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모인 사람들은 통일교회의 교인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 온 세계 사람들이,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다. 민족을 초월하고 국경을 넘어 통일된 이념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참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주인공을 모시고 천지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 다 같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역사적인 노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던 것이고, 현실의 우리들에게도 간절한 소망으로 남아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바라는 것이 통일인데, 어떻게 해야 통일이 될 것이냐?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 마을을 지배하는 데에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주먹만 세면 그 마을을 지배할 수 있었어요. 그런 시대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돈이 지배를 했어요. 돈이 있으면 돈을 가지고 세도를 부리면서 그 마을을 움직여 왔어요. 요즘에 와서는 권세를 가지면 어느 지역을 움직인다든가, 혹은 국가를 움직인다든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움직이는 방편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해 왔습니다.
더우기나 이때에 와서는 주의와 사상, 무슨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주의와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들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 주의가 좋으니 다 그리로 들어가야 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주의가 이제는 민주와 공산이라는 두 주의로 남아진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에 온 세계 인류는 끼여 있는 거예요. 인간들이 바라는 주의나 이념은 두 갈래로 갈라져서는 통일이 안 됩니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무슨 주의니 하면서 서로서로 적대시하는 입장에 서 가지고는 통일된 세계가 되지 않아요.
오늘날 전세계 인류는 공산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민주국가에 있는 사람들이나 너나할 것 없이 하나의 세계를 바라고 있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주의보다도 더 좋고 더 멋지고, 인류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게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 수 있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현실의 주의보다도 더 멋진 주의가 나온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주의를 버리고, 현실의 주의를 버리고 그 높은 이념의 주의를 따라갈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천지를 통틀어 보게 될 때,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간들이 이 세계를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 역사노정에는 성인현철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종교를 지도하던 대표자도 있었습니다. 불교라든가, 유교라든가, 회회교라든가, 기독교라든가 그 모든 정신적인 분야를 중심삼아 가지고 지도하던 분들이 많이 왔다 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정신적인 이념을 가진 종교를 기반으로 하여서도 세계를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잘났다 하는 사람이 나와서 하나의 세계를 꿈꾸고 만민을 선의 이념세계로 인도하기를 바랐지만 그것이 아직까지 가능하지 못한 입장에 처해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 편에서 우리 인간들이 어떠한 구상과 어떠한 계획과 어떠한 사상 체계를 세운 이념을 세워 가지고 이 세계 만민을 규합할 수 있겠느냐?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사람의 머리를 통하여 짜낸, 지식을 통한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이 세계 만민과 하늘땅을 통일시킬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절대적인 주인공이 계셔서, 이 주인공이 과거·현재·미래의 수많은 인류 앞에 '이것이야말로 과거에도 원했고, 현재도 원하고, 미래에도 원하는 하나의 주의와 하나의 이념이다'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상이라든가 주의를 내세운다면 모르거니와 현하의 인간들로서 꾸며진 어떤 주의 사상을 가지고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될 때, 만일에 절대적인 하나님이 있다 하면 그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인간 세상을 그냥 그대로 이렇게, 될 대로 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 보기만 하는 입장에서 나왔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당신이 구상하시는 선한 목적의 세계로 이끌기 위하여 우리 인간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 인간의 마음을 수습하여 하나의 세계권 내로 몰아넣기 위한 섭리를, 혹은 역사를 하고 계시느냐? 인간들은 모르고 있지만 배후에서 하늘이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종교를 믿는 우리들은 대략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역사를 해온 분은 절대적인 분인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던고? 이것이 제일 중요한 난문제인 것입니다. 천지를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고,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역사를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절대자인 그분이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아직까지 왜 세계인류를 통일하지 못하였느냐? 기필코 절대적인 하나님이 계셔 가지고 통일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을 것이나 그렇게 안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당초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통일시키기를 바랐지만 통일시킬 수 없는 곡절의 그 무엇이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곡절이 무엇이냐?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오늘날 인간들의 사명이요, 이 곡절을 해결하는 것이 종교인의 책임인데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종교인, 혹은 수많은 철학자 등 누구를 막론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자기 멋대로 제각기의 주장을 하면서 현하(現下)의 세계까지 끌고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통일시키지 못하는 곡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서 해결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하나님편에서 보는 인간세계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예요? 하나님편에서 볼 때 이 세계가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되어 나오고, 이 세계를 통일시키지 못한 것은 이러한 곡절이 있다 하는, 하나님편에서 보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절대적인 분이라면 왜 하지 못하느냐?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존재가 있다든가, 혹은 할 수 없는 반대적인 요건이 있다든가 하면 그것이 무엇이냐?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는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다음에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고자 섭리하더라도 할 수 없게 하는 반대적인 요소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바라는 목적이 달라서는 안 돼요. 하나님은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데 인간은 저렇게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요, 인류가 바라는 것도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공동 목적기준이 무엇이냐? 이러한 문제를 아는 것이 통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면….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 세계를 통일하지 못하신 것을 바라볼 때 여기에는 어떠한 곡절의 내용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모르는 한 이 세계를 통일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며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바라시는 목적이 무엇이며,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인류가 바라는 목적은 무엇이냐? 그 목적이 달라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라는 목적이 내가 바라는 목적이요, 인류가 바라는 목적이어야 됩니다. 그 목적이 일치되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땅 위의 인간들은 막연하게나마 선을 모방하고, 참 것을 모방하고, 옳은 것을 모방하여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심을 가진 사람은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악한 것을 다 싫어합니다. 자기 자신이 비록 악한 자리에 처해 있어서 벌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도 본심에 들어가서는 악을 싫어한다는 거예요. 환경에 몰려서 그런 행동은 했을망정 그 진실된 본심에서는 악은 누구나 싫어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한 사람은 몰론이고 악한 사람도 역시 선을 바라고 옳은 것을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선한 세상을 빨리 이루지 못하고, 악한 것을 빨리 제거하지 못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나와 가지고 선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선을 높이고 악은 때려눕히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종교의 사명이 이것이예요. 