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사람이나 현재의 사람이나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은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한 자리에 고착된 그러한 자리에 있고 싶어하지 않고 범위를 넓혀서 더 발전에 이르는 확대의 길을 바라고,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금년 표어가 `내 나라 통일'인데 이의 성사문제라든가, 또 크게 보자면 세계적인 통일 완성, 혹은 섭리 완성이라는 이런 크나큰 사명적 목적을 중심삼고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 내느냐, 이 일을 어떻게 성사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가 이 해에 있어서 나날을 보내면서 해야 할 책임이요, 앞으로 이 한 해의 출발과 더불어 21세기를 연결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과정에 있는 10년 기간의 책임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10년 기간에 통일교회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냐? 민주세계와 공산세계를 소화해서 새로운 제3의 세계로, 새로운 이상의 세계로 어떻게 인도하느냐, 다시 말하면 20세기를 넘어서서 21세기를 맞게 될 때 우리 통일교회가 하나님의 뜻 앞에 있어서 세계적인 주도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느냐 하는 엄숙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런 뜻을 놓고 우리 개개인이 어떻게 나가야 될 것이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복귀섭리를 해 나오는데 있어서 하나님은 어떻게 해 나오고 계시느냐? 하나님은 어떤 입장에서 나오고 계시느냐? 하나님은 부모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이 인류를 인도해 나오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스승과 같은 입장에서 미지한 이 인류를 역사를 통해 가지고 교육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면 부모와 같이, 스승과 같이 교육하고 발전시켜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냐? 부모 대신, 스승 대신 주인의 자리를 맡겨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의 목적, 더 나아가서는 타락이 없을 때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부모를 대신하고 스승을 대신한 주인의 자리…. 그 주인은 주체입니다. 이게 문제다 이거예요.
그러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행복을 바라고 있다 이겁니다. `행복' 하게 될 때, 행복이라는 것은 자기 혼자만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 하게 되면 반드시 상대적 주변을 가져야 됩니다. 동이면 동에 있어서 자기가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고, 서쪽이면 서쪽에 있어서 자기가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고, 남이면 남, 북이면 북에서 자기가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고, 상하 전후 좌우를 막론하고 언제나 참된 것을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행복하다는 때는 어떤 때냐? 위로도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고, 아래로도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고, 또 전후 좌우 언제나 내가 필요할 때는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런 환경을 가지게 될 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에 대해서 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또 상하를 대해서, 전후 좌우를 대해서 줄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냐? 그런 입체적 구형의 자리에서 줄 수 있는 그 자리는 중심의 자리입니다. 주인과 같은 자리입니다. 주인 된 자리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소원의 자리인 행복의 기지가 아니겠느냐?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는 인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 부모의 자리에 섰고, 그다음에는 이 인간들을 사랑의 이상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렇게 가야 한다'는 원칙적 노정을 중심삼고 교육을 하고 훈시를 하고, 그래서 다 자라서는 `부모의 자리를 대신하고 스승의 자리를 대신해서 영원한 중심 자리를 지키는 주인이 되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인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럼 주인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것이 어떤 것이냐? 구형의 중앙지와 같은 자리에서 동서남북, 전후좌우, 모든 방향으로 자유로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중심삼고 주고받느냐? 이게 문제가 돼요.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 혹은 교육을 중심삼은 지식적 문제, 혹은 권력 구조에 있어서의 문제를 얘기합니다. 그런 것도 되겠지만 그것보다 우리 인간에 있어서 언제나, 일일생활이나 생애노정, 영생노정을 통해 가지고 언제나 주고 주고 언제나 받고 받으면서 좋아할 수 있는, 주고도 좋아하고 받고도 좋아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사랑입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유무식(有無識)에 관계없이 어느누구나 그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외롭다 할 때는 왜 외로우냐?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을래야 받을 수 없게 될 때 외로운 것입니다. 무엇 갖고 주고받고 싶으냐? 영원히 주고 영원히 받으면서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건 하나님이 창조이상의 중심으로 세운 사랑의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물질을 주고 좋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편에 있어서 물질은 언제나 창조할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는 기쁨을 느끼지 못해요. 그렇잖아요? 언제나 가지고 있으면서 줄 수 있게 될 때는 기쁨을 느낄 수 없어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무치는 입장에서 내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으로는 주체성을 가진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은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동서남북을 대해서 자기가 언제나 몸 마음이 하나되어서 줄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 이겁니다.
그러면 몸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가지고 전체를 대표한 자리에서 간절히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부모가…. 이 세상에서는 부모가 없게 되면 고아라고 합니다. 고아는 불쌍합니다. 왜 고아는 불쌍하냐? 부모가 계시면 어릴 때 동서남북으로 품어 주는 거예요. 동서남북으로 품어 주고 사랑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게 될 때는 그 보호권이 전부 없어지기 때문에 어느때나 나에 대해서 누구든지 습격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어할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없게 될 때는 고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가진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부모의 가르침은 어때야 될 것이냐? 진정한 스승은 학문을 가르쳐 주는 스승보다 사랑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입장에 선 스승인 것입니다. 부모는 사랑을 중심삼고, 핏줄이 연결된 일체권 내에 있는 것도 물론이지만, 자식에 대해서 사랑을 중심삼고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지간에 있어서는 이래야 되고, 부부의 관계는 이래야 되고, 혹은 일가를 거느리는 데는 이래야 한다' 하는 것을 교육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할 수 있게끔 사랑을 가지고 교육을 하고, 사랑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쳐 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소임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을 가지고는 부모를 백 퍼센트 감동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동으로 가던 부모를 백 퍼센트 기쁨으로 뒤로 돌아서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무엇이냐 할 때, 그건 돈도 아닙니다. 돈은 일방적입니다. 지식도 아니예요. 그러나 사랑만은, 참된 사랑만은 가는 부모를 180도 돌아서게 하더라도 기쁨 가운데서 돌아서게 할 수 있고, 상하 고저를 막론하고 기쁨 가운데서 돌아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힘을 가진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또 정지되어 있던 존재를 기쁨으로 전진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도 사랑입니다. 그리고 잘 주고 잘 받는 데 있어서 180도 반대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그다음에 영점(零點)에서 360도 방향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힘을 찾아 본다면 그건 사랑의 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힘이 타락한 자식, 타락한 사람, 영점에 있는 사람을 360도 돌려서 새로운 세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이양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알게 돼요.
