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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존재가 되라

일시: 1963.03.15 (금) 장소: 한국 전본부교회

제3회 성화학생 수료식과 제7회 성화학생 졸업장 수여식을 하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 앞에 부탁하고 싶은 몇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살고 있다

우연한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제7회와 제3회는 복귀섭리 도상에 있어서 끊을 수 없는 인연입니다. 더우기나 3년 마지막 고비를 향하는 이때에 여러분들이 이와 같은 식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은 일면 복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학교를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나가서 일하다가 지금까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투쟁하다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졸업하는 목적이나 싸우는 목적이나 우리들에게 있어서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좋을 때, 슬플 때 혹은 어려울 때도 우리들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여러분들이 가고 있는 일생의 노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연령의 차이가 있고 사정의 차이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생애에 바라고 있는 목표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가 있어야만 전체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격자, 혹은 민족 앞에 있어서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격자가 되어 있다 할진대 그는 민족을 지배할 자요, 세계를 대신해서 전세계 인류 앞에 단 하나의 인격자가 될 수 있다 하면 그는 전세계를 지배할 자입니다. 더 나아가서 천주를 대신하여 천주가 전부 다 바라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격기준을 갖추었다 하면 그는 천주를 주관할 수 있는 자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가정에서부터 혹은 학교, 여러분이 활동하는 활동무대, 넓혀 나가면 전세계까지, 더 나아가 천주세계까지 연결시켜야 할 목적의 세계에서 우리들은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거쳐 사회, 국가, 세계까지 연결시켜야 할 인연이면 인연, 혹은 각자의 책임이면 책임, 스스로 생의 목적을 대신하여 어떤 관계면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전후 좌우 상하 어떤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으로라도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이상, 땅 위에 있는 모든 인류는 그 책임을 달성하기 위하여 내가 그 무엇 하나에 기여하여 가지고 하나의 완전한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은연중 자기 마음에 고대하며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삼천만 민족을 중심삼고 볼 때,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수많은 가정이 있고, 수많은 사회단체가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있어서 과연 삼천만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으로서의 단 한 사람이 있느냐? 여러분 이번 성화 7회면 7회, 혹은 3회면 3회 졸업생들 가운데 그런 단 한 사람이 있느냐? 졸업생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기준을 중심삼고 그런 가치를 지닌 단 한 사람이 문제 될 것입니다. 개인으로 봐도 그러하고, 가정으로 봐도 역시 그러합니다.

복귀섭리역사에 필요했던 사람은 하나님을 중심한 단 한 사람

복귀섭리역사를 두고 보게 될 때, 하나님에겐 단 한 사람이 어느때나 문제가 돼 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세우기 전에 수많은 사람이 살았고, 수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승리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야곱 자체가 문제 되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의 기준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새운 야곱은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전체를 대신하여 승리한, 사탄세계를 대하여 승리한 만민을 대신한 개인입니다. 만민 가운데서 출중한 단 하나의 인격적인 내용을 갖춘 그런 기준에 서 있는 야곱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축복한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적인 축복권 이후의 사람들은 전부 다 이스라엘의 정신을 받아 가지고 단합하고, 이스라엘의 목적을 자기의 생활과 생애의 목표로 삼아 가지고 달성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투쟁해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야곱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역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하나의 존재를 찾고 있는 하늘이란 것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기준의 완성을 갖추어 가지고 가정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수고의 노정을 거치게 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개인은 찾았지만 단 하나의 가정이 문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야곱을 수십 년 동안 고난의 노정과 역경의 노정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를 대신할 수 있고, 누구나 거기서 다 자기의 죄를 후회할 수 있고, 자기의 현재의 입장을 망각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 내몰지라도…. (녹음이 잠시 끊김)

그 당시 야곱을 중심삼고 보게 될 때, 수많은 인류가 전부 다 야곱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기준까지 떨어뜨려도 야곱 자신에게 그 자리에서 당당코 그런 환경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남아질 수 있는 가지적인 내용이 갖춰지게 될 때 하늘은 이를 세워서 가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축복의 인연을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도 역시 단 하나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정을 중심삼고 단 하나의 야곱 가정이 있었으면 그다음에는 그것을 인연지어 가지고 민족을 중심삼은 단 하나의 가정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찾아 나선 하늘은 야곱 이후4백 년간 수많은 노고의 노정을 거쳐 오면서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 나온 거예요.

