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어떠한 책임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책임자 가운데는 뭇 사람의 지지를 받는 책임자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책임자도 있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책임자 중에는 열 사람을 중심삼은 책임자, 혹은 백 사람을 중심삼은 책임자, 혹은 천, 만 사람을 중심삼은 책임자, 혹은 나라를 중심삼은 책임자, 혹은 세계를 중심삼은 책임자등 여러 종류의 책임자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섭리적인 뜻을 두고 볼 때에, 외적인 일을 중심삼은 책임자가 있는가 하면 내적인 생명문제를 중심삼은 책임자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책임자 가운데는 어떠한 책임자가 가장 중요한 책임자냐? 여러분들이 생각하게 되면,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면 대개 '아, 나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책임져 가지고 그 나라를 잘 만들고 싶다는 것은 어느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보다도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게 될 때는 발전하는 것에 비례한 그 이상의 힘이 개입되게 해야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만 있어도 안 됩니다. 거기에 대한 힘이 있어야 되는 동시에 그것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터전을 새로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조직적인 계획 밑에서 이것을 강력히 추진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 나라의 모든 여건을 재검토하고 재평가해 가지고 자기가 발전할 수 있는 원칙을 설정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재 좋은 것은 어떤 것이고 좋지 못한 것은 어떤 것이다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좋은 것은 남겨 둬야 되겠고 좋지 못한 것은 무자비하게 제거할 수 있는 단호한 결단력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단 한마디로 말하면, 그 책임자는 모든 면에서 실력을 가져야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실력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되겠다구요. 실력을 가짐과 동시에 실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책임자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실력을 가져야 되고, 그 실력을 중심삼아 가지고 실행하는 책임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자가 돼야만 그나라는 현재보다도 발전된 새로운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책임 소관을 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실력은 잠깐 동안에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모든 일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부대껴 봄으로 말미암아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목적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실천한 모든 경험을 그냥 그대로 인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배움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그냥 그대로 인수하기 위한 것이 학교의 교육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배운 것을, 모든 사람들의 좋은 실적을 인수해 가지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것들을 전부 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결국 알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 남의 것보다 낫지 않고는 책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실력면에서나 실천면에서 나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규정적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의 사회제도라든가, 제반 우리의 책임 소관을 두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책임자를 중심삼고 볼 때는, 어떠한 분야에서나 그것이 작으나 크나 마찬가지의 이치가 통하는 것입니다.
책임자 가운데는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세상적인 외적인 책임자가 있는가 하면 내적인 책임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더 귀한 것이냐?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내적 책임 소관을 짊어진 사람들의 책임이 더 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무슨 책임자가 되겠느냐? 내적인 책임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내적인 문제를 두고 보면 이것은 생명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이요, 그 다음엔 사랑문제, 우리의 모든 심령의 영원한 것과 결부되는 문제를 다루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외적인 문제를 다루게 될 때는 실험을 해 가지고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안 되면 다시 해부를 해 가지고 딴 것을 갖다 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적인 문제는 그와 같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실천해 가지고 안 되는 날에는 그 실천한 결과를 또다시 새로운 다음 것에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에 생명문제라든가 사랑문제라든가 하는 이러한 문제는 가장 엄격히 다루지 않으면 안 될 문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려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책임자, 그런 분야의 모든 책임자들의 좋은 결과를 우리는 인수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만약에 열 사람의 좋은 것이 있으면 열 사람의 좋은 것을 내가 인수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또 백 사람의 책임자가 있으면 백 사람의 좋은 것, 천 사람이 있으면 천 사람의 좋은 것을 내가 인수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좋은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면 할수록 그것은 유리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수련생들은 앞으로 전미국,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의 영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중심삼은 내적인 세계의 책임자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미국이면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책임자가 되려고 한다면, 전세계 사람들을 대해 가지고 테스트를 하고, 전세계 사람들의 좋은 것을 우선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일일이 비판하고 받아들이다가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열 사람의 책임자가 있으면 그 열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열 사람의 말을 내 일과 같이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사람하고, 그 열 사람의 말을 전부 다 비판하는 사람하고 어느 사람이 발전하겠느냐 하면, 열 사람의 말을 자기의 일같이 전적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보다 발전할 수 있습니다. 비판할 때에는 자기가 그와 대등한 경험이 있고, 또 그 이상의 무엇을 갖고 비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비판은 옳은 비판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그 사람들의 말을 나 이상 믿어줄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참된 말이라고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소지(素地)를 가진 사람은 배움의 길에서나 모든 영적인 분야의 자라는 길에서나 누구보다 빠르다는 것을 우리는 모든 영적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지고 그 사람들의 모든 비밀을, 그 사람들의 제일 중요한 것을 빨리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소지를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친구끼리도 서로 말할 수 있는 말과 말할 수 없는 말을 가려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내게 손해를 주든가 전체에게 손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을 대해서는 반드시 자기가 귀한 무엇을 갖고 있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옮겨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이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그 사람이 전체를 위하는 사람이냐 혹은 자기를 위하는 사람이냐 하는 결과를 세워 나가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으려면 누구를 대해서나 참 잘 믿어 줘야 되겠다구요.
그 다음엔 그 사람이, 어느 사람이 나를 볼 때에 '저 사람은 언제나 공적인 입장에서 자기를 초월하고 전체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할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래만 가지고도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규합하느냐, 어떻게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주관할 수 있는 주도력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조직적인 힘도 있겠지만 주도적인 힘 가운데 제일 큰 힘이 무엇이냐? 사랑의 마음씨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고 단적으로 묻게 된다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믿어 주려고 하시는 분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의 원리주관권내에 있어서 아담 해와가 자라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그것은 인간을 믿고 명령했던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물론 의심할 수 있는 분야와 믿을 수 있는 분야가 있었지만 의심할 수 있는 분야보다는 믿을 수 있는 분야의 원칙적인 입장에 아담 해와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물론 하나님을 위해 창조하기도 했지만, 인간을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담 해와 앞에 영원한 사랑을 갖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가장 귀한 사랑을 주려고 했다 이거예요.
