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열 사람을 대표했다면 그는 부모의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열 사람의 모든 어려움을 전부 다 책임져야 되고 열 사람을 전부 다 돌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을 때에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어려운 가운데에 있거나 부족한 입장에 있으면 그의 마음을 쓰다듬어 가지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지만 열 사람이 한 사람을 대해 '나는 끌려가는 입장에 있다. 당신 들은 나보다 높은 36가정, 72가정, 124가정, 430가정이므로 모든 면에 있어서 나에게 본이 되어야 되고, 나를 인도해 주고, 나를 위해 주어야 한다'고 하는 입장에 있다면, 그런 자리는 언제나 불평불만이 깃들 수 있는 자리 입니다.
밥을 먹는 데에 있어서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나 자는 데 있어서도 자기를 중심삼고 행동하며 그 결과에 대해 항상 자기의 이익을 바라는 입장에 선다면, 열 사람이면 열 사람을 중심삼고 살더라도 그 열 사람 전부가 원수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열 사람을 중심삼고 사는 생활에 있어서 열 사람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는 열 사람의 어려움이 자신의 어려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옆 사람을 대해 불평하는 것은 내가 나를 대해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나를 욕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불평불만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맨 나중에 일어날 것입니다.
신앙길에 있어서 제일 위험한 것이 뭐냐 하면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는 곳에는 정사되는 법이 없고 발전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우리 신앙자를 언제나 노리는 것은 무엇이냐? 사탄이 무기로 우리 앞에 언제나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냐?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그럼 불평불만하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자기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성을 드러내는 자리에서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열 사람이 있다면, 그 가운데 언제나 자기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열 사람이 거기에 화합해 주지 않고 움직여 주지 않으면 불평불만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는 데에는 반드시 사탄이 자리잡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사탄을 제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불평불만하는 길을 막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이 벌어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옛날에 아무리 잘믿었고 좋았더라도 불평불만하게 되면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한 절반쯤은 믿고 절반쯤은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기준이 그만큼 높아 지는 것이 아니라, 절반은 믿고 절반은 의심하니까 그 터전은 절반만큼 좁아지는 것입니다. 반신반의하는 것은 절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만큼 믿던 것이 반신반의하니까 절반만큼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절반만큼 작아진다는 것은 뭐냐? 하나의 배만큼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만큼 믿던 것이 반신반의하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 앞에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멀어지니까 사탄이 거기에 찾아 들어와서 점령하게 됩니다. 불평불만하게 되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느냐 하면 반드시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져 다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생활에 있어서 아내가 남편을 대해 불평불만하게 되면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게 뭐야. 사랑 안 하지' 하는 반신반의가 반드시 개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신반의가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남편을 대해 가지고 옛날에 따라보던 기준, 혹은 옛날에 사랑하던 그 기준이 전부다 감해지는 것입니다.
반신반의가 도에 차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반항과 투쟁과 결렬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반항이 벌어지고 반항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반항을 하면 저쪽에서도 반항을 하게 되고, 이렇게 두 번 세 번 맞닿게 되면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같이 다 죽는 거예요. 갈라지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는 없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없어지는데 누가 없어지느냐? 먼저 불평불만하던 사람, 반신반의하던 사람, 반항하고 먼저 싸움을 시작한 사람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누가 망하느냐 할 때 먼저 그런 동기를 만들어 놓은 자가 망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불평불만하고, 별다른 일도 없는데 반신반의하고 반항하고 싸우게 될 때는 반드시 결판이 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망하는 것이요, 다른 한 사람은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망하고 누가 이기느냐?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리느냐?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됩니다. 여기 에는 반드시 선악간의 투쟁이 개재되어 들어오게 됩니다. 악이 먼저 동기가 되어 가지고 불평불만을 시작하게 되는데,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한 무리는 반드시 제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열사람을 중심삼고 사는 데 있어서 괜히 짜증을 내고 괜히 불평을 하고 괜히 타박을 하는 사람은 결국 열 사람 권내에서 물러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뭐냐?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반신반의를 갖는 것입니다. 반신반의뿐만아니라 입을 열어 가지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반항하는 것입니다. 반항을 하게 되면 여기에는 반드시 싸움이 벌어집니다. 사탄은 이런 자리를 노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리를 이용해 가지고 나 하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사탄의 작전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 반드시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자로서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이 뭐냐? 이런 어려운 환경에 자신이 말려 들어가지 않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신반의하지 말고 붙평불만을 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을 잡는 데 있어서, 사탄을 박멸하는 데 있어서 제일 필요한 무기입니다. 사탄을 환영하고 사탄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만드는 무기는 뭐냐? 불평불만이요, 반신반의요, 반항과 투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야 되겠습니다. 반대의 입장에 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을 대표하여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나는 열 사람 전체를 위해서 있고, 열 사람 전체 때문에 산다 하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은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의 불평을 수습해 줍니다. 수습하는 일은 누구의 일이냐 하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어지럽게 하는 악한 사람을 선한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은 하나님이 싸워서 방비해야 할 일이지만, 열 사람을 대표한 사람은 그 환경의 어지러움을 자신이 수습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습해 주고 감싸주며 품어 주는 것은 자신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할 일을 대신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의 일을 대신한 자리에 섰기 때문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희생하며 전체를 위해 주는 사람을 보게 되면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전체를 위해서 밤이나 낮이나 희생하고 자기들을 위해서 수고한 것을 전부 다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은 그런 실적이 있는데 자기는 아무런 실적도 없으니 불평하다가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쑥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더라도 전체를 위하는 사람은 비록 몸뚱이는 땅에 있어도 하나님 대신 악을 방어하는 방패 놀음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같이하지 않을 순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대해서 싸우는 사람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할 수 있느냐? 내가 전체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됩니다.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전체 앞에 지장이 있다 할 때에는 그것을 자기의 책임으로 알고 몸둘 바를 모르며 밤을 새워 가면서라도 기도 하고 불철주야 있는 정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몸은 땅에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협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는 발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영광과 소망이 머물며 강한 힘이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시니 생명력이 깃드는 것입니다. 거기에 사랑의 마음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째 도수가 뭐냐? '나는 전체를 위해서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밤이면 밤, 낮이면 낮, 때를 막론하고 24시간 그들을 위해서 있다' 하는 사상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사탄세계에서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를 중심삼고 '아이고, 우리집에 있을 때에는 요렇게 안살았는데 요게 뭐야? 꽁보리밥을 먹고 어떻게 살아? 지금까지 꽁보리밥 먹지 않고 살았는데 이게 뭐야? 내가 매일같이 찬방에서 어떻게 살아? 여자가 이런 옷을 입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거리를 나가나?’ 이렇게 전부 다 불평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지방에 나가 있는 여러분이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서 불평을 하려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불만을 느끼려면 한이 없습니다. 뜻에 대해서 반신반의 하려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반항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한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불만하지 않고 반신반의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으며 절대 믿고 절대 순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대신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길에는 반드시 부흥이 되고, 반드시 번식이 벌어진다 하는 것이 원리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많이 대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많은 분야에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 자리는 지극히 어려운 자리입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지극히 큰 것을 위하고 있는 자리가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작은 여자의 몸으로 무엇 때문에 여기에 나와 있느냐? 삼천만 백성을 위해 나와 있는 것이요. 30억 인류를 대신해 나와 있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하고 혹은 반항하고 투쟁하는 30억 세계 인류의 이런 여건들을 제거하기 위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불평불만하는 세계를 방지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불평불만할수 없습니다. 