 살고, 앞으로 죽는 것도 자식을 위해서 죽는다고 하는 부모입니다. 위해서 존재했고, 위해서 살았고, 위해서 죽는다고 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부모는 참된 부모요. 사랑의 부모요, 이상적인 부모요, 그 아들 앞에 평화와 행복의 요건을 제시하는 부모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참된 효자는 어떠한 아들이냐? 내가 태어나기를 부모를 위해서 태어났고, 사는 것도 부모를 위해서 살고, 죽는 것도 부모를 위해서 죽는다는 아들입니다. 부모만을 위해서 태어나 부모만을 위해서 살다가 부모만을 위해서 죽는다고 하는 입장으로 온갖 지성과 생명 전체를 투입하는 자리에서 참된 효자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효자를 바라보게 될 때, 사랑의 아들이요 사랑의 효자요, 부모로서의 바라는 이상의 아들이요, 또한 그를 대하는 그 자리가 평화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대하는 그 부모는 행복한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 창조에 있어서 존재들이 지녀야 할 이상적 근원을 위하는데, 위해 존재한다는 이 원칙에 설정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또, 어떤 남편이 참된 남편이냐? 마찬가지라구요. '내가 태어나기를 당신을 위해 태어났고, 당신을 위해서 살고, 당신을 위해서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남편이 참된 남편입니다. 참된 아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태어난 것도 당신을 위하여, 내가 사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또 내가 죽는 것도 당신을 위하여!' 이와 같이 상응하면서 스스로를 넘어서 상대를 위하는 원칙을 지닐 수 있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은 비로소 이상적인 가정이요, 그야말로 사랑의 가정이요, 행복한 가정이요, 평화의 가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천리원칙을 세웠다는 사실을 오늘날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이 이상과 사랑과 행복과 평화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그런 마음을 갖기를 원하거들랑, 방향을 전환 시킬 수 있는 길을 취하면 그 세계가 여러분 앞에 가능한 세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내가 공부하는 것은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이고, 나 자신이 태어난 것도 나 때문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 부산에서 이름나신 유명한 분들이 오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만한 노력을 통해서 이만한 기반을 닦았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내 스스로를 세움에 부족함이 없는 나 자신이므로 나는 누구를 위해서 머리 숙일 수 없다!' 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남자가 본래 태어나서 생존하기 시작한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남자가 남자 자신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 생리적인 구조를 보더라도 남자라는 존재는 여자라는 대상을 겨누어 가지고, 여자로 말미암아, 여자를 통해서 하나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출 수 있게끔 지어졌습니다. 그것이 남자입니다. 즉.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 이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부인 되시는 분들은 좋아할는지 모르고 남자 되시는 분들은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남자는 태어나기를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남자의 반대인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는 누구 때문에 태어났느냐? '오, 나는 여자요. 이렇게 화장하고 용모를 아름답게 꾸며 가지고 내가 기분을 내고 세상에 남부럽지 않게 살고…. 나 때문에 태어났지? 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천만에! 아무리 미모를 갖춘 미녀라 하더라도, 여자로서 화장을 하는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부부는 근원에서부터 각자가 태어날 수 있었던 본연의 기원을 서로 상대에게 두어야 합니다. 여자가 없이는 태어날 수 없는 것이 남자이므로 남자는 여자를 존경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또. 여자는 남자가 자기 존재 기원의 주체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근원적으로 남자를 높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두 남녀가 서로 이상적인 부부가 되기 위해서 서로서로 위하는 생활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이들은 이상적인 부부를 이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오늘 저녁 이 자리에서 하나의 공식을 발견했습니다. 위해서 존재하는 과정을 거쳐서만이 하나의 이상을 성사시킬 수 있게끔 돼 있습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공식을 벗어나서는 이상과 행복을 추구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길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운 천리원칙의 기준을 따라야만 그 사랑과 행복과 이상과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생애노정에서 이와 같은 관을 통한 하나의 공식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모든 사리를 판단하게 되면,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 요건을 성사시키는 데 있어서 모두가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공식을 적용하여 우리가 한 나라의 애국자를 찾아보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 애국자냐? '나는 태어나기를 나라를 위해서 태어났다! 철 들때로부터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온 모든 것은 나라를 위해서 살아 왔고, 내 생명도 나라를 위해서 바치겠다'는 숭고한 사상을 가지고, 나라가 가는 길 앞에 나타나는 일체의 장애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길을 감수하면서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애국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이 이순신 장군을 애국자라고 칭송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타당하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공식을 더 발전시켜 가지고 인류역사 노정 가운데 성인 중의 성인이 어떤 분이냐 하는 문제를 여기에서 우리는 가려낼 수 있습니다. 어떠한 분이 보다 차원 높은 성인이냐? 