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거쳐서 생애노정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을 두고 볼 때.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의 일을, 하루의 자기가 맡은 바의 직책을 수행해 나가는 데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책임올 수행하고 내가 어떻게 어떻게 하루를 지낸다는 그러한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하루를 지내는 그 모든 것은 내가 바라는 어떠한 목적이면 목적 앞에, 내가 앞날을 두고 성사시키려던 어떠한 뜻이면 뜻 앞에 무의미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길을 출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출발에 앞서 반드시 자기가 가야 할 어떤 원칙적인 방향을 정해 가지고 자기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어떤 목적을 성사시킴으로써 현재의 자기보다도 전진된 자기를 그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우리 인간이 영위하고자 하는 생활 방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방향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자기가 가는 목적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목적도 틀려지는 것입니다. 방향을 달리하게 되면 목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이렇게 해야겠다'고 하던 그 방향이 오늘 아침에 달라졌다면 오늘은 어제와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어제와 다르게 될 때에, 오늘 내가 수고한 모든 공로라는 것은 어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년을 중심삼고 볼 때도, 자기가 설정한 어떠한 방향을 중심삼고 일년동안 움직이다가 그 다음 해에 가서는 딴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그 방향은 지난 1년의 기간과는 하등의 관계없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혹은 십년을 두고 볼 때에도, 십년 동안 자기가 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그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하더라도 십년이 지나고 난 후에 다른 방향을 취하게 될 때에는, 이것은 지난 십년과는 하등의 관계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한 개인의 일생을 두고 볼 때, 일생 동안 같은 방향으로 매일같이 노력을 한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혼자서 한 방향만을 향해서 갔기 때문에 그의 일생을 통해서 갖추어진 성과라든가, 그가 쌓은 공적이라든가, 그의 삶에 있어서 보람의 결과는 결국 하나의 결과에 봉착할 것입니다. 그 하나의 결과가 자기에게서 끝나게 될 때는 자기만을 위한 결과가 되는 것이지만, 그 결과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만민을 위한 결과가 될 때에는, 그 결과는 나만을 위한 결과가 아니라 전체를 대표한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일생을 두고 볼 때 그러하다면 역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가 타락은 했지만 타락 이후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 나오면서 인간이 찾아가던 그 방향이, 1천년을 두고 찾아 나가던 방향과 1천년 이후부터 2천년을 향해 나가던 방향이 달라졌다면 세계는 다른 결과의 세계에 부딪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는 3천년에서 4천년을, 4천년에서 5천년을 향해 나가던 방향이 달라지게 되었다면 그 달라진 방향에 따라서 목적이 처한 위치 또한 동으로, 혹은 서로 남으로 북으로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이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은 어떠한 방향을 잡으실 것이냐?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3천년, 4천년까지는 이렇게 이렇게 방향을 설정해 나가시다가 5천년, 6천년 시대에 가서는 방향을 달리해 가지고 저렇게 저렇게 나가신다 할 때에는 3천년, 4천년 시대에 수고한 목적의 결과와 5천년, 6천년 시대에 수고한 결과는 판이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복귀섭리노정에서 변하는 방향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 아니냐, 항시 인간을 보다 가치적인 존재로, 더 높은 은사의 자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변하는 노정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변하는 노정을 취하지 않고 맨처음 출발하던 것이 끝까지 가 가지고 그 종국에 맨 처음을 대신하는 소원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방향을 처해야 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루의 생활을 미루어 봐서도 타탕한 결론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혹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민족,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여기에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무엇이냐? 변할 수 없는 하나의 방향을 갖추어 나가는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일치시켜 나가는 어떠한 조상이 있어야 되고, 그 조상으로 말미암은 후손이 있어야 되고, 그 후손이 점점 번식하여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세계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방향에 일치될 수 있는 세계적인 판국을 결정지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그런 종족, 그런 민족, 그런 국가가 있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오랜 역사를 두고 같은 방향을 취해 나오면서 망하지 않고 문화의 내용을 지니고 남아진 민족이 있다 할진대, 섭리를 한 방향으로 추진해 나가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그 하나님과 더불어 설치된 그런 내용을 갖춘 민족이 있다면, 이 민족은 오랜 역사적 전통과 더불어 지금 이 시대에도 없어지지 않고 또 앞으로도 남아질 수 있는 민족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전통을 가진 민족이라든가 국가가 있다면, 이민족이나 이 국가는 오늘날 역사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과 상응적인, 상반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어떤 상응적인 내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끝날이 되면 될수록 기필코 세계적인 민족이 될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6천년 역사를 걸어 나오시면서 민족을 편성하시지 못하고 국가를 편성하시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 나오는 시대 시대에 있어서, 예를 들어 종족적 시대라면 종족적 시대에 있어서, 종족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으로서 하나님이 가시는 섭리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은 세계적인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가 아무리 오래되고, 이시대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그 가정은 역사를 대신하는 가정이 되고, 시대를 대신하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종족적 시대를 지나고 민족적 시대와 국가적 시대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민족적 시대와 국가적 시대권내에 있어서 민족과 국가가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과 일치되지 못했더라도, 민족을 대신하고 국가를 대신한 가정으로서 하나님이 나아가시는 섭리의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민족적이요 국가적인 가정인데, 단일 국가와 단일 민족을 대표하는 가정이 아니라 온 세계를 대표하는 가정이요. 역사를 대표하는 가정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점점 그 범위를 넓혀 가지고 세계적인 시대에 있어서 전세계 국가가 하나님의 방향과 일치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 시대를 대표할수 있는 하나의 개인이나 하나의 가정이 있다면 비록 한 개인이요 하나의 가정이지만, 이 개인과 가정은 하나님의 방향을 중심삼고 볼 때에, 하나님이 거쳐가셔야 할 방향에 있어서 세계를 대표한 중심적인 개인이요 중심적인 가정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은 어느 한 개인의 가정이 아니라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선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중심적인 가정이 없게 될때에는…. 세계적인 시대에 있어서 그 세계적인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횡적으로 연결시켜야 하는데, 이런 중심적인 가정이 없게 될 때에는 횡적인 민족이라든가, 국가, 세계의 중심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어느 시대든지 개인 아니면 가정이 남아지든지, 그런 개인이나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종족이 남아지든지,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민족이 남아지든지,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국가가 남아지든지,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세계가 남아지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입장을 갖추지 못하고는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방향을 유지시켜서 종착점에 가 가지고 세계적인 판도를 넓힐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오랜 역사적 문화라든가 전통을 지니고 있는 국가가 어디에 있느냐? 이것을 생각해볼 때, 어떤 민족이면 민족을 중심삼고 어떠한 제왕이 제창한 주의나 사상보다도 하나님을 위주한 종교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따라 나온 문화권이 오랜 역사적 과정을 지나오면서도 망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가 바라는 목적은 무엇이냐? 선한 나라가 오기 전에 선한 가정을 요구하는 것이요, 선한 가정이 오기 전에 선한 개인을 요구하는 것이 종교가 추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할것이냐? 선한 사람만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선한 사람이 되어 가지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한 생활을 하는 데는 어떠한 선한 생활을 해야 되느냐? 인간들끼리 맺어진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랑을 중심삼고 선한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행복한 사람이란 남자면 남자 혼자서 완성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성이 있으면 여성이 있어 가지고 둘이 완성한 자리에서 하나되는 인연을 맺어야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되는 인연을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도 타락의 인연을 통하여서 이루어지는 사랑을 중심삼고가 아니라 타락의 인연을 벗어난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중심삼고 남자와 여자가 화합하여 가지고 생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생활하는 자리는 일시적으로 하나된 자리가 아니라 영원히 하나된 자리여야 됩니다. 일시적인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일시적인 하나를 이루지만,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영원히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 이후 인간들이 가진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요, 산천은 고금동(山川古今同)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은 매일같이 변합니다. 여러분 개체의 생활노정을 두고 보면 오늘은 이랬다 내일은 저랬다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뭐냐 하면 변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랬다저랬다하는 생활 가운데에서 사랑을 찾는 데 있어서 사랑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남에게는 둘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어디에다 둘 것이냐? 다른 데에다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랬다저랬다하는 관계이니만큼 제삼자에게 그 목적을 둘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에게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이요, 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적관을 두는 데도 상대에게 둘 수 없는 입장입니다. 왜? 서로가 다 변하기 때문에, 오늘 거기에 두었다가는 내일 또 변하기 때문입니다. 즉. 희망을 가졌다가는 절망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요, 소원을 가졌다가는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항시 변하는 인생의 군상(群像) 가운데의 그 누구에게 목적을 두었다가는 그 목적이 크면 클수록 큰 타격을 받기 일쑤이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권내에서는 목적을 두었댔자…. 그러므로 결국은 자기에게밖에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운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이 아무리 소망과 희망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은 자기를 초월할 수 없는 결과에 부딪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가 오늘날 타락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인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일치된 방향을 가졌다면, 항시 변하지 않는 하나의 방향을 가졌다면, 아침에도 그 방향이요, 낮에도 그 방향이요, 저녁에도 그 방향이요, 일년 후에도 그 방향이요, 십년, 일생을 지내도 그방향이요, 혹은 천년 만년 영원히 계속 사는 그런 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그 방향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로 말미암아 그런 방향이 시작될 수 있느냐? 그것은 인간을 중심삼고서는 시작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 외에 어떤 절대자가 있으면 그 절대자를 중심삼아 가지고 시작돼야 합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방향이 이 지상에 현현하지 않으면 변하기 쉽고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인간은 망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는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지구성, 인류역사의 배경을 더듬어 오셨다는 사실, 이 시대적 환경을 찾아오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방향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위주한 뜻과 사상이 출발되어 가지고 그것이 역사와 더불어 길이길이 같은 방향을 취하면서 망하지 않고 역사를 수습해 나가는 그런 무엇이 없다 할진대는, 인류 세계에서 희망이니 목적이니 혹은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찾올 수 없을 것이 아니냐.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지금까지 종교 문화권이 세계의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은 두말할 바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는 4대 종교 문화권이 남아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 힌두교, 회회교 문화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한 자리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4대 종교 문화권은 동에서, 혹은 서에서, 남에서, 북에서 출발했습니다. 각각 다른 자리에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한 자리에서 출발했으면 한 곳에 결과될 것입니다. 그런데 동서남북 사방에서 출발해 가지고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나가지 않고 그 목적이 서로 다르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네 개가 되어 가지고는 네 개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은 이랬다저랬다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결과의 자리에는 설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가 출발한 자리는 다르지만 귀결되어야 할 결착점은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면 그것이 어디에서 같아져야 되느냐? 이런 입장에서는 아무리 연장해도 같아지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을 가지고는 같아지지 않습니다. (판서하시며 설명하심) 이러한 자리에서…. 요것이 목적점입니다. 여기에서만 일치됩니다. 지금 이 세계를 보게 되면 세계는 이렇게 쭉 둘러 있습니다. 이 목적점이 일점에 가서 귀결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를 보면, 어떠한 종교든지 출발을 왜 했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간다 하는 선을 그어 놓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해서 타락을 했으며, 그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되찾아 가야 된다는 선을 그어 놓고 그 공식 법도에 따라 가지고 나오는 종교가 없었습니다.
막연하지만 세계를 향하여 인류는 박애사상권내에 들어가야 된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인류는 박애사상을 가지고 형제의 우애를 가져야 된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막연하게나마. 또한 온 인류는 평등해야 된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평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을 전부 종합해 보면 무엇이 되느냐? 인류를 중심삼고 볼 때, 인류는 무엇이냐?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아담 해와가 인류의 부모라면 인류는 아들딸이라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인류가 머물기를 희망하는 곳이 어디냐? 오늘날 우리 인류가 희망하고 있는 곳은…. 세계 어느 곳이 됐든지 부모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면 누구든지 좋아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도 그렇고, 세계 어디를 가도 그곳이 한국에서 느끼는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기쁠 수 있습니다. 즉, 한국에서 기뻐할 수 있는 부모의 사랑권과 같은 그런 사랑권이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기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계 형제지권, 한국이나 자기 가정과 같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인연, 세계 어디를 가든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다면, 세계 어디를 가든지 기쁠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기뻐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무엇을 가지고 기뻐하자는 것이냐 할때에, 돈을 가지고 기뻐할 것이냐? 돈을 가지고 기뻐해 보았자 언젠가는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한바탕 돈을 많이 벌어 가지고 아무리 좋아하고 웃어 봤자 그것은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상대적 여건으로 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이구 좋다. 아이구 좋다' 하루종일 하게 되면 기진맥진 해지는 거라구요.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기뻐하자는 것이냐 할 때에, 사람끼리 기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보다 더 고차적인 분, 더 감각적인 분이 있다면 그런 분을 중심삼고 기뻐하자는 것입니다. 그건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뻐하는 데 있어서 하루만 기뻐하고 그만두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가씨가 시집을 가게 될 때에, '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시집가던 날은 기뻐하고 그 다음날부터는 울면 그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처음에만 기쁘고 그 다음 과정은 슬프면 돼요? 과정도 기뻐야 되고, 그 다음에 결과도 기뻐야 됩니다.
처음도 기쁘고 과정도 기뻐야 결과도 기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은 좋았는데 과정은 억울했다면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또 억울할 수 있는 내용이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세상은 바꿔지는 것이기 때문에…. 좋았으면 끝까지 좋아야지 좋다가 말면 되겠어요? 그것은 안 좋았던 것만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집을 가서 '아이고 좋아라' 했다가 나중에 나빠졌다면 시집을 안 간 것보다 나아요? 못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써 시작을 했으면 그것이 가다가 중도에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아하는 데는 무엇을 가지고 좋아할 것이냐? 여기에서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돈은 잠깐 좋아하게 되면…. 돈은 영원히 좋을 수 있는 상대적인 요건이 되지 않습니다. 돈을 가졌다고 좋아서 한 30분 동안 춤을 추어 보세요. 그것처럼 멋대가리가 없는 것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많은 돈을 가졌다고 집채만한 돈더미를 붙들고 그저 좋아 가지고 하루종일 춤을 추어 보라고요. 그 이튿날도 전날과 같이 그렇게 한다면 '이 미친 녀석아' 하는 거예요. 한번 좋아하고 나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그렇찮습니까?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는, 오늘 아침에 보고 좋아했다고 해서 저녁에 가서 싫어집니까? 어때요? 저녁에도 좋지요? 그렇다면 그다음날 아침에는 어떻습니까? 「좋아요」 또 그 다음해 정월 초하룻날이나 혹은 섣달 그믐날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따라서 영원히 좋아할수 있는 기쁨의 대상은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돈이 아닙니다. 여러분, 대한민국만한 돈더미를 가지고 하루종일 흐드러지게 춤을 추어 보라구요.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전부 도망 갈 것입니다. 또 할 자신 있어요? 그렇게 할 기분이 날 것 같아요? 그럴 기분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자신이 있어요? 또 하면 좋겠어요, 말면 좋겠어요? 여러분, 하루만 흐드러지게 좋아하고 그 다음엔 말아야 되겠어요?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계속하고 싶다는 거예요. 계속해도 또 계속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계속하다가 말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계속하면 할수록 또 하고 싶은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사랑의 길입니다. 기뻐할수 있는 그 대상이 뭐냐? 그 기쁨의 대상은 누가 되어야 해요? 사람입니다. 알겠어요?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집안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는 좋은데 밖에 나가면 울 것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집안에 들어올 때는 '헤헤' 웃고, 밖에 나가면 '엉엉' 우는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냐는 거예요? 아닙니다. 어떠한 일일지라도 기뻐하던 그 마음을 중심삼고 환경을 거쳐 나가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환경에 휘말려 가지고 비애와 비탄 속에서 신음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비애와 비탄의 자리를 밀고 나가서 거기에서 기쁠 수 있는 인연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면 그는 희망적인 사람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동기가 되어 가지고 그럴 수 있는 사상을 중심삼고 십년 백년 천년 가게 된다면 인간들은 그 사상을 중심삼고 따라가려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종교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을 원수시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종교는 없습니다. 종교는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면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쳐 주는데 오늘 아침에만 사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만 사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일년만 사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 동안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백년 혹은 천년이라도 사람을 위해서 살게 할 수 있고, 사람을 위해 사는 데 있어서 좋아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영원히 위해 살게 할 수 있는 종교일수록 위대한 종교인것입니다..
좋은 사람만을 대해서 좋아하는 종교는 좋은 종교가 아닙니다. 나쁜 사람도 좋아하겠다고 몸부림치는 종교일수록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준 교리 가운데 최고의 교리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사랑하되 자기편의 사람만을 사랑하지 말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사랑의 도리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도리를 가르쳐 준 것을 볼 때, 여기에는 만국을 넘어서, 만민을 넘어서, 또한 모든 역사 시대를 지나가서라도 인간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좋아하겠다는, 원리적이고도 원칙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삼은 사상은 세계 역사를 움직여 나왔고, 역사과정에 있어서 절망하던 수많은 인류의 가슴 가슴을 사랑의 세계로 이끌어 가지고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독교문화권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예수님의 사상대로 세계 인류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그런 종교가 되었느냐? 만일 그렇게 못 되었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의 방향과 상충을 가져오겠어요. 화합을 가져오겠어요? 상충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충된 세상이 찾아오면, 다시 이 상충된 환경을 제거시키고 화합할 수 있는 운동을 제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방향을 최종 목적점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길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행복한 사람, 복받은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자기 혼자 있어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행복을 차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 지면 그런 종족이 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지면 그런 민족이 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지면 그런 국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더욱 더 많아지면 그런 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동에서 서로 넘어가면 그것이 싸움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넘어오는 것을 환영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되면, 그것이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 나온 세계가 아닐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생각을 쭉 수습해 보면 그런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여러 종교가 있지만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지금까지 종교가 각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결국 어디로 가자는 것이냐? 장래에 모든 종교는 요 점에 와서 부딪쳐야 됩니다. 요 점에 와야 되는 거라구요. 반드시 요 점과 상봉할 터인데, 어느 한때에 상봉하기 위해서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고 이렇게 오는 거라구요.
요 점이 하늘편인데, 종교가 넷이면 넷이 '이것이다' 하고 가다 보니까 어느 한 곳에 와서 교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차가 되었는데도 여기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다가는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가지고 역사과정에 수많은 방향이 있었지만, 더 높은 문화권은 더 낮은 문화권을 흡수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지요? 어떤 종교가 이 목적점을 향해서 가다가 이 교차점에 왔는데 여기서 그냥 그대로 곧장 가려고 하다가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방향은 이렇게 가야 하는데 이와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우주의 힘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 너는 망해라' 해 가지고, 자체내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깨져 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또, 어떤 종교는 여기서 출발을 했는데 요만큼 가다가 방향을 달리해서 이렇게 가겠다고 하다가는 갈 길이 막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종교가 조금 더 전진한 자리에서 '바로 여기가 목적점이다' 해 가지고 여기서 이렇게 간다면 남아지겠습니까? 못 남아지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느냐? 마음은 이쪽으로 가려고 하고 몸뚱이는 저쪽으로 가려고 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몸뚱이가 가려는 방향으로 점점 가면 갈수록 불안해지고, 헤이해지고, 가면 갈수록 책임을 지고 싶지 않고, 또한 거기에 인연을 맺고 싶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그 다음에 또 한 종교가 조금 더 전진했다 하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그냥 그대로 가려고 하면 어디로 가겠어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천륜을 통해서 가고 싶은데, 인심은 천심이라고 했듯이 마음은 하늘을 따라가고 싶은데 가는 길을 모른다는 거예요. 나침반 바늘이 북극을 향해 있다 하더라도 그 나침반 바늘을 북극으로 향하게 하는 힘보다 더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지남철을 떡 놓아두면 그방향으로 나침반 바늘이 돌아가려고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고 바늘이 돌아가려고 할 때 지남철의 힘이 작용하면 바르르르 떨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세계에 진동이 벌어져 요란스러울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를 모르고 '야단이 났다'고 할 때가 오는 거라구요. 세계가 갈라질 때는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계로부터 직접 은혜를 받을 때 부들부들 떨지요? 그거라구요. 여기에 붙어 있던 것을 잡아떼려고 하니까 바르르 떠는 거예요. 지금 이때가 그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끝날에는 모든 종교, 모든 사상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거리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지요? 공산당도 흔들거리고, 민주 세계도 흔들 거리고, 종교도 흔들거리고, 모든 것이 흔들거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
그러므로 기독교는 마지막 종착점에 도달해서 자리를 잡아 가지고 세계를 수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목적점까지 못 갔으면 목적점까지 가려고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중간에서 정착해 가지고 '이렇게 믿고 이렇게 가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때가 그런 때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혼란된 세계라고 합니까, 평화스리운 세계라고 합니까? 「혼란된 세계라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를 중심이 결정된 세계라고 합니까, 중심이 없는 세계라고 합니까?「중심이 없는 세계라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를 희망이 가득찬 세계라고 합니까, 아니면 절망이 가득찬 세계라고 합니까?「절망으로 가득찬 세계라고 합니다」 전부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그런 때가 왔다는 거예요.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어머니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오빠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누나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남편이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아내가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요, 아들딸이 생각하는 것도 절망이니 절망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절망에 부딪쳐도 절망에 부딪친 것이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사경으로 들이 죄어 온다는 거예요. 그러니 절망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붙어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안 되겠으니까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형님은 형님대로, 누나는 누나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서로가 뛰쳐 나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럴게 아닙니까? 그럴 때가 바로 끝날입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버지가 뭐냐, 아버지가' 하면서 아버지도 잡아 치우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어머니도 잡아 치우고, 형제도 잡아 치우고 모두다 잡아 치우려고 합니다. 그러면 기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거 큰일났지요?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기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 찾을 수 있겠어요? 거 큰일났지요?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데는 사람을 중심삼고 좋아해야 되는데 아버지나 어머니나 전부 다 절망해 가지고 서로가 뒤넘이치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둘이 만나 가지고 '아이고 좋다'고 할 수 있겠어요? 서로 절망에 부딪쳐 있는데….