또 절대 반신반의할 수 없습니다. 백 퍼센트 믿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의심되어도 믿어 줘야 합니다. 한 번 속아 주고 두 번 속아 주고 세 번만 속아 주면 그 자체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 방식을 가지고 나간다면 여러분은 비록 그런 환경에 서 있는 개인이지만 전세계를 위하여 복귀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책임을 하나의 초점에서 대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편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주도적인 책임을 하는 자리에 있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자리는 가장 귀한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전체를 위한 입장에 있다는 관념을 가진 사람은 맨 나중까지 남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맨 나중까지 남아지면 어떻게 되느냐? 열 사람이 살다가 다 망하고 그 사람만 남아지게 되면, 망한 밑천을 거두게 되면 자기가 가질 수 있는 분깃의 몫보다도 많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열 사람이 각각 백만 원씩 있다면 전부 다 합하면 천만 원입니다. 그 천만 원을 가지고 사는데 전부 다 파탄 되어서 망했다면 망한 줄거리가 백만 원 이상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통일교회가 얼마만큼 가다가 망하게 된다면 통일교회는 망하지만 나는 안 망한다 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가 망해서 다 도망가고 흩어져도 나는 맨 나중까지 남아서 장사를 치르고 전부다 정비해 놓고 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만약 통일교회가 끝이 나더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나중에 딴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딴 곳에 버려져도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기 때문에 새로이 인도될 수 있는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도 '끝까지 참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중간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가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 남아 있는데 끝입니까? 자기 혼자 남더라도 끝까지 참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불평불만, 반신반의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참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끝까지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개인의 뜻은 이스라엘을 위한 뜻밖에 되지 않지만 아버지의 뜻은 세계를 위한 뜻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세계를 위한 뜻 앞에 자신의 뜻은 지도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뜻을 남기면 내 뜻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중심삼고 가겠다고 자기를 부정하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죽었지만, 망한것 같지만 흥한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하나님께서 같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은 부활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성인 현철들을 보게 될 때, 그렇게 죽은 사람은 후대에 반드시 들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나가서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열 사람을 대신해서 살줄 알아야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널리 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완전히 책임지고, 열 사람을 대신해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가 되어야 어디에 나가더라도 백 사람을 대할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을 책임졌는데도 불구하고 아홉 사람을 거느린 입장이라면 불합격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어떻게 열 한사람을 구해 줄 수 있어요? 구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는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의 여건들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 더우기 지금 통일교회 전도대원으로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여건들이 수두룩합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야단하니, 시동생 시아주버니 할것없이 시집 식구 전부가 반대합니다. 또, 자기 집에서도 불평을 합니다. 남편과 자식들이 '이게 뭐야'라고 불평을 합니다. 불평 덩어리에 딱 올라앉았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 이래'라고 불만하기 딱 알맞고, 불평하기 딱 알맞고, 반신반의하기 딱 알맞고, 반항하기 딱 알맞다는 것입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이 이상 반대하고 불만하고 반신반의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때에 혼자였고 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으면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자식까지 함께 죽는 것과 같으니 불평불만 덩어리 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하려고 하면 한이 없습니다. '무슨 뜻이 이래' 하면서 불평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혹시나 선생님이 우리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나' 하며 의심하면 끝이 없습니다. 이것이 꼬리를 물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있어요, 없어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필시 '나는 통일교회에 괜히 들어왔어. 내가 옛날에 대학에 다닐 때에는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는데, 지금은 동네방네 가는 곳곳마다 칭찬 대신 손가락질을 받고 쉬쉬하니 이거 살아 먹겠어? 이렇게 불평불만하기에 딱 알맞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평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이 땅에서 불평거리의 최고의 정거장이냐. 종착점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자신이 지금 전도하고 있는 자리가 인간 세상에서 불평할 수 있는 맨마지막 자리일 것이냐를 생각할 때 이보다 더한 자리도 있을 것입니다.
복귀를 하려면 완전복귀를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이 최고라 불평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서 거기에서 불평하지 않고 승리하고 돌아 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 자신은 완전복귀를 못 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은 아직까지 완전복귀할 수 없는 자리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탕감복귀라는 것은 거꾸로 도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좌(左)로 돌던 것이 우(右)로 돌아야 됩니다. 거꾸로 돌아야 됩니다. 거꾸로 돌고 돌아서 다른 세계로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이 불평불만으로 꽉 찼다 할 때에 천국이 그 가운데 있겠어요, 없겠어요? 천국이 그 마음에 들어갈 틈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천국은 불평불만하는 데에는 없습니다. 천국은 불평불만하는 데에 서는 멀리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반신반의하고 반항하면 완전히 떠나가는 것입니다.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하고 반항하는 자리는 언제나 사탄의 소굴이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일선을 만들어야 됩니다. 만약 불평불만하고 반신반의하고 반항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나는 하나님을 대표한 사람이다. 다 망하더라도 나는 망하지 않고 남는다. 망하는 것을 붙들고 내가 못 망하게 하겠다'라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있어서, 그자리에 있어서, 그 환경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사랑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있는 자리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싸우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싸우는 자리 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열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전도하게 되면 서로가 먼저 열 사람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려면 희생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반대의 입장에서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열 사람을 전도하는데 불평불만하며 전도하면 전도가 돼요? 열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이 '뜻이고 뭣이고 이게 뭐야? 하면서 불평한다면 그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을 듣겠어요?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아무리 칭찬해 주며 자신의 말을 들어 보라고 해도 불평하게 되면 절대 전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불평불만해서는 안 되므로 인내하고 희생 해야 됩니다. 참고 희생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참고 희생만 하게 된다면 열 사람이 나를 나쁘다고 합니까?「좋다고 합니다」알긴 아는구만요. 전체가 나를 위하겠어요, 깎아 내리겠어요? 위한다는 것입니다. 참고 극복하지 못하면 위하다가 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극복하는 것을 계속하면 위하는 것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인내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 데에 있어서 제일 첫 순서는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참고 견디는 거예요? 전체를 위해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전체의 목적을 위해서 중심적인 사상을 가지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불평불만이 동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하늘나라와 하늘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주의 중심이시고, 전체를 책임진 분이시기 때문에 나 자신도 전체의 중심의 자리를 대표했다는 신념을 갖는 것이 무엇보 다도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나는 전체를 위해 있다고 해야 됩니다. 나를 위해 있다고 하는 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평불만이 수두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삼천만 민족을 대신했다 할 때에는, 삼천만 민족 가운데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이 순간에도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이 시간 자유롭게 저 뜰을 거닐고 싶고 자유롭게 저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은 있으되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 않느냐? 혹은 어떤 사람 앞에 자기의 사연을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비참함 가운데에서 신음 하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불평불만이 가득찬 이 모든 전부를 대신 탕감복귀하기 위한 제물이니 내가 그 이상의 불평까지 달갑게 받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불평을 달갑게 받겠다고 하는 것이 불평의 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을 받으면 불평의 부자가 되어야 할 텐데 불평의 부자가 되지 않고 도리어 하늘의 부자가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것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그리 하면 사탄세계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것에 비례하는 부(富)가 더 찾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평불만, 혹은 반신반의, 모든 반항의 여건을 내가 맞겠다 할 때는 전체에 대해서 불평불만의 대표자가 되겠다는 거예요? 반신반의 반항하는 대표자가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맡아 가지고 굴복시키 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절실합니다.
