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오셔서 죽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배반하는 통탄의 역사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참으시사 좀더 늦게 민족적인 기반을 닦더라도 때를 기다렸다가 보내셨던들 당신의 슬픔도 더하지 아니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적인 때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십자가를 각오하고 보내셨던 메시아였음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깨달았습니다.
수리적인 복귀의 도상에서 걸어오시는 아버님의 슬픔이 얼마나 크셨던가를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께서는 땅을 위하여 보내시는 주인을 마련하기 전에 땅 위에 백성을 마련하기 위해 수고하셨던 것을 아옵니다. 백성을 마련하여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버님께서는 미리 아브라함 때부터 축복하여 주셨사옵고, 백성과 땅을 마련해 놓고는 만민 앞에, 원수 앞에 자랑하기 위한 하나의 주권을 세우시사 만왕의 왕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존재로 보내신 메시아가 그처럼 땅을 찾지 못하고 백성을 찾지 못하고 한없는 슬픔의 역사적인 비탄을 가슴에 품고 시대적인 원한을 그 몸에 지니고 죽음길을 갔습니다. 그런 예수의 원통한 사정을 아는 사람이 이 땅 위에 얼마나 있사옵니까?
여기에 모인 통일의 무리들은 세상 것을 갖지 못하였을 지라도, 세상 것은 알지 못할지라도, 세상에 자랑할 그 무엇은 없다 할지라도 예수와 더불어 슬픔을 당할 수 있고, 예수와 더불어 모이고, 예수와 더불어 갈보리산상에 설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 귀한 자리가 예수님이 돌아가신 자리에, 사람으로서 대신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환경도 없었사옵고,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없었사옵니다. 왕으로 오셨던 메시아가 그처럼 슬픔 속에 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저희들은 그 억울함과 슬픔을 풀 아무런 것도 갖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저희들은 역사적인 수고의 노정을 통한 복귀의 내용을 통하여 그 사정을 알았사오니, 사정을 안 저희들은 다시 하늘을 배신하는, 배반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시옵고, 기필코 죽음으로라도 아버지 앞에 대신 제물로 드리고 남음이 있어야만 될 것을 깨닫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니다.
슬펐던 예수님의 과거를 저희들이 알아 가지고 슬픈 심정으로 소망하였던, 원수를 대하여, 그 소망 반면의 적개심을 가졌던 그 심정을 저희들이 체휼하면서 이 날을 축하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부족한 자체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사오니, 여기에 충성드리지 못한 사실이 있을지라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뜻이 무엇인가를 알았사옵고 안 자리에서 맹세하였사오니, 맹세의 그 기준을 통하여 친히 이날의 거룩한 자리에 참석한 동역자들로 취급하시어서, 역사적인 슬픔을 해원성사하는 소원의 무리가 되든가 실체적인 제물의 무리가 될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대할 줄 아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추구하는 이 심정을 통하여 하늘에 미쳐져 있는 모든 슬픔을 푸시옵고, 예수의 생애노정에 맺힌 간곡한 고통의 멍에도 해원성사 하시옵소서. 저희들이 움직이는 모든 것을 통하여 새로운 한날을 축하할 수 있는 이 날로, 영원히 만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날로 세우기를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예수 앞에 새로이 약속하오니, 이날을 축하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민의 축하를 대신하시옵고, 만민이 하지 못하는 모든 축하를 저희들이 대신할 수 있는 축하의 날로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땅, 아버지, 땅 위의 참부모, 참아들딸을 중심삼은 만민 전부가 합하여 아버지의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하시는, 뜻을 대신하여 오셨던 메시아의 전체적인 소원을 저희들이 염려하면서, 슬픔으로 용서를 구하면서, 소망의 일념을 세워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이 시간 축하의 한날을 지내고자 하오니, 이 시간 받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남아진 시간을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탄생한 잘입니다. 여러분들이 축하의 한날로 하늘 앞에 세우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축하하려는 사람이 먼저 축하받는 그분이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고 축하하면, 축하한 것 자체가 축하받는 사람에게 아무런 인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라는 분이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을 먼저 알야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구주라는 관념…. 지금까지 모든 신도들이 믿고 있듯이 예수님이 탄생한 크리스마스는 죄악 가운데 있는 만민을 구하기 위해서 이 땅 위에 구주로 오신 그분이 태어난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축하한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보다도 좀더 깊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구주는 역사적인 구주, 시대적인 구주, 미래적인 구주, 이렇게 역사성을 띤 구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구주를 보낼 것을 예언하시고, 이 구주를 보낼 때까지 역사적인 과정을 통하여 수고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지 않고는 하늘편에 선 자로서 참다운 메시아의 탄생일을 축하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런 내용을 알지 못하고 축하한다면 인간세계의 축하는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여 보내신 예수님의 가치에 해당하는 축하로 하나님이 알아줄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축하하는 데 있어서 인간적인 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구세주라고 아는 자리에서 축하하는 것은 물론이로되, 이 배후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메시아를 보낼 때까지 수고한 내용을 알고 축하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축하한다면 완전한 축하를 하는 입장에 섰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하늘과 땅, 하나님과 메시아….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통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예수를 통하여 수습하기 위한 섭리를 해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당연히 그래야 됩니다. 만일 몰랐다면 예수의 사명과 구원의 한계, 구원하시는 목적에 대해서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신앙자들이 믿고 있던 구원의 한계라든가 구원의 목적 이상의 것을 하늘이 요구하셨고, 그 이상의 것을 우리 참다운 신앙자들이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지금까지 축하하던 축하의 방식보다 진정 예수님이 탄생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메시아를 알아야 됩니다.