어떤 성인이 인류를 위해서 보다 차원 높은 삶의 관을 갖고 살고 간 분이냐 하는 결론에 의해 가지고 결정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본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혹시 기독교 신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믿는 분들이 왔을는지 모르지만, 본인의 의견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역사상에 나타난 최대의 성인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그는 본래 인간을 위해서 준비되어 왔고, 인간을 위해서 30평생을 살다가, 인간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는 마당에까지 임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인류를 위하여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 못을 박는 로마병정 앞에 저주하여야 할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 이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저들이 죄를 알지 못함으로 이와 같은 범죄를 하나이다' 하면서 그들 앞에 복을 빈 사실, 원수까지 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생애의 기준을 바라보고 가신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은 어떠한 성인보다는 인류를 위한 자리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분이야말로 성인 중의 성인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우리 인간이 이 땅위에서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하더라도 백년 이내의 생을 지내다가 타계해 버리는 것입니다. 한국말을 보면 죽음을 두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어디로 돌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이 우리 인류의 조상이요, 우리 인류의 아버지요, 우리 인류의 주체적인 입장에 계시다면 우리의 갈 곳은 어디냐? 그분이 계신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나 불교에서 말하듯이 천국이니, 혹은 극락이니 하는 저 본향의 세계, 그 본향의 세계는 어떻게 된 세계냐? 이 문제를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거기에 대해서 확실히 잘 알지 못하는 분이 많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선 본인은 그 세계에 대한 경험을 가질수 있는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천국이란 어떠한 곳이냐? 간단합니다. 그 구조는 어떻게 된 곳이냐?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면, 그 세계는 위해서 존재했던 사람이 가는 세계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산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서 살고 간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본인은 그것을 여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아무리 잘 믿는 교회의 지도자나 신자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정성을 다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정성이 하나님과 인류를 위한 정성이 아닌 한, 그것을 자기에게 귀결시키는 사람은 결국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합니다. 절대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븐향의 도리의 뜻을 따라,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을 본받아 철이 들면서 부터 남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생활을 하고 자기의 생명까지…. 자기를 위해서 죽을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죽음 길을 간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에 가 있더라 이거예요.
우리 인간은 나그네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위치는 아침이냐, 혹은 낮이냐, 혹은 저녁이냐, 혹은 밤이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사람들은 아침 나절과 같고, 청춘시절은 점심때와 같으며,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은 저녁때와 같습니다. 그리고 70, 80을 넘어선 사람들은 그야말로 어두운 밤을 맞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야말로 나그네의 신세다 이거예요.
인간은 스스로 자기가 타락한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만약에 하나님이 인간의 타락한 사실을 알고 계신다면 하나님에게는 타락한 인간을 그 본향의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무턱대고 인간을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과정을 통해 종교라는 하나의 수련과정을 거치게 하여 단계적으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거쳐 하나님을 위할 줄 아는 길을 똑바로 가르쳐 주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에서는 어찌하여 온유겸손하라느니. 희생봉사하라느니 하느냐? 그렇게 말하는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왜 그렇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느냐? 왜 그렇게 해야 그 나라에 갈수 있느냐? 그것은 우리 본향의 땅이 그와 같은 조직적 구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가서 박자와 호흡을 맞게 하려니, 여기에서 그런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자체를 부정하고 희생봉사를 강요하는 원칙이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시대를 거쳐 종교가 이와 같은 내용으로 희생봉사를 강조한 사실은 그 본향의 법도를 이 땅 위에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역사과정에 그러한 종교가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역사과정을 통해 섭리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증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됩니다. 그 종교가 가르쳐 주는 최고의 교리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위하고 인류를 절대적으로 위하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신구약 성서가 66권이라 하더라도 그 66권은 이 두 마디에 결론이 지어집니다. '위해서 존재하라' 그 뜻을 세우기 위한 것이 신구약 성서이며, 또 수많은 경전이 이 두 마디에 모두 결론이 지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역설적인 논법이 어디 있습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말하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리요. 