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류도 그러하옵고, 남아진 어떤 국토나 백성이나 주권도 그러하옵니다. 그 가운데 들어 있는 우리 개개인도 역시 그러하옵니다. 이것이 당신이 본래 창조의 심정을 세워 놓으시고 6일간 지어 나오시던 창조의 목적이 아니었사옵고, 그 심정으로 그리워하던 창조의 목적이 아니었음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남아져 있는 어떤 작은 한 존재라도 아버지 것이 됐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아버지의 원수의 것이 된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제 자신에게도 아버지의 것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제가 살고 있는 저희의 가정에도 아버지의 것은 지극히 작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개인을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가정을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국가를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세계 인류를 중심삼고도 그러하고, 땅만이 아니라 무한한 영계까지도 어두운 운세의 권한이 미쳐져 있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땅의 탄식이 생겨났고, 하늘의 탄식이 생겨났고, 인류의 탄식이 생겨났고, 아버지의 탄식이 생겨났다는 것을 저희는 아옵니다. 이 슬픈 탁식의 원한을 누가 책임지고 땅으로부터 하늘에까지, 인류로부터 천상의 아버지에게까지 묻혀 있는 탄식을 벗겨 드리겠습니까? 이것은 아버지께서 하고 싶어도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것이 아니요, 하고 싶지않아서 안 하시는 일이 아닌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필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가정에서 승리한 자요, 사회에서 승리한 자요, 국가에서 승리한 자요, 세계에서 승리한 자요, 인류를 대표한 자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원수 사탄을 자연굴복시켜 가지고 아버님을 찬양할 수 있는 영광의 모습이 되는 동시에, 아버님을 대신하여 명령하게 될 때 그 무릎 앞에 `어서 분부하시옵소서'라고 명령을 바랄 수 있는 존엄한 하늘의 사랑을 세워 놓아야만 이 엄청난 탄식의 세계를 해방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습니다.
저희 자신은 오늘 이 아침에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나 저희의 이 몸을 중심삼은 사지백체, 더 나아가서 부분 부분 세포 가운데 어느것 하나라도 당신의 것이라고 자랑할 수 있으며, 당신 것이라고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어떤 부분이 있사옵니까? 저희의 손을 들고 바라보게 될 때, 이 손은 악과 더불어 친하게 움직였사옵고 이 팔도 역시 그러했고 제 이목구비를 통한 오관, 모든 감각을 통하여 느끼는 모든 인식까지도 당신이 주관하고 당신이 기뻐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삼고 연결되지 못하였던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이 그 무엇 하나를 갖고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이렇게 처참하고도 불쌍한 모습들이 당신 앞에 왔습니다.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죽는 자리에 둬두고 바라보면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당신인 것을 저희는 잘 알았습니다. 심판의 채찍을 맞는 자들을 보고 기뻐하는 자리에 있는 당신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이기에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향하여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죄인된 자리를 거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모든 부족한 것을 잊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긍휼의 아버지! 저희가 입은 이 상처가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은 상처라면 얼마나 영광이겠읍니까만 사탄의 종이 되고 사탄에게 채찍을 맞아 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몸은 이제 주인을 잃어버린 몸, 참부모를 잃어버린 몸, 참가정, 참사회, 참국가, 참세계를 잃어버린 몸이옵니다. 어찌하여 이와 같이 불쌍한 처지가 됐는가 탄식하다가 이런 몸이 된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본래 당신이 심정세계를 세우시려는 창조의 경륜 가운데 이것을 잊지 않으시고 오늘날까지 무한히도 애쓴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황공하옵니다. 이제 보잘것없는 것들이 무릎을 모아 당신을 찬양하고 모든 것을 갚겠다고 모였습니다.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더욱이나 이날은 자녀의 날로서, 혹은 수확하는 추수의 날로서 아버지 앞에 드리옵니다.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무리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는 벌거벗은 몸, 저희는 조롱받던 몸, 저희는 쫓김의 자리에서 허덕이던 몸, 저희는 상처를 입은 몸이었사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고 싶고, 아버지를 모시고 싶고,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이것만이 외람된 영광이오니, 이 마음 하나 가지고 당신 앞에 왔사오니 품어 주시옵고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고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이들을 대표하여 호소하오니 붙들어 주시옵소서. 오랜 역사를 두고 고난의 역경을 밟아 온 이 민족을 당신께서 기억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수난 도상에 있어서 당신을 향하여 무릎을 꿇을 수 있는 , 당신을 흠모할 수 있는 민족성을 남기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헐벗어 있습니다. 이 백성도 굶주려 있습니다. 이 나라의 주권도 아버지 앞에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르는 무리들은 남아져 있사옵니다.
이 남아진 무리들의 소원은 그러한 것을 제거시키어 당신의 백성으로 만들고 잘 믿는 백성으로 만들고 싶은것이요, 당신이 축복한 땅을 대하여 옥토로 만들고 싶은 것이요, 당신에게 사랑받는 주권 국가를 만들고 싶은 것이옵니다. 이러한 마음이 간절한 무리들입니다. 저희들이 비록 힘이 없고 능력이 없사오나 그런 마음을 갖고 아버지 앞에 엎드렸습니다.
당신은 보잘것없는 어린 것을 세우시고 명령하시던 그때의 마음을 모인 이들을 통하여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은 죽지 않았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당신은 싸워서 실패하지 않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에는 기필코 승리의 영광이 있어 만민이 굴복하고 원수가 굴복한다는 것을 당신은 선언하였습니다. 이런 결의와 이런 각오를 한 저희들은 일편단심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부족하나마 당신의 것으로서 취해 주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더우기 이 3년노정을 정해 놓고 하늘이 분부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것을,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책임을 짊어지고 움직였다는 사실이 민족 앞에 복을 갖다 주지 못하고 화를 갖다 주는 것이 될까 두렵사옵니다. 인류의 살 길을 열어 주지 못하고 인류의 갈 길을 막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눈물을 뿌리며, 굶주리며, 떨면서 당신이 남기신 말씀을 붙들고 나온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아시오니 이것만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나타난 성과는 크지 않을지라도 그 가운데 참다운 사람 하나를 두고 당신은 심판하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민족을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열녀들이 여기에 있사오면 그들을 통하여 당신은 생각할 줄 알고 있습니다. 뜻을 위하여 제물 될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의 뜻을 세우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각오한 사람이 백 명, 천 명만 있어도 당신은 이들을 남겨 다시 의논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적은 무리였사오나 이들 무리 가운데는 그러한 수효가 있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용납하여 주시옵시고 긍휼히 대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잃어버렸던 자녀들이, 혹은 잃어버렸던 형제들이 잃어버렸던 부모를 모셔 놓은 자리요, 한식구들이 모인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물 흘릴 일이 있사오면 같이 통곡하게 하여 주시옵고, 억울한 것이 있사오면 같이 한을 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끝까지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할 무리요, 싸워도 같이 싸워야 할 무리요, 욕을 먹어도 같이 욕을 먹어야 할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험한 길을 친히 인도하여 주시었사옵고 핍박의 도상에서도 이끌어 주시옵고, 최후의 격전에서도 보호하여 주시어서 남아진 무리로서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옵니다. 이날까지 보호하여 주신 아버지는 이제부터도 보호해 주실 것을 알고 있사오며, 영원히 저희들이 움직이는 한 심정의 터전 위에는 길이길이 당신이 우거하실 것을 저희는 믿사오니 이와 같은 약속의 터전, 인연이 되어진 이 자리, 당신을 모시는 이 한 시간이 되어 당신 앞에 모든 사정을 고하고 새로운 분부를 받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한시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것이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성가 `복귀의 심정'을 식구들과 부르심)
아버님, 저희들의 사정이 달랐사옵고 환경이 달랐사옵고 소원이 달랐사오나 아버지의 소원을 알고는 하늘의 소원을 비로소 알았고, 아버지의 사정을 알고는 하늘의 사정이 엉클어진 것을 알았사옵고, 아버지가 살아 나온 환경을 알고는 저희들도 그 환경을 피하기를 원치 않고 몸부림치며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은 자리가 당신께서는 얼마나 염려하시는 자리인가 하는 것을 저는 느꼈습니다. 험한 길, 외로운 길에서 당신이 걸으시던 역사적인 슬픔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아담가정에 저끄러졌던 억울하고 분통한 타락의 인연, 1600년 수고하여 간곡한 심정의 터전 위에 노아 한 사람을 세워 놓고 120년 동안이나 참아 오시던 아버지를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대해야 할 입장에 섰고 사정이 통해야 할 입장에 섰사오나 대할 수 없고 사정이 통할 수 없는 분통하고 억울한 아버지요, 노아가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까지 그와 같은 사정이 해결되지 않은 채 2천 년 이후 아브라함을 거치고, 4백 년 이후 모세를 거치고, 1600년 이후 예수를 거치고 그 이후 2천 년을 거쳐 총 6천년의 역사를 거쳤어도 당신의 사정이 어디에 있사오며, 당신의 심정의 터전이 어디에 나타났사오며, 당신의 소망의 실체가 어디에 있사옵니까? 없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당신께서는 이제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세워 놓고 심정의 실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입장에서 심정의 실체를 세워야 할 때가 왔사옵니다. 심정의 실체로서의 사정을 통하여 생활할 수 있는 자녀를 가져야 할 것었는데도 그런 자녀가 없사옵니다. 그런 자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워야 할 때는 왔습니다.
당신의 소원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의 기준에 서 가지고, 만우주를 주관할 수 있는 참다운 자녀로 서 가지고 소원성취해 줄 것을 당신이 바라는 가운데 때는 왔사오나 그 소원을 성취해 줄 자녀가 없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몸 굽혀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당신의 사정에 일편이라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정에 한 부분이라도 접하여 그 사정을 붙들고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영원히 당신을 배반할 수 없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안 되거든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 가지고 그 소원의 땅을 향하여 꾸준히 달려갈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이와 같은 것을 모르는 가운데 저희들은 배웠사오니 머리를 숙여 아버지 앞에 엎드리게 될 때에 눈물로 호소할 것밖에 없는 것을 잘 아옵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연약한 저희들을 권고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자리에서 분부하여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내려 주시옵소서. 뜻을 대하여 충성하지 못한 미급함과 부족함을 깨달아 아버지 앞에 머리를 숙여 눈물짓는 자가 있거든, 다시 사랑의 손길로 이끌어 품어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 어찌 존엄하신 당신 앞에 완전한 자가 있사오리까? 부족한 것을 갈라 세우시고 완전을 외치면서 가는 것이 탕감의 노정이요, 복귀의 노정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와 같은 인연을 세우시어서 당신의 긍휼한 심정의 품에 품어 주시옵고, 당신의 무릎 앞에 기억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옵기를 , 아버님 앞에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모든 걸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아버님, 하늘과 땅과 무형세계와 유형세계가 통일을 바라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참부모가 있어야 되겠고, 참자녀가 있어야 되겠고, 참가정ㆍ참사회ㆍ참국가ㆍ참민족ㆍ참인류ㆍ참천주까지 인연이 돼야 될 것을 저희는 알았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중심이 되시옵소서.
아버님을 중심삼은 생활의 발전이 이제부터 새로운 역사 세계에 전개 되어야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제 피살이 움직이는 생활무대는 당신의 피살이 움직이는 생활무대요, 제가 은거하는 이 나라 이 땅은 당신이 은거하는 이 나라 이 땅이 되고, 이 세계와 이 하늘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이러한 엄숙한 당신의 소원을 달성하기 위하여 맹세하고 나선 무리가 비록 보잘것없사오나 오늘 여기 모였사옵니다. 당신은 능력 있는 사람을 세워서 역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몰리고 쫓김받는 무리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왔다는 것을 저희들은 역사노정을 통하여 보았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민족을 대신하여 몰리게 하여 주시옵고, 몰려도 인류를 위하여 몰리게 하여 주시옵고, 몰려도 하나님을 위하여 몰리게 하여 주옵시사, 저희들이 간 뒤에는 기필코 민족이 살아나고 인류가 살아나고 세계가 살아날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의 간 길이 그러하였고, 모세가 간 길이 그러하였고, 야곱이 걸어 간 길이 그러하였음을 아옵니다.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도 역시 이 민족 앞에 그러하기를 바라옵니다. 역사 도상에 걸어 온 모든 발자취가 그렇듯이 역사적인 인연을 상속받아 섭리적인 뜻 앞에 있어서 하나의 역사적인 실체를 소망하면서 저희들은 투쟁해 나왔습니다.
