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간을 지내고 이제 돌아가야 할 이 시간에 있어서 생각해 보면 처음 올라왔을 때와 지금이 얼마만한 차이가 벌어졌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 자신들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럼 이제 오늘 저녁을 마지막으로 하고 돌아가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될 때, 과거의 나와 지금 이 시간의 나와 내일의 나가 어떻게 다를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뜻을 모르던 과거의 나는 이러이러했었지만, 이제 원리 말씀을 통하여 뜻을 알고 난 오늘의 내 심정은 이러하다. 그러니 내일의 나는 이러할 것이다' 하는, 이런 나의 한 입장에서 이러이러해야 할 자기 자신을 모색하는 그 결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이러한 나에서, 이러이러해야 할 나의 그 과정에 비장한 재차의 결의를 각자의 마음에 끓어오르는 맹세와 더불어 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순간도 있을 것입니다.
역사가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것도 역사 그 자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 사람 자체가 역사에 있어서 어떠한 획기적인 한 초석을 남기는 것도 그 결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 범주는 한 개체의 마음 가운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는 이랬고, 오늘의 나는 이렇고, 내일의 나는 이러해야 할 것을 깨닫는 그러한 순간적인 경지에 놓여지게 될 때에, 거기에 미래에 대한 소망의 마음이 크든가, 혹은 미래에 대한 자기의 마음 앞에 용서할 수 없는 비참한 정경이 크든가 해서 이에 대한 반발적인 마음이거나 동경하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두 갈래 길에서 결심한 그 결심을 가지고, 어떠한 치열한 투쟁이나, 고난이 나에게 닥쳐오더라도 이것을 다 무찌르고, 내가 환경에 굴복하는 자가 되지 않고 환경을 굴복시키겠다는 각오와 신념 밑에서 투쟁의 과정을 거친 승리자가 반드시 역사적인 한 전환점을 이루어 놓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통일교회의 움직임을 따라 한 인연을 갖고 나간다 할진대는, 통일교회에 대한 여러분의 책임과 사명도 물론 있겠지만 자기라는 귀한 생명체를 두고 볼 때, 과거보다도 지금의 좀더 가치 있는 자기 모습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앞으로 오는 미래의 노정에 있어서 더 빛날 수 있는 생의 가치를 지니고 싶은 것입니다. 그건 인간이면 어느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순간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은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이제부터 가야 할 내 일생행로의 운명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마음 가운데 결심한 그 결심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험한 사회악이 나를 주위에서 포위해 가지고 사로잡으려고 한다 할지라도 나는 거기에 포로가 될망정 항복은 하지 않겠다, 포로가 되어서 고통을 받는 그런 자리에 있더라도 내 절개와 내가 지켜 나가야 할 그 전통적인 신념만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여러분들이 끝까지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에 선 내 자신을….
이제 이날이 지나고 나면 여기에 있는 선생들이 직접 가 가지고 환경을 수습해 주고, 직접 생활의 지도자가 되어 주고, 여러분의 전후를 지켜주는 보호자가 되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떠나면 지금까지 결심하였던 그런 환경보다도 더 비참하고, 내일의 환경은 더 외로울 것입니다.
또, 이 자리에서는 원수를 몰랐지만 이제부터는 원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수련기간에 있어서 수련생끼리 혹은 식구끼리 좋지 못한 사연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차피 이 기간에 ㅁ수습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찾아가는 환경을 여러분들이 용서해 주고 여러분들이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수습되는 환경이 되지 못하게 될 때는 거기에서도 여러분이 꿋꿋이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고 자기 스스로 극복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약화되는 상태에 이르게 될 때 스스로 이것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내 힘이 아닌 딴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엎드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 스스로 무력한 상태에 빠지게 될 때는 기도보다도 이것을 빨리 보충할 수 있는 동지를 찾아 가지고 서로서로 협조하면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각자의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새롭게 다짐한 그 결심을, 어떠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신념을 이 시간을 지내고 떠나게 되는 환경에서 세우기를 부탁합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 앞에 말씀하려는 제목은 뭐냐 하면 `나는 어찌하나'입니다. 그러한 제목을 가지고 여러분한테 권고 말씀 하나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가고 나서도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에 혹은 추억에 남을 수 있는 말씀이 될까 해서 그런 내용으로 말씀해 보겠습니다.
`나는 어찌하나' 하는 그 입장은 어떤 면으로 보게 된다면 힘든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낙망된 자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 보게 된다면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소망을 대해 가지고 새로이 분발심을 가지고 자기의 용자(勇姿)를 전체 앞에 보여 줘서 수습하기 위한 그런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찌하나'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하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슬픈 일과 기쁜 일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또, 선한 일과 악한 일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도 있고 믿어 주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내가 믿을 일이 있고 믿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상반된 환경에서 여러분을 끌고 있고 또 끌지 않으면 여러분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할 운명에 서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올시다.
