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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창립 제10주년 기념일 말씀

일시: 1964.05.01 (금)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세상에서는 우리들을 통일교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를 통일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이라는 이 명사를 두고 볼 때, 통일이라는 명사 가운데는 기나긴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통일이라는 명사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있어

본래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어디 있느냐? 통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창조의 위업을 성사하였다는 것을 우리들은 압니다. 그 창조의 위업은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이 통일되는 데 있어서 목적완성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들은 원리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이러한 통일의 이념, 즉 하나님의 이상을 중심삼고 일체적인 이상을 거쳐 가지고 전체가 통일된 그런 세계를 이루어야 할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인간의 소원이요, 만민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런 소원성취의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을 위주하여 같은 사정에서 살아야 할 하늘땅이요, 만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인간은 물론이요 지으신 피조만물까지 심정을 중심삼고 일체적인, 즉 통일된 자리에서 행복을 누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본연의 목적이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기에 사람만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요, 하나님만 있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사람과 하나님과 또 만물이 있어 가지고, 이 셋이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자리에 서야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늘이 있어야 되고, 인간이 있어야 되고, 만물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통일의 무리, 더 나아가서는 통일교회, 이런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들은 통일이라는 명사를 지니고 있으니만큼 우리 배후에는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인연이 있는 동시에 시대적인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적 사명이 있는 동시에, 이것을 타개하여 승리적인 통일의 결정권을 세워 가지고 하늘과 땅과 만물이 탄식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해원성사해 주어야 할 미래의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통일의 제일 원칙이 되는 분이 누구시냐 하면 물론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만물과 인간과 관계를 맺게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소원, 혹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을 기반으로 하여 그 뜻에 통할 수 있고, 그 소원에 통할 수 있고, 그 사정에 통할 수 있고, 그 심정에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주로 하여 하나의 가정, 하나의 종족과 하나의 교회면 교회, 하나의 민족이면 민족, 국가, 세계까지 그 소원이 연결되어 있고, 그 사정도 연결되어 있고, 그 심정도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개체를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 개체는 여러분 한 사람의 개체로되 그 개체에 인연되어 있는 통일적인 내용에 들어가서는 전체적인 뜻과 전체적인 사정과 전체적인 심정을 내포해 가지고 인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하였다는 것은 무엇이냐? 통일의 기반이 무너진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갈라졌고, 하나님과 인간이 갈라졌고, 인간과 만물이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갈라진 이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 참 것과 거짓 것을 분별하여서 역사를 엮어 오고 있는데,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하늘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참다운 민족으로서 하늘편에 세워 나왔지만 이 하늘편에 세워진 민족이나 국가가 과연 하늘 앞에 통일적인 목적성사를 할 수 있는 민족과 국가가 되었느냐 하면 지금까지 그러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직까지 소망의 일치점을 보지 못하였고, 하늘이….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늘이 이 터전을 닦기 위해서 수고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통일의 세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필코 통일된 하나님과 통일된 참다운 사람과 통일된 만물이 소원 일치요, 사정 일치요, 심정이 일치되는 그 기점을 하늘을 대신하고, 만물을 대신해서 인간 하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출발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6천 년이라는 기나긴 복귀의 역사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소원과 사정과 심정이 일치된 통일된 존재가 나와야

그렇기 때문에 이 6천 년의 소망의 기준이 누구로 표상되어 있느냐 하면 메시아로 표상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왔다 간 이후 2천 년 동안 고대하던 재림주님이 차지해야 할 자리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그분이 이 땅 위에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인간 세상 혹은 피조세계, 천상세계에서 비로소 하나님과 인간과 지은 만물과 소원 일치의 기준이 연결되는 것이요, 사정 일치의 기준이 시작되는 것이요, 심정 일치의 기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비로소 하늘이 바라던 통일이라는 명사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통일의 기준에 있어서 그분이 모든 소원의 총합 실체요, 모든 사정의 총합 실체요, 모든 심정의 총합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통일의 무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따라서 통일하는 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사정과 일치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어야 됩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이 살아 나가는 데는, 생애노정을 세워 나가는 데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활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생활노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그 목적과 현실의 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정이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정이 연결되어서 그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방향에 있어서 내가 소망을, 사정을 통하면 통할수록 나에게 힘이 되고, 나에게 기쁨이 되고, 나에게 모든 행복의 요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적인 터전이 없다 할진대는 그 소망을 성취해 낼 수 없는 것이요, 그런 입장에서 소망을 성취하지 않는 한 그것은 역사를 대신해서 하늘과 부합시킬 수 없는 것이요, 인류역사가 소망하던 역사적인 소원의 목적과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늘도 역시, 인간도 역시, 지금까지의 역사도 역시 소원의 일치점을 바라는 것이요, 사정과 심정의 일치점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오늘날 우리 개인들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본다면 여러분 자신들은 통일의 한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섭리한 섭리의 목적은 무엇이냐? 하늘을 대신할 수 있는 통일된 하나의 사람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6천 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를 찾기 위해서 숱한 피눈물 나는 역사의 노정을 거쳐왔고, 말할 수 없이 비통하고 비참한 역사의 노정을, 선을 지향해 나오는 수많은 우리의 선조들과 더불어, 혹은 선지들과 더불어 엮어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통일된 하나의 존재가 나오면 그 하나로 말미암아, 하늘의 비참한 역사적인 조건을 제시한 원수가 있으니 이 원수를 대해 세계사적인 분을 탕감하고 청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불러 세워져 찾아오시는 그분이 앞으로 오실 주님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분이 나오면 그분은 지금까지 지속돼 오던 하나님의 슬픔을 해소시켜 드리고, 하나님의 원수를 제거시킴과 동시에 통일된 세계를 세워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먼 소망의 세계로 여기던 창조목적의 세계를 오늘날 실제 생활무대에 전개시켜서, 하늘의 심정을 대신하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생활적인 기준이 비로소 나타나는 소망의 실체 기반을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그런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하나님의 소원의 실체요, 이 시대적인 소원의 실체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역사적인 사정의 실체요, 더 나아가서는 시대적인 사정의 실체요, 더 나아가서는 내 소망의 천국세계에 있어서의 생활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사정의 실체인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역사적인 심정의 실체요,시대와 미래적인 심정의 실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분 하나로 말미암아 실체적인 부활을 완성하는 그 기준이 이루어짐으로써 개인이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소원의 부활 기준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역사적인 하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생활적인 기준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하나님과 인간과 지금까지 심정적인 인연을 갖지 못하였던 것이 여기에서 이 한 기점으로 말미암아 연결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있기 전에 먼저 타락한 아담 해와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창조이상을 바라보던 하나님의 소망 앞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6천 년의 기나긴 슬픈 역사세계가 있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지금 이 시대까지도 심판하여야 할 이런 세계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총책임지고 전체를 탕감해야 할 중심적인 위치에 서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역사적인 눈물에 동참하고, 시대적인 눈물과 미래적인 눈물에 동참할 수 있는 자리에 선, 즉 하나님을 중심삼고 동참 동반할 수 있는 기준에 서 가지고 비로소 하늘의 슬픔을 땅 위에, 하늘의 모든 십자가의 고통의 길을 땅 위의 것으로 옮겨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땅 위에 있어서 하늘 전체적인 슬픔을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요, 하늘의 모든 소망을 땅에서 비로소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요, 하늘의 사정을 비로소 땅에서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요, 하늘의 심정을 비로소 땅에서 책임질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통일교인은 하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알아야

