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10월 초하루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이 6개월 기간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길다면 길겠지요. 또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은 여러분들이 정성을 다 들여야 할 기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마 이 기간에는 선생님이 여기 있지 않을지 모르겠어요. 또, 여러분들이 공적인 입장에서 책임을 지고 이 남한 땅, 혹은 이 한국 천지 도처에서 활동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어디에 가더라도 여러분들은 전송을 나오고 싶어도 오지 못할지 몰라요.
지금까지는 선생님이 지도하고 선생님이 위에 있어 가지고 움직였지만, 이번 기간에 있어서는 여러분들이 선생님이 없더라도 선생님이 있는 이상, 그야말로 여러분들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어떤 천적인 조건을 세우는 이런 한 기간으로 세워 주시기를 하늘은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우기나 지금 여기서 수련을 받고 있는 수련생들은 여러분 자기 개인을 두고 보게 되면 개인이요, 혹은 어떤 가정이면 가정의 아버지도 될 수 있고, 어떤 가정의 아들도 될 수 있고, 어떤 지역이라든가 지구에 속해 있는 책임자의 입장에 있을는지 모르지만, 제한된 환경의 위치와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여기에 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엄숙한 뜻 앞에 내가 부름을 받아 가지고 이 통일이념 세계 앞에, 이와 같은 전환시기에 있어서 크나큰 책임을 짊어지고, 혹은 사명을 짊어지고 원수세계 앞에 행군 나팔을 부는 이런 엄숙한 대열에 있다는 것을 언제든지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은 수련받는 이 기간―이 기간은 극히 짧은 한 열흘 기간이지만―에 있어서 과거를 청산하고 현재 통일교회가 처하고 있는 입장을 생각해야 됩니다. 현재 통일교회의 입장과 앞으로 올 세계를 대신하여 나갈 방향을 생각하면서, 과연 어떤 힘과 어떤 능력과 어떤 움직임을 통하여 하늘이 바라시는 본연의 목적점을 성취시켜 놓겠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여기서 의미심장한 여러분의 내적인 결의와 외적인 결의가 자연적으로 생기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름받은 이들은 물론 개체들은 다르지만 인연과 사정, 이 뜻을 중심삼고 볼 때는 그 개체가 개체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지역을 거칠 때는 그 지역을 대신하여, 혹은 지구를 거치게 될 때는 그 지구를 대신하여, 오늘날 하늘의 뜻과 하늘의 사명을 대신하여 이념과 행동을 갖추어 가지고, 이것이 최후의 판결을 짓기 위한 행군의 대열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 땅을 내가 먼저 걸고 이는 우리의 장중에 있고, 우리가 '좌' 하면 좌 해야 되고, '우' 하면 우 하게끔 하는 결정적인 명령을 책임한다는 이런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道)를 지나갈 적마다 한번의 성과를 하늘이 즐거움으로 받아 주고 통일의 식구들이 찬양으로 하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동시에, 그 찬양된 실적이 역사를 빛내고, 시대를 빛내고, 미래를 빛낼 수 있는 것으로 남아질 수 있다면 통일교회의 우리 식구들이 지금까지 싸워 나온 새로운 총결실의 청산이 지어지지 않나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은 그와 같은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이 수련회를 거쳐야 되겠습니다. 여기서부터 다시 한 번 정비하는 기간이예요. 다시 한 번 정비하는 기간이예요.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뜻을 대하고 나가게 될 때 자기의 어떠한 개인적인 욕망, 개인적인 사정을 배후에 혹은 전후좌우에 인연지어 놓고 달려갔지만, 이제부터는 공적인 입장에서 출발도 공적이요, 사정도 공적이요, 일체가 공을 선두로 세우고 공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살고, 공을 위할 수 있는 입장에서 움직이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입장에서 이것을 해결지을 수 있는 책임을 짊어져야 된다, 여기서 만약에 부당한 것이 있으면 용서할 수 없다, 이런 신념을 가져야 돼요. 한 도(道)를 뚫고 군(郡)을 뚫을 수 있는 각오와 결의를 갖고 나가 주기를 부탁해요. 이번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되겠고…. 선생님 자신도 그 길을 다 닦아 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잡으면, 이런 말씀을 하려고 해요. '우리들이, 즉 여러분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 이런 내용이 될 거예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그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하나님 자신은 예정했습니다. 자라는 아담 해와를 바라보는 그 마음에 있어서는 아담 해와가 머물러야 할 그 위치를 중심삼고 볼 때에 그 위치는 불행의 위치가 아니라 행복의 위치요, 고립된 위치가 아니라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화동의 주체로서 설 수 있는 위치였음을 아버지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동하면 개체의 동함이로되 하늘땅을 대신하여 움직이는 것이요, 그가 정하면 개체의 정함이로되 하늘땅을 좌우시켜서 정하게 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셨다 이겁니다.
그러면 그 개체의 위치를 두고 볼 때 그 개체의 위치에 서게 된 '나'라는 존재는 어떠한 존재냐? 하나님이 소망 가운데서 찾고자 하는 아담, 하나님이 소망 가운데서 세우고자 하는 가정, 하나님이 소망 가운데서 이루어 놓기 위한 종족·민족·국가·세계,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상하셨던 전체의 세계를 인간과 더불어 종결짓고, 인간과 더불어 자유와 평화를 노래할 수 있는 행복의 천국을 건설하는 이러한 개체로서 하늘은 바라봤다는 겁니다. 즉, 창조이념 전체를 하나님은 그 일신에다 걸고 그 위치를 제정하였고, 그 위치를 책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아담 하나가 완성 단계까지 자라 올라간다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소망의 개체를 찾는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가정을 찾는 것이요,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종족·민족·국가·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일적인 하나의 주체로서 전체를 완결지을 수 있는, 전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으로서의 아담 하나에서 전부 다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자라는 그 자체를 대해서 어떠한 소망과 어떠한 희망과 어떠한 사랑과 어떠한 심정을 갖고 대했던가를 타락한 이후의 아담들은 모를 겁니다. 타락 이후의 해와들은 모를 거예요.
아버지께서 창조 전에 마음으로 그리면서 창조하던 그 과정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그 세계를 거쳐 소망의 천국을 바라보며 마음에 그리던 그 내정적인 창조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을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캐치할 수 없고, 인간들이 알 수 없는 사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아담 해와를 지은 바의 그 위치를 하나님만이 알고 아담 해와는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해 버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개체가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개체를 중심삼은 가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가정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의 민족이 어떻게 되어야 된다는 것도 모르고, 그 국가와 세계, 천주가 어떻게 되어야 된다는 것도 모르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이것이 타락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하늘은 복귀역사를 시작하는 그 당초에, 그 시간부터 하늘은 무엇을 세워 왔던고?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늘이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복귀역사를 하게 될 때, 그 가인 아벨을 세워 놓고 아벨을 통하여 복귀의 기준을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내정적인 사정은 무엇이었던고? 아벨 그 자체보다도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내용, 그 위치의 내용은 아벨이 아담의 작은아들로 태어난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에 내재된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을 체휼해 가지고 거기에 결부된 밑받침 위에 하늘이 해준 그 기반 위에, 즉 창조 직후의 아담 입장에 서는 겁니다.
이리하여 아벨이 찾아짐으로 말미암아 아벨을 통할 수 있는 가정, 아벨을 통할 수 있는 종족과 아벨을 통할 수 있는 민족, 아벨을 통할 수 있는 세계…. 물론 그 세계는 범위도 좁고 시대적인 환경에 있어서 제한된 환경의 입장에 있었지만서도, 그 아벨적인 환경으로 머물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의 한계성을 내재시켜 놓은 것입니다. 아벨이 그런 입장에 섰다는 것을 아벨 자신도 몰랐고, 아벨을 대하는 부모도 몰랐고, 가인도 몰랐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슬픈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위하여 준비해 놓고, 그것을 위하여 정성의 터전을 마련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벨 자신이 그 정성의 터전이 무엇인지, 정성들인 그 자체가 누군가를 알지 못하는 입장에 섰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사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소원이 얼마나 딱하셨나 하는 것을 여러분은 짐작해야 됩니다.
아벨을 불러일으킨 것은 하늘이 개체를 세워 가지고 잃어버린 본연의 아담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있어서 이것이 모든 것을 청산짓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개인 아담으로부터의 짐을 짊어지고 전체적인 모든 위치를 결정하려고 했던 것이 아벨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연장되어, 역사적인 단계는 여기서 벌어져 가지고 일시에 변하여 수많은 종적인 자리로 연결시켜서 6천 년까지 연결되어 내려온 것을 여러분들은 복귀원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 아벨을 찾아오시던 아버지, 부르시던 아버지의 심정, 부르시던 아버지의 소원, 부르시던 아버지의 사정을 아담가정에서 아버지를 대하던 사람도 몰랐다는 겁니다. 찾아와서 보여 주고 의논하고 모든 준비를 해 나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알지 못하니, 하늘은 왔다가 돌아가야 할 운명에 처해 1,6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지나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길을 닦은 것이 노아까지의 시대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노아가정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본연의 그 기준을, 본연의 그 위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아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노아 자신은 120년 동안 수고하면서도 자기의 세워진 위치와 하늘이 자기를 세워 책임을 지워 준 그 사정도 모르는 입장에서 움직여 나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내정적인 심정, 혹은 사정과 소원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명령에 의해서 움직여 나오는 그런 노아를 바라보는 하나님은….