하나님이 부모가 되는 데 있어서 무엇 갖고 부모가 되느냐?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스승이 되는 데는 무엇 갖고 스승이 되느냐? 역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데는 무엇 갖고 주인이 되느냐? 역시 사랑을 가지고 주인이 된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뭔가요? 「발전과 성공의 비결입니다」 발전과 성공의 비결! 그럼 발전하겠다, 내가 요만한 자리에서 더 확장하겠다 하는데, 확장을 하고자 하는 주내용이 무엇이냐? 확장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 확장해서는 무엇이 되기 위한 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확장하면 무엇이 좋은 거예요? 또 성공했댔자…. 발전하는 것도 좋은 것이고 성공하는 것도 좋은 것인데, 발전의 과정을 거쳐야만 성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대발전, 계획한 모든 것이 완결되어 가지고 계획한 그 기준에서 보게 될 때 완전히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룬 것이 나만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주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일시적이 아니라 장구한 것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공의 기준을 두고 볼 때, 영원한 것의 성공체의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고 나쁜 문제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식이라든가 돈이라든가 권력구조 같은 것은 언제나 변하는 것입니다. 성공적 기틀, 내용, 목적 자체는 무엇이 되겠느냐? 그건 어디까지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범위가 어떠한 범위냐? 조그마한 범위가 아닙니다. 우주적인 범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적인 범위의 사랑의 주체, 우주적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랑의 주체가 하나님인 것입니다. 또 사랑을 중심삼고 우주적 사랑의 주체 앞에 도달할 수 있게끔 인도하고 가르쳐 주는 스승과 같은 자리, 나아가서는 이 모든 전체를 이룬 목적의 자리에서 사랑이상을 성사해 가지고 거기의 주인이 되어 주도해 가지고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히 영원히 진행할 수 있기를 하나님은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성공을 바랍니다. 발전과 성공! 발전해야 되겠다 한다는 것입니다.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통일교회가 이제부터 `내 나라 통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건 직접적인 문제입니다.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누가 끌어 주어야 돼요. 끌어 주어야 됩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나를 좋은 곳으로 끌어 주기를 바랍니다. 작은 곳보다는 큰 곳으로, 결여된 곳보다는 보다 원만한 곳으로, 불행한 곳보다는 행복한 곳으로 끌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끌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전하려면, 오늘 여러분 개개인이 내 나라 통일을 위해 보다 발전시키려면 4천만 남한 국민들의 선두에 서서 끌어 주어야 됩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어때야 되느냐? 앞장서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 이후의 단계와는 상관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발전하려면, 현재의 단계에서 그 이후의 단계까지도 연관성을 지으려면 현재의 단계에서 앞장서 가지고 차후에 오는 단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개척해야 됩니다.
그것을 개척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이고, 그런 개척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스승이요, 그런 개척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함으로 말미암아 자식의 사랑의 범위가 넓어져 가지고 자기들이 바라는 것 이상으로 높을 수 있는 부모의 심정기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입장에서 다음에 찾아오는 그 세계를 향해서 선도적 입장에서 끌어 주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책임자는 힘든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한 길이 있고, 그다음에는 그 사람과 더불어 동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끌어 주더라도 환경 여건에 얽매여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사회적 배경, 현재의 자기의 문화적 배경이라든가 생활적 배경 여건에 전부 얽매여 있다 이겁니다. 거기에는 인생 생활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직장에 대한 미완성 분야가 있다든가 가정에 우환이 생겨 가지고 움직일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환경적 여건에 붙잡혀 있는 것입니다.
남한이면 남한이 앞으로 통일권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지금까지 남한 자체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정치문제라든가 경제문제라든가 하는 여러 가지 환경 여건 문제가 결착되어 가지고 끌어 주더라도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들어가 가지고 동화시켜야 합니다. 소화작용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화작용을 시켜 가지고 소화된 것을 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것으로 결과를 다 준비해 주고, 모든 처리를 내가 해줌으로써 나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힘을 입게 될 때 그 사람은 그 환경적 여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 되게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뒤에서 밀어 주어야 됩니다. 뒤에서 밀어 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업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밀어 주는 것은 그런 길인 것입니다. 밀어 준다는 것은 시작부터 소모요, 중간도 소모요, 끝도 소모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밀어 주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밀린 자체에 힘이 투입되었고 그 자체가 앞으로 간다면 내가 그걸 언제나 따라가야 합니다. 그건 투입과 소모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 소모를 감수할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런 등등의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끌어 주려면 무엇 갖고 끌어 주어야 하느냐? 동화될 수 있는 소화작용은 무엇 갖고 하느냐? 밀어 주는 데는 무엇 때문에 밀어 주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처해 있는 그 사람을 자식과 같이 사랑하고, 형제와 같이 사랑하고, 아내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주고, 동화되고, 밀어 주는 길만이 그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뿌리, 모든 근본부터 환경의 모든 여건까지 동화시켜 가지고 전진적 자극을 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러니까 발전시키기 위한 입장에 서게 될 때는 하나님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투입해 가지고 크게 하는 것입니다. 발전하면 크는 거예요. 발전시키려면 투입해 가지고 크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크면 큰 것은 작은 자리에 서지 않아요. 큰 자리에 옮겨 가야 돼요. 그러려면 그것을 하나님이 밀어 주어 가지고 발전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남자만 완성해 가지고는 안 돼요. 남자가 완성했으면 여자도 완성해야 됩니다. 남녀가 완성하기 위해서는 역시 앞에서 누가 지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종적인 것을 중심삼고 사위기대의 형태가 언제나 연결되는 것입니다. 종적인 것을 잡아 당기면 이것이 좁아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밀면 넓어지는 것입니다. 좁아질 때는 소모니까 싫고, 넓어질 때는 좋을는지 모르지만, 좁아지고 넓어지는 데 있어서 이것을 좋은 것으로 소화시키고 지탱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숨을 쉬게 될 때 공기를 전부 다 주고받습니다. 이걸 주고받음으로 말미암아 내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유지되는 것은 무엇이냐? 그 생명을 유지시켜서 더 큰 나와 상관관계를 맺어 가지고 나라,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과 같이 호흡을 하고, 하나님과 같이 호흡을 하는데, 호흡하는 것이 무엇을 중심삼고 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냐? 