하늘이 이러한 한 분을 세우신 것은 통일된 한 분으로 말미암아 통일된 가정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통일된 한 분을 세우기 위해서 6천 년 동안 걸어 나온 하늘은 그 한 분만으로써 모든 것이 완결된 성상을 볼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그 한 분을 세워 놓으면 그 한 분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가정이 있어야 할 것이어늘 그 가정을 수습하여 통일된 가정으로, 통일된 가정을 수습하여 통일된 종족과 민족으로, 통일된 민족을 수습하여 통일된 나라로, 통일된 나라를 수습하여 통일된 세계로, 그 세계를 수습하여 통일된 천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들이 개인으로서 통일교회의 교인이 되었다고 자처하고 나서게 될 때에, 자기가 지금까지 습관적인 생활로 살고 있는 개체보다도 역사성을 띤 개체임을 명심해야 됩니다. 하늘이 세우신 한 분을 위주로 하여 그분을 6천 년 소원의 실체로서 찾아온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소원 일치, 사정 일치, 심정 일치를 여러분 자체에서 세워 가지고 그분의 소원, 그분의 사정, 그분의 심정이 여러분의 소원, 사정, 심정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 자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이 바라보게 될 때에, 6천 년 하늘이 소원하시던 소원의 실체요,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실체요,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실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기준에 선 개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개인이 되기 전에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통일교회 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여러분 한 개인을 세우신 목적은 또 어디 있느냐 하면, 여러분을 위주로 하여 통일된 가정을 바라서 세운 것입니다. 통일된 가정을 하늘이 축복해 준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여러분들을 위주로 하여 종족과 민족과 여러분 자체가 오시는 주가 맡은 바의 입장을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책임을 하게 하기 위해서 세웠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복귀의 길은 어떤 길이냐? 이것은 십지가의 길입니다. 탕감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십자가의 고개길을 넘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한 분을 세우기 위해 6천 년 길을 걸어왔으니 6천 년 걸어온 그 길의 터전 위에 하나의 가정을 세워야 할 것이요, 그 가정 기반 위에 하나의 종족, 민족, 국가까지 세워야 할 창창한 길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을 세우기 위한 6천 년의 수고의 노정으로서 역사적인 전체가 탕감될 수 있었느냐 할 때에, 조건과 기반의 터전은 되지만 전체적인 승리의 터전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연고로 전체적인 승리의 인연을 갖추기 위해서는 연결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되는데, 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 비로소 통일의 교인들이 필요한 것이요, 통일의 식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지금까지 우리를 찾아온 견지에서 보게 될 때, 지금 하늘이 소망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현실에 있어서 하늘 앞에 불리운 자기 자체가 틀림없는 통일의 교인이요, 내 한 자체를 그렇게 세울 수 있다 하게 될 때에, 하늘의 소원을 가지고 다시 나를 부르고 있는 그런 입장에 선 것을 알아야 되겠고, 하늘이 나를 다시 불러 더 큰 사정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하늘이 나를 불러 더 큰 심정의 터전 위에서 같은 행복을 노래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 때에,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인류가 있고, 수많은 국가, 수많은 종족, 수많은 가정, 수많은 개인들이 있지만 이 천지 가운데에 하늘이 소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개인, 하늘이 바라는 사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개인, 하늘의 심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개인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개인으로 오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이분은 하늘편에서 볼 때 6천 년 소원의 중심이요, 앞으로 타락한 이 세상이 거쳐 나가야 할 역사적인 시대가 남아 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나갈 입장에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 앞에는 소망의 실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미래에 있어서는 새로운 터전의 출발을 가져와야 할 그런 실체라는 것입니다.

