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무사통과가 좋지요? 여러분이 어느 살림집에 턱 가면 눈치를 봅니까, 안 봅니까? 누가 볼까봐…. 그러는 것이 좋아요, '봐도 좋다' 이래 가지고 그저 더 먹고 싶으면 더 먹고 이러는 게 좋아요? 무사통과가 좋은 것입니다. 그렇지요? 무사통과라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어 가지고는 무사통과 사정과 무사통과 환경이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아들딸들이 자려고 할 때에 '어머니 아버지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요? 무사통과인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싫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를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희생적인 사랑이요, 봉사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보통 '그 여자가 시집가기 전에는 그렇게도 고생하더니 참 시집을 잘 갔어'라고 말할 때, 그 여자의 남편은 어떤 남자이기에 시집을 잘 갔다고 하겠습니까? 그 아내를 밤이나 낮이나 무조건 사랑해 주는 남자라는 거예요. 그저 언제든지 무슨 잘못된 일이 있으면 '내가 잘못했소' 하면서 전부 다 자기가 책임을 지고 색시를 사랑하는 그런 남자의 색시가 되었다면 그 색시는 시집을 잘 갔어요, 못 갔어요? 대답을 해보세요. 잘 갔어요, 못 갔어요? 「잘 갔습니다」 틀림없이 잘 갔지요? 「예」 또, 그렇게 희생적인 사랑을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신랑이라면, 그 신랑은 장가를 잘 갔어요, 못 갔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기를 바라요, 안 바라요? 그것도 커지는 거라구요. 또, 여러분의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희생적인 사랑을 하기를 바라요, 안 바라요? 그렇게 어머니 아버지가 희생적인 사랑을 주고받으면 누가 좋아합니까? 누가 좋아해요? 아들딸이 그것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가 서로 좋아 지내면 그 좋아 지내는 것이 아들딸의 좋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딸의 환경이 모두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둘이 그렇게만 된다면 그 아들딸들은 복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멋지다는 거예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복 중의 최고의 복이 무엇이냐 하면 희생적인 사랑, 봉사적인 사랑, 남을 위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자기를 위한 사랑은 오래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남편이 가만 보니까 유순한 아낙네인데…. 여기에도 유순한 처녀들이 있지? 얼굴을 보나 마음을 보나 유순한 처녀들이라 할지라도, 한 번 꼭 찔러 보고 두 번 꼭 찔러 보고 세 번 찔러 보고 네 번까지 꼬집어 보면 이렇게 토라져 가지고…. (행동으로 표현하시자 모두 웃음)
그 순한 처녀들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사랑을 하게 되면 바라보고 비교하고 이러다 보니 아이구 이거야…. 적막강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세상에 불쌍하게 태어났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뭐, 여자는 남자의 무슨 노리개야, 부속품이야? 부속품이라도 움직이는 데 박자를 맞추어 움직여 줘야 부속품 역할을 하지, 이게 뭡니까? 자기를 위하는 사랑은 처음에는 좋은 것 같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져요, 안 갈라져요?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신랑이 있지요?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그 신랑한테 한번 해 보라구요. '당신이 뭐야? 당신이 뭐냐구? 무슨 남자의 사랑이 그래? 좀 더 해주어야지. 당신이 남자니까 더 사랑해 줘야지. 한번 싸웁시다' (웃음) 이래 보라구요, 여러분의 남편이 어떻게 나오나. (웃음) 저 뒤에 들려요? 「예」 자기를 중심한 사랑은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만 새신랑이 새신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을 계속하게 된다면 끝장이 안 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소재지는 어디냐 할 때 '나'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냐 할 때 남편 앞에는 색시인 것이요, 색시 앞에는 남편인 것입니다. 사랑의 소재지가 자기입니까, 남입니까? 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천지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소재지가 상대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머리를 숙이고 '비나이다' 해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봉사하고, 희생하고, 남을 위하게 될 때만이 사랑의 본연의 소재지에서 사랑이 영원히 움직이고 꿈틀거린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라고요? 자기 자신이 사랑의 소재지라면 희생하는 것은 소모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사랑의 소재지라면 자신이 희생하는 것은 자기 자체의 소모에 불과하겠지만, 상대가 사랑의 소재지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당당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온유겸손하고 높여 주고 희생봉사하는 데서만 사랑이 옮겨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라고요? 「상대방입니다」 사랑의 소재지가 상대방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완전히 점령하기 전에는 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색시, 내 서방' 이렇게 말해야 자극적이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해야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내 남편, 내 부인' 하게 되면 맛이 안 나요. '내 색시, 내 서방' 이래야…. (웃음)
'내 사랑' 이라고 하려면 상대를 완전히 점령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내 사랑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남편이 아내에게 '나는 이렇게 잘났기 때문에 당신 같은 여자가 본래부터 나를 사랑하게 되어 있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오' 이렇게 큰소리를 친다면 처음 한두 번은 잘 들어주겠지만 밥 먹듯이 자꾸 그러면 한번 복수하고 싶어지고, 그런가 안 그런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 여자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소재지는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나라를 사랑한다 할 때 그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겠습니까? 자기에게 있는 것입니까?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한다 할 때 그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에 있느냐? 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계를 위하여 봉사해야 됩니다. 모두가 봉사하는 가운데서도 생명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으면 생명을 내놓고 적극적으로 희생하려고 하는 그 사람 앞에 먼저 사랑의 인연이 맺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기 위해서 준비를 쫙 해 놓고 순정을 품고 어떤 신랑이 나타날꼬 하면서 오늘이야 내일이야 쓱 기다리고 있는데 이웃 동네의 잘난 미남자로부터 청혼이 들어왔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여자들, 기분이 좋을까? 여자들은 기분이 나쁠 거라, 왜? '누가 볼세라 건드릴세라 그저 꽁꽁 동여매고 뒤집어씌워 간직해 온 순정의 보따리를 누구한테 풀어 놓을꼬'라고 생각하면 그 도둑 같은 남자들을 믿을 수 있겠어요? 누가 장가오겠다고 해도 기분이 나쁠 거예요.
그래, 여러분, 기분이 나쁘겠어요? 장가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될 때, 기분이 나쁠 것 같아요, 좋을 것 같아요? 시집가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처녀라면 모르지만, 시집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처녀라면, 시집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아가씨라면 말이에요, 시집을 가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장가오겠다는 사람이 없다면 섭섭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집가고 싶은데 마침 장가를 오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나는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어요. 여자분들, 대답해 보세요. 기분이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좋겠습니다」 좋을 거라고요.
기분이 좋아 가지고 쓱 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것입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척 일어나면 그 남자를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앞서 돌아갈 것입니다. 내가 구상하는 남자는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고 남자의 구비 조건은 여기에 몇 퍼센트나 합격일까? 처음 만났을때 그 사람의 구비 조건이 내가 바라는 조건에 백 퍼센트 이상 딱 들어맞고도 남아 가지고 그 사람을 붙들고 춤을 출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사람 이상의 사람이기를 바라겠어요, 자기가 바라던 사람 이하의 사람이기를 바라겠어요? 욕심은 그 이상의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그러한 남자가 동시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할 때는 한 사람만 보고 싶겠어요, 아니면 세 사람 다 보고 싶겠어요? 「다 보고 싶겠습니다」 욕심들은 많구만. 그러면 한꺼번에 백 사람이 나타났다 할 때는 어떻겠어요? '그때에는 그저 눈을 감고 닥치는 대로 한 사람 택하지 뭐' 그래요? 백 사람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자기에게 장가오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을 일일이 다 만나 봐야 되겠어요, 안 만나 봐도 되겠어요? 사흘에 한 사람씩 만난다 하더라도 1년이 걸리는구만.