이 내용이 기독교의 생명의 주추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근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근원적으로 저 본향의 도리에 일치될 수 있는 근원이요, 상대적 관계를 지닌 내용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에 간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까? 그게 어디에 근거한 내용입니까? 이것은 본향 세계에 의해서 천지의 존재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삼고 볼 때, 이것은 역설적인 말이 아닙니다. 그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는 원칙적인 말입니다. 그러면 원칙적인 말이 여기에서는 왜 상충이 되느냐? 반대의 결과로 타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그것이 타당한 논리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종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이 원칙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안 되는 이유를 몇 가지 요건을 들어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보라구요. 여러분에게 한가지 묻고 싶은 내용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서 진정으로 정성을 다하고 자기의 전체를 희생적인 입장에서 은공을 입힌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은혜를 갚는 데 있어서 백 퍼센트 은혜를 입은 중에서 한 오십 퍼센트는 떼어서 포켓트에 집어넣고, 나머지 오십 퍼센트만 갚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본심이예요, 아니면 백 퍼센트 이상 갚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본심이예요? 어느 거예요? 아무리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지만, 우리의 본심을 타진해 보게 될 때, 본심은 틀림없이 백퍼센트 이상 갚고 싶어한다는 결론은 그 누구나 다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구원이 가능하고,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에 박자를 맞출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100퍼센트의 은덕을 입혔다고 합시다. B라는 사람은 그 은덕을 갚게 될 때 100퍼센트보다도 덜 갚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 이상 갚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10퍼센트 갚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A는 B가 110퍼센트 갚은 그 진의를 생각하게 될 때에, 또다시 A는 거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하여 더 주고 싶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어 주고받으면 주고받을수록 이것은 점점 불어 나가게 쉽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의 운동하는 물체가 한 바퀴를 돌면 힘의 감소가 되는데, 이것은 주고받을수록 감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다는,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됩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만이 영원합니다. 그 외에는 영원의 개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위하여 존재하시기 때문에, 위하여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주고받을 수 있는 그 기준이 이뤄졌다면 하나님의 뜻은 완결됩니다. 또한 영원히 주고받으면 그것은 자꾸만 커지게 되니까 여기에서 번창이 벌어지고 발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이 무엇입니까? 지금보다 나아져야 행복한 게 아니예요? 그것이 이상적입니다. 감퇴되고 축소되는데 이상적이예요? 아니라구요. 이와 같은 진리를 아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하여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은 영원할 수 있는 것이요, 위하여 존재하는 데에 발전과 번창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천리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는 무엇이냐? 여러분 보라구요. 한 가정에 여덟 식구가 있다고 합시다. 그 형제 중에 막내가 그 누구보다도 여덟 식구를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정성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 산다면, 그 동생은 어떻게 되느냐?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안으로 품어 들입니다. 점점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의 형님도 그 막내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아무리 작은 아들이요, 작은 동생이지만 그는 어떠한 존재가 되느냐 하면 그 가문의 중심적인 존재로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입니다.
왜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느냐? 하나님께서 위하여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우주의 중심이 돼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분의 대상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도 위하여 존재하는 중심적인 자리에 나아가야만 절대적인 중심 앞에 대상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리에 서는 사람은 틀림없이 중심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 군(君)의 중심존재인 군수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냐? 군을 위해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군을 위해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한 도를 대표한 도지사는 어떠한 사람이냐?(박수) 감사합니다. 그 도지사는 누구보다도 도를 위해서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선거해야 됩니다. 또한 그 나라의 대통령은 어떠한 사람이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누구보다도 그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위정자가 있다면 그는 역사적인 주권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젊은 사람들에게 남을 위해 살라고 말하면 싫어합니다. '왜 길지않은 일생 동안에 위해서 살라고 그러우. 사람이 얼마나 살기에, 짧디짧은 청춘인데 왜 위해서 살라고 그러우? 하지만 이 원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러한 원칙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젊은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위하여 사는 길을 따라갈 것입니다.
