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생활이 전부 다 다릅니다. 또, 하는 일들이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전부가 다르기만 해 가지고는 하나의 목적으로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가정이면 가정에 열 식구가 있다면 그 열 식구 가는 길이 전부 달라 가지고는 그 가정의 한 목적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는 반드시 중심인 부모가 있어 가지고, 각자가 가는 길은 다르지만 부모가 가는 목적을 향해서 암암리에 가려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부모의 뜻을 이룰 수 있고 가정의 형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제각기 움직이고 살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 국민들이 국가의 어떠한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지 않으면 국가의 발전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범위를 넓혀 전세계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나라가 다른 길을 가지만 그 가운데 서도 암암리에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자, 그렇게 볼 때,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우리 개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세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은 세계 끝에 와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개인에서부터 가정을 통해서, 가정에서 국가를 통해서 연결되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의 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역사를 존중합니다. 옛날에 훌륭한 사람들이 쓰던 물건이라든가 그 나라가 사랑하던 무엇이 있으면 그걸 존중시해 가지고 그걸 그냥 그대로 순수하게 보존하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의 본성은 과거에 참된 하나님이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가지고 간 그런 어떠한 가치적인 길을 이어받기 위한 본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이고, 어느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성의 자유를 가지고 단체면 단체에 있어서, 나라면 나라에 있어서 그렇게 해 나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각 나라에 가 보면 박물관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 보면 맨 처음에 어떻게 출발해 가지고 어떻게 나와 가지고 지금은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하나님도 그런 입장이 아니겠느냐. 이건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출발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출발할 때 하나님 때문에 출발했을 것이냐, 남 때문에 출발했을 것이냐? 그 두 가지 문제에 귀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라는 말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창조는 누구 때문에 한 것이냐?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냐, 인간 때문에 한 것이냐? 이쪽에서 보면, 사람편에서 보면 사람 때문에 했다고 볼 수 있고, 하나님편에서 보면 하나님 때문에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찬가지의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위해서 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인간편에서 보면 인간을 위해서 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냐?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따로따로 생각했다가는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기에 하나의 물건이 있는데 이 물건을 가지고 서로 자기를 위해 있다고 따로따로 생각하게 되면 여기에서 문제가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은 우리 둘의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을 하나님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와 나는 하나'라는 관념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거라구요.
따라서 하나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하냐? 사랑이 필요하고 '나'라는 그런 생명의 연장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거라구요. 하나님은 뿌리이고 우리는 줄기요 가지입니다. 하나인 동시에 사랑한다는 거예요. 하나 하나를 사랑한다는 거라구요. 여기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관념이 나온 것이 아니냐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 되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되어 가지고 나를 사랑하는 것은 되지만, 하나님하고 나하고 갈라졌는데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안 된다는 거라구요. 문제가 여기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여기에 온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구요. 그럼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발현되어야 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할 때, 하나님하고 갈라져서 나를 사랑하는 자리에 설 것이 아니라 하나님하고 하나되어서 나를 사랑하는 자리에 서야 당당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리에 못 섰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되지 못한 자리에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절대시하지 않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되었다면 자기를 절대시하는 것은 당당한 것이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원리 원칙에 당당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다는거예요.
만일 그러한 자리에 있었으면, 하나님은 '이 우주는 내 것이다' 이러지 않고 '이 우주는 우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거라구요. 복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단수가 아니고 복수라는 거예요. 우리 것이다! 사람 하게 될 때 '내가 사람이다'라고 않고 '우리가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정도 내 가정도 되지만 우리 가정인 것입니다. 나라도 우리 나라요. 세계도 우리 세계요, 하나님도 우리 하나님이 되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여러분, 내 나라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요, 우리 나라라고 하는 것이 좋겠어요? 혼자 있을 때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이 모든 것이 연관 되어 있는 입장에서 생각할 때 우리 나라라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되어 있겠느냐? 하나님의 뜻도 하나님을 중삼삼은 뜻이 아니라 우리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우리의 뜻으로 세웠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우리의 뜻 가운데는 우리들이 가야 할 한 원칙적인 길이 있습니다. 하나의 길이 있다는 겁니다. 가정은 가정대로 있고, 민족은 민족대로 있고, 국가는 국가대로 있고, 세계는 세계대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직선입니다. 직선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아, 행복하다'라고 말합니다. 행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다. 사랑한다' 하는 모든 말은, 인간이 제일 바라는 그런 말들은 혼자, 단수로 되어지는 말이 아닙니다. 전부 다 복수로 되어지는 말입니다. 이렇게 상대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말만이 우리의 행복의 요소가 되지, 그렇지 않은 것은 행복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겁니다.
