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님, 어린 딸들이 이 자리에 모였사옵니다. 저희들은 겸손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되겠습니다. 배고픈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그리워하듯이 저희들도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를 바라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은 이미 축복을 받았사옵니다. 이들에게는 남편이 있사옵고, 자녀들이 있사옵니다. 한 나라의 대표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주부의 인연을 가진 딸들이 여기에 모였사옵니다. 이들이 일어서는 것은 자기 개인만 일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남편의 터전이 되고, 자녀들의 기반이 되어 하나의 가정이 일어설 수 있는 중요한 사명이 이 딸들의 가냘픈 몸 위에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게 됩니다.
이 가정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사망권내에 있는 민족과 국가가 회생될 수 있으며, 원수 사탄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인류의 해방을 제시할 수 있사옵니다. 이런 엄청난 인연이 보잘것없는 연약한 이 딸들로 말미암아 새로이 출발되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저희들의 마음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되겠고, 하나의 가정을 중심삼고 뭉쳐야 되겠습니다.
그런 가정들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세계로 뭉쳐 아버지 앞에 바쳐 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옵니다. 뭉치는 데는 각자의 마음대로 뭉칠 것이 아니라 천륜의 원칙에 따라 뭉쳐야 되겠습니다. 자기의 소원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천륜의 소원의 길을 따라 행해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 그 나라는 저희들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부모를 모시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인 것을 알았습니다. 부모를 모심과 동시에 형제들과 함께 가야 되는, 복귀의 한을 넘어가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도 이 책임을 수행하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되겠사옵고, 내일도 그래야 되겠사옵니다. 청춘시대는 물론이요, 장년시대와 노년시대를 거쳐 내 생명이 다하도록 가야 할 복귀의 운명길이 저희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이 길을 선두에서 개척하셨사옵고, 저희들이 슬픔의 고비고비에 처할 때마다 제물이 되시어서 죽음의 구렁텅이를 메워 나오셨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한 구렁텅이를 없애기 위해 역사노정에서 얼마나 많은 수난길을 걸어오셨는가를 생각하며 저희는 진실로 황공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죄의 흔적을 이어받고 태어난 저희 한 개인이 가야 할 길을 생각해 볼 때에, 수많은 선조들이 지은 모든 죄의 인연이 저희들을 뒤에서 당기고 있사오니, 저희들은 이것을 탕감함과 동시에 나 스스로를 아버지 앞에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제물로 바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 복귀의 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저희의 후손들은 저희들을 통해서 승리의 터전이 완전히 닦아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오늘날 저희의 동족이 저희들에게 삶의 보람의 터전이 되고 증거의 실체가 되어 세계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될 개인이 되어 달라고 하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동안 얼마나 슬프셨는가를 몰랐사옵고, 슬픈 아버지의 해원성사가 보잘것없는 저희 일신을 통하여 성취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겸손히 엎드린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당신의 무릎 앞에 묶이고, 당신의 거룩한 사랑의 손길을 통하여 재차 축복을 받고, 하늘땅을 대신한 새로운 가정의 인연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확실히 몰랐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아버지께서는 부르시어 수난길을 걸어오신고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없으셨고, 죽음의 고빗길을 극복하시고도 그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자리에서 저희들을 만나게 될 때, 저희들을 또다시 위로해 주시고, 기른 부모와 같이, 아무 일도 없었던 부모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저희들보다도 더 수난의 자리에서도 불쌍한 저희들을 염려하시는 아버지의 후대(厚大)하신 사랑 앞에 저희들은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을 모시고, 아버님 앞에 효성을 하지 못하여 천추의 한이 될까봐 염려하며 스스로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딸들이 되고, 한 가정의 어머니들이 되고, 아내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새로운 이 아침, 일주일을 새로이 출발하옵니다. 아버님이여, 저희들이 거룩하신 아버지의 성상을 대하여 스스로 솔직이 아뢸 수 있는 자녀가 되어 아버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요, 아버지의 뜻은 우리의 뜻이요, 아버지의 가정은 우리의 가정이라 할 수 있는, 뗄래야 뗄 수 없고, 가를래야 가를 수 없고, 분별할래야 분별할 수 없는 자리에서 한 가정의 딸이요, 한 가정의 아내요,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하늘의 혈통과 하늘의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는 데 부족함이 없는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불쌍하신 예수와 우리' 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하겠사오니,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는 과거 역사에 한정된 예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실체를 오늘날 우리의 생활 가운데 심기 위해서 2천년 역사노정을 신음해 나온 그 예수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사옵고, 오늘 저희들은 그런 예수의 한을 해원성사하기 위해서 일깨움을 받아 가지고 그 누구도 모르는 가운데 부름을 받은 자신인 것을 자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 이 시간을 거룩히 맡으시옵소서. 영광의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늠름한 모습으로 내일의 소망에 벅찬 가슴을 안고 민족의 갈 길을 가려 주며 사망의 물결을 막아 가지고 행복의 동산으로 이끌어 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민족을 대표한 거룩한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수고의 길을 거쳐온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만나 기쁨과 새로운 결의를 높게높게, 넓게넓게, 깊게깊게 다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이 모든 말씀 참부모님의 성호 받들어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통일교회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한과, 예수님의 한과, 이스라엘 나라의 한을 풀어야 합니다. 이 3대 한을 풀지 않고는 복귀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이 땅 위에 와 가지고 하나님이 마음속으로 소원하시던 소원의 실체가 되어 이스라엘 나라를 사랑함과 동시에 자기의 가정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이 되었고, 예수님의 한이 되었고, 이스라엘 나라의 한이 된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책임을 못 하고 간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 위에 온 구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피의 노정을 남기고 간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그 민족의 사상적인 지도를 책임졌던 유대교를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이스라엘 나라로 하여금 세계 인류 앞에 사랑받을 수 있는 민족이 되게 하고, 세계 인류 앞에 사상적인 중심의 책임을 해야 할 유대교에 기독교의 새로운 복음을 연결시켜 고차적인 자리에 올려놓아야 할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못한 것이 한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감으로 말미암아 그 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과 이스라엘 민족에까지 인연되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는 어느 한때에 가서 하나님께서 본래 예수님을 보내셨던 뜻을 성사해야 되겠고, 어느 한때 예수님이 남긴 한을 풀어야 되겠고, 어느 한때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한을 풀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이요, 예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3대 원한의 조건을 어느 한때에 풀어야 됩니다. 하나의 민족을 중심삼고, 하나의 국가를 중심삼고, 그 가운데의 하나의 종교 형태를 갖춘 터전 위에서 하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되고, 제 1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한을 풀어야 됩니다. 이 한을 풀지 않고는 복귀의 가정이 형성되지 않는 것이요, 복귀의 종족, 복귀의 민족, 복귀의 교회, 복귀의 국가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체적인 내용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 결정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셨던 뜻은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한을 총체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개인이 있어야 되고, 가정이 있어야 되고, 교회가 있어야 되고, 국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한 개인은 하나님의 한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사람이요, 가정도 그래야 할 가정이요, 종족이나 교회나 국가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한, 더 나아가 유대교의 한과 이스라엘의 한을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의 역사노정을 더듬어 오면서, 한의 역사노정을 가려 나오면서 찾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모든 한의 결실을 총합적으로 탕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찾아진 개인이요, 가정이요, 종족이요, 교회요, 국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개인, 가정, 종족, 교회, 국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 가정, 종족, 교회, 국가는 하나님의 품에 품김과 동시에 예수님을 맞아 예수님의 품에 품겨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을 중심삼고 횡적인 면에서 가정과 종족과 교회와 국가가 일시에 '하나님의 뜻은 성사되었고 하나님의 한은 풀렸다. 예수님의 뜻은 성사되었고 예수님의 한은 풀렸다. 우리의 뜻은 성사되었고 우리의 한은 풀렸다' 하고, 거족적이요 거국적인 입장에서 하나님 앞에 승리의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는 한날이 와야만, 국가적인 기준에서 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한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와서 하나의 종족을 찾기 전에 하나의 민족을 찾으려 했고, 민족을 찾기 전에 하나의 나라를 찾으려 했으며, 나라를 찾기 전에 세계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사명을 갖고 왔던 예수님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예수님 앞에 하나의 가정은 물론이요,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세계 전체가 안겨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세계의 국가들이 하나로 합하여 가지고 그들로부터 승리한 예수님이요,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예수님이라고 찬양받아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반대받는 입장이 선 것이 웬말이냐는 것입니다.