그렇게 되어 가지고 전국가의 불평불만의 권, 반신반의의 권. 혹은 반항의 권이 머리를 숙여 순종하게 될 때는 탕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나 자신으로 말미암아 탕감이 시작되기 때문에 나는 그 나라에 있어서 하나님 대신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축복을 응당히 받게 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는 데 있어서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시간이 걸리니까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나라가 전부 다 투항할 때까지 참아야 됩니다. 견디고 참아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어떤 지구장이나 부장이 '내가 15년, 17년, 혹은 20년이 넘도록 믿으면서 지금까지 견디고 참아 왔으면 됐지 않소. 더 못 견디 겠소' 한다면 그거 되겠어요? 선생님이 더 못 견디겠다고 후퇴하면 몰라도 그 사람이 그런다고 해서 통일교회가 망할 것이냐? 선생님이 끈질기게 참고 견디어 나가게 되면 망하지 않습니다. 또.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선생님을 보게 되면 떳떳한가요? 중심 자리에 서서 책임지고 나가는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악의 싸움에 있어서 탕감이라는 비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그걸 못 하게 되면 문제가 큽니다. 불평불만하는 것은 사탄이 좋아할 수 있는 요건입니다. 이것을 해치우기 위해서 '이놈의 자식 어디 해봐라' 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나가면 동네방네가 야단하고, 욕을 하고, 반대를 하고 핍박을 합니다. 그럴때 여러분 혼자 있는 것보다는 자기 주위에 자기편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한 열 사람이 같이 있을 때에는 티격태격하다가도, 사탄세계에서 핍박하면 '아이고, 이거 안 되겠다' 하면서 그때에는 한편이 되려고 한다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하나 안 되었더라도 원수와 큰 싸움이 벌어 지게 되면 하나되는 것입니다. 누가 나가서 문제를 일으켜 가지고 동네방네가 야단하게 되면 더 큰 사탄이 나타나 발동하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이 가만히 보니 양심적인 사람을 악한 녀석들이 핍박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양심적인 사람의 편을 들고 나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탄편에 있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가도 더 악한 악당이 나타나서 야단하게 된다면 선한 편이 되어 가지고 편들려고 합니다. 그런 원칙적인 작용을 해가지고 규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집안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새벽부터 싸움을 했는데, 화가 난 부인이 남편이 밖에 나갈 때에 '저놈의 영감, 오늘 나가서 확 죽어 라'고 욕을 퍼부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영감이 밖에 나가서 사고가 나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여편네는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고 영감, 내가 잘못했소' 하게 됩니다. 큰 사건이 앞에 벌어지게 되면 '아이고 잘못했소. 용서하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이들보다도 더 악한 무리로 하여금 들이 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들이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작전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을 잘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들이쳤던 것입니다. 그 방법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핍박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하나되게 될 때에는 핍박을 못 합니다. 열 떼거리가 한꺼번에 우리 집을 공격해 오더라도 노친네를 중심삼고 여덟 식구가 전부 다 한 사람씩 꽉 붙들고 돌아가면 끌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세게 된다면 야단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열 사람을 중심삼고 책임져 가지고 나가 싸우게 된다면 외부의 핍박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되어 가지고 나가게될 때에는 외부의 핍박이 없지만 하나가 안 되어 물러설 때에는 더 악한 패들이 몽둥이를 들고 후려갈기려고 합니다. 그때야 '아이고 안 되겠다. 하나님! 하면서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그런 일이 없게끔 각자가 열 사람을 대표했다는 입장에서 하나되는 것이 천칙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 자신이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의 여건을 전부다 잡아먹겠다는 마음을 갖고 책임을 지고 인내로 극복하고 견디어 전체를 위한 입장에서 나가게 될 때, 그 열 사람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출세하게 되면 그는 언제나 열 사람의 어머니와 같은 입장이 됩니다. 그래서 '아이구, 어머니 어디 가세요? 같이 따라가고 싶어요'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다는 거예요.
어머니 같고 형님 같은, 친구 중에 제일 가까운 친구인 그 사람이 하늘 나라 이야기를 하게 되면 쏙쏙 맛이 나지만, 딴 사람이 말을 하게 되면 기분이 나쁘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맛나는 사람이 되겠어요, 지지리 맛없는 사람이 되겠어요? 어떤 사람이 되겠어요? 전부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지요?「예」
여러분은 삼천만 민중을 대신하고 세계 인류를 대신했기 때문에, 자신을 그 판도에서 벌어진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 투쟁의 요건이 엇갈리고 있는 환경에 대응하게 하고, 우리 열 식구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누가 책임지느냐? 그것을 달갑게 맞고 몸부림치며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며 짐을 지는 사람이 있을 때, 그로 말미암아 외적 사탄세계는 무너져 가는 것입니다. 탕감역사는 이렇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됩니다. 주인된 부모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해 뿌리자'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하는 날에는 부모의 대신자가 안 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불평 하면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이고 이거' 큰일났구나' 하는 자식들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울거든 자식들은 부모를 위해 죽으려고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표어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적인 사상을 중심삼고 통일시키는 사상입니다. 주체를 중심삼은 통일사상입니다. 그러면 '통일'의 '통'은 무슨 통 자냐? 거느릴 통(統) 자입니다. 거느리는 입장은 모신다는 거예요. 이끌고 간다는 거예요?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끌고 가니 오죽이나 힘들겠어요? 다 이끌고 가서 나중에 편안한 자리에 가게 되면 그때는 그들이 모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편하고 불평할 것이 없으니까 '아, 요렇게 좋은 것이 누구 때문이냐? 선생님 때문이구나' 하면서 모시지 말래도 감사히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민이 모실 수 있는 영광의 때까지는 언제나 그 책임을 짊어져야 하니 수난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대구면 대구지구, 어떤 지구면 어떤 지구에 일이 척 벌어지면 지구장보다도 선생님이 더 고생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걱정하지만 여러분의 걱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통일교회에서 여러분이 하나 잘못하면 그 책임을 전부 다 선생님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다른 단체들은 안 그러는데 우리 통일교회는 조그마한 무슨 사건이 있어도 사람들은 '아, 통일교회를 보라구. 문선생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전부 다 선생님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이 나쁜 거예요, 좋은 거예요?「좋은 거예요」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뒤집어쓰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좋은 거예요. (웃음)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종교단체들이 선생님에게 다 뒤집어 씌웠어요. 그거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좋은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 가운데에 시집 장가를 가서 못살고 하는 것을 다 우리 통일교인들이 도매금으로 맡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맡느냐? 남편과 함께 맡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잃어버리고 맡아야 됩니다. 자식을 데리고 맡지 말고, 자식을 잃어버리고 맡아야 됩니다. 형제 친척을 데리고 맡는 것이 아니라 다 잃어버리고 맡자는 것입니다.
