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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닮자

일시: 1963.05.10 (금)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와 같이 느껴지는 40일 기간에 여러분이 수고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별 지장없이 지낸 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도위원들과 이 수련회를 움직이기 위해서 배후에서 수고한 여러분들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어차피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내적으로 비장한 각오를 했으리라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제 떠나가야 할 여러분들 앞에 부탁하고 싶은 말씀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를 닮자'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여러분들 앞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창조하신 모든 걸 잃어버린 하나님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도 있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낙망하여 자기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처참한 자리에 섰다 하더라도…. 물론 그 자신들이 불쌍한 사람들이겠지만 하늘 뜻을 대하는 아버지와 비교하게 되면 그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입장을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은 말할 수 없이 슬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슬프신 분이예요. 왜 슬프시냐? 하나님에게는 자기에게 속한 종도 있었고, 자기가 사랑해야 할 자녀도 있었고, 자기가 영원히 참다운 부부로 세워야 할 참부모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모를 중심삼아 가지고 하늘과 땅, 온 천주가 그의 소유권 내에 있어 가지고 당신이 계획하시던 이념의 세계를 이루어 친히 영광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주관하면서 행복에 잠겨 지내야 할 아버지였다는 겁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동시 에 지음받은 모든 피조만물들이 도리어 하나님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심정 앞에 십자가의 조건이 되지 아니한 것이 없게 된 이 사실, 이 이상 슬픈 것이 없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불효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바라보며 고통을 느끼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혹은 아내 되는 사람 앞에 슬픔을 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친구라든가 친척, 혹은 민족이면 민족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슬픈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한 분을 중심삼고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전체의 비참상과 전체의 슬픔을 일시에 체득하고 계십니다. 그런 동시에 체득되는 그 슬픔을 대신해 줘야 할 만물까지도 하나님의 원수의 입장에 있어서 지금까지 이런 슬픔을 남겨 나오는 사실 이상 슬픈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하나님은 지금까지 사랑하는 종을 잃어버렸고, 종을 잃어버린 동시에 자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상하시던 본연의 가정을 잃어버렸고, 가정을 중심삼고 주관하려 하던 천주도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것을 잃어버린 슬픔도 크거니와, 잃어버림을 받은 만물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원수의 입장에 서 가지고 지금까지 십자가의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연결시킬 수 없는 이런 입장에 섰다는 것이 더더욱 슬픈 사실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타락권 내에 처해 있는 자신을 두고 볼 때, 여러분 자체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무한한 슬픔의 빛을 졌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자신은 내 일신을 위한 몸이 아니예요. 나는 개체로되 내 개체 가운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연루되어 있는 모든 슬픔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 개체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잃어버린 종적인 슬픈 역사가 내재돼 있기 때문에 자녀를 중심삼고, 혹은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 앞에 십자가의 조건을 제시해야 될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가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빚지워져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내 개체가 처해 있는 위치가, 혹은 내 개인이 비록 작은 존재라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슬픈 역사의 인연은 천주적인 발판을 가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슬픔을 지니고 나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무한한 슬픔을 지니고 나오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지니고 나오시는 분이예요. 이 슬픔을 지니고 나오시는 그 하나님은 다시 슬픔을 넘어 가지고 이 슬픈 세상에 있는 만물은 물론이거니와, 만물을 위주로 하고 있는 모든 인간까지도 다시 책임을 지고 복귀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귀의 슬픔까지 갖고 계신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슬픈 입장에 있는 하나님은 그 슬픈 입장을 피하거나 혹은 슬픈 입장을 모면하기 위해서 움직여 나오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슬픈 입장에 서 가지고 또 다시 이 모든 만물을 복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서 지금까지 우리를 대해 나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몰랐으나,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의 미래까지 염려하시면서 무한한 슬픔을 품은 그런 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전체 생명까지 복귀시켜야 할 책임까지 짊어지고 나오고 계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또, 그뿐만이 아니라 책임을 진 입장에사 책임을 지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앞에 나가 가지고 원한의 조건들이 남아져 있는 우리들 앞에 보이는 현상세계, 혹은 우리 앞에 전개되어 있는 모든 세계 만민, 혹은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 앞에 있어서 하나님은 책임을 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여러분을 중심삼고 연결되어 있는 참소조건을 제시해 나오는 사탄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입장에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적인 생활과정을 거쳐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책임을 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 또 여러분을 중심삼고 농락하는 이 원수들을 대하여 시공을 넘어서 여러분들 앞에 투쟁의 선구자로서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근심하시는 아버지입니다. 나를 대하여 근심하시는 아버지예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근심하셨던 아버지요, 지금에 있어서는 근심하시는 아버지인 동시에, 내 자신을 대신해서 책임을 지고 복귀시키기 위한 입장에 선 동시에 복귀하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난관의 조건을 타파하시면서 한스러운 슬픔을 제거시키는 복귀의 길을 여러분 앞에 서 가지고 먼저 개척하시고 투쟁해 나가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종의 시대에 있어서 승리의 한 날을 고대해 나왔고, 종의 시대에서 승리의 기반을 통하여 자녀시대라는 승리의 기반을 소망삼고 지금까지 역사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신 것이 6천 년 역사라는 거예요.

