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보기
HOME 회원가입

오늘은 이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일시: 1973.12.30 (일) 장소: 미국 뉴욕주 벨베디아수련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까지 기성교회에서는 주일날이라는 것을 거룩히 지켜 왔습니다. 이날은 누구나 할것없이, 우리 통일교회도 역시, 금후에도 거룩히 지켜야할 안식일로서 남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1972년, 73년, 74년까지 3년 기간을 책정한 이 기간에 있어서는 우리는 안식일도 안식일인 줄 모르고 지내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그 목적이 어디 있느냐 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는 나라를 찾고 인류를 구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안식일을 지켜 온 것은, 이날을 거룩히 지킴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이 승화돼 가지고 나 자신을 생각하는, 즉 구원의 목적을 가중시키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안식일을 지킨다는 그 목적은 내 자체의 구원의 길을 촉진시키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는 전체를 구원하고, 앞으로 하나님의 섭리의 나라와 세계를 구하기 위한 그 목적을 가중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 차원 높은 하나님의 소원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목적을 두고 우리는 1973년을 싸워 왔습니다. 이 마지막 주일을 맞이해 가지고 생각하게 될 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지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년 동안에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고, 여러 가지 문제를 배우는 일이 많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요 1973년을 뚝 잘라서 생각하게 될 때, 여기 모인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일생에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부딪치고 혹은 여러 가지를 배운 그런 사건의 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협조와 책임자의 수고가 있다

지금까지 미국 교회 식구들을 중싱삼고 볼 때는, 이 1973년도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에 부딪힌 그런 기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어떠한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기적적인 기준을 우리가 느꼈다는 사실은, 거기에 비례되는 희생의 대가를 그 누군가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 느끼게 되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을 중심삼고 볼 때는, 혹은 여러분 각자를 두고 볼 때는, 우리가 의의 있는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보다 앞서서 우리 일은 우리만이 활동해 가지고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반드시 우리를 앞에 세워 놓고 배후에서 하나님이 협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여러 분의 생활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우기나 1년 과정을 거치 면서 그렇게 살아야 되겠지만, 오늘 마지막 주일을 맞는 이 시간에 있어서 더더욱 우리가 다시 한 번 회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를 협조했다면, 협조한 그 결과를 볼 때 여기 모인 청중 가운데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결정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게 될 때에 여기에 모인 누구누구는 이 일년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영원한 역사를 대표해 가지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는 사람하고 좀더 의의 있고 좀더 뜻 있는 너희들이 됐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사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칭찬해야 할 사람이 있고, 책망해야 할 사람이 있지 않느냐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거기에는 칭찬받기에 합당한 자기 스스로의 노력이 투입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노력에 하나님의 협조가 몇 배가 가중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그러한 실적을 갖추기 위해서는 물론 하나님도 협조했지만 이 지상에서 여러분을 직접 지도하는 사람들이 배후에서 여러분을 혹은 못살게 혹은 귀찮게 굴었기 때문에 그런 실적이 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가 수고한 것을 알아야 돼요. 그러므로 나 한사람만이 아니라 위로는 하나님과 땅 위에서는 책임자와 결속된 그러한 보조를 맞추는 데에서 승리적 결과, 즉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사하고 내가 기쁠 수 있는 칭찬받을 사람으로서 섰다 할 때는 자기 자신을 중심삼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 앞에 기쁨을 돌려야 되겠고, 먼저 지도자 앞에 기쁨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분이 칭찬받는 사람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그 기준 앞에 미달하고 혹은 권고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기는 있는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칭찬을 못 받는 사람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기준

자,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칭찬받는 사람과 권고를 받는 사람의 종류는 뭐냐 하면, 공적인 면에 있어서 통일교회면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얼마나 플러스시켰느냐? 자기가 처하고 있는 분야에서 얼마나 플러스시켰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책임 추궁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나 플러스되기를 원하는데 거기에 얼마나 마이너스를 시켰느냐 하는 문제에 걸린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만약 여기에 3백 명이 모였으면 3백 명이라는 이 식구 들이 한 식구씩을 두고 볼 때에, 좋은 사람, 혹은 권고를 받을 사람, 좋지 못한 사람이 섞여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 각자가 언제나 생각해야 할것은 전체 기준에 있어서 그 수가 50퍼센트 이상 넘어가느냐 하는 문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백 명이 모였으면 3백 명의 절반 이상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면 이 3백 명 전체가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할 하나의 기준도 세우지 못한 결과가 되지 않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만일에 절반 이상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되게 될 때는 비중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갑니다.

여러분의 일상생활을 볼 때에, 선한 일이 영향을 미치는 결과하고 악한 일이 영향을 미치는 결과하고 어떤 것이 더 크냐 하면, 선한 일이 미치는 결과보다도 악한 일이 미치는 결과가 더 큰 것을 우리는 일상생활 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될 때, 우리가 이 전체를 한꺼번에 동원해서 움직이는 이 일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이 원하는 그 최고의 기준, 목적 기준까지 도달 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 여기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지금 미국에 있는 이 식구들, 여기에는 전세계 식구들이 투입돼 있습니다. 외국에서 온 식구, 미국에서 태어난 식구 두 종류의 사람으로 가를 수 있습니다. 이 미국에 있는 식구들 가운데도 이와 같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아까 말한 두 종류의 사람이 있고, 또 외국에서 온 식구들 가운데도 두 종류가 있지 않느냐. 이것을 전부 다 섞어 가지고 볼 때에, 과연 1973년에 있어서 전체 식구 중에 절반 이상이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이 돼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식구라든가 구라파에서 온식구들을 그간 선생님을 위해서 수고시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생시킨 것도 알고 있습니다. 미국 식구들은 지금 안간힘을 다해 가지고 외국 식구들한테 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의 전세계의 구원섭리, 전체의 구원섭리를 두고 볼 때에, 외국에서 고향을 떠나 미국에 와 가지고 과연 자기 나라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나으냐, 또 미국의 식구들이 과연 이 외국 식구들이 와 가지고 좋았다 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적으로 보게 될 때, 외국 식구들이 '과연 고향에서 떠나기를 잘했다. 미국에서 외국 사람들이 오기를 잘했다' 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면, 그것은 73년도에 있어서 우리들이 승리의 기준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온 식구들은 과연 미국에 와서 이 미국 전체의 교회 앞에 얼마나 플러스시켰느냐? 또, 그것을 미국 식구들이 대해 가지고 외국 식구가 오지 않았을 적보다도 몇 퍼센트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런 효과를 가져 왔느냐? 그러한 결과를 따져 보려 할 때, 과연 1973년이 오늘의 역사시대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들이 자랑할 수있는 해였더냐 하는 것을 반문하게 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구덩이에 빠져 있는 세계를 구하는 윈치와 와이어가 되라

결국은 여러분을 데려온 것도 나고, 이 미국 식구들을 전부 다 지도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내가 선두에 서서 지도합니다. 여러분 개개인들을 전부 다 동원한 그 목적은, 여러분 자체를 수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있는 미국을 구하기 위한 것이요. 어려운 가운데 있는 민주세계를 구하기 위한 목적 가운데 투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큰 세계가 저 구덩이에 빠져 있는 것을 우리 조그마한 수가, 어떠한 와이어(wire; 철선)를 걸든가 윈치(winch;도르래)를 걸든가, 하나님이 윈치가 되고 우리는 와이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돌리는 데 있어서 줄이 끊어지지 않고 끌어낼 수 있는 힘과 같은 그런 작용을 우리가 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돼요.

