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5년 1월 19일, 새해를 맞이하여 세번째 맞는 안식일 아침이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의 무리들이 새해 들어 세번째로 경배드리는 자리자리에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과 축복과 가호가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역사적인 섭리를 바라보게 될 때에 현재 저희들이 처하고 있는 이때는 지극히 심각한 하나의 고개를 넘는 시기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섭리의 뜻을 연하는 승리의 한 날을 고대하고 그 승리의 때를 한 민족을 중심삼고 한 나라를 중심삼고 얼마나얼마나 다짐지어 나왔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 통일의 무리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온전히 산 제물로서 묶어 바쳐지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인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옵니다.
아버지여, 저희는 지금까지 인도하시던 당신의 사랑의 손길을 고대함과 동시에, 저희를 보호하시고 뜻하시는 목적의 곳으로 저희를 채찍질하면서 인도하시던 당신의 자비의 손길을 저희들은 다시 바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이 안 계시면 저희들은 소망이 없는 것이요,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현재 저희가 처해 있는 위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 수 없는 불쌍한 무리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의 아버님, 지금까지 인도하신 당신의 뜻에 감사드립니다. 동시에 제3차 7년노정을 앞에 놓은 이 시점에서부터 역사적인 사명을 다짐지어야 할 저희들, 각자가 얼마나 엄청난 자리에 있는가를 자각하는 통일의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에서 몰리던 무리, 핍박받던 무리, 스스로의 입장을 말하지 못하던 불쌍한 이 무리들이 이제 이 민족 앞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명을 짊어지고 가는 하늘의 아들딸의 모습이라고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때가 저희 앞에 다가오면 올수록, 이제부터의 저희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하는 것을 각자가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이로되 개인적인 행동을 할 수 없는 이때요, 가정 혹은 교회, 저희 통일의 무리들이 가는 거동에 따라 금후의 이 민족의 생사가 좌우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그야말로 저희들 각자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담판기도를 끝내고 십자가의 고갯길을 향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늘의 뜻 앞에서의 십자가의 고개를 넘고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다시 분부받는 하늘의 아들딸의 모습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되겠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소망의 실체가 되는 동시에 땅에 있어서도 효성의 도리를 다하고 충신의 도리를 다하여 역사적인 자녀의 사명과 역사적인 충신들의 사명을 책임지는 무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스트 가든에 있는 어린 것들도 이날을 추앙하면서 고국 땅에 있는 부모가 돌아올 날을 고대하면서 남아진 바쁜 이 기간에 하늘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에게도 당신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는 이제부터 낮이 오나 밤이 오나 새로운 봄이 찾아오는 이 절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하늘의 새로운 운세권을 몰아 세계적인 운세와 더불어 민족적인 운세의 고개를 넘어야 할 천의의 사명을 앞에 놓고 있사오니, 가야 할 이 과정에 있어서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1월 16일 조선호텔 뱅퀴잇(banquet)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시사 하늘이 가는 방향을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옵고, 이제 2월 8일에 있을 행사를 위하여 세계의 젊은 자녀들이 찾아오게 될 때에도 그들의 마음 앞에 소망의 빛을 전하는 이 민족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는 민족적 수치를 가리울 수 없던 불쌍한 환경의 나라를 이제 이들이 와 가지고 마음의 조국이요, 자기들의 신앙의 본향땅으로서 생각해 왔던 이상의 한국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역사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4월에 올 국제기동대의 모습들을, 아버지, 지켜 보시옵소서. 이 나라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여 이 남한 땅에 하늘의 새로운 광명한 빛을 비출 수 있는 이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 민족이 새로운 소망의 세계로 향진할 수 있는, 당신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민족이 되고, 당신의 사랑의 품에 품길 수 있는 대한의 땅, 삼천만 민족이 되어야 하겠사옵니다. 그렇게 되기를 저희들이 얼마나얼마나 고대해 왔던가 하는 사실을 당신은 잘 알고 계시옵니다.
그 한 때를 위하여 피어린 슬픔의 길을 극복에 극복을 하면서 참아온 것을 아시는 아버지여, 이들의 갈 길을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철이 없고 자기 자신을 갖추지 못할 때는 어떠한 핍박을 받고 어떠한 조롱을 받아도 좋지만, 철이 들고 자기 자세를 갖추어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때에는, 중심의 자리에 서고 상대적인 존재들을 거느리고 하늘의 기대 가운데 서는 그 날에 있어서는 책임을 못 해 가지고, 아버지께서 염려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사옵니다. 그런 사실을 각자가 깨닫고 이제 이 3차 7년노정에 있어서 민족적 사명을 다시 하고, 세계적 사명을 다시 할 수 있는 한국의 식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이 민족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 가지고 피를 흘려 십자가의 도리를 세운 그때서부터 지금까지 2천 년이 가까와 오는 이 역사 기간에, 수많은 피의 대가를 치르며 역사적인 탕감의 길을 거슬러 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버릴 수 없는 당신의 심정이 얼마나얼마나 딱하겠는가 하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은, 아버지여, 이제부터 그들을 품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를 중심삼고 가인 아벨의 한을 풀고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봄날이 통일의 무리들이 가는 길 앞에 찾아오는 것을 직시하면서, 지극히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자세가 어떠한가를 내적으로 외적으로 스스로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내일의 소망 가운데 빛나고, 당신의 마음에 소망의 자극을 더해 주는 참다운 자녀의 모습을 갖추어 늠름하고 담대하여 당신의 나라에 건국의 용사로서 흠이 없는. 당신 앞에 축복을 받는 동시에 사랑을 받는 동시에 만민 앞에 내세워 자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리들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남아진 기간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아침에도 당신의 자비와 사랑이 저희의 가슴 깊이 스며들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이미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는 2차 7년노정을 지내고 3차 7년노정에 들어섰습니다. 영적인 세계시대에서부터 육적인 국가시대의 고개를 넘어야 할 과정이 한국에 있어서의 금후의 기간인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모든 일들은 이와 같은 전환기에 있어서 중차대한 하나의 천적인 의의를 지닌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16일에 조선호텔에서 있었던 뱅퀴잇(banquet)으로 말미암아 한국에서는 통일교회에 대한 관이 새로이 달라져 가고 있지 않느냐고 보는 것입니다. 또 2월 8일에 우리는 국제합동결혼식을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참석하는데, 이 젊은이들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는 달리 하늘을 대표한 새로운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젊은이들로서 한국 땅에 와 가지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2월 8일의 행사는 역사적으로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국제기동대가 4월에 한국에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조선호텔에서는 선생님 개인이 선을 보인 것이며, 그 다음에는 우리 통일교회의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에 와 가지고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의 인연을 이 민족 앞에 보여 주는 것이 아니냐. 