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념과 더불어 당신의 마음이 화하여 영원한 영광을 누려야 할 본연의 동산에서, 당신이 사랑의 품에서 길러 놓으시던 아담 해와의 실수로 말미암아 이렇게 한스러우신 역사를 보게 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타락의 후손 된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죄송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고, 아버지 뜻 앞에 부름을 받을 수 없는 부족한 종족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광의 그 나라, 자랑의 그 동산에서 선의 기쁨과 더불어 길이길이 당신의 사랑을 노래해야 할 저희 인간이 되지 못한 것을 저희들은 무한히 탄식하였습니다. 저희들을 통하여 모두 주관받아야 할 만물도 탄식하였습니다. 사람도 탄식하고 만물도 탄식하니, 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당신이 친히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인연적인 섭리를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오늘 당신의 복귀노정에 있어서 수고한 것을 생각하시사 모든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과거 우리 선조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시고, 이 시대 우리들의 종족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 땅 위에 같이 살고 있는 인류의 죄를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직까지 죄의 모든 근원을 청산하지 못한, 앞으로 올 수많은 후손의 죄까지 용납하여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일이 끝나게 될 때까지 당신의 구원의 섭리의 손길은 그쳐지지 않을 것을 알았사옵고, 사랑의 손길을 펴셨사오나 거둘 수 없는 당신의 애절한 심정을 저희들이 알았사옵니다. 한스러운 아버지의 심정 앞에 다시 저희들을 불러 모으신 데에는 이것들이 아버지의 영광과 아버지의 한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뜻을 알면서도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하는 불효자가 되었고, 불충한 자식들이 되었다 하여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아는 데 있어서 저희들이 완전히 알지 못하였사옵고, 하늘을 따르는 데 있어서 완전히 따르지 못하였사옵니다. 나를 중심하여 따랐사옵고, 내 일체를 중심삼아 따랐사옵고, 자기 개인이 속한 전체의 영광만을 위해 따랐사오니, 이와 같은 환경을 벗어나 당신의 뜻과 당신의 영광만을 위해 살든지 죽든지 싸워 나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저녁 전라지구에 널려 있는 외로운 식구들이 무릎을 같이 하여 부복하게 된 것을 감사드리며, 마음으로 그리던 한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모든 사정 사정이 달라 자리를 같이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흠모하고 사모하며 하늘의 소망의 한날을 꿈꾸면서 고대하던 식구들이 모였사옵니다.
이제 지금까지 이 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그와 같은 자리에서 뜻을 따라 염려하는 마음을 품었기에 저희들은 핍박의 도상에서도 참았사옵고, 환난과 고통의 도상에서도 끝까지 참아 나왔사옵니다. 이와 같은 자리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지나 끝까지 생명을 각오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이 자리에까지 따라 나오기에 수고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이들 위에 분부하여 주시옵고, 각자의 이름을 명명하시어 당신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시옵고, 당신의 영광의 존전에 승리의 축배를 드려 아버지의 영광을 친히 노래하고, 아버지의 영광 앞에 친히 자랑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전라지구에 살고 있는 수많은 백성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이들의 생명의 인연이 어디로부터 찾아와 어디에서 종결되는가를 알지 못하고 오늘의 생명 한 자체가 멎는 곳, 혹은 죽을 그 길을 닦기 위해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저희들은 가슴 아픈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저희들이 그러하올진대 당신께서는 얼마나 이 민족이 불쌍하다는 것을 느끼시겠습니까? 이제 저희 마음에 아버지의 심정을 더욱 가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의 체휼을 넘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미래까지 아버지의 심정을 갖고 나오는 그 심정을 대신하여 이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어린애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손길을 붙들 때에는 저희가 진정한 마음으로 붙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품에 품기게 될 때는 순결한 몸으로 품기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사랑에 취하게 될 때는 저희가 깨끗한 마음으로 취할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러 지방에서 이 한 곳에 찾아왔사옵니다. 이들의 사정이 각각 다를 줄 알고 있사옵고, 소망의 표준하는 바가 다를 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아버지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수습하시사 당신이 친히 빛으시어, 당신의 영광의 자리를 대신하여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본연의 아들딸로 재차 빛으시어 창조의 영광의 가치를 가하여 주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당신의 모든 뜻을 알았을진댄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심정을 알았을진대 그 심정을 내 심정으로, 당신의 사정을 알았을진대 그 사정을 내 사정으로, 당신의 싸움을 알았을진대 그 싸움을 내 싸움으로 책임지고 나설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최후의 심판의 한날을 고하는 미명에 있어서, 저희들이 남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새 아침의 광명한 빛을 바라보면서 때가 어떤 때인 것을 알아 저희들이 각성시켜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이제 40일 도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준비 과정에 있사오니, 이들이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각오를 갖고 이번 기간에 있어서 아버지 앞에 친히 인정받는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모든 시간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분부하시고자하는 마음의 모든 것을 분부하시옵시고, 당신과 친히 한 묶음으로 인연을 더 가하여 영광의 자리에 안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 저녁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도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줄 알고 있사오니, 그 아들딸들도 같은 심정을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같은 인연의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원한 승리적인 그 기준을 저희 생애노정 위에 바꿔 가질 수 있게끔 역사하시어 그들도 오늘의 기쁨을 다시 나눌 수 있는 당신의 은사의 품에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남아진 전체 위에 아버지의 영광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며,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여러분은 전라지구의 각 지방에서 모여 왔습니다. 전부 지방에서 왔지요? 「예」 전부 몇 군데나 되나요? 동에서 오고, 서에서도 오고, 남에서도 오고, 북에서도 오고, 사정도 각각 다른 환경에서 찾아왔을 것입니다.
부모가 반대하는 데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제일 가까운 형제들, 인근 친척이나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환경을 뿌리치고 찾아온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런 환경을 뿌리치고 오늘의 한 시간을 찾아온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고맙게 생각하면서 일면 자랑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혹시나 부모들한테 매를 맞아 가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진 사람이 있으면 더욱이나 그럴 거예요. 간절히 아버지 앞에 원하기를, 그런 사람 복받게 해달라고 선생님은 기도할 수 있는 거예요.
