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렇게 다 오신 것이 누구 때문에 오셨어요? 「선생님 때문에요」 (웃음) 여기 남자분들도 그래요? 「예」 뭐 '예'예요? 오는 데는 누구 때문에 왔든지간에 오신 데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셨으니까 손님이거든요. 여기 본부에 왔으면 본부가 주인이고 여러분들이 손님이란 말이예요.
오는 사람이나 혹은 나그네 노릇을 하게 되면 그집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거라구요. 그저 옷가지 하나 걸린 것 봐도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이상스러운 무엇이 없나, 환경이 조금 달라지면 그 환경을 전부 다 내 환경과 같이 살피는 것이 대개의 손님들의 습관이라구요. 그러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이 시간만은 그래서는 안 되겠어요. 오신 데 대해서는, 수고스럽게 오신 데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해요. 그리고 이렇게 많이 모였으니 점심을 못 대접해서 주인측에서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예」 (웃으심) 그 대신 또 이제 저녁도….
지금 네 시가 됐는 데 이제 선생님이 얘기하면 30분 얘기할까요, 한시간 얘기할까요, 다섯 시간 얘기할까요? 「다섯 시간」 욕심들은 많지. 밥은 안 먹고? 「예」 오늘 저녁에는 공중에 날아올라가도 괜찮아요?
선생님이 지금 지방 순회하면서 서서 얘기한 기록이 얼마냐 하면 열한 시간 40분, 열한 시간 40분 동안 얘기한 기록이 있어요. 만일에 오늘…. 선생님이 또 어디 가야 돼요. 여러분들 보내야 되겠어요. 그러면 거기에 보태서 또 요구하는 것이 있거든. 아주 사람이 간사한 거야. 언제나 그러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 서 있으면 그런 맘 안 갖지만 그래서는 안 될 환경에서는 말이예요, 너무한 거예요. 확실히 다정한, 여기 일찍 나오는데 할머니가 '아이구─'해요. 그런 실례가 어디 있어요, 그런 실례가? 나이 많은 사람은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데 색시들이 그랬다면 얼마나 뭐하겠나 말이예요. 아주 뭐 대호령을 했을 겁니다.
그게 다 문제라구요. 선생님이 어디에 간다 하니까 갑자기 무슨 뭐 가까운 무슨 뭐…. 이러지 말라는 거예요. 이런 때가 오더라도 대범해 가지고, 선생님이 갈 때 손도 흔들지 말란 말이예요. 그러라구요. 「예」
내일 또 뭐하러 다 나가겠노. 내가 여기서부터는 이제 조용히 앉아서, 서면 다 안 보이니까 앉아서…. 내가 비행기 타고 갈 테니까 여러분들은 '땅 땅 땅' 세 번 하면 '출발' 그거예요. 여기에서 하늘 보면 좋겠는데 뭐 그렇게 부사스럽게…. 나 이거 큰일났어요. 내일 만일에 비행장에 나가는데 전체 이 떼거리가 모여들어 가지고…. 그리고 전부 다 보면 젊은 놈들이예요, 대부분. 옆으로 봐도 젊은 사람이요, 앞으로 봐도 젊은 사람이요, 사방이 전부 다 젊은 사람이라는 거예요.
다들 전부 다 젊은 사람이니 한 천 명 이상 이 김포 비행장에 모여들면 말이예요, 이건 뭐 또 무슨 데모하는 녀석들이 몰려왔나 해 가지고 또 이제 백차가 사이렌 불고 달려오면 어떻게 하겠나요? 그거 그럴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럴 수 있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러한 우려성도 있고, 그러한 모든 환경도 염려되기 때문에, 내일 갈 때는 아주 떡 가게 되면 웅성웅성하면 안 되겠어요. 입을 딱 다물고 행렬을 지어 가지고 솔솔, 아주 뭐 양떼를 몰아 우리로 들여보내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라고 손짓만 하면 하고, 그대로 해야 되겠어요. 그래야 내가 큰 망신 안 당하겠어요.
그 사람 떼거리를 보면 많이 모인 것 같은데 그 사람 집들을 보면 보통집이 아니다 이거예요. 보통집이 아니면 그건 제일 나쁠 수도 있고 제일 좋을 수도 있어요. 보통집이 아니면 보통 기준 위가 될 거예요, 아래가 될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위요」 말은 쉬워요, 말은 쉬워요. (웃음) 그렇지만 실제에 가 가지고는 이게 어렵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우기나 이번에 선생님이 특별히 여기에 올라오라고 한 사람들은 이 3년노정에 있어서, 혹은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선봉에 서 가지고 남 모르는 피눈물을 많이 흘리고, 그네들의 심정을 하늘이 기억할 수 있는 생활을 한 사람들을 올라오라고 했는데, 가만히 내가 보니까 얼굴들은 번번하지만 내막적으로는 다 그렇지 못한것 같아요. 자기 스스로 '나는 그렇습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들어 봐요. 하나도 없군. 그러니만큼 안심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저녁 여기서부터 훈련이예요. 훈련이예요. 내일 만약에 비행장에 나가 가지고 웃사람들 앞에 본이 못 될 그런 요소가 충분하니만큼 여기서부터 훈련해야 되겠다구요. 훈련하느니 만큼 일어서라 하면 '예!' 하고, 앉아라 하면 '예!' 하고, 쪼그려 앉아라 하면 '예!' 이래야 되겠다구요. 그렇게 알고 어렵더라도 좀 참아 주기를 부탁해요. 아시겠어요? 「예」
이제 저기 아주머니들, 저 아가씨들이 서 있으니 웅성대 가지고 넘어져도 찍소리 하면 안 된단 말이예요. 넘어져도 아무 탈이 없으니 그냥 넘어지고, 일어서더라도 소리없이 일어서고 그래야 되겠단 말이예요. 필경 넘어질 거라구요. 그러니까 사람이 많으니만큼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겠지만 좀 참고 지내 보자구요.
그럼 선생님이 이제 말씀 좀 시작할까요? 「예」 한 30분? 「예」 (웃음) 무슨 말씀을 해야 될까요? 응? 기쁜 얘기 할까요, 슬픈 얘기 할까요? 어떤 종류? 기쁜 얘기 할까요, 슬픈 얘기 할까요? 「둘 다 좋습니다」 둘중에 하나 해야지 한꺼번에 그거 둘 다 할 수 있나. 하나씩 해야지요. 슬픈 얘기 해요, 기쁜 얘기 해요? 무슨 얘기? 뭐 할까요? 「기쁠수록 감격이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는 얘기 좀 하려고 그래요. 옛날로 좀 돌아가서…. 오늘은 말이예요, 선생님이 기분나는 대로 얘기할래요. 아시겠어요? 「예」 기분대로. 기분이 좀 좋지 않으면 욕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칭찬도 하고 말이예요, 기분나는 대로 얘기할 테니 그렇게 알라구요.
선생님이 뭐 어디에 간다는 소문이 언제부터 났어요? 횟수로는 5년째예요. 1961년. 원래는 1960년 12월 4일, 12월 4일이지요? 「1959년입니다」 1959년인가? 「예」 그때는 자유당의 이박사 치하에서 여권 만들어 가지고, 상당히 어려운 시련을 받으며 여권을 내 가지고, 그때 전부 다 출국허가까지, 날짜까지 딱 돼 가지고 일주일 남겨 놓고 계산해 나가던 것이 오늘이 되었어요.
우리 합동결혼식도 그래요. 합동결혼식이 10월 5일 그냥 했더라면 선생님이 미국에 가는 거예요. 그런데 전부 다 여의치 않아서 한 2주일 연장하는 바람에 모든 게 또 틀어져 나갔어요. 이래 가지고 뭐 혁명을 거쳐 가지고 이렇게 하다 보니 5년 이상이 지나갔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외국 식구들 앞에는 참 면목이 없어요, 본부 식구들도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 생각해 봐요. 그들이 모든 정성을 들여서, 자기 생명을 바쳐서 이 길을 따라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들이 믿는 마음, 그들이 정성들이는 도수가 크면 클수록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단 말이예요.
그렇게 간다 간다 하기를 벌써 5년, 5년 동안 기다렸으니 그 사람들이 얼마나 내적으로 지쳤겠느냐 말이예요. 응? 그걸 생각하면, 선생님이고 뭣이고 뭐 불신할 정도예요, 불신. 앞으로 하네다 비행장에 척 내리게 되면 일본 식구들이 '아, 그렇게 온다 온다 하더니 이제 지쳐 나가자빠지니까 오니 우리는 모르겠소' 하면 내가 뭐라고 할 거예요? 내가 뭐라고 할 거예요? 또 미국 식구들도 역시 마찬가지라구요. 오신다 오신다 하던 오신다는 그날이 5년여 세월이 지나갔으니 뭐 의리 없고, 뭐 별의별 말을 다 한다 해도 내가 할말이 없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동안 선생님이 기분이 좋아서 못 간 게 아니예요. 그동안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모진 풍파 가운데서 투쟁해 가지고 지금까지 나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이만한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내적인 투쟁의 과정을 거쳤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더우기나 통일교회에 처음 들어온 식구들로서는 우리 통일교회의 내막적인 역사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건 선생님하고 협회장밖에 몰라요. 모른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참 우리는 환난권 시대를 거쳐오면서, 모진 핍박 가운데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나와서 오늘날 세계적인 발판을 다 닦아 이런 기반을 만들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물론 여러분 가운데 지방에 나가 가지고 남 모르는 가운데서 승리를 거두고 온 사람도 있을 거예요. 선생님 명령이라 해 가지고 지방에 나가서 책임져 가지고 활동한 실적, 혹은 계몽을 하거나 전도를 한 이와 같은 실적들이 오늘날 우리 교회를 이루는 데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됐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번 선생님이 여기 한국을 떠나 가지고 어느 기간까지 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때 제일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하면 말이지요…. 뭐 여기 협회장 생각 안 할 거라구요. 뭐 지구장들도 생각안 할 거라구요. 이 부흥단도 생각 안 할 거예요, 부흥단. 내가 사실은 오늘 부흥단을 여기에 있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데, 이럭저럭하다가 시간이 없어 가지고 지금 나왔으니 모두 관리를 못 했단 말이예요. 그 부흥단도 선생님이 생각 안 할 거란 말이예요.
제일 생각나는 것은 저 지방에 있어 가지고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마을에 들어가 가지고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으면서 이 뜻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 혹은 여자들은 치마를 가누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 정성어린 그러한 식구들을 위해서 상당히 선생님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내가 본국을 떠나면서 그런 식구들을 한번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 이번에 지역장들 절대 오지 못하게 했어요. 본부에 쭉 오게 되면, 무슨 행사가 있다면 전부 다 뭐 지구장이니 지역장이니 이것들이 왔단 말이예요. 그렇지요? 그리고 뭐 축복받은 가정들, 이것들이 왔단 말이예요. 그렇지요? 지금까지 그랬지요? 「예」
자, 만일에 우리 교회에 있어서 와야 할 날이라면 이때가 와야 할 날일 거예요. 그렇지만 지구장이니 지역장이니 뭐 축복가정이니 전부 다 제껴 놓고 여러분들, 세상에 대해서 수고하신 분네들을 한번 이제 모셔가지고…. 이래서 여기에 초청한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고맙게 생각해요? 「예」
그러니만큼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교회 행사 하는 데 있어서 말이예요, 누차의 행사, 매년 뭐 자녀의 날이니 부모의 날이니 만물의 날이니 이런 날들을 여러분들은 마음으로 그리면서 본부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다 알아요. 그렇지만 집회소 관계로, 또 여러 가지 자기 집안 사정으로 말미암아 한 곳에 모여 가지고 같이 즐길 수 있고, 하늘을 축하할 수 있는 그런 날들을 갖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요.
그럴 때는 지구장이니 지역장이니 뭐 축복가정이니 떡 이래 가지고 전부 다 모여 왔지만…. 원래는 이번 이날은 그런 사람들을 다 제껴 놓고 지방에서 수고한 여러분들을 이렇게 찾아오라고 한 데 대해서는, 그러나 일면 미안하게 상각해요. 왜 그러냐?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 있으니만큼 여기에 오는 데도 여비가 없으니 꿔 가지고 온 사람들도 많을 거예요.