악한 인연 가운데서 악이 침범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선을 높은 기준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종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물론 종교의 사명도 그러하지만,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그런 행동과 생활의 틀을 세워 가지고 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 나온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끊김)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 편에서 이 세계를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실들을 우리들은 순식간에 알 수 있습니다. 평면적으로 이 세계를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보는 이 평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의 세계를 지향할 수 있는 시대적인 종말이 가까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이 끝날에 있어서 이 세계를 기필코 하나의 세계로 만드시려 할 텐데, 어떠한 이상적인 내용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만드실 것이냐? 기독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불교의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혹은 이 땅에 정착해 있는 수많은 종파의 어떤 이념을 중심삼고 만드실 것이냐? 그런 걸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예요. 유교나 불교나 기독교를 막론하고 현하에 있는 종파의 이념을 가지고는 세계를 통일시키지 못합니다. 통일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다는 것입니다. 못 한다는 거예요. 더더욱 고차적인 것, 이념적으로 더더욱 고차적인 이념이 필요한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 이념이 어디로부터 와야 하느냐?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되고, 그 이념은 영원불변 길이길이 양심을 가진 선한 사람일수록 그 이념을 내 이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념이어야 됩니다. 양심을 지향하여 따라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그 이념에 접하게 될 때 그 이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기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다도 더 두려워할 수 있는 그러한 이념이어야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구원섭리를 해오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이끌어 가지고 선한 사람을 만들고, 선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선한 가정을 만들고, 선한 가정을 만들어서는 선한 사회를 만들고, 선한 사회를 만들어서는 선한 국가, 선한 세계, 선한 하늘땅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거꾸로 올라가더라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오늘날 세계적인 4대 종교라고 일컬어지는 그런 종교의 지도자들도 맨 처음에 출발할 때는 혼자였어요. 당시를 대표하여 진리에 입각한 선의 주체로 나타나 가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 '나를 따라오라' 한 자체를 중심삼고 개인을 선화시키는 운동을 하였고, 가정을 선화(善化)시키는 운동을 하였고, 민족과 국가를 거쳐 가지고 세계적인 발판을 형성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선의 기준을 절대적인 선의 주체로 알아야 될 것이냐, 아니면 시대성을 띤, 즉 상대적으로 선한 가치를 가진 것으로 알아야 될 것이냐? 절대적인 주체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크나큰 선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 먼 거리를 두고 구원섭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선한 세계로 끌어가려니, 구원섭리를 하려니 모든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겁니다. 몇천 년 혹은 몇백 년의 세기를 거쳐 역사가 진행되어 오면서 악한 인생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를 세워 가지고 몇천 년 혹은 몇백 년 섭리하기 위한 몇천 년, 혹은 몇백 년 한계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 나라면 나라, 지역이면 지역, 그 분야면 분야에 속할 수 있게끔 해서 도라든가 선한 후예를 세워 주창하게 해서 환경권에 있는 사람들을 규합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규합되면 여기서 더 높은 선한 이념을 세워서 끌어올려 가지고 점차적인 발전을 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수많은 국가를 중심삼고 주의 사상의 대결을 볼 수 있는 종말시대에 왔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는 자기의 종교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필코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그것만 주장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들이 믿고 있는 종교가 어느 시대에서부터 어느 시대까지 하나님이 이 땅 위의 악한 인생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합하게 하기 위하여, 선에 속하게 하기 위하여 세웠던 종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주의면 주의 사상이면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산주의이면 공산주의, 민주주의이면 민주주의라는 이 주의도 정치적인 발전노정에 있어서 어느 한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종교라고 하면 무턱대고 다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종교에도 급이 있어요. 1급, 2급, 3급, 급이 있는 거예요. 몇천 년 전까지의 사명을 띠고 나왔던 종교로서 그 사명이 끝났는데도 그 종교를 붙들고 나오는 구성체가 세계에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유대교 같은 것은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의 사명은 일단락 완결된 거예요. 완료된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종교의 틀거리는 남아 있다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이 이 땅 위에 선한 지도자를 세울 때 몇 세대, 혹은 몇백 년, 몇천 년 그런 천운을 짊어지워 가지고 보냈다는 거예요. 그런 지도자를 보냈으면 그 지도자가 어느때까지 자기의 사명이 끝나느냐 하는 것을 그를 믿는 종교인들,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모르더라 이겁니다. 그러나 천상에서 도(道)를 내보내게 될 때 어느때까지 그것의 사명이 끝난다 하는 것을, 책임을 짊어지고 이 땅 위에 보내신 그 주인공만은 압니다. 그럴 것 아니예요?
예수면 예수가 이 땅에 올 때 자기 마음대로 왔다면 그 마음대로 온 그분이 주장하는 이념을 가지고 세계를 움직였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거기에는 선한 하늘의 어떠한 인연을 갖추고 왔기 때문에 그 인연을 갖춘 비례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예요. 그 천적인 인연을 세우기 위해서 역사는 발전하기 때문에 그 발전하는 역사권 내에 있는 인간들은 그 종교에 들어가 가지고 신봉하게 되어 있지, 그것이 끝나게 되면 그다음에는 부패하는 거예요.
오늘날 철학도 장담할 수 없어요. 유심 철학, 유물 철학, 그리고 요즘에 와서는 실존 철학, 인간을 재검토하는 실존 철학, 이러한 철학을 중심삼고 부딪쳐 가지고 허덕이고 있습니다.
또, 주의 사상도 이제 막바지에 왔어요. 민주주의만 가지고는 안 돼요. 돈을 가지고 마음대로 자기의 모든 욕망을 좌우할 수 있는 주의 가지고는 안 돼요. 그건 인간의 양심으로 요구하는 그런 동기에 이탈된 노선이라는 거예요. 공산주의 가지고도 안 돼요. 세계 제패를 꿈꾸고 있는 공산주의, 그들은 국제 공산당을 중심삼아 가지고 프롤레타리아, 즉 말하자면 노동자 농민을 위주로 한 주권을 세워 하나의 평화세계를 건설한다고 하고 있지만 그러한 주의들도 갈라져 가지고…. 멀지 않아 갈라져 가지고 총칼을 들고 싸우는 날에는 세계는 마지막이 된다고 나는 보는 거예요. 불원간 싸우게 될 거예요.
오늘날 철학도 그러하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불교, 유교, 기독교 이것들이 묘하게도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일시에 문제가 되었어요. 그거 참 이상하지요? 이것들이 한꺼번에 문제되고 있습니다, 대처승이니 비구승이니, 장로니 목사니 해 가지고 말입니다. 세계적인 대종교가 이 나라 이 강토에 들어와 가지고 지금 이때에 비참한 파괴상을 전개시키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냐? 인간들은 모르고 있지만 천륜의 그 뭔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보게 될 때,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배후에서 역사적인 공헌을 해 나오던 종교도 이제는 믿을 수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은 그러한 주의 사상에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고 있어요. 철학이면 철학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고 있고, 종교면 종교에 있어서 인간을 빼내려고 하고 있어요. 거기에 그냥 붙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인간 편에서 보게 되면 그게 다 부패해 가지고 망하기 위해서 맨 말단에 처해서 할 수없이 전부 다 후퇴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류 역사를 지배하는 어떠한 절대자가 계시면 그 절대자의 경륜이 있어서 그런다고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불교만 가지고 안 돼요. 유교만 가지고도 안 돼요. 인간을 앞잡이로 세워 가지고 조종해 나오는 어떤 주의 사상 가지고는, 어떤 종교 이념 가지고는 세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할 수 없어요. 이렇게 전부가 다 길이 막혀 있으니 참된 불교인이 고대하고, 참된 기독교인도 고대하고, 참된 철학인도 고대하고, 참된 주의 사상가들도 고대하는 하나의 이념, 사회, 국가, 세계, 천하를 통일시킬 수 있는 하나의 이상이 나와야 된다 그 말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가 하나님이라 해도 그럴 것 같아요. 하나님이 틀림없이 계시다면 그런 구상과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은 본래 좀 좋은 길이다 하게 되면 끝까지 가서야 돌아서지 그냥은 안 돌아서요. 그렇기 때문에 좋다는 노정을 통하여 나오는 길은 끝에 가서야 해결이 나는 겁니다.
따라서 오늘날 도를 중심삼고 볼 때 불교, 유교, 극동 종교, 기독교, 이러한 세계의 4대 종교는 양심을 중심삼고, 인간이 바라는 소망의 길을 개척하여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나왔기 때문에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게 기뻐 가지고 좋은 일면을 따라 나왔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끝에 가서 해결되기 때문에 자기 조상들이 받들어 나오던 종교를 그 후손들이 순종하면서 역사의 뜻과 더불어 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적인 산물이 지금의 세계 정치노선이기 때문에, 아무리 둘러봐야 갈 수 없는 최종단에 와 가지고 딱 부딪치게 될 때 거기서 새로운 무엇을 찾아야 합니다.