우선, 갑자기 모이라는 명령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이 이렇게 부랴부랴 모여 준 데 대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본부에 계시는 선생님이 오신다니 한번 가 봐야 되겠다' 그래서 왔겠지요? '내가 처음보는 데 어떤가 가 보자' 하고 왔을 겁니다. 본부에 있는 선생님은 젊습니다. 젊고, 잘못할 때는 닦아 세울 줄도 알고, 말을 안 들을 때는 멱살을 잡아서 곤두박질칠 줄도 압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의 기성교회 목사나 기성교회의 지도자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 통일의 신도들은 목표를 향하여 작정한 뜻을 품고 계획을 세워 가지고 명령할 때는 움직여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결의 밑에서 오늘 이 시간에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래요? 「예」 그래야 선생님이 말하지, 그렇지 않으면 구경꾼들한테 괜히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통일의 이념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이 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종주와 수많은 종교가들 앞에, 혹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독교 교직자들 앞에 서게 될 때 '나는 통일의 신도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무기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 무기는 우리만이 가진 것입니다. 이 무기의 비밀은 그들이 아무리 개인으로 노력해도 찾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그 무기를 알려면 우리한테 복종해야 됩니다.
아무리 잘났다는 학박사나 어쩌고어쩌고하는 대학의 학장이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인 대학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우리가 갖고 있으니, 그들이 이런 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앞에 머리를 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설계자의 모든 교훈을 따라 지성을 들여 가지고, 자기의 노력을 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절대 복종하여 설계도의 프로그램에 따라 자기들의 모든 행동도 일치시켜야 되고, 걸음걸이나 모든 생각도 일치시켜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통일의 신념은 천지가 움직여도 꼼짝 안 한다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이 통일을 하려면…. 혼자만 있는 곳에서는 통일이라는 말이 성립 안 됩니다. 통일이라 하면 상태가 다른 것을…. 사정이 다르고, 입장이 달라요. 거기에는 자기들이 주장하는 입장이 다르고, 자기들이 지금까지 전통으로 부르짖어 나오던 고질된 환경이 고착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청산해 버리고, 그 사정을 다 제거시키고, 어제까지 방향이 다르던 것을 전부 다 거꿀잡이로 박아 가지고 하나 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사정이 다른 두 사람보다 힘이 세야 됩니다. 열 사람을 하나 만들려면 그 열 사람보다 힘이 세야 됩니다. 열 교파를 하나 만들기 위한 입장에 서려면 열 교파보다도 힘이 세야 됩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통일! 말은 쉽지요.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오게 될 때 구경거리로 생각하고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왔다면 잘못 들어온 거예요. 수많은 영계를 통일하고 수많은 사상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 오늘날 전 세계적인 사조를 보게 될 때 민주와 공산이 대결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이것도 하나는 왼발로 하나는 바른발로 밟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굳센 사상과 아무리 굳센 신념을 가진 신앙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전부를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여유만만한 신념을 갖춰서 사방으로 뻗쳐 가지고 후려치면 휘감겨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 그 말이예요, 그래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야 통일한다는 거예요. 비실비실해 가지고 통일하자는 이따위 사람들이 아니에요. 바람에 밀려 가는 허수아비 같은 그따위 사람들은 통일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일신도라 할진대는 그 정신에 있어서 역사를 대신하고, 과거·현재·미래를 대신하는 데 있어서 지금의 어떤 사조와 부딪쳐도 그걸 깨뜨리고도 남음이 있어야 됩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수소폭탄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도 남음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무슨 포를 쏘고 소총을 쏘고 하더라도 원자탄이 터지는 거에 비하면 이까짓 것들은 터지나마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위력을 가진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여기 전라지구에 그런 사람이 몇 사람 있습니까? 어디 '나 그런 사람되고 싶습니다' 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나 그런 사람 되고 싶소' 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구요. 똑똑히 손들어 봐요. 이건 뭐 5분의 1도 안 되는구만. 말도 안 됩니다. 뭐하러 다 왔어요? 이거 허수아비들 데리고 무슨 얘기를 하느냐 말입니다. 허수아비들 데리고 무슨 얘기를 하느냐구요. 구경꾼들이라구요. 그러면 다시 손들어 봐요. '나 그런 사람 되고 싶습니다' 하는 사람 다시 손들어 보라구요. 내리세요.
조그만 동네에 있어서도 왕초 노릇을 하려면 무엇이 세야 되지요? 주먹이 세야 돼요. 주먹이 세든가, 주먹이 약하면 머리가 좋든가, 머리가 안 좋으면 발이 세든가, 무슨 재간이 있어야 됩니다.
앞으로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통일이라는 것을 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옛날에는 장비를 갖춘 무력을 가지고 나폴레옹 같은 양반들이 모든 구라파 천지를 점령했었습니다. 그렇게 늠름하게 갖춘 군대를 가지고 밀어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교로써 통일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을 설명하려면 수십 년은 걸려야 됩니다. 지극히 어려운 거라구요. 지극히 어려운 것이지만, 이것을 알고 보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늘과 땅을 통일하고' 그런 노래를 부르지요? 하늘땅을 통일하고 그 다음은 뭘 통일합니까? 우리는 통일을 부르짖고 나섰습니다. 통일을 하는 데는 대우주를 통일하기 전에 무엇부터 통일해야 되느냐? 보통 어떤 사람이 뜻을 품고 공부해 나갈진대는 '아, 내가 공부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 가지고 한번 대통령이 될 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그 나라의 모든 백성을 통일한 것이 아닙니다. 통일 원칙이 그래요. 절대 안 돼요. 아무리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대통령이 영원불변한 대통령이 아닙니다.
역사는 변천하면서 혁명 과정을 거쳐 더 큰 세계로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선의 시대로부터 가정적인 선의 시대, 사회적인 선의 시대, 국가적인 선의 시대, 세계적인 선의 시대, 그다음에는 천주적 하늘땅의 선의 시대, 그리고 하나님적 선의 시대로 진행해 나간다 이겁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흔히 부르짖기를 '아, 나는 양심적인 선한 사람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선한 사람이냐 이겁니다. 자기 개인 입장에서 입증할 수 있는 선한 사람이라면 시시하니까 그만둬라 이거예요. 하늘은 개인에서 인정할 수 있는 선한 사람을 요구치 않는다는 거예요, 왜? 이 시대가 세계주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선을 입증하여야 할 인간의 가치를 찾고 있는데, 개인을 중심 삼고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뻔뻔스럽게 하나님 앞에 뭐…. 이런 덜 떨어진 녀석들이 있단 말이예요. 그래서 옛날에는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요즘엔 안 하지만 말이예요.