사랑의 마음을 갖고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볼 때, 당면 문제를 중심삼고 오늘 여러분들이 내 나라를 찾는다, 남북을 통일한다 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 일을 위해서…. 남자 여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나는 남자 편, 나는 여자 편,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한 사람을 대표한 그룹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많은데 그 많은 여자들이 전부 하나될 수 있는 모체, 전체가 좋아 가지고 하나될 수 있는 모체가 무엇이냐? 알록달록하고 별의별 형태의 모양을 갖추었더라도 하나될 수 있는 근본이 무엇이냐?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지식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높은 데 있다고 낮은 사람을 무시합니다.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지식의 유무를 막론하고,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전부 다 `하나되었다. 우리는 참 좋다' 하게 할 수 있는 본질이 무엇이겠느냐? 그건 돈이 아닙니다.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무슨 사랑이냐? 인간들로 엮어진, 인간들하고 관계되어 있는 현세의 타락세계에서 느끼는 사랑이 아닙니다. 본질적인, 단 하나밖에 없는 종적인 인연을 통해서 연결된 사랑입니다. 이 모든 환경이 하나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종적인 사랑과 연결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종적 사랑과 연결되면 어떻게 되느냐? 종적으로 딱 연결되면 이것이 이동하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어요.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동에 갔더라도 `공간세계로, 저 우주로 돌출하고 싶다' 그러고, 거기에 가서는 `저기도 더 가야 되겠다' 그럴 수 있는, 한계성이 옹호해 가지고 범위가 보호하는 입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이냐? 운동하는 경계적 환경 내의 범위, 그 범위가 무엇이냐? 그것 역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잖아요? 서 있더라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이렇게 움직인다구요. 가만히 있으면 피곤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움직여요. 왜? 지구도 움직이고, 모든 것이 운동을 하고 있다구요. 옛날 글방 같은 데에 가게 되면 `하늘 천(天)' `따 지(地)' 이러면서 읽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움직이면서 `하늘 천' `따 지' 한다구요. 그렇게 하나의 뿌리를 중심삼고 움직여요. 움직여야 빨리 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종적인 기점인 하늘을 중심삼고 동으로 갔다왔다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간다는 것보다 왔다갔다한다는 것이 좋지요? 그러려면 하나의 종(縱)을 중심삼고 이것이….
그런 여자 편, 그런 남자 편으로 되었다 할 때, 둘이 어떻게 되겠어요? 남자 여자가 있으면 반발하는 게 아니라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되어 가지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되어 가지고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그런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자 편을 완전히 휩쓸어 버린다, 여자를 밀어댄다 할 때는 말이예요, 큰일날 것 아니예요? 그것이 네모지거나 반듯하면 안 돼요. 둥글게 되어 돌아가게 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암만 빨리 돌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이쪽으로 숙이고 있으면 반드시 돌게 되는데, 돌아가게 되면 이렇게 돌든가 어떻게 돌든가 문제가 없습니다. 평면적으로 이렇게 되면 하늘이 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는 구형을 중심삼고 한계선이 있어요. 지구도 둥글잖아요? 이래 가지고 한계선을 벗어남이 없다구요. 플러스 마이너스, 이게 전자작용을 통해서 한계선을 두어 가지고 다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계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자기 나름의 모습을 중심삼고 운동을 해 가지고 주체 대상 전후 좌우 상하가 공존하는 존재권을 이루어서 그 자체가 완전하게 돼 가지고 더 큰 존재 앞에 마이너스적 입장에서 흡수되고 화합하는 데서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큰 것은 끌어당기는 작용을 합니다. 끌어당기는 거지요. 저쪽에서부터 보게 된다면 끌어 주고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화합해 가지고….
화합이 안 됐으면 그것을 보충을 해 가지고 화합시킬 수 있는 내용, 밀어줄 수 있는 내용을 갖춘 데에 있어서 원만운동을 해 가지고 이상적 환경이 벌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 중심삼고? 돈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지식 갖고도 불가능합니다. 권력 가지고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 같아요? 「예」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감정, 감성, 눈으로 보는 모든 느낌, 그것은 영원히 계속해도 싫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사랑으로 찾아와 바라보는 그 시선을 바라볼 때 `나만 봐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국민학교 때 어머니가 학교에 오게 될 때는 어머니가 못생겼더라도 잘 입고 오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머니 아버지가 모든 사람이 바라볼 때 사랑스럽게 잘생긴 어머니 아버지이신지 모르지만, 잘생긴 어머니가 학교에 오는데 거지꼴을 하고 오는 건 싫어해요. 잘 입고 오기를 바랍니다. 내적으로 보나 외적으로 보나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그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안팎이 좋아야 돼요. 또 안팎만이 아니예요. 걷는 데도 전후 좌우로 어머니 아버지의 걷는 모습이 흠이 있으면 안 돼요. 찔뚝찔뚝하고 이러면 안 돼요. 모든 사람들이 볼 때 흠잡을 수 없어야 돼요. 그래야 좋다 하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는 모든 것에서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체와 대상 관계에 있게 될 때는 전부 자랑하고 싶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시집 잘 갔느냐 못 갔느냐, 이렇게 묻잖아요? 그건 사랑해 주느냐 어쩌느냐 하는 것을 묻는 거예요. 친구들끼리 만나서 얘기할 때 `너 시집 잘 갔어? ' 하는 것은 `돈 많은 사람에게 갔어? ' 하는 뜻이 아니예요. `지식 많은 사람에게 갔어? '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집 잘 갔느냐 하는 것은 `사랑을 중심삼고 누구보다 너를 사랑해 주느냐? '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입니다. 돈이 많다고 잘 간 것이 아닙니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어지고, 권력이야 있다가도 없어지고, 지식이야 있다 해도 지식 가지고 모든 것이 처리되는 것이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 갖고 잘 갔느냐고 묻느냐 하면 `너를 지극히 사랑해 주느냐? ' 하는 것을 중심삼고 묻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시선도 전부 다 사랑으로 보면 피곤하지 않아요.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일할 때는 밤을 새우더라도 피곤을 몰라요. 왜? 사랑의 길은 지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힘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고, 하면 할수록 점점 빨라진다는 거예요. 점점 빨라져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점점 빨라지면 날아간다는 거예요. 축보다 더 빨리 돌면 휘익 날아요. 점점 빨리 돌더라도 괜찮아요. 빨리 도는 것은 날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허공 가운데 날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어디에 딱 고착된 중심을 중심삼고 빨리 돌게 되는 데는 한 자리에서 도는 것이 아니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빨리 돌면 쑥 올라갑니다. 천천히 돌면 내려오고 말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좋은 것은 그래요. 모든 것이 복수입니다. 휘청휘청, 어슬렁어슬렁, 이렇게 되지요? 전부 왜 복수로 쓰고 있어요? 형용사에 복수를 많이 가진 민족일수록 이상적인 인간 집단이요, 이상적인 타입인 것입니다. 눈이 오더라도, 뭐라 그러나요? 부슬부슬이라고 그러나, 보슬보슬이라 그러나? 눈 오는 걸 어떻게 온다고 그러나? 「펄펄 온다고 합니다」 펄펄! 봄비가 올 때는 보슬보슬, 소낙비가 올 때는 쫙쫙. (웃음) 전부 그렇다구요. 흔들흔들, 휘청휘청, 덜렁덜렁…. 휘 하든가 청 하지, 왜 휘청휘청 해요? 그게 전부 다 이상적인 거예요. 전부 쌍쌍입니다.