그 메시아를 앎과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목적을 갖고 메시아를 보낼 때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 예수의 마음으로 나타나 있는 이 예수의 소원을 인류의 마음의 터전 위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이 책임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메시아의 마음 혹은 메시아의 목적을 완전히 우리가 해독함으로 말미암아 내적인 하늘과 외적인 예수가 이 땅 위에서 구원섭리할 그 섭리를 대신해야 될 자리에서 축하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축하하되 일변 위에 선 입장에서 축하하는 것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시간에 참된 축하를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예수님의 사연이 무엇이며 예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원과 예수님의 뜻은 비단 예수님 자신의 소원만이 아니요 예수님 자신의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고 하나님의 소원을 대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메시아로서의, 구주로서의 목적을 완성한 후에는 반드시 만민이 공히 지녀야 할 소원이 요 목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실 때의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예수가 이 땅 위에 왔던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자로서, 신앙하는 자로서 예수를 구주로, 신앙의 중심된 분으로 모시는 우리의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이 달라지고, 예수의 소원과 목적이 달라지고, 믿는 성도들의 소원과 목적이 달라지면, 여기에서는 완전한 뜻의 완성이란 것을 볼 수 없고, 뜻의 귀일점이란 것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시고 바라보는 그 앞에 태어난 메시아를 놓고 볼 때, 이 땅 위에서 메시아를 고대하는 만민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그 자리에 참석하여 축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의 소원, 하나님의 목적과 예수의 목적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 목적은 단지 축하하고 거기에서 남아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축하와 더불어 내 생활과 내 생애의 목적과 연결되어 들어가는 결정적인 조건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축하하러 왔다 갔던 동방박사에게도 원래 축하하게 한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목적에, 섭리의 목적에 일치될 수 있는 인간적인 대표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그걸 요구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동방박사를 예수 앞에 보냈던 것입니다. 또, 목자를 보내 축하하게 하고 그 외에 안나 등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를 축하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예수의 소원이 인류의 소원과 일치할 수 있는 입장에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런데 예수의 소원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소원을 알지 못하고, 예수가 오신 목적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축하하고는 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축하하고는 가 버렸으니 지금까지 역사도상에 있어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 사람 가운데 하늘이 보시는 견지에서, 만민을 대표하는 견지에서 예수의 탄생을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이 있었느냐 할 때에, 지금까지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은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 또 목자, 안나, 그외 여러 사람들이 메시아가 탄생한 것을 증거하고는 전부 다 가 버렸다는 거예요. 증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증거한 것과 나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지 않은 입장에 서 가지고는 메시아로서 행사할 수 있는 터전이 세워질 수 없다는 겁니다. 축하하고 가면 가는 것으로 끝나지, 거기에는 구원을 받을 자와 구할 자와의 인연을 세울 수 없어요.
구함을 받되 일시적인 시간권 내의 구함을 받게 하는 구주가 아니예요. 온 생활을 통할 수 있는 구주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이 구주는 내 개인의 구주가 아니라 과거를 대신할 수 있는 구주가 되어야 되고, 나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시대 전인류를 대신할 수 있는 구주가 되어야 되고, 앞으로 올 후손의 구주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주를 축하하는 데 있어서는 내적인 간곡한 소원과 간곡한 목적을 기준삼고 `이분은 필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오신다' 하는 것을 알고 축하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천 년 동안 섭리의 목적을 세워서 간곡히 쉬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 주신 것과 마찬가지로, 지상에 있는 인간들도 하나님과 같이 그 소원의 목적을 위하여 끊임없이 바라면서 메시아의 심정을,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심정을 준비해 가지고 그분을 만나면 축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더불어 같이 살고 그분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결의를 가지고 축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비록 로마의 압정하에 있는 유대 나라요, 비록 로마법권의 치리를 받고 있는 유대 백성이라 할지라도 동방박사, 그외에 모든 증거한 사람이 일치단결하여 `죽더라도 우리는 이분이 탄생한 자리에서 죽어야 되겠고, 우리가 고생을 하더라도 이분을 위해서 고생을 하고,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분이 고생을 당해서는 안 된다. 죽음의 길이 웬말이냐?'라고 하며 나아가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충신 중의 충신이요 효자 중의 효자가 되었던들,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친히 대신할 수 있는 이 땅 위의 실체적인 인간, 예수가 소원할 수 있는 실체적인 인간, 하늘을 대신하여 충신이 되고, 예수를 대신하여 효자 효녀가 될 수 있는 동방박사와 양치는 목자와 그외의 사람들이 되었던들, 예수님은 30여 생애에 아무런 고난의 길이나 고통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비록 마구간에서 태어났지만 이분이 누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단결해서 한때를 맞이할 때까지, 예수가 만민을 구원할 수 있는 터전을 밟아 나설 때까지 그분의 울타리가 되고 뒷받침이 되었던들, 예수는 출발 당시의 기쁨을 점점 발전시켜 가지고 그것을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인 단계까지 키워 나갔을 것인데, 동방박사도 간 데 없이 가 버리고, 목자도 간 데 없이 가 버리고 예수를 낳은 어머니까지도 예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물론이구요. 요셉은 의붓 아버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의 소원과 목적과, 메시아를 축하하는 사람의 소원과 목적이 일치되어야만, 완전한 축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 내용이 다르고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하늘이 불러 모았던 모든 사람들, 축하하기 위해서 보냈던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축하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편에서 예수를 보내신 목적은 무엇이냐? 간단하다는 거예요. 예수를 보내신 목적은 잃어버린 아담을 찾기 위한 것이요, 잃어버린 아담을 찾아서 잃어버린 해와를 재창조하기 위해서예요. 그리하여 예수 자신이 아담으로서 지음받은 기준에서 해와를…. 아담이 해와를 잃어버렸으니, 아담 대신 사명을 짊어지고 온 예수는 해와를 이 땅 위에서 다시 찾아 가지고 참된 부모의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런 자리에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소원과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인류의 참부모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이것을 위주로 하여 참다운 부모가 생겨났으니 참다운 자녀를 번성시켜 가지고, 이 자녀들로 하여금 참다운 부모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참된 가정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 가정들을 점점점 발전시켜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를 이뤄야 합니다. 하나의 참부모의 혈연을 통한 백성을 세워 가지고 한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소원은 무엇이냐? 자기가 아담 입장이면 아담이 타락하여서 실수하였던 모든 내용을 탕감해야 됩니다. 아담의 자리에 서서 하나의 가정을 찾아 가지고, 여기에 자녀를 세워서 가인적인 자녀를 아벨적인 자녀로 복귀시키는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세계를 가인적인 세계에 세움으로서 찾아진 메시아의 후손은 아벨적인 세계형으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극적인 입장에 서지 아니하고 하나의 주체를 대해 대상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예수를 아벨적인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중심 대표자로 모시고 그 앞에 굴복했더라면, 거기서부터 하늘나라의 부모가 생겨나고 하늘 나라의 가정이 생겨나고 하늘나라의 족속과 민족과 나라가 생겨나니, 그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왕궁을 위주한 천지의 중심을 만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목적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소원이 무엇이냐? 살아생전에 이것을 완결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살아서 만들어야 돼요. 죽어서가 아닙니다. 살아생전에 완결시키는 것이 예수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바라고 섭리의 뜻을 세워 나가던 목적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메시아를 고대하고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즉 인간을 대표해서는…. 인간인 우리도 타락한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후손이니 혈통이 다르다는 거예요. 다른 혈통을 받았으니, 즉 거짓 부모로부터 태어난 거짓 자식이 되었으니, 오늘날 우리들은 종의 관문을 통과하여 양자의 관문을 통과해 가지고 자녀의 자리까지 나가야 됩니다. 자녀의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알고 있듯이.