서양사를 보면 16세기 초기에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해 버렸습니다.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추방하는 데 공로를 세웠을지 모르지만, 오늘에 와서는 다시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전세계의 인간들이 세계적인 지도자를 만나 그 지도자의 지도를 받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 다니는 때입니다.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참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이면 간절한 사람일수록, 세계에 잘났다는 사람일수록 인류가 바라는 공동적인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고 그것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 할진대는 그와 관계맺으려고 하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민족주의적인 시대는 지나갔어요. 종파주의적인 시대도 지나갔어요. 불교니 유교니 뭐 어떠한 자기 종교를 주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만일 그렇게 주장하다가는 앞으로…. 우리 통일교회가 조금만 더 발판이 닦아진다면 그야말로 국제종교연합을 만들고 싶어요. 이제는 종파주의에 처해 있는 것은 자동적으로 전부 다…. 이런 운동은 할 수 있다구요. 그건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상하지요? '내가 좋다' 하면, 내가 좋은 것이 있으면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도 여기에 못 들어옵니다. 큰일납니다' 그래요? 여러분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은 좋은 데는 참석하지 못한다' 그래요? 진정 좋은 것은 만민의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참된 선이라는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니예요. 그것은 역사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이란 것은, 진정 좋은 것이라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하나 물어 봅시다.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예요? 어떤 사람은 '우리 부모다'라고 할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제일 좋은 것이 뭐예요? 남자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인 부인이고, 여자에게는 남편이고, 부모에게는 자식이다 이거예요. 물론 부모도 좋고, 자식도 좋고, 처도 좋고 다 좋되 우리들이 진정 좋은 것은 그들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예요. 아버지면 아버지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요, 부부면 부부, 자식이면 자식 그 자체의 몸뚱이가 필요해서 좋은 것이 아니예요. 무엇 때문이냐? 부모면 부모, 처자면 처자와의 엉클어진 사랑, 그 사랑이 참이기 때문에 좋은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랑이 여러분의 것이예요?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모의 사랑은, '아, 우리 아버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은 나만 사랑하는 사랑이야. 만민이 끼어서는 안 돼' 하는 레테르가 붙었어요? '내가 처자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내 사랑이니 다른 사람이 끼어선 안 돼' 그래요?
인간에게 제일 필요한 참된 기준으로 나타난 사랑은 참이기 때문에 참일수록 공적인 것이예요. 역사의 흐름이 이것을 침범하지 못해요. 역사적인 어떠한 악도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이예요. 역사적인 살인강도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침범할 수 있어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은 내 것이 아니예요. 영원불변한 공동 소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생각해 봤어요? 어떤 사람을 보면 '나는 부모가 없어서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으니 슬픈 존재다' 합니다. 왜 슬퍼요? 왜 슬프냐 이거예요. 그것은 공적인 이념세계와 참의 인연을 맺어야 할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된 우주세계에서 참의 인연을 맺어야 자기 가치가 참된 우주세계에서 존재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요, 그것이 천리의 원칙인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 슬프다는 거예요. 자기는 천리의 원칙을 기반으로 하여 살아야 할 인생인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요건들이 전부 다 제거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천운이 움직이는 참된 표본에 부합되는 요소를 결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이 우주 대존재권 내에 존재하기에 결함이 있는 위치에 서 있는 연고로 슬픔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역사도 마음대로 못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투쟁과정을 거쳐 가지고 발전해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문제를 걸어 놓고 혁명을 일으킨 왕조가 어디 있었으며, 역사상에 영웅열사가 있었느냐? '나는 당신의 자식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부정의 팻말을 박고 낙인을 찍어도 그것이 인정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아버지가 공인하고 자식도 '그렇다' 하는 여기에는 침범을 받지 않는 것이요, 침범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혁명의 운세나 혁명의 사조와는 무관한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참된 것이요, 공동 소유의 물건이예요.
그러면 공동 소유라 했으니 인간들만 소유할 수 있는 공동권 내의 소유물이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도 역시 필요로 하는 것이라야 된다 이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그렇기 때문에 참의 주인공이 누구냐? 참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예요. 참 자체의 주인공이 누구여야 되겠느냐? 그보다 더 높은 참의 존재가 아니고는 주인공이 되지 못해요.
두 사람이 있다고 할 때, 한 사람은 종이고 한 사람은 주인이라고 합시다. 주인과 종은 무엇이 다르냐? 그건 과거도 다르고 현재도 다르다는 거예요. 출발점이 달라요. 그리고 지니고 있는 속성이 달라요. 세상에서도 그렇지요?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주종관계가 벌어진다 이거예요. 그것은 무엇 때문이냐? 더 높을 수 있는, 즉 가치적인 모든, 외적이라든가 내적이라든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할 수 있는 내정에 있어서 그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중심삼고 주종관계를 세울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도 역시 참의 주인공이고, 오늘날 인생이 바라고 있는 그 참이 지배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 있다 할진대는 그 참의 주인공의 참보다 더 높은 참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 참의 주인공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붙여야 할 것이냐? 하나님이라든가, 갓(God)이라든가, 가미사마(かみさま)라든가 하는 명사를 붙였는데, 그 명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인간이 제일 찾고 있는 최고의 참, 만민이 고대하는 최고의 참이 무엇이예요? 떡이예요? 돈 보따리예요? 아니예요. 권세예요? 아니예요. 지식이예요? 아니예요. 전부 다 아니예요. 이 땅 위의 인간들이 흔히 '지식이면 된다. 권세면 된다. 돈이면 된다'라고 하지요? 이것이 인간이 바라는 3대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돈은 돈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지식은 지식으로서 끝나는 것이요, 권세는 권세로서 끝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영원한 공동적인 참의 실체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계적인 권내의 일방향성을 갖고 있는 그 한계 내에서만 인정이 되지, 사방성을 넘고 입체성을 넘어 가지고는 적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우리의 양심세계를 관찰해 볼 때, 돈 가지고는 참다운 사람을 찾을 수도 없으며, 참다운 사람을 만들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권세 가지고도 그렇다구요. 지식 가지고도 안 돼요.
그러면 인생이 바라는 최고의 참의 중심은 어디냐? 인간에게 외적인 것을 제거해 놓고 보면 내적인 양심이 있어요. 그 양심을 해부해 보면 지(知)·정(情)·의(意)가 있어요. 그래 마음의 소성을 그 지·정·의로 말하고 있는데 그 중심이 지식일 것이냐? 지식일 게 뭐예요? 지식 가지고 행복해요? 지식을 통해서 역사 발전과 사회 발전을 꾀하여 왔습니다. 또, 지식을 통하여 이념세계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식을 통해서 인간의 행복를 소개해 주지 못했고, 이념이 인간의 행복을 소개해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에게 참다운 행복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심정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심정이라는 것은 과거역사를 살펴봐도 통하는 것이요, 현재를 살펴봐도 통하는 것이요, 미래를 살펴봐도 역시 통하는 것입니다. 출발과 더불어 처음과 나중이 거침없이 통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심정밖에 없습니다.
