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간 40일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올 때와 지금 와 가지고 지낼 때와 갈 때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에게 어떠한 변동이 생겼는지 여러분 자신들은 잘 알 겁니다.
어젯날의 나와 지금의 나와 이제 내일의 나, 이것이 지금의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달라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이제부터 여러분이 움직이는 결과 여하에 의해서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가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결심과,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억제할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 그런 신념과 각오가 이제 여러분의 좌우 혹은 전후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전체적으로 열매 맺힌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거예요.
또, 그와 같은 행동은 여러분 자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여러분이 가고 난 이후에 여러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여러분을 바라보고 나가는 후대의 우리 후손들 앞에도 필요한 행동이 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부터, 이 폐회식이 끝나는 그 시간부터 여러분이 가는 걸음걸이는 엄숙한 걸음인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내일의 내 자신을 묵묵히 세우면서 스스로 소망의 터전 앞으로 내밀어 나가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해주기를 부탁합니다.
그간 수련생을 위하여 수고한 여러 지도위원들, 또 여러분들을 위하여 수고한 본부 식구분들 앞에 수련생을 대신해서 저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야 할 여러분들을 대해서 선생님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간다는 그 자체…. 가야 할 내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냐?
그동안 선생님이 산에 많이 다녔어요. 산에 올라갈 적마다 생각나는 것이 올라갈 적에는 어렵지만서도 올라간 후에는, 어렵게 그것을 정복한 자가 아니고는…. 말 가지고는 통하지 않아요. 실제 해보지 않은 사람 외에는 모른다 이거예요. 땀을 많이 흘리고, 고충을 많이 느끼고, 숨이 막히는 이런 어려운 고비가 있어도 그것을 극복하여 바라던 소망의 상상봉에 올라서게 되었을 때 그때의 쾌감이라는 것은…. 온 시야에 나타나는 모든 만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 자신한테는 그것이 자랑의 상징으로 혹은 기쁨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어려운 곳에서, 그러한 환경에서 여러분이 부딪쳐 보고 평하고 판단해야만 여러분 자신이 참된 평을 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가야 할 자체로서 오늘 내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는 판단하고 평할 입장에 있지 않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실천이라는 두 글자를 남겨 놓고는 판단도 할 수 없고 평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 자신들은 역사의 흐름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 되겠고 그동안에 되어진 사실을 다시 한 번 끊고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중심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되겠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러한 입장에 서서…. 이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그저 그럭저럭 어영부영하게 무책임한 입장에 서서 이것을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깨끗이,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로 남게 될 때에 나쁜 평을 받지 않고 과연 존귀한 가치의 것이라는 평을 남겨야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한 가지 사사로운 것이라도 그 근본에 대해서 치밀한 계획과 면밀한 자기 자신의 내적인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연과 더불어 그 계획을 실천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해 놓은 그 사실에 대해서 또 평을 받고 판단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선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오늘 우리들이 이 복귀섭리의 역사를 정리하여 우리로부터 흘러가던 방향을 돌이켜 놓아야 할 핸들을 쥐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잘 돌리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요, 잘못 돌리면 상상할 수 없는 처참한 길로 간다는 걸 생각할 때에 자기가 짊어진 이 핸들 하나가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거기에는 온 정력이 투입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거기에는 자기의 전체의 신념과 자기의 인격을 대신할 수 있는 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미루어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우리들이 이 통일의 이념을 앞에 놓고 험산준령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을 버스나 자동차와 같은 이런 입장으로 우리가 대신해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여러분은 거기에 탄 운전수와 마찬가지예요. 구비구비 어려운 행로를 달리는, 목적을 향하여 가야 할 시간이 결정되어 있고 어차피 그 기간 내에 가야 할 복귀적인 수리의 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그 길을 달려가는, 제한된 기간 내에 그 거리를 돌파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운전수라 하게 될 때에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그 이상 몇 배 이상의 비장한 각오와 비상한 정신력을 거기에 투입하여 핸들을 돌려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 길을 돌파할 수 없는 것이 상례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알진대는 오늘날 이 국가적인 위기, 세계적인 위기, 만신창이가 되어 나온 모든 현실적인 사태를 바라보게 될 때, 이 길을 멋지게 돌리고 멋지게 꺾어 목적지까지 이끌 수 있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지도할 수 있는 핸들맨은 어디에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해보게 될 때 이것이 염려되는 것입니다.
아까 협회장도 말했지만 우리가 아니면 이 민족을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묻고 대답하면 대답할수록 우리의 두 손과 하나의 정신은 기필코 이 나라와 이 민족이 가는데 있어서 핸들을 쥔 운전수와 같은 책임을 짊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가는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예요.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같이 마음놓고 달릴 수 있는 길이 아니예요. 꼬부라진 험산준령, 지금까지 역사 이래에 누구도 가 보지 않았던 길, 그 길을 제한된 시간 내에 가야 할 운전수와 같은 책임을 짊어졌다 하게 될 때에 현재 이 순간에 달리고 있을지라도 이제부터 달려야 할 남아진 길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제까지의 모든 것은 지나갔지만 이제부터 가야 할 험한 노정이 남아 있으니 앞으로 다가올 그 노정 앞에 내 자신을 염려하고 내 자신을 거기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될 때, 내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며 어떻게 수습하여 이 난관을 돌파하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제기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개척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예요. 개척하면서 가야 됩니다. 개척하면서 가야 할 이런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그러면 이제 개척하는 데는…. 선생님이 지방 순회를 많이 해봤습니다. 이번에도 강원도의 험한 고개를 차를 타고 달리면서 느낀 것이 있었어요. 만일 이 길을 닦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넓게 했었으면, 단 한 자라도 더 넓었으면, 거기에 조금 더, 만약 이 길 두 배만 됐으면 하는 그런 것은 험로를 달리는, 혹은 험한 골짝길을 달리는 운전수나 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느끼는 거예요. 언제나 그 길을 달릴 적마다 누구나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우리 통일의 사람들이 가는 길이 이와 같은 길을 닦는 입장에 있으니 길을 닦을 바에는 개인이면 개인이 겨우 갈 수 있고, 혹은 가정이면 가정이 그저 겨우 갈 수 있는 길을 닦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닦을 때 좀더 힘이 들고, 닦을 때 희생이 있고, 닦을 때 거기에 고충이 많을지라도, 한두 사람이 희생을 하는 한이 있을지라도 그 길을 넓게 더 닦는다면 그 위로 가는 사람이 주먹을 쥐고 마음을 졸이며 땀을 흘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길을 그만큼 닦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닦을 바에야 좀더 넓게 해서 누구든지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길을 닦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누구든지 갖는 소원이라고 할진대는, 우리 통일의 신도들이 가야 할 이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길을 닦아 놓을 것인가? 문제는 거기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이 문을 떠나서 삼천리 반도를 향하여, 혹은 세계의 이 지구성을 향하여 삼천만을 대신하여, 삼십억의 인류를 대신하여 가는 개척자입니다. 여러분의 손은 보이지 않는 곡괭이를 들고 있고, 혹은 쇠스랑, 낫을 들고 있고 여러분의 발은 맨발로 황무지를 달려 그야말로 없는 자의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이상의 개척자의 사명을 한다고 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될 때에, 우리가 달려야 할 이 길을 어떻게 닦을 것이냐? 어떻게 닦을 것이냐?
후대의 우리의 후손들에게 '보다 선조들이 조금 더 해서 이렇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이런 평을 받고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우리 일대에서는 험하고 힘든 놀음이었고, 우리 일대에서는 하기 어려운 난관의 문제였지만 이것을…. 만일 1대에 안 되면 2대, 3대를 거쳐서라도 후대 사람들이 '이렇게 험한 태산준령에 어떻게 이런 길을 닦았을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후대에 그 길을 달리고 그 길을 찾아오는 자마다 선조들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환영하면서 돌이켜 찾고 싶어할 수 있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게 해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것이 오늘날 개척자의 사명을 짊어진 우리들이 가져야 할 소신인 것을 절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이 곡괭이를 들고 산을 파고, 혹은 정을 쥐고 망치를 들고 바위에 구멍을 뚫는 일이 있다고 할진대 이건 역사적인 사건이예요. 그러기에 이 길을 걷고 있는 여러분 한 개체는 그 전체의 길을 닦는데 있어서 미미한 존재일지 모르나 그 전체의 목적이 이루어질 그때에 있어서는 그 전체가 목적하는 가치에 해당할 수 있는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책임진 한 분야에 있어서 엄숙하게, 철저하게 그 역사적인 길을 닦아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결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선생님은 쭉 순회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내가 3년 전에 순회 코스 21일노정을 걸으면서 생각한 것은, 이 길이 지금은 비록 산골길이요 한국에 있어서의 험한 길로서 유명한 길이지만 앞으로 이 길에 수많은 민족, 국가들의 최고의 차들이 달리게 될 때에는 거침이 없고, 도리어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멋지고 훌륭한 그런 도로로 한번 만들어 봤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세계에 있는 통일교회의 신도들이 기필코 만들 수 있는 이런 날이 왔으면…. 만약 안 오면 오게 해야 되겠다는 것을 선생님은 재삼 각오하면서 지나 왔어요.
또, 여러분들이 실천해 가지고 그 성과가 나타나게 될 때에 비로소….자기를 중심한 그 성과만을 고대하는 사람은 가는 길이 막혀 버리는 거예요. 여러분이 나가서 일하게 될 때에도 나만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내가 있을 때만 요것이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일은 하나의 목적을 향한 연속적인 일이예요.
지금까지 젊은 청년 남녀들이 나가서 일하는 그런 경향을 보게 될 때에 이 일이 계속적이고 연속적인 일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는 거예요. 1년 가고, 2년 가고, 3년 가고, 4년 가고, 5년 가고, 6년 가고, 7년, 10년, 100년 가게 될 때에…. 첫 번 출발할 때에는 어느누구든지 맹세가 강하였고, 철두철미한 사상과 신념 밑에서 가야 할 자기의 노정을 굳세게 활보하며 나갔던 것입니다. 그 걸음이 일시적인 걸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는 자들이 일시적으로 가는 경향이 흔히 엿보인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개인이 가야 할 때, 가정이 가야 할 때, 민족이 가야 할 때, 세계가 가야 할 때, 더 나아가서는 천주가 가야 할 때, 천주가 다 가면 하나님이 가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 만민을 대신하여 축복해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칭찬할 수 있는 이런 심정을 갖고 찾아올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맞아야 할 것이 효자의 도리를 세워야 할 우리들의 책임이요, 충신 열녀의 도리를 세워야 할 우리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걸음은 개인적이로되 그 개인적 걸음이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가는 걸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연속적인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내가 간 뒤에는 반드시 우리의 가정이 가야 되겠고, 우리의 종족이 가야 되겠고, 우리의 민족이 가야 되겠고, 우리의 민족만이 아니라 세계에 널려 있는 30억 인류가 가야 되겠고, 더 나아가서는 영계와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가 이 길을 바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천지를 창조한 대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이 길을 행차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과연 아들딸이 가기에 편했겠구나! 세계 인류가 가면서 과연 기뻐 하겠구나' 하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닦아 놓고 싶은 것이 오늘날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진 우리들의 소망이요, 우리들의 욕망이요, 우리들이 해야 할 책임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돼요.
