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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인생길 Ⅱ

일시: 1973.09.10 (월) 장소: 미국 로키산맥산장

참된 인생길(Ⅱ)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은 하고 있지만 벙어리와 같은 입장이요, 여러분은 듣는 귀를 갖고 있지만 귀머거리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관계를 연결시켜 주는 통역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아시고 많이 협조하고 성원해 주기 바랍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이름난 로키산맥 산장에서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또, 여러분이 여러 가지 고역을 당하면서도 40일 동안 지내 준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지도요원들이 여러분 앞에 책임을 잘 못해 가지고 부족함이 많은 줄 알고 있는데 그 부족함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으니, 오늘 저녁 그 부족함을 사죄함과 동시에 여러분의 관용이 있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대관절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혹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왔다고 봅니다. 여기에 나타난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웃음. 박수)

여러분 이렇게 만난 것이 우연한 기회가 아니라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더우기 영국에서 이름난 학교에 다니고 오래지 않아 영국을 책임질 사명을 짊어진 지성인들과, 일본에 있어서 일본의 장래를 책임질 지성인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 미스터 문을 중심삼은 통일교회가 개입되어서 만났다는 것은 보다 이상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모이게 된 것도 여기 이 사람이 문제가 되어 가지고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신 손님을 한번 만나 보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된 사람만이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자,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저녁에 하고자 하는 말씀을 해봅시다. 오늘 저녁에 말씀드리려는 말씀의 제목은 '참된 인생길'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한번 얘기해 보자구요. 이것은 방대한 문제입니다. 현재의 철학이 동원되고 혹은 과학이 동원되고 모든 종교가 동원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아진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 이런 문제를 내걸 때 '하-,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어디 얘기해 보자구요.

모든 과학이나 철학이나 종교는 무엇 때문에 생겨났느냐 하면 인간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인간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모든 사상도 세계적인 문제가 되어 있지만, 이 문제도 결국은 인간에게 귀결되는 문제로서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문제가 어떠한 인간으로 말미암아 해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이 아니고는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특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참과 거짓이 있다면 그야말로 참 중의 참이 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 참된 사람은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으로 당대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참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힘만 가지고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지식을 가진 사람이 참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지식만 가지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 가지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그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이라고 찾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추구하게 될 때에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을 봤지만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참된 사랑 참된 생명 참된 희망을 가진 사람이 참된 사람

그럼 여기에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하는 것을 추려 봅시다. 인간이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선한 것과 통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공통적인 입장에서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 누구 대답해 보라구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럼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오늘날 우리가 인간 세계에서 흔히 보고 있는 사랑이냐? 아닙니다. 참된 사랑, 참된 사랑이 문제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랑은 영원한 것, 참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유일하다고 주장합니다. 단 하나의 내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이 불변과 유일과 영원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여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 명사는 참된 사랑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그렇습니다」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물론이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라는 대답은 정답이요, 당연한 대답인 것입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을 봤느냐, 만났느냐, 찾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때, 그렇지 못합니다. 역사시대를 거쳐오면서 그러한 사랑을 찾고 있는데 왜 못 찾았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대체 그런 것이 있느냐, 가망성이 있는 것이냐, 가망성이 없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것이 없다고 한다면, 이 사랑이 없다고 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암흑 같고 얼마나 사막 같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만일 없다 하더라도 가상적으로 만들어 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 참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있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좋겠어요?「있으면 좋겠습니다」 다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는 것을 부정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냐? 이것을 추려 봐야 참된 인간이 가야 할 길, 참된 인간이 그리워하는 길, 참된 인간이 찾아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음은 무엇이 되겠느냐?「생명입니다」맞습니다. 참된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명이 참된 생명이냐고 묻게 될 때, '아 나는 영국을 대표하고 일본을 대표했기 때문에 참된 생명을 갖고 있고 말고'라고 대답할 자신 있습니까? 대답할 자신 있어요? 없습니다.

참된 생명이 어디 있느냐? 있느냐, 없느냐? 그저 밥이나 먹고 살고, 그저 이렇게 이렇게 살고, 그저 학교나 다니고 사회생활이나 하고 이런 것이 참된 인생살이라고, 참된 생명을 가진 사람의 생활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구요.