그러니 대우주의 선을 지향하여 하나의 통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야망을 품은 사나이들이 그런 꿈을 꾸거든…. 선생님도 그렇잖아요? 오늘날 이 입장에 있어서 후르시초프니 뭐 케네디니 하면서 뿔개질하고 있잖아요? 자기들 장중(掌中)의 세계를 꿈꾸고 있다구요. 이 땅에 일시에 한 시대를 대표해서, 지나가는 이 세계를 대신하여 자기 장중에 넣어 가지고 한번 행사를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의 세계에서랴! 마음의 세계에서는 그것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놈의 마음 보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들이밀면 밀수록 늘어나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는 이 마음 보따리가 하나님까지도 그 주머니에 집어넣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지한 마음 보따리예요.
이런 마음 보따리를 중심삼은, 마음 보따리가 만족하는 그 기준에 있는, 마음 보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통일의 세계라는 것은 어느 정도냐? 대우주에 비하면 이 땅덩어리는 먼지 하나만도 못하다 이겁니다. 형편없이 작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대우주의 뒤통수에 가서 툭툭 두드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하나님의 머리 밑창까지, 세포 밑창까지, 뭐 숨겨진 주머니 보따리까지 전부 다 들춰 가지고 다 알고 싶어한단 말입니다. 안 그래요?
외적으로 나타난 세력을 가지고 지상 통일의 욕망을 갖고 싸워 나가는 사람들이 있지만서도, 만일에 대우주의 목적을 세워 크나큰 소망을 찾아 나가는 마음의 왕자가 있다 할진대, 마음의 세계를 통일하기 위한 왕자가 있다 할진대 그 왕자는 누구하고 뿔개질해야 되느냐? 사람하고 뿔개질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사람하고 티격태격 암만 뿔개질했댔자 사람 자식밖에 안 된다는 말입니다. 몸뚱이 세상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에 있어서 지금 문화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지식적인 배경은 자기의 외적인 생애노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몸뚱이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외적인 생애노정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내적인 생애, 영원한 마음의 세계를 꿈꾸는 생애노정에는 도움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 마음의 세계에서 대우주를 통일하여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데리고 살고, 가지고 놀고 싶은 이런 왕자가 있다면 그 왕자는 사람하고 뿔개질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후퇴합니다. 그럼 누구하고 뿔개질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하고 뿔개질해야 됩니다. 말을 알아듣겠어요? '이놈의 하나님, 있니, 없니?' 하고 말입니다. 이 길을 걸어 나선 것이 무슨 길이냐 하면 종교의 길입니다. 이 길을 걸어 나선 길이 종교의 길이다 이겁니다.
종교라는 것을 오늘날 지식적인 분야에서는 해명을 못 합니다. 마음의 세계는 신비적인 내용과 미묘한 세계의 법도를 중심삼아 가지고 원리원칙적인 법도에 의해 움직이는 고차적인 것입니다. 수리학의 몇 차원을 넘을 수 있는 고차적인 수리법을 통하여서 움직이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인간적인 수리적 조건에, 혹은 공리나 어떤 공식에 적용되지 않는 세계입니다. 척도가 다르다 이거예요.
따라서 그런 마음의 세계의 활동무대를 중심삼아 가지고 영원히 승리적인 대통일의 목적을 달성하여 거기의 왕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뿔개질하는 데 있어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인간세상에서 성현이라는 이름을 갖고 나온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갖고 나온 사람은 천법을 기반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거 뭐 시시한 것, 하나님도 모르는 그따위 주장은 다 제껴 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뭐 아침에 다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어떠한 성현이 있다 할진대 성현으로서 하나님을 절대 숭배하고, 숭배하는 그분 밑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비상한 놀음, 기묘와 묘사 혹은 이적과 기사…. 우리의 상식적인 입장에서 그 무대를 달리하는 내용을 가진, 하늘을 위주한 생활적인 기대를 가진 도인, 성자 혹은 성현들을 찾아 나가는 것이 제일 첫번째 출발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경서든지 찾아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인간이 꾸민 진리적인 내용만으로 쓰여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경서를 보게 되면 반드시 신비적인 내용이 갖추어져 가지고 상상할 수 없는 미묘한, 우리 마음세계에서 도달할 수 없는 무궁한 세계의 일면이 거기에 반영돼 있다는 거예요. 그러한 경서라야 비로소 이 대우주를 통일할 수 있는 인연의 한 부분에 쓰이게 된다는 겁니다. 그거 그럴 거 아니에요?
만일에 창조주가 있다고 하면, 가상적으로 창조주가 있다 하더라도 그 창조주는 어떠한 분일 것이냐? 사랑의 보따리에 수천만의 마음 보따리를 한꺼번에 몰아넣고, 이걸 가지고 자기 몸뚱이의 세포와 같이 지녀가지고 주고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 하나님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세계에 있어서 아무리 크게 생각하고, 아무리 여러분의 마음세계의 각도를 사방으로 뻗치게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잇고잇고 하여 최고로 이어 가지고 한 곳으로 움직이는 작용을 시켜 본다하더라도 그 마음의 끝을 알 수 없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진짜 그런 분이 있단다면 얼마나 좋겠나 말이예요. 진짜 그런 분만 있다면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게 마음의 세계예요.