여러분은 이제 믿어지지 않는 그런 곳을 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 오라고 하는 그런 자리, 바라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 섰으니 거기에도 하나님이 행차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거기에도 우리 민족이 살고 있고, 우리와 같은 선조의 피살을 받아 가지고 하나의 가치적인 실체의 심정을 지닌 이런 인간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산인들, 산골인들, 들인들 혹은 어떠한 바다, 해상인들 못 가겠느냐? 이런 것을 개의치 아니하고 가야 합니다. 그런 길을 닦아 가야 할 우리의 책임이 남아 있는 연고로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이 일을 책임 못 하게 될 때에는 후대에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평을 받아야 입장에 서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나 혼자, 내 일대에 있어서만 그럭저럭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연속적인 길이 연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다가 만일에 여기에서 못 하게 될 때에는 대신자가 나와서 해야 되는 것이요, 내가 하다가 못 할 때에는 자기의 믿음의 아들딸이라도 세워서 이것을 시켜야 할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여러분들이 이제 새로운 결의를 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고 나가는 여기에 있어서…. 맨 처음에는 다 마찬가지예요. 여기에서 분부하는 말씀을 듣고 하게 되는 내적 인 각오와 신념은 마찬가지지만 문을 나서 게 될 때에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차이가 난다는 거예요. '오직 이런 뜻을 위하여 살아야 할 길이 뚜렷하구나! 가야 할 목적지가 뚜렷하구나! 싸워야 할 내 의무가 당당하구나!' 하는 것을 여실히 느꼈지만 문 앞에 나서고 보면 사정이 천태만상으로 달라진다는 거예요. 보고 느끼는 시각, 보고 느끼는 감정마다 전부다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것에 좌우되어 여러분은 사방의 흐름에 접하기 쉬운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고로 이제 단단히 결심을 하여 가는 데는 몇 해가 걸린다는 거예요. 몇해, 몇해. 내가 지나간 후에는 평을 받고 판단을 받아서는 안되겠다구요. 평을 받더라도 좋은 평을 받아야 되고, 판단을 받더라도 좋은 판단을 받아야 되는 거예요.
'옳소'해서 했지만 이 한 것을 후손들이 다시 뜯어 가지고 수정 해 놓아야 되는 이런 놀음은 내가 하지 않겠다' 이래야 돼요. 만일에 여러분들이 나간 다음에 후손들이 다시 이 길을 뜯어서 수정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된다면 안 갔던 것보다 못하다는 거예요. 손을 안 댔던 것보다 못해요.
지금까지 지방에 책임지고 나갔던 모든 젊은 청년 남녀들이 흔히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걸 바라보게 될 때, 자기 한 개체의 부족한 것이 전체 앞에 미쳐지는 이러한, 평이라고 할까 판단이라고 할까, 판단이 하늘땅 앞에 어떠한 치명상을 입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들이 지금 나가는 길은…. 40일이면 40일, 혹은 3년이면 3년 그 기간만 가는 게 아니예요. 연속적이예요, 연속적. 내가 가는 동시에 이 길을 우리 후손들이 다시 따라와야 돼요. 수많은 인류가 따라와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산악지대라든가 흑은 평야라든가 삼천리 반도를 편답하고 다니면서 생각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가고 오는 그 걸음걸이를 그날에 있어서의 그것으로 그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연속적인 것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행동하는 그 분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땀을 흘려도 한 방울 더 흘리고 싶고, 노력을 해도 한 걸음 더 노력하고 싶다 이거예요. 만일에 거기에 힘이 모자라거든 마음으로라도, 마음으로라도 더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싸워 왔다는 것입니다. 연속적인 싸움을 해 나왔다는 거예요. 그것이 부족하거든 이것으로 보충하여 그 앞에 악의 세계의 악인들이 평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어떠한 자리에 가더라도 필요한 것이 하늘의 위신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위신, 통일신도의 위신, 원리를 기반으로 하여 움직여 왔던 우리 성도들의 위신,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교육을 받고 사탄세계와 대결하여 승리의 깃발을 모방하고 나선 우리의 위신, 이 위신은 세상 어떠한 장병들이 갖춘 위신이 아니예요. 현재에 있어서 선진국으로서 자랑하고 있는 미국의 어떠한 군대의 위신이 문제가 아니예요. 절대적인 위신, 이 위신을 위하여….
이 위신 가운데에는 역사적인 반응이 살아 있고, 시대적인 반응이 살아 있고, 미래적인 반응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런 위신을 기반으로 하고서만이 이 세계사적인 새로운 길이 영원을 향하여 직코스로 개척되어 나간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언제나 마음에 잊어 버려서는 안 돼요. 그러면서 이것은 계속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못 가게 될 때에는 반드시 후계자를 여기에 대체시켜 놓고 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정신과 이런 사상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분들 앞에 부탁해 놓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평을 받게 될 때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고, 이제 책임을 짊어지고 나가 싸우는 데 있어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일시적인 활동이 아니라 연속적인 활동을 남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여러분한테 부탁을 해 놓는다 이거예요. 알겠지요? 「예」
이제부터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진짜 말하려고 하는 것인데, 말할 중심은 무엇이냐? '선을 옹호하는 자가 되자', 즉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하겠습니다.
어느누구에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게 될 때 어떤 사람은 '아, 돈을 원한다' 하고 어떤 사람은 뭐 또 '무엇을 원한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오늘날 상대적인 세계를 우리가 대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어떠한 좋은 조건을 갖기를 바란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또 어떤 사람을 대해서 '너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무엇을 원하느냐? '할 때 '아, 나는 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큰 실업가가 되기 위해서…' 하는 등 여러가지가 있을 거예요. 그것을 따져 보면 세상에 있어서 위대한 사업가도 있을 것이고, 혹은 위대한 정치가도 있을 것이고, 위 대한 사상가도 있을 것입니다.
대개 역사를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어느 국가에 있어서 어느 누가 부자라는, 아무개 아무개가 세상에 부자라는 것을 역사가 대서특필해서 기록한 것은 없다 이거예요. 안 그래요? 어느 나라의 어느 누가 제일 큰 부자라고…. 그걸 보게 될 때 그것이 그렇게 귀하지 않은 모양이지요. 또 조금 더 나아가서는 어떤 정치가면 정치가가 위대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떠한 일면에 있어서는 말이예요, 역사적인 면에 기록돼요. 또, 나아가서 역사적인 면에 흔히 기록되는 게 있는데 이것은 무엇이냐?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역사적인 전환점을 세운, 이런 새로운 뜻을 품은 사람들도 역시 기록된다는 걸 알아야 돼요. 더 나아가서는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주의 사상을 중심삼아 가지고, 또는 하늘을 위해라, 땅을 위해라, 혹은 사람을 위해라, 세계를 위해라. 하는 그런 크나 큰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역사적인 기사로서 대서특필하여 기록하는 현상을 우리들은 찾아볼 수 있는 거예요.
그걸 볼 때, 돈을 많이 버는 사람, 혹은 일대에 있어서 자기의 명망을 세계에 떨칠 수 있는 하나의 정치가, 그것도 좋겠지요. 한 시기의 부패상을 타파해 버리고 새로운 무엇을 그 민족 앞에 제시해 주는 그런 혁명가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도 역사적인 배후와 더불어 시대 시대를 무대로 삼고 미래의 소망의 터전을 남겨 줄 수 있는 사상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고 묻는다면 두말할것없이 '그거 물을 거 뭐 있어요? 위대한 사상가, 위대한 이념에 잠겨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다 대답할 거예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뭘할 것이냐? 또,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내가 어떻게 될 것이냐 하게 될 때, 내 자신이 거기에서 기뻐해야 돼요. 자기 자신이 기뻐하는 동시에, 나만 기뻐해서 되겠느냐? 아니예요. 전체가 다 기뻐해야 돼요. 한국 사람이 그러한 자리에 선다면 한국 사람 삼천만이 기뻐해야 되고, 한국 사람이 이렇게 되어서 기뻐할 수 있다면 그 기쁨은 삼천만뿐이 아니에요. 세계 인류가 다 기뻐하기를 바라고, 세계 인류뿐만이 아니라 하늘땅이 다 기뻐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런 이념과 이상을 논하는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그때의 욕망일 거예요.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겠지요? 「예」 오늘날 역사의 흐름은 그런 역사적인 사조를 거쳐서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최후의 종말까지 어떤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이 역사가 흘러 나왔느냐 할 때, 어느누구나를 막론하고 전부가 위대한 사상가라고…. 위대한 사상가요, 위대한 신념을 가진 자로서 하늘땅을 무대로 삼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친구로 삼고 살 수 있는 그러한 이상주의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 역사의 흐름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만일에 역사가 가야 할 곳이 있다 할진대는 그러한 목적지를 향하여 기필코 가야 될 것이며, 역사를 대변하여 이 시대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위인 혹은 철인들이 있다 할진대는 그러한 세계로 이끌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 시대적인 사명을 짊어진 자들의 의무와 책임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 가 가지고 기뻐하게 될 때의 그 기쁨은 자기 일신의 개인적인 기쁨만도 아니요, 자기 가정의 기쁨만도 아니요, 혹은 자기 민족의 기쁨만도 아니요, 일개 국가의 기쁨, 혹은 세계 인류의 기쁨만도 아닙니다. 이 기쁜 자리에는 천하가 다 들어가고, 천하가 다 들어가는 동시에 창조주가 계신다면 창조주인 주님께서도 다 이 자리에 들어와 기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을 부르짖는 자의 최고의 욕망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는 결론이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 결론에다가 사람을 집어넣어 보자구요. 역사적인 어떤 위인이 있다면 그 어떤 위인도 역시 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면 앞으로 보충해야 할 입장에 서 있다고 봐야 됩니다. 석가 같은 양반도, 공자 같은 양반도, 예수 같은 양반도 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내용을 내적으로 외적으로 어느 누가 풍부히 가졌느냐 하는 여하에 따라 가지고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한 것이냐,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혜아려 볼 때, 그 내용의 가치를 논하는 데 있어서 평면상으로 나타나는 것만을 가지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내적인 내용의 모든 것을 지녀 가지고 평을 해야 완전한 평이 되겠기 때문에 반드시…. 내적인 분야를 붙들고 나올 때 여기에는 내적 사정이 많을 거예요. 내적 사람이 있으면 내적 사정이 있을 거예요. 내적 사정이 있으면 내적 소원이 있을 거예요. 내적 소원이 있으면 내적 심정이 있을 거예요. 사정과 소원과 심정이 내적으로 있을 것입니다. 또, 외적인 모든 것도 역시 부합되어 있다고 보는 거예요.
