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보기
HOME 회원가입

위하여 사는 세계

일시: 1975.01.16 (목) 장소: 한국 서울 조선호텔

오늘 저녁 각계 각층의 저명한 선생님들께서 이와 같이 많이 참석하시어 본인에 대한 축하의 밤을 성황리에 갖게 해준 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목이 쉬었는데 용서하십시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더 나아가서는 미국에서도 상당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퍽 궁금히 여기시어 '도대체 그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하는 생각을 가지시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이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리 잘생기지도 못한 이 사나이를 보시고 잘 평가해 주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박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사람에게는 먹는 일과 보는 일과 듣는 일이 최대의 만족과 자극이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더더욱 맛있게 음식을 드시라는 뜻에서 우리를 위해서 음악으로써 지원해 주신 김강섭 KBS경음악단 단원 여러분에게 박수로써 감사의 뜻을 표하십시다. (박수) 또, 이 밤에 손님을 치르느라 수고하시는 조선호텔 당무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녁 이와 같이 모이신 여러분 앞에 대관절 내가 무슨 말을 할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잠깐 인사를 드리고 그만두면 좋겠지만 그냥 그대로 앉게 되면 여러분들이 문 아무개 만나면 얘기할 줄 알았더니 안 하더라고, 상당히 섭섭하게 생각하실 것 같기 때문에 이제부터 본인의 소견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랑과 이상과 행복은 홀로 이룰 수 없다

예로부터 인류는 영원하면서 참되고 변치 않는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를 그려 왔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이 시대는 불신의 세상이요 혼란한 시대입니다. 이런 가운데 인간이 소망하는 요건들을 찾아서 성사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단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봤지만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현재에 있어서 우리 인간으로써 이것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인간을 넘어서 영원하고 불변하고 참되신 어떤 절대자를 찾아 그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분이 참다운 사랑, 참다운 이상, 참다운 평화, 참다운 행복을 염원하신다면, 그분을 통해서만 이것이 가능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왕이 될 수 있는 분이요, 이상(理想)의 왕이 될 수 있는 분이요, 평화와 행복의 왕이 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이와 같이 인류가 추구하던 이상적 요건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제시하는 내용을 우리가 알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보더라도, 사랑이니 이상이니 행복이니 평화니 하는 것은 혼자 있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이 절대자로 계신다 하더라도 그 하나님이 바라는 사랑과 이상과 행복과 평화는 홀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도 반드시 상대가 필요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피조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 외에는 없다는 결론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성사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성사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행복과 하나님의 평화를 완결지을 수 있는 대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 사랑해서 무엇하며, 하나님 혼자서 이상을 찾으면 뭘하며, 하나님 혼자서 평화롭고 행복해서 뭘하느냐? 반드시 상대되는 인간을 통하지 않고는 이런 요건들을 성사시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대상적 존재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인간과 하나님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내가 여러분 앞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여기에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와 계시지만, 여러분들이 젊은 시절에 여러분의 대상을 선택하게 될 때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원했느냐,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원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누구나 나보다 잘난 사람을 원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떠한 미남 미녀가 결혼을 해서 첫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를 보게 될 때 그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자기 멋대로 생긴 그런 아기라 하더라도, 그 아기를 바라보면서 '이 아기는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보다 더 잘생겼다'고 하면 그 부모는 입이 귀 밑까지 벌어지면서 기뻐하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도대체 이 인간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됐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존재이지 원인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결과적인 존재가 그러하다면 원인적인 존재가 반드시 그러한 내용을 지녔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되었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한다면, 하나님 자신에게, '당신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하나님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라느냐, 못하기를 바라느냐? 하고 질문을 한다면, 하나님도 역시 대상적인 존재가 자기보다 더 훌륭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도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훌륭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인간 자체를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와 같은 원칙을 통해서 보게 될때 우리 인간 자신이 본래 하나님보다도 높아지기를 바라고, 하나님보다도 가치 있기를 바라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날 기성 신학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은 대등(對等)한 자리에 설수 없다고 말을 합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그 창조주 앞에 사랑의 실현, 평화의 실현, 이상의 실현, 행복의 실현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본연의 인간은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고 더 높을 수 있는 이런 대상의 자격을 지닌 존재요, 자녀의 가치를 지닌 자격자라는 것을 오늘날 우리 인류는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우리 자신이 이제부터 하나님 앞에 대상으로서는 것은 물론이지만 하나님의 대상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녔고 보다 높은 자녀의 가치를 지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 만일에 하나님이 영원하다면 우리 인간도 잠깐 있다가 없어질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속세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도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한때 있다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과 떨어져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유일하시고 절대적인 이상, 하나님의 대상인 우리 인간 자체도 영원하고 절대적이요 유일한 가치의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이론적인 결론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 선생님들 중에는 종교를 믿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런 이상적 요건(理想的 要件)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계시니 그 앞에 우리는 대상의 가치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러하시다면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영원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한다는 말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들이 이것만을 기억하신다면 여러 분의 생애는 보다 보람 있는 생애가 시작되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상적 존재의 기원은 위하여 사는 데 있다