여기에 부모 되시는 여러분들이 자식을 교육시킬 때, '야, 야. 너 사람들 앞에 좋은 일 하라'고 말했는데 '좋은 일 해서 뭘해' 이렇게 대꾸하면 어떻게 대답할 거예요?'좋은 일 하면 그냥 좋은 거야'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그건 안 통합니다. 안 통한다구요. 원인 분석을 하여 '이렇기 때문에 이래야 된다'고 설명해야 합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선하라고 하면 '거 적선이 뭐야? 선이 뭐야?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선이야? 아니라구요.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적선을 해야 되고,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선을 행해야 된다는 거예요. 선이 뭐냐? 남에게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내 자체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하는 자는 틀림없이 중심존재가 됩니다. 만일 역사적인 어떤 존재가 반항을 하다가 추방을 당하더라도, 혹은 탄압을 받아서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더라도 틀림없이 그는 중심존재로 등장할 것입니다. 땅 위에서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틀림없이 그렇게 됩니다. 그를 중심존재로 환영하지 않은 사람은, 죽어서라도, 영계에 들어 가서라도 그 사람 앞에 천번 만번 굴복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원칙을 알게 될 때는 세상만사의 어떠한 역경도 순리적인 인생길로 닦아 갈 수 있는 강한 힘이 여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 다 훌륭해지고 싶지요? '나는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고 싶다. 세계의 중심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다 될수 있다구요. 어떻게 하면 되느냐?'나는 역사 이래의 어떠한 그 누구보다도 인류를 위해서 있다. 인류를 위해 살다가 인류를 위해 죽을 것이다. 어떠한 역경도 감수하고, 인류를 위해서 죽는 길도 감수할 수 있다'는 그 양과 고(高)와 폭이 많고 깊고 넓게 될 때는, 그는 세계적인 인물이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은 중심적인 존재가 된다고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 앞에 주관받는 것 이상이 없다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어디 그런 말이 있어? 세상에 사내로 태어나서 누구한테 지배받는 것처럼 억울하고 분한 것이 없는데, 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할지 모르지만 아니예요.
자기를 진정 위해 줄 수 있는 그분 앞에 영원히 주관받을 수 있다면 행복이예요. 행복이라구요. 주관을 받는 것은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 앞에 주관받는 아들이 불행한 아들이냐? 아니올시다. 완전히 주관받고 난 후에는 완전히 주관하는 원칙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주고받는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효자 앞에는, '아버지. 나는 이걸 원하는데 아버지는 좋아요? 라고 말하면 그건 응해주게 돼 있습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자기를 진정으로 위해 줄 수 있는 주체를 맞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지, 자기를 진정으로 위해 줄 수 있는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 앞에 주관 받는 그 자리가 얼마나 행복한 자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게 된다면 하나님은 천지의 대 중심존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 앞에 가까이 가기를 누구든지 원하게 됩니다. 그분 앞에 주관받고, 그분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이 천년 만년 소원이요, 그 자리는 천년 만년 감사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자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오로지 위할 수 있는 원칙의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정치철학 가운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해소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을 따르게 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여 완전통일의 결과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박수)
한 가지 더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소? 라고 묻게 된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야, 야, 인간 너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은 네 사랑이 아니야, 이상이라는 것도 네 이상이 아니야. 사랑이란 공동 소유물이요, 이상도 공동적인 터전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터전은 어떠한 터전이냐? 스스로를 위하고 자기를 섬기라는 터전이 아닙니다. 위하는 터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보다도 고귀한 사랑과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하면 남자면 남자로부터 오는 게 아닙니다. 혼자 사랑이 있을 수 있어요? 혼자 이상이 있을 수 있어요? 암만 꺼떡대 보라구요. 사랑이 어디에서 오느냐? '그건 내게서 오지'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자기가 아무리 세계에서 유명한 노벨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하 나 혼자 있어도 사랑이야. 하하 혼자 있어도 이상이야'라고 하는 사람은 미친 녀석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 오느냐? 상대를 통해서 오는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이론적으로 정리하지 못했다 이거예요. 사랑은 상대가 없어 가지고는 나타날 수 없어요. 이상은 어디에서 오느냐? 내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보다 고귀한 사랑과 이상이 상대로부터 오는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고귀한 존재로 모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위하는 입장을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박수)
이것은 고마운 말씀입니다. 이 우주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그러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와 같은 존재의 원칙을 따라서 우주의 이상권을 실현시켰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지옥에 갈 사람이냐, 천당에 갈 사람이냐 하는 것은 대번에 안다구요. 40평생, 혹은 50평생, 혹은 70평생을 산 여러분들, '일생을 두고 누구를 위해 살았소' 하고 묻는다면 '내가 누구를 위해? 내가 아무개집 아들, 김 아무개로 태어나 가지고 그 이름 가지고 살았지' 그럴 것입니까? 그것 가지고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빚을 진 사람입니다. 빚진 사람은 천국에 못 가는 거예요. 빚진 사람은 이상의 세계에 못 가는 거예요.
