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는 초라한 장소이오나 아버님의 심정이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만민의 가슴 가슴에까지 미치려는 아버지의 엄숙한 성업이 여기에 깃들어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이제 이 한 단상으로부터 아버지의 영광이 움직이시사 만민의 해방의 날이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이 민족의 해방의 날이 어서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땅의 탄식이 제거될 수 있는 사명과 책임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맹세의 자녀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옵니다. 이제 저희 몸 아버지 앞에 드리옵고 저희 마음도 아버지 존전에 맡기오니 당신 것으로서 취해 주시옵소서.
저희가 당신의 아들이 되고 당신의 딸이 된다고 하였사온데 아들이면 어느 정도의 아들이며 딸이면 어느 정도의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역사적인 새로운 일이 벌어진 이 순간이기에 역사상에 없는 새로운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느끼옵나이다.
참부모의 성호를 저희들이 부를 수 있는 이 거룩한 한날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였사옵니까? 참이라는 명사를 갖춘 부모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던 타락의 후손 된 저희들은 울고 울고 또 울어도 그 한을 풀 수 없는 인간들이었사옵니다. 참부모를 갖지 못한 인간이었기에 참다운 자녀도 되지 못한 저희들 위에 참다운 자녀의 인연을 갖출 수 있는 한날을 허락하여 주신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아버지, 진정으로 감사하옵나이다.
이제 이 몸 아버지 앞에 다 드리고 이 마음 아버지 앞에 다 바치어 산 제물로 드린다 하더라도 부족함을 금할 길 없는 저희 심정을 아버지는 아시오니, 나는 아버지의 것 아버지는 나의 것, 아버지와 내가 화하여 하나의 일체이상을 이루어 그 중심은 심정의 일체를 완결지어 만물의 탄식의 조건을 해소시키고 남을 수 있는 생명의 원천이 그것으로부터 싹트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을 대하여 심판의 권한이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원리를 통하여 배웠사옵나이다.
이제 저희들이 감각을 갖고 있사옵니다.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땅을 대하여 어머니라 부를 수 있고, 천지를 대신한 참부모라 할 수 있는 이런 은사의 자리에 저희가 머물게 된 것을 생각할 때에 저희의 마음과 몸은, 아버지여, 하늘의 심정에 동(動)하여야 할 것이고, 하늘의 심정에 정(靜)해야 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죄악의 세상에서 물든 이 몸들, 사탄의 타락의 쓴 뿌리가 아직까지 이 몸에서 제거되지 못한 저희 자체로서는 아버지의 심정의 애달픔을 알지 못하였사옵고, 거기에서 내 자신을 세우시어 아버지께서 얼마나 충효의 모습을 고대하고 있는가를 저희들은 몰랐사옵나이다.
아버지여, 참부모를 모실 수 있는 때는 길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체를 갖추어 이 땅 위에 정성을 들일 수 있는 때도 제한되어 있사옵나이다. 이러한 때를 가질 수 있는 저희의 이 한 시기가 얼마나 귀하고, 이와 같은 시대와 세계권 내에 내 자신이 생을 받고 태어난 것이 얼마나 영광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상에 왔다 갔던 수많은 영인들이 탄식의 한 날로서 저희들을 바라보는 이 시간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고, 뜻을 알지 못하여 사망을 향하여 달음질치는 수많은 민족들, 수많은 백성들은 이 날과 이 시간을 알지 못하여 탄식권 내에서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보다 먼저 왔다 간 수많은 인간들이 이날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이날을 얼마나 고대할 것인가를 저희들이 알고, 역사적인 기쁨과 역사적인 감사와 역사적인 책임과 역사적인 사정을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더더욱…. 지금 맹세하면서 아버지라고 부르며, 내가 살아생전 죽기 전에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이 몸 위에 효자라는 명패를 갖고 아버지 앞에 갈 수 있는 저희 자신이 되지 못할까봐 탄식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삼천리 반도에 외로운 이 한 자식을 세우시기에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수고 많이 하셨습니까? 남이 알지 못하는 길을 아버지께서 이끄시기에 얼마나 노심초사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외로울 적 마다 당신은 권고하였사옵고, 슬플 때 다시 하늘이 권고하였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야 할 복귀의 길, 슬프나 외로우나 고통스러우나 가야 할, 필시 가지 않으면 안 될 이 길임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이제 가야 할 이 운명을 저희들이 개척하여야 할 것인데 이 시간까지 하늘이 앞장서서 싸워 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하옵고, 오늘 저희들에게 황공한 부모의 날의 자리를 맞게 해주신 것을 진실로 고맙게 생각하옵니다.
아버지, 과거의 부족한 점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오늘의 저희들의 미비함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내일의 크나큰 사명 앞에 염려하는 마음을, 아버지, 붙드시사 다시 힘을 주시옵고 다시 저희를 일깨워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망 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는 수많은 민족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고, 더우기 삼천리 반도 위에 삼천만 민족을 저희들이 책임져야 되겠사오니, 힘없고 굶주리고 지쳐 있는 이들 위에 아버님의 각별한 은사로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고통을 향하여 달음질치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사옵고, 굶주림의 자리에 있어서도 저희들이 차마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더더욱 알았사오니, 이 뜻과 이 사명을 안 저희들이 후대에 한을 남기게 될까봐 두렵사옵나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가다 가다 쓰러져 아버지라 부르고, 하늘이요 땅이라고 부르고 쓰러질 수 있는 그런 자가 되면 얼마나 복된가 하는 것을 느낄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자기를 생각하는 마음 갖고 이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이러한 입장에서 필연코 이 길로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될 하늘의 사정을 저희들은 더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 앞에 저희들이 불충하였고 그 뜻 앞에 저희들이 있는 정성을 못다 하였사오니, 과거 3년 기간에 지낸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시간 남한 각지 전체를 대신한 중심 자녀들이 모였사오니, 저희들의 책임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아버지 앞에 새로운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바다를 건너 외로운 이역 땅, 만리 이역 땅에서 이 시간에도 이곳을 향하여 눈물을 뿌리면서 이 한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는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사오니, 심정으로 연결시키시옵고 아버지의 사랑으로써 그들을 품으시어서, 이 한 날을 허락하신 뜻권 내에 있어서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으며 영광권 내에 있어서 하늘 앞에 고이 엎드려 경배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로, 아버지, 세워 주시옵고 인정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자리에 많이 참석해야 하나 참석하지 못한 아들딸들이 많사옵니다. 이 모든 곡절의 사정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고 아버님께서도 이것을 바라볼 때에 슬픔으로 바라보는 줄 알았사오니, 어떻게 하든지간에 이 뜻 앞에 있어서의 저희들의 한날을 승리의 날로 세우시어서, 만민이 다 모여 아버지의 승리를 찬양하며 참부모의 이날을 기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저희 앞에 어서 속히 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역사노정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옵고, 오늘을 기점으로 하여 3일 기간까지 저희들이 움직이는 전체에 아버지 뜻 외의 다른 것이 나타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연을 공고히 하시어서, 이해부터 아버지께서 소원하시던 뜻을 이루고 이로부터, 아버지, 승리의 방패를 세우셔서 사탄세계를 심판하여 최후에 정복하고 승리의 패권을 가져 아버지의 축복을 자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만만세의 은사가 아버지의 뜻과 길이길이 저희들의 움직임 전체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시기를 부탁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은 부모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은 생활을 통해서 자기의 생애노정을 거쳐오고 있습니다. 그 날들은 오늘이라는 이 하루를 중심삼아 가지고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어요. 연속되는 날, 즉 시간권 내에서 우리들은 살아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에서 부모의 날이라고 제정한 이 3월 초하룻날이란 것은, 수많은 날들 가운데서 우리 인생이 바라던 제일 귀하다면 제일 귀한 날입니다. 이 이상 귀한 날이 없는 가장 중요한 그런 부모의 날입니다.
