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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불행의 기로

일시: 1975.03.02 (일) 장소: 미국 뉴욕주 배리타운수련소

​여러분들은 이제 통일교회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살아가는 데는 평탄한 길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20대에서 30대로, 30대를 지나면 40대로, 50대로, 60대로 이렇게 되면 인생이, 일생이 점점점점 마지막 때가 가까와 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보게 된다면 여러분이 20대일 때는 어머니 아버지도 있고 형제들도 있어 가지고 다같이 살았었는데 30대만 되면 점점 갈라진다 이거예요. 누이동생도 시집가고, 또 형님들도 세간나고, 또 나도 장가가고 그 다음엔 부모들도 가시고 다 이래 가지고 점점점…. 천태만상의 환경의 변화를 우리는 겪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러한 생활과 생애를 거쳐가는 과정에 옛날의 정서적인 분야는 점점점점 흩어져 가고, 새로운 자기들의 가정을 가지고 정서적인 분야를 맡는다 하지만 이것이 평탄하지 않다는 거라구요. 어떤 때는 부모도 돌아가시고, 어떤 때는 자기가 믿고 있는 형님도 돌아갈 수 있고,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들도 떠나갈 수도 있고, 이러한 비참한 환경을 우리들 주위에 많이 안고 살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의 인생살이인 것입니다. 남편과 더불어 살고, 이제 가정을 갖고 살지만 그게 평탄하지 않다구요.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요, 자녀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예요. 이런 걸 볼 때에 인생, 일생의 생활은 이렇게 굴곡이 많은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이 이제 강가라든가 바닷가 같은 데서 낚시질을 밤을 새워서 하게 된다면, 하룻밤에도 그 물결이 몇 번, 몇십 번씩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구요. 나는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잔잔하고, 고요하고, 아주 모든 산천이 잠든 듯한 이러한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경지가 있는가 하면, 아주 무정한 방면이 한 순간을 통해 가지고 교차되는 때도 있기 때문에 그런 때에는 우리는 서글픔을 느끼게 되는 거라구요.

이걸 보게 된다면 날씨라든가 기후라는 것은 변하는 데 그 묘미가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우리 젊은 사람들은 '아, 청춘시대에는, 일생이 청춘이면 좋겠다! 거 나이 많아 가지고 이렇게 되면 싫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거예요. 변하는 데서 묘미를 발견할 줄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이 전부 다 젊은이로서만 있다면 그 젊음의 귀한 걸 모른다구요.

여러분이 뭘 먹는 것도 언제나 맛있고, 맛있는 것만 맨날 먹어 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맛을 모른다구요. 쓴 것이 있고, 단 것이 있고, 짠 것이 있고, 매운 것이 있고, 신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게 좋은 거다 이거예요.

요전에 일본 말로 해주곤 하니까 안 되겠더라구요.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외국 말을 한다 하게 되면 아무래도 자기 조국, 본국에서 자기가 배운 말과는 다르다구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이제는 대개 다 영어를 알아 듣지요?「예」 어디 못 알아듣는 사람 손들어 봐요. 거 없구만.

자, 이런 걸 보게 될 때에 여러분들 그렇다구요. 춘하추동,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고, 이렇게 변한다구요. 변하지요? 변하는 거기에 묘미가 있는 거다 이거예요. 여러분, 만약에 24시간이 낮이라면 얼마나…. 저 북극 같은 데 가게 되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아마 그렇게 되면 '아! 밤이 얼마나 귀하다' 하는 것을 깨달을 거라구요.

그러니까 모든 것은 변하는 데서 아름다움이 있고 귀한 것이 있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자, 여러분이 우리 통일교회 들어왔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통일교회 들어와서 '햐! 이게 멋지다' 이렇게 생각했을 거라구요. 전부 다 그렇게 생각했으리라고 믿는다구요. 무엇이 좋으냐? 듣는 것이 좋으냐? 통일교회의 행동하는 것이 좋으냐? 사는 것이 좋으냐? 그걸 생각할 때 '통일교회 말씀은 좋지만, 아이고, 행하는 건 싫다. 그렇게 사는 건 싫다'고 하는데. 그러면 뭣이 좋으냐? 좋은 것이 없다 이거예요.

자,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변했다 이겁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이겁니다. 이것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달라졌다는 것이 귀하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또, 행동을 하는 데도 옛날엔 이렇게 갔더랬는데 이젠 반대로 간다 이거예요, 정반대로 간다 이거예요. 자, 옛날에는 사람은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면서 '너면 너고 나면 나지' 했지만 지금은 뭐 싫은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하고 같이하려고 하는 거예요. 원리를 알고 나면 탕감을 많이 받아야 되는 걸 알게 되고, 탕감을 많이 받으려면 원수를 찾아가야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이게 뭐 행복한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 자, 말씀이 있는 데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요, 실천하는 것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요, 최후에 승리하고 난 후에야만이 모든 행복은 나와 인연이 되는 것이다 하는 걸 알게 된다구요. 듣는 것,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거예요.

행복과 불행의 한계선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행복감을 느낀다구요. '야! 행복하다!'고 그렇지만 그 행복이 지금 들어온 그 자리에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복을 보장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출발과 더불어 결과까지 전부 다 내 주관권 내에서 이것을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주체적 존재가 되지 않고는 결과적 행복을 차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승리한 기반 위에서 보장된다 하는 결론이 성립됩니다.