예수가 이 땅 위에 왔다 간 이후에 내적으로 비로소 부모의 인연을 세워놓고 또 외적으로는 자녀의 기준을 세워 가지고 자녀의 슬픔을 제거시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섭리역사였다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끝날에는 종의 슬픔을 제거시키고 자녀의 슬픔을 제거시키는 동시에 최후에는 참다운 부모의 슬픔까지 제거시키려는 것이 우리들이 소망하는 최후에 남아진 재림이상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연고로 하나님은 잃어 버릴 때의 슬픔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또다시 찾는 시대에 있어서 슬픈 역사를 거쳐오신 거예요. 그러기를 종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쳐 부모의 시대까지 무한한 슬픔과 무한한 책임과 무한한 투쟁 역사를 거쳐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소망의 실체를 세우는 역사가 재림역사

그러면 종을 굴복시켜 아들을 모시게 하고, 아들을 굴복시켜 부모를 모시게 해 가지고 뭘할 것이냐? 이것을 기반으로 해 가지고 하나님이 소원하던, 창조이상 세계로서 소원하던 그 중심인 하나의 가정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이 성립됨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슬픔을 제거시켜 놓고 비로소 복귀의 한 기준을 세워 부모를 중심삼은 자녀, 자녀를 중심삼은 종의 인연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천지의 모든 슬픔을 대신 상속받아서 지금까지의 지루한 책임의 역사를…. 그런 지금 까지의 투쟁역사를 도맡아 가지고 싸우게 해서, 소망의 역사 혹은 소망의 실체로 세움을 받는 역사가 재림역사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이제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 이 가정적인 환난의 도상에 있어서 부모로서 책임을 완결하는 데 있어서는 종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되고, 자녀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되고, 거짓 부모들 앞에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역사적인 전체 탕감을 그 일대에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다시 말하면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천사장이, 종이 하나님을 배반했고, 그다음에는 아들딸이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아들딸이 배반한 동시에 참부모가 배반한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종의 시대, 자녀의 시대, 부모의 시대를 거쳐오던 이 역사적인 전체를 대신해서 참다운 부모를 중심삼은 하나의 가정의 인연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책임을 짊어진 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종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종이 주인을 죽이던 역사의 슬픔을 당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들딸이 예수를 잡아 죽인 고통을 그 일대에 있어서 자녀들이 대신 하나님 앞에, 혹은 참부모 앞에 배반하는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그다음에 그 아내 될 해와가 이런 슬픔의 길을 저끄러지게 한 거와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도 그와 같은 슬픔의 환경을 거쳐 나와야 됩니다.

그와 같은 싸움터에서 지치지 않고 하나님의 슬픔을 깨닫고, 하나님의 책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싸움을 깨달아 가지고 승리라는 그 표적 밑에 비로소 영광이라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승리를 자기 일신의 승리로 돌리지 않고 종을 대하여 나오시던 하나님의 창조 이상의 승리요, 아들을 찾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승리요, 참부모를 세워 창조이상세계의 심정의 동산에 세우려던 중심의 승리라고 하면서 하늘적인 승리로 돌려드려야 됩니다. 그런 동시에 온 피조만물 의 승리의 것으로서 돌려드릴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슬픔이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책임이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싸움이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종의 시대를 거치고 자녀의 시대를 거쳐 참부모의 시대를 엮어 나가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원리를 통하여 잘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슬픔의 역사과정, 책임지는 역사과정, 싸우는 역사과정에서 승리의 영광을 맞게 될 때에는 그 승리의 영광을 자기의 것으로 갖지 않고 온 피조만물의 것으로, 지음을 받은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참주인의 것으로 넘겨 주기 위하여 수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이 복귀도상의 노정을 거쳐 가지고 승리의 한때를 마련한 그런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승리적인 영광을 내 영광으로 생각하는 이런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우리의 가정의 영광이요, 더 나아가서는 천주의 영광이라고 자랑할 수 있고, 현재의 영광인 동시에 미래에 올 우리의 후손들의 영광이라고 하며 후손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이런 책임을 짊어질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리에 나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허락할 수 있는 참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인연을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인연을 세운 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천국 백성의 자리에 나갈 수 있다는 걸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로 하여금 승리의 방패를 세우게 하는 복귀섭리의 중심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까지 수고한 전체의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자녀의 자리를 거치게 해서 하늘의 모든 주권을 대신하여 주관의 뜻을 온 피조세계 앞에 세울 수 있는 참다운 참부모의 이름을 찾아 나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았기에 참부모가 되고자 하는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버지는 천지에 참부모의 입장에 서 가지고 슬픈 생활을 하였고, 자기의 책임이 아닌 전체의 책임을 짊어졌고, 자기의 싸움이 아닌 전체의 싸움을 위해 우리 대신 싸워 주었고, 자기의 승리의 한 기준을 세워 가지고 그 승리를 우리의 승리로 옮겨 주기 위하여 나오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을진대, 오늘날 우리들도 그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참부모도 그런 입장에 서야 됨과 동시에 그런 뜻을 알았던 모든 사람도 그런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수련을 받고 나가는 여러분들, 이제 우리들이 바라는 소망의 기준이 무엇이뇨? 하나님이 찾고 있는 참부모를 중심삼은 자녀와 본연의 종을 위주로 한 하나님의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으로 하여금 천지만물을 주관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알았을진대, 오늘날 여러분들의 모든 생각과 여러분들의 모든 생활의 중심과 여러분들의 모든 활동이나 행동 그 전체의 내용은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한 책임을 지고,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근심을 하고, 이 하나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해서 싸우는…. 그런 신념을 가진 확고부동한 자신이 돼야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는 한 아버지의 뜻과는 영원을 두고 하나될 수 없다는 거예요.