이 땅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고, 또 지금 현재 살고 있으되 자기를 낳아 준 부모라고 하는 부모는 모시고 살았지만 부모의 날을 세워 가지고 축하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지금까지 자기들이 부르고 있는 부모라는 것은 오늘날 섭리의 뜻 가운데서 보게 될 때에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었고 땅이 축하할 수 있는 부모가 못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 자녀들도 부모를 대해서 부모의 날을 가질 수 없는 자녀요, 또 부모들도 자녀를 세워서 자녀의 날을 세워 나를 통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는 자녀로 대할 수 없는 이러한 슬픈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보게 될 때에 슬픔이 여기에 엉켜 있고, 자식도 부모를 바라보게 될 때에 부모를 바라보는 그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역시 슬픔이 엮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부모로서, 자식이 자식으로서 대할 수 있는 그 대함에 있어서 슬픔과 혹은 한숨이 지어지는 이런 고통의 상정이 없어야 할 것이 본래 부자의 인연을 중심삼은 인간의 인연인데, 그렇지 못한 인연을 가져온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이 타락의 보응은 부자의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이 형제의 인연으로서 연결되었고, 형제의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친척에 전개되어 이것이 오늘날 세계 인류에까지 벌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슬픔이 있고, 혹은 근심이 인류 앞에 있고, 혹은 고통이 인류 앞에 있고 더 나아가서는 사망이 전세계에 덮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할진대 그것은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이냐 하면 우리가 태어난 그날서부터, 역사적인 출발서부터 그런 동기와 내용을 지녀 가지고 있기에 그 결과의 인연을 갖고 태어난 우리에게 있어서는 필시 슬픈 역사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고, 탄식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런 탄식의 세계, 이런 슬픔의 세계, 이런 고통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각자는 우리 동족끼리의 슬픔을 제거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고, 형제지간에 있어서의 슬픈 인연을 제거하는 것도 필요하겠고, 한 가정에 있어서 부부끼리의 슬픔과 고통이 있다 하면 그것을 제거하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제일 문제는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슬픔이 깃들어 있고, 고통이 깃들 수 있는 이런 죄악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한 부자의 인연권 내에 어려 있는 이 슬픔의 장벽을 어떻게 타파해 버리느냐 하는 이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고통을 겪어야 할 중대한 기준이요, 하늘이 인간세계에 세워 놓아야 할 사명적인 중대한 기준이 되어 있는 동시에, 오늘날 참을 추구해 나아가는 양심적인 마음을 가진 자녀면 자녀일수록 그 부모를 대하는 심정에 있어서 이 담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어느누구나 고대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타난 외부의 담을 허는 것보다도 이제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부모라는 명사를 중심삼고 맺어진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슬픔을 제거하고, 완전히 고통을 초월할 수 있고, 완전히 행복의 기반이라고 만천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한날의 인연을 세우지 않는 한 오늘날의 이 지상의 슬픈 기준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귀섭리의 기준은 어디로 전부 다 집중시켜 나왔느냐? 참다운 부모, 참다운 자녀,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나왔습니다. 고통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슬픔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요, 혹은 싸움도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섭리의 뜻을 세우면서 하늘과 하늘의 뜻을 대하는 수많은 선조들, 섭리의 뜻을 대해 우리의 선조들은 투쟁해 나왔고 싸워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더더욱 이 시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과연 하늘이 공인하고, 땅이 공인하고, 혹은 창조주께서 공인하고, 만민이 공인할 수 있는 참다운 부모, 그 참다운 부모를 대하게 될 때에 그 부모로부터 흘러 나오는 참다운 사랑, 그 참다운 사랑에 품길 수 있는 참다운 자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이것을 갖지 못한 것이 인생의 슬픔이요,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 못 해준것이 부모의 슬픔인 동시에 이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이 자녀의 슬픔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슬픔이 역사적인 인연을 통하면서 혈통적인 역사를 뛰어 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슬픔의 기반이 부자의 인연 가운데 서려 있는 것입니다. 이 깊은 자리에서부터 그런 인연을 맺고 내려왔기에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하늘은 지금까지 모진 투쟁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 해와를 창조할 당시의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요? 참다운 부모가 있으면 참다운 자녀가 있어야 되겠고, 참다운 부모와 참다운 자녀가 있게 될 때 거기에는 참다운 사랑만이 깃들어야 되겠고, 참다운 사랑을 중심삼은 부자의 인연에 있어서는 참다운 인연을 통하여 참다운 선만이 깃들어야 할 것이고, 참다운 사랑과 선이 깃드는 동시에 참다운 환경이요, 참다운 우주요, 참다운 천주로서, 더 나아가서는 참다운 이러한 기준에 설 수 있는 입장을 바라보는 것이 본래의 하나님의 창조 당시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책임을 다해야 하고, 동시에 자녀의 입장에서 책임하여야 할 아담 해와가 책임을 못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창조이상으로 바라던 전체적인 소원이 여기에서 저끄러졌다는 사실을 오늘날의 우리들은 뼈에 사무치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슬픔은 어디서부터? 아담 해와로부터, 우리의 슬픔은 역대 우리 선조를 거쳐 엮어져 왔나니 이렇게 엮어져 온 슬픔을 오늘날 우리 한 자체가 제거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개체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끝날 성도들 앞에 하늘이 추구하는 목적으로 되어 있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디서부터 이것을 제거해야 되겠느냐? 내 자신에서 물론 인연을 세워 놓고 여기에 참다운 부모의 기준을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연을 중심삼아 가지고 갈라졌던 심정이 다시 창조적인 본성의 심정으로 연결되어 '이는 내 참의 부모요, 이는 내 참의 아들이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은 어느 세상 그 무엇이, 제아무리 고통이 크다 할지라도 고통 가지고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슬픔이 크다 하더라도 이 인연을 끊을 수 없고, 제아무리 사망의 고난이 크다 할지라도 이것을 끊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부자의 심정이 재연결될 수 있는 이런 순간이 지상에 나타나야만 이걸 수습할 수 있고 이걸 제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보내는 데 있어서 '나는 진정 너를 사랑하는 부모의 입장에 섰다'라고 할 수 있느냐 하면 서지 못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게 될 때에 '너는 내 아들 중의 아들이요 내 독생자 중의 독생자다' 하였지만 과연 그를 품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는 입장에 세웠느냐? 못 세웠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인연이라는 것은 태초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아 가지고 맺어진 것이 연결되어 세계적 무대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라는 이름은 종적인 역사노정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차이를 갖고 있으되, 그 명사에는 지난날의 역사를 대신한 현실의 자체들이 지구상에 널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그 부모라는 명사는 아담 해와에게 한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자식을 갖고 있는 부모에게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계적인 무대에 이것을 세워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해결해야 할 중심 사명이기 때문에 예수를 세계적인 메시아로 세운 거예요.
이리하여 예수는 먼저 택한, 선민을 대표한 전체의 자녀들의 이름을 대신하여 나타났고, 더 나아가서는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신자·불신자를 막론하고 전세계 인류의 전체의 자식을 대신하고 이 세계를 대신하여 나타났으니, 탄식권 내의 모든 탄식을 제거 시켜놓고, 이 탄식이 예수의 길 앞에 넘어오지 못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은 본연의 세계의 창조이념의 아버지라, 혹은 부모라 하고 자식이라 할 수 있는 인연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느 한 때를 뚝 잘라 가지고 특별히 '나는 네 아버지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내 아들이니 나는 네 아버지다'라고 이렇게 훈계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독생자로서 사랑하셔야 할 하나님이었으나 사랑할 수 없는 독생자의 입장에 세워 놓고 만민을 대신하여 수많은 불신의 자녀들 앞에, 불의의 부모들 앞에 책임을 다하고 거기에 엉클어진 원한의 이 보따리를 제거하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탄식과 슬픔의 보따리를 제거시킨 후에야 비로소…. 인간들 앞에 엉클어진 것을, 원한의 부자의 인연이 엉클어진 것을 예수가 전부 제거해야지, 그 원한의 슬픔이 예수 앞에 탄식의 조건으로 남아져서는 참다운 아들이라 참다운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 찾아오게 될 때에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하고 진정 아버지를 불러야 할 예수였으나 부를 수 없는 입장이었어요. 충성을 다하고, 효성을 다하고, 자기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아버지를 한번 모시고 싶고 아버지를 붙안고 '내 아버지!' 할 수 있고, 또 아버지는 '내 아들아!' 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 예수의 마음이었으나, 타락의 한이 이렇게 부모의 인연과 역사적인 세계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엉클어져 있는 연고로 이것을 제거해야 할 책임을 짊어진 메시아 예수는 단상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스러웠던 예수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는 이 땅 위에 찾아오게 될 때에 승리한 이스라엘의 왕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요, 뭇 백성이 환호하면서 기쁨의 왕자라고 해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에서 나타난 것도 아니예요. 슬픔의 왕자로서 등장을 하였고, 이 이가 가는 길은 고통의 행로로서의 길이요, 이 이가 가는 데는 죽음의 담벼락이 직면하여 부딪힐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 메시아의 사정을 그 때 사람이 누가 알았겠느냐. 이런 사정을 바라보시는, 예수도 슬프거니와 이런 길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겠는 가를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의 날을 기념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대하게 될 때에, 그와 같은 입장에 선 예수가 아버지를 대하여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고, 자신이 이런 길을 가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 고통스러워할 것을 염려하면서 죽더라도 아버지의 염려를 덜어 드리고 싶어 '내가 죽더라도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라고 하면서 안타까워 했던 그 심정 앞에는 무한한 슬픔이 어려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고통과 슬픔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죽음의 고통 이상의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의 우리는 이러한 환경에 있어 가지고, 예수가 하나님을 대하여 심정을 털어놓고, 손을 붙들고 기쁨의 심금을 털어놓으며 '아버지여, 역사적인 한의 길에 있어서 슬펐던 것을 푸시옵소서' 할 수 있는 이런 한날의 기쁨을 세우지 못하고 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그런 부모를 대해서 축하하고, 모시고 싶고, 부모 앞에 효도하고 싶어도 땅 위에서 부모 앞에 효도의 길을 승리적인 기반 위에 닦고 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왔다 갔지만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기념하는 부모의 날은 어떤 날이냐? 이 만민의 부모, 수많은 인류의 부모들이 고통권 내에 있는 이 전체를 수습하고 이걸 전부 다 가로채 가지고, 천적인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민족 민족에 걸린 원수의 그물들을 모두 끊어 버리고, 섭리의 이스라엘 역사 앞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유린한 역사적 모든 것을 타파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개체로서, 수많은 자녀들을 대표할 수 있는 개체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가정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종족으로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아야 되겠고, 민족으로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 천지가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이런 길을 닦아 놓아야 할 그런 심정적인 기반을 연결시켜 놓고, 사정에 있어서는 이런 내용의 사정을 걸고 투쟁하여 사탄세계 앞에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 놓지 않으면 부모의 날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단 말이예요.