이 와이어 줄이 걸어 가지고 견딜 만하면 하나님은 무한한 힘이 있기 때문에 감아서 끌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마음놓고 세계를 끌어올린다 할때 돌릴 수 있는 그런 힘이 돼야 돼요. 여러분이 굵은 와이어를 보게 되면, 가는 쇠줄 여러 개로 꼬는 거예요. 이것을 꽈 가지고 하나…. 여러분은 그 가는 와이어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굵은 와이어 줄을 꼬는 데 거기에 썩은 와이어, 있어서는 안 될 와이어가 있어 가지고는 안 돼요. 나쁜 줄들이 있으면 꼬이다가 어떻게 돼 가지고, 전부 다 뭉쳐 가지고, 한 절반이 한꺼번에 합해 가지고 뭉치면 왕창 끊어져 버린다구요.

그러면 같은 줄의 힘을 가졌다고 봐 가지고 하나님이 윈치를 돌려대는 날에는, 이 전체가 왕창하는 날에는, 1973년도의 일이 하나님 앞에는 도리어 허사요, 하나님 앞에 탄식의 조건으로 남겨질 것이 아니냐, 이런 결과도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게 끊어지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오늘 1973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될 때, 과연 우리들이 미국에 와 가지고, 미국에 있는 식구들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는 국가구원, 세계구원의 크나큰 목적 앞에 하나님이 당당코 내세워 자랑할 수 있고, 당당코 내가 선두에 서서 이것을 전부 다 처리 하겠다고 할 수 있는 완전한 기반이 돼 있느냐 하면, 그렇게는 됐다고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야할 것이 뭐냐 하면, 여기에서 나는 인류를 대신해 가지고 모든 사상적인 면에서 우리가 합해 가지고 틀림없이 과거나 현재나 승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상적 기준이, 목적관이 뚜렷해야 돼요. 목적관이 확실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내 자체가, 내 주관성이 확실해야 돼요. 나는 주체가 되고 이 목적관은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목적은 객체(客體)니만큼 그 객체가 나로 말미암아 소화돼야 되는 겁니다. 결국은 이 목적이라는 것은 대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대상적인 존재는 주체의 동기에서 벗어나 가지고 될 수 없습니다.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동기에 따라서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체가 세계를 위하고, 세계를 위해서 내가 일보도 양보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나'라는 확고한 주체성을 지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주체와 대상 관계를 두고 보게 된다면, 요 주체가 플러스라면 과연 대상은…. 이런 대상이 있다면 이 대상을 조화시키려면 이 주체와 대상이 관계가 맺어지지 않고는 조화가 안 된다 이거예요. 나라는 것은 개인이예요. 이렇게 작다구요. 이것이 요렇게 돌아 가지고는 아무 영향이 없어요. 요것이 요렇게 돌아 가지고는 영향이 되지 않는다구요. 내가 이렇게 돌아갔으면 이것은 완전히 돌아갔기 때문에 언제든지 대상입니다.

이 세계를 다 달아매더라도 끊어지지 않는 줄이 되라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개인을 보게 되면 인류가 36억이니까 36억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 이걸 거대한 바위로 보면, 거대한 바위 앞에 모래알을 갖다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36억 인류의 그 돌이 진흙과 같이 물렁물렁한 돌이라면 어떻겠나요? 그러니까 나는 강한,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강한 모래알이 돼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자신이 돼야 돼요. 구멍을 뚫는 데는 나무 같은 것으로는 안 됩니다. 송곳 끝과 같아야 됩니다. 내가 구멍을 뚫겠다고 하게 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거기에 작용을 일으켜 가지고 이것을 뚫을 수 있게끔 협조할 것입니다.

자, 뚫고 나갔다가 여기에 딱 나타나 가지고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돌아와야 됩니다. 돌아오려면 어떻게 돌아오느냐? 혼돈되어 가지고 한꺼번에 돌아올 수 없으니까, 또다시 가 가지고 이쪽으로 돌아 와야 됩니다. 이 구멍만 뚫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 자리에 와 가지고 쳇바퀴 돌듯 여기 와 반대로 가자' 이러지 않고는 저것을 뚫을 도리가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러한 돌과 같이 구멍을 뚫는 그 송곳 끝에 달린 다이아몬드와 같은 이 수법을 내가 생각해 봤다구요. 그러한 내 자신이, 이렇게 작은 내 자신이 이것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만한 이상의 것으로서 대치되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이 있다면 무엇 주고 바꿀 수 있어요. 살 수 있다면 돈을 얼마든지 주고라도 살 것이 아니야. 만일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되겠느냐? 그래서 이거와 하나돼 가지고 부딪치면 얼마든지 뚫을 수 있다구요. 그럴 수 있는 것이 물렁물렁한 돌이라면…. 구멍을 뚫는 건 문제가 안 된다구요.

여러분이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 이와 같은 싸움을 여러분들이 안하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와 같은 표준 밑에서 목적 달성이라는 걸 중심삼아 가지고 어떤 원인적 주체에 있어서 저와 같은 힘에 대비될 수 있는 투입공작을 하려고 예비작전을 할 것이 아니냐.

자, 이렇게 보면 여기에 외국에서 온 여러분들은 미국의 어떠한 자리에 갖다 놔도 언제든지 '나는 이렇게 구멍을 뚫겠다'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돼야 된다구요. 다이아몬드는 강한 힘으로 때리면 왕창 깨진다는 거예요. 그 깨지지 않고 질긴 다이아몬드처럼 여러분이 그렇게 돼 있어요? 「예」미국에서 활동한 지 일년 됐는데 '어서 그만두면 좋겠다. 어디 힘들 어서 가겠소?'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미국이 문제라는 거예요, 미국이. 바늘로 말하면 미국을 한 구멍 꿰고, 또 다른 나라를 꿰고, 또 다른 나라를 꿰어야 됩니다. 그렇게 꿰어 가지고 달아 놓은 줄이 말이예요, 이 세계를 다 달아매더라도 끊어지지 않는 줄이 되어야 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런 놀음 하려면 외국 어디든지, 아프리카든지 땅 위에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 가지고 거기서 멋지게 딱 자리잡아야 됩니다. 뭐 말을 모르기 때문에 뭐일을 못 한다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구요. 벙어리 모양으로, 물이 먹고 싶으면 물을 먹는 시늉을 하든가 무엇이든가 해 가지고 먹을 수 있는 거라구요. 그 나라에서 벙어리가 살고, 봉사가 사는데, 그 벙어리하고 봉사보다 낫지 않으냐 이거예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니까. 그들보다 낫다, 그들보다 낫다구요. 뭐 행동하고 보고 하는 데는 누구한테 지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디 가든지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이와 같은 전체 뜻을 연결시키는 와이어의 한 줄, 혹은 실의 한 가닥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런 걸 생각해 봤어요? 만일, 이것도 모르고 미국에서 미국 사람들이 전체 동원해 가지고 '통일교회 교인들 잡아죽여라' 하면 다 도망갔을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가 뜻을 위해서 한다는 자세가 우물 안의 개구리 같았다구요.