서로가 대하면 대할수록 두 절망이 부딪치니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가 만나면 좋을 것 같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첩첩 태산 준령이라는 거예요. 두 절망이 부딪치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여자는 '저 남자란 녀석 저거 뭐야? 죽지도 않고' 그러고, 남자는 ‘저여자 저거 뭐야? 죽지도 않고…. 아이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적막 강산이예요, 희망 강산이예요? 「적막 강산입니다」 이렇게 절망에 부딪쳐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실존철학입니다. 실존철학자들은 '현재를 극복하자'고 하는데 극복하려면 극복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지요? 오늘날 인간들이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볼 때 끝날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가 최종의 목적지를 가긴 가야 될 텐데…. 지금 네 종교가 이것을 찾아오긴 찾아왔지만 전부가…. 이것이 중심이라 하면 이렇게 이렇게 지금 만나고 있는 거라구요, 네 종교가 사방에서 나와 가지고, 지금 중심을 딱 찔러 가지고 개인이 나타났다 하게 되면, 그 개인은 역사적인 종교의 무엇입니까?「중심 인물입니다」 역사적인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요, 목적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우주의 중심을 대신한 한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또한 우주의 목적을 대신한 한 사람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 위의 중심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중심이 결정되고 그 중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방향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역사는 탕감복귀를 하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새로운 방향은 무엇이냐? 탕감복귀시대가 아니라 복귀하기 위한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시대에는 서로 상충하여 엇갈리는 걸음걸이로 상봉하지만, 복귀시대에는 남자가 있으면 여자는 그 남자를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참된 남자이기 때문에 참된 남자를 대하는 참된 여자는 매양 좋게 마련입니다. 알겠습니까? 거기에는 상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시대에서는 엇갈린 기준을 가지지만 복귀시대에 들어가면…. 복귀시대로 들어간다는 말은 창조이상권의 출발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복귀라는 것은…. 아담 해와의 성례식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시대로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남자는 이 우주의 중심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탕감복귀 역사를 해 나오시던 방향을 두고 볼 때에 그 남자는 소망하던, 제일 기뻐할 수 있는 목적의 주인입니다. 목적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따라서 그분을 만나게 되면 탕감복귀시대의 사연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연 가운데는 사탄의 사연과 하나님의 사연이 한데 엇갈려 있기 때문에 사탄의 사연은 제거시켜 버리고 하나님의 사연만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시대에 있어서 섭리의 방향을 중심삼고 보게될 때, 역사시대에 하나님이 그 방향과 더불어 매양 수고해 나오실 때에 그 중심된 존재는 수고하시는 하나님과 언제나 같이하고 있었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역사시대를 거쳐 나오는 방향을 대표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기에 아담 시대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과 일치하고, 또 노아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하고, 그 다음 아브라함 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하고, 모세 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하고, 예수님 시대에 있어서도 일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일치함으로 말미암아 기독교가 탄식의 역사를 엮어 온 것입니다. 일치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탄식의 반대가 뭐예요? 기쁨의 역사를 엮어 왔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일치해야 되겠어요, 십자가를 진다음에 일치해야 되겠어요?「십자가를 지기 전에요」 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울고불고하면서 기도하는 자리에서 일치해야 되겠습니까, 기도하기 전에 생활하면서 기뻐하는 자리에서 일치해야 되겠습니까? 「생활하면서 기뻐하는 자리에서 일치해야 됩니다」 알긴 잘 아는구만요.
일치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부터 일치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을 잉태했던 마리아에서부터 일치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역사적인 일치점은 마리아의 마음을 통해서 그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예수님에게 열매맺혔기 때문에 마리아의 사정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불일치된 입장에서 예수님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일치된 입장에서 예수님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는데 거기에서도 일치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는 곳이 마굿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같이 가시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면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도 일치해야 되고, 십자가의 길을 가면 십자가의 길에서도 일치해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나는 싫어. 돌아갑시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불일치예요, 일치예요?「불일치입니다」 그럼, 불일치해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가는 길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예수님이 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담을 헐고 역사적인 발전을 해 나왔던 것입니다. 어떤 종교보다도 순교의 역사를 더 많이 입체적으로 갖고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것은 왜? 피를 뿌리고 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피를 뿌리지 않고는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 비참하다고 안 가게 되면 희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길이 그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좋아했습니까, 슬퍼했습니까? 「슬퍼했습니다」 예수님이 슬퍼한 것은, 십자가에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셨습니까. 슬퍼하셨습니까? 하나님도 슬퍼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은 슬픔의 길을 거쳐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예수님은 슬픔의 길을 넘어서 가야 할 것이었는데 슬픔의 구렁텅이로 떨어졌기 때문에 만민은 그 구렁텅이를 전부 다 거쳐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자동차가 좋은 차건 나쁜 차건 달리다가 앞에 구렁텅이가 되어 쑥 들어가 있으면 '아이고 나는 거기 빠지기 싫으니 날아가겠다'고 한다고 해서 날아갈 수 있어요? 그런 자동차가 있습니까? 틀림없이 그냥 그대로 가야 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그 구렁텅이를 지나가야 되는 거라구요. 가는 방향이 그 방향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두고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확실히 모르면서 '엄벙덤벙 어영부영 그럭저럭 그저 살아가면 되지' 하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방향은 하나입니다. 하나, 하나. 다른 방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역사적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뜻 앞에 보조를 맞추어 하나님의 방향과 일치된 방향을 지상에 그려 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비참한 운명을 가려 가야 할, 십자가의 길을 맞은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내 뜻으로 말미암아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뜻으로 말미암아 방향이 결정되느냐? 아버지의 뜻으로 말미암아 …. 그 말은 정당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좋다 하는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방향이 결정되고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되고 좌우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불일치할 때는 파탄이 벌어지는 것이요,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과 상별(相別)할 수 있는 자리밖에 못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파탄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든 것이요. 분리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든 것이요, 하나님의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입니까? '선생님 뜻대로 마옵시고 내 뜻대로 하시옵소서. 우리 남편 뜻대로 하시옵소서' 혹은 '우리 아들딸의 뜻대로 하시 옵소서' 라고 한다면, 이것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입니까? 누구로부터 출발한 거예요?「나로부터입니다」 나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나로부터…. 그럼 나로부터 출발한 것이 하나님의 방향과 일치되겠어요?「안됩니다」 누구로부터 출발해야 되겠습니까 ? 「하나님으로부터요」 하나님 인지 뭣인지 모르지만 주류가 있을 것입니다. 제멋대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멋대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미친 놈이 하는 짓입니다. 그건 믿을 것도 없고 소망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인류가 지금까지 혼란된 역사과정에서 비참한 역사적인 환경을 거쳐 나오면서도 하나의 목적을 '좋은 세계'에 두고 나온 것은 혼란되지 않는 내심의 그 무엇이 방향을 맞추고 나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선, 선,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 이렇게 되어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으니 하나님의 방향이 그렇게 돌아가게 되었다는데도 '나는 안 돌아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망하겠습니까, 흥하겠습니까? 「망합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원수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원수가 되니 하나님의 원수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데는 어떤 자리에 오실 것이냐? 여러분, 생각해 보았습니까? 어떤 자리에 오실 것이냐 할 때, 미국으로 오시겠습니까? 프랑스, 이태리, 혹은 독일로 오시겠어요? 어디로 오시겠어요?「한국이요」 한국은 한이 많아서 한국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안 해요?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데는 어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시겠어요? 거지는 거지패를 상대로 삼습니다. 그렇지요? 거지는 거지하고 친구하잖아요. 아무리 모던 스타일의 여자가 옆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도 '픽!' 한다는 거예요. 누더기 보따리 짊어진 사람은 누더기 보따리 짊어진 사람이 제격입니다. 그렇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데 있어서 '제일 좋은 데로 찾아와야지' 하는 사람은 도둑놈 심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겁니다. 좋은 자리에 가는 데는 좋은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갑니까. 나쁜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갑니까?「나쁜 자리를 거쳐서요」 알기는 아는구만. 좋은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가요, 나쁜 자리를 거쳐서 더 좋은 자리에 가요? 「나쁜 자리요」 나쁜 자리를 거쳐야 더 좋은 자리에 갈 수 있는데. 그 더 좋은 자리가 어떠냐? 이거 생각해 보라구요.
그 더 좋은 자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나쁠 수 있는 모든 길을 전부 다 닦아 가지고 평탄한 길을 만들어 놓은 자리를 말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위에 편한 길을 닦아 놓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편한 길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그 신작로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신작로가 뭐예요? 뭐긴 뭐예요, 좋아하는 길이지요. 좋아하는 길이 아니겠어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는데 무엇을 하러 찾아오시느냐? 울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거예요. 사연을 털어놓고 좋아하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거예요? 「좋아하기 위해서요」
예수님이 좋아하기 위해서 찾아오시는데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거예요?「사람이요」 예수님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사람, 어떤 사람이예요?「하나님의 사람이요」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이요? 천년 만년이 흘러가도 이랬다저랬다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4천년 동안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랬다저랬다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나오신 하나님이니, 그 하나님의 아들은 4천년 이상 변하지 않고 갈수있어야 되겠어요, 갈수없어야 되겠어요?
하나님이 4천년 역사과정에서 이랬다저랬다했다고 생각했다면. '아버지가 그럴 수 있습니까?’ 라고 반박을 할 수 있는 아들이라면 효자겠어요, 불효자겠어요? 하나님이 이랬다저랬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하나님, 왜 이랬다저랬다하십니까?’ 하고 반박하는 아들이 불효자입니까, 효자입니까 ?「효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랬다저랬다했다고 생각했다면 그에 대해서까지 반박할 수 있는 예수님이 되어야 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절대로 이랬다저랬다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랬다저랬다하는 사람을 좋아했다가 그 사람이 변하게 되면 언제 또 거기에 박자를 맞추겠어요?
여러분의 신랑이 변덕이 많으면 좋아요? 여기에 변덕이 많은 신랑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변덕이요, 저녁에 변덕이요, 변소 가기 전에 변덕이요, 변소 갔다 와서 변덕이요, 밥 먹기 전에 변덕이요, 밥먹고 나서 변덕이요, 그런 사람이 좋아요? 그러면 '저거 어서 죽어 버렸 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도 변하지 않고, 저녁에도 변하지 않고, 천년 만년 억만년이 가도 변하지 않을 수 있는 낭군이 찾아온다면 그는 누구를 만나러 오겠어요? 사람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변함 없는 사람이요」 변함 없는 사람 중에서도 어떤 사람? 「선한 사람이요」 선한 사람도 종류가 있습니다. 알록하든가 달록하든가 알록달록하든가 하는데 어떤 사람이예요?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여자요」 예수님이 동생 만나러 오시겠습니까, 아버지 만나러 오시겠습니까? 「신부 만나러요」 오시더라도 누구를 만나러 오시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선거를 하려고 고향에 돌아갈 때에 새벽부터 뛰어 나갔다는데,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새벽부터 그렇게 뛰어 나갔어요? 선거 때문에 좋아서 새벽부터 뛰어 나갔어요?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뛰어 나갔어요? 솔직하게 말해서 신랑을 만나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웃음) 신랑이 아무리 무감각적이고 무자극적이더라도 신랑을 만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누구를 만나려고 그랬습니까?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어요? 물론 예수님이 태어났으니 부모는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을 만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까? 「아니요」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신부요」 여러분은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신랑 만나기 위해서요」 그렇지요? 누구나 태어나면 어머니는 있기 마련입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더욱 발전적인 대상을 만나기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더 발전적인 사랑의 대상이 누구냐?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니라 남자는 여자요. 여자는 남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시는데 좋아하기 위해서 누구를 찾아온다구요? 「신부요」 신부, 신부입니다. 신부는 어떤 신부입니까? 이랬다저랬다하는 신부 맞으러 오는가요? 「아닙니다」 아침에는 샐쭉하고, 점심때는 삐쭉하고, 저녁에는 쏘아 잡은 말마냥 턱 버티고 서 있는 그런 신부를 만나려고 오겠어요?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빵긋 웃는 이슬방울 같은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점심때에는 따스한 태양볕에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그저 싹 가서 송두리째 집어 넣고 싶은 그런 신부를 원할 것입니다. 잠을 자더라도 그저 네 활개를 펴고 소리를 내면서 자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요렇게 (행동으로 설명 하심) 하고 자는 그런 신부를 원할 거예요. (웃음) 마음을 모두어 '아 !오시옵소서' 하는 신부를 원할 것 아니예요? 나는 그럴 것 같아요. 여러분은 그럴 것 같지 않나요? 안 그래요?(웃음) 저녁이 되었으니 잠을 자야겠다고 미리 준비하는 신부가 아니라. 오시는 신랑을 기다리면서 뉘엿 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에 지고 오시나 안 오시나 하고 황혼길을 꿰뚫어 보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는 신부…. 여러분은 그런 신부 좋아요, 나라요?「좋아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아하,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신부는 이래야 될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년 동안, 혹은 6천년 동안 신부를 찾아 나오는 그 신랑의 길이 얼마나 고됐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고됐겠어요. 안 고됐겠어요? 고된 길을 걸어온 그 길이 천리 길이예요, 만리 길이예요? 몇천 년 걸려서 찾아온 길이라구요. 6천년이나 걸려서 찾아 나온 신랑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고됐겠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에. 그 신랑이 신부를 만난다면 호화찬란하고 영광된 자리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나타나는 신랑일 것이냐? 생각해 보세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그 신랑은 단 한 분의 신랑이기 때문에 신부가 해주는 옷을 입어야 하는데 신부를 찾지 못했으니 어머니 아버지가 해준 옷을 입고 출발할 수 밖에요. 그렇잖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정성껏 만들어 준 옷을 입고 신부를 찾아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옷은 몇 해가 되었겠어요? 그 입은 옷은 6천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거지 중의 상거지입니까, 하거지입니까?「상거지요」 상거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신부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신랑이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아, 좋다! 한잠 자고 가세. 꽃이 푸대접하면 다른 데서 자고 가세' 하면서 신선놀음 할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있는 신랑입니까? 일분 일초를 다투어, 어서 찾아가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 만나야 된다고, 모래가 오기 전에 내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한 시간을 단축 시켜서 만나지 않으면, 그 시간이 연장됨으로 말미암아 신부 세계는 점점 쑥새 둥지가 되어 가는 것을 알고 있는 신랑의 발걸음이 얼마나 고달프고 그 마음이 얼마나 서글펐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잖아요?
그 얼굴을 보면 어떻겠어요? 세수를 했을까요, 못 했을까요? 신부를 진정으로 제일 사랑했다면 신부만을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에 세수 같은 것을 생각했겠습니까?(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또 이빨을 닦았겠습니까?(웃음) 또 코라도 씻었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머리는 어때요? 머리를 빗었겠어요? 머리야 될 대로 되라고 했을 것입니다. 또 손톱은 깎았겠습니까? 그렇잖아요?
일분 일초라도 아껴 가지고 신부를 빨리 찾아가야 할 신랑이…. 만일에 교차로가 있어 가지고 일초라도 늦는 날에는 싹 어긋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초라도 먼저 가서 기다리면 만날 수 있지만, 일초라도 늦었다가는 어긋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화를 보면 더러 그러한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경우도 있을지 모르니 일초라도 빨리 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만일 '세수를 해야지, 손톱을 깎아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이 좋은 마음이예요, 나쁜 마음이예요? 대답해 봐요. 그게 좋은 마음이예요, 나쁜 마음이예요? 신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일편단심이기 때문에 거기에 무슨 먼지 하나 끼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곁다리 끼는 것을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몽땅이라구요, 몽땅.
그러므로 6천년 동안 기른 손톱을 가지고 오는 신랑이라는 것입니다. (웃음) 왜 웃어요? 머리는 6천년 동안 손질을 하지 않아서…. 뭐 박새 둥지는 보기나 좋지요.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의 머리를 보면 꼬불꼬불한 것이 마치 파마한 것 같은 머리인데, 거기에 비하면 그런 머리는 그래도 신사 머리일 것입니다. 6천년 동안 나오면서 그 머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6천년 동안 나오면서 뭣은 안 묻었겠어요? 그 머리 냄새를 맡기만 해도 질색하며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무슨 냄새는 안 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웃음) 아마도 옷을 벗겨 몸을 보면 땀에 찌들은 때를 가죽 벗기듯이 쓱 벗겨야 될 거라구요. (웃음) 이거 우스갯소리가 아니라구요.
신부될 사람은 그런 것을 다 준비해 가지고…. 이렇게 오시게 되면 이렇게 해결해 드리고 저렇게 오시게 되면 저렇게 위로해 드려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준비할 생각조차 못 한 신부는, 신부 되는 시험을 치게 되면 낙제는 정한 이치라는 거예요. 이런 것을 다 생각하고 있다가, 척 묻게 되면 '이런 것은 이렇지요'라고 답변을 쓱쓱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렇잖아요?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님의 신부 될 수 있는 자격자가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신랑을 맞기 위해서 기다리는데 아침에도 신랑이요, 저녁에도 신랑이요, 밤에도 신랑이요, 새벽에도 신랑이요, 혹은 밥을 먹어도 신랑이요. 어디를 가도 신랑이요, 말을 해도 신랑이요, 무엇을 보아도 신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신부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사람이 공부를 했겠습니까, 못 했겠습니까? 또 학박사 학위를 가졌겠습니까, 못 가졌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그 여자 주제꼴이 어떻겠어요? 꼴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상거지 중의 왕 레테르가 붙은 상거지 신부라는 거예요. 그런 여자가 쓱 지나가게 되면, 똥통은 지나가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런 여자를 한번 봤다면 일생 동안 고역일 것입니다. 그 여자를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거라구요. 그 주제가 그럴 것입니다. 또 신랑은 그보다 더할 것입니다. 그러니 신랑 신부를 맞는 자리가 포근하고 아주 호화찬란한 왕궁의 자리라고 생각을 했다가는…, 어림도 없다는 거라구요.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자, 그러면 어디에서 신부를 맞을 것이냐? 어디에서 신랑을 맞을 것이냐? 이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신부를 찾아오는 신랑이 그래도 체면을 생각하는 신랑이라면 좋은 나라로 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사람이라면…. 자기 주제가 그래 가지고 좋은 자리에 있는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한테 쓱 가서 '나를 본받아라' 그럴 수 있겠어요? 자기 주제가 그렇게 형편 무인지경이니 할수없이 으슥한 곳을 찾아가게 되고 자기를 동정할 수 있는 무리들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주님은 호화찬란한 문화 도시, 전기불이 빛나고 음악 소리가 울려 나오는 곳에는 가실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곳에 가게 되면, 거기에 있는 여급까지도 '이 자식아, 나가라 나가' 하며 쫓아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가 많으신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는 데는 비참한 민족에게로 보내신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주제가 그러니 그래도 환경이 좀 끼리끼리 어울릴 수 있어야 얼굴은 못 들어도 눈이라도 조금 비추어 볼 거 아니예요. 그렇지요? 서로가 비슷비슷하니까 얼굴을 좀 들 수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그렇잖아요?
여러분, 우는 사람 축에 끼게 될 때에, 눈물이 안 나오게 되면 죽을 지경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다 우는데 자기만 눈이 반짝반짝해 가지고 있으면…. 그때는 할수없이 눈에다 침을 발라 가지고 우는 체해야 되는 거라구요. (웃음)
그런 것을 두고 볼 때에,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주제가 그렇다면 그러한 나라와 민족을 찾아가야 어디에서든지 그냥 팔을 베고 자더라도 통과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천대를 받고 쑥덕거리는 곳에는 안 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리어 그런 곳이 편하기 때문에 그런 나라와 그런 백성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런 나라와 그런 백성 가운데에서도 어떠한 백성이냐 하면, 그래도 그 무엇을 바라고, 그래도 선을 가지고 있고, 그래도 그 무엇을 찾으면서 전통적 절개를 남긴 그러한 민족을 찾아가야 되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그런 것을 패스할 수 있는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나라라구요. 한국은 4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동방' 뭐라고 그래요?「예의지국이요」 '예의(禮儀)하게 되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좋은 것입니다」 '에이 좋다'고 그래요? '에이 기분 나쁘다'고 그러지요? 기분 나쁜 나라라 그 말이라구요. 예의지 (禮儀之)할 때 '지 (之)자는 부사이기 때문에 '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의 지국은 기분 나쁜 나라라는 말이라구요. 그래요? 기분 좋다는 나라예요. 기분 나쁘다는 나라예요?