그런 단 하나의 존재를 찾아 나서게 될 때, 섭리의 시대는 민족적인 시대에 왔지만서도 옛날 이스라엘적인, 즉 야곱의 개인의 승리의 기반과 가정적인 승리의 기반을 그냥 그대로 이어받아 모세 자신이 승리하였다는 기준에서 민족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 전체 앞에서 그도 역시 개인적인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의 역사적인 노정을 지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모세도 역시 개인적인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 80년 생애 가운데 40년 공생애노정을 거쳐 가지고 민족적인 기반을 닦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생활 이면을 바라보게 될 때, 그의 전생애의 행로를 비판해 보게 될 때, 과연 모세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겁니다. 누구보다도 외로운 환경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정을 통할래야 통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이스라엘 민족을 염려하는데 있어서는 하늘이 염려하는 그 시야 앞에 모세가 민족을 대신하여 염려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 어느누구보다도 최초였기 때문에, 이런 시련도상에 세워 가지고 그 시련도상에서도 남아질 수 있는 그런 인격의 기준이 엿보이는 그때부터 하늘은 이를 민족적인 대표자로 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인 단 하나의 기준, 민족적인 단 하나의 기준을 넓혀 세계적인 단 하나의 기준을 세우고자 한 것이 창조이념이었습니다. 창조이상을 목전에 바라보고 소망의 심정으로, 아담 해와에 대하여 무한한 심정의 마음으로, 그리고 고대하던 그 창조의 이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에 끓어오르는 사랑의 마음, 또 그렇게 온 천주와 더불어 붙안고 사랑하고 싶었던 그런 마음을 지니고, 만우주 피조물 앞에 있어서 단 하나의 가치적인 그러한 내용을 지니게 될 때, 여기서 비로소 아담이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상속 못 받은 연고로 4천 년 수고의 결과를 통하여 메시아를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그 사명을 책임지고 와 가지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세계에 있어서 그리워하던 그 목적의 세계를 향하여,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지만, 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 이상세계로 지으려 하였고 목적하였던 그 이상의 동산을 이루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수많은 민족, 수많은 어떤 지도자보다도 하늘을 대신하여 간곡히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뜻을 세워 실천하였고, 그 모든 내적인 생활면에 있어서 그 시대의 어느 누가 따를 수 없는 단 하나의 내적인 기준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를 세워 세계 인류를 수습하려 한 것이 구원섭리라는 걸 알아야 돼요.

자기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내적 인격을 갖추자

오늘날 우리들은 원리를 배워서 알고 있듯이 6천 년 복귀섭리도상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개인적인 대표자요, 가정적인 대표자요, 민족적인 대표자요, 국가적인, 혹은 세계적인 대표자가 오늘날 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고는 종적인 복귀섭리를 횡적인 기준에서 실체를 세워 탕감복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세워 개체를 대신하여 '너는 누구냐?'할 때, '나는 지상에 살고 있는 학생이면 학생, 젊은이면 젊은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다' 하고 스스로 그런 자신을 갖고 하늘땅 앞에 장담코 나설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그런 기준이 돼 있지 못하였다 할진대는, 6천 년 복귀섭리의 전체적인 승리의 결실이라는 명사는 명사로서 존귀하고 귀한 것이로되 그 명사를 부르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돼 있지 않으면 그 명사와 사람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뜻은 뜻대로 귀한 것이로되, 뜻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 뜻을 품고 뜻을 대신한 실체적인 증거자가 되지 않으면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귀하다고 할지라도 그 목적을 대신하여 실천적인 생활의 기반을 닦아 그것을 실제로 보여 줄 수 있고, 나타낼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할진대 그 뜻과 목적과 여러분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이 자리를 떠나갈 텐데, 여러분은 20 전후의 나이 어린 젊은이들입니다. 오른손을 벌려 잡게 될 때 세상 모든 것을 잡고 싶고, 왼손을 벌려 세상 모든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은 젊은이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내 일신을 세워 세계를 향하여 호령하고, 품고 싶은 그런 기백과 기개는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용맹이요, 혹은 품어야 할 결의로되 그 품을 수 있고 용맹을 지닐 수 있는 내 자신의 환경을 마련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때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이루어지고 때가 되었다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가 그러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내적인 인격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바라고 있는 이런 단 하나의 목적의 세계를 기필코 완결지어야 할 우리의 사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개체로서 이것을 완결지어야 할 단 하나의 가치적인 그 자체가 되지 못하였다면 누가 이것을 대신해 줄 것이냐? 이런 미비한 내 자신이 앞으로 자라 가정을 갖는다 할 때는 그 가정이 얼마나 슬픈 가정이 될 것이냐?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우리가 하늘 앞에 피해의 곡절을 남긴 것만 해도 원통하고 분한 사실입니다. 하늘땅 앞에 자기 스스로 내적인 면에서나, 혹은 외적인 면에 있어서 이렇다 할 그 무엇을 갖지 못한 우리 자신인 것을 잘 압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하늘땅을 바라보게 될 때 부끄러운 거예요. 참이란 명사를 우리는 알고 있으되 그 참이란 명사와 인연을 갖지 못한 자신인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될 때, 산을 바라보나 들을 바라보나 지나가는 바람결에게까지도 부끄러운 겁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흐름이 최후의 판결을 가려야 할 이런 시대를 향하여 촉박해 오는 것을 우리들은 주위에 벌어지는 실상을 봐 가지고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있어서 과연 이 민족이 찾고 있는 단 하나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민족을 대신한 단 하나의 가정은 어떤 가정이며, 단 하나의 형제, 단 하나의 부모, 단 하나의 사회, 혹은 단체, 더 나아가서는 단 하나의 국가, 단 하나의 세계는 어떤 것일 것이냐?