생명을 가진 사람 가운데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느냐 할 때에,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폭탄이 옆에 꽝꽝 떨어지면, 아이고 나 죽고 싶으니까 들어가 죽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도망가다 죽으면 죽었지 도망간다는 거예요. (웃음) '나는 지성인이니까, 나는 권력이 있으니까. 나는 돈이 있으니까…' 그거 안통한다구요. 도망가게 마련이라구요.

그걸 보면 우리 인간은 생명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태어나서 빵긋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생명이 단 하나의 생명으로서 불가침권을 가지고 불변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그런 생명이 인간에게 있느냐,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생명이 참된 생명이라면 여기에 영원이요 불변이요 유일하다는 말을 갖다 붙여도 그것은 섭섭하지 않다구요.

자, 여러분 현재 살고 있는 이 생활이 과연 인류가 요구하고, 역사가 요구하고, 도의 길을 가는 종교인들이 원하는 그런 참된 생명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지 못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치 있는 생명을 중심삼은 가치 있는 인생관, 가치 있는 세계관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 이렇게 살다가 오늘 이렇게 변하는 생활과 변할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서 꾸준히 진행해 갈 수 있는 생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겠느냐? 전부 다 추려 봅시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겠어요? 여러분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한번 들고 나와 봐요. 무엇이겠어요? 그건 희망인 것입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참된 진리를 통해서 희망의 길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대신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미래를 대신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묻게 될 때 대답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은 사상을 존중시하고 하나의 평화의 세계, 희망의 세계를 만들자고 하는 세계적 종말시대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참된 사랑, 참된 생명, 참된 희망을 따로따로 찾아야 되겠느냐, 한꺼번에 찾을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이다 하는 것은 혼자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인간들이 상관관계를 가지고 참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느냐? 인간은 어디까지나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결과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원인을 떠나 가지고 참이 있을 수 있느냐? 없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라는 문제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하나님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느냐?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하고, 우리 인간이 최고의 희망으로 찾고 있는 참된 자리하고는 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대관절 그 하나님은 인간 대해서 좋아하시는게 무엇이겠는가? 따져 묻게 될 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게 무엇이예요? 지식이예요, 지식? 돈이예요, 돈?「아니오」권력이예요. 권력?「아닙니다」무엇이겠어요? 하나님도 할수없이 참된 사랑을 찾으실 것입니다. 이 답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가진 사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필요로 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주체로 계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희망과 소망의 중심체로 계시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불변하고 유일한 분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계시는 것 외에는 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원하실 것이 없다는 거라구요.

하나님과 인간이 합해야 참된 사랑과 생명과 희망의 세계가 전개돼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은 언제 나타나느냐는 겁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다면 하나님은 그 인간을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지어야 되고, 영원한 생명의 대상으로 지어야 되고, 영원한 희망의 대상으로 지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크냐 하면, 하나님도 자기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더라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한다구요. 하나님 속에 있는 제일 귀한 게 무엇이냐 할 때, 하나님도 '영원한 사랑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희망이다' 그 외에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세계적 문제, 인간의 참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을 가진 하나님과 사람, 둘이서 해야 합니다. 둘이 해결짓는 데서만이 참된 사랑의 세계가 나올 수 있고, 참된 생명의 세계가 나올 수 있고, 참된 희망의 세계가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는 이렇게 가고 하나는 이렇게 가고,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가고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렇게 가면 이렇게 따라가고, 올라가면 따라서 올라가고, 언제나 같이 행동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된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 그건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지금까지 할 것은 다 해봤다구요. 따라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주체를 인간세계에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 아니고는 안 된다구요.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만일 그런 하나님이 계시다면, 절망 중에 있는 청년들은 그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다시 희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또한 그런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염려하는 이상 염려하실 것이 아닌가.

그러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어느 한 때라도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한 역사적 타이틀을 내건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메시아사상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 가운데 메시아사상은 인간들이 요구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이걸 볼 때, 하나님이 있을 성싶다는 것을 우리는 지레 인정할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인간은 부자의 관계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으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요? 친구?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위?(웃음) 무엇을 원해요? 제일 높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아, 나는 사위도 싫고 며느리도 싫어. 나는 그분의 아들이 되고 싶다'고 할 것입니다. 그건 여러분이 나보다 더 잘 안다구요. 틀림없는 대답이예요.

그러면 왜 아들이 되려고 하느냐? 왜 아들이 제일 좋으냐?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거라구요. 여러분들에게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 부모가 여러 분을 낳았습니다. 그럼 그 부모와 나와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문제를 따지고 볼 때 제일 가까운 자리, 부자관계인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은 부모의 사랑과 생명이 집중된 자리, 부모의 희망을 대신한 자리에서 태어 났다는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출발했다는 거예요. 이게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게 위대한 거라구요.