대한민국 자체를 두고 볼 때에도 이렇게 왔고 이제 또 이렇게 가야 할, 또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언제나 고정된 환경에서 자기 생애를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이런 사회환경이 아니요, 우리 생활무대가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전체 사회인이요, 전체 인류요, 작게 보면 내 개인인 것입니다.
이 개인을 두고 볼 때,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좌우 전후 상하가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선, 전체를 다 제껴 놓고 `나'라는 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것은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을 것이어늘, 내 일생을 중심삼고 본다면 내가 이 땅 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낳아준 선조가 있고, 내가 지금의 나로서 존속하기 위해서는 나를 직접 낳아 준 부모가 있고, 또 미래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낳아줘야 할 후손이 있어야 하는, 즉 내가 부모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좀더 크게 보아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 할진대는 이 하늘과 땅은 반드시 `나'라는 것을 중심삼아 가지고 엮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서 피조물과 창조주, 창조주와 피조물을 생각할때, 그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도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가 개재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나라는 존재가 언뜻 보면 다른 개체로서 대롱대롱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을 인연의 세계, 관계의 세계에 놔두고 볼 때는 나를 빼놓고는 완전한 전체적인 가치, 혹은 절대적인 가치의 내용을 완결지을 수 없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소망에 불타 행복의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와 행복과 평화의 세계에서 참된 나로서 있느냐 할 때에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행과 고통과 증오 가운데 살면서 내 자신이 낙망과 절망의 길에 가까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길이 없습니다.
좋을 수 있는 환경에서 출발하여 좋을 수 있는 내 자신의 생활을 세울 수 있다면 별문제로되, 좋을 수 없는 환경에서 출발하였고 좋을 수 없는 문제를 직접 대하여 처리해야 할 입장에 선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기에는 고통이 개재되고 슬픔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보면 기쁨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세상이 못 되어 있고 슬픔이 내 생활을 감도는 세상인 것을 알게 될 때 그 가운데 살고 있는 나 자신도 슬픈 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 선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어찌하느냐, 나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말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돌아가서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계셔서 천지를 창조했는데, 천지를 창조해 가지고는 반드시 여기에 대우주의 목적을 앞에 놓고 내가 생활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던 `나'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전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소망의 천지를 잃어버린 우리 인생이 된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볼 때 그들도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섰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하여 아담 해와의 후손인 지금까지 역대의 우리 선조들을 중심삼고 볼 때, 오랜 역사노정을 섭리의 뜻을 대하는 일면에 서 가지고 따라 나오는 그런 시대 시대마다의 그 선조들도 역시 `우리는 어찌하나. 나는 어찌하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고 살아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 역사적인 인연을 지니고 태어난 오늘날 나 자신도 역시 그런 운명의 권내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선조들이 `우리는 어찌하나. 나는 어찌하나' 하던 역사적인 비운의 유업을 남긴 그 무대를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때문에 오늘날 그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들도 역시 역사적인 보응으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역사적인 선조들이 슬퍼하던 그 운명을 지니고 내가 다시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선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에 섬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되어 있고 나와 같은 인연 가운데 살고 있는 오늘날 3천만 민중이면 3천만 민중, 세계 인류면 인류도 역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심각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어찌하나. 나는 어찌하나' 하는 고민 가운데서 신음하고, 그런 고민 가운데서 낙망하고, 그런 고민 가운데서 자포자기하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의 내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그와 같은 일이 또 나로부터 되풀이 된다면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후대에 연결될 수 있는 세계, 나를 중심삼아 가지고 연결돼야 할 미래의 자아의 생애 무대라는 것은 비참 그대로의 연속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여기에 뜻을 품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할진대는, 과거와 현재의 환경을 놓고 다시 한 번 뉘우치면서 이념의 세계를 향하여 갈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느끼어서 그것을 찾기에 허덕이는 많은 무리가 없어서는 안 될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이념을 갖고 나선 우리들은 어떠한 무리냐? 과거 우리 선조들이 `우리는 어찌하나' 하며 고민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며 고민하고 있는 이 사회악과 대결하여 척결함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한 획기적인 기점하여, 우리를 중심삼아 가지고 절망과 도탄 중에 살아왔던 이 모든 과거 역사, 현재 시대를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이념 무대를 세워, 이제 우리들은 탄식적인 한에 잠기는, `나는 어찌하느냐' 하는 입장에 서지 않고, 소망과 책임과 새로운 가치를 중심삼아 가지고, 사명감에 불타서 `나는 이 사명을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이런 제2 자아의 의식을 강화하는 자리에서 `나는 어찌하느냐' 하는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우리 통일교회의 사명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나를 중심삼고, 나를 획점(劃点)으로 세워 놓고 보게 될 때 지금까지의 과거와 이제부터의 남아진 생의 노정을 지내는 여러분의 역사와 그 역사가 끝난 후 여러분의 후손을 중심삼고 되어질 역사가 차이가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도리어 더 불쌍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역사의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우리는 어쩌나', 혹은 이 시대에 있어서`우리들은 어쩌나' 하며 도탄 중에 살고 있던 이 무리들이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무엇을 알아서 새로운 사명에 불타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 이러이러한 입장에 서서 내가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중 삼중으로 결의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에서 가야 할 나, 격동되는 마음의 자극과 내가 다진 모든 신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입장에서 원수를 대하여 공분의 마음을 품고 내일부터 달려가고자 하는 나는 어떠냐 하는, 소망적인 한 면을 중심삼고 `나는 어쩌나' 하는 이런 입장에 섰다가, 과거와 현재와의 현격한 차이를 여러분 자신들이 맺어 놓지 못한다 할진대는, 새로운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어쩌나' 해 가지고 결의한 입장에 선 사람이 새로운 면의 책임자로서의 무엇을 남겨 놓지 못한다 할진대는, 도리어 앞으로 후진들 앞에 여러분이 전통을 물려줄 수 없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크나큰 소망과 크나큰 이념의 세계에 보답할 수 있는 사명을 하는 것을 제지하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이것 역시 우리들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과 땅의 일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게 될 때,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타락의 한을 품고 `나는 어찌하나' 하는 그런 탄식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아담해와에서만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도 역시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어쩌나' 하는 입장에 계신 것입니다.
