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오신 분네들은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복귀'라는 그 말을 모를 거예요. '복귀'라는 말은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의 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 악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선한 세계를 향하여,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본연의 세계를 향하여 다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타락 전 세계로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 복귀의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만 이해하면 아실 거예요.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지으셨습니다. 엿새 동안에 지은 어떤 것보다도 사람 하나를 위주로 하여서 그의 영광과 그의 소망과 그의 돈독한 심정을 중심삼고 지으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그 인간 하나가 성장하여 소망을 성취함으로써 행복을 노래하고, 평화의 가정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있기를 하나님은 얼마나 바라셨던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를 만들어 놓고 기뻐하시던 하나님, 아담 해와가 자랄 적마다 하나님은 애절한 심정을 가지고,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하나의 소망의 승리를 완결지을 수 있는 그때를 얼마나 그 간곡한 마음에서 고대하였던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라는 아담 해와를 앞에 놓고 지으신 창조세계를 바라볼 적마다 '너를 위해 지은 만물도 좋거니와 만물을 차지할 너를 바라보는 것이 더 좋구나' 하시는 아버지의 심정, 아버지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됩니다.
그러했던 아담 해와, 소망에 어리던 아담 해와,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었던 아담 해와, 또 모든 만물세계에 있어서 그로 말미암지 않으면 안 될 중심존재인 아담 해와, 어느 한날 타락이라는 날이 있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고, 슬픔의 한날이 있어서는 안 될 아담 해와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담 해와가 한 날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이라는 명사가 초래됐고, 슬픔이라는 명사가 초래됐고, 하나님의 소망세계에 흑암의 권세가 침범하였다는 사실은 원통하고 분통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인류시조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류시조의 슬픔은 마땅한 것이지만, 인류시조를 바라보고 소망을 갖던 하나님이 인간으로 말미암아 슬픔을 당하였다는 사실, 인간이 슬퍼하는 입장에 떨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이 불쌍한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되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됐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이는 이 땅 위에, 혹은 천지간에 있어서는 안 될, 혹은 이러한 생각이라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류시조의 실수로 말미암아 그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며, 이것이 왈 '인간 타락'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모든 심정의 내용이라든가, 하나님의 창세위업을 대신하여 소망하였던 그 전체를 아는 자리에서 타락했느냐? 몰랐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완비되고, 모든 것이 완성된 그런 자리에서 전부 다 알고 깨친 자리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면 하나님의 창조 이념, 창조 위업은 어느 한날 완성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은 전체의 내용을 다 알고, 그 전체의 내용을 다 맡은 가치적인 존재로서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자라고 있는 성장과정에서 타락을 했다는 것입니다.
완성, 오늘날 일반 기성교회에서는 믿기를 아담 해와는 다 성인이 돼서 모든 천지이치를 다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이나 하나님의 창조 위업을 능히 상속받을 수 있는 권한을 갖춘 한 남성 여성으로서 타락한 줄로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건 오해예요.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 완성을 바라보는 자리에서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한 것을 공인하게 되면, 완성한 자리에서 타락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천국 가서도, 완성의 세계에 가서 그 세계에서도 타락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것은 미완성 단계에서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위업과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들 마음속으로 서로 동경하는 하나의 아담 해와로서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일념을 접할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하고 타락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돼서 생긴 것이 지금까지의 타락한 후손이 살고 있는 세계요, 타락한 세계가 벌여 놓은 이 악한 현실 사회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바라던 소망은 지금까지 소망대로 남아졌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소망은 소망대로 남아지고,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잃어버렸으니 그 소망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 비례해서 슬픔도 많아졌고, 그 소망이 지극하면 지극한 그 비례에 따라서 하나님의 내적 고통을 초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 성도들은 그 하나님이 슬픈 하나님인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 지으심을 탄식한 하나님임을 절대 모르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인간의 한날의 실수로 말미암아 슬픔의 자리에 세워지게 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이 사탄의 권세권 내에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사탄 권세는 천국문까지 밀어제끼고 하나님의 보좌 밑까지 휩쓸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소망했느냐? 인간이 타락한 후에 인간세계를 대해 소망하는 하나님의 소망이 있다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타락한 아담 해와의 본연의 소망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 하는 거예요. 복귀의 한날을 바라 나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이냐? 구원이라는 것은 물에 빠진 사람을 물에 빠지기 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병난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은 뭐냐? 병나기 전 사람으로 복귀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가 와서 뭘할 것이냐? 구주가 될 것입니다. 구주가 된 후에는 무엇이 될 것이냐 할 때는 형님도 될 수 있고, 오빠도 될 수 있고 다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 인간이 지금 알아야 할 것은 '구주로서의 예수는 필요 없다' 하는 그 자리를 넘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구주로서의 예수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직까지 죄악세계의 물에 빠져 가지고 신음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주가 필요한 거예요. 구주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이요, 다시 오는 주님을 맞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아서 이루고자 하는 그 세계가 어떤 세계냐 하면 타락 전 본연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서 추구하고 그리던 그 세계, 타락하지 않고 완성의 뜻을 이루어 천하를 그 품에 품어 가지고 좋아할 수 있는 그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황태자와 공주로 태어났던 아담 해와가 깨져 나갔으니 이것을 다시 찾기 위해 애써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구원섭리요, 기독교 역사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복귀의 세계를 향하여, 즉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는 이 역사적 노정을 통하여 나오면서 소원하였던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소망의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나왔습니다. 소망의 천국, 그 천국이 하늘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땅 위에서 인간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일체된 이념을 갖출 수 있는 그 자리, 지상에서 천국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천국에서 살던 사람이 영원한 세계에 가면 그 세계가 영적 천국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두 세계의 천국의 주인공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므로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 세계는 본래의 선의 에덴일 것이며 그 선의 에덴은 하나님이 본래 소원하였던 지상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지상천국이 돼야 됩니다.
지상천국을 바랐던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었기 때문에 이제 복귀의 역사를 육천 년 동안 거쳐 가지고 끝날에 오시는 주님을 세워 가지고 뭘할 것이냐? 복귀 천국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의 목적이예요. 복귀 천국을 이룩하자, 복귀 천국. 본연의 천국을 상실하였으니 다시 찾자 이거예요. 예수가 온 목적은 천국 회복운동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믿고 있는 전세계의 신앙자들이 구주로서의 구세주가 필요 없고 복귀 천국에 있어서의 주인으로, 오빠로, 형님으로 모실 수 있는 구세주가 필요한 거라구요. 이게 필요한 걸 알아야 돼요. 기도로써 필요한 것을 구하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그런 자리말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을 같이 대할 수 있는 자유스런 환경을…. 천국은 오늘날 타락한 인간세계에 있어서 찾아 나가는,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년 왕국이다 이거예요. 하여튼 고장났다 말이예요. 인간이 고장났으니 종교가 필요한 거예요.
만일에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기도가 필요 없어요. 종교가 필요 없어요, 종교가. 이스라엘의 선민이 필요 없어요. 벌써 선민으로 타고난 거예요. 세계가, 하늘땅이 전부 다 내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 인간은 누구라도 욕망이 있나니 그 욕망은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욕망입니다. 그것은 본연의 욕망이예요. 그거 얼마나 근사해요.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아버지예요. 하나님을 믿으라는 그 성경이 필요 없어요. 벌써 나면서부터 아는 거예요. 복지 천국, 소망의 천국을 향해서…. 천국을 잃어버린 하나님은 오늘날 인류 앞에 소망의 천국을 찾아 주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이요, 천국을 잃어버린 인류는 지금까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소망의 천국을 찾아 나가고 있는 길입니다. 그건 누구나 같은 거예요.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심중에 사모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뇨?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데 소망 가운데 하나님이 제일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타락한 이 땅 위의 모든 인간은 죽은 자식이 되어 버렸으니 이 죄악된 사탄의 혈통을 받아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혈족이 없어요, 혈족이. 하나님의 직계가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 사탄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인류를 복귀시키려 하는데 어느 자리까지 복귀시켜야 되느냐? 직계 아들딸의 자리까지 복귀시켜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종의 종 새끼도 못 되는 인간이 되었다는 거예요. 종의 종 새끼도 못 된다는 말입니다. 종의 종은 무엇이냐? 종의 종은 주인을 가질 수 없는 거예요. 종은 주인을 가질 수 있으되 종의 종은 주인이 없는 거예요. 종의 심부름을 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종의 입장에 선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오늘날 사탄세계에서 빼앗아 오는 거예요. 사탄의 종새끼를 빼앗아다가 종의 종 새끼를 만들어 가지고 하늘 앞에 충성을 맹세하게 하고 '너는 하늘편의 종의 종 새끼 돼라' 하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그것을 복귀시키는 거예요.