내가 책임자가 되게 되면…. 외적인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이라든가 실력만 갖추어 가지고는 책임자가 안 됩니다. 책임자는 무엇을 할 줄 알아야 되느냐? 믿을 줄 알아야 됩니다. 믿을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위해 줄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때문에 있는 책임자를 원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랑해 주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문제는 책임자에게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심령 생활, 교회 생활을 해보면 해볼수록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전체 식구라든가 혹은 대사회의 누구를 대하게 될 때에 여기에서 내가 믿고 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세상에는 믿지 못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고 믿어줘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면 배반하기가 일쑤입니다. 여러분이 배반당하게 될 때에 배반당한 만큼 슬퍼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책임자로서는 후퇴해야 된다는 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모든 것을 희생해 가지고 위했는데도 불구하고 위하면 위할수록 좋게 받아들이지 않고 나를 역이용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랑을 하면 그 사랑이 전체를 위하고 하늘땅을 위하는 사랑이 되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자기만을 위하는 사랑으로 결부시켜 가지고, 그것이 안 되게 될 때는 파탄적인 행동을 하는 일들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경제적인 분야의 무슨 책임자라면 계산해 가지고 결과에서 이익만 나게 해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또 어떤 단체의 책임자라면 그 단체가 이익에 의해서 발전만 되게 한다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심령세계의 책임자는 그렇지 않은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회사에 이익이 나면 그것으로 회사의 책임자로서, 회사의 모든 종업원으로서의 책임이 끝나지만 심령세계는 공동의 이익을 생각해야 된다구요. 전체가 같이 이익 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책임자는 어떠한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공동의 이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좋은 것을 맞이한 환경에 또 좋은 것을 줘야 됩니다. 계속적으로 좋은 것을 가해 줄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에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 분이냐 하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한테 행복감을 느끼느냐고 물어 본다면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줘야 돼요. 언제나 줘야 되는 것입니다. 또 대하는 사람이 여러 층이다 이거예요. 여러 종류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면만 줘서는 안 됩니다. 전체를 위해서 줘야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언제나 모든 것을 줄 수 없게 될 때는 어떻게 되느냐? 거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복귀섭리를 책임지고 나오는 하나님의 입장은 가장 불쌍한 것입니다. 불쌍한 분이 아니냐는 거예요. 사람들이 받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받았으면 더 받고 싶어한다 이거예요. 그러면 어디서 받고 싶어하느냐 이거예요. 어떤 중심존재를 통해서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앞으로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다 받기만 바라는 사람들이 되어 가지고는 하나님도 곤란할 것이 아니냐. 사랑이면 사랑 혹은 귀한 것이면 귀한 것을 자기 것으로만 만들겠다고 하면 참 곤란할 것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하나님은 믿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믿어야 되고, 순응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순응 하고, 사랑하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사랑하라는 상대적 여건을 강화(强化)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공적인 기준에서 믿어야 되겠고, 공적인 기준에서 위해야 되겠고, 공적인 기준에서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믿는 것도 나를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믿어야 됩니다. 내가 순응하고 내가 희생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것도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공적인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공적인 이러한 것들을 자기와 관계를 맺게 하려면 보다 공적인 자신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이라면 그 믿음이 인간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이 있을 것이 아니냐. '믿음아, 너는 어떠한 사람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보다 공적인 사람을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위한다는 것이 만약 사람이어서 '너는 어떠한 사람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누구보다 공적인 사람을 원한다'고 할 것입니다. 또 사랑을 보고 '너는 어떠한 사람을 사랑하고 어떠한 사람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보다 공적인 사람을 원한다'고 할 것입니다. 공적인 사람을 원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공적이라 하게 된다면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고, 세계적인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한 것입니다.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볼 때에 참다운 믿음은 공적인 것 가운데에 있을 수 있습니다. 공적인 것 중의 공적인 것, 보다 공적인 것에…. 위하는 것도 그렇고 사랑도 물론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선하고 참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공적인 분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중심존재로 등장하기에 부끄럽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형(圓形)을 중심삼고 볼 때에 원형을 그리면 원형의 중심에서의 거리는 다 마찬가지다 이거예요. 여기서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책임자는 중심존재이기 때문에 치우치지 않는 공적인 위치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여기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공적인 입장에 선 책임자는 자기라는 것을 강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밥을 먹으나 행동을 하나 보나 들으나 모든 것을 전체의 기준과 맞춰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기 수련소에서 수련받는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와 같은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 수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을 어떻게 잃어버리느냐? 과거에는 자기라는 관념이 있었어요, 자기라는 관념이. 성격이 강한 사람은 이것을 전부 다 깎아 버려야 된다 이겁니다. 또 성격이 뾰족한 사람은 둔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되어서 '나는 여덟 시간은 자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립이 안 된다 이거예요. 또 책임자가 '나는 하루에 밥을 세끼는 꼭 먹어야 되는 책임자다'고 한다면 그것도 성립이 안 됩니다. 또 책임자가 '나는 누구와 같이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앞으로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어 가지고 대중 앞에 나타나든가 혹은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전체를 대해 보라는 거예요. 거기에는 반드시 지장이 온다 이거예요. 반드시 지장이 오더라 이거예요. 적당하게 하면 인간 세계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영적인 세계가 여기에 개재해 가지고 협조해 주면 그 사람이 자연히 싫어지는 거예요. 싫어진다구요.
