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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구료

일시: 1986.10.11 (토) 장소: 한국 서울 롯데호텔

​감사합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인사 말씀을 길게 할 수도 있겠지만 다 아는 사실이고, 간단히 지금까지 우리가 움직여 나온 내용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참으로 같이 사는 이 우주가 되어야

​지난 1월 24일 한남동에서 교수님들이 모여 가지고 새로운 결의를 하고 대 사회활동을 시작했고, 2월 17일부터 18일까지는 대 사회강연이라는 놀라운 역사적 페이지를 기록했습니다. 또, 그로부터 5개월 이후에는 세계 석학들을 중심삼고 일본 교수들과 여러분들이 협력하여 한국 땅에, 한국 천지에 있어서 역사적인 뭐라고 할까요, 새로운 말씀의 포문을 열었다는 사실, 이것은 세계를 넘어서 역사를 두고 기념할 수 있는 하나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 더우기 고명하신 학자님들이 동원됐다는 사실, 그 배후와 그 인연된 내용은 어떻든간에 학자들이 선두에 섰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기해서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타이틀이 상당히 길어요. '전국대학교수학생남북통일운동연합', 이거 글자로 열 여섯 자라구요, 열 여섯 자. 앞으로 이것을 무엇으로 약해 부를 것이냐 하는 것은 여기 교수님들이 전문분야에 있으니까 간단하고도 알기 쉽게 대표적인 글자를 추려 가지고 이런 운동을 제기해 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많은 희망을 본인이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제 나이 칠십이 가까와 온다구요. 한국 나이로 보면 예순 일곱이거든요. 이제 3년이 지나면 칠순인데 칠순 노인이 사회의 선두에서 뭘하겠다고…. 학자님 세계에서도 그렇지요. 요즘 정년이 얼마예요? 오십 오 세인가요? 「육십 오 세입니다」 육십 오 세. 육십 오 세면, 육십 오 세 이상 넘어 가지고 어떠한 단체의 선두에 선다든가, 사회적인 지도체제 앞에 선다든가 하면 규탄받는 것이 사실인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지금도 쭉…. 나도 이제는 정년이 되어서 후퇴해야 될 텐테도 불구하고 오늘 저녁에도 할 수 없이 끌려서 이렇게 나와 가지고 여러분, 고명하신 교수님들 앞에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되어서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 용납해 주길 부탁드립니다.

교수님들은 지금까지 교단에서 말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나도 일생 동안 말하고 살았지만 교수님들은 각 학과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삼고 연구하면서 지금까지 가르쳐 온 주체자들이기 때문에, 말을 지금까지 해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런 양반들이 말하는 내용은 체계를 갖추어야 되고, 원고를 써 가지고 전후가 맞아야 된다는 관을 갖고 있지만 나는 오늘 저녁 여기서 하나의 반동분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체계도 없이 두루뭉수리로…. 여러분, 범벅떡 있지요? 떡 중에서 시루떡보다 범벅떡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시고, 또 시간 있는 대로 느끼는 대로 한번 얘기해 보자구요.

그래서 대개 골자를 추려서 얘기하는데, 제목을 잡는다면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구료' 그런 내용인데, 제목이 이상스럽지요? 자, 그러한 내용을 가지고 말씀을 좀 해보자구요.

여러분 중에 가정을 안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가정을 가지면 부모를 모시고 그 다음에는 처자를 거느리는 이런 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그런 가정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가정과 같이 살고 싶구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이거예요. 더 나아가서 우리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중심삼고 볼 때, 어버이 대신 대표로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주권자를 중심삼고 그 나라의 백성들이 '그대와 더불어 우리들 진정 같이 살고 싶구료' 할 수 있는 국민과 혹은 국가 지도자가 얼마나 있었느냐? 이렇게 묻게 될 때, 이 범위를 넓혀 가지고 세계적으로 확대시켜서…. 그러면 이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의 어떠한 중심존재가 결정되어 그 중심존재와 더불어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소' 그럴 수 있는 세계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대우주를 창조하신 대주재 되시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있다 할 때 하나님과 이 피조세계는 물론이고, 거기에는 인간은 전부 다, 과거의 인간, 현재의 인간, 미래의 인간이 전부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우리들이 같이 살고 싶구료' 할 수 있는 하나님과 인간과 우주가 될 수 있겠느냐? 이게 수수께끼입니다. 하나의 숙제면 숙제고, 우리가 숙원으로써 숙명적으로 바라는 희망이라면 희망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명제를 놓고 다시 돌아와서 자기에서부터 시작하게 될 때, '나는 진정히 가정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부모와 친족이 같이 살고 싶어했느냐 할 때,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자기 생활을 넘어 생애의 노정을 통해서 '그랬소' 할 수 있는 가정이 있다면, 이는 세계의 가정이 추앙하고 기념할 수 있는 대표자가 될 것이며 이름이 날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면 부모로서, 아버지면 아버지로서, 어머니면 어머니로서 그럴 수 있는 생활을 하고, 그 부모가 그럴 수 있는 생활에서 중심이 되어 가지고 가정과 더불어 그렇게 살 수 있는 가족이 됐다면 그 가정은 과연 행복한 가정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이 큰 문제이기에, 나와 상관없는 문제 같지만 이것은 직접 나와 너와의 생활무대에서 필연적인 운명으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생활의 터전이 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한 운명적인 생활 자체를 영위해 나가는 내 자신이 거기에 책임질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어 있느냐?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열 명의 식구 중에 과연 우리들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서 사는 사람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열 식구의 생애노정에 있어서 잊어버릴 수 없는 형님이면 형님, 부모면 부모, 누님이면 누님으로서 식구들 마음속 깊은 가운데를 점령할 수 있는 하나의 그리움의 주인공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효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 효자가 뭐냐? 어버이와 더불어 언제나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사는 데는 무엇을 중심삼고? 여기서 공통분모가 뭐냐 하면,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고의 역사가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이것을 제거시켜 놓고 변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운데 모셔 놓고 변하는 것을 원하지, 이것을 부정해 놓고 변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가정에 있어서 왜 효자 효녀가 되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효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가정에서 어느누구든지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냐. 마음으로도 그렇고, 생활에서도 그렇고, 우리의 오관을 통한 느낌의 모든 생활권까지 그렇고, 깊은 심정의 내면까지도 같이 살고 싶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효자·충신·성인·성자의 길은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어하는 길

이것을 범위를 넓혀서 보면, 나라를 중심삼고 왜 애국자가 필요하냐, 애국자가? 도대체 애국자란 뭐냐 이거예요. 어떠한 주권자가 있고 그 치하에서 다스림을 받는 백성이 있다면, 그 백성들이 그 사람과 떼어질 수 없고 같이 살고 싶은, 이상을 향하여 같이 살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거기에서 '나'라는 것을 품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나눌래야 나눌 수 없고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이런 주종관계의 내연을 대표하고 사는 사람이 애국자입니다.