그리고 여러분을 들어 가지고 때려 박으면 땅을 뚫겠느냐, 아니면…. 그렇게 하나님이 이 지구성을 들어서 최고의 속도로 휘익하고 나를 던졌다면 '내가 안 가겠다'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한번 그렇게 해봤으면 좋겠어요? 「예」 '너희들 전부 다 미국 대통령을 전도해 와라' 하면 어떻게 하겠어? 「하겠습니다」 그러면 데려와요, 데려와. 「알겠습니다」 너희들에게 지시하면 하겠느냐구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협조 안 해주면 어떻게 하겠나요? 하나님의 협조 안 받고 내 자신이 하겠다고 생각해 봤어 요?「예」그럼 하라구요.

자, 앉아 가지고 뭐 이렇게 해 가지고, 꽃팔이나 하고 이래 가지고 될것 같아요? 뉴욕 땅에서 뭐 한사람, 두 사람 전도해 가지고 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통령이 필요할 수 있는 자리, 대통령이 못 하는 자리에서…. 여러분이 나가 전도하려면 그 사람들이 못 하는 일을 당당히 해낼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돼요. 결국은 목적이 크고, 내가 주체가 됐으면 행동해야 해요, 행동. 행동으로서 연결시켜야 돼요. 행동은 소모전이예요, 소모전. 끝날 때까지 계속적인 소모전입니다.

쉬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우리의 기반을 넓히자

자, 그걸 생각할 때, 선생님 일생을 생각하면, 그러한 소모전을 언제나 생각한다구요. 소모전을 하는 데 나 자신이 다 닳아지고 없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거예요. 자꾸 투입하면 없어지는 거지요. 크기는커녕 작아 진다는 거예요, 작아져. 커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작아지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기서 어떻게 보충받느냐 하면 하나님이 보급해 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급을 받는다구요. 하나님은 쓰면 쓸수록 소모가 벌어지나요? 쓰면 쓸수록 발전이 벌어집니다. 예를 들면, 나뭇가지라든가 나뭇잎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나뭇잎이 일광을 받아 가지고 탄소동화작용을 잘하게 된다면 그 작용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데 따라서 뿌리 저 밑창에서부터 전부 다 영양소를 공급받는다는 거예요. 절대적 주체로서 보급해 준다구요. 그러면 딴 데는 쉬는데 우리만이 움직이게 되면 딴 나무가지는 죽어지고 우리 가지가 전체의 줄기와 같이 자라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그걸 볼 때, 지금까지 반대하던 기성교회가 일 안 하고 있는 이 찬스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쉬고 있어요?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뿌리에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일하면 일할수록 전부가 우리의 비료가 되고 우리의 영양소로 흡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시일내에 기성교회가 몰락하는 이런 실정을 앞에 놓고, 우리 하나님은 몰락하지 않고 전진해 나가기 때문에 여기에 보조만 맞추고 일하면 순식간에 전세계 기독교 기반 이상의 기반을 우리가 닦을 수 있다는 게 선생님의 관이라구요.

이제 가지가 하나 나왔다구요. 통일교회라는 한 가지가 나왔다구요. 이게 땅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곧장 올라가는 거예요? 이게 올라가는 중이라구요. 종으로 뻗는 가지가 되면 좋겠어요, 횡으로 뻗는 가지가 되면 좋겠어요? 종대가 되면 좋겠어요?「종적으로 뻗는 가지가 되면 좋겠습니다」그러려면 너희들이 곧장 서야 돼요. 곧장 서 있어야 돼요. 거기에는 하나님과 땅과 나와 하나되어 딱 곧게 서야 됩니다. 손은 딱 이렇게 하고 전부 다 명령에 의해 가지고 작용해야 된다구요. 이렇게 서 있더라도 손을 대 가지고 뭘 하나 쥐고 있으면 안 된다구요. 사탄이 틈타요. 그렇 게만 되는 날에는 하나님만이…. 어디 여러분들은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그렇습니다」난 그렇게 못 믿겠어요.

보라구요. 집이 어떻고, 고향이 어떻고, 친구가 어떻고, 아이쿠 힘들어서 어떻고…. 이 얼마나 복잡해요? '이거 뭐 지금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하며 야단하고 다 놀고 있는데 이게 뭐야? 꽃팔러 다니고…. 연말 거지와 같이 이게 뭐야? 제일 불쌍한 거지 같은 거라구요. (웃음) 그렇지 않느냐구요.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전부 다 놀고 있는데 우리만이 일하기 때문에, 요때야말로 주일이고 뭐고 크리스마스고 신년이라 해도 쉬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돼 가지고 우리가 기반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찬스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심정적으로 보면 이때만이 나무가 굵을 때라구요.

고향생각 나지요? 「아니오」 대답만 그렇지, 할수없어서 대답만 그렇게 하지, 사실이야 생각이 나지 뭐.「아니오」아니오 하는 사람은 불과 한10여 명밖에 안 된다구요. 다 웃지 않느냐구요, 다. (웃으심)

자, 고향생각이 나는 사람 손들어 봐요, 내가 보내 줄께요. (웃음) 또, 그 다음에는 '좋은 것도 먹고, 좋은 것도 입고, 좀 놀고 싶어!' 그렇지 않느냐구요?「아니오」여자들은 매니큐어도 칠하고 싶고, 루즈도 바르고 싶고 전부 다 이렇게 하고 싶고, 고운 것 입고 싶지 않느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섭섭한 일이 있거든 아이고, 나는 뭐 그것 못 바르고, 화장을 못 하지만 크림 한 통이라도 붙들고 자면서 탕감하라구요. 그 다음엔 비단 옷은 입지 못하지만 이만한 조각이라도 붙들고 '나 탕감 한다' 하면 탕감조건 되는 것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게 해서 넘어가야 되겠다구요. 만일, 그래 가지고 '아이고, 난 1년 화장한 것보다 낫다. 나는 1년 비단 옷 입고 산 것보다 낫다'고 하게 되면 그게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 사정 모르겠어요? '우리 딸, 우리 아들' 하면서 얼마나 흐뭇하게 생각하겠느냐. 그러면서 '하나님은 정초도 못 쉬고 수고를 하신다는데 참 미안합니다' 이런 마음 갖고 있으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어 가지고, '10년 후의 너희 후손, 천년 후의 너희 후손들에게 내 있는 복 다 주겠다' 할 수 있는,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과 인연 맺을 수 있는 좋은 찬스가 된다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고생하면 세계적으로 받을 때가 온다

만약 내가 너희들한테 몽둥이를 들고 크리스마스 시즌이고, 정초고 하니 전부 다 쉬라고 해 가지고 그저 내쫓으면, 전부 다 가지 않고, 이렇게 내쫓으면 저 뒤로 와서 떡 이러고, 여기서 내쫓으면 저기서 또 이렇게 가고, 동서남북으로 내쫓으면 빙빙 돈다 하면, 이 망할 것들 그러겠나요? 자, 남과 같이 먹을 때 먹고, 남과 같이 입을 때 입고, 남과 같이 놀 때 놀고, 남 하는 대로 다 하고 다…. 그래 가지고는 참된 것이 안 나와요. 그래서 하나님하고 완전히 하나될 수 있는 그런 시대, 하나님이 어려운 일을 이 세계 제일…. 보라구요. 하나님이 이 우주의 주인이기 때문에 제일 어려운 일을 언제나 하나님이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책임진 사람은 쉴 새가 없다구요.