그는 물론 하루하루 일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심정의 도리를 세워 나갔지만 심정의 도리를 바라보고 그것을 지키면서 나오는 노아를 바라보는 하늘은 120년 기간이란 것이 무한히 지루했다는 겁니다. 노아가 바라보는 120년의 지루한 기간보다도 하나님이 바라보는 내정적인 심정의 120년 기간이란 것은 몇 억천만 년의 기나긴 세월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바라고 고대하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시간이라는 것은 짧지만 최고로 귀한 것, 가치 있는 것, 지극히 내정적으로 인연될 수 있는 그런 상대적인 존재를 바라는 그 순간은 무한히 긴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비례적인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을 여러분들은 체험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를 불러일으켜서 찾으려던 그 위치, 그것이 아무도 그 시대적인 사정을 알지 못하여 아브라함으로 연장될 때 하늘은 왔다가 슬픔을 느끼고 다시 돌아가야 할 입장에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아브라함을 세워서 또 섭리의 터전을 마련하여 한때를 세워 가지고 하늘의 사정과 하늘의 심정과 하늘의 소원의 일점을 해결지으려 했지만, 그것도 하늘의 뜻대로 아브라함이 행치 못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또다시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역사는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연장되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이 지금까지 우리 인류를 찾아 몇 번, 몇천만 번 왔다 갔느냐? 그리고 그 왔다 간 목적이 어디 있느냐? 오늘날 아담이 지니지 못한 그 위치, 아담이 세웠어야 할 그 위치, 그 위치에서 아담으로서 책임하여야 할 그 자체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아담 한 자체를 찾게 될 때에, 그것은 그로 말미암은 가정, 그로 말미암은 종족·민족·국가·세계를 통하여 본연의 이상과 여기에 바라던 소원의 일치를 위해서 지금까지 역사했던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대 시대마다, 아벨 때도 그러하였고, 노아 때도 그러하였고, 아브라함 때도 그러하였고, 모세 때도 그러하였고, 예수님 때도 그러했으니 역사적인 최후의 종말시대인 이 시대에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80퍼센트다 이겁니다. 하늘의 간곡한 심정이 오늘날 우리를 통하여 접붙이고, 우리를 통하여 내적인 기반을 넓히고, 내적인 기반의 위치를 결정함으로 말미암아 외적인 기반의 위치를 결정지어 안팎을 결정해서 한 자체를 세우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찾아오는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내적인 결정은 어느때에 지으며 외적인 결정은 어느때에 짓느냐? 이것을 오늘날 우리 선조들은 알지 못하였다 이겁니다. 아벨도 몰랐고, 노아도 몰랐고, 아브라함도 몰랐고, 모세도 몰랐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알았다고는 하지만, 내적인 결정은 지을 수 있었으되 외적인 결정을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안팎이 일체된 기준을 통하여야 할 복귀의 운명을 짊어지고 온 예수에게 있어서는 억울한 입장에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사정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왔다 가게 될 때 내적인 사정과 외적인 사정을 자기는 지켜 나갔지만 인류 앞에 그 사정을 가르쳐 주고 갔느냐 하면 가르쳐 주지 못하고 갔다 이겁니다.
역사 이래 이 땅 위에 한 번 그런 내적 사정과 외적 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왔다 갔지만, 왔다 간 그 자체는 이 땅 위에서 자체의 모든 위치와 자체가 결정지을 수 있는 사정을 남겨 놓지 못하고 감으로 말미암아 재림이라는 명사를 거쳐 가지고….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그와 같은 곡절을 알지 못한 운명에서 죽음 고개를 걸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오늘날 이 끝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말하고, 하나님의 사정을 말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개체는 누구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가정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종족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국가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세계와,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천국은 어디 있느냐? 그러한 심정적인 권내에서 내적 결정을 지어 인간의 기준을, 초점을 세워 가지고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적인 이념의 결정을 지어야 할 그런 투쟁의 역사가 있어야 될 것이며, 외적으로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성을 짊어지고 결정지어야 할, 이 투쟁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책임을 결정지어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늘을 세우기 위한 이념적인 아담 일치, 이념적인 아담 그 자체를 결정짓자는 겁니다. 그 기준을 탕감복귀하기 위해 6천 년 걸렸습니다, 6천 년. 그러니 그 위치라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 인류들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뇨? 아담이 본연의 위치에서 이념 완성한 실체가 되어 하늘땅 앞에 주관자로 나타나야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위치라는 것은 사탄세계의 참소를 받는 위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위치는 만사를 초월한 해방된 자리에서 하늘이 기뻐하면 땅도 기뻐할 수 있고, 하늘이 행하면 땅도 행할 수 있고, 하늘이 여기에 세워지면 땅도 만세에 영원무궁토록 세워질 수 있는 불변의 위치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 자리는 아직까지 우리 통일교인 에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곳까지 가야 할 실정에 있으니 여러분들은 지금 어떠한 단계를 거쳐 나간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날 복귀도상에 있어서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한다고 합니다. 아담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까지, 또는 이 외부적인 이념이 아담 가운데에 잠재해 있어야 됩니다. 아담 가운데 이것이 결정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정 못 되었기 때문에 이게 전부 다 깨져 나간다는 겁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탕감적인 조건으로 이와 같이….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종적으로 아담 자체가 일시에 이와 같은 터전으로 그 이념의 천국의 기원,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그 이념적인 심정과 사정과 소원과 목적이 이루어진 실체의 가치를 지녀 가지고 그때부터 아담 개인이나 그 가정 전체가 목적의 세계적인 기반 위에서, 하늘의 심정과 일치된 그런 자리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었는데 이것이 깨졌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노정을 거쳐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거쳐 나오는 데는 어떻게 나오느냐? 투쟁이다 이겁니다. 투쟁하게 될 때는 반드시 여기에 부작용이 따릅니다. 언제나 그래요. 이것이 역사라는 거예요. 개인시대에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몇천 년의 역사를 거쳤던 것이 직선상으로 뻗어 나가야 할 것인데, 이것이 대각선을 거쳐 가지고 땅 위에 내려오는 겁니다. 복귀섭리가 그래요.
그러면 여기에서 투쟁이 벌어져 이 투쟁이 연장되어 나가다가 여기에서 승리의 결정이 벌어지면, 여기에서 승리가 결정되면 탕감적인 역사는…. 그 탕감된 기준이 반드시 역사적인 소망의 터전으로서 개인적인 기준을 세우고, 그다음에는 여기에서 승리를 더 하여서 가정, 종족, (판서하심) 이래 가지고 쭉 내려옵니다. 횡적인 인연으로 종적으로 전개돼 나온 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싸움을 전개하여 승리한 그 터전 위에, 개인 대 개인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늘의 개인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가정 대 가정이 싸워서 가정적인 기준을, 종족 대 종족이 싸워서 종족적인 기준을, 민족 대 민족이 싸워서 민족적 기준을, 세계 대 세계가 싸워서 세계적 기준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투쟁해 나오는 겁니다. 여기에서 어떠한 승리의 조건을 세워 놓는 사명적인 기준이 있어야 역사는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느때에 이 땅 위에 왔느냐? 6천 년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를 걸어 놓고 사탄과 투쟁하는 기준을 예수가…. 개인으로부터 가정ㆍ종족ㆍ국가ㆍ세계까지 예수 자신이 연결시켜야 됩니다.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싸움, 가정적인 싸움, 종족적인 싸움, 민족적인 싸움, 국가적인 싸움, 세계적인 싸움으로 전개해 나가야 됩니다. 여기에서 종적인, 탕감된 기준에서 이루어졌다는 조건을 상속받아 가지고 이 지상에서 재차 전개시켜 가지고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 역사적인 아벨을 불러야 될 것이요, 역사적인 노아를 불러야 될 것이요, 역사적인 아브라함을 불러야 될 것이요, 역사적인 모세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모세를 부르는 동시에 역사적인 선지선열을 불러 가지고 역사적인 이스라엘 민족과 전체를 규합해 가지고 세계적인 무대로 출발해야 할 사명을 짊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민족을 규합하여야 할 탕감조건을 승리의 터전으로 남겨 놓은 아브라함과 역대의 모든 선조들의 인연을 계승할 수 있는 내적인 결정과 외적인 결정을 여기에서 완전히 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이 무엇이냐? 이 기준이 벌어져야만 여기서부터 예수님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그러나 예수가 와 가지고 이것을 결정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영적으로만, 이것이 땅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는데 영적 기준 중심삼아 가지고 재탕감하는 겁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를 거쳐 가지고 영적으로, 땅 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기준을 먼저 결정지어 가지고 이 기준을 다시 육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내용을 수습하는 것이 앞으로 오시는 재림주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스라엘의 4천 년 역사에서 국가적인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2천 년간 역사해 가지고 세계적 기준까지 끌고 나오는 데는 예수 자신이 국가를 수습하고 세계적인 사명인 내적 인연을 다시 전개시키기 위한 싸움을 했으니 그것이 예수와 성신, 삼위일체를 중심삼은 싸움의 노정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구원이기 때문에 영적 구원의 역사를 실체적인 기준에서 다시 탕감해야 됩니다. 이것이 오시는 주님의 사명입니다.
예수도 역시 여기에서 외적 기준을 결정짓고 내적 기준을 결정지어, 영육을 합한 여기에 가인과 아벨을 세워 가지고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의 기준을 합한 통일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 기준을 세우고 나서 이와 같은 싸움을 비로소 그 무대에 다시 재현시켜 가지고, 싸워 가지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는 악한 나라 선한 나라가 있어야 되고, 악한 사람 선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필요합니다.
야곱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데 라반의 집에 가서 고생을 왜 해요? 대립적인 이 목표에 있어서 축복적인 상대기준을 갖고…. 야곱을 하늘편이라 하게 된다면 라반과 그의 재물을 놓고 야곱이 싸우게 됩니다. 여기서 무엇을 찾아야 되느냐 하면 개체를 찾아야 돼요. 그다음에는 가정을 찾아야 돼요. 그다음에는 자녀를 찾아야 돼요. 종족의 기틀을 마련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나오게 될 때 순탄하게 나오지 못해요. 개인을 굴복시키고 그 가정을 굴복시켜야 됩니다. 개인과 가정을 굴복시킨 후에 천사하고 싸우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 개인과 가정 입장을 속여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복귀 노정에 있어서 개인과 가정이 천사장을 속여 가지고…. 천사장이 아담 개인과 가정을 파괴했기 때문에 야곱도 그 기간에 있어서 라반을 속여 가지고 나와서 비로소, 하늘편적 복귀된 가정의 위치니 하늘편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서 천사와 씨름해 가지고 가정을 대표한 승리의 기반을 결정지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그것은 야곱 개체를 중심삼은 승리보다도 가정 이스라엘의 기준을 닦은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기준 앞에 예수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체적인 천사장과 같은 입장에서 굴복시켜 나와 내적 외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음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승리하여 이스라엘 나라에 들어가 가지고, 자기 본향땅에 들어가 가지고 안팎의 결정을 모두 지어 가지고 축복의 계대를 거기서 상속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야곱을 중심삼고 아들딸들이 일체가 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애급 나라에 가는 거예요. 야곱 대신 요셉이 가 가지고 그와 같은 싸움을 또 하는 겁니다. 연결시켜 가지고 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나라가 있어야 되는데 그 나라는 개인과 같이 복귀해야 돼요. 그런 역사라는 겁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일 염려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제일 염려한 것이 무엇이냐? 이스라엘 민족이 제일 염려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가 하늘 앞에 승리한 개체로서 찾아지는 그날, 이것을 제일…. 그렇지만 예수는 개체로서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가정적 기반이 있어야 됩니다.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종족적 기반이 있어야 되고,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적 기반이 있어야 되고, 민족이 서기 위해서는 국가적 기반이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한 단계 높은 것이 있어야만…. 그것을 넘어가는 것이 탕감복귀역사입니다.