가인이 아벨 앞에 굴복을 해야만 아담이 완전한 아담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타락한 우리들은 아벨이 없어 가지고는…. 천하를 대표할 수 있는, 하늘과 땅을 대신하고 아버지의 창조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 즉 아버지의 본성상 본형상을 대표할 수 있는 실체로 빚어 만든 것이 아담이었는데, 그 아담이 깨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다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후아담으로 오시는 예수가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님이 소원하시던 아버님 대신의 실체, 그 실체를 위주로 하여 오늘날 인간과 하늘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한 후손이 되었기 때문에 그때 예수를 메시아로 모셔야 됩니다. 메시아로 모시는 데 있어서는 세계적인 아벨적 대표로서 그 가치를 하늘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알고, 그 앞에 굴복하여 내 본질을 잘라 가지고 접붙임으로 말미암아 나도 그와 같은 가치의 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알고 굴복 했더라면 거기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세계를 복귀하여 종에서 양자의 과정을 거쳐가지고 직계의 자리까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직계 자리까지 나가서는 뭘할 것이냐? 인간이 소원하는 그 목적이 무엇이냐? 직계 자리까지 나가서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부모를 찾아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이 천지간에 사탄이가 나라를 만들어 놓고 세계를 호령하고 있으니, 이 사탄세계를 대신한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 하나의 주권을 세워서 사탄세계를 호령하여 선의 국가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해야 할 책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예수를 대신하여 잃어버린 부모를 참된 부모로 모셔 가지고 예수의 소원을 우리들의 소원으로 하여 원수세계를…. 전부가 예수를 모시고 예수 대신 우리 실체들이 이 목적을 달성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울타리가 되고, 심부름꾼이 되고, 싸움의 용사가 되는 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써 예수를 바라는 목적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돼요.
그러면 예수가 왜 대번에 와 가지고 그런 일을 못 했느냐? 여기에는 역사적인 곡절이 남아 있었던 거라구요. 복귀섭리도상에 있어서 우리 선조들이 실수한, 더럽힌 흔적이 남아 있는 연고로 그 역사적인 흔적을 청산하기 전에는 시대적인 발판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라구요. 그래서 예수가 30년 동안 준비한 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하나님이 내적으로 섭리한 내적 세계에 저끄러진 모든 곡절을 전부 다 풀어 놓고, 이것을 외적인 세계에 그냥 그대로 횡적으로 전개시켜서 탕감복귀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어요. 30년 준비기간은 내적이요 3년 공생애노정은 외적기간으로서, 33년 기간을 통하여 완전한 아담복귀, 개체완성을 완결짓기 위해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겁니다.
메시아로 태어난 그날부터 메시아의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조들이 잘못했으면 잘못한 모든 것을 완전히 사탄 앞에 탕감하여 분별된 승리적 기반을 닦은 터전 위에서 메시아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그런 출발을 할 수 있는 발판이 있었더라면 예수는 고난의 길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동방박사들 혹은 목자 등이 예수가 준비시대로서 내적인 투쟁을 하는 30년 준비기간에 예수의 울타리가 되어 외적인 투쟁의 기반을 닦아 놓았던들, 예수는 외적 3년 공생애노정에서 내적인 그 모든 천적인 한을 지상에 횡적으로 전개시켜 탕감하는 데 있어서 고난의 길, 핍박의 길, 수고의 길을 가지 않고도 터전을 닦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닦아진 그 터전을 중심삼고 이것을 움직여 나가서 고난을 당하되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이들과 연락할 수 있는 세례요한을 중심한 사람들이 책임을 했더라면, 예수는 외적인 고난에 부딪치지 않고서도 뜻을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발판이 전부 다 깨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동방박사들, 목자들이 추구하였던 인간 대표로서의 사명을 다시 수습하고, 세례 요한을 세우시어 모든 준비의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까지 전부 다 수습하여 가지고야 시대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길게 보게 되면 4천 년 역사를 수습해야 되었고, 자기생애를 두고 보면 30여 생애 수정에 있어서 하늘이 준비했던 횡적인 지상의 역사적 조건까지도 탕감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될 기간이 30년 생애와 3년 공생애노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 3년 공생애노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슬픈 노정이예요. 인간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고난의 길을 갔고, 십자가의 길을 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33년 동안 이 땅 위에서 하늘을 대표하여 싸운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개체완성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3대시험을 걸고 시험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를 일시적인 한 원수로 시험한 것이 아니예요. 예수의 전체 목적을 놓고 시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시험하는 데 있어서 예수의 3대시험의 내용과 같은 그런 목적의 실체가 되어서, 시험하는 사람을 대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해서 방패막이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들 예수에게는 시험이 필요 없는 거예요. 3대시험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하지 않고 출발과 동시에 개체 완성이 되고, 출발과 동시에 성전 이상이 완성되고, 출발과 동시에 세계의 영광을 세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이 출발과 동시에 일시에 벌어질 것이었는데, 그러한 외적인 환경에서 방패막이를 해줄 수 있는, 사탄과 대결하여 `이놈 사탄아, 네가 알기 전에 내가 안다. 네가 시험하는 이러이러한 조건은 나에게 해도 안 된다' 하고 방패막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예수는 고난의 길을 간 것입니다.