동방예의지국이라 할 때에,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동방예남'입니까. '예여'입니까?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 할 때에 남자를 두고 한 말 같습니까, 여자를 두고 한 말 같습니까?「여자요」 여자를 두고 하는 말 같지요?「예」 다투지 말고 그렇게 정하자구요. 내가 남자이지만 여자들 편들어 줄께요. (웃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여자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남편을 진정으로 모시고자 했던 부인들은 살림살이를 마음대로 못한 여인들이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녀문이나 열녀비에 얽힌 역사를 더듬어 보라구요. 그가 며느리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새벽밥을 한 며느리요, 밥을 먹을 때도 시부모가 혹 물을 달라고 할까봐 부뚜막에 앉아서 물을 떠놓고 기다리던 그런 며느리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되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이 아니라 안방에서 진지 잡수시는 시부모님께서 '얘 아가, 물 좀 가져 오너라' 하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밥을 먹어도 마음은 언제나 거기에다 두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런 생활을 한 며느리가 아니고는 열녀가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뚜막 생활을 평생 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열녀는 신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마음대로 산 아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녀문을 세우는 데는 남편을 위해서 잘해 준 여자에게 세워 줍니까, 아니면 부모를 잘 섬긴 여자에게 세워 줍니까?「남편에게 잘해 준여자에게요」남편? 그럼 남편을 위하는 데 있어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울어도 좋다는 말이예요?「아닙니다」 효부가 되지 않고는 열녀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효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신랑이 ‘여보, 여보, 당신은 나한테 신경쓰기도 바쁜데 어머니 아버지한테까지 왜그렇게 마음을 쓰는 거요?’ 라고 한다면 그 신랑은 효자예요, 불효자예요?「불효자입니다」 불효자식입니다. 그런 불효자식에게서는 열녀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뭐가 되어야 된다구요?「효부요」 먼저 효부가 되고 그 다음엔 열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녀의 전통은 먼저 남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그렇게 생각해 드림으로써 효부의 칭호를 받고 나서도, 부모로부터 '야 이제 나한테만 그렇게 잘하지 말고 네 남편 좀 돌보려무나. 난 그저 아무렇게 해줘도 좋아. 이제 그만하면 됐다' 이렇게 승낙을 받고 나서도, '그렇습니까' 하면서 바로 돌아서서 '아이고 좋아라. 내 때가 왔구나. 이때를 기다렸다'(웃음) 하며 좋아하는 그런 여자는 절대로 열녀가 못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이날을 얼마나 바랐다고, 내 때가 왔구만' 하며 등등 춤을 추는 여자는 열녀가 될 수 없습니다.
시부모가 그러시거든 '아버님 어머님, 어찌 이 계집이 남편을 위하는 마음 이상으로 부모님을 위하지 않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죽은 후에까지도 부모님을 위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오니 부디 그러지 마시옵소서'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시부모가 '자 그러지 마라. 이제는 괜찮아. 그만하면 됐다'고 재차 다짐을 지으시거든, 눈물을 흘리면서 목이 메어 흐느껴 울면서 뒷걸음질쳐 나오는 그런 효부가 되지 않고는 결코 열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 품에 안길 때에 '에이, 시부모고 뭣이고 나 혼자 갈래요' 하게 되면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 가지고 정성들여 자기의 낭군을 낳아 준 시부모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 낭군을 키우실 때에 어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셨을까. 그 사랑 이상으로 내가 사랑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부모 대신 남편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그래 가지고, 시어머니에게서 이제는 나한테 효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서도 '이제는 나한테 그렇게 정성을 안 들여도 된다'는 말을 들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죽더라도 당신을 위해 죽겠습니다. 그것이 여자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습니까' 하고 운명을 걸고 맹세하면서 서로가 위로해 주고 서로가 감사할 수 있는 환경에 서지 않고는 열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통적인 열녀의 입장인 것을 똑똑히 몰라야 되겠?「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다' 하면 여러분도 '다' 해야지요. 몰라야 되겠?「알아야 되겠」'다' 「다」내가 왜 이렇게 하느냐? 저기 조는 색시가 있거든요. 눈을 뜨나 안 뜨나 보니 눈을 '빵긋…' (웃음) 그럴 때에는 이렇게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열녀는 어머니의 후계자라는 것, 부모의 부활된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라구요.
그러면 사랑은 어디서부터 울려 나오는 것이냐?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먼저 어머니의 사랑부터 받는 것입니다. 자식을 중심삼고 상대적 사랑을 먼저 하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아버지도 사랑을 하지만, 자식이 배 안에 있는 열 달 동안 고이고이 품고 다칠세라 상할세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말도 조심하고, 생활도 조심하고, 모든 태도도 단정히 하여 태교 기간을 거치는 과정에서 먼저 복중에 있는 아기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사랑한 사람이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신부는 사랑의 세계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타락한 사랑에 있어서도 제일 가까운 자리에 선 것이 인류 가운데 누구냐 할 때에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타락의 사랑의 자리에서 제일 가까이 있던 존재가 누구라고요? 남자예요. 여자예요?「여자요」
여자라구요, 그 여자라는 건 뭐냐 이거예요. 그거 이야기해 줄까요?「예」
여자라는 것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옷을 만들다가 천이 남으면 그걸 무엇이라고 해요? 여자라는것은 뭐냐 하면 남을 ‘여(餘)자’ 여자라구요. 즉, 쓰다 남은 아들이다 이거예요. (웃음) 타락했기 때문에 여자가 된 거라구 요. 곁다리예요, 곁다리. 그래서 오늘날까지 여자는 곁다리 노릇을 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자가 곁다리 아들로 태어났으니 천대받는 것이 당연합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당연합니다」 천대한다고 해서 무슨 죄 받겠어요? 죄받겠어요, 안 받겠어요? 아들 가운데 곁다리 아들은 무슨 종자입니까? 곁다리 아들은 종년밖에 안 됩니다. 양딸 아니면 종년밖에 안 된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여자라는 것은 양딸 아니면 종년이라는 것입니다. 성명이 없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된 거라구요. 여기서 주인을 대해 가지고 섭섭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한국에서는 한 남자가 첩을 얻더라도…. 여러분, 첩을 얻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과거에는 그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종으로 취급하고 또 다른 여자를 얻었다는 거예요. 그래도 여자들은?(웃음) 여러분, 종이 좋을 게 뭐예요? 또 양녀 같은 것이 좋을 게 뭐예요? 얻어 가지고 데리고 살다가 집어던지고 다시 얻는 거라구요. 이렇게 세 번쯤 갈아치워도 괜찮게 돼 있었더라 이겁니다. 기분 나쁘지요?
왜 그랬는지 보라구요. 아담 시대에 남편을 배척한 여자, 해와가 그랬지요?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배척한 마리아, 그렇지요? 재림주님 시대에 환영하지 못하고 배척했던 여자…. 그렇지요? 이와 같이 여자들이 남자들을 배척했으니 남자들이 장가를 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 남자가 장가를 안 가고 기다렸으면 말이예요, 남자와 여자가 같은 입장에서 사랑을 하려면 입장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을 세 번이나 버렸던 여자를 데리고 살려면 세 번의 장가를 갔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입장이 같아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을 간 신부를 찾아오기 위해서, 신부가 그렇게 시집을 갔으니 신랑도 그렇게 장가를 감으로써 위신을 세워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길을 찾아오겠다는 그런 낭군님이 있다는 것은 타락한 여자 앞에는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구요. 알겠어요? 여자들은 남자가 세 번씩 장가를 가서 세 여자를 대하는 것이 억울하겠어요, 기분이 좋겠어요? 「억울합니다」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 여자한테 장가를 가서 세 여자를 데리고 살아야 하는 그 사내 팔자가 드센 거예요, 좋은 거예요?「드센 것입니다」 불쌍한 것은 마찬가지라구요. 남자가 더 불쌍하다는 거라구요. 여자를 잘못 만나 가지고 그 여자에게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또 그 놀음을 해야 하는 그런 남자가 행복해요, 불행해요? 「불행합니다」 타락한거라구요.
그러한 가정에 있어서 '여자의 죄를 나에게 다 뒤집어 씌우시사 만국의 여성들이 해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 현재 미래의 수많은 여자들이 해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복을 빌어 주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여자가 있게 될 때는 그 후손부터는 그런 일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간 여자가 있어요? 새로 들어온 여자를 원수시해 가지고 '하나님이여, 저 여자에게 병을 주소. 내 가슴을 이렇게 찢어 놓은 그 여우 같은 간나에게 벌을 주소' 하는 여자는 많았지만 말이예요. 자기 사랑을 몽땅 넘겨 주고도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여자는 여자 중의 대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는 복귀된 신부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인데 지금까지 그런 전통적인 역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 하다가는 우리의 갈 길은 한 십년 후에나 말할 것 같구만. 자, 신부를 찾아오는 신랑이 형편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신부를 찾아오는 신랑의 신세가 형편 있었겠습니까, 형편없었겠습니까? 여기에 비하면 춘향이를 찾아오는 이도령의 행차는 상감마마의 행차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구요.
그 신랑은 세상 남자 중에서 제일 싫어할 수 있는 남자입니다. 이는 틀림없이 6천년 동안 신부를 찾아왔으니 집시의 무리와 같은 신랑의 신세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얼굴을 보면 버짐투성이요 얼룩덜룩할 것입니다. 더울 때에는 긁어서 얼굴에 밭고랑이 생겨났을 거라구요. 거 어떨까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한 신랑을 맞아 가지고 '하나님이 보내 주신 내 낭군이여! 오늘의 기쁨을 찬양할지어다'라고 해야 되겠어요, 아니면 '여보 그 꼴이 뭐예요? 아이고 난 싫소! 오긴 왔지만 난 모르겠소. 그럴 줄 몰랐소'라고 해야 되겠어요? 여러분 같으면 어떤 여자를 원하겠어요? 좋건 나쁘건 내 낭군이라고 하는 여자를 원하겠어요, 아니면 아이고 난 싫으니 어서 가서 씻고 오라고 하는 여자를 원하겠어요? 어떤 여자를 원할 거예요? 「전자요」 전자라고요? 주전자?(웃음) 전자라고요, 전자. 웃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신랑은 못 만났지만 신랑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어떤 남자가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 따라가야 되겠습니까. 안 따라가야 되겠습니까? 「따라가야 돼요」 그런데. 자기는 신랑을 맞으려고 능라 주단, 비단. 양단, 무슨 단, 무슨 단 해서 한 3백단을 갖추어 놓고 그런 옷을 입고 떡 기다리고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는 신랑님이 저기 있습니다. 안내하옵니다'라고 소개하는 그 남자가 거지 꼴이라면 '그렇소' 하면서 벌떡 일어서겠어요?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낙제감입니다, 낙제감, 거지 중의 거지 발싸개 같은 녀석이 안내하겠다고 해도 자기가 신랑을 만나기 위해 십년 백년 수고했으면 그 십년 백년의 수고에 대해 감사의 심정을 가지고 움직여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래야 되겠습니까, 안그래야 되겠습니까?
손은 이렇게 꺾여지고, 걷는 데는 이렇게 걷는 사람이라구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웃음) 세상에 저런 남자가 또 있을 것 같지 않고, 꿈자리에서 보아도 질색할 정도의 남자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싫어' 그래야 되겠어요, '아. 나는 참 복도 많지. 나도 모르는 저런 남자가 어쩌면 이런 길을 안내할 줄 어느 누가 알았겠나, 나만이 안 것이다. 아이고 좋아라. 어서 갑시다' 그래야 되겠어요? '어서 갑시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기를 바랍니까.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기를 바랍니까?「훌륭한 사람이요」 훌륭한 사람은 훌륭한 사람인데 주제가 좋기를 바라요, 나쁘기를 바라요?「좋기를 바랍니다」 주제가 좋기를 바라는 사람은 전부 다 주님을 못 맞을 것입니다. (웃음) 주님을 알고 따라온 사람은…. 주님의 편이나 주님의 종이 아니고는 주님을 모를 것이 아니냐? 그러면 오시는 신랑이 6천년 동안 헤맸으니 그 종도 6천년 동안 헤매지 않았겠어요? 그러니 그 종의 신세도 주님의 신세와 마찬가지 신세라는 것입니다. 상거지는 그래도 덜한 거예요.
주님을 자기 일대에는 못 맞더라도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에 딸을 통해서라도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그 사람한테 시집이라도 가 둬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라면, 자기는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딸 시대에 가서는 주님을 맞이할 거라구요. 그러니 주님 앞에 가까운 신랑감이 있으면 시집을 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가야 돼요」 가야 되겠어요?「예」 그러면 주님의 종한테라도 시집가야 되겠습니까, 안 가야 되겠습니까?「가야 돼요」 가야 됩니다.
그 종의 주제가 어떻겠어요? 그 종은 주님의 심부름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거동을 해도 주님보다 한번이라도 더 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주님보다 더 형편없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사람을 자기의 이상적인 낭군으로 모셔야 되겠어요. 안 모셔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모셔야 돼요, 안 모셔야 돼요?「모셔야 됩니다」 기분 나쁩니다. 요쪽 패들, 그러한 남자가 있다면 낭군으로 모셔야 되겠습니까, 안모셔야 되겠습니까?「모셔야 되겠습니다」 그렇지요?「예」 모셔야 되겠어요, 안 모셔야 되겠어요?「모셔야 되겠습니다」 정말 그렇지요?「예」 여러분은 모셨어요. (웃음) 그 다음에 여기 있는 사람들, 모셔야 되겠습니까. 안 모셔야 되겠습니까?「모셔야 되겠습니다」 저 귀퉁이에 있는 사람들만 하니까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 기분 나쁜 모양이구만. (웃음) 거 기분 나쁘다고 아침부터 그러지 말라구요. (웃음) 어차피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선 여자들은 주님의 종한테 시집가지 않으면 주님한테 시집을 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 판국을 딱 둘로 결정지어 보게 될 때에 신랑이 잘났겠어요, 못났겠어요? 비례적으로 볼 때에 내용적으로는 잘났지만, 외형적으로는 잘났겠습니까, 못났겠습니까? 「못났어요」 못났기 때문에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부모님께 '부모님이 그렇게 고대하시던 이상상대 행차올시다' 하고 소개할 자신이 있겠어요, 없겠어요?(웃음) 생각해 보라구요. 자신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겠습니다」‘여보 여보, 좀 기다리소'라고 하기가 일쑤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열녀입니까, 망녀입니까? 「망녀요」 알긴 잘아는구만요.
구름을 타고 영광 중에 오는 신랑보다도 더욱 훌륭하다고 해 가지고 거지 중의 상거지를 모셔다가 '어머니, 사랑하는 딸이 왔소. 내 옆에 있는 이분이 누군가 하면 당신이 그렇게 맞이하기를 바라던, 천대 만대의 소원으로 찾아진 내 사랑하는 낭군이요' 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겠어요? 뒤로 자빠지겠어요, 아니면 '아이고 너로구나' 하고 와서 손을 붙들 겠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뒤로 자빠질 것입니다. (웃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다는 거라구요. 허허 웃지 말라구요. 지금 내가 농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담이 아니라구요.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자, 여기 우리 아씨들, 아주머니 후보자들. 신랑이 마음에 들어요, 안들어요?(웃음)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안 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신랑이 잘생겼어요, 못생겼어요?「못생겼습니다_I (웃음) 잘생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생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일등 미남자와 박색(薄色) 중의 상박색의 여자가 부부의 인연을 맺어 놓고 보니 거기에도 아주 뭐 꿀이 흐르더라 이거예요. 여러분, 꿀이 뭐예요? 꿀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좋은 것입니다」 꿀이 끈적끈적한데 뭐가 좋아요? 얼굴에 묻기나 해 봐요. 기분 좋은가. 그것은 먹어 보기 전에는 절대 좋은 것이 아니라구요. (웃음) 그렇잖아요? 먹어 보기 전에는 좋은 줄을 모른다구요. 마찬가지로, 외형적으로는 못생겼지만 살아 보기 전에는 모를 사람이 있더라는 거예요. 살아 보니 이건뭐 당신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할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 가운데 어디 그런 여자들 있으면 손들어 봐요. 내가 축복을 해줄께요. 축복이 그리워서 손들었지. 정말로 그렇다면 심각한 얼굴을 해가지고 이렇게 손을 드는 거예요. (행동으로 표현하심. 웃음)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가만히 보실 때에 아들의 수준은 높은데 그 아들의 상대자는, 아들과 비슷하면 좋을 텐데, 제일 끝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마음을 쓰겠습니까, 안 쓰겠습니까? 「쓰겠습니다」
마음을 좋아서 쓰겠어요, 기분 나빠서 쓰겠어요? '아무리 봐도 저 짝은 조금 기우는데…. 그래도 자기들끼리는 좋아하누만. 사내 녀석이 조금 병신 아니야? 아무리 보아도 병신 같구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들을 불러 놓고 '얘야, 네 아내를 보면 여자는 여자 같지만 꿈에서 봐도 싫을 수 있는 여자인데 그래도 너는 좋으냐? 라고 물을 때에, 그 아들의 대답이 걸작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좋다고 하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좋다고 하셨기 때문에 저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는 것입니다.
결혼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입장에서 나에게 아내로 맞으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제가 안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아들이 효자입니까, 불효자입니까? 「효자입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이 전부 다 '부모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소? 내가 살고 싶어서 사는 거요?’ 이럴 겁니다. 그러는 것보다도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여자인데 제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고 한마디 했다면 벌써 그 한마디로써 효자가 될 수 있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수고는 다 집어던지더라도 그 한마디로 말미암아 효자의 판권을 팔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요? 여자 때문에. 그런 차이 있는 조건으로 말미암아 수고하지 않고도 효자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그전 자리는 거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보게 될 때도 데리고 살고 싶은 그런 며느리를 얻었을 때, 그 부모가 자식에게 '야, 네 색시 참 곱지? 하면 '예, 곱고 말고요' 하고, '왜 고와?’ 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곱다고 하기 때문에 저도 곱습니다' 하는 아들이 효자입니까? 그건 아버지 어머니도 데리고 살고 싶은 며느리니까 고와하지 않을 수 없는 거라구요. 그 아들도 고와하기 마련이라구요.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가 고와하기 때문에 저도 고와해요' 하는 아들이 효자가 될 수 있어요? 될 수 있어요, 없어요? 그것은 상례 입니다. 상례. 이런 점에서 볼 때, 효자의 통칭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공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못생긴 아내라는 것입니다.
또 봅시다. 동네에서 박색 중의 박색 대왕의 간판을 갖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이 여자를 할머니가 보나 아줌마가 보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애기들이 봐도 전부 다 기억이 좋지가 않다는거예요. '이세상에서 제일 못난 여자가 누구냐'고 할머니한테 물어 봐도 아무개의 신부, 아줌마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 오빠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 동생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 아이들한테 물어 봐도 그 여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여자를 어떤 남자가 사랑하게 되었다 하게 될 때에는 거기에서 수수께끼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그 남자를 보고 가만히 생각하기를, '우리 영감과 저신랑을 비교해 볼 때에 우리 영감이 저 신랑의 절반만큼만 생겼어도 내가 행복할 텐데'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여자로 태어나 저런 남자하고 한번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할머니의 마음도 싱숭생숭하게 동요시킬 수 있는 남자가 되었더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또 아줌마들로 하여금 '저런 남자와 한번 살지 못한 것이 한이구만. 우리 남편과 저 남자를 비교해 보면 마치 왕궁과 똥통과 마찬가지구만' (웃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는 거예요. 여자들로 하여금 자기 남편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입장에 서게 하는 남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는 거라구요.
또, 시집갈 처녀들이 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면, '나 시집가게 되면 우리 동네에 아무개 신랑과 같은 그런 미남자에게 가겠어요' 하는 그러한 바람이 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여자가 바람에 들뜨게 되면 그 여자가 앞으로 행복할 수 있겠느냐. 시집갈 처녀의 마음을 싱숭생 숭하게 만들어 놓은 남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또 어떤 처녀는 '나같은 여자는 백 번 죽고 천 번 뒤넘이치고 천년의 한을 품고 정성을 들여도 저런 남자에게 시집갈 가망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못 살겠다. 이놈의 상통' 하면서 거울을 볼 적마다 원망과 저주를 스스로 에게 퍼붓는다는 것입니다. 자포자기의 상통이 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그런 여자 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 남자는 아주 잘났는데 제일 못난 여자와 떡 산다고 하게 될 때 여자들은 그 여자를 놓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 여자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볼 때에는 자기 자신에게 '에이 벌받을 년' 이런다는 거예요. '고귀한 남자의 순정을 유린한 요사스러운 년. 이년아' 그런 가책의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 남자를 본받아 가지고 네남편을 이와 같이 사랑하라'는 교훈의 재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
그런 일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런 남편을 못 얻을까봐 낙심해 가지고 죽을 수 있는 여자에게 그런 형편없는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를 통해서 소망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 동네에 있어서 그 한쌍의 부부가 복되게 산다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굴복한 사람들은 전부 다 그들을 훌륭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 부부를 고맙게 보게 된다는 거라구요. 남자는 그러한 남자가 되어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남자는 어떠한 남자가 되어야 되느냐? 잘난 여자의 궁둥이나 따라다니면서 사랑하겠다는 그런 남자보다도 아무리 못난 여자이더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사랑할 수 있는 정을 가진, 사랑을 가진 남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못난 여자와 사는 남자를 보게 될 때는 잘난 남자를 바라던 여자들도 남자가 얼굴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나는 저런 순정을 갖고 남편을 사랑할 수 있는 아내가 되어야 되겠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교훈도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동네 여자들은 전부 다 그 남자를 높이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따라서 남자를 만나더라도 누구와 같은 남자를 만나야 되느냐 하면 그와 같은 남자를 만나야 됩니다. 또 여자를 만나더라도 그와 같은 여자를 만나야 됩니다. 여자는 그와 같은 남자의 아내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와 같은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효부의 통칭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효부,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편도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는 데는 한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좋아했듯이 아버지 어머니가 지금도 좋아하는 며느리라면 효부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아내를 가진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동네에서도 위함을 받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나라면 나라에서도 그래요.