그 애국자의 마음에는 주권자를 상시 잊을 수 없고, 그 긍지를 잃을 수 없는 생활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소위 애국자라고 우리가 말을 붙인다면 붙일 수 있지 않겠느냐 이거예요.

더 범위를 넓혀서 보면, 우리 역사상에는 성인이 있습니다. 그 성인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성인이라는 분들을 역사상에서 찾아보면 이들은 전부 다 종교의 종주가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석가모니라든가 예수님이라든가 공자님이라든가 마호메트, 이들은 모두 4대 성인이지만 전부 다 종주들입니다. 그러면 그 종주들이 갖는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면 하나님과 같이 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 치리를 받는 이 세계 인류가 있으면 그들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같이 살고 싶구료'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생애의 노정, 생활을 통한 생애의 노정을 거쳐간 사람들이 아니겠느냐.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성인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인 위의 사람을 통일교회에서는 말하기를 성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자가 있습니다. 그 성자란 도대체 무엇이냐? 성인 하는데 성인 자체들도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해요. 하나님이 인격적 신이고 우리 생활의 이상의 표상이 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른다구요.

그다음에 성자란 분은 어떤 분이냐 이거예요. 만유의 존재요, 만군의 여호와의 그 모든 주권자의 총수의 자리에서 하나의 중심존재로서…. 그가 계시는 곳에는 국법이 있는 동시에 그가 거느리는 왕궁의 궁법이 있다는 거예요, 궁법. 그렇지 않아요?

성자는 그 국법을 중심삼고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행해야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왕궁법에 있어서, 왕을 모시고 사는 생활에 있어서 거기에 위배되는 생활을 거쳐 가지고는 왕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왕궁의 법을 중심삼고 넘어서는 자리에서 왕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왕이 그 아들이 없으면 안 되고 아들도 그의 아버지인 왕이 없으면 안 되는, 영원히 같이 살자고 할 수 있는 입장에 선 사람이 있다면, 그를 보고 우리는 성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생활 영역, 인간이 어떻게 사느냐, 우리 인생행로를 어떻게 가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추려 보게 된다면 효자가 가는 길, 충신이 가는 길, 성인이 가는 길, 성자가 가는 길의 그 골자가 무엇이겠느냐?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위로 아래로 같이 있고 싶어하고, 전후로 좌우로 주야를 넘어서, 생애를 넘어서 같이 살고 싶어하는 마음에 사무친 사람들이 아니겠느냐. 이런 추리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4대 성인의 길도 참으로 같이 살고자 했던 길

자, 이것을 속세의 인간을 떠나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한테 물어 보자 이거예요. 범위를 넓혀 대한민국을 넘어서 성인이라는 사람한테 물어 보자구요. 예를 들어 석가 같은 양반한테 '석가, 당신이 지금까지 2천 5백 년 역사를 거쳐 불교를 펴 나왔지만 불교를 펴 온 목적이 뭐요? 만민과 더불어 서로서로 갈라지고 떼어질 수 없는 사이에서 역사를 초월해 같이 살고 싶은 도리를 펴기 위한 것이 아니요?' 하고 묻게 될 때, 그 물음에 석가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어요? 틀림없이 '그게 옳소' 하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붙들고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기독교를 만들어 가지고, 세계 문화권을 지도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을 거치게 하는 데 위대한 공헌을 한 당신으로서 세계 만민에게 이렇게 포교해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었소?' 하고 묻게 될 때, 무슨 뭐 돈을 모으고, 어떤 단체를 만들고, 무슨 나라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답은 간단하다는 것입니다. '그대와 나와 참으로 같이 살고 싶소'라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또 공자라면, 공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공자님은 인격적 신에 대해서 잘 몰랐다는 거예요. 하여튼간에 '당신이 유교라는 모든 것을 택해 가지고 아시아, 혹은 세계에 있어서 무엇을 원했소?' 하고 묻게 되면, '아시아 사람을 넘어서 세계 사람들까지, 우주의 더 높은 분이 있으면 그분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놀음을 한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요'라고 같은 대답을 할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회회교의 교주 되는 마호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에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무엇이 필요치 않은 분으로서 당신의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이 뭐요?' 하고 묻게 된다면…. 하나님이 돈이 필요하면 돈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식이 필요하겠어요? '지식의 대왕이시고 권력의 대왕이신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요?' 하고 묻는다면 하나님도 기필코 오늘 말한 제목과 같이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소. 참으로 같이 살고 싶소'라는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개인으로부터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넘어서, 대우주가 있다면 그 우주를 넘어서 인격적인 신이 있다 하는 그 세계권에서는 공통의 답을 할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학교면 학교에서 여러분 교수님들이 이사회를 중심하고 교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떡 서게 된다면 거기에는 상하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이사회의 임원들과 학생들을 중심삼고 '나는 저 이사회 임원들과 같이, 혹은 내 학생들과 진정히 같이 살고 싶소. 당신들은 원치 않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구료!' 할 수 있는 교수가 있다면, 이런 교수는, 그의 갖춘 인격이 부족하고 무슨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교수 중의 교수일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교수…. 또 학생에게 물어 볼 때, '아이구, 선생님이랑 학생들이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이럴 수 있는 학생은 참된 학생입니다. 또 이사회 임원 가운데 '나는 교수들과 학생들과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단다면 그는 그 학교를 누구보다 사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존재로서 세계에 부끄럽지 않다는 거예요. 이런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러한 모든 '같이 살고 싶구료' 하는 그 내막의 공통분모가 무엇이냐? 공통분모가 무엇이 되어야 되느냐? 그것은 권력도 아니예요. 권력은 인류의 역사시대를 통해 볼 때 역사를 초월하지 못해요. 권력은 한때의 것이예요. 권력은 한때의 것입니다. 지식, 지식세계는 발전하는 것이다 이거예요. 그러면서 돌아가고, 돌면서 발전해 나갑니다. 여러분, 뭐 교수님들에게 이런 얘기 해서 실례지만, '나는, 지식의 세계에서 이 학문과 더불어 길이길이 살고 싶구료!' 그런 마음 있어요, 진정히?

이렇게 볼 때, 여기에 공통분모로 위에나 아래나 전후 좌우를 막론하고 역사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서, 시간성을 초월한 자리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하나의 분모가 무엇이냐? 이것이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효자,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며 사는 사람, 애국자,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며 사는 사람, 성인, 세계 만민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 또 성자,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사는 사람 이외에는 없지 않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모든 인류가 같이 살아 나가야

오늘 여러분들은 '거 문선생이 무슨 얘기를 할까? 뭐 종교 지도자니까 그냥 무슨 강연이나 설교 같은 얘기를 하겠지' 할 것입니다. 물론 설교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오늘 이와 같은 말을 하는 레버런 문에게 적용해 보자구요. 레버런 문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무얼하는 사람이냐 이거예요.