예수가 죽어간 것은 역사적인 수고를 통하여 세워진 증거자들이 하늘이 자기들을 불러 세워 메시아를 만나게 한 본의의 목적을 몰랐고, 예수가 왜 태어났는가 하는 전체적인 목적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몰랐기 때문에 메시아는 메시아대로,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증거한 사람은 증거한 사람대로 전부 다…. 그러니 예수는 일시에 이 전체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메시아로 태어난 예수님께서는 오신 그날부터 하늘 법을 세워 놓고 하늘을 섬겨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을 섬기는 무리를 세워놓지 못했어요. 또 자기를 모실 수 있는 무리를 세워야 했습니다. 하늘 법은 제쳐놓고, 1차적으로 해야 할 사명을 2차적으로 남겨 놓고, 이 땅 위에 민족을 세워서 그 민족에게 1차적인 사명을 책임지우려고 했는데 민족이 책임못 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하늘을 모셔야 할 1차적인 사명을 2차로 돌리고 지상에서 민족 대신 원래 민족이 져야 할 1차적인 책임을 완결짓기 위해서, 인간이 예수를 모셔야 할 그 책임을 다시 하기 위해서 나섰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났느냐? 만일에 예수 앞에 아들이 될 수 있는 자들이 있었더라면, 만일에 예수 앞에 양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만일에 예수 앞에 참된 종이라도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예수는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본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세워서 3년노정 기간에 복음의 말씀을 선포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예수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을 모셔 놓고, 만우주의 왕의 황태자로서 하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하늘의 아들로서 효도해야 할 거룩한 지성소의 분야를 지켜야 할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예수(지성서) 앞에 성소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 입장에서, 예수의 울타리가 될 수 있는 내적인 모든 조건들이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있어서, 4천 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늘의 소원과 일치가 되어 마련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치의 기준과 통하여서 예수 앞에 선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던들 예수는 고난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인데,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앞에 종의 책임도 못하고 양자의 책임을 못하고 아들의 책임, 즉 가인적인 아들의 책임도 못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 혼자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4천 년간 민족적인 기반으로 닦아진 선민권이 깨짐으로 말미암아 예수 자신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1차적인 사명, 하나님 앞에 효도하고 하나님 앞에 만국을 치리하여 영광을 돌려야 할 사명을 하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책임을 대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천지를 호령할 수 있는 만왕의 왕의 권세를 갖고 간 것이 아니라 종의 종의 길을 간 것입니다, 종의 종의 몸으로. 이 땅 위에 사탄의 혈통을 받아 태어난 인간들 앞에 나타날 때 부모의 자격을 못 가지고 왔어요. 어떤 주인의 자격도 못 가지고 왔어요. 종의 종의 몸으로서 나타나 가지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고, 슬픈 사람들의 동지가 되고, 비참한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최하의 자리에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그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그들을 위하여 피땀 흘려 나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그리하여 종의 종 가운데 종을 만들고, 종 가운데 양자를 만들고, 양자 가운데 가인적인 아들을 만들어 가지고 복귀의 조건을 세워서, 즉 타락성 근성을 근절하고 탕감복귀 했다는 조건을 세워서, 참된 아벨적인 아들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자들을 가인의 위치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의 위치를 설정해서, 예수를 중심삼고 일체가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아들의 책임을 완결지었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완결짓고야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맞는 그 단계는 종의 종의 시대를 지내고 종의 시대를 지내 가지고 양자의 혜택권입니다. 그 권내에 예수가 옴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것이 전부 다 깨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다시금 종의 종에서, 종으로서, 양자로서 가인적인 아들을 세워 가지고 직계의 자리를 아벨의 자리에서 완결지어 가지고 가인 아벨의 승리적인 조건을 세워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을 완결지어야 했던 것입니다. 비로소 형제적인 인연을 세워 놓고 이것을 종결지음으로써 부모의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축하하는 우리는 예수가 그런 자리에 서지 않아야 할 분이요,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아야 할 분인데 그러한 자리에 태어났다는 것이 원통하고 분하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4천 년 동안 수고하시고, 수많은 우리 선조들을 희생의 자리에 내세워 가지고 원수들 앞에 조롱받고 짓밟히는 자리에 내세우면서, 4천 년 동안 수고한 결과가 이것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느냐? 이게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할 수 있는 방 한 칸이 없어 가지고 마굿간에서 밤을 지내야 할 입장에 세우는 것이,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이 본래 계획하신 섭리의 뜻이냐 이거예요. 아니예요.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책임을 못 했기 때문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에 오게 될 때 하나님의 모든 소원과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대하여 만민 앞에…. 그 구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천 년 수만 년 걸려야 될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모든 슬픔이 그냥 연속되는 것을 잘라 가지고 막아 버리기 위해서 오신 분이예요. 또, 시대적 권내에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일생을 잘라 가지고, 고통의 연속적인 생활을 잘라 가지고 행복의 연속적인 생활을 우리에게 갖다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요, 더 나아가서는 과거의 선조들의 원한까지도 해원성사해 주기 위해서 오신 분이예요.
예수가 오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자리보다도 더 좋게 되고, 천하를 전부 다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하나님의 소원성취가 잎시에 큰것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하나에서부터 이루어 나가는 것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라고 하는 것이 수많은 왕들을 만들어 놓고 되는 것이 아니예요. 참된 왕을 세워놓고 그 왕을 모실 수 있는 무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왕의 왕의 모델이예요. 많은 왕을 만들어 가지고 그 왕들 가운데 하나를 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을 완전한 왕으로, 완전히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왕으로 세워 나가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모든 실력적인 기준 앞에 안팎으로 빈틈이 없는, 모든 인격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냈던 분이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이예요.
예수는 메시아라는 이름, 구주로서의 이름은 남기고 갔지만 만왕의 왕으로서의 이름은 성사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만민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간 예수는 구주로 죽어 갔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구주로서 죽어갔습니다. 그렇지만 만왕의 왕으로 영광의 자리에 등극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을 영광의 자리에 해방시킬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동참시킬 수 있는 왕의 권위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는 성사를 하지 못했어요. 그 목적은 성사시키지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시 와야 되는 겁니다. 구하다가 잘못되었다 그 말이예요. 힘이 부족하여서 지쳐서 죽어 갔어요.
영과 육을 합하여 구원하려 했는데,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적인 분야만 구하고 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구주로서의 책임은 어느 정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만왕의 왕으로서의 책임은 못 했다 이겁니다. 따라서 이것이 연장되어 내려와서 앞으로 재림시대에 와 가지고 만왕의 왕으로서, 성사해야만 이루어 놓아야만 하늘의 뜻이, 예수의 뜻이, 인류의 뜻이 완결되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온 목적을 우린 단단히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과 예수가 온 목적은 무엇이냐? 또, 우리 인간의 목적이 무엇이냐? 아무리 우리 인간이 크나큰 소원성사를 바라고 있으되, 우리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예수가 없어서는 안 돼요. 즉 메시아가 없어서는 안 돼요. 이것을 철두철미하게 아는 자리에서 예수는 그런 사명과 그런 책임을 갖고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우리 선조들이 그 사명 앞에 협조자가 못 되었어요.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동방박사가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이 예수 앞에 영광의 예물이 못 되고 말았다는 거예요.
