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간에 남한 각지 400여 곳에 나가 전도해서 이제는 많은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니만큼 이제부터 우리 통일신도들이 새로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이제 협회장도 말씀했지만 피땀을 흘려 가면서 그 지방이면 지방을 부여안고 생명을 각오하고 싸워 준 데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앞에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는 우리가 싸워야 할 때가 왔고, 또 하늘이 바라는 시기를 대하는 입장에 처해 있어서 우리들은 어떤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 개인적인 각오보다도 하늘땅을 대신해서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땅을 움직일 수 있는 동시에, 수많은 인류를 움직일 수 있는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번 전도기간을 통해서 절절이 체험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적인 기준을 우리들이 먼저 알았기 때문에 이 때가 어떤 때냐 하는 걸 잘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반드시 선한 무리들을 이끌게 될 때 평평한 길을 통해서 이끌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밟히는 자리에서도 눈물과 땀과 피의 재단을 연하여서 지금까지 역사를 붙들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역사적인 서적을 보나 섭리적인 노정을 관찰해 보더라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만한 역사의 문화를 찾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그 환경에서 즐기며 안락한 자리에서 살고 있던 무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밟히고 쫓김받는 무리들을 통하여, 그들의 눈물과 땀과 피에 의해 이것이 이루어져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치고, 혹은 사회, 민족, 국가를 거쳐 세계를 넘어서서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역사는 엮어져 나왔고 지금까지 인류의 문화는 발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는 어떠한 때냐? 양심을 가진 자나, 혹은 도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새로운 각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때는 자기가 처하고 있는 그 사회에 있어서 애착심을 잃어버린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땅을 대해 섭리하는 데 있어서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무리들이 있게 될 때 그들을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끊는 길로 몰아내야 합니다. 가정으로부터 자기 육신으로부터 세상에는 어떤 욕망적인 속성이 다 있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제거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비단 종교인뿐만 아닙니다. 오늘날 종교면 종교인을 중심삼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할진대는 최후의 종말시대에는 어떠한 세계가 올 것이냐? 거기는 반드시 모든 사람들이 애착심을 잃어버리는 그런 사회환경으로 하나님은 몰아넣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끝날은 어떤 때냐? 끝날은 어떤 때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 어떠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생명을 기울여 나오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애착심이 점점점점 희미해져 가지고 마침내는 잃어버리는 때입니다. 그런 종말시대가 반드시 어느 한 때에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세우려 하는 나라와 악이 이끌어 나오는 세계와는 반대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애착심을 가져 가지고는 하늘의 일은 달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필코 목적을 달성하고 뜻을 세우려 하고 있다 할진대는 기필코 땅 위에 있어서 수많은 인류, 혹은 국가에 대한 애착심, 민족에 대한 애착심, 혹은 자기가 하고 있는 학문에 대한 애착심, 더 나아가서는 가정에 대해서, 혹은 부자의 관계에 있어서, 각 분야 각 부처에 있어서 애착심을 끊어 버리는 것으로써 하늘은 섭리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총괄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현재를 총괄적으로 관찰해 보게 될 때, 민주와 공산세계가 대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조가 지금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민주진영에 있는 사람 자신들도 민주진영에 대해서 애착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면 공산주의자들도 공산주의에 대해서 애착심을 잃어버리는 방향으로 반드시 세계는 움직여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투쟁적인 현상을 거쳐 가지고 인류에 대한 애착심을 끊는 방향으로 지금까지 역사는 전개되면서 종말적인 노정을 이어 나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늘편 입장에서 관찰해 보게 될 때, 반드시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통하여 사회와 국가를 넘어 세계, 천주의 사상권까지도 그런 경향으로 나아가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종교나 양심을 붙들고 나가는 교인, 혹은 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그런 경향으로 반드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성교회나 모든 종교들을 보게 될 때, 그 사람들이 기필코 새로운 종단을 향한 본래의 뜻을 대해야 할때가 왔기 때문에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분열이 벌어지고, 성심성의를 다 기울여 순교를 당하고 나가던 수많은 성도들이 그것을 배척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종말시대는 반드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야 되느냐?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악의 세상과 선의 세상, 악의 세상에서 한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산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청산하기 위한 때가 어느 때냐 하면 심판시대입니다. 그때가 심판시대예요.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에 애착심을 가지고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하늘 앞에 크나큰 심판의 자리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전부 정리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언제나 나를 믿을 수 없고, 어떤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경지의 고독한 자리까지 내몰아 가지고, 애착심을 갖고 세상 앞에 자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가질 수 없는 자리로 몰아넣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몰아 가지고 거기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공감을 표하게 해 가지고 다시 하늘을 바라봐 하늘에 대한 애착심을 일으켜야 할 섭리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이 시대에 있어서 이 시대가 심판 시기니만큼 심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말씀심판인 동시에 인격심판이요, 인격심판인 동시에 심정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원리를 배웠기 때문에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심판하는 게 아니예요. 불을 퍼붓고 이 땅에 천변지이가 생겨나 가지고 다 없어지는 게 아니예요. 절대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심판에는 말씀심판이 있고, 그다음에는 인격심판이 있고, 그다음에는 심정심판이 있습니다.
기독교 전체 역사를 대조해 보게 되면, 예수 전까지 4천 년 동안 찾아나온 것이 뭐냐? 참된 진리를 찾아 나왔어요. 나아가 진리를 중심삼은, 진리로 화한 하나님 앞에 서 가지고,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고, 하나님께 마음대로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대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 답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자를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 인격자를 세워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이냐? 하나님과 그 사람과 일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답할 수 있는 자리까지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온 이후 지금까지는 말씀을 중심삼은 심판역사라는 것입니다. `믿으면 구원 얻고 믿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 다'는 이런 표어 밑에서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니 말씀과 실체가 반드시 합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말씀은 반드시 실적과 실체를 남겨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천리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만물을 지을 때 참아들딸을 위하여 만물을 지었는데 참의 실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이예요. 참의 실체를 갖춰 가지고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없는 세계가 된 것이 타락한 세계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찾기 위해서는 다시 하나님이 말씀을 줘 가지고 심정과 연결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세워 가지고 말씀을 대신한 실체의 모습을 세워, 그 실체의 모습이 완결된 후에 하나님의 심정을 가하여 부자의 인연을 맺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목적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하늘이 지금까지 섭리를 해 나오는 것은 말씀을 찾아 세우기 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수가 왔다 간 후에 참다운 말씀이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무슨 말씀이며 말씀의 목적은 무엇이냐? 그것은 개인과 나라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목적은 개인을 넘고 가정을 넘어서, 사회,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무형의 세계까지 이 천지의 이념을 소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축복하기를 만물을 주관하라고 했습니다. 주관하는 데는 외적인 면만이 아닙니다. 내적인 면까지 주관하라는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어떠한 말씀이냐? 내 개인이 믿고 천당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개인이 믿는 동시에 내 가정이 믿고, 내 가정이 믿는 동시에 사회, 국가, 온 세계, 더 나아가서는 천상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까지 하나되어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이념과 더불어 일체의 자리까지 나가게 하기 위한 뜻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게 될 때, 오늘날 기독교를 바라보면 아직 기독교의 세계관이 안 서 있습니다. 개인은 반드시 본연의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이념을 거쳐 가지고 국민, 혹은 세계 인류로서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개체를 중심삼고 구원의 목적을 찾아 세워야 할 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구해 주시옵소서' 하고 피땀 흘려 기도할 때는 지나갔어요. 때가 그런 때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 수많은 인간들을 악한 품에 품겨 놓고 그냥 그대로 섭정해 나가면서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색다른 모습을 갖추어 가지고, 개인으로부터 혹은 가정으로부터 사회, 국가 형태를 갖추어 선민이라는 민족을 여기에 내세우기 위해 역사해 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목적은 우주적인, 더 나아가서는 천주적인 목적 달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말씀심판시대에 요구되는 그 말씀도 역시 천주의 이념을 넘어설 수 있는 말씀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이 구원받아 가지고는 안 된다구요. 세계관으로부터, 천주관으로부터, 철두철미한 원칙적인 그 말씀을 중심삼고 내가 부딪치게 될 때, 오늘 내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흙덩이가 빛을 받아 지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생명이 생겨나고, 감정이 생겨나고, 여기에 이념적인 방향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충정의 말씀을 인간은 반드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한 내용을 가진 말씀이 이 땅에 나왔느냐? 안 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경 연대로 볼 때 육천 년 역사를 갖고 있지만 육천 년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하고픈 말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예수님이 독신으로 살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를 중심삼은 그 이념은 전체적인 우주 앞에 세워야 할 그런 것이어야 됩니다. 그러나 개인 구원섭리를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돼요. 개인구원을 지나 가정구원, 가정구원을 지나 사회구원과 국가구원까지 하늘은 반드시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최소 단위로 국가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역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나라 없는 백성인 걸 알아야 됩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나라 없는 백성이예요. 여기에는 국적도 없고 자기가 넘어올 수 있는 국가도 없어요. 자기가 자기의 종족이라 할 수 있는 민족도 없습니다. 그런 걸 다 알아야 돼요.
