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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975.03.30 (일)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5년 3월 30일, 이달을 맞이하여 마지막 맞는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이 아침에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전세계 통일의 자녀들이 이곳을 우러러 보면서 정성들이는 각자의 마음 마음을, 아버지께서 친히 사랑으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인 전환시기를 당하여 당신이 맡겨 주신 책임과 사명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제 새로이 4월을 맞을 날도 이틀을 남기고 있사옵니다. 이 한반도에는 역사에 없는, 새로운 통일 섭리의 하나의 운동이 이미 부산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국제기동대라는 이름을 가지고 들어온 이 660명에 해당하는 이 무리들이 이 땅에 들어와서 하늘의 뜻을 다시 한번 감사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 앞에 무엇인가 남겨 주고 돌아갈 수 있는 거룩한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45일 간을 중심삼은 격렬한 싸움을 아버지께서 친히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최후의 전선을 당신의 이름과 더불어, 이 한국의 이름과 더불어, 금후의 세계를 향하여 책임져야 할 역사적인 섭리의 뜻과 더불어 연결해 놓고 각자의 모든 충성과 지성을 다 드릴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국백성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들의 모든 소문을 듣고, 그 마음 위에는 새로운 역사적인 사랑의 섭리의 마음이 당신으로부터 심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 땅을 대해서 책임을 진다 해도 그 인간은 제한된 인간이기 때문에 변치 않는 역사적인 섭리의 길을 포괄할 수도 없고, 그것을 가로막아 제지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영원하시고 절대적인 분이기 때문에 역사의 모든 방향을, 혹은 역사의 모든 내용을 또 역사의 귀추를 조정하시는 중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믿고 당신을 따라 당신의 소원을 일신에 지니고 제한된 한계 내에서 충성을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될 이번 한국 방문 길이오니,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가는 일, 오는 일에 뜻과 더불어 사랑의 인연을 남길 수 있는 거룩한 이번 활동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우기 기성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이 이번 기회에 새로이 아버지 뜻 앞에 인연을 맺고 하늘을 향하여 최후의 긍휼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들을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오며, 여기 참석한 무리들과 미국에 있는 모든 당신의 자녀들도 친히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나 빚을 지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생동안 사는 기간에는 그 나라의 빚을 져야 되고, 혹은 사회의, 혹은 가정의, 혹은 친구지간에, 여러 분야에서 빚을 지는 일이 없어 가지고는 우리 인간이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빚을 지고 빚을 갚아야 할 인간

인간 사회도 그렇지만 더우기 우리 섭리의 뜻을 두고 볼 때,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 개체개체, 나면 나, 혹은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한국이면 한국, 각국이면 각국 나라가 전부 다 이와 같은 빚지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빚을 누가 많이 지고, 또 빚을 누가 갚느냐? 많이 졌으면 진 것을 책임지고 갚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 하나의 사람으로서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세울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빚을 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빚에 대한 책임, 그 갚을 책임을 못 하고 그것을 회피한다든가 그 환경을 반대한다든가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이것은 반드시 사회 일원으로서 지탄을 받고, 상대적인 사회에 있어서 위축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자체가 역사시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빚을 졌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또,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 인근 아시아면 아시아 제국 앞에 얼마나 빚을 졌느냐? 그런 것도 있을 것입니다. 또, 그 나라를 지도하고 있는 어떤 주권자가 있으면 그 주권자가 국민을 대해 가지고 어버이와 같이 사랑하고 국민 앞에 무엇인가를 남겨 줘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국민 앞에 신세지는 입장에 서면 그것도 빚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국민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와 같이 보게 될 때에 상대적 관계라든가 전후, 혹은 상하관계에 있어서 빚을 져야 되고 빚을 갚아야 할 이러한 역사적 인연이 있는 것을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빚을 지고 있는 인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과 나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오늘날 복귀섭리라는 것은 무엇을 표준으로 하고 지금 향하고 있느냐? 그것이 맨 처음에 바라는 기준이 나라가 아니다 이거예요. 물론 그것이 개인을 통해 가지고, 가정을 통해서 최후에는 나라를 찾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맨 처음에 우리 인간을 대해 가지고 뜻이 바라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구원섭리라는 것은 복귀섭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귀섭리라는 것은 타락되지 않았던 그 자리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타락 되지 않았던 그 자리에 돌아가려면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의 역사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재창조의 역사과정을 거치려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던 원리원칙을 따라서 재창조의 힘을 투입하지 않으면 재창조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나'라는 자체를 지금 보게 된다면 우리는 타락의 후손이 돼 있습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까지 우리 인류시조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 아담 해와가 생겨날 때까지 얼마나 하나님이 거기에 전력을 다했겠느냐? 힘을 다했다면 힘을 다했을 것이고, 사랑을 다했다면 사랑을 다했을 것이고, 온갖 지성이라든가 하나님이 가진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아담 해와를 자기 아들딸로 지었다면 그 아들딸에 대해 가지고 하나님이 좋은 모든 내용을 전부 다 투입했을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 아담, 그 아들이 타락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일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피해인 것이다 이겁니다. 지금까지 온갖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투입한 것이 절단됐으면 거기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가치적인 손해를 그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 책임 져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잘못했기 때문에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책임지지 못할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책임질 수 있는 인간이 못 되게 될 때는 그것을 누가 책임져야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그것은 하나님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하기 전을 보더라도, 모든 귀한 것을 중심삼고 본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빚을 졌던 것입니다. 빚졌던 그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는 충격적인 손해를 끼치게 되었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이상으로 바라던 그 자녀의 자리가 도리어 저주와 원망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축복을 더하고 싶었던 마음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 자체를 파괴시키고 싶고, 당장에 없애 버리고 싶을 수 있는 격노의 자리로 변했을 것이 아니냐.

