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러분들이 오늘 총회를 끝마치면 각자 자기가 결의한 목표를 향해서 움직이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진대, 이 뜻이 누구로부터 나온 것이냐?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뜻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개인이 그러한 동시에 가정도 역시 뜻을 가져야 되겠고, 한 민족이면 민족도 역시 뜻을 품은 민족이 되어야 되겠고, 한 국가면 국가도 역시 뜻을 품은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세계면 세계도 역시 뜻을 품은 세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올라가게 된다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는 그 하나님도 역시 뜻을 품으신 하나님이라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뜻의 유래와 뜻의 전통과 뜻의 원천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중심이 되느냐,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중심이 되느냐? 즉, 피조물이 중심이 될 것이냐,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께서 중심이 될 것이냐?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그러면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이 우리 인류의 역사적인, 혹은 시대적인, 혹은 미래적인 모든 뜻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그 뜻은 누구를 위한 뜻일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 뜻일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피조물을 위한 뜻일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 뜻은 하나님을 위한 뜻도 되거니와 피조물을 위하는 뜻도 될 것입니다.
이 뜻이라는 것은 개체적인 입장에서 시작하여 그 개체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성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고로 주체이신 하늘이 계신다 할진대 그 하늘 앞에 반드시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땅, 혹은 인류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연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은 하나님을 위한 뜻이 되는 동시에 우리 인류를 위한 뜻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창조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했느냐?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이 피조만상을 지으시고, 혹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친히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고, 인연을 갖고 있는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뜻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아버지의 뜻을 우리 앞에 드러내 놓고 바라보게 될 때에 그 뜻은 어떠하냐? 그 뜻 가운데는 큰 세계, 우주도 들어가지만 물론 하나님 자신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기에 등장해야 되고, 그 뜻 앞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이 등장해야 되고, 즉 내가 등장해야 되고, 나를 중심삼은 생활무대, 내가 살 수 있는 생활환경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전체적인 뜻도 뜻이지만 그 뜻 가운데서 내 개체를 중심삼고 나에게 요구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시는데, 내 자체의 생의 목적을 중심삼고 주시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자신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되느냐? 완전한 자신이어야 돼요. 내 자신의 생활은 어떠한 생활이어야 하느냐? 완전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디를 기준해야 하면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야 하고, 창조주를 기반으로 하여야 하고 창조주를 표본으로 하여야 합니다. 그 표본을 중심삼고 이념적인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하늘만이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있고, 완전한 생활적인 표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뜻 앞에 선 완전한 개체로서 완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거기에는 고통이 개재해서는 안 될 것이요, 희락과 만족, 혹은 행복과 영광의 상징으로 나타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의 모든 개체를 들고 나선 곳곳마다 그는 영광의 상징이요, 해방의 상징이요, 자유의 상징이요,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됩니다.
또, 그와 같은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무대는 그러한 여건들을 배경으로 하여 그 환경에 또다시 인연을 맺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서는 자기가 제일 원천, 혹은 제일의 동기가 되야 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한 입장에 선 개체로부터, 그러한 입장에 선 가정, 그러한 입장에 선 사회, 그러한 입장에 선 민족ㆍ국가ㆍ세계ㆍ천주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을 이루려는 것이 아버님의 뜻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완전한 개인과, 완전한 가정과, 완전한 사회와, 완전한 국가와, 완전한 세계, 이러한 모든 형태들이 완전한 생활환경을 갖추어 가지고 이것이 아버지의 생활 감정과 일체될 수 있는 그런 세계, 이것이 아버지께서 구상하시던 이상적인 세계요, 이것이 아버지께서 세우시려던 내적인 뜻이었음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볼 때에 아버지 앞에 아버지를 위주로 한 사람이 있었느냐? 아버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개인이 있었느냐? 그런 개인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으나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입장에 선 인류의 시조는 그러한 입장에서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찾고 있는 참다운 개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사회,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가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구상하였던 중심의 뜻이었으나 그 뜻을 대할 수 있는 존재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무엇을 구상하셨을 것인가?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을 길이길이 자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길이길이 즐길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길이길이 행복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그러한 세계, 그런 천주를 구상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하나님이 `좌' 하면 전체가 `좌' 하고, 하나님이 `우'하면 전체가 `우'하는 그런 세계, 수천 수만이 하나의 모습을 모방하여 되어진 그러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원리를 통해서 배운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상징세계가 있는 것을 알고, 형상세계가 있는 것을 알고, 실체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 자신에게는 마음이라는 존재가 있고, 마음을 위주로 한 내연의 인격적인 개체가 있습니다. 그 개체를 중심삼은 거기에는 반드시 상대적인 이념을 대동하고 들어가는 거예요. 내 몸뚱이를 중심삼고 보면, 마음이 있는 동시에 몸이 있고, 몸이 있는 동시에 마음이 있어요. 여기에는 반드시 대응적인 하나의 이념을 내포하고 존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3세계의 인연을 거쳐 가지고 하나의 목적의 기반을 갖추게끔 되어 있는 고로 사람은 이러한 조건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고 합시다. 길을 가는 그 사람을 두고 볼 때에 아무개라는 실체가 걸어가는 것 같지만 그 실체가 걸어가는 데는 내적 사람인 정신이 먼저 걷고 있다는 거예요. 정신이 걷고 있는 거기에 실체가 걷는 것이요, 실체가 걷는 거기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걷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의 이념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을 중심삼은 인간은 하나님의 몸과 마찬가지요, 몸과 마찬가지의 실체를 상징형으로 그림자와 같이 보내 준 것이 이 우주만상입니다. 그러면 이 우주만상을 무엇을 표방하고 지었느냐 하면 하나님 자체를 표방하고 지었다는 거예요. 그것이 형상적이나, 상징적인 위치에 있을 뿐이지 그 근본 주체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온 피조세계를 바라보게 될 때에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이러한 이념에 있어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이 바라는 소원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냐? 이 지상에 하늘을 위주로 한 형상적인 세계를 구상하고 이루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이루는 것이 예수의 뜻이고, 예수를 보내신 하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 내용을 실체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것이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뜻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어떻게 해야 했느냐? 하늘나라를 구성하기 위한 재료,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모든 재료를 수습하는 환경을 거쳐 나가야 했습니다. 재료를 수습하려니 여기에서 종족이 다른 가정, 혹은 혈족, 혹은 자기 선조가 다른 이런 수많은 종족을 규합하여 여기서 하나의 민족을 만들고, 수많은 민족을 규합하여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 수많은 국가를 규합하여 하나의 주권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사명이었습니다. 하나의 주권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예수가 이 땅 위에서 이루어야 할 목적인 동시에 예수를 보낸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뜻의 목적점은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지상에 최후에 이루어져야 할 목적이 무엇이냐? 