역사는 지나오는데, 지나오는 역사노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투쟁역사를 거쳐온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중심삼고 볼 때 과거가 있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인류역사 하게 되면 이 역사는 과거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논하고 있지만 그 역사의 연줄이란 것은 반드시 현실을 거쳐 미래를 연결시켜 나가야 할 역사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연고로 오늘날 우리들은 지나간 과거를 재차 수습하여 역사적인 현실을 창조하고, 역사적인 미래를 창조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님보다 더 큰 책임을 우리가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느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여 참부모를 세울 때까지 책임을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적인 책임분담시대, 혹은 참부모적인 책임분담시대가 있고, 삼위일체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참부모를 위주로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이 벌어진 후에는 성도의 시대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시대는 전체의 역사적인 분야를 대신할 수 있는 시 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적인 사명을 책임져야 할 것이 오늘날 성도, 즉 자녀의 사명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중심은 무엇이냐? 참부모를 세워 참부모로 하여금 승리의 방패를 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후손된 우리들에게는 어떤 책임이 지워져 있느냐? 그 가정을 위하여 하늘과 땅에 널려 있는 인연된 세계를 전부 다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책임이 남아 있는 연고로 여러분들의 책임분야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과거가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현실이 여러분의 생활권 내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래의 생활적인 인연이 여러분이 앞으로의 생애노정을 가는데 남아진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금 이 시대에 처해 있는 여러분들은, 혹은 자녀시대를 향하여 넘어가는 시대를 맞이한 우리들은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이상으로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지상과 천상에 있는 피조세계를 주관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주관하는 것이 사명이요,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주관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런 연고로 지으신 만물을 주관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우주적이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주를 주관하는 우주적인 사람을 하나님이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타락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직계 혈통을 통하여 자동적으로 동일한 이념의 기준이 연결되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에 벌어진 역사상의 모든 인류는 전부 다 하나님과 배치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전부가 슬픔의 총합체라는 거예요.

그런고로 이를 대하여 슬퍼해야 할 것이 남아 있고, 이를 대하여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되겠고, 이를 대신하여 싸워 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전체를 주관하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가져야 할 것이 오늘날 이 세계가 요구하는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도 요구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참부모를 세워서 하나의 종적 기준의 기반을 닦으면 됩니다만, 우리는 종적 기준의 기반을 닦은 그 터전 위에서 횡적인 사방성을 세워 세계적인 무대 앞에, 혹은 전체 피조세계 앞에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재림적인 책임, 참부모의 입장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사방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에 대해서 자녀를 통해서 그러한 인연을 세워 놓고 이러한 요구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날 여러분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더더욱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어 놓은 기반이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나아가면 된다' 하는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더더욱 우리는 책임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 생활에 있어서나 내 행동에 있어서 느끼는 감정을 분석하여 사탄과 더불어 근심하던 것을 아버지의 입장을 대신한 자리에서 이걸 소화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과 대결하여 아버지 대신 책임지는 입장에서 이것을 주관하고, 아버지 대신 싸우는 입장에서 이것을 정비해 가지고 하나의 승리 기반을 생활무대에 닦고 만다는 이런 신념이 투철한 자신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종적인 역사를 밀고 나가는 데 있어서 제일 발판을 조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시대에 처해 있는 우리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해 근심할 줄 알아야

하늘은 지금까지 땅을 내려다보고 근심하였고, 참부모는 하늘을 바라보고 근심하였습니다.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근심하던 이 모든 것이 오늘날 땅 위에서 승리의 기반이 닦아진 후에는 우리가 세상 끝을 바라보면서 근심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가 책임지는 입장에서, 혹은 싸우는 입장에서 승리해야 할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 이런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바라보는 시선과 우리들이 느끼는 이 감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슬픔이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이러한 세계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걸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걸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참부모를 세우기 위해 6천 년간 수고하신 역사적인 인연을 생각하면서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일대에 내 손을 거치고, 내 노력을 거치고, 내 힘을 다 거쳐서 하나님이 6천 년 수고하여 참부모를 세우시기 위한 수고의 심정 앞에 자신이 세워질 수 있는 역사적인 입장을 남길 수 있느냐?' 하는 걸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인 이상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라는 거예요. 이것은 누구나 다 갖고 염려해야 하고, 누구나 다 갖고 근심해야 하고, 누구나 다 갖고 걱정해야 할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연고로 여러분이 이제 가는 길은 기쁨의 길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근심하고 나왔으니 여러분도 근심을 품고 가는 길이예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대신해서 책임지고 나왔으니 책임진 모든 내용을 대신하여, 세계를 대신해서 책임져야 할 것을 각오하고 가는 길입니다. 근심해도 안 되고, 책임진 입장에서도 안 되면 싸워서라도, 종과 같이 싸워서라도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하늘 아버지를 닮자고 했으니, 아버지의 자녀가 되자고 했으니 아버지가 바라는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하나의 가정을 위주로 한 하나의 사회,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 하나의 천주를 위해서. 이것을 위해서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더욱 슬퍼하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여야 할 인간을 지어 놓은 연고로 만물 주관권 내에 들어와서 역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에 대해서 하나님이 직접 협조해 주고, 하나님이 직접 운행하여 싸워 주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시대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예요.

지금은 소망에 불타는 근심을 할 수 있는 때

이것은 인간의 책임분야에 있으니,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겼으니 인간적인 책임 사명을 여러분과 우리 통일교회 전체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책임이 남아 있는 연고로 우리가 이걸 해결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삼위신이 협조하고, 과거의 역사적인 모든 선조들이 우리를 협조할 것이고, 시대적으로 지금 도의 길에서 준비된 사람들이 협조할 것입니다. 두 세계가 협조한다는 거예요. 영계가 협조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육계, 제 1이스라엘이 협조하는 동시에 제 2이스라엘이 협조할 때가 왔다는 거예요. 영계가 협조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도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협조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가진 하나의 힘이라면 힘인 거예요.