이 놀랍고 황공한 부모의 날, 여기에는 피어린 역사적 한이 어려 있고, 여기에는 슬픈 메시아의 고통이 남아져 있고, 여기에는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 장벽을 거쳐 손을 내밀어야만 자식의 손을 붙들 수 있고, 자식은 이 장벽을 타고 넘어야 아버지의 손을 붙들 수 있는 이런 한스러운 역사가 남아 있으니 이 담을 헐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하늘의 투쟁 역사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오늘날 우리를 찾아와서 '야,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고 부를 지라도 여러분은 귀가 먹었어요. 여기 우리 눈앞에 나타나 가지고 여러 가지로 갖은 형용을 다 하여 나를 보라고 하고 우리를 보고 뭐라고 손짓해도 여러분들은 눈이 덮여 있어요. 여러분이 아무리 심정이나 마음이 있다 해도, 그 마음을 아무리 뒤흔들어도 마음이 방향을 잡지 못하였던 내 자신이라는 거예요.
내 감각은 무디어 있어서 스스로 찾아갈 길을 잃어버린 방황자입니다. 방황하는 고아와 같고, 혹은 방랑아와 같은 신세인 이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하늘은 이런 나를 붙들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눈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으며, 내 귀를 열고 내 감정을 열어 주기 위하여 얼마나 수고했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왔는데 '나'를 들어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기에 얼마나 하늘이 수고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들을 줄 몰랐던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줄 몰랐던 것을 볼 수 있고, 느낄 줄 몰랐던 것을 느낄 줄 아는 이런 자리에 서 가지고, 과연 우리가 모실 수 있는 참의 부모라는 그분의 심정을 동경하면서 그 자리에 머리 숙여 눈물지을 수 있는 이런 환경을 보여 주는 것만 해도 여러분에게는 한이 안 될 것입니다. 어느 면에 있어서는 무한히 행복하다는 거예요.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날을 맞이하여 축하할 수 있는 한 무리로서 하늘 앞에 엄숙한 이런 식전에 참석할 수 있는 이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며,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기에 참석할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어서 느꼈느냐 하게 될 때에 여러분이 여기에 답을 해야 될 거예요.
이런 환경에 있어서 여러분들은 안다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하나님의 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고, 하나님의 소원이 어떠어떠하고, 이 세계는 어떻게 흘러나가 가지고…. 이것이 우리와 최후에 맞부딪치는 거예요.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무엇을 중심삼고 맞부딪치느냐? 여러분들은 아들이요, 하늘은 반드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과 아버지는 서로 합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데, 이것을 연결시켜 가지고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부모가 있나니 그 부모가 참부모입니다.
지금까지 갈라졌던 이 부모와 자식을 연결시키기 위해 하늘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먼저 선두에서 투쟁하여 수습하여 왔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형태를 거쳐왔지만, 하나님을 중심삼고 부모의 심정의 도리를 중심삼아 아담으로부터 여기에서 이 기준에 올라올 때까지 하늘은 투쟁역사로 돌고비길을 걸었습니다. 이것은 고통의 상징으로, 이게 크면 클수록 큰만큼 거기에 대비되는 고통의 상징으로 역사를 지내 왔습니다.
최후에 남아질 것은 뭐냐? 이 심정기준을 재현시켜야 하는 것이 하늘의 소원인 연고로 이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시는 주님은 역사적인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슬픈 자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자신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메시아로 이 땅 위에 보내어 그런 책임을 맡은 하늘 앞에 아들이 될 수 있는 자가 있다 할 때 그를 대하여, 그분을 대하여 하늘은 '너는 역사적인 고통을 맛볼 수 있는 부모의 자리에 나서라' 하고 예고한다는 거예요.
'너는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세계사적인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사람들을 품고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라. 인간 세상에 있어서 고통의 상징권 내의 모든 여건을 품고 사는 인류가 많기에, 그 인류 전체를 대신하여 심정 기반에 있어서 그의 어버이가 되고 그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런 심정을 가져라' 하는 것이 끝날에 오실 메시아가 하늘로부터 분부를 받고 부탁받은 중요한 내용인 걸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뜻을 알면서부터 슬픔의 부모의 자리에 찾아 나가야 되고, 슬픈 자를 붙들고 통곡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고통을 받는 사람을 바라보게 될 때에 통곡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 통곡은 그 개체의 통곡이 아니라 역사적인 통곡이요, 역사적인 슬픔이라는 거예요.
이 통곡 가운데는 하늘의 통곡이 연결된다는 거예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 아들딸을 대해서 그 고통을 제거시킬 수 있는 울음으로써 이들을 품고 연결시켜 나오는 싸움의 노정을 거쳐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지금까지 그런 길을 닦아 왔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이런 길을 기반으로 하여 이것에 직접 부딪혀 가지고, 여기에 하늘의 심정을 세워 놓고 사탄세계의 어느 누가 짓밟을 수 없고 이용할 수 없는 기반을 남긴 이 터전을 세워 놓고, 이것을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기준까지, 혹은 천주의 기준까지 연결시켜 놓아야 됩니다. 이런 싸움터 위에 쓰러지지 않고 싸워서 승리해야 할 것이 오시는 메시아의 사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분이 나타나면 그분은 개체로되 개체가 아니예요. 그분을 붙드는 자는 역사적인 슬픔을 붙드는 자요, 그분과 같이 싸우는 자는 역사적인 싸움을 하는 데 같이 동참하는 자요, 그와 같이 행동하는 입장에 선 사람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이분이 싸워 나오는 전체의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부모로서 등장하는 그런 가치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싸우는 그 부모와 같이 행동하게 될 때 그는 거기에 있어서 자녀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가 나를 위하여 눈물 흘려 아들이라 할 수 있고, 내가 눈물지으며 부모라 할 수 있는 이런 인연만 맺어지게 된다면, 여기에서 비로소 부자의 인연이, 종적으로 연결된 것이 횡적인 기준을 닦아 가지고 이 지상에 연결될 수 있게끔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부모의 날, 이날 가운데는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무한한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고, 이날 가운데는 역사노정에 있어서의 어느 한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 혹은 어느 주의 사상을 가지고 그 주의를 위하여 투쟁한 어떤 위대한 열사보다 더 고통 가운데서, 더 슬픔 가운데서 이 길을 닦기 위해 투쟁해 나온 하늘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지 않으면 부모의 날을 모실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언제 그 입으로 부모의 날이라고, 부모라고 불러 볼 수 있는 입장에 설 수 있겠느냐 이거예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이런 역사노정을 거쳐오면서, 수고의 노정을 거쳐오면서 오늘날의 통일교회 선생님이면 선생님 하나 세우기 위해서 무한히 노심초사했다는 것입니다.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지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가다가 자기 개체를 중심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선생님이 나오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데려갔어요. 내가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다 데려갔단 말이예요. 가정에 있어서도 뜻을 같이할 수 있고 자기의 모든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데려간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길을 다 끊어 놓고 나를 이 길로 내몰았는데, 이런 시련을 거치게 해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도 쓰러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남아질 수 있어서 오늘날까지 나온 것입니다. 이리하여 3년 전부터 이 부모의 날을 우리가 가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부모의 날이라는 것을 기념하게 될 때는 피살이 떨리는 자세로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두려운 이 자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자리는 어떻게 되느냐? 아까 말한 대로 하늘 앞에 맺혀졌던 슬픔의 전부가 참부모와 참자식의 심정을 세우고 나오게 될 때는 다 해소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우리를 낳아 줄 수 있는 혈연적인 인연을 세워 놓았으니 그 부모의 유업은,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모든 유산은 자식의 것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규합할 수 있는 모든 인연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랑하던 하늘도 그 자식에게 상속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했으면 그 아들딸도 아버지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부모의 인연을 중심삼아야만 타락한 인간이 하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부모의 심정과 일체되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와서 싸우던 생활적인 목표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들도 그래야 됩니다. 참부모를 만났더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아들딸이 먼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독생자로서 사랑하는 단 하나의 아들이로되 그 예수가 뜻을 대하여 나서게 될 때, 하늘 뜻을 대신하여 나서게 될 때 하나님 앞에 사랑받는 예수가 못 된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참부모를 알아 가지고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할지라도 참부모의 품에서 사랑받는 여러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목적이 아닙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저 끝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서 사랑받아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가 참아들딸이 되기 위해서는 만민 앞에 부모와 자식지간에 맺혀진 원한의 담을 타개해 놓고, 길을 닦아 놓고, 만민이 갈수 있게끔 해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야 비로소 아버지 품에 품기어 자녀의 입장에서, 아들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때 해야 할 예수의 사명인 것을 알았을진대는, 오늘날 여러분들이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부모를 알고 부모를 모실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다 할지라도 부모의 무릎 앞에서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인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 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탄식권에서 부모님이 친히 이런 부모의 길을 닦기 위하여 수고한 기준을 세워서 닦아 놓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수시로 이 평면적인 기준─종적인 기준이 아니예요─에서, 즉 횡적인 기준에서 대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효자 효녀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효자 효녀 되는 비결은 어디 있느냐? 예수는 독생자로되 그 자신은 내적 심정에 있어서는 효자의 자리에 있지만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만민을 대표할 수 있는 효자의 표준으로는 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 심정의 기준을 세워 놓고 이 기준을 외적 실체의 기준과 부합시켜야 합니다. 