내가 없으면 부모의 사랑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의 사랑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고, 부모의 생명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고, 부모의 희망이 나와 더불어 상관되어 있습니다. 나는 부모의 사랑의 결실체요, 생명의 결실체요, 희망의 결실체로 등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자리가 가치 있는 자리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잖아요?「그렇습니다」

같이 출발했다는 사실, 그와 나와 한자리에서 같이 출발했다는 사실, 같다는 사실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 사랑은 내 사랑이요, 그 생명은 내 생명이요, 그 희망은 내 희망으로 결정지을 수 있다는, 결정적인 결론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바라보게 될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내 사랑의 실체요, 이는 내 생명의 실체요. 이는 내 희망의 실체라는 것을 부모는 느끼고 깨닫고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은 하루만 안 봐도 보고 싶고, 금방 봤어도 또 보고 싶고 그런 거라구요. 그건 암만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입니다. 없으면 죽을 것 같고 거기에는 모든 희망이 달려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오늘날 타락한 인간,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을 갖지 못한 인간세계에 태어난 부모나마도 이와 같은 사랑을 중심삼고 자식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겁니다. 이렇게 생명과 내일의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부모가 있다 할진대, 그런 부모의 주체 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랑과 생명과 희망을 가지고 바라봤겠느냐.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세포가 폭발될 수 있는 자극을 받을지도 모른다구요. 웃었으면 얼마나 웃었겠느냐? 형용할 수 없어…. 춤을 추었으면 얼마나 추었겠느냐? 그런 자리까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손을 붙잡는 것으로 생명력이 발동을 하고 희망이 연결될 거라구요. 틀림없이 인간은 그런 자리까지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없다면 모르지만, 있다면 거기에 대해 한번 투기적인 생활을 해보고 싶은 거라구요. 사실 그런 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구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을 지었는데 무슨 존재로 지었느냐 하면 사랑의 대상이요, 생명의 대상이요, 희망의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이 놀라운, 위대한 가치를 인간은 다시 회복해야 되겠어요. 그러면 아들의 특권은 무엇이냐? 그분은 내 것, 그분이 갖고 있는 것이 내것인 동시에 그분의 사랑까지도 내 것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생명까지도 희망까지도….

생명을 가지고 가면 하나님이 끌려오고, 사랑을 하게 되면 하나님이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끌려오고, 하나님의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가는 데로 하나님이 가고…. 이 놀라운 인간 본연의 가치가 있을 성싶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추구해 봐도 타당한 결론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희망이란 말은 혼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도 혼자 독단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입장에서 나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을 위해 생명과 사랑과 희망을 투입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왜 인간을 지었느냐? 상대가 없는 하나님으로서는 자극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를 만들어 가지고 이 이상의 사랑과 생명과 희망의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그 이상 멋진 결론은 없습니다.

하나님 자체를 놓고 볼 때, 성경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인간을 지을 때 '야! 사람아 나타나라' 해 가지고 그렇게 간단하게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과 사랑과 희망을 걸어 가지고 인간을 지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투입이라는 말, 무조건 투입이라는 말, 전체 투입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손해나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손해나는 곳을 찾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창조란 자기 힘의 투입이요, 사랑의 투입이요, 생명의 투입이요, 희망의 투입입니다. 자기 자체의 소모를 말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을 했느냐는 겁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참된 사랑을 이루기 위한 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상대에게 백 퍼센트 투입했습니다. 투입하는 과정은 하나님의 자체의 소모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투입했다 하는 날에는 문제가 됩니다. 백퍼센트 투입을 해 가지고 완성하는 날에는 백만큼 투입한 것은, 백만큼 완성해 가지고 거기에 상대적인 사랑이 플러스되어 하나님에게로 돌아온다는 거예요. 여기에 상대적인 사랑의 권한이, 상대적인 특권의 가치가, 자기가 투입한 모든 내용이 플러스되어 가지고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비로소 자극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거예요.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해서 전체를 투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 있겠다는, 상대를 위한 하나님의 자리에 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겠다고 하면 그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를 전부 다 자식한테 투입해 가지고 그 자식과 더불어 있겠다고 하는 데서 사랑이, 생명이,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냐 이겁니다.