여기에 있어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단 하나의 국가는 못 될망정, 단 하나의 민족, 혹은 단 하나의 어떤 단체, 단 하나의 가정은 못 될망정 제일 근본적인 문제가 뭐냐? 단 하나의 내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자신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단 하나의 존재가 된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만일에 그렇게 된다 할진대는 이는 삼천만이 우러러볼 것입니다. 혹은 이 역사의 흐름의 천적인 인연을 갖추었다 할진대는, 천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볼 때 삼천만을 대신하여, 이 한 사람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필코 그 앞길을 염려해 줄 것은 틀림없습니다. 보기에는 일신이요 갖춘 모습은 미비할지라도, 이 시대에 있어서 복귀섭리의 완결을 지어야 할 이 운세 앞에 민족이 요구하고, 세계가 요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이 요구하고 있는 단 하나의 실체로서 엄숙히 자기 과업을 수행하는 그런 젊은 남녀가 있다 할진대 하늘은 여기에 무한히 동정할 것입니다.

세계인은 여기에 스스로 눈을 들어 보지 못하고 실제 생활을 통하여 접하지 못할망정, 내적 심정의 흐름의 세계에 있어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움직이는 연고로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여러분은 보지 못하지만, 여러분은 느끼지 못하지만 먼 자리에서 추앙하고 경배할 것이라고 우리들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염려하고, 그런 입장에서 살고, 그런 입장에서 싸우는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를 하늘이 보게 될 때, 혹은 인류가 바라보게 될 때, 민족이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이 바라보게 될 때 거기서 비로소 믿음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신앙, 믿는다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을 대신한다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은 그 사람 대신입니다. 그 사람의 실천을 대신 증거할 수 있는 것이 말입니다. 믿음이라는 글자가 재미있잖아요? '사람 인(人)' 변에 '말씀 언(言)'입니다.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이런 하나의 존재, 하늘은 그런 사람을 믿고자 하고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수많은 가정이 있으면 그 가정을 중심삼고도 역시 그래요. 민족을 중심삼고도 역시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성화 3회 수료자로서 수료증을 받는 사람들, 혹은 7회 졸업생 여러분들 가운데 과연 이 무리를 대신하여, 개체 개체를 대신하여 내 스스로 이 인연의 세계를 향하여, 생의 인연을 타고 좌우편이나 전후편이나 혹은 상하 어느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으로나 혹은 상호간에 어떤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남으로 가나 북으로 가나 여러분들은 혼자 모든 것을 다 끊고 가는 것이 아니예요. 가는 곳이 멀고 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서 자기도 모르게 인연의 보따리를 지고 다니는 거예요. 인연의 보따리를 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자체는 한 자체만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자체라는 것은 전체의 인연을 세우기 위하여 대신한 자인 연고로, 좋은 것을 세우기를 바라서 마음이 몸을 통하여 생활적인 증거의 무대를 개척하라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러분 자신 앞에 명령하는 것을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사방으로 다 혜어질 것입니다. 만일 여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게 되면 도가 몇 도예요? 경기도로부터 충청도, 경상도, 세 도를 지나게 됩니다. 이러한 도를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먼 자리에 가면 갈수록, 그런 인연을 가진 사람일수록 하나의 인연된 중심을 향하여 사모하는 마음이 더 간절한 것입니다. 자기 고국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고국을 떠나 외국에 나가 보면 고국이 그리운 것을 알아요.

먼 곳에 간다고 해서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예요. 먼 곳에 가면 갈수록,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런 길을 떠나면 떠날수록 삼천만의 인연을 잊을 수 없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인연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스스로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사는 자신인 것을 부정하지 못할진대 여러분들은 앞으로 그렇게 살다가 가는 거라구요.

만일 여러분들이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가 먼 영원한 세계로 떠 나게 될 때는, 이 나라를 그리워하고, 이 땅을 그리워하고, 이 세계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더더욱이나 이 땅 위에 있어서, 자기 땅에 있어서 부모가 수고하고, 형제가 수고하고, 혹은 자기 민족이 선을 세우기 위하여 피를 흘려 투쟁한 그런 역사가 있으면 있을수록 거기에 대해서 자기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는 거예요.