또 여기에 오는 데 입을 것이 없어서 못 온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단 말이예요. 그래, 부득이 오지 못한 그러한, 여기에 참여 못 한 식구들 앞에는 마음으로 섭섭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여러분들은 일단 왔으니 하나님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을 기억하는 일면을 더욱 빛낼 수 그런 모임이 이제부터 되기를 부탁해요. 아시겠어요? 「예」
그러니만큼 통일교회 전체의 그 운명은 여러분들이 터를 닦는 데 있어서…. 공적을 쌓은 여러분들로서 하늘이 믿어 줄 수 있는 이런 자녀들이 되어 가지고 오늘 내일 잘 지내 주기를 바래요. 그래 가지고 내일 저녁쯤이면 다 돌아가야 되겠지요? 그렇지요? 「예」 이제 여러분이 돌아갈 때는 선생님은 한 시간 반이면 될 것 같으니까 일본의 하네다에 도착할 거예요.
여기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왔는데요, 여러분들이 남다른 일을, 혹은 남이 생각지도 않고, 남이 계획하지도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계획하고 생각하고 행하려 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서는 남이 당하지 못하는 고충이 많은 것이다 이거예요. 그건 세상만사가 다 그래요. 보통사는 사람은 눈물이 없는 거예요. 눈물이 없는 거예요. 보통 사는 사람은 그렇게 뼈에 사무치는 이런 서글픔이 없는 거예요. 그저 평범하지요. 즐거워도 그저 그렇고, 슬퍼도 그저 그렇단 말이예요.
그렇지만 남다른 길을 가는 이런 입장에 서게 된다면 거기에는 남이 당하지 못하는 슬픔의 곡절도 많은 거예요. 고통의 곡절도 많고, 부대끼는 일이 많은 거예요. 상상 외의 일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시련과 부대끼는 그 환경에 있어서 자기가 남다른 길을 결심한 그 신념을 더 두터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부대끼는데 그것은 반드시 투쟁이예요. 내적인 투쟁이예요. 신념으로써 부대끼는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는 자신을 세우지 못하게 될 때는 남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꺾여 나간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하늘이 지금 복귀의 노정을 걸어오는 데는 지금까지 이 땅 위의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참 남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거예요. 더우기나 하늘의 섭리의 뜻을 대해 나온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도 역시, 시대 시대마다 하늘의 사명을 받고 왔던 사람들도 그 시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남다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에 비해서, 그 사람의 책임은 천적인 사명에 비해서 거기에는 부대끼는 양과 부대끼는 그 모든 면이 컸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의 사실로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실정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금후에나 마찬가지로 이것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천적인 인연이, 혹은 역사적인 실정이 그렇게 되어 있는 연고로 역사적인 한때에 태어났고 그러한 환경을 갖고 이 새로운, 남이 알지 못하고 남이 경영하지 않고 남이 생각지 않고 남이 실천하지 않은 이런 새로운 역사를, 혹은 새로운 이런 뜻을, 포부를 실천하려 할 때는 이건 반드시 거기에 대비되는 시련과 고통은 각오하고 나서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열만한 그런 길, 남다른 길을 가려고 할 때는 열만한 시련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 3배 이상, 나아가서는 7배 이상, 더 나아가서는 몇십 배 이상의 가중되는 시련과 허락되지 않는 환경이 부딪쳐 오더라도 이것을 안고 넘어가겠다고 하는 철두철미한 사상과 신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시간마다, 부대끼는 일마다 이를 악물고 다시 한 번 결의하고 다시 한 번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고 자기 스스로 거기에 새로운 결의를 하는 이런 생활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크나큰 일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다 좋은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천태만상의 곡절이 거기에 사무쳐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선생님의 일대를 두고 봐도 그러하지만 오늘날 이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하나님도 이런 걸 볼 때 나타난 그 면은 지극히 작다는 거예요. 나타난 분야, 인간들이 접할 수 있는 그러한 분야는 지극히 작고, 인간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의 그 배후의 인연이라는 것은 막대하게 크다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하늘을 모시는 생활을 하고 하늘과 더불어 새로운 일을 하려 할 때 제일 생각해야 할 것은, 나타난 결과에 있어서 나를 대해 주는 하늘보다도 나타날 그때까지 하늘이 인연되어 있고 하늘이 수고한 공적의 그 심정을 두터이 알지 않으면 나타난 환경에서 절대 승리해 나가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대끼는 환경을 붙들고, 거기에 있어서 혹은 낙심할 그런 경지에 들어가게 될 때에 이 부대끼는 환경이, 나타난 것이 비록 작은 환경이지만 이 작은 환경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는 하늘이 부대껴 나온 막대한 심정적인 인연, 사정적인 인연, 애절한 그런 천적인 인연이 사무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작은 환경에 부대끼더라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현실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런 심정적인 기준을 하늘과 더불어 수습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타난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남이 가지 않는 뜻의 길을 이미 찾아왔고,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이미 가기 위하여 맹세하고, 자기 생활을 여기에서 청산하고, 생애의 목적을 이쪽으로 돌려놓고 일단 나선 후에는, 가는 길에 있어서는 고생길이 많은 거예요. 슬픈 일이 많은 거예요. 흑은 내가 민족을 위하여 나서자 할 때는 민족 전체가 환영하는 것이 아니예요. 민족 전부가 반대할 수 있는 거예요. 민족을 위해서 나타났다 하더라도 그 민족을 위하여 나가는 그런 개인 무대 앞에 있어서는 나를 만나는 친구가 환영한다고 볼 수 없는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부모도 역시 환영한다고 볼 수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지극히 믿고 지극히 통할 수 있는 어떠한 스승이 있다 해도 그 스승이 그 길을 옹호해 주고 그 앞에 있어서 자기 갈 길을 도와준다고도 볼 수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세상일이요, 있을 수 있는 일이요, 누구나 다 긍정할 수 있는 이런 내용의 일이요, 공인받을 수 있는 이런 일이라면 물론 그럴 수 있으되, 하늘의 일은 이루어 놓고 공인시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이루어 놓고 공인시키는 거예요. 공인해 놓고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 놓고 공인시키는 거예요.
이 결과주관권 내에 세우는 것은 오늘날 역사과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연고로, 하늘은 번번이 매를 맞고 사정을 통고하였고, 뜻을 세워놓고 거기에 해명하여 역사를 밝혀 나온 것이 복귀섭리의 노정이기 때문에, 안팎으로 볼 때 혹은 역사적인 과거로 보나 현실로 보나 하늘은 곡절을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입장에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돼요.
이것만 알게 되면, 하늘은 지금도 부대끼고 앞으로도 부대낄 수 있는 이런 심정적인 인연을 거쳐 가지고 오늘까지 나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수고한 그 인연이라는 것이 여러분이 그런 현실에서, 자기 현장에서 부대끼는 고통보다도 더 큰 애절하고 처참한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슬픔이 개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그 환경을 무난히 넘을 수 있어요.
지금 여기에 나온 여러분들은 지방에 나가서 수고한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남 모르는 가운데서 눈물도 흘렸을 거예요. 혹은 남 모르는 가운데서 하늘 앞에 호소도 했을 거예요. 남 모르는 가운데 굶주림도 느꼈고, 남 모르는 가운데서 추운 골방에서 새우잠도 자 봤을 거예요. 이와같이 여러가지 모양의 사정에 다 부대껴왔으나, 단 한 가지, 단 한 가지 여러분들이 이 길을 참아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은…. 물론 하늘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직접적인 애절한 심정은 통고하지 않았을망정 오늘날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이라는 분이 여러분들보다 그런 무대에 있어서 더 고생했다는 그 하나의 여건이 여러분을 그 환경에서 넘어가게 할 수 있는 동기가 돼 주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에게 그런 도움이라도 없다면 여러분이 하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런 동기라도 가져야 되는 거예요. 타락한 인간은 하늘과 멀고 하늘과 접할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지 않은 연고로, 여러분이 다 가기 어려운 이런 과정이 있을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알고,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왔다는 그것 하나를 믿고, 그것 하나를 알고 또 실제 사실이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준하여서 하늘을 위해 뜻을 대신한 그분이 우리들보다도 선두에 있고, 이 이상의 수고를 지금도 하고 있다는 그 마음 하나 가지고 오늘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이 길을 참아 나왔고 싸워 나왔다고 보고 있어요.
여기에 내가 떠나는 마당에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선생님도 역시 여러분과 같이 이런 큰 책임을 짊어지고, 남이 못 하는 이 개척자의 책임을 하게 될 때는 역시 여러분과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범위가 다를 뿐이지 사정과 내용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을 보고 그러한 어려움이 있게 될 때 이 길을 수습해 갈 수 있었느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아버지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를 부르기 위해서 얼마만큼 수고했다는 깊은 내정을 헤아릴 수 있는 감도가, 느끼는 자극적인 감성이 여러분들보다도 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길을 참고 개척자의 사명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미래는 어때야 되느냐 하면 앞으로 우리의 나가는 길에 있어서, 통일의 길이 가야 할 이 운명노정에 있어서, 오늘날 현세에 있어서 한국 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이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넓혀서는 혹은 미국 대륙을, 아시아 대륙, 혹은 육대주를 중심삼아 가지고 무대를 삼아 나가야 할 이런 무대가 남아 있을 것이어늘, 오늘날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이 소망의 천지를 향하여서 다시 제일보를 내디디려 할 때에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들이 가는 것보다도 하늘은 몇천만 번 먼저 가서 길을 닦았고, 몇천만 번 수고의 노정을 거쳐서 이 길을 우리에게 인계해 줬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가는 거기에 있어서 하늘이 우리와 더불어 지금까지 가는 것은 틀림없고, 지금까지 와 온 것도 틀림없고, 앞으로도 그러하다는 심정, 내가 그분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살아야 되겠고, 그 세계에서 그분을 모시고 살아야 할 부자의 인연으로서 내가 불변의 철칙을 세워야 할 책임을 짊어졌다 할진대는 그분이 가야할 길이 아직까지, 민족을 넘어 세계를 넘어 천주 복귀의 대사업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 우리는 여기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남아진 이 사명적인 전체의 무대를 넘어 바라보게 될 때, 오늘 선생님보다도 하늘이 먼저 고생한 수고의 터전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대해서는 참 좋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신들과 하늘과 혹은 선생님과 여러분들을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을 의지하고 선생님을 절대 필요로 해 가지고 자기의 생애 문제까지도 맡기고 가고 싶은 거예요. 그거 거룩한 마음이예요. 그거 거룩해요. 그러나 여러분을 지도하는 선생님은 여러분을 전적으로 믿으니만큼 전적으로 환영해 주고 전적으로 대해 주고 전적으로 친구가 되고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져 가지고 이것을 해결해 주어야 할 이런 입장에 서 있지만, 탕감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과 선생님과는 거리가 있는 거예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또 선생님과 하나님과는 지금 이 현재의 무대에서는 하나님이 같이 대해 주고 같이 여기에서 의논하고 혹은 자극을 느끼며 크나큰 목적지로 몰아내고 있지만 하나님과 선생님과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거예요. 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분야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큰 거리가 남아있는 것이요, 책임이 중하면 중할수록 거기에는 큰 거리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복귀의 전체 목적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나를 세워 놓은, 나를 부르고 있는 목적점과 현재의 이 기준점을 놓고 이 과정에 넘어가야 할 거리를 응시하면서 하늘은 우리에게 이 거리를 넘어가라고 재촉하는 거예요. 만일에 못 넘어가겠다면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넘겨 버리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우리 통일의 이념을 끌고 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러면 마찬가지의 원칙으로서 스승과 여러분 사이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돼요. 여러분들이 보는 견해와 여러분이 알고 있고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무대가 하늘적으로 볼 때는, 이때의 운세로 보게 될 때에는, 민족적인 운세를 넘어 세계적인 운세를 넘어가야 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머물러 있는 환경을 보게 될 때, 개인적인 시대에서 가정적인 시대로 넘어갈 단계에도 서 있지 않다 할 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정도 내버리고 개인적인 모든 여건도 제거해 버리고 이것을 민족적 무대에 몰아넣어야 할 책임을 하늘은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걸 바라볼 때,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선생님이 슬픔의 무대를 향하여 나서고 더 크나큰 무대를 향해서 나가게 될 때, 여기서 그런 관점을 가지고 비교해 보게 될 때 우리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가는 것은 좋지만 가는 배후에 있어서는 책임이 가중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나라에 있을 때 여러분들과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평면적인 환경에서 사정을 통할 수 있고 서로서로 격려하고 명령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을 때는 그것으로서 순종하면 되고 여기에서 복종만 하면 되지만 더 큰 무대를 안고 한 단계 앞서 나가는 그럴 때에 있어서는, 흑은 스승이 앞서 나가는 그럴 때에 있어서는 여러분은 재차 모험을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지금보다도 더 큰 모험을 하겠다는 결의와 신념을 가져야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런 입장에 있는 여러분들을 지극히 사랑하면 할수록 여러분들에게 '편안히 쉬어라. 이제는 다 때가 되고 너희들이 모든 책임을 다 했으니 이제는 지방에 다 돌아가 가지고 편안히 쉬어라' 선생님의 마음은 그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책임적인 사명이 아직까지 연결되어 있고, 이것이 필시 인생에 있어서 가야 할 운명이고, 이것은 민족적인 운명인 동시에 세계사적인 운명이요, 어차피 내가 안 가면 공동적인 책임을 같이하고 있는 인류가 가야 할 책임인 연고로 이 시대에 안 가면 내 자손시대에도….