이런 현 세계에 있어서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떤 것을 요구하고 있느냐? 오늘날 이 시대 현상에 있어서 우리는 종교인들 앞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느냐? 도의 이념을 중심삼고 국적을 세울 수 있는, 도의 이념으로 국토를 확정할 수 있는, 도의 이념을 중심삼아 가지고 백성으로서 설 수 있는 기준이 하늘이 섭리하신다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한 분야를 두고 볼 때, 백 집이 있으면 백 집의 살림살이가 하루를 사는 데도 전부 다릅니다. 다르더라도 어떤 원칙적인 심정에 일치된 귀일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귀일점을 세우기 위해서 기독교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내거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랑 앞에 누가 접붙여서 복귀되겠느냐? 그 사랑의 말 앞에는 누구든지 존경할 수 있는 이런 기준을 하늘은 솎아 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신랑 신부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교회나 성경 가운데 이것을 훈계했으나 오늘날 교회를 믿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그런 경지에 서 있지 못하니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해 나오기 때문에 이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최후에 바라는 것은 심정적인 기반에 있어서 어떠한 개인이 잘 믿고 천당 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 가정을 넘어 국가, 혹은 세계 전부가 하나님의 심정 앞에 하나될 수 있는, 말씀을 중심삼은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믿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모든 사리는 우리의 생활적인 감정에까지 이치와 공식적인 법도 과정을 조건삼아 가지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실생활을 부정 못 할진대는 오늘 우리들은 신앙 관념에 있어서도 역시 더 치밀해야 됩니다. 맹목적인 것과는 틀립니다.
그러면 오늘날 성경에서 지시하고 성경에서 바라고 있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이냐? 심판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한 개인을 심판해서 구원해 가지고 천당 보내기 위한 목적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 죽여버리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죽여 버려서는 안 될 사랑의 심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 이 역사를 어떤 면으로 이끌어 나오느냐 하면 반드시 막힌 과정을 거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해결 안 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것을 청산해야만 새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악과 선이 한자리에서 놀 수 있어요? 한자리에서 자리를 같이할 수 없습니다. 갈라져야 돼요.
그러면 지금 악한 세상에서 선한 세계로 옮아가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진대는 여기에는 반드시 심판적인 조건을 제시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심판하는 데 있어서는 말씀을 갖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목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구원이예요. 이것은 개인의 심정에 통하고, 가정 식구들의 심정에 통하고, 국민, 혹은 국경이 다른 그런 민족의 심정세계에 통할 수 있는, 하나님편에서 볼 때 하나의 심정과 통할 수 있는 기준을 갖출 수 있는 이러한 우주적인 이념을 중심삼고 섭리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누구인 줄 알아요?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형제요, 하늘나라 백성입니다. 형제의 관념을 갖지 못한 자는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형제의 인연에 벗어난 자는 백성이 될 수 없어요. 오늘날 이 교회현상을 볼 때 서로 물어뜯고 있습니다. 형제의 인연이 다 어디로 가고….
이 때는 지금 어떠한 때를 요구하고 있느냐? 하늘나라,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때가 왔기 때문에 백성의 과정을 거쳐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형제의 시대를 갖추었느냐? 이것을 각자에게 반문해야 할 이런 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혹은 지금까지 내 생활적인 배경을 중심삼고 살아오던 사회의 모든 체제라든가 가정의 모든 체제라든가 신앙의 모든 신조라든가 이 모든 전부가, 나로 하여금 형제들을 하늘 앞에 찾아 세울 수 있는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못 맺게 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형제의 인연을 갖지 못한 이들이 단결되어서 백성으로 자처했댔자 그것은 반드시 깨져 나갑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형제보다 더 사랑해야 돼요. 그러한 노정으로 하늘은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 더욱이나 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수많은 인류들은 이제 마음을 같이하여 형제적 인연을 찾아 세워서 `우리의 인연을 누가 빼앗을소냐' 하는 도를 중심삼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런 형태가 반드시 이 땅에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보라구요. 기독교의 초대교회 시대에 있어서는 형제가 피를 흘려 쓰러지게 될 때 자기 생명을 바쳐 쓰러지고,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고 뚫고 나갈 수 있는 인연을 남기면서 악의 세계를 대하여 힘차게 행군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서로서로 형제의 인연을 찾지 못하고 싸우는데 여기에서는 붕괴예요, 붕괴. 붕괴의 일로를 갖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때는 다가왔습니다. 하늘이 요구하는 것은 천국 백성을 찾기 위한 것인데, 백성은 반드시 형제지인연의 과정을 거쳐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끊어졌습니다.
오늘날 지금까지 세상에서 되어진 인연을 끊는 것은….하늘은 그것이 깨지니까 좋아합니다. 오늘날 모든 것을 깨쳐 가지고 애착심을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그것을 빼앗아 가지고 다른 면에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돌려 놓기 위해서 오늘날 역사과정을 전부 다 끊어 청산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애착심을 둘 수 없는 이런 세계적인 현상을 지금 만들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은 어떻게 귀결될 것이냐? 애착심을 전부 다 버리자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 애착심을 끊어 버리는 반면 하늘을 표준하는 사람들은 서로서로가 애착심을 갖고, 세상의 형제 이상 형제로서 세상의 부모 이상 부모의 인연을 노래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게 하는 거예요. 이런 형태를 반드시 갖추지 않으면 멸망당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통일교회가 나와 가지고 수많은 비난의 대상이 돼 나왔지만 망하지 않았어요. 이 민족이 모든 애착심을 전부 다 끊고 우리와 어깨를 겨룰래야 겨눌 수 없는 그런 한 때가 언제 오는가?
만약에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받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면 그런 민족이 먼저 받는 거예요. 그렇지만 심판을 먼저 받는 민족 가운데서 심판을 안 받는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민족인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 천지가 넓다 하더라도 그러한 소재가 반드시 오늘날 우리 사회, 혹은 우리의 풍습권 내 전체를 휩쓸어 가지고 그런 사회 규정을 이뤄 줄 수 있는 한때가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보십시요. 여러분이 생명을 각오하고 믿는 그 누가 있느냐? 내가 정성을 다하여 모시고 싶은 그 누구를 갖고 있느냐?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처자식이 서로 반발하여 참혹한 현상으로 벌어져 가는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 가정을 대하여 내가 애착심을 가질 수 없어요. 자기가 전공하는 어떤 학술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러냐?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해 들어가는 그런 환경에서는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걸 못 갖느냐 이거예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실사회, 더욱이나 한국 실태를 바라보게 될 때 애착심을 둘 수 없는 민족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우리가 절망 가운데 쓰러질 것이 아니라 이래야만 된다는 , 기필코 와야 할 한때가 왔다는 걸 우리들은 여기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이런 자리에 몰아내는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들을 깨뜨려 지옥에 쳐넣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그런 자리에 있어서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다 끊어 버리고, 일편단심 하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재수습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호소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터놓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민족이 더욱이나 이때에 있어서 이제 갈 길은 종교도 아니요, 정치도 아니요, 문화도 아니요, 지금까지의 어떤 기존 종교도 아닙니다.
왜? 그들이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종교의 내용을 갖지 못하고 있는 한 이는 다 지나간다는 거예요. 이러한 때가 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더더욱이나 안다는 청년 남녀들에게 있어서는 예리한 시선을 갖고 비판하고 분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종교도 막혀 버렸습니다. 또, 철학도 막혀 버렸습니다. 오늘날 환경의 정치나 무엇 무엇 무엇, 믿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애착심이 있느냐 말이예요. 애착심이 있다면 하루에 먹는 빵 한 덩어리에 애착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관점에서 벌어진 것이, 요것을 들고 나온 것이 오늘날 유물사관입니다. 이 유물사관이 세계적인 무대를 갖출 수 있는 때에 있습니다. 그러한 경향으로 한때를 바라보고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안 돼요.
인간은 먹는 것만으로 안 됩니다. 아무리 내가 배부른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내 심정적인 천운이, 오늘날 내 심령을 파고들어오고 숨어 들어오는 이러한 사조의 모든 운세를 내가 막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막아낼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기쁘지 그렇지 않으면 기쁘지 않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심판 때가 다가오는 때이기 때문에 불안과 초조 공포에 떨어야 할 때요, 그 무엇 하나 내 심정을 기울여 애착심을 갖고 대할 수 없는 종말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다시 한 번 우리가 애착해야 할 것은 세계인류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새로운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찾자고 외치고 나가야 됩니다. 내 부모로부터 내 모든 일체 전부를 다 잃어버렸으니 잃어버린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애착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이 필요한 그런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 사조에 있어서 어느 주의를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왔으니, 이것 이상의 무엇을 느껴 가지고 그것에 대해 내 생명을 기울여 죽음의 자리에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생명 이상의 애착심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이 필요하고 하나의 이념이 필요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여러분이 자아비판을 해봐요. 자아비판을 해보란 말이예요.