국내에 있을 때는 모르지만 해외에 나가게 되면 우리의 문화, 우리 나라의 자랑거리, 우리 선조들이 세계 앞에 남겨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까 해 가지고 자료를 수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보통 하는 상식적인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 위에 살다가 저나라에 가게 될 때 무엇을 갖고 갈 것이냐? 무엇을 갖고 갈 것이냐? 문제는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단 하나의 존재로서 하나님이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여러분들이 갖고 갈 것을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서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대표하여 중심적인 존재로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그 개인들의 복을 같이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이요, 단 하나의 가정적인 기준에 서게 될 때 가정적인 복지에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것이요, 민족이라든가 혹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게 될 때 세계적인 복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이미 부여해 준 축복의 무대라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데는 죽음의 고비에서부터

여러분들이 이제 이 끝날에 있어서 이런 인연의 세계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여러분 자신은 절대 개체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혼자가 아니예요. 우리 식구들이 지방에 가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어려운 가운데서 핍박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어찌하여 그를 동정하고 원수를 대하여 그와 더불어 같이 싸울 의분심이 동하느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끊을 수 없는 인연에 얼크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볼 때, 교파 중에 우리 통일교회는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통일교회 교인들이 단 하나의 사람들이 되는 동시에, 통일교회 가정들이 단 하나의 가정들이 되는 동시에, 통일교회 단체가 단 하나의 단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 단체는 개인적인 단체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적인 단 하나의 목적의 주체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천주를 창조한 단 하나의 창조주 앞에 상대적인 실체로서 우리가 인연맺기 위하여 나아가는 도상에 있는 연고로 그런 목적관을 중심삼고 인연을 세우기 위한 단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개개인이 어떤 자리에 섰더라도 여러분 개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슬퍼하게 될 때 그 슬퍼한 것은 여러분 개인이 슬퍼한 것이 아니요, 흑은 여러분의 가정에 슬픈 일이 있다 할진대 가정의 슬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 슬픈 일이 있다 할진대 통일교회 교파 한 단체를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대우주적인 인연의 목적을 중심삼아 가지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데는 좋은 자리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지금까지 복귀 섭리를 해 나오는 데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로서 축복하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세우지 못하고, 단 하나의 가치의 기준으로 세움받았던 것을 깨뜨려 버렸던 사실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때냐? 좋은 때냐? 아닙니다. 어려울 때, 슬플 때, 더 나아가서는 죽음의 고비에 가서 아무리 단 하나의 가치의 기준을 하늘이 부여했다 하더라도 슬픔과 고통과 혹은 십자가의 죽음이 휘몰아치게 될 때는, 배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우리의 역사적인 노정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여러분 자신이 어디 가더라도 여러분들은 그 단 하나의 가치를 전체적인 뜻 가운데 있어서 세워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더우기나 고통이 심하고 슬픔이 덧놓이고 죽음이 내 목전에 다가오게 될 때, 그런 때까지라도 여러분이 지닌 바의 단 하나의 그 위신과 가치를 세울 줄 아를 여러분이 되어야만 하늘은 믿어 준다는 거예요.

책임진 것은 반드시 수습하겠다는 신념을 가져야

어느 정도까지 믿어 주느냐? 슬픈 자리에서도, 죽음의 자리에 있어서도 여러분들이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세워 가지고 남아지는 자가 된다 할진대는 기쁜 것은 물론이고 슬프고 슬플 때까지도 믿어 줄 수 있는 내용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삼천만 민중이면 삼천만 민중을 개인적으로 축복하고, 이런 가치적인 존재로 인정하기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가정적인 승리의 기준을 무조건 인정하는 그런 기준을 세워 민족적인 승리의 기준을 연결시키려 하는 이런 때에 있어서 여러분 자신들이 스스로를 비판하여 보게 될 때, 개인적으로 단 하나의 그런 가치를 갖추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해요. 가정이면 가정적으로 그런 가치를 갖추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해요. 민족적이요, 혹은 세계적인 때는 찾아왔는데 내 자신이 그런 내용을 갖추지 못하였을 때는 여기에 고충과 슬픔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 고충을 받으며 무엇이 그 슬픔을 받을 것이냐? 오늘 우리 통일교회가 이런 세계적인 운세 앞에 책임을 짊어겼다 할진대 그 책임을 짊어진 통일교회가 그 고충을 받는 거예요.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그 고충을 막아내지 못하면 삼천만이 그 고충을 받아야 돼요. 삼천만이 그 고충을 막아내지 못하면 30억 인류가 그 고충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런 엄청난 역사적인 인연이 우리에게 짊어지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짊어져야 할 문제는,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책임진 그 자리에 있어서 단 하나의 실체로서 이것을 수습하고, 단 하나의 가치적인 내 모습을 거기에 세워 가지고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정복하고 남을 수 있다는 이런 신념을 가진 실체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책임졌던 그 환경, 여러분들이 나가 움직이던 그 지역이면 지역이 그런 행세를, 혹은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 연고로 어디로 넘어오느냐? 통일교회로 넘어오는 거예요.