슬픈 소원과 사정과 심정에 동참해 온 이스라엘

그러면 그러한 책임을 갖고 오시는 주님을 모셔야 할 통일의 무리, 혹은 통일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여러분 자신을 세워 '하나님이여, 당신이 나를 소원하시어서 찾아온 것을 내가 압니다. 하나님이여, 나와 더불어 사정을 통하기 위해서 섭리해 오심을 압니다. 나와 더불어 심정을 나누기 위해서 찾아온 것을 내가 압니다. 나를 위주로 해서 내 가정이 그러한 것을 알았고, 가정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이 세계 인류 앞에 그러한 인연을 맺게 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을 압니다'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신념과 이와 같은 생활적인 감정을, 여러분의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모든 느낌 가운데서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땅 위에 발판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기 전에 세례 요한이 와 가지고 모든 탕감할 기반을 닦아 가지고 탕감의 조건을 제시해야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이 땅 위에 오게 될 때 그 이념을,즉 통일의 이념을 완결시키기 위해서는 그 통일의 이념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심정을 하나로서 묶기 위한 기준이기 때문에 그 기준을 닦을 수 있는 수많은 무리가 준비되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는 한 통일된 가정, 통일된 교회, 통일된 민족, 통일된 국가, 통일된 세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이런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오시는 주님을 찾기 위해 하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6천 년 길을 찾아오던 거와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은 다시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개인을 찾았으니 가정을 찾아 넘어야 되고, 가정을 찾았으면 가정의 십자가를 지고 종족을 찾아 나가야 되고, 종족의 십자가를 지고 민족을 개척해 나가야 되고, 민족적인 십자가를 지고 국가를 개척해 나가야 되고, 국가의 십자가를 지고 세계를 개척해 나가야 할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국가적인 시대를 향하여서 총진군해야 할 시대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짊어지고 책임을 하고 있는 그 처지에서 과연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던 소망의 기준에서 비판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사정의 기준에서 비판해 봐야 되겠고, 심정의 기준에서 비판해 봐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너는 과연 하나님의 소원에, 하나님의 사정에, 하나님의 심정에 일치된 자리에 있노라' 하는 입증을 받고, 입증받은 그 자체를 가지고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입증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우리가 회고해 보게 될 때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이 택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런 민족국가를 대하여 하늘은 4천 년의 기나긴 역사적인 소망을 두고 대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적인 소망의 기준을 대해 오면서, 하늘이 수고하는 십자가의 고난길에 동참해 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십자가의 고난길에 동참해 나왔지만, 처량하고 비참하고 애달픈 심정의 동참자가 돼 왔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이 찾아오는 기쁨의 소망의 한 날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기쁨의 사정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과 영원히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기쁨의 심정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슬픔이었던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슬픔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까지나 탕감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에서 소망을 갖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사정은 십자가의 사정에 동참해 나왔다는 겁니다. 그들의 심정은 슬픈 심정에 동참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기쁜 소원, 기쁜 사정, 기쁜 심정을 하늘과 더불어 나누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슬픔이요 원한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주의 출현으로 슬픈 역사가 청산되고 기쁜 역사가 출발돼

그렇다면 끝날 된, 재림시대가 오는 그때에 있어서는 어떻게 되느냐? 역사적인 슬픔의 소원과 슬픔의 사정을 이스라엘 민족이 해결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2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소망의 것으로써, 세계적인 사정의 것으로써, 세계적인 심정의 것으로써 지금까지 2천 년 역사를 연장해 나왔으니 이 비참한 소원에 동참하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비참한 사정과 비참한 심정에서 울부짖는 기독교는 되었지만 진정으로 하늘이 바라던, 진정으로 기독교인들이 바라던 소망의 기쁨과 소망의 사정과 소망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입장에 선 역사적인 동반자는 되지 못한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찾고 있습니다. 고대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 한 분을. 이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다시 찾아질 수 있느냐? 메시아의 재현으로 말미암아 옛날의 슬픈 역사가 청산되고 기쁜 역사가 인류 종말 시대에 연결되므로 그날을 고대하는 것이요, 기쁜 사정이 연결될 수 있으므로 그분을 고대하는 것이요, 기쁜 심정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를 위주로 하여 수많은 종교인들에게 연결되겠기에 오시는 그분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게 될 때,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슬픈 역사를 청산해 버리고 십자가의 고난의 역사를 청산해 버리고 기쁨의 역사를 준비하였더라면 오시는 주님 앞에는 슬픈 역사가 관계없을 것이로되, 슬픈 역사를 청산할 수 있는 기준을 이루지 못하게 될 때는 오시는 주 앞에도 역시 슬픈 역사가 남아지는 연고로, 슬픈 역사와 더불어 뒤넘이쳐 이 슬픈 역사를 청산하고 나와야만 기쁜 역사의 출발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주가 이 땅에 오면 그날부터 자기의 소원이 성사되고, 자기의 사정이 이루어지고, 자기의 심정의 목적이 달성될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된 교단이 필요한 것이요, 교단을 이루지 못하였거든 통일된 종족이라도 만들어야 되고, 종족이 되지 못하였거든 통일된 가정이라도 이루어야 되고, 가정이 되지 못하였거든 통일된 개체라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십자가의 길을 막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도인들을 찾아보게 될 때에, 과연 하늘이 소망하시던 사정과 심정에 일치될 수 있는 통일된 개인과 가정과 종족이 있느냐, 혹은 교단이 있느냐 할 때에 지극히 의문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것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오시는 주 앞에 필시 영광의 터전이 되어야 할 기독교가 도리어 슬픔의 터전이 되고, 행복과 기쁨의 노정이 십자가의 고통의 노정으로 바뀌어질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쉬운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슬픔과 비참과 억울함을 탕감해 온 통일교회