아무리 산곡에 혼자 앉았다 하더라도 애국자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민족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다. 같이 있다. 민족이 어려울 때는 그 어려움이 나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다, 내 앞의 일이다, 기쁨이 지나가는 기쁨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으로 남아질 수 있는 우리의 기쁨이다, 슬픔이 한때의 슬픔이 아니라 영원한 슬픔이요, 우리의 슬픔이다' 이렇게 못을 박고 다짐지을 수 있는 참된 심정의 터전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레버런 문이라는 한 사람을 중심삼고 볼 때, 오늘날 통일교회의 하나의 종주로서 세계적인 종교계에 문제의 인물이 되어 가고 있지만 통일교회 교인들과 문 아무개는 무슨 관계냐? 간단한 것입니다. 그대와 나와는 참으로 같이 살고 싶다는, 참으로 같이 살고 싶다는 …. 내가 나이가 많다고, '당신은 육십이 넘었으니 이제는 정년 퇴직해서 물러가십시오' 하지 않는다구요. '물러가면 나도 따라가고 싶다' 하는 거예요. 이러한 유대관계가 보이지 않는 통일교회 배후에 있다는 거예요. 개인을 넘어서, 통일교회 가족을 넘어서, 통일교회 종족권을 넘어서, 민족권을 넘어서, 세계를 넘어서…. 이게 문제입니다.

세계에 어떤 저명한 학자가 있으면, 그 저명한 학자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다고, 그 저명한 학자도 자기가 사랑하는 제자들과 같이 살고 싶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늘을 걸어, 자기 나라를 걸어, 자기 직장을 걸어, 자기 생활하는 가정을 걸어, 전체를 대표해서 '나는 놓고는 못 살겠소' 할 수 있는 그런 세계적인 대학자가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 아니예요. 거기에서 비로소 행복한 교수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것은 간단한 내용이지만 여러분 마음세계 생활에 있어서, 일상생활에 있어서 이러한 내용의 중심무게를 측정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애국자냐? 효자냐? 성인은 못 되어도 성인의 반열을 따라갈 수 있는 추종자가 되느냐? 성자의 자리에는 못 서지만 추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느냐 할 때, 그 공통분모의 내용이 무엇이겠느냐?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 그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참 중의 참사랑입니다. 자식이 기뻐하면 그 자식보다 더 기뻐하는 게 부모라 이겁니다. 자식이 슬퍼하면 그 슬픔의 아픔을 그 자식보다도 더 느끼는 것이 부모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선 것이 참을 대표한 부모의 자리인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러면 참된 주권자는 누구냐? 선군이 뭐냐? 마찬가지예요. 성인의 도리가 무엇이냐? 만민과 더불어 역사시대를 넘고 넘어 초역사시대에서 같이 살고 싶어하는 것이 성인의 도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성자의 도리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천리의 정수가 무엇이냐? 만유존재와 더불어 깊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서, 넓은 자리에서 같이 살고 싶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는 좋고 나쁨을 초월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랑을 공통분모로 삼은 인연이 너와 내가 참되게 살고 싶은 행복의 기틀이 아니겠느냐.

고명한 선생님들 앞에 오늘 저녁 이것을 제시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애국자가 되어 있느냐? 애국자가 되기 전에 애국자인 양 비판하지 말라는 겁니다. 성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심정적 사랑의 인연을 갖지 못하고는 성인의 도리를 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 그것은 외식이 되기 때문에, 이중 인격이 되기 때문에, 하나의 자리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하나되기를 바라며 남북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오늘 이것이 뭐예요? 남북통일운동연합, 좋아요. 이름은 거창하고 대사회의 명분을 가질 수 있는 표제를 갖고 나왔지만 이북에 가 가지고 여러분들이 그들과 더불어 같이 살고 싶으냐 이거예요. 40년이란 세월이 해방 후에 지나갔는데 그간에 이북을 얼마나 생각해 봤느냐 이거예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러기가 쉽지 않다구요. 우리 같은 사람은 고향을 이북에 갖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아 이거 이북과는 반대되는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사람들은 이북은 먼 나라와 같이, 지나가는 하나의 나라와 같이 생각될 수 있는 처지라구요.

'진정히 진정히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어' 할 수 있는 마음을 회생하지 못한다 할 때는, 또 하나의 외식의 단체를 형성해 놓고 역사의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철부지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나는 이런 것을 주장하는 창시자로서 염려하는 마음뿐입니다. 이제 몰랐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몰랐으면 부끄러움을 모면할 수 있다는 거예요. 대우주의 천리 앞에….

이제 오늘 레버런 문이 제시한 이 말을 중심삼고 여러분들은 책임소행의 추구를 그 무엇인가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도피할래야 도피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몸부림치는 이런 놀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내가 개인적으로 사는 생활에 있어서의 생활철학은 이것밖에 없어요.

내 어머니 아버지와 길이길이 살고 싶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어도 나라 없는 곳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사는 것은 불효입니다. 아무리 애국자가 되어서 나라를 사랑하고 군왕을 모시고 살고 싶지만 성인의 도리와 통하지 않는 길을 가는 애국자의 길은 막힙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아무리 성인의 도리의 길을 다 간다 하더라도, 성자의 도리와 대우주의 왕국법을 중심삼고 치리하는 본국의 법에서부터 흘러나온 세계의 모든 법을 다 거치지 않고는 왕궁에서 환영할 수 없다 이겁니다.

참으로 같이 사는 세계를 위해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이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제창한 것은…. 통일교회란 도대체 뭐냐? 통일이라는 것이 뭐냐 이거예요. '통(統)' 자는 '거느릴 통' 자입니다, 거느릴 통. 주체가 되어 가지고 따라올 수 있게 만드는 통일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가정의 통일은 누가 시켜야 되느냐? 효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효자의 깊은 눈물을 위로해 줄 수 있고, 효자의 깊은 환희를 찬양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부모님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애국자의 모든 괴로움을 알아주고, 애국자의 그 비참한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이 지난날의 역사상에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내 일이었고, 그 일이 우리 백성의 일이었고, 그 일이 우리 나라의 주권자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애국자의 기쁨을 찬양하고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자가 나라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대통령이 있다 해도 마찬가지예요.