다 잃어버리고 맡았다면 상금을 주게 될 때에는 누구부터 줘야 되겠어요? 대답해 보십시오.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줘야 되겠어요, 안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줘야 되겠어요? 안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줘야 됩니다. 안 갖고 있는 사람은 밉상주의예요, 사랑주의예요? 사랑주의라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려고 할때에 제일 나쁜 것을 줘야 되겠어요, 좋은 것을 줘야 되겠어요?「좋은 것이예요」 좋은 것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상은 어려움을 맡은 사람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잃어버린 자리에서 일했기 때문에 상을 주려면 더 좋은 것을 줘야 됩니다.
그렇게 되니 남편 중의 상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자식 중의 상자식, 부모 중의 상부모, 친척 중의 상친척. 나라 중의 상나라, 세계 중의 상세계. 주인 중의 상주인이 되는 거예요. 이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좋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늘어지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죽는 일이예요, 사는 일이예요?「사는 일입니다」 복받는 일이예요, 망하는 일이예요?「복받는 일입니다」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복까지 붙여 오는 것입니다. 끌어 오는 거예요. 거두어 오는 것입니다. 누가 그 복을 거두어 오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거두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를 통하는 수많은 영통인들이 영계를 보면 모두 선생님에게 달라붙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제 상받는 비결도 알았지요? 자 그렇게 상을 받았다면 그게 멋진 상이예요, 시시한 상이예요?「멋진 상입니다」 누구와 바꾸고 싶은 상입니까, 절대 바꿀 수 없는 상입니까? 바꿀 수 없는 상이니 제일 행복하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만이 이방법을 중심삼고 민족을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라구요. 오늘날 이 시대에 어느 단체가 이런 일을 합니까?
오늘날을 볼 때에 끝날이 다 됐습니다. 그렇지요? 끝날이 되어 어느 사람이나 종교 단체가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한다고 할 때 그들이 우리 이상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나 단체가 우리보다 더 좋은 상을 받아야 돼요. 나쁜 상을 받아야 돼요?「좋은 것을 받아야 됩니다」 더 좋은 것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사람들보다 더 좋은 것을 받고 싶어요, 나쁜 것을 받고 싶어요?「더 좋은 것을 받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더 좋은 것을 받고 싶으면 앞에 서야 돼요, 뒤에 서야 돼요? 「앞에 서야 됩니다」먹는 데 있어서 일등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면 상대보다 더 많이 먹어야 됩니다. 또 옷을 잘 입는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면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 됩니다. 그 반대로 안 먹고 견디는 데 있어서 일등이 되고 싶으면 제일 안 먹고 견뎌야 됩니다. 기분 나쁘지요? 기분 나빠요, 좋아요?
그래서 통일교회는 찌들어 마르고 꼬부라질 수 있는 끄트머리에 가더라도 '우리는 누구보다도 더 큰 것을 위해서 일한다. 세계를 위해서 일한 다'라고 해야 합니다. 죽더라도 그렇게 죽어야 됩니다. 그렇게 죽은 단체가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가만히 계산해 봤을 때 그 도수가 99도까지 찼다고 합시다. 1도만 채우면 100도인데 그 99도 보고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그 1도가 99도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00점을 좋아해요, 99점을 좋아해요? 99점짜리 천 개와 100점짜리 한 개와 바꿀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나님도 그런 사정이 있을 게 아니예요? 그렇지요? 대관절 탕감복귀하는 데 있어서 100점의 곳이 어디냐? 여러분 생각해 봤어요? 그런 곳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통일단체가 전세계를 위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참고 견디면 별수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참고 견디면 복받는 다'고 하지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알기는 아는군요. 그것을 알기는 아는데 그렇게 못 하기에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망하지는 않습니다.
참고 견디는 데 있어서 100점의 표준이 어디에 있느냐? 그 기준은 목을 내놓는 것입니다. 목을 내놓고 죽는다면 어머니 아버지는 엉엉 울면서 '조금 더 살지 왜 그래?' 하고, 동생들은 '아이고 형님 누나, 왜 지금 죽어요? 하며 온 식구가 야단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자리보다도 고독단신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고독단신이라도 자기가 나가 놀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때려죽이려고 하는 자리, 때려죽이려고 하는 패가 열 사람보다도 더 큰, 나라가 움직이고 세계가 움직여서 때려죽이려고 하는 자리,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자리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회를 대한민국만 반대하지 말고, 일본 미국만이 반대하지 말고 세계가 반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싫어요, 좋아요?「좋아 요」 말로는 좋지만 당해 보세요. 눈이 어떻게 되고 얼굴이 어떻게 되겠어요? 여러분은 안 당해 봤지요? 그런 일을 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몰아 치더라도 '나는 책임지고 하나님을 위하여 변호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싸워 나간다. 하나님이 있는 한 나는 절대 뿌리가 뽑혀지지 않는다. 나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라고 해야 됩니다.