내 자손시대에도, 이 민족을 통해서도 못 가게 되면 다른 민족과 다른 종족의 후손들을 통해서도 되어져야 할 책임이 하늘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여기에서 우리들이 기쁨으로 맞이할 것이 아니라 일단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각오 밑에서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재차 결의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시점에 처해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내가 이제 가면 어떻게 할 것이냐? 거기에는 생각이 많습니다. 최고를 뚫고 올라가느냐, 최하를 뚫고 올라가느냐? 생각이 많은 거예요.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 때 통일의 신도들은 뭐라고 할 것이냐? 이 민족을 위하여, 하늘을 대신하여 선생님이 정성을 들이고, 하늘 대해 눈물어린 심정을 가지고 이 민족의 운명을 내적으로 붙안고 몸부림치는 그러한 터전이 여러분 앞에 남아지게 될 때는, 어느누구라도 이런 책임을 대신 상속받아 가지고 하늘을 대신하여 한국적인 운명을 책임질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이면 서울, 팔도강산 150개 이상의 수많은 지역이면 그 지역의 지역장들이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하늘을 대표하여 끌어오시던 직접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하늘의 인연을 여기에 맺어 가지고 끌고 나가던 그런 정신적인 입장에 서 있다가 이것을 남겨 놓고 가게 될 때, 과연 어느 누가 앞으로 세계적인 운세와 더불어 접할 수 있는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겠는가? 하늘 앞에 있는 정성을 다하여 민족적인 생사의 결정을 자기의 손아귀에 짊어지고 한걸음 한걸음 심각한 걸음을 걸어줄 수 있는 용사들이, 그런 통일의 용사들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내가 바라보는 삼천리 반도를 여러분들이 내 대신, 내 대신의 심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느냐?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는 정성의 감도만큼 그 이상, 그 이상 어느만큼 정성을 들일 것인가? 정성은 깊고 높고 더 크더라도 그것은 하늘이 기뻐할 것이요 만민이 추앙할 것이어늘, 그것을 아는 스승이 없고 그것을 다짐하려는 부모가 없다는 거예요. 내 욕심 같아서는 내가 하지 못한 일, 내가 정성들이 지 못한 일, 내가 방방곡곡 다니면서 피땀을 흘려 가지고 권고하지 못하고 민족을 붙들고 통곡하지 못한 그런 일을 해줄 수 있는 통일의 젊은이들이 되기를 ….
여러분들이 지방의 성지를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이 돌아가서 성지에 가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성지를 지킬 줄 아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어요. 하늘의 축복, 하늘의 약속 밑에서 천명을 받들어 역사에 없던 새로운 성지를 마련해 놓았는데 그 성지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환난과 핍박이 심하다고 하여 수많은 동지들이 각오로 결의했고 맹세했지만 그 맹세를 다 잊어버린 우리 앞에….
열 사람이 결의했는데 아홉 사람이 떨어지면, 아홉 사람의 결의를 대신 보충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하여 열 사람의 결의를 대신하여 성지를 지켜 줄 수 있는 이런 사람을 하늘은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런 사람을 이 민족 앞에 내세워 만민을 사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스승이 닦아온 역사적인 인연이었고, 또 여러분을 남겨 놓고 갈 때, 그러한 인연으로 하여금 앞으로 새로운 운세가 이 한민족을 통하여 다가오는 때에 있으니 이것을 여러분이 발 밑에 깔고 슬쩍 넘어설 수 있는 책임과 사명을 다하여 가지고 하늘땅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서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선생님은 바라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명심해 주길 바래요.
내가 서울에 있지만서도 마음은 언제나 지방에 가고 싶어요. 추운 날에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더라도 마음은 아픈 거예요. 여러분이 황폐한 삼천리 반도와 피폐한 이 민족의 운명을…. 내가 바라건대 여러분들이 편한 날을…. 내가 돌아올 때까지 편한 날이 없을 거예요. 찬 방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로 자기의 무릎을 적시면서 하늘 앞에 엎드려 호소하며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와 주길 바래요.
선생님이 있을 때는 기도 안 해도 괜찮아요. 명령을 직접 순종하고 움직일 수 있으면 되지만 이제 없게 될 때는 내적 책임을 누가 져야 되느냐 하면 여러분이 져야 된다는 거예요. 내적 책임과 외적 책임을 겸해 가지고 져야 되겠어요.
내가 한국을 떠나 가지고 일본에, 혹은 외국에 가게 될 때 그 땅에 내려 가지고 나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 식구들을 본받으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너희들을 찾아왔으니 너희들의 애절한 심정을… '이땅을 위해서 너희들이 흐느끼는 것보다 더 눈물을 흘리고 싶고, 너희들이 이 땅을 위해서 정성들여 하늘 앞에 터를 닦지 못한 그 터를 내가 닦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거예요. 일단 떠나면 고국에 있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고 여러분들을 위하여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되 뜻으로 볼 때는 그럴 수 없는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분이 대하던 심정을 또다시 넘어서 그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대해 줘서는 안되는 거예요. 때가 쉬운 때가 다가옴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여러분들보다 더 큰 입장에서 대해 줘야 할 이런 책임감을 느끼니만큼 여러분은 앞으로 한국에 있는 전체 분야의 책임을, 내적인 책임과 외적인 책임을 져 줘야 되겠다구요. 아시겠어요? 「예」
그러니만큼 지금까지 선생님을 믿고 선생님의 명령을 따라 가지고, 어려운 길도 각오하고 슬픈 길 비참한 길도 각오하고 지나온 과거를 존중시하는 의미에서, 현시대의 새로운 각오 밑에서, 삼청공원 성지면 성지꼭대기 가 가지고 이 삼천리 반도의 운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이 성지면 성지에서 전체의 이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면서 새로운 결의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음을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남아진 복귀의 민족적인 책임은 우리가 하늘이 원하는 그 목표까지 있는 정성을 다해서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책임을 다하고 가겠다는 결의를 해야 되겠습니다. 부디 선생님이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 참석했던 우리 식구들 가운데서 낙오자가 없기를 바래요.
또 여러분이 지금까지 움직여 온 전통을 오늘 이 자리에서 흘려 버려서는 안 되겠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주일날 여기 전 식구들 앞에 협회장을 소개했어요. 과거의 모든 일은 다 잊어버려라. 그러나 과거의 말보다도, 과거의 슬픔보다도 만일에 이 고개를 잘못 넘으면 앞으로 올 슬픔이 더 큰 것이요, 앞으로 다가올 고통이 더 크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을 피하려니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야 된다 이거예요. 이런 입장에서 식구들을 격려하면서 협회장을 대신 세워 놓는다는 이런 약속을 했다구요.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선생님이 떠나면 이제 협회장이 책임질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여러분들끼리…. 도리어 내가 얘기하는 것은 선생님의 명령보다도 협회장의 명령을 더 잘 들으라는 거예요. 그가 만일에 틀렸더라도 당부한 말씀이 그러니 그 결말이 나서, 책임적으로 이것이 판결이 나서 해결될 때까지는 묵묵히 참고 우선….
책임진 그가 어떠한 개인적인 감정이 있든가, 혹은 교회를 중심삼고 어떤 사감이 엉클어졌든간에 자기 개인적인 감정을 갖고 맺힌 그를 바라보게 될 때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있거들랑 자기보다도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그가 됐을 때는 민족을 보아 가지고 용서해 주어야 된다는 것을 알라구요.
만일에 그가 민족적인 원수가 돼서 풀 수 없는 입장에 섰더라도, 나는 세계적인 입장에서 눈물을 짓지 못하는데 원수의 입장에 있는 그가 세계적인 입장의 문제를 가져 가지고 하늘 앞에 눈물을 짓걸랑, 세계적인 입장에서 눈물을 짓는 그 자체를 봐 가지고 용서해 주는 거예요. 이건 천리의 원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실수했다고 그 실수를 공격하는 것보다도, 그 실수한 일보다도 더 큰 일 때문에 정성을 들이고 더 큰 일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 더 큰 의미의 정성들인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걸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외의 현실적인 모든 사감이라든가 실수를 용서해 줘야 하는 것이 하늘이 찾아오는 길입니다.
만일에 그것이 없다 할진대는 오늘날 복귀섭리는 다 깨지고 마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늘은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거예요. 죄인을 용서해 주는 것은 그 죄 자체를 두고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날 너를 세워 가지고 이 죄보다도 더 큰 일을 하기 위하여 하늘은 눈물짓고 참기 때문에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일을 위하여 충성을 하고 더 큰 일을 위하여 책임을 지고 더 큰 일을 위하여 눈물짓고 더 큰 일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 책임자에 대해서 자기의 사적 문제를 짊어 지우고 고통을 받게 하면 그의 말로가, 갈 길이 막혀 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온 내정적인 심정의 역사적인 발전 원칙이라는 거예요.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오늘을 기하여…. 귀향하여 수고한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수고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맺힌 곡절도 많을 거예요. 이 민족을 대해 가지고 내가 지금까지 수고하고, 뜻을 대해서 공적인 입장에서 수고하게 될 때 나에 대해서, 혹은 고통의 일선에서 고통을 주었고 핍박을 하였고, 혹은 저주하는 그들 앞에서 '용서할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어요. 그래서는 안 되겠다구요.
내가 그 부락에서 욕을 먹고 구박을 받았지만 나를 욕먹게 한 것은 그 부락에서 책임을 다할 건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 부락을 넘고 면을 지나서 더 큰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 더 큰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목표 밑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위해서 눈물짓고 그 책임을 위해서 참고 나가는 사람은 기필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만일에 한국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다가 한국 백성에게 반대받는다고 해서 한국 백성을 저주하지 말고 한국 백성이 앞으로 나아갈 더 큰 세계적인 책임과 사명을 중심삼고 그 민족이 반대하는 자리에서 눈물짓걸랑 반대하는 무리들이 꺾여나간다 이거예요, 전부 다.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를 주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혹은 천주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정성들여 나타나게 될 때는 거기에 대비되는 핍박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그 시련무대에 있어서 그 시련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참고, 그보다 더 큰 시련의 고개를 넘기 위하여 세계 혹은 천주적인 크나큰 사명을 안고 눈물짓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런 자리에서 맞고 그런 자리에서 시련받으면, 시련을 준 사람은 반드시 망하는 것입니다. 꺾여 나간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최고의 목적은 천주, 피조세계 전체보다도 천주를 창조한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들여라 이거예요. 하나님을 위하여 정성들이는 여기에 있어서는 개인이 아무리 핍박하더라도 그 개인이 깨져 나가는 거요, 가정이 핍박하더라도 가정이 깨져 나가는 거요, 종족·민족·국가 세계가 아무리 반대해도 그 앞에는 다 꺾여 나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을 드리는 사람은 기필코….