이 외적 실체의 기준에 부합시키기 위해서는 원수의 세계의 고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시는 데 있어서 인생의 제일 끝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보내신 이유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이리하여 고통과 시련을 당하는 일이 크면 클수록, 죽음의 고통이 그 일신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참부모, 혹은 하나님이 보게 될 때에, 누구보다도, 누구보다도 그 자식에게 고통을 제시하는 사탄 대해서 분개를 할 수 있고, 그 자식을 슬프게 하는 그런 원수 대해서…. 여기에서 하나님은 원수를 대해 제일 최고라 할 수 있는 이런 기준을 세우면 세울수록 이 땅─마음 세계가 아니예요, 종적인 세계가 아니에요─에서, 횡적인 세상에서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기준을 닦아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원수들 앞에 고통을 받고 모함을 받는 비참한 환경에 들어가게 될 때에, 개인을 대할 때에 있어서의 비참함이 개인적인 비참함보다도 더 큰 가정적인 비참에 해당하게 될 때는 그 개인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가정적인 환경에서 예수가 고통을 당하게 될 때, 그 가정적인 환경에서 예수가 그런 고통을 당하는 비참상이 그 가정이 당할 수 있는 비참상보다도 크게 될 때에는 가정을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원칙을 생각하게 될 때에, 하늘이 사랑하는 아들을 세워서 복귀 섭리를 하는 데는, 개인으로부터 천주까지 복귀하기 위한 섭리를 하기 위해서 예수를 세웠다 할진대는, 예수는 개인의 시대에 있어서 고통을 받게 될 때에는 개인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가정 시대에 있어서 고통을 받게 될 때는 그 가정이 당하는 이상의 고통을 받아야 되겠고, 종족을 구할 수 있는 때가 왔다 하면 종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종족들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대하고 있는 때와 대하고 있는 사명 기준에 부딪쳐 들어오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당하게 될 때는 그 고통당한 것을 조건으로 세워 가지고 현재에 당하고 있는 가정이면 가정, 혹은 종족이면 종족을 빼앗아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빼앗아 올 수 있느냐? 어찌하여 빼앗아 올 수 있느냐? 사탄은 개인을 대하게 될 때는 개인적인 원수로 나타나야 됩니다. 사탄이 원수로 나타날 때, 개인을 대하게 될 때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원수로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과 형제지인연권 이상을 벗어날 수 없기에 같은 입장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개인이면 사탄도 개인, 하늘이 가정이면 사탄도 가정, 하늘이 종족이면 사탄도 종족,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복귀섭리는 그와 같은 이치가 거꾸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의 개인을 세울 때에는 하늘세계도 개인을 세우고, 사탄세계의 가정들을 세우게 될 때에는 하나님 세계도 가정을 세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섭리와 더불어 가정 섭리를 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야곱을 세운 동시에 이스라엘 가정을 찾는 거예요. 사탄세계에서는 그것이 기준입니다. 이리하여 민족과 혹은 국가를 거쳐 나옴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를 대비하여 급속한 시일 내에…. 개인이 결정되고, 가정이 결정되고, 종족이 결정되었으면 급속한 시일 내에 민족을 세울 수 있고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그런 천적인 인연이 남아 있는 연고로 사탄세계에 개인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가정을 세우고, 사탄세계에 종족을 세웠어요. 사탄세계에 국가적 기준만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것만 세우면 급속도로…. 이것이 사탄세계의 국가 주권이면 주권을 대신하여 전체에 적용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면 고통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뜻을 복귀해 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이것이 한때에 가서는 이익이 될 수 있는 면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어느 정도만큼 고통을 주느냐? 사탄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줄 수 있겠느냐?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있어서 6천 년 역사를 이끌어 나온 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이 6천 년 역사도상에 하늘을 대표하여 어떤 가정적인 책임을 짊어진 이런 대표자가 나왔다 할진대는 그 대표자를 찾아와 가지고 시련을 주게 될 때에 그 시련의 기준이 어느 정도냐? 역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준을 넘어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예수가 이 땅 위에 와서 메시아로서 책임하다가 죽게 되었는데 민족적인 기준으로서의 국가적 기준을 중심삼고 투쟁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국가기준만 넘어서면, 국가기준만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기준만 벌어지면 사탄세계는 급속도로 무너집니다.
사탄이 제아무리 시험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있어서 선을 대항하여 지금까지 투쟁하던 그 역사적인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심) 역사적인 인연이 이만큼 되었으면 이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그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여기에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키기 위해 이 개체를 대할 때, 개체를 대하는 때가 와서 개체에 연결시키려고 할 때는 이 역사적인 기준에 해당할 수 있는 시련무대를 갖고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만약 가정적 기준을 연결시킬 때는 여기에 가정적 기준을 첨부하여 역사할 수 있습니다. 이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것이 소생, 장성에 해당하는 거예요. 그 이상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타락할 때에도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한 거와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 할 수 없어요.
그러면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이 자리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섭리의 때가 찾아오는 데는 개인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가정이 나오고, 가정적인 때를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나옵니다.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연이어 넓혀서 세계무대까지 나오는 것이 섭리의 역사인 연고로, 여러분들이 가정적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를 받들어 승리한 기반을 닦았다 할진대는 그 가정을 가만 놔 두면 망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상속할 마음이 있다 할진대는 가정적인 기반 위에 민족적인 시련, 혹은 종족적인 시련을 당해 나가면 이 가정은 앞으로 남아질 미래의 종족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선생은 여러분들을 축복해 놓고 왜 내보내느냐? 앞으로 우리 앞에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종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종족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이 찾아와야 되겠고,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가 찾아와야 할 역사적인 운명이 남아 있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크면 클수록 더 큰 분야의 시련을 한 단계 첨부하여 넘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지금 이 시대에서는 쓰러지는 것 같지만 재기할 수 있는 원천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다하다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은 고통을 더 받고 시련을 더 받는 조건만 있으면, 그것이 가정 이상의 기준이면 가정이 쓰러지더라도 가정 이상의 기준의 때에 있어서 다시 세울 수 있는 인연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로 다 청산지어 가지고 십자가에서 부활한 후에 다시 40일 고통 시련노정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침범할 수 없는 요건을 남기게 된 겁니다. 그 요건이 새로운 세계의 인연을 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절대적인 조건은 타락한 천지가 생겨난 이후 처음으로 그 인연이 생겨 나왔기 때문에, 천지 운세가 찾아오게 될 때는 요 절대적인 요건으로 예수가 세워 놓은 부활 기대를 통과하지 않고는 찾아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기대를 찾아오는 인연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 인연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 인류인 연고로 인류는 그 인연권 내에서 지금까지 수습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사랑하는 자녀를 지금까지 사랑하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아들이요, 사랑하는 자녀라 하더라도 사랑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했느냐? 여기에는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천주까지 닦아 나와야 할 본연의 사명을 메시아가 짊어져야 하는 연고로 그를 보내시는 하나님은 이런 시련 무대에서 순식간에 연단시키고 짧은 기간내에 세계적인 고통을 퍼부을 수 있는 사탄을 동원한 거예요. 알겠어요? 사탄을 동원하여 일시에 행동을 제시할 수 있는 기간으로 허락한 것이 3년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앞에 놓고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게 될 때에 하늘 대하여 호소한 것이 그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오늘 내가 당하는 십자가의 죽음 이상의 고통을 아버지께서 당하시거든 그 이상의 고통을 나로 말미암아 푸시옵소서. 오늘 사탄이 나를 죽임으로써 자기 소원을 성취하였다면 그 이상의 하나님이 당하던 고통으로 말미암아 복수를 하옵소서' 한 것입니다. 그런 기준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사탄은 거기서부터….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사명을 앞에 놓고 부모의 날을 기념하려고 하는 이 시간에 여러분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가르쳐 줘야 될 것이냐? 사랑할래도 사랑할 수 없고, 여러분이 이렇게 올 때에 남과 같이 먹이지 못한 게 가슴이 아파요. 지방을 순회할 때 여러분의 처참한 생활을 보면 통곡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에 스며든다는 말이예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개인의 원수로부터 가정의 원수, 종족·민족을 넘어서 세계 원수에게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으니 여기에서 동정하고 흥흥 해선 안 된다 이거예요. '야, 이젠 됐다' 하고 사정을 베풀었다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고 심정이 없어서 수많은 선지 선열들을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예요. 그때 당시에 섭리의 뜻을 펴시던 그 뜻보다도 더 큰 시련도상에 있어서 사탄세계에 섭리의 뜻을 남겨야 할 소원을 품고 있는 연고로 '야 사탄아, 더해라. 더해라!' 하는 거예요. 열 대 때릴 것을 열 한 대만 때려 봐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때의 가정이면 가정이 살고 민족이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옛날의 위대한 선지 선열들을 모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역사적인 새로운 분담, 자기 맡은 사명적인 그 한계선을 넘어서 남아질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소개했기 때문에, 그 새로운 시대의 운세가 지나가지 않았을 때에는 그 기반을 닦아 놓은 그분들을 모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분들이 승리한 혜택권 내에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의 성인현철들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왜 예수의 십자가를 믿고 예수의 십자가를 동정하느냐? 그걸 동정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이와 같은 사명의 책임이 오늘날 우리 앞에 맡겨져 있으니 나는 어떤 자리에 설 것이냐? 나는 어떤 자리에 설 것이냐? 여러분들이 그걸 알아 가지고….