여기에 있어서 반드시 그런 이념적인 중심 존재가 있다 할진대는 그 이념은 반드시 내적인 사정과 외적인 사정을 모두 통할 수 있는 것이어야 돼요. 내적인 소원과 외적인 소원, 내적인 심정과 외적인 심정이 통하여 그 가운데에 걸려 있는 모든 만유의 존재가 다 기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런 결론적인 권내에서 비로소 승리했다는 그런 사람이 이 천지간에 나온다 할진대는 그때서부터 우주가 수습될 것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때서부터 평화의 시대가 옴으로 말미암아 평화의 개인으로부터 평화의 가정, 평화의 사회, 평화의 인류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목표하는 목적지는 어떤 곳일 것이냐? 그 목적지가 바로 이제 말한 그런 곳입니다. 수많은 역사적인 위인과 혹은 역사적인 철인과 역사적인 도인들이 많이 왔다 갔지만서도 그건 가외의 한 분자밖에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이 산을 바라볼 때 하나의 큰 상상봉이 있으면 그 상상봉을 위하여…. 산맥이 뻗쳐 있으면 뻗쳐 있는 산맥에도 봉우리가 많은 거예요. 이 봉우리만을 중심삼고 볼 때에는, 그 뒤에 딸린 원산맥을 바라볼 수 없게 될 때에는 자기가 대하고 있는 그 산봉우리가 제일인 줄 알아요.
마찬가지로, 산의 최고의 상상봉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산과 수많은 맥을 가져 가지고 이것들을 규합하고 전체를 수습해야 돼요. 그래야 최후에 하나의 구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메시아의 사상도 역시 그렇다는 거예요.
개개인의 모양의 형태와 사상은 다 마찬가지의 사상과 형태를 가지고 있으되 이것이 전체적인 하나의 기준으로서의…. 거기에서 내적 외적인 모든 가치를 지녀 통할 수 있어 가지고…. 그 내적 가치가 이루어져 기뻐하게 될 때는 아무 산이면 산 권내에 있는 전체가 기쁘지 그 산봉 우리, 최고의 상상봉만 기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섭리의 역사도 그러하고 메시아가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섭리하는 목적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어디를 향하여, 어디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냐? 어디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냐? 이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사람 들이다! 이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데는 어떠한 길을 따라가야 될 것이냐? 수많은 산맥 산맥, 골짜기 골짜기를 찾아가야 할 사람도 물론 있을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정상 코스를 밟아서 가야 합니다. 상상봉에 도달 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래서 그 정상 코스를 밟아 가자니 오늘날 수많은 길을 다 제쳐놓고 도(道)라는 이름의 길을 뒤 집어쓰고 그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몰려든 패들이 오늘날 통일신도란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런데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제일 좋고, 제일 안전하고, 제일 무난하고, 제일 가기에 알맞는 길은 많지 않다는 거예요. 제일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볼 때에 여기에서 제일 좋다는 길이라는 것은 둘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예요.
그 길을 아는 사람에게 천 갈래 만 갈래 길이 있더라도 그 길들은 전부 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런 목적지를 향하여 걷고 있는 사람은 과거에 알던 길들은 전부 다 포기해 버려야 돼요. 어느누구든지 그런 사람은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설명도 필요 없이 자인할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오늘날 우리 통일이라는 명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가 보고 와 보고 다 해봐야…. 고생도 덜하고 노력도 덜하고 수고도 덜했지만 가려진 결과에 있어서 좋은 것만이 거기에 반비례하여 나타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대중 앞에 다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길만, 그런 곳만, 그런 방향만 제시하게 될 때는 반드시 시일의 차가 있을망정 통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가까운 길을 가는 것은…. 그러면 왜 그 길을 요구하느냐 이거예요. 꼬불꼬불, 전체의 산맥을 전부 다 돌아가게 된다면 수고가 많이 필요해요. 또, 여기에 고통이 많이 필요해요. 모든 것이 거기에 비례하여, 전반적으로 미쳐지는 영향이 거기에 비례하여 소모되어 나간다는 거예요. 그런 것은 빨리빨리 제거해야 되겠고 그렇지 않은 것, 올바르고 한번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전체에 좋은 영향과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빨리빨리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더 좋을 수 있는 것을 왜 세우려고 하느냐? 더 좋을 수 있는 것을 세워야 되겠다! 이것은 이제 말한 말씀을 통하여서 내려진 결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목적지를 향하여 가는 데 있어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와야 되고, 전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전체가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내가 노력하는 데 있어서는 그와 같은 기간과 그와 같은 수고를 소모시켜서 같은 기간에 있어서 맏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책임지고 가는 사람은 그 시대에 있어서, 그 환경에 있어서 선한 사람이 안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고생을 덜 시키고, 수고를 덜 시키고, 거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게 될 때에는 환경이 그 사람을 추대하여 '우리들의 지도자, 우리들이 따라가야 할 지도자'라고 받들어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늘은 지금까지 이런 길을 세우기 위해서…. 그것은 대번에 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런 길을 복귀섭리하기 위해서 수많은 산맥이 있으면 수많은 산맥을 전부 다 끊어 버리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이런 복귀섭리의 길을, 하나의 평탄한 탄탄대로를 닦기 위해서 수많은 산맥에 있는 길을 끊어 놓고 한 것이 아니라 가다가는 횡적으로 접하고, 좌로 혹은 뒤로 접할 수 있는 길을 전부 다 연결시켜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수고해 왔어요.
그렇지만 오늘날 인간들은 알기를 자기를 중심삼고 가야 할 길, 그 길만이 상상봉으로 통할 수 있는 길로 알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이 횡적인 길을 닦기 위해서 수고해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된다 이거예요.
맨 꼭대기에 가게 되면 동서남북의 전부가 그러한 초점에 집중되는 거예요. 맨 꼭대기의 그 한 자리는 사방으로 왕래할 수 있는 수많은 길을 총합한 자리라는 거예요. 이와 같은 길을 닦기 위해 하나님은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얼마나 갈래갈래를 정리하면서 수고해 나오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리하여 하나의 기준이 생겨날 때까지 하나님이 수고하셨으면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기준이 뭐예요? 비교하기 위한 절대적인 단위예요. 이 단위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방식대로 적용하면 전체의 분야에, 횡적인 세계의 무대에 전개될 수 있는 것이 원칙인 연고로 하나님이 그러한 절대적인 기준의 한 대표자로 세운 분이 누구냐? 인간을 대표해서는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이 메시아 한 분은 내적인 소망이나 외적인 소망이나 혹은 내적인 사정이라 외적인 사정이나 내적인 심정이나 외적인 심정이나 모두 통할 수 있는, 하나님과 땅이 통할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예요. 그가 주장하는 길이 있다고 할 때 그 길은 어떤 길이어야 되느냐? 참길이어야 돼요. 참길이어야 된다구요. 이 시대를 중심삼은….
오늘날 수많은 인류들이 찾아 나가는 이 참길, 참하나님의 선할 수 있는 그런 기준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그러한 수고를 해 놓고서…. 30여 생애를 걸어 놓고 수고한 예수, 즉 메시아의 수고도 컸겠지만 그 메시아로서 설 수 있는 환경을 닦기 위한 수고가 더 컸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메시아가 서기 위해서는 기반을 닦기 위한 수련 기간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예수 자신에게 그러한 기반을 닦기 위한 수련 기간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라도 그 수련 기간을 닦아야 된다는 거예요. 만일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런 기반이 없게 될 때에는 이스라엘을 세워 놓은 하나님이 그런 시련과 수련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과정을 거치고 그다음에는…. 시련만 가지고는 안 돼요. 시련과정을 거친 후에는 반드시 투쟁과정을 거쳐야 돼요. 투쟁만 가지고도 안 돼요. 투쟁과정을 거쳐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목적을 위하여 수습할 수 있는 수습 대책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예수면 예수, 메시아 한 자체를 이 땅 위에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4천 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지고 시련당하게 했다는 거예요. 시련당하게 한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발판을 닦기 위한 거예요. 발판을 닦게 해 가지고 그것이 예수의 발판으로 서게 된 후에는 뭘할 것이냐? 투쟁하는 거예요. 투쟁한 후에는 뭘할 것이냐? 투쟁해 버리고 마느냐? 반드시 그 목적의 가치에 적합할 수 있는 수습 대책을 세워 가지고 수습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여 승리하는 것도 문제지만 차후의 수습이 문제예요. 혁명정부가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혁명 이후의 수습이 문제인 거와 마찬가지로 수습 대책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역사적인 최후의 선의 중심존재, 많은 인간들에게 더 좋을 수 있는 가치적인 내용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중심존재인 메시아를 보내기 위해서 무엇을 하였던고? 시련과 수련도상을 닦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반드시 기반을 닦아야 된다 이거예요. 시련 기반은 탄탄해야 돼요. 땅에 들어가야 돼요. 박아 처넣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시련과정을 거쳐야….
온 세계 인류가 마음으로 고대하던 최고 이념의 선의 동산을 그 기반위에 올려놓고 선의 상상봉을 그 기반 위에 닦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기반이 최고의 상상봉에 대비할 수 있는 이상의 기반이 되어야 됩니다. 그 이하의 기반이 되면 아무리 닦아 놓아도 녹아난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을 택해 가지고, 야곱 이후 이스라엘을 택해 가지고 그 민족을 무수히 시련시켰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 시련시킨 목적은 왜? 그 일대에 있어서는, 1세에 있어서는 고통으로 끝났을는 지 모르지만 그 시련시킨 연속적인 최후의 종점에 가 가지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뭘할 것이냐? 그 기반 위에다 세계적인 승리의 이스라엘 탑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의 그 탑 위에 군림하셔서 만민 앞에 호령할 수 있는, 참된 길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러한 이념을 실천하기 위하여 거기에 알맞고, 거기에 대비할 수 있고, 거기에 남아질 수 있고, 거기에 지탱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니 무한한 시련 도가니에 넣고 이스라엘 민족을 연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늘의 고충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들의 소원은 무엇이냐? 더 큰 선을 세워야 할 책임을, 더 큰 선을 옹호해야 할 책임을 느끼면 느낄수록 여기에 있어서 대비해야 할, 상대적인 내용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이냐 하면 시련입니다. 시련을 모면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선을 세우기 위해서는…. 선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공로 없는 자리에서 세워서는 안 돼요. 그 자리에서는 선을 세웠다 할지라도 그 선은 쓰러져요. 공로의 기반 위에, 시련의 기반 위에, 연단의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은 남아질 수 있으되 시련과 연단을 거치지 않은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이라고 할진대 그 선은 역사의 사조의 뒤넘이침에 따라 가지고 흘러가고 만다는 거예요.