결국 참된 하나님,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을 가진 그분이 맨 처음 인간에게 주고 싶어하는 것은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인 것입니다. 그것을 주는데 자기 입장에서 준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 들어가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 입장, 그로 말미암아 있기 위해서 주었다는 거라구요.

상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입하는 사람이 참된 사람

여러분, 완전한 사랑이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이 있는데 이것을 이만큼 남겨 놓고 사랑했다면 그건 완전한 사랑이 못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은 너를 위해서 가진 것이요. 내가 영원한 사랑의 주체인 것은 너를 위한 것이요, 내가 영원한 소망의 주체인 것은 너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전부를 네게 주겠다' 하게 될 때 여기서부터 참된 사랑이 발원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원칙이 있기 때문에 나를 주장하는 데는 참된 사랑이 성립 안 되는 것입니다.

친구 중에는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나를 만나면 나한테 주려고 하는 친구입니다. 진짜 좋은 친구라면 자기 사랑을, 자기 생명을, 자기 희망을 다 줍니다. 그런 친구가 진짜 좋은 친구인 것입니다. 결국 좋은 친구는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만을 위해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녀가 많이 모여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 다음에 이상적인 상대를 만나기를 꿈꿀 것입니다. 남자 대해 묻기를 '여보! 당신은 여자 가운데 자기 주장하는 여자를 얻겠소, 남자를 위해서 주장해 주는 여자를 얻겠소?' 할 때, 대답하기를 '남자를 위해 주장해 주는 여자를 얻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자도 남편 대해 그렇다구요. 나를 위해 주는 남편을 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참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참이 어디에 있느냐, 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자기를 위해서 가졌다고 하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생명을 가졌으면 나만의 생명이 아니라 종지되는 생명, 뻗어나가는 생명, 남을 위하는 생명이어야 됩니다. 참된 희망을 가졌으면 남을 위하고 전체 앞에 미쳐질 수 있는 희망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원칙에서 참된 사랑, 참된 생명, 참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한번 알아보자 구요. 부모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게 될때는 그를 효자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서, 백성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다 바치게 될 때는 그를 충신이라고 말합니다.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한 위인은 많지만 성현은 많지 않습니다. 성현이란 나라로부터 환영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로부터 반대를 받고 쫓김을 받는 가운데서 성현이 나온 것입니다. 성현은 세계 인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인류의 생명을 책임지고 자기의 모든 사랑과 모든 생명과 모든 희망을 투입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가 죽어간 다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전부 다 바치고 갔다 하게 되면 그는 성현 중에서도 성현의 왕좌에, 충신 중에서도 충신의 왕좌에 혹은 효자 중에서도 효자의 왕자에 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닙니까? 전부를 주려고, 전부를 투입하려고 하는 여기에 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역사시대에, 이 세계상에 그렇게 자기 개인을 떠나 나라를 넘어 가지고 세계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주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 대관절 있었느냐? 오늘날 기독교가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지고 이 종말시대에서까지 왕자에 올라 있느냐? 그것은 어떠한 성인보다도 본질적인 원칙에 가까운 진리를 주장했기 때문에, 그런 길을 가르쳐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기독교가 세계를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원칙적으로 볼 때 타당한 결론입니다.

예수는 자기편에 있는 사람만 위한 것이 아니라 로마 병정을 위해서,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어 주고, 그들 앞에 자기 생명의 핏줄을 넘겨 주고 사랑을 넘겨 주고 희망을 넘겨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간곡한 입장에서 왔다간 사람은 역사시대를 대표해서 예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다른 성현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가 특출하게 주장한 것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입니다. 독생자라는 명사를 이 역사시대에 선포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부자의 관계를 찾자는 것입니다. 부자의 관계를 찾자는 것은 놀라운 발견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된 인생길을 간 사람이 아직 없어