앞으로 통일교인의 가정 가운데 모범적인 가정을 택하는 데 있어서 일등상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어떠한 가정일 것이냐 할 때에, 부부 사이가 아침에 봐도 맞고 저녁에 봐도 맞을 수 있는 그런 가정은 대표적인 가정으로 꼽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침에 봐도 안 맞고 저녁에 봐도 안 맞고, 일년 내내 봐도 서로 안 맞는 그런 부부의 가정이 일등상을 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잘난 사람하고 지극히 못난 사람이 사는 가정이 일등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끼리, 혹은 좋은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보다도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가치가 더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여러분들이 결혼할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마음에 생각했던 남자를 만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구요, 어디 한번 그 비율을 알아보자구요. 여러분 가운데 지금 내가 결혼을 해서 같이 사는 남편은 내가 옛날에 생각하던 그런 이상적인 타입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살다 보니 그저 산다. 혹은 그저 좋아졌다 해도 좋고,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타입이 아닌데 그저 이렇게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하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많을 거라구요.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구요. 내가 좀 알아보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내가 앞으로도 이런 놀음을 해야 되기 때문에, 여러분을 참고로 해서 앞으로 여러분의 후배들을 섭섭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 물어 보는 거라 구요. (웃음) 자기가 꿈에도 생각지 않은 그런 타입의 남자한테 시집을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그래도 열녀감들이 많구만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의 색시들은 여자로서 먼저 열녀가 가야 할 길을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모시고 가야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진정한 열녀는 남편만을 모시는 여자가 아니더라. 이렇게 됐지요? 부모를 진정으로 모실 수 있는 정성어린 마음을 가진 열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시집을 가라고 하면 시집을 가겠다고 했어요, 안 가겠다고 했어요? 약혼은 같이 살라고 해줬어요, 같이 살지 말라고 해줬어요? 파혼하라고 해줬지요?「아닙니다」
여러분이 결혼하게 된 것은 신랑도 색시가 어머니 아버지를 좋아하니까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을 좋아하니까 결혼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를 보고 결혼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거라구요. 딴 것이 아니라구요. 남편이 선생님을 얼마만큼 좋아할 것인가를 봐서 결혼한 것입니다. 한 일년 좋아하다가 그만둘 거라고 하면 '난 싫어'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년 만년 좋아할 것이라고 하면 '아이구, 난 좋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색시를 택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을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를 보고 택하더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것이 다른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열녀의 전통을 지닐 수 있는 입장에서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녀의 전통은 뭐냐? 천륜의 법도를 따를 수 있고 모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신랑 신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오늘날 혼란되고 파탄이 벌어지는 현실시대에 있어서 새로운 역사 창건의 주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이왕지사 그렇게 부부의 인연이 맺어졌는데도 자기 남편의 얼굴이 길다고 해서 타박하는 여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타박하는 여자들은 자기 상통을 한번 보라는 거예요. 얼굴이 긴 남자 앞에 맺어진 여자는 얼굴이 동그란 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굴이 긴 남자와 얼굴이 동그란 여자가 서로 합하게 되면 아들딸은 멋진 계란형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웃음) 아들딸 대에 가서는 미남 미녀가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들딸들이 자기 아버지 어머니보다도 잘생겼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원칙적인 통계 결과에 의한 평입니다.
그래, 아들딸이 다 어머니 아버지보다 잘났던가요, 못났던가요? 내가 듣기에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은, 나는 그렇게 될 줄 알았지만, 사람들이 축복받고 낳은 아들딸들이 나쁘지 않다고 하는 말입니다.
어디 우리 애기가 그렇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자기 자식이 자기보다 못생겼어도 잘났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어머니의 생각이라구요. 물어 볼것도 없다는 거예요. 다 들었지요. 들게 마련이라구요. 자기 애기가 호박통같이 생겼어도 날아가는 제비 새끼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머니라구요. 그래, 여러분의 아들딸들 다 잘났지요? 잘났어요, 못났어요? 「잘났습니다」 잘났지요? 그저 아이를 가슴에 품고, 등에 엎고, 안고, 붙들고서 살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잘살아요, 못살아요?「못살아요」 이것이 잘사는 거라구요. (웃음) 이것을 설명할까요? 설명하자면 한이 없어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데 자꾸 다른 얘기를 하게 되니 오늘 종일 얘기해도 내가 다 못할 거예요. 이제 또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르겠어요. (웃음)
자, 이제 오늘 얘기를 신부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신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그럼 신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봐요. 여러분이 이렇게도 대답을 못하고 저렇게도 대답을 못하는 처지에 있는 것을 내가 이해합니다. (웃음)
여러분, 감옥에 들어가 옥살이하는 남편을 만나러 가는 여자의 신세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런 아내의 신세 말이예요. 그걸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감옥에 들어갔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구요. 거기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다 이거예요. 그 시대에는 역적으로 몰렸지만 후대에 가서 영웅으로 등장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아내가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남편을 찾아가 남편이 그 시대에 저주를 받고 손가락질을 받고 침뱉음을 받는다고 그 남편에 대해서 저주와 원망을 품는다면, 영웅시대에 들어서면 그 부인은 어떻게 될까요? 민족의 요녀로서 낙인이 찍힐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을 생각해 보았어요? 생각해 봤어요, 안 해봤어요? 그렇지요? 생각해 봐야 되는 거라구요.
사랑은 영원을 중심삼고 계획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제 좋다고 하다가 오늘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십년 전에 좋다고 했다가 십년 이후에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자리에서도 좋아해야 되고, 죽고 나서도 또 좋아하면서 가야 할 것이 사랑의 법도입니다. 이렇게 영원한 사랑을 중심삼고 맺어진 맹세의 터전이 부부이기 때문에 남편이 감옥에 들어갔으면 부인도 남편과 같은 운명길을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남편이 침뱉음을 당하거든 그 부인도 침뱉음을 당해야 하고, 남편이 민족 앞에 몰림당하면 그 부인도 몰림을 당해야 하는 거라구요. 그것은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응당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아야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여인이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감옥에 들어간 남편이 있는데 그 부인이 남편의 가는 길을 따라 가지 않고 '아이고, 감옥이 웬말이야? 아이고, 욕설이 웬말이야? 난 싫어' 하며 반대하다가 보따리를 싸들고 마음대로 나간 여인이 있다고 합시다. 그 남편은 뜻을 품은 남편이었다 이거예요. 해가 거듭 지나감에 따라서 그 남편의 위신이 나라에 들려지고 세계에 들려져서 청사에 빛날 수 있는 성인의 이름에 오르게 되었다면, 그때에 그 남편 앞에 반대를 하던 여인은 역사상에 다시 없는 최고의 추녀요 악녀라는 말을 들으며 심판대에 오를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만일에 그렇게 되어 가지고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라면 모르지만, 영원히 산다면 그 여자는 영계에 가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라구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도 그럴 수 있는 여자가 될는지 모릅니다. 현재 그럴 수 있는 입장에 있어요. 선생님이 가는 길을 그렇게 반대할 수가 없었어요. 그저 밤낮없이 반대하고, 이래 반대하고, 그래 반대하고, 저래 반대하고, 이리저리 반대를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오고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안 깨물었나, 꼬집기를 안 했나, 긁지를 않았나, 그래도 안 되니 자기 고무신을 뒤집어 가지고 뺨을 때리지 않았나….. 내가 여자한테 천대를 깨깨 받았습니다. 거 탕감 복귀를 많이 했다구요.
또 밥에다 독약을 넣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해주는 밥도 얻어먹어 봤습니다. 그랬으면 남자 신세가 거룩하지요? 그러니 행복한 남자입니까, 불행한 남자입니까?「불행한 남자요」 불행한 남자를 따라가 가지고 행복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래도 살림살이 잘한 여자지요 뭐. 그렇잖아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볼 때에. 성진이 어머니가 잘했어요, 못했어요? 만일 성진이 어머니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더라면, 죽으라면 죽고 고생하라면 고생하고 그렇게 갔더라면, 선생님도 고생 안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비참한 길은 안 거쳐요. 복귀의 길은 간단한 거라구요. 그랬을 게 아니예요?
해와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3시대의 역경을 거쳐 나온 것입니다. 종적인 역사를 3시대에 횡적으로 탕감해야 하기 때문에 억세고 모진 여자로 말미암아 풍상을 겪는 십자가의 행각을 다시 더듬어 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노정이었습니다. 여자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여자를 생각하게 되면 아주 신물이 난다는 거예요, 신물이. 여러분을 대할 적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들을 성진이 어머니보다도 더 사랑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을 더 사랑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여기에 와서 여러분과 얘기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얘기할게 뭐 있겠어요? 그저 후려갈기고 싶다는 거예요.
내가 복수하려고 한다면 전부 다 갈기갈기 찢어서 그저 뭐랄까,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 사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무쳤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그것을 다 용서해 줘야 되기 때문에 전부 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런 여자들이 반대를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갖다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외로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구요. 그래서 여러분이 선생님이 고생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가슴이 휭하니 이상해지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편에서 같이 있고 싶고, 선생님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동기가 그렇게 돼서 그런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분은 성진이 어머니 이상 되지 않고는 선생님이 가는 길을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성진이 어머니를 앞으로 얼마만큼 고생을 시켜야 어머니의 사명을 할 수 있을 것이냐 할 때에, 고생 중의 제일 고생을 하고 버림받는 중의 제일 버림받았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인류를 대신해서 해와를 용서해 주기 위해서는 버림받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었다가 버림받는 자리에 설수 있어야 되는 것이요, 버림을 받는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만 어머니로서 여성세계의 모든 것을 탕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버린다고 앵앵거리고, 버린다고 야단하고, 버린다고 분풀이를 하면 모든 것이 파탄돼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그 이상이 되어야 되겠지요?「예」
타락하지 않은 원칙을 두고 볼 때에, 여자로서 만나는 남자는 누구만 있어야 되느냐? 부모와 남편 외에는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세계에 있어서 해와에게는 하나님 외에는 이 세상 천지에 남자는 없는 것입니다. 없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남자가 또 있다고 생각한 것이 타락이 아니냐. 그렇지요? 통일교회 여자들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는 부모 외에 남자, 선생님 외의 남자는 남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부모의 입장에 있으니까. 그렇지요? 선생님 외의 남자는 남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그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냐. 이렇게 된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그 아버지를 사랑하니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까?
여기에서 딴 생각을 하는 여자는 망하는 것이요, 딴 생각을 하지 않는 여자는 흥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자들이 길거리에 나가게 될 때 좋은 남자가 쓱 지나가게 되면 ‘저 남자가 나를 유혹해서 자기하고 살자고 하면 나는 지금 축복받은 남자를 버리고 또 시집가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는 벼락맞을 해와의 후계자입니다. 알겠어요? 무엇을 맞을 해와의 후계자라구요?「벼락이요」벼락을 맞는 데는 씨알머리도 없이 먼지와 같이 후루룩 날아가게끔 벼락을 맞아야 됩니다. 그런 여자는 또다시 천도를 망치고자 하는 요사스러운 여인입니다.
또, '우리 신랑과 저 신랑을 비교해 보니 우리 신랑이 못났구나' 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 자기에게는 비교할 남자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 에덴 동산에 있어서 해와의 입장이 아니냐.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잘나도 내 낭군이요, 못나도 내 낭군이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남자라고 해야 됩니다. 못난 사람이 더 사랑스럽다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내가 도와주고, 내가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뼈가되고 손이 되고 한 지체가 되어 줄 수 있는, 그가 필요로 할 수 있는 제일 귀한 사람이 아니냐' 하고 생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여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남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여자가 되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여자를 위한 남자가 되어야 할것이 아니라, 여자편에서 보게 될 때에는 남자를 위한 여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남자를 위하는 데 있어서는 선생님을 위하던 그 마음을 그냥 그대로 갖고 남편을 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된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만 좋아하고 자기 남편은 싫어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런 원칙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전에 복귀과정에 있어서는 천사장이라는 얘기를 했지만 말이예요. 내용적으로는 천사장이지만 외형적으로는 남편이 아닙니까? 그렇지요 ?
그러면 여러분은 신부 중에서 아리따운 신부가 될 거예요, 털털이 신부가 될 거예요?「아리따운 신부요」 아리땁고 향기로운, 뭐라 할까요. 신랑이 놓고는 살 수 없는 신부가 되어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 신부가 되고 싶어요, 적당한 신부가 되고 싶어요? 적당한 신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봐요. 없지요? 아리따운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리땁다는 것은 얼굴이 아리따와서 아리땁다는 거예요?「아닙니다」 태도와 행동이 아리따와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통일교회의 남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교회 여자들은 버릇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정상적인 말이냐, 비정상적인 말이냐? 「정상적인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랬어요. 여러분이 정상적인 말이라고 한 것입니다. 내가 그렇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이 '히히히' 웃는 것은 전부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웃음) 통일교회 여자들은 버릇이 없다는 거라구요. 왜 버릇이 없다는 것이냐? 남편이 밖에 나가서 밤 12시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데도 잠만 쿨쿨…. 그러니 버릇이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웃음) 남편이 사흘 나흘 어디 나가서 돌아다녀도 '그저 돌아오겠지. 어디 갈 데가 있나. 찾아올 곳이 여기밖에 더 있나. 별수없이 오겠지' 이런 배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러니 남자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여자들입니까, 관심이 없는 여자들 입니까?「없는 여자들입니다」 솔직히 대답해 봐요. 관심이 있는 여자들이예요, 없는 여자들이예요?「없는 여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사실을 알긴 아는구만. 그러면 자기에게 관심 없는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가 행복해요, 불행해요?(웃음) 솔직히 까놓고 말해 봅시다. 그런 남자가 행복해요, 불행해요?「불행합니다」 불행하다고 여러분이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웃음)
그러면 불행한 남자하고 사는 여자는 행복해요, 불행해요?「불행합니다」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웃음) 누구로 말미암아 불행해졌어요 ?「여자요」 여자로 말미암아 불행해졌다는 거예요. 여자가 심었으니 여자에게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가서는 좋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아줌마들이 남편에게 애교를…. (표정을 지어 보이심) 그런 인자함을 지니고 있어요? '천년 만년 간절히 간절히 기다리던 우리 낭군님이 돌아오셨다'고 하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아이고 좋아라' 그래 봤어요? 남편이 돌아올 때 얼굴을 찡그리며 살림살이가 어려우니까 '이제 오우?' 하면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기 전에 뭘 사 가지고 오지 않았나 하고 손을 먼저 바라본다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아요? 내가 다 알고도 남는다는 거라구요.
내가 이야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는 면회 왔다는 말이 참 기쁜 소식입니다. 누가 면회를 왔다 하게 되면 아주 뭐 눈이 번쩍 뜨이는 거라구요. 선생님도 그랬어요. 면회를 오는 것은 좋은 거라구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외로운 입장에 있다고 할지라도 외롭지 않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고독한 자리에 있지만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니까 참으로 좋은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런데 면회하러 올 때에 걱석개비 모양으로 맨손으로 쓱 들어오면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웃음) 요새는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군대에 가 있는 군인들은 배가 고파 가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다 먹을 것으로 보인다는 거예요. 누가 면회를 올 때는 먹을 것을 해서 가지고 와야 기뻐하지 안 해 가지고 오면(표정을 지어 보이심) 이래진다는 거예요. (웃음)
그와 마찬가지로 살림살이가 어려운 여자들은 말이예요. '아이고, 이놈의 생활이 언제 끝나겠나' 하면서 이리 봐도 벗어날 구멍이 없고, 저리 봐도 벗어날 구멍이 없고, 뒤를 돌아다 봐도 내려다 봐도 벗어날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거 통일이 좋긴 좋은 것인데…. 그래 이것 가지고 좋다고 했구만' 하고 여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할 대로 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이 어디서 생기느냐? 남자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웃음) 통일교회 남자들을 보게 되면 병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병이 어디서 나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남자들에게서 안 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힘들게 순회 갔다가 돌아왔는데…. 아내는 밥을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슴에 품겨 젖을 먹고 있는 애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던 차에 남편이 쓱 들어오니…. (행동으로 나타내심. 웃음) 남편은 피곤해 가지고 돌아오는데 그러고 있는 부인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나빠요」 그래도 행여나 아내는 반가이 맞아 줄 줄 알고 돌아왔는데 푸…. 남편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기뻐하려다가 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무엇을 줄 줄 알고 손을 내밀었는데 못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때요? 그 격이라구요, 그 격. 행여나 하고 바라고 왔다가는 탁 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올 때부터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왔으면 괜찮을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집안에 쓱 들어섰는데 아내가 그러면 마음이 섬뜩해진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아내가 말하는 투가 분풀이를 할 양으로 '무엇이 편안해서 이렇게 늦게 들어오우?' (웃음)
'어디서 좋은 수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라고 하는 겁니다. (웃음) 거의가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수가 있었던 모양이지요?’ 라는 말을 아내에게 듣게 될 때에, 남편은 두 가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를 만나 지금까지 지내다가 지금 왔소?’ 하는 말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자기가 섭섭하니까 신랑도 자기와 같은 입장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여자의 심정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정사(情死)의 통계를 보게 되면 약 80%가 여자가 먼저 죽자고 해서 죽은 경우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많은 것이 여자입니까, 아니면 그럴 수 있는 소질이 없는 것이 남자입니까?(웃음) 어느쪽입니까? 여자에게는 그럴 수 있는 소질이 많아요, 적어요? 자기는 기분 나쁘고 섭섭해 있는데 남편이 '히히히' 웃으면 기분이 나쁘지요? 솔직하게 대답해 봐요.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나쁩니다」 자기가 앵하고 물으면 뚱하고 이래야 되지 하면서 '히히' 하면 '앵앵'하며 달려 드는 거라구요. (웃음)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 살림살이를 하는 부인을 데리고 사는 남자의 신세, 통일교회의 신세. 통일교회의 지역장 지구장들의 신세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물어 봅시다. 그들이 들락날락하는 것이 집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여편네를 위해서 들락날락하는 것입니까? 누구를 위해서 들락날락하는 것입니까?「뜻을 위해서요」 뜻을 위한다는게 누구를 위하는 거예요? 남을 위해서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편네가 꽁하게 생각해 가지고 기분 나빠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기분 나빠하는 거예요?「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위해서 기분 나빠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렇게 처량하게 된 것은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남을 위해서요」 남을 위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선한 것입니까?「남을 위하는 것이요」 똑똑히 대답하라구요. 어느 것이 선한 것이예요?「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는 것이 선한 것인 줄 알았으면 그를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야 되는 것이 도리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지역장의 마누라 지구장의 마누라들은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살아 보았습니까?(웃음)
앵앵거려 가지고 지금까지 남을 위해서 펄펄 뛰어다니던 남편의 다리나 잘라 놓고…. 그래서 남편들이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웃음)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여자가요」절름발이를 자기가 만들어 놓고 ‘이건 뭐야. 뭐야? 왜 절뚝거려?’ 그럽니다.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기는 자기가 만들어 놓고 그걸 탓하는 거예요. 그러면 남편이 절름발이 신세가 되어 가지고 나타날 면목이 있겠습니까? 부끄러워 가지고 절름발이 신세 좀 면하게 해 달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나오면 불쌍히 여겨서 눈물을 흘리면서 동정해 주어야 되는데 동정은 안 하고, '무슨 강의가 그렇고 무슨 설교가 그럽니까?' 그럽니다. (웃음) 이러다 보니 팔이 또 딱 잘라졌다는 거예요. 팔을 잘라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왜 그래요?’ 이렇게 하게 되고, 그러니 또 자르는 것입니다. 상통이고 무엇이고, 코를 잘라 놓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하나 잘라 놓고, 둘 잘라 놓고, 셋 잘라 놓고…. 이렇게 셋만 자르게 되면 남자가 죽어 나가자빠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남자를 잡아먹는, 거 무엇입니까? 남자를 잡아먹는 요사스러운 것이 무엇이예요? 아귀신, 아귀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굶어 죽기 내기를 하면 여자가 나중에 죽는 거예요. 남자가 여자보다도 한 삼일 먼저 죽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왜 하나님이 여자는 남자보다 3일 후에 죽게 만들고 남자는 3일 전에 죽게 만들었느냐? 밥을 굶는 일이 있더라도 여자는 더 참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밥을 먹여 주고 자기는 안 먹더라도 더 참아야 되겠기 때문에, 죽더라도 남편하고 같이 죽어야 되겠기 때문에, 똑같이 밥을 굶어서 죽더라도 오래 있다 죽게 하려니 할수없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보다 더 밥을 굶으라는 것입니다.