남자 혼자 '아! 나는 행복하다'라고 한다고 행복한가요? 사랑이라는 말이 혼자 할 수 있는 말이예요? 상대적으로 하게 되어 있다는 거에요. 웃는 데도 혼자 웃을 수 있어요? 혼자 웃으면 미친 사람이라구요. 귀도 눈도 전부 상대를 위해서 생겨난 거라구요. 눈이 생겨날 때 자기를 이렇게 보라고 생겼어요?(표정을 지으심) 눈은 그렇게 못 본다구요. 전부 상대를 보게 되어 있지요. (웃음) 그걸 보면 전부가 상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손이 이렇게 잡으려고 그래요? 이것이 쉬워요, 이것이 쉬워요? (행동으로 하심) 어느 것이 쉬워요?
이걸 볼 때에, 행복의 요건, 행복의 환경이라는 것은 혼자 있어 가지고는 가질 수 없다고 우리가 결론을 내려도, 그것은 부당한 결론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행복하고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행복해하고 좋아할 수 있나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만들었을 것이 아니냐.
그러면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가운데 그것이 무엇이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람밖에 없다구요, 사람. 사람은 오늘을 위해서, 오늘을 좋아하는 것보다 내일을 좋아하면서 상대적인 세계를 추구하면서 살게 되어 있다구요. 우리가 가진 생명 자체도 혼자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세계를 추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
자, 여러분은 사람 가운데 전부 가담해 들어갑니다. 여기 우리 아가씨들 결혼하게 되면, 남자 가운데 제일 잘난 남자한테 시집가고 싶어요, 못난 사람한테 시집가고 싶어요? 자기는 눈이 이렇게 생기고 별나게 생겼더라도 잘난 남자하고 결혼하고 싶다는 거라구요. (웃음) 그런 것을 볼때, 사람은 최고를 바라게 되어 있다구요, 최고. 무엇이든 최고.
여러분들에게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골라라 하게 되면 틀림없이 그 중에서 좋은 사람을 고를 거라구요. 눈도 잘생기고, 귀도 잘생기고, 손도 잘생기고, 몸도 잘생긴 사람을 고를 거예요. 아무리 외형이 다 잘생겼어도 말을 못하면 싫어한다는 거예요. 한 가지만 결여되도 싫어한다는 거예요. 벙어리라면 어떻겠어요? 발가락이 하나 없어 가지고 이렇게 가리고 들어온다면…. (웃음) 그런 사람은 원치 않는다구요. 완전한 것, 보다 완전한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완전한 것을 원했겠어요, 원하지 않았겠어요?「완전한 것을 원했습니다」얼마나! 얼마나! '절대적인, 영원한, 완전한' 그런 말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영원이요, 불변이요, 유일한 것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저께 좋았다가 오늘은 '아휴!' 그러는 것을 원하겠어요?「아니오」타락한 여러분 자신이 그런 것을 볼 때, 타락하지 않은 절대적인 하나님은 얼마나 그런 것을 원하시겠느냐 이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한번 말했으면 그 말은 절대적이 되어야 됩니다. 한번 좋아했으면 언제나 좋아해야 됩니다. 오늘은 좋고 내일은 싫다고 해서는 안 되겠어요. 여러분들 그래요? 알겠어요? 자, 절대적인 내가 있는데 그런 절대적인 나한테 시시한 것이 자꾸 와서 비교하면 기분 좋겠어요? 아, 내가 이만하면 미인이고 여자로서 안 갖춘 것이 없고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자인데, 절름발이 못난 것이 와서 '약혼하자! 결혼해서 나하고 살자'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요? 어떻겠어요? 싫다면 얼마나 싫겠어요? 아주 그 밥맛이, 밥을 먹을 수 없고 잘 수 없을 만큼 기분 나쁠 거라구요. (웃음) 그렇겠어요, 안 그렇겠어요?「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분이신데, 그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그보다 절대적인 인간이 와서 '하나님 나하고 삽시다'라고 하면 하나님도 좋겠지만, 그렇지 않게 될 때는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기분 좋겠어요, 나쁘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므로 절대적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땅 위에 왔으면 '완전하라! 절대적으로 완전하라!'고 하는 교훈을 해야 된다는 결론은 자연적으로 내려지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온전함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같이 완전해요?「아니오」얼마나 아니예요? 그럼 과거에는 완전한 사람이 있었어요?「예수님」예수님도 완전하지 못했다구요. 지금은 어때요?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러한 인간을 대해 가지고 지금까지 역사시대를 거쳐 나온 하나님이 멋지게 한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겠어요, 안 해봤겠어요? 「해 봤을 겁니다」그렇기 때문에 할수 없이 아는 체해야 되고, 할수없이 사랑하는 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거라구요.