선한 사람을 통하여, 혹은 메시아를 중심삼고 수많은 종교를 수습하고 규합하여서 영원히 남아질 세계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계는 어떤 세계냐? 하나님을 위주로 한, 하늘나라를 모방한 나라, 하늘나라를 모방한세계, 하늘나라를 모방한 천주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찾으려는 창조의 목적이요, 예수께서 이 땅 위에 세우려는 이념적인 표준인 천국건설인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내적인 천국관이 있어서, 그 내적 천국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피조만물세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천국관과 상대적인 외적인 천국관이 일체를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모든 것이 틀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인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도를 거쳐 가지고 이 틀어진 모든 외적인 세계를 수습하여 내적인 이념천국의 상대적인 실체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역사를 해 나오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여러분들이 식구로서 생각해야 할 최후의 목표가 무엇이냐?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냐? 대한민국은 한 나라인데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가 존재하려면 주권이 있어야 하고, 영토가 있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토는 백성을 키우고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영토가 되어야 되고, 그 백성은 주권을 보호하고 주권을 길이길이 맡을 수 있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땅은 백성을 키워 줘야 할 책임이 있고, 백성은 주권을 보호하고 주권을 세워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르고 있는 아버지, 창조주 입장에 세워 놓고 부르게 되면 하나님, 하나님이라는 명사를 우리가 부르게 될 때, 그 하나님을 우리가 모시는 입장에서, 누구보다도 가까운 입장에서`아버지'라고 부르게 될 때 그 아버지 자체 가운데는 이 우주가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아버지 자체 가운데는 우리 인류가 다 들어가 있는거예요. 그 아버지 자체 가운데는 우리의 이념과,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상대적인 세계에서 요구하는 모든 요구의 조건이 필연적으로 내적인 동기를 가지고 이 땅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발전 발전을 거쳐 나와 하나의 이념세계를 향하여 진전되어 나가는 데에도 역시 과정적인 단계에서는 뜻에 배치되는 일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최후에 궁극적인 목적, 목표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내적인 표준점과 상대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역사적인 종교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섭리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인 하나님의 내적인 기준과 외적인 상대적인 기준을 갖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나타날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나가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이 주장하고 싶었던 천국, 예수가 주장하고 싶었던 천국,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바라고 있는 천국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적인 천국을 위주로 해서 외적인 실체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보낸 것입니다. 그 메시아를 표준으로 삼고 메시아와 일체가 된 천국이념을 갖고 사는 세계가 되면, 예수는 하나님을 닮고 우리들은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과 몸과 그림자와 같은 입장이 되어 내적인 실체가 동하면 외적으로 인연된 전체가 동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인 기준은 동하고 있는데 외적인 기준이 동하지 못하게끔 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런 연고로 내적인 기준이 응할 수 있는 외적인 환경을 수습하여 내적인 기준과 일체적인 관계를 맺어 가지고, 이것이 개인으로부터 온 세계에 이르기까지 완전일체가 되어서 일체적인 인연의 실체로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피조세계와 창조주는 외적인 어떠한 힘이 가를래야 가를 수 없는 영원한 인연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을 가지고 나타나는 그때까지 하나님의 뜻은 남아지는 것이요, 예수의 뜻은 남아지는 것이요, 인류의 뜻은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완결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지고 해야 할 것이냐? 이것은 심정을 갖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심정을 갖고 해야 할 천륜이 남아 있는 고로 인간을 대해서 하늘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찾아오는 것이요, 인간은 하나님을 대하여 아들의 입장을 찾아 나가는 것이요, 만물은 아버지와 아들의 품으로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타락한 세계가 복귀의 운명을 되찾아 들어가는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들이 들고 나온 것이 무엇이냐? 오늘날 통일 신도들이 들고 나온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부르짖는 뜻, 우리가 찾아 나가는 세계는 어떠한 세계냐? 아버지의 뜻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요, 예수가 바라는 뜻의 나라, 예수의 나라요, 오늘날 우리의 뜻의 나라인 동시에 내 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나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 자체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반영적(反映的)인 실체가 되는 동시에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반영적인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국가, 혹은 이 영토가 하나님을 모방하여서 반영적인 실체가 대상의 실존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냐? 하나님의 주권을 대신한 형상적인 실체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실체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이것이 내적, 외적인 관계에 있어서 심정을 통하여 일체적인 관념을 연속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확정짓는 데서 비로소 뜻의 출발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거예요.
내 개인이 출발하기 위해서도 역시 그와 같은 삼위의 기준을 심정적인 기반 위에 터전을 닦고 거기에서 내 개체를 들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뜻 앞에 선 개체가 될 수 있고, 이 기반을 위주로 하여 가정, 국가, 세계까지 퍼져야만 아버지의 뜻 가운데 설 수 있는 인류가 되고, 이런 인류가 하나의 주권을 위주로 하여 하늘을 모시고 나가게 될 때에 비로소 하나의 주권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하나되고 수많은 주권이 아버지 뜻에 합치될 수 있게 되면 이 천지는 비로소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지상천국이 됩니다. 즉 말하자면 이념적인 천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셔 놓고, 하나님편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이념적인 개체로부터 그 개체를 통할 수 있는 세계 만민이요, 이념적인 개체를 통할 수 있는 세계주권이요, 이념을 통할 수 있는 그 개체의 행복의 터전이 될 수 있는 복지의 이 지구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것이 되어 있느냐 할 때, 이 지구는 그것과 거리가 멀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가 탄식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주권을 걸어 놓고 탄식해야 되겠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백성을 걸어 놓고 탄식해야 되겠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이 모든 지구가 하나되지 못한 것을 탄식해야 되겠지만서도 그보다 제일 문제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을 두고 보게 될 때에 내 한 개체가 제일 문제시하여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땅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 인류를, 백성을 대신해서 세울 수 있는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주권을 대신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실체로서 자녀의 명분을 갖고 나타난 그 가치가 오늘날 이 천상 천하의 타락한 세상의 인류, 타락한 세상의 어떠한 영토, 타락한 세상의 어떠한 주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개체를 하늘이 찾기 전에는 이 온 천지를 하늘이 구상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나라로서 복귀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한 것이 무엇이냐? 타락한 사탄세계의 전부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혈족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복귀섭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가 없어서 하나님이 탄식한 것이 아니요, 사람이 없어서 탄식한 것이 아니요, 수많은 주권이 없어서 탄식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냐 하면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심정의 아들, 수많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심정의 아들, 수많은 천지의 만상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 없어서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것은 아들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완결짓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계로부터 실체를 갖추어서 영인체를 불어 넣어 가지고 그 영인체를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삼위상을 완결지은 이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중심으로 세우려 하였던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냐?