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나라를 두고 보면, 하나의 나라 가운데서도 어떤 특정한 단체라든가 특정한 종족이 있으면 그 단체라든가 종족을 중심삼고 그 나라를 포섭하고, 그 나라를 하나 만들려고 생각하는 것이 상례인 것입니다. 어떤 단체나 어떤 종족을 중심삼고 볼 때도 그 종족과 단체를 하나 만드는데 있어서는 어떤 특정한 가정이면 가정을 중심삼고 그 가정이 그 종족이나 단체를 하나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바인 것입니다.
한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여러분 한 가정에 있어서도 자기면 자기를 중심삼고, 여러분 아버지면 아버지를 중심삼고, 어머니면 어머니를 중심삼고, 자녀면 자녀를 중심삼아 가지고 각자 자기를 중심삼고 하나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사람의 생각인 것입니다.
자, 이와 같은 공통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이것은 지금의 우리 인간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과거에 왔다 갔던 수많은 우리 선조도 마찬가지의 전통을 이어받아 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어떤 문화의 발전 혹은 어떠한 혁명의 과정을 거쳐왔더라도 오늘날까지 이와 같은 전통적인 관념은 혁명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계속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입장에서 우리 인생살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 동양과 서양이 가는 방향의 전통은 이와 같은 원칙을 떠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보게 될 때, 세계 가운데 자기 나라를, 자기 나라 가운데 자기 종족을, 자기 종족 가운데 자기 가정을, 자기 가정 가운데 자기를 주장하게 된다는 이 원칙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이것을 거꾸로 보면, 내 개인은 가정을 하나 만들어야 되고, 가정은 종족을 하나 만들어야 되고, 종족은 국가를 하나 만들어야 되고, 국가는 세계를 하나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의 세계를 모색할 수 없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전통이 성립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이론은 타당한 결론입니다.
자, 우리 인간의 욕망…. 여러분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욕망은 어디로 갈 것이냐 하게 된다면, 욕망은 이와 같은 단계를 거쳐가지 않으면 갈 길이 없다고 우리는 여기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의 남자면 남자를 중심삼고 볼 때, 그 남자의 욕망이 뭐냐? 남자는 남자 자체의 욕망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위한 욕망을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가정의 욕망은 뭐냐?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환경을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종족권이 이루어졌으면, 그 종족권의 욕망은 뭐냐?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한 나라의 욕망은 뭐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세계의 욕망은 뭐냐? 근원에서 출발했으면 하나의 결과로서 하나님이 계시면 이 결과를 수습해 가지고 근본 되시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욕망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면, 이 우주를 지배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주의 중심이요 주체라는 말입니다. 그 중심적 존재요, 주체적인 존재 앞에 대상적인 존재요. 결과적인 존재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기에서 주체와 대상이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전기로 말하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빛이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빛이 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전기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기 이 작은 전구 안에 있는 플러스 마이너스가 연결돼 가지고…. 여기에서만 하나돼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더 큰 변전소를 통해 가지고 발전소까지, 결과적인 입장이지만 근본적 발전소와 연락될 수 있는 데서 만이 영원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결론입니다.
자,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어떤 입장이냐? 하나의 전구와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전구와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다 하는 것은 우리 통일교회가 주장하는 관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분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가 하나되면 됩니다. 그 나라와 나라가 하나되는 데는 어느 것이 주체가 되고 어느 것이 대상이 되느냐, 이것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주체가 되려 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민족이라든가 수많은 종족들이 하나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그한 나라에도 반드시 주체가 있고 대상적인 무엇이 없어 가지고는 하나가 안 됩니다. 이것은 종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족도 그런 관계이고, 가정도 그런 관계로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개체에 들어가 보면, 개인들도 그와 같은 입장에 있다구요.