그 다음엔 불행은 어디서 생기느냐? 승리의 반대인 패배한 데서부터….

자, 그러면 행복과 불행의 한계선이 어디냐? 그 행복 자체와 불행 자체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결정하느냐 하면 내가 결정한다는 거예요. 이게 문제예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행불행의 경계선에 서 있는 것입니다. 자, 요렇게 서 있으면 한 발자국을 이렇게 가게 되면 행복이 오는 것이요, 한 발자국 요렇게만 가도 불행이 오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표현하심 )

자, 이렇게 볼 때에 여기 서 있는 자리에서 한 자리 옮겨 놓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한 때를, 한 발자국을, 하나를 간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내 한 발자국 옮겨 놓는 것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내 마음에서부터다 이거예요, 내 마음에서부터.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문제는 승리를 다짐하고 승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을 지켜야 된다는 거예요. 마음을 세워야 되고, 마음의 결심대로 실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행복의 터전을 영속적으로 지속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돼야 행복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거예요. 가는 방향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 이겁니다. 또. 어떻게 되면 불행하게 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겁니다.

그런데 왜 불행하고 왜 행복하냐? 왜 나는 행복할 수 없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하나를 행복한 길로 플러스시키고, 하나를 행복한 데서 떼고 (플러스 마이너스) 하는 데에서부터 모든 것이 결정난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는 알았지요?

행 불행의 기점

자, 그러면 내 행 불행(幸不幸)은 언제부터 시작되고, 어느때, 어느 자리에서부터 이것이 나타나느냐? 어디서부터 나오느냐 이거예요. 24시간 행불행의 시간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밤에 잘 때는 그렇지 않지 않으냐?' 이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오늘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구요. 불이 나 가지고 죽을 수도 있다구요. 또, 내가 좋은 길을 가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 가지고 좋아하면서 집에 가다가도 죽을 수 있다구요. '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를 들음으로 말미암아 그 가던 전체가 완전히 불행하게 될 수도 있다구요. 그런 걸 보게 되면 불행과 행복으로 갈라 놓는 칼 같은 것이 나에게 언제나 꽂히려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구요.

자, 우리는 그러한 인생길에 서 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구요. 우리 통일교회 교인 여러분들, 여기 통일교회에 들어올 때는 좋았지만, 이거 들어와 보니 이게 뭐야, 이게? 이건 뭐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겠고, 매일같이 하는 게 왜 이래? 전도는 무슨 전도? 내 생전 배우지도 않던 놀음, 가두에 나가 전도해야 되고…. 난 그 사람 전도해도 뭐…. 그가 좋게 되겠으면 되고,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어?' 등등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구요. '이래 가지고는 차라리 돌아서는 게 행복하다' 이럴 사람도 있을 거라구.

아, 선생님이 지금 이 길을 나서 가지고 얼마나 풍상을 겪었겠나. 무슨 풍상이야 안 겪었겠어요? 별의별 풍상을 다 겪고, 통일교회 찾아오는 별의별 사람들을 많이 만나 봤다구요. 어떤 때는 이런 이쁘장한 아가씨들도 많이 봤고, 청년들도 많이 봤고, 중년이나 노년, 전부 다 지금까지 이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30년 이상의 경력을 지내다 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많이 지나갔다구요. 지금 한 30년 이상 이 역사를 지내게 되니까 그간 지나갔던 사람이 전부 다 지나가 보아도 통일교회 같은 데가 없다 하는 것이 그들의 평이라구요.

통일교회가 이상한 것이 여기 들어와서 고생을 하고 뭐 이러기 때문에 얼굴을 보게 되면 더 늙었을 텐데 늙지 않는다구요. 거 그럴 수밖에 없다구요. 암만 힘들더라도 소망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자, 탕감이다' 해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한다구요. 이런 걸 보게 되면 우리의 탕감이란 말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겁니다. 탕감이 있으면 반드시 복이 온다 하는 것이 역사적 규정이라구요. 그건 틀림없다는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요놈의 고개만 넘으면 뭣이 오나' 그걸 보자고 넘어간다는 겁니다. 자, 이런 저런 것을 보게 되면…, 지금까지 선생님은 많은 사람을 보았다구요. 통일교회에서 떨어져도 선생님은 못 잊겠다 하는 사람이 참 많다구요. 통일교회 들어와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다가 떨어져 가지고 그 후 뭐 시집을 가서 다 자기 남편도 있고 애기도 낳고 자기 딴엔 잘산다고 하더라도 통일교회를 잊지 못하고, 선생님이 보고싶고, 선생님이 그립고…. 자기 사는 데에 선생님이 온다고 하게 되면 먼 발치에서 선생님을 보고, 선생님 얼굴 마주 대해 가지고 얼굴이 마주치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것을 많이 봤다구요.