여러분 주위에 부모라든가 혹은 이웃동네 부부들이 사는 것을 볼 때, 재미있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할수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불행한 사람이예요, 행복한 사람이예요?「불행한 사람입니다」알긴 다 아누만.
자, 그러면 하나님은 행복한 하나님이예요, 불행한 하나님이예요?「불행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타락한 우리들은 수천년 누더기통이 되었다구요, 누더기통. 누더기통이 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하나님 내 죄를 용서해 주소' 뭐 이렇게 하는데, 그게 얼마나 기가 막히는 놀음이예요. 여러분 친구 사이에도 무엇을 잘못했으면 얘기하기가 얼마나 거북하고, 얼마나 얘기하기를 주저해요. 그런데 절대적인 하나님 앞에 잘못 해 놓고 버젓이 나와 가지고 '하나님 나 용서해 주소'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나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할 때 '예, 회개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되겠어요? 어떻게 해야 돼요? 그저 눈물을 흘리고 가야 되는 거라구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반성해 볼 때에, 하나님 앞에 미안하고 부끄러워 나갈 수 없고 기도할 수 없는, 참 당황하고 이런 것을 느껴 봤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만 하면 의당히 다 해줄 줄 알아요! 천만에. 그러나, 외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도달할래야 도달할 수 없지만, 본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귀엽게 보실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어떻게 하든지 발견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된다는 겁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외형적으로는 말할 수 없이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도 그 마음 가짐이 순수하고 놀랍게 될 때는, 외형보다 그것이 천만 배 가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외형을 넘어 순수한 본성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부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해도 마음이 쭈그러지고 이렇게 되었다면 좋아하겠어요? 둘 다 완전하다면 좋겠지만 둘중에 하나라도 보다 완전한 것이 있게 될 때는 그 완전한 것을 중심삼고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을 누누이 발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타락한 우리 인간 앞에 교육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이 어떤 길일 것이냐? 인간이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는 입장에 못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가까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으로 찾아오는 길-당신이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다구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원리원칙에 입각한 그 입장을 제일 좋아하십니다. 인간의 본성도 그러한 하나님을 모셔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그러한 선한 길을, 그러한 좋은 길을 찾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되는 길에서 생명의 연장이 있는 것이요, 서로서로가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어 가지고 위하는 데서부터 생명의 출발을 보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원칙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여러분들이 대답할 때 마음이 좋은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이 좋다는 거예요? 무엇이 좋아야 마음이 좋은 거예요? 그 마음은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전체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좋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남을 위하는 마음입니다.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랑 받을 수 있는 몸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을 위하는 몸을 가져야 된다는 결론이라구요. 그것은 틀림없는 결론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본성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데로 가려고 하는데, 몸뚱이는 반대로 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시 구원하고, 인간을 다시 사랑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면 그 하나님이 가르치는 도리가 무엇이겠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볼 때, 남을 위하여 희생하라는 그런 도리일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철칙이요, 멋진 교육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희생한다는 것은 멋진 교육입니다. 성경에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큰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 가운데 어디를 찾아보나 그와 같은 것을 표준하고 가르쳐 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거예요.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틀림없이 계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남을 위해서 살라는 것이냐? 하나님과 같이 되어 달라는 겁니다. 자기와 같이 되어 달라는 거예요. 자기편이 되어 달라는 거라구요. 하나님과 하나되어 달라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어려울 때 갈라지지 말고 같이 어려워하고, 하나님이 기분 좋을 때도 같이 좋아하고, 기분 나쁠 때도 같이 나빠 하자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싶어요? 「예」얼마나, 얼마나? 하루, 하루쯤? 그러면 1년? 얼마나? 10년? 더 많이? 영원히? 일생 동안 눈물을 흘리고 살라면 그렇게 하고 싶어요? 하나님이 혼자 사시는데, 여러분도 혼자 살라고 하면 혼자 살 수 있어요? 하나님이 집이 있어요? 집이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하나님이 아들딸이 있나요? 아들딸이 없지 않느냐. 그런데 내가 아들딸을 가질 수 있어요? 가정이 없으니 종족도 없고 나라도 없고 세계도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하나님과 같이 우리 가정, 우리 나라, 우리 세계가 안 되는 한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는 나라가 있어요? 그런 종족이 있어요? 그러면 그러한 나라를 하나님은 원하시겠어요, 원하지 않으시겠어요?「원하십니다」원하신다면 절대적으로 원하시겠어요, 상대적으로 원하시겠어요?「절대적으로」 그렇게 절대적으로 원하신다면 얼마만큼 심각하시겠어요? 그럴수 있는 아들, 그럴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간절하시겠어요?