자,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이…. 그러면 하나의 원칙을 찾아내야 할 텐데 원칙을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는 여기서 잘 봐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다 벌어진 여러분의 관계, 즉 주체와 대상 관계를 완전히 플러스는 플러스를 중심삼고 단계적으로 갈라 놓고, 마이너스는 마이너스를 중심삼고 단계적으로 갈라 놓아 가지고, 단계적으로 개인적인 플러스, 가정적인 플러스, 이렇게 올라가고, 거기에 대해 가지고 개인적인 마이너스, 가정적인 마이너스를 단계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하나만 만들면 하나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론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세계가 주체의 나라와 상대의 나라가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가면 통일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 우리가 원리에서 배운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 어느누구도 이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세계는 어디서 출발하느냐, 출발 지점이 어디냐? 그것은 나에게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원칙은 뭐냐? 통일이라든가 하나라고 하는 것은 둘 이상에서부터 하나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나'라는 관념은, 물론 '나'라는 것을 중심삼고 볼 때는 '나'하게 되면 나를 중심삼고 생각하지만 '나'라고 하는 이 자체를 중심삼고 사방 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즉, 여러분을 두고 보면 여러 분은 친척 가운데, 나라 가운데, 세계 가운데 '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가 보통 말할 때, '나' 하게 되면 그런 관념 없이 그저 나로부터 출발해 가지고 나에게로 결과 되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자, 내가 나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반드시 여기에는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원인이 있고 그 다음에는 결과가 있다는 거예요. 내가 결과가 못 됐으면 결과를 향하는 과정이 되든가, 그런 입장에 머무는 것이 '나'입니다. 그러한 '나'라는 것을 우리는 자각해야 됩니다. 그러한 나라는 것을 자각해야 돼요.
'나'라는 것을 주장하게 될 때는, 나 자신이 두 사람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즉, 마음의 사람, 마음이 있다구요. 그 다음엔 몸이 있습니다. 자, '나'라고 하는 것은 마음과 몸이 갈라져 가지고 서로 싸우는 입장의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적으로 마음과 몸이 하나된 자리에서 나를 주장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본심입니다.
그러면, '나'라는 것이 이게 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이 우주에 목적이 있으면 우주의 목적이 변할 수 있느냐? 변할 수 없다는 거예요. 때문에 내가 가야 할 것은…. 나는 영원불변의 하나의 자기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변하는 것에서는 어느 것도 통일이 안 됩니다. 통일이 되었다가도 다깨져 나간다구요. 떨어져 나간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의 세계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영원성을 가려 잡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의 원칙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변하지 않는 나를 어디서부터 발견할 것이냐? 우리는 여기서 마음과 몸을 중심삼고 어떤 것이 변하지 않는 소성(素性)에 가까우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음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체를 세우는 데 있어서, 변하는 주체를 원하느냐, 변하지 않는 주체를 원하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변하지 않는 것을 주체로 하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본심의 욕구입니다. 좋으면 좋을수록 변하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 되는 거예요. 인간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을 갖다가 보물로 삼고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다 상징적인 표시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결론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은 나에게서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왜? 마음은 영원성에, 변하지 않는 입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 보다 가치적인 존재는 무엇이냐 하면, 마음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결정해도 여기에는 모순성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판서하시며) 여기에서 한 단계 올라가려면, 다른 단계로 올라가려면 전부 다 이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이와 같은 입장으로서 플러스가 됩니다. 이렇게 발전하는 거예요. 자,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에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이 플러스라구요. 그래서 이 플러스 앞에 이것이 플러스 돼서 하나될 수 있어요? 이게 뭐예요?「마이너스요」 그건 뭐냐면, 여러분의 마음을 중심삼고 몸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주의 주체면, 내가 하나의 플러스적 마음으로 주체가 돼가지고 '하나님' 하고 부르면 그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몸하고 하나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 할 때 '오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게 되면, 원수가 있으면 다 풀라고 했습니다. 몸하고 원수가 됐으면 마음으로 풀고…. 이 우주에서 원수가 맺히면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는 거예요. 걸리면 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참이 있으면 우주는 그 참의 움직임을 밀어 주고, 환영하고, 찬양하게 돼 있지 그것을 잡아당기게 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적인 원칙인데도 불구하고, 원수가 있으면 잡아당겨서 못 가게 한다는 거예요, 못 가게. 잡아당긴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플러스 자리가 중심의 자리인데 잡아당기면 중심이 어떻게 되느냐? 없어진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은 누구 때문에 하는 것이냐 하면, 원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하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몸이 하나 못 되면 어떻게 되느냐? 몸뚱이가 나를 잡아당긴다구요, 잡아당겨요.