그 백 사람을 전부 만나 보는데 1번 퇴짜놓고, 10번 퇴짜놓고, 30번 퇴짜놓고, 60번을 퇴짜놓았다고 할 때 그 나머지 사람들이 붙어 있겠어요? (웃음) 남아 있는 녀석은 미련한 녀석이라구. 60번까지 내려갔다면 그 다음 사람들은 다 도망갈 것입니다. 60번째인 사람도 도망가지.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저 여자는 어떻게 된 여자길래 이렇게 잘난 남자들을 다 후려 갈겨 버리고…. 어디로 시집가려고 그래. 에이 쌍 것'(웃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발을 잘해야 됩니다. 출발을 잘해야 된다구요. 잘못했다가는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순정도 출발을 잘못했다가는 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럼 시집을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될 것이냐? 시집을 어떻게 갈 것이냐? 희생적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생각해 보라구요. 얼굴이 못생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노력을 해야 되기 때문에 희생적 사랑이 필요합니다. 희생적인 사랑이 행복이라면, 2배의 희생을 해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1배의 희생을 해 가지고 사랑하는 것보다 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좋은 아들딸을 주는 데 있어서, 1배의 노력을 해서 잘사는 부부가 있고 얼굴이 못생긴 남편을 만나 가지고 2배의 노력을 하여 그들만큼 잘사는 부부가 있다 할 때, 하나님은 누구에게 좋은 아들딸을 주고자 하실 것인가 생각해 보세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2배의 노력을 해 가지고 1배의 노력을 한 부부만큼 잘사는 부부에게 좋은 아들딸을 주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느냐.
왜 그러냐? 사랑의 선물이란 보다 큰 희생의 터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희생이기 때문에 그런 터전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후대에 남겨 줄 수 있는 복덩이 아들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어떻게 하느냐? 백 사람이 왔다면 그들을 상대로 선을 볼 것이 아니라 '남자라면 누구라도 아침이나 대낮이나 밤이라 언제든지 사랑할 자신이 있소. 나에게 장가오고 싶거든 여러분끼리 시합을 해서 최후에 남아진 남자가 오시오' 해야 됩니다. 여자가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야, 그 여자 멋지다'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입니다.
서로 '너, 그 여자에게 장가갈 거야? 장가가겠어? 정말 갈 거야?' 할 때, '가겠다'고 하면 '이놈, 정말이야? 나하고 생명을 걸고 싸울 거야? 나와라. 나는 벌써 생명을 걸 각오를 했다' 하면서 얼굴도 보지 않고 덤벼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백 사람 가운데 맨 나중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다 싸워 넘어뜨리고 다 쫓아 버리고 남은 두 사람이 싸워 가지고 맨 나중에는 어떤 사람이 남느냐 하면,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한 사람이 남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선을 안 보고 신랑을 얻어도, 선을 보지 않고 시집을 가더라도 시집을 잘 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애꾸눈이라는 것입니다, 애꾸눈이. 여러분은 애꾸눈이 신랑을 생각해 봤어요? 「아니요」 그렇게 되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에 처녀가 약속하기를 싸워서 맨 나중까지 남아진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했다면, 남아진 사람이 애꾸눈이가 아니라 봉사라도 그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그 사람에게 시집을 안 가면 그 처녀는 생과부보다 더 한 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집을 못 간다는 거에요. 백여 명의 남자들을 싸움을 붙여 놓고 싸움 구경을 좋아하는 간나라고 레테르가 붙게 되면 그 여자는 시집을 못가는 것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그 사람이 비록 봉사라 할지라도 시집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봉사 신랑을 맞아 보라구요. 비록 앞은 못 보지만 사랑만은 제일 셀 것입니다. 그럴 것이 아니예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은 다리가 하나 없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영원히 남기고 싶은 것이지요? 그렇지요? 사랑은 영원히 남기고 싶은 것입니다. 참이란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행복이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한정이 없겠구만.
행복의 소재지는 사랑이로되 사랑의 소재지는 어디라구요? 자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려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세계를 사랑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목을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지 않는 사랑은 사랑답지 못한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한 80난 할머니라 해도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는, 남편의 생명을 단 사흘이라도 연장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는 희생을 하더라도 고마와할 수 있는 심정을 갖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어야만 그 부부의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참사랑은 다 좋아하지요?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통일교회 문선생이란 사람이 단에 서 가지고 '잘먹고 잘살아라. 포동포동하게 겹살이 쪄 가지고 말·돼지처럼 살아라' 하는 말을 한번도 들어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들어 봤어요, 못 들어 봤어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나타나면 '또 뭐 고생하라는 타령이 나올 것 같구만. 두고 보자. 내가 점친 것이 백발백중일 거라' 할 것입니다. 그거 백발백중이라구요. 백발백중하는 것이 참입니다. 늙은이가 보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요, 젊은이가 보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요,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보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랬다저랬다하는 것은 참이 아닙니다. 가짜는 이렇게 저렇게, 그저 왔다갔다하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은 얘기했다 하면 반드시 고생하라는 얘기부터 하는데 우리들과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렇게 고생을 시키려고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내가 알고 보니 고생시키는 사람이 됐어요.
고생을 시키는 데는, 너를 위해서 고생을 하라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고생을 시키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해 고생시키면 흥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은 사랑을 점령하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남을 위해 수고할 때는 그 수고의 대가로 반드시 받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그 사람의 사랑인 것입니다.
통일교회 여자들 중에 선생님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을 싫어하는 줄로 알아요. (웃음) 왜 웃어요?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본래부터 나를 싫어합니다. (웃음)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좋아해요? 「예」 다른 이유가 있어서 선생님을 좋아하는 모양인데…. 선생님이 필요하긴 하지. 왜 필요해요? 약방에서 언제든지 제일 필요로 한다는 무슨 초예요? 그 감초같이 말입니다.
이래도 짝, 저래도 짝 하니까 그저 좋은 때는 자기들이 나서고 나쁜 때는 선생님이 필요하고…. 여러분들이 고생을 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좋아하지 잘살아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생을 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좋아하지 잘만 살아 보라는 거예요. 선생님을 언제 알았더냐 하고 꿈도 안 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이 꿈도 안 꾸게 되면 다 망하겠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고생시켜 가지고 꿈이라도 꾸게 하고…. 선생님이 이렇게 대하는 것이 도리어 여러분들을 사랑하는 결과가 되고 여러분이 선생님을 사랑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사랑해요? 「예」 또 한 가지 물어 보자구요. 여러분들 중에서 몽시로, 혹은 기도 중에 가끔 선생님을 만나 보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이것이 사고입니다. (웃음) 왜 그러냐? 이것이 심상치 않은 일이라구요. 여러분이 몽시로는 언제나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선생님이 가까운 오빠와 같이 나타나서 손을 붙잡고 꽃동산에서 활개를 펴고 힘차게 뛰고 말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원수가 아닙니다. (웃음)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존중합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동네에서 손가락질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이 마을, 저 고을에서 '아, 저사람!' 하고 손가락질받기를 원하겠어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은 그 나라의 여자 축에도 못 들어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겠어요?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수많은 여자들이면 여자들, 남자들이면 남자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 축에서 빠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겠어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륵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잖아요? 선생님이 멋지기를 원해요, 째째하기를 원해요? 「멋지기를 원합니다」 가는 동네마다 사람들한테 그저 욕이나 먹고 인심을 잃어 가지고 쫓겨나기를 바라요, 동네 사람들 모두가 위해 주기를 바라요? 「위해 주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에 나가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이냐? 동네를 위하여 정성을 들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줌으로써 그 동네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그리하여 그 동네가 나를 위하게 되면, 이것은 한 리(里)면 리의 보고거리가 되어 점차로 점프하는 것입니다. 한 면(面)에 열 개의 리(里)가 있는데 그 보고거리가 열 개의 리에 드러났다 할 때는 그것이 운을 타는 것입니다. 운을 타고 그 보고거리가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리에서 삥 돌고 쭉 드러나면 면장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면을 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 일이 그렇게 점프되어 올라가게 되면, 면장이 그 이장들을 불러 놓고 각 리의 특별한 사연이 무엇이냐고 해 가지고 그 일을 보고받으면, 그것이 일등이 되는 것입니다. 면장이 '아하, 우리 면에도 이런 특별한 예가 있구나' 하면 가슴속에 딱 일등으로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령하지요?