영광 가운데 나타나야 할 예수님은 영광의 약속은 갖고 왔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함은 물론이요, 영광은커녕 이 땅 위에 한을 남기고 가신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낼 때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느냐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 가지고 그 아들이 뜻을 이루지 못한 그 한이 얼마나 컸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해 나오셨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 인간 세상은 거짓 부모를 중심삼고 출발되었습니다. 거짓 부모를 중심삼고 출발된 그 자리에는 하나님 대신 사탄이 생겨난 것입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은 떠나가시고 주인의 원수인 사탄이 인류의 주인이 되어, 부모의 인연의 혈통을 통하여 연결되어 가지고 인류역사가 출발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기가 막히고 원통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어느 한때 원수의 쇠사슬에서 벗어난, 승리한 아들딸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신 사탄권내에 얽매인 쇠사슬을 끊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소원을 성취해 드리고, '당신이 바라시는 뜻에 합당한 나' 라고 하며 나타난 하나의 남자, 하나의 여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쇠사슬을 끊는 사명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쇠사슬을 끊는 데 있어서 어디서부터 끊어야 되느냐? 국가의 쇠사슬을 끊기 전에 민족의 쇠사슬을 끊어야 되고, 민족의 쇠사슬을 끊기 전에 종족의 쇠사슬을 끊어야 되고, 종족의 쇠사슬을 끊기 전에 가정에 엉클어져 있는 사탄의 쇠사슬을 끊어야 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원한의 터전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타락한 후손들을 통하여 혈통적 인연으로 이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의 조건을 남길까봐 이렇게 엉클어진 원수의 쇠사슬을 끊게 하기 위해서 개인, 가정, 민족, 국가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 민족이 어느 민족이며, 그 국가가 어느 국가냐 하면 이스라엘 민족이요, 이스라엘 국가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국가 기준에서 사탄의 철망을 제거시킬 수 있는 선민권을 만들어 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민권에도 하나님의 염려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터전이 남아있기에, 그 선민권내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유대교라는 특정한 교단을 세우셨습니다. 사탄세계의 쇠사슬에 인연이 없는 분별된 교단으로서, 하나님이 언제나 자유스러운 자리에서 활동하실 자유의 터전으로서 남겨 놓은 것이 유대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쇠사슬이 어느 정도까지 엉클어져 있느냐? 나라는 물론이고 교회에까지도 미쳐질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교회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되게 될 때에는, 말씀을 중심삼은 권내에서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습니다. 말씀과 실체가 완전히 하나되지 않으면 실체의 해방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실체의 해방을 이루어 가지고 심정적인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 찾아 나온 하나의 중심존재가 누구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앞에 약속하셨던 메시아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실체가 해방을 받기 위해서는 실체가 말씀과 하나되어야 되고, 심정이 실체와 하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실체를 갖지 못하면 말씀을 이루었다 할 수 없는 것이요, 그 실체가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기 전에는 사탄세계를 대해 하나님 대신 싸우는 아들이 될 수 없고 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섭리의 내용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실체가 사탄의 쇠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가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체가 말씀과 하나되어야 되고, 실체가 사탄의 쇠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되어야 됩니다. 이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으로만 남아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해서 태어났다는 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심정적 해방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심정세계를 모색하는 곳입니다. 심정의 인간을 요구하고, 심정의 인격을 요구하고, 심정의 가정과 심정의 역사를 요구하며, 그것을 창조해 가야 할 사명이 통일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심정의 역사는 인간의 육신과 관계되어 있는 터를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천정(天情)이 개재되어 있습니다. 이 천정은 근원도 천정이요 과정도 천정이요 결과도 천정인, 이런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한몸으로 태어난,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와 같이 하나님의 핏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인연을 가진 자신이 되지 않고는 심정적 승리의 터전을 갖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심정의 중심으로서 이 땅 위에서 메시아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태어나야 되느냐? 사탄의 혈통과 관계없는 자리에서 태어나야 됩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세계의 우리 인간과는 다른 분이어야 됩니다.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은 타락한 인간 조상의 피를 받고 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관계하심으로써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하나님의 승리의 터전 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하나님의 핏줄을 타고 이 땅 위에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문제되는 것은 승리할 수 있는 아들로 태어나기 위해서 승리할 수 있는 혈통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 혈통을 갖지 않고는 승리할 수 있는 심정을 가질 수 없는 것이요, 승리할 수 있는 심정을 갖지 못하고는 승리할 수 있는 실체로 태어날 수 없는 것이요, 승리한 실체가 되지 않고는 승리한 말씀을 가지고 사탄을 심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기 전까지, 4천년 동안 무엇을 하셨느냐? 타락한 혈통을 바로잡아 가지고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관계맺어 가지고 보낼 수 있는 예수님 한 분을 위해서 수고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기 전까지의 4천년 역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류역사는 가인과 아벨에 의한 두 역사로 출발했습니다. 하나는 악을 대표한 것이요, 하나는 선을 대표한 것입니다. 가인은 악편이요, 아벨은 선편입니다. 선이 아니라 선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선이 될 때까지는 숱한 역사노정을 거치면서 수고를 해야 되고 피눈물나는 탕감의 노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런 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선의 실체가 탄생할 수 없습니다. 즉, 악의 실체로 태어난 자신을 선의 실체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수난길 중의 수난길을 거쳐 가지고 승리했다는 그 한때를 갖지 않고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선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은 악한 편이요, 아벨은 선한 편입니다. 그러면 악한 편과 선한 편이 싸워 가지고 선한 편이 이겨서 무엇을 찾아 세워야 되느냐? 선한 말씀을 찾아 세워야 됩니다. 선한 말씀과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선한 실체를 찾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실체는 근본이 다릅니다. 타락권내에서 사탄의 핏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인간은 선한 실체가 될 수 없습니다. 선악의 중간 입장에 서는 사람이 될 수는 있겠지만 선한 실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선한 실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인을 굴복시켰다 하더라도 그 기준을 중심삼고는 선한 실체가 못 되는 것입니다. 선한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심정적인 선한 승리의 터전을 가져야 되고 혈통적인 선한 승리의 터전을 가져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벨이 아벨로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선한 실체는 못 됩니다. 선한 실체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삼고 심정적으로 일체를 이룬 혈통적 내용을 갖추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선한 실체가 될 수 없습니다. 선한 실체를 맞을 수 있는 입장에는 설 수 있으되 선한 실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를 통해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실체기대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 실체는 하나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메시아를 위한 기대, 즉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메시아를 맞이해야 되느냐? 우리가 실체의 입장이기는 하지만 종적인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은 아벨 입장이요, 우리들은 가인의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우리들은 양자의 입장입니다. 아들과 양자는 다릅니다. 아들은 직계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납니다. 직계 부모의 사랑으로, 혈통적 내연을 통하여 태어난 아들은 부모의 직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양자는 부모가 다릅니다. 부모가 다르지만 법에 따라서 상속받을 수 있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정적인 일치점과 혈통적인 일치점을 해결짓지 않고는 실체 부모의 인연을 상속받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이 오늘날 복귀되어 나가는 양자의 입장인 우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이것을 세워 놓지 않고는 아무리 뜻을 따라 나오고, 말씀을 중심삼고 하나되고, 아벨의 사명을 다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오늘의 모습 그냥 그대로 내 딸이요 내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처음부터 출발을 달리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세계에서부터 출발한 나는 하늘 부모를 맞이하여 다시 절차를 밟아 접붙임을 받아 가지고 본연의 내 모습을 다시 찾아야 할 길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절차, 곧 교체하는 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 노정을 거치지 않고는 참다운 부모의 인연을 이어받을 수 없는 타락한 인류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역사노정을 볼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느냐?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바꿔치기하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본래 가인이 태어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태어나야 되는데, 거짓된 사탄을 중심삼고 사탄편인 가인이 태어났기 때문에 가인을 부정시켜야 됩니다. 무엇으로 부정시켜야 되느냐? 하늘편으로써 부정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하늘편에 선 아들의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양자의 자리입니다. 악한 편인 가인의 자리는 종의 자리입니다. 양자와 종은 다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돼요.
종은 양자 앞에 절대 복종해야 되고, 생명을 바쳐 충성해야 됩니다. 또한 양자는 직계 아들이 태어나면 그 직계 아들에게 절대 순종해야 됩니다. 만일 여기에서 양자가 양자의 권한을 행사하게 될 때에는 두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두 패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부모는 직계 아들이 태어나면 그 직계 아들에게 모든 것을 상속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양자가 양자의 권한을 주장하며 '양자인 나도 아들의 입장이니 상속권을 주시오' 하게 될 때는 양자를 택정한 부모는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직계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양자의 입장에서 계승해 왔지만 직계 아들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는 직계 아들을 위하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양자는 직계 아들을 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사상이 서 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양자는 직계 아들을 위해서 있어야 됩니다.
만일 부모가 직계 아들을 갖지 못했다면 그 부모는 기쁨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요, 기쁨의 마음을 가지고 천년 만년 자랑할지어다 할 수 있는 자리에서 모든 것을 상속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양자 앞에 상속해 주게 되면 그 무엇인지 모르게 핏줄 가운데 슬픔이 깃드는 것이요, 심정 가운데 슬픔이 깃드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그렇지요? 그렇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핏줄이 기뻐할 수 있고, 심정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심정 중의 심정이기 때문에 내 안팎의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다' 할 수 있는 자리는 직계 아들과 부자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양자의 인연을 가지고 복귀의 길을 따라 선(善)편에서 아벨의 사명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아를 모실 수 있는 때까지 남게 한 무리가 나라를 대신해서는 이스라엘 나라요, 교회를 대신해서는 유대교입니다. 유대교는 양자의 입장에 선 교회요, 이스라엘 나라는 양자의 입장에 선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야 돼요.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요,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는 아직까지 심정을 중심삼고, 뼈살을 중심삼고 하나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뼈살이 하나되고, 심정이 하나될 수 있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기필코 아들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본래 뜻한 내 나라요, 본래 뜻한 내 교회라 할 수 없고, 이 내 나라 내 교회를 내 아들딸 앞에 영원히 주어야 할 나라요 교회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짓기 위해서 하나님은 기나긴 역사노정에서 수난길을 극복하시면서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 앞에 아들인 메시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확실히 알겠어요?
우리는 어디까지나 양자입니다. 양자라구요. 그러면 양자로서 직계 자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양자가 되었느냐? 왜 양자밖에 못 되느냐? 어머니 아버지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냐? 사탄입니다. 그 조상이 누구냐 하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자인 우리가 양자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탄을 따라가는 입장에 서서는 양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탄편을 좋아해 가지고는 양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 자체를 좋아해 가지고는 양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아들이 되는 것이냐? 그냥 그대로 사탄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결정적인 양자의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사탄세계에 있는 나라와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 가정의 식구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형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 형제지정을 갖고 있어도 안 됩니다. 왜냐? 사탄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몽땅 끊어 버려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부모가 있어도 부모를 버려야 되고 형제가 있어도 형제를 버려야 되고, 친척이 있어도 친척을 버려야 되고, 나라가 있어도 나라를 버려야 되고, 자기가 바라는 소망이 있어도 소망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 개인을 중심삼은 욕망, 내 개인을 중심삼은 사랑, 내 개인을 중심삼고 원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서 내 부모보다 누구를 더 사랑해야 양자가 된다고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양자가 되어 가지고 양부모 앞에 가서 엄마한테 보내 달라고 울면 양자가 돼요? '아이구, 우리 엄마 아빠한테 가고 싶어. 이놈의 살림살이 나는 싫어. 우리 집에 가고 싶어. 우리 형님 누나 보고 싶어. 우리 아저씨 아줌마 보고 싶어' 하며 양부모 앞에서 눈물을 찔찔 흘리며 밥을 먹으면서도 근심걱정을 하고 그러면 양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게 언제 사람이 되려나'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양자가 못 되는 거예요. 양자가 되려면 자기 일생을 통해 인연되었던 것, 자기가 태어난 근원과 상반된 자리에 서야 됩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가 찾아와서 '야, 아무개야' 하면 '왜요?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썩 돌아가시오' 하고 나서면, 양부모가 볼 때에 기분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기분이 나쁘겠어요, 좋겠어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됩니다.
자기 형님이나 누나, 혹은 오빠 언니가 와서 '야 아무개야, 우리 집이 어려운데 너의 양부모네 집은 잘사니까 살짝 해 가지고 우리 집 좀 도와줘야 되겠다'고 속닥속닥할 때 '응 그래 그래' 하게 되면 양자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잘 알라구요. 양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때에는 '야 사탄아 물러가라, 이 원수야 물러가라! 너는 내 양자의 기업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기 위한 사탄의 마수다! 이 마수야, 뻗쳐 들어오려고 조건을 걸지 마라' 하며 무자비하게 끊어 버려야 됩니다.