이런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큰 시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섭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서는 영계까지 동원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이 여러분들이 가는 길을 방해했지만 앞으로는 천사세계도 여러분들을 참소합니다. 알았어요? 천사세계도, 천사세계까지도 여러분을 참소해야 된다 이 말이예요. 더 나 아가서는 저나라의 우리 선지 선열, 우리 선조들까지도 합하여…. 이렇다 이거예요.
사탄하고 투쟁하는 노정이 있는가 하면 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있고, 천사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선지 선열들과 투쟁하는 노정이 또 벌어집니다. 그렇다구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길에 있어서 그게 힘들다는 겁니다.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이 가야 할 최후의 고비는 어떤 고비냐? 사탄 시련 끝나면, 지금까지의 영계의 영인들이 참소를 한다 이거예요. '네가 통일교회 교인이냐?' 하면서 말이예요. 또 천사들이 참소해요. '네가 통일교회 교인이냐?'그런다 이거예요. 천사들만이 아니고 성도들이 참소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앞에는 사탄의 시련도 있거니와 이것이 지나가면 성도와 천사들의 시련이 있습니다. 이 시련이 있더라도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하면서 그런 장벽을 거치고 나와야, 그것을 지나고 나와야 그 위에….
예수님이 누구만큼 못나서 낙원에 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낙원에 가 가지고 기도하는 예수는 세상에 대한 섭리의 뜻을 품고 왼손은 낙원을 붙들고 오른손으로는 하나님의 복장을 쥐어야 된다는 말이예요. 쥐는 데에는 이렇게 쥐는 게 아니예요. 세계를 넘어서 쥐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천사세계와 모든게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들은 이런 뜻을 알았으니….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부모의 인연이 어디에서 맺어지고 진정한 부자의 인연이 어디에서 맺어지느냐? 부모의 날을 몇만 번 축하하더라도 그 인연이 내 자신에게 완전히 맺어지지 않으면 참다운 아들딸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맺어지느냐? 오라 하는 길을 올 줄 알고, 가라하는 길을 갈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내보낼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고생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이거예요. 그러나 할 수 없으니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탄세계를 무너뜨릴 수 없고 정복할 수 없으니…. 이게 최후의 작전법이예요. 이 싸움에 실패하면 망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여지없이 깨지는 거예요. 이 싸움에 이겨서 남아지는 날에는 여지없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갈래 길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날을 축하하면 축하할수록…. 아버지 앞에 내 마음 스스로가 버젓이 나서려면 모진 투쟁 무대에 있어서 승리하였다고, 그래도 내가 피땀을 흘렸고 누구보다도 노력을 했다는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하늘 앞에 '내가 왔습니다' 하고 엎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엎드리는 그 순간서부터 가슴이 욱여지는 통곡이, 울음이 복받쳐 나올 수 있는 심정에 사무쳐 가지고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아버지 앞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버지가 가는 길을 남이 한 걸음 가려 할 때 나는 열 걸음 가려고 하고, 남은 한 시간 싸우려고 할 때 나는 열 시간 노력하여서 그 길을 더 달려 가겠다고 수고하는 무리들이 되면 될수록 그런 마음이 간절할 거예요. 그런 심정의 세계에서 부모의 깊은 심정을 홀로 지니고 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길 가는 데에는 친구가 필요 없어요. 내가 지내보니까 친구가 필요 없어요. 선생님은 가정을 가진 지금 입장에서 생각 할때, 어떤 때는 도리어 지장이 있다 하는 것을 실감해요. 혼자 갈 때는 언제나 그 예리한 시선이 한 곳을 향해서 가더니 환경이 벌어지니 지장을 가져오는 것을 느낀다 말이예요. 아버지라 부를 때 간곡히 솟구쳐 오르는 그 심정이 희미해 들어가는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구요. 그건 뭐 때가 그럴 때니까 그렇겠지만, 그러나 이 길을 가야 할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사무친 심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이 자리를 척 이렇게 보면 이 자리는 어떤 자리냐 하면 세계의 모든 심령들이 와 지키고 있어요. 와 있어 가지고, 어떤 녀석은 늦추어 잡아 가지고 꾸불꾸불하고, 어떤 녀석은 조금 희미해지고, 어떤 녀석은 뺑뺑해 가지고 끌려가는 수도 있어요.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구요. 천태만상이 다 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계의 수많은 인류 앞에 있어서….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끌어당기는 데는 뺑뺑합니다, 뺑뺑해. 끌어 와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니에요? 가정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혹은 민족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국가에 있어서 어느 국가보다도 그저 당기고 당기고 당기고 당겨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그것이 끌려오면 사탄세계는 정복되는 것입니다. 그게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 그게 뭐예요? 부모의 심정을 대신하여 자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그 놀음 하자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여기에 인류를 앞에 놓고, 하나님을 십자가 위에 올려놓고 무엇을 끌어당겼느냐? 그것을 넘어갈 수 있는 심정입니다, 심정. 아무리 정복자인 원수들이 포진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것을 일시에 넘고, 죽음을 넘어서 가지고 달려가는 심정만이 그것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그런 심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이제 남아진 우리들이 가야 할 이런 사명적인 분야에 있어서 오늘 부모의 날을 모실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었다고 내 자신을 스스로 인정을 한다 할진대는, 여러분에게 남은 최후의 정열을, 여러분에게 남은 최후의 열성을, 최후의 결의를 어디에 쏟을 것이냐? 어디에 쏟게 해야 되느냐? 하늘은 어디에 쏟게 하려고 그러느냐? 개인적인 시대에 그걸 쏟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늘이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때가 세계적인 때이니만큼 개인적인 사명을 자녀의 때에 실현시키려고 하고, 가정적인 기준에서 실현시키려고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민족 시대에 일시에, 물론 연결시켜 가지고 나오지만, 여러분들을 국가적인, 민족적인 시대로부터 세계적인 운세권 내에 처넣자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 통일교회의 3년 기간입니다. 이 3년 기간에 선생님은 개인적으로부터 가정적으로 이걸 죽 수습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예」
이거 수습해 나오는 데는 어디서부터 수습하느냐 하면, 하늘이 지극히 사랑할 수 있는 복중시대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름에 전도활동 시작할 때 예진 애기가 복중에서 살았지요? 그 기준에서 나온 거예요. 이래 가지고 쭉 3년 기간 나와 가지고…. 그런 기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 기준. 그러면서 우리 시대는 민족적인 사명시대를 거쳐서 세계적인 시대로 넘어갈 수 있는 때가 되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을 고생을 시키는 데는 어디서 시키느냐? 개인적인 시대를 여러분들이 몰랐어요. 다 몰랐어요. 선생님이 뭘하는지 알았어요? 뭘하는지 다 몰랐어요. 여러분이 모르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모실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가정적으로 진정히 모실 수 있는 때를 다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자꾸 멀어져요. 자꾸 멀어진다 말이예요. 앞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가까이 안돼요. 그건 민족적으로 대해야 됩니다. 자꾸 멀어지는 거예요. 그런 때는 탕감해야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전체 세계를 살려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국가적인 운세와 세계적인 운세가 넘어갈 단계까지 이때에 있어서 여러분을 시련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련 당하게 될 때, 여러분들은 지금 삼천리 반도를 무대로 하고 나가서 싸우게 될 때 '내가 여기서 제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는 거예요. 이것은 골고다예요, 골고다.