기쁠 수 있는 자리에서는 그런 책임을 누구나 다 하겠다는 거예요. 쉬운 거예요. 그러나 슬픈 자리에 있어서, 어려운 자리에 있어서, 생사 지경에 있어서 죽음을 놓고 겨루는 그런 자리를 책임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 이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학생들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런 신념과 그런 뜻을 품고 자기가 처한 그 자리에 있어서…. (녹음이 잠시 끊김) 만일에 거기에 일인자로 남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 할진대 슬픈 일도 여러분이 운용할 수 있는 겁니다. 기쁜 일은 물론이고, 슬픈 일을 지배하고 슬픈 일을 주관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머무는 그 자리에 있어서 일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과 더불어 함께할 때 환경은 나와 더불어 인연 맺는다

하나님은 천지의 대주재인데, 어찌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 앞에 자기의 모든 사연을 고하느냐? 하나님은 역시 천주에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어려움을 당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그렇지만 당신이 가고, 당신이 바라보고, 당신이 생각하고, 당신이 세웠던 뜻과 이념에 대해서는 추호라도 어겨 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러면서 그 목적을 향하여 시대가 흘러가든 환경이 변하든 그 모습은 변치 않고 달려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민이 그와 더불어 고통을 의논하려고 하고, 기쁨이 있으면 그를 중심삼고 기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여러분들은 이 졸업식을 끝내고 여러 가지 사정의 자리로 나누어져 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핍박받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핍박받는 자리에 들어가 핍박받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혹은 굶주린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남아져 가지고 그런 자리에서, 그런 무리들 가운데 있어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됩니다. 혹은 시험을 당하여 억울하고 분하여 그들을 향하여 저주하고 하늘 앞에 호소할 수 있는 그런 자리에 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있어서 그런 사람들─그런 사람들이 세계에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는 거예요─을 대표하여 단 하나의 존재가 되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머물고, 여러분이 움직이고, 여러분이 활동하는 그런 무대에 있어서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 여러분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뜻을 중심삼고 움직이게 될 때는 그 뜻은 여러분의 개인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아까 말한 단 하나예요. 여러분의 뜻이나 전체의 뜻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뜻과 세계의 뜻과, 혹은 가정의 뜻과 개인의 뜻, 전부 다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인연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움직이게 될 때, 그런 환경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게 될 때, 여러분이 슬퍼하면 여러분 홀로 슬퍼하는 것이 아니요, 어려우면 여러분 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과 그 외로움, 그 고통, 그 억울한 자리에 들어가게 될 때 여러분을 중심삼고 환경이 더 많이 여러분과 인연을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인물, 혹은 성인현철, 지난날의 역사에 남아진 그런 위인들을 우리가 살펴보게 될 때도 그들이 좋은 자리에서 역사적인 무엇을 남긴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그렇지만 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그런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의 인연의 세계를 위해서 당했다는 겁니다. 민족이라든가 국가라든가 혹은 이념이라든가 하는 그런 분야에 있어서 배경을 중심삼고 움직였기 때문에 그 민족이 남아 있는 한, 그 이념이 남아 있는 한 그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의 뜻을 세워서 하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목적을 이루어 가지고 하나의 평화의 세계를 이루려 하는 것이 본래 하늘이 인간 앞에 주고자 하였던 축복이었기 때문에 그런 기반을 중심삼고 바라고 나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은 슬퍼도 혼자 슬퍼하는 것이 아니예요. 여러분 개인이 슬퍼하는 것은 통일교회 전체의 슬픔이요, 여러분 개인이 슬퍼하는 것은 여러분 선생의 슬픔이요, 하늘의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인연권 내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이란 것은 삼천만의 슬픔이요, 30억 인류의 슬픔이요, 천주의 슬픔이라는 이런 신념을 중심삼아 어디에 가든지 여러분 자신들이 단 하나의 존재로 남아져 가지고 그 환경이 믿어 줄 수 있고, 통일교회가 믿어 줄 수 있고, 삼천만 민중이 믿어 줄 수 있고, 혹은 세계와 인류가 믿어 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알겠나요? 「예」

그렇게 되어야만 하나의 하나님은 하나의 인연의 세계를 우리 앞에 상속해 놓고, 하나의 심정을 중심삼은 하나의 자녀로서 천적인 혈통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의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여러분들이 죽음의 자리에서도, 굶주린 자리에서도, 어떤 어려운 자리에서도 이 신념을 갖고 나간다면 여러분이 나가는 데 있어서 앞으로 뜻 앞에 있어서 과히 벗어나는 이런 자들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생님은 보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서 믿어 주는 자가 되어 축복을 상속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부탁하는 이 내용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알겠나요? 「예」