내가 만약 50세라면 그 반평생을 짤라 보게 될 때에, '스물 여섯까지는 남을 위해 살았습니다. 스물 넷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하나 때문에 지옥을 지나서 연옥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구요.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지나온 생애를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말한 그 말을 기억해 가지고 모든 면에 이것을 적용하여 생애를 다시 수습해 간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보다 희망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보다 소망이 넘쳐 흐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영원한 이상향이 거기에 자존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여기에서 발전하는 자체를 자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자기 자신은 못 속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의 공식을 세울 수 있다면 그 이상적 공식은 어떤 것이냐? 혹은 행복과 평화의 이상적 그 공식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도대체 인간이라는 게 어떻게 된 거냐, 밑도끝도없이 내가 어떻게 된 거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인생관이 어떻게 되고, 국가관이 어떻게 되며, 혹은 세계관. 우주관, 신관이 어떻게 돼 있느냐?'아휴, 그 인생관! 인간 자체를 모르고 있는데, 그 뭐 국가관이 뭐고 아 세계관이 뭐야. 아 우주관이 뭐고, 신관이 뭐야?' 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 인간은 인간만으로 고립된 입장에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대응적인 관계권을 거쳐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어서 필시 결과적인 인연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길을 가고 있다 이거예요.
나는 주체와 대상적인 인연을 가져야 된다고 할 때, 그 주체가 누구냐? 보다 큰 것을 주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의 일생을 중심삼고 볼 때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하는 자각을 실제로 한다고 생각해 봐요. '아. 이 세계가 내가 없으면 안되겠다'고 느껴 보라구요. '이 대한민국 이 나라가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 이 사회에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 우리 가정에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고 느끼며 실천궁행할 수 있는 자리에서 자극을 받고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아까 말한 위하여 사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만일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는 자기의 인생관 자체를 해결할 뿐만이 아니라 국가관도 이미 통과한 것입니다. 세계관도 이미 통과한 것이고, 신관도 이미 통과한 것입니다. 작으면 작은 면에서, 크면 큰 면에서 그러한 만족권을 체휼하고 살 수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보고 싶은 사람일 것이고, 세계가 보고 싶은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나라가 만나고 싶은 사람일 것이며, 사회가 공인하며 받드는 가운데 주체로서 모시고 싶은 사람일 것이요, 가정이 추대하고 싶은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개인으로부터 국가관을 거쳐 세계관이나 우주관을 어떻게 관계적으로 연결짓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는데, 방대한 논리체계를 중심삼고 '이것은 다 이러니까 이런 것이다'라고 아무리 강조해 봐도 그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을 중심삼고는 어떠한 장벽도 돌파할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부터 국가관도 돌파할수 있고, 나아가서는 국가관에서 세계관도, 세계관에서 우주관도, 혹은 우주관에서 천주관에 이르기까지 다 돌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면 하나님의 저 심정 뼛골까지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칼이라면 그 칼은 우주 어디든지 미칠 수 있는 칼입니다. 그 작용은 어디에서든지, 상대 세계가 응하지 않을 수 없는 권한을 가진 작용임에 틀림없습니다. 표현이 어렵습니다만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볼 때…. '위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진 세계가 됐다. 그 세계 가운데 우리 나라가 들어가 있다, 그 나라 가운데 우리 가정이 들어가 있다. 그 가정 가운데에 있는 나다'라고 생각해 보라구요. 그거 불행하겠어요? 천국이 어떠한 곳이냐 할 때에, 위하여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유토피아적 이상세계가 어디냐 할 때에 천국화된 세계입니다.
천국이 왜 좋은 곳이냐? 영원한 주체가 있고 영원한 대상으로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고, 붙들지 않을래야 붙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천국이 좋은 곳입니다. 주체와 대상도 없는데 혼자 좋을 수 있어요? 그건 미친 사람입니다. 내가 여러분이 없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면 저기 저저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거예요. 거기에다 웃고 야단하게 되면 '아 저거 저거 돌았다'고 틀림없이 말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오늘 저녁 아시고 단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위해서 태어났구나! 위해서 살아야 된다?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살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이상적 공식노정을 말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냐? 남편은 아내를 위해 살고, 그 부모는 자식을 위해 살고, 그 가정은 이웃과 친척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또한 그 친척은, 그 종족과 민족을 위해 살고, 그 민족은 국가를 위해 살고, 그 국가는 세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은 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박수) 정말 이렇게 되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이게 공산당식입니다. 그게 아니라구요. 하나님식은 어떤 것이냐? '내 것은 네 것이고, 네 것은 가정의 것이고, 가정의 것은 종족의 것이고, 종족의 것은 민족의 것이고, 민족의 것은 국가의 것이고. 국가의 것은 세계의 것이며, 세계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다? 하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멋진 말이예요.