또 여자들은 궁둥이가 왜 크나? 여자들은 궁둥이가 크지요? 애기를 낳게 하기 위해서도 궁둥이를 크게 만들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편안히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도닦으라고 크게 만든 것입니다. (웃음) 알겠어요? 망하는 도가 아니라 흥하는 도를 닦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흥하는 도는 뭐냐? 남을 위해서 사는 도입니다. 남을 위하려면 먼저 남편을 위해야 합니다. 그것이 남을 위하는 데 있어서의 첩경입니다. 알겠어요? 그 다음에 자기의 아들딸을 위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첩경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을 위하는 아내가 되고 아들딸을 위하는 어머니가 되라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젖가슴이 왜 볼록하게 나온지 압니까?(웃음) 그렇게 웃지 말라구요. 웃을 게 뭐 있어요? 다 그런 것인데, 여자의 젖가슴이 왜 나왔느냐 하면, 교육을 하기 위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크면 클수록 좋은 것입니다. 젖가슴은 넓고 커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남자보다도 넓고 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남자를 사랑해야 되기 때문에 여자의 가슴이 커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젖통이 커 가지고 늘어져서 흔들흔들하는 그런 여자는 성질이 괄괄하다는 거라구요. (웃음) 한번 보라구요. 저기 뚱뚱한 아줌마는 이제 웃기 시작하는구만. (웃음) 그것은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면서 큰 가슴으로 모든 사람을 품어 주는 여자가 되라고 그런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여자는 왜 키가 작은가 하면, 키가 커서 드러나면 요사스럽기 때문입니다. 네 남자들 가운데에 딱 들어가면 작으니까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여자입니다. 그렇잖아요? 여자는 드러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산을 참 잘했지. 그리고 여자는 왜 수염이 안 나는지 압니까? 애기에게 젖을 먹여야 되기 때문에…. 만일에 여자들이 수염이 길게나 있다면 애기가 젖을 먹는 데에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또 남자는 수염이 나는데 여자는 왜 수염이 나지 않을까요? 만일에 남자와 여자가 서로 싸움을 하게 될때에 여자가 복수를 할 수 있는, 한을 풀 수 있는 한때를 맞으라고 그런 것입니다. 남자의 수염을 한번 낚아채면 한이 풀리는 것입니다.. (웃음)
그리고 여자는 왜 머리를 자르지 않고 남자보다도 길게 하고 다니는 줄 압니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머리를 길게 하고 다닙니다. 그것을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 보았어요? 생각해 봤어요, 못 해보았어요?「못 해보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여자는 남자에게 몽땅 끌려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웃음) 남자가 머리만 붙들고 끌게 되면 몽땅 끌려가지 별수 있어요?(웃음) 그러나 남자는 여자에게 끌려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디 잡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난 여자든 못난 여자든 여자는 할수없이 몽땅 끌려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끌려다녀야 할 장본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의 머리가 긴 것입니다.
여기서 머리란 뭐냐? 머리는 그 사람의 중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심을 어디에다 두고 살라는 것이냐 하면 남편에게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끌려갈 수 있는 상징으로 머리를 기르는 것입니다.
또 왜 남자의 목소리는 왕왕왕왕하고 여자의 목소리는 앵앵앵앵하는지 알아요? 그것은 하나님의 조화에 의해서 안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앵앵앵앵하기 때문에 단음과 같아서 멀리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의 목소리는 화음과 같아서 멀리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자가 '사람 살려주세요' 할 때와 남자가 '사람 살려주세요' 할 때를 비교해 보면 여자의 목소리가 더 멀리 가는 것입니다. 여자의 목소리를 앵앵앵앵하게 한 것은 말을 작게 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예요. 집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크면 그 집은 좋지 않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또 남자보다도 여자의 목소리가 굵지 않고 가느다란 것은 영향을 미치지 말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일방적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통일교회 남자들을 볼 때에 통일교회 남자들은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그 불쌍한 한을 언제 풀어 줄 것이냐? 여러분은 탕감복귀에 대해서 배웠어요? 통일교회 남자들의 불쌍한 한을 언제 풀어 줄 거예요? 또, 보라구요. 통일교회 여자들을 가만히 보면 자기 얼굴을 곱게 가꿀 줄 모릅니다. 호박통 같은 얼굴에다가 파마를 이렇게 해 놓고, (웃음)
두꺼운 입술에다 루즈를 새빨갛게 발라 놓는구만. 그것은 정말 죽고 못보는 거예요. 그럴 바에는 루즈를 바르지 않은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얼굴은 조그마한데 큼직한 입술에다 루즈를 새빨갛게 칠해 놓았으니 '아이고, 나 잡아먹는 호랑이...' 이건 뭘 잡아먹다가 피를 묻힌 것 같은 입술을 만들어 놓았다는 거예요. 망쳐 버린 놀음이라구요.
또 얼굴을 보면 얼굴의 위쪽이 강하게 생겼는데, 이마도 반듯하고 눈도 크고 시꺼멓게 푹 들어갔는데 거기에다가 아이 샤도우인지 뭔지를 해 놓아 가지고, (웃음) 그거 죽고 못 볼 거라구요. 아래가 좀 두둑하게 생긴 사람이 그런 것을 하면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래는 두둑하고 위가 큰 데다가 그렇게 했으니 꼴불견이지 별수 있어요? 남자가 그런 얼굴을 보고 좋아할 것 같아요? 다 울어야지요.
사람이 웃게 되면 얼굴이 둥그래집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웃어 봐요, 그런가 안 그런가. (웃음) 사람이 웃게 되면 얼굴이 둥그래지기 마련입니다. 웃으면 왜 얼굴이 둥그래지느냐? 둥근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울게 된다면 얼굴이 어떻게 되느냐? 쭈그러지기 마련이예요. 웃는 얼굴 모양과 우는 얼굴 모양이 비슷한 것 같은데 천양지 차(天壤之差)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살짝 둥그래지고 하나는 쭈그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거 다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웃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웃는 데 있어서 너무 기뻐서 흐드러지게 웃을 때에는 눈물이 나올 때가 있지요?「예」그러한 찰나에는 원수가 방해를 한다 하더라도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때에는 웃으면서 원수를 바라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웃으면서 원수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 원수를 미워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와 틀어진 사람이 있을 때 그 틀어진 사람하고 화해 하려면, 그 집에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흐드러지게 좋아할 때 척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타날 때는 그 기분을 망치게 하려는 마음이나 원수시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환경 가운데 그냥 그대로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서 전체가 기쁠 수 있는 판국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있는 듯 없는 듯한 표정을 하기 때문에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을 억제할 수 있는 작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만난 신랑을 두고 볼 때에, 신랑을 만난 게 어때요? 잘 만났어요, 못 만났어요? 잘 만났지요 뭐. 잘 만났다는 거라구요. 약혼식 석상에서 남자는 좋은 양복을 입고 여자는 좋은 투피스를 입고 서로 만나 보고 난 다음에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골라잡지 않았습니까? 골라잡았어요, 안 골라잡았어요?「안 골라잡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안 골라 잡았지만. 내가 골라잡았지요. 여러분들 눈보다 선생님의 눈이 나쁘지 않다구요.
777가정 축복할 때에도 서로 맞지 않아서 안 해주겠다는 데도 남자나 여자나 제발 해달라고 해서 해줬더니 지금은 '아이고' 이런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축복받고 나서 삼년, 못해도 십년만 살아 보라는 거예요. 대체로 볼 때 축복받은 가정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좋아요, 나빠요?
그러면 오늘날 이 사탄세계에 있어서 우리 축복가정을 두고 볼 때에. 이 축복가정은 역사 이래 처음 나온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가정까지 나왔습니다. 이 가정은 역사 이래 처음 나온 가정입니다. 아까 하나님이 한 분이라면 방향도 하나요. 목적도 하나라고 말했지요? 중심 존재가 나와 가지고 역사를 이렇게 정비해 나가야 되며, 개인도 그런 입장이 선 개인이 되어야 되고, 가정도 그런 입장에 선 가정이 되어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앞으로 남아질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느냐, 못되느냐? 하나님이 가는 방향과 일치될 수 있는 방향에 서 가지고 목적을 하나님의 뜻과 더불어 일치시켜 가지고 그 목적지까지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문제를 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가는 방향에 있어서 누구를 위해서 사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어떤 종교든지 지금까지 그렇게 나온 종교가 없었습니다. 만일 과거를 위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 현재를 위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 미래를 위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 이 삼시대의 종교를 대신해서 나가고 있는 종교가 있다면 이 종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방향 앞에 일치될 수 있는 내적인 인연을 가진 종교가 아닐 것이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독교를 두고 보면 기독교는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만을 위하는 종교입니다. 또, 지금까지의 종교를 보면 자기의 구원만을 표방해 나왔지. 영계의 구원완성이니 세계적인 구원완성이니 혹은, 미래의 구원완성이니 하는 것을 생각하고 나온 종교가 없었습니다.
전부 다 '내가 이렇게 믿어야 천당갈 수 있다'라고 하는 자기 중심적이었습니다. 또 내 교파가 잘되어야 된다고 하는 자기 교파 중심적이었으며, 전부 다 내 나라가 잘되어야 된다고 하는 자기 나라 중심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만민을 중심삼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를 중심삼고 현재의 세계를 위하고, 현재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를 위하고, 미래의 세계뿐만 아니라 과거의 세계까지 위할 수 있는, 인류가 바라는 본향, 인류가 바라는 목적지를 더듬어 나선 종교가 있었느냐 하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에, 과거를 대신하고 현재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방향의 일치를 모색해 나간 종교나 사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가 짊어진 사명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말하기를 우리는 6천년의 역사적인 열매라고 말하지요? 그러니까 역사과정을 전부 다 부정하는 거예요? 부정하는 것입니까, 시인하는 것입니까?「시인하는 거예요」 완전히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열매이니만큼 시대적인 사명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온 세계을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가 이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세계 인류를 대표한 중심적인 사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통일사상은 인류가 최후의 종착점에 봉착할 때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상입니다. 오늘날 혼란된 세계 가운데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통일사상을 오늘날 인류가 가야 할 길의 중심, 그 골수를 대표할 수 있는 사상의 자리에 세우자는 것입니다. 이 사상을 중심삼고 세계가 하나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바라고 나오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노선과 일치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나오지 않고는 하나님의 출발의 방향과 하나님의 과정과 하나님의 결과 세계를 일치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역사가 얼마냐 할 때에, 통일교회 역사는 17년의 역사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 전 하나님께서 피조세계를 창조 하시던 그 창조 역사시대에서부터 타락 이후 지금까지의 복귀역사 시대를 거쳐 가지고 나온 역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재창조 역사를 거쳐 이상시대의 실현까지, 하나님의 출발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나가는 방향과 더불어 하나님의 목적에까지, 즉 처음에서 끝까지 일관된 사상적 방향을 갖추어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 전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락한 아담과 해와를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과 타락한 인류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대해서 탕감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거친 애달픈 고비가 있었으면 그 고비를 거쳐 나가야 되고, 혹은 꼬부라진 길이 있었으면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꼬부라진 길을 거쳐 찾아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가다가 중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찾아 나갈 수 있어야 됩니다.
그 방향으로 나가다가 정지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분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방향에 일치되어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하나님이 동하면 땅도 동할 수 있고 하나님이 정하면 땅도 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서 행동을 같이해 가지고 최후의 역사의 목적점, 종착점까지 가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날 역사를 대표하는 사상이 될 수 없고,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이 될 수 없고, 미래를 대표하는 사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보게 될 때에 역사가 찾아 나온 중심이 무엇이냐, 혹은 세계가 찾고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현 시대가 요구하는 중심이 무엇이냐, 미래가 바라는 중심이 무엇이냐? 이것을 오늘 얘기하자는 것입니다. 역사가 바라는 중심이 무엇이냐, 시대가 바라는 중심이 무엇이냐, 혹은 미래가 바라고 있는 중심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참사랑을 중심삼은, (판서하심) 뭐예요, 이게? 참된 가정입니다. 참된 가정은 역사적인 소원의 실체요, 시대적인 소원의 중심이요, 미래적인 소원의 출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해서 역사적인 결실. 즉 역사적인 부활체요, 온 세계 앞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중심이요, 미래 앞에는 원칙적인 출발의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된 사람과 이 참된 사람을 중심 삼은 가정은 역사적인 소원이 이루어져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람으로서 참된 가정의 목적을 갖고 오는 사람이 신랑입니다. 알겠어요? 그다음엔 신부가 이 신랑과 합해져서 참된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참된 가정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벌어지느냐? 참된 가정이 나왔으니 그 다음엔 참된 무엇이 나와야 되겠습니까? 참된 부모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가 나오면 참된 가정이 성립되는 것이요, 참된 사람의 목적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영원히 찬양받을 수 있는 그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참된 부모, 참부모입니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현현했다는 사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계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기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그렇잖아요?
오늘날 사악한 인간들 앞에, 악이 주관함으로 말미암아 방향을 갖추지 못하고 사망권을 이루고 있는 이 세계에 참된 부모의 인연이 성립된 것은 오늘날 한국 강토를 중심삼은 통일교회의 역사, 17년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6천년의 역사적인 수고의 공적의 열매로서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많은 인간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가리지 못하는 이 시대 앞에 갈 곳을 찾아 주고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중심적인 모델로서 나타난 것이 참부모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이름이 나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 에덴 동산에서 출발되어야 했던 영원한 미래의 천국이 여기에서부터 출발된다는 사실은 역사적이오,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지고 보게 될 때에, 이 땅 위에 현현된 참부모라는 이름은 우주의 중심을 결정하는 중심 포인트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열매맺히고,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수습되고, 역사는 여기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여기에서 열매맺히기 때문에 과거가 여기에서 부활되는 것이요. 세계가 여기에서 하나의 세계로 수습 되는 것이요, 하나의 세계가 기원이 되어 가지고 새로운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역사시대에 있어서 인류의 소망이 어디에 있었느냐 할 때에, 그 소망은 미래에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인류는 소망을 미래의 것으로만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인류는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할 때에,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의 세계를 향해서 간다고 했던 것입니다. 미래를 두고 하나의 세계를 모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짓된 인류 가운데에서 참된 부모를 맞이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인류는 기뻐할것이 아니냐.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것은 참된 부모를 맞는 것일 것입니다.
참된 부모는 인간들의 최고의 희망이기 때문에, 참부모가 현현하면 역사적 전통은 미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가 현현한 현실권내에서 성사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가 나타나면 참부모가 나타난 거기가 역사의 완성의 출발점이지 완성을 바라는 출발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원이 출발하는 자리가 아니라 소원성사가 출발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면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이런 참된 부모의 전통이 나오게 된다면, 참부모를 중심삼고 살던 생활권은 영원토록 역사시대에 현실적인 전통의 기준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금부터 천년을 걸어가게 되면 인간들이 소망의 미래를 바라보며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천년 전의 이때를 본받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여 나왔지만, 하나의 세계의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는 참부모가 나오게 된다면 만민은 그 참부모의 전통을 고이고이 본받아 가지고 그 중심을 받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면 갈수록 중심을 중심삼은 판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전통적 역사, 소망적 역사 전체를 대표할 수 있고, 미래의 시대적인 중심의 역사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그 터전이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의 가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6천년 역사는 무엇 때문에 있었느냐? 참부모의 가정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무엇 때문에 허덕이고 있느냐? 참부모의 가정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요?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은 무엇 때문에 있느냐? 참부모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참부모의 나라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요. 참부모의 세계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구요. 참부모의 나라와 세계는 참부모가 나오면 자연히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후손을 남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생활을 필요로 하는 때가 바로 우리의 이상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하늘땅이 부모의 권한에 의해 치리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때에는 평민의 이름을 가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엮어진 그 전통은 역사적인 전통으로 억천만세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전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부모를 중심삼고 관계되어 있는 사연은 영원토록 남아집니다. 알겠어요? 또한 참부모와 더불어 인연되었던 사연과 참부모와 관계되었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참부모와 관계되었던 사실도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억천만세에 길이길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는 개인으로 와서 가정을 가져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종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보라구요.
타락은 장성기 완성급에서 했습니다.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해 가지고 뚝 떨어져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떨어지고, 가정적으로 떨어지고, 종족적으로 떨어지고, 또한 그것이 퍼져서 민족적으로 떨어지고,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떨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렇게 세계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떨어져 내려오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떨어져 내려왔느냐? 개인과 가정을 중심삼고 떨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가정의 수가 많아져서 세계가 됩니다. 결국은 전통적 가정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가정이 모델이 되어서 세계가 엉클어진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와 사망의 세계를 보면 사망의 기원은 사탄이요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사탄의 세계는 반대가 되는 세계입니다. 사탄세계의 가정은 어떠한 가정이냐? 평화스러운 가정입니까, 아니면 불화한 가정입니까?「불화한 가정입니다」 불화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불화할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불화한 가정으로 시작하여 불화한 가정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하늘세계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가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것 참 잘한 말이라는 거예요.
만약에 아내와 집안에서 싸우고 난 후에 남편이 직장에 가게 된다면, 그 남편은 직장에서도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분풀이를 한다는 거라구요. 어떤 사장이 집에서 자기 아내하고 싸우고 회사에 나갔다면, 그가 사원들이나 부장들을 보게 될 때 기분 좋을 게 뭐냐 이거예요. 가정에서 기분이 나빴던 것은 반드시 사회에 번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제일 참기 어려운 것이 뭐냐 하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한이 맺히는 일입니다. 이것 이상 참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 거라구요. 아담 가정으로부터 불화의 씨가 뿌려짐으로써 시작된 가정은 거짓 부모로 말미 암아 시작되었기 때문에, 불화가 깃들어 있는 가정은 사탄세계의 가정이요, 평화가 깃들어 있고 화합이 깃들어 있는 가정은 하늘세계의 가정입니다. 이렇게 반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은 무엇을 중심삼아 가지고 등장하느냐? 사탄세계의 중심이 뭐냐? 불화 덩어리 가정이 사탄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중심이 뭐냐 하면 악한 것입니다. 불화 덩어리는 뭐냐 하면 매일같이 싸움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두고 보면 아버지 어머니가 서로 상충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부부끼리 서로 상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살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녹음이 잠시 중단됨)
참부모가 아닌 타락한 부모로부터 태어나 가지고, 나면서부터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목적과 방향을 모르는 가운데 매일매일 변하는 자리에서 살아 나온 인간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은 변할수 없습니다. 변할 수 있어요? 변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는 이랬다 저녁 에는 저랬다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부모의 가는 길이 내 길이요, 참부모가 사는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가 서 있는 자리가 내 자리요, 참부모의 세계가 내 세계다' 하는 사상을 공고히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참부모를 좋아하는 데 있어서는 세계 제일로 좋아한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가는 길에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이것을 행복한 것으로 소화시키고 갈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가서는 세계복귀니 무슨 하나의 세계니 하는 것을 꿈꿀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때의 역사적 전통과 소망의 기준이 될 참부모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미래의 세계적인 가정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에는 발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원칙이 되는 가정이 참부모의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후손들을 중심삼고 볼 때에, 천년이면 천년 후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소원하는 것은 천년 전에 여러분이 참부모를 중심삼고 그 가정을 사랑하면서 모시고 살던 생활, 악과 더불어 싸우던 그 모든 생활입니다.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자리에 설 수가 없다 하는 그 놀음이 앞으로 역사적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세계를 이룰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하나님의 창조이상 완성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부모를 중심삼은 전통은 어떤 민족에게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적 제도라는 것은 몇만 년이 지나도 마찬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거짓 부모를 중심삼고 인연되어진 것은 버리고 참부모를 중심삼고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인연을 맺는 데는 제일 나쁜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는 것이 아니라 제일 좋은 것을 중심삼고 인연맺어야 됩니다. 알겠어요? 참부모를 중심삼고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 갑시다. 제일 좋은 것이 뭡니까? 뭐예요?「사랑이요」사랑? 그래요. 사랑이 좋다는 거예요. 사랑이 성립되면 아들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없어 가지고 사랑이 성립됩니까? 안 됩니다. 그렇지요? 또 사랑이 성립되려면 부모가 있어야 됩니다. 부모가 없어 가지고는 사랑이 시작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자녀가 없어 가지고는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결국 사랑은 자녀와 부모, 즉 부자의 관계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좋은 것이 뭐냐 할 때…. 사랑에 앞서는 것이 뭐라고 요? 부자의 관계입니다. 그것은 누구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탄이예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만큼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만일 에덴 동산에서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있는 자리에서 부부가 되었으면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아빠 엄마가 되었겠지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니 아빠 엄마는 하나님을 대해서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제일 좋았을 것입니다. 또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딸들은 좋았겠어요. 나빴겠어요? 아들딸들도 제일 좋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참부모의 뜻이 그렇다면 선생님이 제일 좋습니까? 제일 좋습니까. 덜 제일 좋습니까?「제일 좋습니다」 뭐 덜 제일 좋아한다는 말은 없지요. (웃음) 제일 좋다고 해야 합니다. 내 눈보다도 참부모가 더 좋다고 해야 돼요. 내 눈을 빼놓고라도 참부모를 따라 가야 되고, 내 팔보다도 참부모가 좋으니 내 팔 하나를 잘라 놓고라도 참부모를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잘라 버릴래 ? 팔 하나를 잘라 버릴래 ?'라고 할 때는 무엇을 잘라 버려야 되겠습니까?「팔이요」 팔을 잘라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팔을 잘라 버리게 되어 있어요?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
그럼 여러분에게 '너 통일교회를 믿을래? 믿으면 팔을 자른다'라고 할때에, 여러분은 팔을 잘리고도 통일교회를 믿겠습니까?「예」 다리를 잘리고도 믿겠어요?「예」 또 눈을 뽑히고도 믿겠어요?「예」 코를 잘리고도 믿겠어요?「예」귀를 잘리고도 믿겠어요?「예」 이렇게 되면 두루뭉수리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으니 들어 보라구요. 졸고 싶으면 졸라구요. 조는 사람 빼고 우리끼리 하자구요. (웃음) 크게 얘기할까요. 작게 얘기할까요?「크게하십시오」
이렇게 두루뭉수리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왜 ?「다 잘라 버렸으니까요」 그래도 좋겠습니까?「예」 어떻게 좋겠습니까? 두루뭉수리 되어 가지고도 입은 잘라 버릴 수 없으니까 멀쩡하지요? 그런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입술도 다 훑어 버렸다면 웃는 모습이 보기 좋겠구만요. 그것까지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팔을 잘리고 다리를 잘리고 했더라도 생명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남은 생명을 가지고 부모 앞에 효도하다가 죽게 된다면, 그 잘라진 팔다리가 영계에 가서도 없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잘린 팔다리는 황금빛이 난다는 거예요. 태양과 같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그게 영광이 된다는 거라구요.