이념적인 하나의 창조세계, 창조이상세계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아들딸인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소망의 일념으로 바라보던 하나님의 그 마음 앞에 타락한 아담이 `나는 어쩌나' 하는 입장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도 역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탄식의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 그렇게 돼 있으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모든 피조만물도,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만물도 역시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지내 왔고, 하늘이 이렇게 슬퍼하고, 하나님이 곤궁에 빠져 있으니 만물도 역시 같은 입장에서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서 지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영계는 말할 것도 없고, 지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도 그러려니와 땅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인간은 자리 자신이 저끄러뜨렸으니 그 죄의 보응으로 말미암아 응당히 받아야 할 입장에 있겠지만 하나님까지도 '나는 어쩌나. 나는 어찌하나' 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루뿐이 아닙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지내 오면서 인간들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같이 하나님도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본래의 창조이상으로 보게 될 때에, 하늘을 중심삼고 보면 인간은 충신이 되어야 되고, 생활적인 가정을 중심삼고 보면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할 것인데, 충신이 못 되고 효자 효녀가 못 됐습니다. 그러니 그런 효자 효녀를 바라보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효자를 세우고 혹은 충신 열녀를 세우기 위한 그 마음을 가지고 나오셨습니다. 그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내적인 하나님의 고충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의 역사를 거듭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 신도들도 이러한 한(恨)의 역사를 박차 버리고, 한의 시대를 전부 다 말아 치워 버리고, 이 땅 위에 하늘이 소망하는 충신열녀를 사보하고 하늘이 사모하는 효자 효녀를 소망하면서 그걸 찾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인 전통은 반드시 충신을 찾고있고, 혹은 시대적인 환경에 있어서 부모에 대한 효자 효녀를 찾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바라보는 그런 내용은 남아 있으나 실체로서 하늘 앞에 찾아지지 못한다 할진대는 하늘은 아직까지 말하고 나서 대답하는 자식을 찾지 못한 것이요, 심부름을 시키고 나서 심부름 간 자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것과 같은 답장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우리의 선조들을 대해 나오는 하늘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은 기나긴 역사노정에 있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또 그 마음 가운데는 `이 땅 위에 충신을 세워 놓지 못하면 어찌하나? 이 땅 위에 참다운 효자 효녀를 세워 놓지 못하면 어찌하나' 하는 마음을 갖고 나오신 것입니다.
참다운 효자 효녀를 세워 놓으면 하늘의 소원은 거기서부터 무한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중심삼고 종족, 종족을 중심삼고 민족, 민족을 중심삼고 국가와 세계와 천주까지 이 충신의 전통을 세워야 할 것이며, 효자 효녀의 전통을 이 많은 인간 앞에 세워야 할 것인데 그러한 환경도, 그러한 존재도, 그러한 민족도, 그러한 국가도, 그러한 세계도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아버지는 `나는 어찌하나' 하는 애달픈 심정을, 하루가 아니고 지금까지의 기나긴 세월을 하루와 같이 한을 품고 탄식하며 나왔다는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하늘이 그와 같기에 하늘 앞에 가까운 자리에 있는 영계도 물론 그랬다는 것입니다. 역대 우리 선조들이 하늘을 배반할 적마다 천상에 가 있는 타락한 아담 해와의 영은 물론이려니와 실수하고 간 모든 선조들까지도 그 시대의 후손들을 대하여 그들이 소원하던 그 뜻을 대신하여 탄식의 고비를 넘어 가지고 승리의 어떠한 흔적을 세우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는 소원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이스라엘 선민의 후손들이 하늘 뜻 앞에 모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에 영계에 가 있는 선조들 역시 `우리는 어찌할꼬?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불러 놓게 될 때는 크나큰 책임을 지워서 반드시 하늘땅을 대신한 충신, 효자 효녀로서 그들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 세워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런 선조들이 후손으로 태어났던 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그 뜻을 대할 수 있는, `나는 어찌하나' 하는 하늘의 일념을 제거시켜 줄 수 있는 이런 실체적인 대상의 존재가 나오지 않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땅을 대하는 영계의 영인들도 같은 입장에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섰으니 하늘의 뜻을 대해 나오던 우리의 선조들도 마찬가지요, 하늘과 땅도 마찬가지요, 오늘날 이 인류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인류의 입장이라는 것은 어떠한 입장이냐? 하늘은 전후를 알고 앞으로 갈 길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 있었지만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전후도 모르고 그저 절망 가운데서 `우리는 어찌하나' 하는 탄식권 내에서 생애노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을 바라보게 될 때에 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들을 바라보는 하늘은 또다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 그 후손으로 태어난 여러분 자신들은 생각해 봐야 됩니다.