구원섭리는 아담 하나 찾기 위한 놀음

그러면 그러한 마음을 억제해 가지고 그런 마음을 다시 수습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재창조역사나 구원섭리의 길이 없을 것이 아니냐, 그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 가지고 구원하겠다고 하는 하나님은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섭리의 손길을 펴기 위해서는 창조하던 소원, 소망 이상의 마음을 하나님 자신으로서 결의하는 내적인 과정을 다짐짓지 않고는 인간 구원이 어려울 것이 아니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녀에 대한 생활을 통해 가지고도 잘 느낄 수 있는 사실이 아니냐. 구원섭리의 뜻이 나타날, 그 뜻을 세울 수 있는 자리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것이 생각 없이 구원섭리의 뜻을 했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곡절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 곡절의 환경을 극복하고, 그것을 소화시키고, 새로운 희망을 인간 앞에 두지 않으면 구원섭리의 출발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일대 하나님 자체의 내적인 면에서 변혁의 과정을 거쳤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것을 복귀해 나오는 데 있어서 개인복귀를 위주로 해서 가정복귀, 국가복귀, 세계복귀까지 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섭리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많은 외형적인 종교를 세워 나왔지만 그것은 뭐냐? 장래에 이상적인 아담 하나를 그 모든, 벌려 놓은 그 가운데서 하나하나의 요소를 전부 다 집약해 가지고 아담 하나를 만드는 놀음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기독교가 있으면 기독교 자체, 혹은 유교라든가 역사적인 이름난 모든 종교가 있으면 그 종교도 전부 다 규합해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면, 하나의 본래에 하늘이 이상하였던 타락하지 않은 한 사람의 가치를 거기서 뽑아 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종교와 하나님이 단 하나의 타락하지 않은 그 이상적인 인간을 중심삼고 볼 때, 다시 말하면 타락하지 않고 완성된 아담 해와와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의 가치와 비교해 보게 되면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느냐? 타락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본연의 아담의 모습이 더 가치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종교라는 것은 아담을 재창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아담이 무엇이냐 하면, 이것이 메시아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메시아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기 위해서 얼마나 지금까지 인류가 타락한 이후에 우여곡절의 길을 걸어오면서, 수난 길에 부딪히면서 극복해 나와 가지고, 개인에서부터 환경적인 범위를 거쳐 국가 세계까지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극복하는 것도 단하나 이상하였던 재창조의 완결을 표방한 완성된 아담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냐.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한 사람 복귀하기 위한 과정에서 하나님 자신이 책임을 지고 나오는 역사적 배후를 다시 우리들이 생각해 보게 될 때 얼마나 곡절이 많았겠느냐. 거기에는 개인이 비참하게 쓰러져 가는 것을 봤을 것이고, 혹은 가정이 그런 것을 봤을 것이고, 혹은 어떤 민족이 그런 것을 봤을 것이고, 국가도 봤을 것이 아니냐. 지루하다면 지루한 기간이요, 그것이 참 비참하다면 비참한 기간이요. 억울하다면 억울한…. 하나님 자신이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이런 입장에 선다면 이것은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적인 지루한 기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미래의 한때를 바라 나오는 하나님의 내적인 그 생활에 있어서의 투쟁이라 할까, 자기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장면도 많이 가졌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 자신이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로서 절대자로서의 모든 휘하의 전부를 장악하고도 남을 수 있는 그런 분이 그런 구원섭리의 고충을 받고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이 자기 위신과 자체 능력을 생각해 가지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나는 이러한 분이다'라고 주장했다면 역사노정에서 인간 하나 찾는 이러한 길에 있어서 이 곡절을 극복할 수 있었겠느냐? 유지할 수 있었겠느냐? 유지할 수 없었다고 본다구요.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를 당당한 자리에 세우려하고, 또 세워질 수 있는 자체임을 주장하고 그러한 것을 생각한다면 역사노정에 무가치한 타락한 인간을 찾기 위한 그 수난의 길을 극복하고 참아 나올 수 있었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십자가의 길도 달가이 가신 예수님

이런 걸 생각해 보게 될 때. 만일에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건 뭐 할 수 없다구요.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망각하는 입장이 아니면 이 길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과연 하나님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왔다면 그것은 누구 때문에 한 것이냐? 그것은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고 있으며 당하고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요,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때문이냐? 인간 때문입니다. 그 인간이 누구냐 할 때에, 이것은 인간 개개인 전부를 위한 것이 아니냐. 오늘날 수십억의 인류가 있지만 그 수십억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위할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게 된다면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를 붙들고 그래도 우리를 놓지 못하고, 그런 수난길에서 이것을 놓지 못하고 끌고 가고 돌이키려 하는 그러한 분이 있다면, 그러한 분이 사실 세상에 있다면 그 얼마나 고마운 분이냐. 그 무엇으로 감사를 드려야 될 것이냐? 세상에 그런 사람도 없겠지만 만일 있다면 이건 무엇 가지고 그 감사를 드릴 것이냐?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로 말하면 예수가 이 땅에 올 때까지, 예수라는 그분이 이 땅에 왔으면 그 예수를 내세울 때까지의 하나님의 수고가 컸을 것입니다. 얼마나 컸겠느냐 이겁니다. 비로소 이 땅 위에 메시아로 보내졌던 그 예수가 자기의 소원성취의 대표자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결정하고, 또 그러한 내용을 갖추어 내세웠고, 그러한 수고를 거친. 그 수고의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중심존재라고 내세웠을 때에. 예수를 중심삼고 민족이 받들어 드리고, 인류가 하나되기를 바랐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반대하고 죽음의 자리까지 몰아넣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한다면 수천 년 동안 참아 나오고 극복한 그 원통스러운 마음을 일시에 그 민족에 대해 퍼붓고 싶은 생각이 안 났겠느냐. 또. 아들을 죽일 수 있는 운명에 부딪힌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했을 것이냐. 그래도 분풀이를 하지 않고 또 다시 묵묵히 구원이라는 섭리를 연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하나님의 내적 고충이 얼마나 컸겠느냐. 우리 인간들이 이런 것은 생각지 않아요.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게 될 때,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 예수는 그래도 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했는가 하는 이면을 생각했던 입장인 것을 우리는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나 하나의 생명이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나서기에 참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자신을 중심삼고 비참한 것보다 역사적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했는가를…. 그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범위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알면 알수록 자기를 부정할 수 있는 동기도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걸 생각하게 될 때, 예수 자신을 이 땅에 내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4천 년이면 4천 년 역사시대를 통해 수많은 수난길을 극복해 나왔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건 누구 때문에 한 것이냐? 자신은 물론 인류를 대표했지만, 인류를 대표해서 구세주로 왔지만 예수는 '내 책임을 세워 주기 위한 것이다. 내 사명을 이루어 주기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될 때에 거기에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 아니냐.

그러니 그 책임 앞에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감수하면서, 책임 수행을 감당해야 할 의무감을 갖게 될때 십자가의 길도 달갑게 갈 수 있었을 것이 아니냐.

결국은 자기 생명을 바치는 자리에 나가더라도 역사적인 하나님을 알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이면적인 심정을 더듬어 위로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으려고 했고, 그 길을 가려고 했던 예수를 바라보게 될 때, 인류역사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이 마음 가운데서 지금까지 참아 왔고, 지금까지 무지한 인간들을 인도해 왔지만 비로소 오늘에사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아주고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바라보고 하나의 희망적인 소망의 빛을 바라봤을 것이 아니냐.

거기서 예수가 뜻을 이룰 수 있는 길로서 민족을 수습하고, 로마를 수습해서 세계적인 판도를 확장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것이냐.

그 판도를 넓혀 가면 넓혀 갈수록 그 판도를 넓히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다.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을 갚기 위한 것이다. 마음이 아팠던 것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상처가 있었던 것을 지워 주기 위한 것이다' 하는 입장에 섰다면, 그 예수를 통해 하나님은 비로소 해원성사, 분했던 것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었을 것입니다. 푼다는 것은 반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의 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자, 그러던 예수가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주고 하늘의 내정은 알아줬지 만, 또다시 인간 앞에 몰림으로 말미암아 그를 십자가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을 당한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느냐. 세상의 인간들 같으면 당장에 이 유대교, 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벼락을 내렸을 것입니다. 전부 다 멸망시키고도 남을 수 있는 무리였지만 그것을 또다시 극복 해야 할…. 그러면서 소망의 한 중심이었던 예수마저 잃어버리고 또 다시 제 2의 소망적인 미래를 바라보면서 이 역사적인, 거듭되던 수난길을 되풀이해야 할 그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하였을 것이냐.

그것은 아담 해와 일신의 타락보다도 수많은 재창조의 과정, 복귀과정에서 수난길을 극복해 나오며 소망을 품고 나오던 하나님 앞에 그것은 더 충격적인 타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예수를 붙들어서 살려 줄 수도 없는 입장에서 하나님은, 또다시 죽음길로 몰아 넣어 가지고, 재차 소원을 연장해서 미래의 한날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었던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기막힌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의 뜻을 따라 나서는, 예수를 믿는 기독교 신자`들이 가는 길도 어떤 나라를 가든지 부딪치게 되면 전부 다 순교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사람 취급을 못 받고…. 이러한 무리들을 지도하고 이러한 무리들의 편에 서 가지고 그들을 옹호하고 인도하지 않으면 안될 하나님이 얼마나 비참했을 것이냐.

이렇게 기독교가 2천 년 역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발전해 나와서 민주 세계라는 이러한 거대한 체제를 만들어 왔지만, 현시대에 있어서는 이것이 몰락상태에, 오고 갈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힌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수고한 하나님의 소원을 어디에다 머물게 할 것이냐?