여러분,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의 모든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경찰을 보라구요. 이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든가 새해가 되면 그 사람들이 쉬나요? 그때는 몇십 배 죽을 지경이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우리가 좋은 반면 한 쪽에서 그 무엇이 희생해 가지고 지탱시켜 보급하는 그 기준이 없게 될 때는, 평균 기준이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건 개인이나 단체나 다 마찬가지 이치라는 거예요.

여러분 개인이 해이해지는 그 자리에 선다면, 여러분이 해이해진 기준을 지탱하기 위해서 그 무엇이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통일교회 전체가 쉴 수 있는 자리에 선다면, 그 쉬는 자리에 그 무엇이 희생의 대가를 치르는 거라구요. 예를 들어, 기독교가 쉰다면 기독교를 지탱하기 위해 그 무엇이 기독교를 위해 지탱하지 않고는 현상유지가 안 되는 거라구요. 이 세계가 현재의 위치로 지탱하기 위하여는 그 무엇이 배후에서 그에 비례되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현상유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자, 여기에서 고기압권이 됐다는 것은 저기에서 저기압권이 돼 가지고 됐습니다. 그 고기압권이 '아 우리는 영원히 여기에 있겠소!' 한다고 그렇게 될 수 있어요? 고기압도 한계가 되게 되면 줘야 된다구요. 물도 그릇에 받아 꽉차게 되면 줘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넘쳐 흐른다구요.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도 생각해야 된다구요.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잘된다면 뭘할 것이냐? 우리가 잘살겠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많이 가지면 줘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통일교회는 아무것도 못 가졌으니까 때가 차게 된다면 가질 때가 온다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가 세계적으로 발전해 가지고 세계적으로 고생한다면 세계적으로 받을 때가 온다는 거예요. 마찬가지 이치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어떠한 단체든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세계적인 입장에서 투입하기 위해 희생을 하고, 공적인 입장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동정할 수 있는 자리에서 계속적으로 나간다면 틀림없이 우주가 우리에게 주려고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는 그것을 세계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받을 수 없는 최상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들이 연말이 되고 오늘같이 마지막 주일이 되니 뭐 고향 생각도 나겠지만, 세상이 이렇게 왁자지껄하다고 마음이 다 흔들리고 그래서는 안 되겠다구요.

미국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자는 설 곳이 없다

여러분, 선생님은 지칠 때가 있을 것 같은가요, 없을 것 같은가요? 있겠나요, 없겠나요? 선생님은 뭐 그런 때가 없는 줄 알고 있다구요, 다 알기를. 자기들 어려운 것 있으면 전부 다 선생님한테 와서 풀어 달라고 그런다구요. 내가 그걸 잘 안다구요. 잘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보다 더 어려울 게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를 안 하겠다는 말이 거기서 나온 거라구요. 안 되게 되면 한 번 더 하라 이거예요. 그래도 안 되게 되면 두 번 더 하는 거라구요. 노력을 하는 거라구요. 실천을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이런 사상을 가지고 '내가 통일교회에 신세를 지지 않는다. 절대 신세를 지지 않고 신세를 끼친다' 해야 되는 거라구요. 신세를 져서는 안 되겠다 이거예요. 신세를 끼친다는 것은 전체 앞에 플러스시킨다 그 말이라구요. 그러면 그 전체, 플러스 당한, 이익을 본 사람은 배척할 수 없다구요. 그 이익은 공동이익이기 때문에 나눠 가져야 되고….

이렇게 보게 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뜻을 위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구요, 그건 틀림없다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몇 나라나 가다가 꼬꾸라 질 거예요? 선생님이 가는 데 따라갈래요?「예」여기 미국은 전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오고 싶은 나라니까 '오라' 하니까 좋아서 왔어요. 자, 이제 뒤로 돌아서 '저 아프리카로 가자!' 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예」여기서 활동하는 10분의 1의 실적밖에 못 내는 지긋지긋한 곳인데도 괜찮으냐 이거예요. 여기에서 캔들 셀링(candle selling;양초팔이) 해서 번 하루 수입이 된 것이 거기 가서는 한 달 벌어도 안 되더라도 그것도 감사하며 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곳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나라가 얼마든지 있다구요.

한국에 월급이 얼마냐 하면, 평균 50불이예요. 여기에서 하루에 몇백불 벌던 사람을 한국에 투입해 가지고 '야야야, 너 거기 가서 죽도록 몇십 배 벌어라'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다 도망 갈 거라구요. 그런데 여기서 일을 못 해요? 여기서 불평을 해요? 그래 여기서 하지 못하고, 여기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 가서 할래요?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미국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 가든지 있을 데가 없다구요. 할 데가 없다 이거예요. 자, 그러면 여기에서 3년간을 우리의 목표로 정한 이 기간에 있어서 최대의 노력을 해서 전미국에 영향을 미쳐 가지고, 전세계를 빨리 구할 수 있는 미국 국민이 선두에 서 가지고 하게 된다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구요.

만약에 여기에서 뜻을 세우지 못한다면 세계 어떤 나라를 찾아가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 어려운 길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가 이 미국에 집중 공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미국에 와서 '아-, 배고파서 죽겠다' 그래 본 적이 있느냐구요? 그것만 해도 행복한 거예요. 행복한 거라구요.

흥남 감옥에서는 밥 반덩이 더 받는 것이 최고의 이상이었다

내 얘기 한마디 하겠다구요. 내가 흥남 감옥에 가 있을 때, 흥남 감옥에 많은 사람이, 한 천 명 가까운 사람이 있었어요. 그 천 명이 1년만 지나면 40퍼센트 이상이 죽어갔다구요. 그러니까 매일 장사를 지내는 거예요. 매일 뒷문으로 널 나가는 걸 보아야 된다구요. 자기 방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죽어간다구요. 30명이 있으면 12명 이상이 죽었다는 말이 된다구요. 결국은 매달 한 사람씩 죽는 걸 봐야 된다는 말이라구요. 그 죽는 것이 누워 가지고 간호하는 사람이 있어 밥을 먹고 다 이렇게 하다가 죽어가는 게 아니라구요. 병이 나서 아픈 것보다도 배고픈 것이 앞서 있다는 거예요. 배고픈 것이 병난 것보다도 앞서 있어요. 병이 난 사람이 병이 나서 일 안 하면 말이예요. 일을 안 하면 밥을 절반밖에 안 준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서 밥 한덩이 큰 것 하나 받는 것 하고 절반 받는 것하고 비교해 볼 때, 큰 것 받을 때는 천국 같고, 작은 것 받을 때는 지옥 같은 거예요. 지옥 같다구요.

그걸 여러분은 모른다구요. 암만 얘기해도 이해 안 된다구요. 너희들은 배고프면 빵 먹으면 되잖아요. 빵 먹으면 배가 부르다구요. 그러니 빵 먹으면 되잖아요. 소프트 브레드(soft bread;부드러운 빵)가 없으면 하드 브레드(hard bread;딱딱한 빵)라도 먹으면 될 것 아니냐. 호텔 같은 데 가면 언제든지 굳은 빵이라도 놓여 있으니 그거 먹으면 된다구요.