왜 망하지 않느냐?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나의 생명을 노리면 3대이상이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3대 이상 꺾여 나가게 되면 3대 이상의 편이 생깁니다. 그러기에 상대편에서 한 번 움직여 공격했다가 후퇴하는 날에는 나에게는 그만큼 이익이 남습니다. 싸움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여자로서 참고 견디는 데에 제일 높은 고등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느냐를 생각할 때에, 통일교회 문선생이 명령하는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보세요. 그렇게 하면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좋아하겠어요? 시누이 시동생 시아주버니가 좋아해요? 또, 자기 집의 아버지 어머니가 좋아해요? 자기 형제들과 친척들이 좋아해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도 '저게 사람들이야? 목석 같은 것들이 지'라고 합니다. 별의별 쑥덕공론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을 데리고 가면 모르겠는데 남편을 버리고 가고, 그 다음에는 자식도 버리고 간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시부모님도 '어휴, 불쌍해서 안됐다'고 하는 것입니다. 친척들도, 고향집에서도, 엄마 아빠도 '불쌍해서 안됐다. 아이고 이러면 안 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안 되긴 뭘안돼요? 죽을 수 있는 그 이상의 자리까지 가야 합니다. 이런 자리 이상의 자리가 있겠어요? 아무리 봐도 여자에게는 그 이상의 자리는 없을것 같아요. 있겠어요, 없겠어요? 없으니까 망하려면 깨깨 망하라는 것입니다. 망하려면 깨깨 망하고 그 다음엔 흥하는 것도 깨깨 흥하라는 것입니다. 최고로 흥하라는 것입니다. 망하려면 곱게 망하고 흥하려면 멋지게 흥하라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가만히 볼 때에 이게 망할 것 같아요, 안 망할 것 같아요?「안 망합니다」이렇게 해 가지고 망할 것 같아요? 앞으로 삼천만 민중은 이 결정적인 사상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런 쓰라림을 극복하며 나라를 위한 충절의 심정이 엇갈려 있는 곳을 거쳐 갈 때에는 어느누구도 무릎을 꿇고 천상의 만복을 받으라고 칭송하며 찬양하지 않고는 못 지나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려면 이 길을 지나가야 되기 때문에, 천국 갈 사람은 천년 만년 여기에 무릎을 꿇고 찬양하고 존경하며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한테 상을 주는데 이 이상 더 큰 상이 어디 있겠어요? 이 이상 더 큰 상이 어느 상이예요? 금덩이예요? 금덩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상은 상 중에서 제일 큰 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불평이 극할 수 있는 자리, 반신반의와 반항이 극할 수 있는 자리지만 참고 넘어가라는 것입니다. 왜냐? 우리는 부모 대신자이기때문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전체가 망하고 우리가 낙심하면 전체가 낙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평불만하면 전체가 불평불만하는 실상이 벌어져 영영 끝장을 보겠고 반신반의하는 세계가 영원히 남겠기 때문입니다. 또한, 반항 하고 싸우는 세계가 영원히 남겠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없애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골수에 이런 사상이 박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이냐? 그 사람이 지옥편이면 싫어서 바라보는 것이요, 하늘편이면 좋아서 바라볼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알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탄편이면 여러분을 싫어하는 것이요, 하늘편이면 여러분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마운 것이요, 나빠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쌍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망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나를 반대하면 벌받아야 지. 망해야지' 하는 마음을 없애야 됩니다. 그런 마음이 아니라 위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불쌍하다는 마음이 앞서 가지고 동네를 봐도 불쌍해서 눈물이 나야 됩니다.
예를 들어 농촌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를 봅시다. 나이가 7,80이 되도록 꽁보리밥을 먹기 위해 일생 동안 그저 아침부터 지게를 메고 나가 일하다가 해가 저물면 기운 없이 들어옵니다. 이런 할아버지를 볼 때, 여러분은 '불쌍하다. 내 할아버지 같다' 하며 모셔야 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할아버지를 버리고 남의 할아버지를 자신의 할아버지로 모신다면 여기서부터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천국 가정과 천국 환경이 여기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가까운 것을 희생시켜 악한 가인을 하나님의 아들딸보다 더 사랑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입장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넘어선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 서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나라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나라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인내와 극복, 이 말이 뭐예요?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하나도 없군요. 싫긴 싫지요?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 사람이 참고 견디며 살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락했기 때문에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합니다. 보응을 치르고 넘어 가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인간 조상이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그것을 탕감복귀하려면 끝까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원칙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는 사탄이 꼼짝 못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고 견디어야 되느냐 하면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6천년 동안 참고 견디어 나오신 분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분이 누구라고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천품과 피살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세계에서의 생활철학은 참고 견디는 것이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라구요?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부터 효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이요, 충의 도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나라도 세계도 해방의 운동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좋은 세계도 환영이요, 나쁜 세계도 환영이니 지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러한 원칙하에서 참고 견뎌야 됩니다.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5대가 한 집안에서 사는 어느 한 종가집에 종손 며느리로서 지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어떻게 5대가 되는 식구들과 함께 사는지 그 비결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할머니는 골방에 들어가더니 독을 열어 보이더라는 거예요. 거기에 참을 인(忍) 자가 서너 독에 꽉 차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참을 인(忍) 자, 참기만 했겠어요? 참고 견뎠는 것입니다.
견디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목적이 없으면 못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를 잡아죽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원수를 몽땅 포위해서 전멸을 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를 대표해서 주님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아야 합니다. 그런 목적관념이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고 견디기만 하면 안 됩니다. 참고 견디기만 하고 '아이쿠 힘들어라' 하면 되겠어요? 참고 견디더라도 참고 견디는 것 같지 않게끔 감사하며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참고 견디는 데도 감사한 마음과 찬양하는 마음을 갖고 참고 견뎌야지 불만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이 오다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는 데는 무엇이 필요하냐? 뭐라고요?「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참지 못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밑받침되지 못하면 참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하느냐? 보라구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내려다보고 사는 거라구요. 올려다보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래도 통일교회를 믿고 하나님을 알고 죽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겠다고 하는데. 통일교회에 들어오지도 않고 말씀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그러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거라구요.
감사의 마음과 찬송의 마음을 앞놓아가면서 참고 견디는 곳에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 이상도 참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 아무개야. 더 이상 참지 마라, 그 길을 더 가지 마라' 하고 정지시키는 것이 복귀의 자리입니다. 감사와 찬송의 마음을 가지고 참고 견디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며 찾아오셔서 '세상 가운데에 너 같은 아들이 어디에 있으며, 딸이 어디에 있겠느냐? 지금 네가 하는 일을 딴 사람에게 시키겠다' 하시며 그를 안식의 자리, 하늘땅에 없는 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옮겨 놓으려고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예」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 있는 정석온 노친네 알지요? 철산에 있던 감사패의 딸. 그들은 감사패인데 매를 맞아도 (이하 인용부호 안의 말씀은 박수치며 장단맞추며 노래로 하심) '매를 맞았으니 감사합니다. 핍박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욕을 먹었으니 감사합니다' 전부 감사로구만. '내 사랑하는 아들딸을 하나님이 데려가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과 갈라놓았으니 감사 합니다'(웃음) 알고 보니까 진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감사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저 감사하고 찬송 해야 됩니다.
아침부터 부인이 바가지 긁고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우고 죽는 소리 할 때도 '한 식구가 화가 났으니 감사합니다' (웃음) 그래 보라구요. 세 사람만 그래 보세요.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십 분을 넘기나. '갈 데로 가라구. 아이구 모르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자극이 되면 전보다도 사이가 좋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동네에서는 그들을 '감사패'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철산의 감사패 교단이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아하, 그들은 대한민국에 큰 교육을 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교단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해방 이후에도 몰리고 쫓기는 처참한 환경을 많이 당해 온 이민족 앞에 이런 교단이 있는 것은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가까와 온다 그 말이거든요. 그런 것을 볼 때 한국 백성은 망하지 않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참고 견디며 감사와 찬송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느냐?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뭘 해야 하느냐? 상부상조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도와주며 서로 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같이 살고 같이 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서로 돕고 서로 의지해야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탕감복귀하려면 세상에서 맨 처음 뭘 해야된다구요? 악착같이 참고 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고맙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나만 됐으면 됐지. 남들이야 문제가 안 된다. 이젠 됐으니 한 때가 되거든 나만 도망가면 된다'고 하면 되겠어요? 자기에게 있는 재산과 모든 것을 내놓고 줄을 달아 가지고 어서 와라 어서 와. 너희들 먼저 가라' 하며 다 간 후에 자신은 뒤에서 제일 늦게 가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구해 주며 서로 도움받기 위한 인연을 맺어야 통일된 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도와주어야 되겠어요? 감사 찬송하는 사람들이 먼저 도와주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도움받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 도와 주기 위해서 나가 있어요?「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참고 견디어야 됩니다. 다음에는 감사 찬송해야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한 것이 별 것 아니라 그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상부상조해야됩니다.