자, 그런 사람을 볼 때에 한때를 참지 못했다는 거예요, 한때. 어떤 사정의 한때를 네가 넘기지 못함으로 일생이 그렇게 되고 말았느냐 이거라구요. 자, 그럼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결혼해 가지고 애기를 낳았다면 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축복을 안 받았다 하는 것이 언제나 마음에 자극이 된다구요. '비원리적인 남편이구만! 비원리적인 남편이구만! 또, 내가 난 애기는 사탄의 피를 이어받았구만!' 자, 그래 놓고 벗어날 수 있느냐 이거예요. 자, 그래 가지고 애기가 아파도 이건 탕감이다 생각하고, 벌이다 생각하고, 남편이 불쾌하게 하더라도 이거 전부 다 나에게 탕감이다 생각하고…. 어떤 동네에 지나가다가 개가 자기를 보고 그저 귀찮게 짖더라도 '아! 이거 개까지 내가 어떤지 아누만!'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주변에 벌어지는 일체 생각 외의 좋지 않은 문제는 전부 다 벌과 같이 생각되고, 탕감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그 비참함이 어떠하겠느냐 이겁니다.

그런 자리에 떨어지게 되어 '아! 통일교회의 개라도 되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내가 봤다구요. 그렇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선생님도 만날 수 있고, 마음대로 뜰 안에 갈 수도 있고…. 그런데 이거야 가려니 갈수 있나, 보려니 볼 수 있나, 살려니 살 수 있나… 자, 그러니 그런 생활이 전부 다 자격지심적인 생활로써 환경에 점점점점…. 시집살이를 십년 했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참 비참할 것입니다.

자, 그런 입장을 생각해 볼 때에, 그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 환경이 벌어지면 '아! 아무 때에 그 누구 때문에 그랬는데 그 누구가 없었으면, 그 아무 때 어떤 일 때문에 그랬는데 그놈의 일만 없었으면 내가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 한때의 사건이 일생 동안 자기의 가슴을 저미는 칼이 된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자, 이런 일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한때, 그 순간을 어떻게 넘기느냐 하는 문제가 행불행의 기점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된다구요. 내가 한마디 말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불행의 요인이 될 수 있고, 내 일생을 망칠 수도 있다 이겁니다. 내 눈이 한번 잘못 봄으로 말미암아 불행이 여기서 개재될 수 있다 이거예요. 듣기를 한번 잘못하면 여기에서부터 불행이…. 내가 느끼는 하나의 느낌을 중심삼아 가지고 행 불행이 좌우됩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의 생활방법

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러면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사람은 어떠한 생활방법을 취하는 것이 그러한 환경을 피해 가는 데 제일 필요 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이겁니다. 그런 것을 총결산짓는 하나의 결산으로 말이면 말을 찾아보게 된다면 여기서 무슨 말이 제일 좋은 말이냐 하는 걸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이거예요.

참는다는 뜻을 가진 인내라는 말이 가장 귀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어요. (판서하심) 누가 한마디 말을 해서 성이 나지만 참자 이거예요. 자, 저기서 한마디 '왝' 하면 나도 '왝' 해 가지고 주먹이 왔다갔다하다간 내가 불행하게 되는 거예요. 다리가 부러지고, 싸움만 하게 되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구요. 싸우게 되면 하나는 깨지게 마련이라구요. 그건 원칙이라구요. 깨지거나 파괴된다구요. 또, 깨지지 않은 그 자체도 누가 와서 깨뜨려 버린다 이거예요, '이놈아!' 하며, 또 실눈을 뜨고 흘겨대고…. 내 마음으로 생각할 때 그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전부 다 저주하고 싶다는 거예요.

자, 이것은 우리가 순리적으로, 생리적으로 분석해 보더라도 내가 왜 성을 내 가지고 내 기분 나쁘게 하고 말이예요. 내가 왜 말을 잘못해 가지고 그 입으로 말미암아 생리적으로 좋지 못한 변화를 얼마나 일으키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그 미워하고 다 이런 건 독이예요, 독. 독이라구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

그럴 때 '참는다. 난 참는다. 또, 그러겠으면 그래라' 하며 그저 참아 나오게 되면 어떻겠어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암만 찾아와도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것인가 하는 것을 발견해서 알 거라구요. 참는 사람은 앞도 바라보고 뒤도 바라보고 동서남북을 전부 다 비판할 수 있다구요. 벌써 참는 사람은 저쪽 입장을 생각도 해주고, 또 젊었을 때, 늙었을 때 자기도 부모를 가져 보고, 자기도 아들을 가져 보고, 사방을 다 생각할 때 나도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아! 그러니까 나도 참아야지' 하며 자리를 잡는 거라구요. 그것은 벌써 정신적으로 모든 싸움에서 환경을 전부 다 정리해 가지고 내편을 만들었다는 거라구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으면 '뭐야' 하면 대번에 '야' 이러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엔 뭐냐? 그 다음엔 무슨 말이 나오느냐 이거예요. 이 참는다는 게 얼마나 귀하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자, 그거 한마디 더하고 넘어가자구요.