하늘을 앞에 놓고 선조를 불러 바라보게 될 때 우리 선조 가운데 하늘이 고대하던 충신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없었다 할진대는 지금 나는 어떠한 존재냐? 혹은 우리 선조 가운데에 역대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이 소원하시던 참다운 효자 효녀가 있었느냐 할 때에 없었다 이겁니다. 그러면 후손된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입니다.
하늘의 역사는 복귀의 역사로서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여 역사적인 발전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 나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될 때에, 오늘날 개인으로부터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까지 하늘을 품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면, 오늘 그 환경에서 개인을 지켜주고, 가정을 지켜주고,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지켜주고 세계까지도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이 없다 할진대는 하늘은 또 이중 삼중의 짐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이 없이 역사를 세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입장에 있으니 개인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ㆍ국가ㆍ세계적인 책임도 하늘이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종적 책임의 역사를 해 나오면서 한 중심을 세워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가정ㆍ민족ㆍ국가ㆍ세계ㆍ천주까지 연결시켜서 승리적인 결과를 일대에 세울 수 있는 세계적인 참다운 조상을 만들었더라면 그를 중심삼고 하늘은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지나가고 보니 때는 세계적인 때가 되었다 이겁니다.
지금 때라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땅을 중심삼고 볼 때에, 복귀섭리로 볼 때에 세계적인 때인데 이 세계적인 때를 맞이하여 승리한 조상이 없게 되니 이 종적인 역사가 땅 위에 설 수 없으며, 종적인 역사가 설 수 없으니 횡적인 이 현실적인 기반도 세울 수 없는 연고로 하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택하여 세웠던 것을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고,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하늘 앞에 책임 못 한 것을 또 후회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어디 한 부분을 가꾸어 수습할 수 없는 이때, 이 사명적인 시대는 세계적 시대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책임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세계적인 책임을 할 수 있는 민족ㆍ국가가 없으니 이 책임을 누가 지느냐 이겁니다. 그 책임을 그 누구도 못 지니 하나님 자신이 또 져야 할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현세를 바라보시고 `나는 어찌하느냐' 하는 그런 입장인 것을 우리가 미루어 보게 될 때 과연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늘은 섭리해 나왔지만 승리하게 한 것도 역시 하나님이요, 승리한 것도 하나님이요, 오늘날 역사를 이렇게 발전시켜 나온 것도 역시 하나님이요, 발전시켜 가지고 이것을 또 책임져야 할 것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체가 하나님으로서 끝나지 않으니 하늘은 비로소 인간과 동력할 수 있는 어떠한 조건을 세워서 세계적인 복귀의 한계를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이때에 있어서 개인을 대신하고, 그다음에는 가정을 대신하고, 그다음에는 민족을 대신하고, 그다음에는 국가를 대신하고 세계ㆍ천주ㆍ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기준, `하늘이 바라던 역사적인 충신이 나왔습니다' 할 수 있는 한 기준이 있어야 되겠고, `하늘이 바라던 효자 효녀의 한 기준이 여기 있나이다' 할 수 있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가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땅 위에 있어야만이 오늘날 그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의 이념이 세계적이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것이요, 그의 이념이 천주적이면 천주를 수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자로서 하늘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계시고, 인간세계의 종적인 역사, 횡적인 역사가 전부 다 실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입장에 있고, 이 인류가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 있고 이도 저도 전부 다 '어찌하나' 하고 있는데, 이것을 책임지고 그 `어찌하나' 하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그가 즉 오시는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올 때까지의 역사가 개인적인 무대로부터 세계적인 무대는 준비됐지만, 이 세계적인 도상에 있어서 일직선으로 내려오던 이스라엘 직계 선조들을 개인적으로 세우고 가정적으로 세워서 역사했지만, 완전한 승리의 결정을 세워 가지고 `이는 사탄세계 앞에 있어서 참 중심이요, 참 효자다' 라는 결정적인 기준을 세워 놓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전부 다 심판하겠다 하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구원섭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의 한때에 와 가지고는 충신이 나와야 되는 것이요, 최후의 한 때에 와서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충신은 누구냐? 국가를 대표하고 설 때는 하늘 앞에 있어서 충신의 입장이요, 참다운 가정을 대표하고 나타나면 효자 효녀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서기 위해서 전통적인 심정의 도리를 상속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의 기준입니다. 