그렇다면 지혜의 왕이시고 전체의 중심이신 하나님께서 참다운 이상이니 참다운 행복이니 참다운 평화니 하는 것의 기원을 주체와 대상, 이 양자 사이의 어디에 두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체가 계신 반면에 대상이 있는데, 주체를 위하는 길과 대상을 위하는 길, 이 두 길 가운을 하나님은 도대체 이상의 요건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운 이상, 참다운 사랑, 참다운 평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대상이 주체를 위하는 데 그 이상적 기원을 둘 것이냐 아니면 주체가 대상을 위하는 데 그 기원을 둘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상적 기원을 주체되는 자기 앞에 대상이 위하라고 하는 입장에 세운다면, 하나님이 그럼과 동시에 모든 사람도 자기가 어떠한 대상 앞에 주체의 입장에 있으면 자기를 위하라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분립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될 수 있고 평화의 기원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참다운 인간은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이상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평화도, 참다운 행복도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창조의 근본 원칙이었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참다운 부모는 어떤 사람이냐 할 때에 자식을 위해서 태어났고, 자식을 위해서 살고, 자식을 위해서 죽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참된 부모의 사랑이 성립되는 것이요 참된 자식 앞에 이상적인 부모로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식 앞에 평화의 중심이 되는 것이요.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참된 효도는 어디에 기준을 세울 것이냐? 그 반대의 입장인 것입니다. 부모를 위해서 태어났고 부모를 위해서 살고, 부모를 위해서 목숨을 다하는 사람이 참된 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부모 앞에 이상적인 자녀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녀요, 행복과 평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준에서 보게 될 때,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의 공식을 제시 한다면, 위해서 존재하는 데서만이 이와 같은 이상적인 요건, 즉 참된 사랑, 참된 행복, 참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짐작하리라 보고 있습니다.