개인적인 핍박 노정에 있어서 개인이 꺾여 나가게 될 때는 충성드리는 그 이면의 사람들, 그에게 아들딸이 있으면 그 후손을 세워서 충성드릴 때 반대하던 인연의 터전을 맡기는 거예요. 혹은 가정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의 인연의 터전을 그 측근, 즉 그와 인연을 가진 사람을 세워서 빼앗아 오는 역사를 하는 것이 하늘의 길이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혹은 지금 현재까지 싸워 나가는 데 있어서 어느 부락을 내가 전도하고, 어느 곳에 내가 가 가지고 뜻을 선포하는 가운데 내 가슴에 사무치고 맺힌 감정을 풀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것을 넘지 못하고 하늘 앞에 기도하고, 이 원수를 갚아주기 전에는 나는 하늘을 위해 충성을 못 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보다도 거기에서 충성한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부락을 위하여 내가 억울함을 당했으면 그보다 더 큰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감사하겠다는 이런 사람이 돼야 되겠어요. 정성을 들이거들랑 부락을 위하여 정성을 들이면 열매가 면·군 단위에서 맺히게 되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오늘 모인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지방에 나가서 많이 수고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선생님이 이 삼천만 민족을 위해서 일했는데 이들을 원수로 보게 되면 그거 원수예요. 수많은 교계가 원수라면 원수예요. 어느누구 하나 친구되는 사람이 없고 어느누구 하나 편될 수 없는 이런 환경에서, 지금까지 반대하면서 우리 가는 길에 이렇듯 시련의 노정을 갖다 쌓아 나온 이 전체 무리가 원수로되 나는 원수로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현장의 그것이 문제로되 그걸 넘어 앞으로 후손이 당해야 할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고, 앞으로 세계가 당해야 할 그 운명을 염려하고, 그런 핍박과 그런 시련을 넘어서 하늘을 위하여, 하늘땅을 위하여, 세계 운명을 위하여 눈물지을 수 있는 심적 기준을 어떻게 세워 나가느냐? 이것만 붙들고 나가면 아무리 핍박을 하던 그 핍박도 기필코 그날이 오거들랑 함락되고야 만다는 거예요. 이런 신념을 가졌기에 지금까지 싸워 나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러분 앞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의 마음에 섭섭한 것, 혹은 막힌 것이 있거들랑 다 풀어 놓으라는 거예요. 또 핍박을 하고 벌어진 환경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그 책임진 자를 전적으로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수습해 주기를 하늘도 요구한다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시련노정에 있어서 하늘이 반겨 주시는 것 같지만 그 반면 여기에는 원수들을 통하여서 사방에 담이 생겼다 이거예요. 다 지나간 것 같지만 그 원수들 앞에…. 원수가 원수시할 때 우리는 더 큰 무대를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 나가야 되는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걸어 나온 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1950년대─지금부터 10년전이예요─그 당시에 말할 수 없는 시련도상에 있었지만 시련도상에 있는 그 자체보다도 내가 여유를 가지고 앞으로 이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고 세계적인 운명을 염려하여 시련도상에 있어서도 새로운 개척자의 길을 개방해 나오고 새로운 개척자의 길을 개척해 나오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지도해 나오는 선생님의 신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미국에 가 있는 선교사들이나 일본에 가 있는 선교사들이 그때는 알지 못하는 거예요. 정부가 이걸 허락하지 않았어요. 오늘에 와서 이런 것을…. 통일교회를 막으려 했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모험을 해서, 모험을 해 가지고…. 민족적인 것만이 아니예요. 세계를 위하여 더 큰 무대에 있어서 정성을 들이고…. 내가 어느때 핍박을 받는 것은, 여러분이 핍박받는 것은 여기에서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이 있기 때문이예요. 그 목적을 위하여 해야 할 충성은 남아 있으니 가야 할 충성의 길을 따라서 시련과 핍박 도중에도 그 길을 세워 따라가고자 하여 그러한 선교를 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해외를 중심삼고 한국에 새로운 보답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져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이걸 생각할 때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시련을 받아 왔고 고통을 받아 온 여러분 자신들이 이러한 각도에서 이 대섭리적인 역사를 바라보게 될 때에, 내가 지금까지 책임진 분야의 이 시련과정에 있어서 책임진 것보다도 더 큰 무대에서 줄 수 있고 정성들일 수 있는 생활을 가졌느냐 이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반성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 각자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라구요. 내가 어떠한 환경을 피하기에 급급했고, 그 환경을 모면하기 위해 나는 정성을 들였고, 이 환경을 막아내기 위해 나는 하늘 앞에 호소했지만, 이 환경보다도 더 큰 시련의 환경이, 우리 통일의 식구들이 가는 길에 남아 있고, 스승이 가는 길에 남아 있고, 하늘이 가는 길에 남아 있나니 그 길을 위해서 내가 정성을 들이지 못하고, 아직까지 그 분야의 시련을 내가 일부분이라도 막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하며 하늘 앞에 정성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낙망을 하고 지칠래야 지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다시 한 번 과거를 회상해 보고, 지금까지의 자아의 심정기준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비판해 보고, 크나큰 대우주의 이념을 짊어진 나로서 지난날의 내 생활태도와 연결된 인연의 역사를 얼마만큼 존중시 했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하거들랑 과거의 모든…. 자기로 말미암아 원수가 돼 있고 자기로 말미암아 타격을 준 그가 있거들랑 그를 서슴지않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라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터전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출발은 새로운 정기를 통하여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실적은 새로운 마음가짐과 새로운 행동적인 태도의 여하에 따라 가려지는 것이니, 오늘날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이 없게 될 때 여기 팔도강산 촌촌면면 부락부락에 우리의 정성에, 하늘 앞에 거룩한 제단을 꾸며 놓고, 과거에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모든 부족하였던 것을 다시 한 번 뉘우치면서 더 큰 인연을 나로 말미암아 세워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그런 사람이 되거들랑 앞으로 통일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만일에 한민족이 없는 가운데도 세계를 위하여 주고 싶어하는, 비장한 가운데서 세계를 위하여 염려하면서 자기의 꿔매 입은 누더기옷이라도 수많은 민족 앞에 주고 싶어하는 이런 민족이 되었걸랑…. 돈이 없다고 나는 낙심하지 않아요. 끼니를 굶고 있다고 낙심하지 않아요. 그의 갈 길과 그 나라의 운명은 앞으로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이 천지가 그래요.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이러한 천적인 인연을 알았으니 오늘 내가 지은 바의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한 번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심삼아 가지고 자체를 세워 놓아야 되겠어요. 하늘의 중차대한 책임을 이 시대 앞에 나를 세우시어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신중한 자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민족을 위해서 하나의 마음으로 정성을 쏟은 내 자신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돼요. 흔히 보게 되면 '어느누구 때문에 나는 통일교회에 못 가고 뜻을 버린다' 이런 사람을 봤어요. 자기 자체라는 건 자기 개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예요. 비록 아무개 라는 이름을 가지고, 혹은 성씨를 따라 박이면 박 김이면 김이라는 개체의 이름을 갖고 개체의 모습을 가졌을는지 모르지만, 그가 서 있고 디디고 있는 이 자리에서의 책임적인 사명이라는 것은 역사적인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슬프더라도 뜻을 대신하여 그 슬픔을 걸고 배반할 수 없는 거예요. 왜? 이유는 한의 곡절을 거쳐와 한의 피와 눈물과 땀으로서 개척해 놓은 아버지의 6천 년 곡절의 역사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예요. 내가 이것을 저버릴 적에는 하늘을 대신하여 심정적인 배반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6천 년 서러움의 심정 앞에 전체적인 심판을 홀로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그 자리를 피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렇다구요.
자기 혼자 마음대로…. 보면 그래요. 자기 혼자 마음대로예요. 법이 뭐예요, 법이. 자기 마음대로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책임진 입장에서는 화도 자기 마음대로 못 낸다는 거예요. 화도 마음대로 못 내는 것이요, 기뻐도 자기 혼자 기뻐할 수 없는 것이요, 슬퍼도 자기 혼자 슬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대한 책임적인 기점에 서 있는 내가 내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깨져 나간다구요.
그걸 생각하게 될 때 자기가 짊어진 이 사명이 얼마나 중하다는 것, 이는 하늘로부터 6천 년 전에 인간을 찾아와서 여러분에게 인계해 준 책임인 것을 알고, 수많은 선의 선조들의 공로의 터전을 통하여서, 눈물과 피땀의 제단을 연결시켜서 오늘날 나의 한 개체를 세워 그 해원성사를 통고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하늘로 보나 선조의 생애의 피의 근원으로 보나, 혹은 이 사회적인 혼란 가운데 하늘이 나를 찾아온 그런 시대적인 수고의 곡절을 두고 보더라도 자신들이 속단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된다구요.
자기 주변의 시시한 것들은 전부 다 짤라 버리고 관계를 짓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나라는 자체는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내 심정의 고동소리, 동맥의 피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적마다 이 피는 삼천만의 운명의 맥박을 끌고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래요.
그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오늘날 시대적인 사명을 찾아오신 하늘 앞에 있어서 이 민족을 통하여 세계사적인 크나큰,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인류를 책임지기 위한 이러한 동적인 것 중의 동적이요, 중심중의 핵심을 만들려 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여러분이 개인적인 사관을 갖고 개인적인 결단을 내려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책임진 사람은 환경을 봐야 되고, 자기가 처해 있는 위치를 봐야 되고, 자기의 욕망을 미루어 봐 가지고 지기 힘이 부족하거들랑 사방의 비교 기준을 거쳐 가지고 그 큰 책임과 사명이 귀중한 것을 알고 행여나 그 귀중한 자체가 피해를 입을까봐 염려가 앞설 줄 아는 사람이 되거들랑, 그는 입을 열어 남에게 욕도 못하는 거예요. 슬프다고 저주를 못 한다는 거예요.
내가 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내가 당하는 슬픔 이상의 슬픔이 남아 있는 것이요, 내가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가야 할 그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길을 가야 할 하늘이 있고, 그 길을 가야 할 스승들이 있고, 그 길을 가야 할 책임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그걸 바라보고 그 길을 염려하는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좌우로 뭐 이렇게 시시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과거의 모든 전체를 청산해 버리고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나를 다시 한 번 회고하여 새로운 인연을 붙안고 새로운 사명에 입각하여 자기의 적나라한 자세를 하늘 앞에, 이 민족 앞에, 과거 현재 미래 앞에 내세울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고, 여러분이 중심을 다시 한 번 세울 줄 아는 이 시간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이래 가지고 오늘의 이 시련의 고개보다도 내일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하고, 내일의 시련의 고개보다도 그 다음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하고, 가정의 시련의 고개를 넘어서 종족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하고, 종족의 시련의 고개를 넘어서 민족의 시련의 고개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의 시련의 고개를 넘어서 세계의 시련의 고개를 넘자 하고, 세계의 시련의 고개를 넘으면서 천주의 시련의 고개를 넘자, 넘자, 넘고 넘고 또 넘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가고 가면 갈수록 보다시피 내 발걸음이 어길 수 없이 바쁜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언제 뭐 이러고 저러고, 뭐 옆의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는 다 어떻게 하느냐 이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요, 한 민족과 한 종족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요, 이 세계적인 대운세가 오늘날 이 나라를 찾아와도 그런 사람들은 대세계적인 운세 앞에는 상관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오늘날 우리의 통일이념은 민족적인 운명을 책임지고 나온 것이 아니라 천주사적인 운명을 책임지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의 해방운동까지도 제창하여 나오는 이념이니만큼 아버지의 심정세계에는 아직까지 검은 구름이 남아 있고, 아직까지도 슬픈 곡절의 피가 맺혀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저버리고 그 심정을 붙들고 이 피를 걷어치울 때까지는 쉴 수 없는 고달픈 운명에 처해 있는 슬픈 타락의 후손들인 것을 살면서, 생활에서 느끼며 자기 자체를 다짐하면서 달려가기에 보다 기쁜 마음을 지니고 나가는 사람이 돼야 되겠어요.
이 사람은 시대가 바뀌면 바뀔수록 성공하는 거예요. 사회가 복잡하고 뒤넘이치면 칠수록 뭐 하나가 깨져 나간다는 거예요. 가정이 깨져나가든가 종족이 깨져 나가든가 뭐 하나 깨져 나가는 거예요, 복잡한, 교차하는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사람은 빨리빨리 발전하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의 운명이, 이 통일교회가 세계 무대를 향하여 나가는 데 있어서는 교차의 연결이 빨리 벌어져라 이거예요. 한 나라의 주권자도 역시 빨리 교차되라, 한 나라의 문화도 빨리 교차되라, 한 나라의 모든 유행하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빨리 교차되라 이거예요. 교차하면 할수록 천적 분위기를 붙들고 충성의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있어서 이것이 성공의 날을 촉구하는 재료로 연결 안 되면 망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국가의 과정에 있어서의 시련무대를 내가 친히 거쳐왔고, 한 주권을 거쳐오면서 민족 앞에 시련당하고, 교체되고, 변화되는 환경에 부딪칠 때마다 염려한 것은, 넘어가야 할 내 길, 그 시련을 원망하는 것보다는 그 시련에 이어 다가올 하늘의 제2 시련을 대비하여 하늘 앞에 배척받지 않을 수 있는 하늘의 충효의 도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였다 이거예요.