자, 이렇게 되면 죽게 된 사람도 결국은 일을 나갔다 들어와야 밥을 주기 때문에 앓으면서라도…. 아프면서도 안 아프다고 하는 거라구요. 문에 나갈 때 주저앉으면서도 기어서라도 나간다구요. 그래 가지고 일하러 나가 가지고 일을 하는 흉내라도 내야 된다구요. 그 밥 반덩이 더 얻으려고, 밥 때문에 그런다구요, 밥 때문에 이래 가지고 악에 받쳐서 끝시간 될 때까지 참는 거라구요. 그래서 돌아가서 밥 반덩이 더 받는다는 그것이 최고의 이상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돌아와 가지고는 밥 주는 시간에는 무슨 병자고 아픈 사람이고 없다구요. 자기 책임량 밥은 다 잘 먹는다구요. 그래 가지고 밥을 받아 가지고 들어와서 악에 받쳐 가지고 죽을 힘을 다 써 가지고 밥을 먹다가 결국은 숟갈 놓고 눈을 감고 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는 거예요. 먹다가, 밥을 이렇게 숟가락으로 떠넣다가 밥을 떨어뜨리고 쓰러진다구요. 이래 놓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거기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 불쌍하다 생각 안 한다구요. 서로가 그 밥을 먹으려고 한다구요. 그 입에 깨물다가 밥을 물고 죽으면 그것도 빼 먹는다구요.

감옥의 혹심한 작업에서도 결코 신세지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너희들이 알겠어? 암만 연구해도 모른다구요. 그 경지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과정에서도 누구에게 신세지고 하지 않았다구요. 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했고, 그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구요. 감옥에 있을 때도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선생님을 참 존경했다구요. 어디 가든지, 어디 있더라도…. 일을 하게 되면 제일 어려운 일을 내가 하려고 했다구요. 40킬로그램이면 몇 파운드 되나?「40 킬로그램이면 88파운드입니다」하루의 책임량이 40킬로그램짜리 1천 3백가마니라구요.

그러면 암모니아 비료 같은 것을 전부 다 포대에 담아 가지고 저울에 달아 기차에 옮겨 실을 때까지 한 사람이 130가마니씩 해야 된다구요. 열 사람이 한 조가 되었으니 열 사람이 그걸 하루에 1천 3백 가마니를 묶어대야 된다구요. 처리해야 된다구요. 자동시설이 돼 가지고 뭐 전부다 해 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라구요. 여러분, 1300가마니면 여기에 꽉찰 거라구요. 이 수련소 절반이 꽉찰 거라구요. 너희들은 하루 종일 옮겨 놓으라고 하면 옮겨 놓지도 못한다구. 1천 3백 가마니가 책임량이라구요. 이것 못 하면 안 된다구요. 여덟 시간에 이거 안 하면 안 된다구요. 안하면 절대 밥 안 준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이걸 해야 되는 거라구요. 죽어도.

여러분 가마니, 한 가마니를 동여매려면, 이렇게 해 가지고 절반만 이렇게…. 비료를 넣고 여기를 묶어 가지고 꿰맨다구요. (판서하시면서 말씀하심) 가마니를 그렇게 해서 만드는 거예요. 그래 힘 없는 사람들이 40킬로그램씩…. 비료 산더미를 자꾸 파들어가기 때문에, 멀리서 그것을 저울 있는 데까지 옮겨 놓으려면 시간내에 책임을 못 한다구요. 저울은 여기 있으니까 한 4미터 정도 파들어가 가지고 저울에 한번 올리려면 5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냉큼 못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될 수만 있으면 그걸 저울로 옮기지 않고 파들어가는 거예요. 그걸 그렇게 하려면 여기서 누가 들어가서 저리로 던져야 되는데 그 힘든 것을 누가 하겠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왔다갔다할 수 없으니까 집어던져야 된다구요. 그런데 제일 힘드니까 아무도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걸 책임졌다구요. 하루에 1천 3백 가마니를 올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구요. 보통 사람 같으면 다 나가자빠지고, '아, 이거 뭐 죽어도 못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낙심하면 죽는 거예요. 낙심하면 죽는 거라구요. 그런 자리에 들어가서도 '이 10배 일이라도 해야 되겠다. 이런 자리에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고 싶지 않다. 내가 이 자리에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구요. 그걸 생각하면 그때 지난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구요.

그래 가지고 저녁이 되게 되면 배가 고파 가지고…. 배가 고프면 위가 운동하기 때문에 침이 걸어지는 거라구요. 노동하고 나면 말이예요. 배는 뜨거워지고 침은 걸어지는 거라구요. 침이 고무같이 늘어난다구요. 그런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죽어서는 안 되지, 내가 쓰러질 수 없지, 내가 하나님께 빚질 수 없지, 이들 앞에 신세질 수 없다는 신념을 가졌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문선생' 하면 '아!' 할 정도로 소문이 났다구요. 점심 시간이라든가 소변 시간이면…. 거기에는 큰공장이라 한 몇백 명이 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소변 시간에 한꺼번에 다가게 되는데 내가 가게 되면 전부 다 자리를 비켜 준다구요. 너희들은 가 봐도 몰라. 이해할 수 없다구. 만일 여기 있는 이 젊은 애들한테 그런 훈련시키고, 그런 자리에 처넣으면 몇 사람이나 남아지겠느냐 하는 걸 생각해 본다구요.

우리는 못 한다는 말을 결코 들을 수 없다

내가 얘기를 하나 더 해야겠구만, 얘기. 지금까지 우리 어머니한테나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않았던 걸 너희들한테 할 거라구. 그 얘기 해줄까요?「예」너희들이 그 이상 그렇게 할래요?「예」얼마나 감사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구요. 바로 정월 초하루, 명절날이라구요. 내가 이것 부끄러워서 지금까지 얘기를 안 했다구요. 그런데 너희들한테 얘기 할 거라구요. 그게 무슨 얘기냐? 명절날이 되면 돼지를 잡는다구요. 정월 초하룻날 돼지를 잡는다구요.

그래 돼지를 잡으면, 물론 죄수들을 위해서 준다고 잡지만 고기는 전부 다 간수들이 다 먹는다구요. 그래 국을 보게 되면 기름만 떴지 돼지가 건너간 물이라구요. (웃음) 그거 전례인데, 그게 그렇게 되어 있는데, 하루는 정월 초하룻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이런 일이 있었다구요. 돼지, 수퇘지가 있다. 수퇘지. 거 뭐라고 그러나? 한국말로 불알이라 하는데, 그게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구요. 그걸 나눠 먹던 생각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구요. 그때 그것이 국에 들어 있는 것을 발견 했을 때 그 기쁨은 세상의 무엇에도 비교 못 하는 거라구요. 지금까지 그런 얘긴 내가 처음한다구요, 너희들한테.(웃음. 박수) 그러니 얼마나 배가 고팠고, 굶주렸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때 그것을 먹던 그맛이 여기와서 진수성찬, 무슨 뭐 고급 요리가 비교가 안 된다구요.