예수와 성신이 충성을 다하고 지켜 온 그 절개를 중심삼은,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지상 위의 실체 기준으로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하나의 충신과 하나의 효자 효녀, 하나의 열녀를 세워서 비로소 그들로 말미암아 개인을 심판하고, 가정을 심판하고, 그다음엔 민족ㆍ국가ㆍ세계 전체를 심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게 될 때까지 하나님은 `나는 어찌하나' 하는 한을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을 중심삼아 가지고는 한을 풀 수 없기 때문에 보내실 메시아를 고대하면서 지금까지 땅을 대해서 섭리하는 섭리의 고통보다도 그 섭리의 고통을 넘어서라도 또 다시 고통을 참고 또 해야 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 결심이 무엇이냐? 타락한 이 땅 위의 인간들을 붙들고 섭리하다가 인간들로부터 배반당하면 하늘은 피해버릴 그런 입장에 있었지만 소망으로 오실 메시아, 소망으로 오실 충신, 효자효녀가 미래에 기필코 올 것을 믿고 그를 위하여 길을 닦으면서 그 한날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내려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어떠한 분이냐? 하늘의 한을 대신한 분이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하늘 앞에 있어서 효자의 도리, 충신의 도리를 세우지 못하고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없는 이러한 탄식권의 세상 앞에 비로소 인간세계의 한을 대신 사람하여 `우리들은 어찌하나' 하는 이 문제까지, 두 세계의 한을 책임지고 이것을 풀어드리기 위해 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분은 하늘로 볼 때 하늘이 세운 충신이요, 효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을 중심삼고 상대적인 입장에 선 사람 역시 열녀와 효녀인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천지가 아무리 요동하더라도 요동할 수 없는 충신의 칭호를 남겨야 되고, 아무리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효자 효녀의 칭호를 남겨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인류도 물론 공동적인 입장에서 공인해야 되지만 천상세계의 우리의 역사적인 과거의 선조들도 공인해야 되고, 앞으로 올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도 공인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한번 공인되면 공인된 것이 억천만세에 최고의 중심으로 남겨질 수 있는 이런 존재로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그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게 되면 그분이 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 그분은 내적으로는 하늘을 위로해 드리고 외적으로는 인간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세상의 인간들은 낙망과 절망, 탄식, 최후에는 자포자기하여 인생의 모든 가치를 망각해 버리고 생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수라장을 이루고 있으니 이런 전인류를 책임지고 보호해야 된다는 겁니다
보호해 가지고는 무엇을 만들어야 되느냐? 하늘은 충신을 바라는 것이요, 효자를 바라는 것이니 자기를 기준으로 하여 거기에 새로운 교훈을 세워서 가르쳐 줘 가지고 만민을 하늘의 효자, 충신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대신하여 전충신의 왕이 돼야 되고, 효자의 왕의 자리에 서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날 타락한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한 때가 기필코 땅에 왔다 할진대는, 그때를 맞이한 우리 개체들은 어찌해야 되느냐?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역사를 생각하나 혹은 실체로서 생각하나 우리 선조 가운데서 하늘을 위하여, 충신은 못 됐을망정 충신의 심부름꾼 노릇이라도 하고, 또는 중신이 고통을 받는 데 있어서 어떠한 면을 도와준 조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하고 생각해도 없다 할진대는 여러분들은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나는 어찌하나' 하는 입장에서 자기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분석하여서 과거의 역사적인 면을 회개하고, 그와 동시에 이 시대적인 면을 회개하고, 즉 과거, 현재의 모든 것을 회개하는 동시에 이제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그러한 나를 중심삼아 하늘의 충신의 도리를 이 시대에 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혜택을 부여받고, 효자가 될 수 있는 도리를 부여받았다 할진대는 있는 충성을 다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뜻을 알고 하늘의 심정을 알면 알수록, 그 책임적인 입장에 서면 설수록, 자기가 사명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어찌하나' 할 때에 위로는 선조를 대하여도 변명할 수 없고, 이 시대의 인간을 대하여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단 책임적인 사명을 우리들이 느끼면 느낄수록, 그 선조들이 충신이 못 됐고 효자가 못 된 것을 한하면 한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내 자신에 있어서는 더 큰 충성이 필요하고, 더 큰 효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말을 중심삼고 볼 때에, 우리는 역사적인 최후의 시대를 맞이하여 하늘의 충신의 도리를 배워야 되겠고, 하늘의 효자 열녀 효녀의 도리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하늘을 대해 나오는 최고의 소망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충신의 도리를 배울래야 배울 수 없었고, 효자 효녀의 도리를 배울래야 배울 수 없었고, 열녀의 도리를 배울래야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민족ㆍ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별적인 주권을 기반으로 하여 하늘을 대하여 충성을 해야 할 것을 국가에게 했고, 하늘을 대하여 효성을 해야 할 것을 자기를 낳은 부모에게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관계에서만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오시는 주님이 세계적인 충신이요, 역사적인 충신이요, 역사적인 효자 효녀였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충신으로서 하늘을 대할 수 있어야 되겠고 그로 말미암아 내가 하늘 앞에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역사적인 충신이 되어야 됩니다. 우주사적인 충신이 되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도리를 몰랐고 그러한 길을 몰랐으니 그 길을 가르침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충신의 도리와 열녀의 도리, 혹은 효자 효녀의 도리를 세계사적으로 한 분밖에 없는 그분으로부터 배워가지고 그런 시대 환경에 처해서 그런 입장에서 그런 길을 갈 수 있다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나는 어찌하느냐? 