그러고 나서 군에서 면장들 회의가 있을 때 그 면장이 군수에게 그것을 떡 보고했을때 군수가 '그것이 수많은 면 가운데서 제일이다. 야! 그거 훌륭하구만' 하게 되면, 점프 한번 해서 어떻게 되느냐? 군의 꼭대기, 군수의 꼭대기를 타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제일 좋은 것은 어디로 가느냐 하면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작은 동네로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로 올라가느냐? 나라로 올라갑니다. 그 다음 어디로 가느냐? 세계로….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하늘나라로 갑니다.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 가게 된다고 아까 말하지 않았어요? 참의 행로는 어떻게 되느냐? 제일 좋은 것이 어디로 가느냐 하면 하늘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으로 가는 데 있어서 연락병이 누구냐? 여러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요, 나빠요? 「좋아요」 군 꼭대기를 떡 타고서 우리 군에 있는 아무 동네의 아무개가 제일이다 하는 깃발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올림픽대회 때에 보면 성화라는 게 있지요? 그것을 뭣이라고 하나? 성화라고 하나? 그것을 들고 뛰는 거와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군수가 떡 잡고서 도지사 앞에 쓱 가는 것입니다. 도에는 수많은 군이 있는데 그 군의 보고 가운데서 또 일등을 했다고 합시다. 사람 죽이는 보고는 한번으로 딱 끝나지만 살리는 보고는 자꾸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또 한번 점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뛰고 두 번 뛰고 세 번 뛰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이제 올라가면 어디로 가게 되느냐? 중앙청의 국무총리에게로, 대통령을 모시는 곳으로 돈도 안 들이고 행차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 들이고 행차해요, 그들이 원해서 돈 받고서 행차해요? 끌려가는 거예요, 모셔 가는 거예요? 받들어 모셔 가는 것입니다. 나랏님한테 바칠 것은 모셔 가는 것입니다. 그거 멋진 행차지요? 그렇게 하여 중앙청까지 올라왔다 이겁니다. 중앙청에서 '전국의 도 가운데서 특출하고 특별한 보고거리가 있으면 보고하시오' 할 때 이것이 보고되어 일등하게 되면 그것이 어디로 가겠어요? 대통령은 이것을 외국에 가서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국가 가운데에서 이와 같은 '선한 사람이, 이와 같은 사건이, 이와 같은 공적이 있을소냐'라고 함으로써 거기에서 일등하면 그 다음에 어디로 가느냐? 위에서 관리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분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낮은 자리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곧바로 직행할 수 있는 놀음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 놀음을 하기를 원해요, 안 원해요? 「원합니다」 그렇찮으면 여러분 다 죽으라구요. 원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일이 무슨 일이냐? 리에서 일등한 내용을 면민 앞에 제시할 때 면민이 '옳소', 군민 앞에 제시할 때 군민도 '옳소', 도민도 '옳소', 전국민도 '옳소', 하나님 앞에 제시할 때 하나님도 '옳다' 하는 날에는 만세의 영광이 그 앞에 같이할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교회는 리에 있을 때는 리를 대표해서 살고, 면에 있을 때는 면을 대표해서 살고, 군을 대표해서 살고, 도를 대표해서 살고, 전체를 대표해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혼자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삼천만 민족을 대표한 기수요, 30억 인류를 대표한 기수다' 하는 자세를 갖고 정성을 들여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얼렁뚱땅 적당히 해 가지고 되겠어요? 그래서는 절대 안됩니다. 생명을 걸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이상 큰 사랑이 없다는 말도 그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남을 위하여 희생적인 사랑을 갖지 않은 길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희생적인 사랑 앞에는 머리를 숙이기 때문에 참다운 자리를 잡아서 열매만 맺게 되는 날에는 날아가는 것입니다. 한도 없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여러분을 그런 자리에서 연마시키고 그런 자리에서 공신을 만들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하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수고하고 고생하여 희생적인 사랑의 주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주의예요, 예수주의. 하나님주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민족의 반역자로 몰려 제일 나쁜 사람의 입장에서 죽었지만, 그분의 행적을 받들어 가지고 하늘나라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어떻게 해야 가능할 수 있느냐? 자기의 생명을 바쳐 희생하는 길만이, 희생적인 사랑의 터전을 준비해 놓는 그길만이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 터전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분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고마운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고마운 일입니다」 그래, 지금 나가 고생하면서 이것을 고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내가 얘기해 주어도 여러분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꼼짝달싹할 수 없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쳐 준 것이 뭐냐? 선생님은 이런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근거지는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가서 열매 맺힐 것이냐? 나에게서 열매 맺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복판에서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계 복판에서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나라의 복판에서 열매 맺혀야 되고, 도의 복판에서 열매 맺혀야 되고, 군의 복판에서 열매 맺혀야 되고, 면의 복판에서 열매 맺혀야 되고, 리의 복판에서 열매 맺혀야 되고, 마지막으로 가정과 내 자체에서 열매 맺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탕감을 거쳐야만 가정으로, 가정적인 탕감을 지내야만 종족으로, 종족적인 탕감을 거쳐야만 민족으로, 민족적인 탕감을 지내야만 국가로, 국가적인 탕감을 거쳐야만 세계로, 이렇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희생적인 사랑을 깊이 뿌리기 위하여 생명이 다할 때까지 몸부림쳐 나가야 하는 것이 심정세계를 창건하기 위한 우리 통일교인들의 의무요, 책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자세한 건 모르지요?
선생님은 어제도 새벽 3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기도하고 얘기하고…. 그 다음엔 일본 식구를 데리고 경주를 다녀왔습니다. 경주가 가까운 줄 알았더니 멀더구만. 가는 데 다섯 시간 오는 데 다섯시간이 걸려요. 경주에서 대구에 도착하니 아홉 시 30분이 되었더군요. 연락을 하지 않고 갔으니 누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겠어요? 할 수 없이 식당에 가서 비빔밥을 시켰습니다. '추우니 얼른얼른 해라' 하고 온돌방에서 앉아 기다리는데 얼마나 냉정하던지 궁둥이 살을 다 뜯어 먹고도 인사를 안 할 것 같았습니다. (웃음) 밥을 그저 맵게만 해 가지고…. 그걸 얼버무려 가지고 한바탕 먹었어요. 배가 고파 보라구요. 경주에 간들 밥줄 사람 있어요? 밥 줄 사람도 없지 바쁘기도 하지 얼른 가서 한 바퀴 돌아보고 왔던 거라구요. 아홉 시 30분쯤에 대구에 도착해서 밥을 먹다보니 열 시 30분쯤 되었습니다.
대구교회에는 그날따라 사업부의 사업대원들 회의가 있어서 한 백 명이 와 있었는데 선생님이 왔다고 연락을 다했다나? 또 그 사람들이 와서 눈을 꺼벅꺼벅하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고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도 없고…. (웃음) 할 수 없이 교회로 올라갔습니다. 가서 내가 사정하고 싶은 것이 천만 가지인데 그들의 얼굴을 가만히 보니 전부 다 한심해서…. 그걸 보니 또 못 견디겠어요. (애기 울음소리가 남) 거기 할머니, 어디에서 온 할머니예요? 이 자리는 애기를 업고 오는 자리가 아니예요. 여기에 있는 애기 어머니들이 전부 애기가 울면 자기 애기만 생각하게 될 테니 얼마나 방해되겠어요? 애기를 저쪽으로 돌리면 괜찮아요. 애기 엄마들은 애기만 보면 환장하게 되어 있는 거라구요. (웃음)
그래 가지고 밤 11시 30분쯤 말씀을 끝내고 12시 15분 전에 서울을 향해 떠났습니다. 밤 12시가 되어 가면 고속도로에서 택시들이 서로가 추월하기 때문에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나 밤 12시가 넘으면 고속도로상에는 트럭밖에 없습니다. 트럭은 밤을 새워 지나가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에라, 내 세상이다' 하고 차를 몰아 앞에 가는 트럭들을 따라잡았습니다. 그게 기분이 좋다구요. 그렇지만 추월당하게 되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나 밤 12시가 지났기 때문에 고속도로에는 택시가 없거든요. 나는 야간 통행증이 있거든요. 통행증 없이 어떤 차나 밤 12시 넘어서 다닐 수 있어요? 그래 트럭만이 12시가 지나도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데 트럭은 천천히 가니까 닥치는 대로 전부 따라잡는 것입니다. 한 대, 두 대, 세 대 모두….