그런 예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목자가 천사와 더불어 예수 앞에 송영하는 그 송영이 문제가 아니라 송영하는 사람이 문제예요. 세례 요한이 증거하는 그 증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증거하는 실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또, 여러분 자신들이 이 예수님의 탄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노래가 문제가 아니고 기도가 문제가 아니예요. 축하하는 여러분 자체가 문제예요. 즉 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축하하느냐, 직접적인 입장에서 축하를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를…. 예수가 온 목적을 알아요. 그는 하늘을 대해서는 황태자요, 만민을 대해서는 참부모요, 법을 중심삼고 하늘의 가정이 출발함으로 말미암아 하늘나라의 보좌가 이 땅에 임재하여 하나님은 지성소가 될 것이요, 예수는 성전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이것이 하나의 가정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과 일치된 예수, 예수의 혈통을 중심삼은 직계, 직계를 위하는 충성하는 모든 만민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내신 목적이요 예수가 이 땅에 와서해야 할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는 혼자 가다가…. 아들딸들도 못 보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 성탄 축하일,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슬픈 날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날을 생각할 때마다 여러분은 뼈에 어린, 이런 간곡한 심정과, 형용할 수 없는 비장한 내적 결의와 더불어 역사를 후회하고 시대를 원망하고 예수를 따르던 세 제자를 중심한 열두 제자에게 책임추궁 하겠다는 결의를 해야 돼요. 그다음에 십자가 도상에서 조롱하던 로마병정을 창을 들어 예수의 가슴을 찌르게 하던 이 사탄을…. 우리는 이런 입장에서 분통한 심정을 가지고 역사적인 선조들의 부족했던 것을 오늘 이 시대에 완결짓고, 선조들이 하지 못했던 모든 사명과 책임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우주적인 실체로서 어렸을 적부터 머리 숙이고 예물을 드리던 그 대신 실체로서 30 평생을 지나서 증거하던 세례 요한의 실체가 되어 가지고, 이 원수 세계 앞에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점점 울타리를 넓혀 가지고, 세상의 어떠한 대원수 사탄도 침범할래야 침범할 수 없는 울타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하늘이 소개해 보여 주던 평화의 왕궁을 만들어 평화의 왕자로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효자가 될 수 있는 생활이념을 세울 수 있게끔 해 드리지 못함에 대해 분하고 원통함을 느끼며 축하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축하하는 자가 완전히 주의 탄신을 축하하는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이 역사상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나와서 축하한다면, 그 축하하는 사람은 예수의 탄신으로부터 예수의 생애, 예수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2천 년의 한을 전부 다 책임지고 축하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어요. 그러한 자리에서 축하하고, 그러한 자리에서 책임지고, 그러한 자리에서 책임하기 위해서 원수와 싸우는데 있어서 후퇴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만 축하하는 자로서, 하늘의 아들딸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개성완성, 그다음에 상대완성, 그다음에 세계완성…. 사탄이 3시대험을 할 때에 돌을 갖고 시험하고,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시험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개체완성을 하면 반드시 상대이상을 완성해야 돼요. 신부를 택해야 돼요. 신부성을 복귀해야 된다 이겁니다. 신부성을 복귀하여 그다음에 자녀를 세워 가지고 그 자녀를 전개시켜 나라를 만들고, 나라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를 복귀해야 돼요. 내용은 간단해요. 이것이 예수께서 싸워 원수들과, 이겼어야 할 내용이예요.
오늘날 우리들은 반대로 `나는 이러한 존재이고 너는 이러한 존재가 아니냐? 예수가 너를 이끌어다가 시험을 하고, 너를 끌고 다니면서 명령을 해야 할 입장이 아니냐? 그런데 내가 너한테 시험을 받아?' 라고 하면서 반대로…. 이 분한 것을 반대로 돌려줘야돼요. 사탄 앞에 시험받게끔 내놓여겼던 우리 선조들의 분함을 우리들은 탕감복귀해야 돼요. 원수 사탄이 예수를 시험할 수 있는 아무런 천적인 자격이 없어요. 그는 본래 이러한 자였고 근본이 이러이러한 모든 인류 앞에 전부가 원수적인 입장에서 우리 선조를 유린했고, 역사적인 전통을 유린했고, 혈통을 유린한 존재예요. 그런자가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시험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당당하게 항의를 해 가지고 답변이 없게 되면 제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그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책임자로 부터….
그러나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왔다가 슬픔을 남겨 놓고 갔기 때문에 다시 재림의 한날을 고대하면서 수많은 선조들이 2천 년 동안 수고하면서 죽음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십자가 도상에 내놓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3년 공생애노정에 있어서 종의 몸으로서 양자, 혹은 직계 자녀의 자리에까지 나가기 위해서 찾았던 모든 것을 전부 다 다시 인류에게 나누어 주게 됐어요. 그러나 이것을 영적인 기준에서만 닦고 갔으니 지상세계에서는 적용이 되지 않는 거예요. 어떠한 조건, 종의 권한을 갖더라도, 종의 입장에 있는 존재가 희생을 당하더라도 영적인 기준이니, 육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그 고통을 받고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간섭할 도리가 없다는 거예요, 죽고 난 후에나 간섭하지. 구원이 영적만인 겁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고통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사탄이가 '따라와라' `따라와라' '따라와라' 할 때 `따라가마. 네가 가는 데는 어디든지 가겠다'라고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는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죽어 나가자빠지는 그 이상의 고통의 자리에 가서야 비로소 하늘로부터 간섭을 받는 거예요. 이것이 복귀예요.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이렇게 구원섭리해 나온 거예요.
우리 인간들이 하늘편과 사탄이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는 환경에 있으면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왜? 영적 구원만 세웠기 때문에. 그렇지만 하늘은 사탄에게 '백 번 죽고 천 번 죽더라도 하늘을 따라 나를 믿는 자녀들을, 믿는 신자들을 내가 자랑하고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해라. 그렇지만 이런 고난의 자리에 들어가도 나를 믿고 나를 배반하지 않으니 이 고난의 자리까지 들어와서 같이 맞을래?' 그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적이요 민족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이요, 시대가 흐르면 그에 따라 핍박의 범위가 점점 커 간다는 겁니다. 핍박도 많아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가 가면 갈수록 기독교 역사는 세계사적인 비참한 역사로 종결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위가 점점 큰 죽음의 고개를 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휩쓰는 죽음의 세계가 오더라도 그 세계를 무난히 돌파할 수 있고, `천 번 만 번 죽더라도 나는 간다' 하게 될때, 세계를 지배하는 그 세계적인 이념권 내를 향하여 믿고 나가는 그 신앙 자, 그런 자리에 무난히 열번 백 번 죽더라도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에게서 사탄이 떠난다는 거예요. 예수가 영적 구원의 이념을 세워 놓고 지금까지 지상에서 섭리해 나오는 애통하고 원통스러운 사실이…. `주여, 구해 주시옵소서. 이 억울한 원수를 갚아 주시옵소서' 하면서 피 흘리는 자리에서도 사탄이 붙들고 있어요. 죽기 전까지 붙들고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피 흘리고 난 후에야 하늘이 채 가는 거예요. `이 대가를 치러라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기독교 역사를 보면, 대부분 순교의 피를 통하여 반드시 그 대가를 받아 가지고 세워 나온 거예요.