구약시대는 무엇이냐? 구약시대의 전반에 걸친 사명이 무엇이냐? 종의 종 새끼를 빼앗아다가 종적인 사명을 시키는 시대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들이 아니예요. 종이예요. 아들이 못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종의 종 중에서 종을 세워 가지고, 충성의 도리를 세워 가지고 역사적인 이 세계 인류를 끌어 여기에 규합시켜서 세계적인 악한 무대의 한 모퉁이를 점령하면서 하늘의 판도를 넓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이 승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어서 종으로 승리한 거예요. 이래서 종의 종으로부터 종의 위치로 복귀하고 종의 위치로부터…. 지금까지 신약시대는 양자로 복귀하는 거예요, 양자. 로마서 8장 23절을 보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라고했어요.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양자되기를 고대한다고 했어요. 신약시대에 아무리 잘 모시고 잘 믿던 신앙자들도, 목사 장로 학박사를 물론하고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양자 새끼예요, 양자 새끼. 솔직한 얘기예요, 솔직한 얘기. 양자가 되자 그거예요, 양자. 양자라는 것은 혈통이 다르다는 거예요. 혈통이 다른 거예요.
이와 같이 양자된 인간 계통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딸이 와서 가지고 돌감람나무를 만들어 가지고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여서 양자의 인연을 해원시켜 놓고, 양자의 인연을 해방시켜 놓고 직계의 자녀의 인연을 맺어 놓고자 하는 것이 예수가 와서 죽지 않고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소망이었다 이거예요.
종으로 복귀하고 양자로 복귀했으면 아들딸로 복귀해야 됩니다. 아들딸로 복귀하려면 본래 하나님의 창조이상인 지상천국을 완성하는 동시에 천상천국을 완성해 가지고 이 땅 위에서 하늘의 심정적인 발판을 지상에서 천상까지 닦아 나가야만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땅 위에서 지상천국의 이념과 천상천국의 이념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만 했기 때문에 양자의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독생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기도하는 독생자. 기도하는 예수님도 뜻을 못다 이루었잖아요?
예수와 성신은 2천 년 동안 뭘했느냐?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소원의 한 날을 찾아온 것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천상으로 통할 수 있는 지상의 행로를 찾아가기 위해서…. 예수는 죽어서 어디에 갔느냐? 낙원에 갔어요. 천국이 아니라 낙원에 갔어요, 낙원. 낙원은 뭐냐? 천국 들어가는 대합실이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하나님 독생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기도를 하는 것은 아직 책임 완성을 못 했기 때문에,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예수는 만민의 참부모로 와야 된다는 거예요. 땅 위에 참부모의 인연을 세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상 재림을 해야 돼요. 천상 재림이 아니라 지상 재림을 해야 돼요.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고 오셨던 예수님은 이 땅 위의 이스라엘 민족을 종의 입장에 세워 가지고, 양자의 자리에 세우고, 직계의 자리에 세워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야 예수와 하나된 후에 이스라엘을 택한 예수의 족속들은 하나님 앞에 있어서 축복을 받아 가지고 '이제 너희 아들딸들은, 하나님이 계획하던 너희들이 낳은 그 아들딸들은 타락한 세계의 죄악과는 상관없는 아들딸을 낳는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못 하고 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복귀의 천국을 바라보고 나오는 하나님의 소망의 안중에는 무엇이 있느냐? 잃어버리지 않았던 본연의 아담 해와, 지성과 정성을 다하여 자기의 모든 소원을 걸고 지었던 아담 해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해 버렸으니 이 본연의 아담 해와 대신의 존재, 복귀 아담으로 오는 것이 후아담이 돼요. 후아담도 복귀 아담으로 오는 거라. 타락과는 상관없는 복귀 아담으로 온다는 거예요, 복귀 아담. 예수는 후아담이요,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는 뭐냐? 3차 아담으로 오는 자입니다. 3차 아담이 와서 할 것이 무엇이뇨? 소망 천국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지상에서부터 천국을 복귀해야 돼요. 그래야 천상세계 천국이 복귀돼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의 전반적인 내용을 분석해 보면, 먼저 하나님이 또다시 가야 할 복귀도상에서 무엇을 찾아오는고? 타락 전 아담 해와 같은 사람이 이 땅 위에 어디 있느냐? 타락을 하여 사탄의 혈통을 받아 악한 피가 흐르고 있으니 할례의 피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악한 존재가 됐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타락 이전, 하나님이 그래도 소망 가운데서 바라보면서 내일을 희망 삼고 나가는 그때에 아담 해와 같은 인간들이…. 오늘날 예수를 믿고 그런 자리에 올라와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예수 믿고 타락 전 아담 해와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얼마나 돼요. 한 사람도 없다구요.
그래서 복귀 아담이 어디 갔느뇨? 4천 년 수고하여 비로소 하나님이 소망하던, 잃어버린 아담의 모습을 다시 세워 가지고 타락하지 않은 복귀 아담형으로 온 것이 예수입니다. 예수는 이 땅 위의 인간들 앞에 무엇이냐? 타락하지 않은, 복귀 아담이 필요 없는….
본래 아담이 하나님의 뜻 앞에 완성됐더라면 이 완성된 아담 해와는 뭐냐 하면 인류의 참조상입니다, 참조상. 인류의 참된 조상이예요. 참된 조상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세계 앞에는 하나님이 경륜하고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세우고자 했던 참조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인류의 참조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호강하는 사람, 천하를 다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타락한 조상의 혈통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너나할것없이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이게 제일 원통한 일입니다. 타락한 시조를 가진 이 인류는 사탄 지옥을 향하여서 맹진하고 있나니 이걸 가로막고 참조상으로 와 가지고 참자녀로 품어 줄 수 있는 본연의 주인, 본연의 부모를 찾아 헤매어 나오는 것이 인류역사예요, 인류역사.
그렇기 때문에 4천 년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복귀의 도상을 가고 또 가서 찾아온 그 길이 무엇이냐? 타락 전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 입장의 자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메시아라는 분은 뭐냐? 메시아는 무엇에서부터 구주가 돼야 되느냐?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으니, 타락했으니 참부모를 복귀해야 되는 겁니다.
6천 년 전에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가지고 '너는 선남선녀, 천지의 대주재의 직계 아들딸이요, 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핏줄과 이상이 생겨난다. 너는 하늘의 대 위업 전체를 상속하기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는 성혼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전권을 대행해 나타날 수 있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여야 될 텐데 이들이 타락을 해서 전부 다 깨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6천 년 전에 이 소망 천국을 이루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했기 때문에 산산조각으로 다 깨졌습니다. 그래서 종의 종 새끼에서부터 종, 종에서 양자, 양자에서 직계 아들딸에 이르기까지 접붙여 가지고 하늘이 사탄을 굴복시켜야 돼요.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승리의 왕자가 된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성혼의 축복을 이루어 가는 거예요. 그것이 어린양잔치입니다. 기독교는 이런 내용을 알지도 못하지요.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했음)
인류의 참부모가 타락하여 인류의 참부모를 잃어버렸으니 인류의 참부모를 구원 완성하여 복귀시키는 것이 어린양잔치예요. 이것이 있어야 만사가 해결돼요. 부모가 태어나야만 자식이 태어나는 거예요. 올바른 선한 부모에게서 선한 자식이 태어나야 올바른 가정이 되는 거요, 올바른 가정이 생겨나야 올바른 종족, 올바른 민족, 올바른 국가, 올바른 세계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타락 전 본래 소망하던 하나님의 안중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타락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본연의 부모, 본연의 참부모, 본연의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혈족, 참혈족을 중심삼은 형제, 형제를 중심삼은 종족,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 세계로 이것이 벌어져 나가는 거예요. 이리하여 선한 천국세계를 이루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이상인데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가 깨지니 그 자식들은 전부 다…. 이렇게 돼서 오늘날 이 꼬락서니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무엇으로 오느냐? 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영광으로 오신다는 거예요. 오시는 주님은 무엇으로 오느냐? 1차 아담은 타락하였고, 2차 아담은 이 땅 위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3차 아담으로 오십니다. 그 아담은 무엇이냐? 세상에는 30억 인류가 있지만, 저나라에 간 영인들은 물론 전체 사람이라는 종자는 참부모의 혈통적 인연을 거쳐서 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참부모의 인연을 갖고 오시는 주님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6천 년 역사는 뭘하는 역사냐? 잃어버린 참부모, 아담 해와가 완성한 그 기준을 복귀하는 역사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면 복귀된 후에는 뭘할 것이냐? 구주로서의 명사는 필요 없어요. 구주로서의 명사는 필요 없고 형제로서의 입장에 설 수 있는 주님을 모실 줄 알아야만 천국에 들어가는 거예요. 이것이 복귀의 도상이예요. 그래야 그거 이치에 맞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아까 오늘 말씀의 제목이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왜 또 가야 되느냐? 타락했기 때문에. 타락이 없으면 한 번 가면 그만이예요.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3시대를 거쳐가야 돼요. 구약시대는 소생이요, 신약시대는 장성이요, 앞으로 새로 오는 시대는 완성시대입니다. 한 사람이 이 3시대를 거쳐 일대에 완성을 표준하고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담 하나를 빚어 만드는 것이 재창조역사입니다. 아담 하나를 재창조하는 역사로 지금까지 거쳐온다는 거예요.