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뼈와 살이 통하고 모든 정신이 통하여서 하나의 감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렇게 움직이면 그 뼈와 살을 통하여서 지음받은 모든 만상세계, 모든 피조세계는 자동적인 원칙에 의해 가지고 움직이게끔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인간이 인간다운 가치의 내용을 어디서 지닐 수 있느냐? 우리의 몸뚱이가 있음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예요. 나를 위주해서 보게 될 때에 사람이라는 것은 이 지음받은 모든 천지만물의 형상을 대신한 실체요,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을 세우고 나오는 상대적인 표본체예요. 안팎을 갈라 놓으면 하나는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요, 하나는 땅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늘땅을 분립시킨 그것을 둘로 합쳐 놓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되면 하나님과 우리는 일대일의 입장에서 심정적인 일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몸이 갈라져 있고, 이것을 반영한 모든 상대적인 세계가 하늘땅이 갈라진 결과와 마찬가지의 것과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것을 외적으로 하나로 규합하고 혹은 인간을 세워 내적으로 하나로 규합하여야 하는데 완전한 규합의 일치점을 찾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예수가 예수로서 등장하기 위해서는 외적인 이 실체, 둘로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수습한 인간의 안팎을 완비한 실체를 대신하여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팎의 세계, 내적세계와 외적세계를 수습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대교를 중심삼고,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적인 상대의 발판을 편성하려는 뜻이 유대교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갈라짐으로 말미암아 좌절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체적 세계형을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직전 내적인 세계의 상징체와 같은 영계를 기준으로 하여 천사세계의 모양과 같이 세우시고,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신랑 신부의 이념을 표방하여 비로소 아담 해와를 지을 당시에 가지셨던 이념을 중심삼고 제2차 발판을 재현시키기 위한 목적을 지향해 나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외적인 세계를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를 수습하기 위해서 내적으로 종교를 세웠고, 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운 것입니다. 따라서 이걸 끌고 나와 예수를 위주로 한 내적인 이념과 외적인 실체의 이 세계가 일치되게 했더라면, 즉 영적천국과 지상천국 이념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안팎이 일치될 수 있는 기준이 예수를 중심삼고 벌어졌더라면 필시 예수를 위주로 하여 일체가 되어 상대적인 이 지상 위에도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닦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위주로 한 그런 사명을 완결짓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재현할 수 있는 한 날을 소원으로 남기고 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명사를 갖추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날을 중심삼고 볼 때에 오늘날 이때는 어떠한 때냐? 예수님 당시와 마찬가지의 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종교를 대신하여 수많은 민족을 기준으로 한 민주주의와 이것을 기준으로 한 기독교의 사명이 지대하다는 거예요. 이러한 세계적인 환경을 외적으로 수습하여서 안팎이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관 위에 하늘이 세우고 싶었던 참다운 부부, 참다운 가정, 참다운 종족, 참다운 민족, 참다운 국가, 참다운 세계, 참다운 천국까지 재현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는 어떠한 사명을 짊어졌느냐? 이것을 완결시키기 위한 사명을 지닌 거예요.
현재 통일교회를 믿는 식구의 입장에서 통일교회를 볼 때, 하늘이 바라던, 이념적인 아버지의 내적 심정으로 바라던 그 천국, 그 나라를 위주로 하고 보게 될 때 그 나라를 대신할 수 있는 주권이 있느냐, 백성이 있느냐, 혹은 그 나라의 하늘과 땅이 되어 있느냐 할 때에,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는 그 땅이 없고, 그 백성이 없고, 그 나라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봉행하여 하나의 국가적인 세계형을 전개시킬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축소시키면 하나님은 국가적인 대표요, 주권적인 대표요, 백성적인 대표가 됩니다. 모든 전부를 대표하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념을 대신하여 이것을 내 뜻, 내 이념, 내 소원으로 갖고 나왔다 할진대는, 여러분 개체를 전개시키면 하나의 민족이 되는 것이요, 이것을 더 크게 전개시키면 인류를 대신하는 것이 되는 것이요, 더 크게 전개시키면 하나의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백성을 축소시킨 실체요, 수많은 주권자를 축소시킨 실체입니다. 또, 여러분이 서 있는 땅은 이 천지를 축소시킨 땅이니 여러분은 그러한 땅 위에 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불가침적인 승리의 기준에 선 내 자신이 되어 오늘 이 사탄세계를 영원히 확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을 두고 볼 때, 한국 백성이면 그 백성이 무엇이냐? 그 배후는 반드시 주권을 대신하고, 영토를 대신합니다. 3천만 민족이면, 3천만 민족 중 한 사람을 침해하는 것은 일개인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침해하는 거와 마찬가지요, 그 민족을 침해하는 거와 마찬가지요, 그 국토를 침해하는 거와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은 언제나 그걸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한 존재는 실체세계의 축소체인 동시에 이념적인 주체세계의 축소체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에 있어서는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요, 또 수많은 백성을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며, 내가 사는 환경을 중심삼고 이 우주를 접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셨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할 수 있었느냐? 의인은 누가 결정하느냐? 의인은 예수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예요. 의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주권 국가가 생기고 나서 생겨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법도를 다 갖추고 나서, 인간을 창조하던 그 목적의 모든 내용을 실체적으로 완비해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의 인연이 하나님이 이상하던 그 법도의 궤도에 들어간 다음에 비로소 의인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사람은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늘의 주권이 나오지 않았는데 누가 의인 권한을 결정지을 수 있겠어요? 역사도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물론이지만 예수 자신도 의인이 못 되었다는 거예요. 왜 의인이 못 되었느냐? 천지의 법도를 통하여 창조의 목적을 달성시켜 온 천지에 하나님을 위주로 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하나의 통일된 주권국가를 형성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주권, 즉 국가의 형성 기준이 세워지지 않는 한의인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사명을 우리 앞에 남긴 거예요.
여러분들은 이제는 지방으로 갈 거예요. 가서 자기의 목적한 사명 분야를 따라서 움직이고자 할 때에 여러분 자체는 어떤 직장이면 직장의 한 분야에 있으면, 그곳에 속한 개인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내 직장을 하나의 주권국가를 대신한 것으로 알고, 그 위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삼천리 강토를 책임지고, 그 하나의 위치를 중심삼고 3천만 민족을 대신해 나가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오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에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한 역사적인 뜻이기 때문에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대신한 이념적인 주권을 대신한 실체요,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할 수 있는 그 나라의 백성을 대신한 실체요, 그 나라의 백성을 대신한 실체니, 그 땅을 내가 사랑하고, 내가 품고, 그 땅과 더불어 하나되어야 할 그런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이런 이념적인 감정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이념을 가진 국가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여러분들이 `아버지시여!' 라고 하며 기도하게 되는데 그 `아버지시여!' 하는 명사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구상하시던 그 구상 가운데는 이런 엄청난, 세계 인류가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어 당신의 품에 품기어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행복 속에서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을 돌려드리며 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버지께서 그런 자리를 가졌느냐? 그러한 세계는 제쳐놓고라도 내 개체에 있어서 그런 입장의 선 하나님이 됐느냐?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직까지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게 될 때에, 창조하시던 당시에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그들이 소망의 완성실체가 되기를 고대하시던 하나님 앞에 그들이 소망의 실체로서 완비되었다면 기뻐할 수 있고, 그런 심정을 통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환경에서 거침없이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체로서 모든 것을 품고 하늘 앞에 돌려드릴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내가 섰느냐 하면 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할지라도 한 많은 환경에서 원수의 조롱을 받고, 원수의 환경에서 천신만고 투쟁을 하여 환경을 개척하는 자리에 있어서 하늘이 염려하고, 하늘이 슬퍼하고, 하늘이 걱정하는 배후를 가진 입장에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을 슬퍼해야 돼요.