그렇게, 부모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원수들이 앞에서 가지 말라고 반대를 하고 자기의 사지백체를 전부 다 잘라 버리더라도 부모를 따라가고 부모를 위하는 여자가 있다 할진대 그 여자는 효녀입니까, 아닙니까? 「효녀입니다」 효녀라구요.
그런 효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효자는? 그러한 효자가 있어야 되겠지요? 효자 효녀는 몇 사람이 필요합니까? 효자 하나 효녀 하나, 두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뜻은 그 두 사람만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부모 두 사람하고, 자식 두 사람, 이렇게 네 사람만 있으면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통일교회는 몇 사람이 있어야 뜻이 이루어집니까?「네 사람요」 여덟 사람이예요, 여덟 사람. 여덟 사람이 있어야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하나만 되면 시대가 지나갈수록 자꾸자꾸 번식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의 축복가정들을 보게 되면 지금 아들딸들을 많이 낳았지요? 가정의 전통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또 참부모의 아들딸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부모의 손자의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이럴 수 있는 전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선생님이 팔 하나를 잘라서 팔자고 하면 팔래요, 안팔래요?「팔아요」 진짜 팔래요?「예」 그러면 팔을 잘라서 팔 때에 왼쪽 팔을 잘라 팔겠습니까. 오른쪽 팔을 잘라 팔겠습니까?「왼쪽요」틀렸어요. 그런 사람은 낙제감이라고요. 부모의 명령이라면 자기의 제일 좋은 것까지도 부모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참된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남편은 버릴 수 있고 아내는 버릴 수 있지만 부모는 버릴수 없다고 하지요? 부모를 따라가는 길은 남편도 버리고 가야 되는 길이요, 아내도 버리고 가야 되는 길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이 효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각오가 되어 있어요?「예」 여러분 신랑들도 그런 각오가 되어 있을까요? 여러분은 '나는 신랑을 버려도 신랑은 나를 버리면 싫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웃음) '나도 그러고 당신도 그래야 됩니다' 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밥상을 앞에 놓고 앉아서 아내는 '당신은 뜻을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라도 가야 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남편 역시 '당신은 뜻을 위하고 부모님을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라도 가야 됩니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들은 '참부모의 뜻을 세우기 위해서 아버지 어머니는 참부모의 전통을 잘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아들딸을 가져야 이것이 앞으로 하늘나라의 전통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가 눈물 흘렸던 역사가 있으면 그 눈물은 어머니 아버지의 눈물이 되어야 되는 것이요, 후손들의 눈물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통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의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는 우리들의 원수요, 우리 후손들의 원수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거쳐야 합니다. 참부모를 거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참부모가 나왔습니다. 참부모가 나왔으면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된 가정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도 이 참가정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것을 전부 다 부정해야 됩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여러분, 지금 세상에서는 프리 섹스(free-sex)라 해 가지고 성 개방 문제에 대해서 운운하고 있습니다. 그런 때에 들어와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그런 풍조가 퍼져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길가에서 서로 붙들고 키스를 하는 것도 보통이고 말이예요. 특히 미국 같은 나라에 가 보게 되면 공원에서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동물들처럼 말이예요. 우리는 지금 그런 풍조권내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 세계의 사조입니다.
음란으로 뿌렸기 때문에 음란으로 결실하는 때라는 거예요.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사망의 동기를 음란으로 심었기 때문에 음란으로 결실하는 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침범을 받지 않아야 됩니다. 그런 것에 물들지 말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이러한 권내의 세계를 갈라 가지고 뒤집어 놓지 않으면 통일세계는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이 개척하면 발전해 나가지요? 그렇지요?(판서하시 면서 설명하심) 우리 통일교회는 거꾸로 내려갑니다. 이렇게 거꾸로 내려 가는데, 통일교회가 위대한 것은 뭐냐? 참부모의 전통이 남아질 수 있는 역사적인 길,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탕감복귀섭리역사를 해 나오시던 길이 있지요? 즉, 아벨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선생님 시대에 까지 내려오는 탕감노정이 있습니다. 탕감해 나오지요? 거꾸로 올라가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시대의 세상과 전부 반대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을 제일 피하고 살아야 합니다. 참부모의 길을 따라가는 데 제일 필요한 방법이요 정상적인 방법이 무엇이냐? 세상 사람들이 기쁘게 살면 우리는 슬프게 사는 것이요, 세상 사람들이 좋게 지내면 우리는 슬프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해서 어디까지 가야 하느냐? 여러분은 참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을 쭉 벗어나야 됩니다.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또 벗어나고, 또 벗어나고 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디에 걸리느냐 하면 여러분 자체에 걸리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설명하심) 나에게 걸리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매일같이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 자신은 매일같이 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매일같이 이랬다저랬다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이랬다저랬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어 있느냐, 사랑할 수 없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이랬다저랬다합니까, 안 합니까?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이랬다저랬다해요, 안 해요?「합니다」 하지요? 그렇게 하는 사람이 효녀예요, 충신이예요, 열녀예요? 그 마음이 일편단심입니까. 일편단심입니까? 뭐예요? 이랬다저랬다하는 것을 일편단심이라는 것입니다. 조금만 뭐라 해도 힐쭉핼쭉한다는 거예요.
누가 여러분을 죽게 하더라도 마음은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더라도 세상 사람들같이 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 그 법도를 세워야 됩니다. 알겠어요? 세상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달라야 됩니다. 최후에 가서는 나를 이겨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우주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걸고 나왔습니다. 나를 이기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내 몸뚱이를 이기기가 힘들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삼고 이기기가 힘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 계시느냐? 영광의 자리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고통의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죽어도 못 할 일입니다. 그렇잖아요? 영광의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 됐습니까? 고통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우리들 때문에 .
고통의 인간이 영광의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탕감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지 않고는 영광의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탕감의 심정으로 되돌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셨으니 여러분도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야야, 이젠 그만둬라' 하면서 우리를 말려 줄 수 있는 그런 자리까지 나가야 효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인연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귀의 심정 길을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맨 나중에는 여러분 개인들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 뜻 앞에 선 다음에는 무엇이 문제냐 하면 결혼이 문제입니다. 그렇지요? 결혼이 문제이지요?
그 개인이 문제 될 때는 개인이 뜻을 따라서 가야 됩니다. '나는 죽더라도 부모의 뜻대로 가겠다' 하는 자리에 서서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가정적으로 극복해야 됩니다. 부모의 뜻을 가정이 따라가야 됩니다. 그리하여 맨 마지막에 참부모 앞에 나가서 자녀가 됐다 하게 될 때는 참부모로부터 피살을 받아 난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부모로부터 피살을 받아 나고, 그 다음에는 말을 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그렇지요? 밥을 먹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되고 행동하는 것도 부모로부터 배워야 됩니다. 부모로부터 배운 것 외의 행동하는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참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참부모의 말과 참부모의 행동과 참부모의 가정의 가법과 생활방법을 배워야 됩니다. 그 외의 것은 사탄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부모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부모와 하나되어 있어야 됩니다. 어디를 가든지, 그래서 부모를 모심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의 생활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더라도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모시고 '참 좋습니다'라고 부모에게 설명해 주는 효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맛있는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 '이것 잡수십시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 됩니다. 언제나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이렇게 부모의 혈육을 받아가지고 태어난 자식이 일생 동안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이상세계로 제정하셨던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있음은 부모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북한 공산당을 보면 김일성도 그거라구요. 김일성이가 아버지라고 해가지고 밥을 먹는 것도 그 아버지 때문에, 옷을 입는 것도 그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 맞는 말이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래요? 여러분은 그 사상이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돼 있습니다」 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주체사상은 부모가 가르쳐 준 것이어야 합니다. 부모가 가르쳐 주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전부 다 사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부에 오게 되면, 숟가락이 있으면 숟가락을 가져 갑니다. 그런 행동을 부모가 가르쳐 주었습니까? 그것은 국가 재산을 훔치는 행위입니다. 법에 걸리는 것입니다. 본부에 있는 모든 만물들은 본부에 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본부에 있어 가지고 부모의 슬하에 부모의 이름 가운데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 이름 가운데 있는 것을 부모의 승낙도 없이 강제로 가지고 가서 내 이름 가운데 두겠다 하는 것은, 상속받기 전에 상속권을 전부 다 소모시키는 입장에 서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자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탕자는 부모의 설움의 대상이요, 탕자가 되면 형제의 참소조건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자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런 사람 있습니까? 이런 말 들었으면 이제 당장에 갖다 두라구요. 이 사상이 철두철미해야 되겠습니다.
남편도 부모를 위해서 있지요? 그러니 남편과 아내가 서로 척 만나게 되면 '당신, 애기가 어떻소' 할 게 아니라, '당신, 본부 소식을 알아요? 부모님 소식을 알아요?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좋은 것이 있으면 '아이고, 우리 애기들에게 줘야지'라고 생각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드려야지'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여러분 앞에 효도할 수 있는 효자 효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고, 우리가 먼저 먹고 아들딸 주겠다' 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아래만 있고 위를 잘라 버리는 것이 되니, 위 없는 아래는 없기 때문에 천도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는 가운데 좋은 것이 있으면 대번에 '부모님에게 드려야지. 부모님 앞에 우리가 감사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을 해야 자식들도 '부모님께 먼저 드려야지. 부모님께 감사해야지' 하며 부모 앞에 효도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전통입니다.
참부모를 빼놓고는 교육도 없어야 되는 것이요, 생활 터전도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참부모와 완전히 하나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참부모의 생활이 내 생활이요, 참부모의 이념이 내 이념이요, 참부모의 일이 내 일이요, 참부모의 사랑권이 내 사랑 권이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래요?
여러분들 가운데 남편이 '교회를 버리고 우리 나가자'고 하면 '아이고, 어떻게 버리고 나갑니까' 하면서도, 남편을 따라가기 위해서 부모님이고 뭐고 하며 인사도 없이 도망갈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부부가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는 거라구요. 알겠습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알겠어요? 여자는 부모를 위해야 되고 남편을 위해야 됩니다. 부모의 계대를 받을 사람이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대답해 보라구요. 부모의 상속을 받을 사람이 남자예요, 여자예요?「남자입니다」남자이니까 부모를 위하듯이 남편을 위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버릇이 없는 여자는 부모 앞에 효도하는 거예요, 효도 못 하는 거예요? 효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만나게 되면 부모를 만난듯이 반가와해야 됩니다. 남편이 어디에 갔다 오게 되면 부모의 소식을 가지고…. 부모가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공직에서 일하는 것은 부모를 대신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귀한 게 아닙니다. 승공연합에서 일하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이 귀하다고요? 교회의 지역장 지구장, 부모의 판도를 넓혀 나갈 수 있는 전통적인 노선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부모 앞에 효도해야 되겠습니까, 부모 앞에 신세를 져야 되겠습니까?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 앞에 신세를 지는 사람은 효자라는 이름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부모 앞에 신세를 지는 사람은 효자가 아닙니다. 철없는 자식입니다. 그런 자식은 효자가 못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세를 갚고 오히려 부모 앞에 신세를 지우는 입장에 설 때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효자가 되기 위해서는 본부의 신세를 져야 됩니까, 본부에 신세를 지워 주어야 됩니까? 대답해 봐요.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 원칙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라구요.
지방 교회가 본부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까, 본부가 지방교회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까?「지방 교회가 본부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다」 지방 교회가 본부를 돕는 것이 효의 도리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을 중심삼고 볼 때에, 대통령이 국민들을 돕기 전에 먼저 국민들이 나라에 세금을 바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일할 수 있게끔 국민들이 바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통일교회 교인들은 선생님이 일할 수 있게끔 세금을 냅니까, 안 냅니까? 내나요, 안 내나요?「안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십의 일조서부터 십의 삼조까지 헌금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효의 도리인 것입니다.
지역장 지구장은 뭐냐 하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어느 족속에서 나왔느냐 하면 레위 족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리면 레위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복귀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레위 족속이 분깃을 받았습니까, 못 받았습니까? 여러분 대답해 봐요. 가나안 땅에 복귀한후 12지파로 나뉘었을 때 레위 지파는 분깃을 탔습니까, 못 탔습니까? 그것도 몰라요?「못 탔습니다」 레위 지파는 분깃을 타지 못했습니다. 레위 족속은 제사장 족속이기 때문에 …. 제사장 족속은 가인들이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은 속죄받을 사람들이 바치는 것입니다. 제물은 가인들을 속죄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인편에서 아벨에게 제물을 드려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아벨은 누가 먹여 살려야 된다구요? 부모가 먹여 살려야 됩니까, 가인이 먹여 살려야 됩니까?「가인이요」 가인이 아벨을 먹여 살리는 대신 아벨은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기준하는 가인과 사람을 기준하는 아벨이 여기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터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제사장들은 아벨의 입장이기 때문에 가인을 복귀하기 위한 수고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가인을 분깃으로 갖는 것입니다. 물질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람인 가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따라서 제사장 소유의 분깃이 무엇이라구요?「가인이요」 가인인 것입니다. 물질을 나눠 준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나눠 주었다구요? 사랑을 나눠 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 중의 어떠한 족속보다도 귀한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인 된 사람이 귀합니까, 물질이 귀합니까?「가인 된 사람입니다」 가인편의 사람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편 사람들은 아벨을 먹여 살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두고 볼 때, 통일교회 전체 앞에 아벨은 누구입니까?「선생님입니다」 통일교회 전체 앞에 아벨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먹여 살려야 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벨로서 희생을 해 가지고 가인들을 살려줘야 됩니다. 그것이 선생님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먹여 살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생님이 월급을 주게 되면 천리 원칙에 배반됩니까, 일치됩니까?「배반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월급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편네들은 '본부에 있는 부장들은 월급을 받는데…' 그럽니다. 그러나 그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부장들보다도 지구장이 더 귀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구장 지역장들이 더 귀하기 때문에 제일 골수분자로서 책임을 진 그런 사람들에게는 월급을 안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월급을 주는 데 있어서 내가 월급을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은 괜찮지만, 지구장 지역장들이 요구해서 월급을 주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런것입니다.
여기 있는 지역장 부인, 혹은 지구장 부인들은 '우리는 이렇게 못사는데 선생님은 저렇게 잘살고 있으니, 우리를 사랑하는 선생님이라면 우리에게 좀 나누어 줘야 될 텐데'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사명이 아니라구요,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부에 대해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은 죄입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책임을 맡을 수 있을 만큼 철이 들었지요? 축복을 받았으니 철이 들었지요? 이제 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철이 들었으니 아들딸로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될 것이 아니에요? 그런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부모를 위해서 부부가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효도는 혼자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가 부부로서 효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부가 효성을 다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부부로서 효도하지 못했던 것을…. 여러분 부부가 효도했다는 이름을 남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시켜 주는 것은 부부가 부모 앞에 효도했다는 단하나의 조건을 여러분에게 세워 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가 부모앞에 효도했다면 타락한 아담 해와보다 나은 거예요, 못한 거예요? 나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손에 손을 잡고 한 발, 한 팔.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온 정성을 다 들여 효성의 그리움을 중심삼고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받은 가정들의 생활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아침 저녁으로 주먹질이나 하고 싸움이나 하는 것이 생활 원칙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세계의 생활 모양입니다.
서로 싸움이나 하는 부부는 사탄의 참소를 받을 수 있는 부부이기 때문에 그런 부부는 뜻 앞에 세움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 부부는 앞으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서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내일 모레면 돌아가지요? 며칠 후면 돌아갈 거라구요. 원래는 오늘 끝날 것인데…. 여러분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부족한 자신들입니다. 집도, 아무것도 없는, 어려운 입장에 서있는 부부입니다. 그러면 에덴 동산의 아담 해와에게 집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옷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신을 신이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아담 해와가 밥을 할 때, 도마가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칼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뚝배기는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그릇은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남비는 있었겠습니까, 없었겠습니까? 아담 해와에게는 그런 것이 전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효도해야 하는 것이 아담 해와의 입장이 아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있어 가지고 먹고 입고 쓰고 남아야 효도하지' 그게 아닙니다. 비록 깨진 바가지를 들고 있다 하더라도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러니 감사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는 나은 것입니다. 꿰맨 신발을 신고 다닐지라도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옛날의 아담 해와는 맨발로 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꿰맨 옷자락을 걸쳤더라도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찬방에 누워 자더라도 벽이 있어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에서 자니 그래도 아담 해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그렇잖아요? 산을 오르내리면서 열매를 따먹은 아담 해와의 신세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남편이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사니 그래도 옛날의 아담 해와보다는 더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담 해와보다 더 낫습니까. 못합니까?「낫습니다」모든 것이 아담 해와보다는 나으니까 감사해야지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살 때도 '아이고, 내가 그릇된 길로 갈까봐 채찍을 든 천사장이 지키고 있으니 감사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에 통일교회 문선생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전부 칭찬하게 된다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될까봐, 하늘이 염려하여 잘못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몽둥이를 들고 참소해 가지고 감옥에다 가둔 것이다. 여기에서 반성을 하고 더욱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더 앞으로 갈 생각을 하라고 그러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타락시켰던 천사장보다도 더 잘못될까봐 몽둥이를 들고 날 지키는 천사장이 있구만' 하면서 파수보고 있는 간수들을 고마운 분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 온 정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깨우쳐 주기 위해서 채찍질하는 그런 사탄의 대신자가 있구만. 고마운 분들' 이렇게 생각하고, 매를 맞게 되는 경우에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사랑하라는 교훈을 해주니 감사하다' 고 생각한 것입니다.
똥통 옆에 눕더라도 아담 해와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똥통을 놓아 두고 살아 봤겠어요? 똥통을 할 단지나 독이 있었겠어요? 아담 해와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맨땅에다 똥을 쌌지만 나는 독으로 된 똥통을 사용하니 아담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 똥통에다 똥을 쌀 때에 똥 방울이 얼굴에 튀면 '거룩한 것이구만' 그랬어요. 아담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는 똥을 쌀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아담 해와보다 낫습니까, 못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핸드백을 갖고 있지요? 갖고 있어요, 안 갖고 있어요?「갖고 있습니다」 또 구두를 신고 있지요? 그렇다면 아담 해와보다도 더 났습니까, 못합니까?「낫습니다」 그런데 왜 불평들을 합니까?
여러분은 하루에 밥을 몇 끼씩 먹습니까? 하루에 세 끼를 못 먹으면 두끼라도 먹지요? 아담 해와는 정상적으로 매일 두 끼씩 밥을 먹었겠습니까, 못 먹었겠습니까? 먹으려면 둘이 같이 다니면서 먹어야 했을 것입니다. 해와가 아담에게 '아담. 당신이 열매를 따다가 나에게 먼저 주고 그 다음에 당신 먹어야 돼요'라고 했겠습니까? 해와는 별수없이 아담의 궁둥이를 따라다니면서 아담이 열매를 따먹으면 같이 그 열매를 따먹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것 아니예요? 통일교회 축복가정 부인들도 그렇게 할 생각을 해야 됩니다.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먹을 것은 부부가 같이 벌어먹을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복귀가 그런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북에서 피난 나올 때 한 푼도 없이 따라지 중의 왕따라지로 나왔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좋다' 하며…. 빈털터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가뿐해요? 어디를 가더라도 걱정이 없고 도망을 가더라도 걱정이 없다는 거라구요. '야, 내가 아담과 같이 자유스러운 환경으로 돌아왔구나. 이제부터는 희망을 가지고 한번 내 손으로 사탄세계 사람들한테 지지 않고 벌어 보자' 그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중간에서부터는 하기 싫다는 겁니다. 이왕 일을 할 바에는 따라지에서부터 해야지요. 그렇지요? 누군가의 신세를 지고 하는 게 아니라 얻어먹으면서 해야지요. 내가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남의 신세를 지고 할 게 뭐가 있느냐 그 말이예요, 내 자력으로 해야지.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의 현재 입장이 해와보다 나아요, 못해요?「낫습니다」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양복을 입고 다니는 남편을 보잖아요. 해와는 에덴 동산에서 벌거벗고 다니던 아담을 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남편을 보잖아요? 해와는 에덴 동산에서 맨발로 다니던 아담을 보고 살았잖아요. 전부 다 해와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탕감복귀해야 되니까, 그냥 그대로 복귀해야 하니까 맨발로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입니까, 사랑이 아닙니까?「사랑입니다」 맨발 벗고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벗고 출발하라는 거예요. 복귀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없는 놀음을 한 그 전통을 본받아야 될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감옥살이를 했으니 감옥살이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한번 맨발로 성큼성큼 다녀 봤습니까? 아담 해와가 좋으면 둘이서 손을 잡고 뛰어다녔겠어요. 안 뛰어다녔겠어요? 오누이끼리 서로 벌거벗은 채로 그랬겠어요, 안 그랬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벌거벗고 춤을 춘다는 말도 근사한 말이라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부부끼리 벌거벗고 마음대로 춤을 춘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합니까? 벌거벗고 춤을 추든 누더기를 걸치고 춤을 추든 에덴 동산에서 누가 욕했겠느냐 말이예요. 그것이 전통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걱정이 없겠지요? 여러분은 지금 걱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가 왜 오늘 이 얘기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돌아갈 때 걱정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고, 가려면 차비가 있어야 하는데 차비가 없구나' 하고 걱정을 한다는 거예요. (웃음) 차비가 없으면 걸어가는 것입니다.