아담가정을 중심삼고 아담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가인과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하고자 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는 아벨이 책임 다하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은 아담가정에서 다시 밀려나 노아시대로 나온 거예요. 노아시대로부터 아브라함시대, 아브라함시대로부터 모세시대로, 모세시대로부터 예수시대로까지 왔으나 예수가 그 한을 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2천 년 역사를 거쳐 가지고 지금 시대까지 왔습니다. 이 온 역사적인 흐름이라는 것은 자기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프로에 의해서 복귀돼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을 하나님은 더듬어 왔다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 있어서 복귀의 기준을 세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1600년을 일기로 하여서 하나님은 아담 대신 노아를 불러 세웠습니다. 노아를 불러 세워서 '이제부터 120년 후에 홍수심판을 한다'고 예고하게 될 때 노아 자신은 하나님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들려오는 것은 명령뿐이라는 거예요. 이제부터 120년 동안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지나간 후에는 기필코 이 천하를 심판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대해 나오던 하나님이 어떤 내정적인 슬픔과 비장한 각오와 한을 풀기 위해서 노아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했지만 노아는 묵묵히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일편단심 그 신념 가운데서 어느 한 촌시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120년 동안 이 노아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귀세계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하면 제2의 인간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그 악한 세계에 있어서 모진 바람과 모진 시련과 모진 환경에 부딪쳐야 됩니다. 노아는 부딪치는 그 환경에 있어서 아담과 같이 천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한 자리에 서지 않는 그러한 확고한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노아가 120년 동안 아라랏산에서 배를 만드는 그 기간은 행복한 기간이 아닙니다. 덧없는 세월이 흘러갈 적마다 그 환경에 처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노아 할아버지를 미친놈으로 취급했다는 거예요. '뭐 120년 동안…. 뭐 심판을 해?' 이렇게 조롱과 비소, 억울함과 분함이 휘몰아치는 그 환경 가운데서 시달림을 받지만서도 하나님과 약속한, 정녕 약속한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 일념의 신앙심만을 갖고 그 환경을 격파해 나갔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 자기 아내와 자기 자식들까지도 노아를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120년 동안 그 짓 하고 있으니 여러분이 아내가 되고, 여러분이 형제가 돼 보라구요. 비웃었겠나요, 안 비웃었겠나요?
사랑하는 아내도 노아를 저주했고, 사랑하는 자식들도 노아 할아버지를 저주했습니다. 믿어 주기를 바라서 그 가정을 세웠고, 믿어 주기를 바라서 자녀를 준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었습니다. 그를 위해서 일치 단결하여 그 가정이 노아의 뜻을 받들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세워지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아의 가정이 믿지 못했습니다. 반기를 들고 배반하는 그 자리에서도 노아는 이 가정을 끌고 최후의 한날을 약속하고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노아 자신은 하나님이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억울했고, 얼마나 분했던가 하는 그 내정적인 심정은 모르면서 이렇게 믿고 나왔다는 거예요. '나보다도 더 딱한 자리에 선 분이 하나님이 아니냐?'라고….
그런 환경에서 몰아침을 받고, 그런 환경에서 시달림을 받는 노아를 바라볼 적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비통함에 사무쳤지만 노아 앞에 그런 사정을 통고할 수 없는 종의 입장에서 대해 나왔다는 거예요.
이리하여 노아는 40일 홍수심판 후에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지만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노아를 중심한 섭리는 깨진 거예요. 깨져 나갔어요. 하나님은 세계를 심판해 버리고 남겨진 노아가정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길이 있으니 그 가정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분함과 원통함이 얼마나 사무쳤겠어요? 그렇지만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어 오는 하나님이었다는 걸 몰랐다는 거예요.
노아가정에 섭리한 뜻이 저끄러짐으로 말미암아 4백 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일구월심 한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노아 대신 아브라함을 세워서 다시 복귀의 길을 더듬어서 오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걸 오늘날 누구도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누구도.
이리하여 아브라함을 세워서 뜻을 완결지으려 했으나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의 연장이라는 슬픈 명사가 생겨난 것을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대하는 본래의 그 마음과 결과적으로 벌어진 슬픈 사정을 바라볼 때 얼마나 비통했겠느냐? 당장에 그 아브라함 일족을 전부 다 때려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또다시 남아진 복귀의 길, 소망의 천국을 향하여 가야 할 하나님의 애절한 심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그 심정이 더 크기 때문에 또 참고 나가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야곱까지 3대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에서와 야곱이 싸워서 야곱이 승리의 이름을 갖추고…. 야곱이 하란 땅 라반의 집에 가 가지고 21년 동안 종의 도리를 거쳐오게 될 때 야곱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을 전혀 몰랐다는 거예요. 억울하고 분한 사정에 몰리더라도 또 가야 할 하나님의 복귀의 노정입니다. 천대를 받고, 밟힘을 당하고, 몰림을 받고, 원수시함을 받더라도 또 복귀의 노정을 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이 큰 것을 알고 약속하신 뜻, 하나님이 약속한 그 뜻을 믿는 신앙심을 가져 가지고 라반의 가정환경에서 모든 것을 복귀시키는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거예요.
이리하여 에서와 대결해 가지고 승리의 터전을 마련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 가지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이 비로소 발붙일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발붙일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승리했다는 뜻이예요.
그리하여 이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애급 4백 년 고역 기간을 거쳐 이스라엘 60만 대중을 이끌고 가나안 천국, 지상천국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나 애급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 1세들이 광야에서 다 쓰러짐으로 말미암아 제2세를 수습하여 가나안 7족을 대결하게 해 가지고 비로소 이스라엘에 천국이념을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흐지부지하여 비참한 역사노정을 거쳐서 예수시대까지 끌고 넘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의 때는 개인적인 복귀시대, 가정적인 복귀시대, 종족적인 복귀시대, 민족적인 복귀시대…. 이런 것을 한꺼번에 다 하면 좋겠지만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복귀의 책임, 가정적인 복귀의 책임을 야곱이면 야곱이 하도록 했습니다. 모세는 민족적인 복귀의 책임을 하는 거예요. 예수는 국가적인 복귀의 책임과 세계적인 복귀의 책임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책임을 하기 위해 예수를 보낸 것이 전체적인 그 인연의 역사의 노정이었으나,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그 나라의 주권을 중심삼고 로마를 삼켜 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기독교한테 로마가 삼켜 버려진 것과 같이 예수 당시에 로마를 삼켜 버렸어야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복귀 천국을 바라던 그 천국의 이념은 예수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나라와 국왕과 제사장이 일체가 되어서 예수가 온 본연의 목적과 일치돼 가지고 로마와 대결하여 신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할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언제 한번 그런 것을 말해 봤어요?
제사장, 서기관, 교법사들이 뭐예요? 메시아를 누구보다도 증거해야 할 사람이요, 메시아를 누구보다도 지켜야 할 사람이었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처량한 역사적인 노정을 거쳐 가지고 왔던고? 메시아를 맞아들여야 할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갔던고? 세상에 예수가 탄생하게 될 때 이방의 점성사들,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왔어요. 그거 다 점쟁이들이예요, 점쟁이들. 온 예루살렘이 소동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시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사람으로 태어날 줄 알았다면…. 어느 누가, 어느 교법사, 서기관들이 버선 한 켤레 준비해 가지고 기다린 사람이 있었어요? 예수가 태어났는데 옷 한 가지 해 가지고 기다린 사람 있었어요? '베들레헴의 제일 불쌍한 자리에 오시면 안 되겠다고, 이스라엘의 위신과 이스라엘의 명망을 내가 찾겠다'고 하며 베들레헴 땅을 찾아서 움막 대신 거룩한 자리를 만들어 가지고 모실 준비라도 한 녀석이 있었느냐 말이예요. 그렇잖아요?