여러분이 원자세계를 들여다보게 될 때, 그 원자는 전자와 양자로 되어 있어서 전자 양자가 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세계를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해명된 그 전자와 양자의 기준이 아닙니다. 더 들어가면 무궁무진한 세계의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는 겁니다. 반응적인 현상이 연결되고 연결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플러스 마이너스가 작용하려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작용하기 전에 그 배후에 플러스 마이너스 작용이 연결돼 가지고…. 전기면 전기에 있어서 자장의 한 분야를 딱 잘라 보면, 거기에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 밑창은 다 뚫어졌는데 여기의 한 면만 잘라 보아도 플러스 마이너스가 개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 자체를 보더라도, 우주의 모든 내용은 신비를 기반으로 하여 작용적인 현상의 세계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 현대 과학에서 입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런 미묘한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의 마음의 세계는 끝이 없다는 거예요. 직경이 몇천 리, 몇만 리예요. 그러니까 이 대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했지요. 이 조화의 보따리를 풀어 나가는데, 그 작용권 내에서 우리들은 놀아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이라는 이념을 갖고 나오는 어떤 왕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보다도 지으시기 전의 그 마음의 보따리에 들어가 가지고 해결짓기 위한 싸움을 해야만, 거기서 비로소 완전한 이 모든 천지의 이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이 땅의 인간 가운데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 천주를 통일할 주인공으로 맡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주인공에게 맡기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어떠한 아들딸을 바랄 것이냐 이거예요. 어떠한 아들딸을 선택할 것이냐? 오늘날 이 조그만 세계를 뭐 통일하겠다고 무슨 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지만 그거 틀렸다구요. 이걸 발판으로 하여 무한대로 나갈 수 있는 마음에 대천지의 이념을 품어 가지고 그것을 주먹에도 넣을 수 있고, 그것을 하나의 내 생활적인 장난감으로 취급할 수 있는 늠름한 모습으로서, 그런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그 마음의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욕망을 품고 달려 나오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내가 하나님이라도 '오냐, 와라!'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욕망이 있을것 같다 이겁니다. 안 그래요? 그런데 조그만 바늘끝 같이….
본래 종교인이 쩨쩨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뭐 주일날 전차 한 번만 타고 와도 죄다 하고, 주일날 콩 꼬투리 하나만 까도 죄다 하니 그 녀석들이 어떻게 할 거예요? 그것밖에 모르니 죄 아니예요? 아는 법이라는 건 죄 법밖에는 모른다 그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전기를 모르고 스위치를 잘못 만지는 사람들은 그거 몇만 볼트가 와 있는지, 몇백 볼트가 와 있는지 모르니 전부가 죽는다 이겁니다. 모르니까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통일의 용사들은 누구를 맞이하려고 나오고 있느냐? 이 새로운 천지를 향하여 내가 달려 나오는데 누구를 맞기 위해 나오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여러분들 이마에 땀이 나 가지고…. 나는 시시하게 여러분을 맞기 위해 달려 나온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밟고 밟아 세계 27, 28억의 꼭대기를 다 밟아 치우고 무엇을? 하나님을 맞기 위해서 나온 거예요. 목적이 다르다구요. 그런 사람이예요.
그러면 과거로부터 어떠한 역사적인 사조가 흘러 나와 그 사상적인 모든 형태가 오늘날의 사회를 풍미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무시해놓고, 거기에서 싹싹 다 해 놓고 '하나님, 악수합시다' 이럴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그런 신념 밑에서, 오늘의 복잡한 이 모든 사회적 환경 가운데서 생사의 기로에 부딪쳐 가지고 말할 수 없는 혼돈과 혼란이 소용돌이치는 이 마당에 여러분들이 발을 밟고 돌아가고 있다 이겁니다. 이 마당에서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거 뭐 자꾸 들이 깐단 말입니다. 어디로? 한없이 깊은 데로 몇 천 리 몰아내어 나갈 거란 말입니다. 죽음의 길 가더라도. 오늘날 현대문명에 있어서 지금까지 신을 부정하여 왔지만, 불원하여 공산주의가 민주주의에 승리한다면 민주주의 세계의 3분의 2를 모가지 자를 것입니다. 종교이념을 가진 10억 가까운 인간의 모가지를 자를 것입니다. 앞으로는 정치가들이 정책을 세운다 할 때 공산주의 이념보다도 신이 있다고 하는 이런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가지고 안 나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이치가 뻔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의 정부 세계로 넘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런 환경에 처해서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먹고 자빠져 가지고 박혀 있어 봐라 이겁니다. 이건 어느 시대에 밥이 되고 어느 시대에 그렇게 거름이 되지…. 시대를 위하여, 새로운 세계를 위하여 창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부패해지고 혼돈해지고 환경이 무너지는 소용돌이와 같은 환경에 몰아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물리치고 새로운 무엇을 붙드는 데서부터…. 그러면 좌우가 세계를 밀어대지만, 내 한 자체를 밀어대는 겁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에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세계적인…. 미·소의 투쟁이 단지 미·소만의 투쟁이 아닙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투쟁이요, 또한 대한민국만의 투쟁이 아니라 이것은 내 몸 마음의 투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 말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내 몸을 무시할 수 있고 내 마음을 무시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오늘날 이 민족을 무시하고 이 국가적인 모든 이념을 무시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오늘날 공산주의면 공산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를 무시할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그렇기 때문에 종교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종교로는 안 될 것이요, 정치로 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정치로는 안 될 것입니다. 혹은 지금까지의 권력 가지고도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기성 세력 가지고는 해결 방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무엇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무엇을 요구해요. 인간의 두뇌와 인간의 어떤 기반 밑에서 나온 조직적인 사회형태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니 차원이 다른 세계의 종교를…. 따라서 가상적인 신의 실존을 세워 가지고 통일의 명사라도 꾸며내야 된다 이겁니다.
그 절대자는 검둥이도 '아이고! 좋아' 하고, 노랑둥이도 '아이고! 좋아' 하고, 흰둥이도 '아이고! 좋아' 하고, 여러분들도 '아이고! 좋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천만인이 과거도 좋았고, 오늘도 좋고, 미래도 좋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절대자를 세워 놓고 '사실 그렇습니다'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거기서부터 요리 방침이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럴 거 아니에요? 남자나 여자나 다 그렇다구요. 안그렇겠어요? 누구나 다 그래야 된다는 거예요. 과거도 좋았고, 지금도 좋고, 미래도 좋을 것이다 해야 된다구요. 선한 사람은 물론이요, 악한사람들도 '그거 좋다' 해야 됩니다.
악한 녀석이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면 좋은데 자기 의견에 있어서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루어 주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그러는 겁니다. 좋긴 다 좋다는 겁니다. 악한 괴수까지도 좋아하는데, 그는 '나의 왼손에 주소' 하고 하나님은 '바른 손에 주겠다' 하는 겁니다. 주는 방법이 다르다는 거예요. 악한 사탄이는 왼손으로 받겠다 하는 거요, 하나님은 사탄에게까지도 주는 데 주는 데는 '바른 손으로 받아라' 하게 되어 있다 그겁니다. 그러니 악한 것도 좋아하는 분이요, 선한 것도 좋아하는 그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사실이 그래요. 그런 하나님이라구요.