결국은 어떠한 대중 앞에 나타나거나 자기가 책임을 진 것에 대해 안심하고 편안한 자리에 있는 책임자에게는 영적인 세계에서 절대 협조를 안 하더라 이거예요. 마음이 초조하고 걱정스럽고, 이 문제에 내 생사가 달린 것으로 알고 생명에 치명적인 자극을 줄 수 있고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 겸손히 나설 때에만 하늘이 협조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활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는 거와 같이 다하는 마음, 마음을 다하는 데에서만이 모든 영적인 협조의 기준이 연결되더라 이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세상의 책임자면 그 책임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 만약에 휘하에 백 명을 거느리고 있는 책임자라면 그 책임자는 백 명 가운데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천 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책임자라면 그 책임자는 천 사람 가운데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책임자는 짐을 벗을 수 없습니다. 짐을 벗을 수 없다구요.
그러한 입장에 서서 나가는 내적인 책임자가 가는 길에는 반드시 영적인 협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자의 생활은 누구보다도 신앙적인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절박한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는 책임자라면 자신을 갖고 나서기에 앞서서 전부를 나의 협조자로 만들고 전부가 나의 위로자가 되기를 바라고, 전부를 위하는 입장에서 책임자로 나서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지만 너는 믿어 다오. 너는 믿어 주면 좋겠다' 하는 마음, 누구보다도 신앙적이고 누구보다도 위할 수 있는 마음,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이것이 언제나 책임자의 모든 소행, 영적인 책임자를 지탱시키는 하나의 원칙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내가 믿는 만큼 상대적 가치를 찾을 수 없고, 위하는 것도 상대적 가치를 찾을 수 없고, 사랑하는 것도 상대적 가치를 찾을 수 없지만, 너만은 혹은 자연만은 혹은 미물만은 알아줄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 조그마한 그 무엇이라도 믿고 의지하고 위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나서는 곳에는 반드시 하늘이 역사하는 것을 우리는 생활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경(心境)을 우리가 분석해 볼 때, 그 자리가 가장 약한 자리가 아니냐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목적은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때문에 그런 자리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는 반드시 크고 강한 것으로 활동할 수 있더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영적 생활을 해보면 틀림없이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거쳐 나가는 책임자의 길에는 가면 갈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세계의 협조로 말미암아 환경이 불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한 것도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책임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 '너희만은 나를, 내 말을 이해하고 알아줄 것이다' 하는 기대를 갖고 천국에 가깝다고 하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로 말할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리는 그러한 심정적 세계에서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그렇다구요. '나는 누구 누구의 책임자입니다. 나는 아무데 아무데의 책임자입니다' 하는 기도는 성립이 안 된다 이거예요. 결국은 어린애와 같은 입장에 서 가지고 자기는 없고 하늘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외적인 세계의 책임자는 명령하는 것이 일쑤입니다. 지시하는 것이 일쑤다 이거예요. 그러나 내적인 세계의 책임자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얼마나 명령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더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내가 미국에 와서 하나 놀란 것이 의사가 병원에 가는 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픈 것도 시간을 맞추어서 아파야 된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그것은 의사가 자기 중심의 계획내에서 생명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판정되는 것입니다. 병원의 의사는 24시간 언제든지 환자가 찾아가면 치료를 해주어야 됩니다. 생명을 책임진 의사라면 24시간 공적인 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책임자는 시간을 초월해서 자기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을 대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결국은 내가 자는 시간을 완전히 남을 위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먹는 시간도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사는 생활도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내가 사는 생활도 남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책임소관을 알아서 실행하는 책임자가 된다면 그는 발전하는 것입니다.
만일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을 당장에 처리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쁜 것이 있더라도 그 나쁜 것을 중심삼고 좋을 수 있는 조건을 찾아가면서, 좋은 것이 나쁜 것보다 작더라도 작은 것을 보고 나쁜 것을 보류해 가지고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됩니다.
만일에 1년 전에 잘못한 것을 보고 짤라 버렸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죽었겠지만, 1년, 2년, 3년 짤라 버리지 않고 보류해 두어 가지고 그것을 가외로 생각하면서 처리하게 된다면 1년, 2년, 3년 이후에는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적인 관계를 두고 보면, 책임자는 불쌍한 사람이다 하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그러한 일을 하는 책임자가 있다면 그 책임자의 아내는 그 책임자를 좋아할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이거 물어 보자구요. 그 아내는 반드시 좋아할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책임자는 아내와 둘이 안방에서 재미있게 살더라도 문을 두드리면 안방에도 들어오라고 해야 된다 이거예요. 결국은 자기의 아내보다도 식구를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자기 아내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까지 팔아서라도 전부 다 식구들에게 주려고 하고, 아들딸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 모든 것을 식구를 위해 써야 됩니다. 그런 생활방식이 되어야 됩니다.
자, 이러한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러한 가정은 대다수가 불행한 가정으로 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 일을 계승해 가지고 계속적으로, 일생 동안 밀고 나가면 성공할 수 있지만 몇 해 동안 가다가 중단하면 다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 가든지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되는 것이 책임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만약에 식구들이 책임자를 따라 올바른 사상을 받아 가지고 그 책임자를 위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가 나를 위하려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되면….
여러분이 밥을 먹더라도, 숟가락을 들면 '아이구 배고파'가 아니예요. 식구들을 생각해야 돼요. 옷을 입어도 식구들을 생각해야 되고, 전부 다 그렇게 생각해야 된다구요. 자는 시간도 십자가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아, 기분 좋다'라고 한 것도 회개해야 된다구요. 그러한 생활을 한다면 완전히 영계, 하늘이 협조한다구요. 이것은 여러분이 신앙생활의 체험을 통하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기 몸을 중심삼고 손이면 손이 얼마나 식구를 위했고, 눈이면 눈이 얼마나 식구를 위했고, 공적인 입장에서 얼마나 식구들을 찾아보고 싶어했고, 듣고 싶어했고 그들을 위로해 주었는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전부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이어야 합니다.