여러분은 하나의 세계를 원해요?「예」 그것을 어디서부터 해야 된다구요. 「나에서부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원칙대로 해야 됩니다. 간단하다는 거예요. 간단하다구요.
지금까지 인류역사 가운데서 종교를 통해 수양이니 뭐니 하면서 모든 것을 바라 왔는데, 이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가운데서 이건 뭐 수양이니 인격이니 뭣이니 이렇게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욕망을 가져야 되겠어요. 안 가져야 되겠어요? 욕심을 가져야 되겠어요. 안 가져야 되겠어요?「가져야 됩니다」 인간은 욕망이라는 것을 반드시 가지고 있는데 원칙을 따르는 욕망은 하나님도 원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원하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좋은 욕망, 전부를 좋게 할 수 있는 그런 욕망이 뭐냐? 그것이 뭐냐 이거예요. 그것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나를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하는 원칙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우리 남자면 남자가 가야 할…. (판서하시며) 이것이 하나의 남자라구요. 그리고 이것이 여자라구요. 여자는 요 상대된다는 거예요, 입장이. 이것이 여자라구요. 이것은 마이너스라는 거예요. 그러면 보자구요. 여자 성격하고 남자 성격은 뭣이 다르냐? 여자는 남성적인 사람을 원하는 거예요, 남성적인 사람을. 그리고 남자는 여성적인 사람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다르다는 거예요. 자, 남자 같은 여자를 얻고 싶은 사람 있어요, 남자 같은 여자? 여자 같은 남자를 얻고 싶어요?(웃음) 손도 조그맣고, 털도 안 나고 여자 같고 말이예요. 전부 다 상대로 됐다구요, 상대로.
그것은 왜 그러냐? 자동적으로 합하기 위해서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여기서 보게 되면, (판서한 것을 가리키시며) 이렇게 보게 되면 말이예요. 이것은 안팎으로 하나입니다. 이렇게 하게 된다면 여자 남자 이렇기 때문에 이 성격은 이것을 원하고 이 성격은 이것을 원하기 때문에 하나 된다는 거라구요. 즉, 이것은 플러스 마이너스니까 하나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것하고 이것하고…. (웃음)
그건 무얼 말하느냐 하면 말이예요. (판서하시며) 이것이 하나되게 되면, 이 둘이 합하면 이것보다 강하지요? 이것보다도 강하고 이것보다도 강하다는 거예요. 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하나된 것은 플러스 자체보다도 강하고, 마이너스 자체보다도 강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예」그러니까 이것이 강하다는 거예요. 강한 것이 돼 가지고 여기에서 하나님과 같은 작용을 플러스 작용을, 주체적 작용을 여기서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주체가 된다는 거라구요. 이 둘이 합한 것이 주체가 되는 동시에, 주체가 되었으니 여기서부터…. 이것은 또 상대가 되기 때문에 이것과 또 합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이 전체가 합해져 가지고 하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의 이치예요, 마찬가지.
만일 하나님이 완전한 우주의 중심이라면, 이건 마이너스고 이건 플러스입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플러스도 있고, 마이 너스도 있고.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여기서 이 마이너스하고 플러스하고 합해 가지고 더 크니까 이것이 자꾸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가 통일할 수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 말이라는 것입니다. 요 원칙을 알겠어요?「예」
자,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과 몸뚱이가 완전히 하나될 수 없다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여기서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쉬운 일이예요? 그러면 어떡할 테예요? 몸뚱이하고 마음하고 하나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우리 마음에 몸뚱이를 하나 만들기 힘드니까 내 플러스 마이너스가…. 여기에 다른 사람의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거들랑, 내 마이너스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별수없이 다른 사람을 위하는 자리에 서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것이 제일 빠른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되기 시작하면 점점 말려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종교에서 주장하는 이 원칙을 따라가면 맞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고 봉사하라는 말도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왜? 자기 자체로는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 사람을 좋게 해 주면, 내가 전체를 위해 주면, 열 사람은 나에게 하나되는 거라구요. 예수님이 수건을 동여매고 열두 제자의 발을 씻어 준 놀음도 제자들에게 이 원칙을 실행하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남을 통해 가지고 하나 만드는 길이 빠르냐, 내 자체를 중심삼고 하나되는 길이 빠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나 자체를 통해서 하나될 수 있는 길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내 몸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남을 위하면 사탄이가 물러나야 되느냐? 이 문제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우주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서 넘어서면 사탄보다 낫다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사탄은 자기를 위합니다. 자기를 위한다는 거예요. 다르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내 몸뚱이의 사탄을 때려잡는 데 있어서 나 혼자는 힘들지만 남을 위하는 원칙을 갖고 나오게 되면, 이 우주의 원칙이, 창조의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야 할 사탄이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는 입장에 선 것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천리의 법도에 서기 때문에 남을 위하는 데서 사탄을 추방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 여러분은 이제 통일의 비법이 어떤 것이냐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법은 우주 어디에나 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공식이라는 거예요. 공식이라는 것은 지극히 작더라도 우주의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식입니다.