오늘날 본연의 이념을 중심삼고 나가는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민족복귀의 책임, 혹은 세계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우리들이 싸워 나가는 이런 과정을 생각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그런 전체의 기반인 통일 종족으로 설 수 있는 결정을 짓기 위해서는 통일 민족적인 사명의 기반을 가지고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오는 민족적인 사조를 정복하고 굴복시킬 수 있는 이런 철옹성 같은 기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통일 종족이 안식할 수 있는, 통일 종족이 결정될 수 있는 그런 위치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통일의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된다면 통일의 민족이 설 수 있는 기반을 짓기 위해서는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춰서 세계적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기 전에는 민족적인 승리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민족이 승리의 위치를 결정짓기 위해서는, 세계무대에 있어서 어떠한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공고한 승리의 위치를 결정지어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한 단계 큰 터전을 수습할 수 있는, 주체로서 그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원인과 내용과 실체가 투입되기 전에는 한 단계 낮은 위치가 결정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런 원칙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예수 앞에는 민족적인 세계가, 4천년 역사를 통해서 하늘이 수고하여 준비했던 개인과 가정 종족 민족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영육을 합하여 투쟁해서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이 여기에서 예수와 일치되었더라면, 예수 개인과 예수의 가정과 예수의 종족은 여기에 대치할 수 있는 기준에 서 가지고 외적 예수의 가정을 기반으로 해서 가인적인 입장의 민족과 아벨적인 입장의 자녀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것만 심게 되면 여기에 있어서 복귀천국, 한 나라의 기준이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성립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내정적인 심정의 인연을, 하늘을 중심삼은 내정적인 이상을 중심삼고 인류를 찾아왔으나 이것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인간을 찾기 위해 내정적인 소원을 품은 거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내정적인 소원과 심정을 품고 이 땅 위에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정적인 사정을 이 땅 위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자리를 못 잡은 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도 이 땅 위에 내정적인 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나의 상대자를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2천 년 동안 하나님이 가는 걸음을 따라 가지고 이 길을 더듬어 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리하여 내적인 개체, 내적인 가정, 내적인 민족과 국가를 거쳐 가지고 오늘날 세계적인 무대로 전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또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내적인 면에 있어서 세계적인 사명을 짊어졌기 때문에 세상 끝날까지 내정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해결지어야 합니다. 예수가 그런 사명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적 결정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 세계를 이끌어 나오고 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내적인 결정을 누가 짓느냐? 남아진 내적 기준을 탕감해 가지고 외적 기준을 다시 수습해 놓지 않으면 안팎이 일치가 안 된다는 겁니다. 내적인 것은 아벨이요, 외적인 것은 가인입니다. 그러므로 외적 내적 기준을 전부 다…. 아벨이 내적으로 승리한 기준은 반드시 노아면 노아가 상속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승리했으면 모세가 상속받아야 합니다. 상속받아야만 된다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이런 역사적인 모든 내적 결정적인 위치를 상속시켜야 됩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끊어졌지만 이스라엘 민족…. (녹음이 잠시 끊김) 이것을 재현시켜 가지고 민족적인 사명과 세계적인 사명으로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가정ㆍ종족ㆍ민족ㆍ국가로 다시 제2 이스라엘의 사명을 거기에 엮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 지금까지의 복음을 중심삼은 신약 구원섭리라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됩니다.
그러면 여기에 제2 이스라엘의 실체적인 민족, 제2 이스라엘의 실체적인 종족, 혹은 가정, 개인이 있어야 될 터인데 그 개인이 있느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텐데 못 하고 있으니 누가 해야 되느냐? 예수 자신이 해야 된다는 겁니다. 죽지 않은 예수와 같은 입장에서 재차 해야 되는 겁니다. 오시는 주님이 그와 같은 면에서 개인적인 이스라엘, 가정적인 이스라엘, 종족적인 이스라엘, 민족적인 이스라엘, 국가적인 이스라엘을, 실체적인 이스라엘을 재차 창건해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복귀역사의 탕감노정을 거쳐 나오는 이 싸움에 있어서,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을 대표할 수 있는 주님이 이 땅 위에 와서 개인적인 서러움을 당하게 된다면 같이 개인적인 서러움을 당해야 할 것이고, 가정적인 서러움을 당하면 같이 당해야 할 것이요, 종족·민족·국가적인 서러움을 당하면 같이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당하지 못하는 입장에 섰으니….
우리의 생활은 이런 사명을 하면서…. 보라구요.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은 잃었을 망정 거기에서 내적으로 개인과 가정이 외적인 세계무대를 향해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개인으로 가정으로 이렇게 발전을 못 했습니다. 왜 못 했느냐? 지상에서 예수님을 받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이 내적인 결정을 지어 가지고 이 땅 위에 이것을 맞추어 가지고 외적인 가정기준을 잃은 것을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를 통하여 이루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예수님의 시대를 통하여 제2의 이스라엘 상속자를 만들려고 했던 거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람들을 세워 제2, 제3 이스라엘의 상속적인 개인·가정·국가·민족·세계를 창건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러한 것이 예수의 한입니다, 예수의 한. 예수의 한은 아담의 한인데 아담의 한을, 아담가정의 한을 여기에서 풀게 됨으로 말미암아…. 탕감한다는 것은 전세계의 한이 아담가정에서 비롯되었으니 여기에서 한을 풀면 전세계의 한이 풀린다는 거예요. 이러한 걸 볼 때, 예수는 아담이 본래 세워야 할 천국이념을 되찾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이것을 재현시키는 입장에서 나와 가지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서 제일 문제 되는 것은 무엇이냐? 재림주라는 것은 6천 년 심정사를, 6천 년 실패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해야 된다는 겁니다. 탕감하는 데 있어서는, 이 권내에서는 누가 해야 되느냐? 아담가정에는 가인과 아벨이 있어야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가인과 아벨이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부모의 입장에 나가지 못하고 가인 아벨의 입장을 개척해야 됩니다. 가인 아벨의 입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 아벨이 원수세계에, 사탄세계에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니 사탄세계에 가서 빼앗아 와야 됩니다. 빼앗아 오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탄세계의 종의 종의 신세를 거쳐 가지고 종의 새끼를 끌어다가 양자의 몸으로 재교육시키는 이런 놀음을 해 가지고 이와 같은 세계를 다시 창건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그러면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여기에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물론 개인이 요구되고, 가정이 요구되고, 종족과 민족, 국가가 요구됩니다. 그것은 예수가 하늘의 보냄을 받은 그 입장과 마찬가지요, 그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요구하던 거와 마찬가지의 입장이예요. 하늘이 요구하는 입장과 예수가 요구하는 입장이 동일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이 보내 준 입장과 오시는 주님이 요구하는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한민족입니다, 한민족.
그러면 이 한민족을 중심삼고 한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담이 이루어야 할 천국이상을 타락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그 마음 바탕을 지니고 있는 사람, 그 가정, 그 종족, 그 민족, 그 국가, 그 세계에 해당되는 자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6천 년 전에 아담을 중심삼아 가지고 계획하던 아담의 위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모든 여건을, 여기에서 결정지을 수 있는 모든 결산의 내용을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주권국가를 중심삼고 총탕감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안팎으로 결정되는 날에는 이 세계와 이 세계…. 이것은 가인세계요, 이것은 아벨세계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역사적으로 볼 때 이 6천 년 역사는 가인세계요, 앞으로 올 세계는 아벨세계니 이 세계가 지상에 나타나는 것이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을 누가 개척하느냐? 오시는 주님이 해야 합니다. 이 탕감역사를 두고 볼 때, 옛날에 개인을 세우게 될 때에 하늘의 고통의 역사는 여기에서 이렇게 돼서 이렇게 되었고, 구원의 역사는 요만큼 왔어요. 악은 이만큼 되었고, 선의 세력은 이렇게 됐어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이것이 점점 내려올수록 이것은 점점 커 오는 겁니다. 핍박도 거기에 따라 적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상대적인 관계가 될 때가 예수님이 오는 때입니다. 이것이 연장되어 2천 년 역사를 통해 여기에 와서, 이 기준이 여기에 와서… 여기에 옴으로 말미암아 고통은 점점 작아지는 겁니다.
그러니 이 기간에 있어서, 통일교회가 걸어오는 걸음에 있어서 출발 당시에는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핍박의 과정도 있지만 민족적인 핍박, 국가적인 핍박, 세계적인 핍박이 한꺼번에 몰아친다는 겁니다. 반대라는 거예요. 개인들이 지닐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이념의 내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싸움을 전개시켜 가지고 승리해야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자리 잡을 때까지 이 기준을 세우는 데는 말할 수 없는 역사적인 총탕감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개인이 세워 놓은 것이 무엇이냐? 내적 심정세계에 있어서 개체가 승리한 그 개체의 승리는 반드시 이 내정적인 승리 기반을 동반한 터전 위에서 나타나게 되니, 그 내정적인 심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싸움의 무대가 전체성을 대신해 있기 때문에 핍박이 강합니다. 개인·가정·종족 전부가 핍박한다는 거지요.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여기 이 사람이 1960년부터 7년 과정을 넘어서 이 놀음을 하는 겁니다.