나는 어찌해야 될 것이냐? 충신이 가는 모든 생활 태도, 효자 효녀들이 가는 생활 태도를 어떻게 해야 될것이냐? 그것은 각자가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뜻을 알면 알수록, 아버지의 심정을 알면 알수록, 뜻에 대한 사명을 져야 할 것을 자기가 각오하면 할수록 과거 우리 선조들이 역사에 남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무엇으로 막아낼 것이냐? 현재 우리 민족과 세계 인류의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무엇으로 막을 것이냐?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렇지만 오늘날 하늘이 엄청난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 세우는 데 수고한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이겁니다. 이건 엄청난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일신을 어떻게 해서 갚을 도리가 없고, 어떻게 해서 세울 수 없는 것이지만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를 잊어버리고, 하늘의 모든 과거의 심정을 다 잊어버리고, 그건 다 그만두고 앞으로 보내시는 메시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와 일체가 되라 이겁니다. 과거의 선조가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실수는 다 그만두고 하늘을 위하여 곡절을 겪었고 하늘을 위하여 눈물지었고 아버지 자신이 `나는 어찌하나' 하시었고, 천상천하가 전부다 그런 한을 품고 지내온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 한을 총 책임지고 오시는 메시아를 대하여 그가 가르쳐 주는 도리를 따라 눈물과 피와 땀의 그 모든 심정을 다하여서 그가 가르치고 명령하는 대로라도 순종하고, 그가 가르치는 그 생활권 내에서 효자의 도리라도 세우기를 바라는 그러한 기준으로써 하늘은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내 자신과 여러분 자신은 이 황공함을 금할 바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6천 년동안 하늘과 하늘을 중심삼은 우리 선조들이 한 모든 것을 전부 다 잊어버리고 이 땅에 오신 그 주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러한 내적 싸움과 외적 싸움에 다 참석 못 하더라도 그가 직접 생활 무대에서 명령하는 명령이라도 감당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명령을 하면 명령이라도 실행할 줄 아는 입장에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은 효자, 혹은 충신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시겠느냐? 사탄과 하나님과 선조들이 `요만한 정도로 나가는 기준이라도 되어야 최소한도 충신의 명예를 줄 수 있고, 요만한 한계에서 움직여야 최소한도 효자 효녀라 할 수 있다' 하는 최소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세워 만민 앞에 그런 길을 가라고 명령할 때가 올 것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 오거든 나는 어찌하나? 모든 것 다 잊어버리고 과거를 걸어놓고 현재를 걸어 놓고, 하늘과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이 그런 나로 말미암아 고통당한 것을 생각할 때는 몸둘 바를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다 잊고 어느 한 때에 있어서 충신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고 가라 하고, 효자 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고 가라 하는 제일 낮고 제일 적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명령을 신봉하고 복종하고 책임 완수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충신이 못 되거든 충신의 후손으로 만들어 주고 효자 효녀가 못 되거든 효자 효녀의 혈족으로라도 이 만민을 옮겨 놓아야 됩니다. 그것이 오시는 주님의 사명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하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깊은 회개와 진한 눈물을 동반하여 간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결실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보응으로서 `나 같은 것은 설 수 없는 존재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이 우리에게 이런 시대를 맞이하게 하여 세워 주다니 감사합니다' 할 줄 알아야 되고, 감사로 끝날 것이 아니라 여기에 책임감을 갖고 `나는 과거를 청산하고 과거의 우리 조상과 같이 되지 않고 현재의 우리 부모와 우리 형제와 같이 되지 않겠다'라고 분하게 재결의할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떠나야 할 수련생 여러분은 내일이 되면 가게 되는데, 과거를 보나 현재를 보나 미래를 볼 때에 분하고 한스러운 공분의 마음에 사무쳐 `이것은 누구 때문이냐? 우리 선조인 아담 해와의 모든 실수로 말미암아 된 거다. 아담 해와의 실수는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느냐? 이놈의 사탄때문이다. 이 분함과 이 억울함, 이 의분심과 공분심을 이 원수를 갚는 데 풀겠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원수의 농간으로 6천 년 동안 효자 충신의 도리를 유린했거늘 내 시대 이때에 결단코 이것을 용허할 수 없다. 단연코 이것을 처치해 버리겠다. 남은 여생을 통하여 하늘이 남겨 준 충신의 도리, 효성의 도리를 최소의 자리에서라도 지키겠다' 하는 각오와 결의를 갖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서의 한탄이 `나는 어찌하나'라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과거에 대한 후회, 지금까지 선조들에 대한 후회, 이 시대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하늘이 세우신 뜻을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온 우리의 선조들을 이 땅이 저주하고 이 땅이 핍박하였으니 거기에 대한 분한 마음을 가지고 이것을 책임져야 되겠어요. 바로 이것은 사탄 때문이니 사탄을 이 지구상에서 박멸하여 오시는 주님이 그가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평탄하게 하고, 그가 세울 수 있는 가정을 만드는 데 있어서 준비하고, 그가 민족을 찾는 데 있어서 준비할 수 있게끔 자기 자신이 노력하고, 그가 민족을 합하여 국가를 세우는 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은 민족 대열을 만들기 위해 수고하고, 세계를 찾는 데 있어서 그 분야를 넓히고 도움 될 수 있는 면을 넓히기 위하여 자신이 수고해야 된다 이겁니다.