이제 나아가던 저희 자체가 여기에서 주저 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야 할 길은 아직까지 남아 있사옵고 싸워야 할 범위는, 원수가 있는 적진은 저기 시야에 나타나고 있사오니 이것을 바라보고 강하고 담대한 결의를 갖추어 게으르지 않고 준비하기를 맹세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하나마 저희의 마음과 몸은 당신을 향하여 스스로 장비한 하나의 폭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장진된 하나의 무기로서 쏘아 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는 총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적진을 파괴하고 원수를 굴복시키고야 만다는 신념에 사무친 일념만은 누가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고, 이것만은 죽음도 굴복시키지 못하는 하나의 신념적인 실적으로서 남아지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 수많은 외로운 지방 식구들이 이 시간을 흠모하면서 눈물 흘리는 자리에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기꺼이 그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또 이 삼천리 반도를 떠나 멀리 해외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도 있습니다. 그들이 눈물과 더불어 이 한 시간을 그리워할 줄로 알고 있사오니 거기에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울 때 같이 울어야 할 무리옵니다.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해야 할 무리옵니다. 아파도 같이 아픔을 느껴야 할 무리옵니다. 당신 앞에 송영을 드려도 같이 드리기를 고대하는 무리옵니다. 비록 거리와 공간은 격(隔)하여 있더라도, 아버지, 거기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의 세계에서는 만유를 초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자리에 당신이 같이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오늘 저희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모인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오고 싶은 때 걸어서도 올 수 있는 환경에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와 같은 자리를 저희들이 가진 것을 무한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30억 인류 앞에, 아버지 앞에 친히 경배드리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저희는 우리 식구들을 대신하여 이시간 하늘 앞에 대신 경배드리며, 대신 아들딸로서 이 날을 기념할 줄 아는 저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맡긴 시간으로서 아버지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고, 여기에 말씀도 친히 당신의 말씀이 되시옵길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왔던 걸음이 헛되지 말게 당신이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오늘이 어떤 날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날을 추수의 날 겸 자녀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자녀의 날이라는 의의에는 섭리적인 깊은 내용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개인을 중심삼고 보면 기념할 날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기가 태어난 그날도 기념할 것이고 또 자기가 기쁘다고 할 수 있는 날들, 자기의 일대에 남아질 수 있는 어떤 인연의 터전 위에 남길 수 있는 이런 날들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그러한 날을 갖고 자랑하고 그런 날을 중심삼고 기뻐할 수있는 날을 갖고 있으되 우리를 지으시고 지금까지 복귀섭리하시는 , 다시 구원섭리를 하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기뻐할 수 있는 날, 기념할 수 있는 날이란 것이 진정 없다는 것입니다.
행여나 기억할 날이 있다고 한다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기억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게끔 처량한 자리에서 기억해야 할 날, 이런 날들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그날이 있는 것이요,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후의 심판에서 승리의 터전을 마련했는데 함이 실수를 했던 그러한 슬픈 날이 있는 것이요, 혹은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한 날,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던 날,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던 날, 성도들이 피살당하던 날, 이러한 슬픈 날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인 도상을 참고하여 보게 될 때 어떤 나라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나라를 위해서, 그 백성을 위해서 혹은 공적인 세계의 이념을 품고 죽어간 서러운 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날들을 가져 가지고 기념할 수 있는 날들은 많이 갖고 있지만 하나님이 진정 이건 영원한 나의 날이라고 만 세계 앞에, 만 존재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날을 가졌느냐 하면, 지금까지 갖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이 말하는 이 자녀의 날이란 것은 어떠한 역사노정을 거쳐 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이날을 기념하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는 하늘이 가졌던 그 모든 슬픈 날들을 이 한 시간에 잘라버릴 수 있는, 분하고 억울했던 역사적인 그날, 추하고 기념할 수 없는 인연의 날들을 잘라버릴 수 있는 각오 밑에서 이 한날을 맞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의의가 없다고 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이날을 맞기 위해 여기에 모여 온 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늘은 추수의 날이라고 했고 자녀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땅 위의 타락한 우리 후손들은 많은 추수의 날을 가져 보았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그것이 한여름을 자라 가지고 가을을 맞이하여 결실된 그 결실을 자기의 것으로 추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추수한 그 결실을 또다시 심을 수 있는 날을 가져 보았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추수하는 기쁨과 뿌리는 기쁨을 가져 보았지만서도 하나님은 아직까지 추수의 기쁨을 가져 보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또다시 추수하여 새로운 씨를 거두어 가지고 다시 뿌릴 수 있는 기쁨을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뿌려 놓고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 뿌린 싹에서 다시 천 배, 혹은 백 배, 육십배, 삼십배 이상의 추수를 하는 소망의 날을 하나님은 가져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때는 늦은 가을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거두어 들인 추수의 곡식단을, 추수의 열매를 대할 적마다 추수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 통일신도에게 있어서는 과거에 추수하던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추수해서는 안 되겠다는 거예요. 내 손으로 거두어 들인 한 포기의 곡식, 하나의 씨는 이 천지만물을 지어 놓은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의 심정의 동산 가운데 사랑하는 자녀들의 손길을 거치어 뿌려지기를 바라실 것이니 그 바라시는 소원을 나를 통하여 실천할 수 있는 , 대신자는 입장에 서서 거두어 뿌릴 줄 아는 여러분이 돼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이제부터 거둘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며, 이제부터 뿌릴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심정적인 기준을 갖추지 못해 가지고 여러분이 거둘 줄아는, 거둘 수 있는 사람의 입장에 섰다 할진대는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역사적인 도상에서 인간을 두고 볼 때, 오늘날 인간은 어떤 것이냐? 하나의 씨를 뿌렸다가 그 씨가 자라 가지고 하나의 결실을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사노정을 거쳐온다는 거예요.
사람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비로소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 해와를 지어 가지고 뿌려 놓은 것입니다. 뿌려 놨으니 이것이 나 가지고 자라던 도상에서 있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야 할 텐데, 자라던 도상에서 이것이 꺽여지고 말았어요. 꺽여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게 타락입니다.
그런고로 아버지께서, 하나님께서 씨를 뿌렸으나 거둘 수 없는 결실의 인연을 부여 안고 오늘날까지 다시 뿌릴 수 있는 소원의 한 날이 언젠가는 온다고 일구월심 잊지 않고 바라고 나온 그날이 심판날이라는 거예요, 심판날. 심판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인류의 수확의 날이예요.
그런 연고로 오늘날 이 세계의 역사적인 종말이 어떤 때냐? 인류가 지금까지 뿌리려 하였던 것이 자라다가 꺽여져 나갔으니 이것을 다시 하나님께서 살리는 역사를 하여 가지고, 다시 꺽여지지 않는 입장에까지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이 인류 가운데서 무엇을 거두려고 하느냐? 본래 타락하지 않은 자녀로 지어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 있어서 그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자녀를 잃어버린 연고로, 이 자녀가 자라다가 꺽여져 나갔으니 이것을 다시 거꾸로 수습해야 됩니다. 다시 이것을 재현시켜야 되는 거예요.
즉, 지금까지 하나님은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인류를 대신하여 그 인류 가운데서 오직 두 씨앗이 두 결실로 거두어 들여지는 소망의 한날을 세우고 역사를 끌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의 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자신들은 신부로 알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혼인잔치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천년 혼인잔치가 벌어지며 신랑 신부가 나타나 가지고 어린양 잔치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날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본래의 창조이상을 세워 놓고 씨앗을 심어 가지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을 세워 놓으려 했던 날입니다. 그것이 깨졌으므로 이것을 6천 년 동안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며 끌고 나와 가지고 끝날에 한날을 세우셔서 여기에 그러한 본연의 참다운 조상, 하나의 부부를 만들어 놓고자 하는 것이 구원섭리역사요, 복귀역사요, 끝날의 심판역사라는 거예요. 알겠어요? 알겠느냐 말이예요? 「예」 그것만 알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주로 말하려는 것이 '인류의 결실'입니다, 인류의 결실.
여기 참석한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 나는 사회적 지위가 이만하니 이 사회에서 내 양심을 중심삼고 부끄럽지 않다'고 당당코 말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좋습니다. 또 `아, 역대 우리 선조를 두고 볼 때 나는 명문 집 자손이야. 우리 부락에서는 내 문중을 중심삼고 자랑할 수 있어. 삼천만 민족, 어떤 종족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나타낼 수 있다'고 자랑 할 수 있는 , 이런 무엇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거 좋습니다.
혹은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 어떤 교파를 중심삼아 가지고 `나는 이렇게 철저한 신앙자이니 그 교파를 중심삼은 신앙관에 있어서는 그만 하면 나는 자랑할 수 있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오늘날 삼천만 민족, 보기에 초라하고 불쌍한 민족이지만 이 민족을 중심삼고 하늘땅 앞에 자랑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 좋습니다.
오늘날 크나큰 세계의 사조가 흐르고 흐르다가 어떠한 곡절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것이 두 갈래로 갈라져 가지고 흐르던 것이 큰 파도를 만나 가지고 하나는 동쪽 하나는 서쪽, 하나는 오른쪽 하나는 왼쪽으로 밀려 오는 물결이 부딪쳐 가지고 한번 격동하는 이런 찰나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나가는 데는 어느 쪽이든지 하나 강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강해야 밀어내는 거예요. 하나가 강해야 부딪치다가 남아지든가 버려지든가 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둘이 다이거, 둘이 같이 하다가는 다 없어진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연못에 돌을 던져 볼 때, 같은 자리로 던지면 비슷비슷하지만 하나가 조금 강하면 밀려오는 한편의 물결을 휘몰아 넘어서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때 이 세계는 새로이 수습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보게 되면, 여러분 가운데는 그런 사조를 맞이하는 여기에 있어서`오 나는 이런 주의 주장을 가졌으니 여기에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을 가졌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개인을 두고 자랑하고, 가정을 두고 자랑하고 혹은 국가와 자기의 주의 사상을 중심삼고 자랑한다 하더라도 자랑하는 그 자신과 그 무리와 그 전체의 현상은, 혹은 그런 모양들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나님의 축복의 한날을 받아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환영하며 `오, 나의 아들딸들아! 오늘 나의 기쁨에 동참하고 나의 영광을 찬양할지어다. 지은 모든 만물은 너를 위해 지었다. 이것은 네 것이다. 어서 갖고 태평왕국을 건설하여 평안히 살지어다'라고 하는 축복의 음성과 더불어 출발한 역사의 출발을 가진 후손이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러한 인간인 연고로, 그러한 인연권 내에 태어난 존재들인 연고로 어느누구를 막론하고 공적인…. 말하자면 하나님의 자랑이 된 이념적인 창조의 이상세계에서 보게 된다면 전부가 거짓 자녀예요. 전부 다 거짓 자녀들입니다. 너는 죄악의 후손이요, 너는 타락의 종족이라는 것을 아무리 변명하며 벗으려 해도 벗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없다는 거예요, 아무리 해도.
그런 원칙에서 볼 때, 여기에 서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강력히 말해도 `저 사람 저 거 망령된 말을한다' 이런 말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운명에 걸려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운명에 놓여 있느냐 하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 내 자신을 세워 자랑할 아무런 무엇을 갖지 못한 무리입니다. 이런 무리에 걸려 있으니 이것을 누가 자랑의 자리까지 이끌어 줄 것인고? 이것을 누가 해방의 자리까지 이끌어 줄 것인고? 이것을 누가 평화의 세계까지, 자유의 세계까지, 행복의 세계까지 갖다 줄 것인고? 이러한 것이 인류가 바라는 유토피아, 이상경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 할 때, 나는 있다고 당당코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있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의의 심판을 해야 할, 세계적인 대심판주로 나타난 하나님이 만일에 이 세계에 등장한다면 오늘날 이 세계를 지도하고 있는 그 사람들 앞에 면류관을 씌워 줄 것이던가? 그 사람들이 까닥 잘못하면 천륜의 바람이 휘몰아쳐…. 이 역사적인 사조 앞에 하나의 물결로서 먼 거리의 태풍을 일으켜 가지고 찾아오고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 지구성은, 여기에 살고 있는, 지구성에 살고 있는 인류들은 모르고 있으되 저 머나먼 창조주가 계시는 그 어떤 세계에서부터 고기압적인 태풍권이 발동하여 지상을 습격하기 위한 한날이 왔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물결과 부딪칠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고 싶고, 내가 세우고 싶고, 내가 아끼고 싶고,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런 무엇과 하늘이 세우고자 하는 그것이 한번 부딪칠 때, 그때에 남아질 수 있는 그것만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스스로 알고 있지 못하지만 그런 위험의 한날이 습격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게 될 때, 그것을 우리들은 헤아리게 될 때에 오늘날 여러분 자신들은 다시 한 번 회고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때는 어떤 때냐? 큰 물결이 부딪쳐 가지고 여기에 하나의 물결이 첨부해 들어올 수 있는 끝날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끝날이 되어 있는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지상에서 소동하고 있는, 지상에서 벌어지는 사조의 공포가 문제가 아니라 이 사조의 공포를 휘몰아 넘겨 가지고 한곳으로 몰아 치울 수 있는 그런 한때, 고기압적인 태풍권이 우리의 이 지구성을 내습할 수 있는 날이 와야만 합니다.