그럼 어느때에 평형이 되느냐? 어느때에 이스라엘 민족과 사탄세계,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평형이 되느냐? 이스라엘 민족이 승리했으면, 예수와 하나되었더라면, 이스라엘 민족과 사탄세계가 예수를 의지하고 단결해서 민족만 찾게 될 때는 로마제국과 동등해진다 이겁니다. 동등한 자리에 선다는 겁니다.
마찬가지 입장에서 지금 시대에 있어서 여러분을 중심삼고도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한국 백성을 중심삼은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볼 때, 단체적으로 볼 때는 이 민족 앞에 통일교회가 아벨이요, 이 세상은 가인입니다. 우리 교회적으로 볼 때, 여러분과 선생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인 아벨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 소생이 소생으로서 완성되려면, 소생이 소생으로서 승리적 위치를 결정하려면 완성의 인연을 통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이요, 장성이 장성으로서 승리적 위치를 결정하려면 완성을 결정지을 인연을 개재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문제란 것은 하늘을 지향하는 이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아야만 수습되는 겁니다. 수많은 종교가 갈라지고, 수많은 인류가 파괴되는 것을 누가 수습할 것이냐? 이 이념세계에 있어서 지금 좌우로 분열된 이런 투쟁의 환경을 누가 타파해 버릴 것이냐?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 여기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떠난 후에는, 예수가 갔으니 제자들은 다 그만두자고 보따리 싸 가지고 다 갔지만, 예수가 나타난 후에 예수의 뜻을 다시 받들기 위해서 생명을 각오하고 다시 모였습니다. 마찬가지예요.
종적인 것만 벌어지던 것이 이제 횡적인 것도 이루어집니다. 지금 선생님이 외국에 가겠다는 그런 환경이 돼야…. 선생님은 지금 1957년을 중심삼고 만 7년이 되기 때문에 우연이지만 외국에 갔다 돌아오게 돼 있는 것입니다. 왜? 재차 수습해 나와야 되기 때문에. 과거를 탕감해야 할 인류의 사명을 하려 했지만 심정적인 기준에 있어서 이것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에 재차 수습해야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적인 이념으로 무장해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민족적이었습니다. 그저 한국만 요리하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을 사랑하듯 세계를 사랑하고, 통일교회 교인들을 사랑하듯 세계에 널려 있는 통일교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종적 세계의 인연으로서 여기에 집착하여 벌어진 것을 어차피 가인 아벨…. 영적 기준에 있어서 지상에서 청산할 수 있는 고개를 거쳐 가지고 탕감해서, 여기에서 국가적인 승리를 예수의 한 몸을 중심삼고 해 가지고 비로소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편안한 자리에 동할 수 있는 예수가 되었더라면, 유대 나라 어디에 가든지 그를 지지하고, 그를 모실 수 있고, 그가 어디 가든지, 무슨 짓을 하더라도 환영할 수 있는 그런 천지의 예수가 되었더라면…. 예수의 몸과 마음이, 예수의 내적 생활과 외적 생활이 상충됐다 이거예요. 그런 환경이 되지 않았으니 여기에 그 싸움이 남아져 있는 겁니다. 이 싸움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적인 싸움터가 다시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선생님이면 선생님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을 위하고, 땅의 실체를 중심삼고 하나의 이념적인 천국과 실체적인 천국의 이념을 총합한 실체에 있어서 내적 사정과 외적 사정이 일치되어서 마음대로, 동서사방 어디든지 움직여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끔, 움직여 가지고 전체적인 목적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게 되면 거기에서 승리의 기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점점점점 커지는 핍박의 노정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한 주권, 두 주권, 세 주권을 거치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핍박이 크고, 어려움이 큰 거기에서 점점점….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민족적인 사명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기준을 세울 것이냐? 이 땅을 중심삼고, 이 나라를 중심삼고 볼 때는 지금은 예수가 봉착하던 그 시대의 사명이 이루어진 그런 때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가인적인 입장이고 아벨적인 입장이니, 아벨적인 입장과 가인적인 입장이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일체가 되어야 돼요, 일체가. 일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 인연을 동반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대책을 취해 왔기 때문에 금후의 중요한 문제, 하늘이 찾고 있는 개인, 하늘이 찾고 있는 가정, 하늘이 찾고 있는 종족ㆍ민족ㆍ국가…. 오늘날 이런 관점에서 선생님 자신을 중심삼고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하늘이 6천 년 동안 찾아오던 그 개인이 누구며, 그 가정이 누구며, 그 종족이 누구며, 그 민족, 국가, 그 세계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겁니다. 이것을 좌우하는 책임을 해야 하는 입장에 선 오늘 통일교회의 운명,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의 운명이 아니냐.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여러분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가정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가정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종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종족적인 투쟁을 해야 되겠고, 민족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투쟁을 해야 되는데 여러분은 어느때에 했느냐? 못 했습니다. 못 했으니 대표적으로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이 사명을 해 나가는, 이 사명적인 터전과 더불어 일체가 되어 가지고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그런 터전에 임해야 할 것이…. (녹음이 잠시 끊김) 개인적인 사명을 할 때는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가정적인 사명을 할 때는 가정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종족적인 사명을 할 때는 종족적인 인연을 맺어야 되고, 국가적인 사명을 할 때는 국가적인 인연을 맺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교회 행사를 중심삼고, 1960년부터 1963년까지 우리가 행사한 것이 그 순서가 어떠한 특정한 개인을 중심삼은, 개인을 대표한, 개인 그 자체를 중심삼은 행사가 아니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민족을 일깨우고, 수많은 종족을 대표할 종족을 일깨우고, 수많은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국가를 일깨울 수 있는 국가적인 대표들을 여기에서 상징적으로 내적인 인연의 중심과 기리까에(きりかえ;바꿔치다)해서 연결시켜 나오는 거룩한 싸움이요, 그런 거룩한 의식이었다는 것을 진정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이겁니다.
그럼 이스라엘 민족이 바라던 소원의 기준이 무엇이냐?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를 통하여 먹고 살고, 메시아를 통하여 생활하고, 메시아를 통하여 나고 살고 죽겠다는 것이 전체적인 목적 기준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들이 가는 길도 여러분 개체로서는 절대 갈 수 없습니다. 복귀의 기준, 복귀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혼자 가는 거예요, 혼자. 혼자 가 가지고, 이 지상에서 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이 공중 권세를 뚫고 올라가 가지고 영계에 들어가서 내정적인 이 전체를 상속받아 가지고 다시 오는 겁니다. 와 가지고 전체가 가는 기준, 개인과 가정, 종족으로 이걸 전개시키는 싸움을 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님이 한 말이 그거예요.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라, 네 가정보다도, 이 나라보다도. 어차피 청산되어야 할 이 나라, 어차피 청산되어야 할 이 민족, 어차피 청산되어야 할 이 가정, 청산되어야 할 내 자신, 청산되어야 할 이 세계보다도 더 사랑해야 된다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이런 자리에서 독립해 나서 가지고 거기에 내적으로 인연된 하늘의 심정적인 사정을 딱 꿰어 들고 '나는 하나님의 내적 사정과 소망의 창조이상을 받들고 여기에 서 있고, 내 실체는 세계를 대표한 승리적인 자체로 서 있나니, 내게 있어서는 개체지만 하늘이 찾아오던 개인을 대표했고, 가정·종족·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이런 신념을 여러분들이 갖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적인 이 시대에 있어서 제일 소원하는 것은 어느때에 가정적인 시대가 올 것이냐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소원하던 것이 무엇이냐? 이 땅 위에 개인적으로 하늘의 사명을 갖고 왔지만 그가 소원하던 것은, 세계적인 소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일 소원하던 것이 뭐냐 하면 개인 시대에 있어서는 가정이 소원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가정이 소원입니다. 그러면 소원하는 그 가정을 닦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적인 이 모든 전체를 중심삼고, 가정을 찾기 위한 싸움에 있어서 역사적인 심정의 터전을 닦지 않고는, 역사를 대표하여 승리의 터전을 세울 수 있는 가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겁니다.