자,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뭐 꽃팔이고, 무슨 뭐 캠페인이고 뭣이고. 이게 뭐야 이게? 아이고! 이놈의 꽃팔이….' 이렇게 불평해 가지고 그걸 그 성나는 하나로 해결하려 한다면…. 그러나 참는다는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도 그렇다구요. '어저껜 뭐 삼월 초하룻날이라고 새벽에 일어나고, 오늘은 주일이라고 또 새벽에 일어나고, 이게 뭐야, 이게 이게? 얼마나 피곤해? 아이고! 뭐 오늘 아침엔 좀 졸아도 선생님이 뭐라 해도 선생님이 틀렸지, 내가 틀렸어? 그러면서 꺼떡꺼떡…. (웃음)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분 또 생각해 보라구요. '왜 선생님은 초하룻날만 이런 연설을 하고, 주일 아침만 해? 아침때도 하고 점심때도 하고 저녁 때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런 사람이 있다면…. (웃음) 자, 여러분! 그렇다면 매일 이런 일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하고 '아이구 없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 중에 어느 사람을 칭찬해야 되겠나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거다' 하면 좋다는 거예요. 부모들이 '너 이것 먹으면 건강하니 이 약 먹어라' 하면 이거 죽을 건지 모르지만,'입 벌려라' 하면 '확' 벌리고 꿀꺼덕 삼켜 버리면 그건 나쁘지 않다는 거라구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왜 그 일만, 아침에 일어나는 그것만 생각하느냐 이겁니다. 그것만 왜 생각하느냐구요? 그것만 생각하지 말라구요. '야! 아무도 안 일어난 새벽에 척 일어나니까 저 푸른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이 있구만!' 이렇게 생각하면 그거 기분이 좋다구요. '저 푸른 하늘에 별… 햐!' 거 얼마나 기분 좋으냐 이겁니다.

자, 그런 별을 바라보는데, 그 별을 바라보는 것도 신비하겠지만, 아침에 바람이 쉬익 불어오면 '이건 누구도 쏘이지 않은 첫 바람을 내가 맞는다' 그렇게 가만 생각하면 동네에서 개가 멍멍멍 짖더라도 그 개 짖는 소리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느껴진다구요. 또, 요런 도회지에선 들어볼 수 없는 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더라 이거예요. 이거 참 신비로운 거라구요. 여러분, 도회지의 닭들이 우나요, 안 우나요? 운다고 생각하지 않고 저건 먹기 위해서 키운다 하고 생각하지요. 운다고 하는 생각이 먼저 안 들게 돼 있다구요.

그렇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도회지 가운데 사는 닭도 울더라 이겁니다. 신비롭다는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고 더우기나 뉴욕 시가지에 가게 되면, 이건 뭐 러시아워만 되면 차, 차, 차…. 뒤쪽에도 차, 앞에도 차, 이런데 일찍 일어나서 차를 몰고 나가면 마음대로 몰 수 있다구요. 그래 차가 (행동으로 표현하심) 이렇게 가는 거예요. (웃음)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가 환경을 소화시킬 수 있는 딴 방향의 모든 길을 얼마든지 내 생각으로 유도할 수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기에서 하나 제언하고 싶은 것은, 한 때를 맞이해서 행불행의 기로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한번 딴 생각을 끌어들여서 우리 해보자구요. 이것이 필요하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한 때를 더 생각하자는 거예요. 우리 일생에는 갈래갈래 까리끼리한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거라구요.

생활에 있어서의 행 불행은 나로 말미암아 결정돼

그래 문제는 어디 있느냐? 내가 저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말은 다 집어치워라 이거예요.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건 다 집어치우라는 거라구요. '나다. 나! 나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해 놓으라는 거라구요. 결정하는 거예요. 그게 지혜로운 결정이라는 거예요. 더우기나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절대 필요합니다. 자, 보통 사람은 '내가 아무개 때문에 그랬다. 그 아무개 아무개, 통일교회 때문에 그랬다' 그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 살아나가는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행불행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나로 말미암아 결정된다, 이 관(觀)을 확실히 세우라구요. 지금 당장에 암만 불행한 자리자 내가 떨어지더라도 '이 정도 불행한 것 가지고 낙망하지 않는다. 나는 이걸 내 자체의 힘으로 극복하고 내일의 희망 가운데서 이 일을 소화시킬 수 있는 내가 되겠다' 하는 신념을 갖고 나가는 사람은 그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이상적인 것은 뭐냐? 올라가는 데는 직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도 지금까지 타락한 인간을 구하는 길에 있어서 그와 같이 못 갔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하나님도 결국은 지그재그 식으로…. 그렇지 않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요 정도는 행복한 거라구요. 요건 내가 좋았다 하는 행복할 수 있는 때다 이겁니다. 요건 불행하다구요. 여기서 떨어지면 그만이고, 가 버리면 그만이다 이거예요. 마지막이라구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심)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이 직선이 어떻다는 걸 확실히 알아야 돼요. 방향을 확실히 알고 '아! 나는 틀렸구나. 요건 이렇게 돌아가야 되겠다' 하는 길을 아는 사람은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희망적입니다. 알았어요, 일본 여자들?「예」(일어로 말씀하심) 일본 여자들은 졸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므로 문제는 뭐냐?(한국어하고 일본어를 섞어서 말씀하시니까 식구들이 웃음) 그렇지만, 요 경계선을 넘는 날에는….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구요. 여러분들이 어떤 때는 저기압이 되고, 어떤 때는 고기압이 된다구요. 그럴 수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압차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나쁜 면도 되지만 그런 체험을 가지고 다시는 그럴 수 없게 될 때는 이것은 나에게 좋을 수 있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불행한 길을 간다면 그것으로 일방통행이 아니라구요. 불행하지만 내 마음이 행복으로 돌아갈 순 있다구요, 마음은…. 여러분이 이제 배 같은 것 타 가지고 배의 키를 조금만 돌리게 되면 휙하고, 조금만 하면 휙 하고, 그렇다구요. 자, 이런데 문제는 그거라구요. 내가 가는 방향이 어디로 가느냐? 왼쪽으로 간다 하는 걸 알게 되면 바로 트는 거라구요. 바른 쪽으로 넘어간다 하는 걸 알게 되면 또 트는 거라구요. 돌아올 수 있다 그 말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 적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절망 가운데 떨어지는 것은 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절망 가운데 떨어진다 이거예요. 그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 부모는 내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나를 위해서 이 시간도 축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의 나라는 여러분과 같은 그런 놀음을 함으로 말미암아 흥할 수 있다는 걸 볼 때, 그 나라는 여러분을 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이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감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에 올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을 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내가 고아였더라면, 내가 나라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여기에서 파산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고아가 아니요, 나라를 가진 사람이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파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내는 재창조의 동기