'책임자가 되려면' 이것이 오늘의 말씀 제목인데, 여러분들이 책임자가 되면 이러한 십자가를 질 수 있겠어요?「예」 그러려면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천 사람의 책임자가 되기 전에 이런 훈련을 하는 데에서 한 사람의 책임자로 합격할 수 있겠느냐? 자신이 그걸 반문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을 절대 필요로 할 수 있는 친구면 친구로서, 선생님이면 선생님으로서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완전한 책임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여기서 훈련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려면, 어떤 교회를 책임지려면 내가 완전히 한사람을 위해서 책임자 노릇을 해보자 하는 훈련을 해야 되겠습니다. 한사람의 책임자가 되려면 그 사람의 좋은 것, 그 사람의 나쁜 것을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내가 책임지고 나쁜 것은 책임 안 진다 하면 안 됩니다. 나쁜 것은 내가 먼저 책임지고 '좋은 것은 네가 책임져라' 이래야 됩니다. 나와 그 사람과 갈라지게 하는 것은 좋은 것이 갈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갈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쁜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책임자가 되지 않고는 갈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나쁜 것을 소화시켜 가지고 좋은 것으로 보충시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십자가를 져야 되더라 이거예요. 앞으로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면 이것을 생각해야 돼요. 개인의 책임자로서 완전한 책임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 여러분이 자답해야 됩니다. '될 수 있다'라고 그 다음에 가정적인 책임자가 될 수 있느냐 할 때 '할 수 있다'고 하게 될 때는 교회의 책임자로서도 문제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내가 한 가정을 위해서 책임져 가지고 한 가정의 식구들을 교회에 인도해야 되겠다 할 때는 그 가정의 십자가를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가정의 식구 전체가 질 수 없었던 십자가를 내가 대신 져 가지고 해결해 준다고 하면 그 가정은 그 십자가를 해결할 때까지 내 지도를 순순히 받아야 되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구요.
그 다음에 한 교회를 중심삼고 그렇게 되면 가정의 책임자는 물론 교회도 문제없다는 거예요. 교회도 문제가 없다고요. 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교회의 모든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겠다. 너의 책임은 내가 대신 책임지겠다' 하는 사람이 책임자라구요. 교회의 어려운 것이 있을 때 식구들이 전부 다 책임져야 할 것을 내가 책임진다고 한다면 그 교인들은 책임자가 진 십자가의 책임을 수행할 때까지는 책임자의 지도를 받아야 되는것입니다.
한 나라의 책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세계복귀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나선 우리에게 있어서 과연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지금 미국을 대해 가지고 작전하는 데 하나님이 미국을 위하고 믿는 것보다도 내가 미국을 더 위하고 믿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그러면 하나님은 미국을 심판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거예요. 심판을 하려면 내게 그 이상 것을 갖다 주고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내가 미국을 위하고 미국을 사랑하고 미국을 믿고 있는 이상 갖다 주고야 심판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는 빼앗아가거나 쳐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예」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간단해요. 미국의 제일 어려운 걸 책임져야 돼요. 미국이 제일 어려워하는 게 뭐냐? 오늘 미국이 제일 어려워하는 게 뭐냐? 첫째는 뭐냐 하면, 기독교 신앙이 몰락해 가는 것을 어떻게 희생시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걸 우리가 책임져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 다음엔 뭐냐 하면, 미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기독교가 파탄되어 가고 미국에 있어서 기독교문화의 참 가정적, 제일 기반인 가정적 기틀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책임을 져야 되겠다 이거예요. 가정의 윤리 파괴를 저지하자 이거예요.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가 파괴되는 거라구요.
그것을 노리는 것이 공산주의자입니다. 공산주의가 그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공산주의를 소멸시켜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문제를 우리가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책임질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지금, 기독교 신앙이나 종교인들이 몰락하고 있는 이런 때일수록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강해야 되겠습니다. 강할 뿐만 아니라 발전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기독교, 종교인들이 나라를 망치는 놀음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 할 것이 아니라 종교인들을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 믿고 나오던 기독교 신자와는 달라야 되겠습니다. 달라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래, 통일교회 무리들은 기독교인들과 다르냐 이거예요. 달라요?「예」 그러면 가망이 있다구요. 그러면 이것이 몇천 년 걸릴 것이냐? 몇 해 걸릴 것이냐? 여러분이 십년이면 되겠다니까 십년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구요. 문제는 여러분이 몇십 년, 일생을 걸려서라도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어요?「예」 그러면 가망이 있다구요. 그런 것을 해보자! 해보자구요. 해보라구요.
그 다음에는 뭐냐? 그 다음에는 가정에 있어서 청소년문제가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전부 다 가정을 파탄시키고 있습니다. 물론 부모들에게 동기가 있지만, 청년들이 가정에서 문제가 되어 있다구요. 그와 반대로 우리들이 전부 다 고향에 들어가 가지고 고향을 전부 다 규합하고 친척을 규합해 가지고 이런 파탄적인 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그것을 하려면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 여러분의 친척, 여러분의 동네 사람들이 하는 거와 같이 해 가지고는 안 된다 이거예요. 180도로 달라야 됩니다. 달라야 된다구요. 여러분의 동네 사람이나 여러분의 친척들이 다 잘먹고 잘살고 그러니까 나도 잘먹고 잘살아야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들과는 달라야 된다고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또, 공산주의 문제를 중심삼고 보면, 공산당들은 지금 있는 것도 없는 것처럼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모략중상을 하고 있는데 우리 통일교회가 모략중상을 해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려면 몇 배 고생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몇 배의 고생을. 공산당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를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세계적인 발전을 했다면, 우리가 세계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몇 배의 내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자동적인 결론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는 별거 아니다 이거예요. 못 하는 모든 것을 해내고, 어려운 십자가를 홀로 책임지고 해내게 되면 그 분야의 책임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기반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레버런 문이 미국에 와 가지고 미국에 있어서 일대 파문을 일으키는 모든 결과가 앞으로 그대로 흘러갈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분야─이 국민 앞에 기독교의 재무장, 그 다음에는 가정적 재편성, 그 다음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방대하고도 강력한 방지의식─를 해낼 수 있다면 미국 역사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한 기반을 남길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게 앉아서 되겠어요? 미국의 몇 억 되는 국민이 못 하는 것을 우리 소수의 무리가 하겠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운 일 중에서도 어려운 일이라구요.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아, 난 통일교회 식구면 돼. 그저 주일에 교회나 참석하고 남과 같이 믿고 그저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그건 선생님이 책임졌지' 이러면 되겠느냐 이거예요.「아닙니다」여러분들이 책임자가 됐다는 입장, 책임자가 된다는 입장에서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면, 역사 이래에 생명문제를 중심삼고 누구보다도 십자가를 지려고 했던 대표자가 예수님이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생명문제를 두고 볼 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에게 갖다 결부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역사상의 누구보다도 어려운 십자가를 자진해서 진 분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라구요.