그러면 가정을 가진다면, 가정을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종족 때문에. 종족을 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에? 민족 때문에. 민족을 세우는 것은 국가 때문에. 국가를 세우는 것은 세계 때문에. '때문에' 고개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축복받은 가정들이 책임지역에 들어가 가지고 생각해야 할 것이 이것이라는 겁니다. '내 가정을 희생시켜서라도 이 종족을 구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우리 가정이 고생할지라도 앞으로 축복받는 가정들을 안식을 시켜야 돼. 우리 민족이 수고하더라도 세계를 안식시켜야 돼' 하는 이런 사상적인 이념이 전생애의 배후가 되어 가지고 자기 위치를 승리적인 자리에서 결정지어 가지고 승리적인 자체로서 생활을 영위하고 환경을 개척하는 가정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스라엘권 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산다고 해서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1957년도에 여러분들이 전도활동 나갔을 때는 통일교회란 말을 못 했어요. 벅찬 가슴을 누르고, 한 많은 사연을 가지고, 길을 가나 어디를 가나 분함의 마음에 사무쳐 왔지만 이것이 풀려 이제는 동등한 입장에 섰습니다. 우리가 치면 부딪쳐서 누가 깨져 나가느냐 할 수 있는 대등한 입장에 설 수 있는 때가 왔다 이겁니다, 대등할 수 있는. 민족이 없는 가운데서 우리는 이 민족을 창건했고, 종족이 없는 가운데서 종족을 창건했다 이겁니다. 그것은 이 사탄세계에서 민족이 해야 할 사명이었다 이겁니다. 하늘 앞에 불리운 이 나라가, 이 민족이 하지 못하게 될 때는 하늘적인 입장에 선 우리들은 하늘세계를 대표해서 민족적인 사명을 완결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이냐? 민족적인 제단 과정을 걸어가자 이겁니다. 이것이 지금 통일의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민족적이 제단 과정을 걸어가자! 이리하여 국가적인 제단 과정을 가자! 그리하여 민족운동을 해서 세계적인 제단 과정을 거쳐서 걸어가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엉키고 엉켰던 실체적인 이 복귀도상의 이 전체 이념을, 천지를 기준으로 하는 소망의 전체 목적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실체적인 기준에서의 투쟁을 해서…. 민족 기반이 아니라 국가적이 기준과 세계적인 기반을 동반시키면서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에, 천지간에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본래 타락이 없었으면 이 세계는 하나님이 직접주관하는 세계가 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는 세계에서 아담 해와의 주변에 천사장이 들어와 가지고 그 천사장이 하나님 앞에 참소의 조건이 있어서 참소를 한다 해서 하나님이 마음대로 못 하느냐? 그게 아니예요. 천사장은 언제나 하늘이 임할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 선 자입니다. 참소도 없고 부자유도 없고 하나님이 자유자재로 응하고 대할 수 있는 그런 세계적 자리에 세워 놓고야 비로소 천국이상이 완결될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될 때에 오늘날 우리의 이념을 세워 놓고 이 민족 앞에 얼마만큼 그러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겠느냐? 여러분이 이 시대에 있어서 책임진 것이 무엇이냐? 이걸 생각할 때, 지금 우리들이 가는 길 앞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거예요. 이걸 망각해서는 안 돼요. 민족적 기준에서 보면 여러분은 민족 기준에 걸리는 것이 없으니 세계기준을 향하여 달려가야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갈 길을 달려가야 돼요. 선생님이 가는 데, 선생님이 가면 따라가고 오면 따라오고. 생활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다른 거 없어요, 다른 거. 통일교회는 하늘이 이 시대를 향하여 가는 그 걸음을 향해서 어디든지 가자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가 점점 가까와 오는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나오는 것을….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하늘이 얼마나 개인을 흠모하였고, 가정을 흠모하였고, 종족을 흠모하였고, 민족ㆍ국가를 얼마나 고대하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인류의 수많은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고대해 나왔고, 이 땅 위에 메시아 예수가 와 가지고 소망하던 그런 실천적인 무대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그때를 얼마나 기다렸느냐? 한 많은 2천 년 역사 동안 영적 복귀의 기대를 개척해 나오면서 지상에 실체의 기대를 전개하여 이 세계가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고 외적인 기준과 이걸 움직일 수 있는 이러한 세계적 기준까지 남겨 주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했던가 하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한 많았던 이 수고의 역사, 역사적인 종말에 처한 오늘날 여기에 있는 개체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그 개체 가운데는 개인을 대표할 수 있는 자,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자,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자,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자가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있어서, 상대적인 기준에서 현재 통일교회 교인들 가운데 개체를 대신할 수 있는, 선생님이 지내 나오던 역사적인 그러한 노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 가정을 대표할 수 있는 가정, 종족을 대표할 수 있고, 민족, 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대표자는 누구일 것이냐? 이게 이 가운데에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세계에 있어서 그런 대표자가 있어야 돼요. 통일이념을 중심삼고 그런 대표자가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전체가 못 되어도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인들 가운데 젊은이로부터 혹은 나이 많은 사람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생님이 지금까지 뜻을 대해 나오던 정성어린 그 이념과 그 사상에 사무친 심정적인…. (녹음상태 불량으로 일부 수록하지 못함) 오늘날 40평생에 남아 있던 거와 마찬가지로 6천 년 역사의 종말을 맞는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찾아 나오는 전체의 그 기준 가운데서 잘못 지내온 것을, 일대에 움직여 나오던 피어린 그 흔적을, 여기에서 세계적인 실체가 있어야만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이 민족이 국가 기준에 있어서 시대적인 탕감복귀를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걸 볼 때, 여러분 자신들은 신세를 지는 입장에 서 있느냐, 신세를 끼치는 입장에 서 있느냐? 또, 하늘을 대표해서 나서는 내 개체를 두고 볼 때 나는 어떠한 개체냐? 개인을 대표해서 이 전체 앞에 하늘이 찾아올 수 있는 개인적인 사명을 완결할 수 있는 책임을 해보겠다고, 길이 막혀 있는 거기에서 투쟁하여 하늘편이 여기 있다고, 그 실적을 갖고 하늘 앞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하지 못하면 가정을 위한…. 가정에 있어서 그런 결의를 하고 민족적인 길을 개척하여 민족 앞에 있어서 하늘이 대신 세울 수 있는 가정의 대표자가 되겠다 해야 돼요. 민족적인 기준 앞에 승화시킬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가져야 돼요. 그런 법칙이 있는 거예요. 발전적인 기대를 전개하여 세계 천주적인 이념을 세우고 나가는 데 있어서 전체는 못 하더라도 항상 시대를 대표할 수 있고,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를 대표할 수 있고,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뜻을 대하여 나온다고 했지만 뜻을 대하는 내 자체를 두고 볼 때 어느 자리에 있었느냐? 가인이냐, 아벨이냐? 가인이면 아벨을 위할 수 있는 가인이냐, 아벨의 갈 길을 막는 가인이냐? 그 가인이 개인적인 가인, 가정적인 가인, 종족·민족·국가적인 가인으로서 따라 나온다고 하지만 그런 입장에 설 수 있는 환경과 그런 위치에 자기 자체가 놓여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쉬운 오늘날 우리 식구라는 것을 선생님은 절감하는 겁니다.
이러한 여러분을 통하여, 민족적인 대표자로서 이런 이념을 대표하여 하나님이 기억할 수 있고, 선생님이 기억할 수 있고, 혹은 전통일의 용사들이 그를 기억해 줄 수 있는 그런 유대를 가져야 하는데 과연 여러분들이 어느때에 그런 위치에 설 수 있느냐? 하늘땅을 걸고 뒤넘이치고, 아브라함이 뜻을 대하던 심각한 자리에서 심각한 마음을 갖지 못했던 그 한 많았던 것을 탕감하고, 노아, 함이 심각한 입장에서 해결지어야 할 사명을 하지 못한 것을 탕감하고, 혹은 모세가 심각한 자리에서 민족을 걸고 해야 할 그 사명을 하지 못한 것을 탕감하고, 예수 대신 제자들이 심각한 입장에서 해야 할 책임을 못 한 것을 탕감할 수 있는 입장에 어느때에 서 봤느냐? 이것이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 앞에 바라는 하늘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집에서는 안 돼요. 그래서 전체 동원이다 이겁니다. 전체 동원이예요.
개인적인 시대도 지나갔고, 가정적인 시대도 지나갔고, 종족적인 시대도 지나갔고, 민족적인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이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올수록 그 책임을 개인적으로 안 됐으니 가정무대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해야 되고, 가정무대에서 안 됐으니 종족시대에 탕감해야 되고, 종족시대에서 안 되었으니 민족시대에 탕감해야 되고, 민족시대에서 안 되었으니 세계무대에서 책임해야 됩니다. 개인으로서 전체를 대표하여 개인과 가정ㆍ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를 대표할 수 있고 천주를 대표할 수 있는 상대적인 기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나오지 않으면 여러분 가정의 고생의 노정을 전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입장에 선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개인이 결정되지 못한, 가정이면 가정적으로 결정되지 못한, 혹은 종족ㆍ민족적으로 결정되지 못한 내 자신이 오늘날 국가적인 시대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면 꺾이고 마는 겁니다. 여지없이 꺾여 나가요. 그는 개인을 배반한 자요, 가정을 배반한 자요, 종족과 민족을 배반한 자입니다. 차라리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생님이 피땀을 흘리고, 하늘이 6천 년 동안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던 그 거룩한 제단을 위임받는다는 거예요. 이러한 역사적인 초점상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초점상에. (판서하심)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아벨이 역사적인 초점상에 선 것을 자기 자신은 몰랐습니다. 노아가 역사적인 초점상에 선 것을 몰랐습니다. 그가 깨지는 것은 세계적인 인연이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요, 노아도 마찬가지요, 예수님 생존 당시에 예수를 모시던 제자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역사적인 초점상에서 좌 하느냐, 우 하느냐? 그 한 개체가 좌 하는 것은 문제가 없더라도 그 한 개체로 말미암아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민족과 우리의 종족과 우리의 가정이 끌려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일단 선생님이 지금까지는 민족적인 책임을 하는 겁니다. 민족적인 사명 앞에 있어서 지금까지 책임을 다해 나왔습니다. 이 민족 앞에서는 선생님이 하늘을 대해서나 땅에서나 책임을 다했습니다. 어떠한 애국자가 있고, 어떠한 충신 열녀가 있다 하더라도 그거 못 해요. 이 나라 이 민족을 살려야 됩니다. 그거 못 하면 하늘땅과 이 백성이 곤란해요. 하늘땅이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때가, 세계적인 무대와 인연을 거쳐야 할 이런 때가 돼 옴으로 말미암아 미래의 어느 기간까지 여기에서….