대우주의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이거예요. '나는 밤낮 너희들과 가까이, 만민과 더불어, 진정한 참사랑을 가지고 너희들의 고통을 심히 아프게 느끼는 바요, 너희들의 기쁨을 천세 만세의 역사를 초월해 가지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마음은 역사가 변천하고 시대가 지나가더라도, 세계의 차원은 달라지더라도 변함없다'고 하는 주체자가 있다면 그 주체자를 가진 상대자는 얼마나 행복할 것이냐.

교수님들, 가정에 돌아가 가지고 내가 주체자가 아니거들랑 상대자로서 그 주체자와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어할 수 있는, 어떠한 어려움의 길을 감수하고라도 같이 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주변이 혼란되고 환경이 어렵다 하더라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행복한 사람이예요. 가정적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구요.

나라의 주변이 아무리 혼란된 환경이고, 파괴의 역사가 찾아온다 하더라도 그러한 주권자와 그런 백성이 천리를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고 거기에서 서로서로 하나되어 놓고는 살 수 없는 이런 인연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라 앞에 부끄럽지 않고 백성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존재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자면 이게 나라 앞에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거예요.

성인의 도리도 마찬가지요, 성자의 도리도 마찬가지이며,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의 생활 내면도 전부 다 이와 같은 도리에 일치된 생활을 꿈꿀 것이 아니냐?

참된 사랑을 가진 참된 사람이 되어야

그러면, 오늘날 레버런 문이 나와 가지고 세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그 모든 복잡다단한 환경을 거치면서 부딪치고 밀고 하지만, 그것을 넘고 넘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힘이 무엇이냐? 이북에 가게 되면 진정 내가 역사시대에 민족으로서 갖지 못하던 사랑의 심정을 갖추고, 나라와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해서 자랑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내 자신에게 물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각된 자체를 가지고 모든 환경 여건이 부합되지 않는 데 들어가 가지고 부딪쳐야 하는 것입니다. 네가 참이냐, 내가 참이냐? 그 나라는 무엇을 남기고 싶어하느냐? 참된 사람을 남기려고 그럽니다. 참된 사람이되 어떤 참된 사람? 지식을 가진 참된 사람, 권력을 가진 참된 사람, 돈을 가진 참된 사람을 남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랑을 가진 참된 사람을 남기려고 한다는 거예요. 나는 그걸 알고 살아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댄버리니, 무엇이니 별의별 놀음을…. 처넣고 나서는 나라가 회개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우리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선두에서 당한 분이다 이거예요. 저는 아시아의 한 나라 한국 사람입니다. 지금 현재 그들 앞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안중에도 없어요. 밤이나 낮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맨끄트머리인 알래스카 주만도 못하게 보는 거예요. 이렇게 평가 기준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14년이란 세월을 지내고 나 가지고는 눈을 등불같이 뜨고 호령하던 그들의 눈에는 밤에 숨어서 눈물지을 수 있는 환경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걸 힘으로 만들었어요? 지식으로 만들었어요? 돈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청사(靑史)에 길이길이 남을 수 있고, 청사의 발전 요인을 중심삼고 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 단 하나의 힘인 참된 사랑으로 만든 것입니다.

참된 사랑이 도대체 뭐냐 이거예요. 오늘 말하는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구료'입니다. 나는 이러고 있는데 당신들은 도망을 가? 들을 지나고 산을 넘어 도망가는 그들을 바라보고 눈물지으면서 봄날이 오면 좋겠다고, 상봉의 때가 오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길손일지언정 산을 넘고 대해를 건너더라도 불행한 사람이 아니예요.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의 제일 어려운 것, 미국의 제일 어려운 것, 너희들의 슬픈 골짜기를 내가 책임지고 너희들 이상 울어 줄 수 있는 마음의 길을 찾아보자' 이게 레버런 문의 주의입니다.

하나님이 왜 만민 앞에 필요하냐 이거예요. 위급한 일이 벌어지면 '내 어머니 아버지 나를 도와주시오, 나라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오' 하지 않고,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하느냐 이거예요. 이것은 비절(悲絶)한 말인 동시에 최고의 선언의 말인 것입니다. '우리의 안식처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그거예요. 왜? 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에. 결론이 그래야 백 점을 주실 거 아니예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레버런 문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 이거예요. 우리 통일교회의 전통이…. 교수님들이 오게 되면 내가 아무리 어디 갔다 왔더라도 얘기하다가 절대 내가 먼저 일어서지 않아요. 벌써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한마디 말이라도 같이 즐겨 주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퍼해 주려고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찬양하려고 하고 말이예요, 그러다 보니 열두 시가 지나고, 한 시가 지나고, 두 시가 지나고 말이예요, 그게 보통이예요. 우리집사람도 '아, 이제는 칠십객이 되었는데 그러면 어떡하느냐'고 염려하고 있지만, 천리(天理)가 가는 길이 이러니 그 길을 따라가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그 사체를 붙들고 같이 살고 싶다는 거예요.

유교의 전통사상이 그렇잖아요? 부모가 돌아가면 3년상을 치러야 된다고 해 가지고는 부모님 묘지에 가 가지고 복을 벗을 때까지 효자의 도리를 다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게 형식적이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진정히 살고 싶어서 진정히 밤이나 낮이나…. 이럴 수 있는 심정의 도리를 여러분의 생활과정에 얼마나 남기겠어요?

문중에 들어가게 되면 아이구, 교수님 왔다고 칭송을 받을 거예요. 문중에는 지내온 모든 가문을 이어받아 그 가문이 번창하도록 축복해 주기를 바라고, 어떤 운이 찾아와 가지고 축복해 주기를 바라는 조상들이 많은데 그 조상들은, 주체 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후손의 복을 비는 겁니다. 그렇게 많은 문중 조상들이 전부가 복을 빌기를 자기 후손 잘되라고 한다구요.

통일은 참된 사랑으로만 가능해

그러면 잘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되느냐? 그 길이 무엇이냐? 문중이 잘되려면 문중을 대표하는 아버지로부터 그 아들 자체가 문중을 위해서 밤낮 문중이 아니면 살 수 없다고 해야 됩니다. 이런 사람이 그 문중의 주체가 되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가지고 그렇게 둘이 살아 본다면 그 문중은 흥하는 것입니다. 흥한다는 거예요. 날아가던 새도 학자님 문전에 와서 점심 못 얻어먹는다구요. 이거 뭐 아침부터 들어앉아 가지고 연구하느라고 얼굴도 못 보겠는 데?

지나가던 새가 점심이라도 얻어먹고 말이예요, 뭐 배고플 때 먹이라도 주워먹게 하려면 그래도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참새야, 우리 같이 살자, 같이 살자' 이럴 수 있는 마음의 주체자를 찾고 있다는 거예요.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그렇지요? 강아지도 멍멍멍 하면서 자기와 더불어 좋게 살고, 아침이나 저녁이나 보게 되면 반기고 말이예요, 같이…. (녹음이 잠시 끊김) 그게 천리이치예요. 그게 천리예요. 간단합니다.