차들이 많이 왔다갔다하는데…. 여러분이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내가 가르쳐 줄께요. 여러분 한 열 사람이 한패가 되어 가지고 옷을 울긋 불긋하게 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저기 가다 보면 고속도로변에 차가 쉬는 곳이 있다고요. 그 앞에 가 가지고 춤을 추는 것입니다. (웃음)
한 열 명에서 오십 명이 그렇게 춤을 추게 되면 트럭 운전사들이 이 모습을 보고…. (웃음) 나중에는 트럭 운전사들이 전부 다 달려와서 같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놀아 대는 거예요. 그렇게 운전사들과 화(和)했지요? 그렇게 되면 차가 떠나려고 할 때는 하나하나…. 인사는 무슨 인사예요? 그냥 차에 올라타는 거라구요. (웃음) 그렇게 차에 올라타면 운전사들이 웃게 되어 있지 미워하겠어요? 그냥 히히히 웃으면서 타면 되는 거예요. 연구를 하면 무슨 방법이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할머니를 가만히 보니까 짐을 이고 힘들게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할머니 옆에 가서 '할머니 어디까지 가십니까?'라고 하면서 말을 거는 거예요. '나 대구까지 가네' 하면 '할머니, 이고 계시는 짐이 뭡니까? 해서 귀한 짐 같으면 사정하는 것입니다. '저도 대구까지 가는데…' 그때는 대구로 가는 거라구요. '저도 지금 대구를 가야 하는데 깜빡 잊고 차비를 안 가지고 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할머니 짐을 대구에 가서도 다 여다 드리고 할 테니 차비를 좀 빌려 주세요. 그러면 제가 대구에 가서 갚아 드릴께요'하면서 차비를 빌리는 것입니다.
빌린 돈으로 차를 탄 다음에 할머니 앞에서 또 호소하는 거예요.'저는 이런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서울에 집합했는데, 우리는 월급을 받고 다니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돈은 없고 대구는 꼭 가야 하기 때문에 할머니를 붙들고 그런 것입니다' 하고 사실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빌려 준 돈을 나중에 달라고 하겠어요?(웃음) 오히려 점심 값을 두둑히 받고서 '안녕히 가시오'라고 인사까지 받고, 후에 그 할머니 집에 찾아가서 전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구를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엔 하루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돈 버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돈 버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 것을 걱정 하지 말고 가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갈 것을 걱정하면 안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 삼위기대가 다 있지요? 다른 방법이 없으면 서울에 있는 삼위기대, 사촌 삼위기대 해서 열두 집을 찾아가서 한 집에서 백 원씩을 빌려서라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삼위기대는 도와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삼위기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남편이 죽게 되면, 삼위기대가 그 집의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됩니다. 앞으로는 세 집 살림살이를 한꺼번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세 집 살림을 한꺼번에 하는 것입니다.
삼형제가 하나되지 못한 것이 타락이지요? 그렇지요? 셋이 하나되지 못한 것이 타락이기 때문에, 복귀원칙에 따라서 세 형제가 한 살림살이를 해 가지고 하나되지 못하면 천국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요사스러운 데가 있지요? 그 요사스러운 여자들이 이제는 반대로 요사스러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전부 다 신랑 각시끼리만 살려고 하지요? 이 사상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세계적인 통일의 전통을 못 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은 여편네들 때문이라구요. 오늘날 이 망할놈의 세상…,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싫다고 하는 며느리들은 앞으로 비참한 시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이것은 서로가 서러움을 개재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 다 반대로 꺾어 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삼위기대의 세 부인들끼리 하나 못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되게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열두 가정이 한집에서 살아야됩니다. 그 다음에는 백 이십 가정, 혹은 천 이백 가정이 전부 다 한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한 동네에서 살더라도 싸움을 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만약에 싸움을 하게 되면 족장 회의를 열어 가지고 싸운 사람들의 볼기를 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싸움을 했다가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천세 만세의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할 때가 현재 참부모와 같이 사는 이 시대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 시대에 그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만일 이시대에 그런 전통을 세우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망하지요?「예」
여기에 사길자가 있지만 말이예요, 유협회장하고 김원필하고 김영휘는 삼위기대인데, 내가 기분 나쁜 것은 유협회장이 죽은 다음에 한집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한집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세 가정 중에 한 가정이라도 아들딸을 못 낳게 되면 아들딸을 낳은 가정이 못 낳은 가정한테 아들딸을 낳아서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여편네들은 다 있는데 두 가정의 남편은 죽고 한 가정의 남편만 남아 가지고 아들딸이 하나도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은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나 하는것을? 여러분이 뜻을 알긴 뭘 알아요? 전부 다….
자기 부부끼리도 하나되어 살지 못하면서 세 가정이 하나가 되어 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부끼리도 싸우면서 사는데 세 가정이 한집에서 같이 살수 있습니까, 없습니까?「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불합격되겠기 때문에 신랑 각시는 하나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해서 하나되어 사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불원한 장래에 아파트를 지으려고 하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전부 다 가정적으로 훈련시켜 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정적으로 훈련시킬 아파트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문화 주택, 아파트 말이예요. 일곱 가정 이상 적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가정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개월씩 들어가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훈련 주택, 아파트 훈련소가 생겨난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여러분은 전부 다 그 훈련소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아파트에서 3세대가 같이 사는 것입니다.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여덟 식구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가지요?「예」여덟 식구가 안 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부모하고 삼위기대를 합하면 모두 몇 사람입니까?「여덟 사람요」 여덟 사람입니다. 이 여덟 식구가 하나되었다는 기준이 안 되어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원리지요? 원리예요, 원리 아니예요? 「원리입니다」 원리이면 원리대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집이라 해도, 아들 셋에 삼동서가 있는데 그 며느리가 전부 다 짝짝꿍이 되면 그 집 다말아 먹습니다. 말아 먹어요, 안 말아 먹어요?「말아 먹어요」 말아 먹는 거예요. 그러면 그 집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망하는 세계에 있어서 우리는 셋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선한 사람은 이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상을 집어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는 자신을 위해서 삽니다. 전부 다 이렇게 반대라구요. 그리고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서 살면서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정이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대개 알겠지요? 「예」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남편이 가정 때문에 살림 때문에 걱정을 하거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은 원리를 잘 몰랐소. 우리 집이 아무리 못산다 하더라도 남비가 두 개나 있지 않소? 아담 해와에게 남비가 있었어요?또 문을 열고 보면 문 앞에 고무신이라도 신이 두 켤레가 있지 않소?'라고 해봐요. (웃음) 그것이 복귀입니다. 복귀는 그렇게 출발해야 됩니다.
'언제 우리가 아담 해와처럼 맨발로 살았소? 그래도 고무신 두 켤레라도 있으니 감사해야지요. 아담 해와가 언제 이불을 덮고 살았소? 우리는 담요라도 있으니 감사해야지요. 거기에다 마루바닥이라도 있지 않아요? 감사해야지요'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감사해야 할 것이 태산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고 죽겠구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들이 돌아가서 남편들이 죽는 소리를 하거든 이렇게 얘기를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 원리를 알우?' 이러면서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여러분이 집에 돌아가게 되면 그러한 남편을 만날 것이 틀림없겠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레위 족속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월급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될 때 '아 나는 3만원을 받기 위해서 제사장이 된다' 하는 제사장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피살을 바쳐 그 핏값으로 가인을 소유해서 사는 것이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어도 남을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직에 있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그런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제사장들은 아들딸을 낳아도 자신의 아들딸이라고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고이 바쳐야 할 제사장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기를 때부터 거룩하게 길러야 됩니다. 제사장의 아들딸은 다르다는 거예요. 제사장은 자기 아들딸들에게 욕도 못 하는 것입니다. 쌍말도 못 한다는 거예요. 더러움 탈까봐…. 그렇게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어미라고 해서 아들딸이 잘못을 했다고 마음대로 매질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에 대해서 손을 대려면 선생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됩니다. '한번 기합을 줘야 되겠습니다' 하면 '그러시오'라고 해서 기합을 줍니다. 기합을 줘야 할 메는 그렇게 해서 기합을 준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무엇이 없이 아이에게 손찌검을 했을때는 가만히 안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으로 대했느냐 이거예요. 그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등등의 문제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이제 여러분이 개인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았지요?
부모로부터 상속받을 사람은 아담이기 때문에 해와는 부모를 사랑하는 대신 누구를 사랑해야 된다구요?「아담요」 아담을 사랑해야 됩니다. 이것이 열녀가 가야 할 길입니다. 또, 교회를 책임진 여러분의 가정에 있어서 남편을 돈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가는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늘의 공직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남을 위해서 살아야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살면서 남을 기쁘게 해주면 그들은 기쁘게 해준 그 은덕을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십일조를 받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이 적을 때는 자기의 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 먼저 하나님을 붙들고 담판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자식들이 사랑을 못 받을 때는 그 자식을 붙들고 '하나님이시여. 저희가 제사장으로서 이 동네에 사는 가인의 아들딸을 사랑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저희의 아들딸이 이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옵니까? 라고 하면서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눈물을 골짜기 물이 되도록 흘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밥을 굶게 되거든 선생님의 목을 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정성을 들였는데도 밥을 굶게 된다면 그 동네가 벼락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네가 망하기 때문에 그 동네 사람들한테 선조가 나타나 가지고 밥을 갖다 주라고 호령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밥을 많이 얻어먹어 보았습니다. 정성들이면 밥을 갖다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굶어 죽지 않습니다. 굶어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지 안 굶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갔으면 굶더라도 ‘내가 죽게 되면 죽는 거고, 일주일 금식을 해서 탕감함으로 말미암아 이 동네를 부활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다'라고 하며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다음에는 큰 복이 올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나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살기도 전에 걱정이 태산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편네들의 근성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수고하는 남편들을 위로해 줌으로써 힘은 못 주더라도,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을 깨뜨리는 놀음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들은 개인의 탕감노정을 걸어가야 됩니다. 통일교회 지역장 지구장 이라고 해서 전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선조들은 천 층 만 층이라는 것입니다. 선조가 선한 사람들은 나가서 전도를 하더라도 탕감받지 않고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대접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조가 악한 사람들은 자기 일대에 탕감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대접받겠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동네에 가면 오히려 동네 사람들이 흩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거들랑 밤을 새워 가면서 회개 기도를 해야 됩니다. 선조의 죄를 생각하면서 회개해야 되고 자기가 이 시대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이렇게 탕감한 후에야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선조의 죄로 말미암아 탕감받아야 할 권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싫소' 하고 불평 불만하면 벼락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남에 대해서 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에 자신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면, '이 나라 이 민족이 나로 말미암아 살고, 이 나라 이 민족이 나로 말미암아 해방이 된다'는 거룩한 마음을 갖고 수고해 나가면 그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나라와 민족은 망하더라도 그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감옥살이했으니 여러분도 감옥살이해야 되겠습니까, 안해야 되겠습니까?「해야 되겠습니다」 해야 되겠어요? 그러면 도둑질해 가지고 감옥살이할래요?(웃음) 민족을 사랑하겠다고 몸부림치다가 해야되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적인 전통의 인연에 내가 한번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 이 길을 거쳐오실 때 이 길을 싫다고 하셨다면 오늘날 저희들을 만날 도리가 없었을 것이 아니옵니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길을 당연한 길로 찾아왔기 때문에 한두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감옥문을 출입한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해야 되는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빌어먹는 일이 있다면 '스승의 빌어먹던 그 사정을 알수 있는 자리에 섰으니 얼마나 큰 영광이냐? 하나님이 빌어먹는 신세를 거쳐오실 때의 그 심정을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이냐?' 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길을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된 것입니다.
먹일 것이 없어 자식을 붙안고 눈물을 짓던 자리…. 선생님이 성진이 어머니를 내버리고 이북을 향해 갈 때 그런 사정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쌀 한톨 남겨 놓지 않은 자리에서 하나님이 쫓아 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걱정을 안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맡겼으니 죽이겠으면 죽이고 말겠으면 말라는 생각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편지가 오면 문전에서 전부 다 돌려 보내거나 찢어 버렸습니다. 내게 소식이 오는 것을 원수같이 여겼던 것입니다. 내 앞에 얼씬도 말라고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일선에 가 있는 장병이 자기 집을 염려하다가 전과에 지장을 가져오게 되면 그는 그 나라의 충신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 있지요? 집에 가고 싶어서 훌쩍훌쩍 우는 사람은 그 눈깔이 썩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나를 버리려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리에 가든지 참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은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내가 공장에 매일같이 출입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의 후손들이 앞으로 이 나라, 이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기업가가 되거들랑, 여러분의 후손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공장을 다녔다고 교육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업할 후손 앞에 남겨야 할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교회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보다 사랑했다는 전통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전통을 상속하는 데는 자기 이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가지고 상속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법도입니다. (녹음이 잠시중단됨)
'어떤 남편이 만약에 일이 잘못되어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면, 집에서 밤 늦게까지 코가 빠지도록 기다리는 아내 앞에 그 사실을 얘기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않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생각해요? 그것을 잘했다고 봐요, 못했다고 봐요? 이렇게 비사로 남의 얘기 하듯 한바탕 쓱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 !글쎄 그렇게 그와 마찬가지로 나 오늘 저녁에는 수택리에 좀 가 보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겁니다. (웃음) 나빠도 할수없지 뭐. 그렇게 해서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았을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여기에 올 때, 서울 본부에서 자면 다섯 시에는 일어나서 서둘러야 됩니다. 선생님이 여섯 시에 여러분한테 오기 위해서는 다섯 시 전에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세수하고 이런 것 저런 것을 다하고…. 여기까지 한 40분 걸리거든요. 선생님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왕창왕창 들썩 거리면 어머니는 물론이고 옆방에서 자고 있는 애기들까지도 전부 다 그바람에 휩쓸리기 일쑤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밤에 쓱 나와 가지고 여기에서 자게 되면 나도 바쁘지 않고, 또 바쁘지 않은 입장에서 나와서 여러분을 만나면 기분도 좋을 거라구요. 그리고 누가 '선생님이 밤에 나오셨대' 하게 된다면 여러분들도 선생님이 없는 동네에서 자는 것보다 선생님이 있는 동네에서 자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을 거라구요. 선생님이 누구를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까?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내 몸 하나 고달프면 되지…'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아침부터 시작해서 낮에까지 얘기하고, 오늘도 이러다가는 또 언제까지 얘기를 할지 모르겠구만. 여러분 배 고프지요? 「아니요」 나는 배가 고파서 지금 허기증이 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그만 했으면 좋겠지요?「아니요」 이제는 여러분을 만나서 말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오늘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주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아침도 점심도 다 전폐입니다. (웃음) '할렐루야, 아멘'이예요?