하늘의 때는 지나가지만 인간은 모르는 거예요. 이방 사람이 어찌하여 오시는 메시아를…. 4천 년 동안 역사를 거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선민이 애절한 한을 풀기 위해서 바라던 메시아, 하나님이 4천 년 만에 약속의 주인공으로 보냈던 메시아가 올 때 어떻게 되어 이스라엘 민족이 한 사람도 몰랐던고? 생각해 봤어요? 이스라엘 사람은 왜 몰랐느냐 말이예요. 제사장, 서기관, 교법사는 어디 갔는고? 그런 선민권을 자랑하고 그들을 세운 것은 오시는 메시아를 환영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것이 본연의 책임이요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입을 벌려 반대해요? 뭐 예수가 바알세불의 괴수야? 전부 다 처량한 역사적 비운이….
이래 가지고 빌라도 법정에서 '아, 나사렛 예수 뭐 바라바와 바꿔 죽여 주소' 한 거예요. 잘 해먹었어요, 잘 해먹었어. 예수가 자진해 죽었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죽였지. 예수는 피살된 거예요, 피살된 거. 목사 장로들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 잡아죽였다는 거예요.
오죽하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가지고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했겠어요. '지상에 평안한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세계를 아버지의 천국으로 복귀하기 위해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믿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지금 죽음길을 가니, 당신이 나를 보낸 본연의 목적은 천국을 완성하는 것인데 이 천국이념을 누가 책임집니까?' 하는 의미에서 기도한 거예요.
그러나 사태는 기울었어요. 그가 산상에 올라갈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때에 작정한 거예요. 이미 사태는 틀렸어요. 이미 죽을 것이 결정된 때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거예요. 예수가 죽으러 왔어요? 기도해 보라구요, 그런가. 내가 영계를 통하고 영계와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 해 가지고 알아봐도 그렇지 않더라구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전세계 교회 앞에 폭탄선언을 하는 거예요. 교회 교회마다 십자가를 달고 있는 것을 볼 때 내가 불이 나는 거예요. 십자가는 원통한 십자가예요, 원통한 십자가. 예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이 죄를 사할 수 있다면, 죽지 않고 살았다면 예수가 구주가 못 됐나 말이예요. 하나님은 어찌하여 비참하게 죽여 가지고 구주를 만들어요? 살려 가지고 군왕으로 만들려고 했다구요, 군왕으로. 구주 과정을 이루고 다 지내 가지고 군왕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나라의 왕을 만들려고 한 거예요, 만왕의 왕을.
오늘날 우리 세계에 널려 있는 성도들은 구주가 필요 없어요. 군왕이 필요해요. 만왕의 왕이라 했지요? 그분이 필요하다는 말이예요, 그분이. 그러므로 그 왕권 밑에 사는 백성들은 그 나라의 치리를 받으니, 그 나라의 치리를 받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니 그 사람들은 사망세계와 관계없는 거예요.
분하고 원통한 거예요. 여기서 말한 예수님도 뭘 생각했느냐 하면 군왕을 생각한 거예요. 열두 사도가 뭘했던고? 베드로 야고보가 뭘했던고? 예수가 최후에 운명할 시간에 오른편 강도가 웬말이냐, 왼편 강도가 웬말이냐? 어찌하여 집어치우고, 사도들이 오른편 강도를 몰아내고 십자가에 못 달렸고, 왼편 강도의 자리에 못 달렸느냐? 원통한 일입니다. 원통한 일이예요. 너와 나와 낙원에 들어가는 데 선봉장을 할 자가 누구냐? 강도, 오른편 강도예요. 사도들도 이것을 못 했어요. 뭐 사도들이라면 무서울 게 뭐 있어요? 내가 영계에 들어가서 베드로부터 만나 가지고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 꼼짝달싹 못 하더라구요.
만민의 구세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요, 만인류의 조상으로 오신 그 조상을 죽음의 자리에 그렇게 홀로 보내다니, 같이 죽지. 그랬다면 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제자들도 부활 안 했겠어요? 사도들이 부활하고 제자들이 부활했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피 흘리는 종교가 안 됐다 이거예요. 처량하게 뭐…. 그렇다고 십자가의 공로를 부인하는 게 아니예요. 그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이 이루어진 거예요, 영적 구원이. 본연의 사명을 완결 못 지었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된다는 거예요. 다시 온다는 재림이라는 명사는 억울하고 분한 명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의 천국은 어디 있느냐? 말세가 다가옴에 따라 가지고 이 천국이념을 품고 오는 하나님, 복귀의 길,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본연의 천국을 이루어야지요. 이 지상 끝날이 찾아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찾아오던 그 소원이 무엇이냐? 복귀 천국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아온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복귀 천국을 할 것이냐?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에 그렇게도 지지리 고생하고 밟히고 한 거기에 예수님이 안 와요. 나는 그렇게 봐요. 뭐 이스라엘 나라에 주님이 와? 절대 안 와요, 절대 안 와!
이스라엘을 보라구요. 예수 오기 전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그 민족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대번에 망했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예수 죽은 이후 2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의 노정에 시달리고 온 민족 앞에 쫓김을 받는 민족, 이 이스라엘 민족이 처량한 거예요. 그것은 예수를 죽인 결과예요, 예수를 죽인 죄.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목을 달아 매고 기도해 보란 말이예요. 왜? 오늘날 인류의 참조상으로 온 분을 잡아죽였으니 누구든 다 회개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예수는 누구냐? 우리의 참부모로 오신 인류의 참조상이예요.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예수를 잡아죽인 것은 전인류가 잡아죽인 거예요. 자기 부모를 잡아죽였다는 말이예요, 부모. 죄악된 부모를 잡아죽여도 세상에서는 모가지 잘려야 되는 것인데 천륜을 대표하고, 역사를 대표하고, 인류의 소망을 대표하여 왔던 그 참부모를 잡아죽였으니 그 법도에 안 걸릴 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에 대해 소망 천국을 바라서 예수의 뜻이 연장된 2천 년간 영적 구원섭리를 해 나온 것입니다. 이 소망 천국은 말세의 한때를 예비해서 나오고 있나니 오늘 이때에 있어서 세계의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끝날이 되면 무엇이 올 것이냐? 예수도 말했고 세례 요한도 말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어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느니라' 했는데 마음 천국만 가지고 되겠어요? 아니 천국 하면 나라인데, 나라는 주권이 있어야 되고 백성이 있어야 되고 영토가 있어야지요. 뭐예요?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는 거예요. 네 마음부터 소망 천국을 다시 품으라는 거예요. 소망 천국을 네가 가지고, 소망 천국의 내용을 네가 품고, 실체 천국을 이루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천국이 네 마음에 있다고 한 거예요. 네 마음에 있어야지요.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소망의 마음 가운데 천국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를 믿지 않던 죄수들도 소망 천국을 품고, 하나님이 소망 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치리할 수 있는 대표자 메시아 예수를 통하여 실제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과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마음 천국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준비한 터전 위에 하나님의 해원성사의 한날을 세워서 이 땅 위에 예수를 보냈으나…. 복귀의 역사를 다 치워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전부 다 불살라 버려도 시원치 않을 이런 민족을 또다시 세워 놓고 예수가 기도한 조건을 세웠으니 '아바 아버지여,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하여 그러니 용서하시옵소서' 하는 애절하고 간곡한 기도를 했습니다. 왜 그런 기도를 했느냐 하면 4천 년 동안 예수를 보내 가지고 뜻을 이루려던 지상천국 이념이 남아 있으니 예수가 죽더라도 그것을 뭉그러 버리면 안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소원하며 정성들여 온 4천 년 역사의 공적이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예수는 역사적인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고 기도한 것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또다시 복귀의 길을 개척하기를, 예수가 죽고 난 후에 대의를 수습하고, 가정을 만들고, 종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국가를 다 같이 만들어야 돼요. 이게 비참한 시대권이예요. 4천 년 역사 가운데 제1 이스라엘이 예수를 믿었으면 그냥 그대로 한 국가 주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복귀의 천국을 이룰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제2차적으로 방향을 달리하여 세계적인 방향을 갖춰 나가면서 개인적인 기독교, 가정적인 기독교, 종족, 민족,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기독교권을 만들어 놔 가지고 지금까지 복귀해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런 역사를, 오늘날 이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 가지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가져야 되느냐? 그 마음에 복귀 천국을 치리하기 위해서 오시는 메시아를 고대해야 된다는 거예요. 주님이 오면 전부 다 천국 들어갈 텐데….
그렇기 때문에 복귀 천국이념을 향하여 지금까지 하나님은 천번 만번 저버릴 수 있는 우리의 선조들이요, 우리의 조상들이었지만 한 개인 개인을 찾아오는 거예요. 각자에 대해서 찾아 나오는 거예요. 개인을 정성껏 오랜 시간을 통하여 기다리고 소망의 한날, 개인이 승리할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려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가정을 찾아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종족을 찾아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나라를 찾아왔다가 배척받은 하나님이요, 오늘날 수많은 국가를 찾아가던 하나님입니다. 그리하여 로마에서 또다시 기독교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배척받으면서 피흘려 가지고 다시 찾아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 2천 년입니다.