따라서 이제 이 땅 위에 귀한 것이 있다 할진대, 돈 많은 것이 귀한 것이 아니요, 자식 많은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또, 자기 가정에서 호화찬란하게 살아 가지고 당대에 있어서 자기의 행복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 해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엇에 살았느냐 이거예요. 밤에 생각해도 좋고, 그저 죽는 자리에서 생각해도 좋고, 굶어 죽어도 좋고, 좋은 데 살면 더 좋고, 이럴 수 있는 보화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 것이냐? 하나님은 그런 분이어야 된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믿고 알았던 하나님은 일방적인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에 있어서 모든 내정적인 것을 분석해 놓게 된다면, 나쁠 때도 좋고, 좋을 때는 더 좋고, 밤이나 낮이나 언제라도 좋다는 거예요. 과거에 죄가 있는 우리 할아버지도 그분 앞에서는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당신의 긍휼을 바라는 그런 분, 벌을 받으면서도 당신의 은사를 바라는 그런 분이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만일에 이런 하나님을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뚜렷이 해명지어줄 수 있는 주의가 나오면, 그리고 그 하나님을 친히 체휼하고 그 하나님과 더불어 생활적인 가치를 인연맺을 수 있다 하는 진리가 나오면, 그때 세계는 통일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망성이 있다 이겁니다. 이런 가망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종교였지만, 오늘날 이 시대적인 종교는 전부 다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적인 종교를 무시해 놓고 새로운 관, 새로운 미명의 문을 헤쳐 가지고 새로운 천지의 모든 내용을 살펴, 하나님의 실존성으로부터 그 무한한 심정의 세계에 가서 부딪쳐 가지고, 더불어 동반하고 그와 더불어 접하여 그 이념의 감정에 접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할진대, 이는 인생행로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자요, 이 천지간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자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런 하나님을 찾아가자는 거예요.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생님도 뭐 누구만큼 못나서 이 놀음 하고 욕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욕을 많이 먹었나 말입니다. 내가 동네에 가면 동네에서 나를 때려죽이려고 하고, 별의별 놀음을 다 한다 이거예요. 욕먹은 것을 쌓아 놓으면-여기 무슨 산이예요, 저거? -좁쌀을 쌓아 놓아도 저 산만큼 될까 말까 하다구요. 왜 그러는 거예요? 내게는 욕이 문제가 아니예요. 그걸 넘어서 그런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오늘날 여러분들이 당장에 '아, 하나님, 내가 이제….' 하면서 입을 벌리고, 혹은 팔을 벌리고 '나에게 먹여 주고, 나에게 안겨 주소'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수학을 푸는 거와 같이 하나에서부터…. 그건 공식도 아니예요. 하나, 둘, 셋…. 이건 하등의 관계 없는 거라구요.
여러분, 전기면 전기라는 것을 수학으로 풀어서 답이 딱 나오면, 답을 중심삼아 가지고 와트를 계산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전기와 수학은 전연…. 전기가 수학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수학을 통해서 전기를….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이라는 분과 우리들이 타진하는 진리와 같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방편을 통해서 풀게 될 때에 그 답이 내 이목(耳目)의 감정에 들어맞고, 생활감정에 들어맞고, 이념적인 속성을 통하여 영원한 자극적인 힘의 충격을 가해 줄 수 있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으로 나타나야 돼요.
그런 하나님이 영원한 하나님이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 할진대 그런 구상을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이렇게 말하려 하면 그 이상의 구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을 대하여 찾아오는 데는 어떻게 찾아올 것이냐? 좋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겁니다.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거예요. 그럴 거 아니예요? 나도 좋은 하나님을 찾아 나가니, 하나님도 당신이 좋아하실 수 있는 복을 주기 위해서 좋아할 수 있는 소질을 가진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배워야 되느냐? 말부터 배워야 됩니다. 그 나라의 백성을 지배하려면 그 나라의 말을 알아야 됩니다. 안 그래요? 빨리 지배하려면 그 나라의 말을 배워야 된다 이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말도 할 줄 알고, 하나님이 먹기 좋아하시는 것도 먹을 줄 알고, 하나님이 살아가시는 생활도 할 줄 알고, 하나님이 놀기 좋아하시는 놀음 방법도 알고, 하나님이 춤을 추시면 춤추는 방법도 알아야 됩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책임지실 겁니다. 그럴 거 아니예요? 우리 인간도 춤출 땐 춤추고, 놀 땐 놀고, 먹을 땐 먹고, 쉴 땐 쉬고, 좋다 하는 모든 생활감정에 몸 마음을 기울여 움직이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그 이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게 뭐냐? 하나님이 잡수시기 좋아하시는 게 뭐냐?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좋아하시는 것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천지간에 하나님이 좋아하실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찾아보자 이거예요. 여러분 중에 '틀림없이 하나님은 나를 좋아합니다' 이렇게 자신 있는 사람들 어디 손들어 봐요. 좀 보자구요. 자신 있어요? 틀림없이 찾아올 겁니다. 찾아오는 데는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온다 이거예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간들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인간이 본래 선하였다면 하나님이 찾아오고 찾아가고 하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본래에 그 마음과 뼈와 살이 함께 화하여서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찾아오시는 입장에 선 분이 하나님이 되었고, 찾아가는 입장에 선 우리 인간이 불쌍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 동거동락, 하나님이 기뻐할 때 인간도 기뻐할 수 있는 가치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어 놓고 기쁨으로 춤을 덩실 추면서 '모든 천지는 하늘의 영광을 노래할지어다. 기쁨에 동참하여 행복을 노래할지어다' 할 수 있게끔….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의 음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기쁨의 심정에 화하여, 그 마음에 반응적인 상대가 되어 가지고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느냐 하면 그렇게 못 되었다 이거예요. 인간이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겁니다.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잃어버렸고,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한 날을 잃어버렸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상대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하나의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 타락 인간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시조가 그런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인생은 기쁨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기쁨의 문을 열어가지고 그 미묘한 세계의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기쁨의 감정을 체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얼마나 잘 지어 놨어요? 생각해 보란 말입니다. 천지만물을 얼마나 기묘하게…. 사시 춘하추동이 있고, 일월성신이 있고, 지구는 또 멋지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거 누가 어떻게 만들었느냐는 말입니다. 누구예요?