공산당하고 싸우는 입장에서는 모르지만 공산당과 하나가 되어야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예요. 공산당을 굴복시켰다고 '야, 이놈아' 해서는 안 됩니다. 공산당을 위할 줄 아는 길을 찾지 않고는 공산당을 포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공산당을 나같이 믿고 내 생명을 다해서 위하고 사랑해야 된다는 원칙을 세우지 않고는 포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지상의 천국, 지금 공산당들이 바라는 천국을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이루어 줘 가지고 '너희들이 바라던 것은 그것이지만 너희들보다 나은 것이 이것이 아니냐' 하며 그것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생각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녜요?
그 다음 이 우주 가운데 제일 골칫거리가 뭐냐? 제일 어려운 문제가 뭐냐? 제일 큰 십자가가 뭐냐 이거예요. 그게 뭐예요? 사탄이예요, 사탄. 이걸 누가 책임지느냐 이거예요.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할 때 하나님이 '오냐, 네가 책임져라' 할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고통거리는 없어질 거라구요. 여러분들이 사탄을 책임지겠어요?「예」 사탄을 책임지려면 모가지를 자르라고요. (웃음) 하나님도 6천 년 동안 사탄의 모가지를 안 잘랐다구요. 6천 년 동안 참소하고 전부 다….
그래 왔으니 얼마나 밉겠어요. 얼마나 밉겠나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라구요.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지금까지 6천 년 동안 고통을 당했는데 그런 것을 책임진 통일교회 교인들은 얼마나 고통을 당하겠어요. 여러분이 사탄을 책임지겠다면 사탄이 여러분의 수하에서 술술 순응할 것 같아요? 사탄이가 책임지도록 내버려 둘 것 같아요? 어떠할 것 같아요?「순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누가 책임지겠느냐 이거예요. 누가 책임지겠느냐구요. 책임지려면 사탄을 방어할 수 있는 비결로 해야 합니다. 사탄이 하지 못하는 걸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파괴적 존재요, 마수적인 존재라는 거예요. 파괴하는 존재라는 거예요. 사탄은 선한 것이 있으면 그저 뭐든지 파괴시키려고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못 하는 게 뭐 있어요? 사탄을 이기려면 반대로 악한 것을 우리가 파괴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선한 것을 파괴시키기가 쉬워요, 악한 것을 파괴시키기가 쉬워요? 어떤 거예요? 또 선한 사람이 악하게 되기가 쉬워요, 악한 사람이 선하게 되기가 쉬워요? 어떤 거예요?「선한 사람이 악하게 되기가 쉽습니다」사탄은 에덴 동산에서도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들어 버린 대장입니다.
자, 그것 책임질 수 있어요?「예」 대답이야 '예' 하지만, 그것 생각 해보라구요. 생각이나 해봤어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에게 이제 공산당을 전부 다 맡기고 사탄을 전부 다 맡기면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인데 받겠습니다'라고 하겠어요?「예」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공산당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구요. 사탄의 구세주가 된다구요. 이러한 문제에까지 책임의 영역이 확대된다는 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런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모든 원칙을 찾아보게 될 때, 별것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믿어 주고 위해 주고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구요.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져야 된다구요. 그 외에는 가능한 길이 없다 이거예요. 여러분이 그걸 좋아해요?「예」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 사람을 위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이것은 참 어려운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희생시키기 전에는 어렵다구요. 여러분이 사람을 믿고,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진심에서 할 수 있어요? 알아 가지고 할수없이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어서 하느냐, 진심에서 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느 거예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 것인가 생각해 봤어요? 이것은 하나님도 힘든 일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자신도 그것을 무난히 진심으로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실험을 통해서 증거로 세우고 싶을 것이 아니냐는 거예요.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자리, 완전히 위할 수 없는 자리, 완전히 사랑할 수 없는 자리에 섰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고, 위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완전한 거라구요.
그 심정을 실천한 것이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여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했다는 조건의 한 시련 장면이라구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이거예요. 그러한 심각한 문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 드려야 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책임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책임자가 되고 싫어요?「예」 그 일은 힘들다구요. 만일 그 일을 책임지고 해낸다면 그 책임자는 영원히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책임을 지고 있어야 된다구요. 하나님의 책임을 대행하는 메시아가 온다면, 그 메시아는 그런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책임자가 안 되어 가지고는, 심판만 하는 메시아가 되어 가지고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가 천국을 만들어서 누구에게 줘야 되겠느냐? 인류를 위해 줘야 된다구요. 인류 가운데에는 절반이 공산당이예요. 이러한 공산당뿐만이 아니라 사탄한테까지 우리가 천국을 만들어 줘야 된다는 말도 가능하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사탄도 '응응' 하고 공산당도 '응응' 할 거예요. 이 말이 이해돼요?「예」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편에서 보게 된다면 몇 개의 천국을 만들어야 되느냐 이거예요. 세 개의 천국을 만들어야 됩니다. 삼단계 천국을 거쳐가야 하나님이 해방될 것입니다. 먼저 세계를 위한 천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만한 크기의 왕국을 만들어 가지고 그 왕국을 누구한테 인계해 주어야 되느냐 하면, 공산당한테 인계해 주는 거예요. 공산당을 위해서 그걸 인계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세계를 위한 천국을 만든 다음에는 공산당 세계의 천국을 만들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 사탄세계의 천국도 만들어야 돼요.