이리하여 한 유대교를, 일개국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국제적인 무대, 세계적인 무대를 갖추어 가지고 오늘의 전세계, 전민주세계를 이룰 수 있는 터전인 기독교권을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기독교권이 이제부터의 방향과 행동을 알지 못하는 최후의 때를 맞은 거예요.
이제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복귀 천국을 향하여서 오직 예수의 한을 풀어 줘야 돼요, 예수의 한을. 신랑 신부를 택하되 한을 풀기 전에는 택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 땅 위에서 피흘린 한이 남아 있어요. 예수가 찾고자 하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고자 하는 개인을 못 찾았고, 가정을 못 세웠고, 종족, 민족, 국가를 못 세웠으니 그것이 한이라는 거예요. 개인을 찾지 못한 한, 가정을 찾지 못한 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구나', 하나님의 상속자가 그런 표현을 했어요. 하나님이 예수를 세워서 찾고자 하는 진짜 참다운 개인은 어디 있느냐? 개인이 없어요. 참다운 가정은 어디 있느냐? 가정 같은 것은 많아요. 참다운 종족, 진짜 이스라엘 종족이 어디 있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어디 있고, 이스라엘 나라가 어디 있어요? 한을 품고 역사를 바라볼 때 한탄하던 그 마음 가운데 너를 찾기 위해 참다운 사연을 가졌다 할진대는…. 이거 생각 한번 해봐요.
하늘땅을 치리하고 천지를 주관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의 제자들이 어찌 어부짜박지들이겠어요? 이스라엘에서 어부들은 상놈이예요, 상놈. 메시아 앞에 웬말이뇨? 메시아 앞에 베드로가 수제자라니 웬말이뇨? 여러분 생각해 봤어요? 교법사 서기장은 어디 있고 제사장은 어디 갔느뇨? 그렇게 기도 가운데 한 놈도…. 열두 제자 가운데, 사도 가운데 한 놈이 어디 있어요, 한 놈이? 사도들은 그래도 낙원에 가지만 예수를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은 죽으면 모두 일등 지옥에 가는 거예요.
분하고 원통한 거예요. 여러분이 믿고 있던 그 주님이 신랑이예요? 진짜 신랑이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2천 년 동안 한을 풀려고 왔던 예수가 한을 풀어야 이 땅 위에 와서 살 것입니다. 한 풀려고 오는 데는 한을 풀 수 있는 이 터전이 닦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이스라엘을 찾아온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서기관 제사장이 예수의 사도 입장을 대표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널린 대학자들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먼저 맞아야 됩니다. 주님을 먼저 맞는데 '오, 주여 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입장을…. 역사는 재현하여 그냥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역사적인…. 교법사 제사장들이 자기의 위치와 자기의 책임을 행사하던 그런 입장에서 오시는 주님이 구름타고 왔다면 얼마나 잘 믿었겠어요? 예수님이 옛날에 그렇게 왔어요? 목수의 아들로 왔어요. 목수가 뭐예요, 목수가? 예수가 목수 되어서 오다니? 목수라는 말만 들으면 밸이 틀려요.
이스라엘 백성은 책임 못 한 거예요. 소망의 일념을 바라보며 4천 년 역사를 지고 업고 가야 할 한 많은 예수 앞에 자기 어머니도 책임 못 했다는 거예요. 어머니에 대해서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런 말을 했다는 거예요. 예수가 설교하는데 그의 모친과 동생이 찾아와 만나려 할 때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이냐?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한 것입니다. 사무치고 사무쳤던…. 예수가 몇 살 때 집을 나갔는지 알아요, 몇 살 때? 그는 이 땅 위에 태어나 요셉가정에서 요셉을 의붓아비로 모셔 나가면서 그의 직계 아들 따라서…. 이는 의붓자식입니다. 명절 때가 되어 옷을 해 입혀도 예수는 안 해 입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그를 데려와 기르고 있지만 핏줄이 달라요, 핏줄이. 요셉이 낳은 자식들도 있었으나 예수는 의붓자식이예요, 의붓자식. 남은 명절이 되면 마음을 놓고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하늘을 노래할 수 있지만 예수는 그런 심정의 자리를 갖지 못한 서글픔이 있어요. 오죽하면 열두 살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가지고…. 예루살렘 성전을 지켜야 할 것이 자기의 책임과 본국의 책임인 것을 알고 그래도 제사장이 머무를 수 있는 성전 가까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에미 애비는 찾아 다녔다는 거예요. 한 많았던 예수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독생자로 와서 이렇게 고생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느냐? 몰랐다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를 책임지고 나가면서 내가 오늘까지 핍박의 길에서 감옥에 들어가고 핍박을 당하고 이 민족 앞에 제재를 받지만 내가 이 한을 풀기 전에는 죽지 못해요. 오늘 우리 통일교인은 예수의 옷자락을 붙들고 통곡해야 해요. 십자가가 웬말이냐? 하나님의 황태자요, 독생자로서 이 땅 위에 만민의 구세주로 왔던 그분이 어찌하여…. 십자가가 웬말이냐? 예수가 살아서 구주가 못 돼요?
내가 대구에 들를 적마다 분하고 원통해요. 통일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는…. 밟고 천대해 봐라 이거예요. 뿌리는 자란다. 뿌리는 뻗어 나간다 이겁니다. 누가 삼켜 버리나 보자 이거예요. 누가 참인가 보자는 거예요.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보자 이겁니다. 내가 피어린 눈물의 기도를 하면 어느 목사 이상 기도했다 이거예요. 하루를 기도해 눈이 붓도록 기도했다 이거예요. 갖은 욕설을 퍼붓고 이 민족이 나를 저주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신 예수의 뜻을 알았고, 또 가야 할 하나님의 서글픈 복귀의 노정을 알았으니 나도 참고 또 가는 거예요. 나를 죽으라고 감옥에 몰아넣은 그 녀석들은 죽고 죽으라는 사람은 안 죽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또다시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나니 스승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태어나 가지고…. 내가 만약에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고생 안 했어요. 지긋지긋한….
그렇지만 하나님은 불쌍한 사람, 외로운 사람, 몰리는 사람의 친구요, 매맞고 심판받는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을 먼저 구원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불쌍한 민족, 갈 바를 모르고 엉망진창이 돼 있는 이 대한민국, 민족이 지고 있는 짐을 내가 다 짊어지마' 하고 나온 겁니다.
기성교회 목사 장로, 통일교회 문선생이 이단자의 괴수라고 몰아 가지고 나보다 잘되나 보자구요. 잘되려고 하던, 잘되기를 바라고, 잘되겠다고 하던 사람이 잘못됐더라 이거예요.
그러한 한을 품고 나오던 복귀의 노정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노아 시대의 하나님의 한을 풀고, 아브라함시대의 한을 풀고, 모세시대의 민족적 한을 풀고, 예수시대의 세계적 한을 풀려던 우리 아버지, 내 아버지 사정이 이렇게 비참하고 이렇게 억울하신 줄을 누가 알았느냐 이거예요. 구세주의 이름을 가지고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찾아왔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박대했어요. 어느 누가 밥 한그릇 주었어요, 어느 누가 옷을 주었어요? 예루살렘 제단 위에 올라가 가지고 질책하고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고 저주하던 예수의 사정을 누가 알았나 말이예요. 그런 생의 노정을 마치고 간 예수의 사정을 알아야만 제자가 되는 겁니다. 예수를 믿으면 뭘할 것이예요? 제자 중의 참된 제자, 제자 가운데 제자가 될 수 있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대하여, 수많은 종교를 대하여 새로운 기치를 드높이 들고 어젯날 한 많았던 예수의 한을 풀고, 하나님의 복귀 천국의 한을 풀어야 돼요, 복귀 천국의 한을.
그렇기 때문에 이 천국 가운데는 참다운 백성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참다운 백성이. 그다음에는 참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되고, 참다운 족속을 만들어야 되겠다, 참다운 민족을 만들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나가는 거예요.
오늘날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개인을 찾아갔다가는 또다시 개인 앞에 찾아가야 할 복귀의 길을 더듬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찾아갔다가 핍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쫓겨났다는 거예요. 밟혔다는 거예요. 내 아버지를 쫓았으니, 우리 아버지가 세계를 향하여 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으니 나도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 길이 험준타고 내가 마다할 거냐, 그 길에 죽음이 어려 있다고 내가 마다할 거냐, 슬픈 곡절이 처해 있다고 내가 마다할 거냐, 내 아버지가 가신 길을 내가 가야 되겠으니 그가 어려우면 나도 어렵기를 바랬고, 그가 슬프면 내가 슬프기를 바랬고, 그것이 통일가가 가야 할….