우주창조의 원칙과 인간 행복의 기원

그러면 참된 남편은 어떤 사람이냐? 태어나기를 아내를 위해서 태어났고, 살기를 아내를 위해서 살고, 죽기를 아내를 위해서 죽는다는 입장에 선 남편이 있다면 그 아내는 남편을 과연 참된 사랑의 주인이요, 참된 이상의 남편이요, 참된 평화와 행복의 주체로서의 남편임에 틀림없다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식을 대한민국에 적용해서 볼 때, 대한민국의 참된 애국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렇게 반문을 한다면 나라를 위해서 태어났고, 나라를 위해서 살고, 나라를 위해서 어려운 환경도 개의치 않고, 위로는 군왕을 위하여, 아래로는 백성을 위하여 묵묵히 생명을 바친 이순신 장군 같은 분을 꼽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범위를 세계로 넓혀서, 역사노정(歷史路程)에 있어서 성인 중에 누가 제일 위대한 성인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 공식을 적용해서 그 사람을 곧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보다 인류를 위해 산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기독교를 신봉하지 않는 분이 많이 참석 하셨겠지만 내가 알건대는, 인류를 위해 왔고 인류를 위해서 죽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응당히 미워해야 할 원수, 자기 생명을 빼앗는 원수를 위하여서까지 기도해 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역사상에 없는 성인 중의 성인 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 공식을 통해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주창조의 원칙이요, 인간 행복의 기원이 '위하여 존재'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서 남자라는 사람이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 본다면, 오늘 여기에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모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남자는 이러이러한 자리에 있어 가지고 대한민국의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이런 나 자신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고 지금까지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본래 남자가 태어난 본의가 어디 있느냐 하면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이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남자는 위 어깨가 넓고 여자는 아래가 넓게 되어 있습니다. 뉴욕 같은 데 가 보면 지하철이 만원일 때 비좁은 의자에 앉더라도 위가 넓고 아래가 넓은 남자 여자가 앉으면 딱 들어맞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것을 보게 되더라도 서로가 위할 수 있는 상대적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또, 그 반대로 여자도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자도 태어나기를 남자 때문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스스로가 확신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문제가 발발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것을 천지창조의 대주재(大主宰)되시는 하나님이 창조의 원칙으로 세웠기 때문에, 그 원칙을 따라서 가지 않고는 선하고 참되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세계, 혹은 사랑과 이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고 본인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본연의 세계의 법도에 맞춘 것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본인은 영적 체험, 즉 영계에 대한 내용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본연의 세계, 오늘날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니 극락이니 하는 곳의 구조가 무엇을 기준으로하고 돼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그 답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이요, 위해서 나고,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어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우리 본향(本鄕)의 이상적 구조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그 세계로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역사과정에 수많은 종교를 세워서 훈련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왜 종교인은 온유겸손해야 되며 희생해야 되느냐 하면, 본향의 법도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본향에 돌아가게 될 때를 대비해서 그 본향에 알맞게끔 지상생활 과정에서 훈련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보다 차원 높은 희생을 강조하고 봉사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 일치시키기 위한 이유 때문에 그렇게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게 될 때, 이러한 내용을 제시하는 자체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하나님이 섭리해 나오신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이 방대한 경전으로 돼 있다 하더라도 단 두마디, '위해서 존재한다'는 이 원칙에 다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역설적인 말을 한 것도 결국은 본연의 세계의 '위해서 존재한다'는 원칙에 일치시키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위하여 존재하는 자리는 곧 이상적 통일이 이루어지는 자리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그 몇가지 요건을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 본심을 헤아려 볼 때, 나를 위하여 진정으로 생명을 다한 어떤 분 앞에 신세를 진 사실이 있다면, 여러분의 본심(本心)은 그걸 갚는 데 있어서 백 퍼센트의 신세를 졌으면 한 50퍼센트는 포켓에 집어넣고 한 50퍼센트만 갚으라고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백 퍼센트 이상을 갚으라고 하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우리 본심은 확실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백 퍼센트 이상을 갚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A라는 사람 앞에 B라는 사람이 백 퍼센트의 신세를 끼쳤다면 B는 그걸 갚는데 백 퍼센트 이상으로 돌려준다는 거예요. 그러면 A는 백 퍼센트 이상으로 돌려준 B에 대해서 보다 퍼센테이지(percentage)를 높여서 갚아 주고 싶어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주고 받는 데 있어서, 그 주고 받는 도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적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많아질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영원이라는 개념이 설정된다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개념, 이것은 자기를 위하는 데에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운동하는 것을 보더라도 밀어 주고 끌어 주는 이런 상대적 방향이 크면 클수록 빨리 도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위하라는 법도를 세운 것은 영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원칙을 아시기 때문에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원의 개념이 성립됨과 동시에 그렇게 되면 영원히 발전하며 영원히 번창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전진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발전적인 자극을 느낄 수 있어야만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 왜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느냐? 예를 들어 어느 한 가정에 열 식구가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서 제일 꼬마 동생이 그 열 식구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그 가정 전체를 위해서 살게 된다면 나이 어린 동생이지만 부모도 그를 내세우게 되고 형제도 그를 내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날이 가면 갈수록 가정을 위해서 존재하는 그 동생은 자동적으로 그 집안의 중심존재로 등장 한다는 것입니다. 자동적으로 중심존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신 이후에 하나님 자신이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위해서 존재하는 분으로서 만우주의 중심존재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을 닮은 그런 사람은 아무리 나이 어린 동생 이라도, 아무리 작은 아들일지라도 그는 틀림없이 그의 가계(家系)를 중심삼고 중심적인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미처몰랐습니다.