내 개체가 그러하지 못하니 하늘 앞에 세워졌다는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 그 가정이 과연 하나님이 온 천지에 하나의 천국이념을 완성할 그런 시대에 있어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이 되어 있느냐 하면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렇게 될 때까지 하늘을 고통당하게 하고, 하늘 앞에 슬픔을 남겨 줄 수 있는 가정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언제 어느때에 무찌르고 하나님이 소원하시던 개체와 가정의 기반을 구축할 것이냐? 개체와 가정의 기반을 통할 수 있는 동시에 종족, 민족을 통하여 세계의 수많은 주권국가 앞에 내세울 것이냐? 이게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부르는 아버지는 슬픈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나를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나'라는 개체를 소원으로서 통할 수 있도록 승리적인 내가 되어야 되는 동시에 가정을 통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세계를 대신하여 이념적인 주권 앞에 있어서, 하나님의 내적인 창조이념 세계에 있어서 완결을 지을 수 있는 상대적 실체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 우리의 갈 길이 얼마나 아득하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가끔 이러한 기도를 할 때가 있어요. 지금도 그런 기도를 해요. `아버지여, 당신의 마음 깊이깊이 생각했던 영원불변의 사랑을 대할 수 있는 자격을 나는 갖지 못하였습니다' 한다구요. 왜 그러냐?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두고 볼 때에 하나의 주권을 위주로 그 나라에서는 아버지의 기쁨은 전체의 기쁨이요, 아버지의 영광은 곧 전체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계가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창조 이념의 깊은 심정 가운데 고이고이 남겨 두었다가 아담이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 가지고 최후의 영광 가운데 잠겨 온 천하의 주권 국가를 대신하여 그 이상의 가치의 자리에 선 아담으로서, 수많은 인류를 대신한 이상의 가치의 조상으로서, 만상세계를 대신한 이상의 가치를 지닌 아담 해와로서 품고 사랑하고 싶었는데,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아직까지 못 나갔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에 굶주려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워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워 가는 내 걸음이니,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데는 어떻게 찾아야 될 것이냐? 그 사랑을 찾는 데는 먼저 국가를 통해서 찾는 것이 아니예요. 어디를 통해야 하느냐? 내 몸과 마음이 통일되는 데에서 찾아야 돼요. 나를 위주로 하여 이념적인 통일이 되는 거예요. 여기에 행동통일, 심정통일, 이념통일의 모든 요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데 있어 어디서부터 찾아가야 되느냐? 내 개체에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개체의 몸과 마음을 중심삼고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과 같고, 몸은 이 세상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실체이니 마음 앞에 고이고이 몸이 정복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몸과 마음의 승리적인 기준을 완전히 가져서 하나님을 부르면 거기에 해당하는 사랑의 인연을 맺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렇게 내 개체를 위주로 하여 참다운 나로 말미암아 참다운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참다운 가정을 만들어 놓기 전에는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저끄렀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참다운 자신을 완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자신을 완결짓는 데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은 참다운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다운 사랑의 인연을 내 개체에서 완결지어 가지고 참다운 가정을 통해야 합니다. 참다운 가정의 사랑은 참다운 내 개체를 통하지 않고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나아가 참다운 가정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참다운 민족적인 사랑은 나오지 않는 거예요. 참다운 민족적인 사랑을 통하지 않고는 참다운 국가적인 사랑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나님은 자기의 내적인 사랑을 실체로 전개시키기 위한 싸움을 지금까지 해 나오고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목적도 자기의 내적 사랑을 실체로 전개시키기 위해서인데, 이것이 상대적인 가치의 결정 기준이 성립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것들을 재수습하기 위해 나온 것이 복귀역사인것입니다.
우리 개체는, 내 개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주로 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나는 갈라질래야 갈라질 수 없는 일체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 개체의 관계로 말하면 하나님은 마음이요, 나는 몸이라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천지가 합할 수 있는 상대적인 실체의 기준이 내 자체에서 완결되어야 되는 거예요. 완결된 여기에서 비로소 하늘을 중심삼고 일체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일체된 가치가 한국이면 한국의 환경에서만 승리한 가치로서 세워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일체된 가치는 한국 땅에서도 일체요, 미국 땅에서도 일체요, 이 지구성의 어느 지역적인 환경을 초월하여, 어느 민족적인 환경을 초월하여, 어느 주권적인 환경을 초월하여 일체가 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예요. 이것을 찾아야 돼요. 그 기준을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이념이 있어야 되고,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실체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이념이 필요하고, 세계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내 마음과 몸이 삼위로서 일체되는 거기에서 비로소 내 개체를 기반으로 하여, 내 개체가 중심되는 거기에서 가정을 찾고 나서게 될 때에 나를 기준으로 하여 가정 앞에 상대되는 그 모든 사람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수습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통하고, 내 몸을 통하여 내 상대의 환경을 거쳐야만 하나님과 일체된 기준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혈족을 기준삼아 가지고 번식된 그 수가 사탄세계를 능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안으면 가정에서부터 종족을 거치고 민족을 거쳐서 하나의 주권국가를 형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한 것이 뭐냐? 하나님은 개인을 불러왔고, 가정을 불러왔고, 이스라엘 민족을 불러 왔습니다. 그렇게 불러서 뭘하시려 했느냐? 민족 기반을 닦아 가지고 주권을 세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주권은 무슨 주권이냐? 하나님이 거기서 영원히 안식하려는 주권이 아니예요. 가인과 아벨과 마찬가지로 사탄과 싸워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천사장 국가, 아벨적인 천사장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있어서 외적인 사탄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아벨적인 천사장 국가의 승리한 기반 위에서 세계적인 하나의 주권을 재수습하기 위한 것이 복귀역사입니다. 세계는 지금까지 그러한 국가 형태를 이루어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개체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개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에서 지배받는 개체가 아니예요. 타락한 역사적인 세계를 능가한 개체인 것입니다. 능가한 개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에는 세계의 수많은 국가, 수많은 주의가 많지만 여러분은 '내가 생각하는 주의와 이념은 하나님의 이념이요, 내가 구상하는 이 주권은 하나님의 주권이요, 내가 구상하는 국가 형태는 하나님의 국가 형태다' 하는 이런 철썩 같은 신념에 사무친 여러분 개체로서 어떠한 환경에도 치우침을 받지 않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환경을 제압하여 어느때라도 수습할 수 있는 신념을 갖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념을 갖고 나가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사탄세계의 침범을 받는다는 결론이 벌어집니다.