누가 먼저 도와줘야 된다구요?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누구를 도와주어야 합니까? 대한민국과 세계를 도와주어야 됩니다. 도와주는 것이 쉬워요?「어렵습니다」 주는 자는 복받는다고 했어요, 벌받는다고 했어 요?「복받는다고 했습니다」 받는 자보다도 주는 자가 복이 있어요, 없어 요?「복이 있습니다」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주면 잘 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절반을 주면 갚아 줄까 말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3분의 1을 주면 먹다 남은 것이나 쓰다 남은 것을 주는 것같기에 불평이 가해집니다. 차라리 안 준 것만 못 합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3분의 1은 안 주는 것만 못 합니다. 주려면 3분의 2는 주어야 됩니다. 왜냐하면, 타락은 소생기, 장성기, 3분의 2권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3분의 2 이상의 권은 완성권이기 때문에 하늘에 속할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분의 2의 기준을 넘어서게 주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분의 2의 기준이 되려면 50퍼센트나 60퍼센트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3곱하기 3은 9이니까 60퍼센트는 조금 넘어야 하고, 70퍼센트는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다니면서 시험을 보고 점수를 받게 될 때에도 60점과 70점은 10점 차이인데도 70점을 받으면 기분이 좀 낫습니다. 낙제는 안하니까 그래도 기분이 그렇고 그렇지만 60점을 받으면 기분이 잡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6수는 싫어하고 7수부터 좋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7수에서부터 모든 소망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6일을 지내고 안식일을 맞아야 소망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왜 그런지 70점이 되어야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80점이 되면 더 좋다고 하고 90점, 100점이 되면 더 좋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70퍼센트 이상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협회 원리시험도 70점을 못 받으면 안됩니다. 70점을 못 받으면 불합격입니다. 70점이 넘어야 합격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3분의 2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줘야 됩니다. 그런데 '내가 어제 그렇게 주었으니까 그만큼 돌려 받아야지. 뿌린 대로 거두는데, 뿌리면 번식하게 되어 몇 배를 거두게 되는데 내가 이렇게 줬기 때문에 이 다음에 몇십 배를 받아 갈 거야'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 준 것입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망하는 거라구요. 그건 장사꾼입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가 아닙니다. 3분의 2를 주고 자신이 줬다는 생각을 잊어버려야 됩니다. 남을 도와주고 기억하는 사람은 복을 빨리 못 받습니다. 알겠어요?
남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수첩에 기록해 가지고, '내가 도와주었으니 이다음에 도와준 것을 찾아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 도와준 공적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는 때와 마찬가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많이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도와준 것을 모른다고 하게 될 때에는 복은 이미 앞에 와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됐기에 잊어버렸느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몇천 년에도 해당하고, 몇만 년에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몇만 년이 지났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라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도와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복을 빨리 받는 것입니다. '내가 도와주었으니 갚아 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복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받겠다고만 한다면 그런 사람은 전부 다 사탄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나오시지 않습니다. 받는 것만 좋아하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뭘 주겠다고 하면 서로가 좋은 것 가지려고 날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는 천국 가고 하나는 지옥 가게 된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아무 생각없이 여러분에게 주게 된다면, 선생님은 천국에 가지만, 여러분들은 서로 좋은 것을 가지려고 싸우다가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 경쟁하는 사람은 제일 나쁜 자리에 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가운데에서 제일 상급의 사람이 그렇게 했으면 그 사람이 제일 나쁜 곳으로 떨어져 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위한 행동은 더디하고, 남을 위한 행동은 서둘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현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남을 위한 일을 중심삼고 준비도 없이 서두르는 것이 잘하는 것이냐, 못하는 것이냐? 잘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사탄세계는 불평 불만과 반신반의와 반항과 싸움으로 이루어지지만, 하늘나라를 이루려면 먼저 참고 견뎌야 됩니다. 인내하고 극복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뜻길을 가는 데 있어서 민족의 반대를 받았고 교단의 반대를 받았으며, 더 나아가서 자기 친척들에게 몰매를 맞았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까지 저버림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예수님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에게 '당신이 어떻게 내 엄마 아빠요? 하는 것을 볼 때에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이렇게 되면 정성들여 키운 모든 과거지사가 전부 다 기쁨의 요소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화의 요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너 때문에 내가 밤잠을 안 자고 너를 이렇게 키웠는데…'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자식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스러운 자리이며 과거를 전부 들추어 가지고 저주할 수 있는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렇지요?「예」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불신이라는 것은 갑절로 망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 견디고 희생하며 온유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만사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만일 아무리 수십 년을 잘했다 하더라도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한다면, 그 한마디는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과 같습니다. 그 못은 바늘을 꽂아 놓는 것보다도 몇백 배 몇천 배 더 아픈 것입니다. 그 한마디로 말미 암아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는 불평불만은 절대 불효의 요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신반의도 그렇고, 반항하는 마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볼 때에 예수님이 불평불만할 수 있었던 입장인가, 아닌가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준비시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보낸 아들입니다. 그런 예수님입니다. 그렇지요? '네가 가거든 마리아에서부터 요셉 가정이 일치되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 되어 너를 군왕으로 모셔 줄 것이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또 '너는 세상에 가게 되면 이런 책임을 하고 이런 사명을 해야 된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겠어요, 안 가르쳐 주었겠어요? 그런 약속을 받았겠어요, 안 받았겠어요?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살인 강도, 반란패가 되어 있고 국가의 주권을 전복시키려는 반동분자로 몰렸습니다. 또, 교회는 예수님 편이 된다고 하였는데 원수가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충성된 백성이 된다고 하였는데 원수의 백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제대로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전부 다 맞지 않았습니다. 가정에서도 안 맞고, 나라에서도 안 맞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참아라'고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기당한 것 같아요, 안 당한 것 같아요? 속은 것같아요, 안속은것 같아요? 약속대로한것 같아요, 안한것 같아요? 전부 다 틀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만이 꽉 찼겠어요, 안 찼겠어요? 불만이 꽉 찰 수 있는 것입니다. 불만이 꽉 차면 불평이 나오겠어요. 안 나오겠어요? 불평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평하면 반신반의를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믿겠어요, 못 믿겠어요? 못 믿으니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야. 다 요사스러운 것이다' 하고 반항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신 것입니다.