왜 그러냐? 이는 타락한 후손이니, 옳지 못한 씨들이니 걷어치워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라지가 나오고 곡식이 나온다는 가라지가 나오고 곡식이 나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생각하게 될 때, 본래는 곡식을 심었는데 사탄이가 이것을 가라지로 만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있는 모든 패들은 가라지패들입니다, 가라지패. 섭섭하지요? 그렇다고 욕은 아닙니다. 다 같은 사정이라구요.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단 말이예요. 분하고 원통해요! 그 사람이 누구예요? 이게 6천 년 동안 타락의 후손이 되어 그의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혈통적인 주식회사입니다. 종합체예요. 이놈의 눈깔, 이놈의 배통.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나가야 됩니다.
내 몸 가운데 있어서는 가라지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 곡식이 되지 못하는 가라지 요소가 얼마나 있느냐? 이 눈깔을 우벼 내! 우벼 내 가지고 옳은 눈을 해 박으면 될 텐데 말이예요. 우려 내 버리고 말면 그것은 망하지만 우벼 내 가지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갖다가 박아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야, 그러면 손을 잘라 버려라! 김현철이, 그놈의 눈을 빼버려라! 그런 타락의 후손 눈깔은 빼 버려라 이거예요. 사탄의 사촌 눈깔은 빼 버려야지! 안 그래요? 아주머니들, 우리 아가씨들도 그걸 생각하라구요.
이놈의 주먹, 이 핏줄로 말하면 살인 강도의 핏줄도 들어가 있어요. 여러분, 뭐 뻔뻔스럽게 다니는 사람과 감옥소에 들어간 사람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요. 나도 형무소에 많이 다녀 봤지만 그 사람들과 같이 누워서 자게 되면 오히려 더 다정한 거예요.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한가지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도 목숨을 걸고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별반 차이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세계에 죄가 있다면 그 모든 죄의 원천지예요, 원천지. 우리 선조가 무슨 원수 들이었겠노? 뭐 인간끼리만 원수라면 좋아요. 그까짓 거야 암만해도 좋지만 하나님을 대하여 원수가 된 것이니 얼마나 비참해요? 당장에 벼락을 맞아 죽지 않은 것을 생각할 때 고마운 거예요. 여러분이 그러한 `나'라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내가 옥토로 될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느냐, 못 되어 있느냐? 이 거짓패야!
이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모가지 자르는 길이예요. 이 몸을 쳐라!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도는 출발하는 거예요. 긍정이아니라 부정, 부정 중의 부정이예요. 얼마만큼 부정이냐? 부정의 도수가 강할수록 고차적인 종교예요. 나중에는 심정문제까지…. 자식도 몰라본다구요. 뭐 처자도 없다구요. 혼자 살라는 그 경지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최고의 심정세계까지 부정하고 나서야만 최고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김인철, 그렇게 되어 있지? 「예」
그런데 보면 말이예요, 생각해 보면 본래 가라지가 안 되고 참 곡식이 되어야 할 내 한 자신의 본성, 내 자체를 두고 볼 때에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 손을 보고 귀여워하고 말이예요. 여러분들도 애기를 길러 보면, 아주머니들은 잘 알 거예요. 애기를 낳아서 길러 보면 뭐 눈이 찢어지고 병신 자식이들 그저 뼈가 아파 가지고 `우우, 흥흥' 하지요? 이 손이 왜 하나님의 원수의 자리에서 생겨났느냐 이거예요. 이 몸뚱이가 어찌하여 지긋지긋한 그 심판대 앞에 나서야 되게끔 만들어 놓았느냐? 그렇게 되어야 되느냐? 이게 타락의 미궁지예요. 타락의 함정입니다. 이 함정에서 오늘날 30억 인류는 허덕이지만 이 함정에서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함정에서 탈출하라! 오늘날 세계의 30억 모든 인류는 경계선권 내에, 철조망권 내에 사로잡혀 있으니 조그만 애착심이라도 가져 가지고 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 끊고 도주해라, 도주. 그렇기 때문에 도인들은 일반 세상생활, 인생항로에 있어서 도주자들이예요. 이렇게 말하면 쉽지요? 알아 듣지요? 딴 말은 하지 않더라도. 도인들은 무엇이냐 하면 사탄세계의 철조망 가운데 사로잡힌 포로들이예요. 포로니 지긋지긋해요. 밥 한술 먹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자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손만 까닥해도 도주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신앙자의 태도로는…. 그것이 신앙자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생활 해 보면 잘 알 거예요. 실감이 날 것입니다. 하루 세 끼 밥은 못 먹더라도 살길이 없느냐? 어떻게 돌파하느냐고 자나깨나 사무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 도의 길이요, 도주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 하나님의 사정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떤 사정이냐? 철창을 끊어 버리고 들어가서 다 채찍으로 몰아냈으면 좋겠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인간이 이것을 타고 넘어 나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붙들어 줄 수 있는 천리의 원칙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할수없이 이 철조망을 끊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는 허덕이고 있는 거예요.
만일 이 사방 동서남북 본부를, 파수병을 전부 다 모가지 잘라 버리고 이 철조망을 다 철거시키는 날에는 인간은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거시키기 위한 행사가 무엇이냐 하면, 대심판입니다. 알겠어요? 대심판.
그래서 철거해 놓고는 하나님의 족속은 하나님이 찾아가고, 그다음에는 자기 부락으로 전부 다 보내는 것입니다. 심판이라는 것은 전부 다 불살라 죽이는 것이 아니예요.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뭐 불살라 죽이는 것이 아니예요. 죽이려면 벌써 다 죽여 버렸지요. 안 죽여요! 철조망을 끊고는 가고픈 데로 가라 이거예요. 가고픈 데로 가라. 콩알이면 콩섬을 찾아가야 되고, 벼알이면 벼섬을 찾아가야 되고, 조알이면 조섬을 찾아가야 되고, 끼리끼리 찾아가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 종말시대에 있어서의 문화는 끼리끼리 모이는 문화입니다. 사상이 다르면 그 민족을 박차고 사상이 같은 동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전문분야가 귀하면 귀할수록, 자기가 지금까지 자라난 환경적인 터전을 박차고 자기가 전문하고 있는 그 분야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끼리끼리 찾아가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런데 오늘날 이 세계는 무엇이 가로막혔느냐? 철조망이 있다구요, 국경이. 철조망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나라에 가려면…. 누가 쳐 놓았어요, 이 철조망? 미국을 가려면 왜 그리 복잡해요? 본래의 하나님이 쳐 놓은 철조망이 아니예요.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철조망이예요. 이걸 왜 쳐 놓은 거예요? 철조망 철폐 운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개인 개인 대하는 날에는 전부 다 싸우는 거예요. 개인 투쟁시대에 있어서는 개인 철조망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가정을 위주로한 투쟁시대에 있어서는 가정 철조망, 종족ㆍ 민족ㆍ국가 철조망, 철조망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제는 세계가 두 세계가 되어 가지고 국가관념 시대로 넘어간다는 말이예요. 세계적인 주의시대, 이 주의시대 철조망을 넘지 않으면 안 돼요. 이제는 하나 안 되면 싹 망한다는 말입니다. 터뜨릴 거예요. 이걸 터뜨릴 수 있는 한때가 와야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사조가, 이런 두 사조가 지금 뒤넘이치는 걸 볼 때,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둘이 제일 가깝잖아요? 그러니 끝날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참다운 참을 추구하는 우리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 오늘날 세계적인 대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세계적인 전문 분야, 혹은 세계적인 역사를 찾는 거예요. 세계적인 역사를 찾는 반면, 오늘날 인간을 중심삼은 세계적인 역사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더 높고 더 큰, 더욱 무한한 우리의 이념적인 내용을 기반으로, 터전으로 할 수 있는 역사적인 인연이 없을 것인가? 그것을 찾아야 돼요. 그것을 찾아야 됩니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찾아 가지고, 그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나오던 다른 하나의 근원지를 찾아 가지고 '그 역사적인 배경이 어찌하여 이렇게 나왔고, 그러면 그것이 그렇게 나왔으면 이 시대와는 어떤 관계를 맺기 위하여 그렇게 나왔느냐?' 하며 그 시대에 대한 관계를 맺어 주고, 그시대에서부터 어떤 시대로 갈 것이냐 하는 것까지 관계를 맺어 줄 수 있는 이런 세계로 안내하는 거예요. 하나의 인류역사가 그러면 하나의 문화도 그렇습니다. 하나의 정치, 사상, 전부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이념적인 일치점을 향하여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외적으로 지금 벌어지는 것을 보니 이거 왜 이렇게 됐느냐? 이것은 내 몸뚱이로부터 이렇게 벌어져 나온 것이 아니예요. 가만히 보면 역사는 기필코…. 우리들은 모르지만 거기에는 그 무엇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배후의 힘이 몰아 가지고 이리 가면 들이쳐서 이리로 가게 하고, 저리 가면 들이쳐서 저리로 가게 하고, 역사를 헤쳐 보면 그것이 한 방향을 향하여 뚜렷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녹음 잠시 끊김)
그러면 어떠한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가 수습될 것인가? 이것을 헤아려 볼 때, 그 내용과 미쳐진 인연이 넓고 큰 역사관을 가진 민족이면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것을 볼 때, 오늘날 미국역사를 위주한 것도 아니요, 소련 역사를 위주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20세기 문화세계, 이 세계는 어떤 세계냐? 기독교 역사를 배경으로 한 문화 역사세계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는 사람들은 부정 못 할 거예요.
오늘날 지상에 남아 있는, 그래도 세계적인 어떤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자기 민족 국가를 중심삼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는 , 틀거리를 틀고 있는 이 배경은 전부 다 종교적인 배경이 돼 있습니다. 그것은 원리에서 여러분이 배워서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인간 역사는 인간 개개인의 역사를 위주로 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한, 역사적인 수습 목적을 향하여 시대가 인연돼 있고, 미래도 인연을 갖고 나가야 할 운명도상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면서 세계는 어떤 세계로? 하나의 세계로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그러면서 주의는 어떤 주의 세계로? 하나의 주의 세계로. 하나의 주의 세계인데 무슨 주의예요? 무슨 뭐 친구 주의가 아니예요. 보라구요. 빨갱이들은 뭐라고 그러나요? 친구라고 하지요? 응? 「동무」 음, 동무. 동무라고 그러지요? 동무하고 친구하고 어떤 게 더 가까와요? 친구가 가깝지요. 올라간단 말이예요. 동지하고 식구하고 어떤 게 가까와요? 식구하고 또 형제하고는 어떤 게 가까와요? 부모를 중심삼고 볼 때는…. 전체 식구라고 하게 되면 할아버지도 있고 전부 다 있지요? 사촌까지도 다 들어가는 거예요. 식구 하면 다 들어가지만 식구 가운데서 또 누가 가까와요? 「형제」 그다음에 누가 제일가까와요? 「부모」 부모 다음엔 누구? (웃음)
오늘날 지상에 벌어져 있는 모든 술어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재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동무라니. 이 녀석들, 동무? 동무보다 친구라고 부르면 좋겠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은 동지라고 하는데, 어 좋다 이거예요. 야, 동지보다도 한 단계 올라가면 좋겠는데…. 무엇? 식구를 갖다 붙이자 이거예요, 식구. 그래서 통일교회는 식구라고 부르는 거예요, 식구. (웃음)
올라가는 운세를 향하여 어느 자리를 중심삼고 나갈 것이냐? 제아무리 꼬리가 세계를 물고 흔들어도 대가리는 어디를 물고 흔드느냐? 이걸 알아야 돼요. 여기서 찢어지는 것은 무엇이고, 꽁지는 세계가 아니라 사방팔방을 다 흔들더라도 물고 있는 대가리의 근거지는 무엇이냐? 심정이예요, 심정. 불변이예요. 오늘날 무슨 철학 무슨 철학 뭐, 어떻고 전부 다 시시하게 수작들 하고 있지만 다 깨지는 거예요. 심정철학,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철학자가 나와야 됩니다.