`남자' 할 때 기분 좋아요? `남자 여자' 할 때 수평이 됩니다. 수평이 거기서 벌어져요. 수평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종적으로 볼 때는 상하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후로 볼 때는…. 이것이 상대권을 중심삼아 가지고 모든 이상형이 그려지기 때문에 모든 말도 상대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계가 똑똑이면 똑똑이지, 똑딱은 뭐예요? 똑똑똑똑 하면 그만이지, 딱은 또 뭐예요? 또 다른 형태에 있어서 상대를 추구하는 데 이상이 있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 하면 남자 여자입니다.
그럼 남자 여자가 무엇 갖고 하나되느냐? 돈 갖고 하나 안 된다 이거예요. 남자 여자는 각기 반쪽 세계입니다. 50억 인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분모를 따져 보면 남자 여자지요? 거기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도 다 있겠지요? 오색가지가 전부 있을 겁니다. 하여튼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둘이 하나될 수 있는 모체가 무엇이냐? 그건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사랑입니다. 또 이쪽 남자들을 하나 만들 수 있는 본질이 뭐냐? 지식이겠어요? 지식세계는 단어 하나만 더 알아도 `너는 모르니 나를 따라라' 이러고 있는 거예요. 전부 다 높아지겠다고 하고, 낮은 것은 다 싫어하니 이게 뒤넘이치고 큰일날 거라구요. 돈 가지고 할 수 있어요? 안 되는 것입니다. 권력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안 그래요?
큰 사람은 작은 사람을 사랑하고, 또 뚱뚱한 사람은 마른 사람을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 가지고는 극반대예요. 큰 사람하고 작은 사람은 반대 형입니다. 다 상반된 것인데 이걸 통일시키려니 뚱뚱한 사람은 홀쪽한 사람하고, 하얀 사람은 새까만 사람하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흑백문제 해결, 동서 격차 문제의 해결 등 모든 역사적 내용의 암적인 존재를 해소할 수 있는 본질을 찾아볼 때, 아무리 봐도 그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보통 우리 타락한 사랑은 방향성 사랑을 그려 가지만, 이상적 사랑은 구형적 사랑을 그려 갑니다. 그것이 차이일 것입니다. 시집 장가 가 가지고 부처끼리 사는 데 있어서 자기들만 살겠어요? 둘이만 이마를 맞대고 좋아하면 되는 거예요? 아니예요.
북을 치더라도 전체가 좋을 수 있는 박자를 맞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덩거렁당 덩거렁당, 전후 좌우 고저 상하 대소 장단…. 그럼으로 말미암아 넓적한 녀석, 납작한 녀석, 긴 녀석, 뾰족한 녀석, 전부 다 자기 박자에 맞아 흔들흔들하다 보니 전체가 춤을 추게 되는 것 아니예요? 톤(tone)이 같게 되면 춤도 출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서서 가만히 있지요. 손을 이렇게 출 것이 없어요. 하나밖에 없어요. 천만가지가 전부 높고 낮은 박자를 이루고 보니 환경이 둥글둥글 전부 다 춤의 환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모든 것은 무엇 때문에 춤을 출까요? 남자끼리 붙들고 한 30분 추는 것하고 남자 여자 붙들고 세 시간 추는 것하고 어떤 것이 더 피곤할까요? (웃음) 왜 웃어요? 이거 실질적 문제라구요. 어떤 게 더 피곤할까요? 「남자끼리 추는 것이 피곤합니다」 그건 할아버지 대답도 그렇고, 중년 대답도 그렇고, 소년 대답도 그렇고, 전부 다 그래요. 모르는 아이들도 춤추려고 하게 되면 자기 파트너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남자끼리면 싫다고 그런다구요.
요즘에 내가 뭘하느냐? `문총재는 사랑 얘기하다가 미쳐 죽을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낸다면 그거 불행한 남자일까? (웃음)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요즘 한 3년 동안은 사랑 얘기를 듣기 싫더라도 매일같이 하는 거예요. 눈 감고도 사랑, 숨이 막혀도 사랑, 숨막힌 걸 잊어버리고 사랑, 어려운 것을 잊어버리고 사랑, 나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사랑, 그러고 있다구요. 그러면 된다는 거예요.
사랑 가운데 지배받는 사람이 나이 많으면 어때요? 나이가 많아도 옛날 젊었을 때보다 더 사랑받는데 불행해요? 쭈글쭈글해 가지고 내일 모레 죽을, 임종을 바라보는 할머니라도 사랑 가운데 있으면, 젊을 때보다도 큰 사랑이 있으면 거기에 취해서 죽음까지 잊고 살 수 있는 사랑의 길이 불행하다! 그래요? 먹을 것을 다 잊어버리고, 죽을 것 잊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이 있다면 그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 작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사랑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전부가, 4천만이 휘청휘청하고, 빙빙 돌고, 통일이 되어 가지고 이럴 수 있는 작동을 시켜야 할 텐데, 무엇 갖고 해야 되느냐? `내가 참된 선생이니까 너희들은 덮어놓고 따라라' 그러면 돼요? 그것 가지고 안 돼요. 사랑의 선생이어야 합니다.
주인이 되더라도 무엇 갖고 되어야 돼요? `아이고, 내가 이렇게 수고했으니 너희들이 나를 따르기 위해서는 내가 수고하던 모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해야 돼요? 아니예요. 사랑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안 그래요? 부모가 좋다는 것은 사랑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뿌리 되는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성공하는 것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고, 발전하는 것도 사랑을 중심삼고 하게 될 때 이것이 이상형으로서 만민이 바라볼 때 싫지 않고,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서로서로가 동화할 수 있는 본질적 내용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이 나와요.