선생님이 어디에 간다고 해 가지고 여러분이 와서 많이 모여 있는 것도 좋은 것이예요, 그러나 그것보다도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이제 여러분 각자가 돌아가는 데 있어서 다짐해야 할 것은 더 큰 이념적인 시련무대를 향해 가야 할 그 길에 대하여 다시금 각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방에서 책임을 다짐하는 동시에 앞으로 세계사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한 천적인 슬픔을 다짐하면서 오늘의 내 시련이 부족하오니 내일에 찾아오는 시련무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내 내적인 인격과 외적인 인격을 여기에서 갖추어야 되겠다고 몸부림치면서 절개와 충효의 도리를 세우기 위해 애달픈 심정을 갖고 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 뭐지치고 어쩌고 할 때가 있느냐 말이예요. 여러분들이 가고 가고 가면 갈수록 하늘의 애절함이 더 큰 것을 알고, 하늘에 다짐하고 가면 갈수록, 자기의 무대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 넓어진 무대를 보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이런 시련과정에서 어떤 기반을 닦았다고 해서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나이가 40이 푹 넘어서보면, 천적인 인연을 볼 때, 젊었을 때 하늘 앞에 맹세하고 나섰던 결의는 40까지 복귀의 운세와 천지의 이 말세적인 운세를 종결짓고 하늘의 새로운 천지의 운세를 바라보겠다는 것으로서, 그런 기준이 나를 세워서 내몰아 준 본래의 목적이었는데, 오늘 내가 이 아침 연령에서 이와 같은 무리를 대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하늘 앞에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뭐 기쁨도 없어요. 앞으로 외국 식구들이 환영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예요. 도리어 환영하면 괴롭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시련도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거기에 있어서 천운이라는 그런 것, 평화 혹은 행복의 여건이란 무엇인가? 이 한날 한때에 있어서, 그 과정에 있어서는 좋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전체적인 크나큰 시련도상을 넘어가야 할 그런 행로 앞에는 도리어 걸림돌이 되고 가시가 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을 염려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을 내가 제일 무서워한다구요. 혹은 이 원수들이 정성을 다하여…. 그게 무서운 거예요. 내일이 탕감되고 내 일이 전부 다 하늘에 공인받을 때까지는, 세계사적인 책임을 짊어졌다는 기준을 전부 다 공인받을 때까지는 빚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길이,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것을 확실히 알아두길 바래요. 아시겠어요? 「예」
오늘 여러분들이 한국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예요. 한국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떻게 하여 이 한국 젊은 청년 남녀들로 하여금 세계무대에서 먼저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릴 수 있게 만드느냐? 내가 이번에 가게 되면 일본도 일주할지 모릅니다. 미국은 50개 주를 일주하게 될 때에 무엇 때문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요. 나는 거기에서 누구보다도 하늘을 대신해서 눈물을 흘려 주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해서 내가 이 땅을 사랑하자! 역사적인 미국의 어떠한 선조나 미국을 사랑한 애국자보다도 사랑하자! 그 땅을 붙들고 그 땅을 밟고, 하늘이 여기에서 동감하여 공인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안식의 보금자리인 땅이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주인을 마련해 주는 거예요. 이런 걸 생각할 때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국 식구, 외국 식구를 만나는 것도 일이겠지만 그건 2차적인것 이예요.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지방에 나가 책임지고 있으면 지방에 나가 책임진 그것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마음과 몸의 이중으로 되어 있으니만큼 우리는 이중의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구요. 생활적으로 하늘을 위로하고 마음, 심정적인 생활에 있어서 하늘을 위로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그런 면에서 보게 될 때 여러분은 마음은 딴 데 두고 생활은 달리 하고 있다구요. 여러분들이 혹은 어려운 자리에, 혹은 수난의 자리에, 혹은 몸부림치는 환경에 있거들랑 마음도 역시 그런 입장에서 내가 이런 곡절, 이런 것을 이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내일의 준비된 이런 입장에서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효성의 예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 오늘날 통일신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현실의 생활무대에 있어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해 주기를 바래요. 알겠지요? 「예」
여러분 자신들은 통일교회의 인연을, 원리를 중심삼은 인연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식구라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혼자 일할 수 없는 거예요. 바라는 소망이 크고 목적이 크면 클수록 그 목적은 나 혼자 이룰 수 없다 이거예요. 그것은 전체가 협동해야 돼요. 내가 사는 데는 손은 손대로 눈은 눈대로 해서는 안 된다구요. 전체가 하나의 목적이어야 돼요.
마음은 어떠한 목적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거기에 모든 사지백체를 동원하여 통일적인 관념 밑에서 하나의 소원을 바라보고 하나의 행동적인 기준이 벌어지고 통일적인 목적을 지향해서 움직이는 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들은 큰 뜻을 품고 큰 시련을 당하는 입장에 있걸랑 여러분들이 혼자 가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자기를 중심삼고 진심으로 연락할 수 있는, 자기를 중심삼고 진심으로 연결될 수 있는 동서남북이 있어야 돼요. 내가 있으면 동서남북이 있어야 돼요. 상하가 있어야 되고 전후좌우가 있어야 돼요. 천주도 역시 존재의 위치를 결정지을 때는 그러하거늘,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는 천주의 중심을 결정지어야 할 책임이 있는 연고로, 그런 입장에 설 때는 반드시 사방의 기준을 연결지어 가지고 가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식구가 필요해요. 괴로울 때는 식구를 붙들고…. 자기 혼자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도 괴로울 때 그 식구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 이것이 빨리 풀린단 말이예요. 빨리 풀린다. 풀뿌리를 붙들고 기도하고 호소하면서 위로를 받는 것보다는 식구를 붙들고 격한 가슴을 터놓고 가야 할 운명의 길을 염려하면서 내일을 다짐하는 그 자리에서, 도리어 그 사람을 격려할 수 있는 그 자리에 서게 될 때 지금까지 내 가슴에 남아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동지가 필요한 거예요. 동지가 없다면 여러분은 동지를 만들어야 돼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메시아, 예수도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자기의 신앙길을 닦는 데 동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제자들을 모아 가지고 거기에다 정성을 들여 인연을 두터이 해 가지고, 그 인연을 기준으로 하여 여기에 몰아치는 모든 사망의 골짜기라도 헤쳐 넘어갈 수 있는 쇠고랑을 짊어지워 주려고 했다는 거예요.
이 쇠고랑을 끊지 않고 원수의 혀를 자르고 갈 수 있는 연결체를 만들기 위한 것이 예수의 사명이지만, 시대적인 세풍에 찌들고 사회환경과 여러 생활분야에 있어서 습관화된 이들은 예수를 도리어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그 전체가 깨져 나갔다구요.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방에 연결된 연결체를 이 땅에 많이 빨리 만들어 놓은 사람일수록 환난과 시련의 폭풍이 몰아쳐도, 태풍의 노도가 몰아쳐 온다 하더라도 이것은 사방에 닻을 내린 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안전한 입장에서 자기 위치를 취해 가지고 다시 정복할 수 있는, 닻을 취할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에 서는 거예요.
남을 위하는 것이 내가 살기 위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 여러분들이 필요한 거예요. 전라도에 가면 전라도 사람이 필요한 것이요, 전라도의 저 맨 산골에 있는 사람들까지 필요하다구요. 하늘이 가야 할…. 살이 남아 있으면 세포가, 세포가 남아 있으면 피가 가야 돼요. 신경이 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 중심삼고 팔이 있걸랑 안팎으로 흘러나가는 모든 세포 분야의 배후에서 작용해 주고 같이 응할 수 있는 신경기관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연결적인 관계를 어떻게 치밀히 여러분을 통해서 맺느냐 이거예요.
슬프거들랑 슬픈 사실로서 하나예요. 기쁘거들랑 기쁜 사실로서 하나예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생활통일을 이루어야 돼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에 있어서 환경을 뿌리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려면 동지가 필요하다 이거에요, 동지가. 절대 필요하다는 거예요. 자기 혼자서는 절대 못 가는 거예요. 사위기대를 복귀하는 이런 원칙을 따라서, 그것이 천도의 원칙인 연고로 그 인연을 세우지 않고는 존재의 기반을 닦을 수 없습니다. 하늘도 사위기대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의 운명의 고개를 지금까지 넘어온 것을 잘 알고 여러분들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얼마만큼 연결하기에 급급했나 하는 것을 반성하라구요.
보라구요. 당년에 씨에서 생겨난 하나의 나무면 나무가 말이지요, 그 심은 당해에는 바람이 불어도 시련이 없는 거예요. 그렇지만 해가 지나고 그 줄기가 커서 그것이 점점점 여러 인간들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그러한 좋은 과목이 되기 위해서는 가지가 많아야 돼요. 뿌리가 깊어야돼요. 그러니 그것은 복잡한 것이요, 거기에는 시련이 많은 거예요.
백 개의 가지를 갖고 있으면 열 개의 가지를 갖고 있는 것보다 열 배의 시련이 있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기로 하여금 열 배로 움직일 수 있는 활력을 갖추어야 돼요. 마찬가지 이치예요.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고 하늘 앞에 인정을 받길 바라는 마음을 갖기 전에 먼저 인정을 받고 남을 수 있는, 인정을 받고 인정의 결과를 지닐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됩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여러분들은 남을 이용할 사이가 없다구요. 나를 중심삼아 몇년 동안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 터전이 되는 밭을 팔도강산에, 삼천리 반도에 만들어 놓고 그러한 연결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그가 움직이는 것은…. 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그런 입장에 서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도 이런 시련도상에 있어서 개인적인 시련과 가정적인 시련과 종족·민족·국가의 시련과 세계적인 시련의 고개를 넘어갈 적마다 바라는 것은 혼자 넘어가려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예수님도 세계를 이끌고….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해 달라고 최후의 기도를 올리던 그때에 있어서 예수님도 세 제자를 동반했어요. 그렇지요? 만일에 이걸 연결시키지 못하는 날에는 하늘은 하늘대로 갈라지고 땅은 땅으로 갈라진다 이거예요. 고개를 넘어가더라도 다시는 넘어올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이런 애절한 인연이 복귀라는 한의 노정으로 남아 있는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내가 없으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내 뒤와 내 전후를 지켜 줄 수 있는 제2의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도 지금까지 개인의 세계에서 개인을 뽑아 오는 데 있어서 그 개인의 수고를 대신 짊어지고 하늘의 영광을 대신 줘서 기쁘게 해 가지고, 자기를 알고 비로소 당신이 앞에 맡고 있는 그 괴로움을 나에게 상속해 주소 할 때까지는 하늘이 책임지고 이끌어 준다는 거예요.
그러니 하늘이 길을 닦아 주고 하늘이 길러 줘 가지고 축복을 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이 깨달을 때까지 여러분을 연결시키기 위해 수고하신 것을 알고, 언제든지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이 공적인 힘을 미쳐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지방에 돌아가게 되면 그렇게 해 가지고 '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야…. 세상을 다 움직일 수 있는 그걸 만들어 놓아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암만 하나님의 아들이면 뭘하겠어요? 하나님의 아들인 줄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암만 하나님의 아들이면 뭘해요? 뭘하느냐 말이예요. 발판이 있어야 돼요. 누가 공인했나요? 공인할 수 없으니 사탄이 잡고 '뭐야 이 자식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완수해야 할 것은 책임분담이예요, 책임분담. 오늘날 전국에 널려 있는 모든 지역, 지구장들은 혹은 거기에 충성을 한 여러분들은 지방에 돌아가 가지고 그 분야에 있어서 자기 혼자 개별적인 활동을 못 한다구요. 이젠 연결적인 환경에서 이 움직임을 통하여 전체의 반응을 어떻게 일으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되겠어요. 하늘이 그러하듯이 다 그래야 돼요. 여러분들이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동기가 되어 접붙이는 놀음을 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사람을 접붙이는 데는 딴 사람을 접붙이지 말라 이거예요. 이 줄기가 있으면 곁가지가 있어야지요. 그 나무에 줄기가 있다면 줄기에서 뻗어 나가는 그 대가지가 있고 대가지에 달린 작은 가지가 있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기가 처해 있는 입장에 있어서 우선 당당히 뿌리박혀 가지고 내가 아니 할 수 없는…. 순으로 태어나는 하나의 잎사귀 같지만 여기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 뿌리와, 원줄기와 단절되지 않고 전체의 기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에서 생명을 가졌으면 이건 뻗어 나간다는 거예요.