과거에는 영계도 협조하지 못하였고, 성도도 협조하지 않고…. 영계가 잘못 움직이게 되었다가는 그것이 인간세상에 도리어…. 세상에서 인간이 받들지 못하고 실체적인 조건을 세우지 못하면 도리어 사탄의 무대로서 몇십 배, 혹은 몇백 배의 손해를 가져온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서도 협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예수를 통해서 협조했다 이거예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예수를 거치지 않고 직접 협조할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1이스라엘이 우리 편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종교를 위주로 한, 기독교를 중심삼은 이런 시대권 내에 처해 있는, 현세에 남아 있는 제 2이스라엘권이 우리의 편입니다. 오늘날 이편을 기반으로 하여 여러분들이 이념권을 끌고, 도의 세계에 있는 제 2이스라엘권에 있는 모든 세계 인류를 끌고 나설 수 있는 책임을 짊어지 고 하나님 대신 근심하고, 하나님 대신 책임을 지고, 하나님 대신 싸우겠다고 결심하고 나서게 된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으로 돌아올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 근심하는 데는 제 1이스라엘, 제 2이스라엘을 대신해서 근심해야 되겠고, 책임을 지는데는 제 1, 제 2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책임을 져야 되겠고, 싸우는 데는 제 1, 제 2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아 승리하고야 만다는 이런 결정적인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아버지가 이겼고 참부모가 이겼고 그 기준을 우리 앞에 세계적인 혜택으로 부여 했으니 기필코 승리한다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가면, 여러분들이 가는 길 앞에는 패배라는 슬픈 사연은 없을 것입니다.

근심을 하되, 개인을 위하여 근심하는 때를 위해 싸워서 이기게 되면 개인적인 근심시대는 나와 영원히 이별이예요. 그럴 수 있는 시대로 왔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해 근심하는 때에 가정을 대신하여 싸워 이기면 그 가정적 기준은 영원히 나에게서 지나가는 거예요. 사회에 대하여 근심하는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서 싸워 승리하게 된다면 그 사회를 대하여 근심할 때는 나에게 있어서 지나가는 거예요. 국가를 대해서 근심할 수 있는 싸움에서 싸워 이기게 되면 국가를 대해서 염려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개인을 대신해서 싸워 가지고 이기게 되었더라도 그 기준이 평면적인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기준이예요. 사람이 세계사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아 놓지 못하였던 연고로 책임을 잘못하면, 이건 어디에 가든지 발판이 조그만 자리를 잘못 잡으면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어느때나 개인을 위해서 닦아 놓은 승리의 기반도 사라지고, 혹은 가정을 위하여 닦아 놓은 승리의 기반도 사라지고, 민족을 위하여 닦아 놓은 승리의 기반도 다 사라져 버린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왔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구요. 세계의 뜻을 대신하여 나가는 승리의 기반 밑에 전체적인 조건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여러분 자신들이 개인을 대신해서 근심하는, 혹은 가정을 대신하여 근심하는 자리에 있어서 책임을 지고 투쟁하여 승리의 결정을 지어 놓은 후에는 그 자리를 지나가 가지고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향하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개인으로부터 혹은 세계, 혹은 천주 무대까지 여러분 일대에 넉넉히 가고도 남을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복이냐 이거예요. 따라서 오늘날 여러분은 근심하는 데 있어서 슬픈 근심이 아니라 소망에 불타는 근심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거예요.

이제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위하여, 우리의 하늘을 위하여, 우리의 천주를 위하여, 우리의 참아버지를 위하여, 우리의 참부모를 위하여, 참부모를 위주로 한 참가정을 위하여 싸움을 하여 종족을 거쳐 나가야 되겠고, 민족을 거쳐 나가야 되겠고, 세계를 거쳐 천주까지 거쳐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적 혜택권 내에 서 있어

뜻을 알고 내 심정이 하나님 앞에 인연된 것을 알았으니, 내 뼈살은 그의 품에서 자라고 그의 품에서 살다가 그의 품에서 사라져야 할 것임을 알았으니 그런 내가 그의 품에서 나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그의 품에서 살지 못한 과거가 한스럽거든 이제 남은 시대에 있어서 그와 같이 살 수 있는 인연이 있고, 자랄 수 있는 인연이 있으니 남아진 여러분 생애노정에 있어서 이러한 생활의 인연을 맺고 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잘 배웠으리라고 봅니다.

이제 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인연이 돼 있고, 나는 어디로부터 생활과정을 거쳐 어디로 향하여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가는 나는 무엇을 지니고 가느냐? 하나님의 근심을 품고 가는 거예요. 내 개성이 복귀돼 있으면 이 가정만으로 내가 안식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가정을 중심삼은 종족이 있고, 종족을 중심삼은 민족이 있고, 민족을 중심삼은 국가와 세계 인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 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이 세계 끝까지 나가서 수많은 민족을 아버지 앞에 내몰아 넣고, 그 뒤에서 만민을 축복하고 갈 수 있는 한날이 나에게 오기를 고대하며 매일같이 싸워 나갈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빠요. 바쁘고 바쁘다구요.

과거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가정이 어떻고, 우리의 참부모가 어떻게 되고, 참형제가 어떻게 되고, 참미래가 어떻게 되고, 참다운 나라의 이념이 어떻게 돼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가치한 것들이었어요. 무가치할 뿐만이 아니라 무가치한 내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염려와 근심과 고통을 남겨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할 때에 지긋지긋하고 분하다구요.

그러나 그러한 과거의 나를 무자비하게 때려치우고 오늘 재생된 자아의 가치를 드높이 내세워 하나님이 바라볼 때 하나님의 근심을 맡겨 주려고 하고, 하나님의 책임을 맡겨 주려고 하고, 하나님의 전쟁터에서 청룡도를 들고 원수를 대하여 행군하라고 하는 명령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통쾌하냐 이거예요.

과거에 우리의 수많은 선조들은 제아무리 충성을 한다 하더라도 종의 시대에서 사라져 갔고, 제아무리 충성을 한다 하더라도 양자의 길, 혹은 참다운 자녀의 접촉점까지 올라갔다가 다 쓰러져 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종의 시대를 지나고 자녀의 시대를 지나서, 나아가 참부모의 혈통적인 인연을 갖추어 가지고 우리가 자동적인 원칙 밑에서 참부모의 인연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평면적인 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이 기반 위에서 우리들이 싸워 가지고 승리하는 날에는 이 싸움과 영원히 이별하고 갈 수 있는 시대적인 혜택권 내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우냐 이거예요.