양부모가 양자에게 귀한 예물을 주면서 '네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어라. 네가 네 몸보다 더 사랑하는 분에게 주어라' 했을 때 '그래요, 정말이예요?' 하고 양아들이 그것을 받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고 '그래도 나를 낳아 준 부모가 제일 귀하지. 자식으로서 부모 앞에 효도해야지' 해 가지고 양부모가 사준 귀한 예물을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갖다 드렸다면 양부모는 어떻겠습니까? 섭섭하겠어요, 기분이 좋겠어요?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양부모에게 '나에게는 당신만이 내 부모요, 당신만이 내게 정을 줄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더불어 살고 당신과 더불어 죽겠습니다. 저의 일체는 당신과 하나되겠습니다. 저에게는 드릴 것이 없으니 받은 것을 당신 앞에 돌려드립니다' 하면 양부모는 백 퍼센트 흐뭇해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백 퍼센트에 가까운 7,80퍼센트까지는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지요?
더 나아가 양부모가 앞으로 양자에게 축복을 해줘야 할 텐데, 다시 말해서 전부 다 상속을 해줘야 할 텐데 그 재산은 자기가 생명을 걸고 찾아 이룬 것이요,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모은 것이라면, 이것을 양자 앞에 상속해 주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나갈 수 있는 시험을 해 가지고 양자가 그 시험에 통과하게 되면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양부모는 양자에게 극적인 반대 놀음을 시킨다 이거예요. '너는 이렇게 원하지만 반대해라. 네가 좋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해라' 하면서 사지(死地)에까지 몰아넣는 거라구요. 그렇게 사지에까지 몰아넣어야 하는 양자를 가진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서글프겠습니까?
양자를 가진 부모는 마음으로 네가 내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네가 내 핏줄을 통해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몇백 번 몇천 번 다짐했겠습니까? 양자가 그런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나는 당신의 핏줄을 통해 태어난 아들보다 못한 자리에서 효도하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그 백배 천배 더하여 효도를 해서 당신의 섭섭한 마음의 골짜기를 완전히 메워 드리겠습니다. 백번 죽고 천번 죽고 또 죽더라도 당신 앞에 효성을 다하여 양자로서 참다운 직계 아들딸이 효도하는 것보다도 낫다는 칭호를 남기고 싶습니다' 하면서 죽음길도 이의없이 달려가 죽음의 자리에 나섰다 하게 될 때에, 그 양부모는 '오냐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생명을 걸고 수고하여 모은 모든 소유물을 너한테 넘겨 주어도 이제는 한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아무개 아들딸보다도 낫고 아무개의 효자보다도 더 나은 자리에서 효성을 하는 입장에서, 생명을 바치는 자리에서 부모를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귀하게 찬양할지어다!' 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넘겨 주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양부모의 심정이 아니겠느냐는 거예요. 이해돼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양자로서 내일 아침에 상속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부모의 슬퍼하는 마음을 알고 '만일 내일 아침 내가 상속받기 직전에 양부모가 아들을 하나 낳는다면 나는 기쁨으로 그 아들을 받들고 내가 받을 상속은 이 아들의 것이니 부모 앞에 보관시켜야겠다'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 부모는 자기의 아들을 틀림없이 양자에게 맡길 것입니다. 알겠어요? '오냐. 양자의 입장에 있는 아무개야. 너는 나를 위하여 생명을 바쳤듯이 내 대신 내 아들을 고이 키워 주고, 내가 지닌 바의 사상을 그냥 그대로 이어주고, 내가 지금까지 싸워 나온 역사적인 행동을 고스란히 가르쳐 주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양자에게 직계의 아들을 맡길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와 같은 입장에 선 것이 유대교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양자의 입장을 완전히 알아 가지고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들을 키워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양자의 입장에서 그 부모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도 이의가 없으며, 죽음길을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 수백 번 가더라도 이의가 없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몽땅 주어도 아깝지 않다 하는 입장에 선 양자가 있는데, 부모가 양자에게 상속하기 직전에 아들딸이 태어났다면 그 아들딸을 직접 키우는 것보다도 양자에게 맡겨 키우게 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내가 기르는 것보다도 네가 기르는 것이 낫겠다. 너는 틀림없이 내가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할 것이다' 할 수 있는 역사에 없는 인연을 찾아 나와 유대교 앞에 예수님을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정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양부모의 아들을 키워 주는 입장에 서게 될 때, 그 아들의 눈물은 양자의 눈물이요, 그 아들의 기쁨은 양자의 기쁨이요, 그 아들의 수난길은 양자의 수난길이라고 하게 될 때, 양자와 아들이 하나된 자리에서 자랄 수 있는 인연을 맺고 키워 주는 과정을 거친 입장에 서게 될 때에는, '내 것이 네 것이요, 네 것이 내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갖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둘 다 갖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너희 둘은 뗄 수 없다' 하여 한 아들은 오른쪽에, 한 아들은 왼쪽에, 놓고 '너희 형제가 꼭 붙어서 하나되었기 때문에 모든 소유물을 너희들에게 줄 터이니, 하나된 너희들은 천년 만년 갈라지지 말고, 평화스럽게 살아 달라'고 축복해 주고 상속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이와 같은 인연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앞에 모든 역사를 맡기고 세계를 상속해 주실 것을 약속해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의 입장에서 해야 할 것은 생명을 걸고 효도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귀결점은 생명을 바쳐 효성의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갖지 못하는 어버이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느냐? 그 슬픈 마음을 가려 가면서 슬픈 마음을 위로해 드리는 양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바치더라도 감사해 하면서 효성을 다하게 될 때, 그 양자를 아들과 같은 자리에서 축복해 주고 싶은 것이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마음으로 타락한 후손을 축복받을 수 있는 양자권까지 끌고 나오신 것입니다. 그 권을 하나의 개인으로부터 하나의 가정, 하나의 종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기준까지 만들어 놓은 것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시어 세운 이스라엘 나라요, 유대교라는 것입니다.
양자의 소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 자신이 양자로서 상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직계 아들로서 상속받는 것이 양자의 소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너 같은 양자가 없다고 아들까지 맡기면서 축복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4천년 역사가 딱 이와 같은 내용입니다.
직계 아들은 어떻게 태어나야 되느냐? 사탄의 핏줄과 다른 핏줄을 갖고 태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바꿔치기 역사를 해야 됩니다. 하늘편이 먼저 태어나고 사탄편은 없어져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본연의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악한 편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선한 편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악한 편은 없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선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했어요? 가인에서부터 출발했어요? 아닙니다. 아벨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선은 아벨에서부터 출발했으니 선한 편이 먼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편이 먼저 되는 것이 천지의 원칙이지요? 선한 편이 먼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이 태어날 때 첫번째로 태어났느냐, 두번째로 태어났느냐? 두번째입니다. 두번째이지만 첫번째가 되어야 합니다. 바꿔치기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바꿔치기는 형제를 중심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장성한 20세 이상의 연령에서 바꿔치기를 했다 할 때 어떻게 되느냐? 20세 이하의 바꿔치기 못한 연령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바꿔치기 했다 하더라도 완전한 바꿔치기가 못 되는 것입니다.
만일 스무 살에 바꿔치기를 했다면 한 살서부터 스무 살까지는 바꿔치기를 못 했기 때문에 그 시대는 사탄편에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이가 60세인 사람이 20세에 바꿔치기를 했다면 40년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받은 기간이 되지만 20세까지는 사탄한테 주관받은 것이 되는 게 아니냐는 거예요. 그러므로 20세까지 먼저 주관한 그 인연을 갖고 사탄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바꿔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은 기간을 잘라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형제끼리 싸워서 그 기간을 좁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에서와 야곱을 바꿔치기하는 것입니다. 따로따로 낳게 되면 먼저 낳은 기간이 있으므로 그 기간만큼 사탄이 주관한 인연을 가지고 따라다닐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같이 낳았다는 자리에서 바꿔치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와 야곱은 쌍태입니다. 쌍태 형제이지요? 그렇지요? 쌍태 형제이니만큼 차이가 나 봤자 몇 시간 아니면 몇 분 차이일 것입니다. 한 30분 차이가 날까요? 몇 시간 차이가 나나요? 많이 나 봤자 세 시간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 시간 이내의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쌍동이란 같은 젖을 먹고 자란다는 거예요. 부모에게 귀여움을 받더라도 같이 받고 같은 환경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옷을 해 입혀도 같이 해 입히고 밥을 줘도 같이 줍니다. 복중에서부터 같이 사는 거라구요. 이것을 바꿔치기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에게서 팥죽으로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40세에 장자의 기업을 빼앗았습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40세 전까지는 에서가 먼저 나지 않았느냐고 사탄이 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미련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해 가지고는 안되겠으니 또 한 번 바꿔치기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레스와 세라가 이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알겠어요? 야곱의 아들 가운데 유다가 있지요? 그 유다의 며느리가 누구냐 하면 유명한 다말이라는 여인입니다. 이 다말이라는 여인은 어떤 여자냐? 유다의 맏아들에게 시집왔는데, 즉 유다의 며느리로 들어왔는데 그 맏아들이 죽었습니다. 애기도 못 낳고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나라의 법은 형이 장가가서 대를 이을 후손이 없이 죽게 되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살게 되어 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축복받은 대를 이어줘야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가인 아벨은 형제지만 한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이 통한다는 것입니다. 가인·아벨·셋은 아담의 세 아들이지만 하나의 아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에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 것은 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아들을 낳게 되면, 첫아들은 형의 아들로 주고 둘째 아들은 자기의 아들로 삼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의 둘째 아들과 사는데 그도 죽었습니다. 세째 아들은 어린아이라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축복받은 계대를 잇기 위해서…. 여자로서 아이를 못 낳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두 형제를 거쳤어도 혈족을 남기지 못한 한을 누구보다도 더 느낀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자기 시아버지 품에 들어가서라도 그 혈족을 남기려 했던 것입니다. 길가에서 창녀의 모습으로 변장해 가지고 시아버지의 품에 안기어 낳은 것이 누구냐 하면, 성경에 나오는 베레스와 세라인 것입니다. 그런 것은 우리 타락론을 들으면 그렇게 안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거라구요. 그 이유는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자세히 가르쳐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인으로서 혁명을 해야 돼요. 자기 남편의 전체 환경을 부정하고 그 나라의 법도와 그 환경을 완전히 부정했던 것입니다. 다말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일신이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창녀의 몸이 문제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객사한다고 해도 문제가 아니다. 하늘의 뜻만 이룰 수 있다면 죽음이라도 감수하겠다' 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기수 중의 기수였습니다. 자기의 위신과 체면, 자기 가족과의 인연을 전부 다 무시하고 국가의 법과 역사를 무시한 것입니다. 그 당시의 율법을 보면 그것은 돌에 맞아 죽을 일입니다. 당장 즉살을 당하는 때라구요.