그러면 하늘이 전부 다 깨뜨려 버리겠느냐? 그러한 때가 왔으니 이 말씀을 통하여 내 개인이 살고, 개인이 사는 동시에 민족이 살고, 민족이사는 동시에 세계가 살고, 세계가 사는 동시에 하나님이 살고, 하나님까지도 육천 년 동안 탄식의 한을 벗어나 해방의 통치권을 갖춰 가지고 만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한 때를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뜨려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면에 있어서 하나님이 있다면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운동이 벌어져야 된다는 것이 필연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맹목적인 신앙, 주먹구구식으로 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애착심을 가질 때는 그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의 말씀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자아를 밟고 넘을 수 있는 말씀이어야 됩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내가 믿고 나가던 관념적인 종교를 타파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말씀은 오늘날 시대적인, 사회의 어떤 주의 사상의 모든 문제를 박차고 새로운 깃발을 중심삼고 천주를 향하여 내가 외치게 될 때 하늘땅이 반응할 수 있는 말씀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내용의 말씀을 갖고 나오려면 오늘날 논리적인 관에 서 있는 세계주의 갖고 안 됩니다. 이 논리를 넘어서 심정적인 이념을 통하여 나오는 천주주의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복하다 할 때는, 내가 많이 아는 게 행복이 아니요, 내가 어느 대학교 학장이 되고 총장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요, 오늘 내가 일국의 무엇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천만에요. 그 심정이 자기가 갖고 있는 환경을 넘고 넘어 그 어떠한 가치의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안정된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서만이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고통을 받는 것이 무엇 때문이냐? 하나님이 지금까지 고통을 받았고 수고했다는 그 명사를 하나님 앞에 붙일 수 있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뇨? 심정적인 가치를 오늘날 창조의 세계에 있어서 세울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역사를 전체적으로 수습해 가지고 최후에 남을 것이 무엇이뇨? 인류의 심정만이 남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인류의 심정이 남는데 그 심정은 어떠한 심정이냐? 타락한 세계에서 지금까지 쫓김받고 파괴받은 그런 것이 아니요, 무애착한 그런 자리에 머무르는 그 심정이 아니라, 영원무궁토록 이 마음을 누가 점령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의 심정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이어야 돼요. 그러면 개체와 전체는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가치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비교의 가치를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높으신 하나님이라도 내 심정을 통하여 나서게 될 때, 내 자신이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있더라도 가치적인 분야에 있어서 상대성을 갖고 나오게 됩니다.
그런 자리에 있어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심정적으로 존경해 가지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어떤 인간이 되었다 할 때 그는 무한한 행복한 자일 것입니다. 종교의 이념은 그곳까지 넘어가야 됩니다. 사람이 명령을 받고 움직이게 안 되어 있습니다. 하늘은 그런 표준까지 인간을 이끌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해 나왔던 것입니다. 역사의 전통으로 최후에 남아질 것은 심정입니다. 무슨 심정이냐? 인정이 아니예요. 인정적인 심정이 아니라 천정적인 심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보게 되면 효자 충신 열녀가 많았습니다. 인륜을 통할 수 있는 심정적인 발판은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되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민족과 민족의 관계를 지울 수 없다는 말이예요. 그것으로써 해결이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걸 처단함에 있어서 전부 다 뒤섞여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무애착 시기의 풍조는 반드시 세계심판 직전에 들어오는 현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의 가슴을 헤쳐 놓고 보게 될 때, 아버지를 내가 부르면서 주를 믿는다고 하는 그 심정적인 내정을 살펴보게 될 때,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가 하나님의 심정문제를 아느냐? 개인을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게 돼 있고, 민족을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이 어떻게 돼 있고, 또 국가를 대하고 세계를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은 어떻게 돼 있느냐? 그걸 모르고 있다면 절대 충신 열녀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의 목적은 인류가 공통히 즐길 수 있는 심정의 안식처를 찾아 나가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문화의 목적이나 예수의 목적이나 개개인의 목적이나, 모든 목적의 전부는 그 기준에 있어서 하나의 청산을 짓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이런 내용을 걸고 나오는 종교가 무엇이냐? 첫째로 등장한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은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라고 했던 그 심정적 기반은 오늘날 타락세계 인간을 중심삼은 신랑 신부의 심정이 아닙니다. 천정의 인연을 찾아 나가게 하기 위해서 오늘날 무지한 백성 앞에 그런 조건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인연 맺었던 사람을 따라 죽음의 적진을 넘어 역사를 넓혀 나오면서 세계 기대상을 만들어 나오면서 역사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신부를 알지요. 신부는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날 신부 될 수 있는 자격자가 이 땅 위에 있다 할진대 이 땅 위에서 신부라고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날 사탄세계, 악한 세상에 있어서 어떤 충신이 있다 할진대는 수많은 충신자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내용과 심정적인 절개를 갖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하나님이 그를 하늘의 충신이라고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사탄세계의 충신자를 하늘세계의 충신으로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위신상. 표준이 그 표준입니다.
`열녀나 혹은 효자가 있다면 그 가운데 어떤 누구누구가 있다 하더라도 육천년 동안 수많은 효자를 한꺼번에 세워 가지고 하늘 앞에 세울 수 있는 한 사람 효자와 비교하게 될 때 바꿀 수 없어요!' 그런 가치의 효자가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 아들이 못 됩니다. 사탄이 갖고 놀고 사탄이 깔고 놀고 그러던 그 자리에 가 가지고는 하나님이 당하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내용에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라'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심정을 갖고 오늘날 인류를 찾아 나오는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슬픈가를 알아야 됩니다. 알고 보면 천년 만년 통곡을 해도 그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없는 한을 품고 나온 아버지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돼요. 심판의 한 때를 찾아 이러한 한의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하나의 아들딸을 세워서 온 만우주를 재차 축복하기 위한 때가 재림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자문자답해 보라구요. 하늘을 위하여 눈물을 얼마나 흘려봤으며, 하늘을 위해 땀을 얼마나 흘려 봤으며, 하늘을 위해 내 생명의 피를 얼마나 흘려 봤느냐? 하늘의 어떠한 기준 앞에 인정받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 자처하면 강도가 웃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는 거예요. 이번 전도 기간에는 수많은 식구들이 생겨나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각오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이것이 먼저 우리에게 있어서 생각할 문제입니다.
이 때는 어떠한 시대냐? 이 때는 심판 때이므로 하나님이 재섭리하는 말씀 심판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리 원칙입니다. 수학의 공식은 어떤 국경을 초월해 있습니다. 어떤 위대하다는 인물의 모든 내용을 초월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만사일통이예요.
여러분, 공식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곳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진정히 사랑하는 곳은 둘이 아니라 하나예요.
공식 법도 위에 새로운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야 할 천적인 심정세계의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우리가 믿고 천당가자' 하는 거에요. 그러면 얼마나 쉽겠어요? 땀을 흘리면서 여러분에게 이런 말도 안 할거예요. 여기 서서 말하지요. 생애를 바쳐 핍박의 길을 가면서 오늘날 민족 앞에 이런 싸움을 안 해도 되는 거라구요.
통일의 청년들, 더욱이나 우리 통일신도들에게는 새로운 각성이 필요할 때가 왔습니다. 만일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이런 내용의 모든 것을 해결 못 해주거든 보따리를 싸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미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천정이 숨겨진 말씀을 못 해주고, 내 눈에 불을 붙여 주지 못하는 내용의 말씀이라면 가짜예요. 적그리스도입니다. 아무리 성경 66권을 다 외워 가지고 유창한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엉크러진 죽음의 피를 갈라낼 수 있는 내용의 진리가 없다면 진리가 아닙니다.
변천의 역사를 혁명시켜 나온 것도…. 이 시궁창에서 싸우고 있는 이 피의 감정을 새로운 피의 감정으로 돌릴 때만이 역사는 새로운 혁명시대로…. 우리는 이제까지 새로운 역사의 개문을 향하여 나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심정에 새로운 핏줄기가 심어지게 하고, 새로운 피살이 약동하는 새로운 이념의 목적을 향하여 그 위치에 있어서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그 모습을 찾고 있느냐? 내 위치와 내 가치와 내 목적이 방향을 갖고 있느냐를 반문해 보게 될 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불변의 위치요, 영원불변의 가치요, 영원불변의 목적의 주체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도 영원불변의 위치요, 영원불변의 가치요, 영원 불변의 목적의 대상체를 갖출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 거리 저 마을, 이 교회 저 교회, 이 교파 저교파, 수많은 인사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은 통일이라는 여기에 찾아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길까지 찾아오게 된 그 이마에는 땀이 흘렀고, 그 등에는 매자국이 남아진 것도 알고, 그 발걸음에 상처가 난 것도 알았지만 나는 역사의 일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땀과 눈물과 피가 아직까지 이 민족 앞에, 오늘 이 세계 인류 앞에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천적인 심정을 위로해 드리는 효자 열녀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피를 아버지의 피로, 우리의 땀을 아버지의 땀으로, 우리의 눈물을 아버지의 눈물로 돌릴 수 있는 자신이 있거든 오고, 없으면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된다구요.
하나의 천리의 말씀을 세우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육천 년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이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원통합니다. 원통해요. 아버지된 입장에서 자녀라는 이름을 가져온 타락한 인간, 인연으로 보면 아들인데 사정으로 보면 원수의 입장에 서 있거늘 이것을 어떻게 터쳐 나가느냐? 이렇기 때문에 뜻 있는 양심적인 사람을 움직여 이 담을 터쳐 나온 것입니다. 내 심정의 피가 끓어오르면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아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그 음성과 아버지가 아들이라 부르는 그 음성에 온 천지가 녹아지고도 남는 그런 시기가 반드시 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땅 위에는 심판이 끝날 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아버지를 생각할 때 통곡할 수 있는 마음의 심정이 간곡하고, 내 육신이 찢어지고 밟히는 어떠한 억울함을 게의치 아니하고 눈물의 담과 눈물의 바다를 깨쳐 목표량을 다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 있느냐? 반성할 때라는 것입니다. 나는 한때 울어 본 적도 있습니다. 한 없이 울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일개인의 어떤 욕망과 목적 때문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점을 중심삼은 역사적인 전환점을 해결해야 할 때가 반드시 심판 때에 올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되어 역사적인 곡절을 중심삼은 한의 인류의 참상을 만들어 놨느냐고 생각하게 될 때, 하나의 천정을 대신할 참다운 아들의 모습이 그리워 허덕이며 통곡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리워서 찾아 헤매는 그 음성과 화하여 들려오는 그 음성 앞에 내가 여기에 있노라고 외칠 수 있는 한 자리가 그리웠다는 것입니다.