위해서 사는 거기에서 나 스스로가 후퇴되는 것이 아니라 위하면 위할 수록 그 사람은 중심존재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같이. 하나님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은 하나님이 중심존재로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런 자리에서만이 이상적 통일, 완전 통일을 성사(成事)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남한테 주관받는 것을 죽어도 못 참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우기나 고명하신 식자층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것을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위해서 존재하는 그분 앞에 주관받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계(靈界)의 조직을 보게 되면 천지의 대주재(大主宰) 되시는 그 하나님은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존재 가운데 위해서 존재하는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그분 앞에 지배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사실을 몰라서 그렇지…. 천년 만년 지배받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이러한 이상적 통일권이 이런 자리에서 성립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해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원인은, 오늘날 여러분이 '사랑은 내 사랑이다. 이상은 내이상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이상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사랑과 이상을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느냐 하면, 오로지 대상, 대상이 없어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고귀한 사랑과 이상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대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히 그 고귀한 사랑과 이상을 받아들이려면 가장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것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위해서 존재하라는 원칙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기억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흔히 세상에서는 '아! 인생이 무엇이냐, 인생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에게는 인생관의 확립, 국가관의 확립, 세계관의 확립, 더 나아가서는 우주관의 확립, 신관(神觀)의 확립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이냐 이겁니다. 계통적 단계의 질서를 어디에다 둘것이며 그 차원적 계열(次元的系列)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위하여 존재한다는 새로운 가치관이 확립돼야

위해서 존재한다는 이 원칙에 입각해서 우리 일생을 두고 볼 때. 가장 가치 있는 인생관은 내가 전인류를 위해 있고, 전세계를 위해 있고, 국가를 위해 있고, 사회를 위해 있고, 가정을 위해 있고, 아내를 위해 있고, 자녀를 위해 있다는 인생관인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행복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이상의 인생관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가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적 국가는 어떻게 돼야 되느냐? 자기 나라를 위해서 있으라고 하는 나라는 나쁜 나라로 지탄 받아 온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전세계 국가 중에서 세계를 위해서 정책을 펴고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오늘날의 공산주의는 결렬되는 상황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1957년을 하나의 정점으로 해 가지고 공산주의가 갈라진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소련을 위주로 한 공산주의가 슬라브(slav )단일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 제패를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민족만을 위하는 공산주의로 등장했기 때문에 결렬이 벌어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도 민주주의의 주도국가 자리에서 몰락해 가고 있는 실상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왜? 세계를 위하는 민주국가가 돼야 할텐데도 불구하고, 세계를 버리고 자국만을 위하려고 하는 미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후퇴의 일로에 선 미국은 자체적으로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한국에서도 하나의 국가관 확립을 제창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만을 위주한 국가관을 확립하면 그것은 역사의 한 시대와 더불어 흘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이 그랬고 미국 자체가 그런 것을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렇게 나라는 작고 소수의 민족이지만 세계를 위하는 민족사상을 가졌다면 만일 나라의 형태가 없어졌다 하더라도 21세기나 25세기 혹은 30세 기에 가서는 한국은 기필코 세계를 지도할 것입니다. 이러한 공식적 귀결로써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국가는 세계를 위하는 국가입니다. 또 참된 세계는 세계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세계 자체는 결과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동기의 기원이 되는 절대적 신이 있다면 그 신(神)의 관점(觀點)과 일치될 수 있는 사상적 체계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내용의 사상을 가지고서는 세계를 지도하고 해결해 나갈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위하여 존재한다는 원칙에는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가정의 천국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백퍼센트 존재하고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살고 그를 위해서 죽는다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가정이야말로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격언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가 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주권자는 자기 존재의 가치가 자기 주권을 행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는 데 있으며 그 백성은 백성 자체를 위하기 보다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되는 날에는 그 나라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식적인 원칙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서 서로 위해 주는 세계를 이룬다면, 그 세계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유토피아적 사랑의 세계일 것이며, 이상의 세계일 것이며, 평화의 세계일 것이며, 행복의 세계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위해 존재한다는 이 원칙을 들고 나가면 어디에나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본인이 미국에 가서 짧은 기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 내가 한국 사람이로되 미국 사람 이상으로 미국을 사랑한 데에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 민족을 위해서 내가 피땀을 흘려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숭고한 사상을 지닐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드느냐 해 가지고 노력한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나는 위해서 먹고, 위해서 활동하고,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개인과 부딪치면 그 개인과 하나가 되는 것이요, 단체와 부딪치면 단체와 화합하게 되는 것을 보아 왔던 것입니다.