오늘 이스라엘 민족이 그래도 민족적인 이런 전통을 인계받아 가지고 지금까지 이끌고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은 선민사상 때문이예요. 어느 민족보다도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우리 조상은 어떠한 조상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이 사상! 어떠한 외적인 그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을 점령할 수 없다는 이러한 신념 기반 위에 섰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소수의 민족으로 남아 있으되 오늘날 세계적인 모든 문화 세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있어서는 어느 누가 침범할 수 없다는 이런 신념적인 토대가 반드시 있어야만 그 기반을 중심삼아 가지고…. 그 가는 방향이 어긋나지 아니하는 한 선은 반드시 그 기반을 통하여 시대 시대에 수습되어 나간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할진대는 큰 선을 세워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큰 선을 옹호하여 이것을 우리들이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스스로 느낀다 할진대는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첫째 조건으로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에 대비할 수 있는 시련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의 이념이 섭리적인 전체의 이념을 대신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뜻을 대신하여 승리할 수 있을 때는 최고의 승리요 최고의 기쁨이 되겠지만, 그 승리할 때까지는 반드시 역사적인 탕감의 과정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최고면 최고일수록 거기에 대비될 수 있는 시련적인 기반을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의….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취해 나오는 3년 기간, 이 전도 기간을 세워 가지고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나가 싸우는 것은 이 민족의 기반을 닦기 위한, 선한 하나의 뜻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거기에 상대적인 조건으로 대비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조건으로 등장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통일신도를 어떻게 시련시킬 것이냐? 이 시련 기반이 공고히 되어야만 그 시련 기반 위에 공고히 선 그 선을 중심삼고 판단을 내리게 될 때 비로소 공고한 판단이 될 것입니다. 그 시련이 민족적인 시련이 되게 될 때에는 민족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요, 그 시련 이 세계적인 내용을 갖추게 될 때에는 세계를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준비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사랑하는 자녀들을 희생의 자리에 내놓아야 할 것이 뜻으로 남아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단단히 알아야 되겠어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이 확고부동한 이 시련 기반 위에 서서 누가 갖지 못하는 이 신념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그 이념, 아까 말하던 메시아를 보내시던 아버지의 그 이념, 위대한 사상가가 취해서 기뻐할 수 있는 그 이념을, 그 이념은 최고의 선이니 그 선한 이념을 오늘 이 공고한 기반 위에 닦아 가지고 그 기반 위에 서 있는 자신으로서 그렇지 못한 것을 전부 다 수습하여 정리할 수 있는 책임자를 만들려니, 각 방면 혹은 각 분야에 동원시켜 가지고 여러분을 시련시키는 운동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거예요. 절대적이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유대 나라를 두고 볼 때 지금까지 이 나라는 민족은 있으되 국가가 없었어요. 돈은 있으되 그 돈 가지고 자기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못 가졌어요. 문화적인 내용을 갖고 있으되 국가적인 모든 주권을 자랑할 수 있는 문화는 못 되어 있다는 거예요.
최고로부터 최하까지 인간이 바랄 수 있는 모든 소망과 욕망의 줄은 다 꺾어 놓고, 그들을 부딪치게 한 자리는 어떠한 곳이었느냐 하면 이념적인 자리가 아니라 시련적인 자리였다는 거예요. 이거 알아야 돼요. 시련적인 자리!
하나님은 이들을 시련시켜서 꺾어 버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시련시킨 목적은 딴 데 있나니, 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하나의 이상동산을 건설하게 될 때 공고하고 이지러지지 않는 기반을 닦으려니, 그런 주권을 세우려니, 그런 문화와 그런 경제권을 세우려니 지금까지 시련도상에 처박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 민족이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거쳐 하나님이 그와 같이 택한 백성들을 그런 시련도상에서 이끌어 나온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이 닦아 나오던 그런 전체적인 인연을 오늘날 우리들이 상속을 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할진대, 여러분 자신들은 여기에 있어서 그 민족이 당하던 이상의 시련을 당해야 되는 거예요. 민족으로서의 주권이 없는 나라의 백성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가 하는 그러한 심정까지도 오늘날에 상속받는 무리들은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시련과 고충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 울부짖으며 '우리를 위한 주권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문화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경제력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사회를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한 백성과 우리를 위한 국토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호소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뼛골에 사무치게끔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처박아 놓은 거예요.
그러한 섭리를 해 나오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고역 400년 도상에 있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의 민족을 위하고 자기의 주권과 자기의 고국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어떤 어려운 도상에서도 참고 하나의 소망의 주권을 찾고, 하나의 소망의 민족, 소망의 국토를 가져 가지고 세계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어려움을 제껴 놓고 참고, 시련도상을 참아 한 때에 그런 목적의 길이 열리게 될 때에 그것을 향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서 달려가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그것만이 자기의 소원이라며 움직여 갔었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삼천만 민족을 대신해 나가 싸워라 이거예요. 네 자신과 네 가정을 위하여 네 종족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싸워라!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위하여 나가 싸워라!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지금까지 우리의 배후에는 원수들이 많았어요. 우리가 가는 길에는 글자 그대로 처참한 사실이 많았어요. 비참한, 말할 수 없는 고충의 자리에 있어서 우리들은 혀를 깨물어 가면서, 혹은 복받쳐 오르는 울분심을 제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호소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분하더라도 뼈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시련도상에 서게 될 때 그것은 거기에서 응당 받아 넘겨야 할 것으로 알지 말라는 거예요. 그 부딪치는 시련이 강하면 강할수록 거기에서 되살아나서 살이 되어야 할 것은….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을 위한, 최고의 선을 위한 이 지향의 마음만은 자라야 된다는 거예요.
나에게 채찍이 가해 오면 그 채찍은 후대에, 영원한 이념적인 그런 세계가 올 때에 그 세계를 길이 빛낼 수 있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내 생활환경이 쪼들리면 쪼들릴수록, 내 환경이 급박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이념을 중심삼은 내적인 사람으로서 뼈다귀가 굵어져야 되겠다는 거예요. 분함을 참는 것도, 억울함을 참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울분지심을 억제하는 것도 단 하나 무엇이냐? 우리가 그런 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때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예요.
하나님도 이스라엘 민족을 지금까지 도탄 중에 쓸어 넣었는데 왜? 그런 고통 가운데 넘겨 주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때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때를 갖지 못하였으니 때를 마련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때를 마련할 것이냐? 칼을 가지고 때를 마련했다가는 칼로 망하는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은 이 때를 마련하고 이 때를 맞기 위해서 무엇으로? 시련과 고통으로 때를 개척해 나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어요.
즉, 선을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요건이 무엇이냐? 선을 세울 수 있는 요건이 무엇이뇨? 그를 위하여 참소하지 못하고 긍정할 수 있 는 요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적인 요건입니다. 그런데 그 요건은 무엇으로만 세울 수 있느냐? 편안한 자리에 있어서? 고통의 자리에서만이. 대중을 위하여, 전체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전체를 위하여 우는 자리, 전체를 위하여 우는 자리, 전체를 위하여 고통을 받는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때 대중이 공인할 수 있는 것이 천칙(天則)이 되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은 울면서도 이 길을 붙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복귀섭리의 길에 있어서 고통의 길, 십자가의 길을 찾아 나왔다는 거예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요.
이제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 앞에 때가 오면….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뼈 없는 선생님이 아니예요. 산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놀음을 하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있는 거예요. 40여 평생의 울분! 죽지 않았다 이거예요. 6천 년의 울분! 아버지, 우리가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서 낙망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 어려움을 한 때에 있어서 원수를 향하여 악을 차단할 수 있는 재료로 삼아 자연적인 환경으로 남겨질 수 있는 여건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길에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내용으로 세워질 것이 무엇일 것이냐? 평안한 자리와 안락의 자리에 있어서 선을 가리는 것은 반드시 지나갈 수 있으되 대중을 위하여 자기의 피살을 깎아 가면서 선을 위하여 고통받는 그런 자리는 공의로 드러나는 거예요. 그것이 드러날 그때에는 반드시 자동적으로 자기들은 악하였고 당신들은 선하였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직고할 때가 온다는 거예요.
악은 악대로 선은 선대로 갈라서는 한때를 바라서 이런 길을 닦는 기반 위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무엇을 재료로 하였던고? 사랑하는 아들딸을 죽음의 자리에 내몰았고, 눈물의 자리에 내몰았고, 피땀 어린 자리에 내모는 것을 절대적인 재료로 하였다는 것을 이제 길을 떠나야 할 여러분들은 명심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될 때 그 눈물은 확대된다 이거예요. 내 배를 위하여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요, 내 몸을 위하여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면 그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아요. '십 년 후에 다시 이 땅을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그러면서 '내가 안 되거든 내 후손이 백년 후에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해야 되는 거예요.
고통과 시련을 덧없이 흘려 버리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악한 사람한테서 매를 맞는 반면 선한 사람을 눈물로써 옹호해 주고, 선한 사람을 대신하여 내 생명을 각오하고 담벽이 되겠다는 신념이 폭발되면 억울한 자리에 살더라도 그 억울함을 대신하여 선을 세울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이 걸어 나오는 길은 처참한 노정인 것 같지만 최후에 있어서는 완전 정복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을 세우는 절대적인 여건을 알아야 돼요. 고통의 자리에 몰아넣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왜 그렇게 했느냐? 우리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어느 누가 자기를 따르는 사람을 고생시키고 싶고, 어느 누가 자기를 위하여 충성을 하겠다고 맹세하는 자들을 몰아서 고난의 자리에 집어넣고 싶은 사람이 천지간에 어디에 있겠느냐? 사랑하는 자녀들을 어려운 자리에 내놓고 싶은 부모가 없거늘, 그런 사람이 없거늘, 천지를 창조하신 사랑의 중심인 대주재께서 어찌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그런 자리에 내몰았던고? 말없이 전부가, 사탄까지도 공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승리의 기반을, 절대적인 심판의 기준을 세우려니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종으로부터 아들로부터 자기 자신까지 들이 내몰아서 맞고 빼앗아 나오고, 시련당하며 기반을 닦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정신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다고 보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러니까 응당히…. 우리 통일의 이념이 세계적인 이념이요, 천주의 이념이라 할진대는 이 무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결론은 간단해요. 결론은 간단하다는 거예요. 내모는 길의 목적지는 우리 인류가 바라는 최고의 이상적인 곳이예요. 최고의 이상적인 목적지이기 때문에 그곳을 향하여 가는 데에는 올바른 길을 향하여 가게끔 내몰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에 있어서는 반대적인 현상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것은 왜? 전체를 정복하여서 전체를 굴복시키려니 하나님은…. 그래야 후환이 없다는 거예요, 후환이,
만일에 혁명정부가 우리와 같이 민족이 전부 다 '아, 그대들이여 고생을 하지 마시옵소서'라고 눈물을 지을 수 있는 기반을 닦아 가지고 혁명을 일으켰던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네가 이 민족을 사랑한다면 사랑한다는 증거를 대라. 이 땅을 사랑한다면 이 땅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대라'고 사탄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삼천만이 참소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을 위했다면 그 증거를 대라' 하는 거예요. 좋은 자리에서 잘 먹고 흥청거리게 산 것은 증거가 될 수 없어요. 증거라는 것은 원수들을 대하여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이 되어야 돼요. 내가 선을 위하여 시련도상에서 대중을 붙들고 홀로 책임지고 싸워 나가는 그 자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요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을 그러한 자리로 내몰고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 시련도상이라는 것은 연속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가 전부 다 하나의 세계가 될 때까지 인연과 관계가 연결된 연속적인 시련의 역사의 인연을 짊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 통일의 이념이 일본과 미국 등 세계적인 무대를 향하여 뻗어 나가는데, 이 한국의 본부를 위주로 하여 삼천리에 널려 있는 통일의 신도가 얼마나 불쌍하냐 말이예요. 불쌍하다구요.
내가 어저께도 얘기했지만 산골에 있는 그 불쌍한 아주머니들이 우리 식구였다는 것을 알고는 선생님이 통곡을 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생각할 때, 저 식구가 선생님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났어요. 통곡을 했습니다.