참이란 것은 시작과 끝이 같아야 됩니다. 오늘날 무슨 불교니 기독교니 뭣이니 뭣이니 하는 이런 건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에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만이예요. 이러한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평화도 심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나타날 때 대우주는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요, 그런 심정에 사무쳐 천하를 대하여 나타나게 될 때는 천하는 내 마음속에서 놀아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생이 찾아야 할 것은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어떠한 주의 사상도 아니예요. 그런 건 다 지나가는 거예요. 하늘이 바라고 있고, 땅 위의 인간들이 바라는 통일의 국가, 세계를 무엇으로 이룰 것이냐? 인간들의 지식을 통해 가지고 될 것이냐? 안 돼요. 무슨 주의와 사상으로 될 것이냐? 안 됩니다. 단지 심정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날 어떠한 주권자가 이 땅 위에 나온다고 하면 그 주권자는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을 대하기를 자기 아들딸보다 더 값지고 가치있는 자로 대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주권자, 그런 주의가 나와야 됩니다.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온다면 그 지도자는 세계 만민을 국경을 초월하여 차별없이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에 널려 있는 무수한 국가들에 대하여 역사적인 전통이니, 현실적인 사회제도니 하는 것 등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지구성의 수많은 인류를 한 가정에서 기르고 있는 자식들보다도, 현재 이 악한 세상에서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보고 있는 그 자식들보다도 더 귀하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이념세계가 오면 그 세계의 지도자는 현하의 우리 인간들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도 한 단계 더 높은 심정을 가지고 만민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고, 지금 인간들이 귀하게 보는 것보다 더 귀하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주의만 나오면 천하는 통일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오늘날은 어떠하냐? 서로가 중상 모략하고, 남의 등을 찌르고, 코를 까고서라도 타고 앉아서 자기가 지배하겠다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세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인간들의 모양은 외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과정에 머물러 있지만 혼자서 부딪치기에는 너무나 지긋지긋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기말적인 시대가 기필코 지나가야 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인간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있으며, 하나님도 통일된 세계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아까 말했습니다. 통일된 세계를 바라는 목적은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물론 사랑으로 합니다. 사랑으로 할 것이어늘 6천 년의 기나긴 역사를 거쳐오면서 왜 뜻을 이루지 못하였느냐? 하나님도 사랑하고 싶은 분이요 인간도 사랑받고 싶은 존재인데, 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왜 사랑을 못 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 못 했느냐? 그 이유는 인간 앞에도 원수가 있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도 원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할 것이고, 인간도 사랑을 중심삼고 통일될 것은 아는데 왜 못 했느냐? 사랑할래야 할 수 없는 원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이 원수란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곡절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사랑을 하려면 원수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고,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곡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러한 곡절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가려면 걸리고 오려면 멈추게 하는 원수의 주권이 있다는 거예요. 신령한 기도를 한 사람은 잘 알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이라든가, 불교에서 말하는 마귀라든가 하는 그 무엇이 있단 말이예요.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예요.
하나님도 사랑을 가지고야 통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모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심정의 도수보다도 3배만 강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만민을 상대해 봐요. 현세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갖는 사랑의 심정 기준만 갖는다고 해도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 것이거늘 만약에 그 부모들 앞에 하늘이 3배 이상의 사랑을 부어 준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당장에 불벼락을 내려 형태도 없어지게끔 옥살박살내도 시원치 않은 악한 무리들이 언제 선하게 되느냐 말이예요. 이것이 문제라구요. 형무소에 가 보면 살인 강도가 많아요. 여러분 살인 강도가 뭐예요? 세상에서는 악에 대해 말할 때 그런 명사를 갖다 붙이는 거예요.
오늘날 아무리 악한 사람이 많다 하더라도 그 악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 여러분들 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기 처음 온 사람이 있겠지만 말씀을 들어 두면 나쁘지 않을 거예요.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해도 악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선을 바라는 마음은 어느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선생님이 형무소에서 살인 강도와 끼여서 살아도 보았지만, 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백지장 하나 차이도 안 납니다. 그들에게 심정을 찔러 얘기하면 그들도 눈물을 흘려요. 조그만 감방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사리에 어긋나는 것을 보면 '이 자식아!' 하고 팰 때가 있거든요. 그걸 볼 때는 살인 강도를 한 사람도 '아, 시원하다'라고 하거든요. 이러한 것을 볼 때에 선을 위주로 해서 선을 세울 줄 아는 의리들이 있다 이거예요. 그걸 보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양심 작용의 십 배 정도 펌푸질하면 얼마나 선해지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런 놀음 하지, 안 하겠어요?
여러분, 그런 것 생각해 봤어요? 현재 선을 주장하는 충족된 본심의 작용력보다 2배, 3배, 4배, 5배의 가중적인 선을 보충시킬 수 있는 인간의 원천이 없다면 모르되 있다면 왜 못 하겠어요?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모르되 계시다면 왜 못 해요? 왜 못 하느냐? 못 하는 곡절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하려면 원수의 문을 통과해야 돼요. 알겠어요?
하나님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가야 되고, 인간도 원수의 문을 통해서 하늘 앞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 닦는 사람들이 산중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면 반드시 원치 않는 자가 나타나서 '이놈아, 네가 무슨 도를 닦아?' 하면서 시험을 합니다. 도 닦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와서 '이리 나와' 하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도 원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 만들 수 없어요. 원수권 내를 지나가지 않고는 하나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을 내세우든가, 혹은 그것을 가지고 가든가 하면 원수들이 그걸 빼앗으려고 합니다. 원수들이 그걸 침범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어려운 때에 통일을 다 바라는데 통일하는 데는 무엇으로 해야 하느냐? 천정(天情)으로만 통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지방에 오면 아가씨들에게 언제나 하는 말이…. 욕하지 마소, 내 욕 한번 할께요. 괜찮아요? 「예」 '이 자식! 너 저 아프리카 껌둥이한테 시집가라면 갈래?' 한다구요. (웃음)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 통과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은 심정의 세계를 통하여 천하가 공히 통일될 수 있는 그러한 지구 위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할 때는, 민족적인 한계선을 넘어서라,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하는 한계선을 넘어서라, 지식이 많다고 하는데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라! 빈부, 귀천의 한계를 넘어서라, 잘나고 못났다는 그 한계선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인간들이 좋다고 만들어 놓은 것을 전부 다 부정해라 이거예요. 왜? 여러분이 기가 막히다 이 말이예요.
옛날에 말이예요, 어떤 녀석이 있었는데…. 이게 은덩이라고 합시다. 처음에는 쇠짜박지밖에 모르던 녀석이 은을 봤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기분이 좋아 가지고 입을 벌리고 '하! 하나님께서…' 이러면서 집어 넣는 거예요. 여러분 마음이 그렇지 않소? 안 그래요? 그거 그런 거예요. 늙은이나 젊은이나 아기나 마찬가지예요.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싶은 마음은 다 마찬가지예요. 학자도 마찬가지요,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이 오늘 대구에 찾아와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근사하고 훌륭한 것 같지만 선생님도 마찬가지예요. 선생님도 마찬가지란 말이예요. 젊은 아가씨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아이구, 더 더 더…' 하는 것이 죄예요? 그게 왜 죄예요? 지금까지 죄로 보였으니 죄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이상하잖아요? 내 본심이 그런데 현재는 왜 그걸 죄로 취급하느냐? 그런 곡절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만민이 서로서로가 받으려고 하는데 받겠다고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구요. 원래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더 큰 참, 천하보다 더 큰 참을 받기 위해서는 천하보다 더 큰 그릇을 마련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예」참은 천하에 꽉 충만해 있어요.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영원한 참은 천지에 꽉 들어차 있나니 그 참을 받으려면 참된 그릇을 크게 마련하라 이거예요. 알겠어요?
인간들이 출세하려 하는데 있어서 목적하는 것에 대한 사용법이 틀려져 가지고,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지금 쓰고 있는 마음으로서의 욕망이니 야망이니 하는 것은 나쁜 거예요. 그릇은 요만한테 이 많은 것을 넣겠다고 한다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요만큼도 못 가질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별의별 모략 중상으로 남을 잡아먹기 위해서 야단하던 녀석들 몇 해 동안 대통령 하다가 어떻게 돼요? 다리가 들려서 꺼꾸로 처박혀 가지고 모가지가 땅으로 떨어지지요? 그릇에 담을 수 있어요? 치여 죽어요!