그 다음에는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 와 가지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이 단기간에 되어지는 일이지만 이러한 사건이야말로 통일교회가 내포한 전모를 사실로서 드러내는 이번 기간인 동시에 한민족 앞에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 주는 기간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뜻적인 면에서 이렇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기간이야말로 우리 통일교회가 새로운 자세를 가지고 한국에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여야 할 천의에 의한 사명을 해야 할 기간이라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금후의 우리의 자세가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통일교회 하게 되면 일반인들이 알기를, 소문 들은 것과 같은 그런 교회로, 자기들이 마음대로 비판하고 마음대로 말을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족할 수 있는 그런 통일교회로 봤지만, 이제부터의 통일교회는 일반 사회에서도 아예 그렇게 볼 수 없는 차원으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정이 이제부터 전개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외적인 변화와 더불어 내적인 변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적으로 급변하고 있는 시대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현시점에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맞이해 가지고 내적인 변화를 가져오느냐 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과업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난을 받고 욕을 먹고 그럴 때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대외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두고 있지 않을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더라도 '그저 그러니까 그럴 수 있지'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미비하고 미급한 자세를 갖더라도 우리는 그것으로써 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환경이 변화하여 이제 '저들이 아니면 안 된다. 저들이 가는 길이야말로 현재 혼란한 이 사회 전체를 대표해서 가야 할 하나의 희망의 길이다. 개인이 저들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그 개인이 희망의 길로 갈 수 있고, 가정이 저들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희망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고, 혹은 이 민족이 저들의 가는 길을 따라감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차원의 하나의 이상적인 나라를 찾을 수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바라보게 될 때, 과거의 우리의 입장과 다가오는 이 기간에 우리가 취해야 할 그 입장이라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이 기간에 내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되지 않느냐.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가 되었습니다.
학생이면 학생, 가정을 가진 부모들이면 부모, 혹은 교회의 책임자들이면 책임자, 이들이 거동하는 모든 것은 새로운 각도에서 금후에 이 민족 앞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기에서 우리 자체가 지대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자체는 내적인 면에서부터 외적인 면을 다시 재비판하고 넘어가야 할 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역사과정이 입증하듯이 제물의 길을 이어가는 길입니다. 제물의 길을 이어 가지고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제물이 민족을 연결시키고 하늘 앞에 그 결실을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물의 사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자신의 구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구원 외에 전체의 구원이 되도록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물로 내세워 준 주인,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면 하나님의 목적을 해원해 드려야 할, 풀어 드려야 할 그런 탕감적인 입장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런 중간 입장이 무엇이냐 하면 제물된 우리입니다. 우리가 중간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물은 반드시 사람 앞에 놓여지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이 제물이 잘 드려지게 될 때는 그 사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요, 그 제물을 대하는 하나님의 소원, 혹은 하나님의 한이 풀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제물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개인적인 제물시대를 거쳐 가지고 가정적인 제물시대를 거쳐야 되고, 그런 다음 종족, 민족, 국가적인 제물시대로 넘어가야 할 이런 차원에 머물러야 할 것이 아니냐. 지금까지는 나 자신이 영적으로 제물적 입장에 서 가지고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하고, 혹은 세계를 대표해서 나왔지만 이제 우리는 실체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영적인 민족을 붙안고 책임하면 그것으로 족했지만, 영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의 뜻 앞에 알맞을 수 있는 책임을 하면 그것으로 족했지만 이제부터는 거기에 더하여 실체시대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옛날의 우리들과 오늘날의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의 차원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통일교회 자체를 두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는 어디에 서 있느냐? 영적인 기준의 시대에 있어서는 이 육적인 기준은 뒤에 서 있었지만 지금의 때는 그것이 아닙니다. 영육을 중심삼고 영적인 면이나 육적인 면에서 민족을 대표해 가지고 중심적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물 자체가 문제 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 자체가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제물로 받을 수 있는 역사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라 오고 준비된 그 제물 자체가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정성어린 제물이냐 하는 것이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자체가 이 민족 앞에 등장하여 하나의 제물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면, 그 제물의 자리에 서 있는 통일교회로서, 지금까지 지내 온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내용을 남기고 왔느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제물로서 그런 내용을 남기지 못했다면 여기에는 반드시 제물로서의 오점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 그 어딘가에 흠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깨끗이 씻어 버리든가 맑혀야 할 분야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이것을 누가 할 것이냐? 이런 문제가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제단에 올라가서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제단에 올라가기 전에 내적인 준비와 외적인 준비를 갖추어 가지고 하늘이 봐서 합당한 제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통일교회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제물적인 사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 지내는 제사장은 누구냐? 이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될 것이냐? 이 땅 위의 누구여야 되느냐?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영적인 분야를 책임져 나온 선생님이 이제부터 제물을 드리는 제관(祭官)이 돼야 될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깨끗한 제물이 되어야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제사를 드려야 할 그 주인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그 장본인이 그 제물을 가꾸기에 정성을 다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 제물이 아직까지 깨끗하지 못했다면 그 제물 자체에게도 물론 책임이 있겠지만 제물을 준비해 나오던 제사장 입장에 서 있는 그분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지금까지 생각해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느낀 것이 뭐냐?