골고다지만 골고다에서 승리하여 부활의 성채로서 하늘의 인정을 받고 참아들딸로서 아버지 품에 품길 수 있는 그런 한날이 오는 날에는 세계적인 거예요. 이런 마음 가지고 멋지게 싸워야 합니다, 멋지게. 여기에 있어서의 '아버지여 내가 위협하오니, 역사적인 최고의 시련 기준과 같은 이런 기준에 섰사오니, 최고의 시련 기준에 섰사오니, 아버지여…' 해서는 안 돼요. 이건 패자가 되는 겁니다. 하늘을 위로하면서 이런 싸움을 해야 된다는 말이예요. 지지리 밀려다니면서 그렇게 싸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이번 부모의 날을 맞아…. 이제 우리 앞에는 이 시련과 환란은 세계적인 무대로서 남아 있다는 거예요. 요건 잠깐이예요. 7년이 되면 이것이 조여 들어간다 말이예요. 맨 처음엔 크지만 점점점점 환란은 작아진다구요. 알겠어요? 맨 처음에 시련이 클 때는 환란이 제일 크니 통일교회 패들은 요만해요. 이 시련은 점점점점, 맨 처음엔 컸지만 점점점점 작아져요. 여기에 비례하여 이만큼 시련받을 때는 통일교회 교인들은 요만합니다. 그렇지만 역사가 감에 따라서 시련이 점점점점 작아지는 거예요. 점점점점 작아짐에 따라서 점점점점 통일교회는 드러나게 돼요. 마찬가지라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여러분들이 고통받던 기간이 과거에는 길었어요. 여기서 출발한 사람이 여기까지 올라오려면 얼마나 길어요? 그렇지만 국가적인 때에서 세계적인 때로 넘어갈 때니 때가 요만하다는 거예요. 짧다는 거예요. 짧다는 거예요. 넘어갈 기간이 짧다는 거예요. 짧은 동시에 길질 않아요. 7년이라 하는 이 기간이 몇 개월 걸릴지 몰라요. 며칠이 될는 지도 몰라요. 세계가 넘어가는 순간은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런 의미에서 심각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렇지요?
망하고 흥하는 결정은 며칠 걸려요? 며칠 걸려요? 「순간입니다」 똑딱하는 순간이예요. 그러니 과거에는 우리에게 시련이 많았지만, 시련이 점점점점 작아지고 우리 편은 점점점점 많아진다구요. 그래, 우리가 세계적인 무대가 줬으니 우리에게 막힌 장벽은 다 무너졌어요. 민족적인 장벽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남아진 것은 세계적 기준입니다. 하나의 주권 국가만 되면, 여기서 주권 기준만 승리해 놓으면 세계적인 기준은 대등한 기준에서 밀고 나간다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갈 시련의 고빗길은 많지 않아요.
그러니 선생님이 제일 원하는 것은 뭐냐? 여러분들이 세계적인 심정을 품고, 세계적인 부모의 심정을 품고 세계적인 환란도상에 있어서 승리의 방패를 세우겠다는 결심 자들이 되어서 조금만 싸워 보자구요, 조금한 그러면 필시 우리 앞에는 광명한 날이 찾아오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더우기나 오늘 여기 참석했던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았다구요. 이제 1차, 2차, 3차, 4차, 5차, 6차까지 했으니, 이번이 마지막 7차예요. 마지막 7차에 여러분을 다시 총동원시키는 거예요. 이번 일을 하는 데에는, 이번에는 절대 누구 신세지지 말하구요. 딴 사람에게 신세지지 말라구요. 누구, 자기 뭐 아는 사람한테, 친구들한테 돈 꿔 가지고 가지 말라구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주머니 털어 가는 것은 괜찮아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 자기 형제 것은 괜찮아요. 왜? 야곱이 그랬거든요, 야곱이. 그랬지요? 구체적인 내용을 내가 쭉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그걸 설명하면 지장이 있기 때문에…. 신세를 지려면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인연 맺은 사람한테 지라는 겁니다. 아버지 것이자 내 것이요, 형님 것이자 내 것일 수 있는 그런 분한테 신세지라는 겁니다. 분가 안 했을 때는 내 것 아니예요? 내 것이니 더 좋게 그들 앞에….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선한 의미에서, 더 좋게 뜻 앞에서 하게 될 때는 안 되는 것 같지만 넘어간다는 거예요. 알겠지요?
만일에 다른 사람이 도와주면 도와준 그것이 조건이 되어서 그 사람이 못 가게 된다 말이예요. 보라구요. 통일교회에서 여러분들이 나가서 전도해 가지고 수련을 받게 하기 위해서 돈을 모아 가지고 수련을 보내 봐라 이거예요. 그게 잘되나 두고 보라구요, 선생님 말이 맞나 안 맞나. 여기 교회에서 대줘 가지고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 원리가 거짓말이라구요. 안 돼요. 어느때 가 가지고는 꺼떡꺼떡하거든요.
여기 김진희가 처음에…. 여기 김진희 어디 갔나? 「예」 그런 걸 알았어? 「예」 그거 안 된다 말이예요. 선생님이 본부에서 한번 해보자 해 가지고 어느 교회를 후원하는데, 후원한 교회는 절대 안 돼요, 후원한 교회는. 본부에서 특별히 해 가지고 선생님이 후원해 주면 안 된다구요. 그래서 눈을 딱 감고 후원 안 해주는 거예요. 언제 후원해 주느냐? 소생급 장성급 다 지나 가지고 완성 단계 넘어설 때, 하늘이 진정으로 사랑한 아들은 그때에 가서 부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한 때에 가서는 후원해 주지요.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관여해 가지고 역사 안 해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런 기준으로 나가 봐라 하는 거예요. 맨 고비에 가 가지고 미끄러지지 않고 조금만 정도를 넘는 고생만 하라는 거예요. 그것을 조건으로 해 가지고 다 풀려 나간다는 말입니다. 고난을 피해 가는 길이 하늘 가는 길이 아니에요. 고난을 맞아 가는 것이 하늘 가는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구요. 알겠어요? 「예」
또, 여러분들이 하늘 앞에 축복받는 조상, 축복받는 자녀를 갖고 싶거들랑 오늘 현실의 때가 민족적인 때라 할진대 세계적인 때 앞에 있어서 투쟁하면 운세는, 그가 세계적인 환란과 세계적인 고통을 맞아 가지고 그것을 자기의 시련 무대로 삼고 하늘 앞에 공을 들여 놓으면, 이 때는 민족적인 때요 국가적인 시기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공을 들여 놓으면 하늘이 아들딸에게 축복을 해준다구요. 복을 주는 데에는 세계적인 복을 갖다가 첨부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들이 태어날 때는 그 민족을 지도할 수 있고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아들딸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그런 견지에서 내가 보고 있는 거예요. 이 원칙이 틀림없다는 거예요. 이 원칙이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번에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이 원칙을 철저히 생각해야 됩니다. 부모 노릇 하기 힘들어요. 내가 지내고 보니 부모는 참 두려운 거예요. 선생님이 기도 한마디 잘못해 가지고 내가 애기보고 회개한 때가 있어요. 그건 아버지 앞에 자기로서의 가치로 기도할 그런 위신이 있다는 거예요. 이런 이런 기도를 나로서 해야 할 것인데 껄렁껄렁 기도 한마디 했다 말이예요. 말을 하다 보니 그런 한마디 하게 되겠어요. 이게 아주 가슴이 찔려 가지고…. 그 기도 하고는 애기보고 회개했어요. 이거 잘못하면 일주일 이상 회개하는 거예요. 자식 앞에 최고의 순결로써 나타나지 못하면 참다운 부모가 못 돼요. 그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나도 몰랐어요. 기도하고 보니…. 사랑한다는 그 자식들을 남의 물건을 도둑질해다가 먹여요? 차라리, 차라리 굶겨 죽이는 것이…. 여러분들이 부모면 부모로서 부모 노릇 하기 힘든 거예요. 자식은 부모를 지도하는 말없는 스승이예요. 이런 입장에서 여러분들이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런 입장에서 여러분을 내가 이렇게 고생시키겠다는 것은 여러분들을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겠어요? 여러분들 등쳐먹으려고 그러겠나 말이예요. 그건 원칙이 아니예요. 그건 원칙이 아니예요. 그건 깨지는 거예요. 어차피 깨지는 거예요. 그렇게 놔 둬도 어차피 깨지게 마련이예요. 그렇지만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는 것은 '지름길 가자, 지름길 가자, 지름길 가자' 하는 거예요.
이렇게 감으로 말미암아, 10년 가 가지고 조그마한 것을 얻는다면, 열흘 가 가지고 10년 것의 몇천 배 얻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니 비상한 각오로 그 길로 때려 모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아는 자의 책임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다 이거예요.