세계, 혹은 하늘땅을 대표할 수 있는 통일의 이념이라고 할진대는 이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비참한 자리에 있지만서도 여러분들을 시련시켜야 할 하나님의 고충이 있는 것을 알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외국에 널려 있는 수많은 민족들이 우리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서로가 나가려고 할 거예요. 일본 같은 나라는 한국이 염려하지 않아도 세계 전도를 자기들이 책임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들은 머리가 빨라요. 미국 같은 나라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예요. 거기의 시민권을 갖고 미국의 백성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의 이념을 안 뒤에는 미국서도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전부 다 자기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그런 수많은 민족이 자기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하고 자기 민족을 위하여 고통을 받겠다고 나설 거라구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어느 단계에 나가야 되느냐? 민족을 위한 그 고통을 지내고 세계를 위하여 고통을 당했다는 그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이 나라가 조국이 될 수 있고 이 민족이 중심 민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선생님이 제일 염려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우리들이 움직이는 이상의 고통을 받으면서 굶주림과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있더라도 그것을 돌파하고 나가려고 하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색 민족을 대신하여 시련과 연단과 고통을 받았다는 기준을 만들어 놓아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그 사람들이 와서 머리를 숙이게 된다는 거예요.
언제나 선생님이 여러분을 모아 앉혀 놓고 말하는 것이 개인적인 사상을 초월하여 천주적인 사상을, 일개 국가적인 소망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소망을 위해서 싸운다는 신념을 가지라는 거예요. 밥을 먹으나, 자나깨나, 오나 가나. 그런 말을 항시 하는 것도 역시 그러한 사명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래요. 이 뜻이 크면 클수록 여러분에게 시련을 더 시키려고….
선생님이 지방에 가면 젊은 사람들을 대해서 외국 사람들한테 시집 장가 보내겠다고 가끔 얘기해요.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예요, 좋아서. 지금 미국 사람들이 각국 나라의 여성들과 혹은 남성들과 많이 결혼하는 걸 볼 때, 우리들은 그 이상 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위해서는 그 이상 될 수 있어야 됩니다.
맨 처음에 그 길을 개척하는 데 있어서는 어려운 일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렇지만, 그러한 분야에서의 제물이 될지라도 세계가 아버지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이런 길이 있다 할진대는 시련의 길로 응당히 나설 줄 아는, 나 하나 시련당하여 전체가 살 수 있고 전체가 거기에서 해방받을 수 있다 할진대는 그 길을 자진하여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하나님의 식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식구들은 뜻이 크면 클수록 앞으로 기쁨보다도 시련의 무대를 멋지게 맞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돼요. 기쁨을 다 잊어버려요. 그 시련무대에 있어서 여러분은 낙오자가 되지 말고 탄식하는 자들이 되지 말라는 겁니다. 시련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거기에서 내적으로 키워야 할 것은 이상적인 뼈살이예요. 이 뼈살을 키우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소망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고통 가운데 둬둔 것은 국가 없는 나라의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가, 자기가 머무를 수 있는 국토 없는 백성이 얼마나 불쌍한가 하는 것을 느끼고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이루어 놓아야 되겠다는 이러한 신념과 각오가 마음에 벅차 오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이런 신념과 각오가 벅차서 여러분의 환경을 수습할 수 있는 입장에 서 가지고 그 시련무대를 늠름히 넘을 줄 아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은 시련 가운데서도 자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자란다는 거예요. 자라는 이 무기가, 자라는 이 인격이 악을 심판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거예요. 목적은 그것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시련시킨다는 거예요. 여러분을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뭘할 것이냐? 여러분들이 이래 가지고 죽게 될 때 심정을 가진 사람은 여러분 앞에 통곡하지 않을 수 없어요. 통곡하면 문제는 해결되는 거예요. 이 자리에서는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어요. 통곡하고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어요. 통곡하고 머리 숙이고 그다음에는 직고하지 않을 수 없어요. 죽든 살든 뜻대로 하시옵소서! 직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세계사적인 이런 시련도상을 하나님은 거두어 가지고 그냥 그대로, 그 방식 그대로 심판한다는 거예요.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으니, 끝까지 반대하고 끝까지 불신한 자에게는 그 방식 그대로 심판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맞던 그 방식 그대로 사탄을 쳐도 사탄은 거기에 항의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복잡하고 이 세상이 어지러우면 어지러울수록 하나님의 성도들은 그 분야 분야에 있어서 핍박과 시련을 안고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역사를 수습해 나온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각계 각층, 나쁜 곳이나 좋은 곳이나 어떠한 분야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시련을 겪고 비참한 길을 걸어 나오지 않은 때가 없었다는 걸 알아야 돼요. 그것을 다 거치고 난 후에 그들에게 비로소 그런 환경을 수습할 때 칠 수 있는 재료가 남아진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그렇기 때문에 기반을 닦고 환경을 닦는 곳에는 반드시 시련이 필요하다! 알겠어요? 「예!」 그게 첫째 요건이예요. 알겠어요? 「예!」 알지요? 「예!」 그래서 선생님이 지금까지 '고생해라!' 했습니다. 선생님에게서 고생하지 말라는 말 들어 봤어요? 응? 「못 들어 봤습니다」 고생해라, 고생!
고생해서는 뭘할 것이냐? 고생하는 데는 맹목적으로 고생하지 말라는 거예요. 분하고 원통하던 하나님을 알려면 분하고 원통해 봐야지요. 그래야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나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뼈 없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골충이 되지 말라 이거예요. 뼈가 있어야 돼요.
'내가 욕을 먹는 것은 이 뜻을 위해서다. 이것을 완성하기 전에는 원수를 갚지 못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아버지의 나라와 내 아버지의 주권과 내 아버지의 지성으로서 이 세계가 한품에 품길 때까지…. 만일 이 한을 풀지 못하고 내가 가면 죽은 애혼이 되어서라도 복수하고 말겠다는 신념을 갖고 여러분들이 시련도상에 있어서 내적인 이념을 공고히하여 지내 나가는 용사들이 되기를 부탁해요. 알겠어요? 「예!」
그다음에 둘째는 선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반만 닦아 놓아 가지고는 안 돼요. 기반을 닦아 가지고 뭘할 것이냐? 하나님은 '끝날이 되면 반드시 메시아를 보내서 심판한다'고 했는데 그 심판이 뭐예요? 심판은 살펴서 판단한다는 거예요.
기반을 닦아 놓고 그다음에 뭘할 것이냐 하면 투쟁이예요. 옳지 않은 것은 정죄하는 거예요. 들이치는 거예요. 들이치는 거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고생 가운데 뿌리를 박는 거예요. 여기에 뿌리를 박아 누구도 갖지 못하는 힘과 강인성을 지녀 가지고 자라는 나무가 되게 될 때는 뿌리가 든든하니 태풍이 불어와도, 세상에 제아무리 원수의 방어선이 강하다 할지라도 나를 넘길 수 없습니다. 원수의 포진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나를 꺾어 넘길 수 없어요. 불어 봐라! 정체를 드러 내는 그날부터는 뭘할 것이냐? 투쟁이예요. 싸워야 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민족을 400년 동안 애급에서 고역을 시켜 가지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가게 한 그 노정이 무엇이냐? 싸움의 길! 그렇지요? 「예」 야곱을 수십 년 동안 고생시켜 가지고 에서를 찾아 나가게 하는 길은 무슨 길이냐? 양복강가에서 천사와 더불어 싸움의 길, 에서와 더불어 싸움의 길, 자기 동족과 더불어 싸움의 길…. 그린다는 거예요. 야곱이 자기 아버지를 속여먹고 축복받았으니 그 친척들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저 자식, 저거 저거 저거…… !' 했다구요.
야곱이 축복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기반 닦는 21년 과정을 거쳐 가지고 싸움의 길에 나가야 했던 겁니다. 나서는 그날부터 내적인 싸움 외적인 싸움에 있어서 부모도 역시, 형도 역시, 자기의 친척도 역시 전부가 '저거 저, 배신자!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없는 자'라고 평 받았겠어요, 안 받았겠어요? 싸움의 길! 싸움의 길에 부딪쳤지만 거기에 있어서 시련과 연단을 받은 그 신념의 길이 있었던 연고로 야곱은 물러 나가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10년 동안 닦아 놓은 이 신념을 누가 뺏을 수 없어! 이 이상 뺏을 수 없어! 여기에 눈물과 피땀으로써 키워진 내 자신의 이 굵어진 뼈살을 환경적으로 밀어치는 그런 시시한 조건을 가지고는 나를 점령할 수 없어!' 했다구요.
선생님도 이런 걸 지금까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무정한 것 같지만 고마운 하나님이라고 생각돼요. 연단이 컸고 시련이 컸기 때문에 큰 싸움터 앞에 있어서 지치지 않고 떨어져 나가지 않고 거기에 대비하여 투쟁할 수 있는 이런 신념이 자랐다는 걸 생각할 때, 고맙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을 연단시키고 여러분을 시련받게 하는 것은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 것이냐? 우리의 기반이 공고해지고 우리의 터전이 이 삼천만 민족의 기반을 더욱 포용하게 될 때는 싸우기 위하여…. 싸우는 데는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예요. 세계를 위하여. 지금은 우리의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싸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공격전을 해왔느냐? 지금까지는 수비전이예요.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는 거예요. 얼마나 못났느냐 이거예요. 얼마나 못났느냐 ! 이건 그저 거지까지, 제일 최고라고 하는 녀석들로부터 최하의 녀석까지도 전부 다 하나님을 공격 안 하는 녀석이 없어요. 하나님의 심정 역사를 들춰 보게 된다면 말이예요, 전부가 원수예요. 전부가 하나님한테는 침략자예요. 침공자란 말이예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여러분들도 그러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뭐 어디 있느냐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거 잘 알았지요? 「예」 최고로부터 최하까지의 공격을 받아 왔다는 거예요.
공격을 받아 왔지만 하나님은 나라를 버리지 않았어요. 후퇴하지 않았어요. 3년에 한발짝을 가더라도 전진이예요. 백 날에 한발짝을 가더라도 전진이예요. 알겠어요? 「예」 좀 뜨게 갈 뿐이지 전진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러한 작전을 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해봐라!' 하는 거예요.
이래서 약한 무리들을…. 종교는 약한 무리들을 수습해 나오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 사람들을 수습해서 편 되어 가지고 점점 주위에 무리를 많이 만들어 가지고는 때리는 거예요. 그거 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재림주예요. 때린다고 해서 전부 다 뭐 스탈린 모양으로 모가지를 잘라 죽이는 것이 아니예요. 그때부터는 공세를 취해 보자는 거예요. 공세를 취하는 데는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을 대하여 지금까지 역사상의 수많은 불의의 사람들이 공격했던 것을 일시에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일시에. 일시에 몽땅 항복입니다. 무엇에? 이념에 있어서도 항복이요, 백성에 있어서도 항복이요, 그다음에는 주권에 있어서도 항복이요, 영토에 있어서도 항복입니다. 그럼 다한 거예요. 사람도 그렇잖아요? 돈이 필요하고, 권세가 필요하고, 그다음에는 이상이 필요하지요? 그걸 대표한 것이 주권이예요. 그래 가지고 완전 점령을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작전이예요.