오늘날 공산주의자들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연의 애비는 누구냐? 뭐 힘이라구요? 힘의 애비는 누구예요? 그 힘 자체가 자기 이상 창조의 능력을 내재하고 있는, 그런 원동력을 갖고 있는 힘이라면 모르거니와, 자기 이상의 원동력을 내포해 가지고 자기 이상의 실존성을 빛어 낼 수 있는 존재물이 있느냐 이거예요. 전기도 그래요. 발전기에서 나오는 힘 가지고 또 다른 발전기를 돌리게 될 때 거기서 나오는 전기의 힘이 처음 발전기에서 나온 힘보다 더 클 수 있느냐? 불가능입니다. 어떠한 작용이나 현상, 실존의 모든 문제를 해명해 보게 될때, 그 작용하는 자체가 그 작용 이상의 힘을 하나도 플러스할 수 없습니다. 마이너스예요. 따라서 존재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놓고 볼 때 그 기원이 힘이라면 힘의 애비가 있어야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 그런 문제를 다 있는 것으로 모셔 놓고….
한걸음 더 타진해서 그 가치문제를 추궁하여 들어가 볼 때, 그것이 절대적인 인연의 궁극적인 동기가 되느냐? 결국 원인이 되느냐 하고 타진하게 될 때는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의 원천에, 하나의 존재에 다시 플러스될 수 있는 그 점이 될 수 있는 그런 작용의 현상이……거기에 플러스하여 붙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자기의 힘으로는 못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밥을 먹고 나가서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에 들어올 때 더 힘이 납니까? 그런 이치가 있어요? 없는 거예요. 그런 논리적인 뭐가 없다구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이거예요.
틀림없이 이 모든 존재의 중심은 있어야 돼요. 오늘날 우주를 봐도 하늘이 핵심이 되어 있고, 원자세계를 두고 보더라도 핵심이 있고, 우리의 마음세계를 봐도 나를 기반으로 하여 천지를 움직이고 하는 모든 핵심적인 기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것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이 대우주의 힘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그 중심은 고착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대목적을 중심삼아 사방을 갖춘 동시에 입체적인 내용을 가져 가지고, 그 모든 움직임에 있어서 원형으로 움직여 가지고 어디에도 부딪힘이 없는 힘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상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러니만큼 하나님이 있단다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이냐? 최고의….그러면 그런 하나님이 이 천지만물을…. 여러분, 우리는 옷을 입지요? 몸에다 뭘 하나 갖다 붙인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갖다 붙인 거와 마찬가지예요. 벌거숭이 몸에 옷을 갖다 붙였다 이겁니다. 사람이 자기 몸에 무얼 갖다 붙이는데 왜 갖다 붙이는 거예요? 또, 좋으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자랑하고 싶어한다구요. 그렇지요? 아낙네들을 보면 입에다 서양식으로 아주 뭐 뭣도 바르고 뭣도 바르고 차려 입고 나간다구요. '내가 좋으니, 좋은 거 여러분들에게 조금 나눠주마' 하는 게 아니예요? 그거 다 그렇다구요.
여러분 마음은 안 그래요? 암만 얌전한 색시들이 뭐 자기는 안 그런다고 하지만 거짓말이예요. 거짓말이라구요. 좋은 옷만 입으면 그저 자는 할머니한테도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이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게 어디에서 나오는 겁니까? 본래의 하나님이 그렇다 이거예요. 무엇이든 덧 붙였으면 그건 더 나쁘기 위해서 붙인 게 아닙니다. 더욱 좋으라고 하는 거예요. 좋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천하에 자랑하고 싶다 이거예요. 사랑하는 부모는 자식이 잘하든 못하든 자랑하려고 하지요? 하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제일 자랑하기 좋아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무엇을 자랑해요? 좋은 것. 하나님이 그렇다는 거예요.
오늘날 이 천지에서 제일 좋은 사람을 따라가는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저 미국에 어떤 좋은 사람이 있다 할 때, 그 좋은 사람을 온 세계가 들어 찬양하는 그 세계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좋다 하면 만민도 '하-좋다' 할 수 있는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어 놓고 인간을 지어놓았는데, 사랑의 정력을 다 들여 지었는데 사람을 들어 자랑 한 번 못해봤다 이겁니다. 오늘날 역사노정에서 사랑을 받아 가지고 천지 앞에 자랑한 사나이가 나타났느냐 이거예요, 아낙네가 나타났느냐? 없습니다. 자랑해 보지 못하였고 그를 보고 기뻐해 보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지금까지의 말할 수 없고 지금까지 이것을 해원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그런 하나님이예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런 인연, 기쁠 수 있는 환경에서 떨어져 가지고 슬픔으로 출발한 인간들을, 이 슬픔의 줄을 전부 다 끊어 버리고 기쁨의 길로 찾아 올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 앞에 있어서 메시아 사상이니 구주니 하는 것은 무엇이냐? 슬픔의 자리를 피하여 기쁠 수 있는 자리로 이끌어 주는 것이요, 기쁠 수 있는 자체가 된 후에는 하늘에서 자랑하고 땅에서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공인된 자랑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어느 길을 찾아 나가야 되느냐? 슬플 수 있는 자리를 박차 버리고 기쁠 수 있는 한날을 향하여…. 내 마음이 좋아하고, 만민이 화하여 좋아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의 가치가 온 천상천하에 뻗칠 수 있는 그 세계를 향하여 우리의 마음은 무한히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찾아오시는 데는, 지극히 선한 하나님이 기쁘신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 찾아오는 데는 어떠한 사람을 찾아올 것이냐 이거예요.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를 찾아오신다 이겁니다. 문제는 그거라구요.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 또, 하나님께서 붙들어 가지고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사람을 찾아온다 이겁니다.