기 도

어느 지방에 가도 지방이 가진 명사가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도 거기에는 각자 지은 바의 이름이 있습니다. 머물러 있는 인간의 가치를 둘러싸고 존재하고 있는 모든 존재물들은 그 본성에 가까울 수 있는 미의 내용을 갖추고 있는 것을 역력히 엿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나타내는 그 모든 환경은 오로지 하나의 아버지의 귀하신 모습, 아버지와 인연맺어 가지고 영원한 가치적인 그 내용을 은연중, 혹은 은밀히 숨은 가운데 드러내는 사실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수많은 인류 가운데는 과연 그러한 존재 가치를 지녀 가지고 하루하루의 생활과 생애의 가치의 미를 본연의 아버지 앞에 드러내고 있는가 생각하게 될 때, 인간 세상에는 너무나 죄악이 많고, 인류들이 지내 온 역사적인 흐름에는 너무나 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 보기에 부끄러운 인간이요, 만상 세계 앞에 스스로를 세울 수 없는 것을 느껴야 할 저희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무가치한 것들을 이끌고 유구한 6천 년의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하루와 같이 참으신 아버지의 심정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하루와 같이 그리워하시던 아버지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하루와 같이 저희들에게 복빌어 주고 싶어서 저희 뒤를 따라오신 것을 몰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분이 또 어디 있으며, 세상의 친구 이상 혹은 부모 이상으로 그 무엇이 이와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대신하여 저희들이 거지와 같은 자리에 있게 될 때 거지의 신세로 찾아왔사옵고, 혹은 고아의 자리에 있게 될 때 고아의 신세로서 찾아왔사옵고, 방랑과 탄식의 자리에 서게 될 때 그 자리에서 내 옷깃을 붙들고 갈 길을 가라고 권고하던 아버지인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저희의 눈이 있다 할진대 그 아버지를 보고 하염없이 울어도 그칠 수 없는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었사오나, 저희가 손길이 있어 그 옷자락을 붙들게 될 때 뼈가 녹아나도록 쥐어도 마음이 시원하지 못한 것을 느껴야 할 것이었사오나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든 당신의 아들딸이 이 땅 위 에 얼마나 있었으며, 상처를 입은 아버지의 그 성상을 바라보고 내 아버지라고 통곡한 자가 얼마나 있었사옵니까?

슬프고 또 슬픈 일, 분통하고 억울한 일,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님께서 그런 사정에 처하게 된 비운의 곡절이 누구 때문이었습니까? 당신이 지으신 결과의 인연 때문이 아니었사옵고, 인간시조의 불신의 인연 때문에 되어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불신의 원망의 이 한 후손이 된 것을 저희들이 망각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불신의 자식이 되었던 연고로, 아담 해와로서 천지를 주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가 되지 못한 연고로 천상에 화를 입혔사옵고, 지상에 화를 입혔사옵고, 역사노정에 있어서 인류 혈통에 죽음의 피를 남기게 되었다는 이 원통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옵니다. 지난날의 한 많은 역사적인 후회를, 아버지, 풀어 주시옵소서.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는 이 지구성 위에, 수많은 인류들의 탄식의 눈물자국과 서러움이 어려있는 이 지구성 위에 당신의 평화의 눈물자국이 있어야 되겠사옵고, 당신의 해방의 울음소리가 이 땅 위에 퍼져야 되겠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는 평화의 눈물도, 해방의 눈물도 갖지 못하였사옵고 고통과 한숨의 눈물을 떨어뜨리는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 후회 막심한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사망의 도상에서 넘어가야 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 삼천만 민족이 이제 생사의 결판을 지어 30억 인류가 아버지 뜻 앞에 서야 할 이런 시점이 찾아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체를 대신하여 나타날 수 있는 참다운 개체가 없사옵고, 가정을 대신한 참다운 가정이 없사옵고, 사회·민족·국가를 대신한 참다운 사회·민족·국가가 없사온데 하늘이 머물러야 할 곳은 어떤 곳이겠습니까?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가 없어 가지고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오니, 오늘날 저희들은 살과 뼈를 갈아 개인이로되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 개인이로되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개인, 개인이로되 30억 인류와 천지를 대신할 수 있는 개인을 하늘이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여기의 어린 꽃다운 청춘시기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의 입술은 더렵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눈은 아직까지 하늘의 슬픈 빛을 좋아하지 않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들의 심정에서 울려 나오는 고동과 그것을 통하여 뻗어 나오는 동맥과 피살은 아직까지 사탄세계와 접하지 않고 있사오니 이들을 아버지 당신의 것으로 받으시옵고, 민족을 위하여 뿌리고, 민족을 위하여 보고, 민족을 위하여 말하고, 민족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30이 지나고, 40이 지나고 보면 인생이 갈 끝날이 감축당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인간이거든, 갈 곳을 염려치 않고 소망을 그릴 수 있게끔 젊은 시절에 크나큰 소망을 담뿍 그 마음에 담아 놓고 아버지와 무한히 속삭이며, 아버지와 무한히 동거하면서 깊고 높고 넘게 살 수 있는 이 젊은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시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합니다.