더우기 오늘날 통일교회를 두고 보면 우리 통일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세계적인 이념이요 천주적인 이념을 갖고 나오지만서도, 천주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더라도, 오늘날 이 책임을 지고 이 길을 가야 할 인간들이 백 번 죽고 천 번 죽더라도 하늘편에서는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이거예요. 개인적인 핍박, 개인적인 환난이 오려면 와라 이거예요. 가정적인 핍박, 가정적인 환난이 오려면 와라 이거예요.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핍박과 환난이 오려면 오라 이거예요. 이 길에서 사탄이가 나를 참소해서 따라올 수 있는 조건을 남겨 가지고는 거기에서 가지 못하고 돌고비를 도는 거예요. 돌고비를 세 고비만 돌다가 못 넘어가면 깨져 나가는 거예요. 복귀의 길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가 얼마나 슬펐겠나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지상에 육적 구원섭리가 벌어지면 하나님이 간섭할 수 있는 때가 옵니다.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이 신앙길을 가는 데 있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죽음을 각오하고 실체를 갖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 실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간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반만 잡히면, 실체 구원섭리가, 영적 구원섭리보다 빠르게 섭리의 뜻으로 벌어져 나간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2천 년 역사노정에서 예수를 중심삼고 민주진영을 이루어 나왔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이 육적 구원섭리의 기반을 닦아 나오면 빨리…. 하늘 가정이 서게 되면 사탄 종족이 망합니다. 그 종족을 친다구요. 개인이 서게 될 때는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서게 될 때는 종족을 친다구요. 또, 종족이 설 때는 민족을 치는 거예요. 그렇게 앞놓아 가며 치는 때가 온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우리 실정을 가만히 보게 되면 이상도 하다는 거예요. 우리 교회를 중심삼고 큰 행사를 시작하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역사가 나타난다구요.
과거에는 개인도 치고 가정도 치고 마음대로 쳤어요. 개인이 해방을 못해요. 개인이 맞고 가정이 사는 데 있어서 개인시대에서 가정시대까지 같이 겸하여 끌려 나갔어요. 가정시대 종족시대도 겸하여 끌려 나가는 거예요. 종족시대와 민족시대, 민족시대 국가시대, 국가시대와 세계시대도 한꺼번에 끌려 나가는 겁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재림시대에 와서는, 해결지은 분야에 대해서는 보호를 해야 되는 거예요. 해결된 그 앞의 단계에 있어서는 도리어 하늘이 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겁니다.
그건 왜? 복귀섭리에서는, 원래 외적인 분야인 몸뚱이를 짓고 영을 지었기 때문에, 가정이 생겨나면 종족적 사탄기반을 가질 수 있어요. 사탄세계의 기반을 닦게 되니 그걸…. 이런 섭리를 하늘이 해주려고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때가 온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런 시대를 대하여 준비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 나와야 할 텐데, 오늘 여러분이 그런 생활을 못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영적 구원섭리 역사를 해 나오는 2천 년 기간에 있어서 예수와 성신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보라구요. 정성을 다하고 주의 올 날을 고대하고 천국의 이념을 그리워하면서 죽음의 길을 달려 이슬같이 자기의 목숨이 떨어지는 자리에서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그런 고통의 자리에 있어서…. 사탄이 붙들고 따라 나오겠다고 할 수 있는 한계적 권내까지는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그걸 넘어선 뒤에, 죽고 난 후에 처리하는 것이 영적 구원이예요. 안 그래요?
지금까지 세계에 널려 있는 만민은 재림의 한날을 고대해 가지고 말하기를 `말세다'라고 합니다. 전부가 그래요. 이 말세를 구할 사람이 천지간에 빨리 와야 돼요. 그러한 사조는 민주주의도 아니요, 공산주의도 아니예요. 하늘과 땅,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통할 수 있는, 관철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갖고 세계를 하나로 수습할 수 있는 권한의 주인공이 나타기를 바란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를 않았어요.
보라구요. 이스라엘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주권국가를 이루어 가인적인 입장에 있는 세계적인 로마를 아벨 국가인 이스라엘 민족 앞에 굴복시켰더라면, 로마는 천사장 대표형으로서 예수 앞에 굴복하므로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이거예요. 로마가 세계를 제패한 그때에 있어서 실체적인 실체의 대 사탄은 무엇이냐? 실체기준에서 이 땅 위에 등장한 것이 원수 천사장이예요. 이것과 대결하는 자리에 있어서 예수가 국가적인 기반만 닦았더라면 로마는 넘어가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이 단결해 가지고, 유대 나라가 안팎으로 하나되어 가지고, 외적인 이스라엘 민족과 내적인 유대교가 하나되어 가지고 예수가 여기에 중심이 되었으면, 여기에서 하늘이 예수를 성전 삼고, 이게 하나님의 집이 되어 가지고, 하나의 성소가 되어 가지고, 성전이 되어 가지고 세계를 대신하여 법궤행사로써 세계를 정복하는 거예요. 원수 사탄의 화신체로 나타난 로마의 지도이념 전부를 대신한 것이 빌라도면 빌라도인데 그때 당시의 빌라도가 정복당한다는 거라구요.
그때 지리적으로 볼 때 로마와 유대 나라 사이에는 지중해가 있어요. 지중해를 거쳐가게 돼 있어요. 무슨 수단으로든지 벗어나려 했으면 벗어날 수 있는 입장이라는 거예요. 또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4백 년 동안 수많은 나라 앞에 압박을 당했기 때문에, 전부가 민족 정신으로 단결할 수 있는 때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때를 포착하여 로마 나라를 대하여 반기를 들고 나설 수 있는 그런 때였어요. 그때는 로마의 모든 정치체제가 유대 나라를 마음대로 지휘할 수 있는 최고의 기준을 넘어 가지고 퇴폐의 길을 향하는 그런 때였어요. 역사적인 배경이 그랬기 때문에 예수를 위주로 하여 단결만 했더라면, 그때에 유대 나라를 중심삼고 반드시 문제가 벌어졌을 거예요.
그리하여 예수가 주장하는 신앙이념을 로마까지 반영시켜 가지고 문제를 제시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되었으면 로마에게 점령되어 있는 부근의 약소국가는 반드시 유대 나라를 기준으로 하여서 움직일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되어 있던 시대였어요. 그러니 실체적인 천사장 국가로서, 원수를 굴복시키기 원한 실체적인 천사장 국가로서 로마를 세워서 예수가 원하시는 세계적인 이념을 세워 나갔던들, 세계는 벌써 그 나라를 이루었을 겁니다. 뜻을 제대로 세워 나왔으면 예수와 같은 그런 작전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 한이 되는 겁니다. 이게 문제예요.