이렇게 해서 새벽 네 시 5분에 곧바로 서울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주일 경배식인데 목욕도 안 했으니 어떻게 해요? 그래도 내가 대표자인데 안 나가면 큰일이 나거든. (웃음) 그래서 차에서 내리자 마자 목욕탕에 가서 보니 네 시 20분이 되었어요. 야, 큰일났구나! 목욕하려면 바쁘겠다 싶어 옷이 어디 떨어지는지도 모르게 후닥닥 벗고서 바쁘니 물통에 더운물과 찬물을 섞어 가지고 '아푸 아푸' 하면서 오리새끼 목욕하는 모양으로 목욕을 했습니다. (웃음)
그리하여 경배식을 하기 위해 교회로 오니 찬송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선생님 나오라는 거지요. 뭐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웃음) 무슨 팔자가 이런지 몰라. 그러나 할 수 있어요? 이것도 운명, 팔자이니 안 하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나가 가지고 경배식을 하고 말씀을 했습니다. 또 수택리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좋겠는데 뭐하러 오라고 하는지…. 여러분들은 뭐 선생님이 지방에 내려가서 안 올 줄 알고 있을 것이니, 지치기도 했으니 까짓거 뭐 안 가도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약속이 돼 있으니 여러분이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안 올 수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와 가지고 좋은 얘기를 하면 좋겠는데 고생하라는 얘기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기분 나쁘게. 여러분은 이런 얘기 하는 것이 좋아요, 나빠요? 「좋아요」 정말 그래요? 「예」
밤새 달려서 그런지 어머니가 잠을 자길래 깨우려고 갔더니 못 일어나는 거예요. 어머니는 배가 고프면 차멀미를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어요? 남편된 죄로 어머니를 내 무릎에 쓱 눕혔지요 뭐. (웃음) 어머니와 내가 일대일의 사정을 두고 보면 나보다 어머니가 더 편할 텐데 말이에요. 새벽부터 곤두박질해 누워 있으니 남자된 죄로 할 수 있어요? 또 피곤해서 수택리 가고 싶지 않다고 하니 할 수 있어요? 선생님 혼자 왔지. (웃음) 여러분은 이 다음에 그럴 땐 암만 피곤하더라도 남편과 같이 가세요. 그래야 되는 거예요. (웃음)
여러분, 남을 위해서 살더라도 어떤 때는 참 슬플 때가 있지요? 그저 쓸쓸하고 슬플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원수와 최후의 판가리 싸움을 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통일교회를 발전시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내가 이렇게 나오니까 안 나온 것보다 좋아요? 「예」 그렇지만 여러분들의 신랑이 나타난 것보다는 못하지요? 「아니요」 정말 그래요? 「예」 그렇다면 선생님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게요? 「예」
여자들은 하려고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동원해서 단결만 한다면 살아 있는 호랑이도 그냥 잡을 수 있어요. (웃음) 그렇찮아요? 지독한 게 여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난 인연이란 간단한 인연이 아니라 아주 큰 인연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얘기하는 제목을 모르겠구만. 여러분은 '오늘 또, 뭘 하겠나' 하다 가만히 앉아 공상하면서 점심 때를 기다리려면 기가 막히지. 내가 이야기라도 해주면 난 좀 피곤하지만 여러분들은 세월 가는 줄 모를 것입니다. 수련받을 때, 여러분이 아침밥을 못 먹고 수련을 받게 되면 기분이 안 좋지요? 그러니 선생님이 탕감을 해주면 고마와할지도 모르겠구만. 해줄까요, 말까요? 「해주세요」 선생님은 고생을 해도 좋고 여러분들은…. (웃음) 선생님이 여러분들을 고생시켜서 무슨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혹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구요. 선생님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정식 코스로 들어가자구요. 이제는 행복이 무엇이냐를 알아야 돼요. 행복은 무엇이냐? 내가 만국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주인공이 된다면 일 대(代), 이 대, 삼 대, 십 대, 천 대, 만 대를 거친 후라도 아무런 싸움이 없이 세상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싸우지 않고 한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고 완전히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끝날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통일교회도 이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이 길을 개척하는 걸음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이 길을 중심삼고 시범을 보인 것이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간 노정인 것입니다. 그것이 틀렸느냐, 맞았느냐? 사람들이 죽어도 망하지 않는 것이 기독교더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삼고 전세계가 하나될 수 있는 이 자리에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 전통적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전통적 사상을 선생님이 더욱더 꽃피우고 빛내야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종교가 남자와 여자를 분리시켜 놓고 가정을 부인하는 길을 갔지만 오늘날 통일교회는 가정을 이루어 그 가정이 몽땅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한날을 맞게 해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가정 전체가 나라를 사랑했다 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하게 해주자는 사상은 역사상에 처음 나타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렇지요?
지금까지의 수많은 종교는 나 하나 구원받기 위해서 순교의 길을 가고 희생의 길을 갔지만 통일교회는 그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가정을 희생하자는 것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가정이 희생적인 자리에 서게 되면 영원히 하나님편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의 근거지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 혼자서 사랑이 필요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게 되면 하나님 자체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소재지가 어디냐 하면, 희생 봉사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것을 고스란히 꽃피우고 향기를 내며 열매를 거두어 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서 가정을 중심삼고 사랑의 터전을 이루는 곳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 사위기대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무엇이냐?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자녀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서로서로가 희생하는 전통을 갖추지 않으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깨어지는 법입니다. 그렇지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인연은 깨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들딸이라면 자기 부모에게 절대로 불효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대해 '당신은 나를 위한다'는 입장에서 서로가 더 위해 주고 더 희생하는 자리가 넓어지게 될 때 그 가정에는 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복지인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복을 받되 가정만의 복으로서 받지 말자는 것입니다. 복을 받되 나라를 돕고 나서 복받는 가정이 되자는 것입니다. 복을 받되 세계를 돕고 나서 복받는 가정이 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천국 가정입니다. 우리 가정만 중심삼고 복받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가정이 복받는 때가 지나가게 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나 복을 받되 나라를 업고 가정의 복을 받게 되면 내가 가정의 복을 다 누렸더라도 나라의 복을 또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더 나아가서 세계를 업고 가정의 복을 맞아들이게 된다면, 내가 망하고 나라가 망하더라도 또 세계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올라가서 내가 내 생명을 희생시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게 되면, 다 망하더라도 나는 나중에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예를 들어 볼 때, 은혜받을 수 있고 축복받을 수 있는 가정은 어떤 가정이냐? 일대(一代)에 수고한 터전 위에 복받기를 바라는 가정은 진짜 복받을 수 있는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고로 사람들은 선한 조상을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복이 선대(先代)로부터 상속되어 내려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전통을 존중시하는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전통을 이어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복은…. 세계는 백년 동안에, 일생 기간에 완전히 복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세계는 숱한 몇천 년의 역사과정을 거치면서 그 복의 때를 찾아 나오고 있지만 복은 아직까지 안 찾아왔습니다. 세계적인 복의 시대는 아직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세계가 하나되어 하늘땅이 화동하고 하늘땅이 기뻐할 수 있는 세계적인 천지의 때는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계가 그때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국가적인 복을 아직까지 맞지 못했습니다. 그 국가적인 복을 맞기 위해서는 남북이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냐? 남북한 두 나라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남북한이 하나되어야만 비로소 영원히 망하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한에 살고 있지만 남한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통일된 자리에서 우리가 축복을 받고, 모든 민족들로부터 추대를 받고, 민족의 전통을 세워 주는 가정이 되겠다고 하면서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되느냐 하면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됩니다. 남한만이 아니라 남북이 통일된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복을 받은 가정이라 하더라도 나라가 비운에 사로잡히게 될 때는 그 나라의 주권과 더불어 그 가정도 거기에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면 가정은 아무리 망하지 않겠다고 몸부림쳐도 망하는 운세권내로 말려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가정과 나라중 어느 쪽이 더 귀합니까? 가정보다 나라가 더 귀한 것입니다. 나라가 아무리 흥하더라도 세계가 망하는 운세로 말려들어가게 될때는 그 나라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망하지 않는 세계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큰 은혜란 무엇이냐? 은혜가 찾아오는 데 있어서 십년 만에 찾아오는 것은 십년 은혜요, 백년 만에 찾아오는 것은 백년 은혜요, 천년 만에 찾아오는 것은 천년 은혜요, 만년 만에 찾아오는 것은 만년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은 십년 은혜를 받고 싶어요, 만년 은혜를 받고 싶어요? 「만년 은혜요」 그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럼 통일교회를 믿고 만년 동안을 희생하더라도 틀림없이 가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손 내려요. 만년 동안 희생하겠어요?