오늘날 우리들은, 너희 미국 청년들은 지금까지 외국에 나가 있는 젊은 사람들과 후진국가의 청년들이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와 같이 어려운 과정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켜야 되겠다는 신념에 불타 가지고 지금 까지 개척자의 노정을 걸어온 거라구요.

공산당들이 얼마나 지독한가요? 여러분, 공산당을 그렇게 허투루하게 알지 말라는 거라구요. 그 죄수들이 밥을 먹고 있는 분량이 정량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데도 그것을 먹는 사람들 앞에 '너희들한테 나라가 3배이상 매일같이 먹을 것을 주지 않느냐' 하고 선전하고 있다구요. 그걸 믿을 수 있어요? 틀림없는 사실을 그렇게 선전하고 있다구요. 만일에 불평하면 이건 국책을 반대하는 배반자라고 그런다구요. 국가 정책의 목표가 그런데 거기에 대해 순응하지 않고 반항하게 된다면 반드시 국가 정책을 반대한 반동분자로 몰리는 거라구요.

자,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이 앞날에 있어서 공산주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선생님은 누구보다 잘 아는 거라구요. 이런 걸 볼 때, 이건 인류 앞에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이예요, 원수들. 선생님이 그런 과정에서도 '너희들이 시키는 일에 있어서 내가 책임 못하는 사람 안 된다'는 결의를 가졌다구요. 그 사람들로부터 말 한마디라도 꿈에도 안 들으려고 했다구요. 그래, 못 한다는 말을 왜 듣느냐 이거예요.

자, 그러면 너희들이-하나님은 공산당이 아니라구요-하나님이 명령한 것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게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내가 공산당 앞에 그렇게 고생을 당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있다구요. 그런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공산당의 거기 책임자들이 지시하는 것에 내가 말 듣기 싫어 가지고 죽을 힘을 다해서 책임량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구요. 하나님이 지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은 그 이상 해야 되겠다는 신념을 언제나 지녔다구요. 거 그래야 되겠어요, 안 그래야 되겠어요?「그래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믿지 못할 일까지도 해야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다

자, 여기에 모인 젊은 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신세를 안 지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가지고 하나님이 명령한 것을 백발백중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여러분 가지고도 미국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선생님 혼자서도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치거든, 여러분이 선생님과 같은 결심을 가졌다면 얼마나 영향 미치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뜻이 명령하면 언제 어디나 못 갈 게 없다구요. 선생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해 본적이 없다구요. 수천년 수만년 동안 수고한 하나님의 일, 그렇게 고생스러운, 수고스러운 일을 하나님이 아직까지 해결 못 했다면 얼마나 힘들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자, 그런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이뤄 드리겠다고 해야지요? 「Yes(예)」 그 '예스(yes)'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에 '예스' 라고 말하는 자체는 못 할 것이 없다는 말이 돼야 돼요. 하나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데 있어서 몇 번 되풀이했느냐구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몇천 년 몇만 년 동안 해 가지고 아직까지 몇 번씩 돌아가면서 몇 번씩 다시하는데, 나는 몇 번 다시해야 되겠느냐 이거예요. 백 배 천 배 하더 라도 해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시하는 데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나는 갖지 않는다구요. 믿지 못할 일을 내게 지시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생각이라구요. 내가 믿지 못할 것을 했다고 세계가 돌아가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이 믿지 못할 일까지도 내가 해야 되겠다 생각 하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믿지 못할 일까지도. 그래야 그 하나님을 해방할 수 있지 않느냐 이거예요. 예수님이 믿지 못할 일까지도 내가 해야 예수님을 해방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세상에서 잘 믿던 사람, 신앙자들이 누구든지 믿지 못한 일도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야 그 사람들을 해방할 수 있는 거라구요. 그런데도 불평할 수 있어요?(녹음이 잠시 중단됨)

내가 제일 핍박을 받았어도 불평을 안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영계에 가 보라구요. 선생님에 대해서 불신한 사람이 저나라에 가서 어떻게 되나 보라구요. 선생님에 대해서 불평한 사람이 저나라에 가서 어떻게 되나 보라구요. 선생님이 믿고 나오던 신앙과, 선생님이 불평 안 하던 그 기준이 여러분을 심판한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그런 기준이 돼 가지고 비교한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잘 믿고 영계를 통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선생님에 대해서 기도하게 되면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라구요. 왜? 하나님이 알기 때문에. 여러분은 알아야 돼요. 에덴 동산에서의 불신이 타락이예요. 불평이 타락이예요.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전부 다 투입하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하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뭘, 칭찬해 주는 걸 좋아하고 '허허' 하는 사람들은 영계 가 보라는 거예요, 어떤가. 칭찬해 주면 좋아하고….

자, 이런 말들을 왜 하느냐 이거예요. 왜 하느냐 이거예요. 이렇게 새해가 되든가 이런 과도기가 되면 인간은 남과 비교해 가지고 '내가 왜 이렇게 됐나? 하나님의 섭섭한 일을 생각하기가 일쑤이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거라구요.

죽지 않았으니 해야 되고 죽지 않았으니 갈 길이 남아 있다

우리 통일교회 여러분들은 지금이 행복한 때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어요. 뜻을 위해서 희생된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하나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 얼마나 피를 흘리고 나왔어요? 거기는 눈알이 빠져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코가 잘려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귀가 잘려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손가락 마디 마디가 잘려 죽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피를 흘려 가지고 오늘날 하나의 뜻을 세워 나왔다는 거예요. 그렇게 뿌려 가지고 그렇게 열매 맺힌 것을 거두라고, 거둘 수 있는 책임을 우리들에게 지워준 거예요. 그 곡식 한 말을 거두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여러분이 생각해야 돼요. 피의 대가를 걸어 가지고 호소하고 있다는 걸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면 우리 자신들이 그것을 거두려면 그 이상 하나님 앞에 충효열 (忠孝烈)을 다하는 존재가 돼 가지고, 그 이상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서 그걸 거두어서 나로 말미암아 보답해 드려야 된다구요. 그런 입장에 있는 우리 자신들이 여기에서 불평을 하고 뭐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힘들다고 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내가 아직까지 죽지 않았는데…. 죽지 않았으니 해야 되고, 죽지 않았으니 갈 길이 남아 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그렇게 알고…. 문제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여기 외국에 나와 가지고 고생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 고생이 그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고생을 했더라도 결과가 하나님 앞에 플러스를 가져와야지, 마이너스를 가져오면 암만 고생해도 그건 쓸데없는 거라구요. 그래 여러분 각자의 한계선이 있다구요, 한계선. 하나의 한계선이 있다구요. 여기까지 가서 넘어가느냐, 못 가느냐, 돌아서 떨어져 내려가느냐 하는 한계선이 있다구요. 여러분의 한계선이 어디냐 이걸 생각해야 된다구요.

그걸 여러분 각자가 생각해 보라구요, 각자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의 한계선에서 전부 다 떨어졌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냐? 어떤 한계점에서 떨어질 것이냐 이거예요. 각자가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도 못 가고…. 전부 다 여기 3백 명이면 3백 계단이 있다구요. (판서하심)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옆을 보지 말라는 거예요 옆을 보지 말라구요. 하늘을 바라보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1973년을 두고 보면, 물론 미국에서 우리가 활동했다 하치만 선생님이 생각하게 된다면 내가 기쁘게 자랑할 수 있는 이런 실적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요.