이제 우리 통일교 신자들은 이 삼천만 민중을 앞에 놓고 이스라엘 선민권을 대신하고, 전국의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표할 수 있고 유대교를 대표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혁신적인 새로운 사상을, 신앙이념을 세워 나가야 할 단계에 들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를 대신하여 나가는 동시에 우리 교회를 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안팎을 넓혀 나가는 겁니다. 그런 입장에 처해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세계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떠한 나라냐? 미국은 천사장 국가입니다. 이는 하늘 뜻 앞에 반기를 드는 천사장이 아니라 하늘 뜻 앞에 사명을 할 수 있는 천사장이예요. 형로 보면 천사장은 무엇이냐? 가인이예요. 형으로 보면 가인적인 입장인데 아벨적인 존재 앞에 굴복해야 돼요. 그런 입장에 세워 가지고 비로소 사상적인 기준에서부터 이념적인 기준, 생활적인 기준, 환경적인 기준 앞에 가인이 `아, 못 견디겠다!' 할 수 있는 기준을 아벨이 세워 놓아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벨이 드리는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가인보다 더 충성을 해야 돼요. 양을 치되 일년 사시절을 중심삼아 가지고 매일같이 정성을 들인 양을 잡아야 된다는 거예요. 농사도 그래요? 농사짓는 것은 그때 한때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물을 세우는 그때에도 춘하추동 사시절, 일년 전부를 통하여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성들이는 데 있어서 가인보다 앞서야 되고, 그다음에 아담 앞에 효성을 다하는 데 있어서 가인보다 앞서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하늘의 뜻을 대하여 아담가정에 선의 뜻이 있다는 걸 알고 축복의 은사를, 하늘의 섭리의 뜻을, 즉 자기를 통하여 미래에 소원하는 혈족을 염려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까지 수습하는 입장에 선 아벨적인 존재로서 그 입장을 대신할 수 있는 제물이 되어야 돼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이 아벨 국가로서, 온 세계를 중심삼고 민주세계를 중심삼고 이스라엘권 내에 서기 위해서는, 한국이 그들을 못 당하겠다 해야 돼요. 유대교권을 중심삼은 레위족속과 같은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을 위하여 충성하고 모시는 데 있어서 세계 모든 민족으로부터 '당하지 못하겠다' 는 말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또한, 그 생활에 있어서 그들을 못 당하겠다 해야 돼요. 정성을 들이는 데 있어서 `아, 우리는 못 당한다' 하고,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아, 우리는 못 따라가겠다' 해야 돼요. 영적인 사탄이가 실체로서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후퇴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간섭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가인 아들이 아벨적인 아들의 행동 앞에 `아, 나는 못 따라가겠다. 아, 머리 숙인다' 할 수 있어야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생각은 이것들을 잡아서 하늘편 보금자리에 있어서의 참다운 아들의 실체로서 참다운 제단을 쌓고 참다운 제물을 드리는 동시에, 이들이 행하는 행동이나 이들이 모으는 정성 등 안팎에 있어서 세계 어느 국가, 어느 교회, 어느 교직자도 못 따라간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것이 개인적으로 가정을 대하고, 가정적 입장에서 종족을 대하고, 종족적 입장에서 민족을 대하고, 민족적 입장에서 국가를 대하고, 국가적 입장에서 세계를 대할 수 있다는 입장에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한민족이 만일 뜻 앞에 선 민족이 되게 될 때, 세계 만방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들, 수많은 주권들 앞에 참다운 아벨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중심삼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나 가정에 효도하는 것이나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나 어느 국가도 따라갈 수 없는 그러한 민족이요, 그러한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전통을 세워 놓아야 세계는 몽땅…. 그리하여 `저분들과 우리와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죽어 간 이후 영적 구원섭리를 해오던 2천 년 동안 얼마나 슬픔의 역사를 거쳐왔는가 하는 사실을 잘 알아야 돼요. 영적 구원섭리를 하기 위해서는 죽음권 내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죽어 가지고 하는 거예요. 죽기 전까지는 변할 수 있으니까. 그전까지는 하늘이 간섭할 수 없어요. 사탄권 내예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재림시대인 육적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 최고의 고통, 세계사적인 고통길을 맞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고통, 가정적인 고통, 사회적인 고통, 국가적인 고통, 세계적인 고통입니다. 일시에 부딪치게 되는데 무난히 넘어가야 돼요. 넘어가는 데 있어서는 혼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 말이예요. 가정을 끌고 넘어가야 됩니다. 최소 단계인 가정을 끌고 넘어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오늘날 1960년도를 기준삼고 제일 핍박이 심할 때에 가정을 세운 거예요. 제일 핍박이 심할 때, 최고의 핍박의 자리에서 가정을 짊어지고 간 거예요. 어려운 그 고개를 넘어가야 돼요.
인간세계에서 무엇을 바라는 대다수의 사람은 전부 다 떨어질 수 있는, 돌아설 수 있는 거예요, 국가가 반대하지 사회가 반대하지 료회가 반대하지 가정이 반대하지 동지가 반대하지 아들딸까지 전부 다 반대하는 거예요. 사탄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전부 반대하는 상황에서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의 백성에게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는 4백 5십인이나 여로와의 서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다' 하던 거와 같은 입장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이요….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은 민족적인 기준에 있어서 국가적인 관념을 택해 나가는 거예요. 통일민족이예요, 통일민족. 이래 가지고 하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누가 아벨이냐? 천하가 바라볼 때 누가 아벨이냐?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주권자들이 아벨이냐, 통일교회가 아벨이냐 하는 것을 사탄도 증거하게끔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이 여러분을 지도하는 방침입니다.
누가 아벨이냐? 그거 사탄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영적 사탄이 구원섭리를 하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따라갔지만, 오늘날 실체 사탄들은 통일교회 사람들을 못 따라갑니다. 남편이 부인 가는 데 못 따라갑니다. `너 가는 데 내가 못 가겠으니 갈라지자' 해 가지고 갈라지는 거예요. 못 따라가요. 지금까지 그 놀음 해 나오는 거예요. 암만 해도 못 간다 하고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원망스럽겠어요? 그러니 `통일교회 선생님, 나 못 갑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죽지만 말라' 해 가지고 이만큼 올라왔어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세상의 향락을 바라고 세상의 출세를 바라는 사람, 세상에서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통일교회에서 못배겨납니다. 때가 지나면, 안 가면 안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실체적인 주체를 세워서…. 오늘날 우리의 가는 길 앞에 있어서, 통일교회 앞에 있어서 이 민족이 그런 길을 가야만 구원받을 것인데, 살아날 것인데 이들이 분별해 갈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아벨은 아벨로서 하늘을 대하고 가인은 아벨에게 굴복해야 될 것입니다. 굴복하지 않을 때는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치는 거예요. 과거에는 가인한테 아벨이 맞았지만, 이제는 하늘이 아벨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뀌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망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망하지 않아요.