이런 전반적인 문제를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사회ㆍ종족ㆍ국가ㆍ세계에까지 뜻을 중심삼고 개체로서 승리적인 기반을 사탄과 하늘땅 앞에 세우고, 개인으로서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그 발판이 되고 판도의 기반을 대신할 수 있는 이러한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있는 충성을 다하여야만 어느 기간 쯤에 가 가지고 비로소 충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번에 충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신, 효자 효녀의 도리를 유린하는 이 후손들을 어떻게 해서 충신, 효자 효녀의 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겠느냐? 어느 기간 개인과 가정과, 종족 이렇게 쭉─복귀노정의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6천 년 동안 종적인 역사를 거쳐 이 역사를 횡적인 어느 기간을 세워 가지고 요 기간에 있어서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사회적이요, 국가적이요,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복귀섭리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하늘이 `이제는 충신의 도리를 세웠다. 혹은 효자 효녀의 도리를 세계 인류 앞에, 만방 앞에 세웠다. 그 세운 것이 다시는 침범받지 않는다' 하는 절대 안전한 자리까지 여러분들이 참고 같이 나가야만 충신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찌해야 하느냐 하면 충신이 되어야 되겠고 효자 효녀가 되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하늘의 소원이예요. 이것이 지금까지 예수와 성신이 바라고 왔던 소원이요, 우리 선조들의 소원이요, 오늘날 인류가 바라는 소원이요, 이 시대에 당면한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이 소원을 중심삼아 가지고 소원대로 되어야 되겠다 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 섰으니….
가르쳐 줄 도리가 없었고 가르쳐 줄 길이 없었기에 과거에는 될래야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되려면 될 수 있는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알고 나는 기필코 이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역사적인 모든 선조와 같이 또 영계에 가서 `나는 어찌하나' 하면서 한을 남기는 무리가 되지 않고, 내 일대에 있어서 이걸 종결지어서 `나는 어찌하나' 하는 이런 위치에 설 수 있는 후손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단결하고 하나되어 이것을 완결시키어 국가적인 충신의 기반, 국가적인 효자 효녀의 기반을 닦아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수련생 여러분들이 이제 나가려면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기간이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남은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충신, 효자 효녀가 되어야 되겠다는 이런 입장에서 과거의 슬픔과 현실에 대해 적개심을 느끼고 원수를 갚아야 되겠어요. 하나님의 원수요, 인류의 원수요, 천지의 원수요, 우리들의 원수인 이 원수를 대하여, 하늘의 염려를 덜어 주고 하늘의 아들딸의 염려를 덜어 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원수도 역시 `그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라고 공인할 수 있는 이런 승리를 가져와야만 여러분은 충신 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고 이제 나가는 수련생들은 단단히 결의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와 같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몇 식구 안 될 때는 나가기 쉬웠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직접 지도했고 영계에서 직접지도 했지만 지금은 영계도 지도하지 않고 선생님도 지도하지 않는다 이겁니다. 지구장 지역장들이 지도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뜻 앞에 충신이 되고 효자 효녀가 되는 도리에 있어서 내용이 달라졌느냐 하면 아니다 이겁니다. 그것은 마찬가지지만 직접적인 간섭을 안 하니만큼 거기에서 충성을 하면 할수록 그 가치는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때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하늘은 받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간섭을 안 하는 자리에서 효자가 되고 충신 열녀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지시하고 명령하지 않아도 원수 사탄을 대해 복수하고 탕감하기 위해 책임지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복이겠느냐 이겁니다. 그런 것을 알고 이 시대와 이 세대를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싸워 나갈 수 있는 이런 내 입장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내일을 향하여 `나는 어찌하나'하는 이런 문제에 부딪칠 때 나는 충신이 되었고, 효자 효녀가 되었다 할 때까지 쓰러지지 말고 기필코 나가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예」 기도하자구요.