자, 그런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와 같이 판도를 넓혀 놓은 기독교, 전세계에 널려 놓았던 기독교가 오늘날 여지없이 파탄되어 들어가고 있다 이거예요. 교회 자체가, 또 그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은 국가 자체들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예수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섭리를 부정해 가지고 하나님이 없다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게 된 사실을 바라보게 될 때 기가 막힐 것이 아니냐.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이 지금까지 참아 나와서 세계적인 발전을 할 때까지 투입한 그 희생의 모든 여건들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이거예요. 그것은 미국을 위한 것도 아니요, 기독교를 위한 것도 아니요, 결국은 나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를 보내서 십자가에 돌아가게한 것도 결국은 그 메시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다시 이것을 연장하여 재림이라는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새로운 기독교의 체제를 횡적으로 확대시켜 가지고, 세계적인 범위까지 발전시켜 가지고 끝날까지 이끌어 온, 하나님이 기독교를 발전시킨 역사도 누구 때문인 것이냐? 나를 위한 것입니다. 결론이 전부 다 나에게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민주세계가 이와 같이 몰락상에 임하여 있는 것도,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이 누구 책임이냐 할 때, 인간들이 잘못한 책임입니다. 그 인간들의 대표는 누구냐? 내가 대표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그러한 대표적인 그 어떠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그 책임을…. 내 스스로 하나님의 내정을 알아 가지고 '이 시대의 책임을 다하겠다. 내 스스로 인간이 역사시대에 하나님을 통해 졌던 모든 빚을 청산하고,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을 빚 지울 수 있는 힘의 여력을 돌이켜 줄 수 있는 내가 되겠다'는 자각을 하지 않고는, 오늘날 이렇게 혼란되고 이와 같이 떨어진 인간을 추어 올라갈 길이 없지 않느냐. 그렇게 보는 거예요.

전체를 대표한 나이므로 빚져서는 안 돼

오늘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예수를 믿고, 혹은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믿는 것은 물론 내 자신이 구원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구원받는 것은 뭐냐 하면, 이 환경을 전부 다 버려 가지고 내 자신이 뽑아져 가지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를 구원하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인류 가운데서 빼내려 하는 하나님의 뜻, 인류 가운데서 재창조해 세우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거기에 한 분자로서의 나지, 이것을 부정한 고립적인 입장에 있어서의 내가 아니다 이거예요. 전체와 인연을 갖춘 거기에 있어서 주체된 입장에서의 나지 부정적인 주체, 아무것도 없는 자주적인 입장의 나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관념, 그 나는 오늘날 김 아무개의 아들로 태어나고 김 아무개란 이름으로 있는 그 나가 아닙니다. 역사와 동반하고, 섭리와 동반한 총괄적이요, 전체적이요, 주체성을 지닌 입장에서 주장해야 할 '나'를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일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한 자체 지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여러분이 내적인 역사시대에서 짊어진 하나님의 심정적 빚, 수난의 빚, 고통의 빚, 모든 것을 갚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역사시대의 성현 현철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그 사람들은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그것은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위인이 되는 것입니다. 위인과 성현이 어떻게 다르냐? 성현은 무엇이냐? 인류를 대표한 나다! 이러한 자각을 갖고 나서 가지고 그 목표 밑에서 꾸준히 자기 일생 전체를 투입하더라도 '더 투입하겠다. 더 투입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가는 사람일수록 그는 위대한 성현이 되는 것입니다.

그건 왜?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시대에 투입하고 투입했지만 더 투입해야 할 이러한 방향을 갖추어 가기 때문에. 성인이면 성인일수록 전체를 대표한 가운데 내 일생을 투입할 뿐만 아니라, 나를 따르는 추종자가 있으면 그 추종자까지 여기에 투입하겠다고, 그 나라가 있으면 그 나라까지 투입하겠다고'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국민성을 지닌다면 그건 위대한 국민입니다. 하나님이 그 국민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있다면 하나님이 절대 필요로 하는 종교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한 자각 위에 선 국민이 있었느냐? 없었어요. 그런 자각 위에 선 종교가 있었느냐? 전부 다 종교에 들어가서 자기 하나 구원받기 위해서 사방을 부정해 버리고, 고독단신된 입장에 서 가지고 생명의 인연을 찾고자 한다면…. 그렇게 해서 만약에 그것이 이루어져 가지고 생명을 찾으면 어떻게 할 테예요? 대롱대롱 해서 그냥 그대로 갈 것이 아니냐. 거기서 기뻐했다 하게 되면 그는 역사시대에 선조들의 모든 죄와 인연을 전부 다 부정하고 가는 사람이다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선조를 부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자체의 근본을 부정하는 사람이 된다 이겁니다.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럴 수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전체를 대표한 '나'라는 자각을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 가정을 대표해 가지고 가정을 대표한 '나'라는 사람으로서 나서게 될 때에, 그 가정을 대표한 '나'라는 사람은 가정에 빚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빚을 지는 사람이어서는 안 돼요. 가정에 빚을 지워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 거라구요. 가정을 대표했다는 대표자는 가정 앞에 무엇을 투입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왜? 가정을 대표해 가지고 하나님이 하는 놀음을 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서기 때문에, 이 우주의 중심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가정의 중심으로 설정됩니다.

하나의 종족이 있으면 종족 전체를 대해 가지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 종족을 내가 대표했다 할 수 있으려면 그 종족 앞에 무엇을 투입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그 종족의 중심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종족으로부터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니라, 투입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남겨야 되겠다. 무엇을 투입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이렇게 될 때는 틀림없이 그 종족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왜 중심이 되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중심으로 안 세우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빚을 갚을 땐 보태서 갚아야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통일교회면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에, '통일교회 교인이다' 하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이겁니다. 통일교회는 어떠한 교회냐? 따라가려고 하는 교회냐, 주체가 되겠다는 교회냐? 하나님의 섭리를 대표해서 첫번째로 나서서 그 뜻을 완결시키겠다는 교회면 교회일수록 단단한 주체성을 가져야 됩니다.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여기 있는 선생님이면 선생님 자체가 '내가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사람이다' 한다면 통일교회 사람에게 신세를 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 투입을 해야 되겠다. 생애를 바쳐 투입해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통일교회 중심 자격자로서 당당하다 이거예요. 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그는 빚을 물 수 있는 자격자가 될것입니다.