여기에서 낳은 아들이 누구냐 하면 쌍동이인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베레스와 세라는 뱃속에서 바꿔치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바꿔치기한 후 아까 얘기한 그런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을 완전히 바꿔치기하기 위해서 복중에서부터 둘이 싸우는 거예요.
형이 되는 세라의 손이 먼저 나오니 산파가 그 손에 홍사를 매어 주었지요. 이것은 공산당이 먼저 출현할 것을 예고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종말시대에 주님이 오기 전에, 바꿔치기한 주인이 오기 전이 먼저 나온 세라에게 붉은 끈을 매어 준 것처럼 공산세계가 먼저 나온다는 거예요. 공산세계가 형의 모양으로서 먼저 나왔지만 동생이 그 형을 밀쳐 내고, 세계적인 주권을 갖고 온다는 것을 다 보여 준 거예요. 알겠어요?
그래서 동생이 먼저 나오려고 하는 형을 밀치고 동생의 자리에서, 나중 될 수 있는 자리에서 먼저 태어났던 것입니다. 베레스라는 말은 밀치고 나왔다는 뜻입니다. 알겠어요?
비로소 바꿔치기를 했는데…. 선이 먼저 출발해야 하는데, 악이 먼저 출발했지요? 이것을 비로소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아담을 지을 때도 하나님이 지었지요? 하나님의 수고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적으로 말미암아 사탄세계에 있어서 사탄이 먼저 출발한 것을 비로소 여기에서 바꿔치기하여 선이 출발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아들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아들이 베레스입니다. 야곱의 손자라구요. 3대 만에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3대 만에 주님이 와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에서와 야곱 때를 보면 리브가의 복중에서 서로 싸웠지만 먼저 태어난 에서는 사탄편입니다. 야곱은 태어나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런데 베레스와 세라는 다말의 복중에서 싸워 베레스가 장자의 기업을 바꿔치기했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복중은 아들딸이 태어나는 근본인데 그 근본에서부터 바꿔쳤다는 거예요. 태어나서 바꿔친 것이 아니고 복중에서 바꿔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중에서 바꿔쳐서 먼저 태어난 아들에 대해 사탄이 '내 아들이다' 하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중에서 바꿔치지 않고 먼저 태어나게 되면 사탄편이지만 복중에서 바꿔쳐 가지고 먼저 태어나게 되면 하늘편이라는 것입니다. 다말의 복중에서 싸워 가지고 베레스가 세라를 물리치고 태어났기 때문에 장자의 기업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랬으니 태어나면서부터 장자예요, 차자예요? 베레스는 필연적으로 차자가 되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장자의 입장으로 태어났으니 선이 먼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아담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혈통으로 교체시켜 놓았습니다. 사탄편 가인과 하늘편 아벨이 혈연을 중심삼고 내려오는 데 있어서 복중에서부터 베레스가 승리하고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본궤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다 지파의 혈통을 통해서 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왜 예수님이 유다 지파의 혈통을 통해서 오지 않으면 안 되느냐? 유다 지파를 통해서 혈통적 승리의 기반을 태중에서 결정지어 놓은 전환점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다말의 공이 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지음받은 입장에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또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면 시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을 보면 해와의 남편입니다. 그렇지요? 3대 남성을 대할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온 것이 해와의 입장입니다. 즉, 딸의 입장이요, 며느리의 입장이요, 아내의 입장으로 온 것입니다.
그러면 며느리는 어떠한 입장이냐? 양녀의 입장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아버지이지만, 아담과의 관계를 중심삼고 보면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복귀는 거꾸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귀원칙으로 볼 때에 다말이 며느리 자리요 딸의 자리에 있지만, 시아버지의 품에 들어가는 것은 죄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원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렇게 해 가지고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것입니다. 베레스의 혈통을 받아 가지고 하나되는 자리는 사탄이 참소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장자의 혈통적 터전이 복중에서부터 출발된 것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복중에서부터 가인 아벨을 출발시켰기 때문에 다시 복중에서부터 가인 아벨을 탕감시켜 아벨이 가인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때, 형으로 태어나면 동생을 주관할 수 있어요, 없어요? '이놈의 자식아! 너는 내 동생이니까 내 말 들어야 해'라고 강제로라도 굴복시킬 수 있는 놀음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런 터전을 중심삼고 하나님께서 이적기사를 행하실 수 있는 지상 터전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는 하나님이 이 민족을 대해 간섭하고 반대하는 민족은 들이치는 거예요. 왜냐? 장자의 권한을 갖고 태어난 분별된 민족으로서 하늘의 혈통적 터전을 닦아 왔기 때문에 이 민족을 반대하는 민족을 하나님이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벨 때를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였지요? 그런데 아벨을 죽이고 두려워하고 있는 가인을 대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가인아, 두려워 말라. 누구든지 너를 죽이려고 하는 자는 벌을 칠배로 받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때는 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때가 다릅니다. 이 권내에서는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별된 터전을 통해서 전통적 사상을 가지고 심정적 인연을 계승해 나오는 것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의 전통입니다.
그러면 왜 당시에 주님을 보내시지 않았느냐? 주님을 그냥 보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개인만이 아니라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어 주권을 형성할 때까지 이렇게 갖추어 나오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되는 놀음을 해 나와야 됩니다.
그리하여 4천년 역사노정을 거쳐 비로소 전통적 역사를 이어받은, 다말과 같은 절개를 가진 여자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다말이 그렇게 정성들여 하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듯이 그런 순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여인이 나와야 주님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어떤 여인이냐 하면 처녀의 몸으로 다말과 같은 사상을 이어받은 여인입니다. 주님은 시집간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면 안 됩니다. 그렇지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타락전 아담 해와가 처녀 총각이었듯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야지요? 그렇지요?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야 되는 거라구요.
그렇지만 다말은 몇 남자를 거쳐서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양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말의 그런 절개를 이어받아 가지고 처녀의 몸으로서 정성들여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름받을 수 있는 여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 처녀가 있어야 돼요. 그 처녀가 누구라고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예요.
한국 말에는 '말이야'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여기에 재미있는 것은 남자도 '글쎄 말이야' 여자도 '글쎄 말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전부 다 마리아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이 주님을 모실 수 있는 나라가 되려니 할 수 없이 마리아를 찾는 것입니다. (웃음) 왜 웃어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너 말이야, 엄마 말이야, 아빠 말이야, 전부 다 마리아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를 제일 많이 부르는 민족이 어느 민족이냐 하면 유대 민족도 아닌 한국 민족입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마리아를 많이 불렀으니 마리아를 제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야'란 말은 접속사로서 말을 연결시킬 때의 중간 휴식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 중간 휴식처로서 신부의 사명을 해야 할 마리아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런 얘기 했으니 여자들이 이제 내가 마리아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자들, 여자로 잘 태어났어요, 잘못 태어났어요? 그런 처녀가 태어나야 되겠어요, 안 태어나야 되겠어요? 「태어나야 됩니다」 태어나야 되겠지요? 그러려면 다말과 같이 되어야 됩니다. 다말의 심정을 이어받은 처녀가 태어나야 됩니다. 그렇게 태어난 처녀가 바로 마리아입니다.
복귀원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마리아를 봅시다. 처녀가 말이야. 또 '말이야'라고 했구만요. (웃음) 마리아가 처녀로서 요셉과 정혼을 했는데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이제 성령에 힘입어 아기를 낳을 것이다'고 예고를 했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나이까'라고 말하니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가브리엘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종입니까, 딸입니까? '주여 당신의 딸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데 있어서 딸이 없었습니다. 딸이 없었지요?
여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집간 여자이고, 하나는 시집가지 않은 처녀입니다. 두 종류밖에 없는 거라구요.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는 시집간 여자 하나를 취해 와야 되고 시집가지 않은 처녀 하나를 취해 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집가지 않은 처녀도 그냥 아무 내연이 없는 처녀가 아닙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요셉하고 정혼을 하고 나서 시집을 가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저 더벅머리 총각이 내 신랑이구나. 잘생겼을까, 못생겼을까' 이렇게 자기 꿈이 부풀어 있을 때라구요.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뭔지는 몰랐지만 앞으로 천지의 이념을 다 상속받을 꿈이 부풀어 있을 때 타락했기 때문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환경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하고 정혼한 처녀 마리아를 하나님이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몇 살쯤 되어야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스무 살이 넘으면 마리아는 사명을 못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마리아' 하게 되면 스물댓 살 된 기분이 들어요, 열 일곱 여덟 살 된 기분이 들어요? 「열 일곱 여덟…」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 10대에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10년이 한 단위권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 3단계에 3을 곱하여 하나님까지 합하니 10이 됩니다. 천지창조의 원칙은 10대권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10은 한 단위권이라구요. 그러므로 20대의 사람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20이전 10대의 사람을 택해야 됩니다. 인류의 어머니 될 수 있는 사람은 스무 살이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그러면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천사가 마리아에게 네가 애기를 낳을 것이다 할 때에 정혼한 총각이 있는 처녀로서 '마음대로 하소서' 할 수 있어요? 처녀로서 됐어요, 안 되었어요? 그것은 시집가기 전에 남자를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누구 때문에? 자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 때문에 무엇을 버리겠다는 것입니까? 남편 될 사람을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남편 될 사람을 버리겠다는 말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 환경도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부모가 가만히 있겠어요?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를 다 버린다는 것입니다. 또 형제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반대하니 형제들도 다 버린다는 것입니다. 고독단신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여자들이 있지만 고독한 여자 중에서 제일 고독한 여자는 나밖에 없구나' 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고독한 여성을 대해 고독한 하나님께서 편이 되어 관계를 맺고 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한 여자, 그것은 다말이 처했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여자로서 절개지조를 다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에는 단 하나,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마음만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전부 다 사라져 버려도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리아가 한번 되고 싶어요? 다말이 한번 되고 싶어요? 여러분은 시집을 갔으니까 마리아는 못 되지요? 그러니 다말이 한번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되고 싶어요」 그러면 남편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남편이 죽었어요? 「살았습니다」 남편이 살아 있는데 어떻게 될 수 있어요? 그것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을 중심삼고 사는 여자는 자기 위신과 체면과 절개 모든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뜻을 위해 일편단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뜻으로 말미암아 죽고 뜻으로 말미암아 살고 누더기가 되고 뜻으로 말미암아 영광 자리에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뜻 때문에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망해도 좋고, 흥해도 좋다는 거예요. 이 말이 무서운 말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세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세계의 승자가 되지 않고는 하늘의 터전은 이룰 수 없습니다. 어차피 이 세계는 두 세계가 아닙니다. 가인 아벨의 세계를 넘어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혈통을 받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는, 두 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부모의 사랑도 좋고, 남편의 사랑도 좋다, 아! 이 사랑은 내 것이다. 아들의 사랑도 좋다. 아! 이 사랑만은 내 것이다' 할 때 하늘과 통하겠어요, 안 통하겠어요? 그것은 불통이예요. 역사는 이렇게 이루어져 나왔고, 역사적 전통을 받든 여자가 이렇게 어려운 반대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통일교회 역사 가운데도 그러한 역사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가문을 중심삼은 종족에도 이와 같은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 때문에 부모도 버리고, 하나님 때문에 형제도 버리고, 하나님 때문에 남편도 버리고, 하나님 때문에 자식도 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은 축복받은 사람들로서 반대하는 패가 아닙니다. (일부 녹음이 되어 있지 않아 정리하지 못했음)
그러니 천사장을 복귀하기 위한 고생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도 축복받은 여러분들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다말의 계승자가 되고, 마리아의 계승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입장을 여러분들이 이때에 가름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은 그것을 다 버리고 나간 여자의 입장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잘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임지에 나가기 전에 낳은 아들딸과, 이 길을 다 거치고 난 후에 낳는 아들딸은 다를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늘을 정말 끝까지 따르겠다는 자리에서 아들딸을 한번 낳아 보자 하는 마음을 가진 여자들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언제 그런 결심을 해 가지고 다 버리고 나선 때가 있었어요? 없었지요? 다 버리긴 뭘 버려요? 찾아 다니는 게 버린 건가요? 그러니 이제야말로 다 버렸다 하는 조건이라도 세워 가지고 여자로서 복귀섭리에 있어서 비로소 얼굴을 내놓을 수 있는 전통을 상속받을 수 있는 여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을 대표한 것이, 통일교회 축복가정 아낙네들을 출동시킨 이번 3년 기간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중대한 의의가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이다」 아는구만. 듣긴 바로 들었구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분별된 사상을 계승해야 되는데 무슨 사상을 계승해야 되느냐? 다말의 사상을 계승해야 됩니다. 또, 무슨 사상을 계승해야 되느냐? 마리아의 사상을 계승해야 됩니다. 그 사상을 그대로 계승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다말의 사상, 마리아의 사상을 계승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계승해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아들을 낳아야 됩니다.