수십 년 종교생활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부르시는 그 음성 앞에, 그 심정을 염려하면서 부르시는 대답 앞에…. 아버지의 사정적인 모든 것을 이어받아 책임 감당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이 이 땅 위에 있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여러분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불쌍하고 원통한 하늘이었습니다.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이었다는 거예요. 사탄, 이것은 벌써 몇천 년 전에 심판의 제물로 지옥 불구덩이에 쓸어 넣어 유황불에 사라지게 해도 아깝지 않을 이런 한을 가진 인류역사였습니다. 그것을 참고 지금까지 나온 거예요. 나는 아버지요, 너희들은 아들이라는 인연을 남긴 것이 없다면 여러분이 자신을 가지고서 살아갈 수 없다구요.
복귀의 심정을 우리들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에 아버지의 음성으로 불러져 들려오는 그 음성이 필요할 때입니다. 여기 내 자신에게 있어서 그리운 것은 어떤 세상적인 그 무엇이 그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이미 다 끊기고 막힐 때가 돼 왔으니 이제 여기에 있어서 내 귀가 있고, 내 눈이 있고, 내 입이 있고, 내 감정이 있다 할진대는, 이목구비나 오관을 통하여 들어오는 그 감정이 옛날의 감정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감정을 통할 수 있어야만 되겠습니다. 그 감정은 천정과 더불어 인연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파악한 자리에서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겠습니다.
이런 과정을 넘어야 할 인간이기 때문에 무지한 인간들을, 떨어지고 밟힌 처량한 그 인간들을 손짓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구원이라는 방패입니다. 비유와 상징으로써 심정의 내정을 통과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나온 인류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왔던 것이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어떠한 메시아냐? 심정의 메시아. 그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냐? 실체의 메시아. 그 메시아는 어떤 메시아냐? 말씀의 메시아로되 예수가 이 땅에 와서 보여 준 것은 말씀의 메시아로서의 노릇을 완결 못 한 것입니다. 말씀 기준도 완결짓지 못하고, 인격 기준도 완결짓지 못하고, 심정 기준도 완결짓지 못한 채 갔습니다. 말씀 같은 말씀을 남기고 간 것이 간 것이 성경이예요. 그게 비유와 상징이예요.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무엇을 찾아야 될 것이뇨? 말씀과 더불어 말씀 통과 후에는 실체 통과시대가 온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기독교가 지금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 연구하는 목적은 실체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체의 기준을 통과 하지 않으면, 그 실체를 붙들고 이 땅 위에서 사정을 알지 못한다면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의 인류는 주님을 맞이해야 됩니다. 말씀을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 실체를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 심정을 완전히 통과 못 한 우리가 가만히 보면 제일 좋은 것만 바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오, 신랑이신 주님! 사랑이신 주님! 사랑 자리까지 나가기 위해서는 말씀을 해결해야 됩니다. 말씀을 내재했으면 말씀과 하나될 수 있는 예수를 대신한 인격자가 돼야 합니다. 이걸 다 무시해 버리고 믿으면 천당 가고 신부가 돼요? 가나 안 가나 보자구요. 우리는 성경을 연구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어떤것이 문제냐? 성경을 보면 그저 뭐 전부 다 요한복음 3장 16절같이 누구든지 다 그래요? 천만에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슬픔이 있다면 제일 슬픈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에게 십자가 고통이 있다 할 때 제일 큰 고통이 무엇이고 억울함이 무엇이냐? 성경 다 안다고 청산 못 해요. 뿌리가 없어요, 뿌리가. 오늘날 성경을 찾아볼 때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큰일이라는 거예요. 방황하고 싸우고 이단 저단하는 왕자들이 돼 버리고 만 거예요. 그러나 암만 싸웠댔자…. 가지는 가지끼리 싸우고 앞사귀는 잎사귀끼리 싸워야 되겠느냐 말이예요. 가을이 되면 다 떨어져 나갑니다. 생명의 진액이라는 것은 뻗어 나가는 거예요.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디를 통하여? 뿌리를 통하여. 여러분이 그것을 알려면…. 베드로가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 죽으면서도 `주여!' 했듯이 죽으며서도 주와 심정적으로 통할 수 있는 뿌리의 내용을 들추어 나와 인연을 맺어야 돼요.
예수가 십자가 도상에서, 죽는 자리에 나가면서도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이 심정으로 흘러내리려던 그 사정이 무엇인가 알아야 됩니다. 그걸 모르면 죽은 거예요, 죽은 거. 성경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다 주었는데 다 해결하지 못해 가지고 무얼 또 바래요. 끝날에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그러니 예수는 이 땅 위에 올 때 신부를 찾아 온 것입니다.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서서 외친 목적은 예수 믿고 천당 가기 위한 개인의 목적이 아닙니다. 나를 믿고 이스라엘을 구하라는 것이 목적이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똑똑히 알아야 돼요. 나를 믿고 이스라엘을 구하고 이스라엘을 믿고 세계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계와 땅을 구하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나만 천당 가는 게 아니예요. 천만부당한 말입니다. 어디에 그런 선의 목적이 있어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민족을 위하여 믿는 것이라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세계를 위하여 사랑하는 것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그러한 신자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어떨 것 같아요?
여러분, 바꿔 생각해 보라구요. 대천주의 공업(公業)을 완성시켜야 할 책임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민족을 동원하여 양심적인 사람을 연결시켜서 하나의 형태를 갖추어 선의 주권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라 할진대 내 개인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을 위하기 위한 것은 깨져 나가요. 불에 빠진다 말이예요. 그건 깨져야 됩니다. 깨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망해요. 자기의 일족을, 한 나라를 위한 종교는 깨져야 됩니다. 그거 안 깨뜨리면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는 혼란의 때에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깨뜨려야 돼요. 왜? 하나님의 목적과 자기들이 갖고 있는 위치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통일의 이념을 우리들이 부르짖고 나오게 될 때, 우리가 믿는 것이 내가 믿고 천당 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걸 끊어 놓아야 돼요. 만약에 내가 믿어 가지고 민족을 구하고 그 구한 민족이 천당 간다면 내가 천당 가지 지옥 가겠느냐 말이예요. 신앙의 방향성이 다 거꾸로 됐으니 곡절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통일신도들은 `내가 믿는 것은 이 민족을 구하고, 내가 믿는 것은 이 인류와 세계를 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슬픔 가운데 있으니 하나님의 슬픔까지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이거예요. 여러분들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무슨 전지전능한 하나님….' 하지만 그건 다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모든 본의를 알려면 요거 공부를 해야 되겠다구요. `아, 하나님은 슬펐구나….' 여러분의 슬픔은 어디서 나왔어요? 우리의 희노애락은 하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몰림받는 데 최고로 몰림받자는 거예요. 수많은 종교인들의 반대를 받되 거기에서 우리는 사라지는 무리가 돼서는 안 됩니다. 대중을 위하여 나가 외치게 될 때 거기에 타오르는 하나의 불길이 대중의 마음을 뒤집을 수 있는 내용을 가졌다면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천법 말씀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말씀시대가. 말씀을 찾아내어 신부가 되려면 주체와 대상의 모습을 통하여야 된다는 거예요.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인격적인 기준에 있어서 예수가 거치던 모든 심정의 내용을 통한 생활적인 감정이 화할 수 있는 이런 인격자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그 심정을 찾아보게 될 때 예수님이 재림하기를 무한히 고대했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2천년 동안 기다렸어요. 예수님 시대에 주님이 언제 오겠느냐 할 때 전부 다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살아서 올 줄 알았지만 재림의 이념을 대할 수 있는 심정적인 기반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한스러운 희생의 역사노정을 엮어 오면서 때와 사람을 세워 가지고 세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때를 바라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찾아 나온 것입니다.
재림하고 싶었던 하늘의 심정이 간절하였으되 오지 못한 그 사정이 어디에 있었느뇨? 여러분들이 무지하였기 때문에, 더 나아가서는 무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거예요. 주님은 이 땅 위에 오실 때 만국을 통치하기 위해 오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신앙관은 자기가 구원받고 천당 간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졸장부가 돼 가지고 신부라고 하겠어요? 상식 부족이예요, 상식 부족. 예수는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요, 하나님의 황태자예요. 하나님의 왕자예요, 왕자. 그걸 알아야 돼요. 오늘날 대통령 아들만 돼도 뽐내고 그러는데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주인공이요, 시대적인 주인공이요, 혹은 미래적인 주인공으로 계실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 주체로 계시는, 홀로 계시는 그 절대자 아들입니다. 그의 신부가 되어야 해요, 그의 신부가. 그런데 이런 엉터리가 없다는 겁니다.