더우기 이번 가정들을 쭉 배치하는데 염려하는 것이 그거예요. 그 가정이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느냐? 여러분이 흘리지 않을 눈물을…. 여러분이 타고난 팔자가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어느 기준에 살라는 생활기준을 하늘은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타고난 팔자…. 팔자라는 거 있지요? 운명 기준 이상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이…. 그런 운을 타고났지만서도 세상에 와 가지고 그 반대 기준에 있어서 하늘을 위하고 더 큰 운세를 향하여 고생을 하고 수고를 하면 그 수고한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알겠나 말이예요. 「예」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제 남아진….
이제 부모의 날을 맞이하여 가야 할 여러분들에게 하늘이 선물을 준다면 무엇을 줄 것인가?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고생을 해서 그것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이 민족이 지금 도탄 중에 있는 것을 바라봐도 우리 통일교회 이상 고생하는 무리가 없습니다. 통일교회가 제일 고생하지요? 「예」 선생님의 계획은 앞으로 돈이 많게 되면 그 돈을 통일교회 교인 줘서는 안 되겠다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잘먹고 잘입을 수 있는 즐비한 모든 배후의 경제 기반이 다 닦여 있어도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주지 말라는 거예요. 몇 년 동안? 영원히 주지 말자는 것이 아니예요. 10년이면 10년 동안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뭘할 것이냐?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미국 이상 기부하는 거예요. 각국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여행할 때에 '아, 지상의 천국의 나라, 문화의 상징 국가!' 라고 찬양하지만 반대가 되어야 돼요. 수많은 민족을 후원해 주고 수많은 민족을 도와주어서 누가 그 나라 찾아오게 될 때에 그들이 발을 옮겨 딛지 못할이만큼 그렇게 처참한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게 비참한 국가가 되어야 됩니다.
국가가 그렇게 된 것은 무엇 때문에?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예요. 그 민족은 왜 이렇게 줬느냐? 세계 인류를 도와주기 위해서. 자기 민족보다 더 사랑하는 이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부모보다도 이 세계 인류를 더 사랑하는 이런 절대적인 기준, 이걸 누가 만들겠느냐? 이걸 선생님이 제일 염려해요. 이걸 어떻게 만들어 놓겠느냐? 이것만 만들어 놓으면 공산당이니 무엇이니 하는 것이 세계를 정복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이 10년 동안에 세계를 이렇게 후원해 줬다는 걸 알면, 한국 찾아와서 먹지 않고 피를 팔아 가지고 후원해 줬다는 걸 알면 거기서부터 '이젠 한국 사람 고생하지 마십시오!' 하고 반드시 세계 인류가 손을 들어 외치는 그러한 외침의 소리가 들려 올 것입니다.
그때만 되면, 이념과 더불어 세계를 살리기 위하여 수고했고 하늘의 심정을 가진 형 중의 형이요, 동지 중의 동지요, 부모를 대신한 대신자라고 이렇게 찬양할 수 있는 기준이 잡혀지면, 그때에 '한국에 있는 백성들은 고생하지 마십시오!' 하고 데모할 정도가 되면 순식간에 한국은 지상낙원이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우리가 암만 삼십 년, 수십 년 잘 했댔자 어떻게 이렇게 만들 거예요? 미국을 따라 가겠어요? 그렇지만 십 년이면 십 년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런 놀음 하면 십 년 후에나 몇십 년 후에는 최고의 문화 기준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그 놀음 시키는 사람은 당장에는 원수지요. 모르는 것들은 망해요. 떨어지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가르쳐 주는 거예요. 모르면 전부 다 떨어져요. 모르면 망해 떨어지게 돼 있어요. 이스라엘이 몰랐기 때문에 다 망해 떨어지고 꺾어져 갔다 이거예요, 몰랐기 때문에, 그러니까 가르쳐 주는 거예요. 눈으로 보고 알 수 있게끔 가르쳐 주는 거예요. 가르쳐 주는 데도 못 가는 것은 자기 책임이예요. 이래서 선생님이 지금 기도하는 것이 그거예요.
비참한 얘기지만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보면 얼마나 유태인을 학살했어요. 먹지 못해서 영양 부족이 되고 죽음의 길에서 생의 애착을 가지고 허덕이는 걸 바라보게 될 때, 만일에 한민족이 세계를…. 저 히틀러는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 원수 국가라고 해 가지고 저렇게 했지만, 원수의 국가에 대해서 옳다는 자기들이 정병이 돼 가지고 세계에 봉사를 해야 된다구요. 그랬으면 세계를 순식간에 영원히 정복했을 것인데 그런 의병이 이 역사말 시대에, 이 종말 시대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구요. 통일교회 교인들 그렇게 해서 한번 가 보자구요.
수십만을 동원하여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심정적인 이런 원동력을 갖고 있느냐? 선생님이 그런 걸 많이 생각해 봤다 말이예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예」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선생님이예요. 그러니 고생은 타고났다는 거예요.
또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여러분 기도해 보라구요. 선생님으로 말하면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옥동자로 태어난 거예요. 태어날 때에 귀하게 태어났어요. 이 땅 위에 태어날 때 본래 하늘의 천성의 인연을 갖고 왔기 때문에 귀한 몸으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그렇게 고생하고 그렇게 천하게 살게 안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안 돼 있다 이거예요. 그런 운을 가진 그런 심적 기반을, 배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고생함으로 말미암아 그 고생 덕에 삼천만이 바라보게 되고 그 고생 덕에 인류가 해방을 받는 거라구요.
그런데 여러분들, 통일교회 교인들이 선생님을 언제 봤다고 선생님 대해서 뭐 어떻고 어떻고…. 그로 말미암아 천적인 운세는 자기들 앞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심정의 인연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은 반드시 공이 있는 곳에는 머리 숙이고 가고 위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리법도인 연고로 그 앞을 지나고 그 인연을 앞에 놓고 살게 될 때는 반드시 머리 숙이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아는 법도예요. 이런 인연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이상 야릇하거든요.
내 우리 애기들 보고도 지금 가만히…. 이 애들이 어떻게 될 것이냐? 내가 가르쳐 주는 도리가 이렇고 하늘이 세워서 인류를 수습해야 할 법도가 이런데 그 법도를 지도하는 내게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실험을 하는 거예요, 실험을.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오늘 부모의 날에 대해 말하게 될 때에 말이지요, 여기 모인 우리 식구들 대해서 부모의 심정도 심정이지만 자녀에 대해서, 진정 자녀에 대해서 심정은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이걸 어떻게 다리 놓아 주느냐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걸 생각할 때 역시 역사적인 모든 인연이 여기서 지탱해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버지 어머니 부를 때에, 아버지 어머니 부르려고 할 때에는 이 복귀도상에 있어서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야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꽁꽁 동여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을 대표해서 싸우는 데 있어서 민족 앞에 홀로 서 가지고 '아버지!' 하고 부를 때는, 혼자 부르더라도 삼천만 민족을 대표해서 그렇게, 그저 고통 가운데서 하늘을 염려하며 울부짖고 기도하게 되면 그 개인이 개인이로되 개인이 아니예요. 삼천만 민족 전부가 하나님을 얽어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들이 이제 지방에 나갈 거예요. 어차피 남은 멀지 않은 기간을 우리는 달려야 되겠어요. 달려야 되겠어요. 가까운 시일 내에, 멀고 빠르게 범위를 잡아서 여기에 인연을 맺어 가지고 여러분들이 거기에서 아버지를 부르게 될 때 우선 그 땅과 그 지역이 거기에 동화되어 머리 숙이게 되는 거예요. 이 길을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래, 지금 삼천만 민족을 어떻게 해 가지고 머리 숙일 수 있게, '아버지!' 할 때에 '예, 옳습니다!' 할 수 있게 어떻게 만들어 놓느냐 이거예요.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은 잘먹고 잘살자는 게 아니예요. 부모의 심정, 아버지가 보고 싶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 그 품에 안기기 위해, 해방의 왕자가 돼 가지고 모든 것이 거침없이, 천하에 거침없이, 춤을 추나 뭘하나 만민이 다 영광의 상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한때를 맞기 위해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싶은 갈급한 마음, 이 마음에 불타 가지고 모진 시련도 나의 갈 길로 알고 응당히 가야 할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싸워 나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면 필시 그런 날이 있을 것을 나는 여러분 앞에 약속하는 것입니다. 또, 사실 선생님이 지금 이렇게 나오고 있다구요.
이제는 기도가 둘밖에 안 남았어요. 기도가 둘 남았어요. 하나는 이 나라에 대한 최후의 문제요, 하나는 세계적인 최후의 문제예요, 공산당 대해서. 그것 외에는 선생님이 소원이 없어요. 때가 이만큼 접근해 왔으니 여러분들이 현재 정세를 보더라도 그런 단계에 왔다는 것을 아실거예요.