세계 천국이 됐다고 해서 공산당들이 전부 다 그 천국에 와서 살겠다고 '옳소' 그럴 것 같아요? 그게 또 문제라구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강력한 경제체제가 공산세계 이상이 되고 정치체제나 모든 이념적인 체제가 공산세계 이상이 되어 가지고 공산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너나할것없이 '옳소'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공산세계까지 흡수했다면 사탄이 거기에 와서 살고 싶겠어요? 사탄은 또 반대하는 거라구요. 사탄은 그런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세계도 파탄시키고 섭리세계도 파탄시켰는데 앞으로 복귀된 인간세계의 천국도 반대해 가지고 파탄시킬 수 있소' 할 거라구요. 사탄까지도 없어져야 하나님이 본래 이상하였던 천국세계로 들어갈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탄의 죄는 하나님 자신이 용서해 주지 못하는 거라구요. 하나님 자신은 사탄을 용서해 주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럼 누가 사탄을 용서해 주느냐? 아담이 용서해 주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사탄을 위해서 '사탄을 때릴 매로 자기를 때려 달라'고 할 수 있는 책임까지 해야만 용서할 길이 있는 거라구요. 십자가의 정신이 거기에 있다구요. 거기에 도달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관점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질 때 원수를 위해 복을 빌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를 바라볼 때 예수님은 그런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이건 자연스러운 결론이라는 거예요. 그 일이 쉬워요.「아니오」 어려워서 '아니오' 하는 그 어려운 일을 책임을 질 수 있어요?「예」 이이, 뭐 일년도 안 되어서 지치고, 몇 달도 안 되어서 도망하는 녀석도 제법 있는데….
내가 요즘에는 매일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구요. 그 배에는 미국 녀석들도 데리고 나가고, 일본 녀석들도 데리고 나가고, 다른 녀석들도 전부 다 데리고 나간다구요. '잠도 안 자고 어디 얼마나 견디는가 보자' 이래 가지고…. 선생님이 그런 것을 참 좋아한다구요. 요즘은 배를 저 아일랜드 녀석이 운전하고 있는데 말예요, 죽- 그 마음을 본다구요. 보면 '이건 뭐 재우지도 않고 먹이지도 않고 이게 뭐야' 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배를 타는 게 아니라구요. 세계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내가 바다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하는 것을 위해서…. 고기를 잡으면 전부 다 식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수고하는 식구들에게 먹여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다른 게 없다구요. 이틀 저녁 바다에 갔다 와 가지고 '선생님은 강철 같은 사나이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강철이 아니라구요. 여러분과 마찬가지예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목적관이 딱 서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목적관이 서 있다구요. 내가 이렇게 한다 했으면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하는 거라구요, 밤이든 낮이든. 누가 이해하고 못 하고가 문제가 아니라구요. 내가 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차이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목적관에. 시간을 연장시키든 단축시키든, 선생님이 무슨 일이든지 손을 대는 날에는 그렇게 한다 이거예요. 무슨 일이든지 손을 대는 날에는 중단하지 않는다구요.
배를 타는 데 있어서 배에게 '너 배로 생겨나서 누구를 좋아하느냐?' 했을 때 '나 선생님을 좋아하오'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더라도 기록을 가진 배를 갖고 싶지 꼴찌 되는 배를 갖고 싶지 않다구요. 그와 마찬가지라구요. 배도 마찬가지라구요. 짧은 시간에 누구보다도 많은 기록을 내고 싶은 거라구요.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사고방식이 그래요. 무엇이든지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선생님이 1965년에 미주(美洲)를 순회할 때도 그와 마찬가지였다구요. 43일만에 48개 주를 순회할 때도 그렇게 했다구요. 운전하면서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내가 옆에서 지키면서 데리고 다녔다구요. 키웨스트(Key West;미국 플로리다주 남단에 있는 섬)에 갈 때에는 밤 두 시, 세 시까지 달렸는데 운전하는 사람 옆으로 가서 조는 걸 이렇게 (몸짓으로 표현) 하면서 데리고 갔던 거예요.
그것은 왜 그러느냐? 구경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구요. 지금 이와 같은 일을 할 것을 그때부터 계획한 거라구요, 전부 다. 앞으로 내가 수많은 선원들을 대해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앞으로 선생님이 해양사업을 하려고 생각한다구요. 고기잡이도 하려고 해요. 그런 회사를 세우려고 한다구요. '아이구, 천국 된다면 고기도 안 잡아먹고 살려주셔야 될 것 아니겠어요'라고 하겠지만 그건 그럴 수 없다구요. 먹고 살아야지. 그런 것도 전부 다 생각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을 지도하려면 그 세계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거라구요. 대개 노동자라고 하면 해양 노동자, 그 다음에는 공장 노동자, 그 다음에는 광산 노동자등이 있습니다. 동바리(광산이나 건축할 때 쓰는 버팀목)를 세우는 것, 굴을 파는 것, 전부 다….
여러분은 선생님을 종교 지도자로만 생각하지 말라구요. 그것을 아주 싫어한다구요. 선생님은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다 해봤다구요. 운동도 무엇이든지 할 줄 알아요. 어느때, 어디 가든지 친구를 만들고 싶으면 화(和)할 수 있다구요. 이러한 훈련을 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뭐 하게 되면 전문가 누구보다 잘해야지 못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게 쉽겠어요? 그것을 무엇 때문에 하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앞으로 그런 사람을 지도해야 되겠으니까.