아버님, 지음받은 모든 만물은 아버지의 손길에 의해 빚음을 받을 때에는 전부가 기쁨으로서 아버지의 영광의 상징의 물체로서 나타났던 것을 알았습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이 천지가 탄식권 내에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승리의 날을 성취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때를 고대하며 지금까지 나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나이다.
하나님이 `나는 어찌할꼬' 하시던 그 한스러웠던 심정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주로 한 영계에 있는 우리 선조들이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그 자리에 있더라도, 자기들이 책임 못 하여 후손에게까지 이것을 연장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슬픔이 남게 된 것을 직접 대하고 직접 알 수 있는 입장에서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천 번 죽어 백 번 죽어 그런 길을 면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마음으로 하늘 앞에 회개의 눈물을 영계에서도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원한을 하늘은 긍휼로써 살펴 주시고 역사적인 후손을 다시 한 번 품어 주시기 위하여 메시아, 부모를 보내셨고, 부모는 그 슬픔을 전부 다 자손에게 나눠 주지 않고 자녀의 슬픔을 다시 맡아 주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고맙습니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지금의 참다운 현실적인 모든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 앞에 충신과 열녀가 되는 길은 이런 길이요, 효자 효녀가 되는 길은 이런 길이다' 하는, 부모가 가는 그 생활적인 법도에 따라서 감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충신이 되고 하늘의 효자 효녀가 되는 그 자리를 남겨 주기 위해서 재림이란 날을 세우시어서 6천 년 동안 섭리해 온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뜻과 그런 사명의 내용을 저희들은 심정을 통하여 이제 배웠습니다. 40일 기간을 통하여 남이 모르는 이런 세계적 분야를 알았사옵고, 남이 모르는, 아버지를 중심삼은 관계와 인연이 어떻게 돼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이런 자리에 있어서 `나는 어찌하나' 하게 될 때 이제 단 한 가지 방법은 딴 것이 아니오라, 명령에 순응하고 그 생활과 그 전통과 그 행동의 모든 것을 본받아서 사탄 앞에 굴하지 않고 하늘을 대신해 꿋꿋이 싸워 원수를 자연굴복시킴으로써 승리의 자리에 나가 하늘이 `너는 내가 기억하는 충신이요, 내가 공인하는 효자다' 하는 동시에, 사탄까지도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하늘의 아들이다'라고 할 수 있는 증거를 받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최후의 고비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 고비는 한 순간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개인과 가정과 종족ㆍ민족ㆍ국가ㆍ세계를 향하여 그런 기간을 중심삼아 넘어가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기간에 저희들이 충성을 다하고 있는 정성을 다해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절대 순응하여 산 제물이 되더라도 부족함을 느끼면서, 원수 앞에 하늘의 위신을 세우고 자기의 비열함을 보이지 않고 끝까지 천적 위신을 세워 나가는 참다운 효자 효녀가 되는 동시에 충신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가는 생애의 노정을 부탁하오니 아버지, 맡아 주시옵소서. 이들이 가는 길에 있어서 낙망과 낙담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을지라도 그들은 아직까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미약한 자리에 서 있는 것을 아시어서 친히 보호하여 주시옵고 간섭하시어서, 아버지가 세우신 바 본연의 참다운 충효의 도리의 권내에 있어서 아버지가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하여 영광 중에 기쁜 세계를 바라보고 길이길이 영원무궁토록 영광가운데 살 수 있는 자리에 이들도 동참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아버지, 품어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날을 염려하고 지방에서 이들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그들과 이들이 만나서 같이 서로서로 뜻을 대신해 나가는 길에 있어서, 서로서로가 힘이 되고 서로서로가 권고하고 서로서로가 빚지지 않고 서로서로가 빚을 지우기 위한 하늘의 선각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죽기 전에 충신 효자 효녀의 명패를 들고 아버지 앞에 다시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만만사의 영광이 이들과 같이하여 주옵기를 주의 이름으로써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여러분은 이 식(제18회 전국 전도사 수련회 수료식)을 마치고 돌아갈 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서는 환경에 굴복하지 말고 오히려 환경을 굴복시키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드릴 제목은 ‘나는 어찌 하나’입니다. 세상에는 기쁨과 슬픔이, 선과 악이, 믿을 수 있는 일과 믿지 못할 일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과거·현재·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조가 있고, 부모가 있고, 또한 자손이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인간이 개재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이러한 인연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참된 내가 되지 못하고 낙망과 절망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나를 개선해야 됩니다.
그럼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은 인간, 즉 나 하나를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셨으나 인간의 타락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도 하나님도 ‘어찌 하나?’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통일의 무리들은 소망과 책임과 사명에 불타는 제2의 자아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조 중에는 참다운 효자 충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면 그는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위로해야 하고, 외적으로는 인간을 보호해야 하며 자기를 기준으로 효자와 충신을 세워야 합니다.
주님이 ‘효자와 충신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을 세워 놓아라.’고 명령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나는 어찌 하나? 충신과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