통일은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남북통일은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주먹으로? 힘으로? 힘으로 굴복시켜 놓으면 굴복당한 것이 굴복할 때보다 힘이 커지면 '이놈의 자식…' 하는 거예요. 그 세계는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에는 저 문 아무개가 애국자라고…. 나 그런 말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갈 길이 바쁜 사람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번에 내가 여기 온 것도…. 미국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나 때문에. 아까 박보희도 얘기했지만 말이예요. 상원의원 하원의원들이 잘못하다간 모가지가 댕강댕강 길바닥에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구요. 여러분은 모르지만 미국 CIA는 잘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위험하다면 지금이 제일 위험한 때라구요. 여기 와 있는 것도…. 올림픽 대회를 유치하게 된 것도 내가 피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피난 온 녀석이 도망다니면서 나가 다닐 수 있어요? 그저 앉아서 운동 구경이나 하고, 후원도 하면서…. 이때도 난 너와 더불어 언제나, 아침이나 저녁이나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가진 것이 사실인데….

저, 코치가 그렇잖아요? 금메달을 타게 되면 코치를 붙들고 뭐 키스하고 눈물 흘리고 말이예요. 마음이 그렇다구요. '내가 바라던 이상의 조국을 넘어 천상세계와 통일의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하나의 친구로구나' 그렇게 봐요. 세상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만물도 그렇다구요. 벌레들보고도 '나하고 같이 살고 싶지?' 하는 거예요. 무엇 중심삼고? 돈? 지식? 아니예요. 사랑이예요.

자, 이제 시간도 많이 갔기 때문에 결론을 짓자구요. '남북통일운동연합'이라고 하는데 그게 보통 일이예요? 김일성을 어떻게 하고? 저 민정당을 어떻게 하고? 때려치우고? 그래야만 됩니다. 여러분 마음이 이남 땅에 살지만 이북에 사는 그들과 같이 살 수 있다는 나를 발견하고, 이북이 이렇게 어려운 곳이니 김일성의 독재정권을 알면 알수록 그 치하에 있는 사람은 얼마나 비참하냐 이거예요. 남한 땅에 살지만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밥을 못 먹고 목이 메어 가지고 불쌍히 사는 내 동포를 위해 눈물 흘리고, '당신의 어려움과 더불어 나는 살고 있다. 당신이 주체라면 대상의 자리에서, 이 땅 위에 주체가 없다면 내가 주체의 자리에서 어느 한 날 나타날 것이다' 이럴 수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운동이 여기서 벌어진다면 이북의 복귀는 멀지 않습니다. 멀지 않아요.

오늘날 통일교회 교인들이 부산을 성지로…. 내가 범일동에서 살던 집, 제일 비참할 때, 테이블 요만한 것, 우리 식구 한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고 내가 전부 다 치다꺼리하던…. 그건 뭐 비참한 거예요. 비참해! 그 집이 비참해! 그런데 왜 그 야단이냐 이거예요.

도탄 중에 있는 20세기 말기에 찾아올 사상적인 몰락, 몰가치 시대의 혼란스런 미래상을 중심삼고 눈물짓고, 그들과 같이 그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생활의 면모를 갖고 살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이거예요.

여러분, 세계에서 유명한 학자들, 그 학자들과 공부하게 될 때 그가 고생한 모든 것,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내가 그와 더불어 같이 느끼고, 보고, 행동할 수 있는 데에서 학자세계의 역사적 계통이 남아지는 게 아니예요? 그 정, 지식이 아닙니다. 정, 정의 교류가 인연맺어지지 않으면 그 학자 만났댔자 뭐해요? 그 신봉하던 대학자를 만나서 뭘할 거예요?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지' 이런 말보다, 그들 만나면 눈물이 앞서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 어려운 자리에서도 같이 살고 싶은 희망의 한때의 동조자로서의 태도가 그 생활 이면에 엮어져야 할 게 아니냐 이거예요.

내가 교수 아카데미를 세워 놓고 고맙게 생각한 것이 있어요. 이거 본인이 여기 앉아 있는데 얘기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예요. 내가 댄버리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이박사와 몇 분이 방문을 왔더라구요. 와 가지고 이박사가 척 나를 보더니 눈물이 핑 돈 거예요. 나보고 인사하면서 '레버런 문은 잘못 살지 않았다'고…. 이항녕 박사가 누구한테 머리숙여요? 세상에 제일 대꼬치 같고 말이예요, 자기이상 높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사람 아니예요? 그 눈에 눈물이 핑 돌고…. 내가 없으면 아마 눈물이 뚝 떨어졌을 거라구요.

그것을 보고 난 후에 나는 바른길을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내가 여기 와 있지만 내 슬픔이 저들 마음속 깊은 가운데 저들의 슬픔으로 이어지고, 내 기쁨이 저들의 기쁨으로 싹이 트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걸 내가 자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은 그걸 자랑하려고 하는 거예요. 내 명예? 명예는 흘러가 버리는 거예요. 한 시대에 흘러가 버려요. 역사를 초월해서 그 자리를 더듬을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무덤이 10년 20년이 지나 삭아 없어지더라도 진정한 효자는 평장이 된 무덤을 품고 몸부림치면서 통곡하는 거예요.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그 누가 이어받을 수 없는 단 하나의 깊은 골수의 심정을 이어받아 가지고 그 사정, 옛날 시대, 역사는 지나갔지만, 십년 수십년 생애를 거쳐갔지만 그것이 오늘의 현실에 살아 꿈틀거릴 수 있는 사실로 폭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 년 전 것이 지배를 못 하고 천년 후에도 그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는 힘의 내연이 잠재해 있는 곳이 어디냐? 오로지 이곳밖에 없다 이겁니다.

참으로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만이 역사상에 남아져

대한민국의 기성교회가 나를 제일 반대했습니다. 40년간 반대했습니다. 또, 미국의 교파 전체가 반대했습니다. 반대하는 그들은 반대의 세계에서 살지만 내 본연의 마음은 반대하는 그들의 형님의 자리에서, 어버이가 없거든 어버이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을 대신한 자리에서 그들의 앞날을 염려하고 눈물지어 주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기독교가 몰락되는 것을 방지하고 소망의 세계로 새로운 폭발구를 개문할 수 있는 하나의 인연이 된다는 사실을…. 그러다 보니, 세월이 지나고 보니까…. 목사들이 무엇을 위해 한국을 찾아와요? 그 부산 성지, 내가 앉았던….