그러니 발전하려면 끌어 줘라 이거예요. 부모와 같이, 스승과 같이, 주인과 같이 사랑을 가지고 할 때는 스승도 좋고, 주인도 좋고, 부모도 좋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을 취할래? ' 하면 보다 사랑의 근본 되는 것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주인보다, 스승보다 부모가 더 본질적입니다. 스승보다도 주인이 본질적입니다. 스승은 가르쳐 주고 졸업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종관계가 되면 일생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중심삼고, 더 짙은 것을 중심삼고 선후와 좌우를 겨루려고 하는 거기에 동반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기원이 안 되어 가지고는 발전되었더라도 그 발전된 것이 남북으로 벌어지고, 하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기 멋대로 사랑이 없이, 다시 동서남북으로 헤어지면 어떻게 돼요? 그건 안 한 것보다 못합니다.
그러면 동서남북으로 헤어지지 않고, 남북이 점점 하나되게 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체적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중심삼고, 핵을 중심삼고 상대를 위할 수 있는, 사랑의 횡적 무대를 연결시키는 도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부모라구요? 하나님은 누구라구요? 종적인 참사랑을 중심삼은 부모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는 뭐라구요? 참사랑을 중심삼고 종적 사랑 앞에 있어서 90각도 되는, 완전 횡적인 자리를 연결시키는 사랑을 지닌 주체가 참부모, 타락하지 않은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적 부모 횡적 부모가 어디서 하나되는 것이냐 할 때, 그곳은 중앙입니다. 구형에 있어서 중앙은 제일 높은 자리입니다. 알겠어요? 그런 개념을 정리해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모든 사람의 중심이 되고 싶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남자 여자 앞에 중심이 되고 싶고, 대한민국 앞에 중심이 되고 싶고, 세계 앞에 중심이 되고 싶고, 하늘땅 앞에 중심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 사상이 누구의 사상이냐? 하나님의 사상입니다. 그게 나쁜 사상이 아니예요. 개인들 가운데서 중심이 되고 싶고, 가정 가운데서 중심이 되고 싶고, 전부 그래요. 그게 하나님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종적입니다. 하나님은 종적 기준에 서 있기 때문에 축(軸) 사상입니다. 개인을 대표한 중심사상, 가정을 대표한 중심사상, 민족을 대표하고 국가를 대표한 전체의 중심이 되겠다는 사상은 축 사상입니다.
여러분들은 적은 것을 원해요, 많은 것을 원해요? 많은 걸 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도 놀 때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이래요? `아이고!' 하고 `좋아!' 이러지요. (제스처를 크게 하심) 가슴을 이렇게 펼 대로 다 펴서 `아이고!' 하고, `좋아!' 할 때는 이렇게 오무려요? (웃음) `아이고, 좋아!' 하면서 발길을 그저 이러잖아요?
여러분, 부처끼리도 안아 줄 때 요래 가지고 겨드랑이만 안아요? 이래 가지고 덥썩 안는 것입니다.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을 원합니다. 사랑은 많은 것을 포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종적인 세계는 높고 깊고 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횡의 사랑을 중심삼고 결착된 중심의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되고, 그다음에 하나님하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하나되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내가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어머니 아버지하고 이렇게 되게 되면 하나님하고는 상현(上弦)밖에 안 돼요. 그러면 무엇이 하현(下弦)을 만드느냐? 올려다볼 수도 있고, 내려다볼 수도 있고, 동서남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뭐냐? 사랑의 눈 가지고 볼 때 올려다만 보겠어요? 우리 인간들이 올려만 보게 되어 있어요? 보통 시선을 매일같이 수평으로 보기도 피곤합니다. 75도, 45도로 보는 것이 원칙이라구요. 올려다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올려다보고 나서는 내려다봐야 되고, 수평으로 봐야 되고, 동서남북으로 돌아가면서 전후 좌우를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시각을 중심삼은 관입니다.
금년 표어가 뭔가요? 「내 나라 통일입니다」 내 나라 통일을 어디서부터 해야 돼요? 내 나라 통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 집에서 보면 제일 싫은 사람부터 해라 이거예요. 왜?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제일 좋은 사람부터 하지. 아니예요. 타락이 없었으면 좋은 사람부터 해야 될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제일 괴수를 때려잡아야 되겠으니, 괴수만 굴복하면 그 나머지는 몽땅 내 사랑의 재료가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괴수를 때려잡아야 돼요. 때려잡는다기보다, 소화해야 된다 이겁니다.
자, 그러면 집안에 들어가게 되면 며느리들은 `우리 시어머니 호랑이 같아' 할는지 모르지만, 호랑이도 젖을 먹이고 새끼를 키우는 것입니다. 어때요?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키우는 데는 젖을 먹여서 키우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호랑이 시어머니일 때는 호랑이 새끼가 되라는 것입니다. 호랑이 새끼와 같이 되어 가지고 `내 모양은 고양이 같지만 드세고 그런 어머니도 나에게 못 이긴다' 하는 입장에 서게 될 때 암호랑이가 `야, 이 녀석 작지만 쓸 만하다' 이럴 수 있는 거라구요. 어머니 상대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대하는 그 아들딸의 입장에서 가죽을 잡아채고 후루룩 빨아 보라는 것입니다. 젖꼭지 물고 토끼 새끼같이 이러지 말고, 그저 젖꼭지가 뽑힐 정도로 빨아 가지고 `아이고, 이 녀석아! 왜 이래? ' 할 정도가 되게 해보라구요. 그러면 기분도 좋다구요.