세계를 뚫고 나가는 우리의 갈 길이 바쁘다

자, 그러면 이제 이 한해를 지내고 명년에 새해를 맞이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구요. 그러면 1973년에 만족지 않았던 그 기준을 탕감복귀하고도 남을 수 있게끔 어떻게 믿느냐 하는 걸 생각한다구요. 1973년에 지쳐 가지고 꺼떡꺼떡했으면 1974년 가게 되면 그것 나가떨어질 거라구요. 그것은 선생님이 떨어지라는 게 아니라구요. 지치라는 게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재촉하는 그 표준을 중삼삼고 안 갈 수 없고, 안 내몰 수 없는 거라구요. 그것 다 여러분 좋게 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거예요. 이 세계를 구하는 데 그래 가지고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가능할 것 같은가 말이예요 미국 청년들의 사고방식 그대로 했다가는 미국 청년이 망하는 꼴과 마찬가지로 망해 버린다구요. 그 미국 청년들 사고방식 가지고 미국을 구할 것 같아요?「아닙니다」거 안 되는 거라구요, 안 되는 거라구요.

그러니 색다른 방향이요 난데없는 방향을 우리가 취할 방법밖에 없는건 사실이라구요. 뭐, 그렇다고 일본 방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 방식이라구요, 선생님 방식. 앞으로 가면 갈수록 새로운 일을 지시할 것이고, 새로운 사건을 제시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평을 하고, 뭐 두고 보고, 뭐 생각하던 사람들은 결국은 후퇴하는 거라구요. 후퇴하는 거라구요. 여기서 선생님은 가고 한 3년만 지나 보라구요, 얼마만큼 차이가 벌어지나. 뒤에 떨어져 가지고 자기들이 암만 큰소리했댔자 돌아가 가지고 거기에 편 될 수 없다구요.

우리 갈 길,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내 갈 길이 바쁘다구요. 세계를 뚫고 나가는 내 갈 길이 바쁜 거예요. 낙오돼 가지고 그거 그렇게 하는 것보다도 가는 길이 바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하나님이 언제나 전진하라고 하지, 그거 돌아가 가지고, 전부 다 치다꺼리해 가지고 '전부 다다' 그러면 좋겠지요. 좋지만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러면 전체 앞에, 전체 가는 길 앞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그걸 포기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이거예요. 뭐 지금까지는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잘 만나 주었지만, 언제든지 그렇게 잘 만나 주고 언제든지 여러분을 상대해 주고, 여러분을 치다꺼리해 주고 그럴 수 있는 선생님의 시대는 지나 갈 때가 온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게 생각할 때, 여러분들이 자립해야 된다, 뜻을 중심삼고 자립해 가지고 선생님 대신 어떠한 부서든지 책임을, 그 분야에서 세계복귀의 사명을 선생님 대신 하겠다는 그러한 가지가 돼 가지고 갖다 옮긴 나무와 같아야 된다구요. 접목시킨 나무와 같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그래야될 것 아니냐. 열매의 씨를 심은 것은 그 열매와 같은 열매를 거두기 위한 것 아니냐 이거예요. 내가 미국에 와서 수고하는 것은 선생님과 같은 사람을 만들기 위한 거라구요. 이게 바로 그게 아니냐.

이러한 표준을 두고 볼 때에, 오늘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이러한 표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일년 전과 일년 후에 달라지는 내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자랑을 받을 수 있는 내가 돼야지, 일년 전보다 도리어 못해 가지고는 이건…. 선생님은 그런 걸 참 좋아하지 않는다구요.

그래 선생님 따라갈래요?「예」아, 젯트기식으로 갈 텐데…. 한눈을 팔다간 어디로 갔는지 모를 텐데…. 딴 생각 할 여지가 없다구요.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내가 갈 길을 중심삼고 내가 할 일을 생각하지, 통일 교회 뒷사람들을 수습할 길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구요. 그건 할 수 없다 구요. 둘 다 좋고 다 그러면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기 때문에 식구들이 희생되는 것 알지만 안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하고 지치고 불평하고 불신하다가는 참 곤란하다는 거예요.

언제나 국경지대를 넘어간다는 마음으로 나가라

자, 내가 이 미국에 와서 일하는 데 있어서, 너희들은 여기서 생활적으로 환경적으로 다 습득되고 말도 자기 나라 말 쓰고 다 자기 나라에서 살기 때문에 다 편리하지만, 선생님이 그렇겠어요? 모든 것이 생소하다구요. 모든 것이 생소해요. 이 1972년하고 1973년에 일한 것이 지금 16개월, 개월 수로 말하면 16개월밖에 안 돼요, 16개월. 여기서 일한 것이 지금 그래요.

그러니까 얼마나 지독히…. 어려운 것이 참 많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못한 것 보게 되면 전부 다 내가 생각하는 거하고 다 차이 있지만, 말하고 싶어도 말도 안 하고,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일들이 많아요. 그러지 않고는 이걸 지도할 수 없다구요. 한마디 선생님이 얘기해 주면, 안 된다고 딱 때려 놓으면 죽어 버린다구요. 그래 전부 다 기다리게 한다구요. 보고해 오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결정을 못 하고 기다린다구요. 그런 사람이 많다구요, 그런 사람이. 한국에도 그런 사람이 있고, 일본에도 그런 사람이 있고, 미국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구요. 그런 사람은 통일교회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건 통일교회 사람이 아니라구요.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구요. 그건 어차피 시정해야 되는 거라구요. 내가 승리하는 날에는 이것을 전부 다 해결해야 되겠다구요. 재교육을 하든가 해 가지고…. 재교육을 해서도 안 되면 할 수 없다구요. 여러분이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이 전부 다 주목거리라구요. 뭐, 책임자가 어떻게 말하고, 책임자가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는 것은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한 달에 한 명씩은 절대적으로 전도해야 되는 거라구요. 84명을 여러분들이 종족복귀 대신 전도를 해 놓지 않고는 못 가는 거예요. 못 가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려면 선생님과 언제나, 밤이나 낮이나 하나되어 가지고 같은 심정적 생활을 해서 선생님의 일이 내 일이요, 그가 눈물을 흘릴 때 내가 눈물을 흘리고, 그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고, 그보다도 수고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선생님이 한 일을 기반으로 타고 갈 수 있다구요.

여러분이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가는데, 언제 어느 한때라도 마음놓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제나 국경지대를 넘는다구요, 언제나 국경지대라구요.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언제나 국경지대를 넘는다구요, 언제든지. 미국이면 미국을 대해 작전하는데, 미국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구요. 미국 전체가 반대할 수 있는 그런 선두에 서 있다구요, 자, 그렇게 되니 개인적으로도 일선이요, 가정적으로도 일선이요, 종족적으로도 일선이요, 민족적으로도 일선이요, 국가적으로 일선이요, 세계적으로 일선에서 나온다구요. 일선을 넘는 경계선을….

여러분, 경계선을 넘어 봤어요? 너희들이 뭐 이 1973년을, 일년 3백 6십 날을 살지만, 언제 내가 경계선을 넘고 있다고 생각이나 해봤느냐 말이예요.