내 개인에 있어서도 그렇게 하면 사탄을 추방할 수 있고, 가정도 그렇게 하면 사탄을 추방할 수 있고, 종족도 그렇게 하면 사탄을 추방할 수 있고, 국가도 그렇게 하면 국가의 사탄을 추방할 수 있고, 세계도 그렇게 하면 세계의 사탄을 추방할 수 있고, 이 우주도 그렇게 하면 우주의 사탄을 추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아요?「예」
자, 그런가 한번 알아 보자구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친구 가운데 한 친구를 진정으로 위하게 되면 그 친구가 따라와요. 안 따라와요? 그래,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 한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여러분이 안 가게 되면 그때는 따라온다구요.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 주체가 되느냐? 그렇게 위함을 받는 사람이냐, 위하는 사람이냐? 위하는 사람이 누가 '고맙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위함 받는 사람이 머리를 숙인다구요, 머리를. 위함을 받는 사람이 그런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것은 뭐냐 하면, '당신은 주체요, 나는 상대입니다'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 한 마을의 반장을 뽑을 때에도 역시 그런 사람을 지지하지요. 자기를 위하는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는 사람을 지지한다구요.
여러분, 이 통일교회가 고질적인…. 잘못하다가는 통일교회 앞에 왕사탄이 생겨날 수 있는 위험성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 '통일교회에 먼저 들어온 사람은 아벨이고 나중에 들어온 가인이다'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구요. 그거 잘못이라구요. 통일교회에 들어오자마자 위해서 살면, 지금까지 위해서 살아왔으면 그 사람은 틀림없는 아벨입니 다,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자기 멋대로 살아 온 사람이 '아,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천만에! 그것은 안 됩니다. 가인 아벨을 알겠어요?「예」
또, 선생님이 지방의 지구장을 임명한다든가, 혹은 주 대표를 임명한다든가, 기동대장을 임명할 때, '어, 내가 아벨인데!' 이러면 안 된다는 거라구요. '나를 위하라, 나를 위하라!' 이런 사람이 아벨이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이 원칙을 알면 위해 주어야지, 위해 주고 자동적으로 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책임자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여기 지금 백일수련받는 사람들, 앞으로 지방에 나가서 개척자가 되고 어떤 중심적인 사명을 하겠다는 사람들인데 이런 관점에 있어서 걸리질 않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가 좋은 교회냐, 나쁜 교회냐를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이 공식으로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통일교회를 위해서 일한다 하는 것은 틀린 거라구요, 틀린 거.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겁니다.
만일 한 나라가 통일교회를 믿어서 통일교회가 그 나라의 국교가 됐다면, 그 나라는 '우리 나라를 위한 통일교회 사상이 아니라 세계를 위한 통일교회 사상으로 우리 나라는 성립됐다'이러면 된다는 것입니다.
요 원칙을 통해서…. 개인에서 가정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과정이 전부 다 연결되어 있으면 이 과정은 공식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세계까지 전부 다 이런 공식을 통해서 올라간다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세계의 통일을 위하여 살고 싶으냐, 내 개인의 통일을 위하여 살고 싶으냐고 묻게 되면, 여러분은 '아, 세계를 위하여 살고 싶지요' 하고 대답한다는 거예요. 욕심들이 많다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가 사는 것은 내 가정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요,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요, 세계를 위해서 사는 것이라는 그말이 딱 성립되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들, 그렇게 살고 싶어요?「예」 그러려면, 세계를 위해 살려면 못해도….