이리하여 오늘날 한국, 조그만 삼천리 반도를 기반으로 하여 삼천만 민족 앞에 이색적인 움직임을 움직여 가지고 세계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자는 것입니다. 민주와 공산을 우리가 나가는 방향과 우리의 이념권 내에 삼켜 버리자 이겁니다.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서는 거예요. 이와 같은 엄청난 뜻이 아버지께서 세우신 뜻인 것을 알게 될 때….
이런 사정과 형편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와 같은 사정이 아무리 비참하더라 해도 이것이 내 아버지의 사정이기 때문에 내가 그 아버지의 형편과 그 아버지의 역사와 그 아버지의 심정과 접붙이려니 그 아버지의 고통까지 내가 받아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기독교인들은 잠을 자서는 안 되는 겁니다. 쉬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세계 기독교인들은 안식의 한 날을 노래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통일교회는 실질적인 인연을 갖고 가는 겁니다. 가는 데는 어디서부터? 개인에서부터 가는 겁니다. 예수가 죽은 후에 고난의 자리에서 지옥 가운데 천당을 만든 거와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는 이 땅 위에 사망의 무더기가 휩쓰는 이 천지 가운데, 지옥 가운데 천당을 세워야 돼요. 제일 불쌍한 자리에 가는 겁니다.
우리의 눈물과 피땀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수고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자기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수고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6천 년 한을 풀기 위한 복귀의 노정을, 재창조를 거쳐서 한 많은 복귀의 노정을 가고 또 가고 또 복귀의 노정을 거쳐간다고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이 가야 할 것은….
오늘날 여러분들이 여기 모여서 선생님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위한다는 것은 좋습니다. 선생님이 좋다는 게 아니예요. 고맙다는 거예요. 내가 여러분 앞에 바라는 것은 나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원치 않아요. 이 민족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선생님을 사랑하는 만큼 민족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 나라를 사랑하라는 겁니다. 선생님에게 떡을 해주고 싶거들랑 그 떡을 가지고 불쌍한 민족에게 주지 못해서 울 수 있는 여러분이 되라는 거라구요. 비참한 경지에서, 죽음의 경지에서 생명을 구해 주기를 바라는 그런 처지의 민족이 많은 것을 볼 때 그런 민족을 붙들고 통곡하는 민족이 있으면 도리어 선생님이 받은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나에게 꽁보리밥 한 그릇을 안 갖다 줘도 좋다는 거예요. 그 대신 그런 정성이 있으면 삼천만 민족, 온 인류를 위하여, 하늘땅의 백성을 위하여 나눠 주라는 거예요. 나는 여러분들 앞에 당당코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자신 있다는 거예요. 굶는 데는 어느누구보다도 굶었고, 욕을 먹는 데도 누구보다도 더 먹었고, 매맞는 데도 누구보다도 더 맞았다는 거예요. 누구한테 신세를 지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도 옷 벗고 나가면 일등 노동자예요. 오늘날 한국 사람은 몰라요. 에헴 하고 좋은 자리에서 뭐 이래 가지고 잘살지? 천만에요. 잘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실제적인 환경에 있어서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지금까지 피어린 전통으로 남겨 놓은 통일의 역사임을 여러분이 알았다면 이 역사를 빛내야 돼요. 이 역사를 타고 앉아 가지고 소모시키는 사람은 하늘의 역적이요, 이 역사를 빛내는 사람은 하늘의 충신입니다.
우리 뜻을 알고 난 후에는 복귀의 천국을 바라는 아버지의 천국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부모의 날이 세워졌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이 세워졌지만 하나님의 날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이거예요. 복귀 천국의 해방의 웃음소리가 삼천리 반도와 온 지구성에 드높이 울려 퍼질 수 있는 그날을 향하여 우리는 행진하고 또 실행해야 되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섰는데 언제 쉴 새가 있느냐 말이예요. 쉴 새가 없어요. 열두 시가 지나 자다가도 눈만 뜨면 깜짝 놀라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통일신도들이예요. 밥을 먹다가도, 밥을 넘기면서도 통곡하는 통일교회 신도들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복귀 천국을 완결해야 되겠고, 예수와 성신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복귀 천국을 완성해야 되겠고, 오늘날 지금까지 저나라의 수많은 영인들, 목 베임을 당하고 희생했던 제물의 노정을 거쳐간 모든 천천만 성도들도 역시 이 지상천국 복귀의 한을 풀어야만 그들이 해원성사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내용을 알고, 엄청난 사명을 짊어진 우리에게 있어서 쉴 새가 없다는 겁니다. 다리가 부러지든 살이 터지든 가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전진을 하는 일념으로 가고 가고 또 따라가야 돼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교인에게 있어서 3년노정을 가라고 내가 친히 여러분 앞에 명령했습니다. 여기에 여러분이 가는 데 있어서는 피를 팔아서라도 전도 나가야 되겠고…. 별의별 사연이 많아요. 피를 팔아서라도 전도 나가야 되겠고, 갈 여비가 없으면 천리길도 멀다 말고 걸어가야 되겠고, 나이 어린 처녀들이 수많은 사람에게 치욕을 당하면서라도 자기의 일편단심 정한 뜻을 향하여 산을 넘고 들을 건너며 모험을 무릅쓰고 가야 할 이런 사정을 전개시킨 그분의 책임이 없겠느냐?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 쓰러져도 한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서 쓰러지고 희생되더라도 한하지 말라는 거예요. 천국건국의 횃불을 들고 나선 용사이거늘 어찌 화살이 없겠으며, 어찌 적이 나를 포위하지 않는다고 보느냐? 그럴 수 있다 이거예요. 있지만서도 스승을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그 마음은 나를 위함이 아니요, 민족을 위함이요, 세계를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을 대해 걸어가는 길은 죽음길도 즐거이 찾아가야 할 길이요, 통일용사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들은 대구면 대구 도성을 넘고 경북 경계선을 넘고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나가야 돼요. 삼천만 민중 앞에, 내 민족 앞에…. 여러분 보라구요. 현재 한국 식구들을 보면 이게 뭐예요? 길거리에 팻말을 박아 가지고 '이 자식아, 일어나라' 하고 자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됩니다. 배통을 찌르고 야단을 해야 돼요. 그래서라도 갈 수 있게 하는 일을 해야 돼요. 그러지 않고는 망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저 말단에서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뿌려라! 땀은 땅을 위하여 뿌려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 땀이 알아줄 것입니다. 네 피살은 하늘을 위하여 뿌려라, 이것은 고이 가는 제물이어늘…. 하나님은 제물의 연속, 제물의 발판을 찾아왔습니다. 개인적인 제물시대, 가정적인 제물시대, 종족적인 제물시대, 민족적인 제물시대, 국가적인 제물시대, 혹은 세계적인 제물시대로 뻗어 나가는 거예요. 오늘 이 통일의 식구들을 바라보던 개인적인 제물시대는 지나가고 민족적인 제물의 책임을 다하여….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될 수 있으면 제일 말단에 가서, 남들은 오뉴월 삼복 더위에 피서를 가고 해도 고생을 해야 돼요. 다른 학생들은 전부 다 놀러 가고 고향에 가도 우리 학생들은 고생을 해야 돼요. 여름방학 때 우리는 피투성이가 돼 가지고 농촌에 가서 농사꾼이 돼야 돼요. 혹은 도성에 가 가지고 구루마꾼이 돼야 돼요. 이래 가지고 이 민족의 친구가 되고 이 민족의 의지자가 되어야 돼요.
이리하여 우리는 점진적인 발전의 노정을 거쳐야 돼요. 3년노정 위에 한이 많지만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말한 것을 믿을 거예요. 3년 전에 여러분에게 '3년노정이 지나면 세계는 이렇게 된다' 했는데 그렇게 됐다 이거예요. 된 거예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이런 내용이 있지만…. 세계가 이젠 우리 손아귀에서 결정될 수 있는 때가 왔다 이거예요. 그러나 3년 고비를 가다가 지치는 식구들도 있다는 거예요. 지치는 것을 바라보고 지치면 지칠까봐 위로해 주고….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망하느냐, 사탄이 흥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가지고 충효의 도리를 받드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지칠 수가 없어요. 기다릴 수가 없어요. 사람은 포탄과 마찬가지예요.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 자체는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지는 거예요. 결과는 난 몰라요. 터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가야 돼요.