통일교회 들어오고 났을 때는 부모들이 반대하고 형제가 반대하더라도 '아, 나는 통일교회 간다!' 당당하게 자신 있게 왔다구요. '당신들이 살고 있고, 당신들이 살던 나라보다도, 당신들이 현재 행복하다 하는 그 이상 나는 잘될 것이고, 좋게 만들겠다'고 하며 출발한 것입니다. 이제 내가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초지일관으로 여기에서 성공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요걸 가지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가는 길에도, 선생님의 일생에도 그런 일이 참 많다구요. 거 말 안해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다구요. 만일에 나에게 원수가 없었으면 나는 이 길을 배반할 수도 있었다는 걸 내가 발견했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핍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원수들이 '아! 통일교회 문선생 망해라' 하고 그저 때려잡으려고 했던 원수들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내가 망할 수 없다!' 이렇게 하며 나왔다구요.

자, 내가 만약에 망하고, 내가 만약에 꺾어지고 망해 가지고 깨져 버렸다면 그 원수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느냐 이거예요.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자, 네 창끝이 얼마나 강하냐? 네 고난길이 얼마나 강하냐? 네 고문이 얼마나 강하냐? 들이대라!' 그래 가지고 죽더라도 그는 굴복하지 않고 죽었다고 당당한 사나이였다고 그 입으로 증거할 수 있는 그 길을 향해서 나는 간다 이거예요.

원수가 있기 때문에 그 길은 내가 안 갈 수 없다 이거예요. 내가 안가면 원수가 좋아할 것이고, 하나님은 슬퍼하고, 하늘편은 전체가 비통해 할 걸 생각하니 그럴 수 없다 이거예요. 자,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자기의 실체로 지었던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천주를 전부 다 잃어버린 그 아뜩한 순간을 하나님 자신이 어떻게 극복했느냐 하는 것을 생각했다는 거예요.

만일에 당장이라도 사탄이나 인간을 전부 다 쓸어 버릴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되겠느냐? 하나님의 전능성이 깨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그렇게 되면 사탄이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 말하기를 '당신은 전능하신 분이 아니요? 이러한 죄 때문에 하나님은 깨져 나가는 분이요?' 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침범을 안 받기 위해, 사탄이 화살을 쏘게 된다면 하나님은 언제나 물러간다는 거예요. 물러간다구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네 힘을 다하고 네 모든 것을 다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지은 판도권 내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입장에 세워야될 것이 아니냐. 기가 막힌 장면이요, 용서할 수 없이 참을 수 없는 장면이지만, 기가 막히니까 참아야 되겠고, 참을 수 없더라도 참아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거기에 하나님의 권위가 생겨나고, 그러므로 하나님다운 자리, 하나님의 전능성이 생기는 거예요. 자, 하나님이 모른다고 한번 뒤집어 박았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러면 우주는 다 없어지는 거예요. 또, 하나님의 창조의 위업도 다…. 하나님이 생각을 다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비참한 하나님이 되어 버리고 만다구요. 그런 것을 우리는 생각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인내가 얼마나 귀하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인내가. 인내가 얼마나 귀하냐? 자, 이렇게 보게 되면 인내는 재출발의 동기요, 재창조의 동기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발견할 거예요. 참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용서해 줄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나는 언제나 저길 점령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쪽에서 그 자체의 경계선을 두게 되더라도 내가 이렇게 가면 그 경계선에서 자기는 물러가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내가 이렇게 자기를 대해서 이렇게 경계선 없이 내가 그 자리에 가게 되면, 이쪽에서 경계선을 두면 자기는 물러가야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결국 전멸한다는 거예요. 만약에 이것을 반대하는 날에는 그 입장을 완전히 상속할 수 있다는 조건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구요?「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참는 것입니다, 참아요. 아담 해와가 죽는 자리에 나갈 때 참았고, 십자가에 예수를 데려다 땅땅 못을 박는데도 참았다 이거예요. 자,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 그런 척하고 대하니, 기가 막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전부 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대해 주고 그러면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 사람만 보게 되면 자기가 싸워 어디 발 밑창으로 들어갈 터인데,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굴복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많이 참는 것은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는 결론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알겠어요?「예」

자, 너희 집안에서도 그렇다구요. 가정에서도 형제들이 뭐 야단하더라도 참고, 참고, 이렇게 나가면 부모나 누구나 전부 다 그 앞에서 다 축복해 준다구요. '쟤는 두고 보자!' 하고….