1974년 유엔총회에서 한국안이 가결되기까지의 사연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금번 유엔총회를 중심삼고 한국문제가 상당히 곤경에 빠진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조직을 동원해서 정보를 얻어낸 것입니다. 유엔총회 의장으로부터 그 보좌관, 그리고 거기에 참석한 각국의 대사와 옵서버들이 평가하는 것을 총괄적으로 놓고 볼 때 한국문제는 이미 희망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볼 때 종교 지도자로서, 혹은 통일교회를 창설하고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는 책임자로서 통일교회 자체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있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통일교회는 국가를 위해서 있어야 되겠다, 국가뿐만이 아니라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국가가 되게 인도해야 되겠다고 본 것입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고 선전이 필요 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나는 30여개 국의 선교사를 모아서 34명의 각국의 대표자를 선출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일본 여자 34명을 그들에게 붙여 가지고 68명의 멤버를 유엔총회에 투입했습니다. 일대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설득 작업을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다른 것이 없습니다.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있는 정성을 다해서 그들을 위해라! 만나면 먹는 것에서부터 말하는 것으로부터 그들을 위해서 노력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40일 고개를 넘으니 그들은 우리의 활동에 탄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종교를 지도하는 한 책임자로서 한국에 대한 세계의 여론이 아무리 불리하다 하더라도 50개 국의 대사들로부터 일본인 처(妻) 자유 왕래를 추진하는 이 문제에 사인만 받는 날에는 틀림없이 한국문제는 승리한다고 보았습니다. (박수)

그런 말을 할 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유엔총회 하게 되면 세계의 지성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가서 감히 그들을 대해 입을 벌릴 수 있는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위하는 그런 입장을 중심삼고…. 그곳을 아무 나라의 아무개의 사무실이 아니라 내 집 사무실로 알고, 가면 소제를 해주고 밤이 늦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한 시, 두 시를 개의치 않고 차를 동원하는 이런 활동을 배후에서 전개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겠지만 태리타운이라는 곳에 우리의 영빈관이 있습니다. 벨베디아라는 곳을 중심삼고 밤이면 70개 국에 해당하는 대사를 초대했습니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 보니 결국 그들은 완전히 우리편에 말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알아낸 것이지만 북괴는 이미 제 3세계권, 저개발 국가인 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나라 나라에 대해서 유엔총회에서 사인을 할 것을 다 결정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밀리에 말한 사실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북괴는 이미 5만 불에서 15만 불에 해당하는 돈을 전부다 지불해서 결정해 놓고 왔기 때문에…. 김일성 자신이 유엔에 파견하는 그 대표단을 대해서 승리의 축배를 올리고 파송했다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고 눈물을 흘리고 밤을 새워 가면서 간곡한 사연을 통고하고 난 연후의 결과는 한국문제에 있어서 남한의 제안이 61대 42, 북한의 제안이 48대 48로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내가 여러분 앞에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이 원칙의 기준에 입각해서 일어나는 것을 나는 생애를 통해서 많이 체험해 왔습니다.