오늘날 이런 역사적인 실정을 우리가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에, 오늘 우리 통일교회 창립 1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고 생각해 보게 될 때에, 하늘은 오늘날 이 땅 위의 우리 교회면 교회를 두고 바라시는 그 소원이 무엇이겠느냐? 통일의 무리들이 당신의 소원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실 것이며, 당신의 가정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실 것이며, 당신의 심정과 일치되기를 얼마나 바라시겠느냐 이겁니다. 10년이 지나갔으면 10년 세월 어느 한 날이라도 연결되지 않은 시간이 없는 자리에서 하늘은 소원이 일치된 자리에 선 통일의 사람을 불렀을 것이요, 사정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을 불렀을 것이요, 심정이 일치될 수 있는 사람을 불렀을 것이어늘, 하늘이 '내 소원의 실체요, 내 사정의 실체요, 내 심정의 실체다. 10년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잃어버릴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을 통일교회 신자 가운데서 불러 세울 수 있을 것인가가 지극히 의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보게 될 때, 여러분이 어느 한 날, 자나깨나 좋고 나쁜 일을 통하여서 과연 아버지의 뜻을 여러분 뜻으로 얼마나 하늘 앞에 세워 나갔으며, 이 죄악된 세상을 대하는 6천 년 원수를 앞에 놓고 싸워 나가야 할 하늘의 사정 앞에 있어서 얼마나 절박한 사정에 처해 봤으며, 잃어버린 자녀들이 유린당하는 이 슬프고 비참한 역사적인 과거를 미루어 보면서 현실의 비참상을 여러분들로 말미암아 종결짓겠다는 간곡한 하늘의 심정에 뒷받침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애써 나왔느냐? 이런 입장에서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 우리는 하늘과 거리가 먼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를 지도하는 스승으로서의 지금까지 소원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았고, 하나님의 사정이 무엇인지 알았고,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세상 만민은 하나님의 소원을 모르더라도 나만은 알아주어야 되겠다, 만민이 사정을 몰라주고 만국의 수많은 도인들이 몰라주더라도 나만은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주어야 되겠다, 나만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주어야 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이 선생이면 선생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다는 겁니다.

때가 점점 다가오고 시대가 촉박해 오면 올수록 하늘의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재촉하는 하늘의 심정을 우리는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이 불쌍한 민족의 처참상이 눈앞에 전개되는 것을 보면 볼수록 하늘의 사정과 심정이 얼마나 애달픈가를 생각하게 될 때에, 그 애달픔이 하늘의 애달픔이어늘 그 애달픔을 붙들고 하늘 앞에 나를 통하여 어떠한 위로를 드릴 수 있는 그 무엇이 없겠느냐고 몸부림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만 통일의 무리요, 이러한 자라야만 시대는 용납하지 못하더라도 하늘은 반드시 통일적인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의 누룩이 된 통일적인 개체로서 통일적인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김씨면 김씨, 박씨면 박씨 등 수많은 종족을 대표한 가운데서 먼저 부름받은 통일교인이라 할진대, 여러분들이 종족을 대신하여 '오늘날 내가 부름받았으니 내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이 종족을 대신할 수 있는 소망의 실체가 나니 하늘이여, 나를 세워서 종족을 명령하시옵서. 나를 세워서 당신의 사정을 이 종족과 더불어 나눌 수 있게 하시고, 나를 세워서 당신의 심정을 종족과 더불어 나눌 수 있게 하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이 간곡하고, 그 사정이 처절함을 느끼고, 그 하나님의 소원을 여러분의 소원으로 느끼면 느낄수록 여러분이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초조하고, 얼마나 조급한가를 생각해야만 되는 겁니다. 이걸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10년 세월을 슬픔으로 지내 버린 것을, 혹은 고통길로 걸어온 것을 우리들이 회고하면서 생각하게 될 때, 과거의 슬픔이 도리어 실패를 가져왔고, 과거의 고통이 도리어 낙망을 가져오고, 과거의 비참함이 오늘에 불행을 초래했기에, 우리에게는 기념할 아무런 무엇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성공을 가져오고, 그 비참함과 억울함이 하늘의 분함과 억울함을 탕감할 수 있는 승리적인 억울함으로서 하늘 앞에 세워져야만 수고로웠던 고난의 길, 수고로웠던 고통의 길도 축하하고 기념할 수 있지, 그렇지 못하게 되면 기념이 아니라 화(禍)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10년노정을 걸어오면서 우리는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비탈길을 걸어왔습니다. 험한 길을 개척해 왔습니다. 나오면서 낙망의 때도 있었고, 고통의 때도 있었고, 비참한 때도 있었고, 눈물과 피땀을 흘리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 하늘이 바라던 소망과 하늘이 바라던 사정과 하늘이 바라던 심정기준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어느 정도 발전을 가져왔기 때문에 기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런 날을 맞이할 적마다 하늘 앞에 속죄의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의 사명은 천국건설