참는 자가 이기는 자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하나의 규정을 짓고 넘어가자구요. 나를 위해서는 참는 것이 좋고, 남을 위해서는 입을 여는 것이 좋다 이거예요. 자, 그 사람이 어려운 데 있으면 내가 어려운 것을 입을 열어서 위로해 주고, 그 사람이 모함을 받게 된다면 알고도 모르는 척해 가지고 그저 입을 열어 옹호해 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필요한 바탕을 혹은 동기를 찾는다면 참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수 있을 거라구요, 이제. 동양에는 그런 격언이 있어요. '참는 자가 이기는 자다' 하는 격언이 있다구요. 이해되느냐구요, 무슨 말인지?「예」

그 다음 둘째 번은 뭐냐? 이것은 위해서 살겠다는 거예요, 위해서.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뭘해 줬느냐?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언제든지 내가 위해 줄 수 있다, 너 때문에 내가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다, 이럴 수 있어야 돼요. 가만히 생각해 봐도 그거밖에 없다구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언제든지 굴복하고 들어가라는 거라구요. 낮은 자리에 있겠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렇다구요. 같은 동무들끼리도 그렇다구요. 예를 들어 보면, 이제 같은 동무들끼리 한 집에서 자취를 한다고 할 때 말이지요. 밥을 같이 지어 먹고 다 이래야 하는 같은 입장인데 말이지요. 어떤 친구가 그저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가지고 밥을 하고 또 그런 일을…. 하루하고는 하루 바꿔 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일주일을 여상없이 한다고 하자구요. 그러면 이 사람이 이렇게 해주면 다른 사람은 말이예요. '아, 너 나에게 잘해 준다' 하고 세 번씩이나 인사를 한다구요.

만일에 '저 녀석 못나서 저런다구!' 이렇게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자기 혼자는 좋아서 '아!'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주위에 딴 사람들이 '야! 이 녀석아' 하며 들이친다는 거예요, 주위 사람이 전부 다 이쪽으로 온다구요. 열이면 열 사람 전부 다 이편에 선다구요. 그런가요, 안 그런 가요?(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

그러면 그럴수록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전부 다 들이친다는 거라구요. 그건 누구나 편들어요. 전부 백 사람이면 백 사람, 천 사람이면 천사람은 그 일이 길면 길수록 편이 더 많아지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이걸 이렇게 하면 할수록, 결국은 위하면 위할수록 그를 정복하지 않으면 그 환경을 정복한다는 말이 나왔다구요. 그 자체를 정복하지 않으면 환경을 정복할 수 있다는 비결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희생시키면 천 사람, 만 사람이 다 구원될 수 있는 것을 알았다구요.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십자가를 졌으면 세계 사람이 동정하겠어요?「아니요」 그 왜? 예수님이란 죄없는 분이 와서 자기들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서, 공익과 복리를 위해서 죽어갔기 때문에 세계는 노래를 부르고, 나라를 밀치고도 찬양한다는 거예요.

자,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서 우리는 뭘 찾아야 하느냐? 십자가에서 어려운 것을 참은 예수님을 볼 때, 그전에 무슨 사랑이니 자비니 하는 건 누구나 다 말할 수 있지만 제일 어려운 것이 십자가에서 참을 수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거라구요. 그거라구요.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래 첫째는 뭐냐 하면 참았다는 것이 놀랍다 이거예요. 그 다음엔 뭐냐하면 원수한테까지 위해서 살겠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라구요. 고것이 결론이라구요. 그 자리에서 사랑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이요, 그 자리에서 평화도 전부 다 한꺼번에 성립된다는 거예요. 하늘과 땅이 갈라졌던 것이 여기에서 하나로 맞붙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인간과 하나님이 갈라졌던 것이 여기에서 접붙여질 수 있는 그런 기원이 되지 않았더냐.

그러면 오늘날 그와 같은 원칙에서 여러분들이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오로지 매일같이 참고 가야 할 일이 많다 이거예요. 많다 이거예요. 내 자체의 체면이 깎이는 것도 참아야 되고, 내 자체의 어려움도 참아야 되고, 외적인 어려움도, 공박의 어려움도 참아야 되고, 여러 가지 환경적 어려움을 자초해 가지고 가는 패들이라 이겁니다.

자, 우리 그거 생각해 보자구요. 자, 선생님도 무엇 때문에 미국에 와서 이거 지금 여러분들 붙들고…' 지금까지 편안히 잘 쉬고 있는데 왜 못살게 하는 거예요? 내게 뭐 생기는 게 있어요? 내가 땅 한 조각을 한국으로 메고 갈 거예요? 금덩이를 가지고 갈 거예요?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아 30년, 50년이 넘도록 선생님도 수고했으면 좀 쉬지, 그 왜 못살게 그러냐?'고 말이예요. 나도 그러고 싶다구요. 나도 그러고 싶다구.