그러면, 여기에 있어서 우리의 지금 때는 어떤 때냐? 요때는 어떤 때냐 하면 애급고역시대가 끝나 가지고 모세의 지도를 받아 홍해를 건너 광야 40년 과정을 지나가는 기간이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때, 이 기간은 역사적인 재현 기간이예요. 이 40년 기간은 어떠한 기간이냐? 여러분들, 광야 40년 기간이 어떠한 기간이냐 하면 모세 이전 시대서부터 모세 당시까지의 하나님의 섭리도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역사적인 비참사가 재현되는 기간이예요. 알겠어요, 40년 기간? 알겠느냐 말이예요? 「예」
그 기간에 있어서 완전히 승리하는 기반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망해요. 그 40년 기간이 역사적인 고통의 재현 기간이기 때문에 그 40년 기간의 역사적인 고통을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살아서 받는 거예요. 살아서 받을 때에 후퇴하면 망한다는 거예요. 그것을 고맙게 받고 그것을 생활화하여 '이것은 우리의 역사적인 유업이니 영원히 변할 수 없고 누가 상속받아 갈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선조로부터 유전된 최후의 기간이요, 최후의 시련 기대니 이 기대를 우리가 고이 받들어 가지고 우리 것으로 삼아 이 광야노정을 넘겨야 되겠다'는 신념을 이스라엘 민족이 가졌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오늘날 통일교회가 가야 할 길은 어떤 길이냐? 이러한 기간의 역사적인 광야노정에 처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기간은 뭐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나가서 편안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예요. 역사적으로 제일 비참했어요. 자기 새끼까지 잡아먹게 된다 말이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배가 고파서. 성경에는 그런 말 없지요? 응? 「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정도까지 가야 된다 말이예요, 사실. 내 새끼, 사랑하는 자식까지 다 잡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자식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찾는 나라와 내가 찾는 주권과 내가 세워야 할 이 백성만은 죽일 수 없다는 거예요. 이런 신념이 남아져야 이 길을 간다는 거예요. 광야 40년 기간이 그런 기간이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이 길이 남아 있는 연고로 오늘 이 한민족이 세계사적 책임을 다시 한 번 재현시켜 우리 시대에 이것을 맞을 수 있다 할진대 우리들은 한 민족의 고통을 전체를 대표하여 받자 이거예요.
지금 한민족은 서로가 잘되려고 싸움하고 야단하지요. 아, 누가 뭐 어떻고, 대통령이 되고, 젊은 녀석들은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 다니면서 야단하지요. 그들이 영광을 바라며 날뛰는 이 시간에도 우리는 비참과 처참한 길을 따라 역사적인 산 시련적인 발판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지향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기에 있어서는 떨어진 옷이 문제가 아니에요. 욕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추운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굶주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예요. 내가 죽지 않고 오늘 살아서 이런 운명에 처하여 광야노정을 거칠 수 있는 이 인연이 너무나 고맙다는 것입니다. '내 몸을 고이 받고 이 민족이 나를 기반으로 하여 넘어갈 수 있는 토대가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내가 못 들어가게 되면 나는 그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흑은 그들의 발이라도 붙들고 들어가겠다는 마음, 기력이 부족하거든 내 등을 타고 가라고 자기의 등을 내놓으면서 주위에서 어서 가라고 서로 권고하고 서로서로가 밀어주는 이런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노정을 거치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인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했느냐? 평을 했어요. 판단의 때를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판단했다는 거예요. 모세는 무엇이며 너희 지도자들은 무엇이냐? 혹은 열두 지파내의 70장로 너희들은 무엇이냐? 전부가 다….
오늘날 이 세계사적인 책임이 우리 한반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놓여져있는 이런 실정 가운데 있어서, 전체적인 이런 고통의 재판을 전개시켜 놓고 이 풀무와 같은 도상에 우리를 몰아넣게 될 때 여러분 자신들이 낙망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풀무와 같은 가운데 남아 질 것은 뭐냐? 정금, 순금,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그것, 그것이 무엇이냐? 우리의 나라, 우리의 주권, 우리의 백성, 우리의 땅, 이것만이…. 죽더라도, 고통을 받더라도, 찢기더라도 그것만은, 자기에게 있는 모든 걸 다 빼앗아간다 할지라도 그것만은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에 여러분이 서 있다 할진대는 여러분들에게 어떠한 시련이 부딪쳐 오더라도 늠름히 걸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기준에 못 선다고 할진대는 여러분들은 도리어 폐품꼴이요, 방해꾼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런 시련도상을 지나 가지고 그것이 시련으로만 끝나면 좋겠는데 여기에다 하나님이 또 뭘 접붙이느냐? 역사적인,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싸움하던 싸움의 재판을 이 도상에서 전개시켜 놓는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아브라함을 참소하던 사탄아 가라, 야곱과 싸우던 천사장은 가라, 모세를 참소하던 모든 것은 가라,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고통스럽게 하던 모든 것은 가라,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고통스럽게 하라, 하나님을 배반한 수많은 민족아 동원되라!' 이렇게 민족적인 섭리를 재촉하니 주권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넘어가지 아니하고 그 주권을 기반으로 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반을 세우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런 시련도상에 있어서 반대하는 한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수많은 무리가 총칼을 들고 찔러 죽인다는 거예요. 그럴 때 '아이고!' 원망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돼요. 그런 무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우리 통일교회로 보게 되면 지금 때가 어떤 때냐? 선생님은 그런 과정을 거쳐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때가 되니 망하는 거에요. 싸우는 자의 심정을 잘 알고 있어요. 선생님이 잘 안다구요. 1초도 안심할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역시 이 기간에 있어서 복귀적인 사명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러한 시대적인 이 기간이 지나간 후에는…. 그런 때가 지나가요. 지금 가만히 봐요. 우리의 움직임과 이 세상의 움직임이 맞아 들어가요, 안 맞아 들어가요? 「맞아 들어갑니다」 그거 우연의 일치가 아니예요.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에서 돌리면 돌아간다는 거예요. 돌리기 위해서는 발판이 있어야 돼요. 그렇잖아요? 뭐든지 놓으려면, 그래 유도탄을 놓으려면 그 기반을 들여 놓아야 되잖아요? 포도 쏘려면 반동력이 있어 야지요, 반작용이? 거 튼튼해야 된다 말이예요. 마찬가지로 크게 하려면 그 기반이 서야 돼요.
이래 가지고 금년 4월달을 지내고 나서는 이제, 금년 하반기서부터는 투쟁시기로 들어가는 거예요. 정계 누구 누구는 믿을 수 없다 이거예요. 공개적으로 공박할지 몰라요. 싸워야 되겠다는 거예요. 그러려니 우리는 거기에서 기반을 닦고 재료를 수습해 가지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싸워야 되겠다는 말이예요.
싸우는 데는 또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자신이 있어야 돼요. 자신 안 가지고 싸워서 되겠어요? 자신, 자신이 있어야 돼요. 응? 「예」 자신이 있으려면 기반이 있어야지요.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해 오신 역사도 그 역사라구요. 하나님이 싸우는 데 있어서는 뭐 껄렁껄렁 해 가지고 싸우지 않아요. 한번 싸움하는 동시에 마지막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싸우려면 자신이 있어야 돼요. 자신이 있으려면 거기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놓아야 돼요.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러면 이 통일용사인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이제 나가서 싸울 자신이 생길 때가 왔어요. 지금까지는 통일교인들이 나가서 싸울 자신이 없었어요. 자신이 없었어요. 자신 없는 싸움을 해 왔어요. 그러니 이중 삼중의 고충이 있었어요.
시대적으로 볼 때 이제는 우리 앞에 여리고성이 들여다보이는 때예요, 여리고성이. 40년 고역을 다 지내 가지고 3일노정 동안 고생하여 여리고성으로 총돌진할 수 있는 시대적인 환경이 다 눈앞에, 목전에 다가왔어요.
이제는 요단강을 건너 가지고 이념의 동산을 향하여, 내 고향, 내 땅을 향하여 복받치는 심정으로 죽더라도 그 땅에 들어가 죽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달리면 될 때라는 것입니다. 광야에 쓰러져 독수리 밥이 되지 않고 그 땅에서 죽고 그 땅에 묻히겠다는 그런 생각 할 때라는 거예요. 여러분들 그거 생각해야 돼요. 이 나라 이 백성이, 이 나라 이 땅이 하나님의 주권이 못 되고 하나님의 땅이 못 되어 가지고 여러분이 죽으면 사탄의 참소 세계, 그 땅에 묻힐 거 아니예요? 그거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러한 기간에 당면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제는 뭘 가져야 될 때가 왔다구요?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가져야 될 때가 왔어요, 자신을 알겠어요? 「예!」 자신이 있어야 돼요. 자신이 있고 그다음에는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의분심이 있어야 돼요. 자신만 있어 가지고는 안 된다 말이예요. 불의를 볼 때는 참을 수 없어야 돼요. 의분심이 있어야 돼요. 옳은 것은 옳은 것으로 세우고 악한 것은 나가서 치고…. 의분심이 있어야 된 다구요, 싸우는 마당에 있어서는. 알겠어요? 「예」 싸우는데 있어서는 자신이 있어야 돼요. 이제 여러분들이 자신을 가질 때가 왔어요. 또, 의분심을 품을 수 있는 때가 왔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역사를 가만히 듣고 볼 때, 여러분들의 피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이놈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이렇게 가증스럽구나. 선을 대표해 나온 이 무리가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하다니, 이 뜻과 이러한 이념을 품고 나온 이들을 대하여 우리 아버지로부터 우리 친척 누구누구 전부 다 반대했다. 이걸 굴복시키고 말 때가, 말하지 않고 자연 굴복시킬 날이 온다. 이제 우리가 출동하면 이 배후의 사탄을 정복하고야 만다. 용서할 수 없다' 하는 의분심에 불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다음에는 용맹이 있어야 돼요. 의분심만 있어 가지고도 안 돼요. 실천해야 돼요. 실천하려면 용맹이 있어야 돼요. 용맹이라는 말이 순순하고 평탄한 그런 행동이예요? 「아닙니다」 비상하고 비장한 행동이예요. 그것은 평시에 작용되는 말이 아니예요. 비상시에 적용되는 말이예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무대에 나가는 것이 아니예요. 누구나 다 할 수 없는 그때에 수십만의 생명을 대신하여 책임지고 내가 나서겠다는 비장하고 비상한 행동이 용맹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용맹스러워야 돼요.
너, 어느 지방을 책임지라고 할 때 '어이구, 난 뭐 어떻게 되어서…' 하면 그거 되겠어요? '저 어떠한 지역에는 원수의 악당들이 우리를 향하여 계획을 꾸미고 있다. 우리의 역사적인 원수가 저기에 남아 있으니 가면 소탕하라!' 그럴 때 '예!' 해야 됩니다. 이것이 용맹스러운 거예요. 의분심이 격동하는 그 마음이 충천되어 있는 동시에 그 마음이 불 길이 되어 가지고 내 생명이 끊어진다고 하더라도 해치운다는 용맹성이 있어야 돼요.