예수님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고, 과거의 아브라함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고, 모세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고, 지금까지 하나님도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들이 슬픔을 품는다 하더라도 행복된 자리에서 슬픔을 품는 것입니다. 이 슬픔은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자탄하는 슬픔이 아니라 민족을 위한 슬픔이예요. 그러니 얼마나 위대해요. 책임지는 입장도 자기 일신을 위한 책임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책임지는 입장이니 얼마나 귀해요.

평면적인 이런 도상에서 보더라도 이 세계 인류가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엄숙한 책임을 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이도 역시 하늘의 아들딸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가야 합니다. 누구를 닮아서? 아버지를 닮아서.

아버지께서는 6천 년 동안 이러한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종에게 유린을 당하고 종한테 죽음을 당한 거예요. 아담이 종한테 죽음을 당하지 않았어요? 그다음에 예수시대에는 아들딸한테 죽음을 당했어요. 오늘날 재림시대에는 여자들한테 죽임을 당하고 있다구요. 여자 때문에 고통을 당해요. 이렇게 종과 자녀와 혹은 신부로 인연된 권내에서 고통을 받아 가지고서 하늘의 고통을 일단락 짓고 승리의 기반을 닦은 기반 위에서 이렇게 싸워 나온 승리의 기반을 일대에 여러분에게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상속해 주는 데는 완전한 승리의 방패를 세워 가지고 패를 달아 가지고 여러분 앞에 내세우는 거예요. 그것은 종으로 승리할 수 있는 내용과 자녀로서 승리할 수 있는 내용과 참부모로서 승리할 수 있는 내용을 사방으로 거쳐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부모의 시대에서 자녀의 시대로 옮겨지는 때

우리는 이런 3시대의 내용을 대신해 가지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시대적인 혜택의 은사로 말미암아 이런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여기에서 출발하여 나가 가지고 다시 돌아와야 됩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그러면, 종으로서 하나님 앞에 제일 충성하던 그 자리를 내가 받들어야 되겠고, 자녀로서 제일 충성하던 그 골고다의 산정을 내가 찾아가야 되겠고, 부부로서 제일 충성하던 고통의 자리를 내가 점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런 인연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기간을 단시일 내에….

그렇기 때문에 이 시험은 한 번에 끝나는 거예요, 한 번에. 종의 골고다의 길에서 싸움을 하되 이것을 몇천 년, 몇만 년 걸어 놓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번입니다. 한 번에 하는 거라구요. 알겠지요? 그다음에 아들의 자리에서의 십자가도 한 번만이예요. 왜 그러냐? 시대가 자꾸 지나간다구요. 종의 시대가 지나가면 종의 시대는 잘라 버리고 자녀의 시대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종교도 그렇다는 거예요. 소생·장성·완성을 잃어버렸으니 기독교가 중심인 소생형의 자리에서 장성 자리를 차지하면 장성 자리에서 완성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시대적 혜택권이 찾아온 다는 거예요. 소생 단계가 장성 자리로 올라가고…. 이 세계의 시대적인 운세는 여러분들이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소생시대를 지나 장성시대로 옮겨지고, 장성시대가 오게 되면 소생시대는 전부 다 잘라 버리는 거예요. 그 고비는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도 이런 과정에 있어서 종의 시대, 혹은 자녀의 시대, 혹은 부모의 시대를 거쳐 나가는 데 있어서 십자가의 고통의 길이 있다 해도 맨 처음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수고로울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점점 쉬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때는 어떤 때냐?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복된 것이 무엇이냐? 이때는 3년 고비를 거쳐 가지고 새로운 시대로 전개되는 때입니다. 부모의 시대가 지나가 버리고 자녀의 시대로 옮겨지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모든 책임과 모든 싸움을 삼위신이 책임지고 하던 것을 오늘날 평면적인 세계에 널려 있는 참다운 사람 앞에, 사탄 앞에 있어서 마음놓고 인계해 줘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혜택권 내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이 시대적 혜택권이, 오늘날 우리들이 움직이는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들이 가는 십자가의 고개는 점점점 평지로 화해 들어갈 수 있다 이거예요.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처음으로 출발하는 이때에 널려 있는 전체 통일교회 교인들은 총단결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환난, 어떤 고통, 어떤 어려움이, 삼시대의 십자가의 고통이 나에게 일시에 다가오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너에게 굴복당하지 않는다' 하는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승리의 방패를 마음에 결정지어 놓고 여러분들은 세계를 정복하겠다고 해야 됩니다.

이것을 위하여 근심하고, 이것을 위하여 책임지고, 이것을 위하여 싸워 가지고 승리한다면 내가 수고한 그 영광의 가치를 내가 갖는 게 아니예요. 위로는 하나님 앞에 효도해야 되겠으니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 되겠고, 아래로는 하늘땅을 대신한 부모의 자리에서 사랑을 해야 되겠으니 천추만대의 후손 앞에 남겨 주어야 됩니다.