그러니만큼 오늘날 우리들이 나가는 입장에서 내 개체를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께서 참다운 개체로서 나를 품어 줄 수 있는 자리에 내가 있느냐? 그런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참다운 자기가 참다운 환경을 가져 가지고 참다운 개인으로서 참다운 목표를 향한 심정을 대신해서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에 `오냐, 너를 바라보면 소망이 있다'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런 여러분은 이념을 대신했기 때문에. 너를 바라보면 심정이 동한다' 하시는 것입니다. 왜? 아들딸을 대신했기 때문에. '너를 바라보면 축복해 주고 싶다' 하시는 것입니다. 왜? 주권을 대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이럴 수 있는 불변의 심정을 갖고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연장되게 될 때 선한 백성이 되는 것이요, 또 그것을 확대시키게 될 때에 선한 민족이 되는 것이요, 선한 국가, 선한 인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체를 어느때에 붙들고 내세우게 될 때에 뜻 앞에 화한 핵심적인 실체로서 수많은 주권을 능가하고 수많은 인류를 능가하고 이 천지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적인 자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자아를 중심삼고 언제나 결정적인 장소에서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여!' 하고 불러야 그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보면 그저 전부…. 오늘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사소한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천주적인 이념이 관에 있어서 하늘은 여러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오냐, 내 아들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면 내가 처한 환경에서 사탄세계의 어떠한 원수들이 오더라도 침범을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침범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침범을 하더라도 내가 패하는 법이 없다 이거예요. 원수들이 패하지요. 왜?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선은 패하는 법이 없어요. 환경에 치우침을 받더라도 여러분을 침범하면 원수들이 망하지 여러분이 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갖고 나가야 돼요.
그런 개체들이 합해 가정을 이루고, 그런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의 종족을 만들고, 그런 종족으로 하나의 민족을 만들고, 하나의 주권국가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 오늘날 통일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이 어디로 가든지, 척 가게 되면 모든 천지가 여러분 앞에 무릎을 꿇고 여러분을 따라가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에서 내가 동하면 천지도 동하고 있다는 실감을 해야 돼요. 하늘이 나를 따라 움직이니 하나님의 심정 위에 내가 동반자가 되어 하나님의 심정은 온 피조만물의 이상적이요, 혹은 이념적인 생명의 요소인 고로 그 심정이 고동하는 자리에는 모든 피조만상이 자동적으로 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이 있는 연고로 여러분이 머무는 곳은 한때에 있어서는 상충이 벌어지는 거예요. 거기에 대등하는 원수가 있는 연고로 상충이 벌어질는지 모르지만 그 상충은 일시적인 상충으로 끝나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런 심정에 일치된 환경에 살면 여러분을 중심삼아 가지고 온 피조만물, 온 천지가 여러분의 품안에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에 동하여서 여러분이 생활해야 된다구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어느때든지 침범을 당하게 됩니다.
뜻을 앞세운 생활을 하여야 오늘날 역사적인 원수 사탄 앞에 있어서 침범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침범해 와도 하나님과 내가 일체가 되어있는 연고로 하늘과 일치된 자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아들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기준으로 일체가 되어 있는 여기에는 천지의 중심이 움직이게 되어 있는 연고로 그것을 사탄은 점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일교회를 믿고 있는 교인들을 가만 보면, 처음에는 뭐 날뛰고 야단하다가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 그 열기가 희박하게 되어요.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건 사탄 새끼가 다 된 거라구요. 오늘 이 심정을 중심삼고 아버지와 나와의 일체적인 감정에 동하여서 내가 하루 살고, 일년을 살고, 해가 거듭함에 따라서 그 환경의 인연이 내 품에 찾아 들어오도록 해야지 여러분이 이걸 삼켜 버리는 생활을 한다면 제2의 타락한 사람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니만큼 이제 여러분들이 이번 수련을 통하여서 각 지방에 다시 나가면 그야말로 실감적으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6천 년 동안 아버지께서 뜻 가운데 찾아 나오던 그 아들은 주권을 움직일 수 있는 아들이요, 만민을 대신할 수 있는 아들이요, 천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니 내가 그러한 아들딸의 입장에서 나를 위주로 하여 이 모든 사탄세계를 움직여야지 내가 사탄세계에 의해 움직여져서는 안된다' 하는 신념을 철투철미하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그러한 나를 위주로 하여 주관해 나가는 것입니다. 나를 위주로 한 가정, 나를 위주로 한 종족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각자 그런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나를 위주로 한 가정, 그런 가정을 위주로 하여 종족으로, 그런 종족을 위주로 하여 이 삼천만 민족이면 삼천만 민족을 우리의 손아귀에, 우리의 움직임에 우리의 힘에, 우리의 이념권 내에 몰아 처넣게 될 때에는 꼼짝못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항하거나 항거하지 못할 환경을 만들어 놓아야 비로소 하나의 주권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그래요. 어디를 척 가게 되면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돼요. 움직이는 데는 목적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들은 하늘과 사탄세계 앞에서 자기를 중심삼고 주기적으로 인연을 맺고 나가야 돼요. 춘하추동을 연결시켜서 일년을 연결시키고, 일년을 연결시켜서 수억천만 년을 연결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봄절기만 가지고는 일년을 연결시킬 수 없는 거예요. 그렇지요? 반드시 사시장철을 연결시켜서 일년을 연결시키니, 일년이 억천만년을 연결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뜻을 대하는 우리는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연결시킬 수 있는 때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신앙생활하는 데 있어서 회개할 때가 있고 은혜받을 때가 있으며, 은혜받고는 나누어 주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고, 은혜받은 것을 그냥 갖고 움추는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에는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나누어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늘은 나를 회개시키기 위해서 지금까지 십자가를 져 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십자가를 지고 승리한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은혜가 오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반드시 제삼자의 입장을 탈피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생님을 따라 나가지만 선생님을 중심삼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이야 어떻든지 나 홀로 지켜 나가야 할 신앙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은 가까운 사람한테서 체험하지 못하는 깊은 심정세계에서 하늘을 중심삼고 홀로 감사할 수 있는 생활, 홀로 만족하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늘땅을 바라보면서 `감사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런 것을 못 느끼겠거든 그 반대의 자리에서, 지극히 슬픈 자리에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하오니 용기를 주시옵소서'라고 결의하여 재기하는 스스로의 기간을 반드시 가져야 됩니다.