여러분이 알기를…. 도대체 통일교회가 뭐냐 이거예요. 여러분, 많은 신학자들이 역사시대를 거치면서 로마 가톨릭과 희랍정교가 갈라진 것을 규합하려고 노력했지만 꿈에도 규합할 수 없었습니다. 또 많은 신교가나와 가지고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지만 4백여 교파로 갈라졌습니다. 이러한 실정에 있는데 도대체 통일교회가 어떻게 종교를 하나로 만들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가능하냐 이거예요.

통일교회가 세계적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이런 것을 놓고 볼 때 도대체 문 아무개라는 사람이 머리가 좀 모자라지 않느냐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문제는 간단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보다도 기성교회 교인을 더 사랑할 수 있고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성교회 목사를 대해 가지고 그들의 교인들보다 그 목사를 더 사랑할 수 있느냐? 더 위해서 존재할 수 있느냐? 이것이 가능하다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통일교회는 20년의 역사를 지내왔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일 교회에 대한 별의별 소문과 논란의 말을 듣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는 땅에서 밟혔지만 거기에서 세계적 발전을 해왔습니다. 어떻게 해서 발전했느냐? 민족이 배반하게 될 때는 세계를 향해 갈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민족이 가야 할 길은 세계를 위해 가는 길이 정도(正道)이기 때문에, 이 길이 틀림없는 천리의 원칙이요, 만민이 가야할 공통적인 공식이라면, 만약 민족이 알아주지 않으면 세계를 위해서 세계가 알 수 있는 길을 가는 날에는, 세계가 알게 될 때는 이 민족은 자동적으로 알 수밖에 없다는 이런 원칙에 의해서 피어린 핍박 도상에서 우리는 외국 선교를 전개해 나왔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일본을 개척하게 될 때는 지금부터 17년 전인 자유당 때였습니다. 한참 이화여대 사건으로 인하여 문 아무개라는 사람의 처지는 땅에 떨어져서 형편없던 때였지만, 나는 앞으로 일본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 것을 알았고 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갈 것을 내 나름대로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국가의 한 국민으로서는 당시에는 위법이 될는지 모르지만, 10년 내지 5년 후에는 반드시 대한민국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을 알았기에, 내가 범죄인의 낙인이 찍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로 1956년, 여러분이 알다시피 서대문 형무소에서 석방되어 충남 갑사 (甲寺)에 휴양가 있을 때 여기에 와 있는 최봉춘(崔奉春)이라는 젊은 청년을 불러서 '너는 일본을 위해서 밀항하는 것이다. 사나이가 정한 걸음은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된다'고 훈계를 했던 것입니다.

첫번에는 일본에 입국하자마자 체포됐습니다. 1차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또 보냈습니다. 2차도 또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내가 감옥에서 나와 보니 그 당시의 통일교회 형편은, 교회는 다 없어졌고 한칸의 집마저 전부 다 없어진 입장이었지만, 나는 나라를 위하고, 아시아를 위하여 빚을 얻어 가지고 3차의 출발을 시켰습니다. 그러던 일이 어제와 같습니다. 1958년의 일입니다. 일본의 통일교회는 그러한 형편에서 출발했습니다. 3차로 가서도 체포되어 오무라 수용소에 구금되었습니다.

자 그렇게 되었으니 그 장본인인 미스터 최도 큰일났거든요. 선생님과 철석같이 약속은 했는데, 이건 기반을 닦을 수 있는 신세가 아니라 영어 (囹圄)의 몸이 되어 버렸으니 누구한테 하소연하느냐 이거예요.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간장을 퍼먹고 열이 나게 해서 꾀병을 부린 것입니다. 그래서 입원수속을 하고 3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거기에서 탈출해 가지고 동경으로 가서 시작한 것이 지금의 일본 통일교회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일본의 자민당이 우리에게 자문을 요청하는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국가의 중요한 일이 있으면 구보끼(久保木)를 찾아 오는데, 그럴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원칙은 천리(天理)가 세운 원칙이요. 이 원칙대로 밀고 나가면 망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원칙을 알았기 때문에 일본 통일교회의 젊은 청년남녀 신도들은 전국에 퍼져서 '국가를 위한 통일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아시아를 위한 통일교회가 돼야 되겠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가 돼야 되겠다'고 해 가지고 활동을 하다 보니 오늘에 있어서는 일본 국내에서도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내가 공식석상에서 여러분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20년 통일교회 역사에 있어서 처음입니다. 내가 북미대륙을 누비면서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고아와 같은 불쌍한 한 사나이, 내 나라가 믿지 못하는 후배들을 뒤에 남겨 놓고 이국 국민 앞에 와서 믿음을 바라야 하는 처량한 자리에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세워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나를 협조하시는 하나님은 아실 것'이라고 오로지 하나님을 붙들고 힘써 오다 보니 결과는 명실공히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초래하게 된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위하여 사는 데서만이 천국실현이 가능해