그러면 과거 10년은 그렇다 하고, 10년을 한 묶음으로 보내고 내일부터 새로운 10년의 출발을 해야 할 이 마당에 우리는 서 있는 겁니다. 과거에 여러분이 하늘 앞에 충성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십니까? 하늘의 소원 앞에 일치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십니까? 하늘의 사정과 심정 앞에 좀더 간절하고 좀더 하나되었던들 나는 하늘 앞에 내 자신을 세워서 면목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러움과 면목을 세울 수 없는 자신인 것을 발견하십니까? 과거에 미급했던 것을 발견하면 할수록 이제부터 다시 새로운 11년을 출발하는 이 마당에서 여러분이 각오를 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으로 말미암아 슬픔을 남겼으면 가정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며, 혹은 자기의 사정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슬픔을 남겼으면 이 사정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며, 혹은 자기 개인으로 말미암아 그런 입장에 섰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를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이제 하늘은 오늘날 우리들을 세워 놓고 하나의 교단으로서 민족적인 책임을 하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를 세우신 것은 통일의 민족을 바라서였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이 민족적인 통일을 완결짓지 않고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완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2천 년 전 유대교의 사명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메시아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를 맞는 목적은 무엇이냐? 메시아를 맞아 가지고 승리적인 이스라엘 주권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후에는 유대교의 사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가 교회로서 존속하는 데 있어서의 책임적인 사명은 이 민족을 하늘 앞에 세우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하늘 앞에 복귀해 드릴 때까지 개척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도맡기 위한 통일교회이지 이 싸움을 피하기 위한 통일교회가 아니다 이겁니다.

만일에 통일된 나라가 있다 할진대 통일된 나라가 나라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통일된 세계를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관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사는 것은, 내가 통일교회 교인으로서 가정생활을 하는 것은 통일교회의 생활을 개척하기 위해서인 것이요, 통일교인으로서 생활하는 것은 통일의 나라를 개척하기 위한 것이요, 통일의 나라가 있는 것은 통일의 세계를 개척하기 위한 것입니다. 언제나 이것이 내 소원이요,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내 사정이요, 이것을 내가 붙들고 싸워 승리해서 기쁨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세우기 위한 심정인 것을 알고 그것을 향해서 우리는 일편단심으로 나가야 됩니다. 딴것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거예요. 의(義)가 뭐예요?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예요? 통일된 나라입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그 나라와 더불어 끝을 볼 수 있는 나라요, 아버지의 사정이 그 나라와 더불어 백 퍼센트 통할 수 있는 나라요, 아버지의 심정이 그 나라와 더불어 거침없이 하나에서 전체까지 미쳐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바라는 뜻의 나라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면 지상천국이요, 천상에서 이루어지면 천상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원을 갖고 사는 나라요, 소원의 실체가 되어서 사는 나라, 그것이 곧 천국이라는 겁니다. 소망적인 사정을 내 사정으로 소원성취한 그 자리에서 사는 그 세계가 천국입니다. 소망적인 심정이 비로소 다 이루어진 나라이니, 그것이 곧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 천국이 아버지께서 바라던 천국이요, 그 천국이 인류가 바라던 천국입니다. 그 천국이 모든 만물이 바라던 천국이기 때문에, 그 천국권 내에 들어가면 그 자체가 소원성취한 그 자체로 서는 것이요, 그 자체가 사정 일체로 이루어진 실체로서 서는 것이요, 그 자체가 심정을 완성한 실체로서 만우주를 대신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는 생활이 천국의 생활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적인 소원·사정·심정의 길을 개척해야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오늘 현실의 생활 가운데 있어서 과연 자기 몸과 마음을 통한 자리에서 천국생활을 하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은 나 하나를 중심심아 가지고 온 천하와, 죄악된 천하와 바꿀 수 없습니다. 하늘이 나와 더불어 사정을 통하는 이 시간은 타락된 만민과 더불어 사정을 나누고 싶어하는 시간보다도 더 귀한 시간입니다. 내가 기뻐하고 나를 대해서 즐기는 이 심정은 만민과 더불어 타락한 세상의 탕감조건의 심정을 나누어야 할 그 심정과는 바꿀 수 없는 심정입니다. 갈 수 있는 기점에 선, 그런 자체가 생활할 수 있는 자연적인 무대를 전체형으로 전개시켜 놓은 것이 천국입니다.

아직까지 그런 세상이 되지 못한 연고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개척해 나가야 됩니다. 개척해 나가는 데는 개인적인 소원의 길을 개척하고, 개인적인 사정의 길을 개척하고, 개인적인 심정의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가정의 길, 종족의 길, 민족의 길을…. 그래야 오시는 주님이 한 단계 앞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앞서 나가면 그 뒷받침이 되기 위해서 민족적인 시대를 맞이했으면 자기 종족적인 책임을 완결하여 하늘의 소망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체화될 수 있는 통일된 위치에 서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비로소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 자고 깨고, 오고 가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만사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시작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끝을 볼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하늘이 고난의 길을 가더라도 고난의 길 가운데에 동참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기에 동반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때에 자기 자신이 개별적인 입장에 떨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소망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고, 그 사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고, 심정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 가더라도, 직장에 가더라도 생활적으로 연결한 소망과 사정과 심정을 연결시켜 가지고 갈 뿐이지 이것을 잃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다시 돌아와서 자기 나라를 수습하는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생활을 해 나가야 이 어려운 환경을 개척해 나가는 데 있어서 여러분이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나갈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때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떨어질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향하여 나가는 입장에 서 있는 연고로, 내 개체를 위주로 한 소망은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습니다. 내 개체를 위주로 한 사정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개체를 위주로 한 심정과 기쁨과 만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하늘이 아직까지 그런 입장이 못 되었다는 겁니다. 하늘은 전세계를 그런 자리에 잡아 세워 놓고야 비로소 그런 자리를 만민과 더불어, 천주와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것이 원칙인 연고로, 그 기준이 완결되기 전까지는 여러분의 사적 생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만일에 여러분이 기쁜 일이 있어 웃다가도 혀를 깨물어야 할….