감사하고 만족함을 느끼는 반면에 회개하고 자기의 부족함을 느껴 다시 맹세하는 이런 생활을…. 이 둘 중의 하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감사의 생활도, 회개하는 생활도 둘 다 잃어버리는 사람은 망해 버리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클클하고. 하늘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면 샅샅이 파고 들어가 일부러 슬픈 자리로, 일부러 고통의 자리로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고통의 세계에서 하늘이 나를 찾아 주던 그런 낮은 데를 찾아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는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일생 동안 피어린 투쟁을 한 것을 눈만 척 감아도 백 퍼센트 실감 있게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뜻을 중심삼고 나오는 걸음 앞에 있어서 그렇게 투쟁의 때가 있다 할진대는 아무리 슬픈, 아무리 어려운, 아무리 곡절의 환경이 있더라도 그 기준만 생각하고 척 그 느낌만 느껴지면 그 환경이 아무리 사탄의 시험이 강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계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어떤 내용이냐? 십자가 산상에서 `아바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던 그 심정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2천 년 동안 하나님 앞에 그 심정을 걸어 놓고 `나는 당신의 뜻을 따라 만민을 위하여 전통적인 정신을 세우기 위해서 죽음길을 갔나니, 이 뜻을 대신해 나오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이 내가 온 전통적인 길을 따라오거들 아버지께서 나를 이 영광의 자리에 보내 주셨듯이 그들도 이 자리에 보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 행로에 있어서 뜻을 따라나가는 데 있어서 천상과 사탄세계와 나, 하늘과 사탄과 나라는 3대에 인연된 환경에 있어서 어떠한 역경 가운데서라도 하늘 앞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 앞에 십자가를 받으면서도 승리한 쾌감, 이런 것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생애에 이러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일생행로를 홀로 가더라도 신앙생활에 있어서 치우침이 없이 꾸준히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런 거예요. 그러한 생활을 하다가 클클하면 기도를 하는 거예요. 기도할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내가 싸워 나왔던 역사적인 모든 것, 내가 몇 살 때는 이렇게 나왔고, 감옥에서 고생하면서도 이렇게 나왔는데' 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전통을 지고 시대적인 사명감을 갖고 나타나면 반드시 시대적인 승리자로서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러한 사람을 대하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이 복된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은 6천 년 역사적인 전통의 곡절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고, 6천 년 역사적인 전통의 곡절 앞에 동참할 수 있는 동반자만 되면 시대적인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 하나님 힘듭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할 때는 아담가정을 알았으니 아담 대신 기도하고, 노아가정을 알았으니 노아 대신 기도하고, 아브라함가정을 알았으니 아브라함 대신 기도하고, 야곱을 배웠으니 야곱대신 기도하고, 모세를 배웠으니 모세 대신 기도하고, 예수의 역사를 배웠으니 예수 대신 기도하고, 오늘의 선생님을 알았으니 선생님 대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적 인연을 가지고 하늘을 대신하여 부르짖고 나오면 하늘은 버리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 `그들의 앞길을 개척하기 위해 하늘이 역사적인 과정에 있어서 협조한 기준이 있는 것을 압니다. 나도 그러한 역사적인 실체가 되어 세계사적인 인연 앞에 있어서 현실적인 책임을 지고 사탄 앞에 나가려 하오니, 하나님, 힘을 주옵소서!'라고 하면 힘을 주게 되어 있는 거예요.
기도는 원리적 기도를 하라구요. 선생님도 그런 거예요. 쭈욱 이러한 길을 찾아올 때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게 되면 아무리 클클한 것이 있어도 참을 수 있어요. 그러면 딴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날 하늘의 뜻이 이렇게 세계적인 발판을 갖추어 나타날 수 있게 된 이런 것을 생각할때 자기의 충성의 부족함에 반비례하여 뜻의 성과가 큰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감사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하늘이 이 역사를 거쳐온 것은 사탄을 대결하여 이 세계사적인 원수를 몰아내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상은, 여러분의 정신은 원수를 몰아내려는 일념으로 사무쳐 있어야 돼요. 오늘날 우리들도 그렇잖아요? 뜻을 중심삼고 수많은 주권을 움직여 가지고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원통한 사실, 이 민족을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원통한 사실, 여러분이 굶주려 가지고 다니는 처량한 사실, 이것이 고마운 게 아니란 말이예요. 분한 사실임을 느꺼야 돼요.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느냐?
여러분 개체 개체는 `나는 이 세계를 정복하고 천주를 정복하여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려드리겠다. 그래서 내 손으로 기필코 승리의 깃발을 들고 개선가와 더불어 개선기를 들고 하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죽겠다' 하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여러분들이 일대에 그것을 못 하면 죽을 때에 자기 아들딸을 불러 가지고 유언을 하고 죽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를 거쳐 복귀의 기대를 닦아 나오던 하나님의 복귀섭리가 얼마니 애절했더냐? 그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배후에 하늘의 곡절이 이렇게 내포되어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될 때에 여러분은 여러분 일대를 중심삼고 일대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든 3대를 거치고, 3대에 안 되면 7대를 거치고, 7대에 안 되면 40대를 거쳐서라도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서 속히 이 세계를 하나의 주권세계로 만들어서 천지만물을 창조한 대주재이신 아버지의 이름 앞에 돌려 드려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 앞에 하나의 주권으로 규합돼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 앞에 만민이 규합되고, 아버지의 이름 앞에 천지가 규합되어 원수들을 항소하여 우리가 전부 처치해 버려야 된다' 하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승리에 만족하는 마음보다도 하나님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분함이 더 강해야 합니다. 뭐 조금 어떻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네다리 펴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환경적으로 승리한 환경이 있다면 그 환경을 넘어 국가가 있는 것이요, 국가를 넘어 세계가 있는 것이요, 세계를 넘어 천주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교회적인 기반을 닦았다고 여기서 발을 펴고 기뻐하기 보다는 원수를 갚고 싶어하는 마음, 인류의 원수를 대하여 싸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진격하겠다는 신념에 불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자나깨나 마음으로 생각 해야 할 것은 하나의 주권, 하나의 인류, 하나의 천지, 이 온 천지가 우리의 나라, 우리의 땅, 우리의 형제가 될 때까지 이것을 기필코 성취하겠다고 하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먹고, 이것을 위해 공부하고, 이것을 위해 싸워야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실체는 하나의 주권을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이 땅을 대신하여 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통이 연장되어서 그 수가 많아지면 민족이 될 것이요, 나라와 세계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수가 많아지면 그 수한테 지는 거예요. 안 그래요? 오늘날 그러한 환경을 이루기 위해서 세계적인 민주사회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의 기도는 어떤 기도여야 되느냐? 선생님이 다른 기도 하지 않아요. 눈만 감으면 하늘과 땅이예요! 거기에는 내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필요한 거예요. 하늘과 땅과 내가 일체되고 나서 그다음에 하나님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 심정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해도 사람을 못 찾으면 그 하늘은 하늘 노릇을 못 해요.그렇지요? 땅도 땅 노릇을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하늘과 땅을 규합해야 돼요. 하늘과 땅을 수습해야 내가 있고, 그렇게 수습한 내 앞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어요. 천(天) 지(地) 인(人) 이 3수를 창조의 원칙을 중심삼고 내가 수습한다, 그런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더라도 하늘과 땅을 붙들고 기도하면 움직인다는 실감이 나야 된다는 거예요. 한번 치면 태평양 바다가 출렁이는 것 같고 이 우주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실감이 나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럴 때까지 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해 나가는 데, 이러한 신념과 이념을 성취하는데 협조하는 것은 내 편이요, 반대하는 것은 원수예요. 아무리 부모라 해도 원수예요. 반대하는 무리는 전부 다 원수예요. 그런 기반을 이제 개척해 나가야 돼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찾아 나오던 내 개인을 찾아야 돼요.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부르고 있던 내 개인과,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부르고 있던 내 가정과, 하나님의 이념 가운데서 부르고 있던 종족, 민족, 국가, 세계는 어디 갔느냐? 지금 없어요. 지금 없다 이겁니다.