어떻게 가겠어요? 만년 동안 가기 위해서는 만년 동안 갈 것을 남겨야 되는 것입니다. 만년 갈 것을 남겨야 됩니다. 만년을 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한번 찾아 보세요. 돈을 남기면 그것이 만년 역사의 전통이 되겠어요?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랑밖에 없습니다. 박애(博愛)라는 것은…. 예수가 인류를 사랑했다 하는 것은 억천만년 가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게 사랑했다 하는 것은 억천만년 가는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한 애국지사의 사랑은 그 나라가 존재할 때까지 억천만년이라도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때에 가서는 나라만을 사랑한 애국자는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현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성현들의 사랑은 세계적이기 때문에 성현들은 나라의 배척을 받으면서 고독단신으로 자기의 생명을 걸고 그 당대(當代)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후대(後代)를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인은 내적인 인연과 전통적인 생애와 자각의 실적을 남기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현세에 살고 있지만 미래를 위해 살기 때문에 그러한 입장에 선 성인의 희생적인 사랑의 도리는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인 중의 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인 중의 성인이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중심삼고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을 심어 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전통을 만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원리 말씀이 이렇다고 말만 남겨 놓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누가 실천을 하겠어요? 실천을 해야 됩니다, 실천. 자식을 사랑할 때도 뼛골에 사무치도록 깊게 사랑하여 자식으로 하여금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의 은공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도록 함으로써 자식이 부모의 가르침이 이러하니 나도 이렇게 가야 된다는 마음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렇게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괴로울 수 있는 내연적인 터전을 상속시켜 놓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만년 갈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후손에게 만년, 만대까지 복을 상속시켜 가지고 받게될 때는 영계에서 누가 그 복을 받아서 나누어 주느냐 하면, 여러분이면 여러분이 나가서 복을 받아 가지고 자기 후손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즉, 만년을 복받게 해준 선각자요, 주인인 그 조상이 복을 전부 받아서 나누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에 가 보면 예수님을 믿는 수많은 후손들이 복을 받는 데는 예수님으로부터 복을 나눠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누구의 뜻이냐? 예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신자의 뜻을 이루는 게 아닙니다. 알겠어요?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 되는 것은 뭐냐? 큰 은혜라는 것은, 큰 복이라는 것은 반드시 거기에 비례되는 수고를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큰 복을 받기를 원하거든, 천년의 복을 받기를 원하거든 천년 동안 그 복이 지탱할 수 있는 수고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복이 남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 걸 알아야 됩니다.
큰 복은 자기 개인의 공적을 의지해 가지고는 받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역사적인 선한 선조들이 남긴 복의 계대를 받기 위해, 세계적인 선한 선조들 가운데 자기 조상이 없다면, 세계적인 선조와 같은 형의 스승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인의 도리를 가르침받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성인의 도리를 교육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계받는 거예요. 그것을 인계받으면 그분들이 바라던 소망의 세계를 내가 이어받을 수 있겠기 때문에….
옛날의 성인들은 개인적인 수난시대에 죽어 갔습니다. 그 개인적인 수난 과정을 거쳐 가정적인 수난과정을 거쳐야 되고, 종족적인 수난 과정을 거쳐야 되고, 민족적인 수난 과정을 거쳐야 되고, 국가적인 수난 과정을 거쳐야 되고, 세계적인 수난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세계적인 시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수난의 과정에 있어서 희생의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이냐? '나는 싫어' 할 수 있습니까?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느냐 이겁니다.
기독교를 보게 될 때, 기독교가 예수와 선조로부터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 과정을 거치는 데 있어서 그 대가를 누가 치러야 되느냐? 예수가 그러한 것을 심어 놓고 갔기 때문에 그 과정을 이어받은 기독교가 치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예수님처럼 죽음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고 살고 해서 살아 남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가정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종족적으로 책임을 다하고, 민족적으로 책임을 다하며 나온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면서도 지금까지 남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 나오는 그 은사의 터전이 뭐냐?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끝날에 메시아가 올 수 있는 은사의 터전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면 그 은사의 터전을 아무 공 없이 맞을 수 있느냐?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내정적인 심정을 중심삼고 탕감의 과정을 거쳐서 정성들여 점핑해 가지고 타고 넘겠다는 불변의 모습과 그러한 과정, 그런 무엇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뭐냐? 생명을 다하는 희생, 생명을 다하는 희생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 이상은 없습니다. 생명을 다하는 희생적 사랑, 그 사랑을 중심삼고 점핑해야 합니다.
점핑을 하는 데에 있어서 자기 리(里)만을 위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못 가는 것입니다. 리를 위해서 일하는 데는 세계를 대표해서 한다는 사상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 사상은 절대사상입니다.
그러니 통일교회에서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은혜냐를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통일교회에서 받은 은혜라는 것은 6천년, 사실은 몇천만 년이라구요. 몇천만 대(代)의 수많은 인류가 찾아나오던 최후의 결실로 등장한 은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 개인의 공적과 개인의 수고만으로 받을 자격이 돼요? 돼요, 안 돼요? 안 됩니다. 받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심정을 전부 본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정은 하나입니다. 심정은 여기에서도 통하고 저기에서도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담에서부터 출발하는 부모의 심정, 부부의 심정, 자녀의 심정을 원칙으로 해서 오늘날 이 시대에도 넓은 범위에서 전체를 걸고 싸워 승리의 터전을 닦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터전 위에서 그러한 책임자를 만나 그 책임자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거기서부터 뿌리를 잡아서 가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복을 받을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뿌리는 얼마나 깊으냐? 여러분의 뿌리는 6천년 이상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남아지기까지 하나님과 선조들이 수많은 곡절을 거치고 수많은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그 대가라는 것은, 현실있는 나 한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치른 대가를 전부 총합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대가를 치른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 은사를 대하는 여러분이 통일교회 한 십년쯤 믿은 자격을 내세워서 '내가 당당하지'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이 통일교회에 들어왔다는 사람들, 10년 믿었다든가 15년 믿었다는 사람들, 혹은 36가정이니 무슨 가정이니 하는 사람들, '선생님도 우리가 아니면 뜻을 못 이루지'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런 평을 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억천만 년에 처음 나타난, 한번밖에 없는 은사를 받아 억천만 년의 수난의 고비를 거치면서 수많은 수고의 대가를 치러 온 터전이 열매 맺힐 수 있는 자리에 내가 서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쩌다가 어떠한 은혜인지,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인지 모르지만 역사시대에 한번밖에 없는 시대에 상봉되어, 인연이 되어 이렇게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10년 동안 통일교회를 따라 나왔다고 해서 그 10년 동안 산 것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어림도 없습니다. 이걸 이어받기 위해서는 천년의 한을 품은 심정을 가지고 정성에 정성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에 세우기 위해서는 내 한 몸이 백번 천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으로도 넘어가겠다고 하고, 행동으로도 넘어가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러한 기준도 세우지 않고 복을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도둑놈입니다. 공 없이, 수고하지 않고 소유를 탐하는 자리에서 도적의 길이 생겨나고 강도의 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자리는 지극히 두려운 자리라고요, 두려운 자리. 그럴 게 아니겠어요?
여러분은 볼모와 같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면 아담 해와를 타락시킨 장본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노아를 실수하게 한 장본인이 되는 것이요, 아브라함을 실수하게 한 장본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열매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열매가 잘 맺혀야 그 실수가 전부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6천년 열매 되는 우리 통일교회를 사랑하시옵소서'라고 말은 잘합니다. 여러분이 6천년의 역사적인 결실이예요? 말들은 잘한다구요.
여러분이 잘못하면 타락한 아담 해와가 또 걸려 들어갈 것입니다. 아담해와를 재타락시킬 수 있는 장본인이 되고, 노아를 또 실패하게 할 수 있는 장본인이 되고, 아브라함을 또 실패하게 할 수 있는 장본인이 되고, 모세를 또 쫓아낼 수 있는 장본인이 될 것 아니예요? 아무리 수고를 했더라도 열매가 안 맺히면 다 허사가 되는 것입니다.