이제 성화 3회 수료증을 받은 여기의 젊은이들을, 아버지,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통일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산 제물, 3천만을 대표할 수 있는 산 제물, 30억 인류와 천하를 대신할 수 있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성화 7회를 졸업한 이 젊은이도 역시 앞으로 후대의 웃사람의 본이 될 수 있는 산 제물이 될 것을 새로이 맹세하고, 새로이 결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시어 내일부터 다른 나로 출발할 수 있는 자신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통일교회가, 통일교단이 앞으로 아버지 앞에 승패의 채찍을 들고 최후의 방패로서 책임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처해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이 땅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미미하오나 인간적인 사명을 대신하여서 하늘과 더불어 섰고 하늘의 인연과 더불어 섰사오니, 작은 자라도 강하고 담대한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무력한 자라도 용맹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자가 되게끔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 있는 삼천만 민족, 남아 있는 30억 인류, 남아 있는 수많은 영계의 선조들을 누가 책임지겠나이까? 눈물을 뿌리면서 무릎을 꿇고 쌍수 합장하여 마음에서 끓어오르는, 피살이 동할 수 있는 이런 전진의 불길과 더불어 하늘을 우러러보며 깨끗한 입으로 아버지 앞에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무리를 당신은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여기에서 호소하는 이 아들도 그것을 고대했거늘 당신은 얼마나 고대하고 있었습니까?

여기에 엎드린 당신의 아들딸들은 부디 외식된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중한 무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부복하여 드리는 기도 소리가 훗날에 참소받을 수 있는 소리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자랑을 드러내고, 아버지의 존귀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어린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슬픈 자리에 있어도 슬픈 자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슬퍼서 눈물 흘리게 되면 3천만을 통곡하게 할 수 있는 자요, 30억 인류를 통곡하게 할 수 있는 자인 연고로 슬픈 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죽는 자리에 나간다 할지라도, 개체가 죽을지라도 3천만을 뜻을 위하여 죽게 할 수 있는 자들이요, 30억 인류를 뜻을 위하여 죽게 할 수 있는 자들인 연고로 앞으로 아무리 고통의 자리에 가더라도 이들은 불쌍한 자가 아닌 것을 깨달아 가지고, 남아진 책임과 사명무대에 있어서 하늘이 길이길이 찾고 있던 단 하나의 존재로서 믿고 자랑할 수 있고,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이 자라고 있는 이들의 두 어깨에 같이하여 주시옵고, 삼천만과 이 인류 앞에 미쳐질 새로운 세계의 운세는 이들과 더불어 인연맺으시옵소서. 목적하신 아버지의 뜻의 동산 위에 고이고이 품기고 아버지의 자랑의 품에 안겨서 만우주를 대신하여 내세울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끔, 아버지, 지켜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오늘 성화학생회의 제3회 수료증 수여식과 제7회 수료예정자 수료식이 겹친 것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3수와 7수는 둘 다 복귀섭리역사에 있어서 귀중한 수들입니다.

언제나 단 하나의 사람이 문제다

오늘 여러분이 참석한 이 자리가 복되다고 한다면 지극히 복된 자리입니다. 이 가운데는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선에서 싸우다가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내용은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단 하나 뜻을 위한 것이었고, 가는 목표도 단 하나 뜻을 위하는 것이었을 뿐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입니다. 그 ‘나’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민족을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또 천주적인 존재라면 천주의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여러분 한 개인의 움직임을 세계와 천주에까지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전후 좌우 상하를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땅 위의 인간들은 더 좋은 인연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좋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단체가 있다 할지라도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7회 수료생과 3회 졸업생들 중에서도 단 한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는 항상 단 한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야곱 때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단 한 사람 야곱이 문제였습니다. 야곱을 세워서 비로소 이스라엘이라고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가 단 하나의 개인을 찾아 나오는 역사였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개인, 단 하나의 가정, 단 하나의 민족, 단 하나의 세계를 찾기 위해 역사가 엮어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 한 사람을 찾아 세워 가정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을 세워 나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단 하나의 사람으로 찾아 세운 존재가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는 야곱가정의 기반을 그대로 이어받았느냐? 아닙니다. 단 하나의 존재로서 80년을 걸어 나온 후에 비로소 민족적인 존재로서 40년노정을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불쌍했습니다. 지극히 어려운 시련 도상에서도 단 하나의 인격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로서 40년노정을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그리셨던 창조이념은 온 천주와 더불어 아담 해와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심정으로 넘쳐 있었으나 인류 조상의 뜻하지 않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창조의 유업을 상속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숱한 곡절을 겪으며 개인의 기대를 세우고, 가정의 기대를 세우고, 민족의 기대를 세운 후 4천년 만에 비로소 메시아를 보냈던 것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세운 자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단 하나의 존재로서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세워 세계를 구원하는 분이 되셨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대표자와 가정적인 대표자와 민족적인 대표자와 국가적인 대표자와 세계적인 대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때는 종적인 대표자를 횡적으로 세우는 때입니다.