자기가 소망에 넘쳐 가지고 '나는 행복하다. 나는 성공했다. 아! 오늘의 기쁨을 하늘의 영광으로 받으시옵소서' 하는 그 정도의 승리, 영광의 조건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대의 영광의 기준에 통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그건 부분적입니다. 오늘 10년 역사노정을 지내 온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발전해 나오는 데 있어서 어느 단계까지, 어느 소망의 기준까지는 나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 가지고 하늘의 영광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 가야 할 길은 교단적인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다. 교단적인 십자가의 길은 하늘이 동역동사(同役同事) 해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적인 십자가의 길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본연의 주관권을 복귀해 가야 할 우리의 운명길

아담 해와한테 축복하기를 만민을 주관하라고 그랬습니다. 만세의 주도적인 권한을 갖고 나타나야 할 것이 아담의 권한입니다. 아담 권한 가운데 가정이 움직여야 되고, 아담의 권한 밑에 아담의 족속, 국가가 움직여야 되고, 아담을 위주로 한 세계가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이 간섭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복귀도상에 있어서 하늘이 책임져 주어야 할 제1책임분담, 제2 책임분담 노정이 있었기 때문에, 제3 책임분담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 영적 접선을 할 수 있으되, 앞으로 교단적인 기준에서 민족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이 땅 위에 하나의 승리적인 터전을 세워 가지고 민족을 복귀해 나가야 할 입장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하늘의 협조 없이 이 교회가 내적인 영계가 되어 가지고 외적인 땅을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칙은 하늘의 협조 없이 이 일을 이루어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쉰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외적인 형이 천사세계요 오시는 주님이 이 땅에 대해서는 내적이니, 주님을 중심삼고는 외적인 형이 이 땅입니다. 그 천사세계와 마찬가지가 타락한 세상이므로 천사들은 땅 위에 협조할 수 있으되 삼위신은 협조할 수 없다 이겁니다. 원칙이 그렇다구요. 그 대신 오시는 주님은 삼위신을 대신하여 지금까지 영계를 동원하여서 땅에서부터 명령을 하여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늘이 천주에 서 가지고 움직여 주는 것이 원칙이 아닙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모셔야 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일치단결하여, 그 주님의 소원이 내 소원이니 그 소원을 하루 빨리 해결짓기 위해서 원수면 원수를 대해 무자비하게 심판하는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무리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무리가 끝날에 있어서 세계사적인 세례 요한과 같은 무리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결의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이 민족을 우리 손으로 복귀시켜야 됩니다. 하늘의 협조가 없더라도 우리들은 하나님을 쉬게 하고, 사탄의 세력이 오늘날 지상에, 이 타락한 세계에 난무하니 영계를 동원하여 이것을 조종하여 하나는 영적인 가인, 하나는 지상 가인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안 돼요. 영적 충신을 세워 가지고 육적 원수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만이 남아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 앞에, 지금까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은 이 명령 앞에 순종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 기준 앞에 통일을 갖추어 가지고 이 지상기반을 협조해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였으니, 만물을 주관하는 데는 동쪽만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방, 에덴동산 어디 가든지 거침없이 주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리 길, 천리 길, 만리 길 어디 가든지 주관할 수 있는 터전을 가지는 것이 타락하지 않은 본성의 아담의 권한이었는데…. 오시는 주님이 갖추어야 할 권한이 무엇이냐 하면 이는 지상주관권입니다. 그 권한을 완결짓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하나의 교단이면 그 교단에는 절대적 권한입니다. 수많은 교인이 있으면 맨 말단 교인까지도 백 퍼센트 주관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그 교인이 주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가정도 백 퍼센트 그 주관 밑에 좌우되지 않으면 주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 전체가 오시는 주 앞에 백 퍼센트 주관받지 않으면 그 교회도 주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여기에 어떠한 누가 참소하고, 거기에 제재를 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본연의 주관권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교단을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하여 최소 단위의 한 나라를 위주로 했으면, 이스라엘 나라, 승리한 나라, 제사장 국가를 만들게 되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귀섭리가 바라던 지상의 소망의 기준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민족 앞에 통일교회는 이 민족을 대신하여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졌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 나라를 복귀시켜야 됩니다.

다른 손을 거치지 않고, 어느 외부의 후원을 받지 않고 책임을 해야 됩니다. 사탄세계에서 무슨 권력의 뒷받침을, 어떠한 경제적인 뒷받침을 안 받아야 됩니다. 침범받아서는 안 되는 겁니다. 절대적이어야 됩니다. 여기서 출발하는 거예요. 여기서 전개되는 겁니다. 여기서 사람도 만물도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교인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운명의 길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들이 뜻을 대하여 '하늘의 소원이 내 소원이요, 하늘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하늘의 사정이 내 사정이다. 이 사정은 역사적인 사정이요, 인류의 사정이요, 우리 후손들의 사정일 것이어늘 이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통하여 이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가 간다' 하는 결의 밑에서, '이 나라 이 민족은 기필코 이러한 나라가 되어야 되겠다. 하나님의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되겠다. 이런 나라의 사정이 되어야 되겠다. 이런 나라의 심정을 나눌 수 있는 백성이 되어야 되겠다. 틀림없이 절대적인 기준이 이렇게 되어야 된다' 하는 그 기준 밑에서 세상을 비판해야 됩니다. 그 기준 밑에서 오늘날의 사회생활을 비판해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서 나가는 사람이라야 하늘의 가정을 대변하는, 하늘 가정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섞여 들어가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절대적인 기준, 아버지의 소원의 나라가 이렇고, 그 나라의 사정이 이러하고, 그 나라의 심정은 이러하다 하는 절대적 기준을 세워 가지고 여기에 외적인 무엇을 개재시켜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귀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는 종적인 이스라엘을 대신한 횡적인 결실체