선한 일은 끝까지 선한 일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왔다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교회를 대표해서 왔다는 것은 선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 사가랴 가정, 즉 세례 요한을 중심한 가정의 일파를 중심삼고 요셉 가정은 사랑을 맺었습니다. 그 가정을 중심삼고 그들이 충신이 된다고 했으니 그들은 선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지금 자신이 선한 자리에서 반대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약속한 자리도 틀림없고, 자기 자신도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된 것은 누구 때문이냐? 처음에는 사탄 때문이요. 그 다음은 사탄세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지한 백성들, 무지한 교인들이 꾀임에 넘어가서 그렇게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가슴에 남는 것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 아버지밖에 없다. 내가 이제 여기에서 죽더라도 나는 악한 사람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내 죽음을 알아줄 것이다. 내가 최후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알아주는 선한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 줄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내 뜻은 당신과 약속한 뜻이었고 내가 죽는 것은 또다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사랑의 섭리이오니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불평이 있어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보시오' 라고 했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극복하는 자리, 참고 견디는 자리에서 감사 찬송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의 몸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지요? 누구한테 바쳤어요?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내주기는 미안하니까 '내 죽음을 아버지 앞에 드리기는 미안합니다. 아버지께서 죽으라고 하는 자리에서 죽고 또 죽어도 또 죽어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줄 아옵니다. 이 몸을 당신 앞에 바치지 못하오니 원수인 인류에게 남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류에게 그런 심정을 넘겨 주고 죽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아는 하나님께서도 통곡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은 죽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부활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참된 생명은 죽고나서 사탄세계에 참소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편들 수있는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으로 인해 하늘나라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진정, 끝까지 도와주면 인간이 안 도와주고 안 갚아 주더라도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갚아 주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늘편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사람편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보통 여러분들은 사람이 갚아 주길 바라지요? 그렇지요?
여러분들은 전도 나가게 되면 조금만 섭섭해도 '여자들에게 왜 이것을 하라고 그래 ? 세상 같으면 누가 이러고 있을까? 통일교인들은 여자들을 몰라줘' 라고 하며 알아 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낮은 사람이 알아주면 무슨 복을 받겠어요? 높은 사람이 알아주어야 복을 받지요. 그렇지요? 하나님은 높은 곳 중에서 최고로 높은 데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묵묵히 참고 나가야 합니다. 말없이 참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사람이 갚아 주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갚아주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분의 뜻은 크고 그분의 선은 위대하기 때문에 그분의 복을 천년 후에 받는다면 천년도 기다리고 나가야 합니다. 만년 후에 받을 것이 틀림없다면 만년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참고 나가는 입장에 서면 우리의 움직임은 그 상을 받을 때까지 발전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상을 받고 나면 그 다음에는 딴 것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끝내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런 길을 갔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가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은 마리아의 아들로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죽었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서 죽은 것이요, 나라를 위해 죽은 것이요, 수많은 인류를 위해 죽은 것입니다.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가 흘린 피는 개인의 피라도 인류를 대표한 피이기 때문에, 사탄을 막아내 가지고 새로운 천국을 개문하여 제 2이스라엘 기독교 문화권을 창건했음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시 결론을 짓자구요. 여러분 자신은 선과 악의 권내에서 하나님과 사탄과 예수님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인간임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자신의 가는 길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나라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나라가 망하더라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이는 사람이 된다면 세계는 망하더라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남아질 수 있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전체를 대표해서 있다는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전체를 위하고 전체를 살려 주고 가야 됩니다. 전체의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적인 목적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대표적인 사명을 하겠다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열 사람이 있다면 열 사람을 위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열 사람 대신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열 사람에 대해 불평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불평과 불만이 가득찰 수 있는 환경이더라도 참고 견뎌야 됩니다.
그래야 감사 찬송할 수 있는 터전을 찾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감사 찬송할 수 있는 자신을 중심삼고 화합하게 되면 하나님이 열사람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나중에 받기 위해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살려 주기 위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자신은 물건을 주었고 정성을 주었지만 잘하면 그의 생명을 거두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 좋은 선물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 사람에게 선한 후손이 태어나게 된다면, 내가 그 사람의 선조의 복을 열매로 거두어서 하나님 안에 드린 것이 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의 선조가 선했다 하더라도 거두는 데 있어서 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선조를 통해 이어받아 가지고 결실된 상은 내 손을 거쳐서 그 후손 앞에 물려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을 주는 입장인 내가 받는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도시대에 있어서 베드로를 중심한 12사도를 핍박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바울은 그 후 유일하게 지중해 일대를 편답하면서 어떠한 사도보다도 수난길을 가며 수고했습니다. 그것은 왜냐? 자신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의 복음이 퍼지게 되어 인류가 자신의 이름을 거쳐서 전도받고 구원받게 될 때 지금까지 선한 선조들이 하나님을 위해 수고하며 쌓아 둔 공적의 열매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맺혀 지기 때문에, 많은 족속들에게 상금을 줄 때에는 자신의 손을 거쳐서 주게 됨으로써 자신은 선한 조상들 앞에 으뜸가는 자리에 가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울은 밤이나 낮이나 죽음길을, 사지사판을 헤아리지 않고 노력한 것입니다. 이런 비결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선생님을 통하여 이 길을 알았기 때문에, 선생님 대신 상금을 줄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만민을 대표해서 상금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자연적으로 전체의 위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고방식과 사상을 가져야 되느냐? 나는 전체를 위해서 산다. 전체보다 나는 더 해야 된다'는 전체를 위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열 사람이 수고하면 나는 그 이상을 해야한다. 거기에 그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그것을 감당한다. 거기에 내손이 가야 되고 내 피땀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니 참고 견뎌야 됩니다. 참고 견디고 나면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송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기쁨을 갖는 터전이 됩니다. 그 기쁨은 나 자신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 뜻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을 사람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을을 책임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여러분도 같이 나가자'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그 마을 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 들이 따르면 그 사상을 가지고 군(郡)으로 나가고, 군 사람들이 따르게 되면 그 사상을 가지고 도(道)로 나가며, 더 나아가 도(道) 사람들이 따르게 되어 그런 사상을 가지고서 나라를 위해 살 때에는 그 나라는 빨리 복귀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 싸움의 요소들을 전부 다 없애버리고 참고 견디면서 감사하고 찬송하여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알고 기쁜 마음으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최고의 상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자리에 선 것입니다. 여러분은 최고의 자리에 섰으니 귀하고 복된 자리를 고이 간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던 고난길에서 승리 하여 돌아오게 될 때에는 금의환향할 수 있는 영광의 한날이 여러분에게 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주의점이다' 하는 것을 잘 기억하고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이 내일이면 돌아가기 때문에 선생님이 이 얘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이 점을 특히 주의해야 됩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불평은 무서운 것. 「불평은 무서운 것」 불만은 무서운 것. 「불만은 무서운 것」 반신반의는 사탄편인 것. 「반신반의는 사탄편인 것」 반항, 투쟁은 사탄의 무기를 가지고 싸움을 하는 것. 「반항, 투쟁은 사탄의 무기를 가지고 싸움을 하는 것」 까딱 잘못하면 둘 다 망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불평불만 하는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투쟁하는 사람은 상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하지 않는 것도 참는 것입니다. 귀로 그런 말을 들었으면 귀를 막아야 합니다. 눈으로 봤으면 눈을 감아야 합니다. 봤어도 전부 다 못본 체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거예요.