여러분 축복가정들도 `아! 이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그 축복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축복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주적인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받은 축복은 환경적인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받은 축복이예요. 거기서부터 발전해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3차에 걸쳐서 축복을 받아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알고, 우리가 이제 먹으나 자나깨나 생각해야 할 것은 딴것 없어요. 나는 우주적인 하나의 주권을 총합한 실체상이요, 만민을 대신한 메시아와 마찬가지요, 나는 이 모든 세상을 점령해야 할, 사탄을 토벌해야 할 토벌 대장이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이 싸움에 나서서…. '내가 이것을 붙잡은 것은 반드시…. 내가 이것을 붙잡아 가지고 이것을 내세워 사탄을 때리는 데 있어서 무기다' 그러한 결의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끊임없는 투쟁의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그리하여 확대하게 되면 민족이 우리 뜻 앞에 설 수 있는 것이요, 세계가 우리의 뜻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념적으로 점령해 가지고 온 천하 만민들이….
우리는 그것을 무기로 하는 게 아니예요.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갖추어 가지고 맞고 빼앗아 나와요.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법을 쓰는 거예요. 하늘의 작전법은 그렇다구요. 선생님이 칼 들고 싸우라면 못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싸웠으면 벌써 다 해치웠을 거예요. 내가 죽어 가면서라도 벌써 해치웠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안 되어 있는 거예요. 맞고 빼앗아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맞았지요. 맞는 데는 여러분 개체는 가정 단위로도 맞지 않았어요. 통일교회 선생님이 맞는 데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맞았어요. 하늘땅을 위해서 맞았어요. 천주를 걸어 놓고 맞은 것입니다. 그런 천주적인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사탄은 이제 후퇴해야 할 운명에 있으므로 여러분들은 복 중의 복이예요. 그걸 수습해야 돼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사탄은 전부 패잔병과 마찬가지예요.
'나 하나를 완전한 승리의 자리에 세워 놓게 될 때에는 나를 위주로 하여 가정을 전개시키고, 종족, 민족을 이룩하여 하늘의 주권을 만들 수 있고, 하늘의 백성도 만들 수 있고, 내가 가진 땅을 하늘의 영토로 만들 수 있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한 치의 땅, 한 사람이라도 빨리빨리…. 사탄이 아담 해와를 꼬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을 인도하여 늘려야 돼요. 그래 가지고 수를 가해야 돼요. 그리하여 민족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고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마련해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디 가든지 이제부터 가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나라!' 이 심정에 사무쳐야 합니다. 아버지는 창조 이후 아직까지 하늘의 주권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백성을 갖지 못하였고, 하늘의 땅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분한 일이예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이 그것을 찾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지를 결정한 거예요. 성지를 택해 놓고 사탄세계의 아들딸들을 전부 빼내어 고생시켜 가지고 새 아들딸…. 그 아들딸은 뭘 상징하느냐하면 만민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성지가 뭐예요? 삼천리반도를 축소시킨 거예요. 세계를 축속시킨 것입니다. 작년에 여러분에게 상을 줬는데 남자 한 명과 여자 세 명에게 줬어요. 왜 그렇게 준 줄 알아요? 전부 다 복귀적인 놀음이예요. 전체를 대표해서 상징적으로 보여준 거예요. 그런 조건을 만들어 가지고 넘어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헌공식까지 해 가지고 전부 다….
이렇게 금년에 아들딸을 찾기 위한 내적인 기준을 전부 다 만들고 그다음에 외적인 기준을 마련해 가지고 만물까지 복귀하는 헌공식까지 했기 때문에, 이제 그런 신념을 갖고 나가는 데 하늘이 역사할 수 있는 때가 되어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라에서 싸우고 야단하지만 두고 보라구요.
여러분, 성화 동창회원 여러분이 이 민족 앞에 어떠한 입장에 섰느냐 하면 주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잘못하다가는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런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여러분이 자기 위치,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아담 해와는 천지의 중심이예요. 여러분들은 아담 해와의 복귀의 이념을 대신하여 나가느니만큼 이 천지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전부 다 여러분것입니다. 여러분이 머무는 곳에는 하늘의 협조가 필요 없어요. 천사장을 누가 시켜 먹을 거예요? 하나님이 시켜 먹을 거예요? 아담 해와가 시켜 먹어야 되는 거예요.
이 천지 가운데, 우리 앞에 남아진 사탄세계는 문제없다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빨갱이들이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 세계적인 발전을 했어요? `하나님 협조는 필요 없다. 우리 인간은 우리 힘 가지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 하는 신념을 가져 가지고…. 그러니 나는 하늘의 주권을 대신하고, 하늘의 이념을 대신하고, 하늘의 땅을 대신하여 한치의….
우리 전체가 그걸 위해서 전체를 모아 가지고 하나되어 전체가 발가벗고 나가 앉더라도 본부인 교회만은 빨리 키워야 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고생하더라도 통일교회를 빨리 세워야 돼요. 환경적으로 개척을 나가서 아버지가 뜻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는 책임과 사명을 완결지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먹으나 굶으나 자나깨나 '뜻!' 그렇게 해 나가야 되겠어요.