다말과 마리아가 전통적 사상을 계승해 가지고 애기를 낳을 때, 지옥에 갈 아들을 낳겠어요, 천국에 갈 아들을 낳겠어요? 「천국에 갈 아들입니다」 천국에 갈 아들을 낳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축복받은 여러분은 지옥에 갈 아들을 낳아야 되겠어요, 천국에 갈 아들을 낳아야 되겠어요? 어디에 갈 아들을 낳을래요? 「천국에 갈 아들입니다」 천국에 갈 아들을 낳아야 됩니다.
천국에 갈 아들을 낳으려면 천국 주머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천국에 갈 아들을 못 낳는 거라구요. 그 주머니가 뭐냐 하면 다말 주머니, 마리아 주머니입니다. 이것을 이어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뜻 때문에 여자는 혁명을 했지만, 남자가 혁명하는 게 아닙니다. 남자는 혁명을 못 했습니다. 여자만이 뜻 때문에 혁명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엄숙하고 거룩한 전통적 사상을 올바로 이어받아야 되겠습니다. 이어받는 데는 그와 같은 자리에서 이어받아야 되겠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남아져야 되겠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 모든 것을 각오해야 되고 거기에서는 세상 나라도 굿바이(good-bye), 세상 남편도 굿바이(good-bye)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를 따라가야 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지금 그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이제 여러분들에게 '다시 시집가라' 하게 되면 어떻게 하겠어요? 대답해 봐요. '다시 시집가라'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시면 가야 되겠어요, 안 가야 되겠어요? 「가야 됩니다」 '아이구, 그래도 축복을 받았는데…' 그래야 되겠어요, 기분 좋게 가야 되겠어요? 남편들은 기분 나쁠 거라. (웃음) 그렇지만 할 수 없다구요. 만일 남편이 반대하면 데리고 살아야 되겠어요, 안 살아야 되겠어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구요. (웃음) 언제 여러분들이 선생님에게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 있겠어요? 내 말이 농담이 아니라구요. 이런 말을 묻는 데는 다 뜻이 있어서 묻는 거라구요.
남편이 사탄 놀음할 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같이 살지 말고 젖을 먹여서 키워야 된다는 거예요. (웃음) 젖을 먹일 때는 뭐냐 하면 양자라구요. 가인적인 남편입니다. 여러분은 가인적인 남편을 모셔야 됩니다. 가인적인 아내의 입장에서 아벨적인 남편을 모실 수 있게끔 굴복시켜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때가 제일 좋은 때입니다. 가인적인 남편을 때려잡는 데 있어서 제일 좋은 때라는 거예요. 또 갈라져도 무리 없이 갈라질 수 있는 때입니다. 가인 남편 때려잡는 데 제일 좋은 때요, 일생 동안 보기 싫은 주제넘은 가인을 떼어버리는 데 제일 좋은 때라는 거예요. 내가 싫다고 하지 않았으니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이때가 심상치 않은 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처녀가 아기를 낳는 때요,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아기를 낳겠다고 야단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심상치 않은 때라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노정을 통틀어 볼 때에, 오늘날 통일교회 여자들이 나타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심상치 않은 때의 걸음걸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이걸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
다말의 전통, 마리아의 전통을 계승해야 합니다. 여자들은 말할 때마다 생각해야 합니다. 뭐가 어떻고 어떻고 '말이야' 할 때는 '아이고 내가 마리아 될 수 있나' 하고 반성하라구요. 이것이 실감이 나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말이야'를 하루에도 몇 번씩 쓸 것입니다. '글쎄 말이야, 너 말이야, 나 말이야, 저 말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마리아가 되라 이거예요.
우리 한국 민족은 계시 민족입니다. 계시 민족이라서 그렇다는 거예요. 여러분, 전통을 알겠어요? 그러면 이런 전통을 이어받겠다는 사람 손들어 봐요? 손 안 드는 사람 있으면 죽으라는 거예요. (웃음) 똑똑히 알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이게 멋진 말이라구요. 여러분은 양녀가 될래요, 종이 될래요? 한번 물어 봅시다. 이제 멋진 얘기를 해 줄 텐데…. 이렇게 얘기하다가는 끝이 없겠구만요. 밥도 먹어야겠고…. 밥은 조금 늦어도 괜찮지요? 「예」
양녀가 될 거예요, 종이 될 거예요? 양녀가 될 수 있으면 복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주여 양녀이오니 뜻대로 하소서' 그랬어요? 주여 뭐라고 그랬어요? 「종이요」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게 종이라구요. 여기 치고 저기 치고, 남북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이 종이예요. 그렇지 않아요? 종을 칠 때 생각해 보라구요. 남북으로 왔다갔다하고, 동서로 왔다갔다하고, 어디든지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것이 종이예요. 종은 주체성이 없는 거라구요. 그러나 아들딸은 주체성이 있습니다. 그래 종이 되겠어요, 양녀가 되겠어요? 양녀는 '우리 아버지가 이랬는데…'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종이고, 여러분들은? 「양녀요」 여러분들이 마리아 보다 높다는 말이예요? (웃음)
그럼 종에게서 태어난 아기하고 양녀에게서 태어난 아기를 부모가 가만히 볼 때, 어느 쪽이 더 가깝겠어요? 「양녀의 아기요」 기분 좋겠구만. 그러면 여러분들의 마음은 예수님보다 못한 아들을 낳고 싶어하느냐, 나은 아들을 낳고 싶어하느냐? 「나은 아들이요」 옳거니. (웃음) 이렇게 생각할 때에, 예수님보다 못한 아들을 낳아 가지고는 하늘나라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나은 아들을 낳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요, 못 들어가요?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가 있어요? 「낙원이요」 천국 가는 대합실에 가서 기다리지요?
이제 여러분들이 낳은 아들딸들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대합실이 아니라 차표도 마음대로 살 수 있고, 문도 마음대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나은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여자가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왕녀예요, 뭐예요? 그런 왕녀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이름난 왕녀라 하더라도 그는 종(사탄)의 후손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황후예요? 세계의 그 어떤 황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런 왕녀나 황후보다 못한 거예요, 나은 거예요? 예수님보다 나은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여자는 어느 나라의 왕녀고, 어느 나라의 황후입니까? 「천국이요」 천국이 아니라 통일나라의 왕녀예요. (웃음) 통일나라가 없어 가지고 천국이 나올 수 있어요? 통일국의 뭐라구요? 왕녀, 여러분들은 통일국의 왕녀가 되는 거라구요. 왕녀는 공주님이지요? 황제와 황후가 죽으면 누가 그 계대를 이어받아요? 여러분이 그 계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직계는 아니더라도 양녀로서의 계대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만 되면 대를 이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만히 보니까 양자가 상속을 받는 것이 아니라, 누가 받아요? 「양녀요」 종의 입장에서 양자가 되었다고 꺼떡꺼떡해 보았자, 되고 보니 천사장 레벨밖에 안 됐다는 거예요. 남자가 요셉 정도밖에는 안 됐다 그말이예요. 따라서 양자는 먼저 상속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상속을 받느냐? 양녀가 먼저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 신랑 되시는 아들을 낳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있어야 신랑이 태어나지요? 그렇지요? 신랑은 하늘에서 그냥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자기 배안에서부터 기르는 것입니다. 그리니 얼마나 복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자기 복중에서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내가 밥을 먹으면 복중에 있는 주님도 밥을 먹어요, 안 먹어요? 내가 쌀밥을 먹으면 같이 쌀밥을 먹고, 내가 보리밥을 먹으면 같이 보리밥을 먹는 거예요. 또, 내가 죽을 먹으면 같이 죽을 먹는 거예요. 그렇지요? 여자들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불행한 것 같지만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복을 받을 수 있는 대표자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입니다. 양자 역사권내에 있어서 크나큰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양녀입니다. 그 양녀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녀가 될래요, 안 될래요? 양녀가 되려면 앞에서 말한 양자가 아들을 모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중에서부터 고이 모시며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면서 복중에서부터 천국의 사랑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중에 있는 아기를 지긋지긋하게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배를 마음대로 내놓고 다녀도 안 된다는 거예요. 먹는 것도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먹을 때도 기도하고 잘 때도 기도하고 정성들이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이 3년 기간은 어떠한 기간이냐? 예수님을 다시 해산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3년만에 죽었지요? 누구 때문에 죽었어요? 해와 때문에 죽었습니다. 여자 때문에 죽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다시 해산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다시 태어나서 어머니와 모자협조해 가지고 상속을 받아 자기 아들딸들에게 넘겨 줘야 그 아들딸들이 비로소 예수님보다 나은 아들딸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대신한 존재로 세우는 것이 뭐냐 하면, 믿음의 아들딸입니다. 예수님이 결혼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처녀 총각과 같은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천사세계와 같은 입장입니다. 즉, 예수님은 천사장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믿음의 아들딸들을 대신 속죄시켜 가지고 그들이 자기의 아들딸과 하나되어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 아들딸이 먼저 태어나서 상속받았다는 조건을 세워야 아버지 어머니가 구원받을 수 있고 가인 입장인 믿음의 아들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겠지요?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나은 아들딸을 낳아야 되겠다 이거예요. 그러려면 베드로·요한·야고보와 같은 세 제자를 키워 놓아야 합니다.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자기를 위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믿음의 아들을 키워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수에게 맞아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믿음의 아들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아들딸이 있어요? 이 믿음의 아들딸을 누가 낳아야 돼요? 믿음의 아들딸은 여자가 낳아야 됩니다. 이번 기간이 이런 원칙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기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번 3년노정에 있어서 잃어버린 베드로·요한·야고보와 같은 세 제자를 찾아 세워야 되고 그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열두 제자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또한 그들을 중심삼고 70문도, 120문도까지 찾아 세워야 됩니다. 종족을 중심삼고 이 놀음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120명을…. 여러분 열 사람을 묶어서 전도하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여기서 열 사람은 열 지파를 대표한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보면 열 지파는 열두 지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중심한 사도들의 아내격입니다. 그 자리에서 믿음의 아들딸들을 찾아 세워 가지고 예수님의 씨족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의 입장에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 하기 위한 기간이 이번 3년 기간입니다.