나라면 나라를 중심삼고 나라를 지도하는 사람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그 나라를 대해 가지고 불철주야 그 나라 국민을 위해 투입하면 그는 애국자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나라의 주권자를 평가해야 됩니다. 그는 일신을 투입하는 동시에 자기 가정을 투입하고, 그 대신 명예와 영광을 하나님 앞에 귀결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공적인 이상실현을 바라보면서, 나는 언제나 빚진 자로서 겸손한 입장에 서 가지고 내 모든 것을 더 투입하겠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주권자가 있다면 그는 의인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왜 이래야 되느냐? 역사는 흘러온 대로 이어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강물이 그렇지 않아요? 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은 아무리 크더라도 흘러온 대로 이어받아 높은 언덕이 있으면 그걸 넘어가야 되고 골짜기가 있으면 흘러가야 된다구요. 이어받아 흐르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근원되는 근원이 누구냐?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흘러온 대로 흘러갈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주체적 자각을 결정한 사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러지 않고는…. 빚을 갚더라도 주체적인 입장에서 갚아라! 내 책임적으로, 누구 말 듣고 갚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졌으니 으례히 갚아야지요. 갚는 데는 떼어놓고 갚는 것이 아니라구요. 갚는 데는 보태어 갚는 것입니다. 보태어 갚게 되면 빚 지운 사람까지도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빚 지운 사람까지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어젯날은 당당했지만 만일에 다 갚고 한푼이라도 더 그에게 갚아 줬다면 그는 나한테 걸립니다. 이러한 결과가 성립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러한 관계를 두고 볼 때에, 우리는 사회적인 상대적 관계, 혹은 평면적인 상응적 관계라든가 하는 것을 두고 생각해 본다면, 이 주체관은 놀라운 것이예요. 주체관은 누가 절대 점령 못 합니다. 점령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주체관을 갖고 나오는 하나님을 점령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마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또, 여기에는 터치할 수 없다 이거예요. 틀림없이 완성을 하고, 틀림없이 해 나온다는 거예요. 누가 여기에 불평을 할 수 없고, 누가 여기에 개재할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대표가 되려면 영향을 미쳐야 되는 것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 다시 한 번 분석해 보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태어났느냐? 여러분의 선조를 생각해 봐요. '아! 지금 나는 어떻고 어떻다. 내가 이만했으면 이 사회에서 성공했고, 내가 이만했으면 됐지. 누구한테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거쳐온 역사시대를 생각하게 되면 여러분 선조들이 전부 다 성인 군자예요? 별의별 선조가 다 있지요? 부계(父系)를 두고 보면 좋을는지 모르지만 모계 (母系)를 두고 보면 뭐 별의별 패들이 다 섞여져 있다구요. 안 그래요? 지금에 와서는 근사하게 탈을 쓰고 나타났지만 그 배후를 들춰 보면 뭐 오잡탕, 별의별 잡동사니가 다 연결돼 있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그걸 끊고 내가 자랑하겠어요, 그걸 달고 자랑하겠어요?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끊어 버릴 때까지 달려 있다는 거라구요.

또, 대한민국 하게 되면 대한민국에 나 혼자다 그렇게 되나요? 대한민국 하게 되면 남한 국민이 3천 5백만이 있으면 3천 5백만 국민 전체를 단 대한민국 사람이지. 나 혼자니까 맘대로 해? 천만에. 외국에 나가 가지고 한 사람 잘못하게 되면 대한민국이 팔려 넘어간다구요.

우리 예진이가 현재 뉴욕에 있는 마스터 스쿨 (Master School)에 다니고 있다구. 여기는 여자 학교인데 한국 사람이 비로소 그 학교에 처음 들어갔다나요? 그 학교가 생긴 이후에…. 그래서 '한국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한국을 지금까지 소문 듣고 나쁘게 봤는데, 어디 한국이 어떠한 곳이냐? 그럴 거예요. 어디서 알아보려고 할 것이냐? 거 할수없다구요. 우리 예진이 한 애기를 통해 가지고 할 거예요. '저게 한국 사람이다' 그럴 거라구요.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기를 '너 하나의 행동이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모든 면에서 한국의 역사를 빛낼 수 있는 것은 네가 할 책임이다. 그걸 알고 공부하는 데도 악착같이 하라'고 한 거예요. 우리 예진이는 누구한테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지면 아주 밤잠을 못 자요. 그건 선생님과 같은 성격이라구요. 밤잠을 못 자는 사람이거든요. 이래 가지고 일년 후에 통신표를 보고 전부 선생님이 칭찬을 했다구요. 일년 동안에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것 보고 '아! 한국 사람은 머리가 좋다! 야! 한국 사람 착실하다! 서양 사람과는 다르다' 한다구요. 다를 수 밖에…. (웃음) 그렇게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한국 사람들 다 떼어 버린 나, 역사적 시대 다 피어 버린 나가 되겠어요. 한국 사람을 대표한 나가 되겠어요, 역사적 조상을 대표한 나가 되겠어요? 어떤 걸 원해요? 대답해 봐요. 어떤 걸 원해요? 전부 다 나 혼자로서의 '나' 되겠다는 녀석은 잡아 죽이라는 거예요. 그걸 원하는 녀석은 개만도 못하다구요, 개만도. 안 그래요? 욕심을 갖고 큰 것을 원해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 조상이 조금만 좋으면 '아, 우리 조상은 박혁거세니 뭐 어떻고…' 하고 자랑하지요? 거 왜 자랑해요, 왜? 조상이 무슨 관계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외국 나가게 되면 너희 나라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요즘엔 통일교회 문선생을 대한민국에서는 욕을 하고 있는데 이 교포들 가운데는 대한민국에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레버런 문?' 한다구요. 이 녀석들! 내가 그랬어요. 엊그제까지 반대하더니 이제 와서는 뭐 자랑할 것이 레버런 문이야? 놀긴 잘 놀고 있다!

그 무엇인가를 대표하고 말이예요. 자기 울타리의 위신을 울타리를 쳐가지고 그 울타리에 높은 것을 중심삼고 거기에 올라가고 싶어하는 것이 여러분의 땅보다 더 두꺼운 욕심쟁이의 사람 마음이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난 그렇다구요. 여러분은 안 그런지 난 모르겠구만…. 그 대표해서 서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구요. 여자들도 그렇지요? 그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내가 대한민국만 대표하겠느냐, 이 40억 인류를 대표하겠느냐? 어떤 것을 대표하고 싶어요? 답은 40억…. 사실 대표할 수 있느냐 할 때는 대답은 했지만 '글쎄…' 이런다는 거예요. 그 대표한다는 것은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줘야 돼요. 40억을 대표하려면 그들한테 받고 주는 데는 더 줄 수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야 남아지지 만일 받고 더 못 주면 흘러가 버립니다.

빚져 가지고는 절대로 천국은 못 들어간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 같은 양반들은 참 놀라운 인생살이, 인생 철학에 대한 비전(秘傳)을 파악한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거예요. 왜? 죽으면서 원수들에게 하는 말이 '저들 앞에 복을 빌어 주시옵소서'였어요. 이게 참 멋지다는 거라구요. 요 한마디가 하나님의 미래의 소망을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죄인된 인간들을 몇백 번이라도 용서한 하나님의 그 마음을 몽땅 품을 수 있는 말이라구요. 놀라운 말이라구요. 그 한마디가 '과연 내 아들다운 너다' 하고 하나님이 말할 수 있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미래를 향하여 달리자! 나는 죽지만 내 후손은 후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죽지만 너라도 가야 된다! 그의 가르침은 이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주체적 인연을 혼자 다 지키고 간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시대에 빚을 안 지려고 한 사람입니다. 빚을 주면 줬지 빚을 안 지려고 하고 간 사람이 역사시대의 성현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비참한 자리에 몰리고 아무리 영어의 몸이 돼서 생사의 경계에 서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면서 빚을 지는 것을 원치 않고 간 사람들이 역사를 지배해 나오는 것만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왜 그러한 사람들이 역사적 인물이 되느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겠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남겨 둬야 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보호해야 되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이 역사적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맞아요, 안 맞아요? 「맞습니다」 맞으면 여러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어디 남자분들, 그래요?「예」 남의 얘기 하지 말고 나 나 나….

대한민국 사람들은 말이예요. 대한민국 사람들은 뭘 좋아하는 사람들이냐 할 때. '구제물품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하는데, 그 말 들을 때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나빠요」 얼마나 나빠요? 한국 격언에 양반집 자식이 얼어 죽어도 뭘 안 쪼인다구요?「겻불 안 쬔다」 그건 됐다 이거예요. 겻불 안 쪼인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감사하며 죽어야지. 원망하며 죽으면 그건 뭐 판이라구요, 낙제라는 거예요, 죽을 때도.

자. 빚지는 사람이 빚져 가지고 당당한 사람이 있어요? '나 빚 얼마졌다. 이놈들아! 나와 같이 되어라' 그래요? 빚진 사람이 당당한 사람 봤어요? 아무리 학박사라도 빚져 놓으면 꼼짝 못해요. 아무리 국민학교도 못나온 사람이라도 '박사님 내 빚 어떻게 됐소? 할 때 없으면 …. 아, 미안하네' 해야지요? 안경을 콧등에 걸치고 옆으로 바라보면서…. 그래요, 안그래요? 빚지고는 말이 가치가 없다구요. 그렇지만 빚 안 졌다면 '야, 이 녀석아 잘해라?' 하더라도 당당하지요? 박사 권위를 당당히 발휘할 수 있는 거라구요.