여러분, 애기 어머니들이…. 옛날에 우리 어머니에게 물어 봤다구요. `애들이 젖을 아프게 빨아 주는 게 좋소, 아물아물 간지럽게 빨아 주는 것이 좋소? ' 하니까 아프게 빨아 주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파이프가 쫙쫙 하면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아픈 것보다도 여기 딴딴하던 것이 쭉 빠져 나가는 게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아픈 것보다 시원한 것이 크게 되면 좋은 것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힘 있게 빨라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어떻게 녹여 먹느냐? 전술적인 분야에 들어가 가지고 일대일에 있어서 소화작전을 해야 돼요. 집에 갈 때 `오늘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으니 시어머니가 눈을 찡그리며 들이쏘겠구만'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성격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는 어떨 때 좋아하더라, 뭘 사다 주면 좋아하더라 하는 게 생각날 땐 고구마라도 하나 사서 종이에 싸 가지고 가서 `어머니 조금 늦긴 늦었는데 요것 사느라고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싹 갖다 주면 욕하던 얼굴이 싹 펴진다는 것입니다. (웃음) 그게 뭐냐 이거예요. 그렇게 어머니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 생각한다는 것이 뭐냐 하면, 그 배후에는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거기에 녹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의 제일 괴짜가 누구냐? 누나다! 욕심 많은 누나. 쥐의 성격, 쥐띠 해에 태어난 욕심 많은 누나다' 그런 누나가 있다고 합시다. 아, 이건 보이기만 하면 훔쳐다가 보따리에 집어넣어요. 조그마한 것은 틀림없이 들어가요. (웃음) 그럴 때는 이 집만한 것을 갖다 주는 거예요. 그걸 처리하기 위해 1년 걸리고 2년 걸리게끔 말이예요. 그러면 그걸 갖다가 어디에 숨겨 놓을 수가 있어요, 하늘 공중에 띄워 놓기 전에는? 어떻게 그 집안의 암적 존재를 소화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된다구요. 알겠어요?
통일 방안의 비법은 상충되는 요인을 빨리 캐치해 가지고 단시간에 흡수 소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그 사람을 통해서 평화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행복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거 맞아요? 「예」
그러면 학교에서 제일 모범 되는 학생이 어떤 학생이냐? 그 학교에서 제일 암적인 존재를 때려눕히는 사람입니다. 때려눕혀 굴복시킨다고 해서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때려서 굴복시킬 때는 여기서는 도망가지만 저기 가서는 `이놈의 자식, 어디 보자. 내가 커 가지고 너를 밟을 것이다' 그런다구요. 그렇지만 사랑으로 하게 되면 가면 갈수록 낮아지는 것입니다. 반대의 자리에 와서 머리를 숙이고 자기를 끌어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발 끌어 달라고, 당신만이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랑은 그런 주체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나는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은 사랑이 뭔지 알아요?
요즘 여자 눈들을 보면 화장을 해 가지고 까만 눈이 더 까맣더구만, 동양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까매서 깊어 보이는데 거기에 아이 섀도(eye shadow)까지 해 놓으니까 이게 얼마나 깊어 보여요? 그거 보면 쥐눈같이 보여요. (웃음) 아이 섀도 하고 루즈를 바르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하는 게 뭐예요? 무엇 때문에 그래요? 사랑이 그리워서 그러는 거 아니예요? 사랑이 무엇인지 말랑하다면 말랑하고, 굳다면 굳고, 우둘투둘하다면 우둘투둘하고, 사랑의 감미라는 것은 천태만상입니다. 무섭다면 무섭고, 깊다면 한없이 깊고, 뾰족하다면 한없이 뾰족합니다.
내가 우리 어머니 성격을 보기 위해서…. 아, 이거 바라보지 마소. 말 하다가 쑥 들어가네. (웃음) 싹 웃으면 좀 할 말을 할 텐데, 그러니까 쏙 들어간다구요. 그래도 한번 해볼 거예요. (웃음) 좋게 얘기하다가 성격이 어떤가 보려고 한마디 톡 쪼는 거예요. 쪼으면 이러고 궁둥이부터 휙 돌아가는 거예요. (웃음) 머리는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데 궁둥이가 휙 돌아가요. (웃음) 얼마나 뾰족한지! (웃음) 그렇기 때문에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달큼한 맛 말이예요. (웃음) 여자는 그런 맛이 있어야 돼요. 두루뭉실하다면 재미가 없지 뭐. (웃음) 그러므로 신경질성이 농후한 것이 여자이니라! (웃음)
교회에 식구가 몇백 명이 있는데 그들이 자기 목사라는 사람을 보고 `제일 괴물단지 저 녀석, 고약한 녀석, 저놈 내쫓아라!' 하게 돼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느냐? 무엇 갖고 소화하느냐? 설교를 잘한다면 듣고 감동은 받지만 문을 나갈 때 `그놈의 자식 설교 잘하는 것 듣기 싫어서 안 와야 되겠다' 그런다구요. (웃음) 왜? 자기보다 너무 잘났으니까 차이가 있어서 기분 나쁘다는 거지요. 그럴 수도 있다구요. 또 설교를 못 해도 기분 나빠요. 또 흐리멍텅해도 물에 물 탄 것 같고 미지근해서 싫다는 거예요.
그런 모든 사람도 사랑으로 끌어야 돼요. 저 목사님은 설교도 잘 하지만, 생활에 있어서 집에 가 보나 어디서 보나 사는 모든 면에 있어서 사랑의 보자기가 크게 열려 있어서 거기에 손을 척 갖다 대면 훈훈한 동시에, 이 손은 가만히 있더라도 저기서 끌어 잡아당긴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사랑은 끌어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구요. 사랑은 동화의 힘이 있고, 부족할 때는 보충의 힘이 있어요. 끌어당기는 힘, 동화의 힘, 밀어 주는 힘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끌어 주어야 되고, 동화작용해야 되고, 밀어 주어야 됩니다. 이런 소질을 하나만 가지면 세 가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주도면밀하게 통일할 수 있는 소성을 갖춘 멋진 존재는 사랑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우리 엄마를 끌게 될 때는 깜깜한 밤이라도 끌려와요, 안 끌려와요? 요렇게 곱살한 아줌마지만 사랑을 가질 때는 곱살한 것이 다 녹아 버려요. 다 잊어버려요. `사랑이면 그만이지' 하는 것입니다. `대학을 나와야만 남자인가요' 그런 말이 있지요? 사랑이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또 사랑은 약하더라도 자기가 죽을 힘을 다해서 밀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가운데 부모가 있기를 바라고, 사랑 가운데 스승이 있기를 바라고, 사랑 가운데 주인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소성을 보게 될 때, 이제 통일을 어떻게 하느냐? 그건 발전시켜야 돼요. `집에서는 틀림없이 내가 없으면 어머니 아버지가 재미가 없다' 하게끔 해야 돼요. 앞으로는 그런 생활을 해야 됩니다.