이제부터 3년노정을 거쳐가는 과정에 있어서 3년 남은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나가야 돼요. 깨끗이 가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10월 초하룻날을 기준해서 남한 각지의 여러분 책임자들, 지구장이면 지구장을 빼라구요. 이래서 다시 가야 돼요. 지금까지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명령은 할 줄 알았지만 사정을 몰랐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일선에 나가서, 일선에 서서 통치하라구요. 그런 입장에 선 여러분들이 지구장을 생각하고, 지구장을 세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무엇이 있거든 지구장이 그렇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남아진 복귀의 날을 위하여, 복귀의 세계를 향하여 그렇게 가는 것이니 여러분들도 따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따라갈래요, 안 갈래요? 「갑니다」 가겠어요? 「예」 가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안 갈 수 없는 비참한 사정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을 누가 지켜 주느냐? 여러분을 지켜 주는 사람은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요, 이 나라의 관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이 지켜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 죽어가면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지켜 줘요.
여러분이 지방에 가거든, 혹은 그 부락에 들어서면 누가 선한 사람이냐를 알아야 돼요. 선한 사람이 불쌍하고 억울한 자리에 있거든 목숨을 걸고 싸워야 돼요. 뼈를 가진 사내들이 돼야지 무골충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구요. 시시하고 추악한 무리들이 돼서는 안 되겠다구요. 우리는 자신과 신념을 가지고 내가 전도하는, 내가 살고 있는 활동무대를 끌어서라도 가자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 후손에게 어떤 위업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 뜻이 그래요, 하나님 뜻이. 이것을 우리가 못 하면 우리의 조상, 우리의 후손이 참소해요, 참소해.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수천만 대의 후손들이 아담에게 '그 간나 녀석!'이라고 욕을 한다구요. 분하고 원통하다구요. 천륜의 법도를, 우리 인생의 노정 전체를 유린한 아담 해와 천사장 사탄…. 역사적인 원수를 갚아 가지고 하늘의 한을 해원성사해서 승리의 한날을 닦고 말겠다는 신념이 날이 가면 갈수록, 시기와 환경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우리는 강해야 돼요. 통일교인들은 하나님의 노정을 가기 위해 나선 용사들입니다. 북한에 있어서 공산당이 웬말이예요? 우리 통일이념만 가지면 다 됩니다. 60만 대군이 이 정신으로 무장만 하면 순식간에….
오늘날 우리들이 짊어진 사명과, 오늘날 우리들이 가야 할 책임적인 노정이 얼마나 엄숙하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역사는 흘러가도 우리의 책임은 흘러갈 수 없다 이거예요. 역사는 지나가도 우리의 책임은 지나 버릴 수 없다 이거예요. 수많은 사람은 안식해도 우리는 안식할 수 없다 이거예요. 필승의 한날을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이 천지간에 세우고 가지 않으면 후손한테 참소받는다는 이 엄청난 과제를 앞에 놓고 몸부림치는 우리들이 돼야 됩니다.
여러분이 활동하는 데 힘이 부족하거든 하나님 앞에 정성을 들이고 충성을 다하여 민족을 걸어 놓고, 세계를 걸어 놓고 기도하는 거예요.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을 앞에 놓고…. 복귀의 길은 여러분이 가기 전에 그 앞 단계의 길을 가게 닦아 놓고야 여러분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 것은 필연적인 법도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어디에서 죽을 거예요? 어디서 죽느냐? 최후에 하나님을 빛내고 그 민족과 그 세계가 내 뒤를 따라오다가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고 죽었다면 성공이예요.
여기 대구에 모인 통일교회 젊은 청년 남녀들은 하늘이 불을 질러 가지고 제일 꺼지지 않는 불이 돼야 돼요. 자기의 행동을 자기가 믿고, 자기가 전하는 말씀을 자기가 믿고,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믿고 세우기 위한 선각자라는 것을 알고 늠름하고 씩씩하고 담대하게 가야 할 길을 가야 됩니다. 가는 데는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 민족을 넘어, 세계 수십 국가는 우리를 부르고 있나니, 이 세계를 넘어 수많은 애혼들, 영인들은 우리를 부르고 있나니…. (녹음이 잠시 끊김)
지구장 혹은 지역장들은 식구들이 나가 싸우는 것을 자신을 대신해 싸우는 것으로 알고 6개월 동안 참전하는 이 도상에 서 있으니 여러분들도 참전하는 거예요. 같은 마음 같은 위치에 섰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는 자지 못하고, 그들을 위해 염려하기 전에는 먹지 못하고, 그들을 위하여 생각하기 전에는 행동을 못 하는 그런 마음 가짐을 가져야 돼요.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경북에 있는 전체 식구들은 '내가 이번 기간에는…' 문제는 그거예요. 할 시간이 없어서 못 했더라도, 부디 이번 기간에는 전국에 있는 통일 신도들이 전체 동원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기 실체가 움직일 수 있는 마음적인 준비라도 단장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외적인 부흥보다도 우리의 식구가 단합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얼마만큼 하나되느냐가 문제예요, 정성을 다해야 되고 노력을 다해야 되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홀로 있더라도 정성을 다 들여야 돼요. 지금 뜻을 위해 나선 이 용사들을 위해서도 정성을 들여야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밥을 먹고 배부를 적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돼요. '이 뜻을 위하여 외치는 우리 지구장은 밥을 먹었는가? 우리가 편안한 잠을 자게 될 때, 열두 시가 지났는데 잠을 잘까? 어떠한 잠을 잘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야 돼요.
이런 생활과 이런 입장과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왜냐?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민족을 누가 끌어 복귀의 고개를 넘을 것이냐? 이 세계 인류를 누가 끌어 복귀의 고개를 넘을 것이냐? 민족적인 골고다가 남아 있고 세계적인 골고다가 남아 있나니, 민족적인 골고다 도상에 있어서 승리한 자가 아니고는 세계적인 골고다 도상을 향해서 행군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인 골고다를 향해서 떠나가야 되고, 천주적인 골고다를 향하여 행군하여야 할 책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는 연고로, 하나님의 소원의 천국인 복귀의 천국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연고로 오늘도 가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부모가 반대해도 가야 되겠고, 형제가 반대해도 가야 되겠고, 동지가 배반해도 가야 되겠고, 나의 가정이 반대해도 가야 되겠습니다.
가야 할 복귀의 노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는 살아서 안 가면 죽어서라도 억천만세를 통하여서 가야 할, 내 일대에 안 가면 우리 후손 수천만 대를 통하여서라도 기필코 가야 할 이 엄청난 과제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것을 내 일대에 어떻게 돌려 맞추느냐 하는 책임감에 불타서 다른 사람이야 가겠으면 가고 말겠으면 말고, 불평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고, 내 갈 길이 남아 있나니 내 갈 길을 달려가겠다는 이런 충효의 심정을 가지고 여러분은 꾸준히 달려가야 된다는 것을 알고 가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오늘날 고마운 것은 이런 복귀 천국을 바라보는 이때에 있어서, 요 시대에 있어서…. 그 환경에 있어서 빛을 발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밟는 흙아 너는 복이 있고, 내가 자라는 마을아 너는 복이 있고, 내가 외치게 될 때 내 말을 듣게 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 봤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복이 있구나, 내가 마시는 물에 복이 있구나, 내가 잠자는 땅에 복이 있구나, 아무리 바윗돌이라도 복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복을 전해 주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나는 복을 전해 주기에 바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더구나 불쌍한 이 민족 삼천만을 위해서 통곡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이 민족을 위해서 절대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가시니 여러분도 또 가겠어요? 「예」 갈 자신이 있어요? 「예」가는 길이 어렵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우리 부모가 찾아올 때도 부모를 만날 수 없는 그런 자리예요. 형제가 와서 '야 동생아, 오빠' 하고 부르더라도…. 처자가 와서 애절히 사정해도 눈을 감고 기도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친구가 와서 자기의 사정을 말하게 될 때 아는 척, 모르는 척해야 될 때도 있었어요. 인간세계에서는 말 그대로 비참하고 처절한 그런 사정이 많았어요. 하늘같이 믿던 사람 앞에 자기의 소신을 말하게 될 때 배척하는 그런 억울한 자리에도 있었어요. 하늘이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고자 할 때, 내 정성 백 배 더해 주기를 바라서 기도한 후에 눈물 흘리며 발길로, 왼발로 차 버린 때도 있었어요. 처량하다면 인간사에 없는 처량한 것이요, 힘들다면 힘든 길이었어요.
가정에서 안 되니 광야에서 그 놀음 해야 되고, 광야에서 그 놀음이 안 되면 산꼭대기에서 그 놀음해야 되겠고, 산꼭대기에서 안 되면 이방을 찾아가야 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이스라엘 천국을 바라보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예수를 죽이고 난 후에 이스라엘 선민권이 이방으로 옮길 줄을 누가 알았어요?