열매에는 진액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에게는 노아의 슬픔, 아브라함의 슬픔, 모세의 슬픔, 예수의 슬픔, 선생님의 슬픔이 다 들어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들어가 있어요, 안 들어가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기 때문에 그러한 슬픔을 품게 하려고 이런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슬픈 것은 배가 고파서 슬픈 것이 아니요, 못살아서 슬픈 것이 아니요, 돈이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니요, 처자가 없어서 슬픈 것이 아닙니다. 뭐가 없어서냐? 나라가 없고 세계가 없고 하나님의 주권이 없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을 버리고 남편을 버리고 자식을 버리고 교회를 뒤에 두고 한 사람의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한 많고 외로운 곳을 찾아가서 나라를 건국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 것이요, 세계를 창건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주권을 세우기 위한 전통적 사상을 갖춘 올바른 기수가 되어 가지고, 이것을 백 사람이면 백 사람에게 전해 주기 전에 열 사람을 통해서 점핑하여 전해 줄 수 있는 공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지역에 갔을 때, 역사과정에 왔다 갔던 아무리 훌륭한 선조들이라도 나를 본받고 나를 후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당당한 권위를 가지고 피땀을 흘리며 정성을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동네에 효자비가 있다면 그 비 앞에 설 때마다 '너는 얼마나 효했느냐? 나는 하늘 부모 앞에 이러이러한 심정을 가지고 효를 하고 있으니, 이제부터 너는 내가 효하는 것을 배워야 된다'라고 교훈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효자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혹은 역사상의 충신들의 행적을 보게 될 때, 그들에게 충고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일대에 충신의 이름을 남겼지만 나는 천세 만세의 역사를 뒤넘이쳐 가지고 끝날에까지 충신의 이름을 길이길이 남길 전통을 찾아가고 있다'는 그러한 입장에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슬프면 나라보다 더 슬픈 자리에 서지 않고는 그 나라를 구할 수 없습니다. 세계가 슬픈 세계가 되었다면 그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세계보다 더 슬픈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세계보다도 더 좋은 자리에 서 가지고는 세계를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의 축복받은 가정들에게 있어서 퇴폐적인 사상이 무엇이냐? '이제는 잘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잘사는 것도 나라를 찾아 놓고 잘살아야 합니다. 또, 나라를 찾아 놓고 잘살 수 있는 한 때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세계를 향해서 또 가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와 수난길을 개척해 놓고, 대표적인 길을 간 후에 잘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갖더라도 잘사는 자리를 원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하늘 앞에 잘살았다는 조건을 남기지 않게끔 못사는 입장에서 끝까지 참고 나가야 합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나가는 아들딸이 되기를 원하거든 효의 책임을 다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고생하면 우리도 고생해야 되고, 아버지가 슬픈 생활을 하면 우리도 슬픈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철주야 잠도 못 주무시고 나가시지 않느냐? 그렇지요? 거기에 비하면 여러분은 잠잘 시간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잠자는 여덟 시간만은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24시간 내내 잊어버릴 수 없는 역사적인 한의 심정을 고스란히 지니고 불타는 마음으로 투쟁의 역로를 엮어 나오신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볼 때, 자고 나서는 얼굴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회개하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효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매를 맞고 쫓기는 입장에서, 도망하여 산꼭대기에 올라가 가지고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부르더라도 당당한 입장에서 부를 것이 아니라, '어찌하여 아버지의 위신이 이렇게 되었으며, 자식이 이렇게 몰리는 것을 보시는 아버지의 체면이 무엇이냐'고 슬퍼서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효자의 심정을 가지고 가야 할 길이 통일신도들이 가야 하는 전통적인 노정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세 만세 남겨질 수 있는 은혜는 개개인 누구나 다 원하지만 그것을 획득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획득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이라도 획득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800내지 1200가정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찾아오시어 '너 하나가 천 가정 만 가정이 수고한 것을 대신했다'고 칭찬을 하실 뿐만 아니라 상금을 주시고, 상금을 주실 뿐만 아니라 천추만대 청사에 길이길이 빛나라고 선포식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렇게 하실 수 있는 하나의 딸이 있으면 그 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은 풀려 나갈 것입니다.
백 명의 효자보다도 그 백 명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의 효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천 사람의 충신보다도 그 천 사람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충신을 찾고자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의 이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가상적이요 망상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희생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맺어져 오고 그 인연이 상속된다는 것을 알고 통일가 전체가 합하여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희생하고 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해야 되겠습니다. 내 일신이 객사의 몸이 되고, 혹은 쓰러져 개밥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뼈는 변하지 않는다는 각오를 가지고, 예수의 살은 여기저기 찢겼더라도 뼈는 꺾이지 않았던 것과 같이 나도 그런 결과를 남기면 한이 없겠다는 심정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천년 만년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찾아온 하늘의 은사를, 비록 가냘픈 여자의 몸이지만 어떻게 내 손길을 통하고 내 발걸음을 통하고 나의 간절한 울부짖음과 간절한 요구와 간절한 행동을 통하여 이 세상에 남길 것이냐! 비록 자기 일대에 그것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자식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며 '부디 내가 간 전통을 상속받아 가지고 내가 바라고 원하는 나라를 기필코 이루어야 된다'고 유언하고 가야만 이것이 천년의 유업으로, 만년 복귀의 터전으로 남아질 것이 아니냐?
오늘 이때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후에 어떻게 이 전통을 이어받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여러분 스스로가 전통을 세우기 위해 나선 하늘의 대표자인 것을 알고, 여러분이 전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서 세우는 기수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은혜는 책임해야 할 수고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민족 이상의 민족을 구하고도 남을 수 있는 수고의 대가를 누가 치를 것이냐? 오늘날 통일교회가 민족 위에 나타나기를 바라거든 민족의 수난과 고비를 대신 짊어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누군가가 깔고 앉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수난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올라갈 때는 끌어내릴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의 수난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올라갔다가는 끌어내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제일 수고를 많이 한 수고의 대왕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그날부터 인간을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아버지의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 사시장철은 물론이요, 6천년 역사 속에서 잠시라도, 한시간이라도 떼어 놓을 수 없는 인간상을 붙들고 뒤넘이치는 신음과 울부짖음을 생활철학으로 아시고, 그것을 걸고 인간을 가누어 주는 생활을 해 나오신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냐는 것입니다.
어떠한 독재자가 원수를 총칼에 쓰러뜨리듯이 간단히 해결하고 간단히 끝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도리어 그 입장을 부러워하실 수 있는 억울하고 분통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찾아오실 때는 불쌍한 민족을 안 찾아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을 두고 볼 때, 대한민국에 몇천 년만에 이 한때가 찾아왔느냐? 5천년, 반만년의 역사를 거쳐서 비로소 이 한때가 찾아온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민족은 역사상의 어떠한 민족보다도 수고한 민족이요, 어느 민족보다도 약한 민족으로서 아시아 강국의 틈바귀에서 침략자들의 총칼에 혹은 말 발굽에 쓰러져 그 신음소리가 삼천리 반도에 그쳐 본 적이 없는 고독한 민족이요, 애절한 민족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하늘을 사랑하고 절개를 존중시하고 지조를 남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성상이 이 민족에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믿지 못하더라도 여자들은 믿을 수 있는 세계적인 대표의 형태로, 환란 중에서도 절개를 지켜 하나님을 모시고, 충절을 다해서 남편을 위하는 절개와 지조를 남길 수 있는 여성들이 이 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한국은 수고하시는 하나님이 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닐 것이냐!
한국 가운데서도 영광의 자리에 선 단체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제일 비참한 자리에 선 단체가 하나님의 영광의 은사를 받을 것입니다. 근세에 한국 민족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한국 종교계로부터 지탄을 받는 제일 비참한 무리요, 제일 비참한 입장에 선 종교라면 그 종교는 통일교회일 것입니다. 그런 종교는 통일교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제일 비참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비참한 종교를 지도하고 있는 통일교회의 스승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쌍하신 분입니다.