또 종교는 무슨 종교가 나와야 되느냐? 심정종교, 이것이 나와야 됩니다. 무슨 사상주의가 아니라 심정사상, 심정주의를 들고 나와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그 심정은 어디서부터 나와야 되느냐? 근원에서부터 근원된 거요, 근원으로 말미암아 근원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말 하면 어렵지요? 그런 말 하면 어렵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땅 위 태어난 사람들은 인간 조상의 후손이지만, 6천 년이 지났지만 6천 년 전과 대가리는 같아요. 심정은 같단 말이예요. 또 하나님과 인간과의 대가리는 같아요. 심정의 대가리는 하나예요, 하나. 꽁지들이 전부 다 복잡해서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종교로 볼 때 앞으로 종교는 어떤 종교? 교리적인 교본을 갖고 투쟁하는 종교는 지나갑니다. 종교는 어떤 종교? 심정의 종교. 종교는 심정을 위주로 한 종교가 되어야 됩니다. 종교를 들춰 보면 종교 중의 종교는 어떤 것이냐? 이론적으로 보면 종교는 여러분이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실, 여러분 앞에 서서 말하는 그 젊은 선생이 그렇게 얘기한다면 그런 말을 중심삼고 한번 알아 보자고 할 때, 그런 내용의 조건이 많은 종교일수록 그것은 세계적인 종교가 되고, 최후에 하나님께까지 가서 이마를 맞대가지고 싸움을 하든가 혹은 칭찬을 받든가 둘 중이 하나일 것입니다.
그걸 볼 때, 예수라는 분은 이 땅에 와서 말하기를 `나는 메시아다. 구주다'라고 했습니다. 아주 제일 좋은 뜻으로 말했다 이거예요. 이렇게 허덕이는 인간들 앞에 `야, 무거운 짐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멋져요? 예수가 그런 말을 안 했으면 내가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구요. 오늘날 무슨 뭐 훌륭한 사람 되겠다는 것보다 그런 한마디를 해 놓으라는 거예요. 그런 내용을 가진 사람이면 그 얼마나 멋진 사람이예요? 역사적인 선포예요.
또 `구주다' 했으니 `인류 가운데는 나밖에 없다' 그 말 아니예요? 그말은,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지만 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너희는 뭘하는 사람이냐? `인류의 소망의 본체이고 인류의 생명의 본체이고 인류의 근원의 근원체다' 이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필요 없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지옥 갈 사람이 없다'고 그랬지요? (웃음) 마찬가지 아니예요?
이런 말, 선생님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사람이 많고 자꾸 졸려고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처음 온 사람들은 양해하라구요. 사실은 이렇게 문답식으로 설교하는 게 아닙니다. 환경이 이렇게, 처음오고 다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해 놓아야 선생님이 계획한 그런 말씀을 들어 놓겠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알겠어요?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 그래 놓아야 그게 좋지요. 생각해 보면 틀리지 않거든요. 그래, 예수는 당당코…. 내가 참, 오늘날 그것 하나도 뭐…. 선생님은 그렇습니다.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예수 자격 있고, 구주 자격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적기사 필요없다는 거예요. 진짜 근원이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 해서 이것만 틀림없다면 메시아예요. 그건 구주다 이겁니다. 안 그렇소? 당당코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의 총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배포를 갖고 손을 들고 외쳤더라 이거예요.
이분이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예요, 왜 유대 나라에서 태어났을까요? (웃음) 나는 `야곱이 우리 조상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왜 예수의 조상으로 태어났을까, 문 아무개의 조상으로 내어나지'이런 생각도 해봤다는 거예요. 또 그렇게 생각해 보는 게 나쁜 게 아니예요. 자, 그만 하면 메시아 자격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또 그다음에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인데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할말 다 했어요. 독생자다! 너희들은 아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전부 다 부정이다, 절대 부정이다 이거예요. 어디 조금 긍정적인 부정이 아니예요. 절대 부정이예요. 어디 대상적인 부정이 아닙니다. 상대적인 부정이 아니예요. 절대적인 부정이예요. 다 해 놓았거든요.
또 그다음에 한 말이 인간들에 대해서 `오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니 죽도록 모셔라' 했습니다. 죽도록 모시라는 거예요. 뼈다귀가 부러지도록 모셔라 이거예요. 열녀가 되라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말이예요, 예수가, 신랑이 모시겠다는 말이 없거든요. 그저 자지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전부 다 이렇게 정성들이라고 했지 어느 신랑이 와 가지고 전부 다 해주겠다는 말이 없어요. 전부 신부들이 준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지요?
또 하는 말이 `너희들을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고 나중에 형제라 하겠다. 또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너는 내 안에 있으니 너도 아버지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할 말 다 해 놓았다는 거예요. 그런 걸 볼 때, 심정적인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가 이 땅에 오게 될 때 어떤 사명을 갖고 왔느냐? 우주적인 대가족의 하나의 기준위에 이것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메시아가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결하고, 메시아가 메시아로서 인류 앞에 필요로 하게 되려면 이 심정적인 기반 위에 모든 여건을 구비하여 소망적인 심정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내용의 인격자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메시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우리의 소망의 심정 세계를 풍부히도, 넉넉히도, 남게도 마련하여 가지고 올 수 있었고 왔다고 신임할 수 있는 재료가 충분합니다. 그러니 그분이 메시아가 안 될 수 없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래요. 만일 이런 사람을 메시아라고 아니 하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투쟁해서 메시아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다구요!
여기에서 볼 때 무슨 뭐 불교니 유교니 무엇이니 그러면서 졸장부처럼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어서 하나의 무엇, 자기 일가 종족을 중심삼고 기뻐하겠다는 게 아니예요. `만민은 내 아들딸이다' 이거예요. 그랬지요? 그다음에는 죽으면서도 `원수까지 용서하여 주마.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려주지 마시옵고 내게 짊어지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했던 거예요. 이게 메시아지요. 죄를 지우려 했다가는 그건 거짓 선지자예요.
이것은 무엇을 통해 말한 것이냐? 진리를 선포한 자기 시대를 초월해 가지고 하나의 일념을 세워 천주의 인연을 맺기 위하여 생활관을 세워 나왔고, 생애적인 투쟁노정을 쌓아 오던 그 최후의 결말 도상에서 마음도 바라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냐. 이런 연고로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기독교가 이방 종교와 연결될 수 있는 제일의 인연이…. 죽을 때에`이스라엘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안 했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아,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안 했어요.
그러면 누구를 위해 기도했느냐? 이스라엘은 반역자였어요. 예수 앞에는 차라리….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여 터닦아 나왔고 피눈물을 개의치 않고 이끌고 양육하여 나왔던 이스라엘이 예수를 잡아 죽이는 걸 볼 때에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한 것입니다. 비난을 퍼부은 거예요.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라고 했어요. 그러나 로마 이름을 중심삼아 가지고 예수님에게 창질하고 매를 몰아친 그들을 향해서는 용서해 줬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이방적인 민족을 통해서 세계적인 발판을 닦아 나오는 인연도 거기서 부터예요.
그것을 볼 때, 그런 역사적인 기원을 헤쳐 이것을 볼 때 과연 예수가 말한 것은 세계적인 인연을 거쳐간 말씀이고, 오늘날 기독교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로 등장하게 된 원인도 그러한 내용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파헤쳐 볼 때 그런 내용이 구비되어 있으니, 필시 이것은 심정을 위주로 해서 종교세계를 찾아 나가는 그러한 역사적인 종말을 향하여 나갔으니, 나타난 오늘날 수많은 종교 가운데 최고로 남아질 수 있는 종교가 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왜 그래야 되느냐? 여러분이 돈이 많더라도 심정을 중심삼고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게 되면 돈이 다 필요치 않아요. 돈 몇천억을 지금 줄 테니까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줄래? 그래도, 천지를 주고 바꾸자고 해도 그거 바꿀 거예요? 예수는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고 했는데 오늘날 이 사탄세계는 죄악이 가득 들어 있다는 거예요. 그거 틀렸다는 겁니다. 말하기를 `아, 하나님은 한 생명이 우주보다…' 하는데. 오늘날 기성교회 목사님들이 그런 말을 잘 하지요? `한 생명이 우주보다…' 천만에. 그 한 생명이라는 그 가치는 어디를 중심삼고? 예수가 그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고 가치를 설정한 그 기준은 이 심정세계에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위에 세워진 그 한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즉 자신을 빙자해서 한 말입니다.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 심정적인 그런 인간을 가지고 있는 자기 부모를 천지를 받고 팔 수 있나요? 자기 자식을 천지를 받고 팔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천하보다 귀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설명을 해 나가야 됩니다. 이 인간들이, 이 개자식 같은 사람들이 뭐, 천하보다 귀하긴 뭐 귀해요? 아까 말하던 것과 같이 부정의 일념, 부정의 도리에 있어서 가정에서부터 세계무대까지 전부 다 부정의 투쟁노정을 거쳐서 부정했다는 인정을 받아 가지고, 부정한 것을 다시 찾았다는 결정을 받고서야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운명에서 지금 허덕이고 있는 인간들이 무엇, 무엇…. 그게 세계보다 커요? 천만에! 절대 크지 않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을 볼 때, 거기에 필시 남아질 수 있는 하나의 종교도 심정적인 것이어야 됩니다. 이거 말하자면 심정적인 종교예요. 앞으로 정치적인 이념도 역시 심정적인 정치 이념이 되어야 돼요. 우리 나라 그 한문이 재미있잖아요? `정(政)' 하게 되면 바른 아버지거든요? 바른 아버지가 다스리는 게 정치예요. 또 종교도 그러하거늘 오늘날 국가 주권의 이념도 그러해야 됩니다. 오늘날 세계의 어떠한 주의 사상도 전부 다 그 기준에 가서는 `아이고, 이제는 됐다. 야, 내 집이 제일이다'라고 합니다. 나그네들이 여행이 암만 좋다고 해도, 뭐 미국을 갔다 온 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라구요. 거기가 암만 좋다고 해도 고달프게 돌아다니게 되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자기 집만큼 편하지 않거든요, 사실. `내 집이 제일이다. 어머니 아버지 다 있고, 아들딸 다 있고, 아내가 있고 그저 된장찌게 해 놓고 보리밥을 달랑 먹더라도 그게 제일이다' 이거예요. 사실이 그렇거든요.
여러분이 거기에서 말이예요, 내 집에서 달랑달랑하게 아주 보리밥을 해먹고 살더라도, 거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꼬라지는 뭐 거지 할애비같고 사촌 뭐 몇 촌 애비쯤 되지만서도, 먹는 걸 가만히 보니 형편 없지만서도 사탄세계 사람들보다 다른 게 있다 이거예요. `야, 저것들은 좀 다르다' 한다구요. 달라야 된다 말이예요. 달라야 돼요. 세상에서 인정해야 돼요, 세상에서. 달라야 돼요.
오늘날 기독교가 이단이니 뭣이니 꼬리를 젓고 나왔지만 개인 모가지를 걸려 가지고 지금까지 행세를 하게 된 거예요. 이래 가지고 개인 부정에서부터 가정핍박, 국가핍박, 세계핍박까지 나왔지만 아직까지….
그래서 아무리 된장찌개를 먹더라도 `아, 오늘날 대한민국의 어떠한 사람, 이 나라 주권자 혹은 박정희 장군이 여기 와서 나하고 같이 먹으면 거기에 진수성찬을 벌여 놓은 것보다 더 맛있게 먹는다' 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더 좋아해야 될 것입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또 오늘날 민주 진영에 있는 하나의 백성, 제일 노동자―아주 제일 진짜노동자예요―이런 노동자 가정에서 뭐 콩 하나 중심삼아 가지고 쫄쫄 빨고, 그렇게 초라한 살림살이를 하더라도 케네디 대통령이 떡들여다보면서 `야, 너를 놓고 못 살겠다' 이러면 백악관보다 나은 거예요, 이게. 안 그렇겠느냐 말이예요. 한 단계 더 높혀서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에게 `오늘 저녁 쌀도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렇지만 물이 있지 않나, 물이. 물이라도 한사발 먹자꾸나' (웃음) 이래 가지고 물 한사발 벌커덕벌커덕 먹고 있다면 어느 것이 행복한 사람이예요? 나는 너 놔두고는 못 살겠다 하는 사람이예요. 세계에서 최고의 행복한 자리는 물 놓고 나누는 그러한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예」
도인들이 제일 도둑놈 심보가 많아요. 도둑놈 심보가 많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놈의 것을 좀 도둑질하겠다는 거예요. 도인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여, 내게 오시옵소서. 당신만 오시면 됩니다' 이거예요. (웃음) 그게 도인들의 배짱이다 이겁니다. 그거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또 그걸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투기자, 투기업자예요. 최고의 모험가라구요, 모험가. 인간이 뭐 아무리 투기 사업이 어떻고 모험가라고 해도 하나님을 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참 그런 멋진 부분이 많거든요? 요건 그저 안고 앉아 귀여운 점도 있지요. 그렇다고 `아이고, 우리 하나님 왜 이렇게 만들었어…'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또 귀한 점도 있다는 말이예요. 있지만서도 멋진 투기심이 많아요. 그런 하나님한테 `어떻게 하겠소? 나 형편이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없으면 안 됩니다' 할 때 하나님이 `오냐' 할 수만 있게 만들어 놓는다면 그 사람은 최고의 승리자예요. `네가 죽는 데는 내가 보호해 주고, 네가 싸우는 데는 내가 싸워 주고, 네가 사는 데는 내가 같이 살겠다. 네가 울면 내가 울고 네가 처량할 때는 나도 처량한 자리에 같이 가겠다. 나는 너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 할 수 있는 , 보리밥을 먹고 된장찌게를 못 먹어도 물을 마시겠다고 할 수 있는 환경에 살겠다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었어도 오늘날 세상은 이 꼴이 안 됐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지방에 나가 고생합니다. 나는 `아버지여, 원칙적인 기준을 헤아려 볼 때 감사하옵니다. 이런 자리에서 당신의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통일의 아들딸들이 많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는 거예요. 좋은 자리에서 배를 치고 트림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하나님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그 자리가 아버지를 꽁꽁 결박하는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몸뚱이만 결박하는 자리가 아니라 죽어서 그 자리를 갈래야 갈 수 없는 , 지나갈 수 없는 , 심정까지 결박할 수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끝날에 도인의 갈 길은 7년 대환난이 온다는 것을 몇천 년 전부터 예고해 놓고….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7년 대환난이 휩쓸어 오나니 여기에는 죽음의 경계선에서 앞치락뒤치락해야 할,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고 생사의 결단을 지어야 할 고비가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예고하였나니 그 예고는 왜….