하나님의 것은 내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 만들려면 세계의 출발을 일으켜 아마도 세계적인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야, 하나님이 공인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하나님의 것을 내 것 만들지 '아이구 자식이고 나라고 무엇이고 죄다 그만두고, 아이구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 김 아무개집, 아이구 너와 나 형제, 어머니 아버지만 위해 살자' 하면…. 그건 땅굴 파고 울타리 치고 죽겠다는 도를 닦는 거라구요. 처량하다구요. 그건 동물적인 결과와 같은 거예요. 거기에는 이상이니 뭐가 없다구요.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난 이 사람은 역사를 두고 보면 30년만에 여러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반대하지 않고 기성교회가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30년 전에 여러분을 만났을 것입니다. 만약에 30년 전에 이와 같은 진리를 우주 앞에 선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박수)
문 아무개가 말하는 이 원칙이 천리를 대신할 수 있는 진리의 말이라면 기독교는 어디로 가요? 손해배상을 물어야 된다는 거예요. 나는 그들이 반대하더라도 일언반구,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몰라서 그러니까…. 내가 가야 할 길이 위해서 가는 길인 것을, 그것이 천리원칙의 길인 것을 알았거들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던, 천리를 따르던 그 길을 가야 되기에 30년 동안 핍박받으면서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별의별 추악한 말을 다 들었지만, 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말도 있지만 하나님 자신이 그랬고 예수님 자신이 그랬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로마시대에는 전부 다 그들을 음행하는 자들이라고 하며 잡아죽이지 않았어요? 왜 비참하게 피를 흘렸어요? 기독교 역사를 상고하는 사람들은 알잖아요? 자기 형제보다도 더 가까이 사니까 별의별 누명을 뒤집어씌운 것입니다. 문 아무개가 말을 할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구요. 내가 성을 내다가는 천리가 깨져 나가겠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나온 거라구요.
나는 대한민국이 받들지 않더라도 세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갈 수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쫓기고 반대받는 서글픈 사정을 하나님 앞에 통고 하기 전에 '너는 더 슬픔 가운데 살고 있는 인류를 위하여 개척의 길을 간다'는 하나의 지시를 따라 핍박을 받으면서도 세계적인 발전을 위해 투쟁해 나왔습니다.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박수)
내가 3년 전에 미국 땅으로 건너갔을 때에 '너희 미국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은 미국이 민주세계를 대표하여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런 뜻 가운데서 축복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망하게 됐다. 망하게 됐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제 미국 기독교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나는 한국 땅에서 태어나 불쌍하게 몰리고 있지만 너희들은 내가 필요하지 않느냐? 됐든 안 됐든 나 하는 대로 하라? 하며 혈혈단신으로 미국 대륙에 발을 디딘 것입니다.
민족을 뒤에 두고 쫓기는 신세의 일신이지만 이 미국 백성을 사랑하기를 나의 백성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는 비참한 운명을 내가 알았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나를 위해서 죽으려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거들랑.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살 수 있는 마당이 내 앞에 왔으니 환희로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박수)
그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밥을 먹어도 그들을 위해서 먹었고, 잠을 자도 그들을 위해서 잤으며, 통곡을 해도 그들을 위해서 하다 보니 레버런 문이 미국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천리원칙을 따라 살다 보니, 다들 죽을 고빗길에 이르러 망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거꾸로 되는 일이 얼마든지 많은 것을 나는 보아 왔습니다.
거룩하신 천리원칙을 존중시하는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망할 줄 알았던 통일교회가 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천리 원칙을 소화시키고 깨뜨려 버릴 수 있는 힘이 있거들랑 망하게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 자신도 못 하는 거예요.