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될 것이고, 이 기간에는 반드시 세계적인 영적 운세를 몰아 가지고 육적 기반을 연결시켜 국가의 고개를 넘어 육적으로 세계까지 진출할 수 있는 준비를 하여 숨가쁘고도 심각한 역사적인 기간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지니고 한국을 찾아드는 나 자신은 어떠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면, 내 자신이 그런 입장에 서서 이러한 제단을 마련하고 제물을 가꾸어 가지고 드릴 수 있는 준비자로서의 책임을 다했느냐 하는 자체 반성을 해야 할 기간도 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선생님, 선생님이 지닌 그 모든 것은 여러분들이 지닌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금번 조선호텔에서의 뱅퀴잇(banquet)을 중심삼고 한국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은 이 민족이 새로이 하늘 앞에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더냐. 하늘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 무엇인가 모르게 자기 스스로를 반성하고, 자기의 내적인 면을 깨우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가다듬을 수 있는 외적인 환경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 민족이 제사를 지내는 한때를 맞기 위한 제객(祭客)들로서의 준비자세를 갖추는 모습이 아니냐. 이렇게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그러한 외적인 제객들인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차원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스스로 갖춘다면,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의 때가 온다고 매양 기뻐만 하고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들에 앞서서 우리 자체가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자세를 정비해 놓아 가지고 그야말로 선생님과 하나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보게 될 때 '내가 원하던 제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또 여러분은 '통일교회 문 아무개가 바라는 제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당신이 바라던 제물이 이것이며 내가 드리려던 제물도 이것이니 이 민족을 대신해 가지고 드리오니 받아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 민족이 스스로 반성을 하고 하늘 앞에 스스로 자기의 태도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이런 하나의 분위기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 민족이 새로운 결합이 가능한 한 차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소원하던 것은 한국이 우리 뜻을 받아들여 줬으면, 이 민족이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왔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핍박 도상에 있어서의 우리의 소원이었고 희망이었다면, 그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때가 왔다 할 때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때는 소망의 때가 아닌 것입니다. 바라던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바라는 때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왔거든 그 다음부터 책임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해야 됩니다. 그 목적이 성사될 수 있는, 당장 현실적인 생활터전에 나타날 수 있는 그 목적을 바라보던 자체로서 가야 할 길은 차원이 다른 길로서 새로이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완결지어 놓고 새로운 목적의 세계로 향진(向進)할 수 있는 길을 가지 못하고 옛날 그대로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날에는, 하나님이 원하고 혹은 선생님이 원하는 이 민족에 대한 통일교회의 기대가 달성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이러한 시점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 변화와 더불어 내적 변화가 먼저 일어나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렇게나 취급받을 때는 아무렇게나 행동하더라도 그것으로 될 수 있었지만, 귀중하게 전체가 희망을 가지고 '이것을 책임져 다오. 하늘을 책임지고 나라의 뜻을 책임져야 한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옛날과는 다른 것입니다. 입장이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옛날에 하던 행동은 전체 앞에 영향을 끼칠 수도 없고 책임을 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가는 길이 영향을 끼치고 책임져야 할 길이라면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적당히 환경을 피해 가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때가 아닙니다. 피해 가는 때가 아니라 계획대로 밟아가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변명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대로 그 자체가 하나의 희망의 표준이 돼야 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중심을 대신한 주체로서 안팎을 갖춘 그런 자세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먼저 그 생활에 있어서, 가정생활에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에서도 그렇고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생활터전에서 생활을 하는 모든 언행심사(言行心事)가 어떠한 새로운 목적관에 일치된 표현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3년노정, 여러분이 한국에 있어서 국가와 민족 앞에 새로운 국가관을 제시하여 그 국가관의 내용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적인 체제를 확립해야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아무렇게나 가던 그런 생활체제가 아니라 이렇게 가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라는, 확고부동한 하나의 중심으로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은 머무는 위치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중심이 머물 수 있는 자리는 둘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자리는 우리 개인이 머물러야 할 자리입니다. 그 하나의 기준을 중심삼고 가정이 머물고, 그 하나의 중심을 주체로 해서 종족이 머물고, 민족이 머물고, 국가가 머물고, 세계가 머물러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선생님이면 선생님 자체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러한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나 하나로서 중심을 대신할 수 있는, 생애에 있어서의 그 해결점을 결정지어야 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면 가정이 그 하나의 중심을 주체로 해 가지고 그 중심과 하나될 수 있는 가정으로서의 해결점을 결정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국가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사명을 중심삼고…. 그 중심기준을 중심삼고 그 체(體)는 개인에서부터 횡적으로 범위가 넓어지지만 중심은 하나입니다. 중심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그와 같은 차원에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반대하는 통일교회는 대한민국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는 조금 잘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의 중심으로서 등장했다 하게 될 때는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는 데는 좋은 것은 책임지고 나쁜 것은 책임지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그 요인이 무엇이냐? 좋은 일에만 책임하여 승리하는 것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일을 책임질 수 있는 데에서 중심적인 사명을 하게 될 때 그는 책임자로서의 책임 수행을 완결했다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입장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책임 수행이라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을 바라보게 될 때,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떠한 위치에 와 있느냐? 대한민국에 있어서의 이 3년 기간은 지극히 위험한 기간입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도 그러하고 미국도 그러한 운명권에 있는 것입니다. 같은 차원, 같은 레벨(level)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책임지고 나서겠느냐? 이것을 책임질 수 있는 단체, 혹은 정당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모르는 거예요.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그 보편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 세상 사람이 책임져야 되느냐, 하늘의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책임져야 되느냐? 하늘의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하늘의 사람이 책임져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속한 종교 가운데서 어떠한 종교가 책임을 하겠느냐?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기독교가 책임질 수 있느냐? 없다 이거예요.