역사적 인연을 상속받아 시대적 개척자의 책임을 다하자

'하나님이 찾으려 하시는 것이 오늘날 우리 부모를 중심삼은 가정의 형제이거든 형제를 받으시옵소서, 우리 가정의 종족이거든 종족을 받으시옵소서' 이래야 됩니다. '우리 가정을 위주로 세계를 갖기 원하였으니 받으시옵소서' 이래야 된다구요. 다 이겨 가지고 돌려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승리의 실적을 근심하는 아버지의 대신자 된 마음을 품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책임진 입장에서 싸워 가지고 하나님 앞에 돌려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체로 돌려드리고, 종으로 돌려드릴 때가 있을 것이고, 자녀로 돌려드릴 때가 있을 것이고, 참부모로 돌려드리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된 책임을 하여 전체 문중을, 김씨면 김씨 문중을 자기 이름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종족적 부모의 책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종족은 전부 다 자기의 울타리에 들어오는 거예요. 이런 책임을 하게 되면 앞으로 여러분의 천적인 가치는 점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는 길은 여러분들을 위해 가는 게 아닙니다. 관념이 그래요. 여러분을 위해 가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가 이렇게 갔으니 아버지를 닮아야 되겠고, 아버지를 따르는 내 자신이 돼야 합니다. 지금까지 종적인 수고의 역사를 마련하여 횡적인 역사의 기준을 닦아 나오기 위해 수고하신 그와 마찬가지예요. 아버지 깨서 우리 가정을 위주로 하여 세계를 주관하기를 바라던 그 뜻을 우리 자체로 회복해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 선조가 실수한 것을 우리 시대에 탕감하여 책임을 완수하겠다는 이런 신념을 가지고, 근심하는 마음과 책임지는 마음과 실천하는 마음을 갖고 승리의 한날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만민 전부가 이것은 아버지의 것이요, 참부모님 것이라고 하며 돌려드려야 됩니다.

아버지 것으로 돌려드리고 참부모님 것으로 돌려드린 후에 참부모가 '이것은 너희들의 것이다'라고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그날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든 섭리는 완결되고, 최후의 영광의 승리는 이 천상천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 대신 근심하고, 그다음에는 책임을 짊어지고, 그다음에는 싸우고 나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근심을 하지 않을 때에는 뜻을 대신해서 책임을 져야 되고, 책임을 지지 않거든 싸우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여러분이 어느 때든지 그런 환경에서 살아나가야만 아버지를 닮은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나요? 「예」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먹을까? 내가 뭐 어떻게 되나?' 이런 걸 지지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당연한 거예요. 그렇지만 이제는 과거 현재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이냐 하는 걸 생각해야 되겠다구요.

대개 역사의 흐름을 보면, 역사를 상속하려면 전통에 순응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오늘날 이 사회는 역사의 결실로서 나타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있어서 역사상의 모든 인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역사상의 인연이나 현실적인 조직에 있어서, 혹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충실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전체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섭리 전체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그 전통에 충실해야 됩니다. 전통에 충실해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기에서는 책임을 져야 돼요, 책임을 져야 된다구요. 책임을 진 다음에는 혁명을 해야 됩니다. 이 전통이 아버지 앞에 옳지 못하다 할 때는, 그 전통을 전체 앞에 상속시키기 위해서는 사회환경의 모순된 모든 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거예요.

그런 연고로 여러분은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받아 시대적인 개척자의 책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한 역사적인 순수한 전통을 이어받아 가지고, 현재의 생활적인 환경에 있어서 그런 책임을 짊어지고 미래의 새로운 이념 터전을 건설하기 위해서 투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더더욱 명심해야 되겠어요. 알겠지요? 「예」

기 도

아버님, 아버님을 닮아야 되겠습니다. 아버님과 하나돼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은 무한히 슬픈 아버님이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종한테 죽음을 당하였고, 자녀한테 죽음을 당하였고, 혹은 아내와 남편 앞에 추방을 당하신 아버님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서글픈 심정 앞에 있어서 오늘날 저희들은 타락의 후손이 되어 모든 내적인 고충을 제시하고 남아진 것이 저희 자신인 것을 알았사오니,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지금까지의 내 자신은 슬픈 자신이었사오나, 이제부터의 내 자신은 기쁜 소망의 아들딸로서 아버지 앞에 부름을 받았으니 감사합니다. 이제 참다운 소망의 뜻을 알았사옵고, 당신이 찾고 있던, 당신이 원하고 소망하시던 중심된 가정을 알았사옵고, 그 세계를 알았사오니 그 세계와 가정 앞에 내가 없어서는 안 될 자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 돌아가는 당신의 아들딸들의 마음에 더더욱 깊이, 절실히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한 생명이 왔다가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것이오니, 가고 나면 슬픔과 더불어 사라져야 할 인간이 되지 말고 갈 때에 영광의 깃발을 들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이 세상 만민이 환희하는 가운데서 아버지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인연을 가지고 갈 수 있어야 될 것을 저희들은 이번 기간에 배웠으므로 더욱 잘 알 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내가 가는 길은 어디메뇨?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어디메뇨? 내가 머물 수 있는 안식의 보금자리는 어디메뇨? 지금까지 자라던 부모의 품이 아니었사옵고, 지금까지 자라던 고향 땅이 아니었사옵고, 지금까지 거하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염려하던 생활적인 무대가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내가 바라봐야 할 것은 본연의 동산이요, 이제 내가 찾아서 그 품에 품겨할 것은 참부모요, 그 부모를 위주한 참다운 가정이요, 참다운 가정 가운데 머문 참다운 형제자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형제자매와 더불어 심정이 연결된 아버지의 터전 위에서 아버지의 자랑,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영광이 될 수 있는 가정을 위주로 한 참다운 자녀로서 자녀를 위주로 한 종족을 거쳐, 종족을 위주로 한 민족, 민족을 위주로 한 세계, 세계를 위주로 한 하늘땅이 되어 아버지의 것으로서 귀결될 때까지 그 놀라운 인연 분야에 연결시킬 수 있는, 심정에 일치된 이상을 갖추어 가지고 사탄을, 즉 종을 굴복시키고, 아들 딸을 굴복시키고, 최후에는 자기의 이상 상대자를 굴복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이런 고난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런 것을 종적인 역사를 중심삼고 하던 것이 오늘날은 평면적인 환경을 거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이 자리에서 실패하면 내일 다른 자리로 옮겨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저희들은 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한 자리에서 실패하면 다시 옮길 수 없는 종적인 역사를 거쳐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수고로우셨으며, 얼마나 근심하였으며, 얼마나 책임지기 어려웠으며, 얼마나 싸우기에 노심초사하였던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이 복된 종적인 기준을 완결시켜 승리의 방패를 온 천주적 기준으로 세운 그날부터 평면 도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성도의 시기, 자녀의 시기, 형제의 시기를 맞이한 때인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나가는 도상에 있어서 한 방향에서 실패하면 그 방향을 피해서 다른 위치에서 싸울 수 있는, 제2의 환경을 가질 수 있는 이런 시대를 가진 것을 저희들은 고맙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저희들이 나가는 환경에 있어서, 개체를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가정을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종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민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고, 세계를 대하는 데 있어서 패자가 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온 천주를 주관하시는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위신을 세우는 자가 되겠으니 그러한 아버지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당신의 손길로써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참부모의 실천길을 중심삼아 가지고 사방에 연결된 자녀의 인연과 형제의 손길 손길을 붙들어 가지고, 내 힘이 부족하거든 형제의 힘의 원조를 받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환경이 되어진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것인지 이제 알았습니다.