선생님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을 사흘 이내에 전부 다 부하로 만든다구요. 그건 뭐냐 하면, 그것이 작지만 한 사회와 같은데 그러한 세계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들어온 사람들의 배후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책임자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있어서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을 붙들고 울 수도 있고 동정할 수도 있고, 심정적으로 자기의 식구와 같은 입장에서 그들을 대할 수도 있는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테스트해 봤다구요. 그런데 3년을 못 가더라 이거예요. 그것이 인간상입니다. 미국의 청년들은 어떻겠어요? 여기 주책임자니 무슨 기동대장도 소리없이 도망가는 것을 볼 때, 에이 이거 이거 믿을 수 없다구요. 그건 남자를 더럽히고 여자를 더럽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안 그러겠어요?「안 그럽니다」 누구나 안 그런다고 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체를 잡아 가지고 일생 동안의 프로그램을 짜라 이거예요. 프로그램을 짜라는 거예요.
여러분, 선생님은 무슨 사건이 나 가지고 사형수가 생긴다든가 하면 전부 다 선생님과 직결해 가지고 쭉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신문 같은 데의 기사에 사형수가 어떤 범죄를 저질러 가지고 죽는다고 할 때, 자기의 뜻을 위해 죽어가는 그 사람의 말로가 어떻게 되겠는가, 최후에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구요. 자기의 뜻을 위해서는 죽음의 자리에 나가더라도 자연스러워야 됩니다. 변명이 필요 없다구요. 변명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나이가 되어야 된다구요. 여러분, 그럴 수 있어요?「예」 그것은 힘든 거라구요. 힘든 거예요.
내가 지금 미국에 와 가지고 하는 것은 생명을 내놓고 하는 거예요. 생명을 걸고 한다구요, 생명을 걸고.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사람이 생명을 걸지 않고는 못 구하는 거라구요. 나도 잘살고 남도 잘살아야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나라를 구하는 데도 생명을 걸고 하는데 하늘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생명을 거는 일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려면 여러분이 처하여 있는 문제에 대해서, 처하여 있는 부서에서 생명을 걸고 해야 돼요. 생명을 걸고 해야 된다구요. 그건 변명이 필요 없다구요. 변명이 필요 없다 이거예요. '내가 죽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내가 죽지 않았는데…. 그러한 각오를 하지 않고는 나라를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라를 구하려면 나라보다도 더 무거워야 돼요. 역사적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천년 역사라면 천년 이상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책임자가 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어려운 표준을 어차피 누가 책임져야 되겠기 때문에 이 일을 책임지겠다고 결의하고 나선 우리는 그 일을 향하여 낙오자가 되지 않고 극복해 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기 위해서는 다방면으로 훈련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래야 된다구요. 정원 일을 하는 사람이라든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래야 된다구요. 선생님은 이런 사고방식이예요. 시간 관념에 있어서도 밤이라고 해서 일을 안 하거나 낮에 일한다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하지 않는다구요. 여러분은 일터에서 밥을 먹고 일터에서 쉬고 일터에서 자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아야 된다구요. 그 자리에서 명상을 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어요? 이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외모야 뭐 전부 다 땀이 묻고 흙이 묻고 누추하고 더렵혀진 모양이지만, 그 가운데에 비쳐지는 아름다움이 있고 거기서 계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싹이 나올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전도 나가서도 그렇다구요. 전도 나가서 방에 들어가 쉬는 것이 아니라구요. 길을 가다가 길가에 앉아서 쉴 수도 있고, 밤을 새울 수도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어요. 밥을 먹더라도 식탁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구요.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다가 길을 가면서도 먹을 수 있어요.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냐 이거예요. 그건 남이 모르는 세계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만약에 배가 고파서 누구한테 빵을 얻어먹는다면, 얻어 온 빵을 먹으면서 생각을 할 겁니다. 그 생각은 얻어먹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거라구요. 거기에는 인생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구요. 그것을 먹으면서도 나는 거지가 아니라고 얼마든지 변명을 할 수 있다구요. 이렇게 해 가지고 깊은 생각과 더불어 하늘이 감동하는 밥, 세상에 없는 밥으로 식사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예요.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이라구요.
어떤 때는 선생님이 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아, 저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이냐?'고 생각할 수 있는 놀음도 합니다. 잔인한 면도 있다고요.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를 것은 잘라야 되는 거예요. 다리가 썩어들어가 죽게 될 때는 그 다리를 잘라 버려야 된다구요. 선생님에게는 그런 잔인한 면도 있다구요. 그러나 그런 모험은 필요 없어요. 정신적으로만 그렇고….
선생님에게는 여기에 이런 흉터들이 많은데 이것은 전부 다 약을 쓰고 나은 것이 아닙니다. 남이 하지 못하는 치료 방법, 별의별 것을 다 해봤다구요. 사람의 정신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열(쓸개) 같은 것을 먹으면, 먹을 때는 쓰고 먹고난 후에는 단맛이 납니다. 이런 것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된다고요. 그 맛을 보통 사람들은 모른다구요. 쓴 맛이 있은 후에 단 맛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고생으로 닦은 체험은 누가 빼앗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이루어진 실적은 그 누구도 주관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통일교회에 와서 통일교회 선생을 못 한다고요. 통일교회 문선생이 하는 것같이 하라면 할 사람이 없다구요. 할 사람이 없다구요. 딴 사람이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만큼 된 것은 선생님이 이런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경력을 통해 가지고 된 것입니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고방식과 그러한 생활 이면을 갖추어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하늘이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주는 거라고요.