그때야말로 피난민으로 처량하던 때예요. 그땐 옷을 말이예요, 미군들이 입었던 잠바를 입었어요. 주머니 많은 것이지요. 뺀찌도 집어 넣고 하는 주머니 말이예요. 아래는 뭐냐 하면 한국 바지, 이걸 떡 입고 허리띠를 매고 그랬다구요. 신은 뭐냐 하면 고무신 헌 것. 그렇게 하고 앉아 가지고 '저 대해를 건너 내가 마음으로 기대하던 심정의 인연을 저나라에 가서 뿌려야지, 씨를 뿌려 놓아야 돼'라고 생각했어요. 빙산 같은 이 세계 위에 부모가 어디 있고 처자가 어디 있고 자식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그때가 6ㆍ25동란 때 아니예요? 부산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농을 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야, 너 봐라. 앞으로 세계가 이렇게 되는 거야' 하시며 큰 상선, 하늘 상선에 나를 태워 놓고는 수많은 군중이 환호하는 걸 보여 주고 위로하시더라구요.

자, 그러한 하나님이 오늘날 현시대에 나와 같은 사람을 중심삼고 초월적인 환경에서, 시간과 거리의 무한한 경지를 넘어서 가지고 오늘 시간권 내에서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 단지 그거예요. 하나님 당신이 나와 참으로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다 그 말이라구요. 하나님도 그걸 찾으실 거 아니예요? 거기에는 하나님도 위신을 다 버리고 투입하신다는 거예요. 자기의 모든 권위, 모든 것을 전부 다 희생시켜 가지고 이것만은….

그러다 보니 40년 반대한 기독교는 다 망운이 들어 죽게 되었고, 그렇게도 망하라고 기도하고 야단한 통일교회는 세계적으로…. 지금 내가 너무 유명해져서 큰일났어요. 그러니 앞으로 박사님들 좀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교수님들에게. 나누어 받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문 아무개의 제스처라든가 말하는 것, 지식, 아무것도 배울 필요 없어요. 단 하나 여러분 앞에 줄 선물이 있다면 '그들하고 같이 살고 싶다.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저세계에 가서도…' 이거예요.

백 철 박사님, 그 영감 참 안됐다구요, 내가 붙들고 참 눈물이 쑥 나오는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데, 그 얘길 못 듣고 갔다구요. 요즘에 한국만 찾아오면 생각이 나거든요. 그 영감쟁이한테 내가 할 짓을 못 했구나 하고. 형제 이상의 권고를 하고, 부모 이상의 충고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서서 '당신과 나와는 갈라질 수 있는 인연이 아니라 영원히 동고동락할 수 있는, 그 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동지였는 데…' 하는 말을 해야 했는데 그 말을 못 했구나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이거, 박사님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난 몰라요. 좋아하고 그러는 것은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이거예요. 그것은 레버런 문의 생활철학이예요.

옛날에 어느 부락을 찾아 들어가면 그 부락의 역사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서, 할아버지를 만나면 밤을 새워 가면서 얘기를 잘 들어 주거든요. 그다음에는 그 시대와 그 현실을 잘 들어 준다구요. 반장 이상으로 잘 들어 주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래, 미래의 소망이 뭐 있소? 걱정이 무엇이 있소?' 이렇게 물어 보고, 그다음에는 둘이 의논하여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된다고…. 그러면 자기 아들딸보다도, 반장보다도, 그 동네 유명한 교수보다도, 자기의 누구보다도 나하고 이마를 맞대고 아, 이거 맞는 말이라고 한다구요. 그렇게 살다 보니 오늘날 내가 세계적인 인물이 된 것 같아요. 아직까지 갈 길이 많은데 말이예요.

마찬가지로 앞으로 통일하는 데는 지식 가지고 안 됩니다. 힘 가지고 안 됩니다. 물론 그것을 다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것도 필요하지요. 거기에 앞서 여러분들은 지식 있는 분들이니만큼 그 지식 전문분야에 소속한 웃사람으로서 아랫사람과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돼요. 그 마음이 없으면 전부 다 가짜입니다, 가짜 교수.

난 그래요. 그 마음이 연결될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하고…. 세계적인 학자들이 자기 체계를 갖추어 가지고 이론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수고했어요? 그 골짜기를 헤쳐 나가면서 흘리던 눈물과 더불어 뼛골에서 우러나는 심정을 중심삼고 책을 보면, 그 어려움을 느껴 가지고 붙들고 눈물지으며, 역사는 지나갔지만 내가 같이 살고 싶은 분이라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학자는 그런 사람을 찾아서 전수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역사적인 철학입니다. 천리입니다.

여러분은 학생들을 얼마나 사랑했어요? 내 뼈에 깊이 사무쳐 잊을 수 없는 그 학생을 붙들고 추위를 무릅쓰고, 어려움을 무릅쓰고, 체면을 무릅쓰고, 모든 생활환경에 있어서 '그대와 나와 떨어질 수 없다'는 심정을 가진 사제관계가 되어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또, 남편으로서 아내에 대해서 '당신이 밤에 가면 나도 거기에 가 있는 것이요, 낮에 가면 나도 가 있는 것이예요' 할 수 있는 그런 이면적 생활을 하는 부부관계, 그러한 부자의 관계…. 나라에 대해서는 애국자의 가는 길이 그런 것이요, 성자의 가는 길이 그런 것이요, 성인이 가는 길이…. 그 성자의 주체들, 성인의 주체 되는 그런 사람들도 그 길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거 없다구요. 그 길을 원하는 거예요. 이것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고하를 막론하고 그러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리의 길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망하라고 반대를 하고 그랬지만, 망하라고 한 사람은 다 망하고 반대받은 사람이 주체가 되더라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대한민국으로부터 40년 동안 내가 욕을 먹고…. 비행장에 드나들 때에도 얼마나 천대받았는지 알아요? 형사 나부랭이들이 '자네가 아무개구만, 문이라는 사람이구만' 그랬다구요. 그렇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난 너의 선조와 더불어 너의 어머니 아버지와 더불어 네 아내와 더불어 네 자식과 더불어 같이 살아갈 것이다' 했다구요. 마음의 답이 그래요. 그렇게 40년을 지내고 보니 문 아무개 이름이 점점 높아졌다구요. 앞으로는 문선생을 반대하다가는, 난데없는 사람이 나와서 반대하는 사람 멱살을 붙들고 '이 자식아' 하는 거예요. 씨를 거두어서 뿌려 놓았으니 봄동산이 되게 되면 그 종자가 많이 나오게 되어 있거든요.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온다구요. 싸우지 않고 모든 것이 평준화될 수 있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보면 정신없는 사람 같지요? 아닙니다. 심각한 것입니다. 그리 아시고 집에 돌아가서, 마을에 가서는…. 그래서 요전에 향토학교를 시작했지요? 여러분은 교수들로서 향토를 얼마나 생각했어요? 향토와 더불어 살았느냐 이거예요. 자기의 사랑하는 부모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고, 향토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애국 못 해요. 애국한다는 말은 거짓말이예요. 나라와 더불어 살고 나서 세계와 더불어 살게 되어 있지, 세계와 더불어 살고 나서 하늘과 더불어 살게 되어 있어요. 단계가 그래요. 향토를 사랑하고 향토와 더불어 살고 싶은 교수가 나라에 애국해요. 나라에 애국한다구요.