예수가 믿으라는 내용은 여러분 하나를 중심삼고, 개인 천국 보내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믿으라는 것은 온 천주에 대해서 호소한 말입니다. 천주의 심정 깊이 사무친 예수의 이념의 내용을 통하여 흘러 나오는 말씀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경지에 서 가지고 사망의 세계, 죄악의 세계를 대하여 싸움을 해 나서는 하늘의 정병이 그리웠다는 거예요. 이런 대표자로 로마제국을 향하여 나섰던 것이 70문도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 있지요. 예수의 성경 말씀을 믿고, 그런 내용을 알아 가지고, 인격적인 내 한 자체가 돼 가지고 심정에 있어서 만민을 대하여 내 피를 흘리면서 원수까지 복을 빌 수 있는 어머니 아버지 이상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선 우리가 상식적으로 비판해도 이런 논점을 해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런 사람 봤어요? 그런 목자를 봤어요? 그러한 성도를 봤어요? 문제는 거기에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기필코 뚫고 나가는 무리가 있다면 그런 무리는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것이 가설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내용으로 나가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하늘이 벌주겠어요? 사실이 그래요, 사실이.
이때는 말씀이 그리워 허덕이는, 말씀의 곤궁을 느껴 허덕이며 지치는 때입니다. 이들을 깨우칠 자는 누구뇨? 끝날이 되어 오니 끝날 앞에 지친 무리를 찾아오는 모습이 실체입니다. 주 대신 지친 그 모든 내용을 풀어 줄 줄 알고, 주 대신 지친 내 환경을 수습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지도자가 필요한 때가 왔습니다. 오늘 전세계 기독교를 바라보게 될 때 교회당은 크고 교인들은 많다고 하지만, 거기에는 그런 사람 몇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 앞에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통일신도들은 이미 거쳐야 할 걸음을 다 거쳐왔습니다. 장로교 교리가 어떻고 감리교 교리가 어떻고 신약사조가 어떻게 나오고 이런 걸 다 알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허덕여 나온 무리들입니다.
이제 여기에 무엇이 필요하느냐? 내가 지친 이 자리를 다시 한 번 용솟음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연구하고 연구하여 지쳐 쓰러질 때는 말씀으로 다시 한 번 말씀의 자신을 갖출 수 있는 거예요. 말씀 애착 회복운동을 제시시키는 새로운 움직임이 지상 위에 나타나지 않는 한 갈 길이 막혀 버린 이 인류가 어디로 갈 것인고? 달려가 보니 막혀서 돌아서 가야 하는 데 어디로 갈 것이냐?
오늘날 이렇게 단말마적인 첨단에 처해 있는 우리 역시…. 말씀에 지치고, 신앙 생활에 지치고, 교회 생활에 지친 나로 하여금 지친 말씀과 지친 신앙에 감정을 새로 일으켜 지금까지의 것보다 더 좋은 가치로써 `아버지여 알았소이다' 할 수 있는, 말씀에 대한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이러한 심판의 때에 있어서 말씀심판과 인격심판과 심정 심판이 끝날에 벌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의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심정을 일으킬 수 있는, 말씀에 대해서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말씀을 세워 놓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격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인격심판의 어떤 기준을 이 땅 위에 내세우고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아니예요. 심정 심판을 하기 위해서는 심정의 기준을 수습할 수 있는 그 한 기준을 세워 놓아야 해요. 안 세우고 하게 되면 다 망해 버린다 이거예요. 그렇게 때와 시기를 바라보게 될 때 이 때는 심판시대입니다. 알겠어요? 심판시대예요, 심판시대.
여러분, 이제 여러분 손에 쥔 것을 놓고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이 아버지가 제일 사랑하던 것이 아닙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답을 받아야 할 때예요. 목을 매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죽을 각오까지 하고 해결해야 된다 말이예요. `그럴 것이다' 하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지금은 여러분 마음에 이제 다시 한 번 용솟음쳐 새로운 무엇으로 나가기 위해 허덕이는 자신을 반성할 때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자기가 지금까지 제일 사랑하는…. 천지운세가 도수를 맞춰 들어오는 그런 총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오늘 내 자신이 애착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들고 `하나님이여, 이것 보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갖고 있어요? `주인이여, 이것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걸 갖고 있냐 말이예요. 다 잃어버렸습니다. 가진 것 같지만 다 잃어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최후 청산시대가 옵니다. 최후 심판시대이기 때문에 말씀을 중심삼은 각도대로 180도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이 벌어져야 나라가 살든가 교회가 살든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시대에 처해 있는 세계인류라는 거예요. 그대들의 마음이 어느 누구에게 자랑할 수 있는 애착의 발판을 갖고 있느냐? `어서어서 데려가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갈 때 내 아들딸이 귀하고 내 무엇이 귀하지만 그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사조가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러한 시대가 오게 되면 민족적으로 그런 사조에 휩쓸려 가지고 안 끊을래야 안 끊을 수 없는 그런 환경에 선 민족과 국가와 세계 사조를 대표하여 고통받는 그런 한 지역과 한 백성이 생겨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세계적으로 볼 때 한민족이예요, 한민족. 남북이 딱 갈라져 가지고 부모 처자가 다 갈라져 버렸어요. 심정적인 파탄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6. 25동란으로 경제적인 파탄이 나오고, 이론적인 파탄이 나오고, 정책적인 파탄이 나오고, 종교적인 파탄이 나오게 되었다 이거예요. 그렇지만 여기서 낙망하지 않습니다. 또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하늘의 뜻이 이 민족 앞에 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를 봐도 부패한 고비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는 시작돼요.
오늘날 이 정권의 12년 동안 부패정치로 말미암아 새로운 청년들의 피가 끓어올랐어요. 올랐으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로 뻗어 나가야 정상입니다. 심어 놓고 보니, 뿌려 놓고 보니 비료를 뿌린 옥토가 되지 못하고 또 마찬가지예요. 내가 여기에 뭐 어떤 욕망을 갖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종교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젊은 청년 남녀가 있다 할진대는 4. 19혁명 당시에 뿌린 피를 어디로부터 끌고 나갈 것이냐?
그런 마음을 품고 하늘 앞에 기도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지만 수백 명의 부모는 여러분보다 더 통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 부모 이상 아버지 앞에 호소하면서 `이 피의 대가가 부디 이 민족의 생명의 피의 대가로, 천륜의 법도의 때를 위하여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기적의 절개의 한 맥박으로서 남아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눈물짓는 무리가 어디 있는 지를 찾아야 할 때라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이 민족은 고개를 들고 나올 수 없다구요. 이렇게 전진을 명령하고 방향을 제시하여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새로운 문을 개방해야만이 이 길을 헤치고 나갑니다.
이제 하나님의 목을 부여안고 싸우는 청년 남녀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젊은이들은 그것을 그리워한다는 거예요. 갈 곳 없고 지치고 방황하는 무리는 기필코 어느 한 때 통일의 봉화를 반드시 볼 것이며, 봉화의 불에 새로운 충격을 받는 한 날이 있거든, 거기서 주저할 것이 아니라 방향성을 제시하여 천적인 섭리와 더불어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심정적인 내용의 그 무엇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찾아 세울 것이냐? 그것은 인간 중심이 아닙니다. 천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심정적인 기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요, 소위 각 교파, 혹은 종파, 혹은 도를 숭상하는 수많은 도의 권내에 머물러 있는 인사들이 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곳을 알았고, 우리가 처해 있는 위치와 우리의 목적을 알았고, 우리의 가치적인 그 무엇이 하늘을 중심삼고 저울질한 것을 알았다 할진대는 여러분 자신들이…. 여기에서 우리는 땅과 하늘을 대신한 새 사람들을 찾아 가지고 심정적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말씀을 발표해야 됩니다. 그 말씀이 역사적인 말씀을 심판할 수 있는 말씀으로 돼 있느냐?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맹목적이 아니예요, 맹목적이.
오늘날 사회 인사들은 통일교회 문선생 하면 그저 바보 천치 미급자(未及者)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거예요. 이런 길을 가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피땀을 많이 흘렸고, 누구보다도 머리를 기울였고, 누구보다도 생사의 판가름의 싸움을 몇 고비 넘어왔습니다. 자기에 대한 각오와 자기에 대한 신념과 자기에 대한 실천적인 증거 그 무엇 갖고 인류를 대하고, 민족을 대하고, 어떠한 국가 어떠한 사상을 대해 가지고 싸울 수 있는 자신을 가졌느냐? 이러한 문제를 놓고 무한히 고뇌한 사람이라는 거에요. 그래 가지고 이러한 자리에 욕먹는 간판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우리는 여기에 있어서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의 역사를 엮어 나오고, 부여 안고 싸워 나오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을 중심삼고 과거의 피와 땀과 눈물로 엮어 나오던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이며, 이 시대에 눈물과 땀과 피로 엮어 오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그 심정이 무엇이며, 미래의 심정이 무엇이냐 반문하게 될 때, 여러분이 말은 못 할지언정 내 가진 모든 모양으로 증거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신념이 없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 못 해줍니다. 하늘은 자조자(自助者)를 돕는 것입니다.
예수는 불초한 몸으로 나타났을지라도, 초조한 모습으로 갈릴리 해변가에서 가난한 어부의 스승이 되었을지언정, 어떠한 교법사 빌라도, 그 누구한테…. 가진 천적인 신념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심정까지 움직일 수 있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 신념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신념이었기 때문에 신념을 통한 말씀의 인연이 남아 있는 한, 그 말씀의 목적이 종단될 때까지는 그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로써 발전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민족을 대하여 싸울 수 있는 신념, 세계에 어떠한 반대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걸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더군다나 통일 신도들은….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대포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원자포시대입니다. 일을 하다가 피땀을 흘리며 도중에 쓰러지게 될 때 그 고을이 터져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신념을 가져야 돼요. 그런 자신과 그런 신념을 가진 여러분이 돼 있느냐?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 견지에서 아버지의 말씀이 이것이요, 아버지가 찾고자 하는 진리가 이것이요, 이것이 아니면 이세계를 구할 수 없다는 말씀적인 내용을 가지고 신념을 갖추어 피조세계를 대하여 주인답게 만물을 주관하라 했으니, 주관에 대한 행사를 늠늠히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자신 있게 가져야 됩니다.