돈은 왜 생겼느냐? 인간은 만민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어요. 만세주의요, 만민주의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만민주의요, 만세주의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한계선을 넘어서 심정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아기를 키우는 부모가 됐거들랑 그 아들딸을 자기 아들딸로만 보지 말라는 거예요. 세계적인 아들딸로 키우라는 것입니다. 형제가 있거든 그 형제도 세계적인 형제로 보라는 거예요. 여러분 형제라고 해서 얼굴이 전부 다 똑같아요? 같지 않지요? 어떤 사람은 코가 높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여기가 나온 사람이 있고, 별의별 놈이 다 있다는 거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지금 점심때인데 점심 줄래요, 안 줄래요? 기차 타고 손님으로 이렇게 왔는데 점심 줄래요, 안 줄래요? (웃음) 난 손님이예요. 주인 양반들 줄래요, 안 줄래요? 점심 줄래요, 안 줄래요? 「드리겠습니다」 주겠어요? 「예」 정말이예요? 「예」 빵 한 조각을 주어도 주는 건 주는 것이지요, 잘 주건 못 주건 주는 것이니까. 주긴 주겠구만요. (웃음) 보라구요. 조금만 스톱하게 되면 점심 먹어야지요. 점심은 한 10분이면 먹을까요? 「5분이면 먹습니다」 5분이면 먹어요? (웃음) 5분은 무슨 5분이예요. 1분에라도 먹으려면 먹지요. (웃음) 통일교회 교인들은 빨리 먹고 전도하는 패들입니다. 바쁜데 언제 앉아 가지고 뭐가 뭍는다고 혓바닥 내밀고 도사려 가면서 먹겠어요, 시대가 바쁜데?
나도 바쁘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바쁜 양반이니 빨리 바쁘게 처리하고 바쁘게 행동을 하고 싶단 말이예요. 빨리빨리 하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알아듣기만 하면 한숨에 백 마디씩 하고 싶어요. 동서남북으로부터 전부 다 한 10분 동안 모두 얘기해 버리면 좋겠단 말이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되어 있지 않거든요? 여러분의 귀가 그렇게 많이 들을 수 없게 되어 있고, 선생님의 귀도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요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지루하지만 어떻게 하겠어요? 지루하지만 여러분이 찾아왔으니 말씀해 주고, 또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괜찮아요?「예」노인네들 괜찮습니까?「예」
말 꼬리를 잃어버렸어요. 무슨 말을 했었나요? 「참을 꽉채워서…」 그래요. 그럼 참이 꽉차 있는 거 보여요? (웃음) 참은 꽉차 있어요. 밤에도 차 있고 낮에도 차 있고, 어제·오늘·내일, 과거·현재·미래에도 꽉차 있다는 거예요. 꽉차 있는 그것을 전부 다 여러분 것으로 만들고 싶지요? 선생님이 하나님하고 인사를 해 가지고 여러분이 참을 가질 수 있도록 사인을 해주면 좋겠어요. 30억 인류에게 사인을 해주면 좋겠다구요. 그렇지만 그렇게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게 누구거예요? 만일에 선생님 것을 내가 하나님에게 물어 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사인해 주고 '하나님은 관두소. 30억 인류에게 줍니다' 이러고 나서면 무슨 법에 걸릴까요? 사기일까요, 무엇일까요? (웃음)
그렇지만 어느 누가 사인을 해주어 가지고 이 우주에 꽉차 있는 참을 30억 인류가 빨리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시는 거룩한 분이 계시니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골방에 들어가 앉아 있더라도, 양심은 '이놈아, 너 악해라' 그래요? '선해라' 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변소간에 가 앉아 있어도 양심은 '선해라' 하는 거예요. 세상에 선과 악의 무대, 나쁘고 좋은 환경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언제나 선하라고 하는 겁니다.
선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천하의 참된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릇을 만들어서 어떻게 할 것이냐? 좋은 것을 자기 뱃속에 몰아넣고도 좋다는 거예요. 꼭대기에 넣겠으면 꼭대기에 넣고, 밑에 넣겠으면 밑에 넣고, 중간에 넣겠으면 중간에 넣고, 장소를 개의치 않는다는 거예요. 어떤 데도 좋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뭘할 것이냐? 그 참을 가진 사람의 병이 무엇이냐? 그것을 보관하지 못하는 것이 병이 아니라 주지 못하는 것이 병이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천하에 꽉차 있는 참을 누가 가져도 상관이 없다는 결론은 자동적으로 나온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을 교훈하게 될 때에 자식에게 악하라고 교훈하느냐? 부모는 마음을 갖추지 못해서 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선은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은 것이예요. 자기가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주고 싶고 거기에 이자의 이자, 변리의 변리를 전부 더해서 주고 싶은 것이예요.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천지에 참이 꽉차 있다 할진대 그 참의 주인이 누구이뇨? 그 주인은 참을 알고, 참의 맛을 느끼고, 참과 더불어 행할 수 있고, 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참은 개인의 것이 아니예요. 누구의 것이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뭐라구요? 「공동의 것입니다」 공동지물(共同之物)인 것입니다.
복이 무엇이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복 받아라'고 하면 그저 좋다고 하지요? 자기 맘대로 살면서도 '어허! 복이 좋구나' 하는 자들은 강도들이예요. 모두 강도들이예요. 복은 공동의 물건인데 사적으로 사용하다가는 망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자기의 종족도 꺾임을 당하고, 자기 일생도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복이 좋기는 좋지만 복은 지극히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동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요, 공동 권한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시간권과 공간권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이걸 지배할 능력을 가진 인간이 이 땅 위에는 없어요. 지배하려다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선을 지배할 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정 모르겠다고 하면 어슴프레하게라도 알고 있으라구요.