그러면 자랑을 하고 기뻐하는 데는 어떤 존재로 기뻐할 것이냐? 자기집에서 똥을 치우는 종으로서 기뻐할 것이냐?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귀중한 일을 하는 심부름꾼으로서 기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모양이 있을 겁니다. 이웃 동네 아들로서 기뻐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몇 촌 동생, 혹은 몇 촌 조카, 몇 촌 손자뻘 되는 입장에서 기뻐할 것이냐? 나는 그런 거 다 원치 않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여러 면이 있단다면, 그 모든 여러 면이 나에게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찾고 있는 것은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을 찾지 않을 거예요. 그럼 무엇을 찾겠어요? 단 하나의 아들딸로서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려면 둘도 없는 아들로서, 둘도 없는 딸로서 기뻐할 수 있는 존재를 찾는 겁니다. 그걸 찾기 위해서 전세계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심부름도 시키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일도 시키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뭐 아주 형형색색의 세계에 별의별 판국을 다 이루어 놓고 찾아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온다 하면 '옛다, 이런 나라가 되어야 되고, 이런 나라의 왕도 되어 봐라. 옛다, 이런 나라에서 영광을 누려라. 다 되어 봐라' 이런다구요. 종 중의 종으로부터 별의별 환경에 다 놓여 가지고 기쁨의 조건을 찾아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최후에 반드시 찾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하나밖에 없는 딸일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딸로서 기뻐하는…. 그거 그럴 거 아니예요? 내가 하나님이라도 그렇다구요. 알겠어요? 그러한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런 아들딸을 찾기 위해서 그런 마음을 갖고 나오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기쁨의 마음과 감정을 아직까지 한번도 표시해 보지 못하신 하나님입니다. 안 그렇겠나 말이예요.
그러면 메시아 사상이 무엇이냐? 앞으로 만우주의 인간을 구해 주기 위한 구주로 오시는 그분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남자를 대표한 분입니다. 지금까지 기쁨의 한날을 보지 못하였던 그 하나님이 역사적인 한을 품고, 역사적인 소망의 실체가 될 수 있는 아들을 찾아 놓고 기뻐할 수 있는 그날을 그 아들 앞에 주기 위한 상속의 모든 권한을 축복해 주자는 것이 메시아 사상입니다.
그 아들을 축복해 줌으로 말미암아 천지에 그를 환영하고, 그를 옹호하는 사람은 그 아들이 기뻐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에 등장시켜 주마하는 거예요. 구경을 다 시켜 준다 이거예요. 혹은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등장시켜 주마, 혹은 사촌 팔촌 전부 다 인연되어 가지고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되어 가지고 몇천 몇백의 인연이 될 수 있는 국가적인 하나의 심부름꾼으로 세워 주마 하는 거예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면 앞으로 오시는 주님, 기독교에서 말하는 다시 오신다는 주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하나님이 6천 년 이래 제일 좋다 하고 큰 웃음을 웃으면서, 천상세계에 모든 존재를 데려다 놓고 자랑할 수 있는 한날을 찾아오시는 데 그 한날을 이루는 것은 누구로서…. 기뻐할 수 있는 아들을 찾게 될 때 기쁘게 그날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종이 기쁨의 대상자가 아니예요.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골수를 통해 나타난 아들딸을 찾을 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 봤어요?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해봤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있어서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어떠한 복이냐? '나는 종의 복은 싫습니다', '종은 왜?', '나 아니고도 종 할 사람 많지 않소?' 그런 자신이 있어야 된단 말이예요. '아버지, 나 아니고도 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 빼놓고도 종을 시킬 나라가 많습니다. 우리 집을 빼놓고도 종을 시킬 수 있는 집이 많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특하게 여기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럴 게 아니에요?
그러면 통일의 신도들은, 식구들은 어떠한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기를 원합니까? 사촌 아버지? 팔촌 아버지? 아버지도 많다구요. 의붓아버지예요? 어떤 아버지예요? 단 한 번밖에 부를 수 없는 아버지예요. 이것을 요구한다는 거예요. 그게 제일 아니예요? 여러분이 그래요? 만일에 그런 일이 있다면 죽더라도 힘을 다해서, 내 후손이 천대 만대 죽더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그런 기뻐할 수 있는 아들딸이 나오면, 그런 아들딸을 세워 놓고 무엇을 만들 것이냐? 기쁨의 왕자요, 기쁨의 조상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비로소 인간 가운데 기쁨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기쁨의 조상이 되고 선의 조상이 되는 거예요. 이런 입장에 선 그분이….
우리의 인류조상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악한 조상이, 하나님을 눈물 흘리게 한 악한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참아들딸이 되고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못 되었습니다. 본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로서 등장할 것이었는데, 슬픔의 조상이 되고 타락한 조상이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타락한 후손입니다.
본래 소원과 더불어 즐거워할 수 있고, 우리를 이상적으로 창조해 줄 수 있는 참조상은 어디 갔는고? 참조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고 자랑하고 싶으셨던 인류의 조상입니다. 그분이 인류의 조상입니다. 나에게 구주가 오는데, 어떤 구주를 원하느냐? 내가 물에 빠져 죽을망정 원수의 종새끼한테…. 여러분 그런 마음이 있을 거예요. 양반집 자식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는데 '난 원수의 종새끼한테는 죽어도 도움을 안받아' 그러나요? 구해 주면 구주지 별수 있어요?
그렇지만 인간은 어떠한 구주를 요구하느냐? 어떤 구주를 요구하느냐 하면, 원수의 종새끼로서 구해 주는 그런 구주는 필요 없습니다. 또, 자기 아들로서 구해 주는 구주는 필요 없습니다. 자기 딸이나 자기 삼촌은 다 필요 없어요. 만일에 인간이 구주로서 구주를 요구한다면 어떤 구주냐? 나를 중심삼고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멜래야 멜 수 없는 참부모로서의 구주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어떠한 구주를 원할 것이냐? 신랑도 필요 없어요, 신랑만으로 안 된다 말입니다. 신랑보다 더 가까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 아버지인 거예요. 영원한 부모로서의 구주를 요구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럴 게 아니예요?
오늘날 예수가 구주라면, 어느 정도의 구주인지 그것을 해명해야 됩니다. 무슨 구주냐? 신랑으로서의 구주냐, 내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구주냐? 예수가 아버지이고 성신이 어머니라면 그거 됐다는 것입니다. 근본문제에 들어가면 그렇다는 거예요. 기독교를 중심삼아 하늘이 섭리하고, 이 종교를 중심삼고 오늘날 구원섭리하는 데 있어서 구주의 이념과 더불어 성신을 들고 나오는 데, 이 성신의 역사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원리적인 원칙에 있어서 생각해 보게 될 때에 거기에는 기필코 아버지로서의 구주가 필요하다 이겁니다. 아버지로서의 구주가 필요한 동시에 어머니로서의 구주가 필요하다 이겁니다.