시집갈 처녀들은 특별히 그런 면에 훈련을 해야 됩니다. 내가 층층시하의 엄한 곳에 시집을 가게 될 때 그 시집을 어떻게 동화시키느냐? 그걸 하기 위해서는 자기 집에서 훈련을 해야 됩니다. 밥 안 먹는 할머니를 사랑으로 설득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할머니는 밥을 먹더라도 척척척척 비벼서 헉헉헉 이렇게 먹었지만, `아이고, 정성 들여 하는 걸 보니까 그거 먹고 싶다. 빨리 집어 넣어주면 좋겠다' 이럴 수 있도록 정성과 사랑으로 살살 비벼 가지고 헤삭헤삭 웃는 얼굴로 `야, 우리 할머니 참 좋다' 하는 마음 가지고 `할머니 좋아' 하고 키스하려고 하면서 숟가락을 떡 갖다 대면, 키스 대신 밥을 갖다 주면 어때요? (웃음)
사랑은 조화무쌍합니다. 사랑을 가지고는 눈을 찡그려도 좋고, 입을 이렇게 해도 좋고…. 아, 이거 내가 침을 흘리고 야단일세. (웃음) 사랑 말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지. 고집 센 문선생, 욕심쟁이 문선생, 벼락 같은 문선생이 침을 다 흘리니 얼마나 좋겠어요? (웃음) 웃기는 또 왜 웃나? 자, 발전과 성공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걸 알았어요? 「예」
학교에 척 갔는데 `저놈의 자식, 대가리부터 보기 싫고, 주제가 보기 싫어. 소리까지 듣기 싫어' 그런 녀석이 있다고 하자구요. 그러나 그래서는 안 돼요. 그 사람을 제일 좋아하는 주인이 누구냐 하면 그의 어머니예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해요. 그 어머니가 나보다 훌륭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제일 좋아해요. 내가 그렇게 그 녀석을 미워하지만 말이예요, 그의 어머니 아버지가 나보다 훌륭할 수 있는 거예요. 그다음에 그의 아내가 미워하겠어요, 좋아하겠어요? 저런 상통을 가진 남자래도 밤에도 낮에도 그릴 것이고, 없으면 큰일날 것같이, 천지가 터져 나가도록 울고불고 할 거라구요. 그 아내가 나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아들딸이 있어요. 내가 그렇게 미워하는 그 아버지가 안 돌아오게 되면 그 아들딸이 어떻겠어요? 이렇게 나의 몇 배예요? 하나, 둘, 셋, 넷, 다섯입니다. 그다음에 삼촌, 사촌, 사돈의 팔촌까지 하면 얼마나 많아요? 나보다 몇 배의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전체가 악하더라도, 그 주변의 사랑하는 모든 덩치를 모아 놓게 될 때는 내가 미워하는 것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작은 놈이 큰 놈을 침해하게 될 때에는 공판정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손해배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랑의 마음으로 보아 `아, 내가 잘못되었구만' 하는 생각이 들면 그의 어머니 아버지 이상, 그의 아내 이상, 그의 아들딸 이상 사랑해 주고 나서 복수를 해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지가, 천지신명과 모든 전체가 옳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까닭도 없이, 못되긴 자기가 더 못되어 가지고 그를 미워하고 복수하겠다면 밀려 가는 거예요. `이놈의 자식!' 하다가 어머니 자리에 서고 아내의 자리에 서고 아들딸의 자리에 서고 그럴 수 있어요? 사랑만이 이런 작동을 하는 것입니다.
문총재가 김일성이를 만나서 모가지를 달랑 잘라 버려야 되겠어요? 북한에서 그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내가 그 이상의 자리에서 훈시해 가지고 안 되게 될 때는 처단해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고 사랑의 비준을 중심삼고 저편보다 작은 데 있어서 처단하게 되면 사고가 내포하게 되고 계속적인 탕감길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옳아요? 「예」
그렇기 때문에 `저놈의 자식!' 해서는 안 돼요. 윤박사, 옛날에 그런 사람이 많았지? 더욱이나 부총장도 했었기 때문에 기분 나쁘면 인사조치해서 모가지 자른 사람이 있을 거라. (웃음) 그렇게 생각하고 인사조치하게 되면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서 입이 열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나게 할 수 있는 성보따리가 잠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한 것입니다.
원수들 있어요? 나처럼 원수가 많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역사상에 나처럼 원수가 많은 사람이 없습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나 죽으라고 기도하잖아요? (웃음) 김일성이를 포함해서 전세계 공산당이 나를 원수시하고 나를 죽이려고 그러지 않았어요? 또 대한민국이 통일교회 망하라고 그러지 않았어요? 전부가 원수예요. 전부가 원수 같은 세상 복판에 누워서 어떻게 살아요? 위험한데 말이예요. 그렇지만 내가 다 용서해 주고, 내가 다 잊어버리려고 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이거예요.
그러니까 저들이 나를 죽이려고 오다가는 사고가 나든가 벼락이 떨어지든가 해서 차가 옆으로 들이받아 가지고 옥살박살나든가 하는 거예요. 그것이 이번 미국에서의 기꾸무라(菊村) 사건입니다.
뉴저어지주에서 레버런 문 암살 계획을 하고 파이프 폭탄, 12층 빌딩을 한꺼번에 날아가게 할 수 있는 양의 폭탄을 가져오다가 걸렸어요. 그걸 가져오던 차가 그저 보통 차고, 그 사람이 보통 사람같이 차려 입고, 폭탄을 시장 가서 뭘 살 때 쓰는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오는데, 교통순경이 사람들이 많은데도 괜히 그 사람이 서 있는 곳을 찾아가서 당신 뭘 갖고 있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래 그 사람은 영어 할 줄 알고 그러니 시장에 가서 물건 사 가지고 온다고 한 거예요. 그래서 보니까 시장 보따리를 놓아둔 거예요. 그래 그걸 한번 들춰보고 싶어서 꺼내 보니 그게 폭탄이더라는 것입니다. 그거 다 영계에서 코치하는 모양이지요? 그래 가지고 기꾸무라가 잡힌 것입니다.
그 사람은 또 우리 글로스터를 조사해 가지고 우리가 철망을 쳐 놓은 것을 완전히 끊어 가지고 한 부대가 한꺼번에 들어올 수 있게끔 해 놓은 것입니다. 대로(大路) 옆에 바위가 있는데 그 뒤에 큰 나무가 있어서 그 사이로 세 사람은 언제든지 들어가서 행동해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딱 잘라 놓고 톡 잡아채면 떨어질 수 있게 다 준비해 놓았더라구요. 그런 난장판 세계에서 지금 살고 있잖아요?