남을 위해서, 공적인 일을 위해 피곤한 줄도 모르고 뛰다 언제 자는지 모르게 쑥 늘어지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얼마나 거뜬한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보게 되면 '야. 하늘길은 이렇게 가는 것이 원칙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아이고, 어저께는 세 시간밖에 못 잤으니 오늘은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은 자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잠을 자고 일어나게 되면 허리가 아프고 온 몸이 천근 만근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뭐 잠자는 시간을 계산해 가지고 '오늘은 못 잤으니 내일은 더 많이 자야지'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러지요? '주일 아침에는 금식을 하니까 토요일 밤에는 밥을 많이 먹자' 한다는 거예요. (웃음) 그렇게 하는 금식은 하나마나입니다. 오히려 금식을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한다고 전날 밥을 많이 먹게 되면 배가 더 고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먹어 보라고요. 위를 늘렸다가 별안간 확 비우게 되니까 배가 더 고프지 별수 있어요?(웃음)
이런 것 저런 것을 쭉 생각해 보면 하나님도 남을 위해서 그렇게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지내보니까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나 자신도 피곤해 가지고 눕는지도 모르게 누워서 잠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 보면 벌써 하룻밤이 지났거든요. 베개를 벴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늘어져 가지고 한잠 자고 깨어나게 되면, 아무렇게나 자서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도 기분이 아주 좋거든요.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은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끝에서 끝을 요구하시고, 또 끝을 요구하십니다. 그런 걸 보면 빨리 죽으라는 것 같아요. 결국은 뜻을 위해서 빨리 죽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오래 살겠다는 생각을 안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오래 살면 좋겠습니까?「예」그건 선생님을 죽도록 고생을 더 시키겠다는 말 아닙니까? 살아 있는 동안 자기의 책임을 못 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 사는 데 60년대의 생활이 다르고 지금 70년대의 생활이 다릅니다. 그 생활은 여러분이 본받아야 할 생활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전도하러 내보내 놓고, 비둘기가 콩밭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고 있습니다. 철부지한 여러분들을 일선에 내보냈으니 내게 책임이 있다는 거라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번에 전도 나가 가지 고는 선생님을 많이 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많이 봐요? 「예」옛날과는 다르지요? 옛날과 다르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왜냐? 그것은 선생님이 여러분을 옛날보다 더 생각해 주기 때문입니다. 더 생각을 해주고 더 관심을 가져 줄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은 ‘더' 축복을 받는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결국 많이 생각해 준다는 것은 사랑을 많이 준다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더 가까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게 될 때에는 사랑하는 독자를 보내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독자에게 한사람에게밖에 맡길 수 없는 나라의 귀중한 밀서를 맡겨서 보내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고, 개인이 살아도 참부모를 중심삼고 살고, 가정이 살아도 참부모 가정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사는 데 있어서도 참부모가 교회를 위해 살던 그 전통을 본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사는 데 있어서도 참부모가 나라를 위해서 살던 그 전통을 여러분이 본받아서 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부모가 뜻을 중심삼고 세계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 간 걸음을 걸었다면, 그것을 전통으로 삼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참부모와 같이 살았다는 입장에 서야 같은 나라와 같은 세계에서 행복을 같이 맞이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부모는 싸움을 해서 민족과 나라를 찾는데 자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안방에서 놀고 쉬고 있었다면, 부모가 민족과 국가를 이루어 가지고 만민으로부터 칭송받고 환영받고 있을 때, 부모 앞에 효도 못한 그런 아들딸들이 민족과 국가가 환영하는 자리에 부모와 더불어 나설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그러한 자격자가 못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생님의 집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 여러분, 본부에 대해서 관심이 있어요? 관심을 가져 봤어요? 선생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봤어요? 한 주일 동안이라도 본부와 선생님에 대한 소식을 모르면 못 살겠다. 밥을 못 먹으면 못 먹었지 그 소식을 모르고는 못 살겠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자들이 지금 하나되는 운동을 하면서 이 민족 앞에 본을 세우는 이러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하는데, 선생님의 가정을 위주한 종족이 벌어지지요?(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선생님이 이렇게 종족을 통해 가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가야 되느냐? 세계까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종족까지가 10년, 종족에서 민족까지가 10년, 또 민족에서 나라까지 10년, 나라에서 세계까지 10년 이렇게 40년이 걸리게 됩니다. 자그마치 40년은 결심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1960년에서 40년 후면 몇 년입니까?「2천년입니다」12천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2천년도까지 40년만 싸워 보자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40세에 성혼식을 하였지만, 통일교회가 40년만 지내면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가는 데는 10년을 간다면 누구와 더불어 가야 되느냐? 여러분 마음대로 가야 됩니까? 아닙니다. 부모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아들딸이 아버지 어머니와 하나되어 가지고 따라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손자들이 태어나면, 이게 3대예요. 3대가 하나되어 가지고 따라가야 됩니다. 언제나 하나되어 가지고 부모를 따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올라가야 됩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다시 말해서 선생님을 모시고 같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개척자의 사명을 중심삼고 발전적으로 기반을 넓혀 나감과 동시에 여러분도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일편단심으로 정성을 들여 가지고 같이 행동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나가게 될 때 민족이 복귀되고 국가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지금 공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공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나를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먹는 것입니다. 만일에 손님이 찾아오게 되면 나는 안 먹더라도 찾아온 손님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돈이 있으면 그돈을 내 생활을 위해서 쓰는 것보다도 찾아온 손님을 중심삼고 쓰는 겁니다. 자기 집안이 복을 받으려면 찾아온 손님을 잘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있어서도 자기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를 가지고 대접하면 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들은 먹지 않고 손님을 대접하는 그런 집이 있다면 동네 개도 그 집 문전에 와서 똥을 싸는 것이요, 날아가는 새들도 그 집에 와서 둥지를 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집에는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면 그 집은 화를 받는 것입니다. 그 집에는 쇠운(衰運)이 드는 것입니다. 괜히, 뭔지 모르게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가서 기대고 싶어하고, 말을 해도 그집에 가서 하고 싶어하고, 그 집에서 모이고 싶어하는 그런 집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 한국의 풍습 가운데 좋은 풍습이 뭐냐? 이남에는 그런 풍습이 있는지 모르지만 평안도 같은 데는, 내가 철이 들 때의 우리 집만 보더라도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그 사랑방은 오가는 먼 지방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잘 꾸며 놓고, 언제든지 음식상을 준비해 놓습니다. 닭을 치더라도 일년 동안의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닭을 몇 마리 더 쳤습니다. 저녁에는 그런 대로 대접하지만 아침에 돌아갈 때는 될 수 있는 대로 잘 대접해서 보냅니다. 그런 풍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는 손님을 참 많이 쳤습니다. 아마 팔도강산의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렀을 것입니다. 우리 집이 손님을 잘 친다는 소문이 한 이십 리 안팎까지 나 가지고, 지나가는 사람이 하룻밤을 묵게 해 달라고 하면 '저 아무개 고을 아무개 집 찾아가소' 하니 사람들이 열두 시에도 찾아오고 새벽에도 찾아오곤 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그런 전통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우리 집 문전에 와서 어려운 처지를 사정하는 사람을 절대로 그냥 돌려보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가풍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게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가풍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통일교회 본부에서 밥 먹는 것을 절대로 막지 말라고 얘기해 온 거예요.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주라고 한 것인니다. 때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공밥을 많이 먹이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선생님과 보조를 맞추겠습니까. 안 맞추겠습니까? 「맞추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선생님과 보조를 맞춰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아시아를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때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세계를 위해서 기도할 때라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오나가나 말이예요. 일본이면 일본, 아시아면 아시아, 이북이면 이북의 문제를 중심삼고, 또 어떻게 이 나라를 중심삼고 조직 편성하여 사상으로 무장해 가지고 아시아에 있어서 이 나라를 새로운 주체국으로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기도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집이야 있겠으면 있고 말겠으면 말고, 보리밥을 먹으면 어떻고 뭐 먹으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게 한 시간을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선생님이 일구월심,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정성들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선생님의 뒤를 따라 어떻게 하든지 거리를 단축하여 마음과 사정이 통할 수 있는 인연의 자리를 갖추어 나가면 서, 그것을 남편과 아내의 기쁨의 화제로 삼고, 자식들 앞에 자랑의 기쁨으로 남겨서 우리 통일교회가 거룩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아들딸 앞에 교육해야 할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다는것을 알아야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여러분의 직계 아들딸한테도 그렇게 교육해야 되겠지만, 여러분을 따라오는 신자들에게도 통일교회 사람들은 이렇게 가야 된다고 보여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야 된다고 가르쳐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자식들을 데리고 사니까 교회 식구들에게 장사를 시키고 일을 시켜 가지고, 식구들이 돈을 벌어서 바쳐도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 자식들한테 주려고 하고 그저 자기들만 먹으려고 하지, 돈을 벌어다 바치는 식구들에게는 함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돈을 벌어 오게 되면 눈물을 흘리면서 받고 귀한 고기 한 토막이라도 있으면 네가 먹어야 된다고 하고, 그러면 그 식구는 나는 안 먹겠다고 하고, 이렇게 서로 바꿔치는 놀음을 할 수 있는 여러분 사모님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 자식에게 먼저 먹이려고 하고, 자기가 먹으려고 하고, 또 입을 것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입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따라 나오는 교인들이 안 좋은 옷을 입는데, 교회의 사모님으로서 좋은 옷을 입고 나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못 먹는데 잘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옷을 꿰매서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눈물이 핑 돌아 가지고 그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아무 개, 치마 하나 해 입혀야 되겠구만' 하며, 눈물어린 마음을 가지고 위로하고, 조금만 참아 보자고, 조금만 참고 보면 우리가 좀 펴질 게 아니냐고 하면서 서로가 위로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누구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자기네 살림이나 시켜 먹고 그러다 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도 식구들은 밤을 새워 기도를 하고 정성들이는데 교회 사모님이라는 사람은 잠만 잔다는 거예요. 여기에 그런 사람 없어요? 그런 교회가 발전하나 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사모님이 병이라도 나게 되면 그 남편이 배 이상 해야 합니다. 배 이상 탕감복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도 옷을 잘 입히면 안 됩니다. 자식들을 못 입혀야 되는 거라구요. 그래야 탕감조건을 메워 나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천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인들은 위로는 하나님을 대해야 되고, 엮으로는 남편을 대해야 되고, 아래로는 자식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아들딸과 교회의 교인들을 대해야 됩니다. 이 사대 상대를 소화시킬 수 있는 사모님이 되지 않으면 그 교회는 발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충신이 돼야 되고, 남편 앞에는 열녀가 돼야 되고, 자식들에게는 모범적인 어머니가 돼야 되고, 교인들에게는 모범적인 사모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부인이 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여자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남자들은, 지역장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지역장들은 교인들의 내적인 문제를 중심삼고 원리 말씀을 하고 전도를 하고 식구들의 집을 방문이나 하면 되지만 살림살이를 중심삼고 밀접한 관계를 갖는 사람은 여자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자들이 더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모님이 되어 가지고 눈을 벌겋게 뜨고 앵앵거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를 띠어야 합니다. 보게 되면 흉내를 내는 데는 배우들이 제일 아닙니까? 사모님은 적어도 중류 배우쯤은 되어야 됩니다. 밥을 굶었더라도 방긋 웃어야 되고, 남편으로부터 뺨따귀를 얻어 맞았더라도 식구들 앞에서는 웃어야 됩니다. 집 사정은 집 사정이고, 교회 사정은 다르기 때문에, 어제는 좋았는데 오늘 달라지면 식구들이 타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중간 입장에 서서 화목덩이가 되어야 할 것이 바로 교회 사모님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것이 지역장 지구장 부인들이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통일교회 교인들이 움직이고 남자들이 움직이게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등등의 모든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는 가정의 중심이 되는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종족도 마찬가지로 중심이 되는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전부가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하나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 세계도 역시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를 중심삼고 하나되기 위한 중간 매개적인 작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부모의 전통은 뭐냐? 이것이 없어 가지고는 역사가 성립되지 않고, 사탄을 분립시킬 수 없고, 새로운 역사적 전통의 기원을 성립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언제나 여러분의 생활권, 사회권, 국가권, 세계권내에 있어서 일원화된 사상이 되어 가지고, 우리 집이라 할 수 있고 우리 형제라 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 민족이면 민족을 초월하고 어떠한 지역을 초월하고 혹은 국경을 초월해서,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덮여지게 될 때 그 세계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새 나라를 사랑하고 가야 됩니다. 종적으로 보게 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이고,3대인 아담시대 예수시대 재림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또 세 형제가 세 국가로 나누어져서 세계적인 국가로 벌어졌기 때문에 세 국가를 중심삼고 하나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앞으로 하늘나라, 즉 천국 세계에서 살 수 있는 국민이 되려면 세 나라 민족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통일교인의 가정에서는 외국 사람하고 결혼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후손들은 반드시 외국 사람하고, 한쪽은 동양 사람 한쪽은 서양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뭐냐? 그 길은 언제나 참부모의 가정을 밀고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 올라타고 말이예요. 알겠어요? 참부모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가정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요, 종족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요, 민족도 그렇게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복귀되게 될 때는, 그와 같은 방식의 생활 체제가 전 민족적으로 화하게 될때 그 국가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세계적으로 화하게 될 때 세계는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와, 그 다음에는? 자녀지요? 자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가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자녀와 하나되어야 하고, 독일에 가도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와 하나되어야 하고 자녀와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종적으로 보게 되면 첫째 번은 하나님의 자리요, 둘째 번은 부모의 자리요, 셋째 번은 여러분의 자리입니다.
또 이것을 횡적으로 보게 되면 부모가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부모의 아들딸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는 여러분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을 두고 볼 때, 선생님의 가정을 중심삼지 않고는 연결될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그러면 참부모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참부모의 가정은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적인 기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앞으로 소망의 천국이 될 때에, 거기에 전통의 본국은 참부모님이 살아가신 그 생활 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국가의 사상적인 모체가 뭐냐 할 때, 이것이 그 사상적인 모체라는 것입니다. 또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기원이 뭐냐 할때 이것이 세계를 창건할 수 있는 기원입니다. 알겠습니까? 언제든지 참부모와 더불어 참부모의 자녀 된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삼대권을 이루어야 됩니다. 하나님, 부모, 그리고 여러분, 이렇게 삼대지요? 횡적으로 보게 되면, 선생님, 선생님의 자녀들, 그 다음에 여러분, 이렇게 삼대입니다. 이 삼대권을 갖추어 가지고 완성하지 않으면 하늘땅이 통일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을 삼 년 이상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3년 이상 모시는 데는 가정이 모시고, 그 다음에는 국가가 모시고, 세계가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계 복귀권까지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수를 중심삼고 볼 때 3년 이상을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3년 동안은 부모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의논하면서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이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요. 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으로서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고, 말을 하더라도 좋은 말만 하고, 서로가 기뻐하면서 사는 3년 기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부부가 싸움할 일이 있어도 싸움을 못 하는 것입니다. 싸움을 하려고 해도 먼저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 하자고 하고 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는 아내는 엉엉 울면서 '우리 남편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고, 나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또 그 남편도 역시 '나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데 아내는 이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와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까, 안 해야 되겠습니까?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싸움을 하지 마라' 하는 것입니다. (웃음) 서로 싸울 일이 있으면 이렇게 '여보 여보, 우리 기도합시다' 그래야 된다는 거라구 요.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 하자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 무엇을 사오게 되면 그것을 먼저 부모님께 드리기 위한 준비를 항상 해야 합니다. 이렇게 진짜로 모시고 사는 것처럼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부모님의 밥을 해 놓아야 되는 겁니다. 잘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으로 뭘 할 것이냐? 언제라도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대접해야 합니다. 본부에서 누가 오시지나 않을까, 선생님께서 오신다면 좋겠지만 선생님이 오시지 않으면 지구장이라도 찾아 오시지 않을까, 혹은 본부에서 부장님이 오시지 않을까. 상부에서 누가 오시지 않을까. 이렇게 윗 분이 찾아오시기를 고대하면서 정성을 다해서 하루종일 기다리는 가정이 있다면, 그 가정은 천국입니다. 이런 가정에는 하나님께선 복을 안 주실래야 안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옷을 해 놓고 기다리고, 먹을 것을 해 놓고 기다리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나라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면, 국가적으로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잔치상을 차려 놓고 기다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잔치상을 차려 놓고 '아이고, 주님이 오시지 않을까? 본부에서 귀한 손님이 오시지나 않을까? 혹은 상부에서 그 누가 오지 않을까? 하며 천년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삼백 예순 다섯 날을 하루같이 기다리는 그런 도감이 있어 가지고 준비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때가 오면 좋겠습니까, 나쁘겠습니까?「좋습니다」 앞으로는 잔치만 하고 살 때가 옵니다. 잔치상이 아니고는 먹지 않을 때가 멀지 않아 온다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도 그렇고 지파의 족장들끼리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들이 책임지고 삼년 동안 부모님을 모시겠다고 경쟁을 하고 싸움을 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이 죽어 가지고는 이 전통을 못 세웁니다. 그렇게, 부모를 모시기 위해 종족 전체가 정성을 모아 가지고 서로가 요전보다도 좀더 잘해야겠다고 정성들임으로 말미암아 그 종족은 망하지 않고 거기에 비례하여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이 아닙니까?
부모를 모시기 위해 정성을 드리는 데 있어서. '아버지여, 작년보다도 금년에 부모님을 더 잘 모셔야 되겠사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더욱 더 노력을 해야 되겠사옵고, 하나님의 사랑도 더 받아야 되겠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은 정한 이치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밥을 굶나 보십시오. 밥은 굶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살았습니까? 그렇게 살았어요, 못 살았어요?「못 살았습니다」 더 알라는 겁니다.
앞으로는 나라가 이렇게 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12개국이면 12개국, 3개국이면 3개국이 합해 가지고 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시아가 합하고, 구라파가 합해 가지고 잔치상을 준비해 놓고 서로서로가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서로서로가, 아시아인이면 아시아에 구라파인이면 구라파에, 자기가 정성들인 물건이 가담된 그 나라에 주님을 모실 수 있는 그 기쁜 잔칫날을 맞기를 얼마나 기다리겠어요? 거기에는 관현악단 하며 세계의 각 지방의 유명한 사람들이 다 모여 가지고 그 잔칫날을 축하하기 위해 프로를 짜 놓고서 기다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천국생활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두고 볼 때, 현재 통일교회 교인들, 보기에는 흉하고 꼬락서니가 이렇게 처량하지만 참…. 이것은 무섭고도 멋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웃음)
그런 무엇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 중에서 떨어질 사람은 미리 떨어지고 떨어지지 않을 사람도 떨어지라고 지금 자꾸만 시련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그런데도 여기에서 남아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에게는, '복덕방인 줄 알고 뛰어 들어갔더니 왕궁의 내실이더라' 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동네에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게 살아요? 앞으로는 동네가 그렇게 됩니다. 그 동네의 족장이면 족장 집에서 족장을 중심삼고 매일같이 그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정성을 들이고, 한주일 한 주일 서로 다투어 가면서 쌀을 가져오고 먹을 것을 해 가지고 와서 정성을 들일 때가 앞으로 올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서로서로가 손님을 초대해서 대접을 하고, 이것이 마을 마을을 넘고, 거리 거리를 넘고, 혹은 나라 나라를 넘어서 언제든지 우리 동네에 손님이 와도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준비의 터전이 되어 있다면서 서로서로가 모시기를 바라는 나라가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지요?
이것은 참부모의 전통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나라에 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어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으면 그런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옷을 입더라도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가지고 가다듬어 입어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전부 다 이렇게 정성들이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여자들은 달거리가 있지요? 그런 것도 전부 다 가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이 많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늘 가정으로서 생활할 수 있는 기준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현재까지 합격된 생활을 했어요, 불합격된 생활을 했어요? 「불합격된 생활이요」 불합격된 생활을 했다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내 말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예」 처음 나섰으니 끝까지 잘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에 대한 문제, 교회에 대한 문제, 혹은 살림에 대한 문제를 앞으로 더 잘 알아 가지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이것을 못하게 되면 천추의 한을 남길 뿐만 아니라 부모 앞에 면목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부모님이 안식할 수 있는 때는 지금이 아닙니다. 나라를 찾지 못하면 안식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찾아가는 걸음을 멈추지 말고 시간을 단축시키며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청춘시대에 그것을 찾지 못하고 노년시대를 맞게 된다면 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정성을 다하고 다해서 하늘이 소원하시는 허락된 이 길을 바른 시일 내에 돌파해야겠다고 각자가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나라를 찾기 위해 나가서 싸우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요.
여러분이 비록 부족한 자리에서 초라한 밥상을 대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려야 됩니다. 부모를 모시는 자식의 생활이 나라를 찾기 위해 나선 걸음일진대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하며, 부모 앞에 정성들여 한 끼의 진지상도 바쳐 드릴 수 없고, 정성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지 못한 불효 막심한 자기 자신을 두렵게 생각하면서 눈물이 앞설 수있는 그런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 몇백 번이고 되풀이되는 울부짖음 가운데 '아버지 어머니, 안녕하세요. 뜻과 더불어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여 해방의 모습을 가지고 기쁨과 영화를 누리며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참고 가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오니, 이 자리를 기꺼이 맞아 주시옵소서' 하며 눈물과 더불어 마음을 조이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현재 여러분이 나가서 해야 할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혼자 그렇게 살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은 아들 혼자 있는 것보다도 둘이 있는 것입니다. 딸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이 있는 것이 더 영광입니다. 자기 슬하에 거느린 사람이 많아야 그 집안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부모의 영광은 무엇이겠습니까? 환갑이 되었을 때, 그의 후손이 많고 또 후손들이 부모를 위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있으면, 그것이 환갑잔치를 맞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이요, 영광이 되는 것이요, 자랑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렇게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자랑이 될 수 있는 영광의 한 터전을 마련 하려면. '밤이야 가겠으면 가고 낮이야 오겠으면 와라. 내 소원 일체는 오직 하나님 앞에 영광의 자녀들을 많이 남기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사람의 자손들 가운데서 하나의 군을 다스릴 수 있는 군수도 나올 것이요, 도를 책임질 수 있는 도지사도 나올 것이요, 혹은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대통령도 나을 것입니다. 또, 그 지극한 정성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주권자도 나올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런 자손을 많이 거느린 부모는 복을 받은 부모가 아니겠습니까?
하늘의 참된 부모는 누구보다도 그럴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성을 다해 그럴 수 있는 혈족을 남기고 참다운 전통을 남기기 위해서 참다운 희생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움직여야 할 때가 지금 이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남편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녀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교회에 대해서도 그렇고….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들의 사상이 돼먹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통일교회 교인으로서의 사상은 전부 다 띄워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상을 가지고는 한 사람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일체를 부모와 더불어 상관하고, 부모와 더불어 결정하고, 부모와 더불어 의논하고, 부모와 더불어 상관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진 남편이 못 되었고,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여러분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은 이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역사적인 열매요, 시대적인 중심이요, 미래의 전통적 기원이기 때문에 천년 만년 후라도 이 전통을 본받지 않고는 천국에서 살 수도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전통을 고이 이어받아야 할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단입니다. 이 길을 개인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가정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종족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민족으로서 걸어가야 되고, 국가로서 걸어가야 되고, 세계로서 걸어가야 하는 것이 통일교회 식구들이 가야 할 전통적 참부모의 노정임을 여러분이 알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면 선생님이 살아서 이런 일을 하지 못하고 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선생님이 만약에 세상에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여러분 자녀들이 그 전통을 이어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다가 선생님이 어떻게 되면, 여러분 자신이 그 전통을 가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렇게 되면 나라를 중심삼고 전통을 세울래야 세울 수 없고, 세계를 줌심삼고 전통을 세울래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세우지 못하는 날에는, 이 지구상에 천국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역사를 가늠하여 새로운 추춧돌을 놓으면서 그위에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기 위한 참다운 개척자요 건축가인 것을 명심하고, 여러분의 가는 길이 힘들지라도 부디 원망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소화하면서. 거룩한 하늘의 가법을 세우는 데 책임을 져 주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자,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봐요.
사랑하는 아버님, 역사의 탕감노정에 있어서 중심으로 그리워하던 것은 참부모의 가정인 것을 저희가 알았습니다. 참부모의 가정을 맞고 보니 참부모의 가정은 평탄한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정은 눈물의 소굴이요, 비참의 교차점이요. 서글픔을 탕감하는 입장에 있는 가정임을 생각하게 될 때, 한 중의 한을 느끼고, 곡절 중의 곡절을 느끼고, 천상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를 제물로 바쳐 이 한의 구렁텅이를 빨리 메워야 된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 우리 통일교회 신자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축복받은 가정들이 이러한 시련과 수난길을 책임져야 할것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10년의 역사를 지내 왔지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70년대에 들어서 아버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가정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아낙네들을 삼천리 반도에 내세웠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오늘을 기하여 지금까지의 수련 코스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과 내일을 중심삼고 저희들이 공산주의에 대비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8일에는 떠나야 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여자로서 출정하는 기분을 가지고서 민족을 바라보며 눈물을 자아낼 수 있어야 되겠으며, 민족과 더불어 내 심정의 방향을 갖출 수 있게 해주신 그 거룩한 은사를 진정으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부모가 가야 할 핵심적인 노정은 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쳐 세계의 주권자를 굴복시키고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온갖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일을 책임하기 위해서 맹세하고 나선 몸들로서, 충절을 다하여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딸의 명분을 갖출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가야 할 길은 참부모와 더불어 가야 되는 길인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참부모의 길은 역사적인 방향과 일치되는 길이요, 시대적인 뜻의 중심이요, 미래에 있어서의 전통의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이러한 참부모의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이 영광, 이 명사와 더불어 이 사실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저희들은 또한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참부모를 찾고 참부모를 만나기 위해서 수많은 민족이 희생됐고,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도 원한의 구렁텅이에서 사라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역사적인 정상에 서 가지고 이 모든 것을 탕감해야 할, 하늘의 축복받은 딸들로서 이 책임을 완전히 해낼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들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성실한 제물의 모습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죽어진 제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제물로서 주인을 모시고,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모시고, 남편을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는 해방된 권을 갖추어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기에 이 일을 위하여 출발했사오 니, 끝까지 이 일을 위하여 단결하고 끝까지 이 일을 위하여 싸워 나갈줄 아는 자신들이 될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은 결의했사오니. 아버지, 복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버지, 금후에 저희가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대한민국의 현재 입장을 지켜 주시옵소서. 이번 5월부터 저희들이 기도하는 자리에 들어갔사옵니다.
이북에 있는 김일성 도당을 중심삼고 사탄세계의 힘을 빼앗기 위해서는 저희들이 하늘 세계와 더불어 힘있는 단결을 해야 되고, 중심과 하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오니 참부모와 일치가 되어야 할 입장을 저희들 각자가 고수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을 실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이 민족을 지키고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길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께서 아시아의 정세를 수습하시어 승리의 천국을 이루시옵고, 만국을 수습하시어 당신의 해방의 천국을 이루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그것을 위하여 정성어린 모든 생활권을 개척하고 모심의 생활을 가중하여 당신의 승리권을 입체적으로, 종적으로, 횡적으로 성사시키는 데 노력하고 본이 될 수 있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모든 전체를 당신 앞에 맡기었사오니 저희들이 사탄과 싸워서 당신이 허락하신 뜻과 더불어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