그런 아들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참된 인간으로서,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 땅 위에 살기를 하나님도 바라실 것이고 예수도 바라실 것입니다.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나온다는 것을 알았으니, 어떤 사람이 참된 사람인가 생각해 보십시다. 참된 사람의 종류에 끼는 데 있어서 어떤 종류의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완전한 아들을 바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만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무엇이 있어야 돼요?「딸」딸이 있어 가지고 무엇을 하게? 둘을 결혼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결혼해서는 뭘해요? 아들딸을 낳으라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이 위하는 가정을 만들어 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는 아들을 주장했고 신랑 신부를 주장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을 중심삼은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본질적인 이상 혈족을 남기기 위한 뜻이 아니었더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보고 싶은 것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참된 아들이었고, 그뿐만 아니라 누이동생이 있으면 그 누이동생의 참된 오빠가 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 다음엔 참된 남편이 되는 걸 보고 싶었습니다. 참된 아버지가 되는 걸 보고 싶었습니다. 이것만으로 끝나느냐? 아닙니다. 삼대만 되면 사방으로 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에는 참된 아저씨가 되기를 원하셨고, 참된 할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중심존재로서 참된 왕이면 왕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 아니냐.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참된 남자로서 갈 길이 아니겠느냐고 보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최고의 아들의 권위를 바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봅니까?

여기 기독교 신자들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이해 못 할지 모르지만, 예수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웃음) 틀림없는 남자라구요, 남자. 만일 예수보다 더 훌륭한 여자가 있다면 어떻게 하고 싶겠어요? 장가가고 싶은 생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여기 우리 남자들 대답해 봐요. 자기보다 더 훌륭한 여자가 있으면 장가가고 싶어요, 안 가고 싶어요? 그러면 예수는 결혼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요 희망이 될 수 있는 참된 아들딸을 갖고 싶겠어요, 안 갖고 싶겠어요? 자기 아들딸만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자기 형제가 있으면 참된 조카도 갖고 싶을 거라구요. 그 다음에는 참된 할아버지가 되고 싶을 거라구요.

참된 아들로, 참된 오빠로, 참된 남편으로, 참된 아저씨로, 참된 할아버지, 참된 왕으로 세우고 싶은 마음이 하나님에게 없었겠느냐?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만나 봤어요? 못 만나 봤다구요. 틀림없이 못 만나 봤다구요. 그럼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만나 봤어요? 못 만나 봤다구요. 틀림없이 못 만나 봤다구요. 우리만 못 만나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못 만나 봤다구요. 문제는 여기에 있다구요.

그런 참된 사람은 일생을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가정은 이렇게 가야 된다는, 민족은 이렇게 가야 된다는, 국가는 이렇게 가야 된다는, 세계는 이렇게 가야 된다는 참된 길을 우리가 보았느냐? 배웠느냐? 보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다는 거예요. 그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참된 세계예요?「아닙니다」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삼촌, 부부, 형제 전부 다 참되다고 할 수 있어요?「아닙니다」아무리 여러분이 자신 있게 말한다 하더라도 '아니오'가 당연한 대답입니다. '아니오'가 틀림없다구요. (박수)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투입하는 데 행복과 희망과 보람이 있어

자, 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여기서 다시 한 번 알아봅시다. 대관절 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인간이 태어난 것은 나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다른 주체 혹은 상대를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역사가 왜 망해 가느냐?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한 세상이 되었느냐? 그것은 자기를 중심삼고 태어났다는 관념 때문입니다. 이 관념이 역사를 망하게 하고, 악한 세상, 타락한 세상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타파하지 않으면 새로운 희망의 세계는 나타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통일교회 사상입니다.

여기 남자 여자가 있습니다. 남자는 체격이 건장하고 '어, 내가 천하에 이만하면 아시아를 움직일 수 있고, 세계를 메주 덩어리 밟듯 마음대로할 수 있는데, 내가 제일인데'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세계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먼저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느냐?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웃음) 남자들 기분 나쁠 거라구요. 보라구요. 남자가 이렇게 생긴 것은 누구 때문이예요? 남자 때문에 이렇게 생겼어요? 아무리 봐도 남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나지 않고 여자-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쓸 데 없다구요-때문에 태어났다구요. 그렇잖아요? 그런가요, 안 그런가요?「그렇습니다」아무리 강한 남자도 여자에게는 약하다구요. (웃음. 박수)

그렇기 때문에 여자가 없다 하게 되면 남자는 1세기만 돼도 다 없어져요. 전쟁이 없어도 다 없어져요. 싸우지 않아도 그냥 다 없어진다구요. 전부 다 깨끗이 없어진다구요. 남자는 왜 태어났느냐? 남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는 왜 태어났느냐? 미국 여자들, '남자가 여자보다 나을 게 뭐야? 여자가 제일이지'라고 하겠지만, 미국 여자도 왜 태어났느냐면 여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위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태어난 근본이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다면, 내가 해야할 사랑이 나를 위하는 사랑이면 그건 모순된 사랑입니다. 남자의 사랑은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생명은 여자를 통하여, 남자의 희망은 여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맞아요?「예」

그러면 그러한 참된 남자와 참된 여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 문제라구요. 상대를 위해서 백 퍼센트 투입하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 퍼센트 자기의 상대존재가 발생함과 동시에 상대가 사랑을 플러스해 가지고 나에게 더 큰 것으로 갚아 준다는 거예요. 이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희망이 있고, 거기에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니냐.