그러나 세상을 내가 미워하지 않고, 원수시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태평해요. 어디 쓱 안된 곳을 가려 하면 마음이 알아요. `가지 마. 이리 가' 하는 거예요. 그렇게 살랑살랑살랑 다니다 보니 괜찮아요.
북한 김일성이하고 소련 케이 지 비(KGB)가 레버런 문 암살계획을 해서 1987년 11월달까지 해치우려고 했더라구요. 1987년 11월 이후에 국제대회를 하려고 소련 정치국에 관계되어 있는 단체하고 계획을 하다가 거기서 비밀정보를 입수한 것입니다. 우리의 비밀 루트가 있다구요. 보고가 들어오는데 `1987년 11월 이후에는 레버런 문이 이 땅 위에 없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소련 정치국에서는 거기와 관계를 안 가지려 하니 그리 아십시오'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내가 편안해요.
매 맞고 자는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자고, 매를 때리고 자는 사람은 다리를 어떻게 한다구요? 「오무리고 잡니다」 왜? 더 미워하는 거예요. 사랑을 중심삼고는 친 녀석이 더 미운 자리에 있는 것이요, 맞은 사람은 덜 미운 자리, 사랑의 자리에서 가까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 가까운 자리에 있는 사람은 행복한 입장에서 다리를 펴고 편안하게 자는 것이요, 불행한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리를 오무리고 자야 되는 것입니다. 「아멘」 뭐가 또 아멘인고? 자, 아시겠어요? 「예」
통일되는 방안을 아시겠어요? 아, 내 집부터 하나 만드는 것이다! 내 학교, 내 직장부터 하나 만드는 것이다! `저놈의 사장 녀석이 아침만 되면 언제나 나에게 뭐라 하니 보기 싫어' 그러면 그 사장을 사랑으로 녹여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 물을 주고 사랑 쌀을 넣고 사랑 불을 때면 순식간에 녹아나요. 그런 말이 있어요? 사랑 물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사랑물이 있어요. 사랑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자기 생명과 같이 여기면서 욕을 먹고도 이게 보약이 되면 좋겠다고 비는 마음이 사랑의 물입니다. 밥도 사랑밥이 되는 거예요. 사랑의 불을 때 가지고 사랑의 진짓상을 만들고 사랑의 걸음걸이로 갖다 바치는 데 있어서는 치마전이 아무리 흉하고 때가 묻어 있어도 그걸 안 봐요. 걷는 발걸음이 유명한 무용수가 각도를 맞추어 돌아가는 발길보다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거예요.
사랑이 괴물이지요? 하나님이 괴물이예요, 사랑이 괴물이예요? 하나님도 사랑 앞에 반하겠어요, 안 반하겠어요? 「반합니다」 봤어요? (웃음) 못 봤지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쪽 빼어 가지고 나온 대신자가 이렇게 사랑을 좋아하니까…. 우리 아들들도 자기들이 아빠를 닮았다고 좋아하더라구요. `나는 우리 아빠 닮았다. 아빠 닮았다. 건강하고 키가 크고…' 이러면서 말입니다. 나보다 더 크니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걸을 때는 성큼성큼 걸어요. 나는, 성큼의 중간이 뭐예요? 생큼생큼이예요. (웃음) 아빠가 세 발 걸을 때 두 발 걸으니 얼마나 기분 좋을까. 키가 더 크니 아빠도 내려다보이고 말이예요. (웃음) 자식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아빠보다 큰 것을 좋아하게 된다면 아빠도 좋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무시해 가지고 보게 될 때는 기분 나쁜 것입니다. 이상하지요?
자, 이제 알았을 것입니다. 발전과 성공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는 먼 데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예요. 내 마음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대신, 스승 대신, 주인 대신 사랑을 지녀 가지고 할 때는 하나님이 나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주인도 나에게 굴복하고, 스승도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이 이제―이게 실질적 문제예요―소화 운동에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끌어 주어야 돼요. 그들을 볼 때는 도와 주어야 됩니다. 그를 위해 주어야 됩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이상 논리를 두고 볼 때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을 가지고 끌어 주는 것입니다. 동화시키는 것입니다. 밀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발전되더라도 그 발전은 행복한 발전이요, 성공하더라도 영원히 사라지지 말기를 바라는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민이 공히 바라는 하나의 목적의 결과가 됨으로 말미암아 여기서만이 인류가 기뻐하고, 여기서만이 창조주가 기뻐하고, 여기서만이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의 세계까지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후의 발전을 통한 사랑을 중심삼은 성공이 아니겠느냐! 「아멘」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의 경륜의 역사를 우리들이 알고 보니 사랑을 중심삼은 경륜의 역사인 것을 알았습니다.
통일교회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절대자인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당신은 지극히 높은 자리에 계시지만 사랑을 통해서는 지극히 낮은, 절대적인 낮은 자리도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든지 사랑을 중심삼고 거기에 화하려 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 절대 필요한 요소의 중심이요, 또 요소의 내면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이제 발전을 어떻게 하고 성공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오늘날 사탄세계 사람들이 바라는 그 길이 아니라, 본연 세계, 근원 세계의 본질을 통하여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 속에 넘치는 사랑의 마음이 덮어질 때 시간의 장단은 있을망정, 혹은 굴곡의 내용은 있을망정 그 과정이 암만 변화무쌍하더라도 틀림없이 끝에 가서는 만사에 평등의 행복의 기지가 탄생하는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내 나라 통일을 위해서, 이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이끌어 주고, 어떻게 동화시키고, 어떻게 밀어 주느냐 하는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될 때 악마도 굴복하는 것을 알았사오니, 부디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부터, 가정에서부터, 처해 있는 직장에서부터, 혹은 학교에서부터 이와 같은 본질적 내용을 활용하여서 소화 지도하여 완성에로 밀어 줄 수 있는, 세계로 전진할 수 있는 주인공, 스승 부부 부모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영광과 행복의 주체들이 되기를 결심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우리가 바라는 이 해의 출발이 바로 삼칠은 이십일, 이 해에 있어서 세번째 맞는 주일인 오늘부터인 것을 생각할 때, 소망적 1990년대가 저희들에게 연결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바로 21일, 3주일째인 이날을, 아버지, 축복하시옵소서.
말씀과 더불어 결의하여 내 나라 통일, 자기 행복의 기지를 확보하는 자랑스러운 하늘의 아들딸, 하늘의 식솔, 혹은 권속이 되게끔 축복을 다짐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부탁드릴 때에,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