공의의 법도를 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수고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공의의 뜻을 대하여 세계를 향해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가지고, 수난을 받고 핍박을 받고 가는 외로운 거리에서 서산에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잠자리를 염려하고 저녁식사를 염려하는 외로운 신자들의 배후에는, 하늘의 동정의 빛발이 숨어 나왔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데서 망할 줄로 알았던 무리가 망하지 않고, 떨어져 썩어 버릴 줄로 알았던 것이 썩지 않고, 거름똥이 되어 망해야 될 텐데도 그 거름똥 속에서 생명의 한 싹이 틔어나 가지고, 이렇게 삼천리 반도 방방곡곡에 새로운 운동을 제시할 수 있는 아낙네의 무리로 나타나기까지 그 배후에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의 대가를 치렀겠는가를 여러분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천년 사연이 깃들어 있는 수고의 터전 위에, 억조창생들이 소원의 한날을 찾기 위한 소망을 품고 울부짖으며 죽음길을 기꺼이 갔던, 애혼들의 한이 서려 있는 터전 위에 선 여러분 자신들임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엄청나다면 엄청난 시대에 태어났고, 단 한번밖에 없는 인연 가운데에 부름을 받았고,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단 한번밖에 없는 역사의 흐름길의 쌍곡선이 우리 시대에, 내 일대의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교차되는 그 정상에 불리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6천년의 인류역사상에 있어서 타락의 역사가 제아무리 슬펐고 제아무리 곡절이 많았다 하더라도 오늘날 이 엉클어진 인류 만민을 점령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이념 가운데에서 역사적인 부활이 남아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한과 하나님의 서러움이 여기에서 해원성사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만국의 만사를 해결지을 수 있는 기원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이러한 시기에 태어난 것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얼굴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신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러분의 선조들이 선의 공적과 터전을 얼마나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은 천추만대에 빛나는 선조들의 공적의 인연을 따라 하늘이 찾아와 도와주는, 역사상에 단 한번밖에 없는, 여러분의 선조들이 받고 싶었던 은사를 전체를 대신해서 대표적으로 받는 자신들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삼천리 반도에 신음과 죽음이 엇갈리는 역사가 엮어져 나왔지만 그 역사를 밟고 넘어오는 터전에서 그 모든 것을 일시에 탕감하고, 그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통일교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생님을 만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필연적인 역사적 운명의 길을 통해서 기정적으로, 내정의 인연이 결정지어져 가지고 만나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그 배후에는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그 무엇이 뿌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자들을 동원시키는 데 있어서 동원되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 마음으로 불평하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원되어 나가는 사람의 뒤를 바라보게 될 때, 자기가 안 나가고는 견딜 수 없으리만큼 마음에 그 무엇인가가 휘몰아치는 어떤 힘을 느꼈다면,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 역사적으로 영원히 남아져야 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소원과 심정으로부터 남기고 싶었던 천운의 힘이 배후에서 내밀기 때문에 이것이 여러분의 환경을 밀어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이 힘이 동원되는 여러분이 선 이 자리는 천지의 만복을 받은 것보다도 더 감사할 수 있는 복된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자리에서 양심의 고통을 받고 사는 사람은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심으로 불러 일깨워 가라고 명령하셨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보조를 안 맞추게 되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적 시대에 선생님이 앞서 가는 길이 평탄한 길이 아니며, 선생님이 겪어 온 것이 여러분 일대에 당하지 못한 수난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효의 도리를 다하고 충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여러분의 입장인데, 아직까지 여러분의 효의 기준은 어느 기준이냐? 여러분은 가르침을 받았으나 배운 것을 아직까지 실천하지 못한 기준이요, 천명을 받들어 싸움터에 출전하라고 명령했는데도 출전하지 못한 입장이 아니냐! 그렇게 위신을 세워 가지고 남아질 것 같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 몸을 가꿀 수 없고 자기 체면을 세울 수 없는 불쌍한 신세인데,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고 체면을 세우고 위신을 갖출 수 있는 이 한때를 허락하신 것은 둘도 없는 고마운 은사라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가는 걸음 앞에 하늘의 소망이 찾아올 수 있고, 혹은 머무는 그 자리에 하늘의 소식이 싹틀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부터 여러분이 재봉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놀라운 은사요, 그야말로 기적 중의 최고의 기적은 이 일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인연 가운데에서 만난 선생님, 선생님을 중심삼고 인연되어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딸들은 우연히 난 아들딸들이 아니요, 역사적인 아들딸들인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아들딸들을 중심삼고 볼 때, 그들이 눈물을 흘리고, 그들이 혹 외로운 자리에서 길거리에서 사탄세계의 아들딸로부터 조롱을 받고 농락을 당하는 일이 있게 될 때, 그것은 헛되이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이 하나 둘 가해지는 그 전부는 여러분의 갈 길을 넓혀 주는 것이 되고, 여러분의 외로운 노정을 탕감시켜 주는 것이 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민족을 대표해서 하늘 앞에 바쳐 드릴 수 있는 깨끗한 제물이 빨리 마련되어질 수 있는 제물의 노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외로운 아들딸을 남겨 놓고 가는 것이 도리어 복이 될 수 있고, 사랑하는 남편을 뒤에 두고 가는 것이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심정을 나라를 위해서, 뜻을 위해서 시간 시간 퍼부을 수 있고 바쳐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리는 보고 싶은 남편과 보고 싶은 아들딸을 볼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끊어지지 않으면 끊어지지 않을수록, 거기에서 하늘을 위한 희생의 사랑이 생기는 것이며, 또 하늘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의 터전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통일가가 가야 할, 희생의 대가를 치러 가지고 복귀할 그 터전이 앞으로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가 처한 자리가 복스러운 자리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연약하고 가냘픈 여성의 몸으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이순신 장군보다도 더할 수 있는 시기를 맞은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효성을 더 할 수 있는 입장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을 자아낼 수 있는 입장이요, 역사상에 한번밖에 없는, 전체적인 사명과 책임을 할 수 있는 이때에 처해진 자신임을 망각하지 말고 여러분은 정성에 정성을 다하여 수고의 대가를 치르기를 더디 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늦게 자고도 한 시간이라도 더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기를, 그리운 사람을 만나면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딸과 같이 상대적 입장에 있는 사람을 미칠듯이 사랑하고 싶고, 미칠듯이 주고 싶고, 미칠듯이 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는 자리에서 밤을 지새워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지만 그와 같이 계실 것이요,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은 지금까지 몇천 년의 역사적 간격을 두고 있지만, 심정세계에서는 거리를 초월하기 때문에, 나에게 동조할 수 있는 권내에 있기 때문에 내 갈 길을 협조해 주고 내가 가는 뜻 길을 받들 수 있는 자리에 설 것입니다.
역사가 뒤넘이치고, 모든 주의와 세계 운세가 나와 더불어 뒤넘이칠 수 있는 거룩한 길이 오늘날 여러분이 이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수고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가는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을 위해서 정성을 들여 보고, 자기 남편 이상 사랑해 보고, 자기 아들딸 이상 사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해서 정성들여 보고, 자기 아들딸 이상 사랑하고 정성들여 보라는 것입니다. 360여일이 가기 전에 자기 남편을 잊어버렸고, 자식을 잊어버렸다 해도, 나라 때문에 세계 때문에 그랬다면 그 자식과 남편은 병들지 않을 것입니다. 굶어 죽을 입장이 되었다 하더라도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통일가에서 맞을 수 있는 은사는 억천만세에 남아질 은사요, 역사상에 단 한번밖에 없는 단 하나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러한 은사를 맞으려니 얼마나 희생을 해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냐! 얼마나 정성을 들여서 대가를 치러야 될 것이냐!