하나님은 무한히 우신 하나님이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분하고 통곡에 사무친 하나님이예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영광의 하나님인 줄 알았는데, 이제 그 하나님은 가면의 하나님이예요. 우리가 믿는, 우리를 이끌어 나온 역사적인 하나님은 슬픔의 하나님이요 고통의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배웠다는 거예요. '아버지!' 할 때에는 가슴이 저려 오고, 그런 생각을 할 때 복통이 앞 길을 가로막는다는 겁니다. 눈물이 눈시울을 적셔 앞을 막는 이런 처량한 길을 찾아온 하나님예요. 그러면서 어떠한 자리에서…. 이 지구성이라는 이 별, 이 땅에는 하나님이 발붙일 한 구석도 없어요. 그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우거하고 아들딸을 낳아 흥흥하고 `좋구나, 오늘 추우니 불을 더 때라! 이불을 덮고 뭐 어떻고' 하는 그러한 자리는 하나님이 같이할 자리가 못 돼요!
내 집이 그러하고 내 몸이 그러하고 내 사회가 그러하고 내 국가가 그러하고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그러하고 천지가 그러하거늘, 하나님은 제일 불쌍한 하나님예요. 이것들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자기만 영원히 갈라져 살게끔 본래의 창조원리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너와 내가 굶어도 같이 굶고, 추워도 같이 춥고, 기뻐도 같이 기뻐해야 할 내용을 갖고 지었다는 인간들이 이렇게 사는 걸 볼 때, 이렇게 사는 것은 인간도 잘못했지만 그 원인은 원수에게…. 이래서 심판은 원수 하나 잡자는 것입니다, 원수. 사람을 잡자는 것이 아니예요.
내가 얼마나 원수 앞에 시달렸느냐? 원수 앞에 얼마나 피를 빼앗꼈느냐? 원수 앞에 얼마나 억울했느냐? 얼마나 통곡했느냐? 내 살에는 원수의 채찍 자국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내 등에는 원수의 창 자국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내 가슴에는 원수의 화살 자국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찾아 오나니, 심정의 도리를 세워야 할 하나님은 최후에 남겨질 종교의 주인이예요.
천주의 이념적인 기준이 심령의 세계를 세워 놓아야 할 그런 이념적인 중심이 오게 되면 그분은 누구부터 찾느냐 하면 불쌍한 자부터 찾는 것입니다. `당신을 찾기 위해 밤잠을 헤아리지 않고 손이 찢어지든, 다리가 찢어지든, 욕을 먹든, 몸이야 어디에 가 처박혀 죽든 난 모르겠습니다. 죽을 때 당신앞에 찾지 못하면, 내 인생의 도리를 다하여, 충성을 다하여, 찾지 못하거든 아버지라는 것을 유언하고라도 죽겠다고 할 수 있는 , 허덕이는 무리를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난 뭘 할 것이냐? 하나님이 제일 슬픈 분이예요. 여러분들은 이걸 알아야 돼요. 제일 슬픈 분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슬픈 분입니다. 당신이, 죽어가는 우리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우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더 슬픈 분입니다. 선을 주장하다가 만민이 공인하는 그 자리에 있어서 민족 반역자로 몰려 가지고 원통하게 죽는 사람보다도 더 분한 분입니다. 분한, 제일 불쌍한 그런 명사를 가진 그 주인공이 누구뇨? 하나님이예요. 이걸 알아야됩니다. 그것을 실감나게끔, 실감나게끔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종교라구요.
아버님의 옷자락은 영광에 맞추어 입은 그런 옷자락이 아니예요. 피땀에 절은 옷자락이예요. 그 옷은 당신의 아들딸들이 손으로 붙들겠다 했다가 못 붙든, 피어린 손가락으로 만든 옷자락이예요. 그의 발은, 가시밭을 헤쳐 나온 수많은 투쟁 역사에서 상처를 입은 그런 발이예요. 그의 위신은, 한 개인이 죽어 개인의 한을 찾다 쓰러질 때에 대신 맞아 나오는 것입니다. 한 민족을 세워서 여러 민족이 쓰러지게 될 때, 민족이 배반하게 될 때 대신 맞기 위해 투쟁하시는 분이예요.
원통하다! 우리들이 믿고 나오는 이 하나님이 이렇게 불쌍한 하나님이예요. 그러니 인류 해방 주창 말고 하나님 해방하자 이거예요. 이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하나님 해방하자. 이런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가 조그만 섬이라도 하나 있어서 그러한 자리에 도망을 가서 하나님을 안심시켜 놓고 거기에서 돌 감자를 심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거기에서 물을 떠 놓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 아버지를 붙들고 한없이 울 수 있는 길이라도 찾아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 헤매는 사람들이 참다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대주재, 주인공이 큰 웃음을 하고 춤을 추지 않는 한 천하는 기쁠 리가 만무한 거예요.
보라 말이예요, 어떤 주권자가 있는 데 그 주권자가 수심에 사무쳐 있으면 그 주권자의 통치하에 있는 모든 무리는 전부가 슬픈 거예요. 그것이 세상 이치라구요. 하나님이 슬퍼하는 데 인간이 기뻐할 리 만무해요. 그러니 도인들은 `고생해라. 울라. 통곡해라. 죽어라. 죽는 자리에 있어서 참아라' 하는 거예요.
개인을 살리기 위해서 개인적인 투쟁 노정에 있어서의 개인의 죽음의 고개를 넘었고,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가정적인 투쟁 노정에 있어서 가정의 죽음의 고개를 거쳐왔고, 가정으로부터 민족, 국가, 세계를 거쳐 인류, 앞으로 천주 도상까지 걸어 나가는 하나님을 봐라 이거예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계적인 투쟁의 선봉에서 나가면서 모진 사탄의 수억, 수천만의 화살을 홀로 맞아 나가면서, 맞고는 또 가고 지치면 또 가는 거예요. 왜, 누구를 찾기 위해? 잃어버린 자식 찾기 위해. 이게 원수예요, 이게 원수예요. 이놈의 사탄 새끼들, 이것들이…. 본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예요. 본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예요. 낳고 보니 아, 글쎄 하나님의 아들딸이었어요, 낳고 보니. 어머니 뱃속에서 낳기는 하나님 아들 낳았는데 가기는 원수의 세계로 간 것이 타락입니다. 이 원수의 철망을 끊어야 돼요. 이놈의 포로 수용소. 바로 지상지옥이예요, 지상 지옥.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을 주장해 나온 사람, 양심을 세워 가지고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어느누구나 막론하고 이 세상을 탈피하자 이거예요. 부정하고 나가는 거예요. 부정 가운데 진실을 찾아 오고, 지금도 그렇게 나오고 있잖아요? 이걸 바라볼 때….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세상에서 밭 한 뙈기 없어요. 집 한 채가 없어요. 양복을 입은 것이 아니예요. 여기에서 말하기를…. 난 이런 얘기를 해요, 돌짝밭에 쓰러진 곡식 이야기, 무슨 가시밭에 떨어진 비유니, 길가에 쓰러진 비유니, 이거 다 아버지께서 거쳐온 거예요.
길가를 갈기 위해서는 길가를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고, 돌짝밭을 갈기 위해서는 돌짝밭을 지키는 하나님이 되어야 되고, 혹은 가시밭길에 있어서 씨를 심어서 자라게 하려면 가시밭을 지키는 하나님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한 길가로부터 혹은 돌짝밭으로부터 가시밭길을 거쳐 나가지 않고는 옥토를 찾을 수 없어요. 이게 다 뭐냐 하면 심정세계입니다. 하늘의 곡절을 이야기한 거라구요.
그러한 길가에서 찾아 헤메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돌짝밭 가운데서 찾아 헤메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수확의 땅, 백 배의 수확을 하는 옥토를 찾아 헤메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되고, 가시밭 가운데서 옥토를 찾아오는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하여 맨 끝날에 와 가지고 하나의 옥토를 마련하여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혹은 천 배를 거두시려는 거예요. 이런 수확의 땅, 그런 결실의 땅을 향하여 하나님은 걸어오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복귀원리를 배웠지요? 이러한 아버지를 우리들이 알아 가지고 그 아버지를 모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모실 수 있는 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종교다 이거예요, 종교.
앞으로 여러분들의 종교가 최후의 심정의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종교라면 하나님이 제일 불쌍하다 하는 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고 훌륭하다는 거 아니예요. 불쌍하고 억울한 하나님, 분통하고 한이 넘치는 하나님이예요. 이것을 세밀히 가르쳐 주는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효자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부모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쇠고기를 갖다 재어서 먹인다고 하더라도…. 당장에 아버지는 울고 지금 뭐 어머니를 붙들고 통곡하는 환경인데 `그러지 말고 고기 반찬 먹으소' 하면 먹겠느냐 말이예요. 고기 반찬 먹게 하려면 그 사정을 어머니 아버지보다 잘 아는 아들이…. 알겠어요?
어머니 아버지보다 그 사정을 잘 아는 아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 사무쳐서 `어머니 아버지 그래서 어이 하겠읍니까? 제발 나를 봐서도 그래선 안 됩니다' 이러면 `오냐, 그러자' 그럴 수 있지만 이것은 속도, 아무것도 모르고 `이것 먹고 울지 마소' 하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안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슬픈 하나님을 모를 때에는 해방시켜 주는 하나님을 모르고 심판하는 하나님 몰라요. 그러므로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역사적인 종교의 사명을 다하는 거요,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시대적인 종교의 사명을 다할 것이며,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고 그런 심정을 통할 수 있게 해 가지고 그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위로할 줄 아는 종교를 만들어야만 그 종교가 끝날에 남아질 종교일 것입니다. 이러면 대개 알 거예요. 요 정도 얘기하면 알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계는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
외적으로 사람을 창조할 때에 엿세 동안에 창조한 모든 만물들은 사람하나 찾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온 천하를 주관하게 하기 위한 그 사람 하나의 자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지은 것이어늘 오늘날 하나님이 만든 것은 참다운 아들딸 즉, 아까 말한 인류의 수확의 결실로서 거두어질 수 있는 참부모였습니다.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여러분 참부모 잃어버렸지요? 전부 다 거짓 부모의 자식이예요, 전부 다. 이 원수의 피를 받고 태어난 자식들이예요.
여기서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 하나님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실체,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실체가…. 알겠어요? 그런 실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는 역사적인 하나님과 동반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가진사람이요, 시대적인 심정과 하나님의 하늘 심정과 동반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가진 사람이요, 혹은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동반할 수 있는 인연을 가진 분이예요.
그러므로 온 인류가 전부 다 고아입니다, 고아. 고아예요, 고아. 저 할아버지도 고아고 이 아가씨도 고아예요, 고아. 어머니 아버지는 갖고 있지만 사탄 세계의 어머니 아버지예요. 혈통적인 인연이 달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종 새끼예요. 종 새끼도 못 되는 거예요, 종 새끼도. 그래서 양자가 되겠다는 거예요, 복귀 역사가.