그와 같은 나라에서 살고 싶고 그와 같은 가정에서 살고 싶고 그와 같은 사람과 살고 싶은데 그런 나라가 없지 않느냐? 그런 가정이 없지 않느냐? 그런 사람이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좋다고 슬슬 놀러 다니고 그러겠어요?「아닙니다」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이 다 귀찮은 거라구요. 그럴 거라구요.
그러면, 하나님이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느냐? '내가 당신의 절대적인 아들을 찾아 줄 수 있고, 절대적인 가정을 이루어 줄 수 있고, 절대적인 나라를 이루어 줄 수 있습니다'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눈이 번쩍 뜨일 거라구요.
참된 가정, 참된 나라, 참된 세계를 말하면서 당신을 위해 애쓰고 있으면 '오냐. 한번 해보자' 하고 하나님이 신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로소 웃으실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6천년 동안 고생을 해 나오셨는데, 나는 하나님보다 덜 고생하겠소'라고 해 가지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럴 수 있어요?「아닙니다」녀석들 말은 쉽다고. 대답은 잘 하는구만.
보라구요. 로마제국 4백년 고역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매일같이 바라보시고 나왔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6천년 동안 쉬지도 않고, 하나님이 주무셔요? 쉬지도 않고 매일같이 '기어이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핍박당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으셨겠어요?
인간 타락 후 지금까지 하나님은 수고의 하나님, 고통의 하나님, 비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이상 나쁜 말을 갖다 붙여서 얘기할 수 있는 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팡이를 들고 이 민족 저 민족, 이 가정 저 가정,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느라 지금까지 수천년 동안 이 지구성을 배회하고 방황한 것이 아니냐!
행여 이 사람이 내 뜻을 알아주겠나, 행여 이 가정이 내 뜻을 알아주겠나, 행여 이 나라가 나를 알아주겠나 하면서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해 가지고 '너만은 내가 사랑하고 너만은 내가 지키고 너만은 키워 가지고 소원성취하겠다'고 했는데 배반자가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구는 24시간에 한 바퀴씩 돕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땅에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하루에 몇십 번 돌았다고 생각합니까? 즉, 지구가 도는 속도보다 느린 마음을 가지고 찾았겠느냐, 지구보다 더 빨리돌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더 빨리 돌아서 찾았겠느냐는 겁니다. 한 번 찾아 봐서 없으면 그만두어야 할 텐데 그만둘 하나님이예요? 오늘도 돌아 보고 또 내일도 돌아보고, 또 돌고 돌면서 찾아보고, 속는 줄 알면서도 또 속고…. 그런 하나님이 아니냐 이거예요. 자, 서양 사람들, 하나님이 서양 사람들을 한번 믿으려고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했습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하나님을 환영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자리에 선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해요?「아니오」 그렇기 때문에 황인종을 대해 가지고 생각해 보았을 거라구요. 하나님이 서양 사람에게 도로 관심을 가질 것이냐, 동양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냐 할 때, 동양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또, 동양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다가 동양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보게 된다면 어디로 갈 것이냐? 흑인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서양 사람한테 반대받고, 동양 사람한테 반대받고, 그 다음에 흑인한테까지 반대받았다 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가실 것이냐? 그렇게 되면 할 수 없이 그 셋 가운데 그래도 조금 덜, 조금 나은 사람이 있을 것인데, 하나님은 거기에 가실 것입니다. 그때는 서양도 아니고 동양도 아니고 흑인 전체도 아닌 한 사람을, 적어도 나라면 나라를 찾아가 가지고 그 나라 가운데서 한 사람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구요.
서양 사람이든 동양 사람이든 흑인이든 그 가운데서 제일 낫다는 한 사람한테 찾아가서 맨 처음에는 믿을 것 같고, 더 나았지만 또 배반했다할 때는 어디로 갈 것이냐? 그 다음에는 둘째 번한테 갈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라구요. 그렇게 하나님은 역사시대를 배회하면서 나오시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망하고 기독교가 나온 후에는 세계적인 기독교를 중심삼아 가지고 누가 하나님을 더 잘 믿고 누가 더 사랑하느냐 하는 운동이 벌어진 거라구요.