내가 염려하는 것은 이와 같은 내용과, 이와 같은 싸움을 도맡아 가지고 나오던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누가 질 것이냐? 내가 사랑하고 내가 위하던, 내가 개인을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내가 축복가정을 위하고 종족을 위하고 오늘날 통일의 무리를 사랑하고 이 민족을 위하던 그 심정적인 터전을 누가 맡을 것이냐? 이것을 누가 맡을 것이냐? 역사적인 한 많았던 하나님의 한이 머물러 있는, 하늘땅이 찾는 개인과 하늘땅이 찾는 가정과 하늘땅이 찾는 종족과 하늘땅이 찾는 민족은 어디 갔느냐? 이 자리를 통하여 민족을 부르고 있고, 이 자리를 통하여 종족과 가정을 부르고 있고, 이 자리를 통하여 개인을 부르고 있나니, 대표할 수 있는 책임자가 떠나게 된다면 누가 지켜 주겠느냐 이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를 남기고 가는 겁니다. 자식들을 남기고 간다 이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통일교회 전체가 합해서 선생님의 책임을 대신하고, 이 가정을 보호하고, 이 민족, 국가를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고 심정적으로 품고, 이념적으로 그 위치를 세워 나가던 그것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책임하고, 하늘을 대하던 그 기준을 여러분을 움직여 가지고 그걸 연장시키고 지속시키려니 여러분 앞에 전체 동원할 것을 명령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번 기간이 여러분 앞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책임을 세울 수 있는, 하늘 앞에 지금까지 민족적인 사명을 못 했던 것을 어떠한 조건을 세워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한 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도 얘기했지만, 사실은 나는 이 삼천리 강토, 혹은 수많은 도주를 찾아 가지고 군중 앞에서 외치고 싶고, 수많은 군중을 교육하여 삼천리 반도를 움직이고, 삼천만 민족의 운명을 해결짓고 싶은 이런 마음이 강하지만 몸뚱이가 하나니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의 40연령을 대표한 대표자로서 여기서부터 외치고 싶은 하늘의 사명을 짊어지지 못한 한을 여러분이 풀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이번 6개월이란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탕감적인 조건을 세워 놓고 지성을 다하는 그런 생활을 해야 됩니다, 6개월 중심삼고.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 이 자리에 동참했지만 당연히 참석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자리는 시시하고, 여기에는 바람이 들어오고 다 허물어진 집이라 할지라도 여기에서 천지의 공사를 움직여 나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 자리는 눈물과 피땀을 흘리고도 살 수 없는 자리라는 겁니다. 이 자리는 여러분이 꽁보리밥을 먹고 처량한 자리에 누웠더라도 여기에는…. 시시한 곳이 아니예요. 핍박을 받고 서 있지만 여기에서 천주사를…. 그러기 위해서 투쟁을 한다 이겁니다.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예요. 제물 중의 제물이 올라와야 할 이런 자리에, 내 부족한 자체가 여기에 머물러 하늘을 찬양하고, 여기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황공하냐 이겁니다.
여러분이 통일의 울타리에 들어와 가지고 그 울타리 안에서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그 자체는 뭐냐? 하나님 앞에 짊어진 빚과 이 땅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의 노고의 그 빚과 오늘날 뜻을 대하여 투쟁의 공적을 세우기 위한, 하늘의 심정을 대신한 땅의 책임을 짊어진 스승의 빚을 갚아야 됩니다. 만약에 이 사명에 대한 책임을 못 하게 될 때는, 책임 못 하는 통일교인들은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세계적인 제단에 서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그런 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 내가 뭐 편안한 자리에서, 내가 뭐 남이 부러워하는 자리에서…. 가인적인 세계를 청산하여 아벨적인 천국을 이루어 여기서부터 영광된 천국을 이루어 가지고, 민족 기반을 중심삼고 이 민족의 한을 탕감할 수 있는 한 날을 바라보고 나가는 겁니다. 오늘도 싸움이요, 내일도 싸움이요, 어느 한 날 그 마음에….
예수님이 기도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나에게서 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신 아버지의 뜻, 그 아버지의 뜻, 영적인 아버지의 뜻, 그 영계의 아버지의 뜻을 완결지어, 실체의 아버지가 계시니 실체의 아버지의 뜻….
그리하여 여러분은 역사적인 시점상에서 말씀을 통하여 나온 겁니다, 말씀을 통하여. 그다음에는 인격을 통하여, 그다음에는 혈통을 통하여.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아담의 타락이 무엇이냐? 하늘이 세우려 했던 이념천국의 그 이상(理想)과 더불어 세웠던 말씀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우주의 축소형의 실체 존재로 세웠는데 그 인격을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선의 혈통이 깨졌다는 겁니다. 선의 혈통을 깨뜨려 버렸으니 사탄이 들어선 겁니다. 그럼으로써 하늘의 심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이것을 찾아야 돼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개인에 있어서의 말씀을, 개인에 있어서의 인격을, 개인에 있어서의 하늘의 심정적인 혈통을 세워야 돼요. '나는 누구냐?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이와 같이 개인에 있어서, 가정에 있어서, 종족 민족에 있어서의 그 기준을 찾아 나오는 겁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말씀은 어떠한 말씀이냐? 어떠한 개인과 가정과 종족권 내에서 머물 수 있는 말씀이 아니예요. 이것은 이념천국을 이룰 수 있는 말씀입니다. 세상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 절대적으로, 원리적인 이 말씀과 일체화될 수 있어야 됩니다. 사탄이 거짓 입장에 있으니 이 말씀을 중심삼고 뭘해야 되느냐? 사탄을 제거해야 됩니다. 그래서 말씀과 일체가 돼야 돼요.
여러분, 축복받는 것이 무엇인 줄 알아요? 상속입니다. 혈통적인 상속의 인연을 맺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돼요? 이걸 다 거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심판, 인격심판, 심정심판이예요. 맨 나중에 남는 것은 하늘의 혈통입니다. 하늘의 그 혈통이 여러분 개인과 가정·종족·민족을 중심삼고 직접 통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여러분들은 핏줄이 달라요. 핏줄이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달라요.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구요. 동기가 달라요. 마음이 달라요. 자기밖에 몰라요. 전체를 무시해 버리고, 전체가 나를 위하여…. 하늘이고 선이고 무엇이고간에 나를 위하라고…. 전체를 위해서, '나'라는 것은 전체를 위해서 흡수되어야 해요. 방향이 다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어디까지 가느냐? 세계까지 가자, 눈물을 흘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하자, 만민이 형제니 이들을 위해서 나가자 이겁니다. 이러한 기준을 통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소망의 천국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어느 과정에 있는가를 알고, 지금 이때에 있어서 민족적인 책임, 국가적인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이런 사명적인 노정에 처해 있으니만큼, 이것을 해원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이 세계적인 섭리시대를 맞아 가지고 하늘을 위하여 공세를 취해야 될 때가 여기서부터 전개돼 나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처해 있는 위치, 그 위치에서 하늘이 요구하는 실체, 그 실체는 어떠한 것이냐? 이런 역사적인 말씀과 인격과 혈통과 심정을 대표해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늘 앞에 사명을 다하고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예」 아시겠어요? 「예」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어요?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어요? 소망의 개인을 위해 살고 있고, 소망의 가정을 위해 살고 있고, 소망의 종족을 위해 살고 있고, 소망의 민족을 위해, 소망의 국가, 소망의 세계, 소망의 천주를 위해 살고 있어요. 7단계에 걸쳐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은 소망의 개인을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어요? 소망의 가정을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어요? 소망의 종족, 소망의 민족, 소망의 국가를 위해서 얼마나 충성했어요? 이건 자기 집안이니 무엇이니 해 가지고… 이건 원리가 그래요. 내 말이 아니예요. 원리가 그렇다는 겁니다, 원리가.
여러분이 가는 길은 다시 안 옵니다. 다시 안 와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문선생을 따라오면서 선생님 명령대로 한 것이 있어요? 한 것이 있어요? 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전체를 위해서 충성하라는 겁니다. 그게 7년노정입니다. 전체가 고생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도 나가는 전도 대원들, 혹은 여러분들은 마음대로 살았지요, 마음대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마음대로 살지 않았어요, 마음대로?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자식을 품고 귀여워하고 싶으면 귀여워했고…. 먼저는 하늘 개인을 사랑해야 됩니다. 먼저는 하늘 가정을 사랑해야 됩니다. 먼저는 하늘 종족을 사랑해야 됩니다. 하늘 민족, 하늘 국가, 하늘 세계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이거 틀림없이 사랑했다. 사랑했으니, 하늘을 사랑했으니 땅을 사랑해라'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 시대에 있어서 개인을 찾기 전에 자식이 있을 수 있어요? 있을 수 있어요? 없지요? 가정을 찾기 전에 자식이 있을 수 있어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길을 걸어오는 겁니다.
개인을 찾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가정이 있으면 가정을 내버리고 개인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종족이 반대하면 종족을 버리고, 민족이 반대하면 민족을 버리고 나서는 겁니다. 세계가 반대하면 세계를 버리더라도 이걸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신앙길입니다. 내가 아는 신앙길은 그래요. 여러분은 어떤지 나는 모르지만 그런 경지에서, 원리관적인 경지에서 여러분의 생활적인 모든 것을 비판해 보게 될 때, 여러분들은 시정해야 될 게 참 많아요.
여러분들 그렇잖아요? 하루를 살 때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 앞에 기쁨을 줄 수 있는…' 하는 기도를 해야 돼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요. 또 잘 때는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이런 것을 해 나왔다' 하는 이런 기도를 해야 돼요. 청산지어 나와야 됩니다. 그 싸움이예요. 여러분 생활이 그래요? 자기가 청산해야 할, 내가 가야 할 이 길을 가야 돼요. 여러분이 머무는 환경에서 청산지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책임지고 나가 전도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때가 민족적인 자립을 해야 할 때이니만큼,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책임, 모세와 아론과 혹은 미리암과 같은 사명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때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남자는 아론의 책임을 하고 여자는 미리암의 책임을 해야 됩니다. 이게 하나 안 되는 날에는 벌받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았으니 거기에는 불만이 있을 수 없고, 불평이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일체예요. 여러분들은 이 전체 노정 앞에 있어서는 실체를 대표하는, 종적인 인연의 실체를 대표해 가지고 이런 심정을 가지고 승리적인 기준에 이끌려 들어가자는 겁니다. 이런 기준 앞에 전부가 일체되어 신념을 가지고 일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책임을 다할 것을 부탁해요. 알겠어요? 「예」 그럼 여기 책임자들 하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내려요. 거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3대를 넘어가야 해요. 전통이 그래요. 여호수아와 갈렙을 내보내는 겁니다. 책임자는 모세를…. 여호수아의 승리는 모세의 승리요, 민족의 승리였습니다. 모세는 민족보다, 여호수아보다 더 내적인 심정세계에서 이념을 붙안고 뒤넘이쳤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그 민족도 그와 같은 기준에 있었으면, 그런 민족이 되었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나가 싸우는 그 기간에 심정일체가 됐느냐? 그들이 좋아하고, 그들이 기뻐하고, 그들이 편할 수 있고, 그들이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 무엇을 아끼지 않는다는 이런 각오 밑에서 여러분이 개척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 민족은 망하지 않아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만큼 이번 기간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조심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와 같은 싸움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 행주치마 알지요, 여자들? 민족의 원수를 막기 위해서도 행주치마를 걸치고 전부 다 별의별 짓을 했는데, 여러분은 지게를 지고 별의별 짓을 다 하는 것도 각오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번 기간에는 진심으로 여러분이 자원해서 우리 지역을 반드시…. 두 달이면 한바퀴 도는 거예요. 1년에 6개월을 돌아다녀야 돼요. 두 달에 한번씩은 자기 지역을 갔다 와야 돼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총궐기해야 돼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처한 이 입장은 선생님이 아까 말씀한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처해 있는 위치, 그 위치, 우리들이 처해 있는 그 위치가 얼마나 역사적인가를 알아야 돼요. 여기에 참이 될 수 있는 개인적·가정적·종족적·민족적·국가적인 어떠한 일면을 반드시 탕감하여 어느 분야에서든지, 가정적인 참전권 내에서 승리를 하든가, 개인적인 참전권 내에서 승리를 하든가, 어느 한 분야에서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적인 싸움에 참전하고, 종족적인 싸움에 참전해 가지고 넘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선생님이 명령하는 대로 언제나 일치단결해서 움직여라 이겁니다. 현재 여러분들이 개인적인 이런 싸움터에서 개인적으로 승리한 게 뭐 있어요? 전부 다 지지부진해 가지고 끌고 나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은 전체를 책임진 입장에서 탕감하는 권내에서 뒤넘이쳐 가지고 이것을 해결짓고 넘어가야 되는 겁니다. 그래, 선생님이 하는 이 일에 반응되어서 세계는 돌아가는 겁니다. 돌아가야 돼요, 돌아가야 돼.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은…. 앞으로는 그래요, 앞으로는. 선생님 대해서 너무 관심 갖지 말고…. 예수님이 승천한 이후에는 제자들이 다 했지요? 그렇잖아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이제 마음대로, 천하에 어디 가도,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을 만큼 여러분들이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자율적으로 되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생명을 각오하고 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선생님이 없어도 죽음을 버릴 각오해 가지고 천국을 복귀하기 위한 싸움터에서 패배자가 되지 말고 승리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예」 어디 그렇게 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할래요, 안 할래요? 「하겠습니다」 거 말들은 고맙습니다, 사실은 접어 놓고. 여러분들이‘제발 선생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게 요 4년 노정에….