오늘날 세계적인 운세 앞에서, 6천 년 섭리상에서 선생님은 40평생에 이러한 터전을 닦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혹은 팔도강산에 우리의 조직을 세워 가지고 이것이 한 나무의 가지와 같이 뻗어 나가는 데 있어서, 혹은 군이면 군, 면이면 면 단위에 접붙일 수 있는 그 개체는 누구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내가 전체 앞에서 뻗어 나가는 중심가지가 되겠다고 하거들랑 여러분이 줄기 앞에 당당히…. 언제나 살아 있어야 돼요. 그래 가지고 그 가지로 말미암아…. 자기 하나로서 연결되어 여기서부터 뻗어나가 가지고 연결적인, 접붙이는 가지를 만들고, 접붙일 수 있는 가지에서 또 가지를 만들게 할 수 있는 이런 역할을 하게 된다면….
만일에 이 나무의 모든 가지가 다 움직이지 못하거들랑, 종대까지 꺾어지더라도 이 가지는 이 길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된다 이거예요, 종대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깨져 나가게 될 때에 이방 사람들이 충성을 다해 하늘 가지 앞에, 줄기 앞에 접붙여 가지고 나왔어요. 이것이 제2의 이스라엘이예요. 하늘이 뚝 잘라 버리고 다시 키우겠다는 것이 제2 이스라엘 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많이 주고 많이 받아라 이거예요. 많이 관계해라 이거예요. 이게 사는 원칙이예요. 발전하는 원칙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이 나뭇 가지가 크면 클수록, 천만 가지가 있더라도 여기에 천만 가지가 살 수 있는 진액을 흡수해 가지고 왕래시켜야 된다 이 말이예요.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제 책임진 분야에 있어서 얼마만큼 사방으로 왕래시킬 수 있는 개체가 되느냐 이거예요. 앞으로 한국에서는 협회장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내가 안단 말이예요. 그렇게 협회장의 책임이 귀중하고 여러분 지역장, 지구장의 책임이 귀중하고, 그다음에는 지방에 나가 가지고 일선에 있는 우리 책임자들의 책임이 귀중하다는 거예요. 만일에 협회장이 책임 못 하고 지구장, 지역장들이 책임 못 하거들랑 일선의 세포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이들만 살아 있으면 되는 거예요. 아무리 노송나무라도, 다 끝나 가더라도 맨 끄트머리의 세 잎사귀만 살아 있으면 이 나무는 사는 거예요. 이만한 가지가 하나 남아 있고, 다 썩은 뿌리지만 그 끄트머리에 세 잎사귀만 붙어 있으면 그 나무는 살았다 이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하지요? 「예」 그러니 여러분 자신들은 다 없어지더라도 저 맑은 날씨에 하늘을 보게 될 때 뿌리는 안 보이고 줄기는 안 보이더라도 끄트머리에 있는, 살아 있는 세 잎과 같은 일을 해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 세 잎사귀는 불원한 장래에 제2 통일교회 노릇을 한다는 겁니다.
그 자체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살아 남기 위해서는 그 내부에 큰 나무가 죽어지는 파란곡절을 다 겪어야 돼요. 이게 천리라구요. 오늘날 복귀섭리 노정에서는 크나큰 노송이 살아나가는 것과 같은 최후의 첨단에 통일교회가 섰다 할 때는 '6천 년 시련 곡절을 거쳐라!'이거예요.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생명을 가져야만 살았다 할 수 있어요.
이런 걸 생각할 때 우리의 신념은 부족하고, 우리의 책임적인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다 쓰러질 때 말초신경이 통하는 세포의 한 분야로 살아 가지고 이것을 동기로 하여 재생되어 번식의 동기를 가져올 수 있는 이러한 자신이 되어 보겠다고 몸부림치거든 그런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누가 알아주겠으면 알아주고 말겠으면 말고, 알아주지 못하면 내가 기쁜 마음으로…. 내가 내 마음을 중심삼고 책임분담 했으면 마음이 기뻐야지요. 고통이 있어 가지고는 죽는 거예요. 아무런 시련 풍파 곡절이 부딪쳐 와도 나는 살아 있다 이거예요. 살아 있으면 반드시 발전하는 거예요. 살아 있으면 반드시 장성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죽어 있으면 퇴화하는 거예요. 죽어 있으면 자꾸 떨어져 나가지만 살아 있으면 자꾸 붙는 다 이거예요. 붙으니만큼 거기에 투쟁이 있는 거예요, 투쟁이. 생명이 있는 곳에 투쟁이 있는 것이요, 생명이 있는 곳에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만큼 여러분들이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임진 분야에서…. 뭐 협회장이고 지구장이고 뭐 어떻고…. 우선 여러분들이 살아 있으면 고통이 없어요.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다 이거예요. 남을 대해서 입을 벌려서 뭐 이러고 저러고 말을 하기 전에 내 마음에 천국을 이루어 놓아야 돼요.
그 사람을 대하면 내가 괴로우냐, 안 괴로우냐? 괴로운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이요, 괴롭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는 거예요.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가 괴로울 거 없어요. 나는 아무런 뭐가 없어요. 그렇지만 나를 대하면 선과 악은 갈라지는 거예요. 고통에는 하나님이 개재하지 않는 것이요, 안식과 행복에 하나님이 개재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두 원수가 있을 때 누가 승리하느냐? 그 마음에 원수를 대하여 아무 나쁜 마음이 없는 사람이 오래 가느냐, 그저 죽겠다고 다다다하는 사람이 오래 가느냐? 누가 남아지느냐? 동동 굴리는 그런 사람은 꺾여 나가는 것이요, 무사태평한 사람이 남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시련을 많이 받아야 돼요. 특히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통일교회는 시련을 당하자 이거예요. 제일 무서운 것이…. 사탄의 화살을 맞고 있느냐 안 맞느냐, 무엇을 지금 하는 것이냐 하며 괴로워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이럴 때는 뿌리쳐 버리고 빨리 그 입장을 회복해야 돼요. 여러분이 이렇게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을 수 있는 방편이 자기 자신의 마음에 있다구요. 여러분은 절대 괴로움당하지 말라구요. 고통받지 말라구요.
인생이 뭐예요, 인생이? 큰일을 하려면 아까 말한 거와 같이 거기에 비례되는 고통을 엮어 나와야 돼요. 오늘날 세계복귀사명이니 천주복귀사명이니 하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얼마나 큰지 알아요? 천주라는 말, 한 번 써 보자구요. 천(天) 주(宙), (판서하심) 이렇게 된다 말이예요. 천주가 얼마나 큰 거예요? 요 태양 안에 들어가서 춤추는 거예요? 천주가 얼마나 큰 거예요, 천주가? 여러분 가슴 안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이 천주를 천개 만개 억천만 개 주고도…. 인간들이 '아이구, 하나님도 내 마음대로 안 해주고, 아이고' 그러는데 요것들 죽어라 이거예요.
통일교회는 이거 무슨 이론이예요? 응? 통일교회는 무슨 이론이예요? 「천주복귀이론이요」 천주가 얼마나 커요? 얼마나 큰가? 생각해 보라구요. 그 천주에는 아이고 좋다 하며 춤추는 사람만 있지요? 생각해 보라구요. 천주 안에는 춤추는 사람만 있어요? 울고불고 죽이고 그저,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고 나 죽는다…. 별의별 잡동사니 별의별 요지경이 거기에 다 벌어지고 있단 말이예요.
'천주'라는 것은 좋은 향내가 풍기고, 행복의 보금자리고, '천년 권세가 여기에서 벌어지고 만년이 지나도 끝나지 마소서' 그럴 수 있는 곳 같아요? 이런 천주가 복귀 됐어요? 복귀 됐어요? 엄청난 거예요. 천주복귀사의 그 이념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 가슴을 한번 척 내밀고 천주복귀 주인들…. 주인이예요? 천주복귀 주인이예요?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들어 봐요. 말은 주인 같아 보이지요. 그 가슴을 한번 헤쳐 보라구요. 뭐가 있어요? 보게 되면 뭐예요, 그 안에? 뭐예요? 보게 되면 끔찍이 놀랄 것도 있고, 좋아서 세계가 떨어져 나올이만큼 큰소리로 웃고 싶은 그런 별의별….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천주복귀할 사람은 그런 관계를 맺어야 된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풍상을 겪지 않을 수 없어요. 먼저 복귀는 탕감복귀…. 무슨 복귀예요? 탕감복귀예요. 탕감복귀라는 것은 갖다 보태는 거예요, 깎아내는 거예요? 뭐까지? 뼈다귀까지 깎아내는 거예요. 탕감복귀, 천주복귀는 그래야 되는 거예요. 탕감복귀예요. 깎아내야 돼요. 깎아내려면 얼마나 복잡하겠느냐 말이예요. 얼마나 복잡해요? 3천만 민족? 30억인류? 안 돼요, 안 돼. 하늘땅에서부터 전부, 태초에서부터 뭐라 할까, 끝날 때까지 전부….
그걸 생각할 때 천주복귀의 용사, 말은 쉽지요. 천주복귀의 용사, 용사는 무슨 용사예요? 생각해 봐요. 얼마나 기가 막혀요. 태양이고, 은하계고, 우주고 그리고도 더 있단 말이예요. '야! 하나님─' 할 때 그 소리가 어디까지 갈 것 같아요, 어디까지? 하나님 부르는 그 인연이 어디까지 갈 것 같아요.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 할 때 하나님의 인연이 어디까지 뻗어질 것 같아요? 요즘의 천문학 용어로 말하면 말이지요, 1광년이라는 것은 뭐냐? 빛이 일초에 3억 미터의 속도로 달려서 1년 걸려서 도착하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한다구요. 이게 80억 광년이니 뭐 60억 광년이니 하고 말한다 말이예요. 그런데 별이 있다는 거예요, 아직까지.
60억 년 전에 별이 반짝 해서 그 빛이 지구에 오는 데 60억 년…. 그렇게 빠른 빛이 출발해 가지고 지구성과 한번 상봉하기 위해 지금도 오고 있지, 아직까지 면담도 못 했어요. 얼마나 멀겠어요? 그런 대우주, 아 그러한 천주의 대주재, 하나님!
생각해 보라구요. 생각을 해보란 말이예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해요.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고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 마음이 후련해요. 신난다 이거예요. 그가 내 아버지예요. 세상에 보면 대통령 팔아먹고, 꺼떡거리고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데 생각해 보란 말이예요. 아, 역사적인 군왕들이 그 앞에 참배를 하는구만. '여봐라' 하면 '예이' 하고, 역사적인 천하의 모든 군왕들이 '여봐라' 하면 '예' 하는 구나. 종은 명함도 못 내미는구나. 아 그런 분이 내 아버지다! 생각을 해보란 말이예요, 그렇게. 얼마나 멋지겠어요?
그러면 통일교회에서 소개하는 그 아버지가 강도 아버지예요? 너무 많이 갖고 있어서 주머니를 펼쳐 보이지 못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조그만 눈으로 봐도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이거예요, 너무 크기 때문에. 이게 하나님이예요. 아니, 그런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그저 눈물을 흘릴까? 여러분은 의심이 안 돼요? 아, 그런 하나님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눈물 흘리면 눈물 흘릴까? 눈물을 흘려요? 에이─. 눈물을 흘릴까? 여러분들 그거 테스트해 봤어요? 아, 그 눈물이 나서 진짜 떨어지면, 진짜 그렇게 큰 분이라면 눈 하나가 얼마나 클까요, 눈 하나가? 눈물이 떨어진다면 다 없어질 텐데 눈물을 흘려요? 여러분들은 그 인식이 들어와요? 그렇지만 눈물을 흘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피눈물이 난다고 그러지요? 피눈물을 봤어요? 눈물은 눈물인데 피눈물이예요. 그 눈물이 안 보여요. 안 보이고 나오는 눈물이 있어요.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얼마만큼…. '나는 그런 분의 아들이다. 때려라, 이 자식! 얼마나 때리나 보자'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뭐 근사하다구요. 핍박해라 이놈의 자식!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눈물 흘리나 보자! 응? 이 젊은 녀석들은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진짜 아버지는 그런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옛날에 감옥에 들어간다 해도 뭐 할 게 있어야지요. 간수들이 신바닥 끌고 다니는 게 제일 싫었어요, 딸까닥 딸까닥. 내가 생각하는 데 아주 지장이 많거든요. 눈만 감으면 천하가 다…. 지구성과 별들을 바꿔 놓고, 마음대로 바꿔 놓을 수 있고, 올라가라면 '예' 하고 올라가고, 내려가라면 '예' 하고 내려가는 거예요. 한 번 그 경지에 들어서면 천년 공사가, 억천만 년 공사가 시작해서 완성된다 이거예요. 한 번 '야 지구놈아, 너는 태양을 중심삼은 궤도를 공전할싸' 하면 '예, 예, 예…' 그 대답이 끝나지 않을 거라구요.