그러면 이러한 종적인 6천 년 역사가 횡적으로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가지고 나오던 종적 역사를 오시는 주님이 횡적 중심이 되어 가지고 횡적으로 세워 탕감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횡적인 기준에 있어서 유대교를 중심삼은 종적인 이스라엘 역사가 횡적인 이스라엘 역사와 통일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무리는 종적인 이스라엘의 무리를 대신했기 때문에, 횡적인 기준에 있어서 승리한 통일의 용사들, 통일의 정병들은 비록 개인이로되 그 개인이 나오기 위해서 6천 년 역사노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그 역사노정 위의 종적인 인연의 이스라엘 역사와는 관계가 없지만서도 여기에 열매맺힌 것이 이스라엘 역사를 연결시킨 횡적 기대의 결실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결실은 영적인 상대적 천사세계의 협조와 더불어 된 기준에 서 있는 연고로, 이 기준의 입장에 선 실체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자기 직계 선조들이 이스라엘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아브라함의 후원이 필요 없다는 겁니다. 옛날 모세의 후원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종적 이스라엘 역사를 세워 나오는 과정에 있어서 역사하는 수많은 영계의 협조보다도 자기 직계의 선조를 위주로 하는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겁니다. 민족 부활이 벌어지게 될 때 민족의 부활로 말미암아 조상의 부활권을 이룰 수 있게 되어야만 영계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데 있어서는 개체로 움직이지만 개체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 배후에서는 수많은 선조들이 재림 부활의 한을 풀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한 분 죽으심은 아벨이 죽은 거와 마찬가지요,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이스라엘 전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의 4천 년 역사가 죽은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한 분 사신 것은 이스라엘 4천 년 역사의 부활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입장에 서 있는 연고로 오늘날, 더우기나 이 7년기간이라는 것은 엄청난 기간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주먹을 쥐고 자기 몸둘 바를 알지 못하면서 여러분의 앞길을 위하여 염려하고, 내 몇 대 후손이 부디 충성하여 하늘 앞에 기억되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바라는 그런 기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하나님의 소원도 소원이지만 조상들의 소원의 실체로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선조들의 소원은 무엇이냐? 여러분 개인이 가정에서 썩어지기를 바라겠느냐 이겁니다. 개인이 가정에서 썩어져 가지고 그런 가정기준에서 하늘을 대하는 자리를 요구하겠나 말입니다. 아닙니다. 가정을 넘어 김씨 가문이면 그 김씨 가문을 대표하여 '야 아무개야, 너 어서 빨리 네 종중을 움직일 수 있는 대표자가 되라'고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대해서 종족복귀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종족복귀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땅 위에 종족적인 기반이 닦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민족적인 기준이 벌어져 가지고 하늘이 소망하시던 세계사적인 하나의 나라를 세우게 될 때는 그 나라로 말미암아 국가복귀가 벌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국가복귀가 벌어지면 앞으로 충신 혹은 군왕들이 전부 다 지상에서 협조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발전함에 따라 가지고 오늘날 지상에서 우리의 뜻을 세워 나가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무대에 비례하여 수많은 영인들이 우리의 뜻을 협조해서 지상에 남아 있는 이 원수 사탄이를 몰아낸다는 겁니다. 몰아내는 겁니다.

통일교인이 소원하는 것은 하늘이 다 줬다

여러분이 축복받기 전까지는 땅 위에 살아 있는 천사장격입니다. 땅 위의 중심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낙원 이하의 모든 선령들은 천사의 자격으로 하늘 앞에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앞에 천사세계가 지배를 받아야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 지배받아야 할 것이 원칙인 연고로, 천사는 아담 입장에 있는 사람 앞에 협조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명령하면 명령에 따라 움직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교인들은 이제부터 기도할 때 '하나님, 나에게 복을 주시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가 아닙니다. '저는 복받은 자입니다'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소원하는 것을 하늘이 다 줬습니다. 다 주었다는 거예요. 뭘 더 달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뭘 더 받겠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노력하면 노력한 대로 여러분 것이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다이아몬드 광이 있다고 합시다. 다이아몬드가 있는 것을 알았다 이겁니다. 발견했으면 됐지 파서까지 달라고?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는 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주었다 이겁니다. 다 주었다구요.