여기서 하늘땅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알겠지요?「예」 그러므로 전체를 위하여 참고 견디면 하늘나라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참고 견디어 가지고 감사 찬송하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주고 최후에 하늘편에 나서게 될 때에는 하나님께서 결단코 귀한 복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남아진 1972년까지 전력하길 바랍니다.
여러분, 1972년까지 멀어요. 가까와요?「가깝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라 구요. 선생님도 감옥생활을 했어요. 여러분의 생활이 그 감옥살이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렇지요?「예」 선생님은 피를 토하는 많은 고문도 받았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누가 뺨을 쳐요? 누가 잡아죽이겠다고 해요? 선생님보다 낫다는 거예요. 그렇지요?「예」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고 앞으로 주위에서 원수들이 철옹성같이 에워싸고 여러분의 생명을 노리는 낚싯밥을 던져 놓고 낚싯대를 끌어당기더라도. 이제까지 말한 불평불만 반신반의 여건을 통해서 여러분을 몽땅 걸어 낚아채려고 하는 것을 알고 거기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싸우고 승리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기뻐하고,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 만민이 여러분 앞에 무릎을 꿇고 천세만세 찬송과 존귀영광을 여러분에게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이 귀한 백성이 되고 귀한 나라와 세계의 주인이 되는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을 잘 알고 지금 그렇게 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겠지요 ?「예」
사랑하는 아버님, 저희는 이제 알았나이다. 남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이렇게 귀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무것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아버님을 대신해서 나가 싸웠고 아버님을 대신 해서 수고하였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임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사람이 알아주고 치역장이 알아주고, 혹은 교단이 알아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옵니다. 더 나아가서는 본부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게 문제가 아니옵니다. 알아주는 자리는 도리어 당신의 복을 가치 있게 받을 수 있는 자리가 못 되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누가 몰라 주더 라도 저희들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누가 저희의 갈 길을 막더라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혹은 스승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당신만은 기필코 저희들이 하는 일은 아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참고 견디어 존귀영광과 찬송을 당신 앞에 돌려드리며 만민을 위하여 고이 제물 될 수 있는 거룩한 무리들이 이 강토에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보낸 저의 책임이 큰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제가 그런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 앞에 빛진 것같이 느껴지지만 지금은 제가 이들이 모르는 때에 빚을 지어 놓은 것을 갚는 자리에서 탕감할 수 있는 거룩한 때라고 생각하옵니다.
아버지여. 당신께서 제가 어려울 때에 도와주시던 것처럼 이들이 어려울 때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어려움을 참고 견딜 때에 당신이 분부하시어 제가 다짐했듯이 이들이 참고 견뎌야 할 생활권내에서 당신이 분부하시어 이들이 다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끼리끼리 하나 못 되어 가지고는 남을 살릴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또한 우리 끼리끼리 뜻을 높이고, 우리 끼리끼리 전체를 대신하여 제물 되겠다고 하지 않고는 천국 건설이 성사되지 않는 것을 아옵니다. 만일 대한민국이 이 뜻을 못 이루면, 세계의 어떤 나라 중에서 이 뜻을 중심삼고 나가는 민족이 당신의 뜻을 이를 수 있는 자리에 선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과 미국 민족, 혹은 독일 민족을 비교하여 보게될 때, 한국 민족은 꼬부라지고 일그러지고 분열하는 것을 느끼지만, 일단 민족은 한마디의 명령에 일체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민족은 전체 분야에 있어서 서로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독일 민족은 전체의 생명을 투입해 놓고 자기가 목적한 바는 죽더라도 이루어야 된다는 민족성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수난길을 탕감하고 극복하는 데에는 한국 백성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되고 주체성을 세우고 책임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체를 희생시키는 데있어서는 합격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요소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한국 민족이 탕감노정에서는 좋았지만 복귀노정에서는 서러움이 엇갈리기 쉬운 민족임을 저희들이 알고, 이 민족의 전통을 지키는 책임을 말없이 수행해야 되겠사옵니다.
불평불만, 반신반의, 반항과 부정하는 마음을 일소해 버려야 되겠사옵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는 마음을 일소해 버리고 전체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사옵니다. 이러한 민족성을 갖는 민족이 되지 않고는 세계 앞에 나설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사오니, 아버지, 이들을 보시어 용서하시고 당신께서 다시 품을 수 있는 한날을 헤아려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아버님 앞에 매일 모범이 되기를 맹세하고, 전체 앞에 책임을 진 주체의 입장에 서기를 맹세하고 있사오니 전체의 것을 가졌으면 그것을 내 것으로 가질 것이 아니라, 세계 만민 앞에 주기 위해 노력하는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되겠습니다.
이제 일주일 기간을 보내고 내일이면 돌아가야 할 딸들의 염려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제가 아옵니다. 부디 오늘 들은 말씀을 고이 가슴 깊이 뼛골에 잘 새겨 가지고 이것이 신앙자가 가야 하는 가장 귀한 주의점인 것을 알고, 참고 견디고 감사 찬송하는 것을 생활철학으로 삼고 혹은 모든 전부를 창조하는 것을 자기의 보람있는 생애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가는 통일교회의 앞날은 평탄할 것이지만 이것을 도피하고 부정할 때에는 민족의 앞날에 광명 대신 흑암이 가로 막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저희가 그런 민족을 불쌍히 보는 마음을 가지고 담대히 수난길을 걸어갈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이제까지 아버지께서 지켜 주신 것에 감사드리옵니다. 남아진 오늘 하루를 지내면 이들이 삼지사방으로 돌아가겠사오니. 외로운 발걸음을 지키시옵소서. 이들은 망하는 세상에서 망하지 않기 위해서 남다른 발걸음을 옮겨 놓은 무리였사오니, 부끄러운 몰골로 당신의 위신을 깎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옵시고, 당신의 체면과 위신을 갖춰서 당신의 후대하신 복과 영원 불변의 축복을 받고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들이 인류가 소망하는 조상이 되고, 인류가 희망하는 민족을 이루어 그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를 만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당신의 소원을 알고, 당신의 소원에 배반하는 무리가 절대 되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남다른 길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요, 당신의 뜻을 알았으므로 불가피하게 아들딸의 인연을 맺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 저희들은 낙망과 절망의 교차로에 섰지만 낙망할래야 낙망할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낙망하여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저희들에게 딸린 민족과 세계가 망할까봐 당신을 저버릴 수 없고 당신의 길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딸들이 가는 배후에서 염려하는 아들들과 그들의 자식들을 당신이 지켜 주시옵고, 그들을 중심삼은 혈연적인 이스라엘권, 외적인 이스라엘, 가인적인 터전을 당신이 지키시어 이것이 하늘 승리의 터전이 되고, 찬양과 환희의 소유권이 될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말씀과 더불어 길이길이 남아지는 당신의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성호 받들어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