생각을 해보라구요. 그 하나님이 진짜 그런 하나님이 통일교회와 같이할까? 여러분들 그거 생각해 봤어요. 아, 통일교회의 그 천주복귀라는 말이 얼마나 엄청나요? 여러분의 꽁무니에 그게 따라다닐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세워진 통일교회요, 그런 관점에서 불러 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가치, 그 아버지와 인연맺은 통일교회 자녀들의 심정적인, 결합된 그 도수의 강도 앞에는 천하의 제아무리 큰것이라도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한테 머리숙인다! 이래야 되는 거라구요.
이런 줄 몰라 가지고 조금만 하면 그저…. 참새 새끼도 말이예요, 뭐 맛있는 걸 보면 주인의 눈치를 봐 가지고, 잡으러 오는지 안 잡으러 오는지 그것도 감지해 가지고, 사람이 지나가면 떡 그걸 주시해서 비교해 가지고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그러는데, 새 새끼도 그러는데, 이 천주복귀하겠다는 녀석들이 가만히 보게 되면 이건 참새 새끼만도 못한 때가 있어요. 그런 시시한 패들이 되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예」
천주복귀, 천주복귀를 위해서. '내가 이 한반도에서 천주복귀의 사명을 가지고 왔소'그런 생각을 하고 주위를 보면 '예이─' 그런 느낌이 느껴져요? '아이고, 다리가 뒤로 가려고 한다. 앞으로 가야 할지, 뒤로 가야 할지, 아이고 이게 다 갈 수 있나?' 그러다가 망했지, 그러다가. 다 그러다가 떨어져 나가지 않았어요? 부디 남아 있는 패들은 그러지 말란 말이예요? 「예」
천주복귀의 용사, 이거 얼마나 멋져요. 거기에는 크니만큼 별의별 일이 다 있다 이거예요. 대가리가 깨지는 일이 있고, 다리가 부러지는 일이 있고, 다 있다 이거예요. 다 있으니 탕감복귀를, 나도 한번…. 탕감복귀를 내가 책임지려면, 탕감복귀의 주체가 되려면 탕감복귀의 조건을 나는 거쳐 나가야 된다 이거예요. 여러분들은 그걸 알고 아무리….
내가 옛날에 그랬어요. 이 길을 가게 될 때 '하나님, 내가 알았습니다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복귀의 길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정복귀, 세계복귀까지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연결된 걸 알았습니다. 이왕지사 탕감의 조건이 남아 있으니 들이 죄기고… ' 선생님이 그렇게 나왔어요. 내가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고 별의별 놀음 하면서도 원망을 안 했어요. 나로 말미암아 하늘의 아들딸과 사탄세계 앞에 결정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을 내가 제시했던 거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비중을 한번 달아 봐라. 그렇다는 거예요.
지금도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편안한 길을 찾아다니려고 안 해요.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갈 길이 남아 있고, 아직까지 복귀의 한계가 남아 있으니 이럴 때일수록 크신 아버지를 모시고 크신 아버지 앞에 바짝….
여러분은 어때요? 길을 가면 나 혼자 가도 좋아요. 길 같은 데를 혼자 가면 참 재미있거든요. 돌을 떡 갖다가 저 앞쯤에 집어 넣은 거예요.
뺀질뺀질한 돌이 있으면 말이지요, 떡 한 20발자국 거리에서 '맞는다'하며 딱 던지는 거예요. 한 가운데 집어 넣는 거예요. 디리 맞는다 이거예요. 탁 집어 넣는 거예요. 그리고 가서는 집어 넣는 자리가 얼마만큼 표가 나나, 몇 발자국 거리, 몇 자 차이가 나느냐 가서 보는 거예요. 어떤 돌이 있으면 '내가 이번에 던지면 다섯 자 이내에 때린다, 이 자식' 그리고 던지는 거예요. 이래 놓고 던져서 다섯 자 이내에 들어가면 참 신나거든요.
혼자라도 그걸 잘하는 거예요. 저 산에 올라갈 때도 쓱 가다가는 쉬고는 몇분에 올라간다 이래 가지고 올라가는 거예요. 땀이 나더라도 쭉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 시간 이내에 올라가면 기분이 좋거든요. 이런 놀음을 많이 했어요.
기도하고 나서도 내가 이런 기도를 해 가지고 하늘이 어떻게 이걸 해결지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기다린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해결이 안 되거든 생명을 걸고 담판한다 이거예요. 그렇게 하는 거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래 가지고 세 시간 이내에, 몇시간 이내에, 몇일 이내에…. 이런 놀음을 많이 해봤단 말이예요. 그렇잖아요?
전국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무엇이 있어야 돼요. 이 3년노정에 통일교회의 역사가 남을 것이니 그 세계사의 노정에 있어서, 하늘법칙 노정에 있어서 어느 부분에 내 이름이…. 그런 걸 생각해 봤어요?
내 눈은 이렇게 생겼다 이거예요. 젊은 녀석이 눈이 아주 잘못 생겼어요. 대가리 크고 보니까 이건 뭐 쓸모가 없다는 거예요. 어디 가서 뭐 학박사 노릇도 못 해먹고 수많은 사람을 지도할 수 없는 무가치한 녀석이예요. 어디 가서 쓰러져 죽어도 동네 개도 뜯어먹지 않을 그런 신세 짜박지가 뻔하게 보이거든요. 보여요. 그런 녀석들이 있단 말이예요. 그럴 때는 한번 멋지게 모가지를 들이 대고 해보라구요. 그런 모험심도 있어야 된다 말이예요. 이건 그저….
복귀도상에서 고생하는 데는 그런 사람들 좋아 안 하거든요. 그럴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대학을 나왔으니 학박사고, 너희들 전부 다 못난이들이어서 일 못 한다…. 천만에요.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거예요. 사실 통일교회 문선생이 못났어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잃어버리고 찾아들어 가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거예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일들이 있는 거예요. 천주복귀의 용사가 돼 가지고 큰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니 호흡, 숨쉬는 것도 그래요. 후─후─. 전부 다 다르다고 생각하라구요. 큰 포부를 가졌기 때문에 숨쉬는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달라요. 옛날에는 젓가락을 상에 놓고 먹었는데 오늘은 쓱…. 무얼 생각하느냐? 이러니까 생활도 자기가 달리 하란 말이예요.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던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거예요. 한때는 내가 신발이 있으면 말이예요, 옛날에 고무신 같은 것이 있으면 나는 옛날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놈을 거꾸로 신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이놈의 신발, 언제 탕감복귀노정을 걷겠느냐? 그래서 거꾸로 신고 가 보는 거예요. 그거 그래 보라구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오늘 저녁에 전부 다 비행기표 물러 버리고 내일 내가 안 가 보면 이 녀석들 가운데 몇 녀석이나 떨어지겠나 이거예요. 그 점을 선생님이 많이 생각하는 거지요.
가 가지고 이제 이 이 (웃음) 우리를 피흘리게 한 대원수 일본 족속들, 멸망해야 할 족속들 너희들 뭘하는 것이냐? 우리의 운세 아니예요? 나 한국 사람이다 이거예요. 그래 놓으면…. 사실은 그거 다 통과해 준다구요. 다 통과할 수 있는 거예요.
여기 우리 통일교인들이 술을 먹고는 재미있게 잘살고 있는 식구집에 들어가서 '이 자식들아, 너희들이 뭐 어떻다고?' 하며 한바탕 주정을 해도 '하하하' 한다구요. 무엇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탕감복귀에서는 별의별 일을 다 하는 거예요. 어디 용납 못 할 것이 있나요?
내가 이 길을 나서기 전에는 일본의 신앙자들을 만나서 '당신, 이런 이런 하늘의 섭리, 하늘의 구원역사가 무엇이요? 인간의 가치가 어떠한 것이요? ' 하고 몇 마디 물어 보면 벌써 아는 거예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선생님은 다 만나 봤단 말이예요. 무슨 박재봉 목사니 누구누구니 신령한 사람들을 만나 가지고 '타락이 어떻게 됐나요? 사탄이 뭐요?' 몇 마디 물어 보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다 출발한 거라구요.
그렇게 출발해서 가는 데는 높은 데로 올라가라는 거예요. 가는 데는 지름길이 어디냐? 이런 높은 산이 있으면 말이예요, 이렇게 넘어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이렇게 넘어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이건 이 높이가 이것보다 더 길기 때문에 이렇게 높은 산을 넘어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여기서 빙 돌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사람들이 어렵지만 제일 먼저예요. 조금만 지나가면 제일 편안한 길이예요.
제일 편안한 때가 오기 때문에 그런 곳으로 가라는 것이 천지의 대주재인 하나님의 왕명이예요. 지금까지는 왕명이 아니예요. 명령이예요. 전쟁이 끝나거들랑 우리의 싸움이 끝나 가지고 우리가 보금자리, 안식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하늘 앞에 영광 돌리겠다, 치열한 전쟁과 더불어 하나님의 품으로 직행할 수 있는 그날을 맞아야 된다, 그런 생각해요? '아! 옛날에는 내가 이러이러한 싸움을 했는데, 그때 이러한 곡절이 있을 때, 아, 이런 싸움에도 나는 패자가 되지 않고 승자가 되었다! 내가 맞아 죽는 날에는 그 팻말을 보고 그 비석을 보고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게 인간의 갈 길이예요.
오늘은 좋은 얘기를 못 해서 미안합니다. 뭐 얘기 하다 보면 이런 얘기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선생님이 팔자를 그렇게 태어났고, 사명도 그렇게 타고났으니 할 수 없는 거예요. 팔자도 그렇게 타고났지만, 사명도 그렇게 타고났고, 생각도 그렇게 생각했고, 생활도 그러니 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이 길을 가야지요.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여자들은 너무 느리다구요. 묻기는 같이 물었는데 한 번 더 물어 봐야 대답한다구요.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가겠습니다!」
가는 데 무엇으로 갈래요, 무엇으로? 무엇으로 갈래요? 졸장부로 갈래요, 졸장부로? 무엇으로 갈래요? 여러분들이 구루마를 끌고 갈래요? 가긴 다 간다 이거예요. 가는 데 구루마 끌고 갈래요? 천지복귀의 용사 가운데는 구루마꾼도 있다 이거예요. 노동자도 있다 이거예요. 똥 구루마 끄는 천주복귀용사도 있다 이거예요. 무엇으로 갈래요?
하나님이 행차하시는 그 앞에서 안내할 수 있는 용사도 있다 이거예요. 아니면 제사장 아들의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도 있다 이거예요. 천태만상의 길이 있어요. 이 계급 결정은 하나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비록 어려움이 많을망정 결정한 그 결의와 결정한 그 내용과 결정한 그 시련무대에 있어서 패자가 되지 않고 승리자가 되겠다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부딪쳐 가지고 자기가 남아질 수 있어서 그 남아진 모습이 하늘 앞에 필요한 조건으로 갖추게 될 때는, 그를 들어 하늘의 왕자로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천주복귀의 올바른, 내가 바라고 있는 ….
여러분, 한국에 있는 통일교회의 젊은 남녀들, 내가 바라건대 앞으로 수많은 민족, 수많은 후대들이 생겨 가지고 여러분들을 세워 하늘의 제일 사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 천주복귀의 용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오늘도 그래서 얘기하는 거예요. 이까짓 똥구루마꾼 같은 천주복귀의 용사들에게 얘기는 뭘 얘기해요.