여러분 그렇습니다. 아마 자기 자식이 죽을 자리에 있으면, 땅이 뒤집혀지는 그런, 외아들, 독자가 죽어가는 입장, 급살을 맞아 죽을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으면 내가…. 복귀역사가 그렇다는 겁니다. 복귀역사가 그래요. 하늘이 지금까지 이걸 판가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면서 왔던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처량한 입장인 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와 가지고 얼마나 슬펐던가를 잘 알아야 되는 겁니다. 하늘이 얼마나 슬펐던가를 잘 알아야 된다구요.
또 여러분들은 이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과연, 어제도 내가 얘기했지만, 6천 년 동안 찾아 나오던 교회라는 것이 사실이냐 이거예요. 과연 이 이론이 하늘땅의 사탄세계를 제거하고 천국을 이룰 수 있는 이론이냐 이겁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이냐? 얼마나 생각해 봤어요? 교회에 나간다고 교회 나가는 것이 아니예요. 이걸 내가 가지고, 행동을 해 가지고 여러분들이 여기에 잘 드나들면 세계도 왔다갔다하고 천국도 왔다갔다하지만 못 드나들면 울타리밖에 못 넘어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얼마나…. 이것은 틀림없이 억천만년을 중심삼고 한 번 밖에 없는 겁니다. 무한한 역사도상에서의 한점과 같은 이런, 한점과 같은 그 권내에서 전체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그 가치 내용이 나로 말미암아 뒤넘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니 그거 얼마나 심각해요? 그거 생각하면 뭐, 지치고 뭐…. 선생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싸웠어요.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내가 어머니보고도 계속 이런 얘기 합니다, 나를 더 사랑하지 말라고. 그건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길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환경에 나를 얽매지 말라 이겁니다.
하늘이 바라던 소망의 가정, 하늘이 소망하던 가정이 이 가정인데 하늘이 바라던 종족의 중심, 종족을 지도할 수 있는 중심이 이것이냐? 민족과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중심이 과연 이것이 될 것이냐? 과연 그러한 내적인 심정의 터전을 붙안고 나가고 있느냐? 선생님은 그러한 경지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 자신만은 그 법도에 어긋나서는 안 되겠다, 지금도 그렇게 나와요, 지금도. 지금도 선생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이 길을 가지 않고는 탕감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어림도 없는 말이예요. (녹음 상태 불량으로 약간의 분량을 수록하지 못함)
내가 나오는 길에서는 그러한 명령을 배우지 못했어요.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꿈에도 생각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 집 때문에…' 하지만, 그 집이 하늘의 전체 이념을 대표할 수 있는, 정진할 수 있는 집이예요? 어림도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걸 전부 다 깨뜨려 버리라는 게 아니예요. 선이 문제가 돼요. 어떤 게 가인이고 어떤 게 아벨이냐?
하늘의 사람들은 가인 아벨 노정을 어떻게 찾아가느냐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 가정에서 조정해야 됩니다. 어떻게 조정하느냐? 작전을 해야 돼요. 싸움을 하고 정복을 해야 돼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과연 이때 앞에서 소망의 천국을 지향해 들어가는 이 관문에 선 여러분이 얼마나 엄숙한 입장에 섰는가를 여러분 자체가 느끼고…. 여러분 자체가 어떠한 한 분야의 조건이든 결정을 지어 놓은 그 세계가 승리의 세계가 될 때, 개인이라든가 가정환경이라든가 종족적인 어떠한 입장에 설 수 있지 그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국가적인 승리에 필요한 만큼 기준만 벌어지게 되면 여러분이 세계적인 무대에 나가겠어요? 그럴 만한 자격들이 돼요? 지금 때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때밖에. 이 4년노정이 얼마나 귀해요? 그래, 세계적인 무대에 나설 자격을 갖추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잘났든 못났든 민족적인 무대에는 다 동참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한 때가 왔어요. 그러한 사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이제부터의 우리가 계획하는 이 책임 시기를 여러분은 엄숙한 입장에서 지켜서 수행하는 데 동참해 주기를 부탁해요. 알겠지요? 「예」
죄악의 세상은 그칠 줄 모르고, 이 인류의 최후의 운명을 역사적으로 결정지으려 하는 이 엄숙한 순간에 놓인 것을 저희들은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사망의 물결 속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자기의 정체를 수습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홍수 물결에 잠겨 들어가는 이 세상인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여, 흘러가는 이 역사적인 죄악사를 가로막고 이것을 한 방향으로 돌이켜 부디 인류가 침해를 받지 않게 흘러가도록 갈라놓아야 할 이 책임과 사명을 해야 할 이런 사람들이 엎드려 있사옵니다.
이 인류는 사망의 세계, 사망의 도가니에서 천추의 한과 더불어 매장 되어 있는, 이런 엄청난 시대적인 전환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 이와 같은 출정을 앞에 놓고 바라보는 이 민족의 사정, 이와 같은 세계의 사정, 이와 같은 하늘땅의 사정을 앞에 놓고서 저희들이 하늘을 대신해 섰다는 입장에서 볼 때, 과연 그 누가 이런 책임을 하겠읍니까? 아버지, 저희들이 책임지겠다고 이미 맹세한 바가 있습니다. 험한 길을 찾아 나서지 않고는 이걸 해결할 수 없는 것이요, 흘러가는 홍수의 물결보다 더 위세를 가진 그런 결의와 그런 용맹심을 갖지 않고는 이와 같은 역사적인 전후의 이 자리를, 이 위치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의 힘이 부족하거든 믿음의 마음이 강하게 하여 주옵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죽음보다 더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 전체의 그 무엇보다도, 가정보다도 더 강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 마음에서 내가 일어나고, 그 마음에서 말하고, 그 마음에서 살고, 그 마음에서 죽음의 길을 찾아 나서는 거룩한 하늘의 용사들이 저희들이옵니다.