이제는 하늘을 중심삼고 제1의 이스라엘 영계가 남아 있사옵고, 제2이스라엘 도의 세계의 우리 형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통일의 신도들은 삼위의 방향을 갖추어 가지고 싸울 수 있는 기준을 닦은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제 저희들은 비할 바 없이 강하고 담대하여 원수가 있는 적진을 향하여 공격할 수 있는 참다운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의 한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오니, 이 한을 우리가 박차 버리고 승리의 깃발을 저희들 손길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다시 한 번 아버지 앞에 맹세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민족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민족의 책임을 내 책임으로, 민족의 싸움을 내 싸움으로, 세계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세계의 책임을 내 책임으로, 세계의 싸움을 내 싸움으로, 천상천하에 널려 있는 모든 근심을 우리의 것으로, 그 책임과 그 싸움을 우리의 것으로 맡아 여기에 굴하지 않고 승리의 목표를 향하여 전진 일로의 영광의 실적을 가져 역사를 장식하고 시대에 남겨질 수 있어 가지고 후대에 승리적인 발판을 남기면서 갈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번 기간인 40일 기간을 아직 마치지 않은 중요한 기간에 머물러 있사오니 이 기간에 하나님의 각별한 은사의 역사를 일으키시옵소서, 통일신도들의 입을 통하여서 전한 그 말씀은 죽은 말씀이 아니었사옵니다. 말씀이 연결되는 곳에서는 죄된 생애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 하늘의 말씀인 것을 아옵니다.

다시 소생하는 역사로서 재생할 수 있는 하늘의 특권적인 역사를 이루는 동시에, 하늘의 천천만 성도들이 상대의 기준이 되시어서 부활의 은사를 남겨 줄 수 있는 승리의 발판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리하여 민족적인 한을 저희들이 박차고, 세계적인 한을 가다듬고, 영원히 아버지 앞에 승리의 영광을 받들어 책임지고 승리로써 길이길이 아버지 품에 남겨 드릴 수 있는 하늘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충신 열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이곳을 향하여 염려하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염려하는 자녀들이 있사오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끝날을 위하여 바라보고 다시 돌아올 자녀들을 고대하면서 준비하고 있는 자녀들이 있사옵니까? 그 자리에 아버지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옵소서.

남아진 싸움터 위에서 부디 낙오자가 되지 말고, 패자가 되지 말고, 승리의 영광을 대신할 수 있는 승리의 깃발 앞에 쌍수를 들어 아버지를 대신하여 할렐루야 만세를 부르고 남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참부모의 소원이요, 천지, 온 피조만물, 창조주 이름 전체의 소원인 것을 알았사오니, 저희들이 이 소원을 품고 살고 싸워 승리하고 갈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영광의 은사와 승리의 방패가 저희 일신에서 떠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그동안 수련생들을 지도한 여러분과 불비된 여건하에서도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낸 수련생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수련을 받는 가운데 내적으로 비장한 각오를 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아버지를 닮자’입니다.

수고하시는 아버지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 고통을 당하는 사람, 낙망을 하는 사람, 심지어는 목숨을 끊는 사람 등 별의별 불쌍하고 처참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위하여 사는 사람에 비하면 그들의 어려움은 하잘것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슬프신 분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는 종도 있었고 세우실 참부모도 있었고 만물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주관하시며 무한한 행복에 잠기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셨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고, 슬픔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세계도 다 슬프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전체의 비참상을 일시에 체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과 자녀와 이상으로 품으셨던 가정과 천국을 잃어버리신 채 지금까지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들을 잃은 슬픔도 크지만 그런 것들을 잃고서 십자가 앞에까지 서게 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한 개체 속에는 종적인 슬픔과 온 천주적인 슬픔이 연관지어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천주적인 발판을 지니신 분임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슬픔을 지니고 나오셨습니다. 거기에다가 복귀의 책임까지도 지고 나오셨습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지금까지 우리를 대해 나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슬픔 가운데에서도 인간 복귀의 책임까지 지고 나오셨습니다. 현상세계와 영계, 그리고 세계 만민에 대한 전체적인 책임을 지고 나오셨을 뿐만 아니라, 사탄과의 투쟁도 해 나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책임을 지시는 것만도 어려운데 사탄 대하여 투쟁까지 해 나오신 하나님입니다. 근심하시는 아버지, 난관을 타파하시며 복귀하고자 하시는 투쟁의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종의 시대에서 승리의 기반을 닦아 가지고 자녀시대를 위해 섭리해 나오신 것이 지금까지의 6천년 역사입니다.

종의 슬픔을 제거하고, 자녀의 슬픔을 제거하고, 부모의 슬픔까지 제거하자는 것이 재림이상입니다.