그러면, 역사적 선한 사람, 역사적인 의인은 어떠한 사람이냐? 주고 싶어서 우는 사람, 이 세계를 자기 것으로 위임받더라도 세계 만민 앞에 주고 싶어하는 그런 분, 세계에 나가서 무엇을 주고 싶어하는 그런 지도자입니다. 그러한 지도자가 이 땅 위에 나타나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요, 하나님이 바라는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 지도자와 주고받을 수 있는 심지와 그러한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나타나는 때가 선한 세계가 이루어지는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복을 무한히 갖고 계신 복의 중심 존재이십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복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분에게는 없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이예요. 알았어요? 여러분의 아버지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어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하며 울고불고하던 그 자식보다도 더 귀한 것을 갖고 있는 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생으로서 최고로 승리했다고 하는 자, 이 세상 어디에서 보아도 최고로 성공했다고 하는 자는 누구냐 하면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결론이 나온다구요.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 하나님을 차지한 사람…. 그 하나님은 천하에 없는 참된 복을 무한히 갖고 있는데, 그 무한히 갖고 있는 참복을 오늘날 인간 앞에 만세를 통하여 주고 싶어서…. 때로는 죽임을 당하더라도 또다시 와서, 혹은 목베임을 당하더라도 그 피를 통하여 제물을 드리면서라도 주고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순교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고 자기를 위하여 지극히 정성들이는 아들딸들을 어찌하여 죽음의 길에, 형장에서 목이 잘라지고 허리가 끊어지는 처참한 형극을 당하도록 해 나왔느냐? 그것은 참다운 하늘이 세상에 참된 것을 주려고 하는데 악한 사람은 그와 같이 선한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을 때려죽이는 그런 원수의 자식들을 용서해 주고, 무한히 주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원수가 자기 아들 하나 땅에 떨어뜨리는 것 가지고는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예수였기에 그는 십자가 도상에서도 원수를 사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의 역사 환경에 몰림을 받고 쫓김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역사를 지도해 나온 사람들은 몰아내던 사람들이냐? 아니었습니다. 몰림을 받고 쫓김을 받던 무리들이 세계를 지배해 나오더라 이겁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예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런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느냐? 하늘의 본질은 눈물과 더불어 주고싶고, 죽으면서도 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렇지요? 첫째는 무엇이냐? 온유겸손이니,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니…. 도는 그거예요. 그 도의 속성의 일면을, 교리의 대표를 세워서 가르쳐 나온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땅 위에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 국가, 백성이 있거든 일어나라 이겁니다. 만민 대하여 주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교훈은 통일교회의 문선생이 와서 하는 얘기예요.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 국가의 주권자들이여! 만세를 통치하고, 만세에 주인공이 되고, 만 우주에 복을 주기를 바라거든 주고 싶어서 우는 주권자가 되라는 겁니다. 그것이 안 되면 죽어서라도 주고파할 수 있는 사상과 사랑의 심정을 지닐 수 있는 국가 민족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그 당대에는 망함을 당하더라도 양심을 가진 후세의 인간들이 다시 찾아 나옴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부모라면 자식이 선의 길을 가면서 고통을 당하더라도 울어서는 안 됩니다. 아들딸을 세계 만민 앞에 주지 못해 눈물 흘리고, 주지 못해 땀을 흘리며, 자기 피를 팔아서라도 주겠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당대에 뜻을 이룬 환경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더라도 정성들인 그 터전은 영원 세세토록 망하지 않고 남아집니다. 그 자리는 멸망의 도성이 되는 것이 아니요, 멸망의 무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원천지가 되는 것이요, 광명의 터전이 된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갈릴리 해변에서 애쓰다가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서 처참하게 사라진 예수 그리스도, 그는 민족 반역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사회질서를 붕괴시키는 자요, 당시의 교파주의적인 모든 제도와 형식을 파탄시키는 대표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스라엘의 주권자보다도 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친 자요, 유대교인보다도, 유대교 제사장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주고 싶어서, 참을 주고 싶어서 밤잠을 자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참을 주고 싶어서 허덕이며 방랑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구나'라고 한 말은 무슨 말이냐? 자기 일신의 행락을 자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서 한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참다운 생명을 갖고 참다운 진리를 알았기에, 그것을 만민 앞에 주기 위해 귀한 눈물을 흘린 자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가 죽어간 자이기 때문에 인간이 매장하였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전세계를 좌우할 수 있는 문명권을 이루어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기독교 사상은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라는 사상이요, 만민을 위해서 수고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라는 사상인데, 이 사상을 중심삼고 뿌렸으니 이제 이 사상을 중심삼고 거두려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면 거둘 수 있는, 이 세계를 위하여 주고도 더 주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오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같은 민주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국가들이 앞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걸 나는 당당코 말하고 싶어요. 하늘이 찾아오신 2천 년 역사가 그러했기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눈물과 피와 땀으로 갖다 주셨으니 이러한 주의를 중심삼고 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받았으므로 참은 주어야 하는 것이 천리원칙인데도 불구하고 주지 못하고 있으니 배탈이 나는 것입니다. 이게 안 터지게 되면 창으로 찔러서 긁어내는 것입니다. 원조 안 해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안 하면 망한다는 거예요. 민주주의가 책임을 다하지 못 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노동자 농민의…. 이래 가지고 자극제로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불교 믿는 양반들도 유명한 스님들 찾아가서 지금 때가 산중에서 수도하는 때냐고 물어 보시라구요.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지금 때는 산에 있을 때가 아니라 내려갈 때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또, 적선을 구해야 할 때가 아니예요. 주어야 할 때예요.
기독교 사상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을 주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대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 종교를 대표해서 이 세계 앞에 지금까지의 역사관 이상의 견해에서 비판하게 될 때 내가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하는 것을 느낀다면, 이 세계 인간들은 어떤 주의를 찾아야 될 것이냐? 주고 싶어서 굶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고 싶어서 헐벗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차를 한번 타고 싶지만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 걸어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주의와 그런 이념이 생겨나 가지고 하나님이 바라는 소원과 내가 바라는 소원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이어야 됩니다. 그 사랑이 거짓이 없는 참된 사랑이거늘, 이 사랑을 다하여서 이루어진 개체와 인격과 그 말씀을 깨끗이 주어 가지고 '이젠 다 받았습니다' 할 때까지 주었다가, 인간들 앞에 무한한 복을 주었다가 그들이 돌려드리는 것을 '오냐, 또 받아 보자' 하는 그게 영광인 것입니다.
자식을 정성들여 공부시키는 부모는 그 자식이 '아버지 어머니 제가 출세하도록 해주신 은덕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는 걸 원한다구요.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정성과 그 정성의 표식인 물질을 가하여 부모 앞에 돌리게 될 때 둘 다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 앞에 하늘이 복을 주기를 원하지만 복을 완전히 잘 받는 사람들도 없거니와 받아 가지고 잘 넘겨 주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이 천하에 참다운 것을 넘겨 주기 위해서 사랑을 가지고 무한히 애써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통일교회란 명사는 왜 나왔느냐? 통일교회가 대관절 뭐예요? 오늘날 한국 백성들이 뭐예요? 통일교회가 뭐예요? 여기에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대구 간다 하면 치안국에서 대구경찰서에 '찌르릉' 하고 연락을 하더구만요. 내가 이 민족 앞에 무엇을 바랄 게 있느냐 말이예요.
그러한 천리의 원칙을 헤아려 보게 될 때 앞으로 오는 세계는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식과 물질문명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걸 그저 맹목적인 견해에서 단정을 내린 것이 아니예요. 심연적인 견해 아래에서 단정하고 출발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이 관념적인 종교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예요. 본래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예요. 왜 통일을 해야 하느냐? 만민이 바라는 통일이라는 이 명사는 지극히 고귀한 명사인데 통일이란 명사 그대는…. 어떤 때는 나 혼자서 그러는 되는 거예요. '통일이라는 명사, 그대는 지극히 고귀하지만 그 명사를 끌고 가야 할 나라는 존재는 지극히 비참하고 지극히 처참하구나' 이게 문제예요. (녹음이 잠시 끊김)
이 삼천리 반도의 3천만 민중을 지도하는 사람은 지쳐서 나가자빠졌을지 모르지만 난 안 지쳤어요. 우리 통일교회를 못살게 군 사람들은 다 지나가 버렸지만 우리는 전진이예요.
누구 등을 쳐먹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모략중상하고 누구를 농락하기 위한 것이 아니예요. 내 것을 다 주자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주기를 바라고, 받기를 원하거든 누구든 주자는 것입니다. 눈물로써 안 되거든 피로써 주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만민 앞에 주자! 주자! 무엇을 줄 것이냐? 참다운 사랑을 주자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부모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돼요. 그 사랑은 부부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돼요. 그 사랑은 자녀의 사랑보다도 더 커야 돼요. 그런 사랑을 주기 위해 나선 우리 앞에 부모가 반대하면 부모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내가 욕을 먹는 거예요. 부인이 그 뜻을 위해 가려는데 남편이 못 가게 하니 남편이 죽는 거예요. 남편이 말을 안 들으니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식들이 가는 길을 그 부모가 반대하면 그 부모가 안 된다는 거예요.