내가 움직이고 있는 살아생전에 하늘의 가정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살아생전에 하늘의 종족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살아생전에 나라도 찾을 수 있는 것이요, 살아생전에 세계도 찾을 수 있다 이겁니다. 옛날에 그랬어요? 아무리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소망해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개인 복귀과정을 넘기 전에는 제아무리 충성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개인복귀 사명을 완결하고야 넘어가는 것입니다. 가정복귀를 출발한다고 하는 그 기준을 세워 놓고야 가정기준을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언제나 싸움해 가지고 한 고개 넘고 또 싸움하여 한 고개 넘어가는 것입니다. 개인에서 가정으로 한 고개, 가정에서 종족, 종족에서 민족, 민족에서 국가, 국가에서 세계까지 전부가 올라갈 적마다, 넘어갈 적마다 싸우고 십자가에 부딪쳐 가지고 내가 깨지느냐 네가 깨지느냐, 사탄이가 옥살박살하느냐 내가 옥살박살하느냐,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가름을 지어 가지고 남아져 가지고야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날 이 평면도상에서 마음대로 일시에 충성을 하면 일대에 있어서 개인·가정·국가·세계까지 넘어갈 수 있는 때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복을 줘요? 오늘날 통일교인들은 돈 한푼 없어 가지고 굶어도, 그저 배밀이하더라도 행복하다는 겁니다. 뭘 더 주느냐 말이예요. 다 줬다구요.

여러분이 충성을 하면 여러분이 걸어가는 발걸음 앞에 여러분의 나라를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여러분의 세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요, 천주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주로 하여 통일천하를 물려받을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럴 수 있다구요. 이 뜻을 위하여 지금 영계의 수많은 영인들이…. 지상에 혹은 대한민국 삼천리 반도면 삼천리 반도에 남아 있는 수많은 사탄들이 지금까지 여러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역마다 전부 다 책임자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이제부터 통일교회 교인들이 기도하게 될 때는 '나 복 주소'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영계의 영인들이 복받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아 아무개야, 복 좀 주려므나' 하고 영인들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영인들이 복받으려고 기도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땅 위에서 '이제 하늘 앞에 충성하는 충신 열녀가 있으니 수많은 역대의 우리 선조들은 다 내려와라' 이럴 수 있어야 됩니다. 뜻적으로 볼 때 누가 더 선조냐 하면 여기 들어온 패들입니다. '내려와라' 하고 불러 주지 않아서 못 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협조할 터인데 어떻게 하느냐? 종이 먼저 개척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은 주인 뒤를 따라가 가지고 보호하게 되어 있지, 종이 주인 길을 전부 다 책임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가는 거예요. 영계는 선두에 못 섭니다. 여러분들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늘도 지금까지 선두에 못 섰습니다. 내가 선두에 서야 하늘이 그때….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 죽음길에서 나를 건져 주는 것입니다. 하늘은 선두에 못 선다구요. 물론 95퍼센트까지는 선두에서 나가는 것 같지만 최후에 가서 5퍼센트 과제를 남겨 놓고는 절대 선두에 못 섭니다. 나를 앞에 세우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영인들이 돕는 반대현상이 벌어진다

여러분들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구할 수 있어요? 나는 기도할 게 없었습니다. '나 복 주소. 나 천당 가게 해주소' 하지 않았다구요. 소원이 있다면 딴 게 아닙니다. 이 나라 삼천리 반도에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사탄들이 준동하여 하늘의 원수가 되어 나왔으니, 이 사탄을 몰아낼 수많은 영인들을 동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달라진다는 거예요.

과거에 우리가 핍박받을 때, 수많은 악령들이 동원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돼 가지고 우리들을 핍박하게 될 때는 공포의 압력이 수없이 들어왔었습니다. 치열했습니다. 결사적인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 때는 바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반대로 힘을 줘 가지고 투쟁하면 거기서 그들이 계시를 받습니다. 그들이 계시를 받는 것은 급해서 받는 계시예요. 밤이 되면 역사가 벌어집니다. 심판이 벌어집니다. 그다음에 공포가 벌어집니다. 옛날의 우리와 똑같아요. 옛날과 똑같이 반대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집회 때에도 통일교회 교인들이 찾아가면 목사들 자신의 입으로 불벼락 맞아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기만 하면 철렁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이 뜻을 세워 나올 때, 초창기에 한 사람이 반대를 하는 것은 그 한 사람의 반대가 아닙니다. 수많은 사탄을 대신하여 나왔기 때문에 격투가 벌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될 것이냐? 옛날에 통일교회를 지긋지긋하게 반대했던 것의 3배 이상 가해야 돼요. 아직까지는 때가 조금 덜 되어서 가만있는 겁니다. 3배를 가해야 됩니다. 왜? 아담을 기만했고, 예수를 기만했고, 삼위신을 기만한 사탄이니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3배 이상 가해야 됩니다. 그리고 7천 년 역사를 유린한 것이니 3배 이상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의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비참한 6천년사, 지금까지 복귀역사 6천년사, 통일교회의 발전과 선생님이 지금까지 걸어 나온 그 모든 역사노정에 있어서 비참한 그 일을 일시에 몽땅 들이부어도…. 이런 배포를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매를 때리면 네가 맞는다. 네가 아무리 참소를 하더라도 안 걸린다' 이런 결의 밑에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 통일교회 나간다고 얼마나 핍박받았어요? 요즘에는 핍박 안 받는다고 눈이 게슴츠레해 가지고 있어요. 그게 좋아요? 하늘이 돌보아 주던 손이 그리워요? 반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핍박받던 이상 하라구요. 핍박을 하던 그 사람들이 밤잠을 잤습니까? 여러분을 반대하던 어머니 아버지가 밤잠을 잤습니까? 밤을 새워 가면서 핍박을 하고 밤을 새워 가면서 반대를 했으니, 오늘날 우리도 밤을 새워 가면서 '못 잔다. 통일교회 갈래, 안 갈래?' 하고…. (이하는 녹음이 되어 있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