싸우는 데는 이 세 가지의 요건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첫째는 뭐요? 「자신을 갖는 것」 자신을 가져라. 둘째는 뭐요? 「의분심을 가져야 된다」 또, 셋째는 뭐요? 「용맹스러워야 된다」
여리고성을 향하여 이제 행군의 날이 가까워 여호수아 갈렙을 세워 놓고 하나님은 '강하고 당대하라!'라고 했습니다. 그게 뭐예요? 용맹한 자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첫번 권고였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해서는 뭘할 것이냐? 가나안 칠족을 한 손으로 들이 쳐서 정복할 수 있는 정복자를 만들기 위해서, 이런 용맹스러운 자를 만들기 위해서 미리 경고한 말씀이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들 앞에 말하거니와 이제 싸워야 할 때가 왔으니 자신을 가져라 이겁니다. 자신을 가지라는 거예요. 우리의 이념 앞에는 천하에 적이 없습니다. 어느때든지 굴복하는 거예요. 오늘날 이때에 있어서 굴복시킬 수 있는 이념이 있다 할진대 이 이념을 위하여 먼저 싸우다가 쓰러지는 자는 그 나라와 그 시대 그 세계에 있어서 영웅이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내 일대에 있어서 그것이 성취 못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이념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 틀림없다고 할진대는, 그 이념을 위해 싸우다가 먼저 쓰러지는 자는 그 나라와 그 세계에 있어서의 역사적인 영웅이 된다는 것입니다. 위인이 된다는 거예요. 알아듣겠어요? 「예」
자신을 가지고, 그다음에는 의분심을 품어 가지고, 용맹성을 가져야 돼요. 그래야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어요. 일렬로 행군을 하라구요, 일렬로. 통일적인 행동을 해 나가는 거예요.
이번에 선생님이 강원도도 가 보고 경상도도 가 보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왔다고 해 가지고 각 곳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왔어요. 다 봐도 다 마찬가지예요. 경상도에서도 그렇고 강원도에서도 전부 다…. 도가 다르고 생활환경이 다 다르지만 우리의 이념을 중심삼고 보면, 선생님을 중심삼고 가만 보면 말이예요, 다 마찬가지거든요.
하나님이 그러할 때 우리의 저기 말단 식구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싸워야 할 때는 모두 싸울 수 있는, 통일적인 싸움을 할 수 있는 이런 여러분이 되어야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선을 판단해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선을 위하여 잘 싸움으로 말미암아 악은 물러가고 선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예」
그다음에 세째로는…. 하나님이 수련을 시켜 나왔고 그다음에는 투쟁을 하게 해서, 그다음에는 뭐예요? 승리한 후에는, 승리해 가지고는 그냥 내버리는 것이 아니예요. 그다음에는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 이게 문제예요. 알겠어요? 「예」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수습을? 선생님이 지금 생각하는 게 그 문제예요. 싸우는 것은 쉽다,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알겠어요? 「예」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원수 악당의 최고 간부로부터 쭈─욱 해 가지고 제일 악한 영의 끄트머리에 서게 되면 다시 선한 영의 끄트머리에서부터 제일 큰 영, 이렇게 엑스(X)자로 되어 있다 이 말이예요. 그렇지요?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이 수습하는 비결이 무엇일까?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수습은 누가 해야 돼요? 사람이 해야지요? 「예」 수습하는 건 사람이 한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수습하는 데 있어서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오늘날까지…. 혁명을 못 해서 이 나라가 안 되는 게 아니에요. 수습을 못 해서 그래요. 수습을 하려면 뭣이 있어야 돼요? 사람이 있어야 돼요.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어야 돼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돼요.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 말이예요. 그래야 이 나라가 세계적인 문화를 먼저 창설하지요. 그러니까 사람이 있어야 돼요. 수습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은 무엇이 있어야 되느냐? 인격이 갖추어져야 돼요. 인격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이 갖추어져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이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인격과 이념과 심정이 끝날에 인간을 수습할 수 있는 3대 비결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판할 때에 있어서 심판에 걸리지 않고 수습되어서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거기에서 인격 심판, 말씀 심판, 심정 심판이라는 명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 기준은 무엇이냐? 어떤 도주의 기준이 아니에요. 인류역사를 움직여 나오던 창조주, 최고의 승리의 한 세계를 계획해 나오던 창조주, 절대자인 그분의 인격이 기준이요, 그분의 이념이 기준이요, 그분의 심정이 기준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분의 인격과 그분의 이념과 그분의 심정이 기준인데 이 기준이 세워졌다 할 수 있는 이런 내적인 보충을 무엇으로 해야 될 것이냐? 이 이념을 위하여 연단을 받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야 돼요. 이 이념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투쟁하였다는, 싸웠다는 내용이 여실히 드러나야만 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이 이념이 '옳다' 하게 될 때는 반드시 세상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게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들이 수습할 수 있는 비법은 딴 거 없어요. 어떠한 조직력을 가지고 해도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말씀과 인격과 심정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래, 여러분들이 지금 연단받는 것도 인격을 양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 싸우는 것도 무엇을 위한 것이냐? 하나님의 심정을 연단하기 위한 거예요.
결국 이러한 싸움을 전부 다 완결시켜 가지고 여러분 개인들이 승리한 자가 될 때 하나님은 만우주를 수습할 수 있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이런 역사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여러분이 실천에 익숙해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의 말로써, 여러분의 행동으로써, 여러분의 생활적인 내용으로써…. 말은 이념을 대신할 수 있고, 또 생활은 인격을 대신할 수 있고, 심정은 내용을 대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것이 제일 귀하다 하는 것을 보여 줘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시련받아 싸워 가지고 승리하게 된다면 전부가 여러분들을 존경을 하고, 전부가 여러분들을 보고 좋아하고, 전부가 그와 같이 되겠다고 할 수 있는 환경이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승리적인 기반을 닦아 나타나면 그런 환경이 필시 될 것이므로 앞으로 그런 조건을 중심삼아 가지고 만민을 수습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할 거예요. 여러분은 지금 이러한 일을 통일교회가 책임지고 나간다는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은 지금 통일교회의 뜻을 대신하여 선 선봉자로서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연단을 받고 투쟁을 하면서 그런 수습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선두에 서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
<말씀 요지> 벌써 40일 수련기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이곳에 올 때의 마음과 지금 돌아갈 때의 마음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이제부터의 움직임에 따라 과거의 여러분과 현재의 여러분이 달라지고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이 수료식이 끝난 다음부터 여러분의 걸음은 엄숙해야 합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엄숙한 걸음을 걷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15회 수련생들을 위하여 수고한 책임자들과 모든 식구들에게 수련생을 대신하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러면 이제 돌아가는 여러분은 어떠한 자체인가? 여러분은 그동안 산에 많이 올라가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에는 힘이 들지만 일단 올라간 후에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맛보게 됩니다. 실제로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가야 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판단해야 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서만 기준이 세워집니다. 과거의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 중 끊을 것은 끊고 수습할 것은 수습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냥 어영부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가치적인 평판을 남기려면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의 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역사의 핸들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돌리면 살고, 잘못 돌리면 죽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통일의 이념을 싣고 달리는 버스나 자동차와 같다면 여러분은 운전수와 같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의 길이요, 또 복귀의 수리상(數理上) 제한된 시간 내에 달려가야 한다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핸들을 잡아야 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국가의 현실을 바라볼 때 바로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의 정신적인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들임을 더욱 절감할 것입니다. 이 길은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같이 호화롭고 안락한 길이 아니라 험하고 위험한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그냥 지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닥칠 험한 길을 어떻게 수습하고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길은 개척된 길이 아니라 개척하며 가야 하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지방 순회를 많이 합니다. 이번에도 강원도의 험로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느낀 것은 길을 조금만, 한 자만 더 넓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운전수와 승객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이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닦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닦을 적에 조금 더 고생하고 희생하더라도 조금 더 넓고 크게 닦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개척하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떠한 길을 닦아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삼천만 민족과 30억 인류를 위한 개척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곡괭이와 쇠스랑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후손들로부터 이것은 조금 더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하는 평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러한 길을 걸었을까?’ 하고 머리를 들고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닦아야 할 개척자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힘은 비록 미미하나 전체의 힘을 합하여 뜻을 이루게 될 때에 여러분 개체는 전체와 맞먹는 가치적인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3년 전 21일간 지방을 순회할 당시에 생각했던 것은 이 길이 지금은 험한 산골길이지만 장차 수많은 사람들이 차로 달리게 될 때 ‘최고의 길이다.’라고 할 수 있는 길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의 손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길은 나 한 개인만의 길이 아닙니다. 계속적이고 연속적인 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길이 일시적인 길인 줄 알고 활보하며 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길은 일시적인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민족과 인류와 영인들과 아버지가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 그리고 영인들과 대주재 되시는 하나님께서 행차할 때에 그 길을 보고서 ‘아들딸이 가기에 편하겠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누가 가려고 하지 않는 개척의 길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후세에 비평받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은 내 한 사람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가야 되는 것이니 내 대신자로서 믿음의 아들딸을 세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마음은 모두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문을 나선 후 각자가 걷는 걸음은 다 다릅니다. 사정이 천태만상입니다. 그 사정에 좌우되어 사방으로 흐트러지기 쉬우니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나가고 난 후에 좋은 평을 받으면 괜찮지만 옳지 못하다고 뜯어고치게 되면 가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지금까지 젊은 남녀의 길이 그랬던 것을 볼 때 나는 전체 앞에 어떤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내가 간 다음에 수많은 인류가 따라와야 하니 선생님은 삼천리를 편답할 때에도 가고 오는 것을 그날에 그치지 않고 연속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땀을 흘려도 남보다 더 흘리고, 손길 하나도 남보다 더 움직이고, 일도 남보다 더 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속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평을 받는 조건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통일성도로서 위신을 세우고 원리인으로서의 위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승리의 깃발을 표방하고 나서서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 위신은 선진국가의 위신이나 강한 군대의 위신 따위가 아닙니다. 역사와 시대를 반영하는 위신과 영원을 향하는 위신입니다. 내가 못 가면 후계자라도 세워 놓고 가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려 하는 제목은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입니 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물어 보면, 어떤 사람은 돈이라고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다른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너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실업가가 되겠다는 사람, 정치가가 되겠다는 사람 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사업가도 있고 정치가도 있고 사상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부자(富者)에 대해서 대서특필하지 않습니다. 정치가에 대해서는 기록합니다. 혁명을 일으켜 역사적인 전환점을 세운 사람이나 어떠한 주의 사상을 세워 하늘땅을 위한 역사적인 일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대서특필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거나 당대에 명성을 떨치는 정치가, 혹은 한 시대에 무엇을 터치고 나서는 혁명가도 좋겠지만 위대한 이념을 주장하는 위대한 사상가가 있다면 그 사상가를 사람들은 더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사상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자기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기뻐하고 세계 인류가 기뻐하고 하늘땅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이상과 욕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사조를 거쳐 흘러 나왔습니다.