자, 그러면 개인이 하나님을 위하고 나라가 하나님을 위하고 세계가 하나님을 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의 사명인데 그런 기독교가 있어요? 원리 원칙에 입각해 가지고 나를 희생시켜서 세계를 구하고, 우리 가정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고, 우리 민족을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하고, 우리 나라를 희생시키더라도 세계를 구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민족이 있어요? 그런 기독교가 있어요? 그런 기독교인이 있어요? 있어요, 없어요?「없습니다」
그런 나라가 없으니 하나님이 찾아오고는 쫓기고, 얼마나 하나님이…. 한 사람이 그리워 찾아왔다 쫓기고, 또 이렇게 찾아왔다 쫓기고…. 하나님을 배반한 역사가 그렇다구요.
그런 기독교가 없는데 절망한 하나님은 어디로 갈 것이냐? 이것이 문제라구요. 어디로 가야 되겠어요? 당신을 위하는 아들과, 당신을 위하는 가정과, 당신을 위하는 나라와, 당신을 위하는 세계를 갖고 싶은 뜻을 가지고 기독교를 세웠는데 그것이 다 무너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디로 갈 것이냐 이거예요. 만일 그런 하나님을 대해 '나는 당신이 찾는 아들을 위해서, 당신이 찾는 가정을 위해서, 그런 나라와 그런 세계를 위해서 가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정신이 번쩍 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찾아가 보겠어요, 안 가 보겠어요? 오지 말라 해도 벌써 가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그렇습니다」
기독교가 그렇게 되어 있는 이런 현실 세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디로 갈 것이냐? 갈 데 없는 하나님을 어디로 모실 것이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그런 무리, 그런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고, 종족이 있고, 그런 나라가 있고, 그런 세계가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기뻐하겠느냐? 기독교를 한꺼번에 차 버리고 대번에 그곳으로 옮겨갈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무리가 없으니 통일교회는 그러한 패가 되자는 거예요. 그러한 패가 되자는 것이 통일교회예요.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된다구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독교를 바라보고 세계 종교를 바라보더라도 우리밖에 없다 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라구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예」여러분 자신이 그래요?「예」
우리 단체의 사상을 쩍 뻐개 볼 때, 개인으로 희생하고, 가정으로 희생하고, 종족으로 희생하고, 나라로 희생하고, 세계로 희생해 가지고 하나님을 해방하자는 그런 철두철미한 사상이 되어 있으면, 이 가운데 하나님은 안 계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통일교회에 오시지 말라고 쫓아 버리더라도 와 계시게 되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라구요. 그래서 완전한 개인을 찾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구요.
완전한 하나님과 하나된 인격, 하나님을 중심삼고 자기를 존중할 수 있는 그런 인격을 찾고 있는 거라구요. 또, 가정에 있어서 부부가 하나된 가운데 하나님을 중심삼은 우리 가정,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우리 가정, 그런 가정은 하나님의 가정이요 우리의 가정인데, 그런 가정을 찾아 나오고 있는 거라구요. 우리는 지금까지 종족을 초월해 가지고 새로운 종족, 지금까지의 어떠한 종족보다 강하고, 어떠한 종족보다 철두철미하게 하나님만을 위하는 중심적인 종족이 되자는 거라구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양심적이며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들을 모아 가지고 하나의 민족을 편성하고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자는 거라구요.
여기에 반대하는 어떠한 개인, 가정, 씨족, 민족, 세계를 제거해 가지고라도 그러한 권내에 흡수하여 세계를 복귀하는 사명을 짊어진 것이 우리 통일교회라구요.
여러분이 절대적인 하나님과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고 국가를 형성해서 틀림없이 단결하게 될 때는, 어떠한 민족이든 국가든 거기에 제압당할 것입니다. 천 명이면 천 명, 만 명이면 만 명, 혹은 단체, 종족이 하나되어 가지고 '하나님과 더불어 죽자!' 하게 되면, 하나님도 죽을 힘을 다해서 능력행사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능력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만을 위해서 계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사랑하고, 살자고 하는 실제적인 하나님인 것을 알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비로소 마음을 펴 놓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의 무대를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임아 나와 같은 아들이 못 되었기 때문에 하늘의 벌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규정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완전하지 못한 아들은 물러가라고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떠한 종파, 어떠한 주의, 어떠한 사상, 어떠한 국가의 권위가 있다 하더라도 이 앞에는 굴복될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아무리 봐도 통일교회와 같은 곳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리 통일교회를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