다말 때에는 사탄이가 그의 아들을 칠 수 있었습니다. 사탄이가 '네 복중에는 내 아들이 들어 있다'고 참소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다말 때까지는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리아 때에는 다말 때의 그것을 청산짓고 혈통적으로 상속하여 예수를 배었으므로, 복중에서부터 사탄으로부터 분별되었기 때문에,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전통을 이어받은 자리에 선 마리아이기 때문에,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예수를 사탄이 자기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게 되어 있어요, 못 하게 되어 있어요?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못 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만이 복중에서부터 내 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 태어난 것은 역사상에 단 한 분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탕감노정을 통해서 혈통을 교체시킬 수 있는 역사적 터전을 닦아 놓은 분은 이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를 거쳐온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터전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을 이어받아 가지고 비로소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분이 누구라고요? 예수님입니다. 비로소 지구상에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알겠어요?
예수님이 그렇게 태어났으니 종의 세계는 전부 다 예수님 앞에 굴복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앞에 전부 다 굴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굴복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아담도 하나님의 아들이지요? 아담 때에는 굴복할 수 있는 무리가 천사세계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에는 지상세계가 있었어요. 혹이 생겨났다는 거예요. 이것이 왜 생겨났느냐? 하나님과 반대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예수님 앞에 완전히 굴복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그래서 천군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목자들에게 예고했지요? '이는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라'고 온 영계가 동원되어 가지고 예수님 앞에 굴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계만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육계, 즉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가 영계와 보조를 맞추어 가지고 굴복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더라면, 영계와 육계가 통일된 나라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권한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직접 행사하여 사탄세계를 들이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반대하는 것을 들이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굴복할 수 있는 개인과 가정과 종족과 교단과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굴복시키지 못하고 밀려났습니다. 그렇게 밀려난 것이 하나님의 한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다시 찾아 가지고 굴복시키기 위한 놀음을 해야 됩니다. 이건 어제 내가 얘기한 말의 되풀이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영계를 굴복시켜 가지고 지상에서 교회와 나라를 중심삼고 하나되게 해서 세계적인 형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예수님이 나라와 교회 앞에 몰리고 쫓겨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와 교회 앞에 쫓겨 이방나라에 갔다가 다시 상륙하여 몰리고 쫓기면서 지하공작을 하여 세운 교회가 오늘날 통일교회입니다. 이제는 백주에 정체를 드러내도 칼을 들고 찌를 수 없고, 몰아낼 수 없는 대등한 자리에 서서 우리라는 축에 끼어 들 수 있는 입장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구요. 사탄이 보면 어거지예요, 어거지패라구요. 사탄편에서 보게 되면 우리가 악착같고, 지긋지긋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편에서 봐도 사탄이 악착같고, 지긋지긋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편이 더 지긋지긋해야 되겠어요, 사탄편이 더 지긋지긋해야 되겠어요? 하나님편의 아들딸들이 더 지긋지긋지긋지긋지긋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웃음) 지긋지긋이라는 말이 더 길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더 악착같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세상의 어떤 여자들도 하치 못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세상에 열녀가 있느냐? 있다면 그 열녀는 내 꽁무니에 설 것이다. 세상에 여자 충신이 있느냐? 있다면 그 여자 충신은 내 꽁무니에 서야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세상에 남자 충신이 있느냐? 있다면 그는 내 본을 받아야 되는 것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전통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치마를 둘렀을망정 당신들은 내 꽁무니를 따라와야 된다'고 해야 되는 거라구요. 남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천사장이 해와의 궁둥이를 따라가다가 사탄이 되어 버렸지만, 이제 여러분의 남편들은 천국 가는 아내 따라가면 뭐가 됩니까? 그 남편은 천국 가는 것입니다. 반대라는 거예요. 역사의 타락은 해와로 말미암아 시작되어 가지고 해와 궁둥이 따라가는 남편과 자식으로 말미암아 되어졌지만 오늘날 탕감복귀원칙에 의해서 여러분들은 복귀해 올라가는 해와가 되어야 합니다. 해와의 입장인데 타락한 해와의 입장이 아니라 복귀해 올라가는 해와의 입장입니다.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은 천사장겸 남편입니다. 그러니 양자겸 아들과 같은 입장에서 상속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상속 중에 제일 안 되는 상속이 뭐냐? 여러분을 남자들에게 넘겨주는 것, 이 이상의 상속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간에는 남편이 찾아와서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번 기간에 '남편 아무개다 나와라' 한다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 조장님과 의논해 볼 테니 조금 기다리시오' 그래야 돼요. 안 그래야 돼요? 자기 마음대로 하다간 큰일납니다.
조장은 누구냐? 해와 대표자입니다. 이런 종합적인 대표자한테 '나가도 됩니까, 안 됩니까?' 하고 물어 봐야 됩니다. 조장이 '못 나간다'고 하게 되면 '아 우리 조장님이 선포하여 가라사대 당신을 만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돌아가시옵소서' (웃음) 그렇게 해야 됩니다. 이번 기간에는 남자의 주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뭘 해야 하느냐? 어머니 대신 사명을 해야 됩니다. 여자는 해산의 수고를 해야만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통일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떨어져 나가지 않아요. 옛날에 들어온 사람들은 막 떨어져 나갔지만 이제 들어오는 사람들은 떨어지지 않아요. 떨어져 나갈 사이가 없어요. 통일교회를 가만히 보니까 눈을 깜박깜박할 사이에 자꾸 커 가거든요. 그러니 떨어지래도 안 떨어진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아이고, 언제 복귀해 가지고 이겨내나? 아이고, 가면 갈수록 태산준령이고, 죽고 또 죽으래, 죽어도 또 죽으라고 하네. 이래 가지고 뭘 해먹겠나' 하면서 다 도망갔지만 이제는 그런 때가 지나갔어요.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통일교회에서 존경하는 여러분이 해산할 수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아들을 먼저 낳을래요, 딸을 먼저 낳을래요? 「아들이요」 (웃음) 여러분은 딸을 낳으면 안 돼요. 상대적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야 됩니다. 모자협조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아들 중에도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아들을 낳을래요, 못난 사람이 될 수 있는 아들을 낳을래요. 「유명한…」 그 아들의 입장이 무엇이냐? 가인입니다. 가인의 대표가 누구냐 하면 목사입니다, 목사.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목사를 찾아가서 내 젖을 먹고 자라라 해야 돼요. 그렇다고 진짜 젖을 먹이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진리의 젖을 먹여 키우라는 거예요. '내가 비록 이렇더라도 당신을 기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이겁니다. 이렇게 아들 중에서도 목사 아들을 낳으라는 거라구요.
내가 지난번에 조장들에게 얘기했는데, 그 조장들 말을 전해 듣고 목사들 찾아가 봤어요? '아이고, 목사들이 무서운 줄 알았더니 만나 보니 아무것도 아니구만' 하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다는 거예요. 한 번 만나 보고, 두 번 만나 보고, 세 번만 만나 보세요. 길거리에서 목사를 만나게 되면 '목' 하고 '사' 하기 전에 목사가 먼저 인사하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인사를 받는 것입니다. '목─' 하고 '목'을 길게 끌라구요. 그리고 '사' 할 때는 '감사합니다. 사' 하는 거예요. 상대편이 나한테 머리숙인 다음에 인사받는 거라구요. 내가 가르쳐 주고 인사받는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인사를 하되 그렇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보다 목사가 낮아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러한 자식을 두어야만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볼 때에, 마리아가 누구를 낳았습니까?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지요?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아 가지고 정성껏 키워야 되는 것입니다. 정성껏 키워야 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했을 때, 얼마나 고귀했을까요? 그런데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아기가 사생아입니까? 사생아 반대말이 무엇인가? 이 목사, 사생아의 반대가 뭐예요? 사생아 반대말은 없지요? 사생아지요? 그러니 복중에서 아기가 크면 클수록 마리아는 걱정이 컸겠어요, 걱정이 없었겠어요? 걱정이 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계 인류를 대표한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여 복중에서 키우면서 걱정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를 품어 가지고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자리에서 해산을 해야 됩니다. 마리아가 복중의 아기가 크면 클수록 걱정이 컸던 것처럼 그렇게 걱정을 품고 가야 할 길이 이번 3년 전도기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전도는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 걱정, 또 걱정을 해야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해산의 수고를 대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움직여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예수님이 복중에서 자라는 것은 세계 인류를 대표한 아들로서 가인을 굴복시키기 위한 입장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예수님과 같은 아들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아들이 가인을 만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인 내가 가인을 잘 교육시켜 가지고 가인으로 하여금 내 아들을 아벨로서 모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어머니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열매가 가인이 되었지요? 그렇지요? 죄는 어머니가 짓고 결실은 가인으로 맺었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죄의 근원이 되는 어머니로서 죄의 결실이 되는 가인을 올바로 지도해 가지고 여러분의 아들딸이 가는 데에 상충이 없게끔 해야 됩니다. 그런 자연적인 복귀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이번 3년 행각의 노정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야말로 어려운 노정을 가야 됩니다. 가인을 교육시켜야 됩니다.