종을 굴복시키고 아들을 세워 부모를 모시게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이것은 개인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복귀 기준을 세워 슬픔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소망의 실체를 중심삼고 세운 뜻이 재림이상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역사를 책임지기 위해서 오십니다. 주님은 종의 핍박을 받고 자녀의 핍박과 가정적인 핍박을 거쳐 거짓 부모의 핍박까지 받아야 합니다. 당초에 종이 배신하였고, 자녀가 배신하였고, 부모가 배신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슬픔을 지니고 승리하여, 그 승리를 자기 일신의 승리로 돌리지 않고 자녀의 승리로 돌리고, 한 중심의 승리로 돌리고, 하늘땅의 승리로 돌리고, 온 피조만물의 승리로 돌려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천주의 모든 슬픔이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승리의 영광을 당신의 것으로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신 것같이, 우리도 자신의 승리의 영광을 내 것으로 하지 않고 하늘의 영광으로, 민족의 영광으로, 가정의 영광으로, 후손의 영광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주권을 가지시고도 슬픔을 책임지고 주인의 입장이 아닌 종의 입장에서 싸워 승리하셨으니 우리도 그런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시는 참부모도 그런 길을 걸으셔야 합니다. 수련을 받고 나가는 여러분의 생활과 활동하는 모든 것도 이 하나의 목적을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을 책임지고 싸워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 고로 여러분은 이것을 인계 받아 과거와 현재를 책임지고, 또한 미래를 책임져 나가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보다 더 큰 책임을 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창조의 책임이 있지만 성도의 책임분담시대에 있는 우리에게는 현재와 미래의 뜻을 완성하여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시대로 넘어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 이상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책임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인간은 지으신 만물들을 주관하고, 또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주관하는 우리 인간들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의 슬픔을 책임지고 싸우는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대하여 참부모의 책임을 해야 하니 여러분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반 위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나가도 되겠지.’ 하면 안 됩니다. 사탄에 대하여 싸워 이기겠다는 투철한 자신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탄이 주관하고 있는 세계에서 싸워 승리하여야 할 입장에 있는 여러분입니다. 나에게는 이런 세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해 나오신 6천년의 인연이 나에게 있는데 과연 나는 이러한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 앞에 세워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근심하며 책임해도 되지 않으면 싸워서라도 정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닮겠다고 하였고 아버지를 배우겠다고 하였으니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근심을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을 대하여, 국가를 대하여, 세계를 대하여 인간의 책임을 다하자고 하는 것이 우리 통일교회입니다. 우리가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계와 육계, 그리고 지금까지 도의 세계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습니다. 과거에는 영계에서 협조할 수 없었습니다. 잘못 협조를 하면 오히려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예수를 통해서 협조했습니다.

지금은 제1이스라엘과 제2이스라엘이 협조하고 있으므로 뜻을 위해 근심하며 책임지고 싸우면 됩니다. 또한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을 위해서 근심하며 책임지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을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내게는 개인시대가 지나가고, 가정을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가정시대가 내게서 지나가고, 사회를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사회시대가 내게서 지나가고, 국가를 위해 싸워서 승리하면 국가시대가 내게서 지나갑니다.

과거에는 평면적인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자리가 없어지곤 했습니다. 즉 개인과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의 기반이 없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보다 높은 데로 나아갈 수 있는 혜택권 내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근심으로 끝나지 않는 소망적인 근심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하늘과의 인연을 알았으니 이제 남은 생애를 사는 동안 확실한 인연을 맺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 개인은 하늘의 근심을 품고 가정을 위하여, 또 민족과 인류를 위하여 살아야 할 개인입니다. 하늘 백성은 만물을 사랑하기 위해서 수고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몹시 바쁩니다.

과거에 무가치하게 지낸 것을 분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전쟁터를 맡기시고, 뜻을 맡기시고 명령을 하려 하시니 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과거에는 기껏해야 종의 기준이나 양자의 기준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직접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우리가 근심을 하고 책임을 하면 가정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이 되니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우리가 아버지를 닮고자 할진대, 아버지께서 6천년 동안 어떻게 싸워 나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때에는 아들 때문에 죽는 것 이상 가는 고통까지 당하셨습니다.

오늘날 재림시대에 있는 여러분은 참부모를 위하여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는 3시대의 내용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종의 시대를 거치시고, 40고개를 넘으시고, 골고다를 거쳐 3일노정을 걷는 입장에 계십니다. 여러분은 종의 입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자녀의 입장에서 고통을 당하고 골고다를 넘는 부모의 입장에서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닮는 길

시대적인 운세는 소생시대를 지나고 장성시대를 지나 완성시대에 이르렀습니다. 완성시대가 되면 그 전의 것은 잘라 버립니다. 앞으로의 뜻길은 점점 쉬워집니다.

부모의 시대를 지나 자녀의 시대로 넘어가면, 삼위신(三位神)이 책임지고 하던 일을 여러분들이 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사탄 앞에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넘겨 주실 수 있게 됩니다. 이 때에는 총 단결하여 3시대의 고충과 십자가가 닥쳐와도 지지 말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승리의 영광을 위로는 하늘에 돌리고 아래로는 부모에게 돌려야 합니다. 이겨서 ‘원하시던 가정, 원하시던 민족, 원하시던 세계를 받으시옵소서.’ 하며 돌려드려야 합니다. 개인을 돌려드리는 동시에 가정과 민족을 돌려드리고 세계를 돌려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개인으로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근심하고 책임해야 합니다. 승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받으신 아버지께서 다시 너희 것이라고 돌려주실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고 그 때까지는 근심하고 책임지고 싸워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닮는 길입니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시시한 것에 마음을 써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좀더 중한 것을 생각해야 하고, 역사적인 것을 상속받기 위해 전통을 세우는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인연을 책임지고 복귀섭리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