더우기나 지방에 나가 수고한 여러분들은 부디…. 아직까지 수고할 일이 다하지 않았고, 민족의 한과 민족의 수고의 노정이 아직까지 남아있으니만큼, 우리가 이런 개척자의 선두에 나서서 지치지 말고 죽지 말고 남아져 가지고 민족을 다시 한 번 가서 훑어 가지고 끌어갈 수 있는, 다시 가서 붙들고 끌어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옛날 아브라함의 축복을 상속받을 수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자기의 아내 사라와 조카 롯을 끌어내기 위해서 하늘 앞에 했던 거와 마찬가지의 그런 책임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그런 복귀의 노정이 아직까지 남아 있으니만큼 여러분은 지쳐서는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래 선생님이 내일은 떠나는 거예요. 그러면 본부에 올 맛이 더 있지요? 본부에 올 맛이 더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음 부모의 날은 전국에 있는 통일교회의 용사들이 전부 집합할싸! 내가 일본에 있더라도, 미국에 있더라도 한번 명령을 해보려고 그래요, 몇명이나 모이나 보게. 이렇게 오라고 기별해서 많이 온 것보다도 더 많이 못 왔다가는 전부 다 혼난다구요. 많이 올래요? 「예」 많이 올래요? 「예」
그러면 이제부터는 내가 선전해야 될 거예요. 선전은 어떠한 선전을 하느냐? 가는 데는 아들딸의 모습을 갖추어 가야 되겠다! 그래야 부모의 날에 모이고, 자녀의 날에 또 많이 올래요? 「예」 가만히들 보니까, 선생님이 간다고 하니까 다 밀려온 것 같아요. 이다음에 선생님이 온다할 때 올래요? 여러분들이 제일 안 모이는 날이 자녀의 날, 부모의 날, 만물의 날일지 몰라요.
이번에도 내일 간다는 소식 누구한테 들었어요? 선생님이 내일 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내일 간다는 얘기 들었어요? 「예」 누가 들었나요? 유효원이, 내가 내 입으로 28일에 간다고 했어? 했어? 「안 하셨습니다」 안 했는데 왜 소문이 이렇게 난 거야? (웃음) 전부 다 모였잖아요. (웃음)
누구 항의할 사람 있어요? 어 선생님 왜 그럽니까? 언제 약속을 했나? (웃음) 약속을 했나? (웃음) 약속을 언제 했어? 뭘하러 왔어요, 뭘하러? 뭘하러 왔어요? 내가 이런 중요한 말을 해주기 위해서 왔는데 이건 뭐…. 아마 복귀역사를 위해 그렇게 머리를 쓰면 천국왕자들이 전부 다 될 거라구요. 아, 27일날 왔으니 28일, 29일, 30일, 아, 2월 초하룻날은 부흥단이 떠나니까, 그 사이에는 보겠구나 하고 점치는 거예요. 점치는 것은 죄가 아니예요. 점쳐 가지고 행동하면 죄지요. 그래, 여러분들은 죄 아니예요. 내가 오라고 했기 때문에 이건 죄 아니예요.
언제 갈지 모르는 거예요. 내일 버스 타고 나갈래요? (웃음) 나혼자 떠나는데 누구보고…. 여권 수속하는 사람한테 얘기했는데 그다음에 나는 얘기 안 했어요. 소문은 누가 냈어요? 누가 냈어요? 누가 냈어요? 누가 냈겠어요? 누가 냈겠느냐 말이예요? 아, 이 사내가 냈으니 그렇지, 이 사내가. (웃음) 이거 우리 뜻 앞에 있어서 이거 배반자예요, 친반자예요? 친반자라는 말은 없지요? (웃음) 그렇잖아요? 그거 사실이라면 모르겠어요. 사실이라면 모르지요. 이건 내가 얘기 안 했는데 자기가 먼저…. 이게 뭐야.
자, 고생하던 여러분들 아직까지…. 이제 내일 내가 떠난다면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되겠어요. 예? 「예」 그런 얘기를 하면 좋겠는데 몇 시인가요? 한두 시간 얘기했나요? 그렇게 알고, 복귀의 노정, 이 천주복귀의 노정에 있어서, 큰 분야에 있어서 아까 선생님이 얘기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기에 해당하는 핍박이 왜 없겠어요? 슬픔이 왜 없겠어요? 고통이 왜 없겠어요? 그 고통을 슬픔으로 알지 말라구요, 슬픔으로. 슬픔으로 알지 말라구요. 슬픔으로 알지 말라는 거예요. 그것이 팔자에 타고난 길이라 이거예요, 팔자에 타고난 길. 그래야 해먹지 이거 해먹겠나 말이예요.
밥을 얻어먹어도 내가 아주 역사에 없는 희극 배우요, 역사에 없는 아주 걸작 거지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라는 거예요, 최고의 걸작거지라는 거예요. 사실 그렇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쓱 가 가지고 안될 때는 옷이 거슬리면 그저 시궁창물에 텀벙 들어가고 주먹밥이라도 웃으면서 잘 먹을 줄 알아야 된다 말이예요. 선생님은 그런 거예요. 선생님은 환경에 잘 어울린단 말이예요. 내가 필요로 하게 된다면 아주 홀딱 반하게끔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그런 것을 배우라구요. 천주복귀를 하려면 그런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시련무대를, 고통무대를 자기의 책임과 사명으로 알고, 자기의 팔자에 타고난 운명으로 알고, 그것을 낙으로 삼고 가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 것 같으냐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비록 내 있는 모습은 개인이요, 내가 온 지방이면 지방이 작지만 그 지방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이러한…. 안 그래요? 보라구요. 여러분의 궁둥이에 주사 놓으면 어때요? 주사를 꼭 찌르면 어때요? 꼭 찌르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 돼요? 전부가 거기에 집중이 돼요, 안 돼요? (웃음) 집중되는 거예요. 되지 말래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삼천리 반도라는 한 곳에 호랑이 새끼가 지금 앓고 누워 있으니 주사를 주는 것이다. 나는 주사침이다. 뼈살을 파고 들어가라. 야 이거 핏줄을 뚫고 들어가는구나. 흠 흠 흠 세포가 여기에 있구만, 아 곡절이 이렇게 많구나, 들어가자' 해 가지고는 '들이 저어라. 부대껴라' 그러는 거예요. 침 꽂고는 어떻게 해요? 그다음에, 요즘에는 침 놓을 때 꽂아 가지고 때리더라구. (웃음) 끝난 줄 알았는데 뺄 때까지…. 침 주고 빼는 게 예사인데 침 주고 또 때려요. 그래, 탕감하는 데 있어서 재탕감을 이루었다 이거예요. (웃음)
여러분들 그렇게 알고, 이 한국이라는 걸작품이 병이 났는데 이것을 고쳐야 할 책임을 내가 졌으니 나는 침이 되고 선생님은 침 주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문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항문이 더럽다고 안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디에든지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일 아픈 데를 찌르면 더 아플 거예요. 이녀석은 죽겠다고 야단한다 이거예요. 이 통일교회가 움직이는 것 대해서 죽겠다고 야단하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의 날이 가까와지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통일교회가 움직이면 죽겠다고 야단해야 하는 거예요. 아이고 못살아서 죽겠구나. 아이고 너무 잘살겠다니 죽겠구나. 자꾸 죽겠다는 일이 벌어져 나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때문에 못살겠다고 그랬지요? 통일교회 때문에 삼천리 반도가 얼마나 야단했나요. 그렇지만 이제 통일교회 아니면 안 되겠다고, 통일교회라야 살겠다고 야단할 수 있는 이러한 때를 마련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러려면 여러분들이 별거없다는 거예요. 침이 돼야 돼요, 침. 전부 다 썩었어요. 전부 다 병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침이 돼야 돼요. 알겠어요? 「예」
침이 되면 무슨 침이 돼야 돼요? 「금침이요」 (웃음) 아주 제일 약효가 나는 침이 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약효를 발휘하려니 고통받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러면 미국도 잘만 주면 살아나고, 한국도 잘만 주면 살아나고, 공산당도 잘만 주면 살아난다 이거예요.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천지조화탕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렇게 알고 여러분들이 남겨진 어느 기간까지, 선생님이 다시 돌아올 텐데 가서 붙들고는 놓지 말라는 거예요. 자기로 말미암아 실험대를 세우고, 자기로 말미암아 연구할 수 있는 관계를 맺고, 거기에 남아질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 천주복귀 용사가 돼 주면 선생님이 갔다 올 때 여러분에게 좋은 예물도 사다 줄지 모르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예물 사 오면 좋겠어요? 「예」
그렇게 알고 협회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서로서로가 단결하고, 서로서로가 연결해야 돼요. 단결하려면 양보하고 하나되어서 부디 남아진 민족적인 이 노정에 있어서…. 금년이 중요한 거예요. 금년이 참 중요한 해예요. 그러니만큼 그렇게 알고 한국은 여러분들이 책임지고 부디 떠나신 선생님을 생각하는 뭣이 있걸랑 안심하고, 한국에 있어서의 좋은 소식을 많이 들려주기를 부탁해요. 알겠어요? 좋은 소식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되는 고통과 시련과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그것만은 잊지 마시라구요. 아시겠어요? 「예」
그럼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일이 크게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이 탕감복귀, 우주복귀의 터전은 점점점점 시일이 갈수록 하늘의 행복의 터전이 마련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삼천만 민족은 물론이요, 세계 인류에게는 해방의 한날을 높이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될 것을 나는 믿고 앞으로 여러분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고 재출발하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그러면 재차 그런 결의와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은 손들자! 「예」 이 손목들은 전부 다 내 것이야? 「예」 내가 잘라 갔다가 다시 붙여 주었다고 생각하란 말이예요. 내리라구요. 그러니까 그놈의 손들은 전부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구요. 내가 잘라 갔다가 다시 붙여 주었어요. (웃음) 그 손을 선생님의 손으로 알고, 그 눈과 그 마음을 선생님의 눈과 마음으로 알고, 선생님이 더듬고 쓸고 눈물 흘렸던 그것을 찾아 가지고 사랑할 수 있는 그 자리에 나갈 때까지, 그 손과 그 마음과 그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정성을 들여야 되겠어요. 그러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이 '야 울지 말라' 하는 그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어서, 하늘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드리는 겁니다. 알겠지요?
아버지, 머나먼 복귀의 길, 그분이 남긴 그 길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한국과 세계를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습니다.슬폈던 내 아버지를 붙들고 위로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그러한 아들딸을 만나 위로받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습니까?
아버지, 이 삼천만 민족을, 아버지여, 당신이 지켜 주시옵소서. 황폐한 이 삼천리 반도를,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40여 년간 시련무대에서 참고 이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게 해주신 은사를 감사드리옵니다. 수많은 민족을 대신하여 이 민족이 지킬 수 있고, 하늘에 넘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여 주신 것을 진실로 감사하나이다. 이거 다 하늘이 수고한 연고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통일의 자녀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나 여기에 모인 이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옵니다. 세상에 가진 것도 없고, 세상에 의지할 아무런 무엇도 갖지 않은 자들이 옵니다. 단지 하늘만을 의지하고, 단지 스승만을 바라보고 나온 무리들이오니 바라던 모든 뜻을, 아버지, 이루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여기에 모인 자녀들 가운데는 통일의 운명을 가슴에 안고, 하루하루를 아버지 앞에 눈물과 더불어 싸워 나온 당신의 아들딸들이오니,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이들의 앞길을, 아버지, 염려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시고, 이들이 원하는 소원성취의 한날을 약속하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 민족을 아버지 앞에 바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여 우주가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을 맞게끔, 아버지, 능력을 더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사방에 널려 있던 자녀들을 만나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그러나 아버지 이 뜻과 사명을 이들이 다시 책임져야 할 입장에 서 있사온데 가는 길에 슬픈 일이 왜 없겠사오며, 뜻을 대해 가는 길에 어려운 길과 눈물의 길과 고통의 길이 왜 없겠습니까? 하늘이 그런 길을 걸어가고 있사옵고, 하늘이 남기신 개척자의 길이 그러한 길로 남아져 있는 것을 알게 될 때, 오늘을 기억하여 내일을 약속할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의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옵고, 오늘 새로이 결의한 모든 결의를, 아버지, 주관하시옵소서. 이들의 생활과 이들의 정의를 지키시어서, 아버지, 이 민족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통일의 역군들이 되어서 천주복귀 사명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하늘의 용사들이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모든 경륜하신 뜻을 원하신 뜻대로 이루시옵고, 남아진 날들을, 아버지, 지켜 주시소서. 당신이 하늘이 기억하여 주셔서 이날을 아버지의 것으로서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다시 만날 그때까지 친히 아버지께서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고, 새로운 책임과 사명을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