그러면 예수와 성신은 무엇이냐? 예수는 인류의 참조상 되는 아버지요, 성신은 인류의 참조상 되시는 어머니입니다. 이렇게 나와야 그게 멋지다 이거예요. 그게 멋질 게 아니예요? 이게 근본문제라구요. 그래야 인간의 최고 소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준대가 되지요. 무슨 신랑으로서의 구주? 그거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타나는 데는…. 무엇 때문에 기쁠 것이냐? 하나님의 상속권을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받을 수 있는 직계의 아들딸로서….
우리가 이 땅 위의 구주를 요구하는 데는 완전한 구주를 요구하는데 어느 정도의 구주를 요구할 것이냐? 내 모든 전체 뼛골까지 상속시켜줄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로서의 구주를 요구하더라 이거예요. 그게 제일 좋을 거 아니에요? 기독교 역사는 그런 내용입니다. 알고 보니 기독교는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으니, 구주의 명사를 걸어 가지고 신랑 신부 부자의 인연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너는 내 신부요, 나는 네 아버지요'라고 하신 말씀을 보게 될 때, 종교 중에서 기독교가 왕이다 이거예요. 여기서 뭐 기독교를 선전하는 게 아니예요. 이치로 설명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도의 길에서 도주를 모시는 데 있어서 하늘나라 천사장의 어떠한 도주인지 아닌지 그걸 구별해야 됩니다. '아, 네 녀석은 몇천 년 전에 왔더랬구나! 너는 그 시대에 왔는데, 어떠한 내용을 갖고 왔느냐? 이런 심정적인 인연을 갖고 있고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천적인 내용을 가졌느냐? 그 구주의 가치로서 사명을 하는 데는 종으로서 사명을 했느냐, 부모로서 사명을 했느냐?' 하는 걸 구별해야 됩니다. 종으로서 사명을 하는 종교들은 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도의 세계에 있어서 통일의 내용을 갖고 오는 도가 있다 할진대, 그 도는 무엇이냐? 하나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아들, 둘도 없는 아들이요 딸을 세워서, 이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위업을 상속시켜 놓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부모로서 구주의 영광 가운데 나타난 도의 내용을 가지고 오는 그 도가 만국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도일 것입니다. 결론은 그렇게 나간단 말입니다. 거기에 모순 있어요?
오늘날 막연히 말하기를 천지 부모를 말합니다. '천지 부모를 반겨 맞자. 효자 충신이 되어야 돼' 이러잖아요? 충신이 나라애 충성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 다음에 나라의 충신으로서 세계적인 부모로 오시는 그분 앞에 충신이 될 수 있게 하는 훈련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효도하는 것도 훈련입니다. 그거 다 훈련이예요. 훈련을 위해 가르쳐 주는 것이지, 그 자체들이 훈련받아 가지고 자기의 영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어떠한 도가 있다 하면 이런 도를 찾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붙드는 데는 소매 끄트머리는 암만 붙들어도 쓸데없어요.머리카락을 잡아도 쓸데없습니다. 코를 잡아도 쓸데없어요. 팔을 잡고 발을 잡아도 쓸데없습니다. 그럼 무엇을 잡아야 되느냐? 모가지를 끌어안고 몸뚱이를 들이 잡아야 됩니다. 잡는 데는 무얼로? 손으로? 아니예요. 심정으로 잡아야 됩니다. '아버지, 못 갑니다. 나를 두고 못갑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니 이 줄을 끊을 자가 없습니다' 이러고 잡아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잡은 아들딸 있어요? 여기 아주머니, 그렇게 잡아 봤소? 통일교회 무엇 하러 나오는 거예요?
여기서 땀을 흘리면서 말하고 있는 이 젊은 선생은 무엇 때문에 이 놀음 하고 있느냐?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잡는 데는 어떤 입장에서 잡을 것이냐? 하나님이 좋아하시게 하는 데는 어떤 입장에서 좋아하게 할 것이냐? 하나님이 나를 들어 자랑하시는 데는 어떤 입장에서 자랑받을 것이냐? 그런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하고 하늘 앞에 달라붙어 가지고 '하나님! 당신의 뜻이 이러하오니, 이런 아들딸을 한민족에 보내 주시옵소서' 하면서 결판짓기 위해 붙들고 안 놓아 주면….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를 붙들고 싸움할 때 어땠어요? '너는 하나님을 이겼다' 하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었다구요. 주게 되어 있다 이거예요. 그와 같이 찾아가 만나고 싶어서 문을 두드리면 문을 열어 준다고 했으니,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으니 얼마나 좋나요? 꼼짝 못하게 때릴 수 있는 재료가 많단 말입니다. 만일에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사기꾼이요 거짓말쟁이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런 싸움을 해봤어요?
오늘날 통일을 부르짖게 되는데 무엇을? 아버지까지도 잡아넣어야 됩니다. 무엇으로 잡을 수 있느냐? 능력으로 못 잡아요. 수단으로 못 잡아요. 지혜 지식으로 못 잡아요, 자기의 어떤 재간으로도 못 잡아요. 사랑으로만 잡을 수 있다 이거예요, 어떤 힘이나 수단으로 못 잡는 다구요. 사랑으로만 잡는다 이거예요. 세상의 대통령 아들도 말이예요, 기저귀에 똥을 싸 가지고 '아버지!' 이러면 어때요? 아버지가 발길로 찹니까? 똥이야 손에 묻든 말든 잊어버리고….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무엇으로 잡느냐? 모든 기쁨의 심정을 알아 가지고 '당신이 본연의 심정으로 이런 아들딸 갖고 이런 아들딸을 만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 아니었습니까?' 하고….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교육을 해야 될 것이냐? 통일교회가 교육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을 믿을 수 있는 아들딸로 만들자는 이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 당신이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은 이러한 것이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딸은 이러한 것이외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런 아들딸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어떻게 나오느냐? 이 아들을 세워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일대일로 한 사람 앞에 대항하고 싶어한다 이겁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을 들어서, 내 사랑하는 딸을 세워서 한 사람 앞에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겁니다. 자랑하는 데는 하늘땅 앞에 자랑하고 싶다 이겁니다. 또, 어떠한 가정을 들어서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민족을 들어 가지고 자랑하고 싶고, 세계를 들어 자랑하고 싶고, 하늘땅을 들어 가지고 자랑하고 싶다 이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곡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을 사랑하고 아들딸을 축복하는 데는 맹목적으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입니다, 죄지은 자를 영원히 용서해 주고 싶은 하나님이라구요. (이후의 말씀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수록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