이렇게 볼 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 통일교회 믿기 시작해 가지고 통일교회에 빚을 졌나요, 통일교회에 빚을 지웠나요? 이렇게 생각할 때, 어떻게 생각해요? 뭐 빚진 게 없지요, 사실이야. 통일교회 조금 다녔지, 빚은 무슨 빚이야? 그건 뭐 빚이라고 하겠나? 그건 어느 교회와 마찬가지지 뭐. 어때요? 통일교회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인생살이에 있어서 어디 적자 났어요, 흑자 났어요?「흑자 났습니다」 흑자? 흑자 났으면 누구 때문에?「아버님 때문에」 통일교회 때문이예요. 아버님은 벌써 몇 단계 지나간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답을 그렇게 하면 그건 낙제라구요. 흑자가 났으면 그건 누구 때문에 났느냐 하면 그건 통일교회 때문에 ….

그러면 그 흑자 난 것이 자기가 잘나서 그랬나요. 통일교회가 잘나서 그랬나요? 통일교회가 잘나서, 그래 누구 때문에 흑자 났느냐? 통일교회 때문에, 통일교회 때문에 흑자 났다는 것은 뭐냐 하면, 통일교회 때문에 내 자신이 빚을 졌다 그 말이라구요. 그 말 아니예요? 그래 통일교회 한테 빚졌어요?「예」 정말?「예」 빚진 것을 확실히 알면 됐다구요. 틀림없이 빚을 졌다구요.

여러분, 천당에 가 보라구요. 영계를 가 보면 빚지고 온 사람은 절대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떤 곳이냐? 빚진 사람은 절대 못 들어 간다 이겁니다. 빚을 지우고 온 사람들이 들어간다구요. 간단하지요? 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천국은 어떤 사람이 들어가느냐? 대학교 교수, 무슨 목사, 대장 목사가 가는 것이 아니라구요. 통일교회 문선생도 할수없다구요. 빚지고 가는 날에는 걸려 버린다 이거예요. 내 소임.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못 하고는 못 가는 거라구요. 걸린다구요.

장권사님. 장권사님은 빚졌나요, 안 졌나요?「빚졌습니다. 많이 졌습니다」 그래 그 빚을 언제 갚겠나요?

통일교회 주체국으로서 세계에 빚져서야

내가 오늘 한국에 와 가지고 이런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지만 말이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해야 되겠다구요, 듣기 싫어도. 그리고 가만 보면 한국이 주체국인데…. 주체국이 빚지고 주체국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정신 빠진 녀석이라구요. 주체라는 것은 상대를 위하여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죠? 그것이 원리원칙이예요. 원리원칙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원리를 주장하고 원리의 길을 따라가겠다는 한국의 통일교회 패들…. 패들 하면 좀 섭섭하기 때문에 분들이 돼야 된다구요. '우리는 세계 앞에 빚을 안 진다'는 입장에 서야 돼요. 지금 한국 통일교회 교인들이 빚을 지고 싶어하오, 빚을 안 지고 싶어하오? 어디 대답해 보라요. 빚을 안 지고 싶어해요. 빚을 지고 싶어해요?「안 지고 싶습니다」 안 지고 싶지만 할수없이 지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나요?「갚아야 됩니다」 몇 배로? 할수없이 질 때는 배가해서 갚아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이제 떡 한국에 오게 되면 말이예요. 전부 와 가지고 하는 말이 무슨 뭐 '교회가 없습니다. 교회 사주소' 하는데 언제 나한테 빚을 지웠다고 말이예요. 당당하구만요. 또 와서는 '돈이 이만큼 필요합니다' 이건 배짱이 대단하다구요. 자, 이거 한국의 김포인지 금포인지 모르겠구만요. 여기에 떡 내리게 되면 아이쿠, 또 뭐…. 아이쿠, 내가 달려 내려 오누만. 내가 달려 내려온다구요.

어디 여러분이 선생님 앞에 빚을 졌으면 이제는 선생님한테 빚 좀 갚아야지요? 빚을 더 질 거예요. 빚을 갚을 거예요?「갚아야지요」 갚을 거예요? 갚으려고 얼마만큼 노력해 봤어요? 빚지운 사람보다도 더 노력해야 된다 이거예요. 채권자보다도 채무자는 더 노력해야 돼요. 채권자는 잠을 자더라도 채무자는 잠을 못 자는 거예요. 채권자는 밥을 먹더라도 채무자는 밥을 못 먹는 거예요. 그래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지요? 그래야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 패들은 '아! 우리 선생님이 차 타고 다니는데 나도 부장쯤 줬으니 차가 없으면 일 못 하겠소' 그러는데 다리를 잘라 버리고 싶은….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서는, 차를 사기 위해서는 말이예요, 30년 역사를 거쳐 가지고 안팎으로 보나 당당한 자리에서 차를 타고 다닌다는 거예요. 이건 뭐 절름발이 무슨 곰배팔이 전부 다 이래 가지고 차를 타고 다니겠다고…. 그것 됐어요, 안 됐어요? 됐어요, 안 됐어요?「안 됐습니다」또, 내가 타박타박 걸어 다니면 임자네들이 상통이 좋겠구만. 걸어 다닐 수 있는 아량도 있는 사람이라구요. 싫다는 것 아니라구요. 이건 자기 자신도 몰라 가지고 전부 다 …. 그렇게 생각하다가는 저기 왕궁에 앉아 있는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나 하나님의 아들 된다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나 보좌 앞에 올라갑니다. 알아주소' 그럴 거 아니예요? 그게 통할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빚을 갚아야 된다 이겁니다. 빚을 갚아야 됩니다. 내가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 앞에 꿈에라도 빚지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구요. 대한민국 이 나라 앞에 꿈에라도 빚지려고 생각지 않는다구요. 그 누구한테도 빚지려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내가 이런 것을 아는 거예요. 내 일생에서 지난날 어떤 옥중, 어떠한 한 때에 그러한 일이 있었으면 그 일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고, 그 일들을 전부 다 내가 잊어 본 적이 없는 거라구요. '이것은 내가 일생에서 갚는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갚아 보지 못한 일이 없다 이거예요. 만일에 그 사람이 없게 되면 몇 배로 딴 사람을 통해서 그런 조건을 걸고 전부 다 갚아 왔다구요. 죽되 빚지고 죽은 무덤을 남기고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 선생님의 생활철학이라구요. 인생관이다 이겁니다.

빚지는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해

자, 보라구요. 기성교회에서 통일교회 문선생이 뭐 어떻고 어떻고 지금까지 30년 동안 계속해서 반대했다구요. 이거 내 성격으로 하게 되면…. 내가 무엇에도. 힘내기 하더라도 지지 않는다구요. 무슨 머리를 써 가지고 그놈 망하게 하려면 할 수 있다구요. 지독한 사람인데 이거 하나님을 알다 보니 이렇게 됐구만. 반남(半男)이 중에 이런 반남이 없고, 뭐라고 할까,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없을 만큼 수치감을 느낄 때가 많다구요. 그렇다고 그렇다고 베어 버릴 수 없고… . 베어 버리면 세상이 전부 다 무너지는데…. 이놈의 세상! 이래 가지고 이래도 가만 있고 저래도 가만있고….