선생님은 생명을 내놓고 이 놀음을 해

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이 미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보라구요, 미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어디 너희들의 생각에 좋을 것 같아요, 나쁠것 같아요?「나쁠 것 같습니다」 왜 그래? 왜 그러냐 이거예요. 안됐다 이거예요. 망한다 이거예요. 불행하다 이거예요. 이렇게 올라가면 갈 수 있는데, 이게 이렇게 가다 이렇게 가 가지고 왼쪽으로 이렇게 와 가지고 이렇게 간다 이겁니다. 그러니 요 중심자리는, 이건 망한다는 거라구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며 말씀하심) 중심이 없다는 거예요. 나라가 있느냐, 가정이 있느냐, 어디 중심으로 있느냐 이거예요? 세계가 있느냐? 전부 다 나 개인주의, 동물주의로 떨어졌다구요.

하나님이 있으면 여기선 하나님은 나라를 필요로 하는 하나님이고, 나라가 있으면 민족이 필요하고, 민족이 있으면 종족이 필요하고, 종족이 있으면 가정이 필요하고, 가정이 있으면 개인이 필요하고, 이것이 어떠한 방향적인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아무것도 없다구요.

자. 이 미국 청년들이 나라를 생각해요? 세계를 생각해요? 생각은 지금 뭐뭐뭐 육적 만족, 요즘으로 말하게 되면 전부 다 남녀 문제에 걸려 가지고, 섹스 문제에 전부 다 걸려 가지고 그것이 제일…. 그것이 인생살이예요?「아닙니다」 이러니까 안 됐다구요. 그러니까 요걸 바로잡아야 돼요. 이것을 끌어당겨야 돼요. 이걸 끌어 넘겨야 되겠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래 가지고 다시 한 번….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고 하나님의 사회가 어떻고, 하나님의 가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개인이 어떻다는 관을 딱 세워 줘야 된다구요. 통일교회만이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가피적으로, 또 하나님이 그러지 않고는 이 세계를 구할 수 없겠기 때문에 이 일을 안 할 수 없다는 거라구요.

자, 선생님은 언제나 그저 좋기만 하고, 아주 뭐 생각대로, 맘대로 다 되는 줄 알아요?「아니요」 첫째는 참을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구요. 이건 뭐 알고도, 모른 척하고, 보고도 안 본 척하고, 듣고도 안 들은 척하고…. 이건 뭐 더 많다는 거라구요. 그런 일이 참 많다구요. 이런 원칙을 몰랐다면 벌써 도망갔다구요.

이렇게 내몰고 가면 갈수록 전부 다 부작용이 일어나서…. 사회도 그렇고, 기성교회 반대하지, FBI가 뭘하나 하고 주목을 하지, 별의별 그저 꼬투리만 잡히면 잡아 끌어서 치려고 한다구요, 지금. 조건만 있으면 잡아치우려고 한다구요. 이거 전부 다 망하겠으면 망하고…. 그 얼마든지 차 버리고, 당장에 침 뱉고 갈 일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보라구요. 내가 공항을 드나들더라도 이 레버런 문이 이 나라에 무슨 뭐 손해나는 일이나 끼치고 다니는 사람 취급하고 말이예요. 기분 나쁜 일이 많다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내가 참아야 됩니다, 모르니까, 모르니까. 이 사람들까지 다 가르쳐 주고 나서야 내가 성을 내도 성을 내야 될 것 아니냐고….

또, 그 다음엔 내가 미국을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뭘하려고 여기에 있어요? 내가 밥먹기 위해서 여기 있어요?「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 미국을 위하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그런 기간을 얼마나 가질 것이냐? 이게 문제라구요. (판서하시면서) 얼마나 길게 가지느냐? 3년? 3년에 안 끝나면?「또 3년 해야 합니다」 허허허…. 그래도 또 안 끝나면?「또 해야 합니다」 안 끝나면 또 해야 돼요. 또 안 되면? 또 안 되면? 또 하는 거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백인들이 잘살고 있는 이런 태평한 나라에 있어서의 황인종 레버런 문이 와 가지고 난동을 부려 우리 앞에 혼란을 일으키고 청년을 다 빼앗아 갔다 해 가지고 미국 나라가 내쫓으려고 그런다구요. 왜 그러냐? 젊은 사람들 전부 다 이렇게 하고, 전부 다…. 그러니 그것 무서워할 것 같아요, 안 무서워할 것 같아요?「무서워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별의별 짓 다 한다구요. 별의별 짓 다 한다 이거예요.

그러면 내가 이 일을 못 하게 될 때, 누가 할 것이냐? 여러분이 해줄 수 있는 여러분이 됐느냐? 이게 문제라구요. 빠른 시일 내에 내 대신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 놔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구요. 여러분이 대신할 수 있어요?「아니요」 없으면 어떻게 해요, 없으면?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여러분들이 하나되어 가지고 이 일을 빠른 시일 내에 단축해야 되겠습니다. 길면 길수록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걸 여러분이 생각해야 된다구요.