참과 거짓은 갖다가 같이 놓고 비벼 보면 알아요. 자갈돌 모아 놓고 전부 비벼 보면 압니다. 누가 닳아지나, 누가 없어지나. 가짜는 없어지고, 진짜는 닳기는 닳아지지만 남는다는 거예요. 그것은 표본으로 남아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 나라의 가정은 어떤 표본이 되는 거예요? 이게 결론이예요. 어떤 표본? '우리들 같이 살고 싶구려' 하는 표본이예요.

그렇게 사는 아들이 있으면 그 아들이 표본이 되는 거예요. 그런 어버이가 있으면 그 어버이가 표본이 되는 거예요. 이 나라에 어떠한 표본이 남을 것이냐? 그렇게 산 사람이…. 이 세계에 어떠한 성인이 남을 것이냐? 그렇게 산 성인이…. 하나님이 있으면 하나님의 왕자가 많을 텐데 그 왕자 가운데서 성자는 어떤 사람? 그렇게 산 성자만이 주체로 남을 것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주체가 되지 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사상의 골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렇게 알고 돌아가서 부디 여러분 학교에서부터 이런 운동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못 할 겁니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는 거예요. 남북통일은 내 마음에서부터, 내 생활주변에서부터….

사람은 누구나 참으로 같이 살기 위해 사랑의 길을 환영해

이 자리는, 내가 여기서 살고 있지만 미국 가서 같이 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심정권 세계, 사랑의 세계는 동위권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 윤박사가 있지만 윤박사가 만약에 일자무식인 여편네를 얻어서 사랑관계만 딱 맺으면 일자무식인 부인은 하루 아침에 같은 위치에 올라간다구요. 동위권에 당당히 참석할 특권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런 표어를 세워 살고 있다면, 내가 그런 입장에서, 상대적 자리에서 그렇게 살았으면 나는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동위권에 동참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자동적으로 보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 살다가 천상세계 왕궁의 정도를 거쳐 가지고 직행해서, 그 문을 거쳐 가지고 하나님의 목전까지 가면 어느누구가 막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내가 이제 밤에 어디에 가든…. 내가 합동결혼식을 많이 해주었으니까 한 가정의 문을 차며 '야 이 자식들아, 뭘해? 문 열어라!' 한다면, '누구요? 우리 엄마 아빠도 미국 같은 서구사회에서는 전화로 약속하고 오는데 선생님도 그 법에 치리받아야 돼요' 그러겠어요? 아니라구요. 문을 차고 나와서 '어서 들어오십시오' 하는 거예요. 그런 전통이 서야만 행복의 세계가 벌어질 것이 아니냐. 이것이 선생님이 지금까지 역사시대에서 싸우는 비법이었습니다.

그래, 나라를 사랑해요? 요즘도 민정당과 무슨 당인가요? 신민당. 서로 대통령 해먹겠다고…. 해먹어 봐라 이거예요. 너하고 살겠다고 하는 국민이 누구냐? 그건 다 흘러가는 거라구요. 아무리 잘나도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주 싫다는데도 자꾸 살자면 폭행도 하는 거라구요. 골을 까 버리는 거예요. 내가 통일교회 교주가 되어 있지만 통일교회에서는 내 골 깨자는 사람은 없다구요. 왜 없느냐? 내가 그걸 실증적으로 증거하지요. 미국에 엑스 무니(ex-Moonie), 통일교인 됐다가 그만둔 사람들이 말이예요, '나는 그 협회장 보기 싫어. 나하고 동창생이었는데 나보다 공부도 못했던 녀석이 협회장 됐어. 그 아래에 내가 왜 가 있어? 선생님은 좋지만 그거 안 한다구. 그래서 내가 안 나가' 하면서 이래 저래 변명할 조건은 다 있지요.

그 엑스 무니들이 내가 댄버리 감옥에 떡 들어갔는데 전부 다 패당이 되어 가지고 편지를 부쳐 왔더라구요. '통일교회 사람들은 가짜고 우리 엑스 무니가 진짜입니다. 선생님을 감옥에 들여보낸 사람들은 지금까지 통일교회에 남아진 사람이다. 선생님을 감옥에 들여보내고 책임 안 지고 버티고 있는 것들이 통일교회에 남아져 있는 패들, 우리들이 좋아하지 않는 패들인데 우리들은 그렇지 않소. 선생님 들어 있는 옥을 전부 다 파괴시켜서라도 선생님을 헬리콥터로 남미로 이송할 것을 계획하는데 어떻소?' 그러고 있더라구요. 그들의 말이 그래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다 좋다 이거예요. 선생님은 다 좋다는 거예요.

충신과 간신이 다른 게 뭐예요? 간신도 왕을 좋아하고 충신도 왕을 좋아해요. 마찬가지예요. 마찬가지인데 뭐가 다르냐? 순리적인 과정을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질서적인 모든 단계를 거치지 않는 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이 사랑의 심정을 가지면 아무리 법이 있다 하더라도 그 법을 초월해서 삽니다. 어느 가정에 그렇게 사는 아들이 있다면 그 가정에 법이 있다면 누가 그에게 제동을 걸 수 있어요? 제어할 수 있어요? 나라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으면 누가 제어할 수 있어요? 세계에 그렇게 사는 성인이 있다면 누가 제어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법이 암만 있더라도 이렇게 사는 사람을 막을 수 있어요? 환영하는 것입니다.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세계로부터 하늘땅이…. 자 그러한 인격, 그러한 인격을….

통일교회가 현재 문제가 많고, 더우기나 많은 바람잡이 여자들이 들어와 가지고 나 때문에 전부 다 문제를 일으키고…. 가만히 선생님을 보면 맘이 그렇게 되는 거예요. 통일교회 말씀 듣고 나면 아이구, 영원히 같이 살고 싶다는 거예요. 이것은 이상을 중심모체로, 하나님을 모체로 하여 같이 살아야 할 텐데 하나님과 이상을 빼놓고 육체적으로 전부 다…. 그런 뭐가 있다구요. 내가 동서로 많은 여행을 하고 돌아다니며 살지만 그런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왜 그러느냐? 별거 없어요. 쇠가, 강철이 지남철이 되려면 지남철에 자꾸 비벼대고 하나되어야 하는 거예요. 가까와져 가지고 동화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자기가 지남철이 되기 때문에 그런 운동이 벌어지는 거예요. 설명을 앞세우는 것이라든가 환경의 모든 역사성을 초월해 가지고 그런 운동이 벌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본심이 그래요, 본심이.