그럼 기독교의 중심 지주가 되는 어떠한 단체가 있다면 그 단체가 책임져야 될 것입니다. 그 누군가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서는 무리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짓고 바라볼 때, 그러한 무리는 오늘날의 기독교 가운데, 어떠한 기성교회 가운데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실험을 필한 결론입니다.
그러면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바라볼 수 없었던 통일교회가,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통일교회만이 이러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은 사실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심, 이 축이라는 것은 그 환경의 모든 여건을 잘 수습해 가지고 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어느 한 쪽이 모가 나고 찌그러지면 중심의 영향이 바로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환경과 중심은 상대적인 입장에 있지만 서로 직결된 운명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런 책임을 질 수 있는 단체가 있다면, 또 그런 내용을 지녔다고 스스로 자처하는 무리가 있다면 통일교회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통일교회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중심의 책임을 져야 할 통일교회라면 통일교회 자체가 중심적 자리에 확고부동하게 서야 됩니다.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한국의 통일교회도, 일본의 통일교회도, 미국의 통일교회도 확고부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축을 중심삼고 환경은 변화하여 커질 수 있지만 그 중심은 변할 수 없습니다. 한 자리에 머물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통일교회나 일본의 통일교회나 미국의 통일교회나 마찬가지의 운명에 서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움직여 돌아가는 이 하나의 축을 중심삼고 볼 때, 여기에 거센 환경이 부대끼고 혹은 타격을 가하게 될 때 이 중심이 이동할 수 있느냐? 이동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세계의 모든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그것은 미국도 아닙니다. 이 아시아의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일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책임을 누가 하느냐? 현재의 한국 정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져야 되느냐? 하늘편의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는, 중심사상을 지니고 요동하는 세계를 직시하면서, 스스로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환경이 요동하면 요동할수록 그 뿌리를, 중심자리를 깊이 땅에 박고 서 있는 단체가 아니면 안 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볼 때 한국의 통일교회 전체보다도 여러분 개개인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 중심 축이라는 것은 하나의 주물처럼 쇳물을 부어 가지고 만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느다란 쇠줄 같은 것을 많이 모아 가지고 제일 깊은 데 박아 놓은 그런 중심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 선생님이 있으면 여러분이 송곳과 같이, 굵어지면 굵어지는 그 입장에서 쇠줄과 같이 연결되어 가지고 철줄을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면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고 구부러질래야 구부러질 수 없는. 이런 공동운명에 서 가지고 하나의 중심자세를 갖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의 그 어떤 바람이 불고 혹은 환경의 바람이 부딪치더라도, 변화무쌍하고 혼란한 와중을 거쳐 나가는 데에 있어서도 그 자체는 요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 각자 스스로의 자세가 필요한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외적인 환경이 변하더라도, 아무리 파국적인 환경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거기에 치우침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그런 중심자세를 여러분 각자가 갖추었느냐 하는 것을 반성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환경적인 모든 여건을 책임져야 됩니다. 좋은 면만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면은 책임 안 져도 괜찮다는 거예요. 나쁜 면을 책임질 수 있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지금 한국을 바라보게 되면 기독교하고 정부하고 부대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을 보면 중심이 박혔느냐 안 박혔느냐 하는 것을 시험하는 때가 아니냐는 겁니다. 원래는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원래는 기독교가 이 나라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인데. 기독교가 책임 못 했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외적인 현정부가 중심으로 나올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동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그러면 우리가 정부에 대한 책임도 지고 기독교에 대한 책임도 질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정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이고 기독교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가지고 이것을 뚫고 나갈 것이냐? 이러한 복잡다단한 문제가 이중 삼중으로 연결되어서 오늘날 우리의 생활무대에, 현실적인 통일교회의 위치에 파급되어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오늘날의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무책임한 어젯날과 같은 시대와는 달라져야 됩니다. 심각하게 스스로를 다짐하면서, 중심의 자리에 선 것을 자인하면서 그 자체가 환경적으로 확대해 나가더라도, 변할 수 없는 중심자체가 횡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데에 있어서 환경적 개척의 놀음을, 그야말로 새로운 개척의 사명을 해야 할 것이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느냐.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하나의 씨라면 씨로서 내적인 생명을 지녀 가지고 그저 이 겨울을 지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그것을 유지하고 내적으로 다짐해 가지고 그것은 생명력을 지닌, 죽지 않은 씨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봄이 되어 심게 되면 이것은 내적인 변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외적인 변화는 없지만 내적인 변화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생명이 발아(發芽)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배아(胚芽)가 발생해 가지고 내일의 환경에 대비해 자체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혁명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환경적 여건을 소화 흡수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생명력을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자체가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스스로의 자세를 갖고 그 환경의 모든 여건을 흡수하여 새로운 체(體)를 형성해 가지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놀음이 우리 자체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래야 된다 이거예요.
이 사회의 모든 부패상은 생명을 지닌 자에게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소화 흡수할 수 있으면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비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소화시킴으로 말미암아 발전의 요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기성교회와 우리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생명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고 저쪽은 부패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릅니다. 달라야 됩니다. 현정부도 그런 면에 있어서 달라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는 세계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책임져야 합니다.