정성들여서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되느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예수님의 제자 같은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갔던 세 제자들보다도 나은 믿음의 세 아들딸을 키워 놓아야 됩니다. 남편을 쫓아낸 해와로서 위신을 세울 수 없는 입장에 선 해와이지만, 신랑 되신 예수님을 반대하던 그 제자들보다도 훌륭한 믿음의 아들딸들을 키워 놓음으로써 그들이 '당신이 나보다 훌륭합니다' 해야만 쫓겨 갔던 남편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번 전도 기간이 그런 것을 결정짓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번에 나가서 악착같이 해 가지고 그런 세 아들딸을 기성교인들, 즉 유대교인들 가운데서 찾아야 되는 거예요. 이것은 선생님이 해야 할 것을 여러분이 대신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기성교회를 중심삼고 잘 믿는 사람들을 굴복시켜 가지고 베드로·요한·야고보 이상 될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믿음의 아들딸을 교육시켜 놓음으로써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그들에게 위함을 받게 될 때, 비로소 아담이 하늘나라의 3대 천사장 앞에 완전히 모심을 받는 평면적인 지상의 가정 기반이 설정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을 때 세 천사장이 하나되어 가지고 아담 짓는 것을 협조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 앞에 복귀된 세 아들딸이 합하여 가지고 여러분의 몸을 통해 태어나는 아담과 같은 입장의 아들딸을 정성껏 모실 수 있는, 타락한 천사가 아닌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의 사명을 이 지상에서 완결해야 됩니다. 그 기반 위에 선 아들로서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만 하늘나라의 아들이요,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는 아들로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관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슬펐던 예수와 우리', 간단히 얘기하자구요.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누구를 서럽게 만들었느냐? 해와를 서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를 고생시키면서 태어난 분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서는 얼마나 심려했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불러 오는 배를 마음대로 남편에게 보일 수 있게 되어 있어요? 마음대로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이렇게 예수님은 그 누구도 모르는 자리에서 어머니를 심려시킨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태어나 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어머니를 기쁘게 했어요? 나중에는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했지요. 이렇게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고서도 슬픔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영광의 자리에서 맞이하지 못하고 비참한 자리에서 맞았습니다. 그 눈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비참한 끝을 봤던 것입니다. 그것이 마리아의 입장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비참한 자리에 서 보라구요.
그러면 왜 그런 비참한 자리에 서게 됐느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교단이 없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는 가정이 없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룰 수 있는 남자가 없었고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렇지요? 우리 앞에 나라는 없지만, 통일교단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마리아의 입장과 다르다는 거예요. 마리아는 교단도 없고, 나라도 없고, 친척도 없는 고독단신이었지만 여러분은 통일교단이 있어 가지고 앞으로 나라를 상속받고, 나라를 통일시킬 수 있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입장이냐? 마리아와 같지 않습니다. 마리아 이상의 자리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통일교단이 있다는 거예요. 유대 나라로 말하면 유대교회를 찾은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유대교단과 하나되고, 요셉 가정과 하나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 요셉의 입장을 대신한 사람이 누구냐? 여러분의 남편입니다.
여러분들이 마리아의 한을 해원성사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고독단신으로 예수님을 낳아 가지고 슬픈 결과로서 예수님을 보냈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탕감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마리아와 다른 입장에서 마음대로 경배할 수 있는 통일교단을 가졌고 마음대로 뜻을 세워 나갈 수 있는 요셉과 같은 남편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지긋지긋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마리아와는 다르다구요. 또 요셉의 친척과 다른 친척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염려해 주는 교회가 있고, 친척이 있고, 남편이 있고 아들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전체가 환영하는 가운데서, 하늘땅이 굽어보는 가운데서 예수님이 태어나지 못했던 것을 해원성사해 주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서 예수님을 대신한 아들딸을 낳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태어났던 예수님, 슬프게 살았던 예수님, 슬프게 죽었던 예수님을 여러분들이 해원성사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기를 낳을 때 아버지가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기가 태어난 것을 백방으로 받아들여 환영할 수 있고, 백방으로 행복하게 키워서, 하나님의 영광의 터전 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백성으로 바쳐 드릴 수 있는 입장에 선 것이 축복받은 가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은 누구의 아들딸을 낳느냐 하면, 여러분의 남편 아들딸을 낳는 것이 아니라구요. 하나님의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참부모님을 중심삼고 혈통적인 인연이 연결된 아들딸을 낳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딸을 자유로운 환경에서 고이 길러야 되는 것입니다. 낳자마자 죽음길에서 신음하는 것이 아니라, 낳자마자 수난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축복가정의 아들딸로서….
그런데 지금 어머니가 임지에 나가 있어서 아기들이 비참한 것 같지요? 그것은 아빠 엄마가 책임 못 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나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 못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남편들은 천사장들이기 때문에 하나 못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하나되어야 됩니다. 여자들은 더 어렵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되는 운동을 누구에서부터 해야 하느냐? 여자들에서부터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자 열 사람이 임지에서 같이 살면서 서로 싸우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것이 틀어지는 날에는 아무리 전도를 해도 전도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가 되나 안 되나 두고 보라구요. 그러므로 열 사람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늘을 위하여 정성들이고 선생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열 몸이지만 하나의 어머니의 터전을 갖추어 동서남북 사방의 틀을 갖추어 가지고 행동하면서 나가면 여러분들이 가는 길은 평탄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교회장, 혹은 지역장이나 지구장들 앞에 새로운 전통적 사상을 불어넣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남편들은 어떤 입장이 되느냐? 까딱 잘못하다가는 심정의 감소감을 재현시킬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자들이 3년 전도 나가는 데 있어서 선생님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여러분이 이런 생각에 부딪치기 쉬운 환경에 처해 있느니만큼 철석같은 신념을 가지고 남편을 재교육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남편을 따라갔다는 거예요. 그랬어요, 안 그랬어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 따라갔어요, 뜻을 따라갔어요? 대답해 보라구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남편 따라갔다는 거예요. 뜻보다도 남편을 위주해서 살아왔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뜻 때문에 남편을 만났으니 뜻을 부정하는 남편은 교육시켜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남편을 따라 나온 입장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다가는 선생님의 가정과 동떨어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여러분의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거라구요. 한 고개 넘어가고, 두 고개 넘어가고 세 고개 넘어가게 되면 영영 갈라지는 거예요. 선생님 가정을 못 따라온다는 거예요. 내가 축복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남편을 위주한 여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주한 여인을 만들어야 살겠기 때문에 선생님을 중심삼아서 일제히 동원하라고 명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방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마련한 것이 이번 전도기간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돼요? 선생님 말을 들어야 돼요, 남편의 말을 들어야 돼요?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은 이것을 좋아하지 않지요? 찌뿌둥해 할 것입니다. 그런 때일수록 여러분이 힘을 내 가지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남편을 올바로 지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해와의 입장에서 천사장인 남편을 잘 이끌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갖고 그래야 되느냐? 남편이 어떻다고 하면 안 돌아보지만 아기가 어떻고 어떻고 하게 되면 돌아봅니다. 그러니 보고 싶으면 아기를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아기를 찾아가면 둘 다 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기가 무슨 아기요, 아버지가 문제지' 하고 쳐야 합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으로부터 새로운 전통을 이어받은, 뜻을 위주한 가정의 기원이 공고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3년노정이 끝난 다음에는 남편들을 동원해 3년 동안 전도하게 하면 좋겠다 하는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여러분들이 3년 동안 이런 전통을 틀림없이 세워 가정을 혁명해야 할 텐데 남편이 책임을 못 했을 때는 남편도 3년노정을 통해 고생을 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때는 여러분들이 아들딸을 기르면서 남편의 신세 안 지고도 홀로 살 수 있겠어요? 그때 여러분이 굶는다면 선생님이 돈을 대줄 것입니다. (웃음)
그런데 요즘에 남편들이 굶는다는 소리를 들어도 안 대줄 것입니다. 지금 고빗길에 왔다는 거라구요. 작년부터 고빗길이라구요. 여기 지역장들 손들어 봐요. 고빗길에 들어서 봐라, 이 사내 자식들. 배고파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을 했어요. 여러분도 결심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월급을 몇 개월만 주기로 했는데 지금 약속대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때는 전부 다 잘라야 됩니다. 그것도 알아 두라구요.
우리 교회의 조직으로 보게 되면 지역장 지구장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지역장 지구장들이 뭐라구요? 「제사장이요」 전도대원들은 올바른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은 누가 되느냐? 레위 족속이 되어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 중에 다른 지파들은 전부 다 분깃을 탔지만 레위 족속은 분깃을 탔어요? 못 탔습니다. 왜 못 탔습니까? 제사장은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뭐라구요? 「제물입니다」 제물은 뭐냐 하면 희생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희생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뭘 줄 수 있겠습니까? 피를 팔아서 먹고 사는 거라구요. 눈물과 피땀을 흘리고 그 대가를 받아서 먹고 사는 레위 족속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제물은 소유권이 없는 것입니다. 제물이 소유권이 있어요? '나는 아무개 아들이요. 나는 아무개집 주인의 소새끼요' 하고 합니까? 제물은 공동소유입니다. 소유권이 없는 거라구요. 소유관념이 없습니다. 그저 주인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해야 됩니다. 자기라는 소유관념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존재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기분 나쁜데…' 하면서 자기를 주장했다간, 존재의식을 가졌다간 하늘의 반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뜻을 이룬 것은 소유관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하고 생각했다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법이 어디 있소?' 하고 반대했을 것입니다. 또, 존재의식을 가졌다면 '나는 안 죽겠소' 하고 반항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훌륭한 것은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입니다. 불평 한마디 안 하고 꺼벅꺼벅 죽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그를 잡아 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지역장 지구장들도 꺼벅꺼벅 앉아 가지고 굶어야 됩니다. (웃음) 눈이 빠끔해지고, 볼이 여위고, 기운이 없어 비틀비틀하면서 쓰러져 죽어 보라는 겁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더라도 불평이 없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모두가 머리를 숙인다는 거예요. 만약 그렇게 했는데도 망했다면 기독교 역사, 하나님의 복귀섭리역사는 몽땅 깨져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감옥에 들어가고 사지에 가서도 가만히 있었던 거라구요. 더 못 죽어서 한이라는 거예요. '내가 죽지 않았으니 산 책임을 해야 되는구나' 하고 꺼벅하고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식이 없다는 거예요. 소유의식이 없는 거라구요. '나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아들을 이렇게 고생시키는 법이 어디 있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구장, 지역장 부인들은 똑똑히 알라구요. 알겠어요?