부모의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을 이 민족 앞에 주고, 만민 앞에 주고, 이래 가지고 만민이 주고 싶어서 자기 가정을 초월하고, 자기 민족을 넘어서서 허덕이는 무리가 있거들랑 그런 무리로 말미암아…. 두고 보라구요. 세계는 수많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통일의 이념을, 혹은 교회를 통일하겠다는 주의 주장을 많이 가지고 나왔지만 통일을 못 했어요. 못한 것을 내가 모르는 바가 아니예요. 안다 이거예요. 알면서 왜 이렇게 나오느냐?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실패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예요.
따라서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해야 되고, 하나님 편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아야 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에서 이 인간세계를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 어찌하여 6천 년 동안 이 세계를 하나 못 만드셨느냐 하는 곡절을 알아야 돼요.
통일교회는 뭘하는 곳이냐? 인간의 목적을 모르는 인간들 앞에 인간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 앞에 하나님의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상치(相馳)되는 것이 아니라 상합(相合)한다, 일치한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인간의 목적이 일치만 되면 인간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찾는 아들딸이 되고,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세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예요. 그다음에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편에서 보는 과거의 역사, 하나님편에서 보는 현세, 하나님편에서 보는 미래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다음에 하나님편에서 바라보는 세계관, 우주관을 가르쳐 줍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또, 통일교회란 뭘하는 곳이냐? 아무리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라 해도 이 세계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다운 심정의 기반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 심정의 기반을 어떻게 하면 마련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입니다. 이것만 가르쳐 줄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뭘할 수 있느냐? 원수 사탄을 무찌를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됩니다. 마귀면 마귀, 악이면 악의 주인공을 맘대로 이끌어 가지고 만민 앞에 굴복시켜 주기 위해서 '꿇어!' 하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그를 통하여 왔는데 그것을 처단해 버리고 밟아 치움으로 말미암아 인간적인 악의 활동을 제거시켜 버리고, 직접적인 상대기준에 서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직접적인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권내로 세워 놓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민이 그 법률을 통하여 행동을 개시해 가지고, 실질적인 과정을 거쳐 가지고 실험을 해보면 틀림없다 할 수 있는 결과가 만민 공통적인 공식과 같은 내용으로 나와야만 통일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어떻게 알고 있느냐? 통일교회 문선생은 무슨 뭐 벌거벗고 춤추는 교주인 줄 알고 있지요? '어허, 통일교회는 벌거벗고 춤추는 곳!' 이러고 있는데, 좋다 이 녀석들아, 내가 지금까지 사십 평생 벌거벗고 춤 한번 못 춰 봤다 이거예요. (웃음) 뭐 어떻다구요? 그래 잠꼬대 잘한다 이거예요. 어서 잠꼬대 해라 이겁니다. 나는 달려야 되겠다 하고 나온 거예요.
요즘에 세계적인 뭐 어떻고 어떻게 된다고 하니 통일교회가 협박공갈한다고 하지만 잘못 알았어요. 공갈협박인가 두고 보라구요. 또, 뭐 통일교회 돈 많다고 합니다. 여러분 지갑에 금덩이들 두둑하게 들어가 있지요? 있기야 있지요. 그게 뭔지 모르지만 돈 같지 않은 돈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에 온 안토니 부르크씨도 그래요. 방송국에서 사람이 와 가지고, 온 몬적이 뭐냐고 물어 보니 통일교회 얘기 안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기성교회에서 하는 말이 '거 통일교회에서는 돈을 얼마나 집어줬으면 저러겠노!' 하겠지만, (웃음) 하여간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내세울 능력이 있어 끌고 왔으면 됐지요 뭐. 그것 참 재미있단 말이예요.
내가 생각할 때, 하나님이 나를 욕먹게 하지 않았더라면 큰일날 뻔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좌우지간 우리 하나님! 통일교회가 욕을 먹는 가운데 발전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아요. 욕을 먹고 쫓김받는 자리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아요. 벌거벗고 굶는 자리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먹고 입는 데 대해서는 문제없고, 망하지 않아요. 그렇지요? 「예」 틀림없어요? 「예」
세상 사람들이 알기를 '뭐 통일교회 문교주, 한자리 더 떠서 문예수?'라고 하는데 그거 자기들이 붙였지 내가 붙였나요? 예수가 뭐가 좋아요? 자칫 잘못하면 십자가 지고 희생해야 될 텐데요. 지긋지긋하게 고생하는 예수가 뭐가 좋아 선전했겠어요? 자기들이 욕하려다가 소문이 그렇게 났지요. 내가 여러분들에게 '내가 통일교회 교주다' 하는 얘기 해본 적 있어요? 「없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을 전부 다 팬티 하나만 입혀 가지고도 구라파 천지를 호령한 나폴레옹 이상 가는 사나이로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군대 하나 없더라도 호령을 하게 되면…. 그런 야망과 욕망을 가진 사나이로 만들고 싶단 말입니다.
여기 걸어다니는 사람 많지요? 어디 걸어다녀 본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손들어 봐요. 대부분 걸어다니지요? 또, 일주일 금식 한 사람 손들어 봐요. 전부 다 했지요? 내려요. 우리는 다 그래요. 이제 본부에 올라가서 보면 통일교회 패들 허리띠가 달라질 것 아니예요? 옛날에는 선생님 허리띠를 이만큼에다 맸어요. 여기 보이지요? 요즘엔 좀 나왔어요. (웃음)
여기의 촌 양반들은 '선생님은 요즈음에 얼굴이 뿌예 가지고 근력이 좋으니까 이렇게 기분좋게 큰소리하는 것이지 배고파 봐. 별수 있나'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웃음)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배도 많이 고파 봤습니다. 꽉 졸라매라 이 자식아!