더불어 사는 천리의 도를 따라 사는 사람이 되라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 단에 설 때는 '내가 단에 선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다' 하는 생활철학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이 같이 살고 싶어하는 자리에서 성인을 대표한다, 나라님을 대표한다, 국민을 대표한다 하는 자리에 서 가지고 선언하는 교육을 해야 된다 이거예요.

나를 본받아라! 본받는 데는 무엇을? 지식이 아니예요. 나라와 더불어, 성인의 도리와 천리와 더불어 같이 살고 싶어하는 정서적 터전 위에서…. 거기에는 여러 가지 방향성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경제, 철학, 과학 같은 전문분야가 필요해요. 보금자리의 터전이 되어 있지 않으면…. 사막 같은 데는 물이 있을 수 없고, 물이 없는 데서는 초목이 자랄 수 없어요.

'아무개 교수가 가르치는 거기에 가고 싶어! 없으면 집에라도 찾아가고 싶어' 하면서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갈 수 있게끔 되어야 돼요. 새벽에도 찾아가고 싶은 거예요. 또 선생님도 마찬가지라구요. 아무개가 보고 싶어서, 달이 뜰 때 산보 나왔다가 아무개 집 앞을 지나갈 때는 문 앞에 서 가지고 담을 넘어 들여다보며 아무개 있나 하고 차마 소리는 못 지르고 할 수 없이 돌아서는, 그런 교수가 있다면 얼마나…. 생각해 보라구요. 거기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 나아가서는 이상의 세계가 그 사람과 연결되어 간다구요.

내가 혼자 서 있지만 나는 이러한 역사적인 모든 존재물들이 추구하는 그런 생활의 복판에 서 가지고 선언하는 거예요. 그게 권위가 아니겠어요? 그럴 수 있는 교수들은 오늘부터 문이라는 사람이 한 말을 지나가는 사람이 한 말로 듣지 않을 거예요. 이거 생각할 거예요,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구료' 하는 거 말이예요.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때는 레버런 문을 생각할 겁니다. 그걸 남기고 가야 돼요. 그걸 남기고 가는 사람은 절대 가는 길이…. 저승 가는 길도 탄탄대로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모든 것이 빗장을 지르고 막는 거예요. 이것은 지나가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다 경험을 통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의 두려움을 넘고서, 역사와 더불어, 천년 전 사람들과 더불어…. 천년 전 사람이 바로 이와 같은 생활을 원했던 거예요. 오늘 50억 인류가 이와 같은 생활을 원하고 있는 거예요. 미래의 우리 후손도 이와 같은 것을 원할 거예요. 그러니, 초월적인 역사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이 가는 길이 얼마나 멋지냐 이거예요. 이렇게 살다 보니 어디 가도 외로운 것을 몰라요. 외로운 자리, 감옥에 들어가서도 친구가 많다구요. 친구하는 거예요. 비참한 것 같지만 거기에는 깊은 심정의 마디가 생기는 거예요. 끊을 수 없는 마디가 생겨나요.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기 많은 교수님들, 카프는 연합운동을 해야겠기 때문에 나이 많은 교수님들하고…. 지금까지 교수와 학생은, '어디 학생이 교수 앞에…' 이랬을 거예요. 거 굉장히 권위 있게 살았지요? 그러나 오늘부터는, 문선생의 말을 듣고 나서는 달라지게 됩니다. '야, 너희들하고 살고 싶다. 학생 시대가 그립다. 내게 있는 지식 다 주고 너희들하고 사는 것이 더 좋아. 아이고, 연구 다 끝났어. 너 와서 얘기도 하고 같이 좀 지내자구' 하는 게 필요한 거예요. 단에서 필요한 교수가 아니고 생활에서 필요한 교수여야 돼요. 생활을 통해서 생애노정을 걸어갑니다.

생활을 넘어서 생애와 더불어 살고 싶은 제자를 만들 수 있는 데서부터 새로운 이상의 세계가 뻗어 나갑니다. 그 터전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대한민국이 망해도 그 학교가 망하더라도, 그 교수가 아무리 외롭게 쓰러져 객사하는 몸이 됐다 하더라도 그는 성공한 사람이예요. 온 우주가 알 만큼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영광의 역사를 거쳐 가지고 기억된다는 사실, 이것은 틀림없는 참인 것을 나는 알고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부디 나와 더불어….

우리는 인연이 되어 만난 겁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전부 다 인연되어 가지고 만난 사실, 이제부터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문 아무개와 더불어 이렇게 할 수 없이 인연되지 않았느냐 이겁니다. 우리들 참으로 같이 살고 싶구료. 갈라진 남북을 위해 마음세계는 왔다갔다하는 거예요. 그게 필요한 거예요.

애국동지들이 투쟁하는 그 과정에서는 밤잠을 안 자고, 시간을 초월하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결의, 결탁이 애국심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뗄 수 없다구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그러한 교수님이 됨으로 말미암아 남북통일은 이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다구요.

부디 이런 결론을 들으시고 스스로를 과거생활과 쭉…. 그건 자기 자신이, 양심이 잘 아니…. 교수님들은 더 맑은 양심을 가지고 있을 거 아니예요? 자기가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잘 아는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어디 가서 말을 한마디 잘못하고 오면 얼굴을 못 든다구요. 얼굴을 못 듭니다. 얼마나 치명적인 충격인지…. 그 이념이 생활철학이란 거예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오늘날 이 거창히 할 일이…. 남북통일 하게 되면 민주세계와 공산세계의 통일이 여기서 벌어지는 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 서서, 이제 여러분은 멀지만 50억 인류를 대표하고, 30억 아시아인을 대표하고, 여러분의 학교를 대표하고, 여러분이 가르친 모든 제자들을 대표한 자리에서 다시 그들과 더불어 사는 놀음을 국민과 더불어 할 때는 여러분이 애국자 되는 거예요.

성인의 도리를 틀림없이 해야 성인의 추종자가 되는 것이고, 성자의 추종자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에 대해서 하게 되면 하나님의 상속을 이어받을 수 있는 후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생애를 통해서 그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전하는 것이니, 부디 돌아가서 가정에서부터 이 운동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표제에 부끄럽지 않은 소기의 결과가 이 삼천리 강토에 뿌리 박을 수 있게 해주기를 부탁드리면서, 본인의 말씀을 끝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수)