레위 족속에게는 분깃이 없었습니다. '월급이 2만 5천원이야. 3만원이야. 5만원이야…. 나 월급 받아야 돼' 이런 생각을 하는 목회자 그 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는 끝에 가서 사탄의 제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돈이 있어 가지고 쓰고 남는다 해도 여러분에게 월급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 아버지한테 월급받게 되어 있어요, 드리게 되어 있어요? 제물은 아버지 앞에 받게 되어 있어요, 드리게 되어 있어요?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똑똑히 알아야 돼요. 여러분의 신랑들이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망하는 거라구요. 공장 직원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월급을 주더라도 교회 책임자에게 월급을 안 주는 것은 이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전부 다 망하더라도 천도를 따라 세 사람이라도 남아서 이것만 지키게 되면 통일교인은 망하더라도 통일교회는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떨어져 나가더라도 안 망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본부에서 보내 주는 돈을 가지고 교회를 짓는 것도 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 미국을 보라구요. 미국이 오늘날 이처럼 부국이 된 원인이 뭐냐 하면, 자기들에게 돈이 생기면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입을 것을 입지 않고, 자기 살 집을 짓지 않고 먼저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는 교육기관을 짓고, 그 다음에 자기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그 사상을 알기에, 또 그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먼저 교회를 지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금년에 집을 사려고 몇천만 원 마련해 둔 돈도 교회를 위해서 여의도 본부 건설을 위해서 다 투입한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학교를 짓기 위해서, 미래의 후손을 위해서…. 현재는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는 민족은 망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뜻을 원하는 것이요, 미래를 원하는 것입니다. 미래는 후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복귀하기 위해서 현재를 희생시키는 것이 탕감복귀섭리역사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책임을 짊어진 자로서 뜻만을 위하고 후대만을 위해야 됩니다. 자기가 뜻 때문에 희생하고 후대 때문에 희생하며 가는 사람은 굶지 않습니다. 밥을 안 굶는다는 거라구요. 밥 굶나 보세요. 그저 굶어 죽을 것 같은데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해서 그것을 피해 간다는 거라구요. 의심 나면 여러분이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죽을 길을 가는 데도 안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내려가는 것 같은데 안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면 내려가지만 하나님을 위하면 올라간다는 거예요. 그저 꼬불꼬불하면서 올라가요. 이것이 열두 고개입니다.
아리랑 고개가 몇 고개입니까? 열두 고개라구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낭군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갖고 '어떤 어려운 길이라도 참고 간다. 배고픔도 참고 눈물길도 참으며 넘어가고 또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죽고 없어져도 당신의 소원의 터전 위에서, 승리를 찬양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칭찬할 수 있는 하나의 신랑 신부로 만납시다' 하며 아리랑 고개 열두 고개를 넘어가서 만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리랑 고개를 열두 고개라고 하지요? 그 아리랑 고개는 복귀 고개입니다, 복귀 고개. 한국 민요를 보면, 한국 백성은 참으로 계시적인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열두 고개라는 말이 나왔느냐? 복귀노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사장의 책임은 제물이 되는 것이요, 제물된 자는 존재의식과 소유관념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돈이 조금 생기게 되면 '이 돈으로 내게 필요한 것을 사야 되겠다. 내게 거울이 없으니 좋은 거울을 하나 사야 되겠다. 블라우스가 입고 싶다. 원피스가 입고 싶다. 저 투피스를 한번 사 입었으면 좋겠다' 하는 이런 시시한 생각을 하고 있는 여편네들은 다 없어지라는 거예요. '내가 그런 것을 입기 전에 이 백성을 그렇게 입혀야 되겠다. 내가 좋기 전에 나라가 좋아야 되고 세계가 좋아야 되겠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할 것이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먹는 것보다 이 나라를 먹여야 되고, 내가 잘사는 것보다도 이 나라를 잘살게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여 이 고개를 넘어가서 이스라엘 주권을 가지면 제사장은 무엇이 되느냐? 그때까지 제사장으로서 만민을 대표해서 희생을 했고, 만민이 그 앞에 머리 숙이는, 제사장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와서 새로운 주권을 갖게 될 때는 주권을 대행하는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주님이 역사를 통해서 수난길을 참고 걸어온 전통을 제사장의 입장에서 이어받기 위해서는 죽음의 길도, 배고픔의 길도, 혹은 어려운 길, 쫓기는 길도 극복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이 걸어야 할 걸음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 남자들 가운데 그냥 흘러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여기 있는 여자들을 '망하면 망했지 그런 남자는 안 따라갈 것이다' 하도록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선생님의 소원이예요. 반대하고, 지척거리고, 사상이 옳지 못한 남편을 따라가게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남자이거든 올바로 지도하여 굴복시킬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남자에게 보조를 맞춰 꺼떡거리게 되면 둘 다 망합니다. 또 태어나는 아들딸까지도 망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망하더라도 자식들이 망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꺼떡거리는 남편 바람에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탕진하는 남편이거든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사내가 그게 뭐요? 나같이 가냘픈 여자도 당당코 이 일을 극복해 나가는데 사내인 당신은 왜 그렇게 못났소' 하고 공격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이 부패한 것은 지도자가 국민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데도 그 환경적인 모든 것을 자기의 무대로 삼아 가지고 자기의 환경을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가지고 부패의 괴수들이 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민족의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역사적인 것을 뿌리 빼려고 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전통을 단단히 심어 놓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예」
제사장들은 월급을 받고 하늘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월급을 받아 가지고 사는 게 아닙니다. '내 생활이 얼마나 궁핍한데…. 받아야 되겠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의 대가를 받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피 흘리는 데는 모두가 머리를 숙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눈물을 흘리지 않고 희생을 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는 제사장은 썩은 제사장입니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딸이 언젠가는 전부 다 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걸 알아야 돼요. 알겠어요? 「예」 지역장 부인들 손들어 봐요. 이런 것을 단단히 알아야 되겠어요. 지역장, 지구장, 부장들도 단단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월급을 받게 된다면 선생님부터 월급을 주고 그 다음에 받아야 되는 거예요. 순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요」 원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언제 선생님에게 월급을 갖다 주어 봤어요? 여러분이 십일조를 바쳐야 되는 거라구요. 그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시점에 와 있기 때문에 지금 때는 까딱 잘못하게 되면 남자들이 바람들기 쉬운 때입니다. 남자들이 바람들기 쉬운 때라구요. 자기 멋대로 뜻을 중심삼고 생각하다가는 큰일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그런 남자를 굴복시켜 가지고 끌고 가겠다는 자각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래야, 마리아의 입장에서 한을 품던 요셉의 입장을 피해 넘어갈 수 있는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한이 무엇이었느냐? 죽음길에서도 어머니를 사도 요한에게 맡기면서 자기 어머니와 같이, 또 아들과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겨 준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어머니 대해서 미안하다는 거라구요. 자신을 잉태하고부터 태어나 죽음길을 가는 순간까지도 눈물을 자아내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어머니의 신세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머니 앞에 사도 요한을 후계자로 세워 가지고 아들 대신자로서 사랑해 달라고 부탁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입장에서 아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자녀들이 사생아와 같은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늘의 자녀로서 자랄 수 있는, 아빠도 하늘의 아빠요, 엄마도 하늘의 엄마로서 축복받을 수 있는 완전한 터전의 가정을 이제부터 여러분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들어지게 될 때에는 비로소 지파를 편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파를 편성하려면 나라와 손을 잡아야 되고, 우리 교회와 기성교회가 손을 잡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어떤 놀음이라도 해서 그것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어서 기필코 그것을 맞추어 내실 것입니다. 이것이 뜻을 중심삼은 선생님의 생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슬펐던 예수의 한,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만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슬펐던 예수님과 마리아와 같이 한을 남기는 여러분이 되지 말고, 기쁜 어머니의 입장과 기쁜 아들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모진 시련과 모진 고통을 국가와 민족을 대신해서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더 책임을 지고 탕감함으로써 남편과 후손 앞에 수난길이 없게끔 노력해 주기를 부탁하면서, '슬픈 예수와 우리'라는 내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역사노정을 더듬어 보면 예수는 그 누구도 모르는 슬픔의 그늘에서 수난의 노정을 더듬어 왔고, 이 땅 위에 광명한 햇빛을 보게 하기 위해서 아버님이 4천년 동안 준비하신 유대교와 이스라엘 민족이 그늘 아래에 있는 예수를 도와주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더더욱 그늘 아래로 밀리고 찌그러졌던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원통하고 또 원통하옵니다.
아버지여, 오늘 불쌍한 예수의 사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전부 말하지 못했사오나 마리아와 예수님과 요셉의 삼각관계에서 맺어진 비통한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여기 모인 아내들을 중심삼은 그 가정에서 남편과 이제 태어날 아들이 하늘의 서러운 조건을 남기는 자리에 부디부디 서지 않게끔 어머니로서 전통을 세우고, 아들이 가야 할 길을 완전히 닦아 가지고 바쳐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숙원이었던 가정적인 탕감의 기준을 넘고도 남을 수 있는 역사적인 사명을 다하는 부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전체 행사 위에 당신의 거룩하심과 승리의 손길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일에 빚진 자가 되지 말고 빚을 지우는 자가 되고, 과거의 빚을 청산하고 현재의 빚을 전부 다 도맡을 수 있는 딸들이 되게 하시옵고, 연약한 여자의 몸이지만 이 역사적인 와중에 선 개체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고, 한마디의 말이나 행동에도 아버지의 뜻과 일체 어긋남이 없게끔 정성에 정성을 다하여, 역사적인 그 어떤 여성에게도 지지 않는 자리에서 오히려 그들을 가르치고 명령할 수 있는 하늘의 왕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최후의 한날이 저희들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저희들은 단장을 갖추어 당신이 찾아오신 복된 세계 앞에 자기 자세를 나타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어 만민이 머리 숙여 실체를 놓고 영광을 찬양할 수 있어야만, 실체적인 복귀완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의 손발과 그의 자세는 모진 고역의 노정을 참고, 희생의 대가를 치른 후 승리의 표적으로서 남을 수 있는 여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통일교단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이 나라를 아버지 앞에 세워야 되겠고, 이 백성을 아버지 품에 품기게 해야 되겠사옵니다. 기성교회에 결정타를 주어 굴복시킬 수 있는 어머니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옵고, 어머니는 가인 아벨을 하나 만드는 데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딸들이 되게 하시옵고, 한때밖에 없는 역사적인 이 시대에 저희들이 이 사명을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놀라운 승리적 발판을 닦는 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이하는 녹음이 안 되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