원수의 종 새끼로 취급 받지 못하던 그것을 종으로 취급해 가지고, 종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양자의 인연을 세워 가지고…. 그래서 기독교가 지금 양자 되겠다는 거예요. `양자의 이름을 받아 아버지라 부른다'고 로마서 8장에 있지요? 양자되기 위해서 허덕이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양자 돼 가지고 될 것 같아요? 양자에서부터 직계의자리를 상속 받아야 돼요. 이 직계의 자녀 자리를 상속 받으려면 직계의 부모가 나와야 돼요.
이래서 타락한 인간이, 부모를 잃어버린 인간이 거꾸로 떨어졌기 때문에 거꾸로 찾아 올라가는 거예요. 종 새끼에서부터, 양자로부터, 그다음엔 형제를 세워 가지고 자녀의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자녀의 자리에 세워 가지고 부모까지.
그러면, 앞으로 끝날에 인류의 결실로서 나타나는 그런 메시아가 계시나니 그 메시아는 무엇이냐? 인류의 총 전체의 결실의 실체입니다. 외로운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눈물 흘려 찾아 나오던 하나의 실체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투쟁해 나오며, 모진 상처를 입으면서 투쟁해 나오며 찾아 나오던 하나의 실체입니다. 그를 세워 자기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소망의 실체요, 그를 세워 생활하기 위한 생활의 실체요, 그를 세워 영원무궁토록 안식하기 위한 심정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딸인 동시에 누구냐? 하나님이 떼어놓을 수 없는 그분인 동시에 누구냐? 그분은 인류가 잃어버렸던 참부모입니다, 참부모. 이 인연을 앎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하나님도…. 오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이 인류, 부모를 잃어버린 이 고아와 같은 것들이 참부모를 찾아 하나님을 위주로 한 본래의 원천적인 발판을 이 지구성에 비로소 자리를 잡고 출발하게 되면 그것이 새시대예요. 에덴 동산. 새하늘과 새 땅이라는 거예요, 성경에 말하는.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봐라 이거예요, 이것이 거짓말인가. 그래! 그럴 것이 아니라 그래! 가정이 아니라 사실 그렇다 말이예요.
오늘날 이 세계를 바라볼 때에 이 세계는 사탄 수중에 놓여 있기 때문에 외적인 형이 있지만 사람을 짓지 않은 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6천 년 문화세계를 발전시켜 가지고 외형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태어나면 생활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닦아 들어오는 것이고, 이 내적인 세계에 있어서는 아담 새끼를 길러 나오는 것입니다.
가인 때에, 아벨 때에부터 노아 때에도 그거 아담 새끼예요. 그래 6천 년 바라 가지고 아담 하나 키워 놓은 거예요. 아담 하나. 아담 하나 키워 놓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예요, 이게. 그러나 오늘날 지상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창조이상으로 세웠던 참의 참 될 수 있는 부부를 , 하나의 자녀를 못 세워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기독교의 종교관은 제일 좋은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으로 보면 메시아를 축복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념을 가지고…. 그러니 앞으로 민주주의를 지나 앞으로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그 주의는 무슨 주의뇨? 참부모를 위주로 하여 하나님을 중심삼은 대가족이상주의 사회가 지상천국이예요. 그런 세계로 가는 거예요, 지금.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그러한 세계를 향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문화도 그런 면으로 움직이고, 모든 것이 그렇기 때문에 심정에서 심판받는 거예요, 심정에서. 그러면 오늘날 어떤 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 사상이 있으면 그 주의 사상을 얼마만큼 잘 표현했느냐? 그렇게 표현한 모든 것은 문화재냐? 여기에 있어서 역사적인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런 심정의 하나의 세계가 반드시 나오면, 이런 우주적인 결실체로 말미암아 우주적인 결실의 가정이 나올 것이고, 이 역사적인 가정의 기준이 나오는 동시에 종족이 벌어지고, 종족 기준이 나오고, 민족과 하나의 국가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천하는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느냐? 하나의 결실을 세워서 뭘할 것이냐? 이 세계적인 결실을 거두자는 것입니다. 백 배, 천 배를 번식해 가지고 뭘할것이냐? 이 세계를 몽땅 품자는 거예요. 그런 아버지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러한 견지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들이 나가는 길에 있어서는 뭘하려고 여기로 모여 왔느냐? 뭘하려고 모여 왔느냐 이거예요.
찬란히 꽃 피어 결실할 수 있는 가을 절기는 다가왔어요. 왔으니 여러분들은 다 죽은 돌감람나무를 전부 다 잘라 버리고 어서어서 가을 되기전에 접붙여 가지고 다시 번식하자는 거예요. 이것이 복귀입니다. 그래서 모가지를 자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의 모가지를 자르는 거예요.
세상에 뭐 내 새끼가 귀엽고…. 이것도 다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힘을 일으킬 수 있는 종교라야 마지막 종교입니다. 그런 종교라야 됩니다. 예수님도 말하기를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어요, 누구보다도. 무슨 여편네나 자식이나 무엇보다도 전부 다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어요.
괜히 그랬나요? 전부 부정하라 이거예요. 그렇다고 영원히 부정하라는 게 아니예요. 이것을 자르고 접붙이려면 자른 그 가지를 옮겨 놓지요. 그렇지만 뿌레기는 딴 가지로 해서 접붙이는 거예요. 조금만 참으면 그 가치 이상의 나무에 접붙이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밑지는 장사 안 한다는 거예요. 접붙인 뒤에는 한 3년 돼야 열매가 맺히지요? 그렇잖아요?
그러면, 이러한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앞으로 우리들은 어떤 것을 찾아야 되겠느냐? 이런 역사 도상에서의 하나의 실체, 하나의 실체를 …. 우리는 어떤 문화 세계를 바라보고 나가야 되느냐? 이러한 이념적인 견지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을 소개하고 메시아의 심정을 소개하고 기독교 중심삼고 하나님이 섭리하던 역사적인 심정을 통하여서 소개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역사관을 지녀 가지고 이 시대적인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는 사명이 이 천하세계에 널려져 있는 기독교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해야 할 것이 기독교 이외의 수많은 종교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것을 통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의 사정을 알아 주고 또 모든 그 소망과 일치될 수 있는 한 점을 세워야 됩니다. 그러기 전에는 그걸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들은 비록 참석한 내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여기서 전하는 말씀은 이제…. 그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하늘을 위하고자 하는 그 소망과 그 사정이있으면 그건 위대해요! 자기를 세워 변명할 수 없는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알고 보면. 일을 죽도록 하고도, 등골이 꾸부러져도, `아이고 선생님, 무슨 뭐 전도고 무엇이고 이렇게 다 기간을 정해 가지고 하게 해서 우리 젊은 녀석들 왜 등골이 나오도록 이렇게 만들어 줬어요? '라고 항의 못 해요.
그런 자리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버지, 뼛골이 더 부러지도록 하옵소서!'하게 돼요. 파고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꼬부라져야 돼요. 알고 보니, 내가 우는 자리에 들어가 보니 우는 나 자신 보다도 더했던 아버지가, 그 아버지가 나를 위로해 주어야 할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얼마나 분해요?
나보다 더 억울하고, 나보다도 더 불쌍하고, 나보다도 더 처량한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여, 이 보따리를 전부 다 맡고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오' 전부 기도 그렇게 하지요? `복은 전부 다 내게 주고 어려운 것은 당신 가지소' 그런 불효자가 어디 있어요? (웃음) 그건 도적놈이지. 도적놈이예요, 도적놈. 효자가 그럴 법 있어요?
효자가 `아버지, 술을 먹든, 어떻게 되든, 죽든 모르겠습니다. 죽어 자빠지더라도 당신이…' 그러면 되겠느냐 말이예요. 통일교회는 이런 운명이예요. 벌거숭이가 되자 이거예요. 아버지를 위하여 벌거숭이가 되자 이거예요. 그리하여 벌거벗은 몸으로서 멍든 저 하나님을 찾아 나가 아버지를 찾아서 충성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어느 시대의 기독교인들보다 간절하다 이거예요. 이러면 하나님이 우리한테 끌려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민족이라면 한국에 재림주는 온다, 오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결론도 지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충성심이 일생 동안, 몇 대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 있으면 끌어올 수 있는 거라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알았습니다. 이런 세계를 향하여서 찾아 나오나니 외적인 세계를 수습하고 환경적인 생활 무대를 , 사탄 세계일망정 하나님을 위주하여야 합니다. 민주진영인 기독교 이념권 내에서 외적인 장비를 해 나가고, 여기에 심정적인 내적인 직계 아들딸을 세워서 이것을 상속시키기 위한 날이 심판날입니다. 없다고 낙망하지 말자는 거예요. 벌거벗었다고 낙망하지 말자는 거예요.
망할 수 있는 운세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 사람은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하더라도 침뱉어야 됩니다. 그 진수성찬에 침뱉어야 됩니다. 그거 먹다가는 죽어요, 죽어요. 6. 25 동란 때에 전부 다 점령당할 때가 되었는데, 아이고 저거 보물 단지를 가지고 가야 되고, 아이고 저거 뭐 우리 옷가지가 얼마고, 저거 뭐 어떻고 뭐 어떻고 하다가는 다 죽었지 별 수 있어요? 단단히 각오해야 됩니다. 우리는 광야의 나그네입니다. 나그네입니다. 도망가기 쉬운 자리에 있어야 돼요. 도망가기 쉽게 만들어야 돼요. 그런 과정을 거쳐가야 돼요.
이리하여 아버지를 만나게 될 때는 어디서 만날 것이냐? `아이고, 나는 아버지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자리잡고 큰 호령할 때 만나겠다' 그건 불효자입니다. 통일교회 신자들은 아버지를 어디서 만나느냐? 겟세마네 동산 위에 나타나던 아버지를 만나야 되겠고, 십자가의 산상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우시던 그 아버지를 붙들고, 십자가의 도상에 찾아와 눈물 흘리는 그 아버지를 붙들고 통곡할 수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효자입니다, 진짜 효자. 이런 사람들이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 사회의 어떤 사회제도, 어떤 사회풍습, 어떤 사회상황이 휩쓸어 가지 못해요. 남루한 옷을 입더라도 천만금을 장식하여 잘 입은 부잣집 아들이 부럽지 않아요. 아무리 굶고 앉아 있는, 밤을 새워 눈물을 흘리는 자리라 해도 어느 왕궁에서 풍류를 갖추어 가지고 처량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무슨 시를 감상하는 것보다도 더 귀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 세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세계가 싹터 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가. 아침 새벽이 찾아오게 될 때는 더 캄캄한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아가씨들, 여러분들을 대해 내가 뭘할 것이냐? 여러분들을 세워서 뭘할 것이냐? 내가 바라건대는 역사적인 수확의 결실체입니다. 수확의 결실체예요. 이를 헤아려 볼 때에 하나님이 울 수 있는 수확의 결실체입니다. `야 네가 얼마나 자라느라고 수고했느냐? 네가 얼마나…'
내가 요즈음 길가에 가다가도 돌짝밭 틈에 자라는 소나무 같은 것을 보며 `야 통일교회가 저 나무와 같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나무 꼴은 안됐지만 세계의 최고의 명승지에, 최고의 참 잘난 바위 절정 위에, 우뚝 솟은 그 최고 꼭대기에 멋지게 자란 소나무 한 그루에 무엇을 비하겠느냐? 그것 돼라 이거예요. 그것만 되게 되면 이 천지에 있는 소나무 다 주고도 안 바꾼다 이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입장에서 효성을 하고 어떤 입장에서 충성을 해야 되느냐? 웃고 춤추는 자리에서 효도의 명분, 효자의 명사를 받는 사람은 잘못 되어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는 자리 춥고 처량한 자리에서부터, 거기서부터….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하나님의 진액을 받는 자가 아니예요.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역사적인 진액을 받지 못하는 자녀예요. 하나님의 역사적인 진액의 결실을 거두려 하는 이 수확의 가을 절기, 끝날에 있어서 완전한 수확의 결실체로 등장할 수 없다 이거예요.