자, 백인들은, 너희 자신이 백인 나라 미국을 믿을 수 있어요? 백인이 백인을 못 믿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황인종이 백인을 믿을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것도 어려운 일이라구요. 어려운 일. 이 백인들이, 지금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이 통일교회가 들어와 가지고 자기들 잘사는 데에 위협한다고 하나요, 백인들이 통일교회를 위협한다고 하나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러니까 너희들 생각해도 백인 청년 한 사람만 나쁜 마음 가지면 별의별짓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내놓고 이 놀음을 한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은 심각하지 않지만 선생님은 그러한 심각한 모든 것을 느끼면서 이 놀음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는 마음이 없으면 벌써 도망가야 된다 이거예요. 좋은 것은 하나도 보지 않고 나쁜 것만 잡으려고 해요. 나쁜 것을 전부 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참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 여러분이 잘못하면 그건 통일교회 선생님이 책임져야 된다구요, 미국이면 미국내에서. 책임지는 데는 서양 청년이 잘못한 것을 동양 문선생이 책임진다 이거예요. 거 우습다구요. 잘못하기는 백인들이 잘못했는데 말이예요, 그걸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다 뒤집어 씌우는 거라구요. 그렇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기성교회의 젊은이들, 반대파들이, FBI 같은 것이 짜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통일교회 열심분자같이 되어 가지고 통일교회 망치기 위해서 강도, 살인도 시키고 별의별 놀음 다 시키지 않겠느냐 이거에요.

자, 3년 동안 통일교회 다니면 축복해 준다, 세 사람 전도하면 해준다 하니까 자기 친구들 데려다가 박아 가지고 세 사람 되면 얼마든지 축복 받고, 별의별 짓 다 할 수 있는 거라구요, 얼마든지 계획적으로 다 할 수 있어요.

그런 것, 저런 것 전부 다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작전은 제트기식으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같이 단숨에 해 나가면…. 그거 이해 되느냐구요? 미국 사람 지도자보다도 이 동양 사람 지도자라서 몇 배 머리를 쓰겠느냐, 몇 배 고통이 심하겠느냐?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풍습도 그렇고, 다 감정이 다르고 말이예요. 뭐 그저 뭐 레버런 문이 와 가지고 백인들을 동양 사람 앞에 전부 다 굴복시키는 패가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구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지요. 그걸 모른다구요, 여러분들은 이해하지만 말이예요.

또, 일본 사람들도 그래요. 지금 통일교회 들어오게 되면 말이예요. 전부 다 선배예요. 일본 사람도 선배고, 한국 사람도 선배고 이거 전부 다 선배니 새로 들어온 책임자들도 와 앉게 되면 책상 저 끄트머리에 가 앉아야 된다 이거예요. 이게 기분 나쁘다 이거예요. 전부 그렇지요?「아닙니다」 그런 여러 가지…. 여러분들은 뜻을 알고 다 그러지만 처음 들어온 사람은 기분 나쁜 일이 많다구요. 그 이해되느냐구요, 무슨 말인지?

그렇지만 그것이 레버런 문의 주장이 아니다 이거예요? 그것은 마치 강물과 마찬가지입니다, 강물. 강물의 근원이 틀리니까, 여기서 만난 물과 저기서 만난 물과 다르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러니까 이게 다르다는 거라구요. 아무리 강이 크더라도 달라요. 강이 크더라도 여기에서 나온 물이 잘 흐를 것이냐, 맨 꼭대기 혼자 한 방울서부터 시작한 것이…. 이래 가지고 강물이 되는 것이다, 이거 이렇게 시작하게 돼있다구요.

그 사람들을 통해서 가지가 거기에 붙었으니 할수없다구요. 그거 싫다는 것은 남을 싫다는 거예요. 남을 싫다는 것은 전체를 부정하는 게 되는 거라구요.

앞으로 흑인들이 먼저 들어와서 붙으면 백인은 꼬래비에서부터 달려야 된다구요. 다른 길은 없지 않느냐구요. 그 길 외에는 길이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딴 길이 있을까요? 딴 길이 있어요?「없습니다」 그러니 할수없다 이거예요. 그렇다고 그 나무 자체가 너를 무시하고 그런 게 아니라 같다고, 같이 보는 거라구요. 그러면 됐지요. 그러면 되었다는 거라구요.

참고 위하라

자, 이런 저런 일 보게 되면 선생님도 참지 못하면 벌써 일을 못 한다 이거예요. 이 미국에서도 그렇다는 거예요. 또,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진정한 생명과 더불어 맞추어 가게 된다면 이것이 역사를 통해서도 알 때가 있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때는 완전히 위한 후 완전히 굴복한다는 거예요. 세계가 완전히 위할 수 있는 여기에 한 모델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예수가 죽어서 승리한 그 비결이 무엇이냐? 참고 가는 길이요, 위하라는 원칙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왜 그렇게 안합니까?' 했다면 다 박살났다는 거예요.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랬기 때문에, 참고 넘어갔기 때문에 훌륭한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되는 거라구요. 그게 훌륭한 것이라구요. 그 다음엔 원수를 위해 복을 빌고 간 것이 훌륭한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거예요. 이 미국에 있으면서 전세계의 활동도 그런 걸 생각하는 거라구요. 자, 어려운 일이 있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 도리어 기도하려고 하는 마음…. 그러한 사람, 그러한 곳을….

하나님도 역시 그렇다구요, 하나님도.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은 참으시는 분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참아왔느냐? 얼마나 참아왔느냐? 그 다음엔 하나님은 우리 인류를 위해서 사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노정에 이 원칙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망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는 한 반드시 흥한다 하는 결론은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이하 20여 분간 일본어로 말씀하신 말씀은 위의 내용을 요약해서 하신 것이라 수록하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