통일교회 스스로가 세계의 희망의 총아(寵兒)로서 새로운 탄생을 원하거든 세계의 제일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고 그것을 참조해서 비료로 삼아 가지고 흡수할 수 있는 생명력을 지녀야 됩니다. 그런 통일교회가 되는 문제를 나는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있다, 틀림없이 그럴 수 있다고 할 때는 문제는 간단합니다. 문제는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 때가 달라진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중차대한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 이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과거가 옳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만일 과거가 옳지 않았거든 빨리 시정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침이 되어 갑자기 눈을 떠 보면 밝아 오니까. 이건 해가 지는지…. 방향을 모르는 가운데서는 눈을 떴을 때는 해가 떠 올라오기 전에는 해가 지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구요. 저녁 인지 아침인지 분간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녁이 아니라 틀림 없이 아침이라는 것입니다. 아침이라는 거예요. 저녁은 모든 일을 끝내고 잠자리를 향하여 갈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지만, 아침은 잠에서 깨 가지고 새날의 일터를 향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한국의 풍토에 있어서 통일교회에 대한 관(觀)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좋아할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을 좋아하기 전에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처해 있는 풍토에 있어서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나 스스로 공인하고 그것을 시인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이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위기를 대해 도피하고 혹은 무책임한 자리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와중에서도 '그것을 책임져야 되겠다, 그것은 내 책임이다'고 해야 됩니다. 오늘날 종교의 부패상을 보고 비난하는 제삼자의 입장이 아니라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그건 내 책임이다'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의 혼란상은 내 책임이다. 이웃 사람의 모든 어려움도 내 책임이다, 이런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가진 통일교회의 무리가 되지 않고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책임감이 사방의 환경에 변화를 일으켜 가지고 그 권내(圈內)의 중심을 몰랐던 그들이 중심을 대해서 하나되게끔 해 가지고, 하나된 힘이 모든 부패상을 초월해 가지고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기에 충분한 움직임으로서 등장하는 데서만이 이 민족이 새로이 소생할 수 있고 이 사회의 풍토가 혁신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날 것이 아니냐. 그것을 누가 해야 할 것이냐? 하나님이 할 것이 아니고 이 민족이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때가 왔으면 좋겠다 해 가지고 '하나님이여, 어서 때가 오게 하시옵소서' 합니다. 때가 오면 어떻게 할래요? '때가 오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고생하고 못먹었으니 허리띠를 풀어 놓고 배를 불려야지' 그런 때가 아니라구요. 그런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교차점을 향해서 하나의 내리닫이 길이면 숨막히게 내리닫기를 해야 하는 것이요, 언덕받이 오르막 길이면 치닫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려가니 좋다고 춤추다가는 여지없이 깨지는 거예요.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되는 겁니다. 또 올라가면 올라가는 것으로 다 됐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내려갈 준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건 높은 산등성이에서 썰매를 탈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내려가니 아이구 기분 좋다고 하면서 눈을 감고 가다가는 옥살박살되는 거라구요.
거기에서 골짜기를 지나 새로운 방향으로 반동을 가하여 3분의 2이상 올라갈 수 있는 여력(餘力)이 가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그 대신 방향을 콘트롤할 수 있어야 됩니다. 방향만 잘 콘트롤하는 날에는 이것은 한꺼번에 그 자리를 훌훌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런 것을 모르고 눈 감고 '아이고 기분 좋다' 이러고 가다가는…. 이렇게 생각하면, 딱 그 꼴이 아니냐 이거예요.
선생님이 뭐 뱅퀴잇에서 뭐 어떻고, TV에 뭐 어떻고…. 어제도 선생님이 청평에 갔었는데 청평의 그 산골짜기 수련소까지 연락을 하더라구요. 문선생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었는데 TV에 나와서 알았다고 하며 연락을 해오고 야단들이더라구요. 좋아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구요.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눈을 똑바로 떠야 됩니다. 이제야말로 핸들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지극히 위험한 차원이 우리 눈앞에 온다는 것입니다. 그걸 느껴야 되는 거예요.
고개를 올라간다고 하면 숨가쁜 고개를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제 한 발자국 남았구나…' 분수령을 넘는 데 한 치가 문제예요. 한 치 미끄러져서 계획을 다시 했다면 이것은 밀려가는 것입니다. 한 치를 넘어서야 된다구요. 그 한 치를 내가 넘어섰느냐 이거예요. 그게 문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려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올라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한 발자국 더 넘기 위해서 새로운 각성을 해야 되겠고, 더 내려가는 데도 새로운 각성을 해야 되겠고, 한 발자국 넘는 데 전체가 새로운 각성을 해야 할 이때가 아니냐는 거예요. 틀림없이 그런 때라는 거예요.
어느 한 때, 통일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새로이 변화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한국에 있어서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선생님이 그런 놀음을 못 해서 안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천운(天運)의 박자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사명적인 관(觀)을 두고 볼 때, 한국의 대표적인 사람들 앞에 나타나 가지고 '아이고 부탁합니다' 이런 저자세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위신이 안 선다는 거예요. 내가 할 책임을 다하고 하늘의 위신을 갖추어 가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내가 그들 앞에 신세를 끼치면 끼쳤지 그들의 신세를 지는 입장에 서는 것은 하늘이 원치 않는다 이거예요. 그런 관점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있어서는 공식석상에 한 번도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대중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영적 기독교가 세계적인 기반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몰아 가지고 육적 기반으로써 한국에 탕감적인 기원을 연결시킬 수 있는 때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 나타나서 공식석상에서 그들을 대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차원, 역사적인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냐?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중을 인도할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아! 선생님, 기분 좋습니다…' 아닙니다. 이제부터입니다.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과거에 기도하던 것은 이 고개를 넘기 위한 기도였지만 이제 기도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내게 해당하고 나로서의 책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올라온 것은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역사적 분야의 책임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 가야 할 것은 시대적 분야의 책임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것입니다. 이편과 저편은 다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서 어떠한 내용이 벌어질 것이냐?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어렵다면 지극히 어려울 수 있는 때요. 쉽다면 지극히 쉬울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탕감을 해 놓은 사람에게는 쉬울 수 있는 때요. 탕감을 못 한 사람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때라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돼요?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엄벙덤벙 평지에서 놀음하던 거와 같은 때는 지났습니다. 결정적인 때입니다. 결정적인 때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느냐 안 지느냐 하는 것을 놓고 하나님 앞에 담판하던 때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을 담판짓는 때예요. 담판은 이미 끝났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끝났어요?