그러므로 그러한 소질을 가지고, 우리가 가을 절기에 태어난 하나의 꽃봉오리가 되고 하나의 씨를 맺을 수 있는 인연이 돼 가지고 있는 모든 진액을 끌어당겨야 됩니다. 그 뿌리를 통해 끌어당겨라 이거예요. 우리는 6천 년 뿌리로부터 끌어당기는 거예요. 당기는 거예요. 당길 수 있는 자력의 힘을 가진 이런 자가 되어야만이 자기 스스로 하나의 결실을 완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태풍이 불어 올 시기에 있어서 결실할 수 있는 나무면 나무, 대면 대, 줄기면 줄기에 있어서 불어오는 태풍의 고난을 거친 후에야 되는 것입니다. 혹은 어느 날은 침수의 원통한 사정에 부딪치게 될 때에 하나의 결실로 나타난 그런 씨라 할진대, 그도 역시 침수의 고난을 겪은 가지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피해 가지고는 그 나무때기에서 결실을 요할 수 없거늘, 복귀 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뿌리로 하여 하나의 복귀섭리의 줄기를 중심삼고 가지와 잎에 있어서 하나의 결실을 세우고자 하는 그 한 마당에 있어서 결실될 수 있는 그 자체는 모든 요소를 흡수해서, 여기에 원수 될 수 있는 요소를 즉석에서 제거해 놓고, 남이 끌어당기지 않는 본질적인 요소를 백 퍼센트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라야 됩니다. 그래야만 완전한 6천 년 심정의 결실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런 연고로 여러분들은 지나간 날의 역사를 알고, 오늘날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알고, 다가오는 미래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이 가는 길을 가고 하나님이 오시는 길을 모실 수 있는 길을 가려니 죽어라, 죽어라 이거예요. 울라 이거예요. 울라는 거예요. 뉘시깔을 땅에 대고 울라는 거예요.
예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 흘리고 땀을 흘렸어요. 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거예요. 피를 흘려 가면서 싸우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사탄이 제거돼요. 그것이 최일선입니다. 하나님의 일선이자 사탄의 일선이니 이 사탄을 제거해야겠다구요. 이것이 현재 통일의 무리들이 각오하고 나선 길입니다. 알겠어요? 「예」 알겠어요? 「예」 이래야만 여러분들이 역사적인 섭리의 뜻 앞에 거두어질 수 있는 하나의 결실체가 되는 거예요. 거기에 대한 역사적인 비판을 좀 해주면 좋겠지만 시간이 많이 갔어요.
그런 실체가 되면, 지난날의 역사의 모든 인연이 그때를 맞기 위해서는 와서 의논하고야 인연맺는 거예요. 가지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 그 곁가지가 되려면 말이예요, 그 본가지한테 인연맺고 완전히 모든 요소가 접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리가, 개인을 대신하고 가정을 대신하고 종족을 대신하여 그런 형태가 나타날 수 있는 이 땅 위의 어떤 모임이 벌어지면 그 모임을 통하여 세계는 전부 다 굴복할 것입니다.
시집오는 아가씨가 아무리 학박사라 해도, 아무리 잘나고 그 나라의 여성을 대표하고 뭐 세상의 훌륭한 명사를 다 갖다 붙였다 하더라도 시집오는 데 있어서 병신 동생을 얻어 왔다 하면, 자기의 병신 시동생을 얻어 왔다 하면 훌륭한 학박사 아주머니도…. 또 그 맏동서 되는 사람도 병신 맏동서라면 꺼꿀잡이 되지요? 그렇지만 병신 맏동서에 대해서 '형님/ 해야지 별수 있나요? 그러니, 심정을 통하여서는….
이 심정을 어겨 가지고 `이까짓 게 뭐야? ' 이랬다가는 그건 가정법에 걸리는 거예요. 종중을 무시하는 것이요, 종족을 무시하는 것이요, 문중을 무시하는 것이므로 가정법이 용납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 원칙적으로 효성을 다하는 하나의 며느리가 되려면 아무리 곰배팔이요, 봉사고 뭐 그런 사람이라도 그를 대해서 전부 다 `형님' 해야지 별수 있나요? 안 그래요? `형님' 해야지요. 그렇기 때문에 심정세계에 있어서 아버지와 딸의 인연을 맺자 이거예요.
그러면 우리들은 지금 앞으로 찾아오는 하나님의 심정 말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가 자랄 적부터의 것을 전부 다 알아 가지고 그때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시집은 오늘 왔을망정 알기는 옛날 몇 대조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집올 적보다 그 이상 더 알면 그 색시가 그 집의 혈대를 살리는 것입니다.
기독교사상 위에 있어서의 뭐 전통, 무슨 통, 기름 통, 망통 다 주장하고 있지만, (웃음) 그 가운데 있어서도 시집온 며느리가 되어 가지고 다 모르지만 케케묵은 옛날 조상의 인연을 다 캐서 그걸 알아 가지고 선조들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우리 선조도 이렇게 거룩했다' 하면서 자녀를 위해서 가르쳐 줄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뜻있는 부모라면 그 며느리를 택해서 자기의 후대의 상속자로 하는 것이 천리 원칙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좋다, 학박사가 못 되어도 좋다 이겁니다. 모두 그런 면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병신 며느리라도 그런 심정만 갖추어 가지고 학박사의 며느리보다도 훌륭하게 되면 그 병신 며느리가 상속받는 거예요, 심정의 세계에서는 .
통일교회가 이단시되는 데, 이단이라는 말을 우리 많이 듣고 있지요? 여러분, 이단들이지요? 이단이예요? 「예」 이단입니다. 진짜 이단이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도둑질하겠다는 게 이단이지요. (웃음) 그거 좋다는 거예요.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심정을 도둑질하자 이거예요. 심정을 전부 다 자기들은 안 주고 우리만 가지겠다는 그게 도둑놈 이단이지요, 뭐. 그렇게 알고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말이예요, 좀 더 고차적인 면에 있어서 이런 심정적인 상속자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되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예」
완전히 접붙이라구요. 완전히 울어 보라구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저 몸부림쳐 보라구요. 또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그저 아, 교회에 가고파서 몸부림쳐 보라구요. 그러다 보면 어미가 새끼를 닮는다구요. 새끼가 어미 닮는다고 그러나? 어미가 새끼 닮는다고 그러나, 새끼가 어미 닮는다고 그러나? 「새끼가 어미를 닮습니다」 그렇군 그래. 어미가 새끼 안 닮고? 「예」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내가 바라는 것은 어미가 새끼를 닮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한다 말이예요. 더 잘나라는 거예요. 자식이 잘나 가지고 부모가 따라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이, 심정의 세계에서는 그게 통하는 거예요. 사정이…. 오늘날 사탄세계에서는 자기보다 잘나면 모가지 자르지요? 원수의 세계에서는 그러는 거예요. 도적놈들, 강도들이거든요. 심정의 세계에서는 새끼가 어미를 닮는 것이 아니고 어미가 새끼를 닮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보다 더 뜻을 대해서 통곡을 하고 뜻을 대해서 그저 감사해야 됩니다. 내가 그걸 보고 `아, 네가 용하구나. 같이 울어 주고 싶고, 아주 같이 있고 싶고, 같이 따라가고 싶다' 이러고 싶으면 좋을 텐데 꺼꿀잡이 되어 있다 이거예요. 까꾸로 돼 있지요? 까꾸로 되어 있어요. 그 집안은 잘 안 된다 이거예요.
어미만 닮겠다면 그 집안 안 됩니다. 그런 못난 어미만 되어 가지고는 안 돼요. 하나님은 자기보다도 더 훌륭해지기를 바란다구요. 하나님이 제일 욕심장이예요. 제일 능력과 권능과 수완이 있으신 그분이 자기보다 훌륭한 아들딸이 나오면 좋겠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말하면, 어떤 큰 예술가가 조각품을 떡 만들었는데 쓱 만들어 놓은 손가락이 뭘 쓱 갖다 주고 말이예요,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하고 말도 한다 이거예요. 그거 얼마나 좋아요. 아들 낳아 기르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이야, 이건 내 손이 저렇게 만들었구나…' 그러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도 그렇거든. 하나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선생님도 그렇고. 뭐, 미안합니다만 선생님도 그렇다는 거예요.
늙은이든 뭐 할애비든 누구든 할것없이, 아가씨든 뭣이든 총각이든 할것없이. 전부 다 어미가 새끼를 닮겠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선생이 통일교회 패들 닮겠다 이거예요. `야, 잘 싸운다. 어서 가 봐야지' 하며 사과라도 사 가고 뭐라도 사 가야지…. 여러분들이 본부에 와서 `사과 주소' 그럴 때 `야, 내가 너희들에게 사다 주고 싶고 그렇게 됐음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안 됐지요, 이게? 미안합니다.
죽으라는 거예요. 그러한 자리에 서면 여러분은 절대 망하지 않아요.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나오는 데는 파란 곡절이 많았어요. 신기록, 역사적인 최고의 신기록을 내는 아들딸을 한번 내봤으면…. 선생님이 도둑놈 같은 그런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예요. 필시 그런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움직이는 터전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심정을 닦아야 합니다, 거기서.
그리하여 하나의 결실을 거두어 가지고 거둔 그것을 갖다 줄 수 있어야 됩니다. 에덴에서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씨를 심어 가지고 거기에서 거둔 씨를 또 갖다 천하에 뿌려 가지고 번식시키려 하던 그 이념적인 기준이 성취 안 됐어요. 그러니 그 씨들을 거두어 가지고, 이 아들딸들을 거느려 가지고 세계를 전부 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정복할 수 있는 일을 선생님이 하겠다 이거예요. 우리는 그런 결의 밑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역사적인 결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 얘기했습니다.
그런 결실체가 됐다는 인정을 해주기 위한 날이 자녀의 날이예요. 그런 결실적인 가치를 갖고 여기 와서 축하해야 이날을 축하할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알겠어요? 「예」
아버지 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영원한 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울기를 같이 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싸움도 같이 싸운 아버지, 그 아버지는 나와 영원히 같이 살 아버지, 그 아버지는 역사에도 나와 같이, 시대에도 나와 같이, 미래에도 나와 같이 남아질 아버지이옵니다. 그런 아버지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뵙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소개해 주는 도의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를 알 수 있다 하면 저희에게 무엇이 또 아까운 것이 있사옵니까? 무엇 또다시 주저할 것이 있사오리까? 그 아버지를 상봉할 수 있는 길을 알고 나선 저희는 발이 째지고 발이 끊겨도 염려될 문제가 아니요, 이 몸이 상처를 입어도 염려될 문제가 아니요, 잃어버린 부모를 찾을 수 있는 이 도상을 알았다 할진대는 그 이상 소망이 어디 있으며, 그 이상 행복된 한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리하여 그 부모를 중심삼은 국가, 세계를 통하여 하나의 이상세계를 향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 그 세계를 나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날의 영광을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섰다 할진대 저희가 못 갈 길이 어디 있으며 못 싸울 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모든 것 희생시켜 이 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나깨나 먹으나 오나가나 이 일만을 일편단심 잊지 말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여든 당신의 아들딸들은 어려운 자리에서 싸웠습니다. 굶주리는 자리에서, 떠는 자리에서, 욕먹는 자리에서, 매맞는 자리에서도 혹시나 자기로 말미암아 피해가 될까봐 참기를 혀를 물고 참아온 당신의 아들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원통스럽고 분한 사정이 많사오나 저희 사정보다 더 원통한 아버지 사정이 있는 것을 알기에 백 번 참아야 되고 천 번 참아야 할 자신을 발견하였나이다.
이러한 길에서 참아온 당신의 아들딸들, 오늘 이 본부의 이 한 자리를 찾아왔습니다. 온 이들을, 아버지, 세상과 같이 대접 못 한 것이 민망하옵니다. 세상의 어떤 모임과 같이 즐기며 이들이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모일 적마다 말해야 하는, 고생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되고 수고의 고개를 넘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원통하고 분하옵나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아옵니다. 우리는 세계를 앞에 놓고 다시 살릴 수 있는 책임자로서 이렇게 가야 할 역사적인 책임이 여기에서 솟아난 것을 알았기에, 내 쓰라림을 참고 내 슬픔을 억누르고 아버지를 따라가다가 밤이면 별빛을 바라보고 아버지를 불렀고, 밤이면 강가의 강물을 바라보고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밤이면 강가의 바윗돌을 붙들고 아버지를 불렀고, 또는 나무허리를 붙들고 아버지를 부르던 당신의 초라한 아들딸이 여기 왔습니다.
이들이 당신이 허락하던 아들딸이면 당신의 모습을 대신한 상속의 인연을 받을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는 아들딸들로서, 아버지, 인정하시옵소서. 역사적인 수고의 담을 이들 앞에 맡기시옵고 역사적인 한의 어려움을 이들 앞에 맡기시어서 이들을 통하여 원수를 심판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승리의 아들딸 되게 하옵시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10월 초하룻날, 자녀의 날인 이 날, 이 역사적인 인연을 말하게 될 때에 목이 메일 날, 천번 만번 꿈에 불러도 만날 수 없었던 날, 저희들이 생각을 해도 생각할 수 없는 날이 오늘입니다. 오늘을 저희들이 맞이하여 이날이 아버님의 은사권 내에서 세워진 것을 저희들은 진정 머리 숙여 감사드리옵니다.