하늘땅을 무대로 삼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 위대한 사상을 가진 자들의 사명이요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 기쁨은 개인, 가정, 민족, 인류의 기쁨만이 아니라 천주의 기쁨도 들어가고, 나아가 창조주의 기쁨까지도 포함되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석가나 예수나 공자와 같은 분들도 누가 내적 외적으로 그러한 가치를 더 가졌느냐 하는 데서 그 가치가 좌우됩니다. 평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사정과 소원과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념이 있다 할진대 그 이념에 외적 내적으로 사정과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승리해야 그때부터 사회와 인류의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구세주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맥이 뻗쳐 있으면 거기에는 많은 봉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 있는 봉우리를 보지 못하면 자기가 보는 봉우리가 최고봉인 줄 압니다.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쁘게 되면 그 산봉우리만 기쁜 것이 아니라 산맥 전체가 기쁜 것입니다.
산을 가는 데는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정상입니다. 그 정상을 향하여 가기 위하여 모인 무리가 통일신도들입니다. 제일 알맞은 길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가던 길을 포기하고 전부 이 길로 가게 해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더 좋은 길로 인정되면 어느 누구나 자동적으로 그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꼬불꼬불한 산길은 힘이 드니 빨리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한번 해봐서 좋은 것이면 빨리빨리 세우고, 힘든 것이면 빨리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입니다.
전체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고를 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지도자라고 받들 필요가 없습니다.
목적은 대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산맥을 한꺼번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우선 횡적으로 길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 산 상봉을 가기 위하여 수고하십니다.
어느 지점에 가면 하나님은 사방에 그런 사람을 찾아 세웁니다. 그 기준을 세우면 그 기준을 전체에, 온 세계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세운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하늘땅의 대표자입니다.
이 길은 참길이어야 합니다. 하늘은 메시아 한 분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시련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시련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반드시 투쟁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목적을 이룬 다음엔 수습대책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목적하는 바의 가치를 추구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에는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쟁에 있어서도 수습이 문제이고 혁명에 있어서도 수습이 문제입니다.
전체 역사와 하늘땅의 중심이 되시는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 하늘은 무한한 수고와 시련 과정을 주셨습니다. 튼튼한 기대를 닦기 위해서는 온 세계가 바라던 최고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을 세워 무수한 시련 과정을 거치게 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탑을 세워야 됩니다. 이것이 만민이 가야 할 참된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뜻하는 선은 무엇이뇨?
더 큰 선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은 시련입니다. 공적인 시련과 연단의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이라면, 그 선이 사정상 일시적으로 침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 선의 기대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날까지 간직해 온 것은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선은 그러한 기반을 중심삼고 그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첫째 조건은 신념입니다. 대하는 뜻이 최고이면 그것에 대비하는 시련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세운 3년이 중요한 시련 조건이라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시련이 세계적인 것이라면 세계를 판단할 수 있고, 그 시련이 하늘땅을 대신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을 대신한 것이라면 세계의 복을 다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동원하여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시련을 당하게 할 것입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을 받게 하는 목적은 세계적인 상을 주시려는 데 있습니다. 택한 백성을 시련도상에 놓고 이끌어 온 것과 그들을 이끌어 오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 이 모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애급고역 4백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한때 그런 고생이 있을 것을 알고 삼천 만을 대신하여 힘껏 싸워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고충도 많았고, 분한 마음을 하늘 앞에 호소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만을 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는 가운데 그 생활 환경이 쪼들리고 급박해진다 할지라도 내적으로는 더욱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그러한 때를 갖지 못했기에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도 아버지의 길에 함께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편안한 자리를 피하고 고통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울면서도 전체를 위하여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통스러운 복귀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내 40여 평생의 울분심이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버지의 6천년간 쌓인 울분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 수록 이 어려움이 한때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재료로 나타나게 해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미래적으로 세워질 것은 무엇이뇨? 세상의 모든 찬란한 것은 지나가지만 선을 위해 고생하면, 결국은 자기들이 악하였고 당신들은 선하였다고 직고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때 오늘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과 피와 땀이 이것을 입증하는 절대적인 재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10년 후에 이 땅에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내가 못하면 내 후손을 통해서 백년 후에라도 다시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하는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저 무턱대고 고생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선을 세운다는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하늘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처참한 것 같지만 결국은 완전 정복하십니다. 시련을 주시는 것도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부모도 그러한 부모가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그러시겠습니까? 사탄이 천지창조의 영광의 기준을 파괴하였기에 복수하고 그것을 다시 찾자니 시련이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고생을 시켜야만 하느냐? 이것을 재료로 삼아 사탄으로 하여금 말없이 항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의 이념이 천국의 이념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최고의 이상주의일수록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대의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것은 뜻하시는 바 전체를 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혁명정부도 이렇게 했더라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땅을 사랑했다면, 사랑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할 적에 증거를 댈 수 있어야 됩니다. 증거를 못 대면 안 됩니다. 시련은 역사를 통하여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통일의 이념은 이방에도 번져 일본 미국 등 전세계로 뻗치고 있습니다. 어저께 고생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하늘의 뜻을 위하여 고생하는 우리 통일식구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식구들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러분을 고생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고충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세계 전도를 서로 앞장서서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안 해도 그 나라 사람들이 제 나라 제 민족을 맡아 하려고 자원하고 있습니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복귀를 위해 고통의 길을 자처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를 위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그 사람들이 우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이 나라가 세계의 조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두 사람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더라도 개인이나 국가를 대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세계적인 사명을 띠고 전해야 됩니다. 우리 식구들은 자나 깨나, 먹으나, 길을 가나, 쉬거나, 언제 어디서나 이 일념에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에 둔 처녀 총각들에게 외국 사람과도 결혼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좋아서가 아닙니다. 미국 사람, 일본 사람 그밖의 어떤 외국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체적인 하늘의 뜻을 위해서라면 그 이상의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하나를 세워 전체가 살 수 있다면 누구나 그 길을 취할 줄 알아야 그 사람을 식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련의 무대를 맞아 쓰러지지 말고 내적으로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주권과 국토와 국민이 없는 민족이 얼마나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그 시련 무대를 늠름히 넘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시련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장하게 됩니다. 시련을 주는 것은 악을 심판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지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알진대 통곡하고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이든 살리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방식대로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탄을 쳐도 할 말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당한 대로 심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아들딸은 언제나 시련의 길, 비참한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고생하라! 이것이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첫째 조건입니다. 고생을 하되 자기 목적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하나님을 위해서 고생해야 됩니다. 뼈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풀어 드리겠다.’ 하는 정신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기반을 닦은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끝날에는 심판을 합니다. 심판이라는 글자의 뜻을 따져 보면 살펴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치는 것입니다. 나무도 태풍을 받으면 뿌리를 깊이 박습니다. ‘사탄의 바람아, 불어와라!’ 해야 합니다. 정체가 드러난 다음에는 싸워야 됩니다. 야곱도 얍복강가에서 투쟁하였습니다. 때로는 동족과도 싸웠고 친척 모두에게 배신자로 배척받았지만 신념이 있었기에 야곱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뼈 살에 사무친 신념이 있었기에 수십년간 지치지 않고 싸웠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연단시키고 시련을 주는 것은 싸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족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공격만 받았습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모든 공격을 다 받았지만 하나님은 후퇴하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백년에 한 발짝이라도 전진했습니다. 그리하여 악한 무리를 수습하고 악을 심판해 오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하늘은 기준만 세워지면 때립니다. 공세를 취합니다. 그렇다고 스탈린 모양으로 목을 잘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념, 둘째는 백성, 셋째는 주권, 넷째는 영토로 사탄을 항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과 친구와 권세와 이상이 함께 있기를 바라는데 그 네 가지는 바로 이것을 대표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는 기간과 같습니다. 이 때는 역사적인 모든 비참사가 재현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받았던 최후의 시련을 받는 때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최후의 시련을 고이 받았다면 다시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굶주림이 극도에 달하면 자기의 새끼를 잡아먹게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자기 자식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주권과 영토와 백성만은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고통을 대신 받읍시다. 비참하고 처참한 길을 피하지 맙시다. 역사적인 시련과 고통의 길을 걸읍시다. 이것은 잘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길입니다. 좀 춥고, 떨어진 옷을 입고, 좀 굶주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귀한 때에 태어나서 살아서 이러한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사실입니까? 나를 통하여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면 내 등이라도 타고 가라고 해야 할 때입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그래야 했었습니다.
풀무질하는 가운데에서 남는 것은 순금, 즉 진짜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나님이 바라는 우리의 주권과 우리의 백성과 우리의 영토와 우리의 아들딸입니다. 그것만은 절대적입니다. 그러한 기준에 못 선다면 여러분은 도리어 방해꾼입니다.
오늘 이때는 6천년 역사 속에 있었던 싸움의 실태를 재현시키는 때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때에 괴롭히던 사람도, 모세 때에 역사하던 사람도, 예수 때에 방해하던 사람도, 그밖에 수많은 선지선열을 괴롭히던 사탄도 물러가라!’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싸우는 자의 심정을 잘 압니다. 우리는 1초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시대적인 사명을 알아서 잘 싸워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뜻과 시대적인 사조가 잘 맞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잘 돌려야 됩니다. 유도탄도 발판이 넓어야 됩니다. 멀지 않아 악한 사회와 공개적으로 싸울 날이 올 것입니다. 싸우려면 먼저 자신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대비하는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모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성이 다 들여다보입니다. 세계적인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니 죽더라도 그 땅에 들어가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 사탄세계에 묻힐 게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그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적을 대하여 싸우자면 자신이 있어야 하고, 의분심이 있어야 하고, 용맹이 있어야 합니다.
용맹이란 순탄해서는 안 됩니다. 비장하고 비상해야 됩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 필요한 것입니다. ‘너는 어느 지방을 책임져라.’ 할 때에 ‘아니오.’라고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데 원수가 있으니 가서 소탕하라.’ 하면 ‘예!’ 할 수 있는 용맹심이 있어야 합니다. 싸우는 데는 자신, 의분, 용맹, 이 세 가지 요건이 꼭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용맹하게 싸워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 앞에는 천하에 적이 없습니다. 용감하게 싸우십시오. 일대에 용감하게 싸우다 쓰러진 자는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나라와 그 시대의 영웅이 됩니다. 위인이 됩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여러분은 이제부터 자신과 용맹심과 의분심을 가지고 통일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강원도와 경상도에 가 보았는데 선생님을 중심삼고 모두 하나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요, 말단 식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 투쟁해서 승리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는가? 수습을 합니다. 수습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원수 사탄세계의 각 분야에서 최고와 최하의 선을 긋고, 또 선한 세계의 최고와 최하의 선을 그어 대각선, 즉 엑스(X)자를 그어서 수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합니다. 혁명을 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수습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수습하기 위해서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즉 수습하는 데는 인격과 말씀과 심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준은 창조주, 곧 절대자의 인격과 심정이 기준입니다. 이것이 세워졌다고 할 수 있는 내적인 보증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이 이념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그 앞에 온 세계가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늘은 사람으로 하여금 만우주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말은 이념을 대신하고, 생활은 인격을 대신하고, 내용은 심정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춘 자가 나타나게 되면 모두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통일식구들은 만민을 수습하기 위하여 남이 알지 못하는 자리의 선봉에서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했던 선의 주권, 선의 국토, 선의 백성, 선의 이념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삼천리 강토를 향해 일제히 나아가서 힘차게 싸워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