'뭐 어제와 오늘이 무슨 차이가 있어? 공기도 그렇고, 아침도 그렇고, 환경도 자기 전과 그대로고, 이부자리도 그렇고, 밥먹는 상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전부 다 마찬가지인데 변하긴 뭐가 변해?' 할 수 있지만 다르다는 거예요.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달라야 됩니다. 무책임한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책임시대가 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의 중심적인 표제가 되어 가지고, 주체자로서 하나의 중심형에 서 가지고 전체 환경은 움직이더라도 이 중심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생각에는 이번의 이 결혼행사가 대중 앞에 좋은…. 우리가 2차 7년노정을 4월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4월까지가 2차 7년노정의 운세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런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완전 탕감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럴 가망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때에 통일교인 여러분 한 사람 앞에 하나의 대학을 책임지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자기 자신이 고등학교 학생인데 고등학교 전체를 책임지라고 하는 때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어떠한 회사의 한 직원이 있으면 그 직원에게 그 회사를 책임지라고 하면, 중심자리를 책임 지울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그게 문제라구요. '그저 명목상으로 하지'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명목상이 아니라 사실 그래야 될 책임자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럴 수 있는 복안(腹案)이 있느냐 이겁니다.
이것이 없게 될 때는 여러분들은 또다시 전부 다 자기의 위치를 양도해 줘야 될 것입니다. 암만 싫더라도 불가피적으로 양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통일교회를 수십 년 믿었더라도 그 위치를 양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양도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아이고, 내가 먼저 나왔는데…. 선생님, 나를 알아주소' 하는 것은 전체를 망치자는 주의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이것을 싫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서서 반대하는 사탄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무자비하게 처리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선생님은 하늘 앞에 담판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사정(私情)을 가지고 천정(天情)을 세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정(人情)과 천정(天情)은 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정은 망하는 것이지만 천정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영원한 천정을 중심삼고 영원한 불변의 자세를 가지고, 불변의 중심자리에 서 가지고 불변의 방향과 불변의 목적을 중심삼은 여건을 통괄해서 이것을 제거하고 망하게 하는 판단을 해야 될 것이 아니냐.
그러면, '판단을 내려야 할 네 자신이 그런 자리에 섰느냐' 할 때, '예, 섰습니다','틀림없이 그럴 수 있느냐?','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상천국이 오기를 바라왔다는 것입니다. '그래, 지상천국을 그냥 주마. 자, 지상천국을 이루어라'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지금까지 한 것처럼 그저 그렇게 하면 되지' 이럴래요? 천만에. 달라져야 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이상 내적인 중심으로 변화해 가지고 중심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면 이제야말로 단식기도를 해서 회개해야 됩니다. 내적인 정비를 깨끗이 해야 됩니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겠거들랑, 당신이 그런 때가 된 것을 알거든 급속한 시일 내에 다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해서라도 하늘 앞에 절대 기여하는 나 자신을 갖추어야 됩니다. 당신이 한꺼번에 전부를 모아 가지고 큰 사람, 하나의 큰 덩치를 만든다 해도 '좋습니다. 어느 하나의 세포가 되더라도 감사하겠습니다' 이럴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제작자 마음대로 하는 데 찰흙이 되고 돌멩이가 되고 모래알이 돼 주겠느냐는 거예요.
이런 관념적인 차원의 문제가 사실로 부딪쳤습니다. 내가 보는 문제가 생사의 결정을 하는 거예요. 내가 듣는 문제가 판단하는 데에 주요하게 쓰일 것입니다. 제삼자로서 구경하는 때는 지나갔다는 거예요.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게 되면 고독을 느낄 것입니다. 직장을 가면 직장에서 '나만 남았나이다' 나라면 나라를 대표하고 설 때에는 '나만 남았나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져야 됩니다. 나 하나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생활을 통해 느끼는 그 신경 자체가 그 하나에 일치되어야 됩니다. '나만 남았나이다, 하나님이 그러하듯이 나도 그러하고, 당신이 6천 년동안 홀로 남은 자신을 지니고 나왔던 거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시대에 있어서 나만 남았나이다. 그 안팎의 모습에 있어서 나는 짧은 생애지만 같은 입장에 섰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동정하고 당신은 나를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습니다' 하는 것을 절감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나만 남았다는 그 자리는 횡적으로 연결되지 못했지만 비로소 종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하나의 기원이 결정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다구요. 그 책임을 나 혼자만이 짊어진다, 나만이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내 손이 가야 할, 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 그 책임을 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손을 벌리고…. 손은 하나인데 열 손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제 나만 남은 여기에서 해결하려니, 오는 사람이야 어떻든. 몰골이야 어떻든 손이 필요하니 그 손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대신하듯이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일을 향해서 가는 자리는 고독한 자리요, 환경을 대해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는 자리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돼요? 저 사람도 내게 필요하고 이 사람도 필요하고….