그렇게 알고, 선생님이 고생을 했으니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참고 부모의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최후의 장벽 앞에 있어서 있는 정성을 다하라 이거예요. 예수께서 골고다 산정에서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호소한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권능을 제시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도탄 중에서 밀려가는 사람 되지 말고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면서 붙들고 심정을 거기에 엉클어 놓는 여러분이 되라 이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승리의 아들딸이 될 거예요. 그러한 자리에서 그러한 각오를, 그러한 결의를 하는 이 시간이 부모의 날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그러면 우리는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되겠어요. 끝까지 가야 되겠어요.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은 슬픈 사람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의 날을 맞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입니다. 약속하겠지요? 「예」
아버님, 저에게 아버지가 없으면 과연 불쌍한 자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외롭다면 이 이상 외로운 자리가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친구도 없고 사정도 통할 수 없는 황막한 황무지로 아버지가 내몰게 될 때에 고아와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선을 제가 알았사옵니다.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자식을 찾기에 허덕이시는 아버지의 모양을 내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이 자리까지 쓰러지지 않고 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아버님, 황공하옵니다.
세상에 그 누가 나를 몰라주더라도 저는 아버지를 갖고 있는 것이 자랑이옵니다. 슬플 때도 내 아버지였사옵고 기쁠 때도 내 아버지였사옵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슬픈 입장에 계신 아버지인 것을 알았기에 있는 힘 다하여야겠다고…. 가는 길을 돌아서 보고 내가 아직까지 여력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 충성을 못 하였다는 한을 남길까봐 슬퍼하는 마음이 언제나 이 몸에서 떠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하고, 한날의 쉬는 시간에도 자신을 채찍질하며 아버지의 심정을 붙안고 눈물지으며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을 당신은 아옵니다. 여기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 중에는 불쌍한 외로운 무리도 있습니다.
아버지, 이들은 젊은 청춘들이옵니다. 남보다도 더 먹고 싶고, 남보다 더 자랑하고 싶고, 남보다도 더 높임받고 싶은 것이 젊은이의 기질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춘 시대의 모든 욕망을 다 땅에 묻어 놓고 아버지의 품이 그리워 허덕이며 달려온 당신의 아들 딸이오니, 이제 손에 손을 붙들고 '내 아들딸아!'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되시옵고, 이제 직접 관여하시어서 저희의 앞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남아진 이 민족적 사명과 남아진 이 세계적 사명이 우리 앞에 있사오니, 부디 여기서 쓰러지지 말고 끝까지 남아지는 자가 되어서 아버지 존전에 해방의 자유와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예수를 독생자로 이 땅 위에 보내신 아버지는 예수를 품고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투쟁의 역사노정에서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요해야 할 부모의 입장에 서 계신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분통하였습니까? 이것을 알았사옵니다.
복귀의 사명을 완결짓기 위한 자녀의 명분을 가졌사오나 이제 다시 돌아와야 할 저희들의 길이 남아 있기에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사명적인 터전을 향하여 가는 이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가는 길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를 그와 같은 자리에서 보호해 주시었기에 이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서 보호해 줄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시련 가운데에 염려하신 아버지인 것을 제가 알기에 이들도 그와 같은 시련의 자리에서 보호해 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련과 그런 도탄 중에서 승리의 한 자리를 갖추어 아버지 앞에 드리게 될 때에, 만복의 복을 더해 주고도 부족하지 않으냐고 물어 보는 아버지인 것을 내가 알았사오니, 이들을 그런 자리에서 축복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부모의 날을 마음 모아 축하하는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모든 사랑하는 식구들이 여기에 참석하지 못하였사오나 그들 위에 같이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은 이곳을 중심삼고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여기 참석한 이들보다도 더 간절하게 될 때는 그들이 복을 받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옵고, 해외 먼 곳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 이 날을 기념하면서 눈물짓고 있는 아들딸도 많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옵고, 승리의 한날을 약속으로 세우신 천적인 인연을 세우기를 원하는 이날을 세웠을진대, 오늘의 이 모든 인연을 두터이 하시어서 만민 앞에, 모든 천주 앞에 인연으로 세우시옵고, 해방의 동기가 되고 승리의 방패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이런 날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부르고 싶었던 부모의 날, 부모의 날을 대표할 수 있는 참부모를 저희들이 맞아 이 땅 위에서 참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이 몸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효자의 이름을 가지고 나의 어머니 아버지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진정한 자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때는 이 땅 위에서 길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저희에게 있어서는 무한한 가치의 시기를 맞이하였사오니, 이 가치의 길을 놓치고 천추만대에, 혹은 영원한 세계에 가서 탄식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살아생전, 육을 쓰고 있는 이 기간에 있어서 모든 정력을 다 기울이는 효자 효녀가 되게 하시옵고, 충신 열녀가 되게 하시어서 새로운 천지의 역사적인 노정에 있어서 이들이 간 길을 효성이라 하시옵고, 이들이 간 길을 충성이라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원한 영광이 이들의 터전 위에 길이길이 깃들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만만세의 영광과 축복과 권위가 이들과 사랑하는 자녀들과 온 천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위에, 그리고 앞으로 뜻 앞에 세워져야 할 수많은 인류 위에, 천상의 복귀의 해원 앞에 있어서 슬픔의 심정을 붙안고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이 있는 천상에까지 아버지의 영광으로 같이하여 주시옵고, 특권적 혜택을 나타내시어서 새로운 영광의 터전으로 저희의 무리들과 온 천지를 몰아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참다운 참부모와 참자녀와 참식구들과 참하늘땅의 중심이 되시어서 심정적인 일체를 이룰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어서 속히 이루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악을 제거하고 원수들을 이 땅 위에서 축출하여…. (이후의 기도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 *
1963년 3월 25일(월), 전 본부교회.
<말씀 요지> 예수님은 우리의 아버지로 오신 분이었으나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하늘은 항상 우리를 불렀어도 우리는 귀가 먹어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우리가 이날(부모의 날)을 축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선생님이 비밀리에 의논할 수 있는 근친들을 모두 데려가고 외로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참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먼 곳에서부터 품고 들어와야 합니다.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입장에 있다 해도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래야 합니다.
효자 효녀가 되는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내적인 기준과 외적인 실체 기준이 부합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인 비참을 겪을 때는 하나님이 그 개인을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개인적인 시련을 이겼다고 해서 역사적인 기준을 다 넘은 것은 아닙니다. 섭리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세계로 나아가기 때문에 복을 받으려면 가정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 기준을 세운 후에는 민족적인 시련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적인 기준이 무너집니다.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마음대로 사랑하지 못하셨습니다.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고통을 가하여 단련시키려는 것이 3년 기간인 것입니다.
하늘이 사랑이 없어서 수많은 선의 자녀들을 희생시킨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동정함으로 말미암아 그 자리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1963년 3월 25일(음력 3월 1일, 월) 오전 6시, 한국 전 본부교회
<말씀 요지> 우리의 부족함을 더욱 느낍니다. 지금은 개인에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천주가 모두 평형선상에 서야 할 때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은 부부가 합심하여 메워야 합니다.
36가정과 72가정을 배치한 것은 지금까지 정성을 못 들이고 승리의 기반을 못 닦은 것을 메우기 위해서입니다. 부부가 맡은 지역은 전체를 정결케 하여야 합니다.
여러 가지의 시련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인한 시련이 있고 영적인 시련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은 삼천만을 대신하고 아버지를 대신한 시련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부터의 시련은 길이길이 남겨야 합니다. 이것을 후손에게 영원히 자랑해야 합니다.
과거의 부족은 가정시대로 넘어오기 전 개인시대에서의 부족이기에 용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천운도 합세하려 합니다. 행동, 심정, 이념적인 면에서 발맞추지 못하면 개체뿐 아니라 종족(宗族)에도 걸려드는 것입니다.
지금은 종족복귀시대이기 때문에 선조가 협조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종족적인 기준을 결정짓고 넘어가야 합니다. 아기를 가진 부부는 아기를 가담시켜서 싸워야 합니다. 한 사람이 가담하면 더 힘이 나기 마련입니다.
평면적인 때이기에 개체는 사방성을 갖고 움직여야 합니다. 모세 때는 제물로, 예수 때는 복음으로, 지금은 모심으로 하늘 앞에 나아갑니다. 모심의 생활은 가정을 중시하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인 참부모를 중심하고 각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30억 인류가 이에 속해 지파 편성이 되어야 합니다. 축복은 일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에 통하는 것입니다.
생활의 통일을 해야 합니다. 생활은 전시태세와 같이 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모의 날을 맞이했으니 가정적인 부모의 날을 세워야 합니다. 참부모와 그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녀를 기를 때에는 참부모의 가치를 인정하는 만큼 자기 자녀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분가, 분산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재산을 빼앗아도 부모는 축복을 받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식구를 대접할 수 있는 밥을 준비해야 합니다.
앞으로 3단계로 나누어 2단계 이하는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새로운 땅에 갈 때는 여자가 문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