자신을 가지고 선 위치를 어기지 않고, 그 가치에 천지가 머리 숙일 수 있는 자리에 서서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딸이 있다면 `예이, 이 녀석아, 너는 망령된 자야' 그러지 않습니다. 내가 바라볼 때 몰리고 쫓김받는 것이 고맙다는 거예요. 참된 것이 욕을 먹고 망해 본 법이 없어요. 맞고 근절된 법이 없어요. 이는 지극히 적은 것이로되 하나에서부터 둘로, 둘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하늘은 크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합니다. 자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없이 합니다. 이래야 명실공히 통일교회가….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문제 돼 왔지만 앞으로는 기독교가 문제예요. 미안하지만 말이예요. 여러분 잘 알겠지만 기독교는 문제가 커집니다. 두고 보라는 거예요. 아무리 벽돌담을 쌓고 아무리 어떻게 하더라도 이치에 맞아야 돼요. 진리는 이치예요. 이치인데 개인생활 이치가 아니예요. 세계생활 이치요, 천주생활 이치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진리란 성경 한 귀절 해석 잘 한다고 진리가 아닙니다. 자랑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생활적인 이치, 지극히 평범한 것 같은데 지극히 고상하고, 지극히 보편적인 것 같은데 지극히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 우주적인 진리입니다.
그런 진리의 기준에 서 가지고 여러분 자신들이 민족을 살리고 국가를 살려야 됩니다.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땅을 움직일 수 있고, 하나님의 심정을 돌려 잡을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됩니다. 그런 사람만 되면 주님이 미국에 가도 주님을 끌어 올 수 있다 이거예요. 미국 같은 나라에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고 싶어도 축복 못 해줘요. 왜?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아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몇 사람만 있어 보라구요. 이 세계에 크나큰 축복의 보따리가 있다 할 때는 항의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다구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구요. 신부의 구비조건을 갖추어 하나님이 눈물지을 수 있고, 천상의 모든 것이 감동받을 수 있는 진리의 내용을 가진 어떠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그것을 통하여 주님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내 아버지라고 부르며 서슴지 않고 나가서 아버지와 자식 된 부자의 인연을 회복해서 6천 년 동안 잃었던 아들을 찾기 위한 과거의 역사적인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에 사무친 모든 것을 풀어 놓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심정적 인연을 체험한 주인공이 이민족 앞에 단 세 사람만 있어도 전세계 기독교는 이들로 말미암아 해결됩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또, 그렇게 알고 있어요.
내가 말하건대, 수많은 기독교인과 수많은 도인이 있다 할지라도 최후의 영적인 세계문제와 인간적인 최후의 심정문제에 있어서 해결 지을 수 있는 기점은, 통일교회가 아니면 해결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신하고 나서서 통일하자고 나서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걸 가지고 나오기 위해서는 말씀심판 과정을 거쳐야 되겠으니 이 말씀에 있어서 내가 심판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기 위하여 피눈물 나는 그런 죽음의 고비도 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찾기 위하여 기도하는 데 있어서도 누구한테 지지 않는 기도를 해야 돼요. 이를 악물고, 실제로 얼굴을 들어 가지고 모든 것을…. 천리가 알아 주지 않고는 절대 안 된다는 그런 기도를….
이러한 말씀을 찾아 이 땅 위에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존경하는 형제여! 그 심정적인 기준이 어떻게 돼 있느냐' 하고 외쳐야 하고 내가 이말씀이 옳다 하여 `하나님!' 할 때 하나님이 `오냐' 하는 답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말씀의 내용을 지녀야 됩니다. 우리 민족 앞에, 여러분 앞에 믿겨지지 않는 진리라 할진대 이미 그런 진리는 지나갑니다. 그건 지나간다구요.
여러분, 오늘 통일교회에 들어와 가지고 뭘 느낀 바가 있을 것입니다. 느낀 바가 있으면 그걸 재감정하라는 거예요. 맹목적으로 믿지 말라는 거예요. 여기에서 달라지지 않으면 저 끝에 세계일주를 해 가지고 다시 와야 됩니다. 말하고 싶은 건 그 말이라구요. 그래야 다부지게 명령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서 말하는 자신에게 있어서 말씀심판 과정을 거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비교해 볼 때,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어서 승리의 무엇을 해결지었기 때문에 보이는 세계에 있어서 이 기준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영적 완결과 육적 완결, 무형세계 완결과 지상세계 완결을 지어야 되겠으니 여기서 수많은 원수가 전부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24억 인류가 나타나서 통일교회를 몰아치겠다고 하는 그런 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천정을 대신하여 나타난 그 모습 앞에 있어서는 누구한테 양보하지 않는, 나만이 우리만이 아버지 앞에 가겠다는 그 내용을 안고 나타나게 될 때, 그 인연을 갖지 못한 수많은 인류는 반드시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움직일 수 없다는 거예요. 움직일 수 있는 영적인 모든 내용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령이라고 합니다. 기독교통일신령이예요. 어떤 사람들은 `신령' 하면 요술판이기 때문에 `신령' 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게 아니예요. 이치적인 내용을 통하여….
이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말씀과 더불어…. 그다음에는 실체통과시대예요.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도 지금까지 40평생을 싸워왔습니다. 내가 쓰러지는 그 순간에 있어서 아버지 앞에 내 정열을 다 기울여 무엇을 할 수 있는 미련의 감정이 남을까봐 염려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에 어떤 수단 방법으로 자기 일개의 어떤 욕망을 가졌다면 천벌을 받아요. 만일 그렇게 됐더라면 벌써 망해 버렸어요. 왜정 때부터 수십년 역사노정에 이런 놀음을 해 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감옥생활을 해나왔어요. 가는 곳마다 조롱을 받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원수는 내게 없습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천륜의 법도가 말씀통과시대의 과정을 거치면 반드시 실체통과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고, 이 땅 위에 있어서 한을 남긴 원한의 기준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아벨의 피가 호소한다고 했지만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왕자가 이 땅 위에서 눈물짓고 피흘리며 호소 만 할 것 같아요? 안 할 것 같으냐 말이예요. 예수의 피눈물이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피눈물의 호소를 어디서 탕감할 것이냐? 오늘날 성도들이, 지금까지 이 기독교가 피의 전쟁으로 기독교의 참다운 피를 연결시키기 위해서 호소하며 탕감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런 모든 문제를 걸고 들어갈 때 여러분은 남겨 놓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에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이 자리가 여러분이 바라볼 때 좋은 자리 같지만, 당장에 이 자리에서 나가 영어의 몸이 될지라도 거기에 대한 심리적인 변동은 없어야 됩니다. 그런 신념을 갖고 나가야 돼요.
오늘 우리에게는 이 현실무대에 있어서 사탄세계를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비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러한 형태를 갖추어 나오기 위해서 무한한 눈물을 흘린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의 사실에도 피와 땀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갖고 쓰다 남은 그러한 무엇으로써 하나님을 위하여 지금까지 움직여 나오지 않았습니다. 먹지 않고 굶고 쫓기면서, 헐벗고 떨면서 나온 거예요. 오늘날 이런 형태를 가지고, 민족의 문제의 제시 조건을 갖고 나타났다는 거예요.
이런 데서도 침묵을 지켜 나왔습니다. 언제나 이럴 수 없다구요. 때가 이런 때가 왔거든 새로운 문화에 있어서 내 진리를 통하여 오늘날 지성인들이 관심을 잃어버린 이 민족 앞에 관심을 일으켜야 되겠고 애착심을 일으킬 수 있는 운동을 전개해야 됩니다. 이걸 실천해 가지고 나라에 대한 애착심, 혹은 우리의 이상세계에 대한 애착심을 잃어버린 이 무리들을 격려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것이 안 되거든 제를 올려서라도 이들을 깨우쳐 하늘이 품어 줄 수 있는 민족으로 돌려 놓지 않으면 안 될 민족적인 사명에 불타 가지고 우리들이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까지의 기성 진리를 심판할 수 있는 말씀을 지닌 자로 나타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신념을 가졌거든 그 실체적인 몸을 가지고 배신한 원수들을 대하여 정면 충돌하게 될 때, 자유스럽고 평화스러운 환경에서 그들을 버젓이 훈시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것도 불신하거든 참과 거짓을 증명하기 위해 피를 뿌려 하늘 앞에 제물로써 보여 줄 수 있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신도들이 그걸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생활을 움직일 수 있는 말씀, 생활의 실체를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랑, 생활에 허덕이는 마음의 터전을 안식시킬 수 있는 심정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무리로서,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적인 소망의 터전 위에서, 뚜렷한 출발에서부터 목적까지 변치 않는 원칙적 노정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무리가 됐다 할진대는 여러분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때는 진리심판의 때요, 인격심판의 때요, 심정심판의 때라는 거예요. 외적인 현상으로 볼 때, 섭리적인 조건에 비춰 본다면 그렇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붙들고 나가 싸우게 될 때, 이 말씀을 외칠때 여러분들은 말씀의 심정, 여기서 말하는, 혹은 우리가 말하는 이 말씀이 나올 때까지 그 숨어 있는 곡절의 처참상을 느끼면서 하늘 앞에 감사할 수 있는 벅찬 마음을 갖고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위해 나간다면, 나가는 곳곳마다 여러분에게는 하늘이 같이합니다. 틀림없다는 거예요. 하늘이 같이합니다. 이 말씀을 갖고 나가는 곳곳마다 묻혔던 마음에 혁명이 일어나요. 양심의 혁명으로부터 심정의 혁명을 갖출 자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걸 자신하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또, 타락된 우리 후손을 보게 될 때…. 우리는 타락성을 갖고 있습니다. 타락성의 4대 조건이 뭐예요? 교만과 시기와 혈기와 거짓입니다. 교만, 질투, 혈기, 거짓, 이것이 타락성이예요. 여러분도 그걸 벗어야 된다 말입니다. 이걸 벗으려니 지금까지 금식을 하고 야단을 하는 거예요. 이걸 벗으려면 복귀노정의 심판시대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되느냐? 내 자신이 말씀으로 무장하고 말씀의 실체가 돼야 됩니다. 실체과정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타락성 본성을 벗어야 됩니다. 여기에는 4대 조건이 남아 있으니 이것을 벗으려면 핍박도 받고 시련도 받고 해야 된다 이거예요. 지금까지 이런 도상에서 여러분들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그런 자리에서 보게 될 때 거기에서 비로소 아버지께서 오늘날 우리를 구하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하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그 자리에서 심정을 체휼한다는 거예요. 성경을 보고는 절대 그것을 몰라요. 기도 가운데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어요. 실체적으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생활적인 감정 가운데서 원수들 앞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심정이 거기에 파묻힐 수 있어야 됩니다. 많은 핍박을 받아 가지고 싸우는 노정에 있어서, 이 실천무대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잘 해야 돼요.