살림을 하려면 별의별 것이 다 필요한 것입니다. 걸레 짜박지까지 필요하거든요. 안 그래요? 신던 버선 짜박지까지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버려 두면 개도 안 물어 갈 것이지만, 구멍이 뚫어졌으면 그것으로라도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런 것을 느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발견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앞에 기도할 때는 심정으로…. '아버지' 할 때는 그것이 말뿐인 아버지가 아닙니다. 골수로부터 자극이 느껴지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러야 됩니다. 느끼는 감각을, 모든 환경을 전부 필요한 것으로 소화시키고 풀이면 풀로 이겨서 바를 수 있는, 그런 감정적인 굴곡을 다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많이 느껴야 됩니다. 여러분은 그래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은 누구냐?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해요. 하늘 앞에 세계적인 사명을 책임해야 되는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제일 고독한 사람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그 생활 내면에는 눈물이 어리어 있는 것입니다. 웃으면 웃음으로 시작하고 웃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고독한, 천정(天情)에 어린 눈물로부터 웃음의 고개를 지내 가지고 눈물로써 평지를 이어 나가는 그런 길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껴야 됩니다. 그러한 것이 본질적 신앙생활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제일 약한 자리에서 제일 큰 분을 의지하는 나, 환경을 대해서는 큰 자리에서 전체를 의지하게 해야 하는 나. 그러한 자리에서 개인의 문제를 책임지고, 가정의 문제를 책임지고, 혹은 국가의 문제를 책임지고, 세계의 문제를 책임지며 사방으로 들어오는 압력과 그 위압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잘 느껴야 됩니다.
그 위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내 자체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늘의 힘을 가중시켜 가지고 평균적인 압력권을 만들 뿐만이 아니라 제압할 수 있는 압력권을 어떻게 형성하느냐? 그야말로 신경을 쓰는 그런 생활을 연속시켜야 될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것을 느꼈다면, 그것이 역사 이래 그런 생활, 뜻을 섭리해 나오시는 아버지의 입장이 아니냐.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자는 판정을 많이 합니다. 결정을 많이 합니다. 그 자리는 지극히 외롭다면 외롭습니다. 지극히 외로운 자리입니다. 자기가 하는 하나의 판정에 회사면 회사, 나라면 나라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아도 돼요? 지극히 고독한 자리입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자리야말로 지극히 믿고 싶은 자리라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사실에 대한 소식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귀를 맑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차원의 길을 높여 가면서 가는 것입니다. 신앙길에 있어서 책임을 진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직까지도 저 가장자리에 묻혀 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밤이 되어도 그만이고 낮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가 와도 그만이고 이건 뭐 아무래도 그만이라는 거예요. 무책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같은 양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생각하기를 '나만 남았나이다' 했을 것입니다. 4천 년 동안 바라 나온 이 민족 앞에 '나 하나 남았나이다' 그러면서 내 뜻대로 마시라고 했습니다. 내 뜻이 무엇이냐? '전부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이 민족 전부가 내게 필요합니다. 아무리 죄를 범하고 아무리 못되었지만 이들도 내게 필요합니다' 죽는 자리에서도 '그 원수들은 내게 필요합니다' 한 것입니다. 이런 심정의 자리에 여러분들이 들어가면 그건 대번에 이해할 수 있다구요. 하나의 걸레 짜박지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가 커지고 세계적으로 환영받는다고 해서 좋아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난 사람 잘난 사람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다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의 인체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영양소, 천만의 영양소가 필요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체가 자라기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기 때문에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눈을 똑바로 떠야 됩니다. 눈을 똑바로 떠야 되겠다 이거예요.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한국에서 무명(無名)의 한 교회로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명색(名色)을 지닌 통일교회로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년 기간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직장에서부터,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위치에서부터 영향을 미쳐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종족, 민족, 국가 앞에 영향이 될 수 있는 그런 운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제 이번의 행사가 끝나게 되면 바쁘게 미국이라는 거대하고 황막한 벌판과 같은 나라에 가서 세계적인 그런 풍토를 조성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1972년도에 미국을 향하던 때보다도 더 심각합니다. 그때는 남의 살림살이를 방관해 가지고 시찰 가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내 살림살이를 준비해야 할 노정이 우리 앞에 오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하다는 거예요.
앞으로 이 미국 국회에서의 작전을 최고의 상원의원에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 그 다음에는 미국의 전반적인 문제, 청소년문제라든가 공산주의 문제라든가 여러 가지 경제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실질적인 문제에 손을 대야 할 단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아무리 미국 식구들이 있다 하더라도, 뭐 수는 많지 않지만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담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이런 때인 것을 알고 금후의 우리의 자세…. 그런 차원의 시대를 넘어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보는 눈, 듣는 귀, 말하는 입, 손발을 거쳐서 행동하는 전부를 새로운 차원의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 스스로가 자성하고 살펴 가지고 자각을 하고, 그 다음엔 스스로를 결정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숙하면서 내일의 새로운 아침 앞에 스스로의 모습을 갖추어 바쳐질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서, 깨끗한 제물로서 바쳐지고 인정받아 가지고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제물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이러한 차원의 이 대한민국, 이 삼천리반도, 이 민족을 거쳐야 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예」
그렇게 아시고, 여러분 각자가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 내일을 향해 가야 할 자신이라는 것을…. 누구를 믿지 말라는 거예요. 말함에 있어서 나 자신 앞에 말해야 되고, 듣기 전에 나 자신이 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되고, 보기 전에 나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행동하기 전에 나 자신의 행동이 제물이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간에 생활 속에 풍습화된 자신을 단시일 내에 만들어야 할 시급한 사명이 통일교회 식구 여러분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금후의 우리의 자세에 일대 변동을 가져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각자가 하늘 앞에, 하늘을 부여 안고 그렇게 노력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끝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한 많은 복귀의 도상에서 그렇게도 참아 오시던 아버지의 사정을 그 누구도 모르더라도 저는 알고 있나이다. 당신의 운명이 그러하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이 자식의 운명도 응당 그래야 될 것을 바라 나왔습니다. 당신이 망할 수 없는 것을 제가 알았기 때문에 저도 망할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해 나왔습니다.
개인적 핍박의 시대가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가정적 핍박의 시대, 국가 민족의 사선을 넘는 고개가 겹겹이 가로놓여 있더라도 극복 또 극복하고 자숙하면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복귀의 길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 많은 아버지, 역사적인 슬픔의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참고 참고 이 자리까지 나왔습니다.