그래 세상 사람들은 알기를 통일교회 문선생 하면 수염이 이렇게 나 가지고 높은 자리에서 '여봐라!' 하면 '예이―' 하고 그러고 있는 줄 알고 있거든요. (웃음) 그런 소리 들어 봤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는 180도 판이하게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작전상, 선전상…. 그렇게만 선전한다면 작전에는 필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해돼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런 가운데 우리는 3년 동안 삼천리 반도에 자리잡았어요. 3주권이, 3정권이 우리를 탄압하고 우리를 없애 버리려고 했지만 우리는 망하지 않았어요. 이제는 세계가…. 미국의 중앙 정부에 우리 통일교회의 종교 등록이 났다구요. 이제는 미국 천지에서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요. 여러분이 진짜 벌거벗고 춤을 춰도 뭐라고 안 해요. (웃음) 교리가 그렇다면 미국 사회에서는 통한단 말이예요. (웃음) 그렇다고 또 나 믿고 가서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이제는 한국은 물론 세계가 우리 편에…. 내가 젊었을 때는 꿈이 많았어요. 이 조그마한, 미국의 한 주의 몇분의 일밖에 안 되는 삼천리 반도에 딱 감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것 같은 여기에다 큰 기지를 잡아서 한번 날아 보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지금부터 한 20년 전에 예언했던 것들이 지금 다 들어맞는단 말이예요. 이제는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 말을 좀 믿을 만큼 됐어요. 믿을 만큼 돼 있지요? 「예」 이제는 통일교회에서 추방할까봐 걱정이예요. 그래야 일이 되는 거예요. 과거에 반대할 때는 들어오면 이거 또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고 내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제는 이거 따라오면 어떡할까 걱정이예요. 따라오는 게 걱정이라구요.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 만나겠다고 야단이예요. (웃음) 천 사람 만 사람 어떻게 다 만나겠어요, 선생님 일도 많은데? 그렇다고 안 만나주면 입이 이렇게 나와 가지고 말이예요, 선생님은 뭐….(웃음) 여기에 온 양반도 선생님을 찾아왔지만, 앞으로는 내가 아주 문전에서 내쫓을지 모르는 거예요. 미안합니다. (웃음)
나 물 좀 줘요. 선생님이 왜 이런 우스운 얘기를 하느냐? 방은 좁은데 앉아 있으려니 오금이고 어디고 안 아픈 데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웃음으로써…. 또, 졸음이 올 때는 이러잖아요? (몸짓하심. 웃음) 그러니 부작용이 있잖아요. 그러니 웃는 바람에 그걸 잊어버리자는 거예요. 내 할 도리를 하는 거예요. 점잖게 얘기하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렇지만 할 수 없어요. 이렇게 해야 청중을 이끌어 나가니 할 수 없는 거라구요. 처음 온 사람은 통일교회 선생님은 거룩하게 얘기할 줄 알았겠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다 졸 거라구요. 나 물 좀 주소. 점심도 안 주려고 하면서 물도 안 줄래요? (웃음)
여기 미국의 김영운 선교사가 왔구만. 김영운이가 왔지만, 김선생이라고 못 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을 좋아하거든요. 미국 사람도 교수라고 하고 어머니라고 하고 뭐 이러지만, 내가 반말해도 좋아한다 이 말이예요. 내가 '하, 오십니까?' 하면 그저 눈을 내리 깔고 이런다 이거예요. (웃음) 우리 통일교회 3년노정을 걸었지요? 3년노정 걸을 때, 내가 저 양반한테 미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전도하라는 말을 내 입으로 한마디도 안 했다구요. 일본에 있는 패들한테 전도하라는 말 한마디도 안 했다구요. 우리들을 따라오나 안 따라오나 보자 하고 두고봤다구요.
보리밥을 먹고, 걸어다니고, 하루에 한 끼 먹고 두 끼 먹으니 미국놈들도 별수 있어요? (웃음) 알고 보니 큰일났거든요. 잘못 걸렸단 말이예요. 코를 꿰었어요. 코가 걸렸으니 끌면 끌려가지 별수 없다 이 말이예요. 코 잘못 걸렸다고 그러지요? 한국 말이 재미있다구요. 그 코가 잘못 걸렸다 그 말이예요. (웃음) 이것이 맨 처음 간 사람이 끌고 가는 줄을 딱 만들어 놓았으니 끌려오는 사람들은 끌려오지 별수 있느냐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금식을 시작하는 데 말이예요, 일주일에 사흘씩 금식하는 것을 일주일에 한 끼 먹고 두 끼 먹고 이래 가지고 사흘 금식했다는 조건을 세우면서 가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절대 남에게 빚지지 않으려고 한다구요. 차 아니면 다니는 것을 모르던 녀석들이 터벅터벅 걷고 말이예요, 독일 녀석도 그렇고, 미국 녀석도 그래요. 이 양반도 한번 걸어야 돼요. (웃음)
선생님은 참 잘 보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전부 다 솔솔이 패거든요. 눈을 보면 반짝반짝하고 말이예요. 나이 많은 양반들 미안합니다. 왜 미안하냐 하면, 인사는 고맙게 해놓고 나이 많은 사람들 듣기에 섭섭한 얘기를 하면 '저 녀석 저거 어른도 몰라본다' 하고 욕하면 안 되거든요. 나이 많은 사람들 미안합니다. 솔솔이 패가 필요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괜찮아요? (웃음) 이 시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젊은이들이예요.
내가 지금 통일교회 지도자로서 생각하는 것은 '40대 이상인 사람은 필요치 않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더러 나가라는 게 아니예요.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오기도 힘들었는데 나가기는 더 힘든 것 아니예요? (웃음) 오늘날 한국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 혹은 뭐 목사, 장로, 집사 중에 40대 이상 되는 사람들이 통일교회를 반대합니다. '통일교회 이단이야, 최고 이단' 하고 말이예요. 그렇지만 '암만 큰소리 해봐라. 당신들은 필요치 않지만 너희 아들딸은 내가 필요하다. 나이 많은 당신들은 큰소리하지만 당신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먼저 죽을 것이다. 당신들의 아들딸들을 내가 수습할 것이다' 하고 있다구요. 그렇다고 죽을 걱정은 하지 말라구요. 그들은, 일세들은 배반자요 반대자요, 혹은 원수의 입장에 있었지만 이세만은 틀림없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 이거예요. 그런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내가 계산을 잡아 보니 놀랍게도 통일교회 교인 전체 평균 나이가 23세 미만이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기성교인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보니 47세 이상이예요. 그러니까 암만 욕을 해봐라 이거예요. 욕하다가 배고파 밥먹으러 들어갈 때는 우리 시간이다! (웃음) 우리는 밤잠을 안 자고 있다가 그들이 새벽녘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우리 시간이라는 겁니다. (웃음) 우리는 그런 패들이예요. 그런 패인가요, 아닌가요? 「그런 패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을 잘 듣거든요, 무슨 약을 먹였는지 모르지만. 약은 무슨 약이예요? 또, 무슨 요술을 해서 그러는지 몰라요. 하여튼 요술은 요술이지요. 인간 요술이 아니라 하늘 요술이예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와 걸리면 잘못 걸렸다고 하겠지만 알고 보면…. 사실이 그렇게 되어 있다구요. 그건 뭐 여기 있는 문선생이 수단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예요. 그 내용이 진리이기 때문이예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약을 먹여 가지고 돈을 벌게 했지요? (웃음) 이 양복이 지금 몇 년 됐느냐 하면 7년 됐어요. 그때 양복이 이렇게 생겼지요? '문선생은 어저께 해 입은 양복이냐' 할지 모르지만 7년째 입는다 이 말이예요. 깨끗이 입었지요? 내가 양복을 갈아입지를 않아요. 양복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있지만 안 갈아입어요. 이 사람은 이 옷을 벗어 버리고 딱 적당한 때에 적당한 옷을 입고…. 옷을 잘 입을 줄도 알아요. 그렇지만 차양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잠바를 입고 시장거리에 나서게 되면 넝마 장수 이상 간다구요. 때에 따라서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 아무개다'라고 하는 것이예요. 나 이번에 차타고 가면서는 절대 그런 패들 보고 싶지 않아요. 차타고 가는데 뭐 통일교회 패들 수십 명이 나와 가지고 선생님 오신다고…. 여러분은 이제 선생님이 여기 올 때 대구역에도 나오지 말라구요. 알겠어요? (웃음) 내가 옛날 학창 시절에 일본에 있다가 집에 올 때는 집에 전보도 한장 안 띄우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는 내가 온다고 하면 집에서 역까지 한 20리가 되는데 버선발로 혼자 나온다구요. 그게 멋진 거예요. 고향집을 찾아오는데 가족과 더불어? 그게 아니예요. 그게 참 귀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마중 안 나와도 괜찮아요. 그런다고 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여기 있는 이 사람은 노동판에 가면 노동자예요. 또 어디든지 가면, 할아버지들 있는 곳에 가면 할아버지와 어울릴 줄도 알아요. '한국 노래 중에는 무슨 노래가 제일 좋습니까?' 하고 물으면 '아, 그거야 아리랑이 제일 좋지' 하면서…. (이후 말씀은 녹음이 안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