선생님이 이 놀음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따라도 못 오고 하라는 대로 흉내도 못 내요? 불평을 하고, 뭐 어떻고 힘들다고? 그렇게 돼 있지가 않다구요. 그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그러한 과거가, 요 1973년에 그런 과거가 있거든 이해가 가기 전에, 오늘이 30일이라구요, 내일 하루 남았는데 하루에 지난 일년을 회개하고 새로운 결심을 해 가지고 1974년은 자기의 해로서 맞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하는 거라구요.

결국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려 하니, 하나님 아들딸이 되려면 하나님의 풍습, 하나님의 생활방식, 하나님의 사고방식을 내가 본받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선생님을 따라다니려면 선생님의 모든 사상과 선생님의 생활방식을 여러분이 따라야 됩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라든가 축하를 할 것 다하고, 뭐 연말이 돼 가지고 전부 다 쉬고 이런 것을 볼 때, 선생님은 '우리가 이렇게 쉴 수 있는 날을 언제 맞을 것인가. 빨리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도리어 이런 것이 나에게 손해를, 나에게 약화가 된다는 것을 자각한 뒤에 가야 할 길을 촉진시키는 촉진제로 흡수하고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예」

이런 결의를 가지고 마지막 주일에 과거를 뉘우쳐서 새해를 맞기 위하여 앞으로 하나님과 선생님을 중심삼은 뜻 앞에 있어서 여러분이 하나될 수 있는 이런 자세를 갖추어 가지고 마지막 날을 보내야 의의 있는 이시간이 될 것입니다.

자, 하나님이 그렇게 수고하고 선생님이 이렇게 수고한 것을, 그 모든 받을 복을 여러분들에게 무조건 넘겨 주겠다는 거예요, 무조건. 다 넘겨 주겠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그러한 마음 자세라도 되고, 그런 생활태도라도 가져야지요.

그러니까 그렇게 알고, 1973년을 생각하면서 혹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플러스 못 시키고 마이너스를 시킨 입장이라면, 오늘하고 내일하고 전부 다 회개 기도를 하고…. 이제 사흘만 있으면 새해를 맞는데 1974년에 있어서는 보람된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알겠느냐구요?「예」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긴장하였던 1973년은 이제 이틀을 남기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주일을 맞는 이 아침이옵니다. 아버지, 당신앞에 언제나 부끄러운 모습으로 체면을 무릅쓰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많은 모습이옵니다.

아버지, 50이 넘어서 이 미국 땅을 찾아와 새로운 투쟁의 행로, 행각의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늘의 서글픔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6천년 동안 수고했던 기독교의 기반은 간 데도 없이 다 흘러가 버리고, 황무지화하고, 슬픔의 해골골이 된 이 골짜기를 다시 수습하여 6천년의 승전이 아니라 패전한 실상을 눈앞에 두고, 이것을 가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서글픔을 아옵고, 아버님이 불쌍한 분인 것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 이 아들은 철든 그날서부터, 뜻을 안 그 시간서부터 마음 졸이는 시간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저에게는 원망도 없고 불평도 없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마음 졸이는 한 시간을 위로할 수 있는 그날을 바라왔고, 그런 생애의 행각의 노정을 50이 넘고 인생의 한계선을 넘을 수 있는 단계에 있어서도 하늘을 위하여 모진 투쟁의 행로의 선두에 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일면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는 때가 많은 것을, 아버지, 아시옵니다.

아버지, 한국 땅은, 아시아 지역은 하늘의 슬픈 사정을 알지 못하고, 하늘의 염려를 덜어 드려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후의 아시아는 불쌍한 아시아, 금후에 한국의 갈 길은 염려의 한국으로서 남아진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미국 땅, 이국 땅에 와서 책임을 한다 하더 라도 한국을 잊을 수 없는 것을, 아버지, 아시오니, 1973년을 당신의 뜻가운데 지켜 준 한국을 또다시 1974년도도 지켜 주기를 바라는 것이 이아들의 소망인 것을 아시고, 부디 1974년을 넘길 수 있게끔, 아버지여,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일본과 중국을 중심삼은 세계사적인 아시아 지역에 하늘의 발판을 가리기 위한 싸움을 남모르는 가운데, 7년 이상의 수난길을 더듬으면서 했던 모든 것이 실체적 기반을 성사하지 못하고 영적조건을 남겨 가지고 이 나라까지 연결시킨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제 이곳에 서서 영육을 중심삼은 실체의 싸움에서 저희들은 패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밤이 오나 낮이 오나, 하루 아침이 찾아오는 것이 우리들이 가는 길앞에 영육의 완성의 한 날을 찬양하지 못할 그런 날이 올까봐 두려워하는 조바심을 가진 이 아들의 이 마음을 아시는 아버지여, 이 벨베디아 땅, 아버지께서 성별하신 이곳에서 뉴욕 근처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모아 놓고 오늘 이 마지막 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주일을 맞는 이들의 마음 가운데 하늘의 마음을 이어받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들의 생애를 대신하여 남아진 싸움터를, 하늘을 믿을 수 있는 기반에서 이것을 유지시킬 수 있는 당신의 자녀들이 여기에 남아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1973년은 한다고 하였지만 실적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 1974년을 맞게 되지만 아직까지 싸움은 남아 있습니다. 모진 태풍은 불어 올 것이고, 노도가 밀어칠 것이로되, 가야 할 길을 똑똑히 바라보고 가야 되겠습니다. 다짐짓고 가고, 또다시 결의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저희의 갈길을, 아버님이여, 가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자녀들을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인간은 언제나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사도들도 전부 다 저버렸던 그 과거를 생각하시는 아버지여,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3년에 아버지 앞에 부끄러움이 있었거든 이 시간 용납하여 주시옵고, 다시 1974년을 대하여 새로운 결의와 새로운 각오를 하는 그러한 표정으로서 아버지 앞에 나서기를 결의하였사오니, 이들을 보시고 새로이 용납하시고, 새로운 희망의 해로 1974년을 맞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여기 모인 당신의 자녀들 가운데는 고향을 떠나와 이국 땅에 머무는 당신의 자녀들이 많사오니, 이들의 눈물 어린 싸움과 혹은 외로웠던 그 사정 사정 가운데서 하늘이 동정할 사람들이 있거들랑 천만 배복을 베푸시옵고, 혹시나 당신 앞에 슬픔의 자녀들이 있사옵거든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에 왔다가 패자의 서러움의 자리에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앞에 기억받고, 당신 앞에 사랑을 남길 수 있는 자리에서 돌아가는 무리들이 되게끔 다시 아버지께서 사랑의 손을 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오늘 하루를 51개 주를 대신한 기쁨의 날로 맞으시옵고, 365일을 대신한 하나의 기억의 날로 맞아 주시옵고, 이들을 보고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희망을 남겨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사흘 후에 맞을 1974년 새아침을 맞이해서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행각의 노정이 보람 되고, 당신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1973년 못지 않게 1974년에 승리의 결과를 이 미국 땅을 통해 전세계에 펴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아버지가 원하듯이 저희들도 원하고 있고, 아버지가 소원하시듯이 저희들도 마음으로 소원하고 있사옵니다. 그 소원의 실천노정을 저희들이 무엇으로라도 채우기를 다짐하고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그 길을 다 달려가 그것을 채우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전체를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뜻하신 대로 이루시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