선생님을 믿지 말라구요. 여러분이 선생님의 대신자예요. 여러분이 아버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땅에 내려온 것입니다. 주님을 대신해 내려온 것입니다. 성신을 대신하여 이곳에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반드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대신, 주님의 대신 입장으로 남자가 왔으면 반드시 거기에 상대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완전한 신부가 되어 있으면 또 상대자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구체적인 설명은 못 하지만. 하나님과 일체되면, 성부, 성자가 있게 되면 성신은 나타나게 되어 있는 거예요. 성부와 성신이 있게 되면 성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여러분이 그런 실체가 되어야 돼요.
그러면서 이념은 세계적인 이념을 가지고 만민을 대표했다는 마음, 민족을 대표했다는 마음, 혹은 회사에 가면 회사를 대표했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불의한 것이 있으면 이걸 전부 다 정탐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하러 다니는 것이 무엇 때문인 줄 알아요? 우리가 하늘을 중심삼고 할 살림살이를 유린하고, 이것을 좀먹고 하는 것을 전부 다 알아내야 돼요.
그러니만큼 여러분들이 이제 그런 사명을,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성을 공격하기 전에 정탐하던 것과 마찬가지의 책임과 사명을 해야 되겠어요. 알겠어요? 「예」 여기서 어떠한 원수가 나타나더라도 나는 이 주권을 가지고 그 백성을 가지고 우리의 땅을 찾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먹고 자고 깨고 하는 이런 생활을 철저히 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아버님! 아버님께옵서는 아담 해와를 품으시고, 영원한 이념 세계와 더불어 사랑하지 못한 것이 억천만세의 한인 것을 저희들은 이제 알았나이다. 이와 같은 한스러운 역사노정을 친히 목도하신 그날부터 아버님께서는 이 원한의 땅, 이 땅을 눈물과 피와 땀의 길을 거쳐오면서 찾아오셨습니다. 원한의 인류를 지금까지 아버님께서는 더듬어 오셨습니다. 하늘은 수많은 주권 앞에 모욕을 당하고 참소를 당하면서 찾아오셨습니다.
이 분하고 원통스러운 역사적인 원한을 누가 갚아 주겠습니까? 하나님 자신이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당신이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의 뜻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는 충신 열녀의 무리가 나와야만 이것을 갚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당신 앞에 참다운 효자 효녀가 나와, 당신이 요구하는 한 가정을 위주로 하여 종족을 만들고, 민족을 만들고, 하나의 주권을 만들지 않으면 이 원수를 갚을 수 없다는 엄청한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2천 년 전에 메시아를 유대 나라에 보냈던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유대교를 위주로 한 이스라엘 민족은 일치 단결하여 죽음보다도 자기 교회를 위주로 하고 죽음보다도 자기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었으나, 그들은 자기의 위신과 자기 개체의 영리를 위하여서 하늘을 잃어버렸고, 민족을 잃어버렸고, 수많은 종교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불쌍한 민족이 된 것을 저희가 알았사옵니다.
이 역사적인 한 많은 원한이 수많은 민족의 뒤를 돌고 돌다가 오늘날 불쌍한 한민족을 찾아온 것을 생각할 때에 황공하옵나이다. 무력하고 부족한 이 무리들을 찾아오시기에 당신이 수고하신 것도 면목없사온데 수고한 그런 아버지 앞에 오늘날 저희들이 책임과 충성을 다하지 못하여 오늘도 아버지는 저희들을 불러 놓으시고 그 한을 놓고 다시 원망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선 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다시 한번 재기하여 민족 앞에 책임을 하기 위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온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이 소수의 통일의 무리를 모아 놓으시고 아버님이 염려하고 계심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며, 저희들은 이 뜻을 대하여 충성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이 재차 맹세하고 결의하여 아버님이 허락하신 기간 내에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하고자 하오니,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수고할 자리가 있으면 저희를 먼저 불러 보내 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당할 시련의 무대가 있으면 저희들로 하여금 시련을 당하게 하여 주시옵고 민족이 머리 숙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할진대 저희들을 보내 주시옵소서.
민족이 아버님 앞에 제단을 쌓기 싫어하거든 저희들이 제단을 쌓고 제단의 성전을 만드는데 있어서 선봉자가 되어, 민족의 새로운 하늘의 의의 제단을 쌓는 데 있어서 불리움 받은 그 책임을 다하고 아버지 앞에 거룩한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제사장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아버님은 우리를 중심삼아서 참다운 아들을 부르고 있음을 아옵니다. 그 아들은 수많은 인류와 수많은 주권과 수많은 피조만물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를 지닌 아들딸이 되겠다는 이런 신념이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딸의 마음 몸 위에, 아버지, 배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자나 깨나, 혹은 어떠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이와 같은 신념을 가지고 실질적인 실체로서 살아 아버지 앞에 가겠다는 이런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번 모임을 통하여 여기에 있는 당신의 어린 아들딸들이 새로이 결심을 하고 당신이 허락한 이 민족 앞에 나가는 데 있어서 늠름하고 씩씩하고 담대하여 하늘이 기뻐할 수 있고, 아버님이 대견하게 생각할 수 있는 아들이 되게 하옵시고, 아버님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참다운 하늘의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은 사명의 무대를 저희들이 탄식과 절망으로 바라보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고 소망과 용맹심을 가지고 진리를 위하고 당신을 위하여 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전진 또 전진,투쟁 또 투쟁하여 이 세계가 항복할 때까지 참다운 용사의 모습을 갖추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하늘이 찾아오고 싶었던 개인이 되어야 하겠고, 하늘이 살고 싶었던 가정이 되어야 하겠고, 하늘을 모시고 싶었던 민족이 되어야 하겠고, 더 나아가 아버지를 길이길이 영광으로 모셔야 할 하나의 주권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어떠한 죽음이 앞에 놓일지라도 개의치 않고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이들이 남한 각지로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다시 삼천리반도를 위하여 책임질 수 있는 통일의 용사들로서 아버지 앞에 새로운 깃발을 드높이고 행군의 나팔 소리를 드높이 울리면서 삼천만 민중 앞에, 삼천리 반도에 진동하고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모든 전체를 아버지의 기쁨 가운데서 맡아 주시옵고, 저희들의 마음과 생활을 친히 당신의 영광 가운데서 세워 주시옵소서. 끝까지 굴함이 없이 아버지 앞에 승리의 영광을 갖추게끔 세워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 요지> 어떤 일이든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선 뜻을 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간도 그러하고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리고 그 뜻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두어야 하고, 그 뜻은 하나님과 피조물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사는 생활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것은 나라가 없고 국토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늘과 땅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진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도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던 그때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아담을 알았으니 아담을 대신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하고, 노아를 알았으니 노아를 대신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하며, 선생님을 알았으니 선생님을 대신한 입장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담, 모세, 예수님은 실패했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주권과 백성과 땅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끝까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승리의 만족보다도 분해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에 더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