나 자신이 여러분 대한민국 백성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시시하고 못난, 사나이답지 않는 사나이로 나타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박수) 내가 그 누구에게 지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면에서 지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할 짓이 없어서 이렇게 기독교를 망치기 위하여 나타난 그런 악당의 괴수가 아니라구요. 일대일로, 힘으로 하나 무엇으로 하나 내가 우세하다 이거예요. 그건 나 자신이 잘 압니다. 머리로 하더라도 누구에게 지지 않는 머리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보라구요. 못난이같이 그저 밟으면 밟혀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위하여 존재하는 천리원칙을 따라가야 할 것이 기독교의 전통적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자유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 이익을 버리고라도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야 합니다. 그러한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통일교회 문선생을 반대해서 무슨 이익이 납니까? 나는 '나 홀로 몰리고 쫓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니 민족을 팔고 교회를 팔아먹지 말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를 욕하여 복을 받을수 있으면 복을 받으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십 년 역사를 통해 통일교회를 반대하다 보니 망할 줄 알았던 통일교회는 세계에 두드러졌다 이거예 요. 미국에서 FBI자체가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는 레버런 문이 될 만큼 통일교회는 방대해졌습니다.
내가 만일 악당의 무리라면 전부 다 쑥새 둥지를 만들 수 있는 머리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못난 사나이의 모습으로 이 대한민국 땅에 나타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천리원칙을 따라 세계를 위해 기반을 닦아서 이 민족을 찾아들게 되면 이 민족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되므로 반대하면 안 됩니다. 반대하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통일교회에 들어온 젊은 청년들 앞에 나는 들어온 그날부터 다짐시키기를 '너는 묵묵히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진정히 위해서 나가라. 매를 맞아도 더 힘껏 치라고 해봐라!' 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쳐보고 몰아 보라구요.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위하는 주체 앞에 위하는 대상은 선한 복의 터전이 열립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기독교가 위해야 하는 세계의 뜻을 이행하지 못하고 남을 쳤다가는, 복은 그 사람에게 내주고 자기는 껍데기만 차지한 채 쫓겨나서 망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이 천리원칙을 따라 살고, 또 이 천리원칙을 따라 죽어야 할 운명길이 남아 있는 것을 오늘 저녁 여러분이 알았습니다. 이제 30년만에 여기 이 사람이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도대체 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 궁금했을 줄 알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불학무도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인륜도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세상이 쪼개져도 콧방귀도 안 뀌는 사람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사실을 알기 때문에 통일교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맞으면서도 묵묵히 나오다 보니 발전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보라구요. 누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승패를 가릴 수 있습니다. 인간 자체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전통, 전통이 무슨 전통이예요! 기독교 역사를 두고 보면 전통이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얼마나 죽였어요? 얼굴을 들 수 없는 역사적 배후를 남긴 자체를 회개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세계적인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대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채 교파 싸움에 분주해 가지고 자기 일신의 출세를 꿈꾸고 있는 그 무리는 안 된다구, 안 된다구요.
여러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기성교회 여러분들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가 막히다구요. 도대체 이 민족이 어떻게 될 것이요? 그러므로 지난날은 지난날로 흘려 버리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된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도 시급한 국제정세 앞에 있고, 더더욱 삼팔선을 경계로 하여 오늘 내일의 생사의 결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기 스스로도 다짐할 수 없는 시점에 놓여 있는 자아를 인식하는 마당에서 우리들은 누구든지 너나할것없이 다시 손을 잡고 화합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박수)
여러분들이 지금 듣고 있는 월남문제,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정세를 볼 때, 4월은 한국과 아시아에 있어서 위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기간을 설정해서 통일교회는 아시아적 사건을 일으켜야 되겠다고 해서 국제기동대를 동원시켜서 끌고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은 이제부터 3년 동안만 죽지 말고 남아 있으소! 죽지 말고 남아 있어라 이거예요. 누가 안 죽는다고 보장할 수 있어요? 하나님. 대한민국을 지키시옵소서!
그렇기 때문에 무슨 여당이니 뭐니 별의별 욕을 다 얻어먹었습니다. 나는 여당이 아니예요. 하늘당이라구요. 있는 말 없는 말 다해 가며 국제공산당으로 몰고 뭐 어떻고…. 별의별 노릇 다 당했다구요.