30년을 반대하고…. 그거 대한민국에서만 하면 몰라도 미국까지 따라와 가지고…. 하기야 미친개야 죽을 때까지 짖지요. 주인을 모르고 주인을 보고도 짖으니까 그건 미친개라구요. 그래 짖어라! 그렇지만 내 한가지 아는 것은 기성교회가 나를 향해 짖으면, 잘못 짖었다가는 나한테 빚을 지는 것이다! 배상을 물어야 된다! 배상을 무는 날에는 천상에 가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된다! 그걸 안다구요.

보라구요. 나는 대한민국에 빚을 안 질 것이고, 통일교회에 빚을 안 질것이고, 어디 가더라도 빚을 안 질 것이다! 그것만은 틀림없다! 잠을 안자는 데에도 내 누구한테 지지 않을 것이고, 내 생활에서도 모든 면에서 지지 않는다 이거예요. 절대 지지 않을 것이고, 빚을 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선생님의 지금까지의 생활철학이라구요.

지금 여러분들 어머니 아버지 좋아하는 것은 뭐냐 이거예요. 어머니 아버지 신세를 지고 말이예요. 거 신세를 지는 것은 좋다구요. 클 때까지는 커 가지고는 그 신세를 갚아야 된다구요. 갚지 못하면 생신날이라도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아버지, 일생 동안 수고해서 나를 키워 주셨는데. 내가 잘살지 못해서 어머니 앞에 큰상은 못 차려 드리지만 이것이라도 드십시오' 이래야 된다구요. 닭 한 마리라도 좋다는 거예요. 청어 한마리라도 좋아요. 눈물과 더불어 이런 것을 기억하시고 용서해 달라고 하게 되면 그 부모는 가중해서 축복을 해줄 것이 아니냐. 그는 마음으로 빚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실정을 볼 때, 금년에도 그렇다구요. 유엔총회에서 지금 북괴가 수십 명의 파견대를 보내 가지고, 파견되어 있는 각국의 대사들을 중심삼고 밤낮없이 활동하고 전부 다 이런다 이겁니다. 대한민국은 그저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그저 이러고 있다구요.

자, 이거 내가 대한민국 전체를 책임지지 않았는데 이걸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내가 포기하느냐 안 하느냐? 세계적인 책임도 져야 할 텐데, 지금 한푼이라도 돈이 있으면 세계 구원하는 일에 써야 할 텐데. 거 대한민국을 대해 가지고 이런 일을 해야 되느냐? 작년에 내가 책임 다했다구요. 당당코 다 했다구요. 내가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나라에 할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거예요. 만일에 어떤 조상들이 나한테 나타나 가지고 하더라도 당당히 나는 대한민국에 대해 할 책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통일교회 자체로 볼 때도 대한민국에 대해서 할 책임 다했다 이거예요. 나는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다 했다 이거예요. 대한민국 앞에 빚져 오지 않았다 이겁니다. 대한민국 기관 앞에 빚져 오지 않았습니다. 한푼도 빚져 오지 않았다구요. 오히려 대한민국에 영향 미칠 수 있는 일을 해 왔지요.

지금 미국에서도 통일교회를 대해서 이러고저러고하지만 '나 문 아무 개는 이 미국 국민에게 빚지러 온 사람이 아니다. 너희들한테 빚을 지우러 왔다. 너희들이 나를 버리면 너희 후손이 청산해야 될 것이다'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내가 여기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철칙을 갖고 이 미국 땅을 붙들고 쓰러지는 날에는, 미국 국민은 여기에 머리 숙여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 빚지지 말라는 거라구요. 빚진 사람은 하나님도 싫어하는 거라구요. 너희들도 빚진 사람을 좋아해요? 아! 그 얼굴은 잘나고 세계 일등 미남인데 빚을 많이 졌다면, 그 남자한테 시집가겠다는 여자 있어요?

빚을 지면 반드시 갚아야 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귀섭리를 중심삼고 6천 년 역사과정을, 문화사 과정을 다시 한 번 더듬어 보게 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참 한날의 소망을 남겨 주기 위해 수고를 했겠느냐? 그분한테 걸어 가지고 내가 단 일년이라도, 단 십년이라도 그분의 심정 앞에 빚을 갚을 수 있는 보람 있는 내가 되겠다고 얼마나 노력해 봤느냐 이거예요.

오늘 통일교회 역사를 볼 때, 피눈물 나는 투쟁의 역사를 거쳐왔지만, 이 역사를 내가 전체를 대표해서 전체를 안고 통일교회 복판에 서 가지고, 내가 여기 통일교회에서 빚진 것은 내 스스로 이 자리에 있어서 내 자체가 희생되더라도 갚겠다고 어느 때 한번이라도 그래 봤느냐 이겁니다. 전부 다 구경하기 좋아했고 말이예요, 자기에게 이익될 수 있으면 쓰윽 계산을 하기에 빨랐지요. 미욱한 사람같이…. 옛날 충신 뭐 애국자들도 전부 다 미욱한 사람들이라구요. 미욱한 사람이라구요. 계산이 빠른 수학자들은 없다구요.

이번에도 그렇다구요. 이번에도 130개 국가에 선교사로 미국 사람, 독일 사람, 일본 사람을 파송하면서 대한민국 사람은 빠졌구만! 이걸 생각할 때 아! 한국 사람들은 복도 많다! 복 많지요? 복이 많지요? 복이 많나요. 화가 오나요? 대답해 보라구요. 복이 많아요? 복이 찾아오나요, 화가 찾아오나요?「화가 찾아옵니다」 화가 찾아온다구요.

그런 생각 할 때, 어찌하여 한국 사람들을 각국 나라에 파송 못 하느냐 이거예요. 국가적 입장이 그 나라들과 다르다 이거예요. 어려운 자리에 있다 이거예요. 그 어려운 자리는 대한민국 사정이지. 하나님 앞에는 그것 안 통한다 이겁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들 앞에 빚을 졌다 이겁니다. 본래는 세계의 개척은 한국 통일교회 본부가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수난길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선두에 섰다는 것은 한국 통일교회 여러분들의 부끄러움이예요. 이건 빚을 지고 있는 거라구요. 단 한 가지 내가 그 이상의 선두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 대한민국은 나를 통해서 탕감해 주소' 그런 기도는 가능한 거라구요. 이런 걸 알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래 지금 한국에 여러분들이 그렇다구요. '아! 외국의 통일교회가 발전하면 전부 다…. 이제 여의도 본부 짓는 것도 선생님이 외국에서 금보따리를 가지고 와서 전부 다 지어 줄 것이다. 아이구 좋아? 그러지요? 거 기분 좋지요? 짓는 거야 어떻게 하든지 짓지만, 짓는 날에는 대한민국 사람은 빚을 갚아야 돼요. 그래서 종으로 잡아 쓰는 거라구요. 그것밖에 길이 없다구요. 그것밖에 길이 없잖아요? 거기에 들어가 가지고 높은 책상에 앉아 가지고 명령하는 사람들은 임자네들이 못 되고, 임자네들은 명령을 받으면서 종의 자리에서 빚진 자로서의 탕감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게 선생님의 사고방식이라구요. 그게 그릇됐다고 하는 사람은 사고방식이 틀린 거라구요. 본부 세우는 것이 대한민국에 영광스러운 것이냐? 세계의 영광은 될는 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자체의 영광은 못 되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이 통일교회 선생 노릇 하기 참 힘듭니다. 내가 이런 얘기 해서는 안됐지만 말이예요. 자. 이건 뭐 가는 데마다 싸움이라구요. 어느 하루 편안한 날이 없거든요. 사방에서 들어오는 보고는 그저 24시간 전부가 그저 싸움 이야기로구만. 거 기분 좋지요?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좋은 보고라는 것은 뭐…. 다 형편이 없는 것들이라구요. 좋은 보고라도 내가 여기에 손질을 해야 되고 말이예요. 그렇다고 해서 이걸 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내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이런 놀음 못 한다구요. 안 하는 것보다 못한다구요. 하나님이 그런 분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죽지 않고 남았고, 지금까지 질긴 사나이예요, 질긴 사나이. 찔긴 사나이로 남아졌다구요. 왜? 하나님이 질기게 싸워 나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보라구요. 절대 너희들은 나가 가지고 120명 중심삼은 교회를 하나 세워야 주체국의 하나의 신자로서 위신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가 전도한다 해 가지고도 교회 하나 못 만들고 말이예요. 전부 다 이래 가지고…. 때는 왔는데 이거 거지떼들이 되어 있고 말이예요. 망신, 쫄딱 망신당하게 돼 있다 이겁니다. 그 망신이 임자네들만의 망신이 아니라구요. 한국의 망신이고 한국에서 태어난 선생님의 망신이다 이거예요. 이래서는 안 되겠지만 할수없어요.