아버님, 이 자식도 이 길을 나오게 될 때에, 눈물 뿌리는 자리에는 내가 있다고 아버지께서는 권고하였사옵고, 매맞는 자리에서도 조금만 참으라고 명령하였사옵고, 암담한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소망의 동산을 아버지께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이런 곳이요, 네가 죽더라도 갈 곳은 이런 곳이라고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의 인연이 그립소이다.
그와 같은 길로 인도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나온 길을 이들이 상속받아 그런 자리에 설 때에 아버지는 옛날에 나를 대하던 아버지로 나타날 것을 약속을 받고 이들을 내몰았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그런 인연을 맺고 이런 자리에서 아버지라 부를 줄 아는 ,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영원히 울고 싶을 수 있는 간절한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죽어서라도 영원히 묻히고 싶을 수 있는 , 떠나고 싶지 아니한 하나의 보금자리, 거룩한 성소를 자기들이 만들고자 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런 성지를 만드는 동시에 성소를 만들고, 성소를 만드는 동시에 실체의 성전을 건설하여 승리의 왕자로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만들 때까지 저희들은 남은 투쟁 노정에서 망하고 쓰러져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는 가겠나이다. 앞으로 몰아치는 세계적인 환난의 고비가 있다 하더라도 가겠나이다. 어떠한 죽음의 첩첩한 거리라도 허락한 길이 있다면 가겠나이다. 이런 결의와 맹세는 이미 하였사오니 그런 길을 향하여 따라 나선 이들도 강하고 담대하고 게으리지 말아서 적진을 향하여, 남아진 투쟁을 향하여 승리의 결정을 짓기 위한 주도적인, 하늘의 책임을 질 수 있는 하늘의 장병들이 되게 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과 땅과 인류와 그 가운데 복귀 할 수 있는 참부모와 참자녀와 참인류와 첨천지…. 그리하여 아버지를 모셔 놓고 영원무궁토록 찬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가 오늘날 저희들이 싸우는 투쟁의 발판을 그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시어, 이 일만은 이루어서 영광받아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써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는 그 세계를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런 뜻을 생각하면서 시작! (식구들과 함께 부르심) (녹음이 잠시 끊김)
여러분들이 와서 말씀을 들려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러니 갈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잘 느꼈지요? 그래, 안 그래요? 응? 「그렇습니다」 때는 되었습니다.
이걸 생각할 때에 젊은 피가 어느때에 꺼지겠느냐? 젊은 피가 어느 곳에서 없어지겠느냐? 한스러운 시대는 지나가고 이때를 맞이하여 최후의 일격전을 가해야 할 민족 앞에 하늘편으로 끌어 넘겨야 할 사명과 책임을 짊어진 이런 투쟁 마당에 있어서 있는 정력과 있는 기백을 다 갖추어 승리의 왕자가 되어 돌아오기를 하늘은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놀음을 우리들은 하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거예요. 그런 결의를 재무장하기 위해서 모인 거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여기에 이번 모인 무리들이 나가서 삼천리 반도를 잡아 쥐게 될 때는 전부 다 종이장같이 말려 들어오는 느낌을 갖고 있어야 됩니다. 이걸 펼치게 될 때는 들어왔던 것이 쭉 펴지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야 하늘을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기가 죽어 가지고는….
바위에 허리가 부러졌어요? 눈깔이 없어요, 팔다리가 없어요? 생각이 없느냐 말이예요. 피가 끓지 않아요? 정신이 없느냐 말이예요. 우리의 원수가 지금까지 남아 왔다는 거예요. 6천 년이라는 이 더러운 때가 우리 시대까지 찾아왔다는 것, 분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조를 원망하고 나서는 무리예요. 그렇지요? 영계의 영인들을 원망하고 나서는 무리들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를 원망하고 나서는 무리입니다. 그러니 이단 취급받지요. 좋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 개체가 잘 되자는 게 아니예요. 세계를 살려 놓고 우리는 죽자는 거예요. 세계가 살 때 우리 살자, 이것이 하늘이 남기고 간 하나의 새로운 역사의 전통이요, 새로운 역사 시대에 있어서의 국민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이 오늘날 여러분이 바라보는 시선 무대, 여러분이 발을 옮겨 딛고 있는 터전, 바로 그 자리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찬 방에서 새우잠을 자면 선생님도 그런 잠을 잡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시키기 전에 하고 시키는 거라구요. 통일교회 교인들은 원망을 못 하는 것입니다. 어느 녀석이라도 그런 말 하면, 당장에 앉아 가지고 몇 마디만 이야기하면 통곡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래도 빚지지 않아요. 빚지지않아요. 여러분에게 한푼이라도 보태 주려고 하는 거예요. 알겠어요? 「예」 이 한을 품고….
선생님이 이 길 걸어 나오면서 감옥살이도 많이 했어요. 들락날락하기를 한 십여 차례 가까이 했단 말이예요. 그만 했으면 많이 했어요. 왜정 때부터 투쟁해 나온 거예요. 그러니만큼 이번에 왔다가 갈 때는 그런 결의를 가지고 삼천만의 모든 얼을 잡아 움켜 쥘 수 있는 기백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천하가, 하늘이 떨어져도 또 간다는 이런 마음가지고…. 전부 기들이 죽어 가지고, 배가 고파 가지고…. 여러분들 일주일씩 다 금식했지요? 일주일 굶는 게 문제가 아니예요. 알겠어요? 「예」
이래 가지고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이 민족이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예요. 그래야 이 민족이 살아남는 거예요. 세계가 지기 싫어하는 십자가입니다. 자신 있나요? 「예」 자신 있어요? 「예」 정말? 「예」
우린 죽어도 다 한 구덩이에 가 죽자구요. 괜히 뭐 이렇게 싸우다 나이 많아 가지고 편한 자리에서 죽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런 용사답게 멋지게 세계를 안고 한번 싸우다가 쓰러지고 싶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이 문제가 아니예요. 한국이 문제가 아니예요. 한국이 문제가 아니예요. 말을 들어 보라구요, 얼마나 엄청난 것인가?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라구요.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제 다시 뿌려질 수 있는 씨들이 돼야 되겠다구요, 씨들. 씨가 되는 데는 거짓 씨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거예요. 말씀과 인격과 심정에 있어서 일체가 돼 가지고 참씨가 돼야 됩니다. 쭉정이가 되어선 안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예」 그러려면 자기 몸도 썩어져야 돼요. 밀알이 하나 썩어지지 않으면 생명체가 살게 되질 않아요. 그렇지요? 「예」 여러분들 선생님이 고생한 터전에서 지금까지 뿌리박고 살아났어요. 그런 거 아니예요? 또 여러분들이 그런 가지에 오게 된 것도 이 우주가 허락한 공식적인 천칙이예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려면 그런 과정을 거쳐야 부모의 사명을 다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 그러한 책임을 짊어지고 앞으로의 남아진 우리의 계획 기간을 힘차게, 어깨로 밀고 몸으로 밀고 배로 밀고 발로 밀고 이빨로 물어뜯고 움직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최대의 결의를 하고 여러분이 왔다가 돌아가 주기를 부탁한다구요. 알겠지요? 「예」 알겠지요? 「예」 부인들은 공손히 대답해야지요.
여기 있는 대개 대중을 보게 된다면 한 80퍼센트가 젊은, 전부 다 아주 선생님의 동생 같기 때문에 반말해도 괜찮아요. 나이 많은 사람은 이다음에 공대해 줄께요. 그러나 아주머니들은, 훌륭한 아주머니들은 나이 어리지만서도 훌륭한 사람 있으면 그건 공대해 줘야 된다구요.
그러한 결의 밑에서 나가 보자구요. 알겠어요? 「예」 아주머니들, 예? 「예」 해와가 죄가 많지요? (웃음) 어때요? 그거 몰랐어요? 죄가 많지요? 「많아요」 그렇지. 죄 많은 사람은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만하고 묵도로써 폐회를…. (`나의 맹세'로 선서를 함)
오늘 이것이 아버지 앞에 여러분들이 새로운 각오를 맹세한 거예요. 알겠어요? 「예」
승리의 영광이 이들과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아들딸이 아버지의 머리 앞에 모였사오니 자녀의 명분을 갖추어 아버지 앞에 인연맺을 수 있는 자녀의 날로서 아버지 받아 주시옵소서. 맹세한 이 모든 조건 조건이 하늘 앞에 불의한 심판의 조건 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영원히 칭찬의 조건을 남길 수 있어서 승리의 선조들이 되시사 후대의 후손들 앞에 찬양을 받을 수 있는 참다운 조상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들로 말미암아 민족과 세계와 인류와 천주가 해방을 받으며, 영원한 영광 가운데 잠길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오니, 이것을 아버지를 중심삼고 하나의 세계를 완결하여 아버지를 위주로 한 하나의 식구의 이념 세계를 이루시옵소서. 그때까지 저희는 원수가 남아 있는 연고로 원수를 대신하여 싸울 것을 맹세하였사옵니다.
이 모든 것을 길이 받으시옵고 축복받고 자랑받을 수 있는 그때까지 한 생명이라도 떨어지지 말고 이 대열 가운데서도 길이길이 아버지 보호하는 뜻 가운데서 승리의 한날을 가지고 아버지의 자녀의 명분을 허락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존귀와 영광과 찬송과 기쁨이 이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길 주의 이름으로써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
<말씀 요지> 자녀의 날은 섭리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을 아니할래야 아니 할 수 없는 비참한 날-아담이 타락하던 날, 노아가 실수하던 날 등-들은 많았으나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한 날은 없었습니다. 이 슬픈 날들을 전부 없애 버리겠다는 각오 밑에서 오늘을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은 추수의 날이요 자녀의 날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거둘 수 있으나 하나님은 추수의 날을 못 가졌습니다. 또 추수한 것을 뿌리는 날을 못 가졌습니다.
부모의 손으로 거둔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손길을 통하여 뿌려지고 거두어져야 합니다. 인간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짓고는 씨를 뿌리려 하였으나 자라던 도중에 꺾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뿌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하였으니, 이 날이 심판의 날입니다.
인류 가운데 두 결실을 거두어야 할 소망의 날을 바라 나왔으니 이 날이 재림의 날이다. 어린양 잔치날은 본연의 참다운 부부를 만드는 날인데 이것이 곧 끝날의 심판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은 ‘인류의 결실’입니다.
여기 모인 사람 가운데는 여러 가지로 자랑할 무엇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주의 혹은 가정 등 자랑할 것을 가진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과 축복과 더불어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부 거짓된 것이기에 타락의 탈을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가라지밭입니다. 내 몸에는 가라지의 요소가 얼마나 있는가! 이것을 버리고 더 좋은 것을 넣어야 됩니다.
이 핏줄에는 살인강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죄의 원천입니다. 우리 조상에게 무슨 죄가 없겠는가! 내가 옥토의 입장에 설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입니다.
도(道)는 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심정까지 부정하고 나서는 종교가 최고의 종교입니다. 도인들은 때로는 포로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한 개의 주먹밥을 먹으며 어떻게 하면 타락한 세계로부터 도주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철조망을 끊고 나서는 날이 대심판의 날입니다. 철조망을 끊어야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의 철조망을 끊어야 합니다.
주의는 심정주의, 종교는 심정종교, 철학은 심정철학이라야 합니다. 6천년 전이나 후나 심정은 같습니다.
예수님이 독생자라는 말은 다른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주라는 말은 자기밖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또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은 대가족의 주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말씀은 심정을 중심하고 하신 말씀이요, 예수님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정치도 심정적인 정치여야 합니다. 국가의 주권 이념도, 세계의 어떤 주의도 그래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찾아오실 때 먹을 것이 없어 물을 마시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이 땅은 망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는 하나님이 발들여 놓을 틈도 없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것을 실감적으로 느끼도록 가르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해방합시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니 도인들이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도인은 고생을 해야 합니다.
심정의 종교라면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풀어 주는 자가 되어야 역사를 해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영원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접붙일 때까지입니다.
나는 보잘것없으나 말씀은 위대합니다. 나보다도 더 불쌍하고 고생하시는 하나님을 더 고생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심정이 있는 곳에 하나님은 찾아오실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통곡하는 아버지를 만나려고 하는 자라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슬프고 처량한 자리에서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나라에든 갈 각오를 하고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피눈물나게 돈도 모아야 합니다.
부부를 이룬 사람에게는 이제부터 7개월간이 특별한 기간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의 상속은 골고다에서 받는 것입니다. 그것도 상속 받을 사람을 세워 놓고 상속하는 것입니다. 이 상속을 받는 자는 역사적인 상속자인 것입니다.
이 7개월간에는 예수님으로부터 상속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사람 이상 전도해야 합니다. 이 기간은 두 번 다시 없는 기간입니다. 자나깨나 전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을 축복해 주면 해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영원히 부끄럽게 됩니다. 이 기간에 책임을 못하면 음력 4월까지 또 연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