기독교는 무엇이냐? 통일교회의 형님입니다. 기독교는 내 형님인 줄을 알고 있다구요. 요셉을 팔아먹던 열 한 형제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밥을 굶을 수 있는 때를 만나면 내가 먹여 살리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을 초청하여 통일교회에서 원리공청회를 열 때, 목사들에게 반 마리의 닭을 나눠 주면 그것이 작아 가지고 한 마리의 닭을 숨겨 가지고 끼고 다니는 것을 볼 때, 나는 하나님 앞에 통곡을 했습니다. 어쩌다가 기성교회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내가 차라리 이걸 보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는데, 어찌하여 이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입에서 저주가 나가려고 하는 것을 혀를 물고 스스로를 달랬던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일보라도 가까이 하나님 앞에 가려고 하는데 그게 나빠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됐군요. 이해 바랍니다. 여러분, 부산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젊은이들을 손님으로 알지 말고 여러분의 형제의 한 사람으로 맞이해 주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은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고 봅니다. 그러면 도대체 통일교회가…. 이게 도대체 뭐야? 통일교회가 도대체 뭐야? 그거 궁금할 거예요. 저 로마 가톨릭하고 희랍 정교회가 분리되어 가지고 지금까지 9백여 년의 역사를 거쳐왔지만 아직까지 통합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알고 있습니다.
신교를 두고 보더라도 지금까지 4백여 교파로 분립되어 가지고 통합이라는 일은 꿈의 상징으로 된 현시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거 문 아무개가 어떻게 그것을 통일하자는 거냐고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간단하다고 본다구요. 왜 간단하냐? 위하여 존재하는 원칙에 의해서 기성교회 목사가 그 교인을 사랑하는 이상 통일교회 교인이 기성교회 교인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이거예요.
기성교회 교인들이 목사를 사랑하는 이상, 통일교회 교인들이 그 교회에 들어가거들랑 그 교회 신자보다 더 목사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그게 가능하냐?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하나 만들 수 있느냐? 하나 만들 수 있습니다. 관건은 그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을 하나 만들 수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어떠한 국민보다도 대한민국을 더 사랑할 수 있느냐? 할 수 있다면 가능한 거예요. 위해서 살 수 있다면 가능하다는 거예요. 내가 미국 땅을 중심삼고 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느냐? 있다구요. 미국 백성 어떠한 사람보다도 미국을 위해서 살았다고 하면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사랑하는 것에 귀의하고, 사랑하는 것의 주관을 받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그 존재물의 욕망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아요? 누구든지 더 사랑하는 데로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변명하지 말고 그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통일교회는 핍박을 당하면서도, 핍박의 도상에서도 이렇게 발전해 나오게 된 것은 단 한 가지 원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보라구요, 대한민국 내에 있어서 우리 통일교회를 기성교회가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그 기성교회가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넘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떤 것이냐? 어떤 기성교회는 '아, 우리 14만4천 무리만 주님을 맞이하자!' 하는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예요? 하나님의 뜻은 만민 구원이예요. 만민 구원. 곧, 세계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우리는 폭을 넓혀 가지고, 통일교회니 무슨 교회니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 가지고, 자기 스스로를 희생하며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을 향해 전진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나라가 살 수 있는 정신적인 운동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 교회가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따라오는 거예요. 만일에 그 나라가 세계를 위해서 나가게 되면 세계 사람들이 따라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것을 아시고 위하여 존재하는 이 원칙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거기에 여러분 개인의 평화가 있을 것이요, 가정의 평화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서는 종족과 민족의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적 뒷받침을 안고 가는 노정에 있어서 철두철미하게 지치지 않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는, 그 무리는 아시아에 있어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문제의 집단이 될 것이요. 또한 세계의 수난길을 극복해 나가면서 세계를 위하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문제의 집단이 될 것입니다. (박수)
이러한 기준을 표준으로 삼아 묵묵히 위하는 가정을 세우고, 묵묵히 위하는 사회를 세우고, 묵묵히 위하는 나라를 세우고, 묵묵히 위하는 초민족적인 세계를 세워야 우리는 하나의 이상세계를 지상에 도래시킬 수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의 세계를 가져올 수 있는 사상적 체계가 형성되게 될 때에 오늘의 세계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세계가 전개되리라고 봅니다. 그것은 위해서 사는 길에서만이 가능하다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저녁 여러분을 만나 말씀드리는 본인의 소견입니다. (박수)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사회와 여러분의 교회가 이 나라를 지켜 나가는 길 앞에서 보다 위하는 가치의 길을 남기면서 개척적인 입장에 서 나간다면, 여러분은 보다 차원 높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천국을 향하여 전진할 수 있는 용사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사회에 보다 하나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본인의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