자, 그러니까 여러분도 이런 훈련을 많이 거치고 시련을 많이 거쳐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거치는 가운데, 자신을 갖고 낙망하지 않고 그렇게 거치는 가운데 여러분 자신들이 기쁠 수 있는, 자기 스스로 참 귀한 것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여러분을 만들어 놓아야 여러분 혼자서도 전통적 기반 밑에서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척 보면 벌써 그 사람이 어떻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걸 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아주 예민해진다구요. 그러니 그걸 잊어버려야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 사람이 저렇다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 없어요. 위할래야 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볼 때는 주로 어디를 보느냐 하면 눈을 봅니다. 눈을 보는 거예요. 사람의 눈을 보게 되면 신비롭게 생각됩니다. 눈은 누구를 닮았느냐 하면 나를 닮았다 이거예요. 눈은 나를 닮았다 이거예요. 귀나 코나 입은 나를 닮지 않은 것이 많지만 눈은 나를 닮았다 이거예요. 그것이 실감이 나야 돼요. 실감이 나야 된다구요. 껌벅거리는 눈을 보면 말예요. 동그랗게 생기고 이렇게 생기고 이렇게 생긴 것이 닮았다구요. 그 눈만 보면 눈은 미워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어떻게 잊어버리느냐? 어떻게 알고도 모른 척하느냐? 이게 힘든 거예요.
더우기나 각국 사람들을 보게 되면, 미국 사람은 어떻고, 불란서 사람은 어떻고, 독일 사람은 어떻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무슨 전통을 존중시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좋아해야 돼요. 그 사람들을 좋아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에게는 이런 고충이 있는 것입니다. 동양 사람과 뭐 어떻고 서양 사람과 뭐 어떻고 한국 사람과, 전부 다…. 이런 관점을 중심삼고 볼 때 이들의 평균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고충이 있다구요.
처음 만난 여러분들도 믿어 주고 전부 다 믿어 줘야 된다구요. 믿어 줘야 선생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라고요. 또, 선생님이 여러분을 위하려고 해야 여러분이 선생님을, 뜻을, 하나님을 위하려고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여러분을 사랑해야 여러분들도 선생님을 사랑하는 거예요.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자기가 한 대로 거두는 거예요. 심은 대로 거두는 거라고요.
나는 여러분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이용당하려고 한다고요. 여러분이 작은 조건을 제시하면 많은 것과 바꿔 주겠다는 거예요. 선생님이 고생한 것과 여러분이 받을 은사를 비교하면, 선생님이 고생해 가지고 얻은 가치를 여러분이 그러한 것의 조건으로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비교도 안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대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선생님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앞으로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어려운 문제를 책임지고 우선 육적, 외적으로 훈련받아야 됨과 동시에 내적으로 훈련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기성교회는 천국만, 영적 천국만 바라보고 내적 문제만 위주해서 가지만, 우리는 영육을 중심삼고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외적인 훈련도 해야 된다고요.
사람의 소질이라는 것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맞는 식구,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이거예요. 거기에 맞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돼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맞추는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맞지 않으면 맞추어야 됩니다. 이것은 반드시 경험을 통해서 되는 일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경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참된 책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면 이런 경험에 의해서 틀림없는 책임자의 소관을 해 가지고 하늘의 칭찬과 여러분이 지도하는 단체면 단체의 모든 사람들 앞에 우러러 존경을 받는 영원한 새로운 전통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준비를 해야 됩니다. 어떠한 외적인 훈련이나 어떠한 내적인 훈련이라도 달갑게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싫다고 생각하지 말라구요. 나는 못 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구요. 나는 누구든지 어떠한 물건에 대해 가지고 관심이 없던 사람도 전문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는 딴 게 아니라고요. 얼마나 많이 하느냐, 얼마나 끈기 있게 극복해 가지고 많이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소질이 있고 머리도 있겠지만 소질이나 머리에 의하는 것보다 몇 배만 더 하면 되는 거라구요. 몇 배만 더 하면 된다구요.
선생님이 학생이던 시절에 동창생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요. 그는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쳐 주면 무엇이든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다 암기를 합니다. 그 사람이 맨 처음에는 학급에서 성적이 하급이었다구요. 그런데 졸업을 할 때에는 클라스(class)에서 톱(top)의 성적을 가지게 되더라 이거예요. 끈기 있게 남보다 더한 거예요.
아무리 천재라도 한 번 읽고 기억하는 사람과 머리가 나빠서 하루 동안 읽어 가지고 기억하는 사람과 어느 사람이 오래 기억하느냐 하면, 하루 동안 읽어 가지고 기억하는 사람이 오래 기억하더라 이거예요. 나중에는 누가 제일 많이 아느냐 하면, 그저 하나에서부터 전부 다 외우던 사람이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졸업반이 되니까 하나에서부터 전부 다 외우던 사람에게 모두 물어 보게 되더라 이거예요. 그 사람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게 되더라 이겁니다.
이것을 볼 때, 여러분들이 강사가 못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요. 될 수 있습니다. 몇 배의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요. 몇 배의 노력을 하느냐 이거예요. 얼마나 노력하느냐 이거예요. 어저께 여기에 있는 데이비드에게 '나이 많은 사람들은 머리가 잘 안 돌기 때문에 어떻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 '수련소 책임자로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고플 때 밥 먹고 싶은 마음 이상 해봤느냐 이거예요. 그 이상 해봤느냐구요.
선생님의 생각, 사고방식은 이래요. 무엇이든지 한 가지를 붙들고, 못해도 좋으니까 일생 동안 자기가 한다고 한 것을 붙들고 씨름하는 거예요. 일생 동안 이루지 못해도 붙들고 죽는 것이 더 위대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상을 주다 남은 것이 있을 때 그 상을 누구에게 줄 것이냐? 이런 사람에게 줄 거라구요.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내가 뭐가 된다'고 한번 결심했으면 끝까지 붙들고 죽어요, 붙들고. '내가 책임자가 된다'고 한번 결심을 했으면 생명을 걸고 하라 이거예요. 선생님도 지금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구요. 하나, 둘, 셋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지금 어렵든 어떻든 그 면에 관심을 가지고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해 가지고 앞으로 통일교회의 좋은 전통을 세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