용사의 그 제물은 죽음과 싸워 이기는 표적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 통일의 용사는 하늘의 사랑의 정의의 깃발을 들고 그와 더불어 싸우고 그와 더불어 죽어가야 된다는 이런 엄숙한 과제를 등에 짊어지고 오늘도 내일도, 일 년 이 년, 생애를 걸고 가야 할 이와 같은 자체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세상에서 불쌍하다면 가장 불쌍한 것들이옵니다. 그 슬펐던 아버지의 사정을 알았기 때문에 내 슬픔은 아버지의 슬픔에 비교할 수 없음을 알았사옵고, 아버지의 딱한 사정이 나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내 아버지인 것을 모르고 천번 만번 배반하던 내 자신이 아버지의 그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을 때에 몰랐던 과거를 고하면서 내 사정을 잃어버려야 할 우리의 길임을 생각하게 되옵고, 아버지의 처참함에 비하게 될 때 우리의 처참함은 억천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내 비참함을 잃어버리고 도리어 하늘의 비참함을 동정하여야 할 우리의 사정, 이것은 그 누구도 갖지 못하고, 그 누구도 맛보지 못하고, 그 누구도 처할 수 없는,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이 길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내가 이 자리에서 감사하고, 슬플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감사하고, 비참할 수 있는 그 자리에서 감사할 수 있도록 나를 불러 주셨고 나를 세워 주신 것을 하늘 앞에 감사하고 땅을 대해서 감사합니다. 저희의 마음이 가고 가더라도 이 감사의 마음을 뺄 수 없고 행하고 행하더라도 이 감사의 심정을 넘어설 수 없는 나 자신인 것을 느낄 줄 아는 통일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이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한 많았던 복귀의 길을 아버님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6천 년 동안 수고하며 참아 왔다는 걸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은 참을 줄 모르는 경솔한 아들딸이옵니다. 저희들은 끈기 있게, 강인성 있게, 인내성 있게, 아버지의 전통을 본받아야 할, 그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책임져야 할 것이었으나 저희들은 너무나 경망하였습니다. 과거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한 하늘을 원망했고 땅을 저주했던 저희인 것을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님이여, 이 통일의 이념을, 아버님을 세우기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이 이념을 이끌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였습니다. 여기의 당신의 아들딸들이 수고하였습니다. 수고의 공적을 가진 그 터전 위에서 그 수고를 바라보며 하늘 앞에 과거를 노래하고 오늘을 다시 건설해야 할 책임이 남아 있사오니, 또 가야 할 시련을 두고 있는 저희들이 지칠 줄 모르고 내일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몸과 마음을 통하여 하늘 앞에 감사하는, 하늘 앞에 진정 정성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생활에서 뗄 수 없고 반대하는 그 무엇이 없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을 이어갈 수 있는 섭리의 모든 뜻을 우리들로 말미암아 판가름 지으시옵고, 이번 기회로 말미암아 하늘이 원하시는 전체 해원성사를 저희들이 수고한 눈물과 피땀을 통하여 이루어서 받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시던 아버지 앞에 스스로 미안함을 느끼게 되옵니다. 이 민족을 택하신 아버지의 수고의 발길 앞에 너무나 불충스러운 것을, 아버지, 용납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늘이 부르신 그 길을 따라오는 이 아들을 보시어서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기에 눈물을 뿌리고 이 종족을 아버지 앞에 접붙이기 위하여 수고하였던 공적의 터전을 당신은 기억하시오니 그러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보시어서 이들의 흠을 덮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의 사명과 민족적인 운명을 염려하여 하늘 앞에 고이 제물된 입장에서 엄숙히 스스로 책임을 지고 분향할 수 있는 본연적인 책임을 이번 당신의 아들딸들을 통하여 이루어서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펐던 사정을 푸시옵고, 핍박받고 조롱받던, 억울하였던 저희의 모습들이 과연 살아 계신 하늘의 그러한 인연 가운데 드러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뭇 무리 가운데 생명의 빛을 비추시어서 어두운 세계를 자동적으로 굴복시키고 자연적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여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으로 높일 수 있는 금번 기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0여 평생을 아버지,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이 나라 이 민족을 망하지 않는 자리에 세워 놓고 통일의 이념으로 지금까지 이끌어 주시어서 저희들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이런 선서와 더불어 맹세를 할 수 있도록 오늘 이날까지 남겨 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이 가운데는 사탄의 방해도 많았사옵고 사탄의 참소도 많았사오나, 하늘이 여기에서 저희들의 토성이 되었사옵고 저희들에게 분부를 내리시어 지금까지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어서 아버지의 뜻 가운데, 아버지의 품 가운데서 도피소를 마련했고, 그 품에서 저희들이 안식의 터전을 찾을 수 있도록 오늘까지 이끌어 주신 은사를 진심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저희들이 가는 길, 모이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영광과 사랑이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이 행동하는 생활무대에 길이길이 얼크러지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이 수고하여 지은 개체였고, 하늘이 수고하여 세운 가정이었고, 하늘이 수고하여 세운 종족, 하늘이 수고하여 만들어진 통일의 무리들이니 서로서로 사랑하고, 서로서로의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참부모의 혈통적인 인연을 연결시키어 아버지가 찾아 세우기 위한 세계적인 심정의 터전을 그 무대에 잡아 놓고, 마음과 몸이 안식할 수 있는 행복된 하늘의 승리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4년노정의 표어로 '승리적 주관자가 되라'고 하였사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문제였사옵니까? 저희 스스로의 개체로서는 그와 같은 승리자의 자리에 나갈 수 없는 연고로 이것을 위하여 역사가 동원되어 있고, 하늘에 아버지께서 동원되어 있고, 땅 위에 하늘을 대신하여 오신 참부모가 동원되어 있사오니, 이 인연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싸워 나가는 그 과정에는 승리의 일로가 그들 앞에 동반될 것을 바라옵고 하늘은 약속하였사옵고 이미 허락하였사오니, 그 모든 사실을 스스로 자기들이 상속받을 수 있는 실체적인 승리의 터전을 금번 기간을 통하여 민족 앞에 결정짓게 하여 주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져 있는 수많은 민족과 수많은 우리의 통일의 아들딸들이 해외에도 널려 있사오니, 그들이 바라보고 소망하는 한날을 위해서 준비하는 만사 위에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이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앞으로 6개월은 우리가 정성을 들여야 할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 선생님은 여기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스스로 천적인 책임을 갖고 기반을 닦아 나가야 합니다.
정한 시기에 불리움 받아 크나큰 사명을 지고 원수 앞에 서 있는 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창조이상의 목적을 두고 생각할 때에 정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열을 갖추어 행군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찬양을 돌려드려야 됩니다. 이것이 역사를 빛내는 엄청난 일이니만큼 신념을 가지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출발도 공적이요 과정도 공적이니, 공을 세우는 입장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입니다.
아담 해와가 자라던 그 위치는 행복한 위치였으며, 하늘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이념 전체를 아담 해와에게 걸고 그것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담 해와가 완성되는 것은 개체의 완성, 가정의 완성, 세계의 완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의 위치를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체를 중심하고 이루어야 할 가정과 세계가 어떠하여야 할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벨을 세우셨으나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아벨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원과 그 사정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오늘날까지 인류의 비참한 역사의 연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후 1,600년만에 세워진 노아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은 하였으나, 하나님이 노아를 두고 바라신 그 내적인 심정을 몰랐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던 120년, 이 120년 기간이 하나님에게는 당신의 심정과 사정을 모르는 노아를 바라보고 마음 졸이는 입장에서는 몇 억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세워 섭리하셨으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과 일치점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내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탕감복귀할 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심정적 주체이십니다.
우리는 복귀도상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여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담 하나가 이루어야 할 기준을 못 이루었으니 다시 가정적 아담, 종족적 아담, 민족적 아담, 국가적 아담, 세계적 아담이 나와서 탕감복귀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적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세워 나가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싸움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과거에 왔다 간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역사상의 모든 선지선열들이 못다 한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에 다시 와서 영육 아우른 구원의 기준을 세워 실제적으로 전개시켜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축복과 대립되는 노정이 있으니 싸워 이겨야 합니다. 야곱도 가나안 복귀도상에 있어서 라반과 싸워 이기고, 천사와 싸워 이겨 가정적 이스라엘 기준을 닦았습니다. 내적 사탄 입장에 선 에서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기준을 세웠던 것입니다.
예수의 개체가 서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종족이 있어야 하고,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이 있어야 하는 것이 복귀섭리의 원칙입니다.
오늘날 통일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적 기반을 공고히 닦아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에서 볼 때, 외적인 이스라엘과 내적인 예수님의 개체와 그 가정이 일체가 되었으면 그때에 세계를 수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왔던 사명을 완수했을 것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외적인 세계를 실체적으로 복귀하지 못했으나 내적인 메시아의 위치를 상속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약의 구원섭리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신도들이 이를 상속받아 내적 섭리의 사명을 다해야 했지만,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개인적인 이스라엘, 가정적인 이스라엘, 종족적인 이스라엘, 민족적인 이스라엘, 국가적인 이스라엘,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세워 나가야합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입장을,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의 입장을 재현시켜 그 범위를 넓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원수에게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기 위해서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의 자리, 직계의 자리를 세워 나오셨습니다.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민족이 한민족이라면, 이곳으로 오시는 주님은 세계의 모든 주권국가를 다 하늘 편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내적으로 개인을 승리적인 입장에 세움은 내적인 승리의 세계를 동반함을 뜻합니다. 통일교회가 출발할 때부터 말할 수 없는 역사적인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대각선을 이루어 나온 선과 악은 이제 서로 교차하여 악은 내려가고 선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은 하나님과 인연을 가진 통일교회를 중심으로 수습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원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1957년 이래 금년이 7년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적인 이념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투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가정적인 투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민족적인 투쟁에서 승리하여야 하겠거늘, 여러분이 언제 이러한 싸움을 책임지고 해봤습니까? 그러지 못했으니 이 스승을 앞장 세워서 투쟁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투쟁을 넘어선 사람이 가장 바라는 소원은 어느 때 가정적인 승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가정의 곡절을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축복가정들은 고생을 하더라도 이 나라의 가정들을 화목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민족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제물의 과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제물의 과정을 걸어가십시오.
여러분은 이념을 중심삼고 얼마만큼 민족적인 기준에 부합되어 있으며 또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되어 있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중한 것은 통일교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참된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그리워하며 수고해 오셨던가?
뜻을 대하고 나온 식구들의 입장은 아벨을 죽인 가인이냐, 아벨에게 순종한 가인이냐? 이것을 여러분에게 질문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개인이 탕감해야 할 책임을 못하면 가정적으로 탕감해 나와야 했고, 가정이 탕감해야 할 책임을 다 못하면 종족이 그 책임을 탕감해 나와야 했습니다. 선생님이 40평생 이렇게 수고하여 닦아 놓은 기준을 책임질 수 있는 대표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충신 이상으로 땅을 위하여 많은 눈물을 흘린 선생님이라는 것은 하늘땅이 공인합니다. 선생님이 없으면 이 민족과 하늘땅을 위하여 눈물 흘리던 그 기준을 누가 책임지고 대신해 줄 것인가? 그러기에 어머니를 두고 가며 애기들을 두고 갑니다. 이 책임을 세우게 하기 위하여 전체를 동원시키는 것입니다.
6개월이란 기간을 세워 놓고 탕감의 조건을 세워 나가기 바랍니다. 6개월도 못하겠다는 사람 있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 비록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고 울타리가 없다 해도 이 자리는 귀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억천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자리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있으니 얼마나 귀한 곳입니까! 이 4년 기간 내에 책임을 못하면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자리에 여러분을 내보낼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던 예수님과 같이 영윈한 아버지의 심정을 통한 실체가 되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통일교회의 말씀은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인격은 말씀을 통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는 인격이라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을 통하여 같은 혈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4년노정에 있어 국가적인 책임을 다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소망의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 천주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까?
임지를 나가는 3인 중 한 사람은 모세와 같은 책임, 나머지 둘은 아론과 미리암과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맡은 바 책임을 잘 이행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제자들이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를 가 있든지, 여러분 스스로 책임을 다해 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이 이념이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을 얼마만큼 생각해 보았습니까? 이 엄숙한 사명 앞에 동참하여 책임 다해 주길 바랍니다.
이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의 그 무엇보다 강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자기의 그 무엇보다 더 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