누군가가 ‘너는 누구냐?’고 물을 때 ‘나는 가정적인 단 하나의 존재다.’ 아니면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이 아무리 귀해도 여러분이 그것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면 그 뜻이나 목적은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사람이란

이제 여러분은 각자 돌아가게 되면 젊은이의 기백과 용맹을 가지고 활동하되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또 내적인 인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내 자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누가 나를 인정해 주겠습니까? 이렇다 할 인격을 갖추지 못했을진대 하늘땅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산을 바라보나 들을 바라보나 벌어지는 일로 보나 지금 때는 하늘 뜻이 이루어져 오는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단 하나의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단 하나의 민족과 단 하나의 사회와 단 하나의 가정은 못 된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내 자신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민족이 우러러보고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일하고 싸우게 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모두 성화학생회 출신으로 7회 혹은 3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인연은 끊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이 인연의 보따리를 걸머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사방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경기도 혹은 충청도 혹은 전라도 혹은 경상도로 흩어져 갈 것입니다.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우리들에게 인연의 중심에 대한 그리움은 더 할 것입니다. 사람이란 조국을 떠나 봐야 조국에 대한 애착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 간다고 해서 인연이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 곳으로 가면 갈수록 심정의 인연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선을 세우기 위하여 자기가 바친 것이 있다면 그것과 조금이라도 더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기의 조국을 떠날 때에도 자기와 관계된 내용과 재료를 수집합니다. 이 땅을 떠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갖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은 바로 가지고 갈 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가정의 복을 받고, 민족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민족의 복을 받고, 세계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세계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되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방에서 홀로 싸우는 식구를 대할 때 같이 싸우고 싶은 의분심이 동하는 것은 우리가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단 하나의 개인과 단 하나의 가정과 단 하나의 창조적인 실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슬픔은 가정만의 슬픔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도 하나의 교회로서가 아니라 대우주적인 목적과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해 주려고 했던 단 하나의 존재를 인간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의 고비로 몰아넣었던 역사를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단 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전체에 대하여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슬픔의 자리와 죽음의 자리에서도 살아 남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면 하나님은 믿어 줄 수 있는 자로 인정하여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개인의 자격을 무조건 인정하여 민족적인 승리의 기준 위에 세우려 하시는데 아직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려면

때는 세계적인 운세가 닥쳐왔는데 그 기준이 안 되면 누가 고충을 받느냐? 통일교회가 그 기준을 못 갖추면 삼천만 민족이 그 고충을 받게 됩니다. 사탄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이 그 책임을 못하면 그것이 어디로 넘어가느냐? 통일교회로 넘어오게 됩니다.

기쁜 자리에서는 누구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의 자리와 고통의 자리에서 싸우고 이겨서 단 하나의 존재로 서야 합니다. 어떤 부락에서 일인자가 되면 그 부락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어떠한 사정이라도 가지고 와서 의논하게 되니 자연 그들을 주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주의 대주재이십니다. 어찌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자기의 사연을 전부 토로하느냐? 그것은 그분이 단 하나의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그 목적을 변치 않고 오시기 때문에, 인간들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그분과 의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제 수료식을 끝내고 각자 처소에 가게 되면 핍박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거기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굶주리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도 멋지게 이겨 일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치욕적인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됩니다. 여러분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입니다.

뜻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위하여 받는 모든 시련은 결코 혼자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그 고통과 슬픔을 같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선열들은 개인을 위해서 슬픔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체의 뜻과 목적을 위해서 슬픔을 겪으면 그것은 여러분 개인의 슬픔인 동시에 전체의 슬픔입니다. 즉 선생님의 슬픔이요, 삼천만의 슬픔이요, 인류의 슬픔인 동시에 천주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천만이 믿어 줄 수 있고 세계의 전인류가 믿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으로서의 통일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심정을 중심삼은 단 하나의 사람을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사람, 믿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되어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