이 자리까지 나왔지만, 이 민족을 대해 가지고 원망과 한을 품고 나오던 아버지의 마음 앞에 이 민족이 새로운 소망의 기점으로 나타나게 되어 사랑의 마음과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얼싸안고 춤을 추어야 할 입장이 될 때, 과연 그럴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미리부터 반성해 왔습니다.
아버지, 반만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이 불쌍한 민족을 당신이 사랑하기 시작한 때가 어느때이었나를 생각하게 되옵니다. 당신과 같은 불쌍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고생의 역사를 거치는 그때마다, 처참하고 피비린내나는 역사의 배후에 남아진 처량한 역사시대를 증거할 때마다 저희는 당신의 사정을 알게 되옵니다. 그것이 자기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어서의 역사적인 모든 인연을 대신하여서 그와 같은 자리에 섰던 한국의 운명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심정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이 나라에 찾아온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 인연을 지내 오시던 아버지께서는 시대적 인연 가운데서 소망의 기점을 찾지 못하고, 해방 후 30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기간이, 통일교회가 해방 후에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었던 이 기간이 바로 예수가 30세에 그 민족을 대해 나가던 시기와 맞먹는 시기인 것을 생각할 때, 예수의 3년노정과 같은 노정을 한민족을 대표한 통일교회가 민족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숙명적인 인연을 이어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또다시 가야 할 새로운 차원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현실의 우리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을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이 자식도 아니옵니다. 오로지 당신이 책임져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3년간의 운명을 연결시키어 민족적 운명, 세계적인 운명을 판결지어야 할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영육이 갈라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땅 위에 있는 이들이 스스로를 잊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승리를 해야 할 하나의 사명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바로 이때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3년의 고비를 넘고 세계적인 육적 기반을 세계도상에 연결시키어 다시 만나, 우리가 가는 길에는 국경이 없이, 우리를 환영하는 국가를 대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와야만 되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으면 우리가 만들어야만 된다는 책임을 놓고 볼 때, 무서운 때가 저희 앞에 오는 것이요, 공포의 때가 저희 앞에 오는 것이요, 최후의 결전의 때가 저희 앞에 오는 것을 알고 이 아침 저희들은 다시 한 번 자각해야 되겠고 다시 한 번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뜻은 틀림없는 뜻인 것을 느끼옵니다. 역사적인 탕감의 노정이 그러하다는 것을 안 그날부터 그러한 결과를 다짐지어 오는 사실이 이 시점에서도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약속하신 때와 약속하신 날이 저희 앞에 다가온 것을 느끼옵니다.
만일에 민족적인 하나의 통일적 기원을 이 삼천리반도에서 30년 전에만 맞았던들 이 나라는 세계의 부강한 나라가 됐을 것이고, 세계의 주체국으로 등장했을 것이고, 영육을 대표한 하나의 세계의 모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원수는 놀랍게도 우리 주위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이 만나던 거와 마찬가지로, 저희는 혈혈단신 외로운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 세계의 공산주의를 대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아들딸로서의 책임이 남아 있는 것을 다시 한 번 살피면서 저희는 강하고 담대해야 되겠습니다. 이 한 생명을 하늘 앞에 바치고 가는 것이 한이 없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될 때인 것을 각자가 느끼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제가 이 땅, 한국에 남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그런 허락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제 저는 또 남아진 세계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외로운 싸움을 해야 되겠습니다. 고독한 모습을 가누어 가면서, 눈물지어야 할 처량한 사정을 극복하면서, 눈물짓는 무리를 위로하면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될 아들이 가야 할 길을 아버지께서 지켜 주시옵고, 그러한 환경에서도 하늘을 저버리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때가 오면 올수록 자기의 사명의 때가 오는 것을 절감하면서 극복을 다짐하여 내적인 생명의 뿌리를 깊이 박고 나갈 수 있는 금후의 3년 기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누구도 뺄 수 없는 뿌리를 갖고, 뺄 수 없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가지를 뻗고 잎을 내려 가지고 꽃을 피워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는 여기 남아 있는 한국의 통일교회 무리들을 바라볼 때, 기대를 갖기에는 너무나 너무나 미비한 것을 느끼옵니다만, 아버지의 능력을 믿사옵고 아버지의 권위를 믿기에 그 자체의 초라한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옵니다. 하오니 손에 꽉 쥐어진 지팡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서 이루어진 거와 마찬가지로 지팡이가 비록 꼬부라졌더라도, 싹이 나 가지고 꼬부라진 곳에서 하나의 뿌리를 뻗을 수 있는 일이 있을지라도, 저희 자체들은 틀림없이 살아 있는 모습임을 드러내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럴 수 있는 날에는 한국 땅에 새로운 기적이 보잘것없는 이 무리를 통하여 나타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게끔 아버지께서 인도하여 주시옵고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금후의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된다는 그 내용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은 제물이옵니다. 아버지 앞에 합당하게 바쳐질 제물이옵니다. 제사장 앞에 합당한 제물로서 둘 다 아버지께서 품고 싶은 이런 제물의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이옵니다. 아버지, 스승을 위하는 마음과 제자를 위하는 마음이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역사적 인연이 그러했고, 시대적인 이 현실이 그러하고, 미래적인 귀결이 그러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해야만 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게끔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의 제단을 갖추어 가지고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승리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세계사적인 한 날을 앞에 놓고, 엄숙하고 심각한 자리를 다짐하는 금후의 생활을 아버지께서 인도하시옵고, 응시하시사 여기에 다시 역사적인 슬픔의 오점을 남기는 일이 각자를 통해서나, 교회를 통해서나, 이 자식을 통해서나 없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새해에 세번째 맞는 이 안식일에 저희들이 자세를 갖추어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질 수 있는 각자의 결의가 다짐지어지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