그러니 여러분이 나가 싸우지 않으면 안 돼요. 나 하나를 구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렇게 싸워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되겠어요. 이렇게 싸워 나왔으니, 하나님께서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6천 년 동안 수고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날 찾아진 나로서 혹은 진리를 대신한 모습으로서 심판의 기준을 넘어 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내 개체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뜻이 완전 종결된 것이 아닙니다. 나를 넘어서 민족이 남아 있고, 나를 넘어서 세계가 남아 있고, 나를 넘어서 우주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으니 이제 하늘은 나를 넘어서 피땀을 흘려야 되겠고, 눈물을 흘려야 되겠고, 죽음이 고개를 넘어야 할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심정적인 체휼을 하고 난 후에는 아버지 앞에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딸이 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가 돼야 되고, 아버지의 자녀를 거느리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되는 거예요.
내 개인이 종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늘과 내가 내 개체에 있어서 종적인 관계에 있어서 부자의 인연을 맺었을망정, 내게 있어서는 종적 관계로 하나돼야 합니다. 형제적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민족을 통하여 지금까지 뻗어 있다고 하자구요. 그러나 이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종적인 문제를 해결했으면 횡적인 문제에 있어서 형제적인 노정, 형제를 찾기 위한 하나의 수고가 남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 여기 우리들은 참다운 효자와 충신과 열녀가 돼야 할 책임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유업을 상속받는 데는 무슨 상속? 형제를 구해 주지 않으면 안 될 유업을 상속받아야 됩니다. 이 형제를 구하는 데 있어서는 하늘이 넘어가야 할 땅이 남아 있고, 하늘이 넘어가야 할 눈물의 고개가 남아 있고, 하늘이 헤치고 나가야 할 죽음의 고개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번 40일간에 나가 전도하며 싸우다 돌아온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개체의 심정적인 체휼을 했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수고했고,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하여 눈물의 길, 피땀 흘리는 길, 죽음의 길을 개의치 아니하고 6천 년 기나긴 세월을 하루와 같이 불초 이 몸을 구하기 위해 오신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체휼한 기간이, 혹은 핍박받는 자리와 굶주린 자리와 무한히 서글픈 자리에서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아 풀뿌리를 붙들고 산천을 바라보면서 스쳐가는 바람결과 더불어 그러한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면서 아버지 심정 앞에 여러분이 머리 숙이면서 아버지 하며 눈물짓는 심정적인 체휼을 한 기간이 이 40일 기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나느냐? 우리는 지금까지 몰랐던 것을 많이 알았습니다. 심정 심정 외치던 그 말이 통하여 심정이 무엇인지 알았고, 말씀 말씀, 실체 실체 외치던 그 말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은 잘 아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다시 한번 아버지의 뜻 앞에 참 아들딸로서 인정받고, 새로운 각오를 한 여기에서 뭘 할 것이냐?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내가 섰사오니 아버지여 축복을 해주시옵소서' 하고 축복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선 우리라고 본다면, 여러분 자신들이 축복으로 무엇을 받을 것이냐? 아버지의 위업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 속에 있는, 하나님 가운데 있는 기쁨과 영광을 상속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속에 있는 슬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먼저 상속받아야 합니다. 효자 열녀가 어디 있느냐? 기쁠 때 효자는 어느 누구나 다 합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외롭고 슬플 때에 효자가 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려면 하나님의 슬픔 이상 아버지의 가슴 속에 있는 슬픔을 알고 피눈물을 흘려야돼요. `6천 년 수고하셨던 것을 한 1년 동안에 피를 품고 죽지 않을정도가 되어 한꺼번에 그것을 탕감할 수 있사올진대는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한 번 정의의 싸움을 위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내려 여러분을 격려하는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이 사람도 가슴이 아픕니다. 이번 순회 노정에서 어린애들이 피땀을 흘리면서 마을 마을로부터 몰림을 받고, 처참한 사정에 놓여서 흐느껴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여기 스승의 마음은 아픈 것입니다.
마음으로 통곡했다구요. `하나님이여! 이 길이 만약에 거짓이요, 그릇된 길이요, 내 자의의 무엇으로 나왔다 할진대는 당장에 천벌을 받을 것을 압니다' 했어요. 천벌을 받는 거예요.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죽어서도 안 가면 안 될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고, 민족의 처참상과 이 민족을 대한 하나님의 수고의 손길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한 가야 할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비교의 어떤 시각과 지능이 있다 할진대는 이런 길을 가기를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 가면 안 되는 사정과 곡절이 남아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눈물을 머금고 쓰러질 적마다 하늘이 권고했고, 몰리고 쫓김받는 그런 자리에 있게 될 때 하늘은 품어 주는 사랑을 갖고 여기가 아니면 갈 데가 없다는 책임적인 신념을 갖고 다짐해 온 것입니다.
나는 이 길을 기억할 적마다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눈물을 떨어뜨릴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땀을 흘려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을 보내면서 내 자신이 하늘 앞에 기도한 것은 `아버지여, 이들에게 참다운 하늘 뜻을 위하여 흘린 눈물이 있거든, 흘린 땀이 있거든, 아벨의 피가 천주를 대신하여 선의 목표를 세우기 위하여 탄식한다고 했고 호소한다고 했거늘, 이들의 땀과 이들의 눈물이 기필코 이 민족과 이 시대 앞에 호소할 날이 있을 것을 나는 아노라'고 마음으로 몇 번이나 각오하면서 여러분을 내보냈습니다.
성심성의를 다하고 지성을 다하여 흘려진 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정으로 애달파하며 민족을 사랑하고 뜻을 사랑하면서 흘려진 눈물은 무심치 않습니다. 죽을 목숨이요, 최후의 절벽이요, 막힌 문이라고 탄식할 적마다 하늘은 갈 길을 열어 주던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을 그러한 자리에 내몰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돈도 없어요. 세력도 없어요. 우리는 세상에 어느 친구도 없습니다. 부모가 반대하고, 친척이 반대하고, 형제가 반대하고, 기성교인이 가로막고 반대하여 다 잃어버린 자리입니다. 세상에 대한 인연과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전부 다 끊어 버렸거늘, 천운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이 한 시운에 대하여 비로소 생각해 보게 될 때 과연 알맞은 모양으로 아버지께서 참작하여 내세운 것을 감사를 드리고 이런 자리에 설 적마다 쓰러져 낙망하는 자가 되지 말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산 말씀으로, 산 실체로, 산 심정으로 그 흔적을 남겨 놓은 곳곳마다 오늘날 지상이 인간들이 반대하거든 총영계를 동원하여 기필코 성취해야 할 책임감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을 조건으로 하여, 땀방울을 조건으로 하여 탕감적인 선의 투쟁 역사는 벌어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반대하더라도 영적인 세계의 수많은 영혼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타난 수많은 선한 영들은 통일교회편입니다. 여러분이 믿어지지 않으면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눈물 흘릴 적마다 아버지께서는 이 말을 듣고 곤경에 처한 여러분의 편을 지키시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믿을 것을 권고해 주고, 외롭고 몰리는 자리에 있어서 혼자 환경을 개척하기 위해 주저할 적마다 하나님은 보호자를 내세워서 여러분의 환경을 지켜 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산 실질적인 체험으로 여기에 솟구쳐 오르는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각오를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교회를 위하여 나섰지만 이제부터는 민족을 위해 나서고, 세계를 위하여 나설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통일교회가 기독교를 대신한 한 교파의 간판을 들고 교회적인 진리의 기반 밑에서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무리들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구요. 이 민족의 살 길을 거쳐 나가 대번에 승리의 왕자로 등장해 하늘땅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을 이루어 놓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에 수많은 눈물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많은 땀이 있어야 될 것을 알았고, 수많은 희생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굶주린 몸을 터로 하여 굶주린 손길을 붙들고 새로운 각오와 맹세의 손길을 번쩍 들어 아버지 앞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나가는 데는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아 형제들을 구하기 위한 천추의 원한을 풀기 위한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명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눈으로 똑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명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눈으로 똑바로 봐야 겠습니다. 얼굴을 똑바로 봐야 되고, 사무친 심정을 똑바로 봐야 되겠습니다. 누구를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문제의 해결점이 여기에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오뉴월 삼복 중에 전도지를 들고 방문할 적마다 땀을 흘리며 생활했습니다. 혹은 환경에 몰려 굶주리는 자리에 서서 눈물짓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게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거예요. 내게는 부모도 친구도 스승도 어떤 환경적인 내 생활도 없는 외로운 심정뿐이었습니다. 혈혈단신 하나님과 나…. 서글픈 황무지와 같은 천지 앞에 홀로 심정을 가다듬어 아버지라 부르는 그 마음과 더불어 눈물짓는 그 자리에 있어서 흘러 들어오는 바람결이 나에게는 친구였습니다.