한많은 복귀의 길 이게 우리 아버지의 남기신 길이기 때문에, 그 아버지와 아들딸이라는 혈족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 아버지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되고, 그 아버지가 머물 때 나도 머물러야 할 운명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 광야에서 모세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을 바라보고 따라가듯이, 모세 실체는 못 보더라도 모세 할아버지의 지팡이 끝을 보고라도 따라가야 된다는 말이예요. 안 따라가면 광야에서 독수리 밥이 되는 거예요. 독수리밥이 돼요.
여러분 앞에 선두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을 지도한 내 자신이 벅차요. 힘에 벅찰 때가 많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안 갈 수 없는 길이예요. 여러분이 말을 듣고, 여러분이 순종하고, 여러분이 고분고분 따라오는 여기에는 갖은 화살이 많아요. 사탄의 갖은 화살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도 가야 할 운명입니다. 내가 부상을 입었어도 가야 할 것이요, 허리가 부러졌어도 동지의 손아귀를 붙들고 나를 밀어 줄 수 있고, 나를 끌어 줄 수 있는 친구라도 만들어 놓고 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생전에 정성을 들인 식구를 만들든가, 내가 피살을 다 팔아서 믿음의 아들딸을 만들어 놓든가 해야 되는 거예요. 어느때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알아요? 비참한 것은 나에게 적용 안 되고 이방 사람, 혹은 기성교회 사람에게 적용된다, 우리 통일교인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니예요. 비참한 그 일이 나에게 부딪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승은 생애를 바쳐 가지고 나갈 테니 가자 이겁니다. 다 나를 의심하고 있어요. 다 원수예요. 세상을 바라볼 때, 만약 안 될 때가 있으면 흘러가는 바람소리가 친구예요. 하나님의 사정을 반짝이는 하나의 별을 바라보고 하소연도 하고, 흘러가는 물결을 보고도 하소연을 해야 돼요. '나는 너를 아나니 너는 내 사정을 알아 다오' 하는 때가 있는 거예요. 떨어지는 낙엽을 볼 때 자기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할 때도 있는 거예요. 혹은 어떠한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애무하고 사랑하는 것을 볼 때 나에게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건만은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서 효도를 못 해본 불효자예요. 세상으로 보게 되면 그런 불효가 없어요. 인간 비애의 곡절이 내 가슴을 거치고, 역사적인 비애의 모든 초점이 내 가슴을 때리고 갈 적마다 낙망을 해서는 못 가는 길이 복귀의 길입니다.
선생님은 감옥에서 날마다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여, 내가 이 자리에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 안 했어요. 절대 기도 안 해요. 몸부림친다는 거예요. 내가 감옥에서 매를 맞고 피를 토하는 자리에 있는 것을 하나님이 모르나요? 통곡하고 싶은 가슴을 가지고 억제할 수 없는 그런 사정인데 내가 아버지에게 '이 원수를 갚아 주소' 할 수 있어요? 원수에게 벼락을 쳤다면 이 민족이 다 망했다는 거예요. 세상으로 볼 때는 억울하고 분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느 누가 '문선생, 당신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한마디 하면 천하가 녹아날 듯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 모르는 생각과 남 모르는 사정을 안고 있는 시대적인 개척자는 심각한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왔다 간 예수는 불쌍한 분이예요. 예수를 보낸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예요. 그 하나님편이 돼 가지고 옹호자가 되고 보호자가 되어 그를 위해 싸우는 용사가 된다면 천국은 틀림없이 가능한 거예요. 이런 무리라는 걸 오늘날 우리는 모르면 안 돼요. 오늘날 수많은 배척자들처럼 사라질 수 있는 무리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배척하는 무리는 사라지더라도 뜻을 대하는 무리는 남아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우리가 또 가야 할 길, 아버님께서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으니… (흐느끼시면서 말씀하심)
아까도 얘기했지만 대구 도성은 통일교회 앞에 있어서 극단의 원수입니다. 내가 자기 문전에 가서 밥을 달래요? 왜 그렇게 야단이예요, 왜 그렇게? 밥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 그렇지만 하나님은 알아요,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의 부끄러운 그 심정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그 마음이, 내 입으로 맹세했고 내 마음에 결의했던 마음이 사라질까봐 고이고이 지키라 이거예요. 고이고이 지켜 가지고 '세상은 무너지고 나라는 무너지고, 세상의 악당들은 흘러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마음은 일편단심 선한 심정이어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갖고 나가라는 겁니다. 남아진 복귀의 길을 또 가야 돼요. 세계적인 이 사조가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을 알고 쌍수를 드높이 들고 내 심정에 폭발되는 하늘의 심정을 갖고 이 민족을 불사르고, 세계를 불사를 수 있는 하늘의 용사가 되겠다고 재차 결의하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다구요. 그 결의 가운데서 실천하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다는 것을 부탁해요. 그럴 수 있어요?「예」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미안합니다. 쉽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바윗돌을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습니다. 나뭇가지를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으며, 길가의 풀 한포기를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습니다. 발길에 차이는 이런 조약돌을 붙들고도 대성통곡을 해봤습니다. 하나님의 서글픔은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많은 사람이예요. 맹목적인 자리에 선 사람이 아니예요. 맹목적이 아니예요. 확정적인 입장에서 싸워 온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가는 앞길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는 것을 알고 그 마음과 몸을 다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다'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갑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민족을 사랑하지 않으면 못 갑니다.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그 길이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인 연고로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가야 되겠어요. 이런 길이 있는 것을 알고 전국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식구들, 이제 우리 손에 손을 붙들고…. 지금까지는 장송곡을 부르면서 비애의 울음소리로, 처량한 울음소리로 우리는 통일의 노정을 개척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의 소망을 갖고 늠름하고 씩씩하게 기쁨과 승리의 외침이 울리는 노랫소리와 더불어 이 삼천만 민족을 향해 행진할 수 있는 입장에 나섰기 때문에 서슴지 말고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재차 천명하는 바입니다. 알겠지요? 「예」
여러분이 이번에 나가는 길에 '또 가야 할 복귀의 길! 또 가야 할 복귀의 길! 또 가야 할 복귀의 길!' 이것을 염두에 두고 끝까지, 다시 만날 때까지 남아지는 무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예」 이번에 여러분과 한번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외국을 다녀와야 돼요. 미국 식구라든가 독일 식구라든가 혹은 일본 식구들이 내가 와 주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몰라요. 그들이 얼마나 기다린다 하는 편지를 받아 보게 될 때 내가 얼굴을 못 들어요. 이 한국이 욕을 하고, 한국이 배척하는 이 통일교회 문선생이 귀하다는 거예요. 눈물어린 편지를 받아 볼 때 내가 이 민족 삼천만을 대해서 통곡한 때가 있었습니다. 이 민족은 반대하는데 이색 민족이 나를 부르고, 이색 민족이 나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니 이게 웬말이뇨….
심정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하여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은 세계이기 때문에 그런 관계에 있는 그들 앞에 있어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내가 응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이런 긴박한 사정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 올지 몰라요. 그러니까 그동안 전부 다 배치해라 이거예요. 내가 떠나게 될 때, 어디 가게 된다면 찾아오는 게 제일 싫어요. 섭섭해하지 말고….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그러니까 섭섭해하지 말고 선생님이 남기고 간 한국 땅을 여러분이 복귀하기 위해 힘껏 자기의 책임과 소신을 세워 가지고 소기의 승리를 가져오게끔 충심을 다하여 싸워서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마련해 주기를 신신당부하는 바예요. 알겠지요? 「예」
아버지, 오늘은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심정의 일면을 토로했나이다. 이것을 지나 또 가야 할 복귀의 길이 남아 있사오니, 심정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날을 맞이하여 아버지 앞에 새로이 맹세하고, 새로이 아버지 앞에 결의한 마음이 더더욱 아버님이 보시기에 늠름하고, 아버님 보시기에 하늘 용사로서 자세를 갖추고 하늘땅 앞에 치리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들은 죽더라도 사탄세계에 신세를 지지 않고 죽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사는 동안 남을 위해 주고, 남을 위하여 무엇을 남기고 가겠다는 신념을 가진 것이 통일의 자녀들이었사오니, 이 붉은 심정에 타오르는 이 정열을, 아버지, 더욱 불붙이시옵소서. 이리하여 삼천만 모든 젊은 가슴 가슴에 새생명의 불길을 전하러 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과 남아진 기간을, 아버지, 친히 맡아 주시옵소서. 만나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한날을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사랑이 길이길이 저들과 같이하여 주옵기를 부탁드리옵니다.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는 수많은 자녀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기를 바라옵니다.
만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도 이날 이 기간을 위해서 염려하고 있사오니 친히 아버지께서 사랑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