보라구요. 이번에 165개소나 되는 교회를 전부 다, 군소재지까지 전부다 일괄적으로 교회를 지어라 해 가지고 돈을 나누어 준다고 하니까 한푼이라도 더 타 가려고 뭐 땅값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데 내가 기가 찼다구요. 그 돈이 어떤 돈이라고…. 무가치하게 받다가는 민족을 팔아먹는다구요. 난 그렇게 봅니다. 무가치하게 받다가는 민족을 팔아먹고 여러분 후손을 팔아먹는다 이겁니다. 씨는 한국에서 뿌려서 씨를 거두었는데 심기는 딴 데 가서 심어서 풍년 농사를 짓는다 이겁니다. 이 땅은 박토가 될 것이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내 활동을 통하여, 내 사상을 통하여 무엇을 줘라, 남겨라 이겁니다. 각 회사의 사장은 그 회사에 무엇을 남겨야 할 것이고, 하나의 직원이면 직원으로서 뭘 남겨야지, 빚지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기생충이예요. 그것은 제거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이것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효자가 뭐예요? 효자는 그 부모 앞에 신세진 것을 고맙게 생각해 가지고 십 배, 백 배 이상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효자가 되는 것이예요. 나라면 나라나 군왕을 대해 가지고 신세진 것의 십 배, 백 배 이상 자기 전체를 다해서 몇십 배, 몇백 배를 갚겠다고 하는 것이 충신이 아니냐.

성인이 다른 게 아니라구요. 인류에게 빚을 안 졌지만 빚을 남겨 줘 가지고 복을 전부 다 만민 앞에 남겨 주기 위해서. 알아주나 몰라주나 허덕이고 불쌍하게 사라지더라도 일생을 감사히 간 사람이 성인이다 이거예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더라 이거예요. 역사를 움직여 나오고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다 이겁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보호해 줘야 할 책임이 있으니 그런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 오늘 돌아가게 되면 생각해 보라구요.

한번 약속했으면 망하더라도 지켜야 한다

내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빚을 진 사람이예요. 더우기나 우리 어머니한테는 빚진 사람입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줬지만, 내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옷 한 벌 못 해준 사람이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머니한테 빚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그 대신 어머니한테 하지 못한 것을 내가 만민 앞에 할 것이고, 하나님 앞에 할 것이다…. 그 어머니의 공으로 말미암아 만민이 치하하고, 하나님이 치하할 수 있게 될 때는 그 어머니는 아들로부터 하나도 받지 못한 것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의 조건이 된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공적 이치는, 공의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혼탁한 세상이 되고, 아무리 방향이 상실된 역사의 흐름이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의 법도는 그 방향 밑에 깊은 곳이라도 방향을 잃지 않고 흘러간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건 간단하다는 거라구요. 무엇을 남길 것이냐? 무엇을 빚으로 남기고 갈 것이냐? 여러분이 이걸 알고….

빚이라는 것은…. 누구를 대하게 된다면 그렇잖아요? 말 한마디라도 고맙게 대하면 '감사합니다' 그러지요? 다 빚 갚는 놀음이라구요. 여름에 물 한 그릇 주게 되면 '감사합니다' 그러지요? 치하를 하지요? 그거 다 갚는 놀음이라구요, 다. 빚을 안 지겠다고, 빚을 안 지기 위한 놀음이라구요. 인사법이나 모든 선물들도 다 그거라구요. 조건을 세워 가지고라도 자기가 빚 안 지기 위해 탕감법에 의해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살이다 하는 것은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다구요.

그래 선생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아이구! 내가 돈이 필요하니 돈 주소' 나 그거 시시해서 그런 기도를 지금까지 못 해봤다구요.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해 봤지만 돈 때문에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 돈은 그냥 생기는 거예요. 사람 있으면 돈은 생기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표어를 세워 나오던 것이 세 가지 있어요, 세 가지, 하나는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내가 나서게 될 때는 세상 사람 못 믿는 것을 내가 믿어야 되겠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이라도 못 믿을 게 없다! 어머니 아버지까지 잡아 제사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면 그것도 실천할 것이다! 그런 인륜도덕을 벗어난 명령을 하는 하나님의 곡절은 얼마나 클 것이냐? 그럼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구원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해야지요. 역사에 없는 불효의 이름을 남기더라도….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는 그것이 불효가 아니지 않느냐. 제일 못 믿을 말을 나에게 해주소, 하나님! 그다음엔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느냐? 베드로와 같은 믿음, 베드로 이상의 믿음….

그 다음엔 뭐냐? 지혜! 사리 판단에 대한 명확한 주체성을 갖지 않고는 지도자가 못 됩니다. 솔로몬의 지혜 같은 이상의 지혜를 주시옵소서!

또, 그 다음엔 뭐냐? 사랑! 예수가 하지 못한 사랑을 내가 해야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을 초월해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수많은 민족이라도 내가 사랑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는 나한테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겁니다. 누구든지 그 사랑을 따라 가지고 전부 다 끌려온다 이거예요. 끝날은 사랑이 메마른 시대이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새로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겁니다.

이 세 가지가 선생님이 지금까지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거 기도하다 보니 언제 그렇게 됐는지 다 이루어졌다 이겁니다. 언제나 믿지 못할 놀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더라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믿는 놀음을 하는 사람이 아니예요. 그래서 뭐 벌써 세계 사람들이 '레버런 문은 믿을 수 없다' 하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돼 버렸다 이거예요. 그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구요. 이상한 신비에 싸인 수수께끼의 놀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더라 이겁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또, 내가 지금까지 책임자로서 인사 조치는 이렇게 해야 되고, 어떻게 해야 된다는 원칙을 세워 나온 거라구요. 누구든지 다 천하가 반대 못할 원칙을 따라서 지금까지 움직여 나온 거라구요. 또 사랑 문제에 대해서도….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미국 사람도, 독일 사람도…. 이번에 25개 국에서 국제부흥단이 왔는데, 내가 이번에 해운대 극동호텔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무슨 호텔 매니저들 뭐 호텔 패들이 전부 다 '외국 사람들 한 6백 명이 오고 아이구! 통일교회 문선생이 왔단다' 해 가지고 유리창 밖에서 쭉 서서 보고…. 그 분위기를 보니까 그게 꿈같은 사실이라는 겁니다. 거 선생님과 어떻게 그렇게 하나됐는지….