선생님이 여러분 앞에서 노력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빚을 지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빚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고생하는 자리에 세워 놓고 내가 편하려고 한다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단체는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생시키고 책임을 안 진다면 그 하나님은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고생시킬 수 있는 자리가 이 자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생을 하시는 데 있어서 그 고생을 보람 있는 고생으로 여기고 기꺼이 하실 수 있는 입장에 서게 해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이 통일교회이기 때문에, 고생으로 신음하는 하나님을 고생으로 탕감해 가지고 해방시켜 드릴 수 있는 길이 여기서부터 성립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고생은 고생으로 탕감해야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여러분이 고생을 할 때, 하나님이 '얘야, 이제 그만 해라. 너 하나를 놓고 내가 백번 죽어도 좋다'고 추켜 주실 수 있는 입장이 된다면 천하가 뒤집어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고생길을 피해 갈 것이 아니라 하늘을 대신하여 더 고생하겠다는 마음을 중심삼고, 굶주린 배를 움켜 쥐고 힘없는 다리를 끌고 지친 몸을 이끌고 가냘픈 여성의 몸으로서 절규하는 심정을 가지고 나서게 될 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은 뿌리를 깊게 내릴 것이고, 민족을 넘어 세계가 연결될 수 있는 천운의 노정은 나를 통하여 파동치고 세계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흡사 방송국과 같은 입장입니다. 방송국에서 내보낸 전파가 파장을 통해서 뻗어 나가게 되면 세계를 돌고 돌아 온 우주에 퍼져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럴 수 있는 자리에서, 맥박의 동기가 되고 생사의 기원을 좌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리에 서서 이런 사명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놀라운 사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느때에 그런 자리에 설 것이냐? 천 명이면 천 명, 팔백 명이면 팔백여 명의 여러분이 하나로 단결해 가지고 한꺼번에 3년의 기간동안에 바치는 은혜가 역사시대에 어떤 여성들이 바치던 것보다도 크게 될 때는, 역사상의 여성들은 틀림없이 우리 품안에 품기게 되고, 우리 앞에 자연히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그럴게 아니예요? 그래서 120명이 아니라 1,200명을 표준해 가지고 동원한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열 사람이 하나되기는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되기 쉬워요? 그래서 제일 먼저는 여러분 열 사람이 하나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되어 가지고 지구장이나 지역장들 앞에 그들이 전통으로 본받도록 이렇게 하나되었다고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지구장 지역장들이 그렇게 못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망쳐졌다는 것입니다.
이용해 먹고 심부름을 시켜 먹고 헐뜯어 먹고 피를 빨아먹었기 때문에 식구들이 다 도망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식구들을 다 쫓아 버렸으니 이제 식구를 모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내 자신을 빨리 먹이고 희생해서 먹여 줄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식구들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해야 되느냐? 본래 어머니가 자식을 키울 때 자기의 살을 나누어 주는 것 아니냐. 어머니의 살은 아버지의 뼈에 달려야 할 살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살은 군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여자들이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 일방적인 정은 남자보다 더 깊고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방을 갖추어 가지고 정성들이게 되면, 눈물을 흘려도 남자가 한 번 울 때 여자는 세 번은 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탕감의 양을 많이 필요로 하고 탕감을 위한 수고의 모양과 형상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이런 입장에 여자를 내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런 책임을 해 가지고 부디 망하는 운명을….
이 민족이 망할 수 있는 운명을 막아 나오면서 반만년의 역사 동안 남아진 것도 기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한때를 마련하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공적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시대에 열매 맺어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보람된 열매를 맺어 가지고 앞으로의 후대 후손들 앞에 고생을 남겨 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깨깨 말라붙어 가지고 죽어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결의를 가지고 나가게 되면 빨리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이제 나는 못 견디겠다'고 하면 그 일이 흐지부지 연장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알고 여러분 열 사람이 하나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구장, 지역장과 하나되어야 되겠습니다.
사랑의 터전이 어디냐? 여러분들은 서로서로를 사랑의 소재지로 삼고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지구에서 사랑의 소재지를 찾고, 혹은 민족에서 사랑의 소재지를 찾아 가지고 뿌리를 뻗을 수 있게끔 접붙여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을 주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면 물 대신 눈물을 뿌리고 피를 뿌려 주어야 하는 것이 하늘의 아들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남아질 수 있는 무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이왕에 나선 걸음이니 고이 이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은혜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천년 은혜를 받기를 바라거든 천년 수난의 길을 극복하고, 만년 은혜의 길을 가기를 원하거든 만년 수난의 길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고생한 것은 20여 년밖에 안 되고 선생님이 고생한 것은 50여년 밖에 안 됩니다. 이것은 모든 수난의 길을 탕감하기에는 너무나 작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가고 또 가고, 하고 또 해야 될 책임감을 느껴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짐의 양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양을 넘게되면 무리하게 됩니다. 무리하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책임해야 할 양 이상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 이상으로 빚을 지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식 앞에 빚을 지려고 하지 않고 빚을 지우려고 하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짐을 대신 맡아 여러분이 일을 하려고 해도 하지 못하게 하고 편안한 자리에 안식의 터전을 마련해주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이 이 민족과 이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게 될 때, 견딜 수 없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고마와하실 수 있는 것이 되면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국가는 틀림없이 빨리 복귀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서 일을 하게 되면 나는 본부에 있지만 여러분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나는 천리를 알기 때문에 빚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울의 근거지에서 저 남해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도에 도를 넘어 찾아가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허락지 않습니다. 내가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여러분이 당하는 수난이라든가 고통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런 일을 당할 때에 친구가 되어 주시고 내가 서글픈 자리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딸들이 그렇게 서글픈 자리에 있거든 나를 대하던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해 주시고, 나도 거기에 협조와 위로와 동정의 마음을 갖게 하여 달라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스승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수고를 하면서도 선생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꿈에도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의 마음이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수난길을 걸어왔지만 하나님을 대하여 원망하고 싶은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의 길로 나섰을 때, 나도 모르게 몇십 배 평안한 자리에 옮겨 놓아 주시던 하나님인 계시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수난길에 서 있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은 갈 수 없는 복된 기준을 수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상속해 주는 길인 것입니다. 따라서 더 복받을 수 있는 통일교회가 되고 더 복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런 걸음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사정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는 온갖…. 스승의 희생하는 사랑도 여기에 묶어져야 되고, 여러분의 희생하는 사랑도 여기에 묶어져야 합니다. 이 사랑은, 선생님이 여러분을 위하고, 여러분이 선생님을 위하는 이 사랑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으로 삼천리 반도를 얽어매고, 삼천만 민족의 가슴 가슴을 얽어매어, 여러분과 선생님이 주고받는 사랑의 마음, 그 인연을 중심삼고 울부짖게 되면 삼천만 민족은 꺾여 나가는 것입니다. 꺾여 나가도 말이 안 통할 때에는 짤려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할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있거든 이제 할아버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할아버지의 사정을 알 수 있도록 만나게 해주니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동네방네에는 할아버지도 많습니다. 할머니도 많고 아줌마도 아저씨도 많습니다. 어머니도 많습니다. 언니 동생도 많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였고,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하였고, 할머니 어머니를 사랑하지 못하였고, 형님 누나 동생을 사랑하지 못하였으니, 여러분은 이 나라를 대표해서 그런 예수님을 모셔 오기 위해 사랑의 터전을 넓히는 아내의 신세, 신부의 신세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할아버지를 예수님의 할아버지 대신,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했던 예수의 한을 풀어드린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형이 누구냐? 할아버지요, 아저씨요, 형님 혹은 오빠요, 동생일 것입니다. 남자로 치면 그렇다는 거예요. 여자로 치면 할머니요, 아줌마요, 언니 혹은 누나요, 여동생일 것입니다. 이 여덟 가지의 형입니다. 이 여덟 형의 사람을 세계 인류를 대표해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모아 놓고 '오, 세계 인류여, 나를 주목하소서' 혹은 '삼천만 민족이여, 나를 주목하소서' 혹은 '군민·도민이여 나를 주목하소서' 이들 대표자 여덟 사람을 뽑아 가지고 이들 앞에 '내가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는 표를 세우겠나니, 이 표를 세우는 데에 기여해 주시오'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반대할 사탄분자가 있으면 막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는 죽더라도 기필코 이 뜻을 세우고 가겠다'고 사수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혼자의 힘으로 부족하면 옆에서 협조할 수 있는 열 사람의 동조자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성신보다 낫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신은 예수와 둘이서 지금까지 자녀를 찾기 위해서 수고해 나왔지만 여러분은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열 사람이 하나되어서 자녀를 찾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섰으니, 핍박이 심하다 해도 극복하기 쉬울 것이 아니냐! 서로를 위해 눈물 흘려 줄 수 있는 인정어린 대상이 있고, 서로서로 격려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옛날 선지자들보다 복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