타락은 전부 다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악은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사탄은 자기를 주장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새로운 이상세계, 참된 인생길, 참된 희망을 찾아 가기 위해서는 현재 자기를 중심삼은 모든 여건을 뒤집어 가지고 상대를 위하는 데에 전체를 투입해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희망의 세계를 찾아갈 수 있고, 새로운 인생관이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참된 사랑과 생명과 희망을 주는 길이 인간이 바라는 참된 인생길

자, 이런 얘기를 듣게 되니 기분 나쁠 거예요. 미스터 문이 말하는 것이 기분 나쁠 거라구요. 그렇지만 낙심하지 말라구요. (웃음, 박수)

여러분은 어디 가든지 중심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힘으로 싸우고 밟고 죽이고, 이렇게 해 가지고 강제로 되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는 투쟁이 있고, 고통이 있고, 비참이 있고, 희생이 동반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진정히 주는 사람은 빚을 지운 사람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빚을 진 사람은 머리를 숙이기 마련입니다. 진정히 주게 되면 진정한 중심자로, 주체로 모시려고 합니다.

선생이 학생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완전히 주려고 하게 되면, 학생들은 그 선생을 영원히 받들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 나라의 주권자가 있어 그 백성을 위해서 완전히 주려고 하게 되면, 백성은 그 주권자를 영원히 받들려고 한다구요. 역사 이래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냐? 인류를 위해서 갖은 희생을 하면서도 주려고 하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은 인류 앞에 추앙을 받을 수 있는 중심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세상 사람들 같았으면 '네 이놈, 왜 안 믿어'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전부 다 밟아 죽였을 거라구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위하는 하나님, 사랑하려고 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었다고 해도 나타나지 않고 없는 것같이 계시는 것을 볼 때에 위대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히 주는 날에는 상대 앞에 완전한 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이 놀라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구요.

여러분 그렇게 해보라구요. 이 미스터 문의 말이 거짓인가, 참인가 가서 해보라구요. 틀림없는 사실이라구요. 종교에서 희생과 온유겸손, 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말없이 희생해 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도 이런 원칙에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가르침이 있는 것을 볼 때, 참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기서 긍정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런 뜻을 받드는 곳이, 창조 당시 하나님과 같이 전체를 투입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참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에 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들 가운데 아무리 조그마한 나라라도 서로가 위하는 그런 나라라면, 위하는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는 나라라면 이 넓은 세상에 미국이라든가 문명국가가 많지만 어디를 찾아가겠느냐 할 때에, 여러분의 본심은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 해도 그 나라를 찾아가고 싶을 것이고 그 나라를 찾아가서 살고 싶을 거라구요. 천국은 그런 곳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주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주고, 이 둘이 합해서 아들딸을 위해 주고, 그 아들딸은 부모를 위해 주고, 그 다음에 이들이 하나되어 나라를 위해 주고, 나라가 하나되어 세계를 위해 주고…. 이렇게 위해 주기 위한 사상 체계를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을 개인에서부터 가정으로 나라로 세계로 줄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지상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참된 사랑과 참된 생명과 참된 희망을 한번 줘 보자는 거예요. 이 운동이 이 세계의 새로운 부활운동이요,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이요, 지상천국을 형성하는 운동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원칙을 볼 때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온다면 그 메시아는 와서 이런 길을 개척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메시아는 개인이 참되게 갈 수 있고, 가정이 참되게 갈 수 있고, 나라와 세계가 참되게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보여 주고, 실천해서 모든 내용을 제시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분과 더불어 그렇게 가면 틀림없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이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있는 것이요.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바라는 참된 인생길이 아니겠느냐.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하자는 운동이 우리 통일교회 운동입니다. 본인도 여러 면에서 다년간 부딪쳐 봤고, 알아 봤고, 찾아 봤지만 이 길이 아니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길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생애를 바쳐서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갔기 때문에 이것으로 끝내겠습니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