예수는 지금까지 영적 구원섭리로부터의 재림의 한날을 세워 가지고, 맨처음 오셨던 소기의 소원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온 세계에 종주들을 만들어 놓고, 이걸 재차 수습하는 길로써 영적 구원섭리의 기준을 실체 기준과 연결시켜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그런 것을 알았으니, 배후의 모든 역사적인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고, 오늘날 나를 중심삼은 시대적인 해결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이고, 과거 현재를 해결지은 그 기반 위에 미래의 내가 승리적인 터전을 갖고 나타나야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만큼 되어 있으면 그 알고 난 입장에서 역사적인 가치와 시대적인 가치를 지닌, 그 모든 것을 갖춘 하늘의 실체로서 과거 현재를 심판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미래의 주인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수양이니 혹은 모든 윤리는 과거의 기준과 현재의 기준을 맞춰 나가는 것입니다. 현사회 법도에 어긋나느냐, 과거의 역사적인 전통에 어긋나느냐 하는 이걸 봐 가지고 현실의 모든 것을 심판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있어서 과거적인 가치와 현재적인 가치, 즉 예수가 이 땅 위에 오기까지의 과거적인 가치와 당시 예수를 중심삼은 현재적인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소원하던 것이 영적 복귀 실체로서 현재까지 연장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 6천 년의 과거 역사적인 가치와 이 시대적인 현실의 가치를 종합한 기대 위에 선 실체가 되지 않고서 아니고는 역사적인 사탄과 시대적인 사탄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을 놓고 하늘이 바라는 참된 축하를 할 수 있는 참된 사람을 찾는다 할 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역사만을 존중시하는 신앙자들은 필요 없습니다. 과거의 종교에서는 믿는 사람이 전부 다 옛날의 석가모니 찾아가고 예수 찾아가는 종교였습니다. 그 기독교는 세계로 뻗어 나왔고, 과거의 모든 세계적인 종교의 현실의 무대를 크게 벌여 가지고 나오니만큼 현실을 포섭하고 현실을 융합시키고 그것을 포괄해 가지고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을 지녀야 돼요. 그런 기준을 세우고 나와야만 영적 완성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영적 복귀를 해 나오는 종교인 것입니다. 주님만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찾아가 가지고 다시 나와야 수가 납니다.
그러한 과거 현세를 통합할 수 있는 가치적인 실체는 미래의 세계, 미래의 터전과 현실적인 생활적 시대권의 인연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세계는 현실적 생활의 가치로 말미암아 터전이 조성된다는 것을 확신해 가지고, 여기에 반대되고 부합되지 않는 것은 분별시켜 가지고 처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현세의 우리의 입장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예수의 탄일을 축하할 때, 비로소 그들이 하늘이 소원하시던 새로운 실체, 예수 앞에 설 수 있는 목적의 실체요, 하늘이 소원하시던 만민을 대표한 축하의 한 실체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오늘 이 축하하는 자리에서 물론 지나간 과거를 축하할 것입니다. 축하한 과거의 내용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에 축하한 것이 본의에 어긋난 것임을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그 본의를 알지 못하고 축하하는 것을 슬퍼하고, 과거의 슬픔과 현재의 슬픔을 느끼면서 과거의 슬픔과 현재의 슬픔을 청산해서 미래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기원이 되어서, 영과 육이 합한 메시아의 탄생의 한날을 축하하고 고대하던 나요, 그것을 바라던 나요, 그것을 대하던 나요, 그것을 세우기 위한 나로서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자세로서 축하해야만 비로소 이 탄신일을 완전히 축하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고, 예수가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고, 우리 인간 대표로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어 앞으로 우리 후손들 앞에 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개체는 어떠해야 되느냐? 동방 박사, 세례 요한을 심판해야 돼요. 내 한 개체는 역사적인 선조들이 수난길을 가면서도 성취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실체로서 해원성사할 수 있는, 슬픔을 당하며 죽음길을 가면서 쓰러졌던 실체의 몸뚱이를 대신하여 섰노라 할 수 있는 자로서 축하하는 축하의 한날을 가져야만 정상적인 성탄절을 축하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바라보게 될 때,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주장하는 기준과 우리들이 주장하고 있는 기준에 있어서 얼마나 거리가 있느냐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길에서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축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만, 통일교회 이념을 가지고 민족과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 여기에 대한 슬픔을 느끼면서, 우리가 하늘이 바라는 소원 앞에서 아직까지 책임완결을 못 지었으므로, 하늘이 바라는 소원 앞에 슬픔이 남아 있으니, 내가 그 슬픔을 더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 앞에 위로의 조건을 무엇으로 세울 것인가 하는 충성의 마음과 효성의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참다운 탄일을 축하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가야 되겠고 내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지난날에 하늘이 보호하신 터전이 있었다는 것을 잊는 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을 바라보면 내 자신의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스스로 조심하고 스스로 부족한 것을 느끼면서 지난날의 하늘의 가호보다 더 큰 가호가 있어야 할 것을 느끼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의 생활을 수습하고 생명의 노정의 방향을 수습하여, 하늘이 고이 바라시던 소원의 동산까지 지체함이 없이 가야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 위에 와서 그런 길을 가기 위해 얼마나 애썼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그 가야 할 길을 남기고 슬픈 복귀의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옵고, 오늘 저희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지금까지의 과거와 현재의 세계와 현재를 통한 미래까지 저희 자체들이 움직이는 것이 하늘의 기쁨이 되고, 예수와 성신의 기쁨이 되고, 미래의 후손들 앞에 조상으로서 영원히 축하받을 수 있는 환경을 다져야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하지 않고는 오늘날 하늘이 세워 놓은 통일교회의 사명을 책임진 자로서 아버지 앞에 세움받을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마음을 가지고, 이 축하의 제단에 참석한 자로 취급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벨적인 존재가 얼마나 힘든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먹어도 가인보다 더 조심스러운 음식을 먹어야 되겠고, 입어도 가인보다 더 조심스러운 의복을 입어야 되겠고, 살아도 가인보다 더 조심스런 입장에서 하늘을 모시며 살고, 또 가인을 지도해야 할 것이 아벨의 입장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가인보다 사방을 중심삼은 몇 배의 노력과 충성을 더해야 된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하늘을 모실 수 있는 세계적인 아벨로 와 가지고 세계적인 가인 대해서 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책임을 진 것과 마찬가지로, 6천 년 역사상의 종말을 대하는 이 시대에 있어서 통일의 신도들은 하늘적인 입장에서 이 세계 30억 인류의 가인 앞에 본이 되고, 30억 인류를 대하시는 아버지의 수고 앞에 효자의 명칭을 가질 수 있는 아벨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은 평화의 왕궁, 평화의 왕국, 평화의 의인을 중심삼아 가지고 살 수 있는 본연의 세계를 찾아 나가기에 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것을 내 본 직업으로 알고, 이것을 내 본 생활의 목표로 알고 싸워 나갈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들딸로 서야만 하늘이 원하시는 소원, 예수가 원하시던 소원, 만민이 고대하던 구세주를 맞는 환희의 터전을 마련할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러한 각자들로 다시 한 번 아버지께서 이 새해에 다짐하여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이 이 한 해와 이 남아진 생애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통일의 무리들이 사는 방향 위에 아버지의 영원한 가호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의 성호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