예수님이 세운 열두 제자는 세계 국가의 대표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13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요? 나는 좋아한다구요, 난 좋아한다구. (웃음) 열 둘을 중심삼아 가지고 원형으로 보게 되면 알게 됩니다, 원형으로. 이것은 열둘이라구요. (판서하시며) 하나 둘 셋…. 열 하나 열 둘, 이래 가지고 요 중앙 수를 열 셋으로 잡는다는 거예요. 직선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래도 싫어요?「좋습니다」 이것이 원칙이예요. 이것이 원칙이라구요. 이것들은 전부 다 위해서, 이것들은 전부다 하나돼야 되는 거라구요. 이것이 이상이라구요, 이게. 이게 목적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열두 제자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 제자 보고 '해라 해라' 했어요, 예수가 먼저 했어요? 어느 거예요?「예수님이 먼저…」왜? 우주의 원칙에 갖다 맞춰야 되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그 놀음해 가지고, 그 다음에 이것이 하나돼 가지고 이리로 간다는 거예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주의 발전이 있는 거라구요. 이것이 하나돼야만 발전한다구요. 하나 못 되면 다 떨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다 떨어져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렇게 가 가지고 요것을 전부 다 하나 만들어야 된다구요. 이것을 절기로, 동서남북으로 말하면, 사방에 열두 개, 정월, 이월, 삼월이고 춘하추동이라는 겁니다. 춘하추동이,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 일년이 되려면, 열두 달이 하나돼야 되는 거라구요. 이것은 뗄 수 없는 것입니다. 전부 다 땔 수 없다구요. 성경에 보면 열두 진주문이 나오지요? 천국은 이 열두 진주문을 통해서 들어간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그러므로 이 세계 기독교를 중심삼고 열두 나라만 하나로 만들면 세계는 자동적으로 하나된다는 거예요. 세 나라만 하나되면 거기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세 나라만 하나되면 열두 나라가 하나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제자를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도 이 원칙을 따라가자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하나의 자기 민족을 중심삼고 열두 제자를 삼으려 했지만 앞으로의 이상시대에는 열두 나라의 대표를 세울 수 있는 생활적인 기준을 평면화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이와 같이 예수를 중심삼은 열두 나라의 대표가 하나되면 세계는 하나된다는 거예요.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이 아까 내 물음에 대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만들 것이냐를 여기서 생각해 보자구요. 여기서 문제는 열두 나라 사람을 위해서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판서하심) 대표적으로 열두 사람을. 열두 나라 사람을 위해서 내가 생명을 바쳐 희생할 수 있다 하는 사람은 이 세계를 하나 만드는 데 있어서 원칙적인 기준의 주체로 설 수 있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거라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여기 미국 안에서, 요 미국 사람들…. 이 미국을 가만히 보면, 미국민은 혼합 민족이라구요. 열두 나라 이상의 사람이 다 모인 곳입니다. 120개 국가 이상적인 나라 사람이 모여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서로 위해서 사는 나라라면 이 나라는 이상의 나라라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그 이상 바랄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 이상 바랄 나라가 없다구요. 여기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아닙니다」 무슨 흑백문제니, 유태인은 유태인대로 별의별…. 전부 다 따로따로 갈래갈래가 돼서 이러고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만일에 이 나라 국민들이 우리 통일사상만 전부 다 가지고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하고, 그것이 짧은 일생뿐만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까지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을 안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러고 싶어요?「예」그건 알았는데 진짜 할래요? 진짜 그렇게 할래요?「예」그러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자인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그것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총각들은 열두 나라의 처녀 가운데서 그저 좋은 나라 선진국 처녀도 오케이, 황인종도 오케이, 백인으로서 니그로도 오케이, 이렇게 '어디라도 좋다'라고 할 수 있으면 넘어간다는 거예요. 상대를 찾는 데 있어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다구요. 그러면 간단한 거예요.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떤 나라의 어떤 남자라도 좋다'고 생각해야 된다구요.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수록하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