떠올라오는 아침 동녘 햇빛이 내 심정의 친구였고, 처량하게 누워 있는 그 흙이 나의 친구였고, 바라보이는 자연이 나의 친구인 것을 여러분이 느껴 봤었다면, 여기에 있어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인연이 약동하는 결심을 재차 가지리라 보고 있습니다. 이 결심을 가지고 이 원한을 풀기 위해서는 내 한 자체만 엎드려 기도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 민족을 붙들고 일족을 바치더라도 하늘을 붙들고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새로운 결심을 했으리라 보고 있어요.
이제 하늘의 총결산적인 조건이 있다 할 때는 그것이 어떤 성경 말씀의 조건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 다시 형제를 대신하고 영원을 대신하여 눈물을 지을 수 있는 심정의 주인이 되었느냐? 일생을 땀을 흘려도 개의치 않는다는 심정의 인격자가 되었느냐? 그것이 아니면 내 피를 흘려 제물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다는 그 심정적인 한 모습이 되었느냐? 그런 내가 되어야 됩니다.
통일교회 신도들은 가슴에 손을 얹게 될 때, 울려 나오는 고동소리와 뛰는 맥박 소리를 느낄 적마다 이 피는 어느 날 어느 시에 끊길 것인데, 끊기는 것이 누구를 위하여서냐 할 때 나를 위하여 이것이 된다면 천추의 한이 된다구요. 끊기는 날 이 피와 맥박이 인류와 하늘과 땅을 위한다면 여기에 있어서 여러분이 지옥 가겠다고 발버둥쳐도 자연적으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생애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생애의 목표는 이것이예요!
언제 내가 호미를 들든가 망치를 들든가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며 일할 자리에 나가야 됩니다. 거기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려야 되겠어요. 위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천주의 위업을 성취하지 못해서 인류와 더불어 눈물짓고, 하늘과 더불어 성과가 나지 않아 애달파 눈물짓는 자리에 있거든 아버지와 더불어, 인류와 더불어, 역사와 더불어 피를 뿌려 이 일을 종결짓겠다는 결심을 가진 무리가 이 민족 앞에, 한 마을에 한 사람씩만 생겨나면 망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가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가라구요.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편안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러니 여러분도 그래야 돼요.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싸우고 있기에 여러분도 그래야 됩니다.
우주의 모든 생명의 운세를 휘감아 품에 안고 손을 움켜 쥐고 놓지 맙시다. 이런 심정을 품에 품었다가 놓는 날에는 하늘땅이 망하는 것입니다. 놓지 맙시다. 내 손등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놓지 맙시다. 잃어버리는 무리가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여러분 자신에게 돌아와 가지고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어떤 관점에서 여러분 개체를 지도했나 반성해 보라구요. 여러분 심정으로부터 어떤 목표를 향하여 지도했던가를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1년 6개월 이상, 혹은 2년 가까이 심정문제를 외쳐왔습니다. 이때는 진리와 인격과 심정을 한꺼번에 하나님 앞에 참소의 조건으로 제시할 때가 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한 기준을 완전히 종결짓기 위해서는 피와 땀과 눈물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기에, 이번에 천지의 도수를 대신할 수 있는 어떤 수의 조건을 대비하여 여러분을 만민 앞에 보냈던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가서 여러분들이 이런 신념을 붙안고, 천지의 대명분을 대신할 수 있는 본연의 한 가정의 기준을 가슴에 품고 여러분들이 나가 싸우는 데 있어서 가는 곳곳마다 섭리는 엄청나게 달라진다구요. 사람으로 안 되면 영계가 움직여 준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번에 많이 증거했을 것입니다. 희귀한 일이 많아요. 희귀한 어떤 소식을 많이 접했을 거라구요. 벌레만도 못한 가치 없는 자기 한 개체를 중심삼아 가지고, 그 이론적인 심정을 붙들고 나가게 될 때, 이것이 하늘을 통하여 자기 환경을 넘어서 움직이는 것을 볼 때 얼마나 황공한 사실이냐 이거예요.
그렇게 하여 여러분이 돌아왔으니 이제부터는 심정의 무장, 말씀의 무장, 인격의 기준을 완결지어서 해결지어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는 하늘 앞에 하나의 상속적인 권한을 갖고, 믿고 축복해 주면 축복한 대로 된다는 신념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아들딸의 심정을 대신한 이러한 기준 앞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대신해 사탄세계를 향해 나섰으니 해결하자는 거예요.
어느 마을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그 마을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에게 져서는 안 됩니다. 그 마을에 들어가서 져서는 안 돼요. 뭘 하는 데? 싸움하는 데가 아닙니다. 땀을 흘리고 눈물 흘리는 데 있어서 져서는 안 돼요. 더 나아가서 희생하는 데 있어서 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먹지 않고 더 심한 결심을 가져야 돼요. 여러분들이 희생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3년 동안 여러분이 총단결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최후로 말할 것은, 어찌하여 피와 눈물과 땀이 필요하느냐 이거예요. 역사는 이것으로 싸워 나왔습니다. 인류역사는 선의 땀을 흘리며, 혹은 눈물을 통하여, 피를 통하여 엮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기독교는 피를 부르짖었고 눈물을 부르짖으면서 회개하라고 외쳐 왔습니다. 예수의 피를 중심삼고 눈물을 흘려 나왔지만 여기에 플러스할 때는 땀을 가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땀을 가해야 돼요.
이번에 수많은 사람들이 210곳에 교회를 세웠으니 이것을 우리가 책임져야 되겠습니다. 지금 그런 발판이 되어 있어 그렇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이제 보십시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그렇고 뜻적으로 봐도 그런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우리의 피는 무얼 할 것이냐?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눈물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고, 땅은 땀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수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 와 가지고 악한 세계에 땀을 많이 흘려 왔습니다. 이 인류는 지금까지 악한 눈물을 많이 흘려 왔습니다. 악한 피를 많이 흘려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탕감 원칙에 의해서 이 땅은 우리 선한 사람의 땀으로 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인류는 선한 사람의 눈물을 통하여 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피로써 갚아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제부터 통일교회의 생활신조는 하늘을 위하여 내 피, 인류를 위하여 내 눈물, 땅을 위하여 내 땀을 흘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활적인 감정으로써 그것을 부여안고 `아버지!' 하면서 `나는 아들이니 이랬고, 당신은 아버지이시니 이랬다' 하는 , 이러한 부자의 인연이 있기에 이러지 않을 수 없다는 심정적인 기지를 세워 놓음으로서 만사는 종결지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눈물, 심정의 땀, 심정의 피를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세워 놓자는 것이 이제부터 싸우러 나가는 여러분의 의무요 책임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어요. 아시겠어요? 「예」
왜 그래야 되느냐? 남한 각지를 순회할 때 나는 그것을 더욱 절절히 느낍니다. 그 부락부락마다 드나드는 고을의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많이 속아 봤습니다. 외식자한테도 속아 봤고, 혹은 주먹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속아 봤고, 혹은 종교인들한테도 속아 봤고 다 속아 봤습니다. 그들은 이제 앙상한 뼈와 살만이 남고 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땅 문제에 목을 걸고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무엇인가 갖고 나가야 될 줄 알아야 됩니다.
속아 본 무리들 앞에 진실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제는 말보다도 실천을 해야 됩니다. 말하기 전에 사무친 심정으로 눈물 흘리며 그를 붙들고 `형제여', `동포여' 하고 눈물지을 수 있는 가슴을 가진 소유자가 돼야 된다는 거예요. 이 민족이 이렇게 처참하게 되고 이 민족이 이렇게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 걸 통곡할 줄 아는 심정의 주인공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민족을 부여잡고, 가던 길이 막혔으니 돌이켜 돌아갈 수 있는 길이라도 개방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인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고, 강조하기 어려운 말을 스승으로서 여러분 앞에 하고 있는 괴로움을 여러분께서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가진 바의 영광이 있거든 나는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이 나가싸운다 할진대는 싸우는 노정마다 그 눈물은 아버지의 눈물로서, 그 땀은 아버지의 땀으로써 배가 고플 때는 금식을 하여 피를 말려 가면서 호소할 것입니다. 그 모습 위에 하늘은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참다운 동지자의 몸은 천합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통일교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는 물질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굶주린 자를 붙들고 그와 더불어 위로할 자를 찾았고, 불쌍한 자를 붙들고 그와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자리를 찾았습니다. (이하는 녹음상태 불량으로 수록하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