자기들 알기에는 뭐 통일교회가 여기 와서 훈련시키는 줄 알았더니 이미 문선생의 손발이 돼 가지고 죽으라면 죽을 수 있는 무리들을 다 데려 왔다 이겁니다. 거 언제 다 그렇게 만들어 왔노? 그건 연구해도 모르지요. 만들긴 뭘 만들었어, 자기네들이 그렇게 됐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명령만 하면 그 집안의 어머니 아버지의 모든 비밀까지 내가 보고받을 수 있고 말이예요. 내가 악독한, 뭐랄까 그야말로 독재자가 됐으면 별의별 놀음 다 할 수 있는 판도를 갖고 있지 않느냐. 그건 왜? 그 사람들이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임자네들에게 뭐 이런 말을 하면, 나 모르겠어요. 나 사랑하지 않는지. '내가 언제 선생님 사랑했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예외구요. 그는 미치지 못한 사람이고 통일교회 내용도 모르는 패들이라구요. 그래, 여러분들도 선생님 좋아해요?「예」 얼마나? 얼마나 좋아해요? 그건 왜 좋아하는 거예요? 뭐 밥이 나와요, 떡이 나와요? 그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걸 보게 되면 내가 내 욕심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내게 밥을 주고, 지식을 주고, 권세를 주소' 그건 시시해요. 그런 기도 안 한다구요. 이건 인간이 영원히 역사시대에 역사의 중심사조가 되고 남아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거예요. 믿음을 가졌으면 의리가 있어야 된다구요, 의리가 있어야 돼요. 한번 약속했으면 망하더라도 순응해야 된다 이겁니다. '아이구! 난 약속했지만 망하는 것은 싫소' 그것은…. 하늘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약속을 했으면 약속을 달게 감수해야 된다구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목표를 정해 가지고, 뭐 내가 이런 목표를 정했다는 것은 내 자신이 잘 되기보다는, 빚을 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빚을 져서는 안 되겠고, 하나님 뜻 앞에 빚을 져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런 중요한 문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했다 그 말이라구요.

빚 안 지기 위해서 노력하자

자, 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대학 교수로 말하면 박봉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피눈물 나는 심정을 가지고 더 열렬히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그는 훌륭한 교수가 될 것입니다. 그건 왜? 내가 빚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빚지울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남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부모가 생활이 어려워서 외적인 물질로서는 자식에게 못 주지만 눈물과 더불어 뼈, 골수에 흘러 나오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그 자식을 누구보다도 위하게 될 때는, 그 자식은 그 어머니 앞에 누구보다 빚지는 거예요. 그 부모 앞에 빚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아는 그러한 자식들은…. 도리어 효자는 부자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구요. 가난한 사람의 가정에서 품겨 자라난 자식들 중에서 효자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 거예요. 어머니가 그런 전통을 남겨 왔기 때문에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어머니 대해 가지고 빚 안지겠다고 노력하게 될 때, 그 어머니도 자식을 키운 보람을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잘되기 위해서는 그 국민이 대한민국에 빚지겠다고…. 구제품이고, 무슨 뭐 기부고, 뭐 어떻고, 공짜나 바라는 국민은 필요 없다 이겁니다. 나라 앞에 빚을 지우고 가겠다고 할 수 있는 국민이 있다면 그 국가는 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는 어떻게 될 것이냐? 여러분 통일교회 자체 식구들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여기서부터 연단하는 데 있어서는 각 분야에서 세계의 어떠한 부처(친초)에 가 있더라도 나는 빚을 안 질 것이다, 빚을 지우고 갈 것이다. 이러한 소신이 세계의 어떠한 환경과 범위를 넘어서서 그런 소행을 감당할 수 있게 될 때는, 통일교회는 세계의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건 왜?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주의 중심된 권위를 지녀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모양은 안된 모양이었지만 그 자체는 중심 자리를 잃지 않고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에 설 것이다 하는 것이 인륜 사회의 원칙이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중심 골자 노정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빚지지 않고 빚을 지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서 말씀드렸어요.

​기 도

​아버님! 여기에 서 있는 이 자식도 당신 앞에 한 많은 역사적 심정을 헤아리면서, 그 모든 양으로써는 갚을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한 많은 당신의 심정을 위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정성어린 모습을 가지고 그 빚을 갚기에 충성을 다해야 할 길만이 남아진 것을 알고 지금까지 30여 평생의 투쟁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지치지 않았습니다. 왜? 제가 빚을 갚아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민족에게 그러하고, 세계에게 그러해야 할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에게까지 그래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불철주야 쉴수 없는 인생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 가게 되면 그 나라의 산천을 바라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심정적 인연을 세계에 묻고 당신의 심정적 인연을 갖추어 바라는 소망의 한계가 있는 그곳까지 땅 위에 심정적 인연을 넓혀 가지고 세계의 형제들과 더불어, 세계 만민과 더불어 만국의 빚을 지는 자가 아니라 빚을 갚아 주는 무리가 돼야 되겠습니다. 자기 빚뿐만 아니라 남의 빚까지도 내가 대신 짊어져 주고 갚아 주겠다고 하게될 때, 그는 틀림없이 그 나라의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쌍한 통일교회, 갖지 못한 통일교회. 이러한 통일교회지만 1975년 4월을 기하여 130개국에 해당하는 360명이 당신의 뜻을 품고 세계를 향할 수 있는 결의를 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지금 수련 도상에 있어서 그래도 낯선 곳을 향하여 출발을 준비하는 그 자리에서 하늘만을 믿고 근심하지 않는 자유스러운 모습. 앞길을 다투어 자기를 책임지고 보내 달라고 하는 무리들을 바라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아무리 망하라고 해도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수많은 인류를 대표하여 당신 앞에 빚진 것을 대신 탕감시켜 주고, 갚아 주고 도리어 민족을 대신해서 당신 앞에 무엇인가 남겨 줄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이 인류역사에 통일교회의 공헌이 얼마나 클것인가 하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의 공헌으로 말미암아 통일교회가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해방할 수 있는 인연으로서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또 한국 땅에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아진 격전을 치러 나가야 할 몇날 기간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옵소서. 이 한국 땅에 문 아무개의 이름을 높이고 싶은 마음은 꿈에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비참하였던 그 내적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제가 밟히걸랑 당신의 이름이 밟히고 있는 것을 제가 알았기 때문에, 할수없이 이 민족 앞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역사적 슬픔을 품고 사연을 품고 금후에 갈 길을 아버지 앞에 아뢰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 민족을 바라볼 때, 광명한 아침 햇빛을 바라볼 수 있는 민족적 정기가 아니라, 석양빛을 바라보는, 석양길에서 목적도 없이 방황을 하는 나그네의 신세에 처해 있는 이 민족이 된 것을 바라보게 되옵니다. 아버지, 이 민족의 갈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국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위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뼛골에 사무치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과 인류를 위하는 마음과 당신의 뜻을 위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통일교회 교인들은 통일교회를 믿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를 따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의 갈 길을 대신 가는 것이 좋은 것을 이미 알았사오니, 그 길을 취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빚을 지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빚을 지우고 가겠다고 낮이나 밤이나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 비틀 걸음을 하면서도 그 모습으로서 생애를 다할 줄 알면 그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신은 불쌍하게 살았을는지 모르지만 그 후대와 그가 거느리고 그가 남긴 사상적 일면은 기필코 역사를 움직일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럴 수 있게끔,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어린 것들은 이 한국 땅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부디 선생님이 승리하고 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승리는 선생의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승리가 되고, 하나님의 승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사오니, 가는 길을 맡겼사오니 맡긴 대로 지도하여 주시옵고, 어려운 길이 있다 하더라도 감사하면서 그날의 책임을 다하기를 다짐하오니, 아버지,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외국에서 들어왔던 그들의 마음 앞에 이 나라 이 강토에 있어서 그 느끼는 향취가 영원한 생애노정 위에 자랑이 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삼아 주시옵고, 소망의 기준이 보다 높은 차원의 소망으로, 이것이 의무적 소망으로 실천적, 책임적 소망까지 전개시킬 수 있게끔, 아버지, 인연맺어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그날들을 사랑 가운데 지켜 주시옵고, 이제 이 시간 저희들 빚지지 않기를 결심하여 당신 앞에 새로운 내일의 소망의 기대가 될 수 있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