오늘 저녁 여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도, 어떤 사람이 악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무엇으로 측정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종교인이라도 그가 천국갈 것이냐, 지옥갈 것이냐 하는 것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느냐? 나를 위해서 살아온 생애가 많으면 그는 지옥행입니다. 남을 위해서 산 생애가 자기를 위해 산 생애보다 1퍼센트라도 많으면 그는 지옥을 넘어서 천국을 향할 수 있는 길에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위해서 비율이 높을 때는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고명하신 여러 선생님들! 지금까지 우리는 대한민국의 한 국민의 일원으로서 이 나라를 위해서 이바지해 왔습니다. 각자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에서 이바지해 왔지만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더냐? 전 국민이 각 분야에서 이러한 사상으로 혁명하는 날에는 아무리 대한민국이 비참하더 라도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그러하고, 사회에서 그러하고, 위정자로부터, 혹은 단체의 지도자로부터, 이 민족의 정신풍조가 이런 사상으로 되는 날에는 이 민족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 민족은 아시아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상적 체제를 하나의 공식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살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 살며, 그 부부는 자식을 위해서 사는 가정, 가정은 종족을 위해서 살고, 그 종족은 민족을 위해서 살고, 그 족은 나라를 위해서 살고, 그 나라는 세계를 위해서 살 수 있는 그러한 나라가 되는 날에는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런 사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 만민을 자녀로 삼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은 세계의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주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국가, 단일민족권의 탈을 벗지 못한 그런 종교는 하나님의 전체의 뜻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계를 구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가능한 단계의 차원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원칙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가정은 씨족은 위해 있고, 씨족은 민족을 위해 있고, 민족은 국가를 위해 있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 있고, 세계는 하나님을 위해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선다면 하나님은 세계를 위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요, 나라를 위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요, 민족을 위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요, 종족을 위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요, 가정을 위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서 말한다면, 내 것은 아내의 것이요, 그 부부의 것은 가정의 것이요, 가정의 것은 씨족의 것이요, 씨족의 것은 민족의 것이요, 민족의 것은 국가의 것이요, 국가의 것은 세계의 것이라는 관념을 가진 그 세계는 결국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면 그것은 누구의 것이냐?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런 자리에 나아가야만 여러분의 욕망을 최고로 달성한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사람은 누구나 세계 제일이 되고 싶은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에 만유의 중심인 하나님의 것이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는 그런 영광의 자리에 인간이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결론을 짓는다면, 위해서 사는 데서만이 가정천국의 실현이 가능한 것이요, 국가천국의 실현이 가능한 것이요, 세계천국의 실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인류와 더불어 행복하고 이상적인 동산이라고 하며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는 세계로 연결될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종교가 목적하는 천국이요, 그 천국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이 바로 지상천국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와 같은 만찬회를 통해서 '위해서 존재한다'는 이 원칙을 가지고 이제 여러분들이 돌아가셔서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부터, 혹은 여기 교수님들이 많이 오셨지만 학창에서부터 그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고, 또 그렇게 사시는 자신을 발견하는 날에는, 여러분은 보다 흐뭇한 내일의 소망을 가지게 될 것이고, 내일의 개척자로서의 중심적인 책임을 당당히 한다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부디 그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의 사회와 이 나라에 가일층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을, 오늘 저녁 인사 겸 여러분 앞에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본인의 말을 끝내려고 합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