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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과 인간의 도덕적 가치관

일시: 1973.11.26 (월) 장소: 일본 동경 제국호텔

​본인은 오늘 세계 최고의 지성(知性)이신 여러 과학자들이 모인 본 제2차 국제과학통일회의가 일본의 동경에서 개최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울러 본 회의의 마감에 제(際)하여 잠깐 말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을 무상(無上)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본 회의의 개최 준비를 위하여 여러 가지로 수고하신 일본 준비위원회의 여러 교수님들의 노고에 대하여 먼저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 다. 특히 '현대과학과 도덕적 가치'의 문제를 이번 회의의 주제(主題)로 채택한 준비위원회의 결정과, 이에 호응하여 세계 각처에서 모여 오셔서 이 주제를 발표하고 토의하신 여러 학자들의 적극적인 열의(熱意)에 대하여 심심(深甚)한 사의(謝意)와 경의(敬意)를 표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의 이 획기적인 집회를 경축하는 의미에서 잠깐 이 주제 (主題)와 관련하여 본인의 소감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본 회의가 과학과 도덕적 가치의 문제를 다루게 된 것은 오늘의 과학적 현실이 이 문제를 긴급히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상황하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 이 문제가 충분히 토의된 줄로 사료(思料)됩니다.

오늘날까지 눈부신 발전을 지속하면서 인류의 복리(福利) 증진에 크게 기여한 현대과학이 오늘에 있어서는 약간의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비단 본인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보기에는 오늘날 인간들은 과학 앞에서 그 주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듯 하며 인간 자신들이 발전시킨 과학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로 약화되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인류 공동의 복리와 과학의 진로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불원(不運)한 장래에 참담한 사태가 나타나리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같은 주체성(主體性)의 점차적인 상실의 이유를 본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즉, 과학은 가치관(價値觀)의 문제를 부득이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던 줄로 알고 있으나, 시일의 경과에 따라 과학이 점차로 분과적(分科的)으로 흘러서 드디어는 도덕이나 가치의 문제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나서, 과학에 대한 인간의 주체성(主體性)과 주관성(主管性)이 약화(弱化) 또는 상실(喪失)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인간이 과학을 발달시킨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줄 알지만 궁극적 (究極的)으로는 어디까지나 인간 공동의 복리(福利), 즉 인류 공동의 평화와 번영의 실현에 있다고 보아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의 영역이 세분화(細分化)되고 그 방법이 가일층 분석주의(分析主義)로 흐른 나머지 인류 공동의 복리라는 가치적인 방향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온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인간이 과학에 기대한 것은 '인류 공동(人類共同)의 복리(福利), 에 있었고, 주체(主體)인 인간의 행복에 있었던 것으로 보며, 이에 대하여 과학이 보여준 성과는 대상(對象)으로서의 물질적 환경(物質的環境)의 개선(改善), 또는 생활수단의 개발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인간이 바란 것은 주체(主體)의 복리(福利)였으나 과학이 성취한 것은 대상(對象)의 개선(改善)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인간의 요망(要望)과 과학의 성취와의 불일치에서 인간의 주체성의 상실이 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과학에서는 생활환경과 수단의 개선(改善) 개발과 같은 대상의 문제 해결에 주력하면서도 동시에 주체성의 문제도 함께 다루는 것이 소망스러운 일이라 할 것입니다. 물질적 및 분석적인 방법과 더불어서 정신적및 통일적인 방법을 병용(竝用)하고, 나아가서 인간의 존엄성을 긍정하면서 일정한 도덕적 가치관의 터 위에서 과학이 다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과학적 풍토가 조성될 때 공해 (公害)와 같은 불안한 문제는 미연에 방지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 있어서 인간 본연(人間本然)의 상(像), 즉 인간의 본성(本性)이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과 가치기준의 설정

본인은 인간의 모습을 심신(心身)의 조화로운 통일체(統一體)로 보고 싶습니다. 가치(價値) 또는 선(善)의 목적을 중심삼고 정신과 육신이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고 있는 통일적 존재(統一的存在)가 본연의 인간이라고 봅니다.

과학은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二重性)을 닮아서 정신적 및 물질적인 두 측면을 통일적으로 지니는 것이 그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정신적 측면은 도덕적 가치의 영역이요, 물질적 측면은 물질의 현실을 다루는 종래의 과학의 영역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앞으로의 과학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통일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관의 문제까지도 다루는 종합적인 과학이 되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러한 과학을 문화과학(文化科學)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과학이 도덕적 가치관을 다룸에 있어서 가치기준의 결정이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가치의 기준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달라져 왔다고 봅니다. 고대(古代)의 가치기준과 현대의 가치기준이 다르며, 동양의 그것과 서양의 그것이 동일(同一)치 않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 공동의 복리를 위한 가치기준을 결정하려면 부득이 시대와 환경을 초월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요소를 찾아내어 그것을 기준으로 세울 수밖에 없으니, 이러한 절대적인 기준의 설정(設定)은 곧 새로운 도덕적 가치관의 수립을 뜻하게 된다 할 것입니다.

절대적 기준의 본질

그런데 우선 그 절대적 기준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가정윤리(家 庭倫理)의 근간(根幹)이 되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윤리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며 이웃에의 사랑, 동포에의 사랑, 그리고 인류애(人類愛)의 기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사랑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며 절대적인 사랑이어서 태양이 만물을 일률적(一律的)으로 비추듯이 만인(萬人)에게 진정한 기쁨을 골고루 줄 수 있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변적(不變的)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절대적 사랑의 주체인 절대자(絶對者)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자가 있다고 하면 그러한 존재를 새로운 가치관의 기준으로 세우는 것이 가장 소망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절대자는 결코 관념적 존재(觀念的存在)가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그 자체를 드러내 온 실재적 존재(實在的存在)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상에 수많은 종교지도자 또는 성현(聖賢)들이 시간이나 장소를 달리하여 출현했던 것을 알고 있으며, 이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양심과 심정(心情)에 호소하여 이웃에의 사랑을 실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의 가르침에 한 민족이나 국가가 순응(順應)할 때 평화와 융흥(隆興)을 누렸던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 혼란과 쇠망에 빠지곤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이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는 현대적인 성현의 출현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대망(待望)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 사랑의 주체이신 절대자가 있어 가지고 역사나 현실의 배후에서 종교지도자나 성현들을 세워 그들을 통하여 자체의 사랑을 구현(具現)해서 도덕적 가치의 세계를 실현하고자 기획(企劃)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절대자를 인류가 다 함께 인정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면 도덕적 가치의 세계는 쉽게 실현되어질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절대자를 도덕적 가치의 기준으로 세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본인의 소감의 일단을 피력(披瀝)했습니다.

끝으로 여러분이 이번에 행하신 훌륭한 연구와 진지한 토의가 인류의 참된 평화와 복리(福利)에 크게 기여하는 획기적인 성과로서 나타나기를 충심으로 빌면서, 이만 본인의 말씀을 마치고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